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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7의 「정·경·군축선언」 요지

    ◎외채탕감·동구에 G7시장 개방 확대/공동가치에 바탕,국제협력관계 강화 서방선진 7개국(G­7)정상들은 16일 냉전종식과 걸프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의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정치선언및 군축선언을 채택한데 이어 17일 소련의 정치·경제개혁을 지지하고 소련을 세계경제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내용의 경제선언을 발표했다.런던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경제선언과 정치선언및 군축선언을 요약했다. ▷경제선언◁ ▲실질금리 인하정책,계속적인 재정적자 감축노력과 소비자 선택폭의 제고,물가 인하,기업부담 완화를 위한 경제적 경쟁력 확대 등이 필요하다. ▲자원분배를 왜곡시키고 공공지출의 확대를 초래하는 정부보조금은 규제돼야 한다. ▲관세및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감독하에 금년말 이전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해야 한다. ▲세계 에너지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연구개발 촉진 및 에너지 거래와 투자를 위한 장벽 제거,환경 및 안전기준 강화가 필요하다. ▲동유럽 경제개혁 지원을 위한 노력 재다짐의 일환으로 동유럽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간 연계를 환영하고 동유럽에 대한 민간투자를 고무하고 이들 국가가 G­7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소련의 경제개혁을 지지하며 소련 경제상황의 악화에 우려한다. ▲대부분이 채무국들인 빈국을 위한 사안별 부채탕감을 확대하고 제3국 및 부채문제와 관련한 IMF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약수요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경제회복 조짐이 점증하고 있고 무역 및 경상수지 불균형 현상도 개선되고 있으며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유엔체제와 무기의 이전 및 확산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정치선언◁ ▲G­7(선진7개국)과 EC(유럽공동체)는 평화적이고 정의로우며 번영하는 세계의 이상에 대한 확고한 공약을 재확인한다.G­7은 유엔을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국제체제의 강화를 촉구한다. ▲유엔안보리와 국제사회가 평화회복 및 갈등해소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라크가 모든 유엔안보이결의들을 이행하고 이라크국민과 인접국들이 협박과 탄압,또는 공격의 두려움없이 살 수 있을 때까지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들을 존속시킨다.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은 스스로 그들의 장래를 결정해야만한다.그곳의 상황을 우려하며 폭력행위의 중단과 영구적인 휴전 및 군의 병영복귀를 요구한다. ▷군축선언◁ ▲재래식 무기거래=대다수 국가들이 적절한 수준의 안정보장을 위해 무기 수입에 의존해야하며 자위권이란 고유의 권리가 유엔 헌장에 승인돼 있음을 인정한다.그러나 지난 걸프 전쟁은 한 국가가 자위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 막강한 병기를 보유할 경우,평화와 안정이 손상될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우리는 그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못하도록 보장키로 결의한다.모든 국가가 완전공개,협의,행동이라는 3대 원칙을 준수할 경우 그같은 진전이 이루어질수 있다고 믿는다. ▲핵,생물학및 화학무기 확산 방지 ①핵부문=핵확산방지 조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핵확산방지조약 비서명 국가들에게는 이 협정에 서명할 것을 촉구한다. ②생물학 무기 부문=오는 9월 열릴 생물학 무기 검토회의가 기존의 신뢰 구축 조치를 확대하고 효과적인 검증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기존 협약 조항의 이행을 촉진시키는데 성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③화학무기 부문=화학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은 강력하고 포괄적이며 효과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화학무기 금지 협약을 위한 협상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 런던 G7정상회담 무얼 남겼나

    ◎경제회담 탈피… 정치·군축에 “큰 비중”/한반도·중동등 지역평화 심도있게 논의/소 지원·UR협상등은 큰 테두리만 합의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이 17일 경제선언 채택과 함께 3일간에 걸친 협의를 모두 끝마쳤다.이번 정상회담은 동서냉전 종식과 걸프전 뒤의 새로운 국제질서 모색을 위해 세계의 지도자들이 공동협조하기 위한 기본틀을 마련한 회담이었다는 점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초청돼 G­7 정상들과 회담을 가짐으로써 동서관계사에 새 장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수 있다. 이번 회담은 특히 종래 경제정상회담으로 불리던 G­7회담의 성격에서 탈피,「재래식 무기와 핵및 생물·화학무기의 확산방지를 위한 선언」과 같은 군축선언을 채택하는 한편 중동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 마련등 지역평화 모색을 심도있게 다룬 정치선언을 채택했으며 경제선언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연내타결이란 큰 정치적 목표에만 합의했을뿐 세부적인 사항의 타결은 실무협상에 맡긴다는 태도를 견지,다른 어떤 때보다도정치성이 짙은 회담으로 기록될수 있는데 이는 새 국제질서 창출에 대한 각지도자들의 공통된 염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수 있다. 이번 런던회담의 주요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선언◁ 런던회담에서 채택된 정치선언의 초점은 유엔의 기능을 강화,새로운 세계질서가 유엔의 주도아래 정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라고 할수 있다.이는 지난 걸프전쟁때 유엔이 서방지도국의 단합과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신속한 대응을 함으로써 걸프전쟁 해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인식아래 유엔이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될수 있게 만듦으로써 유엔주도 즉 서방선진국들 주도의 새 국제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수 있다.특히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분쟁해결등 중동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이 이번 정치선언에서 높이 평가될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축선언◁ 이번 런던회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G­7회담 사상최초로 전쟁방지를 위해 군축선언이 채택됐다는 점이다.특히 유엔의 주관하에 세계의 무기등록 작업을 추진한다는 제안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핵확산금지조약을 강화·확대한다는 제안도 세계평화를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할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방의 대소지원 문제◁ 17일 채택된 경제선언은 소련을 세계경제에 동참·통합시키기 위해 지원을 제공할 준비를 갖출 것이라는 모호한 지원약속만으로 돼있어 일견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지원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여질수 있다. 그러나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점과 함께 앞으로 G­7 회담의 의장이 소련지도자와의 회담을 매년 갖기로 하고 소련에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에의 준회원국 자격을 부여키로 합의한 점은 G­7국들이 아직 대소지원의 구체적인 방안에는 합의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소련과의 협의를 통해 대소지원을 구체화시킬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언급◁ 메이저 영국총리는 16일 G­7회담 의장성명을 통해 남북한의 유엔가입과 남북고위급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대한 기대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의 조속한 핵안전협정 체결및 핵사찰 수용을 촉구했다.한반도문제가 G­7회담에서 논의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북한의 핵개발 위험이 최근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된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국제정세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런던회담에선 또 미소간의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 타결여부도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됐다. 결국 이번 런던 G­7정상회담은 소련에서 시작된 「신사고」를 지구전체로 확대시킴으로써 새 질서를 확립하고 동서화합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수 있는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 9년만에 START 조인 눈앞에

