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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2의 설전…통상무역위원회 회의서 기선제압용 쓴소리

    미국과 중국이 전쟁터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내륙으로 옮겨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엔 남중국해가 아니라 통상무역이 쟁점이다. 미·중 양국은 20일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이틀간의 일정으로 제22차 미·중 통상무역위원회 회의를 시작했다. 중국 측은 왕치산(王岐山) 부총리가, 미국 측은 존 브라이슨 상무장관과 론 커크 무역대표부 대표가 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1983년부터 시작된 정례 협의체 회의이긴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공략이 본격화된 시점인데다 지난 주말까지 양국이 남중국해 문제로 치열하게 대치한 직후여서 첫날부터 통상 현안을 놓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며 고성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부원장은 “미국은 중국의 시장개방 확대, 지적재산권 문제 등에 주목하고, 중국은 시장경제지위 부여, 첨단기술 수출제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오래된 현안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서로 상대국 주재 대사를 통한 ‘선전전’으로 기선제압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상무장관으로 대표단을 이끌었던 미국의 게리 로크 주중대사는 “중국의 기업 환경은 외국 기업가와 정부 지도자들에게 갈수록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며 시장개방과 위안화 절상을 촉구했다. 중국의 장예수이(張業遂) 주미대사는 “위안화 절상으로 미국의 실업률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제한 완화를 요구했다. 양측이 통상 문제로 으르렁거리곤 있지만 서로 ‘무역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이번 회의가 파국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현재로선 우세하다. 특히 중국은 최근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도발’이 중국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한 노림수라는 판단에 따라 맞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앞서 지난 주말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도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로 미국과 대치하면서도 확전을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그러면서도 할 말은 했다. “방문에 대해 답방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來而不往非禮也)라며 일부 국가지도자들이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제기한데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원 총리는 남중국해 문제가 당사국 간 교섭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원 총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앞서 예정에 없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양자회담까지 갖는 등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총력 저지했지만 회의에서는 미국과 필리핀, 베트남 등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설] 저항하는 불법 중국어선 강경진압이 옳다

    우리 바다에서 벌어지는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이 해적 수준에 이르렀다. 야음을 틈타 수십, 수백척씩 떼를 지어 몰려와 치어까지 싹쓸이해 가고 있다. 적발되면 줄행랑을 놓는 것이 아니라 도끼와 쇠파이프, 죽봉을 휘두르며 단속하는 해경에 극렬하게 대드는 상황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이대로 뒀다간 뒷날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게 뻔하다. 도둑질도 모자라 남의 집 안방에서 주인행세까지 하고 있다. 전남 신안군 흑산 어민들은 겨울 홍어잡이철을 맞았으나 우리 영해에 새까맣게 몰려든 중국어선들의 위협 때문에 황금어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헛조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서해가 중국어선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어민들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어선에 대한 강경대응은 불가피하다. 중국 바다에는 포획으로 물고기의 씨가 말라 고기 떼를 찾아 우리 영해로 들어왔다는 것이 해경에 단속된 중국 선원의 실토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사태해결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비겁하게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모른 체할 테니 알아서 먹고살아라.’라고 불법을 묵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스스로 경제주권을 수호하고 어민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엊그제 해경은 어청도 서쪽 우리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어선 13척을 나포했다. 어선을 서로 묶고 죽봉을 휘두르며 집단으로 저항하는 중국 선원들을 헬기와 특공대가 가세한 입체작전으로 제압했다고 한다. 흉기를 들고 죽기살기로 덤비는 이들에게 첨단장비를 활용한 강경진압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 어떤 백마디 말보다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 영해와 EEZ에서의 불법조업은 명백한 경제주권 침해이자 강도짓이다. 불법조업과 폭력적으로 저항한 선원들은 국내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지금 서해는 전쟁터다.
  • 뼈 한조각으로 돌아온 6·25 참전용사

    ‘아버지·어머니 평안하게 계시오. 38선 넘어 백두산 상봉에 태극기 날리며 죽어서 뼛골이나 돌아오리다.’ 6·25 전쟁 당시 20대 초반의 갓 결혼한 가장, 강태조 일병은 아내와 태어난 지 100일이 갓 지난 아기에게 이런 제목 없는 노랫말을 들려주고 전장으로 떠났다. 장남인 형을 대신해 전쟁터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전사통지서 한 장만 가족들에게 남겼을 뿐 어느 전장에서, 어떻게 스러졌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61년 만인 17일 이젠 회갑을 넘긴 딸의 품으로 유해가 되어 돌아왔다. 그가 남긴 노랫말이 현실이 되어 버린 셈이다. 2009년 5월 강원 인제 한석산 전투 현장 인근에서 발굴한 무릎뼈 한 조각에서 확인된 DNA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비교 감식을 해서 신원을 확인하면서다. 딸 강춘자(61)씨가 지난해 6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지역 보건소에 유전자 정보를 남겨놔서 가능한 일이었다. 강씨는 “아버지가 돌아오다니 꿈만 같다.”면서 “아버지가 입대하며 불렀다는 이별 노래를 평생 내게 들려준 어머니의 한이 이제는 좀 풀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해발굴감식단은 고(故) 김영석 일병의 유해도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김 일병은 1951년 9월 강원 양구에서 북한군과 치열하게 다퉜던 백석산 공방전 때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김 일병은 인식표가 함께 발굴돼 이름과 군번을 단서로 아들 김인태(63)씨를 찾아 DNA 검사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방부는 2000년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나서 지금까지 6000여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하지만 인식표가 함께 발굴된 29구의 유해를 포함해 68구만 신원이 확인돼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일제 징용자 군사우편저금 정부가 줘야” 행심위 재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가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돌려받지 못한 군사우편저금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는 일제에 강제징용됐던 고 김모씨의 손자가 낸 행정심판에 대해 최근 이같이 재결했다고 15일 밝혔다. 행심위에 따르면 손자 김씨는 2009년 12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에 고인의 군사우편저금 221.84엔 등에 대한 미수금 지원금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군사우편저금은 정부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현행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편저금은 이미 청구권 보상금 지급 개시일에서 2년이 지나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점 등이 사유였다. 김씨는 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자신의 재심의 신청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리자 행심위에 재심의 기각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청구했다. 군사우편저금은 전쟁터에서 현금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군인·군속이 봉급을 낭비하지 않고 저축하도록 1895년에 생긴 제도로, 1965년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을 정함에 따라 한국인의 군사우편저금에 대한 권리는 소멸됐다. 이에 대해 행심위는 “피징용자의 군사우편저금 미수금은 전쟁터에서 받은 봉급 등을 일본으로부터 받지 못한 것으로, 피징용자가 받아야 할 급여를 공탁하고 못 받은 육군공탁금 미수금과 비교할 때 결국은 동일하게 일본 정부나 기업에서 돌려받지 못한 금전”이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관련법상 위원회에서 미수금 피해자로 결정된 사람이나 유족에게 당시 일본 통화 1엔을 우리 돈 2000원으로 환산해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손자 김씨는 약 44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영웅’ 되어 美에 온 이라크 견공

