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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106년 전통 접는 마세라티 ‘괴물전기차’로 돌아오나

    106년 전통 접는 마세라티 ‘괴물전기차’로 돌아오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강화에 전동화로 전환 가솔린·디젤 엔진을 수작업으로 조립한 고성능 자동차만 고집해 온 마세라티가 올해 처음으로 전동화 모델을 선보인다. 세계적인 친환경차 흐름에 발맞추면서 고성능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1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마세라티는 오는 5월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전동화 모델을 최초로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식 트위터에 ‘MMXX-모데나 2020년 5월’이라고 적힌 티저 이미지를 공개한 것이 그 증거다. 마세라티의 새 전략 혹은 신차를 의미하는 ‘MMXX’는 로마자로 2020년을 의미한다. 마세라티의 새 전기차는 기존 그란투리스모의 후속 제품으로 201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한 ‘알피에리’의 양산형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고압 배터리를 적용해 최고출력이 400~500마력, 최고 속력이 시속 300㎞에 달하는 ‘괴물 전기차’가 탄생할지 주목된다. 마세라티의 모네다 공장은 1914년 설립 이후 106년 동안 내연기관차만 생산해 왔다. 이런 점에서 마세라티의 전동화 전략은 ‘제2의 창업’으로까지 여겨진다. 마세라티가 100여년의 유산을 뒤로하고 전동화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년부터 유럽 내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의 종식은 자동차와 최후의 전쟁터·종말이라는 뜻의 ‘아마겟돈’의 합성어인 ‘카마겟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편 마세라티의 ‘이노베이션랩’ 소속 1500여명의 엔지니어는 차세대 차량에 탑재될 새로운 시뮬레이터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트럼프, 이란 공격 대신 ‘경제제재’ 선택…파국 막았다

    트럼프, 이란 공격 대신 ‘경제제재’ 선택…파국 막았다

    “이란과 새 합의 해야” 협상 의사 내비쳐“이란의 위대한 미래” 유화적 메시지도양국 명분 챙겨…출구전략 모색하는 듯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이란의 전날 이라크 내 미군 기지 공격과 관련해 즉각적인 대이란 강경 제재 방침을 밝히면서도 군사력 사용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핵 합의 추진 의사를 내비치면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함에 따라 미국과 이란의 충돌 위기가 급속히 진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 그랜드 포이어에서 한 대국민 연설에서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한 이란은 핵무기 보유는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떠한 미국인도 지난밤 이란 정권의 공격으로 인해 다치지 않은 데 대해 미국 국민은 매우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상자가 없었다. 우리의 모든 장병은 안전하며 단지 우리의 군 기지에서 최소한의 피해를 입었다”며 예방조치와 조기 경보 시스템 작동 등으로 인해 미국인과 이라크인이 생명을 잃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의 위대한 미군 병력은 어떠한 것에도 준비가 돼 있다”며 “이란은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관련된 모든 당사국과 전 세계를 위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 국가들은 정확히 말하면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이 일어난) 1979년부터 너무 오랫동안 중동과 그 너머에 대한 이란의 파괴적이고 불안정 행동을 참아왔다. 이러한 날들은 이제 끝났다”며 “이란은 가장 대표적인 테러지원국이었으며 그들의 핵무기 추구는 문명화된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일이 결코 일어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이란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또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와 관련해 “솔레이마니가 최근 미국 표적들에 대한 새로운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그를 끝냈다”며 “무자비한 테러리스트가 미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중단하기 위한 단호한 결정이었다”고 살해의 정당성을 거듭 역설했다. 그러면서 “솔레이마니 제거는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당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해선 안 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옵션들을 계속 평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즉각적으로 살인적인 경제 제재를 이란 정권에 대해 추가로 부과할 것”이라며 “이란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이들 강력한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란의 적대행위는 2013년 서명된 바보 같은 이란 핵 합의 이래 상당히 증가했다”며 “우리와 우리 동맹들을 겨냥해 지난밤 발사된 미사일들도 지난 행정부 시절 (이란 핵 합의로 인해) 가능해진 자금으로 지불된 것”이라면서 전임 오바마 행정부를 비난한 뒤 이란의 테러행위들을 나열했다.그는 이란 핵 합의가 곧 만료되면 이란에 핵 개발을 위한 빠른 길을 터줄 것이라며 “이란은 핵 야욕을 버리고 테러리즘에 대한 지원을 종식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을 향해 “이들 나라는 이란 핵 합의의 잔재에서 도망쳐 나와 이 세계를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장소로 만들 이란과의 합의 체결을 위해 모두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이란이 번창하고 번영할 수 있는, 아직 손대지 않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합의를 체결해야 한다”며 이란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유화적 메시지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은 나의 행정부 하에서 2조 5000억 달러를 들여 완전하게 재건됐다. 미군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우리의 미사일은 크고 강력하며 정밀하고 치명적이며 빠르다. 많은 극초음속 미사일도 개발 중”이라고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다만 “우리가 위대한 군과 장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미국은 군사력 사용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인 힘이 최고의 억지“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ISIS(이슬람국가의 옛 약칭) 격퇴와 리더인 알바그다디 사살 등을 거론하며 ”ISIS의 파괴는 이란을 위해서도 좋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와 다른 공통의 우선 사항에 대해 협력해야 한다“며 이란의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이 미래, 그리고 위대한 미래를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행동 대신 경제제재를 택함에 따라 일촉측발의 충돌위기는 다소 진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시도 급상승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61.41 포인트(0.56%) 상승한 2만 8745.09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15.87포인트(0.49%) 오른 3253.05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60.66포인트(0.67%) 상승한 9129.24에 장을 마감했다. 나스닥은 장중 및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S&P 500 지수도 장중 고점을 다시 썼다. 확전 자제 분위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란 쪽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이란이 미군 기지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지만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수위를 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군기지 공격 후 트윗을 통해 이번 공격이 유엔 헌장에 따른 자위적 방어 조치라고 주장하면서 “솔레이마니 살해에 대한 이란의 대응이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긴장 고조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란은 솔레이마니 사망 후 국민 요구에 따라 미국에 보복했고, 미국은 이란 도발에도 불구하고 사상자 없이 자국민 보호와 방어에 성공해 양측 모두 명분을 챙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핵카드 꺼낸 이란, 시험대 오른 트럼프… 중동 넘어 글로벌 위기 번지나