    ◎미­소 「핵무기 무한 경쟁시대」 막 내리다/서방경원 다급한 고르비,군축서 큰 양보/마지막 남은 탄두 투사 중량문제도 진전/양국 강경파 반발… 서명후 의회비준때 진통 겪을듯 미국과 소련간의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이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베스메르트니흐 소련외무장관은 워싱턴에서 4일간의 협상을 벌인 뒤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9년 동안의 긴 여로가 이제 정말로 종착역에 도달하고 있다』며 한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모든 이견이 해소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런던 서방선진 7개국(G­7)정상회담후 17일 있을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에서 START협상이 타결되고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이 이달말 또는 내달초 개최돼 이 자리에서 협정이 조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소가 지난 82년 착수한 이래 9년만에 마무리한 START협상은 지상·공중·해상에서 발사되는 장거리전략핵의 탄두수를 30%씩 감축하는 것이다.이미 타결된 유럽주둔재래식무기감축협상(CFE)화학무기감축협상과 함께 미소간3대 군축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START가 마무리됨으로써 세계는 핵경쟁시대에서 핵감축시대로 바뀌는 명실상부한 냉전종식의 전기를 맞게됐다. 이번 START 마무리는 지난85년 고르바초프 집권과 함께 시작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동구권의 민주화와 동서독 통일을 일궈낸데 이어 군사력중 가장 핵심인 핵무기분야의 경쟁포기를 통해 냉전종식을 완전히 정착시킨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예전의 핵무기 현상유지단계를 뛰어넘어 오히려 감축단계로 접어들게 됐기 때문이다.이로써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일명 별들의 전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막바지까지 양국간에 의견대립을 보인 문제는 ▲미사일 발사 실험 정보 교환 ▲기존 미사일에 적재된 핵탄두수 축소 방안 ▲START가 허용하는 새로운 미사일의 정의 등 3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었다. 이 가운데 첫번째 문제는 실험용으로 발사된 미사일이 지상관제소로 송신할 때 암호를 쓰지 말자는 미국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이제까지는 미국이 주로 해상에서 실험을 해 소련은 선박을 통해 자료수집이 용이한 입장이었던데 반해 미국은 소련이 주로 지상에서 실험하기 때문에 정보수집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두번째 이견은 최대 3개까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국의 마이뉴트맨 미사일에 1개만,최대 7개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소련의 SSN­18 미사일에 3개만 감축적재하도록 하는 등 각각 3종류씩의 핵탄두적재 감축대상 미사일을 양해하기로 했다.이런 방식으로 감축되는 핵탄두의 총수 상한선은 미국이 주장한 2천1백50개와 소련의 1천개중 소련쪽에 가까운 1천2백50개로 결정됐다.미국은 소련이 핵탄두를 감축했다가 나중에 슬그머니 원상복귀시키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유일하게 아직까지 미결상태로 남아있는 신형미사일 정의 문제도 나름대로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다.START는 새로 개발하는 미사일은 규제하지 않고 있으나 이미 개발,배치된 미사일의 경우 탄두탑재부분의 투사중량을 미국은 30%,소련은 15% 증가시킨 것을 신형미사일로 규정할 것을 주장했으나 21%로 하기로 절충됐다.문제는 탄두부분투사중량의 정의와 관련,소련이 대기권에 재돌입하는 부분에 한정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유도장치 등을 포함한 탄두부분 전체의 투사중량으로 규정하자고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중량이 작고 성능이 좋은 핵탄두를 새로 개발할 수 있는 미국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새미사일을 개발하느니 기존구형을 개량해 투사중량만 조금 늘려 START에 규제받지 않는 신형미사일이랍시고 내놓으려는 소련의 기도를 가능한 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얼핏보면 지극히 기술적이고도 지엽말단적인 분야 같지만 실제로는 START의 규제를 받지 않는 향후 핵경쟁의 균형여부를 가름할 매우 중요한 것이다.미국은 또 소련이 기존 미사일을 개량해 이미 생산단계에 이른 신형미사일을 의식,투사중량을 높게 규정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전략은 미국이 ▲해상발사순항미사일 3백67개 ▲공중발사순항미사일 1천6백개 ▲폭격기탑재 단거리미사일 2천6백8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5천56개 ▲대륙간탄도미사일 2천4백50개등 총 1만2천8백1개이며 소련이 ▲해상발사순항미사일 1백개 ▲공중발사순항미사일 7백20개 ▲폭격기탑재 단거리미사일 6백16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2천8백10개 ▲대륙간탄도미사일 6천5백95개 등 총 1만8백41개다.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이 해상 및 잠수함발사미사일 위주로 총량에서 다소 앞서있는 반면 소련은 지상발사 미사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실정이다.때문에 미국이 유효한 검증방법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해상발사핵순항미사일의 숫자와 검증방법에 구체적제한을 하기 보다는 제한의지만 천명하자고 주장하는 등 서로 우위분야를 규제대상에서 제외시키려 드는 바람에 답보상태를 면치 못해왔다.START가 타결되면 미국은 9천개,소련은 7천개로 핵탄두 보유수를 줄여야 한다. 이같이 중대한 START협상이 급진전을 보인 것은 현재 위기에 처해있는 소련의 대폭 양보에 의해 가능했다.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는 소련경제개혁의 필수요소인 서방세계의 경제지원을 G­7 정상회담에서 얻어내야할 절박한 필요를 느껴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을 워싱턴으로 급파한 것이다.군사력 감축을 통한 예산절감의 효과도 지대하다. 그러나 START가 조인된다 하더라도 미소양국내 의회의 비준과정에서 적지않은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사정거리 5천5백㎞ 이상의 장거리핵무기를 10% 감축한다는 내용으로 지난 79년 조인된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의 비준을 거부,파기시켰던 미상원의 반대파들은 『협정안이 미국에 유리하게 돼있다』고 시인하면서도 냉전이 종식된 현실에 비춰볼 때 보다 과감한 감축을 요구하거나 소련을 불신하고 있으며 소련 군부내의 강경파들은 고르바초프의 지나친 양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START협상 타결은 고르바초프에게 또다른 정치적 시험대가 될지도 모른다.
  • 레바논,PLO 무장해제/전투종식 합의/남부거점 지역서 주권회복

    【시돈 AP 연합】 레바논 정부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4일 레바논 남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PLO 게릴라들의 무장을 해제하는 한편 이곳에 레바논 정부군 병력을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이 나흘간의 전투를 끝내고 마련한 이같은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 인근에 위치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의 유일한 세력기반은 사실상 해체됐다. 또 이 합의를 계기로 레바논정부는 ▲남부지역에 대한 국가권위 재확립 ▲PLO게릴라들의 무장해제 ▲이스라엘에 공습빌미를 제공한 것은 물론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주둔 구실이 되었던 게릴라들의 테러종식 등 정책상의 실효를 거두게 되었다. 정부측 협상 대표 압둘라 알 아민씨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쟁이 끝나고 새시대가 시작됐다』고 선언하고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합의점에 도달했으며 이에 따라 정부군은 모든 지역에 평화적으로 진입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정부군이 시돈 동부 마을의 언덕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PLO 게릴라들에 대해 철수를 요구하며 접근한데 맞서 게릴라들이 대항하면서 유혈사태로 발전했는데 나흘간의 전투로 모두 46명이 사망하고 1백73명이 부상했다.
  • 탱크행렬 수㎞… 곳곳서 가옥·교회 불타/혼미 거듭하는 유고사태

