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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 종식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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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선전장” 오명 벗고 분쟁해결사로(특파원수첩)

    ◎냉전소멸따라 “평화 수호자” 부상/이란­이라크전ㆍ캄보디아내전 종식에 기여/「이라크봉쇄」 결의뒤 페만평화 중재를 기대 「실패작」「제3세계의 선전장」으로 치부됐던 유엔이 냉전 종식과 더불어 새시대의 「분쟁 조정자」「평화수호자」로 부상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의 전화를 막는 메커니즘으로 세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유엔은 지난달 28일 캄보디아 내전 종식문제에서도 중요한 진전을 이룩했다. 이날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간에 합의된 휴전안은 캄보디아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캄보디아에 대한 유엔관리를 규정함으로써 「지역분쟁 역사상 유엔의 가장 깊은 개입」을 예고했다. 지난달 25일 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사용 승인을 통해 과시된 유엔의 새로운 협조정신은 탈냉전시대의 미소 동반관계를 반영하는 한편 국가적 이해가 일치되면 집단행동으로 나아간다는 국제관계의 새로운 기본원칙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 유엔이 창설때부터 간직해온 평화구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라크의 8ㆍ2 쿠웨이트 침공이후 지속적으로 채택된 5건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의 분쟁해결 중재선언은 유엔을 아라비아 반도의 전쟁방지 매체로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결의안들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 ▲사담 후세인 정부에 대한 경제제재 ▲쿠웨이트 합병 무효선언 ▲외국인 인질화 및 외국공관 폐쇄 철회요구 ▲이라크에 대한 무력 해상봉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 45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러한 연속 합의는 5대 상임이사국인 미ㆍ영ㆍ불ㆍ중ㆍ소의 권한포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소의 안정 요구가 투영된 새로운 국제외교 환경,즉 분쟁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서 대처하는 것이 돈도 덜 들고 효과적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미국은 유엔의 성공여부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엔의 조치가 실패할 경우 미국은 무력으로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축출할 것인지,아니면 대규모의 미군을 사우디아리비아에서 영구히 주둔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부시 미 대통령은 케야르 총장의 중재선언에 대해 『유엔이 미국의 이해에 기여한다면 유익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평하면서 페만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중재활동에 나선 케야르에게 「어떠한 권한도 위임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부시로서는 걱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중재활동이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은 케야르의 체면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국가수뇌들이 기피하는 일부 위험부담을 떠맡아 주는 것이다. 안보리의 대 이라크 무력봉쇄 결의안은 미국이 추진한 강경정책에 국제적인 합법성을 부여한 것이었다. 부시의 전략은 레이건의 정책과 대조된다. 부시 행정부는 유엔을 통해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적법화하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3년전 이란­이라크 전쟁중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쿠웨이트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쿠웨이트 유조선에 유엔기를 달게 하자는 소련제의를 거부했다. 세계인의 머리에 새겨진 초기 유엔의 이미지는 비토권을 행사하는 소련대사의 찡그린 얼굴과 소란스러운 안보리 회의 광경이었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사상최초의 유엔군 파병을 결의한 안보리는 소련의 보이콧 속에 소집된 것이었다. 미소 대결로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됐던 냉전시대에 유엔의 중심은 실제적인 힘이 거의 없는 총회로 넘어갔고 숫적으로 우세한 제3세계 국가들은 유엔을 반서방 선전장으로 만들었다. 유엔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2년전 소련의 대외정책이 데탕트 지향으로 선회한 이후부터다. 지난 2년간 소련은 유엔의 활성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세계가 더욱 평화롭게 되어야 군비를 삭감할 수 있고 또 소련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모스크바의 판단이 유엔 강화론을 펴게 한 것이다. 어느 국제정치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소련에 있어 유엔은 세계무대에서 발을 빼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큰 합법성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과 모스크바간의 협력분야가 늘어나면서 유엔 사무처는 지역분쟁의 해결을 돕는 역할을 확대할 수가 있었다. 케야르 총장과 그의 보좌관들은 이란­이라크 8년전쟁의 휴전을 중재했고 나미비아 독립을 감독했다. 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계획을 조정했으며 캄보디아ㆍ중미ㆍ서사하라 등의 분쟁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같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만 사태를 둘러싼 미소 협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초강국 미소의 이해가 일치하면 할수록 지역분쟁 해결에 유엔이 더욱더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 정국 정상화에 협력/김대중총재/여 성의보이면 대화 용의

    평민당의 김대중총재는 1일 『이번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급회담은 해방 45년 만에 이룩한 일대 쾌거로서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회담개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그 성공을 위해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총재는 이날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에 대한 입장을 이같이 밝힌 뒤 정국현안과 관련,『가을정국에 들어선 만큼 난국타개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평민당은 여권이 합리적인 태도로 나오면 대화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해 정국 정상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김총재는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을 계기로 쌍방이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상호불가침협정 체결로 전쟁상태를 종식시킴으로써 평화정착을 위한 제반장치를 확실히 마련,단계적인 주한미군 철수와 군축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소의 극동정책/드미트리 페트로프 소 극동문제연 연구부장

    ◎“동북아 「다자간 협의체」 상설 바람직”/군축ㆍ위기관리 등 공동토의 긴요/남북 총리회담 긴장완화에 도움 될 것 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소장 권문술)는 30일 하오 「1990년대의 미 소의 동북아안보정책」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서 소련과학원 산하 극동문제연구소 드미트리 페트로프연구부장은 「평화와 안보를 추구하는 소련의 극동정책」이라는 제목으로,주한 유엔군사령관 특별고문 스티븐 브레드너는 「한미 안보관계=역사적 성격,현실적 영향,그리고 미래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브레드너고문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계획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돼서가 아니라 미국의 재정적 어려움과 한국의 자력성장을 감안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아직 변하지 않고 있고 개방의 가능성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한미 안보동맹과 한국안보문제 등은 북한의 변화와 연결,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페트로프연구부장은 『북방외교와 같은 한국의 국제역량이 강화될수록 남북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긴장완화를 위해 지속적인 남북대화와 남북총리회담과 같은 책임있는 당사자간의 접촉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트로프연구부장의 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 세계의 안보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련과 동구에서 있은 혁명적 개혁과 개방정책을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종식은 국제질서를 안정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비해 긴장이 뚜렷이 완화되고 군사적 대결 및 위협인식이 절대적으로 감소된 시기에 살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INF협정체결에 이어 화학무기 협정도 체결하였고 핵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양국의 군비및 군사력을 대폭 감축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이제 서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미국과 소련이 냉전종식을 위한 일련의 쌍무적 협정을 체결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 소련은 이러한 일련의 긍정적인 변화에 힘입어 기존의 국방정책과 군사독트린을 대폭 수정하였다. 구체적으로 종래의 공세위주의 독트린을 방어중심의 「합리적 충분성」 독트린으로 과감히 바꾸었으며 소련은 결코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또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국방 예산은 1990년에 7천90억루블로 전년에 비해 8.2%나 감소하였다. 병력은 향후 수년간 50만명이 감축될 것이다. 소련은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 왔음을 주지해야 한다. 첫째,아프가니스탄과 몽고,그리고 베트남의 캄란에서 소련군은 완전 철수하거나 주둔규모를 최소화하였다. 둘째,소련은 극동에서 병력 20만명을 일방적으로 줄였고 아시아에 배치된 중거리 핵무기를 4백36기나 폐기시켰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한국과의 관계가 뚜렷이 개선되고 정상화 단계로 진전되고 있음은 커다란 성과라고 아닐할 수 없다. 특히 서울올림픽 이후 소련은 한국이 이제 명실상부한 지역협력국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였으며 상호의존적인 경제통상관계가 지역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깨달았다. 특히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이제 공식화시키고 협력방법을 제도화시키는데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소련은 말할 나위도 없이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 극동에 있어서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몇가지를 제안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남북대화가 지속되어야 하고 남북총리회담 같은 책임있는 당사자의 접촉이 이루어 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팀스피리트 훈련규모 축소제의는 좋은 효과를 줄 것이다. 특히 한국정부의 북방외교는 매우 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나라는 한국의 국제역량이 이처럼 강화될수록 남북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물론 한반도주변은 아직도 세계의 화약고라 불릴 정도로 미소의 해군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미국의 우세한 해군력과 일본의 엄청난 군사잠재력은 소련을 위협하고있다. 한국도 결코 열세라고만 볼 수 없는 강력한 대북한 전쟁억제력과 방어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지역평화와 안정을 위해 역내 국가들의 외상회담같은 것을 개최하거나 쌍무적 혹은 다자간 협의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리하여 군축문제를 포함한 항해,항공의 안전문제,군사교류 및 협력문제,공동위기관리위원회 설치문제,군수산업의 민수화문제 및 경제협력문제 등을 상호 이익을 위해 공동토의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는 단계적으로 공동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한이 정치ㆍ경제적으로 협력하고 과학기술을 서로 지원하며 관광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남북한 문제는 제삼강조 하지만 당사자끼리 대화를 통해 평화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련이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과거부터 제안한 아시아포름의 창설은 노대통령이 지난 88년 유엔에서 제안한 동북아 6개국 평화협의회 창설과 그 정신을 같이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협의기구를 지역평화와 안보를 정착시키는데 기본초석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이라크의 군사대국화 방지에 초점/윤곽 잡히는 부시의 중동과녁