    핵카드 꺼낸 이란, 시험대 오른 트럼프… 중동 넘어 글로벌 위기 번지나

    새해 벽두부터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2018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한 뒤 불안불안하던 중동 상황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의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드론을 이용한 표적 공격으로 사살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즉각 철저한 보복을 천명한 데 이어 이란 정부가 5일 사실상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미국과 유럽, 중동 국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겠다는 얘기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벌인 전임 미국 대통령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들 국가에서 발을 빼려 애써 온 트럼프 대통령. 지난해부터 시리아와 이라크 등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군을 증파하더니 급기야 이란이라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전면전으로 확대하기에는 미국과 이란 모두 부담이 너무 커 국지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공격과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최악의 상황도 완전 배제할 수 없다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미국의 최대압박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임박한 공격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대외정책의 전환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고조되는 이란 위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 조짐을 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폼페이오 “이라크 국민은 미군 주둔 지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자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이 미국인과 미국의 자산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로 정해 놓았고 최첨단 무기들을 동원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52라는 숫자는 1977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444일간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 수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이란 최고지도자의 군사 수석보좌관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을 상대로 군사 대응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군사시설 등 35곳과 이스라엘 텔아비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문화유산도 공격 목표에 포함돼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내용을 문제 삼으며 이는 유엔 결의에 위배된다고 경고까지 하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계속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갈라졌던 이란의 민심은 이번 공격을 계기로 반미로 모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라크 의회는 5일 미군은 물론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미군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군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요인을 일방적으로 표적 공격해 살해한 것은 주권 침해라며 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국민들이 이슬람국가(IS) 잔당 격퇴를 위해 미군 주둔을 지지한다며 이라크 의회의 결의를 일축했다. 이라크 의회 결의는 구속력이 없고, 미국 정부가 철수 요구를 받아들일지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란 위기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고 이라크 내 반미 감정이 높아져 미군 철수 요구가 거세지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지난 4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이라크 정부가 (이란의 압박에 떠밀려) 5000명 규모의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이라크에서 이란의 영향력과 이란이 지원하는 테러단체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솔레이마니 제거로 불안정한 중동에 중대 변화 미국은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이전에도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과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추적해 제거했다. 빈라덴이나 알 바그다디는 테러단체의 지도자였지만, 솔레이마니는 이란이라는 국가의 군 지도자라는 점에서 의미와 파장이 다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에 위협이 되는 솔레이마니를 제거하고 싶어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분석한다. 즉 이란의 군 실세를 제거할 경우 자칫 이란과의 전면전으로 불똥이 튈 위험이 크다. 그럴 경우 유럽과 중동의 동맹들로부터 소외될 수 있고 중동에서의 입지도 악화시킬 수 있어 선택지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온 트럼프 대통령이 ‘방어적 공격’이라고 주장하며 이란에 제한적 군사행동을 승인한 것은 의외다. 상원의 탄핵심판과 재선 레이스를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으로 보이는 이유다. 하스 회장은 “이번에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직접 제거한 것은 2003년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이래 불안정한 중동 정세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표적 공격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한 후폭풍이 중동 및 세계정세에 미칠 파장 때문이다. 국지전에 그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지만 장담하기는 어렵다. 분쟁을 촉발하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거나 종식시키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외교안보팀이 후폭풍을 과소평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경험 부족으로 두세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결정해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댕겼다는 비판이 골자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줌으로써 이란의 도발을 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이 중에는 미 중부사령관과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5일 대통령들이 군사적 충돌 위기에 처하면 노련한 참모들과 믿을 만한 정보 자산, 든든한 동맹들, 국민의 신뢰가 중요한데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4가지가 모두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외교안보팀의 잦은 교체로 폼페이오 장관을 제외하고는 대외정책을 다뤄 본 전문가가 거의 없다. 러시아 스캔들을 비롯해 취임 초부터 자국 정보기관을 대놓고 불신하며 갈등을 빚어 왔다. 정보기관의 분석보다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 주요 결정을 내려왔다. 또 동맹 관계를 돈으로 평가하는 트럼프식 접근은 우방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원인이 됐다. 이번 표적 공격 계획도 영국과 프랑스 등에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고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국무장관이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다. ●유럽·중동동맹국 중재… 美와 유대 쉽지 않아 이란 사태가 중동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럽과 중동의 동맹국들이 일단은 외교적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동맹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강력한 유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취임 이후 최대의 외교적 시험대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 이란 위기를 상원의 탄핵심판 정국을 돌파하고 재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다.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둔 이 시점에 왜 솔레이마니를 표적 공격했는지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상원의 탄핵심판에 쏠린 관심을 이란으로 돌리고, 강한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함으로써 이를 몇 안 되는 외교적 성과로 포장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란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한 대로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보다 자신의 직관을 믿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의 파장은 미국과 이란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위기가 중동 위기로, 글로벌 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할 능력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있을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이란 덫에 걸린 美… 좁아진 중동 입지 드러냈다

    이란 덫에 걸린 美… 좁아진 중동 입지 드러냈다

    이라크 내 이란 영향력 막강... 美보다 우월보안군, 친이란 시위대 ‘그린존’ 통과 묵인이란, 美 공습 유도해 이라크 분노 폭발 계책 지난 31일(현지시간) 이라크 바드다드에 있는 미 대사관이 친이란 시위대 습격을 받은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인명과 재산 피해는 전적으로 이란 책임”이라면서 “매우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이건 경고가 아닌 위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각 외신은 트럼프의 어조가 강할수록 중동에서 미국 입지가 쪼그라들었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라고 분석을 쏟아냈다. 가디언은 이날 대사관 습격을 “그 동안 2억 달러(약 2312억원)를 쓰고도 이라크에서 약해진 미국 모습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이라크 최고 지도자들이 우리 요청에 신속히 대응했다”며 감사를 표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CNN 등에 따르면 시위대는 이라크 보안군의 묵인 덕분에 미군 안전구역인 ‘그린존’을 무사 통과해 대사관 외벽을 부술 수 있었다. 보안군은 시위대 습격 초기 대사관 벽에 화염병이 날아들 때도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후에야 최루탄으로 대응하던 미국 경비대와 성난 군중을 분리시켰다.이라크에선 2003년 후세인 축출 뒤 급속하게 이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최근 들불처럼 일어난 시민 투쟁은 이라크가 이란 같은 시아파 국가로 변모하는 데 대한 저항이며, 보안군과 함께 이들을 가장 가혹하게 진압하는 쪽은 이날 대사관 습격을 조직한 친이란 카타이브 헤즈볼라 민병대였다. 이미 이라크 정치권에 친미 세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난 30일 미군 F15 전투기가 카타이브 헤즈볼라 근거지 다섯 군데에 공습을 가했을 때도 이라크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미국은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최대 압박’ 작전에 잃을 게 없어진 이란은 오히려 이라크, 예맨 등 다른 지역에서 대리군을 통해 미국과 동맹에 군사행동을 하고 있다. 트럼프가 중동 전쟁 종식을 외치며 불개입을 선언했는데 동맹 때문에 중동에서 영향력을 잃어선 안 되며, 최근엔 카타이브의 공격으로 미국인 인명피해까지 났다. 결국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이날 대사관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추가 병력 총 4000명을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미군 철수를 줄곧 외치면서도 사우디에 이어 이라크까지 미군을 되레 늘리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반면 이라크-시리아-레바논에 영향력을 심기 위해 오랜 시간 막대한 투자를 한 이란은 이번 대사관 폭동을 통해 미국과 이라크 사이를 이간질하는 계책에 성공했다. AP통신이 “이란이 친 덫에 미국이 걸렸다”고 평가한 이유다. 앞서 카타이브 민병대가 미국 자산을 계속 공격하게 해 이라크 정부의 빈약한 영토 장악력을 보여주고 미국이 강경대응하게 만들었다. 미국 대응은 이라크 정부와 대중의 분노를 끌어올렸다. 이라크 내 친이란계 의원들이 미군 철수를 주장하기가 더 좋아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트럼프 “김정은 약속 지킬 것” 폼페이오 “약속 어기면 실망”