    ◎강경파,“정부의 협상이 군작전 방해”/“군은 국민상대로 전쟁” 독 외무 비난 ○…연방군의 강경책으로 EC가 중재한 휴전이 하룻만에 깨진데 이어 3일 슬로베니아 곳곳에서 연방군과 슬로베니아방위군간에 전투가 벌어졌다고 슬로베니아 관리들과 현지 언론이 전했다. 크로아티아TV는 이날 하오 슬로베니아로 향하는 연방군의 중포와 수천명의 병력으로 이뤄진 행렬이 수㎞에 뻗쳐 있다고 전했다. 슬로베니아 현지 TV방송은 양측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방영했으며 이때 연방군탱크들이 포를 쏘며 교회와 가옥등을 파괴하는 모습이 비쳐졌다. 슬로베니아 라디오도 연방군 탱크들이 크로아티아접경 오르므즈에서 포격을 가해 가옥 여러 채가 불탔다고 전하고 이밖에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다고 보도했다.여러 도시지역에서도 연방군 공군기의 상공비행으로 인한 공습경보가 울렸으나 폭격은 없었다. ○…슬로베니아관리들은 블라고예 아지치연방군참모총장이 2일 『연방군이 당면한 전쟁을 가능한한 단기간에 끝내기 위해 공격을 가할 것이며 슬로베니아는 곧 분쇄될 것』이라고 말한데 대해 이같은 발언이 연방군에 의한 「사실상의 쿠데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옐코 카친 슬로베니아공보장관은 오스트리아접경 고르냐 라드고나지역등 곳곳에서 3일 상오 산발적 전투가 있었다고 밝히고 연방군측이 슬로베니아의 휴전제의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탱크와 병력을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메시치,“내가 군통제”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은 2일 슬로베니아인들이 『모든수단을 동원해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협상을 요청해』 슬로베니아에서의 군사작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연방정부를 비난했다. 유고 연방군 최고사령부 참모본부의 블라고예 아지치 연방군 참모총장은 스티페 메시치 신임 연방간부회 의장이 루블랴나에서 전투종식을 위한 회담을 개최하고 있는 가운데 가진 TV회견을 통해 『연방정부가 협상을 요청함으로써 군사작전을 방해하고 있지만 연방군은 적들이 휴전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사령부내의 강경파로 알려진 아지치장군은 연방군 가운데 슬로베니아 병력이 포함돼 있는 부대들이 슬로베니아방위군에 투항했다고 말했다. 한편 메시치 대통령은 아지치장군의 군사쿠데타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받고 『군은 내가 통제한다』고 말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은 3일 유고슬라비아연방군이 북부로 진격한 것에 대해 논평,『유고 군부가 미쳐 날뛰고 있으며 자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신설된 위기대처위원회 의장인 겐셔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에서 그럼에도 불구,유고사태가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날 오후 프라하에서 열리는 위원회 회의에서 그 대답이 분명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C,감시단 급파 ○…유럽공동체(EC)를 대표하는 3명의 외교관이 유고연방군과 슬로베니아공화국군간 유혈전투 감시를 위한 옵서버의 파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일 유고 수도 베오그라드로 출발했다고 네덜란드 외무부가 밝혔다. 네덜란드 외무부의 한 대변인은 이날 『EC감시단은 유고연방 당국과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 대표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EC외무장관들도 오는 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적대행위가 멈추지 않을 경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국가로 승인할지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네덜란드외무부 대변인이 3일 밝혔다. ○CSCE 긴급회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위기관리위원회 긴급회의가 유고슬라비아 분쟁을 토의하기 위해 3일 하오3시(한국시간 3일 하오9시) 체코슬라비아 수도 프라하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CSCE사무국이 2일 발표했다. ○유엔,중재노력 배제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은 유럽의 대유고슬라비아 평화회복 시도가 결말이 나기전에 유엔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고 3일 밝혔다. ○…유고군부의 무력행사에 대해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등은 유엔의 개입여부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유고연방군은 공격받지 않는 한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슬로베니아 주둔 연방군 부사령관 안드리야 라세타장군이 3일 밝혔다. 라세타장군의 발언이 슬로베니아의 휴전제의를 완전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지는 불분명하나 3일 하오늦게부터는 양측의 정면 대결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또 연방군은 메시치 대통령을 군최고통수권자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 노 대통령 후버연구소 연설(요지)

    ◎한·미,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공동노력/한국은 민주주의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 오늘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온 수많은 석학과 지도자를 배출한 스탠퍼드대학을 방문하고 세계적인 권위와 명성에 빛나는 이곳 후버연구소에서 미국의 각계 지도자와 친구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은 큰 기쁨입니다. 21세기를 앞두고 인류는 지금 새로운 혁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립과 유혈의 혁명이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혁명입니다. 동중부유럽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행복의 희생을 강요해온 체제는 잇따라 붕괴되었습니다. 자유와 행복을 향한 인간의 열망은 한 국가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초강대국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려는 노력으로 대결로부터 협력으로 그 관계를 전환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미래는 인류가 그 속에 항구적인 평화를 누리며 자유롭고 행복스럽게 살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모습으로 그것을 구체화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세기는 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많은 석학들의 예언이 있어왔습니다. 이를 상기할 필요도 없이 미래의 세계는 새로운 태평양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될 것입니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각료회의(APEC)에 참가하고 있는 12개 국가에서만 유럽공동체의 2배가 넘는 세계 총생산의 50%가 창출되고 세계 교역의 40%가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은 전후 이 세계의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이 지역 국가간에는 냉전시대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활발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강택민 총서기의 모스크바방문이 말하는 중소 관계,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이 말하는 일소 관계와 특히 북방정책의 성공에 따른 한소 관계의 진전 등이 그것입니다. 북한도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과 수교교섭을 벌이고 있으며 그들의 완강한 태도를 전환하여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소련·중국은 물론 몽고·베트남·북한에 이르는 사회주의경제국가들은 번영을 구가하는 태평양국가와의 교역,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시장경제국가와의 협력체제 안에 참여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의 세계를 눈앞에 보며 나는 태평양시대를 향한 협력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큰 방향으로 진전되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아시아태평양지역에도 냉전체제의 대결을 종식하고 안정의 확고한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아시아태평양의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국가로서 그 역할을 감소할 경우 그 공백은 불안으로 메워질 것이며 그것은 또다른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긴장은 이 지역의 안정을 저해하는 핵심적 요인이 되어왔습니다. 아시아태평양의 협력증진을 위해서도 한반도의 냉전종식이 가속화되어야 합니다. 둘째 아시아태평양의 번영이 개방을 통한 교역과 경제협력의 증대를 통해 지속되도록 해야 합니다.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이나 특정한 나라만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역내국가들이 그들의 발전단계와 경제력에 상응하여 서로의 시장을 개방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민족과 문화는 물론 경제구조와 발전단계가 서로 다른 이 지역 국가의 다양성을 조화하고 융합하는 협력을 촉진해나가야 합니다. 나는 이를 위해 모든 나라가 합치된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 지역 경제의 활력과 협력증대의 추세에 비추어 아시아태평양지역은 남북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세계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넷째 이제는 아시아태평양의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협력의 틀을 진전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을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역을 분할하는 소지역권의 형성은 보호무역 추세를 강화하거나 대립과 마찰의 소지를 넓힐 우려가 크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각료회의(APEC)가 이 지역에서 공동번영을 실현하는 훌륭한 모체로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강대국도,번영을 누리는 선진국도아닌 한국이 이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기여를 해왔으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우리는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실천해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겪어온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그 속에서 이룬 성취가 한국으로 하여금 변화하는 세계에서 참으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남북문제에 있어 한국은 최빈국의 단계에서 불과 한 세대의 기간에 역동적인 신흥산업국가를 이룩함으로써 가난한 개도국도 노력하면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다는 모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후 부흥을 이룩한 독일·일본과 달리 전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며 그나마 모든 것은 한국전쟁의 불길 속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세계가 서울올림픽을 통해 본 것은 전쟁이 몰고온 허기진 어린이와 피란민의 긴 행렬이 아니라 활력에 넘친 새로운 나라였습니다. 우리들의 성취는 더욱이 나라의 분단과 그로 인한 과중한 국방비의 부담 위에서 이룬 것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소중한 경험을 결코 우리의 것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우리의 이웃과 모든 개도국과 폭넓게 나누어 공동번영에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경제적 역량에 대한 자신감에 바탕한 북방정책은 한국 외교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남북한 관계의 개선과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는 9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의 오랜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긍정적 시발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방정책으로 태평양과 북방대륙을 잇는 길은 더욱 넓게 열렸으며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신선한 숨결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나의 6·29선언 이래 한국은 지난 4년간 인권과 자유언론·자유선거와 삼권분립,다원적 민주주의의 이 모든 원칙을 실현하는 민주화를 급속히 진전시켜왔습니다. 이제 굳건한 국민적 합의의 바탕 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올해 두 차례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가 실시됨으로써 민주주의가 온전한 제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전후 독립을 쟁취한 나라로서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이지상에 드물 것입니다. 한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언제나 미국이 곁에 있었다는 것을 한국국민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두 나라는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며 서로에 도움을 주는 긴밀한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 두 나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해나갈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의 동반자관계는 평화로운 하나의 세계와 번영하는 태평양시대를 이루어나가는 데 중추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자유 속에 새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공동의 이상을 나누는 우리 두 나라는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로부터 우리 모두가 소망하는 세계로 함께 전진할 것입니다.
  • 캄보디아 평화협상과 북한(사설)

