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쟁 종식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망원인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정책대안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여성 사장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망원경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202
  • 남북 정상, 2박3일간 2번 이상 만난다

    남북 정상, 2박3일간 2번 이상 만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 기간 2번 이상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내일 오전 8시40분 성남공항을 출발해 오전 10시쯤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임 비서실장은 남북 정상이 19일에도 2차 회담을 열고 언론발표를 할 것으로 보이며, 남북간 무력충돌 방지 군사합의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두 정상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간 비핵화 대화의 진전을 주제로 대화할 것이라고 임 실장은 전했다. 또 남북의 전쟁위협을 종식하고 충동가능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방안 역시 회담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김혜련 보건복지위원장 “MERS 대응 초기 적극 대처로 조기진압 해야”

    김혜련 보건복지위원장 “MERS 대응 초기 적극 대처로 조기진압 해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김혜련(더불어민주당, 서초1)은 9월 10일 MERS 확진자 발생 관련 시민건강국의 긴급현안보고를 통해 서울시 메르스 조기진압을 위한 집행부와 2인 3각 체계를 꾸리겠다며 조기종식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현재 서울시 MERS 통제 현황은 밀접접촉자 21명에 대한 자가격리 및 능동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서울시와 질병관리본부의 통제하에 일상접촉자에 대한 수동감시를 하고 있다고 밝히며 의심 신고자에 대한 검사 등을 수행하고 현재까지 발병환자 1명외에 추가환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혜련 위원장은 “지난 2015년 심각한 인명피해를 입힌 메르스와의 처절했던 전쟁이 기억난다. 결연한 의지로 메르스와의 전쟁을 조기 종식시킬 수 있도록 시민건강국이 적극적인 행정을 하길 바란다”며 “예비비 지출, 공무재량권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단 한명의 감염자 증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 밝혔다. 밀접접촉자 격리와 관련하여서 감염위험이 가장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격리된 것이나 이에 따른 개인적인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측한다며 자치구 보건소와 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이들이 감염에 대한 피해만 아니라 사회적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극적인 행정을 펼칠 수 있게 시민건강국이 지원할 것을 요청하였다. 최근 일상접촉자 관리지침의 수정 등 일견 과도한 행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적극적인 행정으로 변화하는 서울시의 대응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처럼 만반의 준비 태세로 MERS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서울시가 더 이상 확진자 없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의회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할 것이라며 MERS 사태 조기종식을 위한 의지를 밝혔다. 또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예정된 보건복지위원회의 시민건강국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시기를 조정하는 등 메르스 대응에 적극 협조해 나섰다. 앞으로도 MERS 조기종식을 위한 의회와 집행부의 2인 3각 체계 구축에 적극적 협력을 하겠다며 이후 서울시 의사회 등 유관 단체와 서울시가 협업할 수 있도록 민관협력을 위해 의회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드워드 “오바마도 대북 선제타격 통한 북핵 제거 검토”…북핵 비화 공개

    우드워드 “오바마도 대북 선제타격 통한 북핵 제거 검토”…북핵 비화 공개

    오바마 행정부도 북한 핵과 미사일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타격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북미 관계의 급랭으로 대북 군사옵션이 공론화됐던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미국 행정부 내에서 대북 선제타격 방안이 상당히 진지하게 논의돼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저명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11일(현지시간) 출간한 화제의 신간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에 실렸다. 이 책은 우드워드가 트럼프 행정부 관리를 비롯해 여러 인물들을 심층 인터뷰해 쓴 것으로, 백악관 내 혼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출간 전부터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책을 가리켜 ‘사기’, ‘소설’이라고 비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선제타격 검토를 전한 내용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한 2016년 9월 9일,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전해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미 핵실험 나흘 전,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사정거리에 두는 중거리 탄도미사일도 시험 발사해놓은 상태였다. 우드워드는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 위협이 정확한(외과수술 방식의) 군사 공격으로 제거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할 시간이 됐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임기 말을 맞아 후임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줄 준비를 하면서도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 북한 문제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부터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저지시킬 수 있는 극비 작전인 ‘특별 접근 프로그램’(Special Access programs(SAP)‘들을 승인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첫째, 북한 미사일 부대 및 통제 시스템을 겨냥해 사이버 공격을 하는 작전과 둘째, 북한 미사일을 직접 손에 넣는 작전, 셋째로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7초내에 탐지하는 작전 등이 포함돼 있다. 첫번째 작전은 오바마 취임 첫해부터 시작됐지만 성공률이 혼재돼 있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우드워드는 “정부 관리들은 이 작전들이 국가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책에서 자세히 묘사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자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참모들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제거하기 위해 사이버 공격을 포함한 예방적 대북 군사 공격에 착수할 가능성이 있는지’, 상당히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오바마 이전 정부도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결국 완전한 해결을 하지 못한 채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었고, 오바마 대통령 역시 북한 문제 때문에 점점 더 힘들게 된 문제가 됐다고 우드워드는 평했다. 구체적으로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미국의 위협이 될 것이라는 강력히 경고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국방부와 정보기관에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한지 파악해보라고 지시했다고 우드워드는 밝혔다. 한달 동안 진행된 조사 결과 국방부와 미국 정보기관은 “미국이 식별할 수 있는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 시설 85%가량을 타격해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클래퍼 국장은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하게 제거하지 않을 경우 반격 과정에서 남한에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특히 당시 국방부는 지상군 침투를 통해 북한 핵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를 파괴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 경우 핵무기를 이용한 북한의 반격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었고,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우드워드는 지적했다. 이러한 논의 끝에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며 대북 선제타격 방안을 백지화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우드워드는 2014년 11월 클래퍼 국장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케네스 배와 매튜 토드 밀러의 석방을 위해 평양을 찾았던 당시의 일화도 소개했다. 군사 옵션 대신 보다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여긴 클래퍼 국장은 방북했을 당시 북한 관리들과 대화하면서 북한이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미 정보당국이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북한으로서는 이같은 ‘모호성’이 매우 현실적이고 강력한 억지 수단이 되는데, 북한이 굳이 이를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내거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클래퍼 국장은 또 북한이 한국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평화협정을 바라고 있다고도 전했다. 우드워드는 “클래퍼 국장의 2014년 방북 당시 북한 관리들이 클래퍼 국장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유일한 주제가 있었다”면서 “클래퍼 국장은 ‘미국에게 영원한 적수란 없다. 일본, 독일과도 과거 전쟁을 했으나 지금은 친구’라고 말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클래퍼 국장은 북한과 접촉하기 위한 비공식 채널로서 평양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하기를 원했다. 완전하고 통상적인 외교 관계 수립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동시에 북한에 정보를 전달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고 우드워드는 풀이했다. 그러나 이러한 클래퍼 국장의 주장은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아무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우드워드는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 동의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강경파였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정은이라는 인물에 대해 미 정보당국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고 우드워드는 지적했다. 클래퍼 국장은 김정은이 무엇 때문에 핵 추구에 나서는지, 즉 그의 ‘발화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오바마 정부가 대북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논의했지만, 북한의 서버가 중국에 있어 이를 공격하면 중국이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재앙적인 사이버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미국 대선 이틀 뒤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에서 만나 북한 문제를 언급했다는 일화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당초 20분 동안으로 예정돼 있었는데, 실제로는 이를 훌쩍 넘겨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한국이 가장 골칫거리다. 당신에게도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에게 북한 문제가 가장 큰 악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훗날 참모들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미 정보당국이 30대 초반의 나이에 북한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 김정은의 성격을 분석하는 데 열을 올린 부분도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미 정보당국은 김정은이 언론 만평 등에서 불안정한 미치광이처럼 묘사되는 것과 달리, 그의 아버지 김정일보다 훨씬 더 북핵 프로그램을 다루는 데 있어 효과적인 지도자로 판단했다. 김정일은 핵실험에 실패한 과학자들을 처형했지만, 김정은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신념으로 실패를 용납하고 핵 기술을 진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문정인 “종전선언·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별개”