    트럼프 “김정은 약속 지킬 것” 폼페이오 “약속 어기면 실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좋은 관계이며 김 위원장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 위원장이 지난 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노동당의 최상위급 의사결정기구인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란 위협과 함께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단 공약에 더는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며 ‘핵실험·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종식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말을 보내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풀 기자단을 만나 “우리는 비핵화에 대한 계약서에 서명했다”며 비핵화가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내용의 첫 문장이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난 그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김 위원장이 예고했던 ‘선물’이 꽃병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북한이 ‘선물’을 공언했던 성탄절 전날에 취재진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북한의 선물을 “아주 성공적으로 처리할 것”이라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아마도 좋은 선물일 수도 있다. 미사일 시험발사가 아니라 예쁜 꽃병 같은 선물일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다른 경로를 택하길 바란다”며 ‘옳은 결정’을 촉구했다. 특히 김 위원장의 핵실험·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약속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약속에 대한 대가였다면서 미국이 약속을 지킨 만큼 김 위원장도 약속을 파기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를 통해 “그 보도를 봤다. 난 그가 그 방향으로 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북한과의 실제 전쟁 위협이 있었고 미국 국민의 진짜 우려가 있었다”며 “그(트럼프 대통령)는 하나의 방침을 택했다. 우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김 위원장이 옳은 결정을 하길, 그리고 그가 충돌과 전쟁 대신 평화와 번영을 선택하길 희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미국 CBS방송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전략무기 목격’과 ‘핵실험·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모라토리엄 종식’에 대한 발표와 관련해 북미 관계의 미래에 대해 지금보다 더 걱정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난 이 행정부가 출범했을 때 더 우려했다”며 “우리는 DPRK(북한)과의 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점에 놓여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경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접근법을 취했다. 우리는 북한이 재고하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그 경로를 계속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전쟁 우려가 고조됐던 트럼프 취임 초기의 우려가 지금보다 컸다고 언급한 것은 북한을 직접 자극할 만한 맞대응은 자제하며 여전히 북한이 ‘재고’하면 외교적 해결의 길은 열려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 김 위원장이 약속을 어기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면서도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4월 전원회의에서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를 선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관련 언급은 김 위원장이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문제와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모라토리엄 문제를 직접 확약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약속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차원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日 최대 야쿠자 조직의 잔인한 전쟁...‘피의 보복전’에 시민 불안

    日 최대 야쿠자 조직의 잔인한 전쟁...‘피의 보복전’에 시민 불안

    한동안 잠잠했던 일본의 법정 지정폭력단, 속칭 ‘야쿠자’의 세계에 피의 보복전이 격화돼 일본 치안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자동화기를 난사해 적대세력 간부를 사살하고, 상대편 본거지에 쳐들어가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나는 등 범죄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잔인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일본 경찰은 문제의 폭력단에 대해 조직원 5명만 한자리에 모여도 바로 체포가 가능한 ‘특정항쟁지정폭력단’으로 규정해 단속하기로 했지만, 이들의 전쟁이 쉽게 종식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극한대립을 벌이고 있는 두 조직은 일본 최대의 지정폭력단 ‘야마구치 구미’와 4년 전 여기에서 떨어져 나간 ‘고베 야마구치 구미’. 야쿠자 명칭 뒤의 ‘구미’(組)는 한국으로 치면 ‘파’(派)에 해당한다. 27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11월 27일 저녁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의 번화가 술집 앞에서 고베야마구치 간부 후루카와 게이이치(59)가 손님을 가장한 전 야마구치 조직원 아사히나 히사노리(52)에게 사살당했다. 아사히나는 M16 자동소총 계열 화기를 들고 와 실탄을 28발이나 난사했다. 그는 고베야마구치의 교토시 하부조직도 공격하려고 준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같은달 18일 아침에도 야마구치 조직원 2명이 고베야마구치의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지부를 습격, 안에 있던 간부(50)를 흉기로 난자했다. 그 이튿날에도 역시 야마구치 조직원이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사는 고베야마구치 간부(58)의 집을 자동차로 들이받는 공격을 가했다. 이런 식으로 지난 11월 한달 동안에만 고베야마구치 전체 간부 5명 중 3명이 야마구치로부터 습격을 당했다. 고베야마구치가 야마구치로부터 떨어져 나와 조직을 새로 결성한 것은 2015년 8월. 당시 야마구치 내 최대 파벌인 ‘고도카이’가 전체 조직의 넘버1과 넘버2를 독식한 데 반발, 경쟁파벌이었던 ‘야마켄구미’ 등이 이탈해 고베야마구치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여기에는 주부 지역(고도카이)과 간사이 지역(야마켄구미) 사이의 지역감정도 큰 요인이 됐다. 이후 양측은 원수 사이가 됐다. 현재 야마구치의 조직원은 약 4400명, 고베야마구치는 약 170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양측의 분열 이후 지난 4년여 동안 상대에 테러나 린치를 가한 사건은 모두 121건에 달했고, 그 과정에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양측의 대립투쟁이 다시 점화된 결정적 계기는 야마구치의 2인자인 다카야마 기요시(72)의 조직 복귀. 공갈 혐의로 5년을 복역한 뒤 지난 10월 출소했다. 다카야마는 두목 시노다 겐이치(77) 체제에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조직을 장악, 결과적으로 야마구치의 분열을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일본 경찰 관계자는 “다카야마의 출소에 맞춰 그에게 잘 보이려는 야마구치내 하부 조직들의 충성경쟁이 치열해졌고 이것이 적대조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고 아사히에 설명했다. 양측의 전쟁이 재연될 징후는 다카야마의 출소를 6개월쯤 앞두고 본격화됐다. 지난 4월 고베야마구치 간부가 야마구치 조직원에 의해 테러를 당했고, 8월에는 역으로 야마구치 측이 보복을 당했다. 이어 10월에는 다시 고베야마구치 소속 2명이 야마구치 조직원에 의해 사살됐다. 이러는 과정에서 목숨 부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자 일부에서는 조직을 해체하고 야쿠자계를 떠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오사카시에 있는 한 고베야마구치 산하 조직은 지난 13일 경찰에 지정폭력단 해산 신고서를 냈다. 이에 야마구치 본부는 산하 조직들에 “해산하고 은퇴하는 고베야마구치 간부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대립이 격화되자 일본 경찰은 두 조직을 내년 1월 7일부터 ‘특정항쟁지정폭력단’으로 지정해 관리하기로 했다. 이 조치는 폭력단들의 투쟁으로 일반시민들이 희생될 우려가 있을 때 취하는 것으로 ‘이동의 자유’ 등 기본인권의 제한도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해당 조직원은 5명 이상 모여 있는 것만으로 바로 경찰에 체포될 수 있다. 적대 조직의 사무소나 관계자의 집 근처에 접근하는 것도 일절 금지된다. 경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간부들이 연쇄테러를 당한 고베야마구치가 피의 보복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번 시작된 복수전은 쉽게 중단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아사히는 “복수를 하면 사법처리를 받지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구심력을 잃게 된다”는 고베야마구치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핵 배치 美공군기지 빼고 싶나” 에르도안 앞 작아지는 트럼프