    인지반도의 소국 캄보디아가 평화모색의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휴전합의와 실패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가운데 24일 또 한차례의 내전종식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항구적 평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여전히 불안한 출발이다. 우리가 캄보디아의 평화협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캄보디아의 분열과 대립 갈등 역시 한반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냉전과 이데올로기대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냉전이 종식되고 이데올로기가 무의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유산의 굴레를 아직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병상련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왕 시아누크공의 비동맹중립노선의 캄보디아가 냉전과 이데올로기갈등의 비극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론놀의 우경화쿠데타 이후 75년 월남과 함께 적화되면서부터였다. 적화통일은 기대했던 통일캄보디아의 사회주의평화가 아니라 크메르루주의 1백만 캄보디아인 학살이라는 죽음과 공포의 지옥을 초래했다. 그리고 공산 베트남과의갈등은 마침내 공산형제국간의 대립과 전쟁이라는 전례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소련을 조국으로 하는 세계공산주의의 환상은 이때 이미 끝장이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련과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헹 삼린파의 공산정부가 수립되고 이에 대항하는 친중국의 크메르루즈 및 온건공산의 인민민족해방전선 그리고 시아누크공의 민족주의세력연합의 지루하고도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내전이 12년 동안이나 계속되어온 것이다. 그것은 이미 공산주의를 위한 싸움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투쟁도 캄보디아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싸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파벌간의 세력다툼이요 이해갈등이며 기득권 싸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냉전의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비롯되었으면서도 냉전이 모두 무의미해진 지금까지 화합의 해결을 못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 해야 할 것이다. 평화협상이 시작된 것은 87년 12월이었다. 약 4년의 협상 끝에 도달해 있는 곳이 24일 발표된 무기한 휴전과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도입 종식합의인 것이다. 그 동안 소,동구의 민주화와 동·서독통일 등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캄보디아화합의 분위기도 많이 개선된 상태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세계는 이번 기회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캄보디아와 그 국민을 위한 제파벌의 양보와 희생과 타협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의 캄보디아평화와 화합의 실패를 보면서 우리는 북한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소,동구 등 세계적인 공산이데올로기의 패배와 포기를 보면서도 사회주의 고수만 선언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말은 그럴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북한공산당과 김일성 일가를 비롯한 그 지도자들 이른바 북한노멘클라투라(특권계급)의 기득권 수호선언이 아닌가. 그런 북한을 어떻게 민주개혁과 평화통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인지 새로운 각오와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 「6·25비화」 소 외교연 학자 본지 특별기고

    ◎“북침으로 꾸며라”… 스탈린,6개항 지침 시달/미 개입에 당황… “정면대결 피하라”/중국 파병따라 공군력 지원약속/「중국공산화」 미서 방관하자 남침 결심/종국엔 북한정권 지키기에 급급… 소,휴전 뒤 재도발 우려해 김일성 감시 서울신문은 6·25 41주년을 맞아 소련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의 B 발레노프 박사(역사학·필명)가 특별기고한 「6·25는 스탈린의 작품」을 게재한다. 발레노프 박사는 외교아카데미의 최고급 간부 중의 한사람으로 중국문제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소련내 최고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밀문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외무부 보관자료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장 극비문서 등을 토대로 한국전 발발 배경과 책임소재 등을 규명했다. 발레노프 박사는 자신이 남북한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현역 외무부 관리신분임을 감안,필명으로 게재할 것을 요청해 왔다. 정확히 41년 전 한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세계는 엄청나게 변했다. 소련은 그동안 이념적,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강대국들이 「냉전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도 한국전쟁의 진짜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N 아닌이 밝혀낸 새로운 자료를 비롯,최근 필자가 어렵게 입수한 극비문서들은 비록 단편적이나마 어떻게 해서 그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45년 소련군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 뒤 스탈린은 한국에서 얄타협정과 포츠담협정의 조항들을 위반할 의사가 없었다. 1948년 주은래를 만났을 때도 스탈린은 『중국과 북조선 동지들은 절대 해방전쟁을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혁명세력의 무력이 결코 우위에 있지 않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는 게 스탈린이 내세운 이유였다. 스탈린은 이렇게 모택동의 손발을 묶고 북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38도선에서 무력도발을 삼가도록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동유럽에서 제국주의세력과 싸우기에도 벅차다. 소련의 제1관심 지역은 유럽이다』는 게 당시 스탈린의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이러한 생각은 그러나 1949년 중국공산당이 승리를 차지하자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찾아온 모택동과 만난 자리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동안 아시아에서 공산혁명세력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소. 저개발국가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내 생각이 틀렸소』 중국공산당의 승리,동유럽의 공산위성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 경제가 꾸준히 성장추세를 보이자 스탈린은 관심을 한반도로 돌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소련대사관과 정보기관들은 한반도에서 혁명에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정보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었다. 『남한 정부는 붕괴 직전에 와 있고 경제는 침체됐으며 사회불안은 통제불능에 빠져 남한인민들은 한결같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정보보고들이었다. 남한 인민들은 북조선에서 전개되는 변화들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비민주적인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을 증오하는 반면 소련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대감을 품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소련 정보장교들도 한결같이 남조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사·이념적인 상황은 모스크바에서 지시만 내리면 권력을 탈취할 수 있다는 보고들을 울렸다. ○애치슨 성명에 안심 스탈린은 크게 고무돼 조만간 세계,특히 아시아국가들이 소련의 혁명모델을 뒤따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소련의 당연한 의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서 공산혁명을 수행할 때 미국이 적극 개입치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했다. 모택동을 만나서도 그는 이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1950년 6월12일 한국은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성명은 스탈린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당시 소련 외무부에서 지도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이 성명을 『미국이 한국의 군사분쟁에 무력개입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 스탈린은 미국의 대한 의사와 군사능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탐색토록 지시했다. 소련의 외교·군사·정보보고들은 남한내 미 군사력이 전혀 우려할 수준이 아니며 그나마 계속 감축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국에 파견된 첩보원들로부터도 유사한 정보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미 백악관에서 빼낸 정보들도 있었다. 이 정보들은 영국내 첩보원들에 의해 다시 「더블체크」됐다. 당시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의 고위직책에는 소련첩보 조직이 침투해 있었다. 영국정부가 미국정부에게 새로 수립된 중국 공산당정부에 대한 반대입장을 완화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정보도 런던으로부터 보고됐다. 트루먼 행정부내에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태에도 미국이 무력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정보보고들은 한국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특히 대응 행동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서 거의 「제로」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이밖에 소군 지도부는 미국이 이승만 정부를 지켜줄 수 있을 만한 병력을 한국주변에 배치해 놓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승만의 독재정치를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보고받았다. 스탈린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한 북한 주둔 소군장성들은 김일성과 함께 한국에서 군사도발을 하는 문제에 대해 크렘린이 관심을 갖도록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군사령관들과 김일성은 어느 주석에서 남한 괴뢰정부를 쳐부수자는 데 의기를 투합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여러 경로를 통해 스탈린의 귀에 들어갔다. 한국을 중국처럼 무력으로 통일시키자는 계획은 1949년말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 때 이미 구체적으로 검토됐고 스탈린은 이듬해 봄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최종결정을 발표하기 전 스탈린은 모택동의 의견을 물었다. 이웃 형제국의 「사회주의 해방운동을 종결짓는 일」에 모택동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전쟁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전쟁의 주요지침들을 시달했다. 1,전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보돼야한다. 2,소련이 전쟁에 개입됐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소군사 고문단은 전선으로부터 철수시킨다. 3,북조선 당국은 적과 세계 여론의 주의를 돌려놓기 위해 전쟁 개시 전 평화공세를 강화한다. 동시에 남한당국과의 그들의 앞잡이인 미국이 전면전쟁을 벌일 목적으로 북조선에 무력도발을 일으켰다는 각종 선전을 강화한다. 4,대남 전면공격을 시작하기 전 국지침투를 감행하고 적의 대응공격을 유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부분공격을 감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외부세계에 전쟁이 남측에 의해 도발된 것으로 믿게 하는 효과도 얻는다. 5,전면공격은 불시 기습적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수행돼야 한다. 6,군대가 38도선을 넘는 즉시 남조선 전역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다. 남조선내 「혁명진보세력」들은 북조선에서 군대가 당도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전전 평화공세 강화 전쟁 개시일인 6월25일 스탈린은 측근 참모들과 함께 자신의 별장(다차)에 앉아 전선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속 낭보가 날아들자 스탈린은 희색이 만면해 이렇게 말했다.『세계혁명에 관한 레닌 동지의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업의 큰 공훈자들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각 한국의 마을과 도시들에서는 수많은 남녀,어린이들이 포탄에 맞아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한 늙은 독재자의 탐욕과 광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된 것이다. 초기 작전은 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은 한달내에 한반도 전체가 해방될 것이라고 보고해 왔다. 스탈린은 측근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신 지도자의 위대한 천재성에 새삼 경외심을 가졌다. 스탈린은 한국전에서의 조기승리를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엄청난 사태반전이 일어났다. 그렘린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미의 반격은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됐다. 평양의 소련대사관에서 보내오는 전문들은 급전직하 비관적인 내용들로 바뀌었고 외교관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외부의 도움없이 김일성 군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들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측근 참모들은 김일성을 구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키자는 주장을 계속 내놓았다. 흐루시초프 몰로토프,베리야도 소련군 투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군이 미군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끝까지 소련투입에 반대했다. 한국전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다. 바로 이때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중공군이 개입한 것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미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군대를 투입시키기 전 모택동은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소군과 중공군을 한국전에 보내자고 스탈린을 설득시키려 했다. 스탈린은 남부 휴양지에 있는 자신의 시골별장에서 주은래를 만났다.그는 주은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들으시오,동지. 미군은 우리보다 훨씬 강하오. 만약 우리가 끼어들면 미국은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모두 파괴시키려 들 것이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결정을 내려야 하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것이지 아니면 소를 지키기 위해 사회주의 세계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인지』 주은래도 스탈린의 말에 수긍하고 북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택동이 보낸 전문 한통이 소련 주재 중국대사관에 입전됐다. 중공군을 한국전에 투입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스탈린에게 전달됐고 스탈린도 결국 이에 동의했다. 스탈린과 주은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중공군이 지상병력을 파견하고 소련군은 북한의 공중방위를 책임진다는 데 합의했다. 전쟁을 치르면서 스탈린과 모는 두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북한 공산정권을 지키는 것이고,또 하나는 미국과의 전면대결로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두 가지 목적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이 치른 인명과 물질적인 피해는 너무 끔찍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새 소련지도부는 현상고착을 정책목표로 결정했다(스탈린은 그해 봄 사망했다). 이듬해 흐루시초프는 『한국문제도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동료들에게 역설했다. 「두 개의 독일 두 개의 한국」 정책이었다. 흐루시초프는 이제 소련이 북한에 해줄 일은 북한동지들을 도와 북한을 근대화시켜 그 나라를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진열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제국주의 앞잡이 남조선과 무력전쟁이 아니라 경제전쟁에서 이기도록 하자』고 역설했다. 흐루시초프는 실제로 북한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북한은 점차 강성해져 갔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 들어 소­북한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동기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통치를 비난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형제국」의 대열에서 이탈,외부세계에 빗장을 걸고 소위 「주체사상」을 펴나갔다. ○모,주은래 보내 설득 소련이 북한정권에 대해 갖고 있던 신뢰감은 점차 옅어졌고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의 평화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이념담당 보좌관인 수슬로프는 수시로 외무부에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을 체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련지도자들은 북한대표단과 만날 때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련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규모 첨단공격무기르 공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소련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전통적인 팽창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이렇듯 신중한 정책을 고수하려 한 것은 바로 미국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부터 한국은 물론 기타 모든 문제에서 소련의 입장은 급격하게 변했다. 소련은 이제,첫째 모든 문제에 있어 군사적인 해결방식에 반대하고 있고,둘째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북한식 모델을 이제 더이상 지지하지 않게 됐다.
  • 노 대통령,7월 미·가 공식방문/출국은 이달 29일에

