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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보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미국의 대통령 문화:9)

    ◎도약의 20세기 연 ‘공익의 조정자’/트러스트 해체 등 대기업 부당행위에 철퇴/포츠머스 조약 중재… 미 최초의 노벨상 수상/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 등 저서 38권 남겨 【메도라(미 노스다코타주)=나윤도 특파원】 ‘컬러드(colored canyon) 캐년’.미중부 대평원 북단 노스다코타주의 서쪽끝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국립공원 초입에 위치한 이 거대한 골짜기는 이름 그대로 형형색색의 띠를 두른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신비의 조화를 이룬다. 남북 다코타주의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미주리강의 지류인 리틀미주리강을 따라 색동 바위의 군무를 연상케 하는 비경이 루즈벨트 컨트리가 된 내역은 이 공원의 입구에 해당하는 인구 100명의 소읍 메도라에 들어서면 이내 알 수 있다. 루즈벨트가 3년간 머무르던 ‘말티즈크로스’통나무집 앞에 세워진 그의 기념관에는 자연보호 대통령인 그의 생활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미국의 자연보호역사가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다코타의 황량한 벌판을 달려온 여행객들에 컬러드 캐년의장관과 함께 위대한 대통령과의 만남이라는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미 26대 태통령으로 미 역사상 도약의 시대인 20세기를 연 그는 저술가,언론인,등산가,카우보이,전쟁영웅,노벨 첫 수상자 등 미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타이들을 보존하고 있을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그같은 루즈벨트의 업적에 대한 설명이 다코타에서 시작하는 것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의 정치철학이던 ‘공익정신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 출신인 루즈벨트는 1884년 2월14일 발렌타인데이에 23세의 젊은 부인 앨리스와 부친을 한날 병으로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컬러드 캐년으로 훌쩍 떠나 왔다.이곳 목장에서 카우보이 생활을 하며 갖게 된 자연의 애착과 그것들이 방치된 채 손상돼가는 안타까움이 후에 그가 대통령이 된 후 국립공원 시스템을 창안하게 했다는 것이다.이는 오늘날 미국이 많은 자연을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었고 또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큰 업적으로 꼽힌다. 그의 공익정신이 유명해진 원인은 취임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대기업 조정정책 때문이었다.남북전쟁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은 미국의 경제를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팽창시켰고 문명기기의 발달로 국민생활을 몰라보게 바꿔놓았지만 그 발전의 뒤안길에 만연돼 가는 각종 병폐는 미국 사회를 엄청난 불평등의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당시 가장 크게 대두된 문제는 대기업들의 횡포였다.철도 철강 석유 등 분야에서 통합과 독점을 통해 경제권을 장악한 기업인들은 정치인들과 언론까지 돈의 힘으로 매수,자신들에 유리하게 이끄는 등 국민 전체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협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내에는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 일소와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지고 있었다.루즈벨트의 공익정신은 이같은 시대적 요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당시 부통령으로 있다가 1901년 9월14일 대통령의 암살로 예기치 않게 대통령이 된 그는 “연방정부는 어떤 특별한 세력의 대변자가 아니다.바로 공익의 조정자가 돼야만 한다.또한 대통령은 바로 이같은 조정자의 중심인물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강조,대기업 병폐의 치유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할 것을 천명했다. 루즈벨트의 정책 핵심은 대기업들의 부당행위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 힘을 정부가 갖도록 하는 것으로,우선 악명높은 몇몇 기업의 통합을 해체시키는데 주력했다. 그 첫대상은 철도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던 북부증권회사였다.당시 미 최대의 금융가 J.P 모건과 철도업자 제임스 힐이 공동으로 만든 막강한 파워를 가진 이 회사에 대해 손을 댄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그러나 루즈벨트는 과감하게 법무부에 이 회사에 대한 셔먼 트러스트 금지법위반 여부 조사를 명령했다.모건과 힐이 이에 강력히 반발했으나 루즈벨트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결국 2년후 대법원의 판결로 해산명령이 내려지게 됐다.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트러스트 해체에 나섰으며 반발하는 기업인들에게 “만일 대기업들이 정부가 불법이라고 간주한 무엇인가를 행해 왔다면나는 그것을 끝까지 척결해 버릴 것이다”,“부패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부패기업들에도 칼이 필요하다”는 등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그동안 노사분규시 일방적으로 고용주 편을 드는 것으로 돼 있던 정부의 입장을 노동자의 입장도 동동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이같은 그의 온건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는 과격한 변화를 반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을 만족시켰으며 1904년 압도적 지지로 재선 대통령이 되었다. 루즈벨트는 대외적으로 미국의 위상을 제고,국제사회의 지도국으로 부상케 했다.파나마를 콜롬비아에서 분리독립시키고 파나마 운하를 완성시킨 것은 중요한 그의 업적의 하나로 지적되며 1905년에는 러·일 전쟁 당시 양국 대표를 뉴햄프셔의 포츠머스로 불러 평화조약을 중재하기도 했다.이같은 그의 국제평화 노력은 이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미국에 첫 노벨상 수여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858년 뉴욕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수학한 루즈벨트는 24세때 뉴욕주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뉴욕경찰국장,해군부 차관보를 역임했다.또 1898년 미·스페인 전쟁 발발시에는 의용기병대 대장으로 참전,산 후안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영웅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후 뉴욕주지사에 당선됐으며 1900년 선거에서 매킨리 공화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부통령이 된 후 8개월 만에 42세의 나이로 미국 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취임했다.그는 21세때 첫 저서인 ‘1812년 해전’을 발간한 이래 역사,자연,여행,정책관련책 등 38권을 펴내 미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다.또 대통령 퇴임후 10년간 ‘The Out look’이라는 잡지의 편집자 등 언론인 생활도 하고 아프리카 사냥여행,브라질,정글 탐험을 했으며 새로운 정당을 결성,정치적 재기를 꿈꾸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도을 하다가 1919년 60세의 나이로 롱 아일랜드의 자택에서 생을 마쳤다.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 따르면 는 종합순위 5위를 나타내 2위를 기록한 제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12촌간)와 함께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수잔 사르나 루즈벨트박물관 큐레이터/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애칭 딴 ‘테디 베어’ 곰인형 인기/미국 이상적 남편·아버지의 전형 【오이스터베이(미 뉴욕주)=나윤도 특파원】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적지인 사가모어 힐은 뉴욕 롱아일랜드 오이스터베이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사저와 박물관,당시 농장건물 등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다.이곳 박물의 수잔 사르나 큐레이터는 “아직까지 그가 대통령같다”며 설명에 들어갔다. ­루즈벨트가 높이 평가되는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19세기말 30여년 대통령들이 지나치게 무능했고 기업들에 매수되다시피해 땅에 떨어졌던 대통령직의 권위를 되살렸기 때문이다.그리고 부통령에서 승계한 대통령의 경우 그때까지는 대부분 잔여임기만 때우는 식이었는데 그는 그같은 관행을 종식시켰다. ­그가 애칭으로 많이 불리는 이유.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었고 또 최초의 현대적 대통령으로 친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그래서 TR이라는 이니셜도 처음으로 사용됐다.또 애칭 테디(Teddy)가 광범위하게 불렸으며 그를 딴‘테디 베어’라는 곰인형은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유명하다. ­루즈벨트의 가족관계는. ▲첫 부인 앨리스와 1녀,소꿉친구로 두번째 부인이 된 에디트와 4남 1녀를 두었다.무척 자상한 성격으로 미국의 이상적 남편,이상적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특히 전투기 조종사이던 막내아들이 1918년 프랑스 공중전에서 전사해 슬픔을 안겨 주었으며 그후 큰 아들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서 전사,1,2차 대전에 아들 하나씩을 잃은 아버지가 됐다. ­그의 성품은 어떠했는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대통령 취임직후 백악관 첫 손님으로 흑인 지도자였던 부커 워싱턴을 초청했던 것은 유명하다.백악관 역사상 첫 흑인 초청을 놓고 남부 정치가들로부터 반감을 사 고전하기도 했다.그는 사냥 등산 등 야외생활을 좋아하면서도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으며 6천여권의 장서를 남겼다.
  • 크로아티아 7년전쟁 종식/유엔서 동슬라보니아 주권 공식이양