    ◎경제제재 계속… 침략정책 포기 유도/중동 세력균형 구축돼야 미군 철수 부시 미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미 행정부의 페르시아만 외교계획에는 「후세인에게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강요한다」는 온건한 목표가 설정돼 있다. 부시 대통령 측근들은 미국과 그 우방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억제시킬 수 있으며 그를 전복시키지 않고도 이라크를 일개 지역세력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초점이 돼온 이 접근법은 「페르시아만 위기가 중동은 물론 세계의 정치적 군사적 질서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후세인이 팽창정책을 추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관리들 말에 의하면 미국이 추진하는 것은 후세인 축출정책이 아니라 후세인 침략 저지정책이다. 미국의 일부 보수파 평론가들은 부시의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에 대해 「나쁜 정책」「나쁜 정치」라고 걱정하면서 『제2의 베트남 전쟁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내주에 의회가 속개되면 부시 대통령은 『냉전 종식으로 생긴 「평화 배당금」을 페르시아만의 장기 군사작전에 꼭 써야 하느냐』는 논쟁에 직면할 것이다. 부시의 전략은 아랍인들과 불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미군의 장기적인 페르시아만 주둔을 전제하고 있다.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는 이집트ㆍ시리아ㆍ이란 등을 이 지역에서 이라크의 힘과 상쇄시킬 위치에 놓았다. 또 질적으로 새로운 수준에 오른 미소 협조와 서구맹방들의 이 지역에서의 군사역할확대는 군사적으로 취약한 걸프 국가들에 안보를 제공하고 후세인을 억제시키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더라도 패배를 뜻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부시의 접근방법엔 여전히 위험성이 따르고 있다는 점을 미국 관리들은 시인하고 있다. 부시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회피했던 종합적인 중동정책의 수립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는 그의 구상에 관해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 없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지는 부시 측근과 행정부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미국의 새로운 대 중동 종합정책의 윤곽을 더듬었다. 첫째,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새로운 외교활동에 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하기 시작했지만 부시는 후세인이 쿠웨이트 철수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부시 대통령이 군비증강을 계속하자 전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같은 국제문제전문가들은 『부시가 무력을 사용할 계획이라면 오랫동안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도발이 없는데 군사행동을 취한다면 그렇지않아도 깨지기 쉬운 아랍연합을 갈기갈기 분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고위관리들에 따르면 부시는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대한 미 정책의 제1조는 이라크가 식량ㆍ재화ㆍ군수품의 부족을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경제제재조치를 계속하는 것이다. 후세인이 철수가 아니라 공격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경제제재로 이라크가 약화돼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며 후세인은 체면을 살릴 수 있는 협상을 희망하면서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시는 유엔의 기본 요구,즉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가 이루어지기 전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고위관리들은 아랍국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몇가지 방안에 대해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시 쿠웨이트가 영토문제와 대 이란 전비문제 협상에 성의있게 임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보좌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라크가 쿠웨이트 철수에 동의하면 이라크­쿠웨이트간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의 접근은 후세인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상자 속」에 갇혀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고위관리는 『미군 철수는 후세인이 지금처럼 행동할 수 없도록 중동의 군사력과 정치적 균형이 재정립된 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몇가지 가정,즉 ▲미소의 이해 일치 ▲나토 회원국들의 군사적 역할 확대 ▲이집트 시리아 이란의 연대 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서구맹방들이 장기간 확고한 군사력으로 남아 있거나 앞으로도 신속히 대응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중동의 세력재편이 미국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미국과 이집트 사이의 거래에는 늘 말썽이 많았고 이란의 대미 반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시리아는 테러리즘 지원 때문에 오랫동안 비난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랍 국가들이 부시를 지원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같은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쿠웨이트 정부에 관한 문제다. 분명히 미국은 쿠웨이트 왕정회복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지구촌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미국으로선 그건 꼴사나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 유엔 중재/페만 위기 「무혈타개」의 전기 기대

    ◎「케야르 중동행」 미ㆍ이라크서 “일단 환영”/양측,기존입장 고수… 극적해결 어려워 페르시아만 위기의 외교적 해결은 가능한가.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30일 열리는 케야르 유엔사무총장과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의 회담이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무대라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회담의 의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회담에서 아지즈장관을 여러번 만난 바 있는 케야르 사무총장은 이라크군의 철수와 해상봉쇄문제가 주로 논의될 것이라고 28일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라크군의 철수와 해상봉쇄를 해제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중동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만 회담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이 회담이 페르시아만 위기를 군사적 대결국면에서 외교교섭단계로 바꾸어 주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케야르사무총장의 외교중재가 이라크의 유화적 태도변화와 때맞춰 나왔다는 점에서 이라크와 어느정도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후세인대통령은 실제로 케야르사무총장과의 회담뿐만 아니라 그의 바그다드방문도 환영할 것이라고 밝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후세인의 유화적 태도는 물론 서방세계의 결속이 와해되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벌기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후세인은 지금 미국과의 대결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을 세워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에 비해 비교적 부정적이다. 알렉산더 왓슨 유엔주재 미국 부대표는 회담 자체는 「좋은 징조」이지만 성공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회의적 시각은 후세인이 아직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완전 철수시킬 의향이 없는데다 부시대통령은 이라크군의 무조건 철수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라크간의 이같은 근본적인 시각차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이 유화적 자세를 취하고 미국내에서도 무력충돌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한 중동사태는 정치적 해결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케야르­아지즈회담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같은 정치적 해결을 위한 첫 시도라는 사실때문이다. ◎케야르총장/이란­이라크전 종식에 기여 페만위기 중재에 나선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70)은 50년에 가까운 외교경력을 가진 제3세계출신의 대표적인 외교관이다. 국제법학자 출신인 케야르는 지난 87년 유엔사무총장에 재선됐으며 지금까지 유엔의 기능회복과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특히 8년간 지속된 이란­이라크전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유엔이 앞으로 지역분쟁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케야르사무총장은 전문외교관이면서 베토벤ㆍ바흐ㆍ모차르트 등을 좋아하는 고전음악광으로 알려지고 있다. 케야르는 대학생이었던 20세때 파트타임으로 프랑스ㆍ영국ㆍ브라질주재 페루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62년 스위스대사를 시작으로 소련ㆍ폴란드ㆍ베네수엘라대사 등을 역임하고 71년부터 75년까지 유엔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페르시아만 위기가 발발한 후 유엔안보리가 대이라크 경제봉쇄를 결의하는 등 신속한 대응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케야르 사무총장은 중동사태 초기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케야르는 그러나 『외교에는 시간이 생명』이라고 강조하고 『아직 시기가 성숙되지 않아 나서지 않았다』며 자신에 대한 비난을 일축했다. 그는 유엔안보리가 지난 25일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지금이 자신이 나설때라며 본격적인 외교활동을 시작했다. 케야르는 중동사태 해결이라는 매우 어려운 도전과 함께 유엔의 위상을 다시 한번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아지즈외무/“말이 통하는 유일할 인물” 평 서방국들로부터 현 이라크 지도부중 그나마 「말귀가 뚫린」유일한 인물이란 평을 듣는 사람이다.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이 후세인에 앞서 대화의 첫 상대로 아지즈외무장관을 택한 것도 이러한 평가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54세로 이라크 북부 모술시 태생. 수니파 회교도가 대다수인 이라크 지도부에서 기독교종파인 네스토리안 출신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바그다드대서 영문학을 전공,영어가 유창하고 81년부터 부총리겸 외무장관직을 맡고 있다. 이번 사태기간중에도 서방국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후세인을 대신해 간간이 유화적인 발언을 해왔다. 미국을 향해 조건없는 대화제의를 여러차례 했고 아랍형제국들을 돌며 단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도부내에서의 그의 입지,후세인 1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는 현 이라크의 권력구조 등을 들어 그와의 협상에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많다. 현 이라크 정국은 10인 혁명평의회가 주도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후세인이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세인과는 영국이 세운 왕정 전복 지하운동을 하던 50년대부터 절친한 사이였고 79년 후세인이 대통령이 되면서 혁명평의회 멤버로 줄곧 그를 보좌해 왔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후세인이 그가 가지고 있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이용,서방과 어떤 협상의 돌파구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있다. 케야르총장과의 이번 회담에서 그의 입을 통해 나올 「말」이 앞으로 후세인이 취할 태도의 방향을 점칠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 같다.
  • “중재의 명수” 케야르 총장/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드디어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이 미ㆍ이라크싸움 중재에 나설 모양이다. 유엔안보리가 25일 대 이라크 경제제재를 위한 무력사용을 승인한 직후 케야르 사무총장이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에게 한 회담제의를 이라크가 수락함으로써 페만사태의 평화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첫 대좌가 오는 30일 이뤄지게 된 것. 지난 82년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후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케야르는 분쟁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하는 「현장중재」에 능한 직업 외교관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 70세의 페루출신인 그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업적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란ㆍ이라크전의 마무리,앙골라 내전종식,소련군의 아프간 철군 실현 등은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법에 정통,분쟁 당사국의 협상대표들을 논리정연한 이론으로 설득시켜온 그는 또 제3세계 출신이라는 이점을 지녀 운신의 폭도 넓은 편이다. 일부 외신은 이번 페만사태의 도발자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아랍주의 깃발을 내걸고 외세추방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번 페만사태를 계기로 아랍권이 친이라크ㆍ반이라크ㆍ중도입장 등 자국의 이해에 따라 편이 갈리고 있는데다 거의 모든 나라가 이라크에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코너에 몰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미국과의 싸움을 말려주기를 내심은 원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중재자의 출현을 기다려온 것은 부시 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부시 대통령이 무력으로 쿠웨이트를 강점ㆍ합병한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사우디파병을 결정했을 때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줬던 미국국민들 사이에서도 지난주부터 『미국이 십자군이 될 필요가 없다』는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 또 페만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중될 전비부담은 국민들의 대정부불만으로 증폭될게 뻔해 오는 가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에겐 큰 짐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과 이라크,두 당사자만이 아니라 세계가 전쟁을 바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터질 수 있다는게 역사의 교훈이다. 때문에 「분쟁의 소방수」 케야르 총장의 이번 미ㆍ이라크 싸움 말리기에 거는 세계의 기대는 자못 크다.
  • “북방정책의 두뇌”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안녕하십니까)