    ◎2일 부시·4일 멀로니와 회담/아태협력·「북한 핵」 대책 논의 노태우 대통령 내외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는 7월1일부터 3일까지 미국을,캐나다의 나티신 총독 및 멀로니 총리의 초청으로 3일부터 5일까지 캐나다를 각각 공식 방문한다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2일 상오 발표했다. 노 대통령의 이번 미·캐나다 방문은 국빈방문(STATEVISIT)이며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오는 29일 출국,모두 8박9일간의 순방일정을 마친 후 7월7일 귀국할 예정이라고 이 대변인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일부터 워싱턴을 방문,2일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냉전체제 붕괴와 걸프전쟁의 종전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와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특히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있어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방안에 관해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특히 남북한 유엔가입에 따른 한반도 냉전종식방안과 북한의 핵사찰수락 등 핵개발대책,미군의 한반도주둔문제 등이 집중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2일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하며 이날 저녁에는 부시 대통령이 베푸는 공식만찬에도 참석한다. 노 대통령은 또 미국의 퀘일 부통령 및 의회지도자 등 각계인사들을 접견한다. 노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하는 길에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들러 29일 스탠퍼드대학에서 한미 양국관계 발전에 대해 연설하며 30일에는 교민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3일 하오 워싱턴을 떠나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 도착,4일 멀로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캐나다 양국간 우호협력관계발전방안과 협력증진 문제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정부수립 후 18번째이며 노 대통령 취임 후로는 5번째이다. 또 우리 국가원수가 미국을 국빈자격으로 방문하기는 지난 54년 이승만 대통령,65년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26년 만에 이뤄지는 것으로 이번이 세 번째이다.
  • 신데탕트 맞춰 유럽방위력 재편/나토 「신속군」 창설의 안팎

    ◎대규모 군축 보완,기동군위주 운영/사령부는 독일에… 미선 병참 등 맡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16개 회원국 국방장관들은 28∼29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브뤼셀에 모여 다국적 「신속대응군」(RRC)창설을 승인함으로써 냉전 이후 나토의 위상변화를 위한 획기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향후 나토 군사력의 중추역할을 담당할 신속대응군은 기동성을 위주로 한 대국지전용이라는 점에서 과거 냉전시대 나토의 군사적 성격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1949년 창설 이래 나토의 제1목적은 소련을 축으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전면공격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바르샤바 기구가 해체를 선언한 마당에 나토의 성격전환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난해 7월 런던정상회담에서 나토정상들은 이 같은 성격변화 필요성을 인정하고 ▲핵무기 의존도 감소 ▲독일 주둔 나토군 감축 ▲유럽국들의 안보역할 제고 등 몇 가지 기본방향을 설정한 바 있다. 브뤼셀 국방장관회의도 기본 인식은 이와 같이 하고 있다. 즉,냉전 종식으로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고 따라서 대폭적인 군축이 필요하다는 점정,미국의 핵우산에 유럽의 안보를 계속 맡길 수 없다는 등의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속대응군창설이 확정됨으로써 향후 나토군은 크게 ▲신속대응군 ▲주력방위군 ▲증원군의 3조직으로 구성되며 주력은 신속대응군이 맡는다. 오는 95년 출범예정인 신속대응군은 영국군 2개 사단과 합동군 2개사단 그리고 병참지원을 맡을 1개 사단을 포함,5만∼7만의 병력으로 구성된다. 지휘는 영국군 장성이 맡고 사령부는 1개 사단 병력과 함께 독일에 둔다. 합동군 1개 사단은 그리스·이탈리아·터키 혼성군,나머지 1개 사단은 공정 부대로 네덜란드·벨기에·영국·독일군 혼성군으로 편성된다. 미군의 역할규모와 성격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신속대응군이 수주내에 필요한 지역에 신속배치되도록 병참·수송·보급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측의 한 관계자는 미군이 독일군 주도의 1개 사단과 함께 1개 군단을 구성해 헬기·지상공격전투기 지원,첩보위성 제공 등 소규모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토가 소규모 기동군 위주로 군편제를 바꾼 이유 중 하나는 대규모 군축 때문이다. 유럽주둔 미군 30만명이 수년내 절반수준으로 감축되고 중부유럽에 배치된 나토동맹군은 95년까지 현재의 83만명에서 62만5천명으로 감축될 예정이다. 신속대응군 창설에서 드러난 나토군사전략의 특징 중 또 하나는 유럽국들의 역할이 커졌다는 점이다. 미군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영국이 2개 사단을 지원하고 지휘책임을 맡는 등 전반적으로 유럽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신속대응군의 활동범위는 일차적으로 정정불안을 겪는 동구와 중동에 인접한 회원국으로 국한하고 있다. 회원국간에 아직 합의가 안 돼 나토 영역 밖에서의 작전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미국은 걸프전 때 나토국의 적극적인 군사지원이 미흡했음을 들어 나토 영역 밖에서의 작전규정을 마련하기를 원했으나 관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나토는 회원국이 외투세력으로 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 일차적으로 현재 보유하고 있는 5천명 수준의 경무장 여단병력을 투입,위협세력에 대해 단호한 의지표명을 하고 그것이 효력을 못 볼 경우 공군·해군력의 지원을 받는 신속대응군을 파견하게 된다. 나토의 이 같은 군사개편안은 오는 6월 6∼7일 양일간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나토 외무장관회의를 거쳐 11월로 예정된 나토정상회담에서 공식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군사개편안도 소련을 여전히 잠재적인 위협세력으로 간주하고 제한적이지만 미국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있는 등 나토의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EC가 93년 통합에 때맞춰 자체 공동방위정책을 마련중이고 소련까지 포함한 소위 「유럽공동의 집」 방위개념도 유럽인들 사이에 만만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이번 개편안을 완전한 유럽자체방위 구상으로 가기 위한 한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 냉전종식 후 목소리 커진 이해집단들/워싱턴=김호준(특파원코너)