    문정인 “종전선언·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별개”

    “조만간 좋은 소식” 9월 선언 기대감 불씨 美매체 “트럼프 6·12회담 종전서명 약속” 국무부 “한미 굳건… 균열 부풀려져” 진화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과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공동주최한 한·미 동맹 관련 비공개 세미나에서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문제 등과 별개”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미 인터넷매체 복스는 이날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선언’ 서명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문 특보는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전혀 별개”라면서 “미 조야와 백악관 대북 강경파의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선 종전선언’ 주장 이유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균열의 노림수라는 미 조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어 문 특보는 “한·미가 동맹 차원에서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수 있다”고 9월 종전선언의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문 특보는 또 이날 미 시사매체 애틀랜틱에 “종전선언은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되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지만, 한·미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인간의 죽음을 제외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매체 복스는 이날 트럼프 정부 고위관계자 발언을 인용,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에 합의를 했다”면서 “북·미 중 누가 먼저 제안한 것인지,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일자까지 종전선언에 서명하겠다고 약속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복스는 또 “북한은 지난 6월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백악관 방문 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약속을 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스는 이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정부는 종전선언에 앞서 북한에 핵탄두 60~70%를 6~8개월 내에 반출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면서 “이 때문에 최근 미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점점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과 국무부는 즉답을 피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정전협정에 대해 약속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그것(정전협정 서명)이 합의의 일부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가 다른 부분에 선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고 기존의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한편 국무부는 최근 대북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균열 보도에 대해 “부풀려진 것이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한·미 공조를 강조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는 한국과 긴밀하게 조율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지원이 없었다면 북한과 대화를 하는 이 지점까지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무산된 것과 관련, ‘스티븐 비건 신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혼자 방북할 가능성도 있느냐’는 질문에 “이 시점에 발표할 어떤 출장도 없다”면서도 “어느 시점에는, 아마도 몇 주 내에는 일부 다른 나라들의 카운터파트를 만나기 위해 이 지역을 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다음주쯤 예정된 비건 대표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첫 회동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北 “종전선언하면 북미 관계 새전진”

    北 “종전선언하면 북미 관계 새전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조만간 이뤄질 예정인 가운데 북한 선전매체들은 종전선언이 북미관계 개선에 새 전진을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의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23일 “종전선언 발표로 조미 사이에 군사적 대치상태가 끝장나면 신뢰조성을 위한 유리한 분위기가 마련되게 될 것이며 조미관계 개선에서도 새로운 전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상대방의 진정어린 선의와 아량에 호상(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초한 실천적 행동조치로 화답해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응당 종전선언 채택 등 단계적이며 동시적인 행동조치를 통해 호상 신뢰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또 “전쟁종식을 선언하는 것은 조선반도는 물론 지역과 나아가 세계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첫 공정”이라며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미·중 무역협상 이번주 재개…WSJ “11월 타결 로드맵 짜는 중”

    미·중 무역협상 이번주 재개…WSJ “11월 타결 로드맵 짜는 중”

    22~23일 워싱턴 4차 협상이 첫 관문 성과 절실한 트럼프·내상 입은 시진핑 11월 정상회의서 최종 합의할 가능성 “中 통 큰 양보 없인 평행선” 회의론도 오는 22~23일 미 워싱턴DC에서 4차 미·중 무역협상이 예고되면서 양국 간 첨예했던 무역전쟁이 오는 11월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의 ‘성과’가 절실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는 무역전쟁의 장기전을 피해야 하는 상호 공통 이해관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미·중 양국이 오는 11월까지 무역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 로드맵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 무역 관련 고위관계자들이 로드맵에 따라 주요 쟁점들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오는 11월 예정된 다자 간 정상회의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최종 타결한다는 시나리오다. WSJ는 “관세 폭탄을 서로 주고받으며 악화일로로 걷고 있는 양국 무역 전쟁이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4차 무역협상은 ‘11월 무역전쟁 봉합설’의 첫 관문이 된다.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는 “4차 무역협상은 미·중이 무역전쟁을 해결할 방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며, 추가적인 협상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론도 크다. 이는 무역전쟁의 핵심 쟁점인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축소와 관세·비관세 무역장벽 철폐, 지적재산권 침해 및 강제적 기술 이전 금지 등 굵직한 사안마다 양국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통 큰’ 양보가 아니면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중은 오는 23일부터 160억 달러(약 17조 9000억원) 규모의 상대국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 아울러 4차 무역협상에 나서는 미·중 대표의 ‘급’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웬디 커틀러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AP통신에 “돌파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되고, 기껏해야 양측이 고위급 회의 약속이나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오는 11월 중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첫 번째로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11월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도 만나게 된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한화 2분기 영업익 7061억… 전년比 9% 감소

    한화 별도 기준 땐 영업익 20.2% 증가 ㈜한화는 자회사를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올해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감소한 7061억원을 기록했다고 14일 공시했다. 매출액은 12조 6222억원으로 10.9% 늘고, 당기순이익은 4161억원으로 23.5% 줄었다. ㈜한화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한화생명,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화약, 방산, 무역 등 자체사업 기준의 ㈜한화 별도 기준으로 보면 2분기 매출액은 1조 1390억원, 영업이익은 93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액은 1.3%, 영업이익은 20.2% 증가했다. 특히 이번 2분기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분기 최대 실적이라고 한화는 설명했다. 매출 증가는 한화 자체 사업 가운데 방산 및 무역 부문이 양호한 사업 성과를 보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견조한 실적 성장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화는 설명했다. 방산 부문의 경우 ‘천무’ 양산 매출 증가가 영업이익 성장에 기여했고, 무역 부문은 유화제품 판매 확대 및 수익성 개선이 이뤄졌다. 특히 한화는 연결실적 구성 요인 가운데 한화건설 부문을 주목했다. 한화는 “한화건설의 주력 해외 프로젝트인 이라크 사업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전쟁 종식과 유가 상승으로 이라크 정부 재정 상황이 개선돼 미수금이 해소됐다”며 “향후 공정 진행도 원활하게 추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美 우주군 창설, 명분은 “北 전자공격으로 美위성 무력화”