    ◎“북은 「총리회담」에 나올겁니다”/국제신뢰 실추 우려,모양새 갖출 것/중동사태는 국지전 위험성 일깨워/「민족대교류」는 공동체 복원노력의 일환… 희망갖고 추진 오는 9월4일 남북한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됨에 따라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이 드높아지고 있다. 또한 25일로 노태우대통령은 5년임기의 후반기 통치에 들어갔다. 학자로서 통일원장관을 역임했고 남북한관계,북방정책,정치분야에서 노대통령을 밀착보좌하고 있는 이홍구 대통령정치담당특별보좌관을 만나 통일정책과 향후 전망,집권후반의 통치방향 등에 대해 알아본다. 【대담=이경형정치부차장】 ­남북 고위급회담 제1차 본회담이 9월4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의 대표단이 육로를 통해 서울에 오기로 하는등 지난 23일 남북 연락관 사이에 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회담자체가 성사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이에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까지 남북대화는 거의 북한의 뜻에따라 성사여부가 결정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됐든 1백% 대화를 하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저쪽에서 하겠다면 되는것이고 거부하면 안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위급회담 성사 여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는 대남 대화와 관련,2가지 견해가 계속 병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난번 「7ㆍ20」 민족대교류제의,범민족대회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기본적으로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는 세력의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 스스로 오랫동안 주장해온 남북간의 정치ㆍ군사문제의 논의 기회를 놓칠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북한은 이번 총리회담을 무산시킬 경우 국제적으로 신뢰가 크게 실추되는데다 대남 전략적 측면에서도 개최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일단은 회담에 임할 것으로 봅니다. ○김일성 움직여야 변화 ­북한은 지금 소련으로부터의 개방압력과 그들의 주체사상 고수간에 상당한 갈등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이같은 갈등이 그들의 대남전략이나 남북대화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습니까. ▲포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주의가 변화함에 따라 그들도 거기에 적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북한내의 주류는그럴수록 버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수용에서 오는 위험부담이 버티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보고있지요.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우리식대로 나간다」며 통제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통일전선전략 노선을 고수할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일관성있게 대화노력을 계속하면서 개방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련의 대북 개방압력에 대해 너무 극적인 기대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이 일본을 거쳐 9월7일께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번에 북에 대해 개방압력을 가할것 같습니까.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은 작년에도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방문도 압력행사 성격이라기 보다는 기본적으로는 소ㆍ북한간의 동맹관계 재확인으로 봐야합니다. 그리고 소련의 대미ㆍ일 관계와 그리고 최근 진전되고 있는 한ㆍ소 관계를 설명하면서 소련의 새로운 대외정책 방향에 관해 얘기할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설명자체가 북한의 변화ㆍ개방에 영향을 줄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밖에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분명한압력을 넣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근의 국제정세흐름에 비추어 90년대 중반에는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란 견해가 많습니다. 이와관련해 노대통령의 임기중에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가 가능하리라고 봅니까. ▲지난 2년반동안에 있은 국제관계의 변화,남북관계의 변화 속도를 감안하면 남북 정상회담이 노대통령의 임기중에 성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남북문제해결에 정상회담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입니다. 북쪽은 김일성을 절대적 지도자로 하고 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북의 정상을 움직이지 않고는 어떠한 성과도 기대할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남북한관계는 공식대화도 중요하지만 핵심인사들간의 막후접촉도 매우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한때 가동된 것으로 알려진 막후대화 채널이 지금은 중단된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현재 의미있는 막후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까. ○소 역할 극적기대 금물 ▲이 질문엔 원칙적인 얘기밖에 할수 없군요. 정부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화방법에는 적십자회담과 같은 공개적인 공식대화,비공식대화 그리고 제3자를 통한 간접대화 등의 3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어느것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중 어떤 방식이 활성화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7ㆍ20 민족대교류가 무위로 끝나고 말았는데 총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합니까. 10월초 추석을 전후해 이를 재시도할 것입니까. ▲우리는 결코 무위로 끝났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민족대교류 제의를 통해 우리의 일관된 민족공동체회복 노력을 대내외적으로 입증해보였습니다. 민족대교류 제의를 전후한 일련의 과정에서 두가지 교육기회를 가졌다고 봅니다. 하나는 지난 7월14일 통과된 남북 교류협력법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이해되지 못한채 7ㆍ20 제의가 나와 다소 혼선이 있었지만 이 법이 남북교류에 관한 우리쪽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지 이 법의 시행이 곧 남북간의 교류합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널리 인식하게 되었지요. 다른 하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앞으로 남북교류에개입된 개인이나 단체의 대표성 시비는 별문제가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 입니다. 오는 추석때의 대교류추진은 재시도가 아니라 제의 당시부터 민족명절을 계기로 삼아 계속 추진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북한은 설날등을 무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근년에 들어서는 민족 전통명절에 대한 입장을 변화시키고 있어 한가닥 희망은 있습니다. ­최근 남북관계에 따른 통일정책은 실무부서인 통일원보다는 청와대가 앞질러 입안하고 추진의 주체가 되는 일이 많아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있다고들 합니다. 전임 통일원장관 출신으로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적으로 사실과 다릅니다. 청와대가 모든 것을 입안,결정하고 통일원은 뒤치다꺼리만 한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통일정책의 주무부서는 통일원이기 때문에 통일원장관이 중심이 되어 청와대뿐만 아니라 관계부처와 충분히 협의하여 입안,추진하고 있습니다. ○아태 공동체 구축 긴요 ­88서울올림픽이 대소 관계개선에 전기를 마련한 것처럼 이번 북경아시안게임이 한ㆍ중 관계진전의 중요한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까. ▲소련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우리의 국가적인 힘과 경제력을 인정했고 그들의 개혁구도에서 한국의 역할을 기대하게 되었지요. 이와관련하여 북한과의 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까지 본 것입니다. 중국도 북경아시안게임을 통해 소련과 유사한 평가를 우리에게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중국은 이념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한반도에 있어 한국전쟁의 당사자라는 특수한 관계에 있습니다. 또 중국은 역사적으로 볼때 소련보다는 늘 한발짝 뒤에 가고있어 대한 관계개선을 두고 속도면에서 소련과 경쟁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25일로 노대통령은 통치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노대통령이 하고있고 또 해야하는 일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공동체를 만드는 대통령」입니다. 이는 민주공동체,민족공동체,아태공동체의 3가지 차원에서 말할수 있습니다. 첫째 민주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민주화는 정치분야뿐만 아니라 복지에서도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둘째 남북분단을 종식시키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북측과 합의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셋째 세계적인 블록화에 대비하고 소련ㆍ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시켜 아시아ㆍ태평양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이는 좁게 말하면 우리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정돈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가지 측면이 모두 정권 후반기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기국회를 목전에 두고도 야당의원 사퇴정국은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경색정국의 극복방안은 없습니까. ▲현재의 정국은 3당 합당에 대한 야당의 반발로 볼수 있습니다. 이는 민주화는 했지만 이를 어떻게 제도화 하느냐에 대한 합의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회주의,지자제를 포함한 선거,정당 등 민주주의 제도화에 따른 핵심문제에 관해 협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뒤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40년 헌정사의 우여곡절끝에 간신히 잡게된 민주주의의 제도화 기회를 놓치게되면 여야 할 것 없이 역사의 가혹한 비판을받게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의 역량발휘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ㆍ합병사태가 남북 대치상황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지난 1년간 동구의 변화,통독움직임,미 소간의 협력으로 국제관계를 다분히 낙관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국지적인 분쟁은 언제나 가능하며 상당한 군사력을 가진 체제는 군사행동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상당한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긴장완화가 없는 한반도에는 그같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늘 「상황의 2중성」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국정의 방향 주로 얘기 ­항간에 정치특보는 대통령의 「말동무」라고 하는데 대통령을 1주일에 몇번 만나며 어떻게 조언하고 있습니까. ▲국정운영의 방향설정,중요정책의 평가문제 등에 대해 자문역할을 주로 하며 실무보다는 방향을 얘기합니다. 저의 전문분야인 외교ㆍ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때도있습니다. 회의때가 아니고 대통령을 혼자 뵙는일은 그렇게 잦지는 않습니다. ­미 에머리대와 서울대 등 대학강단에 25년간 계시다가 관계로 들어선지 2년반이 되었는데 통일문제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체험적으로 비교해 주십시요. ▲대학에서는 주로 이론과 규범적인 측면에서 강조했다면 정부에 와서는 현실과 상황인식을 배웠다고 할수 있지요. 한계가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자원을 관리하면서 정책집행을 해야하는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남북문제에 대한 강력한 국민적 합의도출이 아쉬웠습니다.
  • 「평화주의자」 히틀러/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전쟁광 아돌프 히틀러는 평화주의자였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그의 야심과 환상은 옥중에서 기술한 「나의 투쟁」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데도 그는 곧잘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위장했다. 히틀러는 33년 1월 힌덴부르크대통령에 의해 총리에 지명된다. 의회의 시정방침연설에서 그는 예의 그 평화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특히 강조한다. 『나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현재의 유럽과 독일은 평화스럽다. 독일이 지금 상태에 민족치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국과 독일과의 현안들은 모두 평화적인 교섭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들 뿐이다. 독일은 물론 유럽 어느나라에도 전쟁을 유발시킬 사유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저돌적인 히틀러의 출현을 유심히 지켜보던 유럽 사람들은 히틀러의 이말 한마디에 안심하고 말았다. 오히려 당시 히틀러의 숨겨진 호전성을 간파하여 전쟁위협을 역설하던 영국의 처칠이 전쟁광으로 불려졌고 평화주의자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한편 이탈리아를 평정한 파시스트 무솔리니는 갈수록 전쟁광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대이디오피아 전쟁에서 전과를 올리자 전쟁은 「최고의 스포츠」라며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은 무솔리니의 「전쟁 스포츠론」을 경계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대독일 공포증은 가졌을망정 이 파시스트 전쟁광을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히틀러는 기회있을 때마다 평화를 강조한다.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전유럽에 인식시켜 세상을 속이고 상대를 안심시킨 다음 틈을 보아 덮치겠다는 계략이다. 아니나 다를까 히틀러는 곧장 군비확장을 서두른다. 이는 물론 베르사유조약 위반이지만 위장평화주의자 히틀러에게 그것이 통할 리가 없다. 전쟁중에 그는 표변하여 『평화를 떠드는 자가 꼭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떠벌리곤 했다. 권력자에겐 반드시 정복의 충동이 있게 마련이다. 권력에 취하고 승리에 자만하면 다음 또 다음의 새로운 정복에 나서게 된다. 정복욕이란 권력자들의 본능과 같은 것으로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에서도 우리는 절대권력자의 정복욕을 본다. 현대판 히틀러로까지 비유되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그 나라에서 경위야 어떻든 신에 「근접」한 종신 권력자이다. 그가 지배하는 이라크가 예정대로 중동을 제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쟁을 잠시 잊고 있던 세계인들에게 상상을 절하는 얘기다. 후세인은 처음부터 급진적인 혁명아였다. 저돌적이고 영웅심에 들뜬 그의 행태에 비추어 쿠웨이트로 끝나지 않고 페르시아만의 토후국들을 삼켜버린 다음 사우디아라비아를 노린다면…. 페르시아만의 석유를 좌우해 세계경제의 숨통을 조이게 될 가능성뿐 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저지를지도 모를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최악의 상상 시나리오일지 모르나 후세인에게 그런 시나리오가 없으리란 법은 없다. 그것은 또 세계가 화해의 새 시대를 노래하고 있는 순간 한 나라가 불과 수시간 만에 다른 나라를 병탄해 버린 어처구니없는 전쟁놀음이다. 오늘의 세계에도 체제와 이념에 상관없이 패권과 침략,약육강식의 전쟁패턴은 엄존한다. 10배의 인구에다 50배의 군사력을 가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기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쿠웨이트사태 발생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건대 이제 세계 한 모퉁이의 국지전쟁에서 강대국들이 과거와 같이 억지력을 행사하는데는 한계가 있고 압력수단이라야 기껏 외교ㆍ경제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은 미소를 중심으로 양대 세력의 힘의 안배로 유지됐던 세계의 균형과 질서가 새로운 공존질서의 관계로 전환되면서 초래된 공백 또는 허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세계적으로 전면대결의 위험이 없어진 대신 지역적인 분쟁과 전쟁의 가능성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이념대결이 끝남으로써 세계는 이제 모든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가져왔다. 그 가능성은 니카라과 내란이 종식되고 아프가니스탄 문제해결을 위한 미소의 노력이 구체화되는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미소의 이념대결 종결로써도,분쟁의 평화적 해결 노력으로써도 지구상에서 전쟁은 막을수 없다는 사실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은 명백하게 보여준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가 절제되지 않은 힘을 사용할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 권력과 금력,일상적인 분쟁의 분야에서 휘둘러지는 폭력은 물리력이 갖는 힘의 원리,즉 관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폭력을 확대하기로 든다면 그것은 그럴수록 원시의 모습에 가까워진다. 그것이 다름아닌 전쟁인 것이다. 원시는 비문명이고 따라서 전쟁도발자는 비문명인이며 파괴자이다. 모든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전쟁은 특히 지배욕에 사로잡힌 한 사람의 모험주의 책동으로 하여 어느날 하루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도 중요하다. 문득 한반도의 오늘을 돌아보게 된다. 한반도에는 지금 강대국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의 군사력이 나북한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존재와 소련의 영향력 행사로 그나마 억지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한반도에 아직도 군사적 모험주의와 패권주의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한시도 경계의 자세를 풀 수 없다는사실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확신하건대 모든 전쟁은 한사람의 광적인 지배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한반도의 휴전선 북쪽에는 지금 40여년전 동족전쟁을 일으켰던 한사람이 살아 있다. 우리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 “사막의 방패”… 미국의 결의/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과 미국간의 힘겨루기가 점차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는 가운데 9일 미 국방부의 소식통은 사우디 방어를 위한 미 지상군의 파병규모가 25만명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직 추가파병의 규모와 시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비상계획 공개는 페만의 전쟁억지를 위해 미국이 더큰 위험부담도 감수할 것임을 분명히한 시사라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같은 규모의 지상군이 페만에 작전배치 되려면 최소한 60여일이란 시간이 필요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현지 상황대처에 즉각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란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파병의지 표현만으로도 「아랍의 비스마르크」를 꿈꾸고 있는 사담 후세인의 야심을 꺾는 데 상당한 효험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사막의 방패」로 명명된 미국의 파병계획에 따라 현재 사우디에는 베트남 전쟁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이 투입되고 있으며 그 위험성에도 불구,미 의회와 국민들은 부시대통령의 결정에 초당적이며 동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있다. USA 투데이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미국인의 80%가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는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미군의 파병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ㆍ민주 양당의원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지금까지의 이니셔티브가 적절했다고 말하고 사담 후세인 성토에 나서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출정을 앞두고 가족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장병들의 이별장면 사진과 화면을 보도,파병에 대한 국민여론을 「애국」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은 미소간의 냉전종식으로 전면전의 가능성이 배제된 현 국제질서 아래서도 지역분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진화에 나설 「국제경찰」의 존재가 얼마나 절실한 명제인가를 보여준 한 예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의 대규모 사우디 파병결정은 문명사회의 세계질서 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이라고 풀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세계는 미국의 이번 페만 군사력 개입이 군사대국 미국의 고압적 무력시위가 아니라 세계질서와 자유산업사회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였던 것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고(사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빚어진 새로운 중동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계가 발벗고 나섰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응징하고 점령을 종식시키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전세계의 이라크산 석유수입금지등 이라크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의는 구체적인 제재방안으로 석유외에 이라크나 쿠웨이트의 1차산품과 제품의 수입및 이들 두 나라에 대한 모든 상품의 수출금지를 요청하고 있다. 모든 회원국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이 결정은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투자와 금융지원 제공을 금지하고 무기금수도 촉구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및 일부 서방국가들이 이미 나름대로의 제재조치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유엔안보리의 조처는 이라크의 행동이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데 국제사회의 인식이 한 덩어리가 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 결의는 중동에서 「국제경찰군」을 자임하고 있는 미국의 선택폭을 넓게 보장해주고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것은무엇보다도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전후 산물인 유엔은 지금까지 단 두차례의 경제제재조치를 취한 바 있다. 1966년의 대로디지아(현 짐바브웨) 경제제재와 1977년의 대남아프리카공화국 무기금수조처가 그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유엔의 제재는 미소 두 강국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지 않는 현안에 국한됐었다. 유엔의 기능은 이처럼 유명무실에 그쳤고 심지어는 국제분규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함께 무용론까지 대두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유엔안보리 결의는 이미 미소를 비롯한 강대국들이 이라크를 규탄하고 있는 배경을 깔고 나온 것이어서 이라크 규탄의 국제화를 말하는 것이다. 안보리가 이번 제재조치의 실효를 위해 특별감시기구를 운영키로 한 것도 주목되는 바 크다. 유엔안보리가 노리는 우선적인 경제제재 효과는 외화수입의 대부분을 원유수출에 의존하는 이라크의 경제숨통을 죄자는 데 있다. 이를 위한 부수조처로 유엔은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에그들 영토를 통과하는 이라크송유관의 폐쇄를 권유하고 있으며 이는 이미 미국에 의해 설득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예상할 수 있는 사태는 이라크의 전쟁확대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에 대비해 유엔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에 군사적 보호를 약속해 주어야 한다는 전제가 생긴다. 때문에 그것이 불가피할 경우의 유엔대응책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이라크의 무력시위에 세계가 즉각 대처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사회를 두려워 하지 않는 후세인대통령의 착각에서 빚어진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유엔조치가 후세인에게 그가 지나쳤음을 깨우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줄지 기대되는 바 적지 않은 것이다. 유엔의 이번 노력은 또 분쟁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다른 걸프만 산유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이 지역으로부터의 원유공급을 확보해 주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번 조처가 국제법을 어길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교훈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사태의 악화 내지 장기화에 따르는 위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 「힘의 공백」틈탄 패권주의/임춘웅 국제부장(데스트 메모)