    ◎미의 대아정책 「5대세력」이 좌우/반공·대소봉쇄등 일치된 목표 상실/사업가·통상피해자·아주계 시민·펜타곤·외교전략가 얽혀/압도적 파워 부재… 미묘한 상호작용 워싱턴의 대아시아정책 결정과정엔 미국내 각종 구성요소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상호작용이 교차한다. 이 요소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것도 다른 편을 압도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과거 40년 동안 미국의 대아정책 입안은 적과 백을 가리는 정도의 단순한 작업이었다. 지난 40년대말부터 70년대초까지,즉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북경정부와 화해할 때까지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정책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의 대아정책의 초점은 소련군사력에 대한 대응으로 좁혀졌다. 냉전이 종식된 지금 아시아엔 과거의 반공이나 소련에 대한 두려움처럼 미국의 정책은 한곳으로 몰아갈 만한 강력한 표상이 없다. 때문에 미 정부와 의회는 아시아정책과 관련된 이해집단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상을 종종 주고 있다. 지금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을 이해하는 데 다음 「5대 세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업가들◁ 아시아에 미국산 곡물·식품·항공기·우주산업 및 화학제품 등을 수출하는 미 회사와 아시아제품,즉 중국산 섬유와 신발,일본 및 한국산 비디오카세트와 자동차를 수입·판매하는 미상사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의 뒤에는 통상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금융인·중개상·컨설턴트 등이 줄지어 서있다. 컬럼비아 영화사를 일본 마쓰시타(송하)사가 인수하도록 중재하고 8백만달러의 소개료를 받은 변호사이자 전 민주당 전국위원장을 역임한 로버트 스트라우스씨 같은 사람은 이들 사업가들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통상피해자들△ 아시아의 경쟁자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미국의 강철·자동차산업·섬유 및 신발제조업자들이 그들이다. 일본·한국 및 그리고 다른 아시아 제조업체에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간부들도 이에 속한다. 민간부문에선 3대 자동차 메이커의 하나인 크라이슬러사의 리 아이아코카 회장이 이 피해그룹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또 의회에선 하원 민주당 총무 리처드 게파트 의원과 상원의 칼 레빈 의원(민주)이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영향을 미칠 만큼 숫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만만치 않게 된 것은 불과 근년의 일이다. 80년대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인구와 경제력이 눈에 띄게 증대하자 아시아계가 후원하는 단체들의 영향력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 위원장인 스티븐 솔라즈 의원(민주·뉴욕)은 지난 10년 간 아시아계 미국인 1만8천명으로부터 1백6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그는 헌금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의 아태소위 위원장직을 이용,대만·한국·필리핀 등에 민주화 압력을 가했다. 89년의 천안문사태 이후 4만명 이상의 유학생을 비롯한 미국내 중국인들은 북경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강력한 압력집단이 되었다. 또한 최근에 미국내 베트남인들은 부시 행정부에 대해 베트남에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하노이 공산정권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서는 안 된다는경고를 보냈다. 플로리다의 강경파 쿠바인들이 수십 년 간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캘리포니아의 베트남인들도 언젠가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펜타곤◁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이 잊지 않고 있는 제2차대전의 교훈 가운데 하나는 미군의 전진배치,즉 해외주둔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펜타곤이 한국 일본 필리핀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정책에 대한 펜타곤의 영향력은 한·일·북 3개국 이외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신탁통치령인 팔라우서도의 경우 공식적으로 미 국무부의 후견 아래 있으나 팔라우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장차 이곳에 군사시설을 건설하려는 펜타곤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 향후 10년간 어떤 변화가 오건 미국은 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전투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펜타곤의 입장이다. ▷외교전략가들◁ 펜타곤 관리들이 아시아지도를 응시하면서 전쟁 발발시 미국의 병참에 관해 걱정하고 있다면 외교전략가들은 좀 추상적이긴 하나 세계를 상대로 장기를 두고 있다. 전략가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닉슨과 그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미중관계를 정상화한 후 소련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로 「차이나 카드」를 썼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더불어 닉슨과 키신저는 중국과의 전략적 유대에 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북경정부와의 관계증진은 강대국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일본에 대한 평형추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전략가들은 『일본은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이야말로 신뢰할 수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동반자』라는 경계론을 펴고 있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조정 국면을 맞아 지금 미국의 전략가들 사이에 일치되고 있는 견해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안정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사우디,중동평화회담 참여 용의/이스라엘과 직접 협상

    ◎베이커 밝혀/걸프협력위 회원국도 참가/소 외무도 평화회담 성사 낙관 【샤논(아일랜드)·룩셈부르크 AP 로이터 연합】 미국정부는 중동평화회의가 열릴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협력위원회(GCC) 6개 회원국들이 이스라엘과 직접 협상을 벌이도록 한다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했다고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11일 밝혔다. 걸프전쟁 종식 이후 4번째 중동순방에 나선 베이커 장관은 이날 첫번째 기착지 다마스쿠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들 아랍국가들을 이스라엘과의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임으로써 최소한 중요한 터부의 하나는 깬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의 한 대변인도 이날 GCC 6개 회원국들이 베이커 장관이 제시한 중동평화안에 동의했다고 발표하고 베이커 장관의 제안에는 『협상진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커 장관은 이에 앞서 미 앤드루 공군기지를 출발하면서 배포한 발표문에서 GCC는 사무총장을 평화회담 개막식에 파견하기로 했으며 6개 회원국들은 군축문제,수자원,환경보호 등 이 지역의 현안협상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GCC회원국들도 룩셈부르크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회담에 옵서버를 파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베이커 장관은 그러나 이들 회원국들은 수자원 문제와 같은 부차적인 문제에만 대표단을 파견하고 평화회담에도 「옵서버」를 파견하는 등 참여범위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베이커 장관은 또 소련이 미국과 공동으로 평화회담을 주최하기 위해서는 소련이 먼저 이스라엘과 국교를 재개해야 한다는 종래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다. 【카이로 DPA AP 연합】 알렉산데르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은 11일 중동평화회담 개최를 위한 미국과 소련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3일간의 방문일정으로 이날 이집트에 도착한 베스메르트니흐 장관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2시간 넘게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통해 『아직까지는 전략적이고 개념적인 측면에서 문제와 어려움이 남아 있다』고 말한 뒤 그러나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 느릴지는 모르나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베스메르트니흐 장관은 『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을 경우 그 대안은 끔찍한 비극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팔레스타인대표 문제에 대해,팔레스타인인들이 우선 그들의 입장을 분명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 의장과 만날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는 『빠른 시일 안으로 아라파트를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고 답변했다. 베스메르트니흐 장관은 제네바에서 아라파트와 만날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우디아라비아도 방문한다.
  • 대만,비상조치법 43년만에 철폐