    美 우주군 창설, 명분은 “北 전자공격으로 美위성 무력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우주전쟁’ 시대에 대비해 ‘우주군’(Space Force)을 창설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0년까지 창설 작업을 마치겠다는 것이나 러시아와 중국뿐 아니라 북한의 우주전쟁 수행 능력도 창설 명분으로 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5년간 80억弗 투입…2020년까지 6번째 군종으로 창설 AFP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9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방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다음 전장(戰場)에 대비해 미군도 새로운 역사의 장을 써야 할 시점이며 우주군을 창설할 때가 됐다”면서 “이를 통해 다음 세대의 국가·국민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물리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우주기반 시스템을 교란시키고, 우주에서의 미국 우월성에 대해 유례없이 도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펜스 부통령은 특히 “많은 해 동안 러시아와 중국부터 북한과 이란까지 지상에서의 전자 공격을 통해 우리의 항행 및 통신위성을 무력화하는 무기들을 추구해왔다”면서 “최근 우리의 적들은 새로운 무기들로 우주 자체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에 오는 2020년 우주군을 창설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역시 우주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은 “정부는 (매티스 장관의) 제안을 실행하기 위한 조치들을 신속히 취하겠다”며 국방부에 우주 담당 차관보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우주군 창설 및 운용을 위해 향후 5년간 총 80억달러(약 9조원)의 예산을 지원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미군의 우주군 창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국방부에 직접 지시한 사항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린 우주를 지배해야 한다”고 말했었다.현재 미군은 육·해·공군은 물론 해병대, 해안경비대까지 5군종(軍種) 체제로 운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찰위성 및 군사용 통신위성 운용과 대기권 밖 우주공간에서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 등에 관한 임무는 사실상 공군이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은 공군으로부터 ‘우주군’을 분리해 6군종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 국방부는 이날 의회에 보낸 우주군 창설 계획 보고서에 ‘우주군사령부’의 독립 설치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국방부는 전시상황에선 미국이 운용하는 인공위성이 해킹이나 전파방해 등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中 2045년 우주 리더 부상 목표…北 사이버전 역량 최고조 실제로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 중단했던 ‘킬러위성’을 활용한 미국 인공위성 제거 프로그램 개발을 2010년대 들어 재개했다. 킬러위성으로 불리는 공격위성시스템(ASAT)은 목표 위성의 궤도를 찾아가 스스로 폭발해 금속 파편을 퍼부어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러시아는 2014년 5월 우주쓰레기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킬러위성을 발사했다. 러시아는 이밖에 레이저를 이용한 위성요격무기도 개발 중이며, 2015년에는 ‘누돌’로 불리는 위성요격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앞서 중국은 2045년까지 우주 기술과 개발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부상한다는 야심찬 목표에 따른 우주개발 로드맵 보고서를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45년까지 태양계 행성·소행성·혜성에서 대규모 탐사가 가능한 우주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2040년까지 핵추진 우주왕복선을 개발할 계획이다. 아울러 핵추진 우주왕복선이 개발되면 우주 태양열 발전소는 물론 대규모 우주 개발, 소행성 자원 탐사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내용도 로드맵에 포함됐다. 중국은 미 인공위성을 파괴할 수 있는 고출력 레이저, 레일건, 극초단파 무기 등을 개발 중이라고 군사안보 전문매체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지난해 전했다. 중국은 2005년 신장에서 지상 기반 레이저 무기 ‘룽샤’로 저궤도 위성을 요격·파괴하는 시험을 실시했고, 2007년에는 위성요격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레이저를 탑재한 위성을 개발 중이고, 야구공 크기 물체가 인공위성에 접근하더라도 이를 탐지해 충돌을 막는 ‘우주 울타리’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과의 우주 전쟁에 대해 어떤 무기를 개발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펜스 부통령이 언급한 북한의 위협은 위성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해킹을 가능케한 사이버전 역량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미 의회 내에선 우주군 창설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어 그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많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종전선언 물밑협상…주목받는 싱가포르

    ARF에 남·북·미·중·일·러 외교장관 집결 서훈·박선원 최근 방미… 제재 해제 논의 6·25전쟁의 종식을 위한 정치적 선언인 ‘종전선언’을 두고 북핵 관련 6자(남·북·미·중·일·러)의 움직임이 긴박하다. 싱가포르에서 오는 4일 개막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6개국 외무장관이 집결해 이곳이 협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1일 “(종전선언은) 우리의 외교적 과제니까 기회가 닿는 대로 추진을 해야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ARF 계기 회동 때 종전선언에 대해 논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사항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답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여러 통로로 추진 중이나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회담이다. 3자 혹은 4자 회담이 성사되지 않아도 ‘남북→한·미→북·미’ 순서의 양자 회담으로 종전선언에 대한 실질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종전선언 주체는 3자보다 4자에 무게가 실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자 종전선언이 될지 4자 종전선언이 될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 4자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가 꼭 3자여야 한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3자 구도의 속도감과 4자 구도의 안정성 중 후자에 무게를 둔 언급으로 분석된다. 다만 4자 구도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ARF에서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이 ARF에서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한 우리의 공유된 책무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지난주 박선원 특보 등과 미국을 방문해 행정부 고위 인사를 만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 남북관계 사안에 대한 제재 면제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사설] 정전협정 65주년 아침에 생각하는 종전선언