    냉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했을때 세계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냉전체제는 군사적 대결체제였고 경직된 이념적 대결체제였으며 두 초강대국간의 패권주의에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의 사려깊은 학자들은 냉전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을때 국제경찰이 없는 세계를 우려했었다. 반세기 동안이나 질서를 유지해온 거대한 힘이 사라진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력충돌 가능성 상존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무력 침공은 이들의 우려가 얼마나 현실적이며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실례라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라크의 군사적 폭력은 냉전체제가 채 와해되기도 전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아직은 모색되고 관망돼야할 시점에서도 폭력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완전 장악하는데는 불과 5시간여가 소요됐을 뿐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일 아침 이라크의 폭력행위를 비난하고 이라크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 이시간 유엔결의안에 따라 이라크군이 즉각 철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해당사자인 쿠웨이트가 가입돼 있는 GCC(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는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엄연한 안보기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CC가 이라크의 무력침공앞에 어떤 군사적 행동을 취했다는 증거가 없다. 중동의 대국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UAE) 오만 카타르 등 6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GCC는 이번 사태에 성명하나 발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어떤 실질적 역할을 할 것 같지 않다. 1주여전 이라크가 군사행동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을때 지중해의 6함대를 동원,UAE와 예정에도 없던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대이라크 무력시위를 주도했던 미국은 막상 일이 터지자 속수무책이었다. 항공모함 인디펜던스호가 페르시아만으로 항진 중이고 군사적 제재가능성이 전혀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군사개입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어떻게 보면 미국은군사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돼 있다는 것이 불개입 논거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전쟁은 이미 끝나 버렸고 1백만이나 되는 막강한 이라크군과 정면 대결을 벌일 수단을 미국은 현실적으로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성급한 이상론은 금물 부시 미국 대통령은 2일 『현재로서는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공동의 노력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공동의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당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내 이라크자산의 동결,이라크와의 통상거래 중단 정도가 고작이다. 현재로서는 소련의 역할에나 기대해 보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듯싶다. 다행히도 소련은 정부 대변인을 통해 『소련 정부는 이라크군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철수가 페르시아만의 긴장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확신한다』는 성명을 내놓고 있다. 이라크에 무기지원을 해온 소련은 군사적 리버레이지를 갖고 있는 나라다. 「역사의 종언」을 썼던 프란시스 후쿠야마(미국 RAND연구소 선임연구원)는 마르크스­레니니즘이 완전한 패배로 끝난 역사는 지루하고 평화로운 문화적 사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평화는 모든 인류가 행복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새로운 과학,새로운 경제적 필요가 인류를 평화롭게 지낼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예언은 아나톨 프랑스의 작가다운 감상이었다. 동서화해시대가 열리며 한껏 부풀었던 후쿠야마의 「문화사회」,아나톨 프랑스의 「신천지」는 과연 도래할 것인가. 이라크사태는 불행히도 핑크빛 미래사회가 결코 가까이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념이 소멸해도 인간의 갈등은 영원히 남으리라는 것은 이념의 대결이 없었던 먼먼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벌써부터 또다른 파시즘이 운위되고 새로운 권위주의의 대두를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담 후세인 같은 엉뚱한 「시저」가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화려한 미래사회는 그 기반을도덕과 윤리에 두고 있다는 데 취약점이 있다. 도덕과 윤리는 역사를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지만 파괴자가 나타나면 언제나 무너지고 마는 약점이 있다. ○멀고먼 세계평화의 길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할 미래사회의 안정된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야할 필요성을 이번 사태를 통해 절감한다. 그것은 어려운 작업일테지만 대단히 화급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다른 쿠웨이트가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도 역사를 냉전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되지도 않기 때문에 새 질서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작업이다.
  • 중동전 파문… 신데탕트 기류에 찬물/이라크,쿠웨이트 점령의 충격파

    ◎이라크의 페만 요충 장악 기도가 불씨/패권주의 부활 우려… 미,무력은 안쓸 듯/군사력 열세 쿠웨이트,외교통한 해결 무위로 중동에 다시 전쟁이 발발했다. 이라크가 2일 국경분쟁을 빚었던 쿠웨이트를 전격 점령한 것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장악은 국경분쟁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매우 심각한 사태로 전세계를 경악케 했으며 미소 화해를 틈탄 지역 패권주의의 부활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쟁이 종식된 후 군사강국으로 등장,페르시아만의 「경찰」 역할을 자청해 왔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냉전이 종식되고 동서화해의 시대가 정착되면서 지역분쟁이 하나 둘 해결되어가는 과정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제정치에도 적지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동은 특히 세계 석유매장량의 3분의2이상을 차지하는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제3의 오일쇼크가 올지도 모른다고 중동정세 분석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대한 무력침공을 국경분쟁이 시작될 때부터이미 시사해 왔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공언하며 국경지역에 3백50여대의 탱크와 10만의 병력을 집결시켰었다. 영토규모와 군사력등 모든 면에서 이라크와 비교가 되지 않은 쿠웨이트는 이라크와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여러가지 외교적 노력을 하는 한편 이라크에 거액의 경화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었다. 쿠웨이트의 이같은 제스처는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라크의 무력침공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를 비롯한 주변국가들도 쿠웨이트의 「무력충돌 회피정책」을 지지,적극적인 중재를 벌였다. 이라크는 이들 주변국가의 압력에 못 이겨 지난 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회담에 응했다. 많은 중동정세 분석가들은 그러나 이라크가 마지못해 회담에 응하긴 했으나 회담전에 이미 쿠웨이트에 대한 무력침공을 결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라크는 현실적으로 쿠웨이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고서도 오히려 쿠웨이트가 성의가 없다고 비난하며 회담을 결렬시킨 데서 무력침공을 이미 계산했다고 보는 것이다. 제다회담후 쿠웨이트의 한 고위관리는 『이라크가 이란과 페르시아전쟁중에 진 빚을 탕감해주고 영토의 일부를 이양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라크는 전부터 분쟁지역인 루메일라유전지대를 양도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리얀섬을 장기적으로 임대해줄 것을 쿠웨이트에 요구해 왔었다. 이라크는 이번 무력침공을 통해 전략요충지인 부리얀섬과 이 보다 작은 와르바섬을 장악할 속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라크는 이들 섬을 장악함으로써 페르시아만으로 통항하는 「생명선」을 보장받고 과거 8년간 이란과 샤트알 아랍 수로를 두고 벌인 국경분쟁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은 단지 쿠웨이트와의 국경분쟁때문만이 아니라 대내용으로 정치적 불만을 해외로 돌리려는 복선도 깔고 있다고 분석된다. 이라크의 대쿠웨이트 비난공세가 후세인을 종신대통령으로 규정한 헌법개정안의 의회통과 하루전에나왔고 후세인의 장기집권과 이란­이라크전으로 어려워진 경제사정등으로 불만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라크의 무력침공은 특히 국제원유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은 지난 26일 제네바에서 열린 회담에서 이라크의 강경입장으로 원유기준가를 4년 만에 18달러에서 21달러로 인상시켰다. 이라크는 제네바회담때 25달러로의 인상을 강력히 요구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라크의 영향력 증대로 또다른 유가인상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물론 소비국의 재고물량이 아직 많고 원유시장에 대기물량이 많아 공시유가인상에도 불구하고 당장 유가가 급등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유가가 오르지 않을 수 없으며 중동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본격적인 고유가시대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고 미국은 국내에 있는 이라크와 쿠웨이트 자산을 동결시키는등 경제제재 조치를 취해 후세인의 「대담한」 군사행동은 이라크의 경제·외교적 고립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무력개입보다는 외교적으로 이번 사태의 해결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혀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은 일단 없어졌다. 실질적으로 미국의 무력개입 선택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유엔을 비롯,미국·소련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라크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친이라크 신정부를 세워 쿠웨이트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를 획책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한 쿠웨이트국왕이 망명을 신청하고 쿠웨이트에 「새로 수립된 정부」가 국회를 해산했다고 발표해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라크의 이같은 전략은 사우디·아랍에미리트 등 주변국가들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며 중동에 새로운 긴장감을 감돌게 하고 있다.〈이창순기자〉
  • G7 정상회담 통해본 위상변화(특파원수첩)