    ‘영웅’ 되어 美에 온 이라크 견공

    “정말 예쁜 강아지가 생겼는데 내일 사진 보내줄게.” 2007년 5월 4일 이라크에 파병 중이던 23세의 미군 병사 저스틴 롤린스는 미국에 있는 여자친구 브리트니 머리에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롤린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는 다음 날 도로 순찰 중 이라크 반군의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롤린스의 전우들이 그의 가족에게 보내준 사진 속에서 롤린스는 행복한 표정으로 생후 1주일 된 앳된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강아지 사진 보내줄게” 마지막 전화 2주 뒤 롤린스의 유해가 고향인 뉴햄프셔에 도착했을 때 한 군 장성이 부모에게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라고 물었다. 부모는 지체 없이 롤린스가 안고 있었던 강아지를 원한다고 답했다. 어머니 론다는 “롤린스의 강아지를 얻는다면 롤린스의 일부가 돌아왔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은 난색을 표시했다. 규정상 전쟁터의 동물을 미국으로 이송하는 건 금지돼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뉴햄프셔 상원의원과 주지사 등에게 군을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지역 신문을 통해 사연을 알리자 많은 시민들이 편을 들어줬다. 결국 군은 가족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롤린스의 전우들은 먼 길을 떠날 강아지를 깨끗이 목욕시켰다. 자원봉사자들이 댄 비용으로 강아지는 민간 운송업체 항공편을 통해 최근 뉴햄프셔로 왔다. 부모는 강아지의 이름을 ‘히어로’(영웅)라고 지었다. 그리고 지난 9일(현지시간) 재향군인의 날을 앞두고 이제는 성인 개가 다 된 히어로와 롤린스의 부모, 여자친구 머리가 알링턴 국립묘지의 롤린스 묘역을 찾았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1일 보도했다. 히어로를 실어나를 비싼 항공료는 한 방송사가 후원했다. 그 방송사는 히어로의 이야기를 14일 방영할 예정이다. ●아들 묘역 찾은 ‘히어로’ 애도하는 듯 히어로는 롤린스의 묘역에 코를 대고 연신 킁킁거렸다. 그런 히어로를 쓰다듬으며 아버지 미첼은 말했다. “저스틴을 다시 만나니 좋으냐. 네 털을 여기 좀 남겨다오. 저스틴이 아마 좋아할 거야.”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물수능’ 대학·학생·학부모 허우적