    “핵 배치 美공군기지 빼고 싶나” 에르도안 앞 작아지는 트럼프

    미국의 군사동맹 가운데 가장 ‘눈엣가시’ 같은 나라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5) 대통령이 이끄는 터키일 것이다. 터키의 최근 외교·안보 행보는 서방의 동맹이라 하기엔 너무 적대적이다. 그렇다고 적으로 돌리기엔 부담스러운 국가다. 터키와 서방,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애증이 교차하는 ‘프레너미’(Frenemy·적인 동시에 아군인 상대)로 압축된다. 존스홉킨스대 터키 전문가 리즐 힌츠는 “터키에 전략적 파트너 관계라고 부를 만한 것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며 “동맹은 터키가 하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르도안이 초강대국 미국에 큰소리치는 배경은 뭘까.흑해와 지중해 사이에 자리한 터키는 지정학적 강국이다. 나토나 미국의 세계 전략에 꼭 필요한 입지 조건이 에르도안의 자신감으로 꼽힌다. 게다가 지난해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7번 만났고, 18번 통화했다. 그리고 지난 7월에 첨단 기술 기밀 유출 우려로 나토와 미국이 반대하는 ‘러시아판 사드’인 S400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했다. 이에 미국 의회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터키에 당초 계획했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판매를 금지하는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다. 발끈한 터키는 이날 “F35 국제 개발 프로그램의 참여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했음에도 우리를 부당하게 차단하고 있다”며 “이는 터키의 주권적 결정을 무시하고 적대적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키는 F35 대신 러시아 수호이(SU)35 전투기 구매 등의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맞불을 피웠다. 나아가 에르도안은 자국에 있는 미 공군기지 사용을 막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지난 15일 “제재 위협이 실제로 이행되면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와 퀴레지크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협박했다. 터키 남부에 위치한 인지를리크는 미군의 중동작전 전진기지이다. 특히 이곳에 미군 전술핵 50여기가 배치된 사실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한 바 있다. 미군은 기지 접근이 차단되면 핵무기가 에르도안의 손에 넘어갈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불안해한다. 에르도안의 이런 협박에 뉴욕타임스(NYT)는 “전략 핵무기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표현했다. 앞서 2016년 7월 터키 쿠데타 발생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핵무기 이전을 검토했으나, 핵무기 철수가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고 에르도안이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NYT가 보도했다. 에르도안이 인지를리크 기지 사용을 볼모로 미국을 협박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군은 실제로 인지를리크와 퀴레지크 기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루마니아와 카타르에 대안 기지를 마련한 상태다. 터키에 더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도다. 루마니아와 카타르는 터키의 완전한 대체지는 아니지만 아쉬운 대로 러시아를 경계하고, 중동에 신속히 접근할 대안을 마련해 둔 셈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대외정책연구소의 터키 전문가 애런 슈타인은 “터키가 자국 기지의 가치를 떨어뜨린 것”이라며 “현재 미국과 터키의 관계는 천천히 다가오는 차량 충돌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간파한 에르도안은 미군이 터키에서 철수하면 핵무장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그는 “일부 국가는 핵탄두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는 가지지 말라고 한다. 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러시아는 터키에 우라늄 농축과 연구용 원자로 4기 건설을 돕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민감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결정적인 기술을 터키에 넘겨줄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이 인지를리크 기지에 배치한 핵탄두 미사일 철수를 소련이 조건으로 내걸었던 적이 있다. 과거 몇 차례 전쟁을 벌였던 두 나라는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힌츠 교수는 “터키가 나토와 미국을 신뢰하지 않듯 러시아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에르도안의 핵무기 무장 발언은 반미 정서를 정치에 이용하는 수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비확산 연구를 위한 제임스 마틴 센터’의 터키 전문가 제시카 바넘은 “터키가 핵무장을 할 경우 제재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따를 것이고, 이는 유권자의 표가 달아나는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미국과 터키는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터키는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며 연합군과 보조를 같이했다. 한국전쟁 참전에서 볼 수 있듯 공산주의 확산과 소련의 중동 진출을 막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공동의 적이 사라졌다.특히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쿠르드족 처리에 대해 서방과 터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미국과 나토는 수년 동안 쿠르드족이 시리아 내전 이후 발생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는 전쟁을 함께 치렀다. 반면 터키는 쿠르드족을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 단체로 보고 있다. 실제로 1977년 터키 산악지대에 사는 쿠르드족이 ‘쿠르디스탄’이라는 나라를 세우며 독립을 추구하다 터키군에 의해 유혈 진압됐다. 터키와 쿠르드족 간에는 크고 작은 유혈 충돌이 잇따랐다. 미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8125만여명의 터키 인구 가운데 쿠르드족은 약 20%로 추정된다. 세인트로렌스대 아인스타트 교수는 “터키 입장에서 무장 쿠르드 세력은 실존적 문제”라고 말했다. IS와 전쟁을 벌이던 미국은 전쟁이 끝나자 쿠르드 민병대(YPG)가 시리아 북부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줬다. 터키는 이 YPG가 자국 테러 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이념적으로 밀접하다며 연대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에르도안은 올 1월 “테러 무장세력이 태어나기 전에 싹을 자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0월 트럼프가 시리아에 주둔하는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히자마자 에르도안이 시리아 북부를 ‘침공’했다. 터키는 시리아와 맞닿은 국경선 440㎞를 따라 폭 30㎞의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안전지대란 쿠르드족을 모두 쫓아냈다는 의미이다. 이곳에 내전을 피해 터키에 몰려든 난민을 거주시킬 계획으로 알려졌다. 에르도안은 지난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나토 창설 70주년 행사에서 YPG 테러단체 인정 요구와 함께 난민 정착촌 건설비용을 내라고 요구했다. 터키는 시리아 난민 350만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돈을 내지 않으면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수문을 열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시리아 일부를 점령한 에르도안이 리비아 등 중동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오스만제국’의 계승자가 되겠다는 야욕과 관련이 깊다. 총리와 대통령으로서 16년째 권좌를 지키는 에르도안은 이슬람 국가를 묶은 공동체인 ‘움마’를 만든 뒤 자신이 주권자가 되겠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런 종류의 발언도 많았고, 학교 교육에서 종교 교육도 늘어났다. 에르도안이 재미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78)을 2016년 쿠데타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며 송환을 요구하는 것도 그런 배경으로 보인다. 미국 네이벌워대학 터키 전문가 버럭 카더르칸은 “에르도안이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가 세운 세속주의를 버리고 종교적으로 기울고 있다”고 진단했다. 쿠데타 이후 군부와 관료에 남았던 친서방적 인사들을 모조리 숙청해 절대권력 기반을 다졌다. 에르도안의 터키와 미국 및 서방의 관계는 나빠질까. 스웨덴 스톡홀름대 터키 전문가 제니 화이트는 “사이는 나쁘지만 협력하고 지내는 나라가 많다”며 “미국과 터키는 서로 적이 아니기 때문에 긴밀히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미중, “1단계 합의”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는?