    ◎미 영향력 퇴조… 떠오르는 다극체제/바기구 해체뒤 전쟁억지력 효능 상실/기술ㆍ경제력 우세한 일ㆍ서독 위상 격상/“미ㆍ일ㆍ독 3극시대 임박”… 불ㆍ영선 초조 지난 2주일 사이에 런던과 휴스턴에서 잇따라 열린 서방 정상회담은 냉전종식과 더불어 변화된 강대국간 역학 관계와 다극화된 세계의 새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동서 대결시대에 서방측 맹주 노릇을 했던 미국은 단지 세계를 이끌어 가는 여러 강대국 중의 하나로 그 위상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 미국의 많은 국제문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나토 정상회담(런던)과 서방7개국 경제정상회담(휴스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선택적으로 행사 했을뿐 전면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휴스턴에서 농산물 보조금 감축 협상의 진전을 위해 애를 썼고 런던에서는 나토의 군사 독트린과 전략 재정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치 강국으로 부상중인 두 경제대국 서독과 일본이 소련­중국에 대한 경제원조 문제에서 자국의 이해를 추구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자 부시 대통령은순순히 두 나라의 뜻에 따랐다. 부시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모두 빡빡하게 대처하면 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린 과거와 전혀 다른 시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강조하며 『종전엔 동서간의 군사 대결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거의 해체된 가운데 철수하는 병사의 모습과 민주주의가 전체주의 체제를 대체하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시각은 부시의 전임자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는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세계에 강조하면서 집권했던 1980년대의 접근법과는 상이한 것이다. 레이건은 맹방들에게 미국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예컨대 1981∼82년에 레이건은 소련의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에 협력하는 서구 기업체에 대해 제재를 가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소련 위협의 감소와 세계경제의 변화는 이러한 에피소드를 먼 옛날 이야기처럼 만들어 버렸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이 맹방들과 경제적 정치적 파워를 공유함으로써 세계가 다극화 시대로 복귀하는 것을 고무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총리는 최근의 국제질서 변화에 주목하며 『휴스턴 회담에선 미국의 달러,일본의 엔,서독의 마르크 화에 각기 바탕을 둔 3대 국가 그룹이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미국이 언짢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건 사건이 아니라 소련권위협의 감소와 더불어 유럽이 자신의 개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휴스턴에 모인 7개국 가운데 자기주장이 가장 강했던 나라는 서독과 일본이었다. 서독의 헬무트 콜총리는 독일통일에 대한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재빨리 소련에 차관을 제공하고 서방 각국의 동참을 역설했다. 또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 총리는 천안문 사건후 중단된 대중국 차관을 재개키로 결정하고 58억달러 규모의 차관사업 계획을 가져왔다. 미국이 두 나라의 뒤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부시는 두 나라에 대해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청신호를 보냈다. 설령 부시가 서독과 일본의 제의에 동참하기를 원했더라도 돈이 많이 드는 새로운 국제의무를 짊어지는것을 허용치 않는 미국의 방대한 재정 적자 때문에 이에 쉽게 응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카터 미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다극화로 나아가는 맹방 관계의 변화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1970년대의 지미 카터 및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에도 유사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와 아주 크게 다른 것은 일본이 단지 경제 초강국으로만 머물지 않고 조심스럽게 정치 초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이 정치적 리드를 서독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냉전의 소멸이 이러한 변화의 주요 원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사실상 해체됨에 따라 전쟁 억지력에서 나오던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기술이나 경제력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브레진스키는 말한다. 그렇다고 미국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거나 새 시대엔 미국의 지도적역할이 끝났다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브레진스키는 덧붙였다. 부시는 미국의 영향력 퇴조를 내다보는 견해에 동조하지도않지만 영향력 유지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입장도 아니다. 냉전 이후의 새 질서가 확산될 경우 어떤 종류의 정책이 전개될 것인지,예컨대 통일된 독일과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지금 헤아리기엔 불확실성이 많다. 가장 불확실한 것은 소련의 향방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소련이 눈을 안으로 돌려 경제위기 해결에 전념하는 한 이 시대의 또하나의 긍정적인 부산물로서 전세계에 걸쳐 지역분쟁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레너드 스펙터는 이라크처럼 강력한 지역국가로 성장한 일부 국가들이 미국의 이해에 도전할지 모르나 소련으로부터 과거와 같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세계의 다극화 속에서도 소련의 위축에 따라 미국은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남ㆍ북 군축에「4강지렛대」활용하라/「한반도군축」의 바람직한 방향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일원화 해야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쟁의 비극을 겪은 우리에게 있어 남북한간의 전쟁재발방지 및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현돼야 할 남북한 모두의 과제이다. 특히 지난 40여년동안 지속된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결상태와 군비경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커다란 경제적 부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심화시키게 되어 한반도 분단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소간의 화해,유럽군축의 성공적 추진,그리고 독일통일 등 유럽에서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동북아에도 파급되어 냉전시대의 마지막 대결장인 한반도에서 남북한관계의 개선과 군축협상의 개시 등 극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게 되었다. 지난주 남북한이 고위급 정치ㆍ군사회담을 열기로 합의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개최된 한반도 군축학술회의에 남북한의 학자들이 참가하여 상호간에 의견교환과 활발한 토론을 가졌다는 사실은 한반도 군축협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지난 70년대 초반의 남북적십자회담 개최이래 한국은 이산가족의 재회,남북한 경제ㆍ사회ㆍ문화교류 등 비교적 합의점을 찾기 용이한 부분부터 남북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해 왔다. 반면에 북한측은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의 철폐 등 정치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남북대화는 서로간의 상이한 입장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정부의 성공적 북방정책 추진과 노대통령의 UN연설 등 통일외교 노력에 힘입어 한반도 문제는 주변국가들과의 협력속에서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한 해결책의 모색이라는 상황에 다다랐다. 특히 한소 정상회담 개최의 충격,중 소로부터의 개방 압력 및 국내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의 고립과 폐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남북대화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군축협상에 임하는 남북한의 입장은 물론 같지 않다. 우선 한국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와 상호신뢰구축이라는 차원에서 군축협상에 임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남북한 군사력의 감축 그 자체를 한반도 대결상태를 종식시키는 전제로 이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측은 군축협상을 통하여 남북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사회의 개방을 유도하려고 하는 반면,북한은 절대적인 고립을 탈피하고 대내외적인 압력을 무마시키면서 협상자체를 정치선전장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북한은 88년 11월7일 남북한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의 완화를 위한 「포괄적 평화방안」의 채택 및 남북고위급 정치ㆍ군사회담을 제의한 바 있으며 그 주요내용은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남북한 군사력의 단계적 감축,그리고 3자회담을 통한 미ㆍ북한간의 평화협정의 체결 및 남북한간의 불가침선언 등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도 남북한 신뢰구축과 긴장완화 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기 위한 남북고위당국자회담과 이를 위한 예비회담을 제의하였으며 회담의 주요 의제로서 상호비방의 중지를 비롯한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그리고 다각적 교류ㆍ협력실시와 군사적 신뢰구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5월31일 북한이 제시한 군축방안도 남북무역감축과 외국무력의 철수 등 종전의 제안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북한은 최초로 신뢰조성을 위한 제조치들,즉 한국이 제안해온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와 고위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설치,그리고 군사연습상호통보 등에 합의할 의사가 있음을 표명함으로써 군축협상의 가능성을 보여 주게 되었다. 이번 스탠퍼드대학 주최 학술회의에서 한국측이 「선신뢰구축 후군축」방안을 제시했을때,북한측이 여전히 신뢰구축보다는 군비축소가 선행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북한측 공식입장을 고집한 것은 이 회의의 성격상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한국측이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조치의 일환으로 남북한간의 지속적 대화의 필요성을 지적하자 북한측도 이에 동의했으며,남북신뢰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이전보다 좀 더 유연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군축협상의 성공여부는 남북한간의 신뢰구축을 원칙으로 서로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합의점을 찾는데 달려있다고 하겠다. 이제 시작단계인한반도 군축협상이 과거의 남북대화에서 보여주었던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역할이 요청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군축협상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남북한 관계에 있어 북한의 협상전략과 우리의 통일외교를 조화시켜 나가야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다리기 보다는 먼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이를 위해서는 한국측이 신축적이고 효과적인 협상능력 및 대북한 포용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 군사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군사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어 군축협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과 보장이 수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간의 긴밀한 관계유지 및 북한의 국제적 고립해소를 위한 외교적 협력이외에도 동북아에서의 미소협력체제를 활용한 동북아지역 안보협력회의의 추진,그리고 유엔 등의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할 것이요청된다. 셋째 이러한 우리의 통일외교와 군축협상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협상주체인 한국정부의 입지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협상과정에서 예상되는 국내의 다양한 여론과 이견들이 민주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정부입장으로 귀착되었을 때 남북협상은 협상자체의 성공뿐만이 아니라 통일로 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박홍규 외교안보연 교수〉
  • 동독 훔볼트대 미셀교수는 말한다(이제 독일은 「하나」:5)