    ‘물수능’ 대학·학생·학부모 허우적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쉽게 출제된 것으로 사실상 굳혀지자 비상이 걸렸다. 수험생은 동점자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논술시험에 매달리고, 학부모들은 입시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입시설명회를 쫓아다니고 있다. 때문에 논술시험에 ‘올인’하는 수험생들을 겨냥한 고액과외도 활개치는 실정이다. 대학들은 수능 성적 반영 비중이 큰 정시모집에서 변별력을 갖춘 동점자 처리 방안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13일 “학생 모집에 혼란이 예상된다.”면서 “정시에서 수리·외국어·언어·탐구 순으로 점수가 높은 학생을 우대하는 기존 동점자 처리기준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중앙대도 “동점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보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험생들은 논술학원으로, 학부모는 입시설명회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실제 수험생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려는 족집게식 속성 강의에 수백만원씩을 쏟아붓고 있다. 서울 대치동 일반 논술학원은 회당 10만원씩이 보통이다. M논술학원은 오는 19일 치르는 한양대 논술 대비반을 개설, 4일에 40만원을 받고 있다. C논술학원의 서울대 정시논술(2012년 1월 16일 실시) 대비반 수강료는 24회에 240만원이다. 일반 국공립대의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다. 1회 수강료만 50만~80만원 하는 논술 과외도 암암리에 이뤄진다는 게 학부모들의 전언이다. 학부모들도 입시정보를 듣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13일 오후 2시 반포동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대성학원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김모(47·여)씨는 “설명회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면서 “시작 1시간 전부터 수험생 부모들이 몰려 하마터면 자료집을 받지 못할 뻔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30일 수능성적 발표 직후인 다음 달 1일 서울학생체육관에서 수험생과 학부모 7000여명을 대상으로 수도권 4년제 대학 중심의 진학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건형·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열린세상] 화해를 위한 소통/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화해를 위한 소통/김태승 아주대 사학과 교수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인가. 도처에서 격렬한 비방과 대립이 일상적으로 되풀이된다. 우리 아이들의 언어를 지배하는 욕설에서도, 엘리트 집단이 주요 구성원인 정치권의 담론에서도, 상대방을 뭉개고 본다는 식의 힘을 앞세운 논리와 강압에 가까운 비방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심지어 화해와 평화를 이야기해야 할 종교계 일부에서도 힘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적대시하면서 대립을 부추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회영역에서 힘이 숭배되고 힘을 앞세운 일방적 공세에 힘없는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긴장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산다는 것은 마치 현실의 전쟁터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럽다. 사회뿐만이 아니라 학문에서도 대립은 일상적인 현실이다. 공학은 공학대로, 기초학문은 기초학문대로 자신들의 중요성을 소리 높여 외친다. 왜 우리를 무시하느냐고 항변한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힘은 자기 영역을 지키는 절대적 기준이 되고, 그 힘의 행사에 스러지는 이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자기 일이 아니니까. 힘은 때로는 돈의 모습으로, 때로는 자의적 법의 모습으로, 때로는 탈맥락화한 지식의 모습으로, 때로는 시장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함께 사는 문제는 다만 현실의 잔인함을 감추기 위한 강한 자의 수사학적 언어나 약자의 절규 속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힘에 의해 구성된 세계는 계층적 구조를 가지고 우리를 피해자이면서도 또한 가해자의 자리에 서게 만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모든 문제는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벽을 쌓는 것, 그리고 그 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을 끝없이 힘으로 확장하려는 욕망이 소통 자체를 거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이부동(和而不同:화합하되 같지 않음)이니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음을 구하기 위하여 다름을 내버려 둠)니 하는 소통을 위한 ‘전략적 접근’조차 거부된다. 마주 앉은 정적에게 당신은 한국 사람이냐고 묻고 자신이 정해 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그는 한국 사람이 되지 못한다. 자신이 쌓은 벽 안에 들어오지 않는 모든 사람은 적으로 정복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 소통의 부재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앎의 부재’에 의존한다. ‘앎’은 호주머니에 담아두었다가 심심할 때 꺼내 맛보는 사탕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해를 위한 기본적 전제이며, 출발이며, 소통의 시작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앎’조차 마치 호주머니 속의 사탕처럼 필요할 때 꺼내 자기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앎으로서의 지식’은 탈맥락화된 채 감성에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고, ´평생교육원의 놀이´로 폄하되었다. 지식은 우리의 삶에서 분리되어 힘을 과시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셀 세르는 ‘지식은 서로 나누고,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지식은 평화를 낳는다.’고 말한다. 세르가 볼 때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존재’이다. 메시지를 유통시킴으로써 과학과 과학을, 과학과 문학을 중재하는 헤르메스적 존재를 통해 우리는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속에서 평화는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식의 지평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백과사전주의자가 되었다. 소통의 어려움이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대립과 갈등 상황이 무지에서 기인되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이 서로를 알기 위한 진지한 지적 노력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한다면, 이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자신이 쌓았던 벽을 허물고 그 어둠에 빛을 들이는 일(en-light)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배웠으되 생각이 없으면 헛되고, 생각이 있으되 배움이 없으면 위태롭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러한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소통, 바로 그것이 화해를 위한 길이다.
  • 출퇴근 시간 ‘지옥철’ 자리 앉는 비법은?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에게는 만원 전철이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지옥철’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 시간 전철 안은 전쟁터이며 자리 잡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영국 런던에 사는 브렌든 넬슨이란 이름의 남성도 매일 그런 전장에서 싸우는 한 명이다. 그는 수년간 지하철 통근 경험을 통해 얻은 비법을 자신의 웹 사이트에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일까. 자리 앉기의 가장 중요한 비법은 “적을 아는 것”이라고 넬슨은 말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지하철 이용객은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우선 서 있는 사람은 두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자리가 생기면 앉으려는 사람과 앉을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며, 나머지는 목표물이 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까지 이렇게 3종류로 구분된다. 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차량 내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넬슨은 전했다. 각각의 특징을 파악했다면 다음으로는 위치 선정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차량 연결 부분과 출입문 근처는 항상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연결 부분은 자리가 적은데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임산부나 노약자를 위한 자리며, 출입문 근처는 내리고 타는 사람이 많아 혼잡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곳으로 들어왔다면 다른 위치로 이동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접근조차 하지 말아야 하며 자리가 많은 차량 중앙으로 가야 한다. 위치가 정해졌다면, 이제 빈자리를 기다리는 일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노골적으로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면 안된다. “앉고 싶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조용히 누가 어디로 가는지 짐작해야 한다. 어쨌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다. 잘 보면, 정장 차림에 기업 배지를 착용한 사람들이 있다. 이를 단서로 근무처를 짐작하면 어디서 내리는지 예측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의점은 가방에 책을 넣는 사람이 있어도 속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전철을 내리는 일은 없을 거다. 내릴 것 같은 사람을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 너무 정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다른 빈자리를 놓칠 수 있다. 눈앞에만 집중하지 않고 360도 사방으로 주의해야 한다. 만약 같은 자리를 다른 사람도 노리고 있다면, 반드시 당신은 내리는 사람이 지나가기 쉽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이어 몸을 돌려 앉아 있던 사람과 위치를 바꾼다면 친절한 인상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한편 위와 같은 내용은 지난 14일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을 통해 소개됐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사설] 정작 5000원짜리는 보훈처의 인식 아닌가

    국가보훈처가 6·25전쟁 전사자의 보상금을 5000원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큰오빠가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2008년 12월 전사자 보상금을 신청한 김모씨에게 보훈처가 지난해 4월 통보한 금액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값이 60년이 지난 현재 5000원이라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전사한 유족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한심할 따름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보훈처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보상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번 일에 대한 보훈처의 무책임하고 꽉 막힌 처리과정을 보면 정작 5000원짜리는 보훈처의 인식이 아닌가 싶다. 보훈처는 처음에는 보상금 청구기간이 지났다며 보상금 지급 자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법원 판결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국방부와 1년 가까이 책임 떠넘기기 식의 ‘핑퐁행정’을 했다니 정부 당국자들의 국가관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영웅 대접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홀대하다니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는가. 과거 군인사망급여 규정에 따르면 김씨 큰오빠에 대한 보상금은 5만환이었고, 이 금액을 지금의 ‘원’으로 환산하면 5000원이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보훈처의 설명은 유족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다. 공직자란 법이 형평성에 맞지 않으면 당연히 고쳐서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그것이 공직자 윤리관이다.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값이 점심 한끼 값도 안 된다니 이처럼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6·25 전사자에 대한 ‘5000원 결정’은 김씨 이외도 2건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전에 얼마나 더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전사자를 이처럼 홀대하는 나라는 없다. 하루빨리 법을 뜯어고쳐 합당하게 예우해야 한다. 앞서 김씨 같은 경우가 없었는지 정부가 앞장서 찾아내야 한다.
  • 리비아 전장 한복판에 ‘기타치는 영웅’ 등장