    【자그레브 AFP 연합】 유엔이 관리하던 동슬라보니아 지역의 주권이 15일 크로아티아에 공식 이양됨에 따라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에 빼앗겼던 지역을 모두 회복했다. 유엔 동슬라보니아 잠정통치기구(UNTAES)의 윌리엄 워커 수반은 이날 부코바르 교외에서 열린 주권 이양식에서 유엔기를 크로아티아 정부에 넘겨줌으로써 91년 시작된 소위 ‘크로아티아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91년 세르비아계가 폭동을 일으켜 장악한 동슬라보니아의 주권 이양은 95년 미국의 중재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간에 체결한 에르두트평화협정에 따른 것으로 세르비아계 주민 처리 문제로 당초 예정보다 늦게 마무리됐다. 주권 이양식에 참석한 로버트 겔바르드 미특사는 크로아티아 정부에 대해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도록 촉구하고 난민 송환이 계속돼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에 빼앗겼던 서슬라보니아와 크라이나 지방을 95년에 회복한 바 있다.
  •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전쟁(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불 저널리스트 장 귀스넬/인터넷 역기능의 심각성 제기/실증 접근 방식 통해 21세기 정보전 예측/선전국의 통상·군사정보 ‘점령’ 폐해 기술 【파리=김병헌 특파원】 인터넷.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인터넷의 필요성과 중요성,장래성에 대해 서술한 책들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부분적이기는 하나 역기능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전쟁’이다.비밀정보 시스분야에서의 ‘전쟁’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있다.부제도 ‘비밀정보서비스와 인터넷’. 저자 장 귀스넬은 학자가 아니다.저자는 프랑스의 유명 시사주간지 푸엥에서 기자생활을 한 저널리스트.국방문제전문가로 명성이 높다.어떤 면에서는 인터넷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실증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인터넷이 21세기의 정보전에 미칠 영향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비밀정보 서비스는 군사분야에서 비밀보장을 생명으로 하는 첩보 및 정보전의 핵심이다.그리고 점차 활발해지는 기업의 경제전쟁에서 비밀정보 서비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저자는 이책에서 과거 암호통신의 형태에서 새로운 통신 총아로 떠오른 인터넷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의 비밀정보 서비스를 둘러싼 세계의 새로운 전쟁을 예견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을 하나의 혁명이라고 정의한다.그는 인터넷은 지혜에 다가서는 최첨단 도구라는 설명도 곁들인다.그동안 인간이 몰랐던 것들에 완전히 새로운 지혜로 다가가는 ‘통로’라고 말한다.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인터넷의 순기능을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여기서 인터넷의 양면성을 도출해낸다.특히 ‘지혜의 통로’라는 점에서. 저자는 그래서 인터넷 혁명은 양립되어 있다고 말한다.통신혁명의 기수이지만 냉전종식과 함께 이미 전세계의 새로운 전략이 된 경제 및 군사 첩보전같은 정보전쟁도 인터넷의 세계인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따라서 이미 현재의 역사자체도 이같은 엄청난 전쟁과정속에 있다고 말한다. 즉,초능력적인 인터넷 연결체제의 도움으로 비밀정보 서비스는 인터넷 망과 망사이에 그들의 가지를 계속 치고 있다는 설명이다.이미 무역분야에 있어 전자상거래에 대한 논의가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다는 대목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컴퓨터에 정보를 주고 받고 이런 와중에 상대방의 정보를 가로채는 터전이 사이버 스페이스내에 빠른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사이버 스페이스로의 거대한 전쟁에 말려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그동안 인터넷에 비교적 소홀했던 유럽국가들이 미국의 사이버 스페이스 완전 점령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사이버 스페이스를 이미 무주공산의 영토개념으로 ‘제7의 대륙’,‘21세기의 신대륙’으로 보고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비밀정보 서비스로 대별되는 정보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전쟁은 시작됐다.군대는 인터넷 통신망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또다른 새로운 군대는 새로운 무기인 정보기기를 들고 나서고 있다.그러나 여기에 필요한 군사전략은 아직 자신의 길을 닦지 못했다.또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필요로 하는 군수품을 자기의 창고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길,그리고 지키는 길을 건설하지 못한 상태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인터넷 혁명의 전혀 새로운 면인 셈이다.지구상의 어느누구라도 정보의 목적이 되는 시장에 동분서주 하지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를 가질 수 있다면 물론 해커 등의 등장이 시작종은 울린 셈이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대규모의 획득과 노획물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추진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시작된 정보전이 인터넷의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을 가져다준다는 경고가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가장 큰 핵심이다.“인터넷의 발전이 세계민주주의를 새롭게 진전시키면서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지구상의 발전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운명적 탄생을 거부할 수 없는 비밀 정보서비스는 그렇지 않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공존공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한다.혼돈주의,중앙집중주의,자유로운 출발과 도착,통제없는 공권력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인터넷을 통한 통신은 정보수집,구매 및 판매,오락 등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전파하지만 비밀정보 서비스는 돈을 벌고 가치를 훔치는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미 모든 분야에 있어 비밀정보 서비스는 인터넷 상의 새로운 영역에서 굳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그래서 저자는 세계가 자칫 인터넷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21세기의 신경이자 핏줄인 통신의 유일한 수단인 인터넷이 보다 빨라지고 힘세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달았다.단지 그것들은 상업적이거나 개인적인 통신에 영원성을 부여하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컨대 군사적인 분야에서는 공격적인 정보망으로 이용될 것이고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세계무역의 철학과 전통에 반대되는 의미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그러면 인터넷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가.이러한 움직임을 거부할 수 있는가.저자는 거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내놓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해답 대신 이렇게 말한다.“인터넷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유리한 존재다.변화의 요소로서 인터넷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다.이 자체가 어떠한 연결방식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 Guerres dans le cyberespace.프랑스 라데쿠베르트 포쉬 출판사.310쪽.81프랑.
  • 불가피해진 세계화(이동화 칼럼)

    지난 몇년간 우리는 ‘세계화’라는 말을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다. 처음에는 생소했던 단어였지만 자주 듣다보니 구호처럼 사람들의 머리속에 입력되는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그 개념이 불투명하고 모호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풀어보고 멋대로 행동함으로써 많은 혼선을 빚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한 새전략을 심지어 고급외제로 치장하는 것이 세계화이고 해외관광여행을 나가 달러를 마구 뿌리는 것이 세계화이며 초등학생까지도 해외유학시키는 것이 세계화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대외정책을 보면 국가이익을 보호할 선을 무너뜨리고 외국에 양보하는 것이 세계화인 양 오류를 범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참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치열해진 국제경제전쟁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부강해지기 위한 전략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물안 개구리’같은 폐쇄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점검하고 새로운 대응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일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구호만 있었을뿐 전략이 뒤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화란 말자체가 사전준비없이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점은 구호에 그칠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심지어 이 말의 영어번역조차 처음에는 나오지 못할정도로 준비가 전혀 없었다. 몇가지 번역어가 나오다가 Globalization으로 통일되는 우여곡절을 겪기까지 했다.‘국제화’라는 말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나놓고 보니 세계화란 말은 ‘세계중심국가’라는 허상을 보조하는 구호에 불과했다. 우리의 숨통을 죄고 있는 IMF사태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말로만 세계화를 외치고 그 껍질에만 매달렸을뿐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한 전략이나 대비책이 전혀 예비되지 않았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홍수처럼 밀어닥칠 외자 오히려 이 구호는 유발시킨 부작용 때문에 IMF시대를 불러온 ‘범인’의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모두 “저러다가 한국이 망하지 않을까”하며 경고하고 우려속에 지켜보는데도 세계화시대라고 달러 마구쓰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철없이 흥청거리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흔히 쓰이던 ‘세계화’ 단어가 근래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렇지만 이제야말로 참다운 세계화전략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외국자본이 우리은행을 소유하고 우리기업들들 인수해 경영하며 우리채권과 증권에 제한없이 투자해 국부가 유출되는 상황이 곧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배타성이 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대주의 행태를 보이는 우리의 의식과 국민성 때문에 참된 세계화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배타성과 사대주의 강해 최근 일각에서는 영국을 모델로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 보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미 20년전 IMF사태를 겪은 영국의 경우 난관을 단기간에 극복했을 뿐아니라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장지을 땅값 싸고 질좋은 노동력에 파업이 없고 행정규제는 커녕 관이도와 주기 바쁘니 우리 대기업들도 대부분 영국에 대규모 공장들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영국을 본받으려해도그 나라와 우리나라가 크게 다른 부분이 있다. 영국은 일찍부터 세계도처에 식민지를 경영해 왔기 때문에 의식이나 생활이 제대로 세계화되어 있다. 백의민족이나 단일종족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는 갑작스런 외국자본의 ‘점령’을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에 큰 차이가 있다. 크게 충격을 받고 적대감을 느낄수도,무력감을 느낄수도 있다. 또 선진외국의 힘에 경외감을 느끼고 사대주의가 확산될 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들은 참된 세계화의식과 새로운 세계화 전략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새정부가 준비되고 있는 마당이다. 국가이익을 위해 정밀한 세계화전략을 새로만들때가 된 것이다. 과거 실패한 이미지가 싫다면 명칭은 바꿔도 좋다.
  • 민주주의 전도사 에이브러햄 링컨:하(미국의 대통령 문화:7)