    ◎「동원감란임시법」 폐지 동의안의결/이등휘 총통,내주 공식발표 【홍콩=우홍제 특파원】 대만의 국민대회는 22일 합헌통치에로의 길을 열기 위해 지난 43년 동안 시행돼온 「동원감란임시법」을 철폐했다. 대만 헌법상 최고권력기관인 국민대회는 이날 집권 국민당의 전체주의적 통치의 근간 역할을 한 동원감란임시법을 폐지하기 위한 동의안의 3독회를 마쳤다. 이 동의안은 이등휘 총통이 다음주 비상사태의 종결을 선언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학백촌 대만 행정원장은 이번 조치가 국민당을 대만으로 축출한 중국 공산주의자들과의 40여 년에 걸친 적대관계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동원감란임시법 폐지의 의미/북경정권 합법성 사실상 인정/3불정책 무효화… 민주화 진전 대만 의회가 과거 43년 동안 북경의 공산당 정권을 반란단체로 간주했던 법률적 근거인 「동원감란임시법」을 폐기키로 22일 의결한 것은 북경 정권의 합법성을 인정,상호 공식적인 대화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임시법은 중국대륙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48년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에 의해 선포된 것으로 공산당은 반란단체이며 공산당이 대륙에 있는 한 이는 전쟁상태와 같은 것이어서 모든 중국인들은 전시동원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 조례에 따라 대만은 북경 정권과 대화·협상·접촉을 하지 않는다는 3불정책을 고수해왔으며 총통의 종신제를 허용,국민당의 강력한 일당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만 이등휘 총통은 오는 30일 정식으로 이 법의 폐기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민진당 등 야당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한 민주개혁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 한국과 소련 그리고 내일/북으로 확산될 제주훈풍(사설)

    한국과 소련 두 나라 대통령의 제주정상회담은 그 직전의 소련·일본 정상회담의 실상과 여파에 상관없이 매우 명확하고 신선했다. 소련측이 당초 일정을 돌려 1박2일로 잡은 의미도 각별했거니와 한소간 여러 현안에 대한 명백하고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가 보여주는 것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수교당사국간의 짧은 기간,빠른 관계개선 속도가 갖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의 바람직한 앞날을 예고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세 번째 만나는 두 정상간의 친교는 깊이 못잖게 국가간 이해와 협조의 폭도 그만큼 두터워지고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세 번째 만남의 깊은 의미 한소 양국 정상은 이미 지난해 12월 모스크바선언으로서 한반도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 있어 거의 완벽하게 의견을 같이한 바 있다. 두 정상은 이번에 이 모스크바 선언을 재확인했다. 한반도에서의 냉전은 종식되어야 하며 모든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할 것이다. 또 그 연장선상에서 동북아시아 및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평화정착과 화해·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데 협조할 것을 두 정상은 합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또는 한국의 선가입이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정신 즉 모스크바선언에 합당한 것이고 북한의 국제적인 핵사찰 동의는 이 지역의 전쟁방지와 긴장완화에 기여하는 것임을 두 정상은 또한 확인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도쿄에서 제안한 바 동북아시아 집단안보기구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정상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로서도 명백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 물론 동북아시아 또는 아시아 태평양 집단안보를 위한 다자간 모임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러한 집단 안보기구의 효용성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다자간 모임이 이 지역의 안보와 평화,더 나아가 세계평화와의 연결고리로서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에 앞서 한반도문제 및 남북한 관계 등 이 지역 국가들 사이의 양자 관계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한국 및 미국 등의 입장과 공동보조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모스크바 선언의 재확인 한국의 북방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 즉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북한 양 당사자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 따라서 아시아 집단안보기구의 역할이 무엇이든 남북한의 참여가 배제되는 집단안보기구는 형식적으로 불가능하고 실질적으로 무용할 것이다. 한소간 실질관계의 진전을 위한 경제협력협의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됐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역시 우호협력 차원의 확인이었을 것이다. 두 나라간 경제지원협력의 원칙과 특히 한국의 대소경협 규모 등 큰 골격은 이미 확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측의 대소 경협자금은 지난 1월 은행차관 10억달러,소비재차관 15억달러,플랜트 연불수출 5억달러 등 총 30억달러를 93년까지 제공키로 합의된 바 있다. 소비재 차관에 대해서는 지난 3월1일 대상품목 34개에 합의를 봤고 그중에 올해안에 지원키로 한 8억달러의 배정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소련과의 교역은 지난해 수출 5억2천만달러,수입 3억7천만달러로 첫 흑자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아직은다소 불투명한 소련 내정과 외화부족 등의 상황으로 하여 대소 투자는 물론 시베리아 진출문제가 활발하게 진척되고 있는 단계에 들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두 정상의 세 번째 만남을 통한 신의와 신뢰의 축적은 이 같은 양국간 현안타개에 활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한소 협력의 현재와 미래 한편으로 시각을 바꾸어 볼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에 해결되지 못한 미진한 부분은 숙제로 남게 됐다. 특히 우리 민족의 크나큰 비극으로 기록된 6·25전쟁의 진실을 함께 규명한다는 노력이 부족했고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에 대한 시인 사과가 충분하지 못했다. 좀더 시간을 두고 해결하기에는 양국간 관계개선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 문제들은 한소 관계와 협력의 바람직한 앞날을 위해서도 반드시,그리고 조속히 해결돼야 할 공동과제이다. 국가간 정상회담은 현대적인 외교의 특징으로서 그 효율성 측면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호하고 있다. 정상회담은 글자 그대로 최고 정책결정권자들의 만남이므로 상대적으로는 각자가서로 주고받는 기회이자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소 정상간 세 번째 만남은 보통으로 지적되는 상징적 의미 이상의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측면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 자신이 남북한 관계의 개선을 위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의지와 정책,그리고 추진력은 이번 소일,한소정상회담에서 약여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한소 관계의 밝은 앞날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측면이기도 한 것이다.
  • 한·소,우호협력조약 체결 추진/사할린 천연가스 공동개발

    ◎양국 정상회담/한국 유엔 단독가입 지지/고르비,“연내 서울방문”/어제 하오 이한 【제주=특별취재반】 한국과 소련은 20일 양국 관계를 더욱 본격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양국 우호협력조약 체결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이날 상·하오 제주신라호텔에서 2시간20여 분에 걸쳐 역사적인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하고 향후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이를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회담이 끝난 뒤 밝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양국 관계발전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양국 우호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의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를 양국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앞으로 협의해나가자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아태지역의 협력증진,양국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공동노력을 기울이기로 했으며 노 대통령은 특히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바람직하고 북한이 이에 응하지않을 경우 우리가 먼저 가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단독회담에 배석했던 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은 『소측은 우리의 유엔가입에 대한 명백한 입장표명이 있었으나 양국이 이를 서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러나 소측의 언급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한다』고 말해 소측이 우리의 유엔가입에 적극적 지지의사를 밝혔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협정을 체결,국제사회의 핵사찰을 받도록 노력해온 소련의 정책에 사의를 표명했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소 양국이 북한의 핵사찰 문제에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경제협력과 관련,소련의 첨단과학기술과 우리의 생산기술을 결합하고 한소 기업의 합작투자를 촉진시키고 동시베리아지역 등의 천연가스·석유·지하자원·삼림개발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데 공동노력하기로 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올해 안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말해 공식방한 의사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단독 및 확대회담을 마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게 즉석 기자간담을 갖는 자리에서 이번 제주회담 성과와 관련,『우리들의 만남은 한반도의 냉전과 대결,그리고 전쟁의 위협을 종식시키고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외적인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남북한을 동시방문할 생각이 있음을 밝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남북한의 통일전망을 묻는 질문에 『민족적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다고 본다』고 말하고 『통일을 위해서는 한국국민뿐 아니라 국제공동체,유엔의 지지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내외는 이날 호텔 현관에서 노 대통령 내외와 작별인사를 한 뒤 제주국제공항에서 간소한 환송행사를 갖고 하오 3시30분쯤 이한했다.
  • 미 철도노동자 총파업 돌입/화물운송 전면 중단 사태