    리비아 전장 한복판에 ‘기타치는 영웅’ 등장

    리비아 반군과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친위군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살벌한 전쟁터에 총 대신 기타를 든 남성이 나타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카다피 친위군의 최후거점인 시르테(Sirte)의 한 격전지에서 반군으로 보이는 한 젊은 남성이 위험천만한 모습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해외 언론사 사진기자인 아리스 메시니스가 사진으로 담는 데 성공했다. 사진 속 남성은 동료들이 바로 옆에서 총을 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며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긴장한 눈빛까지는 숨길 수 없었지만 이 남성은 한동안 기타연주를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이 남성이 왜 총 대신 기타를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해외 네티즌들은 이 남성의 기타연주가 핏빛 총성이 가득한 전쟁터에서 피어날 평화의 희망을 상징하는 듯 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진이 찍힌 곳은 지난달 트리폴리를 대신해 리비아의 새로운 수도가 된 곳이자 카다피의 고향이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는 “시르테의 와가두구 컨퍼런스 센터, 병원, 대학교 등도 반군이 장악했기 때문에 일주일 안에 시르테에서 종전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카다피는 니제르와의 국경 어딘가에 운둔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지=멀티비츠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깔깔깔]

    ●아줌마들의 대화 철수엄마:순이 엄마! 매일 어디 다니세요? 순이엄마:저요? 네~ 남편이 반찬이 맛없다는 얘기를 하길래 학원에 좀 다녀요. 철수엄마:아~ 요리학원에요? 순이엄마:아뇨!! 유도학원에요. 불평하면 던져버리게요. ●난센스 퀴즈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은? 선생님. -길은 길인데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길은? 저승길. -목욕탕에 가면 두고 나오는 것은? 때. -나폴레옹은 전쟁터에 나갈 때 왜 항상 빨간 벨트를 찼을까? 바지가 흘러내리니까. -나폴레옹의 묘 이름은? 불가능. -세계에서 데모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우간다. -텔레토비의 안경점 이름은? 아이좋아.
  • 덴마크 지방 ㎏당 3400원 ‘비만세’ 첫 도입…“살 찌려거든 세금 내라”

    덴마크 지방 ㎏당 3400원 ‘비만세’ 첫 도입…“살 찌려거든 세금 내라”

    점점 뚱뚱해지는 국제사회가 비만과의 전쟁을 위해 ‘세금’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낙농업의 나라’ 덴마크가 버터와 우유 등에 ‘비만세’를 매기면서 ‘전면전’을 선포하자 영국과 스위스, 루마니아 등에까지 ‘도미노 효과’가 퍼질 기미를 보인다. 국민 3명 중 1명이 비만인 미국도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서 감자칩을 먹고 TV만 시청하며 하루를 보내는 뚱뚱한 사람)를 줄이기 위해 ‘징세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국민 건강도 챙기면서 바닥난 재정도 채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덴마크 정부는 1일(현지시간)부터 포화지방산이 2.3% 넘게 함유된 제품에 지방 1㎏당 16크로네(약 3400원)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비만세는 버터와 우유는 물론 피자, 식용유, 육류, 조리식품까지 포화 지방을 함유한 모든 식품에 적용된다. 지방 성분을 포함한 전 제품에 비만세를 매기는 것은 덴마크가 처음이라고 BBC가 전했다. 덴마크는 이미 90여년 전부터 사탕류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고 세계 최초로 트랜스 지방 사용을 금지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정책 시행 일주일 전부터 덴마크의 식료품점은 사재기를 하려고 몰려든 주부 등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비만세가 부과되면 250g짜리 버터를 사는 데 징세 이전보다 2.2크로네(약 445원)를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 코펜하겐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가게 진열장이 텅 비었다.”면서 “사람들이 집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덴마크 보건당국이 앞서 나가자 늘어나는 ‘뚱보’ 탓에 고심하는 유럽 각국 정부도 바빠지게 됐다. 헝가리는 이미 지난달부터 지방, 염분, 설탕 등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 개당 10포린트(약 55원)를 부과했다. 헝가리의 비만율은 18.8%로 유럽연합(EU) 국가의 평균(15.5%)보다 높다. 헝가리 정부는 비만세 덕에 연간 7400만 유로(약 1120억원)가량의 세수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이 돈은 건강 관련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빅토르 오르번 헝가리 총리는 “(비만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관련 재정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며 비만세 징수를 정당화했다. 영국도 비만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옥스퍼드대 건강증진연구그룹의 마이크 라이너 교수는 “영국도 비만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덴마크처럼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건강식인 과일과 채소류 등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면 해마다 3200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르키 카타이넨 핀란드 총리도 “덴마크의 계획은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했고 스웨덴과 루마니아도 덴마크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비만국인 미국은 ‘탄산음료세’ 등을 통해 비만 인구 줄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과 매릴랜드 등 33개 주에서 이미 탄산음료에 세금을 물리고 있고 연방정부 차원의 탄산음료세 도입도 추진 중이다. 또 소금·설탕·지방 함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업체에 대해 TV 및 라디오, 인터넷 광고 등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의회에 제출돼 있다. 하지만 비만세를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인구가 주로 저소득층인 탓에 당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금폭탄’을 떨어뜨리는 꼴”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덴마크 산업연맹(DI) 식품부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이 세금에 따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세금으로 비만 잡으려는 세계