    ◎남북 대화합 이룬 ‘정직의 대명사’/“연방통일이 헌법보다 우선” 주독립 불가 역설/국민에 전쟁 수행 독려… 당대엔 인기 못 얻어/최악의 상황 유일한 탈출구는 일상화된 유머감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1861년 2월11일 일리노이주 주도 스프링필드의 중앙역인 그레이트 웨스턴역.취임식 참석차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플래트홈에 마련된 연단에 오른 링컨 대통령 당선자는 군중들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자못 침통한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친구 여러분,내 입장에 있지 않은 여러분 어느 누구도 이 이별의 순간에 솟구쳐 오르는 나의 슬픈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나는 4반세기를 이곳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빚진 채 지금 고향을 떠납니다.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 것인지 혹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나에게는 워싱턴에 부여된 일보다도 더욱 무거운 일들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역사자리에 선 ‘링컨 디폿 뮤지엄’에서 상영하는 링컨의 24년동안 스프링필드에서의 생애를 담은 30분짜리 비디오는그가 비장한 연설을 남긴 후 그의 일행을 태운 기차가 이곳을 빠져나가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죽음으로 국가 구해 이미 6개주가 연방을 탈퇴해서 독자 정부를 수립한 최악의 상황에서 연방대통령직 수행은 그 자체가 엄청난 형극의 길임을 링컨은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신의 우려대로 살아서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그러나 자신의 죽음으로 국가를 구했다.주검으로 고향에 돌아온 그는 시가지 북부 오크리지 묘지 중앙에 우뚝 서 스프링필드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프링필드는 링컨이 변호사로,주의원,연방하원의원 등 공직생활을 하며 정치적 입지를 키운 곳이다.시 중심지 연방청사에서 5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의 사저일대가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그의 변호사 사무실인 링컨­헌돈 로 오피스(law office),그가 출석하던 제일장로교회에는 그의 가족들이 즐겨 앉던 자리가 보존돼 있는 등 미 전역 10여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링컨 사적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돼 있다. 특히 링컨이 연방분열을 경고한 ‘분열된 집안’이라는 연설로 유명한 옛 주의사당인 올드 스테이트 캐피틀에는 오늘날 미국내 최대의 링컨자료실이있는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헨리­호너 링컨 콜렉션이라 이름지어진 이 박물관 내의 링컨 자료실은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의 방대함은 물론 희귀자료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어 미국내 링컨니아나(링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취임 37일만에 전쟁 발발 대통령 취임후 불과 37일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함으로써 링컨은 임기 내내 전쟁을 이끌어야 했다.이 기간중 링컨은 줄곧 참모들로부터 또는 많은 북부의 국민들로부터도 전쟁종식의 압력을 받았다.그러나 링컨의 신념은 확실했다.전쟁의 종식은 연방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미합중국의 존립 이유를 뿌리채 흔드는 것이었다.링컨은 기회있을 때마다 미 건국역사에서 ‘연방’은 ‘헌법’보다도 앞선 것임을 주장했다.그리고 몇몇 주의 영원한 분리는 불가능함을 강조하며 남부측에 타협을 호소했다. 그러나 미시시피 상원의원 출신의 남부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특히 그는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멕시코전쟁에서 지휘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전략가였다. 당초에는 남부의 여러가지 수치상 열세로 전쟁이 수개월내 끝날 것으로 예측됐다.그러나 초기 ‘불 런’전투에서 북부군의 대패는 전쟁의 장기화를 예고했다.전쟁 내내 링컨은 남북 양측 군대의 주전선이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 경계의 포토맥강을 중심으로 형성됨에 따라 야전군 지휘소처럼 변해 버린 워싱턴에서 북부군의 전략수립과 지휘관 찾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쟁관련 도서 탐독 미시시피강을 서쪽 경계로 해 동쪽으로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에 광범위하게 형성된 전선에서 서부에는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과 티컴셰 셔만 장군 등이 있었지만 동부전선에는 남부군의 용장,로버트 리 장군과 스톤월 잭슨 장군에 맞설만한 지휘관이 없었던 것이다.그는 또 군사전략 수립을 위해 의회도서관에서 전쟁의 기술에 관련된 책들을 빌려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링컨은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전쟁의 시작은 노예문제에서 비롯됐지만 그 목표설정에 관한 것이었다.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궁극적으로 노예해방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민주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분위기는 연방회복으로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노예제도가 남부의 경제적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남부를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노예제 폐지를 선결과제로 간주했다.62년 여름,그가 내각에서 노예해방 선언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각료들이 반대했다.그러나 링컨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그해 9월 앤티담 전투에서 북부군이 승기를 잡자 바로 이튿날 준비했던 노예해방선언을 감행했다. ○노예해방 북부도 반대 노예해방선언은 그러나 남부는 물론 북부의 반대도 불러 일으켰다.북부 공업지대의 많은 근로자들이 노예들의 해방으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또한 북부의 승리가 확실시 되면서 남부주들을 포용하기 위해 내놓은 링컨의 온건한 화합정책들은 응징과 처벌을 요구하는 북부 과격파들의 건센 반발 가져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정의 연이은 비극은 링컨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부인 메리 토드 여사와의 사이에 둔 네아들중 한 아들은 일찍 죽었고 백악관에서만 두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자 메리 여사는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할 정도였다.오직 한 아들 로버트만이 성장하여 후에 가필드 행정부에서 전쟁장관을 지냈다. 링컨이 이같은 암담한 안팎의 불행을 이기고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에 정열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탈출구는 일상화된 그의 유머감각 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그는 아무리 심각한 회의도 조크와 유머로 시작했으며 순간적인 재치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그가 엄숙하게 노예해방선언의 의사를 물었던 각료회의도 유머 한토막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링컨은 당대에는 국민들에게 그리 인기있는 대통령은 아니었다.전쟁 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국민을 독려하고 재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직한 에이브’라고 그의 이름이 정직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그는 국민에게 솔직했으며 결국 그는 192㎝의키에서 뿐 아니라 미 역대 대통령중 가장 우뚝 선 대통령으로 남게 된 것이다. ◎킴 바우어 미 일리노이 주립박물관 헨리­호너 링컨자료 실장/링컨의 인간평등 정신 역사에 우뚝/학자 800명·기관 50개 링컨학회 결성/“대통령학 가장 흥미있고 미래 지향적” 【스프링필드(미 일리노이주)=나윤도 특파원】 미국내 최대 링컨 관련자료 소장 도서관으로 알려진 일리노이 주립박물관의 링컨자료실장 킴 바우어 박사는 “링컨 대통령은 많은 학자들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해가 갈수록 그 업적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며 대통령학이야말로 가장 흥미진진하고 미래지향적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조사에서 링컨 대통령이 미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부동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끝내 연방을 지켜낸 그의 소신과 노예해방을 가져온 그의 투철한 인간평등 정신 때문으로 볼 수 있다.더우기 그의 어려운 성장환경과 정직한 성품은 누구에게든 자신감과 신뢰감을 안겨 준다. ­미국내 링컨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링컨은 켄터키의 통나무집 시절서부터 인디애나를 거쳐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성장했다.그리고 백악관 생활과 남북전쟁 당시 여러차례의 전장 방문 등 많은 자료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상호보완 연구가 중요하다.현재 800여명의 학자와 50개 소장기관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학회가 결성돼 있고 매년 심포지움과 학회지 등을 통해 200편 이상의 논문과 책들이 나오고 있다. ­헨리­호너 링컨자료실은 어떤 곳인가. ▲모든 분야의 링컨 자료를 소장하고 있지만 링컨의 대통령 이전 자료는 최대의 소장처로 알려져 있다.현재도 개인적인 링컨 자료 소장자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로부터의 기증이나 구매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지난해만 해도 일리노이의 기업가 클레망 스톤씨로부터 200여점,미니애폴리스 공공도서관으로부터 200여점,최대 여성 수장가인 제인 하만드 여사로부터 링컨의 어린시절유품 수십점을 기증받는 등 계속 소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통령학은 과거지향적 학문이 아닌가. ▲과거 대통령에 대한 철저하고 정확한 연구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과 대통령에게 과거의 경험을 부여해 준다는 측면에서 미래지향적 학문으로 볼 수 있다.
  • 중국에 귀 기울인다(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서구사회 팽배한 ‘중국 위협론’ 반박/자국의 가치·배경 바탕으로 국가건설 강조/미­일 신안보체제 국제평화 위협 강력 비판 【북경=이석우 특파원】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을 세계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뜨거운 갈채와 환영인가,아니면 경계와 두려움으로 대하고 있는가.강택민 중국 국가 주석의 미국 공식방문,백악관에서 열린 클린턴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 등에도 불구,중국의 빠른 성장에 대한 의구심과 걱정의 눈길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광동 인민출판사가 최근 펴낸 ‘중국에 귀기울인다’는 냉전종식 이후의 국제정세의 변화·발전에 대한 중국의 입장 및 시각,그리고 중국 위협론에 대한 중국의 반박과 변명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하덕공,포위충,김용 등 3인의 공동 저서다.하덕공씨는 관영 신화통신이 펴내는 시사 일간지 ‘참고소식’의 국제시사문제 편집담당자이고 포위충 박사는 중국공산당 중앙 직속 교육기관인 북경 청년정치학원의 교수.김용 박사는 ‘중국부녀보’의 기자며 홍콩문제 전문가다.저자들의 신분에서도 이책이 중국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이 책을 통해 중국측의 논리와 주장,대외관계등 정책 방향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중국이 서양의 질서와는 다른 사회가치와 정신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중국의 국가건설은 ‘서구와는 다른 중국적인 가치와 배경’에 따라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인권문제,소수 민족지역에 대한 입장,홍콩문제 등과 관련,이 책은 단호하게 서구의 여러나라와 서구적 가치의 침투를 거부하고 있다.중국은 중국적 잣대로,중국공산당과 중국인들에 의해 통치하고 경영해 나갈 것임을 강조한다. 중국적인 방향으로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방법과 관련,전통문화의 재해석을 통해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고 민족주의 및 애국사상을 고취,국가 건설의 기본 정신으로 삼을 것을 제시한다.민족주의 및 애국사상에 대한 강화는 강택민 등 현 중국 지도부의 국가건설의 핵심 사업중 하나고 이 책은 그 의의를 재강조한 것이다.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21세기 중국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하는 끈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특히이 책은 ‘새로운 권위주의 이론’으로 대표되는 중앙집권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강택민을 정점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 중앙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이 국내외적인 도전을 극복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물질·정신 건설을 완성하는 길이란 주장을 강력하게 펼치고 있다.“개혁초기 중앙의 권력을 하부에 이행하는 것은 경제의 활력을 위해 필요하고 효과있는 조처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국민총생산액에서 중앙정부가 차지하는 몫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반면 지방재정수입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다.지역간 격차를 줄이는데 필요한 수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중앙의 거시 조정·통제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안정은 일체의 것을 넘어서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중국적인 발전 방법 및 목표,그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정부의 권한에 대해 이 책은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와함께 이 책은 일본의 우익화 경향 및 군사 대국화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미국과 일본의 신안보체제확립,이를 통한 일본의 유사시 동북아시아지역에서의 군사활동 영역의 확대 등에 대해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진정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잠재적 위협은 일본의 우익화 경향과 미국·일본의 신안보체제라고 꼬집는다. 냉전이 끝난뒤 21세기를 바라보는 다극화 시대에 대해서 이 책은 ‘포탄과 연기는 없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며 서구세력의 ‘문화침투’ 정책 및 각종 압력 행사에 대해 경계와 함께 비판을 가하고 있다.“미국은 지난 96년9월 ‘자유아시아 방송’을 개국하고 뉴스매체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며 정치 및 사회 안정을 흔들어 대고 있다.이는 아시아 국가들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이 책은 중국의 성장을 위험스럽게 바라보는 서구 시각은 중국 문화와 현상을 잘못 이해하는데서도,또 서구의 패권주의적·냉전적 발상에서도 기인한다고 공격했다.특히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이 중국 위협론의 배경이론이 되고 있다면서 문명 충돌론의 오류를 지적했다.“문명 충돌이론의 개연성은 인정될수 있다. 그러나 헌팅턴씨는 일부 단면을 갖고 일반화하려는 오류를 범했다.금세기의 주요한 충돌은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같은 문명안에서의 갈등이었으며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국가 이익간의 부딪침이었다”. 저자들은 냉전종식 이후 국제무대에서 독주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미국의 독주가 국제갈등의 원인중 하나라고 공격한다.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등은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미국의 패권주의는 쿠바 등에 제재를 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같은 문명권에서 프랑스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반면 중국은 현재 경제건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국제환경을 중요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중국은 등소평 시대에 ‘세계 혁명’전략을 버렸으며 세계를 적과 동지로 나누는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논조다. 또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 3백여건의 법률을 제정했고 4천여건의 지방 법규를 만들었다.또 공무원제도를 개혁하는 한편, 직접 선거의 확대 등 풀뿌리민주주의를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중국도 국민 개개인의 잠재력과 창조력을 최대한 발현시키고 민주적이고 안정된 사회확립을 위해 노력해 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중국을 독재국가의 전형으로 생각하거나 침략적인 위험한 국가로 보는 것은 착오라고 이책은 재삼 강조한다. 원제 경청 중국:신랭전과 미래전략.광동 인민출판사.22위안. 하덕공·포취충·김용 공저
  • 4자회담은 한반도 평화 최상의 카드/칼 킨더만(지구촌 칼럼)