    오늘은 한반도를 피로 얼룩지게 한 한국전쟁을 ‘정지’하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1989년 미·소의 냉전이 해체됐지만, 이 땅에는 200만명 가까운 남북 군인과 가공할 중무장 화력이 휴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다. 21세기 유례없는 상황이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남북이 해빙되고 4·27 판문점 정상회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전쟁 위협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전쟁 가능성이 줄었을 뿐 전쟁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전체제가 계속되는 한 언제라도 전쟁의 참화가 재현될 수 있다. 생각하기도 싫은 사태가 한반도에 벌어진다면 민족의 재앙이 될 것이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는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라고 문서화했다. 이 정신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4·27 판문점 선언에도 계승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합의했다. 그래서 판문점 선언에서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남북 합의를 받아들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6·12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는 종전선언을 ‘축복’했다. 손에 잡힐 듯했던 종전선언은 지금 비핵화가 이뤄진 뒤에나 생각해 볼 얘기가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 남북의 상호 불가침, 북·미 간 전쟁의 종식을 고하는 종전선언은 7500만 우리 민족이 전쟁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평화의 기반이 되는 종전선언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는 ‘선 비핵화, 후 종전선언’이란 미국의 주장에 동조해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았는데 종전선언부터 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전쟁의 위협을 온존시켜 북한을 압박하고 비핵화를 이룬다는 것인데 과연 북한이 대가도 없이 선선히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주장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묻고 싶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그제 조기에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계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환영한다. 오늘 미군 유해 50구가 송환될 것이라고 한다. 유해 송환은 북·미 6·12 합의 4개 항 중 하나다. 남북, 북·미 합의를 이행하는 의무는 북한에만 있지 않다.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하고 북한의 안전보장’이란 6·12 합의에 걸맞게 종전선언이 나올 수 있도록 적극 나설 의무가 미국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 [기고] 종전선언이 왜 필요한가/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기고] 종전선언이 왜 필요한가/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종전선언’ 추진 문제를 둘러싼 북·미 사이의 의견 차이로 잠시 정체 상태에 빠졌다.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미국이 한·미 연합군사연습 잠정 중단 선언으로 화답하는 등 선 행동조치의 선순환을 통한 신뢰 쌓기를 추진하다가 동시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북한은 불가역적인 핵실험장 폐기와 가역적인 군사연습 중단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미국의 선 비핵화 행동 요구를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은 핵무기와 핵시설 동결 및 신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장 폐기 등 선 비핵화 행동이 있어야 종전선언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인 데 비해서 북한은 ‘북미공동성명의 모든 조항들의 균형적 이행’을 강조하며 종전선언과 비핵화 초기 조치를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체계 구축의 첫 공정인 동시에 북·미 신뢰 조성의 선차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상호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관계로 나가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표명하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밝혔다. 남과 북이 10·4 선언에 이어 판문점 선언에서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평화체제로 가는 입구를 열고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종전선언은 단순히 한국전쟁을 끝내자는 정치선언을 넘어 북한이 비핵화와 경제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또 하나의 만능 보검’으로 삼아 비핵화와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전환을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기 휴전이란 한국전쟁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한 체제안전보장 조치가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내 종전선언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남·북·미 3자 협의체를 통해서 ‘과정으로서의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구체화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선 비핵화란 과거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역풍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 [나에게 통일이란] “정치적 통일만이 통일 아니다…제도적 평화 우선 완성돼야”

    [나에게 통일이란] “정치적 통일만이 통일 아니다…제도적 평화 우선 완성돼야”

    늦은 봄 한반도에 분 훈풍으로 남북통일에 대한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세대별로 통일에 대한 인식차가 분명히 드러난다. 분위기에 따라 급변하는 여론도 통일 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서울신문은 18일 이런 인식차를 줄이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려고 오랫동안 통일에 대해 연구하거나 관심을 둬온 전문가와 활동가 4명의 의견을 들었다.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세대별로 초청했다. 좌담회에는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53·이하 전 교수), 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44·이하 박 연구위원), 박영철 탈북청년모임 위드유 대표·북한대학원 박사과정(36·이하 박 대표), 안선영 여대생통일연구학회장·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23·이하 안 학회장)이 참여했다. 좌담 진행은 임주형 기자가 맡았다.→서울신문 설문조사 결과, 통일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지난해보다 20% 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20대에서 통일 찬성률이 눈에 띄게 급등했다.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전 교수 대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통일에 관한 수업을 하는데 3~5월 지나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1년 사이에 국민의식이 이 정도로 왔다 갔다 한다는 건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정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통일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고민을 못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안 학회장 평창올림픽 때 공동입장하고 4월 정상회담하면서 20대에서도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벤트가 끝나고 나니 다들 통일에 대한 관심이 ‘1’도 없다더라.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취업, 진로가 더 급한 현실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찬성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박 연구위원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적 이벤트이지만 이것으로 전체 20%, 청년층이 35%가량 확 바뀐다는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의 지식구조가 그만큼 얕고 추상적이라는 의미다. -박 대표 여론이 긍정적으로 되면서 남북관계에 대해 불안보다는 평화를 많이 생각하고, 통일에 대해 더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선 중고등학교에 나가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면 지난해만 해도 ‘북한에 핵 있어요?’ 이런 질문이 주로 나왔는데, 요즘은 ‘통일이 되면 우리가 뭘 할 수 있어요?’ 식으로 질문이 달라졌다. →세대별 인식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연구위원 통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통일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머릿속에 그리는 모습은 20대, 30대, 40대, 50대 다 다를 것이다. 북에 있는 이산 가족을 만나고 자유롭게 여행하거나 단기간 머무를 수 있는 정도를 생각한다면 굳이 정치적 통일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이 정도 상황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족공동체로서 정치적으로 완전한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 -전 교수 100% 공감한다. 지금까지는 통일이라고 하면 둘 중 하나로 합치는 것으로만 생각이 고정돼 있다. 통일이라는 게 반드시 둘 중 하나로 합쳐져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강원도만 통일해서 통일특구 형태로 가고, 나머지는 남북 체제로 가는 식의 지방분권형 통합 방안도 있다. →정부의 명확한 계획이 없다고 보나. -전 교수 그렇다. 지금까지는 남과 북이 선택한 정치체제 중 어느 것이 우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통일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통일 방식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독일처럼 장벽을 부수고 들어가는 식으로 통일될 거라는 환상이 있다. 우리가 통일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통일세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여전하다. -박 연구위원 통일세의 개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북한 붕괴론이 대두하면서 나왔다. 통일이 되면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비용이 들 것이니 준비하자는 것인데, 통일 이후가 불안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통일은 통일세를 낼 필요가 없는 상황에 가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이 어느 정도 개혁 개방 사회구조로 바뀌고, 복지 정책이 시행되고 나서 만나는 게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안 학회장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남북교류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맨날 싸우고 대립하는 모습만 봤다. 그런데 갑자기 화해 분위기가 돼서 이제는 교류한다고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통일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나 정보도 없다. 통일세 역시 이것이 어떤 식으로 쓰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낼 거야, 안 낼 거야’ 물어보니 당연히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 교수 통일 재원은 이런 식으로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단계별로 0~100을 놓고 보면, 남북 연합과 화해,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는 단계까지가 50이고, 그 이후 제도적 통합하는 데에 또 그만큼의 품이 든다. 남북 경협이나 왕래, 자원 협력이 충분히 이뤄지는 단계까지 가면 세금이라는 별도 장치보다는 이를 활성화하고 촉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독일 통일을 예시로 많이 드는데. -전 교수 독일과 남북 관계는 절대 비교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동독은 북한에는 없는 자유로운 선거와 독재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인, 그리고 교회가 있었다. 동서독 통일 과정 역시 동독 주민들이 선거를 통해 연방으로 들어간 것인데 우리는 자꾸만 장벽 붕괴만 떠올리고 있다. -박 연구위원 1972년도 동서독기본조약이 나오기 전부터 독일은 교류협력의 과정이 굉장히 길었다. 이미 100만 명의 주민이 왕래했었다. -전 교수 오히려 중국과 대만의 케이스가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더 알맞다고 본다. 형식적인 민간교류이긴 했지만 상거래를 했고(통상), 우편 거래(통우), 통신과 항공이 오갈 수 있었다(통항). 경제협력 단위를 차츰 늘리면서 지금은 투자까지 가능한데, 우리도 이 단계를 거쳐나가야 한다. →아직까지 상당수는 통일이 북한을 위한 것이고, 남한이 퍼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국가에는 이익이 되지만 개인에게는 별 이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많은데. -전 교수 통일이 되면 남한과 북한에 각각 이익이 있겠지만, 성격이 다르다. 북한 주민들의 경우 경제적, 물질적 이익이 커진다면, 우리는 사회 전반적으로 정신적 가치가 커질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나 폭력, 모순이 해결되면서 우리 사회가 성숙해질 수 있다. 또 우리는 북한을 통해 유럽으로 갈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잖은가. 한반도 종단,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실제 경험하고 얻게 되는 사유의 확장이나 성숙은 돈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박 연구위원 이명박 정부에서 나온 통일세, 박근혜 정부에서 나온 통일대박론 이후 통일을 경제적 이익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통일의 발목을 잡은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익이 안 되면 통일을 안 할 것인가. 북한 땅 재개발론 같이 개인의 수입을 늘린다고 접근하면 위험하다. 통일은 직접적으로 개인의 수익을 늘려줄 수는 없지만, 사회기반 시설의 확충은 사회 전반에 이익을 가져다준다. -안 학회장 남북정상회담 하니까 ‘파주 땅값 얼마나 오를까’ 이런 식으로 경제적 뉴스 많이 나오더라. 벌써 접경 지역 땅값이 오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탈주민이 많이 사는 곳은 집값 떨어지니까 그 사람들 살지 않게 해달라는 시위도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한다는 것은 결국 남한만 잘사는 통일이다. 남녀별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이 첨예한데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 교수 한 학부모님이 저에게 질문했다. 아이가 6학년인데 학교에서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글짓기 숙제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통일에 반대해 고민이라는 것이다. 반대한다고 쓰면 점수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의 기본 인식이다. 그렇게 쓰면 학교 선생님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막상 아이에게 통일해야 한다고 설득할 논리는 없는 것이다. 통일 교육은 기본적으로 통일에 대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쓸 수 있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 -박 대표 여론조사가 나올 때마다 응답이 계속 바뀌는 것은 통일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현재 사회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우리가 통일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 학회장 학교에서 통일전망대 같은 데 가서 영상물을 보면, 남북이 싸운 역사를 보여준 다음 갑자기 통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뀐다. 우리는 과거에 적이었는데, 지금은 평화를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애국심이나 민족 등 당위성의 문제로는 설득이 잘 안 된다. 통일이라는 말 자체도 윤리를 요구하고 부담감을 주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신선했던 이유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 악수하고, 밥 먹는 것을 보면서 남북 교류도 결국 사람 간의 교류라는 것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교류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자. →네 분은 어떤 형태의 통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나. -안 학회장 지금 당장 통일을 얘기하기보다, 우선은 남북교류와 평화적 정착 노력을 먼저 하면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고, 남북 간에 정보도 오가게 되면 그때쯤 통일에 대한 카드를 슬쩍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박 대표 우리 세대에 통일을 봤으면 한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큰 혼란이 올 게 뻔하다. 지금 3만 5000명 북한이탈주민도 포용하지 못하는 입장인데 통일되면 2500만명, 3000만명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충분한 교육과 교류, 이런 것들이 충족돼야 한다. -전 교수 향후 20~30년에 대한 설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2000년 남북이 합의한 통일 방안에 공통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통일에 대한 철학에 기반을 둔 큰 계획을 세우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꾸준하게 밀고 나가면서 논의해야 한다. -박 연구위원 어떤 형태로든 제도적인 평화가 우선돼야 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두 집단의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식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도 교류 협력이 1단계인데, 그 이전에 0단계로서 제도적 평화 체제가 완성돼야 한다. 정리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9월 유엔총회 등 연내 종전협정…다자 안보협력·평화협정 시대로