    ◎“「폐쇄체제」염증이 통합 앞당겼다”/일당독재ㆍ경제피폐 따른 국민불만 폭발/자본부족등 과제 많지만 시장경제 낙관 분단 독일이 하나된날,1일의 「D­마르크 데이」를 감격으로 보낸 동서독국민들은 이제 들뜬 분위기에서 벗어나 차분히 주변을 되돌아 보고 있는 모습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왜 그것이 가능했으며,앞으로 무슨 문제점이 있고,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민족사 변천의 전환점에 선 그들이 곱씹고되새겨 볼 구석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독지식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동베를린 훔볼트대 경제학교수 크나후터 미셀박사를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경제ㆍ사회ㆍ 통합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세대에서는 희망할 수도,기대할 수 없었던 역사적 선물을 독일 민족에게 안겨 주었다. 통일이란 꿈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동서의 화폐가 어느 한쪽의 것으로 단일화 됐다는 사실은 실무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나 그것이 바로 실질적인 분단종식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민족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평소 통일에 대한 귀하의 생각은 어떤 것이 있나. ▲먼저 얘기 했듯이 먼 장래의 것이며 우리 세대에서는 그 기반이나마 착실히 다져두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아 왔다. 언젠가는 이루어야할 분단민족의 과제가 통일인 것만은 사실이나 1년전만 해도 누가 오늘과 같은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난 1년간 급속히 진행된 통일추진 작업들이 제수준을 밟았다고 보는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미화되게 마련이다. 칭찬받을 만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나는 지난해 11월 베를린 장벽붕괴 이후 가시화되기 시작한 통일이 피바다속에서 이루어 질 것인가,아니면 시민들의 자유스런 의사표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평화적으로 성취될 것인가에 대해 매일 매일 걱정하면서 89년을 넘겼다. 자칫 잘못했으면 굉장히 비참한 사태가 초래 됐을지도 모른다. 서로 결과는 다르지만 중국 천안문사태나 루마니아사태가 비극을 초래한 점은 똑같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던 점을 돌이켜 보면 소름이 끼친다. ­통일의 가능성을 점친 것은 언제쯤인가. ▲호네커가 실각하고 두달쯤 뒤에는 통일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한스 모드로브가 만나 민족문제 해결에 희망적인 작업을 해내는데 실패했더라면 동독사람들은 통일작업의 추진을 포기 했을지도 모른다. 공산독재정권타도 데모는 그 목적이 성취되자 자연스레 통일요구 시위로 바뀌었고 다시 콜­모드로브 작업의 격려를 위한 궐기대회 비슷한 성격으로 변모했다 상황이 이쯤 되면 거리낄 것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동독국민들을 처음 거리로 나오게 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공산당 일당독재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폐쇄사회의 모순,경제침체 등 원인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여행할 수 없도록 묶어둔데 대한 반발과 불만의 폭발은 평소 강제로 주입시켜온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해 동독시위의 첫 구호는 「여행자유화」였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위에 앞서 계속된 서독으로의 대탈출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또 차 한대 사려면 13년을 기다려야 하는 침체된 경제상황이 부채질을 한 셈이다. 동독 국민들은 처음부터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억압된 사회는 어떤 하찮은 동기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계속되어 오던 동독은 자본주의 서독으로 흡수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만은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경제형태는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독의 예를들면 주택ㆍ의료ㆍ교육문제 등에 있어 사회보호를 위한 그물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급격히 변동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의 점진적인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변화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더욱 강화되고 존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경제통합을 해석한다면 동독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급류가 흐르는 강을 헤엄쳐 건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윤이란 생소하면서도 매력있는 열매를 보장하고 있는 강건너 저쪽의 시장경제를 향해 힘들게 헤엄쳐 건너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동독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어느정도의 경제규모는 유지하고 있어 강건너 저편에 도달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을 건너려는데 가로막는 것은 없는가. ▲솔직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도 모자란다. 생산시설은 낡고 경영기법도 뒤떨어져 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바뀌는데 대한 모델도 없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숱한 시행착오가 뒤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통합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완전통일에 지장을 줄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경제통합이 완전통일의 첫관문이라고 보는가. ▲물론이다. 분단의 골이 깊어져 있는데,완전통일이 한번에 달성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헛꿈에 불과하다. 통일은 해야겠고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아직 불가능할 때 우선 경제통합부터 실시할 수 밖에 없지않겠는가. 이론가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통합이전의 단계로대차방법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일단 통화통합으로 시작했고 큰 무리가발견되지 않고 있느니만큼 잘 진행 될 것으로 생각한다. ­동독은 이념적인 면에서 과거의 「동구」에서 이미 떠났다. 그러나 옛 우방들과의 관계 마저 끊을 수는 없다고 보는데,앞으로 동구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는가. ▲관계가 더욱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도 이미 과거의 이념 굴레 안에서의 친구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며 또 스스로도 변하고있다. 앞으로의 세계,미래의 유럽에서는 옛날과 같은 이분법의 친소관계가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되고 하나의 국가가 되더라도 과거에 맺은 조약들은 계속 지킬 것이며 그들과의 경제관계도 더욱 수월해지고 깊어질것이다. ­독일의 통일을 겁내고 있는 이웃나라들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 ▲「독일」하면 모든 인류는 「전쟁」을 연상한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이야기이다. 우리는 다시 큰 힘을 가지고 이웃에 간섭하고 세계를 귀찮게 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가우리의 얘기를 쉽사리 믿으려 하겠는가. 정치적 통합이 뒤로 늦어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 히틀러가 힘으로 유럽을 전쟁속으로 몰아넣었으나 결국은 항복으로 끝났고,그뒤의 독일역사는 민족분단 비극사이다. 우리는 이같은 역사적 교훈을 늘 명심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통일이 정말 올해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전독총선이 끝나면 바로 실현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동안 과정에는 국민들의 힘이 큰 작용을 했지만 이제부터는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에 달렸다.
  • “남북군축 3단계 구체방안 연구”(의정중계 26일 본회의)

    ◎용산 미 기지 이전 부담경비 밝혀라 질문/남북 신뢰조성까진 휴전체제 필요 답변 ◇조순승의원(평민)=정부는 7월중 한소수교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할 예정으로 있으나 소련관계자들은 수교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소련이 유보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며 수교시기는 언제쯤으로 전망하는가. 정부는 한중 수교문제를 협의키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현재 어느정도 관계진전을 보이고 있는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우리의 통일방안을 결정할 의사는 없는가. 일본은 우리나라 예산의 4배가 넘는 군사비를 쓰고 있는데 일본의 군사정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박관용의원(민자)=남북한 대결은 남의 「경직된 안보논리」와 북의 「폐쇄적 주체논리」의 소산이다. 이제 더이상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은 종식되어야 한다. 북의 군축제안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없고 핵무기 개발 등도 고려해야겠으나 소련이 개혁과 군축을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의 제안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긴장완화의 호기로 이용해야 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남북한 불가침협정의 수용이나 선후없는 교류협정 및 선 군사문제 해결방안을 수용할 의사는. 북측의 군축제안에 대한 우리측의 대안은 무엇인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개정용의는. 통일원의 위상제고와 예산증액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몽준의원(민자)=한소 정상회담등 북방외교의 성공적 전개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약화시키거나 혼란상태에 빠뜨릴 위험은 없는가.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일부 젊은이의 좌경화 환상을 일깨워 줄 교육계획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재래식무기 감축이 실효가 있겠는가. 군축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은 무엇이며 북한이 지난 5월31일 제안한 군축안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무엇인가. 군비통제조정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용산기지 이전의 소용기간과 우리측부담경비를 밝혀라. ◇강영훈국무총리=북방외교는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개외교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초당적 접근방식을 취해나가겠다. 한소 수교원칙은 합의됐으나 그 시기는 보류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는 정식외교 수립에 우선 비중을 두고 있으나 실질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소련은 경제협력문제등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다소 입장차이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교시기문제등은 양국이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갈 것이다. 대통령의 지난 방일때 아키히토 일왕과 가이후총리등이 과거 한일문제에 대해 명백히 사과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제 과거사는 일단락 짓고 한일간 선린우호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일왕의 우리나라 방문은 양국 국민들의 환영하는 분위기가 성숙될 때 실현될 것으로 본다. 최근 북한의 군축제안은 현실여건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용어사용등에도 신중을 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대내외 선전에 더큰 비중을 두고 있어 근본적으로는 종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고위회담등이 성사될 경우 적극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군비통제문제등을 다루기 위해 군비통제종합조정기구의 설치를 검토중이다.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의 남침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될 경우 한미 양국간에 신축성있게 논의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상황변화등을 반영,개정할 수 있으나 국가의 안전보장 차원에서 현행골격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최호중외무장관=외교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교섭과정에는 불가피하게 비밀로 할 때가 있다. 한소 정상회담도 북한의 존재를 의식,소련측의 비밀요청이 있었으며 소련도 고르바초프대통령 측근 몇명만 정상회담 개최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청구문제는 지난 65년의 청구권협정 조인으로 법적으로는 이미 매듭된 것이다. 김­오히라메모는 외교교섭과정에서 행해진 일로 공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일본의 군사비 증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주권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나 주변국가들의 과거경험을 고려,전쟁포기를 명시한 일 헌법과 자위권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직ㆍ간접적으로 충고했다. ◇이상훈국방장관=유럽의 군축모델은 개별국가간 협상을 벌여야 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주도하고 주변국가가 지원하는 형태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군축을 위해 3단계의 구체적 추진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2천명의 주한미군 감축은 미 국방성이 사전 검토한 바 없으며 미 의회보고과정에서 급작스레 결정된 것이며 한미간에 충분히 협의되지 못했다. 주한미군 감축은 비전투군 중심으로 최소한 감축예정이며 유사시에 대비한 공동작전문제를 협의중이다. 7천명의 규모만 결정된 감축문제는 오는 11월 한미 안보회의에서 구체적 시행시기와 대비책등이 결정될 것이다. 북한은 22개 여단의 특수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북한의 40% 수준에 있다. 장비도 북한의 우수부대에 비해 열세에 있으며 한국군내 특전부대가 최정예부대다. 군조직 개편은 독자적인 군지휘체제로 자주국방을 이루려는 것으로 남북한 군비통제 가능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홍성철통일원장관=북한의 군축제의는 종래 대남전략과 달라진 게 없다. TV와 라디오의 일방적 개방은 대남 기본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상호개방이 바람직하다. ◇조희철의원(평민)=정부는 대소정책에 자신감과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그리고 국내 소련관련 연구현황을 밝혀라. 6공화국이후 최근의 샌프란시스코회담까지 북방외교 추진과정에서 사용한 자금내역을 밝혀라.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가. 민족동질성 회복과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문화ㆍ경제분야 및 TVㆍ라디오 등 전파교류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핵보유 보도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밝혀라. ◇박승재의원(민자)=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외교ㆍ안보ㆍ통일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소수교가 언제 실현되며 수교가 계속 지연될 때 이에 대한 대비책은. 북방정책의 성과나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를 통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대폭적인 대북한 화해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한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통해 북한측에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 밝혀라. 정부는 7ㆍ7선언이후 북한과 미 일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측면지원한 내용은. ◇강총리=북한은 남북한 정상회담에 아직까지 부정적 입장이나 국제환경등을 감안할 때 계속 거부키는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평화통일에 접근하고 남북 신뢰조성에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며 이를 국내정치에 이용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대치하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남북간 신뢰조성 및 평화정착이 될 때까지 휴전협정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간 민족공동체헌장이 제정되고 남북연합이 제도화돼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 대외여건 변화와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실천적 대북 화해조치를 꾸준히 전개하겠다. 북한의 자존심을 손상안주는 방향에서 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 ◇최외무=한ㆍ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은 북한의 선동 대남정책과 우리의 통일정책 그리고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는다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김일성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으며 노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것 ▲우리는 북한에 군사적 우위를 행사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ㆍ소교포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문제는 거주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데다 교포들이 고국에 대해 과다한 기대를 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국방=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성실하게 남북대화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북한을 군비통제협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전력증강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서독이 동독보다 3배이상의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경제ㆍ군사력 양면에서 우세를 보일 때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
  • 한반도에도 신데탕트 바람 분다/미ㆍ유럽서 본 「한국통일의 전망」