    ◎일·러 참여 6자회담은 문제점만 야기 이곳 독일에서 분단된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4자회담 즉 2+4 회담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즉시 독일 재통일 형태에 대한 역사적인 6자회담 또는 2+4 회담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독 입장엔 큰차이 독일의 2+4 회담은 90년2월에 갖기로 한 뒤 그해 5월 시작해 5달 뒤인 10월3일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독일과 유럽의 분단을 종식시킨 시점이었다. 이처럼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회담이 진행된데는 동독에서 일어난 혁명이 그해 3월 선거에서 참패한 동독 공산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유에대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과 다르다. 38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상반 된 사회·경제·정치적 체계를 가진 두 체제가 계속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감에도 불구,한국에서의 전쟁은 통상적인 선전포고로 시작된 전쟁은 아니었다. 한반도의 두정부 어느 쪽도 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 미국도 한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을 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한 결의를 내세웠다. 그래서 당시 트루만 대통령은 미의회에 전쟁선포를 비준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은 북한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전쟁에 가담했을 때 의용군을 파병한다고만 발표했다. 중국과 미국 유엔군간의 첫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당시 전쟁을 치렀던 4국이 서로간의 평화조약을 체결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그후 573차례의 회담을 해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다 합법적인 형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가 전쟁의 역사와 국제법이다. 정전협정은 통상 양측간에 잠정적인 합의로 기능해 왔다는 점이다. 비록 새로운 협상이 전제조건없이 시작되었다 해도 북한은 향후협상에서 정전협정 당사자간의 문제로 제기하고자 하는의도를 내보이고 있다. ○러 협상참여 고집안해 70년대초 각국의 지역전문가들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러시아와 일본이 참여하는 2+4회담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 일본 총리와 인터뷰를 한 바 있는데 이때 그는 일본은 한반도 평화정착 보장을 위한 국가로서 역할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그 이유로 일본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지 않고 헌법적인 제약으로 일본은 평화협상이 깨졌을 때 적극적인 제재를 위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두가지를 댔다. 이러한 이유들은 아직도 매우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는 협상에 참여 한다면 여러 가지 이익이 있을 것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협상 참여를 고집하지 않았다. 일본이나 러시아의 협상 참여는 현대 외교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인 한반도 문제에 단지 새로운 문제점들만 추가시킬 것이다. ○회담여건 성숙 단계 실질적으로 한반도 문제와 관련 지금과 같은 형태의 4자회담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지난 75년과 76년에 이를 제안했다. 76년 7월22일 헨리 키신저는 미국은 정전협정울 보다 항구적인 체제로 전환시킬 준비가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우방국인 한국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한국을배제하고는 논의할 수도 없으며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북한측에 못을 박았다. 21년 뒤인 지금 이 회담은 시작됐다. 당시에 비해 여건은 여러면에서 좋아진 것 같다. 중국·미국·러시아간의 상호관계는 현격히 개선됐다. 북한도 외국관광객들과 사업가들의 방문을 허용하고 합작사업과 외국에 식량원조를 요구하고 있는 등 어떤 면에서는 훨씬 유연해졌다. 그리고 북한은 미국·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했다. 게다가 강대국중 어느 나라도 냉전종식 이후 유일한 긴장지대인 한반도에 새로운 분쟁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남북분단의 정치적인 상황은 수십년 동안 어떠한 분쟁이나 협상 정체 등에 의해 그 성격이 결정지어져 온 게 아니며 현재 희망적인 새로운 협상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많은 경험과 실망 등을 겪으면서 보다 성숙된 한국국민들은 나쁜 생각은 품지 않을 것 같다. 한국국민들은 그들만의 인내와 용기로 보다 범국가적 목적에 진력할 게 확실하다. 또 이번 회담을 시작하면서 원하지 않았던 45년간의 분단에서 어느날 갑자기통일을 얻은 독일국민들에게 일종의 동질감도 느낄 것으로 보인다.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상(미국의 대통령 문화:3)

    ◎휠체어 앉아 ‘미국’을 일으킨 영웅/맥빠진 국민에 “무엇이든 해보자”/노변정담 설득… 공황극복 견인/국민신뢰 대단… ‘대통령학’ 모델/정계입문 초기 잇따라 선거 패배/소아마비로 “정치생명 끝장” 중평/목발 짚고 민주 전대 웅변 감동적 “나는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또 나 스스로에게 맹세합니다.미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펼 것을 말입니다” 1932년 7월2일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대통령후보지명 수락연설에 나선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뉴욕주지사가 처음으로 ‘뉴딜’을 외쳤을때 아무도 그 한 단어가 미국을 절망에서 구출하고 세계최고의 번영으로 인도할‘키워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후 ‘뉴딜’은 ‘대공황’의 반대어로 자리매김했으며 미국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나타내고 승리를 대표하는 어휘가 됐다. 루즈벨트는 선거운동과정에서도 대공황 여파로 자신감을 상실한 채 무기력해져 있는 미국민들을 향해 외쳤다.“어떤 방법이든 택하여 그것을 해봅시다.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것을 해봅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입니다” 워싱턴 중심의 몰공원 남쪽 포토맥강가에 지난 여름 개장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공원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들까지 하루종일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미 역사상 훌륭한 대통령 빅3에 들면서도 수도 워싱턴에 이렇다할 기념관 하나 마련돼 있지 않아 워싱토니안(워싱턴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도 많은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던 참이어서인지 더욱 찾는 사람이 많다. 이 공원에는 그의 재임 4기를 시기별로 네개의 공간에 나누어 각종 상징적 조형물을 세우고 또한 대표적 어록을 벽에 새겨놓아 당시의 시대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업적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미시간주에서 관광온 테드 모간씨(74)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국민 설득을 위해 자주 사용했던 라디오연설을 들은 기억이 있다”면서 한 실업자가라디오 앞에서 대통령의 방송을 듣고 있는 상징물 앞을 떠날 줄 몰랐다.‘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시도됐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당시 절망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있는 복음이었다고 모간씨는 회상했다. 1차대전 이후 호황기의 절정에 다달았던 29년 말부터 갑자기 몰아닥친 대공황은 3년동안 5천개의 은행을 문닫게 했으며 그에 따른 기업과 공장들의 연쇄도산이 뒤를 이었다.근로자들이 땀흘려 저축한 돈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전체 노동력의 40∼50%에 달하는 3천4백만의 실업자가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이같은 암흑기를 지나면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진 미국민들에게 루즈벨트는 공황의 종식을 위한 ‘뉴딜’을 외치며 균형예산과 실업자 구조,금주법의 폐지 등을 공약으로 제시,무기력한 후버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특히 루즈벨트가 실의에 빠진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선거공약의 내용및 실현성 여부를 떠나 ‘의욕’이라는 심리적인 자극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그는 희망이 사라진 곳에 희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확신이 상실된 곳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결국 선거결과는 루즈벨트가 유효표의 57%를 득표,선거인단 472명을 확보함으로써 40% 득표에 선거인단 59명을 확보한 후버 현직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했다.이렇게 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한 4선 대통령 루즈벨트시대가 개막된 것이다.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불문율로 지켜져온 중임 전통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로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직을 부여받을 정도로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경제위기와 전쟁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미현대사에 있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모델로 기록되고 있다. 1882년 뉴욕주 업스테이트의 허드슨강변 동쪽 언덕에 위치한 하이드 파크에서 출생한 루즈벨트는 부유한 가정형편 덕분에 개인교습을 받고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어려서부터 유럽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그의 성장기에 대통령으로 명성을 날리던 테오도어 루즈벨트(26대)는 먼 친척 형(12촌)뻘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그의 부인이 된 일리노어 루즈벨트는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로 부친을 일찍 여의였기때문에 1905년 그들의 결혼식에는 현직 대통령이 신부를 데리고 입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바드 대학과 콜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191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정계입문한 루즈벨트는 각종 선거에서 여러차례 낙선을 경험하는 등 초기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우드로 윌슨 대통령(28대)에 의해 해군성 차관보로 임명돼 1차대전 당시 중요한 해군전략 수립에 관여했으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이같은 1차대전때의 그의 경험은 대통령으로 2차대전을 맞았을때 십분 활용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1920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제임스 콕스 대통령후보의 런닝메이트로 출마해 고배를 마시는등 중앙정치무대와는 인연이 없는듯 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시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정치를 떠나 있을때 그는 엄청난 개인적 불행을 당하게 된다. 이듬해 8월 캐나다 해안에서의 휴가중 찬물에 빠져 감기에 걸린 것이 척수성 소아마비로 발전,양다리를 못쓰게 됨은 물론 팔과 손에까지 부분 마비가오게 되었다.당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조지아주의 웜스프링스로 가서 3년동안 기적적인 투병으로 그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1924년 그가 휠체어를 타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나타났을때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그가 목발에 의지해 단상에 기대서서 연설할 때는 그의 인간승리 모습에 감동적인 환호를 보냈다.결국 그는 1928년 뉴욕주지사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루즈벨트 도서관 사서 레이몬드 타이크만/“항상 국민과 함께한 지도자”/4연임,전쟁 마무리 위한 국민의 선택 FDR(프랭클린 D.루즈벨트의 약자 애칭)학의 권위자인 뉴욕주 하이드파크 프랭클린 루즈벨트 도서관의 선임 사서레이몬드 타이크만 박사는 그가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 대통령이었다고 소개했다. -FDR이 미국민들로부터 빅3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공황으로 잃은 정부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그는 국민들과의 직접대화를 택했다.라디오 연설시간인 ‘노변정담’을 통해 그는 정부정책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이해를 구했다.국민들은 그가 국민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뉴딜정책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이유는. ▲후버 대통령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제퍼슨적인 자유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면 FDR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밀튼적인 보수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대공황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정부와 대통령의 적극적인 유도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불문율로 돼있던 중임 전통을 깨고 3연임에 도전하게된 이유는. ▲FDR도 처음에는 주저했다.그러나 대공황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가운데 2차대전이 발발했고 불과 수개월만에 프랑스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의연임은 국민적 합의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연임 역시 전쟁의 성공적 마무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 때문이었다. -FDR에게 4연임까지도 허용했던 미국민들이 1951년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제한하는 22차 헌법수정안을 서둘러 마련한 이유는. ▲국민들이 경제위기및 전쟁위기 상황하에 있을때는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을 원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정상상태로 회복된 후에는 큰 정부의 필요성도,집중된 권력의 필요성도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 미,신국방전략 도입 제기/의회 국방자문위/생화학무기등 공격 대비

    【워싱턴 연합】 오는 21세기 초에는 정보시설 파괴나 미국 본토에서의 생화학무기 공격,그리고 제3세계 국가에서의 도시전쟁 등이 새로운 안보상의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미국의회 부설 국방자문위원회가 1일 밝혔다. 전직 장성과 민간전문가 등 9명으로 구성된 국방자문위는 이날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달한 보고서를 통해 ‘냉전시대 종식 이후 미국의 안보여건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불구,미국 행정부는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자문위는 특히 ‘미국 국방부와 국방관련 조직들은 아직도 냉전시대의 발상에 얽매이고 있다’면서 ‘향후 20년간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는 탈냉전시대에 알맞는 국방전략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국제적인 테러,대량파괴무기의 확산과 정보활동 강화로 향후 미국본토가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미국의 경제파탄과 해외 군사활동 저지를 위한 미국내 상업·군사용 정보통신체계 공격에 대한 대비책을 신속히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 새 구축함(외언내언)