    9월 유엔총회 등 연내 종전협정…다자 안보협력·평화협정 시대로

    文대통령 ‘新베를린 구상’ 이후 급물살 비핵화와 북·미 수교 등 포괄적 논의 中 쌍중단 등 주변국과 로드맵 공감대도“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려면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 재단에서 지난해 7월 ‘신베를린 구상’을 밝히며 ‘평화체제 로드맵’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하던 당시에는 현실성이 낮아 보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새롭고 명확한 청사진이었다. 3자(남·북·미) 또는 4자(남·북·미·중)가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한 뒤 종국에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평화체제가 유지, 심화돼 평화 공존 상태가 공고화·제도화된 상태)을 이루겠다는 뜻이었다. 실제 남북 정상은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 내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명시했다. 또 지난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했다. 따라서 9월 유엔총회 등 정전협정 65주년인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1953년 7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인 1954년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처음 논의됐다. 정부는 ‘한국 통일 14개 원칙’을 제안했지만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실시 범위, 외국군 철수 등에 대해 한국·유엔 참전국과 북한·중국·구소련(현 러시아)의 이견이 커서 결렬됐다. 남북은 1990년부터 2년간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통해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서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런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1997년부터 2년간 실시한 ‘4자회담’(남·북·미·중)은 북한이 ‘미·북 간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결렬됐다. 평화체제의 관문 격인 종전선언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10·4 선언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평화체제 로드맵은 11년 후 판문점 선언에서야 구체화됐다. 처음으로 북 비핵화 문제를 포함시켰고 전쟁의 종식과 단계적 군축을 담았다. 정전 체제 종식을 위한 청사진도 명시했다. 한마디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종합판’인 셈이다. 그간 주변국도 한반도 평화체제 로드맵을 내놨다. 지난해 남북에 전한 러시아의 방안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 및 비확산을 공약하고 한·미 양국이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서 대화에 나서는 식이었다. 중국은 더 나아가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해 ‘쌍중단’(북 핵·미사일 개발 및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의 병행)을 주장해 왔다. 실제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발표하고 지난 5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한·미 양국도 오는 8월 진행하려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등을 유예했다. 어느 정도는 주변국의 제안이 현실화됐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설명하지만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 통제가 또 다른 축”이라며 “이런 점에서 그간 한반도의 분단, 전쟁, 냉전은 동북아 지역 질서를 대립으로 나가게 하는 계기였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의 다자 간 안보협력이 함께 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종전선언·경제성과·2기 내각…순방 마친 文 앞의 ‘3대 난제’