     점점 뚱뚱해지는 국제사회가 비만과의 전쟁을 위해 ‘세금’이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낙농업의 나라’ 덴마크가 버터와 우유 등에 ‘비만세’를 매기면서 ‘전면전’을 선포하자 영국과 스위스, 루마니아 등에까지 ‘도미노 효과’가 퍼질 기미를 보인다. 국민 3명 중 1명이 비만인 미국도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서 감자칩을 먹고 TV만 시청하며 하루를 보내는 뚱뚱한 사람)를 줄이기 위해 ‘징세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 국민 건강도 챙기면서 바닥난 재정도 채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덴마크 정부는 1일(현지시간)부터 포화지방산이 2.3% 넘게 함유된 제품에 지방 1㎏당 16크로네(약3400원)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비만세는 버터와 우유는 물론 피자, 식용유, 육류, 조리식품까지 포화 지방을 함유한 모든 식품에 적용된다. 지방 성분을 포함한 전제품에 비만세를 매기는 것은 덴마크가 처음이라고 BBC가 전했다. 덴마크는 이미 90여년 전부터 사탕류에 별도의 세금을 부과하고 세계 최초로 트랜스 지방 사용을 금지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정책 시행 일주일 전부터 덴마크의 식료품점은 사재기를 하려고 몰려든 주부 등으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비만세가 부과되면 250g짜리 버터를 사는데 징세 이전보다 2.2크로너(약 445원)를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 코펜하겐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가게 진열장이 텅 비었다.”면서 “사람들은 집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덴마크 보건당국이 앞서나가자 늘어나는 ‘뚱보’ 탓에 고심하는 유럽 각국 정부도 바빠지게 됐다. 헝가리는 이미 지난달부터 지방, 염분, 설탕 등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 개당 10포린트(55원)를 부과했다. 헝가리의 비만율은 18.8%로 유럽연합(EU) 국가의 평균(15.5%)보다 높다. 헝가리 정부는 비만세 덕에 연간 7400만유로(약1120억원)가량의 세수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이 돈은 건강 관련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비만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관련 재정에) 더 많이 공헌해야 한다.”며 비만세 징수를 정당화했다.  영국도 비만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옥스퍼드대 건강증진연구그룹의 마이크 라이너 교수는 “영국도 비만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덴마크처럼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건강식인 과일과 채소류 등에 대해 세금을 깎아주면 해마다 3200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르키 카타이넨 스위스 총리도 “덴마크의 계획은 우리에게도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했고 스웨덴도 덴마크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대 비만국인 미국은 ‘탄산음료세’ 등을 통해 비만 인구 줄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과 매릴랜드 등 33개 주에서 이미 탄산음료에 세금을 물리고 있고 연방정부 차원의 탄산음료세 도입도 추진 중이다. 또 소금·설탕·지방 함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업체에 대해 TV 및 라디오, 인터넷 광고 등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의회에 제출돼 있다.  하지만, 비만세를 고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지방 함유량이 높은 패스트푸드를 먹는 인구가 주로 저소득층인 탓에 당장 “가난한 사람들에 ‘세금폭탄’을 떨어뜨리는 꼴”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덴마크 산업연맹(DI) 식품부 대변인은 “이번 조치가 건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이 세금에 따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데스크 시각] 에너지 대란을 막은 선인들의 지혜/김경운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에너지 대란을 막은 선인들의 지혜/김경운 사회2부장