    우리 해군은 국군이 창설되기 3년전인 지난 45년 11월 11일 창설됐다.고 손원일제독이 ‘조선해방병단’을 창단한 날이 바로 창설기념일이다.그 이듬해인 46년 1월 첫 사관생도 113명을 모집한 뒤 미군으로부터 36척 소형 함정을 인계받아 연안경비임무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해군의 면모를 갖췄다.50년 4월 해군장병들의 성금으로 미국에서 최초의 전투함인 600t급 백두산함을 도입했으나 도착하기도 전에 6·25전쟁이 일어났다.주로 200∼300t급 보조선 71척과 6천950명 병력으로 함정 80척과 1만6천200명 병력을 보유하고 있던 북한군과 싸워야 했다.수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불리한 입장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창설 52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 해군은 전투함 430척과 지원함 340여척,잠수함 40척을 보유하고 있어 전투함 180여척과 지원함 40여척,잠수함 5척을 갖추고 있는 우리 보다 수적으로 월등한 실정이다.해군력의 증강이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기본설계에서부터 건조에 이르기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3천t급의 국산 구축함 2호 ‘을지문덕함’진수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대함·대공 미사일과 어뢰,그리고 작전헬기도 갖추고 있어 언제 어디서나 입체작전이 가능한 최신예 전투함이다.지금까지 소형 고속정 또는 초계함 위주의 연안해군에서 탈피해 21세기를 맞는 대양해군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통일시대를 눈앞에 둔 우리 해군은 이제 북한군만을 놓고 대비할 수는 없다.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은 해상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더욱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핵항모와 핵 잠수함까지 보유하고 있는 이들 나라의 해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앞으로 크게 증가할 해양분쟁에 대비해 항공모함을 도입하는 등 해군력을 크게 증강하고 있는 실정이다.해양관할권 문제는 물론 수출입항로 유지를 위한 해상교통로 확보가 절박하기 때문이다.우리도 이제 넓은 바다를 향해 눈을 크게 떠야겠다.
  • 한반도평화 인내 필요하다/도널드 그레그(지구촌 칼럼)

    냉전이후의 세계는 미국이 안전하고 일관성있게 항해하기에 어려운 곳으로 되어가고 있다.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 국민들은 미군들의 인명피해에 더는 참을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러한 생각은 종족 싸움인 소말리아 분쟁에 미국이 깊이 개입하여 미군 18명이 소말리아에서 목숨을 잃은데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군사­외교 공약 이행 그 결과로 미국은 지금 중동·보스니아·르완다 같은 지역에서 아주 제한된 역할을 하고 있다.예를 들어 보스니아에서 미국은 기소된 전범들의 은신처가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체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보스니아에서는 아무 것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으며,미국이 주도하는 평화유지군이 내년에 철수하면 새로 시작되는 전투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국무장관은 최근의 중동방문때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계속해 평화과정을 위태롭게 하고 전쟁을 하면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미국의 그러한 제한된 역할은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려울 것이다.3만7천명의군대가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고 한국전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강한 의무를 지고 있는 미국은 분단된 한반도의 근원적 문제를 풀고 북한이 다시 남한을 공격하면 이를 물리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필자가 지난주 오클라호마주의 툴사시를 방문,지역 외교관계 위원회 회원들과 대학생들,지역신문의 편집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핵심 이슈가 됐던 것들이었다.필자가 툴사에 오기 며칠전 냉전이후의 세계에 대한 중요한 회의가 오클라호마대학에서 개최됐다.필자는 그 회의에서 헨리 키신저 박사,샘 넌 전 상원의원 그리고 진 커크패트릭 전 유엔대사 등 저명한 외교전문가들이 미국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은 한반도라고 언급했다고 들었다. 툴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게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는 지를 물어왔다.필자는 단기전이라도 막대한 인명피해를 수반하고 전지역을 파괴시킬수 있는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이익은 크다고 대답했다.그리고 한국에 지상군이없을 경우 상황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며,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76년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옮기지 못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긴다는 견해를 덧붙였다.나아가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외교적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력과 외교력이 대북문제에 발전을 가져오는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조건부 4자회담 고집 미국과 한국정부와의 밀접한 실무적 관계를 거론하면서 필자는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을 위한 기공식을 최근 북한에서 가졌다는 것을 지적했다.이러한 이정표적 사업은 한국·일본·미국 기술자들이 북한의 경수로 건설지역에서 안전하게 살고 작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행정적 절차를 놓고 북한과 폭넓은 협상을 벌인데 따른 것이었다.그러한 사태발전은 2년전에는 거의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는 또한 남북한,미국·중국등 4개국이 궁극적으로 한국전을 종결시키는 공식조약을 논의하는 4자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언급했다.필자는 결론적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해결에 필요한 역할을 계속해 요구하고 있으며,러시아가 역할을 찾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되는 것임을 밝혔다.이로써 한반도 주변국들이 모두 평화모색에 참여하게 된 것이며 냉전종식이후 대화와 협력이 거의 없었던 동북아시아에서 소중한 평화논의 형태가 마련될 것임을 강조했다. ○KEDO 업적 높이 평가 오클라호마에서 이러한 내용의 강연을 한뒤 필자는 뉴욕으로 돌아와 북한이 9월 18·19일 이틀동안 뉴욕에서 열린 4자회담 2차 예비회담에서 융통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이번에는 다음번 회담날짜도 잡지 못했다는 실망스런 뉴스를 읽었다.북한은 분명히 제네바 4자회담 개최를 위해 진지한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다.필자는 이것을 한반도 평화과정의 또 하나의 장애물이라고 본다.북한은 주민들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식량문제에 아주 취약하다.북한은 4자회담 참여 약속전에 식량지원 보장같은 양보를 미국으로부터 가능한한 많이 받아내려 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조만간 총서기직을 승계할 김정일의 총서기 선출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이는 의심할 바 없이 김정일에게 즉각적으로 어려운 정책선택에 직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김정일은 북한 최고권력의 공식직함을 모두 갖는 것을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는 막후에서 조용히 통치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그는 외부세계로부터 식량지원 약속을 받아내면 식량구걸에서 오는 굴욕을 피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남한에서의 유동적 정치상황도 이 순간에 복잡성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한 중국 고위외교관을 만났다.그는 KEDO가 이룩한 업적을 높이 평가했으며 4자회담 추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그는 인내를 조언했는데,이는 길고도 어렵지만 중요한 한반도 평화과정에 관계된 모든 국가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것임에 틀림없다.
  • 제3회 서울신문 국제포럼­토론요지

    ◎북한,언제까지 버틸수 있나 ‘북한,언제까지 버틸수 있나’를 주제로 한 제3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이 26일 한국 프레스센터 컨벤션홀에서 열렸다.이날 국제포럼에는 ‘북한의 국가역량’과 ‘북한의 내구력’이라는 두가지 주제가 제시됐다.한국과 미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 석학들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이 있었다.제1주제인 ‘북한의 국가역량’에는 서대숙 미하와이대교수 사회로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이호재 고려대교수·차영구 국방부정책기획실차장·옥태환 민족통일연구원연구원·대릴 플렁크 미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이 토론에 나섰다.제2주제인 ‘북한의 내구력’에 대한 토론에는 유세희 한양대 교수 사회로 장달중 서울대 교수·전인영 서울대 교수·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이경숙 숙명여대 총장·현성일 전 북한외교관·다케사다 히데시(무정수사)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교수가 참가했다.다음은 토론요지이다. ◎제1주제­북한의 역량/군부 앞세운 김정일 개혁·개방능력 의문/한반도평화 볼모로 착취외교 주력할듯 ▲강인덕 소장=지난 3년동안의 북한통치가 김정일의 김일성 유훈통치라고 했는데 이는 선대의 인물과 정책을 실행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그런데 실제는 김정일이 군부를 앞세워 자기 기반을 구축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오는 10월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르더라도 군부중심의 권력구조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다.김정일은 항상 군부를 앞세워 한국을 ‘군사적 인질’상태에 두고 있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이유는 한국의 서울이 휴전선에서 너무 가깝고 많은 인구가 모여 있어 장거리포의 사정권내에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은 이를 틀어쥐고 대미협상이나 대일협상,대남협상을 벌이며 이용한다.외부에서는 이를 안전을 볼모로한 착취외교라고 하는데 김정일이 이를 늦추지는 않을 것이다.북한의 개방만이 남북한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본다.그러나 북한이 시장경제원리를 적용하면 이는 곧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정통성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할 수 없는 정책이다. ○조기붕괴 예단은 금물 ▲이호재교수=주제가 ‘북한이 얼마나 버틸 것인가’이기에 우리는 ‘곧 북한이 망하냐’라는 기대를 한다.나는 원칙적으로 이같은 북한붕괴 이론에 부정적이며 매우 조심스럽다.한반도 같은 나라는 국내적인 요인도 운명결정에 중요하지만 주변외세 역학과 정책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이는 6·25이전이나 그때 당시의 한국상황을 놓고 보면 잘 이해가 될 것이다.최근 중국도 점차 자기이익을 따지며 한반도 문제를 거기에 연계시키고 있다.또 미국이 북한에 연착륙 정책을 취하면서 북한은 냉전종식 시점때보다 오히려 생존의 기회가 더 커지고 있다.식량위기는 체제붕괴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북한의 군대는 막강하며 자살을 동반한 체제수호 세력이다.붕괴는 단지 우리가 가지는 희망이나 이상적 기준에서 본 판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대릴 플렁크 연구원=최근 북한문제에 관해 오늘의 토론은 상당히 최신 분석이 많았고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했다.워싱턴이나 도쿄에서 역시 북한에 대해 많은 혼선이 있고 언론 역시 그러하다.김학준교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곧 있을 것으로 진단했는데 그렇다면 그의 등장이과연 북한의 대미정책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와 김정일은 어떤 기준으로 미국과의 대화에 나올 것인가도 논의될 사항이라고 본다.다케사다 교수는 북한이 전쟁의 위협을 적절히 이용,대북협상에 유리하게 전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외부적인 요인이 북한으로 하여금 개혁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수는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막판 자살적 도발 가능성 ▲옥태환 연구원=최근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의 통일 시기에 대해 80%의 응답자가 2005년에서 2010년 사이라고 답했다.또 통일의 방법은 무력통일이 아니라 한국에 의한 북한흡수통일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이에는 북한주민들이 이를 원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동독의 예에서 동독정권은 애초에 흡수통일을 원치 않았다.주민들도 처음엔 시민권을 달라고 했었다.그러나 나중에는 한 민족이니 흡수통일하자고 주장했다.북한에서 김정일이 붕괴하더라도 북한에서는 분명히 독재개발행위가 있을 것이고 체제고수분자가 등장할 것이다.이들은 절대로 흡수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막바지에 가서 어쩔수 없는 상태를 유엔 등의 국제관리에 맡길 것이다.김정일을 놓고 볼 때 통일을 위해 전쟁을 하기보다는 막바지에 자살적인 전쟁행위를 할 가능성이 많으며,궁지에 몰리면 외국에 망명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그는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망명을 선택할 것이다. ▲차영구 차장=우리는 북한과 관련해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대부분의 자료는 북한이 일부러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며 우리가 북한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보느냐하는 문제에서는 부정적이다.과연 김정일 자신은 자기의 앞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김정일 자신도 모르는 그의 앞날을 놓고 우리는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는 격이다.북한에 관한 예측에서 항상 2∼3가지의 형태를 띠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이처럼 북한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단편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므로 우리는 총체적으로 북한이 어디에 와있나하는 문제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공통적인 견해가 있다.첫째는 북한의 상황은 지금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이대로는 북한이 유지될 수 없으며 바뀌어야 한다는 점,그리고 김정일이 북한사회를 개혁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 의문시 된다는 점이다. ◎제2주제­북한의 내구력/북 식량·에너지·외화난 등 ‘3난’ 한계봉착/한국에 대한 적대감 바뀌어야 변화 가속 ▲다케사다 히데시 교수=러시아와 일본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4자회담의 당사자가 아니다.일본이 6자회담을 제안한다면 러시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중국과 러시아는 남북한에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다.이는 남북한의 분단을 인정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통일 한국이 강해진다는 이유때문에 일본이 남북한의 통일을 반대한다고들 하는데 독일의 경우 통일된 뒤 오히려 힘이 약해졌다.일본은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북한은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을 바꿨는지에 대한 견해를 알고 싶다. ▲유석렬 교수=루킨 외무위원장은 러시아내 급진 민주운동주의자들이 북한의 급작스런 붕괴를 관측하고 있다고 했다.그러나 근거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북한이 중국과 베트남식의 개혁과 개방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가능할지 의문스럽다.플렁크박사는 미·북 제네바협정의 폐기를 주장했으나 남북관계 악화 등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관계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핵협정으로 북한 핵개발의 현재와 미래가 동결돼 있으며,경수로 공사는 북한을 개방시키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1인독재하의 김정일체제가 개혁을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위기속 체제생존 주목 ▲장달중 교수=북한은 생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여전히 버텨나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러시아 민족주의자와 북한 민족주의자의 결합은 북한을 생존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러시아에서 민족주의적인 반항이 어느정도로 강하고 러시아 정국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수 있다고 보는가.북한을 넘어뜨리겠다는 세력이 안팎에 아무도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북한의 붕괴는 내부폭발에 의해서야 가능한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경숙 총장=한국·미국·일본이 북한의 경제난을 줄여주는 지원을 끊을 때 북한이 붕괴될지에 대한의문이 있다.북한에 경제지원같은 인센티브를 준다해도 그로인해 체제붕괴를 한다고 느꼈을때 북한은 어떻게 할 것으로 보는가.북한같이 폐쇄적이고 경제적으로 미약한 작은 나라에서는 외부지원에 의한 체제변화가 일어날 것이다.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전인영 교수=러시아가 북한의 개선정책을 펴고 있는데 외교적 방법외에 어떤 지원을 생각하고 있는가.북한이 중국식의 개방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등소평의 장악력과 승계작업을 하지 못하고 3년을 보낸 김정일이 중국식 개혁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스럽다.미국은 5천만달러의 중유제공에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루킨 위원장(주제발표자)=일본의 6자회담 구상은 아주 좋은 방안이다.두나라는 한반도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배제된데 대해 속으로는 불만을 갖고 있다.북한이 당면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본다.그러나 어떤 댓가를 치르는지가 관건이다.한반도 통일을 위한 환경조성을 위해서는 화해정책이 필요하다.즉 4대강국과의 조화는매우 중요하다.이들 나라간 갈등이 있으면 북한은 이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현성일씨=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북한이 개혁·개방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러나 한국에 와보니 개혁개방을 할 것으로들 전망한다.북한의 변화는 사실이지만 의식변화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내부에 대한 불만은 쌓여 있으나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를 모른다.지금의 체제라도 무너져 흡수통일당한다면 우리 모두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남한에 대한 피해의식과 적대감이 바뀌어야 한다. ○경제지원 폭·속도 중요 ▲송영대 의장(주제발표자)=북한의 내구력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예를들면 식량·에너지·외화난 등 ‘3난’을 겪고 있다.외부지원의 폭과 속도에 따라 붕괴의 속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쌀 몇 톨 주는 것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할 때이다.반김정일 운동과 군사쿠데타,군부의 주민봉기 동조 등의 상황은 연계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대릴 플렁크 연구원(주제발표자)=북한 정권은 상당기간동안 생존할 것으로 예측한다.북한의 사회통제력은 굉장히 강한 것 같다.중국은 소리없이 식량지원을 해왔는데 이점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북한의 혼란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경수로 건설은 화해의 채널이 될 수도 잇으나 나는 회의적이다.경수로 건설에는 고립된 지역에서 숫자도 많지 않다.엔지니어 몇사람이 가있다고 대단한 긴장완화로 될 것 같지는 않다.
  • 클린턴 CIA창설 50돌 기념식 연설 요지