    ◎미국의 시각/동구변혁이 분단해소의 촉매로/평양 폐쇄주의가 장애물… 자유왕래 실현돼야 일찍이 공산주의의 멸망을 예고했던 미국의 석학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교수는 『유럽문제가 해결되면 국제적 관심이 한반도에 쏠려 한반도 통일 논의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한반도 통일은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카터 미행정부에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의 이같은 낙관론은 지난봄 동북아 문제협의회에 참석한 한국 의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피력된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2차대전후 인위적으로 분단된 한­월­독 가운데 월남과 독일은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이겨서 분단문제를 해결했다』고 상기시키며 『남북한 통일문제가 한 체제에 대한 다른 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수렴될 것인지,아니면 타협형이나 제3의 방식으로 수렴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앞으로 북한 공산체제는 살아 남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과는 뻔하다』면서 한반도에서 독일식 통일의 재현 가능성을 강력히 예견했다. 북한을 압도하는 남한의 경제력과 인구도 이같은 예견의 바탕에 깔려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남북한문제 전문가 가운데 소련의 개혁과 동구공산주의의 몰락이 앞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촉진시키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을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도 아직은 없는 것 같다. 통일의 당사자인 남북한간에 기초적인 교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문제를 운위 한다는 것이 시기상조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진스키의 견해도 한반도 통일의 긴박성을 역설했다기 보다 세계적 변화의 맥락에서 통일 여건이 호전 됐음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스티븐 로젠펠드는 『2차대전후 해방된 한반도를 통일국가로 건설하는데 실패했던 미국과 소련은 이제 냉전 종식과 더불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독일과 동구의 산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통일과 사회주의 국가의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 방안에 관한 미소의 공동 연구가 지금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이 일을 바로 추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정책은 무엇인가.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환영한다. 우리는 남북한 대화가 통일달성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통일을 촉진시킨 최근 사태들은 한반도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분단된 지역의 대표들과 분단 정부의 관계관들이 긍정적인 대화를 할 경우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기반 위에서 통일의 기초가 마련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독일에서 터득했다.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사태 발전이 있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다』 솔로몬의 답변이 시사하듯이 한반도에는 아직까지 통일의 기초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시각이다. 한반도가 통일 되려면 우선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완화되고 자유 왕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미국은 말하고 있다. 또한 신뢰구축 조치가 이룩되면 북한이 통일의 최대 장애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추가 감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문제들을 논의할 남북대화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판국에 어떻게 먼 통일의 시기와 방법을 예측할 수 있겠느냐고 미정부 관계자들은 반문한다. 최근 뉴욕 타임스지는 『지난해 독일 통일의 돌파구를 열었던 신뢰구축 조치가 한반도엔 아직 존재하지 않고 있다』며 남북한의 극적인 통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타임스는 그 이유를 『남한과의 서신 교환 및 전화통화를 봉쇄하고 무역도 거의 하지 않는 북한의 폐쇄주의』에 돌렸다. 저명한 아시아통인 로버트 스칼라피노교수는 통일문제 접근과 관련한 남북한 정부간의 대립,즉 남쪽은 경제 및 문화 접촉의 증진을 통한 신뢰 분위기 조성을 선호하는 반면 북쪽은 처음부터 광범위한 정치 군사 협정을 요구하고 있는 이견의 해소를 선결해야 할 큰 과제의 하나로 지적했다. 한반도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한결같이 낙관론을 펴고 있다. 특히 78고령인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아 강조한다. 미국무부의 북한문제 전문가 존 메릴은 『북한이 사회주의 세계에 충격을 준 민중소요를 피하려면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한 노력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문제는 북한이 모방할만한 경제개혁의 모델이 사회주의 세계에는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일의 관건인 북한의 변화는 이처럼 돌파구 없는 경제문제에 의해 촉발될지도 모른다. ◎유럽의 시각/「신뢰의 장」 넓힐 유연한 자세 필요/독일과는 달리 한반도문제는 예측못할 난제 한반도문제를 보는 유럽의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로 분류된다. 그 첫번째는 최근의 국제정세가 한반도문제해결에 어느때 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을 토대로 한 긍정론이다. 이 견해는 대세의 흐름에 힘입어 한반도문제도 이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으며 통일이라는 좋은 열매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고 사뭇 희망적인 전망에 인색치 않다. 그러나 또다른 쪽에서는 한반도문제는 여전히 앞을 내다 보기 힘든 난제중의 하나로 판단하고 있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남북한의 분단해소문제는 동서독의 그것과는 기초부터 다를 뿐만 아니라 분단상황이나 북한정권의 특수성 등으로 미루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동서진영간의 해빙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한반도만이 예외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부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인식이다. 파리대학의 기 소르망교수는 『한반도의 분단이 얄타체제의 산물인 점을 고려한다면 이념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얄타체제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당연히 한반도의 분단해소를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전제,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정세변화는 분단해소작업의 착수를 위한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절차만 남겨놓고 있는 소련의 한국승인,중국과 한국과의 관계개선노력,미국과 북한과의 접근 움직임등은 동북아평화정착에 필수조건들이며 이러한 조건들이 하나 하나씩 충족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야말로 한반도통일작업의 시작단계로 보아야 마땅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폴란드 국제문제연구소의 레세크 스즈크박사는 한국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대북한 대화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주 가까운 시기」에 그러한 노력의 성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같은 견해들은 한반도통일문제와 관련한 외적요인 또는 주변환경변화추이를 토대로 한 분석들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 북한의 자세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즉 지난달의 미군유골 인도,미국에 대한 비난 중단,대서방접근 노력강화 등은 전례없는 온건노선의 표방으로 받아들여진다(프랑스ㆍ르몽드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그들의 2대동맹국인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관계개선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참아내기 힘든 국제고립화 현상이 초래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역대 어느 정권보다훨씬 차원 높은 대외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이미지가 한껏 고양되어 있는 한국으로부터의 외교적 도전에 대처해야만 하는 북한은 어쩔수 없이 온건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고 개방을 준비해 나가야 할 입장에 처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동ㆍ서독과는 달리 직접 전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좌ㆍ우익의 극심한 대립의 상처를 안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해소문제는 상호불신의 제거작업에서부터 착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국 리즈대학의 에이든 포스터카터교수도 북한에 있어서 「변혁」이나 「개방」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이른바 「주체사상」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정권유지의 틀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급격한 변화는 기대하기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말하자면 변혁과 개방을 전제로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는 북한이 쉽사리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공산주의 또는 스탈리니즘의 패퇴,이데올로기의 가치전환으로 표현되고 있는 동구의 변혁과 같은 이념적 전환이 북한에서도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관계전문가들은 북한의 이같은 자세와 입장을 고려해 가면서 모처럼 성숙되고 있는 국제정치질서의 호기를 놓치지 말고 적절한 대응책을 세워나갈 때 한반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에 곁들여 한국은 동구나 소련ㆍ중국과 국교를 트고 나면 북한도 어쩔 수 없이 문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민족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상호신뢰와 양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이며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는 충고가 뒤따르고 있다.
  • 한국전 40돌 맞아 재조명 미 유에스 뉴스지