    미중, “1단계 합의”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유는?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지 21개월 만에 양측이 1단계 무역합의안 타결에 성공했다. 미국이 대중 추가 관세를 예고한 15일(현지시간)을 사흘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하지만 두 나라에게 이번 합의는 휴전에 불과할 뿐 종전은 아니다. 궁극적인 타결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내년에 500억 달러(약 58조 7000억원)어치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기로 합의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무역전쟁 전 최대였던 2013년 290억 달러(약 34조원)보다도 두 배 가까운 농산물을 사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은 이달 15일로 예정된 16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15% 관세 부과를 보류하고 이미 시행 중인 고율관세도 절반가량 완화하기로 했다. 미국은 현재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1110억 달러 규모의 제품에 15% 관세를 매기고 있다. 1단계 합의에 따라 이들 관세는 각각 12.5%와 7.5%로 낮아진다.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이 이르면 13일 공식 발표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다만 1단계 합의가 이뤄져도 미중 무역전쟁의 종전까지는 난관이 많다고 미 다수매체는 분석했다. 며칠 전 미국이 중국 측에 요구한 조건에는 중국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액을 분기별로 평가해 당초 합의한 규모보다 10% 이상 모자라면 관세 부과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스냅백’(약속한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면 특혜를 일사적으로 철회) 조항이 들어 있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앞으로 3개월마다 미중 간 갈등이 재발할 여지도 있다고 봐야 한다. 서울의 한 소식통은 “중국에게 농산물 구매액 ‘500억 달러’ 자체는 큰 부담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에 대해 해마다 농산물 구매 요구액을 큰 폭으로 늘려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는 미중간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1단계 합의안은 민감한 쟁점이 대부분 빠진 ‘미니딜’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미 정부는 기술이전 강요 금지와 지식재산권 보호, 중국의 기업 보조금 지급 금지 등에 대해 2~3단계 협상에서 다루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1단계 합의 뒤 협상이 제대로 진척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바람에 중국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동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WSJ은 “7.5%와 12.5%의 관세는 수출·수입업자들이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다.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핵심 정책을 수정하도록 강요하기에 충분치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 조쉬 로긴은 중국의 산업스파이 행위와 기술이전 강요 등 핵심 현안이 2단계 협상에서 다뤄질 것이라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 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단계 합의는 무역전쟁 종식의 첫걸음이 되기보다는 미국 차기 대선과 중국 경제의 둔화, 홍콩 시위 등 당면한 문제를 앞두고 양측 모두가 당분간 시간을 버는 ‘휴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합의문에 서명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로는 장관급에서 서명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결을 뒷받침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시진핑 中 주석이 깨운 ‘잠자는 용’/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시진핑 中 주석이 깨운 ‘잠자는 용’/이기철 국제부 선임기자