    선사시대에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동력은 자신의 몸밖에 없었다. 고대 문명기에 접어들자 비로소 인간은 가축의 힘을 빌려 수레를 움직였다. 말은 산업혁명기에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전까지 2000년 동안 인간에게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동력이었다. 겁 많은 동물이 용케 길들여져 잔혹한 전쟁터에도 하릴없이 내몰렸던 것이다. 오늘날의 동력은 주로 석유와 원자력 등으로부터 얻고 있다. 원자력은 효율성에서 다른 에너지 자원을 능가한다. 미국 핵 항공모함의 경우 축구장 3배 넓이와 20층짜리 건물 높이의 함정에 사람 5000여명과 비행기 100여대를 싣고 다니는 데 필요한 동력이, 20년간 원료 공급이 필요없는 원자로 2기뿐이라니 대단한 일이다. 이를 석유로 대체한다면 아마 항모 크기만 한 유조선이 늘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석유나 원자력은 일상생활에서 편리성이 떨어지고 위험성은 높은 편이어서, 전기를 만들기 위한 원천 에너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편리하고 위험하지 않아야 할 전기가 나라 전체를 마비시킨 사건이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이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미리 만들어둔 전기가 부족해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하니, 여기서 에너지 문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전기 아까운 줄 모르고 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거침없이 만든 원자력발전소 덕분이다. 이게 산업발전의 한 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지켜보면서 원전을 더 짓자는 말은 감히 못한다. 더구나 친환경 재생에너지라던 다른 동력 자원도 지역 주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다. 전북 무주에서는 풍력(風力) 발전단지 조성사업이 소음과 그림자, 저주파, 상수원 오염 등 피해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반대로 휘청거리고 있다. 인천 강화와 충남 서산에서는 조력(潮力) 발전소가 갯벌 파괴를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다. 파력(波力) 발전소를 짓겠다던 제주 해군기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마리를 풀지 못한다. 수력(水力) 발전은 이미 물건너 간 지 오래고, 태양광 발전은 패널 설치과정에서 숲이 파괴된다고 한다. 반대하는 각각의 이유에는 수긍이 가지만, 하나하나 이유를 대는 게 어떨 때에는 너무하다 싶다. 에너지는 더 많이 필요할 텐데, 도대체 어디서 추가적으로 얻어야 하는가. 완벽에 가까운 에너지라는 핵융합발전은 전 세계가 아직도 꿈에서나 그리는 단계일 뿐이다. 옛 사람들은 처한 환경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능했다. 고구려 찰갑기병은 중앙아시아 유목부족에게서 배운 등자(말에 탄 채 두 발을 걸 수 있는 고리)를 채택, 동시대의 로마제국 기병보다 월등한 전투력을 확보했다. 전통 활인 각궁은 둥글게 휘어진 박달나무 두 개를 그 반대로 힘껏 휜 뒤 중간마디를 물소 뿔로 이어붙임으로써, 작고 가벼우면서도 다른 민족들이 사용한 활보다 몇 배나 강력한 힘을 구사했다. 돛단배(범선)의 경우 중국인들은 2개의 크고 작은 돛을 사용, 정면에서 바람이 불어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 작은 돛과 큰 돛에 스치는 바람의 양이 서로 다르면 그 차이만큼 물리학적인 역추진이 발생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비행기 날개에서 발생하는 양력의 원리와 유사하다. 당시 서양인들은 오로지 사람(노예)의 힘으로 노를 젓거나 뒤에서 바람이 불 때에만 전진하는 돛을 사용했을 뿐이다. 온돌은 부여와 고구려를 거쳐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대표적인 에너지 효율 1등급 난방설비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쉽게 달궈지는 돌 통로를 따라 열기가 멀리 떨어진 방안을 돈 뒤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원리다. 우리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자연에서 배운 과학적 원리가 무한동력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찾는 일만큼 현재의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아껴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kkwoon@seoul.co.kr
  • [WHO&WHAT] 올 110주년 맞는 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WHO&WHAT] 올 110주년 맞는 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전 세계의 관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모이는 ‘북유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901년 제정돼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0월 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바로 그 상입니다. 오죽하면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고, 프리츠커상은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매년 10여명씩, 800명이 넘는 사람과 단체에 수여됐지만 아직도 단 한 개를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나라가 대다수입니다. 왜 모두들 노벨상에 목을 매고 염원하는 걸까요. 18k 금을 순금으로 도금한 메달과 1인당 평균 5억원씩 돌아가는 상금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노벨상의 영광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보내 주세요. 상금이나 시상식은 없습니다. 대신 마음 속에 꾹꾹 담아 왔던 얘기들을 널리 알려드립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2011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상 수기 공모전’을 열기로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노벨상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답지했다. 눈에 띄는 작품 중에서 1위부터 3위까지와 특별상을 선정했다. 수기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위대한 상이 모두에게 즐거운 기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금메달] 이브 퀴리(1904~2007) “부모·남편·언니 모두 노벨상… 종군 기자로 엄친딸 극복했죠”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집안에서 홀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엄친딸 수백명이 주위에 있는 것만큼 이상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1903년 노벨물리학상), 어머니는 마리 퀴리(1903년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입니다. 제 언니 이렌과 형부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도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저는 제게 없는 과학적 재능 대신 책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죠. 어머니의 전기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특파원으로 리비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국제기구 활동을 하던 중 미국의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를 만나 결혼했죠. 남편도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진정한 영예는 노벨상이 아닙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인류를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 막대한 가치를 가진 기술의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인류애가 제 핏속에 흐른다는 것에 무엇보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6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이 인류사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연구에 바빠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마리 퀴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초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빈 평화주의자이면서 국제기구 활동에 앞장섰던 ‘영원한 프랑스의 연인’ 이브 퀴리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은메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수상 거부 진정한 이유?… 질투 아닌 자유”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는 노벨상의 대전제는 틀렸다. 왜냐?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내가 그 증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쓴 책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독자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압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상 선정자 발표에서 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인 ‘자유’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최소한 한 켤레 이상의 신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는 자유’에 불과하다. 노벨상은 문학적인 영예에 거액의 상금을 줌으로써 수상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난 내 모든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퍼뜨리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나는 결단코 내 필생의 라이벌인 알베르 카뮈(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나보다 먼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부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1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샤르트로와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토 북베트남 총리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후일 금전적인 이유로 ‘상금만 받을 수도 있다.’며 입장을 바꿔 웃음거리가 됐다. 은메달에 머문 이유다. [동메달]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 “도둑맞은 DNA 연구성과… 지하에서 울었죠” 노벨상 최고의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1962년 생리·의학상일 겁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일이죠. 이후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영생을 꿈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걸까요?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X선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제가 있던 킹스칼리지의 몫이었고,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제 연구에 접근할 수 없었죠. 하지만 1962년 노벨상의 공동수상자인 우리 대학의 모리스 윌킨스가 그들에게 제가 찍어낸 X선 사진들을 넘겨줬습니다. 1952년 5월, 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X선으로 명확하게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부족함을 느꼈던 저는 발표를 미뤘고, 사진은 몰래 두 사람한테 전해졌죠. 결국 왓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과는 그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저는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58년에 난소암으로 이미 연구성과 도둑 따위는 없는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살아있었다면 윌킨스 대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왓슨이 저에 대해 그랬다죠.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이라고요. 진짜 욕심이 많은 건 누구일까요. ‘과학의 전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의 상징이 돼 버린 다크레이디’ 프랭클린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수식어는 없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던, 유전공학의 진정한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특별상] 더글라스 프레이셔(1951~ ) “해파리 연구 헌납하고 셔틀버스 기사로 헌신” 2008년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던 날, 저는 16년 전을 떠올렸죠. 1992년 당시 미국 우즈홀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단백질(GFP)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GFP를 유전자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냈습니다. GFP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고, 해파리의 DNA에서 GFP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고, 저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지만 금방 해고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로저 치엔 교수에게 넘겼습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이 찰피와 치엔, GFP를 처음 발견한 일본의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을 때 저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었습니다. 도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셔틀버스를 모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만약 우즈홀이나 나사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겠죠. 일생일대의 연구를 인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프레이셔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노벨상 발표 이후에도 본인의 공헌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이고,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번외로 특별상을 수여한다. ●참고문헌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전대호/지식의숲)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나도선/양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이광렬/바다출판사)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송성수/살림) 과학사의 빛나는 순간(마농 바우크하게·이수영/웅진주니어) ‘노벨상 위의 사르트르’(르 몽드 1964년 10월22일자)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밝힌 유전자의 비밀[WHO&WHAT] 아쉽게 놓친 노벨상’가상 수기’ 공모해보니
  • [W&W]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W&W]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공고 “전세계의 관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모이는 ‘북유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901년 제정돼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0월 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바로 그 상입니다. 오죽하면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고, 프리츠커상은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매년 10여명씩, 800명이 넘는 사람과 단체에 주지만 아직도 단 한 개를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나라가 대다수입니다. 왜 모두들 노벨상에 목을 매고 염원하는 걸까요. 18k 금으로 도금된 메달과 1인당 평균 5억원씩 돌아가는 상금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노벨상의 영광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보내 주세요. 상금이나 시상식은 없습니다. 대신 마음 속에 꾹꾹 담아 왔던 얘기들을 널리 알려드립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2011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상 수기 공모전’을 열기로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노벨상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답지했다.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을 1위부터 5위까지 선정했다. 수기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위대한 상이 모두에게 즐거운 기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특별상 더글라스 프레이셔(1951~) 2008년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던 날, 저는 16년 전을 떠올렸죠. 1992년 당시 미국 우즈홀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단백질(GFP)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GFP를 유전자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냈습니다. GFP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고, 해파리의 DNA에서 GFP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모든 과학자들의 꿈인 최고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도 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고, 저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지만 금방 해고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로저 치엔 교수에게 넘겼습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이 찰피와 치엔, GFP를 처음 발견한 일본의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을 때 저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었습니다. 도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셔틀버스를 모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만약 우즈홀이나 나사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겠죠. 심사평 일생일대의 연구를 인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프레이셔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노벨상 발표 이후에도 본인의 공헌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이고,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번외로 특별상을 수여한다.   동메달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 노벨상 최고의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1962년 생리·의학상일 겁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일이죠. 이후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영생을 꿈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걸까요?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X선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제가 있던 킹스칼리지의 몫이었고,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제 연구에 접근할 수 없었죠. 하지만 우리 대학의 모리스 윌킨스, 1962년 노벨상의 공동수상자인 그 윌킨스가 두 사람과 친했죠. 윌킨스는 그들에게 제가 심혈을 기울여 찍어낸 X선 사진들을 넘겨줬습니다. 1952년 5월, 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X선으로 명확하게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부족함을 느꼈던 저는 발표를 미뤘고, 사진은 몰래 두 사람한테 전해졌죠. 결국 왓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과는 그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저는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58년에 난소암으로 이미 연구성과 도둑 따위는 없는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살아있었다면 윌킨스 대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왓슨이 저에 대해 그랬다죠.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이라고요. 진짜 욕심이 많은 건 누구일까요. 심사평 ‘과학의 전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의 상징이 돼 버린 다크레이디’ 프랭클린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수식어는 없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던, 유전공학의 진정한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은메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는 노벨상의 대전제는 틀렸다. 왜냐?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내가 그 증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쓴 책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독자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압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상 선정자 발표에서 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인 ‘자유’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최소한 한 켤레 이상의 신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는 자유’에 불과하다. 노벨상은 문학적인 영예에 거액의 상금을 줌으로써 수상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난 내 모든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단호하게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퍼뜨리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나는 결단코 내 필생의 라이벌인 알베르 카뮈(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나보다 먼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심사평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부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1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샤르트로와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토 북베트남총리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후일 금전적인 이유로 ‘상금만 받을 수도 있다.’라며 입장을 바꿔 웃음거리가 됐다. 은메달에 머문 이유다.   금메달 이브 퀴리(1904~2007)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집안에서 홀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엄친딸 수백명이 주위에 있는 것만큼 이상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1903년 노벨물리학상), 어머니는 마리 퀴리(1903년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입니다. 제 언니 이렌과 형부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도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저는 제게 없는 과학적 재능 대신 책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죠. 어머니의 전기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특파원으로 리비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국제기구 활동을 하던 중 미국의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를 만나 결혼했죠. 남편도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진정한 영예는 노벨상이 아닙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인류를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 막대한 가치를 가진 기술의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인류애가 제 핏속에 흐른다는 것에 무엇보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심사평 6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이 인류사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연구에 바빠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마리 퀴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초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빈 평화주의자이자 국제기구 활동에 앞장섰던 ‘영원한 프랑스의 연인’ 이브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전대호/지식의숲)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나도선/양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이광렬/바다출판사)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송성수/살림) 과학사의 빛나는 순간(마농 바우크하게·이수영/웅진주니어) ‘노벨상 위의 사르트르’(르 몽드 1964년 10월22일자)
  • “한국 옷 몇 벌 보여주는 식으론 수출 어렵죠”