    ◎“잊혀진 전쟁”6ㆍ25… 「공산화 도미노」막았다/동ㆍ서 이념대립서 군사충돌로 급선회/「값비싼 희생」은 동구민주화와 연계성/“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한국인 모든 세대에 깊이 자리” 미국의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6ㆍ25 40주년을 맞아 「잊혀진 전쟁」을 재조명하고 이 전쟁이 남긴 유산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의 현실을 분석하는 특집기사를 6월25일자 카버스토리로 다뤘다. 장장 14쪽에 이르는 유에스 뉴스지의 특집기사를 요약한다. 지금부터 꼭 40년전 장마비가 내리는 아침에 시작돼 그후 37개월동안 이미 수탈당한 아시아 변방의 반도를 뒤흔든 야만적인 투쟁은 마지막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후기인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서문이었다. 이것은 갑자기 열전으로 변한 냉전이었고 공산주의 사상 가장 담대한 「국제해방전쟁」이었으며 유엔으로서는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경찰업무」였다. 판문점이라는 무인지대의 황량한 「휴전마을」에서 교착상태로 끝날 때까지 이 전쟁에는 22개국이 참전했고5백만명의 인명이 이로 인해 희생됐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정치적ㆍ경제적 소요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발발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미국인들의 기억속에 미국의 킬링필드였던 안개낀 산들만큼이나 아물거리는 존재로 남아있다. 폭찹힐이나 하트브레이크 리지에서,또는 장진호에서 퇴각하는 길에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값하는 기념비는 어디에 있는가? 베를린 장벽이 유럽 분단의 상징이라면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은 아시아의 베를린 장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2주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을때 이들은 냉전의 가장 뚜렷한 흔적인 한국의 분단상태를 언젠가는 끝낼 수도 있을 해빙작업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아시아에서 화해의 봄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 양대 종주국인 중국과 소련은 자신들이 지난 1950년 파괴하려 했고 그후 40년간 무시하고 비난하고 전복시키려 애써 왔던 한국과의 외교재개를 위한 새로운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냉전의 모델◁ 한국전은 유럽일변도였던 미국의 관심을 태평양쪽으로 되돌렸다. 2차 대전후 극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약화되기 시작했었다. 트루먼행정부는 「중공」과의 타협에 접근하게 된다. 당시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아시아는 서방의 군사적 영향력,경제력 통제 및 사상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고 기술했다. 한국전이 중국과 소련간 불화의 서막이었다는 증거가 현재 나타나고는 있지만 당시 한국전은 획일적 공산주의의 이미지를 강화했으며 미정책입안자로 하여금 이때문에 오랜기간 골머리를 앓게 해왔다. 한국전은 무엇보다도 냉전을 정치ㆍ이념적 성격에서 군사충돌로 변모시켰다. 이는 전후 봉쇄정책의 촉매일뿐 아니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표현한대로 「군사산업 복합체」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51회계연도 미군사예산은 1백40억달러(책정기준)에서 53회계연도에는 5백40억달러로 상승된다. 보다 놀라운 점은 미국의 대외 원조계획의 군사화이다. 1950회계연도의 경우 군사원조가 대외원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60회계연도에 41%로높아졌다. 한국전은 또한 냉전기간을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괴롭혀온 기본적인 모순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한편으로 국내에서 악의에 찬 반공주의에 반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에서는 공산주의 침략이 이루어지는 세계 어디서고 이를 퇴치한다는 결의를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50년 9월30일 북한이 남침을 시작한지 3달째가 되는 날 트루먼은 국가안보회의문서 68호에 서명한다. 이 문서는 『소련의 강대국 부상을 막기위해 미국은 희생이 어떠하더라도 국내외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할 결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미 극우세력의 득세◁ 다른 수준에서 한국전은 핵시대(소련은 전쟁발발 3개월전 첫 핵실험에 성공했음을 발표한다)에서 전쟁이 가열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 전쟁이었다. 이같은 새로운 「제한전」의 개념은 그러나 중국을 핵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51년 3월 맥아더는 중국 로비스트였던 조셉 마틴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트루먼의 제한전 개념을 공개적으로통박한다. 그는 『공산주의가 세계무대 장악을 위해 준동하는 지역이 아시아』임을 상기시키면서 『아시아가 떨어지면 유럽도 공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령에 순종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트르먼은 마침내 맥아더를 해임하나 공산주의 「격퇴」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맥아더가 밀려난데 자극받아 존 맥가시상원의원은 공산주의 동조세력이 트루먼 행정부안에 도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로부터 13년후 피그만사건이 있고난후 미국이 아시아에서 또다른 제한전으로 치달을 무렵 배리 골드워터상원의원은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방위를 위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맥아더를 상기시켰다. 이같은 우익노선은 마침내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미국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잊혀진 전쟁◁ 한국전의 여파가 오래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에 관한 한 가장 놀라운 것은 거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수는 5만4천여명으로 한 세대후의 베트남전의 미군희생자 5만8천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미국인들의 한국전에 대한 기억은 뚜렷한 것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에게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에서 비겼다는 사실은 결코 달갑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트루먼대통령은 ▲징집연장 ▲세금인상 ▲임금ㆍ물가 통제부과 등을 취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고 하겠다. 또 베트남전이 TV를 통해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에 비하면 한국전은 신문에나 조금 보도되는 등 일반인들의 관심밖의 일이다. 한국전이 끝난지 40년이 지난 지금 냉전이 종식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보건대 한국의 산하에서 치른 희생과 최근 프라하,바르샤바,부다페스트에서의 민주주의 태동은 분명한 연계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은 성공했으며 미국과 우방국들은 한국에서 공산주의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한 값비싼 희생을 치른 것이 분명하다. 최종적인 결과를 볼때 그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고 역사는 결론을 내릴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남북대결◁ 한국전쟁은 총성이 멈춘지 1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남북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이 경제기적을 거두고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물적ㆍ심리적 유산은 모든 세대와 사회계급에 걸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도쿄에서 발행되는 친북한신문의 편집인 손진형씨는 『전쟁은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휴전된지 37년이 되도록 남북한은 아직도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이며 1백51마일 휴전선에는 1백만의 병력이 마주 대하고 있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전에 간첩과 공산주의자를 113으로 신고하라는 자막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북에서는 김일성이 또다른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북한주민은 매년 열리는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동안 전투비상체제하에 놓인다. 김일성은 『미제국주의자와의 전쟁경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남쪽에서는 전쟁이 재벌이라는 신흥기업군이 자랄 수 있는 혼란스럽고 독점적인 시장을 마련해 주었다. 전쟁은 남북을 합쳐 1백50만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으며 수백만명의 인구가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인구의 대량이동은 도시화를 촉진시켰다. 전쟁이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남북 모두 군인들이 정치권력을 쥐도록 만든 점이다. 남에는 장성출신의 대통령이 3명이나 되고 그중 2명은 쿠데타로 집권했다. 북에서는 전현직 고위 장교들이 김일성의 강력한 지지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당의 고위직에 앉아 있다. 경희대 나종일대학원장은 『전쟁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성숙되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군사적인 수단과 독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지적한다. 아직도 남북 모두에게 분단상황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은 독일통일방식의 단계적 통일을,북한은 1국2체제 방식을 내놓고 있다. 한국전쟁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한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전쟁이 왜,어떻게 발발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는 당시 전쟁을 막을 통제능력이 거의 없었다』라고 진단한다. 전쟁이 한국민들에게 가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남한은 자신들이 1950년에는 갖지 못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한국전 기원과 성격」… 「6ㆍ25」 40돌 국제학술회의

    ◎스탈린,49년 3월 김일성 만나 “남침”확정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가 주최하고 통일원이 후원한 한국전쟁 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가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미소가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 등이 집중 토의됐다. 이중에서 한국전쟁은 미소의 갈등으로 빚어진 특수한 내전이면서도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고 주장하는 존 메릴 미국무성연구관의 논문 「한국전쟁의 기원 대답없는 질문」과 소련이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북한을 사주 한국전쟁을 도발했다는 윌리엄 스투웨크 미조지아대교수의 논문 「소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소개한다. ◎6ㆍ25의 기원/윌리엄 스투웨크 미 조지아대교수/크렘린,미ㆍ서구 밀착 저지 겨냥/극동에 긴장 조성… 미 경제난 유도 속셈도 한국전쟁은 주모자인 북한과 주요 군사물자 제공자이자 군사고문단 및 병력의 결정적인 공급자였던 소련,그리고 중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정보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에 소련이 이같은 모험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느냐의 의문이 남는다. 당시 소련은 팽팽한 긴장속에 미국의 핵무기와 잠재된 기동력에 눌려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49년 가을 마샬플랜의 시행,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성,서독정부의 출범,미의회의 대서유럽군사원조결의 등 일련의 사태로 미루어 볼때 미국의 관심이 서유럽에 집중됐다고 판단,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의 단결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국내외 문제의 최종결정권자였던 스탈린은 대외정책에 관한한 공개토론을 허용했다. 49년에서 50년에 걸쳐 프라우다지는 몰로토프,스슬로프와 같은 온건관료층의 견해를 주로 반영했고 이즈베스티야지는 말렌코프,베리야와 같은 강경군국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강경파들은 미국경제가 점차 퇴조하고 있으므로 소련이 서유럽에 압력을 가중한다면 미국은 곧 해외원조를 포기하고 서유럽에서 물러날 것으로 믿었다. 반면 온건파들은 서유럽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제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강조,소련의 압력이 오히려 서방국가를 결속시켰으므로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온건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유럽에서는 평화정책을 쓰는 대신 극동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국제긴장상태 조성을 통해 ▲국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소련주변 위성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분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정책전환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촉진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소련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에 따라 스탈린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북한의 남침 등 여러조치들을 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시행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으로부터 미국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49년 한햇동안 미국은 남한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으며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50년 1월12일 연설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방위체계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1월 중순에는 미하원에서 남한에 대한 경제원조안이 거부됐다. 스탈린은 이같은 상황이라면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동맹국들의 집단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49년 3월 김의 모스크바 방문시 북한의 침공을 논의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마지막 남아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되니 침공계획을 세우라고 격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과 군사원조 합의안에는 서명했지만 상호안전보장 조약의 체결은 피했다. ◎6ㆍ25의 성격/존 메릴 미 국무성연구관/초강국갈등서 비롯된 「특수내전」/이해 엇갈린 미ㆍ소ㆍ중의 대리전 양상도 지녀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북한은 결코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폐쇄체제의 영웅적인 자화상을 훼손하고 평양 당국으로 하여금 1백5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켰다는 죄를 스스로 인정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에 대한 영웅적인자화상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지속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수년동안 평양에서 열리는 반미투쟁월의 경축행사를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관해 북한사람들이 형식주의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자신있게 변호하지도 않는다. 평양 당국은 전쟁초기의 며칠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한 설명을 결코 출판물을 통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한국전쟁에 관한 학술토의에 참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를 유심히 살펴본 비판적인 독자라면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평양을 격하하거나 40년전의 엄청난 사건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특히 그들이 남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려면 이러한 태도는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남한도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 문제,즉 한국전쟁은 침략인가 아니면 민족해방전쟁인가에 대한 해답은 두가지 모두 해당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조전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강제적으로 가로놓여진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 1950년에 국토의 분단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것을 영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수단과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이승만대통령도 김일성이 남한으로 쳐 들어왔던 것처럼 북진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국제전인가 아니면 내전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도 해답은 양자가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소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강대국의 불간섭과 그에 따른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양체제의창출은 한국내의 좌익과 우익간 투쟁의 국내적인 측면을 강화했다. 이제 소련이 미묘하게 표명하고 있듯이 한국전쟁은 그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개입(현재 우리가 조심스럽게 표명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듯이 소련의 개입도 있었다)에 따라 국제화의 성격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두개의 한국이 상호 경쟁하는 국내적 성격이 다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 북한에 조속 개방 촉구/노대통령 귀국 인사

    ◎새 시대 흐름 순응,통일의 길 열때/남북 정상회담 수락 거듭 강조/한반도 냉전 종식 미ㆍ소도 바라/「한소합의」 후속조치 실무팀 구성/기상 기자간담 노태우대통령은 미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과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8일 저녁 특별기편으로 귀국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 환영행사에서 가진 귀국인사를 통해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더 나은 세계와 우리나라의 더 밝은 앞날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귀국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이제 한반도에서 냉전의 시대를 종식시킬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천명했다. 노대통령은 『한소 양국간의 협력관계 발전은 한반도에 전쟁의 위협을 줄이고 안정과 평화를 굳힐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의 경직된 폐쇄노선은 이제 한계를 맞았으며 북한도 새로운 시대의 이 도도한 흐름에 순응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북한은 폐쇄노선으로부터 하루빨리 개방으로 나와 우리와 함께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우리의 거듭된 남북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미국과 소련은 이제 한반도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제,강대국이 우리의 통일에 장애가 되었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들 다음세대가 전쟁의 위험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통일된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귀국한다』고 말하고 『동서독일의 통일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통일도 이 세기안에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공항 환영행사에는 박준규국회의장ㆍ이일규대법원장ㆍ강영훈국무총리 등 3부요인과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국무위원,주한외교사절 등 1천2백여명이 참석했다. 노대통령은 9일 상오 3부요인과 민자당의 3최고위원을 청와대로 초청,조찬을 함께 하면서 한소및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향후 대책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노대통령은 이어 11일 청와대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정상외교의 후속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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