    ◎“탈냉전시대 평화증진 중심역할을”/적대국 정보파악… 위기보발 사전에 막아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미국가안보법 제정과 미 중앙정보국(CIA) 창설 50주년을 맞아 16일 워싱턴 교외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위치한 CIA본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국가안보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또 탈냉전시대 미국의 국가 안보는 물론 세계평화 유지를 위한 CIA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클린턴 대통령의 이날 치사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전쟁의 결과로 초래된 정치적 군사적 환경의 변혁에 의한 혹독한 시련 가운데서 부상했다.전쟁중 중요한 동맹국이었던 소련은 순식간에 적대적이고 위험한 반대자로 변해갔고,지구상에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미국은 파괴적인 세계전쟁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가공할 책임을 안고 있었다. 이같은 절박한 새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당시 트루만 대통령과 기타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보장하고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증진시킬 기구들과 프로그램들을 만들 것을 결정했다.그들의 노력의 결과 1947년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이 제정됐으며 이 법안이 지난 반세기동안 미국을 명예롭게 지켜오는데 공헌한 ▲미 국방부 ▲미 공군 ▲CIA ▲NSC(국가안보위) 등 4개의 주요기관을 창설케 했다. ○남 할수없는 일 해내 CIA가 창설될 당시 유럽경제는 여전히 파괴와 혼란속에 있었으며,철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었다.우리 나라를 세웠고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워왔던 가치들은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유린되고 있었다.그러나 오늘날 유럽은 평화로우며 러시아는 우리의 동반자가 됐고,냉전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물결은 모든 대륙에 미치게 되었다. 역사상 최초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자신들이 선택한 정부의 통치하에 살게 되었다.과거의 적들은 새로운 동맹국이 됐으며 과거의 경쟁자들은 이제 동업자이자 친구가 됐다.이같은 변화는 지난 5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최일선에서 싸워온 여러분 정보 종사자들의 중요한 역할때문에 가능했다.여러분들은 남이 갈 수 없는 곳을 갔으며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그런데도 미국민들은 여러분들의 용기로 가득찬 활동상을 결코 알지 못한다.결코 스포트라이트도 칭찬도 추구하지 않는 고요한 애국심에 의한 것이었다. ○고요한 애국심의 발로 그러나 이제 냉전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CIA는 미래에도 국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여러분이 더 잘알듯이 우리는 안보에의 위협,가치에의 위협 등 아직 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종종 더 얽히고,복잡하고,전보다도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제일 고객으로서 본인은 전보다 더 정교하고 정확한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여러분의 정보는 본인이 결정하는 모든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모든 외교정책의 근간 따라서 21세기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우리의 국가안보에 가장 핵심적인 지역에 정보의 가용자원들을 집중시켜야 하며,또한 정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첫째는 우리의 군대나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일이다.공격의 완급 조절,평화보장의 지원,인도적 원조의 제공 등의 결정에필요하다.둘째는 우리에게 적대적인 국가들에 대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정보를 파악하여 그들이 도발을 시작하기 전에 위기나 분쟁을 막도록 해야 한다.세째는 마약밀거래,테러리스트,조직범죄,대량파괴무기 등 새로운 초국가적 위협들로부터 미국시민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도전들을 보스니아에서,북한에서,러시아에서,또 남미에서 직면하고 있다.여러분들과 같은 헌신과 전문성과 근면성을 통해 CIA는 우리 나라를 강력하게 유지하고,우리의 국가이익을 수호하고,평화를 증진시키며,전세계 수백만의 인명을 구출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정리=나윤도 워싱턴 특파원〉
  • 제5차 한일포럼 토론자료·한영포럼 주제발표 요지

    한국과 일본간의 관계발전을 위한 제5차 한·일포럼이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신라,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개최되며 한국과 영국간 현안을 토의하기 위한 5차 한·영 미래포럼도 5,6일 서울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한일포럼에서는 ‘북한문제와 한일협력’,한영포럼에서는 ‘유럽정상회의(ASEM)를 통한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 등을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 ◎한·일 혀력의 새로운 차원­이서환 외교안보연 교수/동북아 전환기 한일 공동 대응을 한·일 양자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사문제,영역권(독도),어업문제,무역역조 등 서로 이해가 상충하는 분야가 광범위하다.지역적 차원에서 한·일 양국이 상호 협력해야 할 첫번째 문제는 경제와 관련된 해상교통로의 보호다.냉전종식이후 아·태지역의 해로를 위협하는 대표적 요소들은 첫째 해양영토분쟁에 의한 무력충돌 및 전쟁에 따른 항로의 봉쇄,둘째 연안국의 해양관할권 확대 또는 국내적 사정에 따른 공해대의 잠식 및 항해자유의 제한,셋째 유류수출 및 대형해양오염 사고에 의한 통행제한 등을 들 수 있다.이에따라 말라카해협·남중국해를 지나는 동남아·태평양해로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한·일은 이 위협요인들에 대해 협력적 자세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범세계적 차원에서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야할 문제 중 하나는 핵·화학무기같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다.특히 핵무기개발을 추진한 바 있으며 생물 및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들 무기의 확산방지를 위한 일본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핵무기의 경우 양국이 협력해야 할 분야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국제원자력기구(IAEA)내에서의 협력이다.한편 화학무기의 경우 양국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보편성 증대와 CWC의 이행을 담당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상호협력할 수 있다.생물무기분야의 경우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의 검증의정서 채택을 포함한 협약의 강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공동으로 참가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적·범세계적 수준에서의 한일협력은 앞으로 한반도통일에 요구되는 한·미·일 협력체제 구축의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이와관련,한국은 동북아질서 개편의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보다는 정치·경제적 가치를 공유하는 지리적 인접국을 협력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는 제3자의 충고를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ASEM 통한 아·구주 협력/아·구주 구체적 이익으로 연대를 ASEM은 정치,문화,경제 등 넓은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여기서는 ASEM의 경제적 의제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ASEM은 김치처럼,숙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특히 ASEM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사항은 지난해 방콕 첫회의의 수사들을 현실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27,28일에는 일본에서 경제장관회의가 열려 경제관계자들은 양 대륙간의 진전을 기대한다.이 회의의 의제는 ▲아시아와 유럽간 일반적 경제관계 ▲세계무역기구 관련 주제 ▲무역과 투자 ▲사회간접자본 개발 ▲지속적 경제성장 등이다.이들 의제는 앞으로 무역촉진조치와 투자증진계획 등을 포함,실질적 이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와 함께 ASEM은 고위급에서 정치적 연대를 가져야 한다.ASEM이 그동안 이룩한 성공은 대부분 지난해 첫회의때부터 쌓은 정치적 자극에 의한 것이다.정치연대성만으로는 ASEM의 미래성공을 보장하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정상간의 만남을 이용해 ASEM의 이상을 소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다음세기까지 ASEM의 전략적 발달을 입안하는데 도움이 되는 ‘비전그룹’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단계가 된다. ASEM은 또 비공식적이어야 한다.국제회의의 의식적 성격을 누그러뜨리면서 대신에 재킷은 벗어던지고 넥타이는 푸는 등 실제적 환경을 조성해야한다.이런 상황에서 여러 아이디어들이 표현되고 자유토론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처럼 ASEM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ASEM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ASEM의 경제적 부문은 구체적 이익의 제시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이는 모든 ASEM 26개국가들이 이해관계를 갖는 임무인 것이다.특히 영국과 한국이 주목해야할 임무다.내년 런던정상회의와 2000년 서울회의개최간의 2년은 ASEM의 미래성공에 결정적인 기간이기 때문이다.
  • ‘21세기 발전연’­경남대 학술회의 페리 전 미 국방 연설 요지