    “한국 옷 몇 벌 보여주는 식으론 수출 어렵죠”

    “한복 세대가 아니다 보니 한국적인 게 싫었다. 우리는 심플, 모던 이런 거 외치던 세대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었는지 한국적 정서가 은근히 좋아진다. 지금은 외국 나가면 되레 동양적이면서 선(禪)적이란 평을 듣는다(웃음).” 1988년 탄생한 여성 의류 브랜드 ‘데무’는 박춘무(57) 디자이너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무’와 ‘~으로부터’란 뜻의 프랑스어 ‘데’(de)를 결합시킨 단어다. ‘모든 패션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란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그는 1996년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일본, 미국, 중국 등의 패션쇼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패션 한류’란 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15년간 현장을 뛰어다닌 선봉장답게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패션 한류 열풍을 일으키겠다’며 컨셉트 코리아 행사를 처음 열었어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패션쇼 기간에 우리 디자이너의 옷을 선보이는 기획이었지요. 영광스럽게도 첫해 행사에 제가 뽑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까 뭔가 방향이 다르더라고요.” 궁극적으로 마케팅(수출)과 연계시켜야 하는데 ‘컨셉트 코리아’는 단순히 한국 옷 몇 벌 가져가 보여주는 전시 행사에 그쳤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외국서 집안 잔치하는 느낌이었다.”고.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요. 차츰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 정부가 나섰다고는 하지만 ‘컨셉트 코리아’에 뽑혀도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이코노미석 왕복 비행기표 딱 두 장뿐이란다. 물론 뉴욕이란 곳에서 전시 공간과 홍보 기회가 제공되기는 한다. 하지만 세계 디자이너들의 전쟁터라는 뉴욕에서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그는 오는 8일 시작되는 ‘2011 뉴욕컬렉션’에는 아예 개인 비용으로 참여한다. 데무의 주제는 ‘파장’. 한복처럼 풀어지고 날리는 선의 옷으로 동양적 울림을 전할 생각이다. “이왕 정부가 패션 한류에 눈을 돌렸으니 좀 더 체계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 세련되게 해야 해요. 이쪽(패션업계) 사람들은 국가가 개입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전시장도 국가관처럼 생겼으면 들어가기 꺼려 해요.” 그는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 전시회 ‘후스 넥스트’ 등에 참여할 때도 일부러 한국 디자이너들이 몰려 있는 전시 공간은 피한다고 했다. 외국의 패션 구매업자들이 한국 디자이너들이 한데 뭉쳐 있으면 꺼릴 뿐 아니라 관(官) 성격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다음 달 2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리는 ‘헤리티지 패션쇼’에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이 패션쇼는 최광식 문화부 장관 후보자의 작품이다. 장관 발탁 직전 문화재청장 재임 때 문화재청 50주년을 기념해 기획했다. 이른바 ‘문화유산과 패션의 만남’. 당시 최 전 청장은 디자이너들을 버스에 태워 ‘필(느낌) 좀 받으라며’ 고궁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도는 답사를 함께했다. 머리에 도자기를 쓰고 모델이 걸으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도 냈다. 하지만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패션문화 페스티벌’처럼 무용, 패션, 문화유산이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어정쩡한 성격의 행사가 될 소지가 있어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깊다고 박씨는 전했다. 1980년대 척박한 패션 시장에서 시작해 아직도 백화점 매장에서 철퇴를 맞지 않고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인 데무. 김남진, 강동원 등의 스타가 데무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유명 배우의 신인 시절을 기억하는 박씨는 “강동원은 모델치고는 얼굴이 너무 예쁘장했지만 나중에 스타가 될 거 같아서 캐스팅했다.”며 웃었다. “서울은 더 이상 패션 시장이 없어요.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죠. 우리는 디자인이나 봉제, 소재가 괜찮고 세계의 패션 흐름도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밥 먹고 옷만 했는데요, 뭘.” 조만간 세계적인 한국의 패션 브랜드가 나오리라고 장담했다. 글 사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패션한류 선봉장 박춘무 “강동원은 모델 하기에는 얼굴이...”