    경제적·군사적 자신감이 충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시대’가 왔다고 믿는다. 시 주석이나 중국인뿐 아니라 그렇게 믿는 세계인도 많다. 특히 그가 ‘잠자는 용’을 깨웠다고 한다. 깨어난 용이 톈안먼 사태 이후 30년간 맹렬히 서구를 따라 성장한 중국일까, 아니면 냉전 종식 이후 유일 강국으로서 안주하다 중국 부상에 놀란 미국일까. 깨어난 용이 서로 자국이라며 직접 부딪치는 곳이 남중국해다. 미군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남중국해 주변 해역을 통항하면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펴고 있다. 문제의 남중국 해역에 대해 중국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지만 베트남과 필리핀 등은 일부 해역이 자국 영토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은 육지나 자연적인 섬에서 12해리 밖의 바다를 공해로 보고 자유통항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미국에 맞서 중국은 일부 산호초에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든 인공 섬에 활주로를 만들고 미사일과 전투기를 배치하는 등 무력을 증강하고 있다. 무역전쟁도 미중 헤게모니 투쟁의 연장이다. 관세 부과에 보복관세로 맞서는 악순환이 18개월간 계속됐다. 강한 지도자를 추구하는 시 주석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무역협상 1단계 서명이 ‘항복 문서’에 사인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신경전을 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이 비우는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4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주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서명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의에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8년 임기 동안 재선운동 기간인 2013년 한 번 빠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행사 중간에 귀국하고서 2년 연속 ‘노쇼’였다. 미국은 세계무대에서 발을 뺄 경우 발생할 후폭풍의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평범한 미국인들도 중국을 경제적 착취자이자 군사적 위협이며 지정학적 라이벌로 본다고 미 싱크탱크들이 전하고 있다. 보통의 미국인이 중국을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시 주석은 전략적 실수를 저질렀다. 중국 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이 밝힌 외교 노선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팽개치고 강경한 대외 정책을 취한 결과이다. 중국이 근육 자랑 대신 지도자 한 세대 기간 정도 더 힘을 비축했다면 미국은 중국의 파워를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경계모드다. 특히 미 조야에선 미국이 국제 주도권을 유지하고자 논의가 한창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나 스티븐 해들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전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나 적용될 충고로 미국 우선주의와 같은 국수주의,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계약 존중의 전통 회귀를 강조한다.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도 급하다. 트럼프 정부가 동맹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한 대가로 한꺼번에 4~5배나 되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미군을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가 아니라 용병으로 전락시키는 처사로, 미군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일이다. 우방을 모욕하고 포퓰리즘에 취한 지도자는 번영의 토대를 허무는 선동가와 다름없다. chuli@seoul.co.kr
  • [In&Out] 시대변화와 정치의 세대교체/류홍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In&Out] 시대변화와 정치의 세대교체/류홍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반공·산업화 세대와 386 반독재투쟁 세대는 각자의 신념에서 비롯된 독선과 아집, 배타성이 공통점이다. 그들의 배타성이 민주적 정치·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세대교체와 새로운 시대의 준비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독재와 가난 그리고 전쟁위협을 극복했으나, 여전히 냉전 논리에 머물러 있는 세대 간 싸움으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반공·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는 여전히 ‘자유’ 대 ‘사회’,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시대적 이데올로기 싸움을 이어 오고 있다. 국제적으로 냉전은 종식되고 국내정치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승리를 위한 싸움이라기보다 기득권을 지속하기 위한 상호의존적 관계로 보이고, 그들에게 민주주의와 사회변화에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면 무리일까. 독립운동 세대는 미 군정기 3년간 순식간에 지워졌고,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기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부당성을 감추기 위해 반공과 경제살리기를 최고의 가치로 포장했다. 그것으로 국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과거를 정당화하며 지금도 자유를 말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특권층의 자유다. 386세대는 자신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폐기되었으나 찰나의 희생의 대가를 극대화하면서 그 유통기한을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 선배들과 후배들을 배제시키고, 진보의 가치들과 실천을 망각한 채 집단적 기득권 유지를 최우선하는 진영논리적 행태가 그들이 타도하려 했던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의 정치적 태도에 닮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사회변화 정도는 크게 정치·경제·문화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일 때 구별된다. 사회변화는 느리고 안정적일 수도 있고, 급격하고 역동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발전 또는 퇴보의 의미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75년간 국가 전반에 있어서 급격한 사회변화를 수차례 겪었지만, 독립과 4·19, 1987년 민주화와 2017년 탄핵은 발전이었고 한국전쟁과 5·16, 유신체제와 12·12사태는 퇴보이다. 반공 세대와 반독재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2019년 한국정당정치의 교착 상태는 새로운 발전을 막아서고 있다. 머지않아 다가올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생산의 개념과 방식의 변화, 노동력 투입의 최소화로 사회의 기본 질서가 급격하게 변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소모적 이념논쟁을 하는 세대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세대로의 교체가 절실하다. 시대가 변화되면 변화를 이끄는 세대로의 교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정적인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신구의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한국 정치의 마지막 세대교체는 2000년에 이루어졌다. 2000년 체제 이후 20년이 다 되도록 새로운 세대교체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 핵심적 원인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의 배타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 北매체 “美 분담금 요구는 날강도 심보”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12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 미국의 요구를 ‘날강도적 심보’라고 비난하는 한편 판문점선언 등에 따라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에서 미국은 올해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약 5조 8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민족끼리는 ‘빛 좋은 개살구-동맹의 실체’라는 논평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유지비 외 가족들에 대한 지원비, 해외에 배치된 전략자산들의 유지 및 전개 비용 등 47억~50억 달러 규모의 방위비를 요구했다고 한다”면서 “실로 날강도적 심보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채택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 군사분야합의서는 북남 사이에 무력에 의한 동족 상쟁을 종식시킬 것을 확약한 사실상 불가침 선언”이라며 “미국이 남조선에 침략 군대를 주둔시킬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고 했다. 또한 “남조선 집권 세력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강도적 요구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고, 보수패당은 미국 상전과 엇서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고아대고 있다”며 “민족적 수치를 자아내는 사대 매국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도 미국이 한미 동맹의 연합위기관리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에서 ‘미국의 유사시’까지 넓히자고 제안한 것을 비난하며 “장장 70년 해마다 천문학적 액수의 혈세를 수탈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남조선 청장년들을 해외 침략전쟁의 돌격대로 내몰려는 이런 파렴치한 강도배”라고 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다시 불붙은 홍콩 시위… 中샤오미·동인당 매장 불 탔다

    다시 불붙은 홍콩 시위… 中샤오미·동인당 매장 불 탔다

    중국계 은행에 화염병… 점포에 방화도 홍콩, 시위 촉발 살인 용의자 인도 통보 대만 “갑자기 태도 바꿔 정치 조작” 거부지난 6월 초 홍콩에서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된 뒤 20번째 주말 시위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35만여명이 참가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아다니며 도심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특히 중국 관련 기업이 시위대의 타깃이 됐다. 2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홍콩 시민들이 관광지인 침사추이와 몽콕, 오스틴 지역을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 진압과 최근 잇따른 ‘백색테러’(우익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보고 도심 곳곳에 놓인 중국계 은행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부수고 은행 지점에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는 또 중국 본토인 소유 기업으로 알려진 식품판매업체 베스트마트360과 잡화점 유니소 등의 점포도 공격했다. 중국 휴대전화 브랜드 샤오미와 중의약업체 동인당, 중국초상은행 점포에도 불을 질렀다. 이날 시민들이 격하게 반응한 것은 범민주 진영 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민간인권전선의 지미샴 대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 4명에게 쇠망치 공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 20일에는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전단을 돌리던 시민이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이에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번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알기를 바란다. 논쟁을 종식할 수 없다면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포함해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이 송환법 반대 시위 사태의 도화선이 된 대만 살인 사건 용의자의 신병 인도를 통보하자 대만 당국은 ‘정치적 조작’이라며 인수를 거부했다. 연합보 등에 따르면 대만의 본토 창구인 대륙위원회는 사건 용의자 찬퉁카이(20)가 지난해 2월 살인 사건을 저지른 대만으로 돌아가 사법처리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 데 대해 “배후 정치세력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대만 당국은 용의자 신병 인도를 위해 요청한 사법공조를 묵살하던 홍콩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중국 공산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 전회)를 앞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콩 사태 등 난제로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무역전쟁 및 홍콩 사태와 관련해 시진핑 지도부의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DMZ 국제평화지대 구상, 북미 화답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지시간 24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갖고 비무장지대(DMZ)의 국제평화지대화를 유엔 회원국들에 제안했다. DMZ의 국제평화지대화는 70년간 남북 군사적 대결이 낳은 비극적 공간인 DMZ를 군사적 충돌이 영구히 불가능한 지역으로 만들어 평화를 확산시키자는 구상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선언 2조 1항에서 ‘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뜻을 모은 바 있으며 9·19 군사분야 합의에서도 ‘DMZ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의 전쟁 위험 제거로 이어 나가기’로 합의했다. 비핵화가 달성되면 북한이 재래식 무기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만큼 동서 250㎞, 남북 4㎞의 광대한 지역을 평화지대로 설정해 충돌을 소멸시킴으로써 체제안전 보장을 이루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제평화지대화 구상이 획기적인 것은 남북이 공동으로 가입한 유엔 산하 기구와 평화·생태·문화와 관련한 기구를 평화지대에 유치하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생태계의 보고가 된 DMZ 전역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킨다는 데 있다. 또한 DMZ 내 38만발의 지뢰를 유엔지뢰행동조직 등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 단시간 내에 제거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국제평화지대 구상이 실현되려면 북한과 미국의 화답은 물론 유엔 회원국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성공을 거두고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열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엔 기조연설에 앞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에 대한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재확인한 것은 대북 메시지로 적절했다. 비록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던 대북 정책의 ‘새로운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아쉬웠으나 싱가포르 합의 정신을 강조한 것은 향후 북미 협상에 청신호를 던졌다. 하노이 회담의 교훈을 북미 정상은 되새겨야 한다. 북미가 기존 셈법을 버리고 과감한 양보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통 큰 거래에 나서야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북한이 얘기하는 안전보장이나 제재해제 문제 등에 열린 자세로 협상한다는 게 미국 기본 입장”이라고 한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미묘하지만 미국의 입장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대목이다. 국가정보원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1월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과 5번째 중국 방문 가능성을 밝혔다. 북핵 회담 성공이 전제이지만, 연말까지 남은 3개월이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점을 남북미 정상이 명심했으면 한다.
  • 문 대통령 22∼26일 유엔총회 참석…트럼프와 정상회담