    ◎기술경쟁과 안보협력 공존해야/미군 아태주둔 필요성 커져… 역내 성장에도 도움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이사장 박관용)과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극동문제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국제학술회의가 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막됐다.‘21세기 국가발전 전략과 한국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국내외 저명 학자들이 다수 참석,탈냉전 이후 동북아 질서와 한국의 외교노선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기했다.다음은 윌리엄 페리 전 미국방장관(현 미스탠포드대 교수)의 이날 기조연설 요지다. 지난 20년 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례없는 경제성장을 누려 왔다.이러한 경제성장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 지역의 안보와 안정 및 이러한 안정이 지속될 것이라는 인식이었다.그 안정성은 역내 국가들과 미국의 동맹,그리고 강력한 미군사력의 전진배치에 의존하는 일종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이는 이 지역의 평화 유지 뿐만 아니라 지역내 군비경쟁의 필요성조차도 불식시켜 주었다. 최근 10년 동안 안보 협력과기술 경쟁의 두 분야에서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크게 발전해 왔다.이러한 발전은 일본과의 경쟁 및 협력에 대한 미국의 사고방식을 이미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으며 앞으로의 우리의 행동을 이끌고 나갈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바탕 지난 수십년동안 북한은 1백만 이상의 과도할 정도의 대규모 육군을 배치시켰으며 그중 3분의 2는 휴전선으로부터 100㎞ 이내에 배치했다.이러한 북한의 군사력은 ▲이의 약 절반이 되는 한국군 ▲적은 규모이나 강력한 주한 미군 ▲위기시 미군을 신속 증강시킬수 있는 능력 등에 의해 억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는 첫째,지역안보에 대한 미국의 이해 약화이다.이 경우 미국은 이 지역 안정의 기반이 돼어왔던 미군의 전진배치와 동맹관계의 지속적인 유지 의지를 잃게 될 것이다.둘째,동맹관계 유지 및 미군 전진배치 비용의 지속적인 분담에 대한 미국의 동맹국들의 이해 약화이다.이 문제는 미·일 동맹과 미군 주둔이 일본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았던 지난 96년에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셋째,주변국을 위협하는 역내 군사강국의 등장이다.중국을 봉쇄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용적인 문제에 있어 관여를 유도함으로써 중국정부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넷째,전쟁억지를 위해 한국내 및 한국주변에 주요 군사력을 배치하였으나 이 불안정한 균형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북한경제 붕괴에 따른 북한정권의 ‘내부로부터의 붕괴’에 의해 깨뜨려질수 있다. ○심각한 지역내 안보 도전 따라서 미국과 역내 동맹국들은 앞으로 심각한 안보상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이는 현재의 안정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와해시킬수도 있다.이러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의 예방적 방위전략은 ▲중국을 봉쇄하는 대신 참여시키기 ▲미국의 역내 동맹관계 유지 및 강화 ▲대량살상무기의 역내 확산 방지에 우선수위 부여 ▲군사력의 준비태세 및 전진배치 유지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안보전략은 국방장관 재임시 발생한 세차례 위기,즉 94년 한국,95년 일본,96년 대만에서의 위기에 의해 테스트된 바 있다.이 세번의 위기는이 지역 안보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했으며 일본과 한국의 중요성,그리고 서태평양지역에의 미군주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이 새로운 사고는 21세기에도 계속 이 지역의 미군 배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와 한·일간 협력 중요 이 세차례 위기상황은 21세기에 우리가 당면하게 될 안보문제와 그 대응방안에 대해 몇가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첫째,냉전이 종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의 종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둘째,미국과 일본간 그리고 미국과 한국간의 안보협력은 앞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셋째,미국과 일본간의 기술경쟁은 역동적인 생활의 한 단면으로서 경제우위는 생산기술이 더 결정적이냐,기업경영기술이 더 결정적이냐에 따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환되는 것이다.따라서 기술경쟁과 안보협력은 분명 공존이 가능하다.경제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안보분야의 협력을 보류해서는 안된다.또한 미국이나 일본 모두 기술분야에서의 경쟁이 안보분야에서의 양국의 협력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서 기술분야에서의 경쟁을 중지할 필요는 없다.
  • 제17차 세계정치학회 주요 논문

    세계정치학회 서울대회 3일째인 19일 ‘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화 정책’‘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통일이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각 패널이 개최됐다.또 북한 신포에서 경수로부지 착공식이 있은 이날 ‘미북 핵합의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라는 논문도 발표됐다.다음은 관련논문들의 요지. ◎미·북 핵합의와 한반도에너지 개발기구­/길영환 아이오와대 교수/한반도 영구 비핵지대화 기대커져 미·북 핵협정은 ▲경수로가 흑연감속로보다 더 핵확산 방지에 적절한가 ▲미·북 핵협정은 위험한 전조인가 ▲북한을 믿을수 있을 것인가 등 세가지 의문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첫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거나 건설중인 흑연감속로보다는 경수로가 핵확산 방지에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예스(yes)”다. 두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불투명하고 애매하지만 북한의 상황은 매우 독특하고 미·북 핵협정을 이끌어낸 것과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질 것같지는 않다.따라서 이것이 위험한 전조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세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아마 “노(no)”일 것이다.그러나 핵협정의 성패 여부는 ‘신뢰’보다는 ‘이행’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북 핵협정은 또 ▲이 협정이 북한이 과거 생산한 플루토늄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IAEA가 검증할 여력을 배제,1∼2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할 것으로 추정되는 플루토늄으로부터 북한이 어떤 것을 만들든 개입할 방법이 없고 ▲북한이 IAEA가 추구하는 특별사찰을 거부했을때,또 북한이 영변의 5MW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제거하는데 있어 IAEA의 규정을 무시했을때 제재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 등 두가지 중요한 결함을 안고 있다.그러나 미·북 핵협정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규정을 위반했을때 북한에 북한에 특별제재를 가할수 있도록 명기함으로써 이같은 결점들을 보완하고 있다. IAEA와 KEDO는 서로 다른 기구지만 북한의 핵 불투명성을 검사,한반도에서의 핵위기를 해소하려는 공통목표를 위해 서로 보완적인 일을 할 수 있다.이제 KEDO가 미·북 핵협정의 완전한이행을 위한 책임을 떠맡게 됨으로써 지난 94년 핵위기때와 같은 수수께끼가 해결되고 한반도가 영구히 비핵지대로 남을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한층 커질수 있게 됐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 강대국의 예상 반응­R.존슨 미 응용과학연 연구원/미,동북아안보 단극체제 유지 노력 한반도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반응은 주변국 각국의 전략적 목표,한반도 통일의 유형,통일과정에 따른 지역안보환경의 유형을 분석함으로써 예상이 가능하다.즉 우선 통일의 유형과 지역안보환경에 기반해 시나리오를 구성한 후 이를 토대로 주요국가들이 추구할 전략적 목표를 추정해본다. 첫째,미래시나리오를 만들어보면 통일의 유형은 전쟁을 통해 남한이 북한을 무너뜨리는 경우,북한이 붕괴하는 경우,남한이 북한을 점진적으로 통합해가는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지역안보환경은 단극체제(현재와 같은 경우의 지속),양극체제(미국과 중국의 경쟁),다극체제(중국,미국,일본의 경쟁)로 나뉜다. 둘째,가상시나리오와 관계없이 주요주변국 및 통일한국의 예상되는 안보목표를 평가해보는 것이다.중국,일본,러시아,미국의 장기적인 안보목표에 대한 평가는 이 시나리오들에 결합되어질 것이다.마지막으로 이같은 시나리오들을 분석함으로써 각 국가들이 어떻게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려고 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수 있다. 미국의 경우 동북아안보환경에서 단극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긴밀한 한미안보관계의 유지는 미일관계의 안정에 필수적이다.이는 한일간에 잠재해있는 긴장을 완화하며 중국의 세력이 지나치게 증대되는 것을 막는데도 중요하다.미국은 또 자국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한반도통일의 전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할 것이다.미국으로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을 잃는 것이기보다는 한국을 중국에게 잃는 것이다.통일이후의 한국의 정치적 전개는 한미 안보관계에 비판적일 것이지만 미국은 한반도통일 시나리오에 바람직한 결과가 이루어지도록 공헌할 수 있다.미국은 남한이 복한을 통합하는 속도와 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통일한국에 주둔할 미군의 규모에 대한 결정도 한미공동의 합의에서 나와야 한다.미국은 지역방위를 위한 강력한 군사력을 포함해 지속적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자국의 공헌을 증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마지막으로 미국은 한반도통일과정에서 가능한 빨리 한반도내의 대량살상무기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민주화와 세계화:일·한·대만 비교연구­T.J.펨펠 워싱턴대 교수/한·일·대만 거대 여당 유지·좌파 무력화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관계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있다.바로 경제발전이 특정단계에 도달하면 그 국가는 더이상 독재나 권위주의로 남아있기 어렵다는 주장과 민주화가 오히려 대중들이 정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게 해 경제성장을 억제시킨다는 주장이다.일본,한국,대만 등 3국의 민주화가 어떤 방식으로 경제성장과 대치되지 않으며 발전해왔는지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상관관계를 탐색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의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 국가들 가운데 가장 긴 민주화를 경험했으며 꾸준한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있다.일본의 민주제도,국제적 환경과 특수한 사회·경제연합은 한국과 대만의 경우와도 비슷한 상황이 많다. 이들 세 국가의 민주화 경험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안목을 제공한다.첫째,이 세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의 주된 특징들중의 하나는 일당지배하에 모든 주요기업들이 하나의 당 아래로 통일됐다는 것이다.그러므로 기업의 이익은 한곳으로 집중되어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결과적으로 노동과 좌익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힘을 잃고,계급투쟁은 국가성장의 명분하에 잠식됐다.둘째,제도적 측면에서 볼때 일당 지배체제와 좌파의 무력화를 언급할 수 있다.일당 지배정당체제는 노동자와 좌파가 선거무대외에 올라오는 것을 막았다.셋째,민주화와 경제발전에 있어 동북아 3국과 미국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사실이 특히 중요하다.미국의 계속적인 개입과 지원이 없었다면 그 성공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정치가 경제의 논리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자국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에게 이러한 수혜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 군사비 지출 증가율 동아시아 “세계최고”/미 연례보고서