    ‘비핵화 속도전’ 열쇠로 종전선언 주목… 9월 유엔총회 적기 ①북핵·종전선언 5박 6일간 인도·싱가포르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좀처럼 풀기 쉽지 않은 ‘난제’가 쌓여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변수로 부상한 종전 선언과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성과, 그리고 문재인 정부 2기 내각 구성 등 하나같이 해법을 선뜻 내놓기 어려운 것들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것은 물론, 이번 주 공개 일정을 최소화한 채 해법 찾기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文 “북·미 약속 안 지키면 엄중한 심판” 비핵화 후속 협상이 북·미 간 기 싸움으로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촉진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13일 ‘싱가포르 렉처’에서 “(북·미)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엄중한 심판’이란 표현을 쓴 것은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이후 이상기류가 일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무 협상은 순탄치 않은 부분도 있고, 시간이 걸릴 것”(문 대통령),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종전선언 위한 중재 보폭 넓힐 듯 ‘비핵화 속도전’의 열쇠로 청와대는 종전 선언을 눈여겨보고 있다.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지만, 이미 북한은 “종전 선언은 조(북)·미 사이 신뢰 조성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강조하는 등 협상의 ‘레버리지’(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혔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전 남·북·미 종전 선언을 적극 추진했던 문 대통령이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상응 조치가 과거와 같은 제재 완화나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적대 관계 종식과 신뢰 구축”이라고 말한 것은 향후 종전 선언을 끌어내기 위한 중재의 보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종전 선언의 적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에 최저임금 인상까지… 기업 고충 가중 ②경제 살리기 하반기 최대 국내 현안은 경제 살리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경제·일자리수석 등 경제라인을 교체했고, 다음날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전격 연기하는 등 공직사회에 ‘옐로카드’를 줬다. 인도·싱가포르 순방의 무게중심도 ‘기업 기살리기’ 행보에 뒀다는 게 중론이다.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 고용지표는 물론, ‘혁신 성장’의 성과를 내려면 대기업의 협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안팎의 환경은 녹록지 않다.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면서 기업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 14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된 뒤 사용자·노동자 모두 반발하는 상황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따로 입장을 낼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보완 대책을 마련한 뒤 청와대가 정제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공석’ 농식품부 장관 등 3~4명 교체… ‘중폭 개각’ 무게 ③이달 내 개각 가능성 개각은 이달 안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방선거 이전에는 최소화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았지만, 공석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포함해 3~4명이 바뀌는 ‘중폭 개각’에 무게가 실린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 환경부, 여성가족부 등 사회부처가 대상으로 거론된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잇단 구설로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아직 ‘문민장관’은 시기상조란 목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우세한 데다 군 출신 후임 장관을 찾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유동적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애니멀구조대] ‘복날’가고 ‘봄날’ 오길…개농장 구조견 사연

    [애니멀구조대] ‘복날’가고 ‘봄날’ 오길…개농장 구조견 사연

    잔인한 ‘복날’은 가고 ‘봄날’이 올까요? 초복과 중,말복이 몰려있는 여름은 동물운동가들에게 전쟁의 계절이다. 개를 ‘고기’로 먹기 위해 죽이려는 쪽에 맞서 ‘생명’으로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염속 7,8월은 케어 활동가들에게 초비상이다. 일찌감치 2018년 황금개의 해를 ‘개식용 종식의 원년’으로 삼은 케어의 행보는 숨가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퍼포먼스로 ‘FREE DOG KOREA’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지속적인 불법 개농장 고발로 ‘식용 목적의 도살은 불법’이라는 국내 최초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개고기 금지를 위한 물꼬를 텄다. 동시에 불법 개농장 고발단 ‘와치독 감시단’을 발족하고, 표창원의원의 개/고양이 도살 금지법에 힘을 싣기 위해 시작한 국민청원(www.freedogkorea.com)도 13만을 넘어서며 순항중이다. 개농장 자리에 보호소를 세우자는 대규모 프로젝트 ‘개농장을 보호소로’도 시작됐다. 경기도 남양주와 충청권에 있는 개농장을 순차적으로 폐쇄한 후 적정한 장소에 보호소를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먼저 남양주의 한 개농장 페쇄 작업이 시작됐고, 케어는 후원금이 모일 때마다 작게는 서너 마리, 많게는 십수 마리씩 개들을 구조해 자체 보호소로 날랐다. 뜻을 함께 하는 케어 홍보대사들도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유기견을 키우고 있는 배우 김효진은 눈물을 훔치며 20여 마리를 구조차에 실었다. 연주회를 위해 입국한 세계적 비올리스트 용재오닐은 입국 이튿날 10여 마리가 들어간 대형 케이지를 말없이 직접 옮겼다. 며칠 후 비올라를 연주할 손은 쉴새없이 온몸에 피부병이 퍼진 개들의 머리와 몸통을 쓰다듬고 물을 먹였다. 드디어 7월 초, 케어는 미국의 한 단체 도움으로 남양주 개농장 개들을 모두 구조하고 그곳을 폐쇄할 수 있게 되었다. 구조되자마자 첫번째 반가운 입양소식도 뒤따랐다. 낡은 뜬장 속에서 필사적으로 새끼를 보호하던 어미개 ‘마더’와 새끼 ‘베이비’가 강원도 모처로 입양된 것.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개농장 구조견들은 입양자가 나서기 쉽지 않으니 운이 좋았다. 구조 당시 도사견 ‘마더’는 뜬장 구석에 코를 박고 빙글빙글 맴을 돌며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였다. 뜬장 바로 앞에 놓인 커다란 도마와 그 위쪽으로 밧줄이 매달린 큰 나무가 ‘마더’의 공포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마더’와 ‘베이비’는 난생 처음 부드러운 흙을 밟고 신선한 물과 사료를 맛보며 평생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마더’도 뱅뱅 맴도는 행동을 멈추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니 안심이다. 200마리 개들을 남양주 개농장에서 케어 보호소로 옮기던 날,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들은 기꺼이 냄새나는 뜬장 속에 들어가 개들을 꺼내고 맨손으로 더러워진 개들의 몸을 닦았다. 먼길 마다않고 차량 이동봉사를 나선 이는 ‘해줄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다’며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케어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을 말해본다. 잔인한 ‘복날’은 가고 ‘봄날’이 올 것이라고. * 해피빈 모금함 바로가기: 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47608?p=p&s=ns 조연서 케어 국장 YeonseoCho@fromcare.org  * 매주 목요일 동물권단체 케어가 구조한 위급한 동물들의 구조, 임시보호, 입양 등을 다양한 개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文대통령 “평화가 진정한 보훈… 전쟁 없는 한반도 만들어야”

    文대통령 “평화가 진정한 보훈… 전쟁 없는 한반도 만들어야”