    문 대통령 22∼26일 유엔총회 참석…트럼프와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제74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오는 22~26일 미국 뉴욕을 방문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13일 밝혔다. 이로써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이후 약 3개월 만에 다시 만나 정상회담을 하게 됐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및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한미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일정은 청와대와 백악관이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고민정 대변인은 또 “이번 방문 기간 중 문 대통령은 오는 24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제73차 유엔총회에서도 기조연설을 했다. 당시 기조연설을 통해 문 대통령은 “한반도는 65년 동안 정전 상황이다. 전쟁 종식은 매우 절실하다.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서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 대변인은 “(방미 기간에) 문 대통령은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주요국 정상들과 양자회담도 가질 예정”이라면서 “(문 대통령은) 또 P4G(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 준비행사를 공동 주관하고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도 참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정상회담은 이번이 9번째다. 앞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만났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속보] 한미정상회담 미 뉴욕서 열려…일정은 협의 중

    [속보] 한미정상회담 미 뉴욕서 열려…일정은 협의 중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 3개월 만에 다시 만난다. 오는 17일 시작하는 제74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오는 22~26일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13일 밝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일정은 양국 간에 협의 중이며, 문 대통령이 오는 24일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제73차 유엔총회에서도 기조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는 65년 동안 정전 상황이다. 전쟁 종식은 매우 절실하다.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면서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만났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트럼프, 탈레반과 어렵게 합의한 아프간 평화협정안 “없던 일로”

    트럼프, 탈레반과 어렵게 합의한 아프간 평화협정안 “없던 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과 어렵게 합의한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이하 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에서 탈레반 고위 지도자들을 비밀리에 만날 예정이었다고 밝히면서 지난 5일 카불에서 미군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소속 루마니아 병사 한 명 등 12명이 희생된 공격을 탈레반 조직이 저질렀다며 만남을 취소하고 잘마이 할릴자드 특사가 주도한 평화협정 합의를 없던 일로 하겠다고 7일 일련의 트위터 글을 통해 밝혔다. 그는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그들의 협상 지위를 강화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느냐”고 분노를 터뜨렸다. 이어 “그들은 (지위를 강화)하지 못했고, 상황만 악화시켰다”며 “이런 매우 중요한 평화협상 와중에도 정전에 동의할 수 없고 심지어 12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면 아마 그들은 중요한 합의를 할 권한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몇십년을 더 싸우길 원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할릴자드 특사가 탈레반과 아홉 차례 협상해 합의한 안에 따르면 미군은 20주, 정확히 말하면 135일 안에 5400명의 병력을 철수하기로 돼 있다. 다만 할릴자드 특사도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신 탈레반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무장단체가 미국과 동맹에 대한 공격을 모의하는 데 아프간이 이용되지 않도록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카불 테러는 미군 철수 이후 이 지역 안정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에 힘을 실어줬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가장 오래 끈 전쟁인 아프간전쟁을 종식하겠다고 공언해 왔고, 할릴자드 특사는 탈레반과 아홉 차례에 걸친 평화협정 협상을 진행해 왔다. 2001년 침공 이후 다국적군 병사 3500명 가까이가 희생됐는데 그 가운데 미군 병사 23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아프간 민간인과 무장 전사, 정부군 병력의 피해 규모는 특정하기가 어렵다. 지난 2월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3만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브라운 대학의 왓슨 연구소에 따르면 5만 8000명의 경비요원, 4만 2000명의 반군 전사들이 희생됐다. 이렇게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탈레반 세력은 지난해 국토의 70%를 차지한 것으로 방송은 봤다. 9·11 테러 한 달 만에 아프간 침공을 시작한 미국은 2014년 다른 나라 군대는 모두 철수하고,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키는 임무만 수행하는 등 골치 아픈 아프간에서 발을 빼는 협상에 주력해 왔다. 미군이 발을 빼는 사이 탈레반은 점점 더 세력을 키우며 정부군을 위협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그냥 미국의 꼭두각시일뿐이라며 탈레반은 마주 앉는 일마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무자비한 인권 유린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文 “양국 평화프로세스 협력”…‘로힝야 사태’ 해결 우회 촉구

    文 “양국 평화프로세스 협력”…‘로힝야 사태’ 해결 우회 촉구

    對미얀마 경제협력기금 10억弗로 확대 韓기업 애로 처리 ‘코리아 데스크’ 설치 文 “미얀마는 신남방정책 핵심 파트너 민족 화합 서로 도우며 함께하길 바라”미얀마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의 최우선 국가 과제인 평화프로세스 추진 과정에서 협력하기로 하는 등 실질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문에서 “미얀마 정부는 ‘미얀마 평화프로세스’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라카인 문제 해결 등 민족 간 화합, 국가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며 “양국이 서로 도우며 함께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미얀마 평화프로세스에 지지를 보내는 동시에 이른바 ‘로힝야족 학살’로 불리는 라카인 사태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얀마 민주화 영웅인 수치 고문은 이슬람 소수민족 로힝야족 탄압 사태와 관련해 묵인·방조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미얀마가 지난해 4차례에 걸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지지 성명을 내는 등 적극 지지를 보낸 데 대해서도 사의를 표했다. 미얀마는 70여년간 이어진 민족 간 내전 종식을 위한 ‘미얀마 평화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다. 이에 수치 고문은 “한반도 평화 안정은 한반도,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경제 협력과 관련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10억 달러로 확대하고, 한국의 개발 경험을 살린 사업들도 공유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양측은 한국 기업 애로 사항 전담 창구인 ‘코리아 데스크’와 고위급 정례 협의체 ‘한·미얀마 통상산업협력 공동위원회’ 출범 등에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미얀마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역사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5만 달러 규모의 쌀은 고통받던 한국 국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왔다”며 “한국 국민들은 미얀마 국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탄요진’(정을 뜻하는 미얀마어)으로 보답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 학생들의 통학에 사용될 스쿨버스 60대도 기증했다. 앞서 대통령궁에서 윈 민 대통령과 면담한 문 대통령은 “경제성장·민주화에 비슷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미얀마의 진정한 동반자로, 미얀마는 신남방 정책의 핵심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네피도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美-탈레반 협정 초안 합의, 미군 5400명 철수” 휴전은 아프간인끼리