    ◎장기화땐 미 경제 큰 타격 우려/부시,종식 촉구 【워싱턴·뉴욕 AP 로이터 연합】 미국 화물철도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미국철도협회가 17일 전국적인 총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철도를 이용한 미국 전역의 화물운송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 철도협회의 한 간부는 이날 새벽까지 계속된 노사협상이 아무런 성과없이 결렬됨에 따라 미국 전역의 23만5천여 철도 노동자들이 미 동부 시간을 기준으로 이날 상오7시(한국시간 하오 8시)부터 일제히 파업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번 파업은 지난 82년 이래 최초로 단행된 전국 규모의 총 파업으로 노사 양측은 지난 3년간에 걸쳐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문제 등을 둘러싸고 팽팽한 대결을 벌여왔다. 부시 대통령과 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조속한 파업종식을 촉구했으며 새 뮤얼스키너 미 운수장관도 이날 아침 미 의회의 한 소위에서 행한 보고를 통해 이번 파업을 18일 아침의 러시아워 이전까지 끝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파업 종식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시간을 감안할 때 이번 파업이 이번주 말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 관리들은 미국 전체 화물 운송량의 3분의1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화물 철도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걸프전쟁 이후 점차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데 이날 아침 출근시간을 기해 단행된 급작스런 철도 파업으로 인해 미국 각지의 화물철도 운송이 전면 중단되는 등 큰 혼란이 야기됐다.
  • 이라크의 화학무기 폐기상황 감시/궤도오른 유엔 평화유지 활동

    ◎32국 참가… 국경 DMZ 200㎞ 순찰 유엔 안보리가 11일 걸프전 공식휴전을 선언한 데 이어 유엔 평화감시군 선발대가 12일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지대에 배치됨으로써 전후 처리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이에 따라 미군을 주축으로 한 10만여 명의 다국적군이 이라크 남부점령지역에서 철수하는 대신 유엔 평화감시군이 1백25마일(약 2백㎞)에 달하는 이라크­쿠웨이트 국경을 따라 이라크 쪽으로 10㎞,쿠웨이트 쪽으로 5㎞까지를 비무장지대로 설정,순찰활동을 벌여 분쟁재발을 방지하게 된다. 지난 1월17일 다국적군의 대대적인 공습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지난 2월말 미국의 공격중단 선언으로 사실상 휴전상태에 들어갔으나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허용한 만큼 공식적으로 전쟁상황의 종식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유일한 기구인 유엔 안보리의 공식휴전선언이 이라크의 내전 등으로 인해 지연되는 바람에 전후처리작업도 지지부진해 왔다. UNIKOM(U.N.Iraq­Kuwait Observation Mission)이란 명칭으로 이 지역에 파견될 총규모 1천4백40명의 유엔 평화감시군은 현재 지구상에 배치돼 있는 8번째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 현재까지 32개국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특히 사상최초로 중국 등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전체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향후 지역분쟁 해결에 있어서의 유엔의 역할증대와 관련지어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48년 이래 베이루트와 시나이반도 지역에 주둔중인 유엔군을 비롯,인도 파키스탄 국경·키프로스·골란고원·레바논·앙골라·중미지역 등에서 현재 활동중인 유엔 평화유지군 가운레 규모 면에서는 레바논과 키프로스에 이어 3번째이다. UNIKOM의 핵심은 휴대용 경무기를 소지하고 국경지역을 순찰할 3백명의 군장교 감시단이다. 키프로스와 레바논 골란고원 등지의 유엔군에서 차출될 6백80명의 보병은 비무장지대내에서의 통제 및 질서유지를 지원하고 3백명의 공병대는 지뢰제거 및 도로개설 작업 등을 한시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UNIKOM 사령부는 비무장지대내 이라크 마을인 움 카스르에 설치될 예정이고 쿠웨이트내에 군수기지가 설치되며 바그다드와 쿠웨이트시에 각각 연락사무소가 개설된다. 최초 1년간의 운영예산은 1억2천3백만달러이다. 유엔 사무총장 산하 특별정치국의 마렉 골든 사무차장 책임 아래 운영될 UNIKOM의 사령관은 선발대를 이끌고 도착한 오스트리아 국적의 군터 그라인들 준장. 그는 골란고원과 키프로스 주둔 유엔군 사령관을 역임한 뒤 스위스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관 무관을 지내다 이번에 또다시 중책을 맡았다. UNIKOM요원들은 1개월내로 배치가 완료될 예정이다. 미군 관리들은 유엔 평화감시군 배치 후 1개월 이내에 이라크 주둔 미군 전원이 철수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슈워츠코프 걸프 주둔 미군 사령관은 이라크 주둔 미군이 철수를 시작하기는 하지만 완전철수 여부 및 그 시기는 부시 대통령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현재 미군의 점령상태에 있는 비무장지대내에는 2만7천명의 난민들이 몰려 있어서 미군이 유엔군으로 대체될 경우 신변불안을 느끼는 난민들의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한때 중동최대의 군사강국임을 자랑했던 이라크가 이제 명실공히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셈이다.
  • 아랍권 평화회담/이스라엘서 제의/「팔」 대표와 협상 포함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과의 지역회의를 아마도 카이로에서 열기로 하는 중동평화안을 제의했다고 이스라엘 고위관리들이 3일 밝혔다. 이스라엘은 총리실과 외무부·국방부가 초안한 이 중동평화안은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전쟁상태 종식 및 테러행위 중단선언에 이어 미국 주관하에 이스라엘과 이집트·시리아·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및 다른 걸프국가들간의 예비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며 개최장소로는 카이로가 유력시되고 있다고 관리들은 전했다. 관리들은 미국이 이미 중동평화회담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제외시키자는 이스라엘측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밝히고 회담의 구체적인 사항들은 워싱턴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제안에 따르면 이 회담에 이어 이스라엘과 시리아·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간의 직접회담과 점령지구내 5년간의 잠정적인 자치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동등한 협상이 이루어진다.
  • 시리아,미의 중동평화안 거부/외무 회견

    ◎점령지 반환·국제회담 개최 요구/“불이행땐 이스라엘과 회담 안해” 【다마스쿠스 로이터 연합】 시리아는 22일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 영토들을 포기하고 아랍­이스라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이스라엘과 신뢰회복을 위한 회담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아의 정부관리들과 국영 신문들은 이스라엘이 먼저 우호감을 표시하고 평화의 대가로 지난 23년간 이상 장악해온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골란고원으로부터 철수할 준비가 돼있음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루크 알 샤라 시리아 외무장관은 이날 국영 언론에 발표된 회견에서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들에 대한 점령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이집트를 제외한 아랍국들과 이스라엘간에 존재하는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어떤 회담도 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샤라 장관은 상호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아랍과 이스라엘이 평화 관계를 시작할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이 지난 67년의 중동전에서 획득한 아랍영토들을포기하도록 요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전세계의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리아의 관영 티쉬린지는 『공은 이제 이스라엘 코트로 넘어갔다』면서 『이스라엘은 평화의 대가로 점령한 아랍 영토들을 원래 소유자들에게 반환할 준비가 돼있음을 공표함으로써 친선과 평화를 위한 열망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스라엘·아랍분쟁 종식/중동평화 구축 적극 모색”/부시,의회연설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6일밤 이라크에 대한 다국적군의 승리를 축하하고 이스라엘과 인접 아랍국가들간의 분쟁을 해결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선언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밤9시(한국시간 7일 상오11시)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연설에서 『걸프지역에서의 침공은 격퇴되고 전쟁은 끝났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중동평화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쿠웨이트의 해방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아랍­이스라엘간의 분규를 종식시켜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은 걸프지역에 파견된 미군은 명예롭고 용기있게 싸웠다고 찬양하고 42일간의 걸프전쟁에서 승리한 지금 ▲중동을 위한 「공동안보체제」 구축 ▲대량학살무기 및 이를 운반하는 미사일의 확산통제 ▲중동의 평화 및 안정을 위한 외교 모색 및 ▲중동지역 평화 및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개발 등 네가지의 도전적인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내문제와 관련,상하양원 의원들에게 침체에 빠진 미국경제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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