    “평화야말로 진정한 보훈이고 진정한 추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6·25 유엔 참전용사를 추모하며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애초 문 대통령은 이날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열린 유엔 참전용사 추모식에 참석하려 했으나 기상 악화로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위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는 보훈에는 국경이 없다”면서 “전쟁의 고통에 맞선 용기에 온전히 보답하는 길은 두 번 다시 전쟁 없는 한반도,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적대관계 종식 선언이 이뤄진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미군 전사자의 유해 200여구가 곧 가족과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며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의 유해 발굴도 시작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부도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전사자와 실종자의 유해 발굴과 송환이 신속하고 온전하게 이뤄지도록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유엔 참전용사들께 당신들이 흘린 피와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한국은 두 번째의 조국이며 한국인은 내 가족’이라는 참전용사들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전쟁의 어둠이 남아 있던 나라에서 평화의 빛을 발하는 나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오늘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가 기적이라면 유엔 참전용사 여러분이 바로 그 기적의 주인공”이라고 거듭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형편이 어려운 유엔 참전용사 후손에 대한 장학금 지급, 국내 유학 지원 확대도 약속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기고] 68번째 6·25전쟁일 단상/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68번째 6·25전쟁일 단상/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지난 4월 27일 남북의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연내 종전 선언이 주요 내용으로 명시됐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에 좀더 다가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의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68년 전 한반도에서는 6·25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전쟁의 연원은 1950년보다 훨씬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대 말부터 유입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의해 민족주의와의 대립이 생겼는데, 이것이 6·25전쟁을 낳은 이념 갈등의 시초가 됐다. 1945년 광복으로 조국 독립이라는 단일의 목표가 사라지자 좌우 이념 갈등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분단을 막기 위한 우리 민족의 염원과 노력은 냉혹한 외교 현실 속에서 미소(美蘇) 간 냉전으로 무산됐고, 결국 1948년 8월과 9월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된 분단은 6·25전쟁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3년 1개월, 1129일 동안 진행된 전쟁은 당시 한반도 인구의 5분의1이 넘는 600만여명의 피해를 남겼다. 도로, 철도, 항만 등 기간 시설과 주택이 파괴되어 국가 경제 기반과 국민 생활 터전이 황폐화됐다. 서로에게 깊게 새겨진 증오는 38선 철책보다 더 견고하게 남북을 갈라놓았다. 적화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극히 불리했던 전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명운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90만 참전 유공자와 유엔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필요로 했다. 이렇듯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켜낸 대한민국은 그간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이 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68년이나 묵은 난제인 6·25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선결 조건으로 한다. 비록 종전 선언 그 자체만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엄격한 감시와 평가 속에 북한의 비핵화가 함께 이루어져 간다면 남북 공동발전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남북은 7·4공동성명을 시작으로 화해의 노력을 해 왔지만 많은 한계에 부딪혔다. 지금은 경각심을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그 결과를 기다려 보는 시점이다. 한편 지난 6월 12일 북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형성된 북ㆍ미 간의 화해 기류도 연내 종전 선언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만일 이러한 기류에 따라 4·27 판문점 선언이 이행된다면 역사는 2018년을 ‘6·25전쟁 종전의 해’로 기록할 것이다. 30년 이상의 이념 갈등이 곪아서 발발한 6·25전쟁이 완전히 종결되지 못한 채 67번의 6월 25일을 보내고 이제는 68번째 6·25전쟁일을 앞두고 있다. 보훈 공직자로서 이날의 감회는 언제나 남달랐지만, 두 달 전 연내 종전 선언 추진 소식을 들은 올해의 6월 25일은 더욱 특별하다. 나라를 살리고자 위국헌신의 길을 걷다가 이제는 천상에 계신 수많은 호국영령과 68년 전의 아픈 기억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참전 유공자분들께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는 한마디를 전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의 서광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 [데스크 시각] 네 번의 협상, 네 번의 실패/안동환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네 번의 협상, 네 번의 실패/안동환 국제부 차장

    1985년 11월 19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제네바 서쪽 호숫가의 19세기 저택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레이건이 74세, 그해 소련 최고 권력자가 된 고르바초프는 54세였다.회담 사흘 전 도착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의 첫 만남을 앞두고 피곤해했다. 그는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같은 늙고 보수적인 소련 지도자들의 ‘복화술’ 같은 대화에 넌더리를 냈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는 소련 전문가 잭 매틀록 주체코 미 대사와 정상회담 리허설까지 마쳤다. 두 사람은 첫날 회담부터 핵무기 경쟁을 놓고 격돌했다. 고르바초프는 핵군축을 원하면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인 ‘스타워스 계획’부터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이튿날 회담에서는 흥분한 고르바초프가 “소련인을 순박한 민족 취급 말라”고 소리쳤다. 그날 밤 레이건은 “그는 정말 호전적이었고 젠장, 나도 단단히 버텼다”고 일기에 썼다. 마지막 날인 11월 21일 미·소 정상은 ‘핵전쟁 반대’라는 원론적인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제네바에서 단 하나의 핵탄두도 제거되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실패한 협상’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처음 만난 제네바 회담은 후대에 냉전 종식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들은 1년 뒤 1986년 10월 11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핵무기 감축 담판을 벌였다. 두 정상은 이틀간의 회담에서 ‘양국 핵무기 전량 폐기’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역사적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결렬됐다.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백악관·국무부·국방부 관리들도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대통령의 꿈(고르바초프도 동의한 꿈)은 완벽한 망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4년 뒤 1991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서명하고, 마침내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백악관 출입 기자였던 데이비드 호프먼이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를 인터뷰하고, 방대한 비밀문서들을 토대로 쓴 800쪽 분량의 책 ‘데드 핸드’(Dead Hand)가 복원한 ‘팩트’들이다. 데드 핸드는 소련이 구축한 ‘자동 핵보복 시스템’ 명칭이다. 호프먼은 그들의 협상은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 합의의 단초가 됐다고 평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985년 겨울부터 1988년 봄까지 네 번 만났고 그 어떤 조약에도 서명하지 못했지만 냉전을 끝냈다. 두 사람은 훗날 “성급하지 않았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기의 회담을 통해 서로를 향한 한 발을 막 내디뎠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웃으며 돌아선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거울 것이다. “우리한테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김 위원장의 인식은 정확하다. 한반도 냉전의 유물인 비핵화 협상은 이제 시작됐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남·북·미 간 극도의 상호 불신을 극복하려는 적극적 신뢰 구축 노력이다. ‘공포의 균형’은 전쟁을 억누를 뿐이지만 ‘이익의 균형’은 평화를 만들어 낸다. 하물며 미·소 정상은 서로의 ‘데드 핸드’로 악수했지만 역사적 전환점을 이끌어 냈다.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평화가 시작된 해, 김기림의 평화주의를 생각한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평화가 시작된 해, 김기림의 평화주의를 생각한다/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필자가 김기림이라는 시인을 알게 된 것은 10여년 전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도호쿠대학에 재직하던 무렵이다. 문학에 문외한인 관계로 겨우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던 그가 제국대학 시절의 도호쿠대학 영문학과를 다녔다는 것을 알고 살짝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면서 그가 당대 지식인들 가운데 보기 드문 ‘평화주의자’임을 알고 반가웠다. 김기림은 190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보성고보, 도쿄의 니혼대학 등에서 유학하고 조선일보 기자가 됐다가 도호쿠대학에서 영문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스물여덟이던 1936년이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에서 국가총동원법이 성립하던 시기를 센다이에서 보내고 1939년 서른하나의 나이로 돌아왔다. 그는 센다이에서 ‘모든 신념을 차례차례로 다 잃어버린 생활’을 지옥처럼 보내고(신념 있는 생활, 1939.1.),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왔다(바다와 나비, 1939. 4). 국어 교과서에 실린 김기림의 대표작 ‘바다와 나비’는 센다이 생활을 마감할 무렵 쓴 시다. 센다이에서 김기림은 모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하면서 조선 모더니즘의 시간적 공간적 위치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총동원 체제가 등장하고, 이에 대응하듯 조선에서 민족말살 정책이 실시되던 때, 김기림이 다녔던 도호쿠제국대학은 가까스로 리버럴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쿄제대나 교토제대가 메이지 일본의 국가 관료 양성소로 출발해서 관학의 분위기가 강했던 데 비해 같은 제국대학이면서도 도호쿠제대는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해 연구의 자유가 비교적 존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 사상가 카를 뢰비트가 1936년부터 1941년까지 나치스를 피해 도호쿠대학에 재직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김기림의 도호쿠제대 선택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1922년 12월 일본을 방문해 순회 강연 중이던 아인슈타인이 센다이를 방문했다. 당시 도호쿠제대에는 이론물리학자 이시하라 아쓰시(石原純)가 있었다. 이시하라는 상대성 이론 연구의 1인자였다. 근대 과학에 관심이 깊었던 김기림이 도호쿠제대를 선택한 데엔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기림이 평화주의자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해방 공간에서 두드러졌다. 좌의 급진성도 우의 고루함도 김기림에겐 근대성의 결여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김기림은 좌와 우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근대’와 ‘과학’과 ‘문화’를 선택했다. 이들은 모두 국경과 이념을 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평화주의가 가장 잘 밴 글이 ‘꽃에 부쳐서’이다. “꽃은 아무가 보아도 좋다. 그러기에 꽃에는 국경이 없다. 풍토를 따라 키의 장단과 빛의 짙고 연함이 다소 갈리나 이 나라 모란꽃이 저 나라 모란꽃에 적의를 품거나 서로 모함하는 일은 없다.”(1949. 4. ‘꽃에 부쳐서’) 그러나 좌우가 극한 대립을 하는 시대에 적의를 거두어들이는 ‘평화’는 패배였다. ‘평화’로 앞서간 김기림은 좌에서도 우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결국 그는 조국의 남에서도 북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사라졌고, 다시 발견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1988년 해금된 뒤 그의 시가 읽히기 시작했지만, ‘평화’를 염원한 그의 사상은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것 같다. 그를 평화주의자로 재조명해 센다이의 김기림을 기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오야기 유코(?柳優子)와 준이치(純一) 부부, 그리고 그들과 함께 김기림의 작품들을 강독했던 일본의 시민들이다. 필자가 도호쿠대학에 재직할 때부터 친분이 있었던 아오야기 유코가 김기림의 시와 평론 등을 번역하고, 거기에 김기림 연구 노트를 붙여 ‘조선 문학의 지성, 김기림’(朝鮮文?の知性, 金起林, 2009)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는 것을 듣고 반갑게 생각했던 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책을 두른 띠에는 “한국전쟁 와중에 사라진 김기림. 평화를 향한 염원이 그의 작품과 함께 일본에서 처음 되살아난다”고 씌어 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종식하는 여정이 시작된 올해 센다이에서 김기림을 기리는 일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한·일의 시민과 남북의 문인이 함께한다면 동아시아의 작은 평화를 여기에서 이룰 수 있다.
  • [서울광장] 아스팔트 틈새에 핀 민들레꽃처럼/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스팔트 틈새에 핀 민들레꽃처럼/임창용 논설위원