    “美-탈레반 협정 초안 합의, 미군 5400명 철수” 휴전은 아프간인끼리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특사는 2일(현지시간) 미국이 아프간에서 135일 안에 5400명의 병력을 철수하고 다섯 곳의 기지를 폐쇄하는 내용이 포함된 평화협정 초안을 탈레반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9차 평화협상을 마친 할릴자드 특사는 아프간 현지 톨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과 합의에 도달했다며 서명하기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가 방송되는 동안 몇㎞ 떨어진 수도 카불에서 대형 폭발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아프간의 평화까지 갈길이 멀기만 하다고 로이터통신은 평가했다. 탈레반은 대신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무장단체가 미국과 동맹에 대한 공격을 모의하는 데 아프간이 이용되지 않도록 약속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할릴자드 특사는 이 협정의 목표는 종전이 아니며, 공식적인 휴전 협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휴전 협정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등 아프간인들끼리 협상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할릴자드 특사는 현재 1만 4000명 규모인 미군이 1단계로 철수한 뒤 남은 병력이 얼마나 오래 머무를지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탈레반은 모든 외국 군대가 떠나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협정 초안에 관해 브리핑을 받았으며, 상세한 내용을 살핀 뒤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할릴자드 특사는 노르웨이에서 열릴 가능성이 있는 아프간 내부 협상이 서방의 지원을 받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더 광범위한 정치적 해결에 도달하고 전쟁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정 서명 전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번주 카불에서 다수의 아프간 지도자들과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탈레반은 현 정부를 불법적인 꼭두각시 정권으로 간주하며 직접 협상하길 거부해 향후 협상의 세부적인 내용은 불명확하다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할릴자드 특사가 카불을 찾아 가니 대통령에게 평화협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몇 시간 뒤 카불에서 대형 폭발로 인해 적어도 5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50명 정도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자살폭탄과 총격을 합친 공격이 이뤄졌다”며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탈레반은 2001년 9·11 테러를 자행한 오사마 빈 라덴 등을 보호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침공을 받아 정권을 잃었지만, 그 뒤 세력을 회복해 현재 아프간 전 국토의 절반 가량을 장악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가장 오래 끈 전쟁인 아프간전쟁을 종식하겠다고 공언해 왔고, 할릴자드 특사는 탈레반과 9차에 걸친 평화협정 협상을 진행해 왔다. 2001년 침공 이후 다국적군 병사 3500명 가까이가 희생됐는데 그 가운데 미군 병사 23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아프간 민간인과 무장 전사, 정부군 병력의 피해 규모는 특정하기가 어렵다. 지난 2월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3만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브라운 대학의 왓슨 연구소에 따르면 5만 8000명의 경비요원, 4만 2000명의 반군 전사들이 희생됐다. 이렇게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탈레반 세력은 지난해 국토의 70%를 차지한 것으로 방송은 봤다. 9·11 테러 한 달 만에 아프간 침공을 시작한 미국은 2014년 다른 나라 군대는 모두 철수하고,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시키는 임무만 수행하는 등 골치 아픈 아프간에서 발을 빼는 협상에 주력해 왔다. 미군이 발을 빼는 사이 탈레반은 점점 더 세력을 키우며 정부군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자비한 인권 유린이 벌어질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키신저 질서 붕괴’와 한일 경제전쟁/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키신저 질서 붕괴’와 한일 경제전쟁/오일만 편집국 부국장

    최근 들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변화무쌍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군사·안보 영역으로 확대됐고, 중국과 러시아 공군은 한반도 지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훈련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이 와중에 미중이 홍콩 사태를 놓고 격돌하는 형국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동아시아에서 가까스로 유지됐던 하나의 전략적 질서(strategic order)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 지난 40년간 이 지역에서 복잡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아슬아슬한 균형으로 잡아 갔던 그 질서를 전문가들은 ‘키신저 질서’(Kissinger order)라고 부른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다. 키신저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철천지원수로 지냈던 양국의 극적인 화해와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 방문, 그리고 1978년 미중 수교의 토대가 됐다. 미국은 중소 분쟁의 틈을 노려 중국과 손을 잡고 일거에 힘의 균형을 역전시켰다. 소련 붕괴과 냉전체제의 종식은 키신저 외교(세력균형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동아시아에서 40년간 유지됐던 키신저 질서의 핵심은 미중 간 협력체제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 분업체제의 틀 속에서 중국은 경제개발에 나섰고, 중국은 그 대가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지배적ㆍ군사적 우위를 인정했다.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의 도광양회 전략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의 국제분업 체제 편입의 최종 선포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패권 도전, 이에 대응한 미국의 전방위 공세는 구질서 붕괴를 초읽기로 몰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미중 관계(키신저 질서)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트럼프가 경제전쟁의 총구를 겨누며 미중 협력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프랭크 로즈 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40년간 대화를 통해 중국을 자유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 했던 키신저 모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제는 키신저 질서를 대체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현실화되면서 동아시아 전역이 혼돈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패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패권 유지 비용은 고스란이 동맹국에 전가하는 트럼프 정책 때문에 동맹국들의 비명은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던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조차도 “동맹 내 공조를 무시하는 트럼프 정권의 외교적 접근이 동맹 균열을 초래한다”며 날 선 비판을 토해 낼 지경이다. 최근의 한일 관계 역시 직간접으로 키신저 질서 붕괴와 연관이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한일 관계의 핵심은 미국 주도의 국제분업 체제에서 미국은 군사안보,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한국을 후견하는 체제였다. 전후 냉전 질서를 규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이었다. 식민지 지배를 포함한 과거사 청산에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동북아 냉전의 전진기지로서 한국을 활용하겠다는 미국의 구상과 일본의 지지, 그리고 경제자금이 시급한 박정희 정권의 조급함이 빚은 결과다. 그동안 정경 분리 원칙 속에서 그럭저럭 한일 관계가 유지됐지만 최근 아베 정권은 과거사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놓고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관철되지 않자 급기야 수출 규제라는 최악의 강수를 던진 것이다. 한일 간 경제분업 체제 속에서 부품·소재를 장악한 일본이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 부상을 막겠다는 얄팍한 계산도 숨어 있다. ‘65년 체제’ 극복은 새롭게 전개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아시아 맹주를 꿈꾸는 아베 정권의 극우 성향에 비춰 참으로 어려운 길이지만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가 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 선언은 올바른 양국 관계 재정립의 시금석이 될 수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현재의 안보 문제로 전이시킨 상황에서 양국의 안보협력을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양국은 미래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할 운명이지만, 지금 현재는 전쟁을 도발한 아베 정권의 무도함에 대한 대한민국의 결기와 의지를 보여 줘야 하는 시점이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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