    【워싱턴 교도 연합】 냉전이 종식된 지난 10여년동안 세계적으로 군사비 지출이 감소했지만 동아시아지역의 군비지출은 지난 95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1백19억달러나 늘어 군비증가율면에서 세계최고를 기록했다고 미국의 한 보고서가 밝혔다. 미 군비관리군축국이 이달말 발간에 앞서 6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5년 세계적인 군비지출은 8천6백45억달러로 걸프전쟁이 발발한 지난 90년의 1조1천억달러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지역의 군비지출은 1천6백50억달러로 전세계 군비지출액의 19.1%를 차지했다.이같은 수치는 지난 90년 이후 6년동안 두배로 늘어난 것이다.
  • 미 컬럼비아대 커티스 교수 도쿄신문 칼럼 요지(해외논단)

    ◎대북 전략은 ‘상황대응형’이 효과적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변화를 유도할 것인가,아니면 국제적인 룰에 맞춰 행동하도록 압박해 나갈 것인가.북한에 대한 정책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시각이 존재해왔다.그런 가운데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제럴드 커티스 교수는 최근 도쿄신문에 실린 칼럼을 통해 당분간 북한이 어떻게 나오는 가를 지켜보면서 대응해 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다음은 커티스 교수의 칼럼내용이다. 북한의 군사력과 불안정한 국내사정으로부터 한·미·일 3국간에는 북한에 대처해야 할 방법에 관해 정반대의 시각이 있다.그 하나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의 고립화를 풀라는 것이다.이 생각은 북한을 국제사회에 끌어내 그 경제를 구제하는 것이 한·미·일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또 전쟁의 참화를 피해 이른바 연착륙(Soft Landing) 할 수 있도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생각은 ‘독이 든 당근론’으로 불리운다.이 이론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무역과 투자,외교관계의 확대는 북한의 고립화를 종식시켜 변화를 강요하게 된다.경제적으로 살아 남기 위해 북한은 외부와의 접촉을 증대시키지 않으면 안되지만 접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체제의 정치적 유지가 어렵게 된다. ○‘독이 든 당근론’과 허점 그러나 이 이론에는 문제가 많다.최대의 문제는 독이 들을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점이다.북한의 체제는 반석의 통제력을 유지한 채 경제적으로 강화될지도 모르며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커지게 될지도 모른다.당근은 보다 많은 원조 요구를 불러 일으킬 뿐일지도 모른다.게다가 이러한 정책이 연착륙을 유도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발상이다.북한 지도부는 연착륙이든 경착륙(Hard Landing)이든 한국의 무릎 위에 착륙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연착륙을 말하는 사람이 상정하고 있는 것은 독일 통일과 같은 평화적 통일이다.그러나 옛 동독과는 달리 북한은 지도자가 누구이든 자국을 한국의 지배하에 놓는 것 같은 정책에는 저항하게 될 것이다. 독이 든 당근론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 한·미·일은 북한에 대해 비타협적인 강경자세로 임해 계속해서 고립시키며 최종적으로 붕괴를 조기화한다는 생각이다.이 이론에 따른 북한체제의 붕괴 가능성은 군사 쿠데타이던가,민중봉기 밖에 없다.북한에 대한 양보는 체제를 유지시켜 붕괴를 늦출 뿐이며 한·미·일은 결코 타협하지 말고 북한을 안으로부터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문제가 많다.가장 문제인 것은 전쟁에 이르는 위험이다.만일 국제사회가 자국을 강제적으로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북한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전쟁에 도박을 걸고 나올지도 모른다. ○강경론은 전쟁유발 위험 그러면 북한에 대한 가장 좋은 전략은 무엇인가.외교에서는 굳이 적극적인 행동이나 이니셔티브를 발휘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 지에 따라 대응을 결정해야 하는 때도 있다.일본 외교의 특징이라고 불리우는 신중한 상황대응형 방법이 유효한 시기도 있다.북한에 대해서 지금이 그러한 때가 아닐까. 한·미·일은 북한이 전향적인 제안을 하면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지만 어디까지 제안을 해야하는 쪽은 북한측이다.외부의 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북한인 것이며 이를 위해서 남북한의 긴장완화로 이어지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다만 북한에 인도적인 식량원조를 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 식량원조를 하는 것만으로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턱이 없다.만일 북한이 해결을 바란다고 하면 북한은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만일 그렇게 된다면 한·미·일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여하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해서 당근을 내밀지도 말고 몽둥이로 위협하지도 않겠다고 표명해 자국에 무엇이 일어날까 그 선택은 자기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정리=강석진 도쿄 특파원〉
  • 만리장성과 텅빈 요새(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앤드루 네이션·로버트 로스 공저/‘거대한 몸집’지탱 버거운 중국/하드­소프트웨어 다 낡아 ‘종이 호랑이’불과 중국은 미국 중심의 아시아 질서,나아가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인가,아니면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한가? 전세계 인구의 5분의1을 차지하는 12억 인구,개방·개혁의 물결로 부흥하는 경제,외환보유고 순위를 대번에 아시아 3위로 올려놓은 홍콩접수,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상징적인 힘의 알파를 한번에 거머쥐게 된 중국.그러한 중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두려움 그 이상이다. 동아시아에서 질서유지자 역할을 해온 미국과 막강한 경제력을 토대로 아시아 패권을 꿈꾸는 일본,그리고 한반도는 앞으로 도래할지도 모를 팍스 시니카(Pax Sinica)시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각국의 정치학자들이나 분석가,정책입안자들은 중국의 실제 힘을 계산하고 미래모습을 점치기에 분주하다. ‘중국 위협론’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힘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미국 콜럼비아대 정치학 교수인 앤드루 네이선과 보스턴대 정치학자 로버트 로스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 주장한다.그들은 최근 펴낸 책 ‘만리장성과 텅빈 요새(The Great Wall And The Empty Fortress)’에서 중국을 ‘종이 호랑이’로 결론짓는다. ○‘팍스시니카’도래 촉각 네이선과 로스 두사람의 시각은 냉전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강력하게 제기돼온 ‘중국 위협론’을 부정하는 분석이다. 냉전의 종식으로 미국의 주적이었던 소련이 사라져 버렸을때 많은 학자들은 새 시대의 적으로 ‘깡패 국가’인 이라크 등 몇몇 나라와 민족갈등 등을 꼽았다. 그러다 세계은행이 지난 92년 중국이 과거와 견줄수 없는 거대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국제사회는 중국의 미래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세계은행 보고서에 놀란 정치학자들은 재빠르게 중국의 경제와 기술력,무기구매력,전쟁훈련 상황 등을 바탕으로 미래의 힘을 추산해냈다.그들이 낸 결론은 중국이 조만간 아시아의 맹주로 떠오를 것이고 이는 이 지역의 운명에 깊이 간여해온 미국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이것이바로 ‘중국 위협론’이다. 이 ‘중국 위협론’에 대한 찬반 논쟁은 과거 소련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관련한 강경론자와 온건론자들의 논쟁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올해 초 ‘다가오는 중국과의 갈등(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이란 책을 펴낸 대표적인 강경론자,즉 중국 위협론자인 언론인 러처드 번스타인과 로스 먼로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치를 위협하며 이는 남지나해상에서 수세기동안 이어진 남사군도 장악에서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중국은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연결하는 무역과 전략요충지를 장악함으써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주변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수세 입장 반면 네이선과 로스는 중국은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민족문제 등으로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는데 급급하며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입장이라고 분석한다. 군사력은 기술과 조직적인 면에서 미국은 차치하고 대만이나 일본·한국에 훨씬 뒤처지며 전통적으로 중국군은 방어용으로 길들여져 왔다는 것이다.또 공격기는세상에서 가장 낡은 것으로 대부분이 50·60년대 기술수준에 머물며 해군의 경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와 싸우면 틀림없이 패한다는 입장이다.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한 육해공군의 명령·통제·통신·지식수행력이 더 문제이다.남사군도만해도 전략요충지로 삼거나 군시설을 설치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규모라는 것이 네이선과 로스의 주장이다.그들은 적어도 25년 안에는 중국의 위협이 현실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책은 25년 이후의 장기적 측면에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중대한 허점을 안고 있다고 월드폴리시 저널 편집장인 벤저민 쉬발츠는 말한다.현재 중국의 역동적인 경제성장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분석하는 일단의 ‘중국 위협론자’들은 25년후가 문제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벤저민 쉬발츠는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한다.이책을 쓴 두사람의 저자나 ‘중국 위협론’을 주장하는 강경론자 모두 분석의 차이에도 불구,결론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이른바 미국에 의한 ‘힘의 균형’상태가 지속돼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힘의 균형’ 유지시켜야 ‘미국 지배에 의한 균형’은 그러나 보는 각도에 따라 모순적일 수 있다.미국 입장에서 ‘균형’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패권주의’로 보일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중국이 자신의 커져가는 부를 이용,미국의 아시아 지배를 종식시키고자 한다해도 놀랄일이 아니라는 것이다.미국이 중국 위협론을 거론하면 할수록 중국의 야심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야심이 드러날 뿐이다. 268페이지.W.W.Norton & Company.27달러 50센트.
  • 미,캄 특사 솔라즈 파견

    【워싱턴·방콕 AP AFP 연합】 미국 국무부는 훈 센 제2총리의 유혈쿠데타로 촉발된 캄보디아 정치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의원을 동남아 국가들에 즉각 특사로 파견할 예정이라고 17일 발표했다. 니컬러스 번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원로로 활동해온 솔라즈 특사의 임무는 전쟁 종식과 93년 민주선거를 통한 정부출범을 가능케 했던 지난 91년 파리평화협정의 회복에 지지를 결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번스 대변인은 솔라즈 특사의 구체적 목표는 외교적 방법을 통한 캄보디아 내전종식과 총선을 일정대로 내년에 실시토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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