    집 앞 산책로에 때늦은 민들레꽃 한 송이가 아스팔트를 뚫고 얼굴을 내밀었다. 생명 잉태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좁고 메마른 곳. 틈새 양쪽은 검고 단단한 세상이다. ‘그래서 이렇게 늦었구나.’ 생각할수록 대견하다. 꽃은 기억할 것이다. 작년 어느 날 씨앗이었을 적에 하필 딱딱하고 비좁은 아스팔트 틈새로 떨어질 때의 아득했던 순간을. 하지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캄캄한 틈에 먼지가 쌓이고, 빗물이 스며들어 자신에게 개화의 영광을 안겨 주리라는 것을.그랬다. 작년 가을만 해도 한반도의 해빙 가능성은 아스팔트 틈새 깊숙이 박힌 민들레 홀씨 신세만큼이나 아득해 보였다. 이는 작년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이미 예고됐다. 그는 후보 시절 북한 핵 도발에 대해 여러 차례 독한 경고를 날렸고, 초강경 대응을 공언했다. 취임 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미국의 위력 시위가 반복되면서 양측은 한 치 물러섬 없는 벼랑끝 대치를 이어 갔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북한 군사시설과 지도부를 겨냥한 ‘코피작전’과 ‘참수작전’이란 단어가 거의 매일 언론을 장식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리틀(꼬마) 로켓맨’으로 조롱했고, 김정은은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로 맞받아쳤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젊은 혈기의 김정은과 외교 경험이 전혀 없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가 제2의 한국전쟁을 촉발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한반도를 짓눌렀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사람은 어제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맞바꾸는, 냉전체제 종식을 약속하는 세계사적인 빅딜을 이끌어 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에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촉구한 뒤부터 어제 북·미 정상의 만남까지 전개된 여정은 마치 우주의 ‘웜홀’을 통과하는 듯했다. 멀리 떨어진 두 우주 공간을 잇는 지름길이라는 웜홀 말이다. 한국전쟁 이후 65년간 북·미 관계는 지구상에서 가장 멀고 험했다. 미국은 똑같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렀지만, 중국과 1991년에 국교를 맺었고, 베트남과는 종전 후 15년 만에 수교했다. 반면 북·미는 차디찬 냉전의 벽을 친 채 한 발짝도 다가서지 않았다. 남북 관계도 냉온탕을 거듭했을 뿐 냉전의 프레임에 갇혀 있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문 대통령의 전방위적인 특사외교, 1·2차 남북 정상회담 등 불과 6개월 동안 숨가쁜 일정이 이어졌다. 단단하고 차가운 냉전의 벽을 뚫어 연결하려는 이런 노력을 웜홀이 아니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김정은 위원장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그는 어제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이들이 일종의 공상과학 영화로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불완전한 웜홀이다. 서로 지구상에서 가장 미워하던 두 정상이 이제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을 뿐이다. 이들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합작하려면 누군가는 아직 차갑고 거친 냉전의 벽 틈바구니에서 불완전한 웜홀을 완성시켜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문 대통령의 몫이었다. 문 대통령은 물과 기름과도 같은 북·미를 잇는 웜홀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보여 준 인내와 절제는 놀라웠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북·미 정상의 험악한 말폭탄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일방 취소,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트윗 등 뒤통수를 맞은 게 한두 번인가. 한데도 문 대통령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 통보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며 양측을 다독였다. 북·미의 싱가포르 합의도 그래서 가능했다고 본다. 이런 위태로운 순간들은 앞으로도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더 큰 절제심을 발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70년 냉전의 벽 틈바구니에서 ‘평화의 민들레꽃’을 피우려면 불가피한 일이다. 먼지와 빗물이 오랜 시간 합작해 아스팔트를 뚫고 민들레꽃을 피웠듯이 말이다. sdrago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