    패션한류 선봉장 박춘무 “강동원은 모델 하기에는 얼굴이...”

     “한복 세대가 아니다 보니 한국적인 게 싫었다. 우리는 심플, 모던 이런 거 외치던 세대니까?. 그런데 나이가 들었는지 한국적 정서가 은근히 좋아진다. 지금은 외국 나가면 되레 동양적이면서 선(禪)적이란 평을 듣는다(웃음).”  1988년 탄생한 여성 의류 브랜드 ‘데무’는 박춘무(57) 디자이너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무’와 ‘~으로부터’란 뜻의 프랑스어 ‘데’(de)를 결합시킨 단어다. ‘모든 패션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란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그는 1996년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일본, 미국, 중국 등의 패션쇼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패션 한류’란 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15년간 현장을 뛰어다닌 선봉장답게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패션 한류 열풍을 일으키겠다’며 컨셉트 코리아 행사를 처음 열었어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패션쇼 기간에 우리 디자이너의 옷을 선보이는 기획이었지요. 영광스럽게도 첫해 행사에 제가 뽑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까 뭔가 방향이 다르더라고요.”  궁극적으로 마케팅(수출)과 연계시켜야 하는데 ‘컨셉트 코리아’는 단순히 한국 옷 몇 벌 가져가 보여주는 전시 행사에 그쳤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외국서 집안 잔치하는 느낌이었다.”고.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요. 차츰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  정부가 나섰다고는 하지만 ‘컨셉트 코리아’에 뽑혀도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이코노미석 왕복 비행기표 딱 두 장뿐이란다. 물론 뉴욕이란 곳에서 전시 공간과 홍보 기회가 제공되기는 한다. 하지만 세계 디자이너들의 전쟁터라는 뉴욕에서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그는 오는 11일 시작되는 ‘2011 뉴욕컬렉션’에는 아예 개인 비용으로 참여한다. 데무의 주제는 ‘파장’. 한복처럼 풀어지고 날리는 선의 옷으로 동양적 울림을 전할 생각이다.  “이왕 정부가 패션 한류에 눈을 돌렸으니 좀 더 체계적으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 세련되게 해야 해요. 이쪽(패션업계) 사람들은 국가가 개입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전시장도 국가관처럼 생겼으면 들어가기 꺼려 해요.”  그는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 전시회 ‘후스 넥스트’ 등에 참여할 때도 일부러 한국 디자이너들이 몰려 있는 전시 공간은 피한다고 했다. 외국의 패션 구매업자들이 한국 디자이너들이 한데 뭉쳐 있으면 꺼릴 뿐 아니라 관(官) 성격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다음 달 2일 서울 경복궁에서 열리는 ‘헤리티지 패션쇼’에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이 패션쇼는 최광식 문화부 장관 후보자의 작품이다. 장관 발탁 직전 문화재청장 재임 때 문화재청 50주년을 기념해 기획했다. 이른바 ‘문화유산과 패션의 만남’.  당시 최 전 청장은 디자이너들을 버스에 태워 ‘필(느낌) 좀 받으라며’ 고궁과 국립중앙박물관을 도는 답사를 함께했다. 머리에 도자기를 쓰고 모델이 걸으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도 냈다.  하지만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패션문화 페스티벌’처럼 무용, 패션, 문화유산이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어정쩡한 성격의 행사가 될 소지가 있어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깊었다고 박씨는 전했다.  1980년대 척박한 패션 시장에서 시작해 아직도 백화점 매장에서 철퇴를 맞지 않고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브랜드인 데무. 김남진, 강동원 등의 스타가 데무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유명 배우의 신인 시절을 기억하는 박씨는 “강동원은 모델치고는 얼굴이 너무 예쁘장했지만 나중에 스타가 될 거 같아서 캐스팅했다.”며 웃었다.  “서울은 더 이상 패션 시장이 없어요.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죠. 우리는 디자인이나 봉제, 소재가 괜찮고 세계의 패션 흐름도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밥 먹고 옷만 했는데요, 뭘.”  조만간 세계적인 한국의 패션 브랜드가 나오리라고 장담했다.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탄환은 토마토 120톤…신나는 스페인 토마토 축제

    경제위기로 침울한 스페인이 100톤이 넘는 토마토를 던지며 모처럼 기분을 전환했다. 세계적인 토마토 축제 ‘토마티나’가 지난달 31일 스페인 부뇰에서 개최됐다. 토마티나는 1944년 열린 후 매년 8월 셋째 수요일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토마토 잔치. 올해에도 미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 수만 명이 모여 토마토에 흠뻑 빠져 전쟁을 벌였다. 현지 언론은 “인구 1만의 부뇰이지만 축제에는 4만여 명이 참가했다.”며 해마다 축제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뇰의 중심부에 있는 공원을 메인 무대 삼아 열린 토마토 축제는 전쟁이다. 닥치는 대로 토마토를 던지고 맞으면서 즐기는 축제다. 주최 측은 이날 행사를 위해 토마토 120톤을 준비했다. 트럭 5대가 한꺼번에 토마토를 쏟아내면서 신나는 토마토 전쟁이 벌어졌다. 부뇰 당국은 축제 개막에 앞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토마토는 반드시 발로 밟아 으깬 후 던질 것,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착용할 것, 가능한 물안경을 착용하고 전쟁에 임할 것 등 ‘교전수칙’을 발표했다. 경찰 200명과 경비원 50명을 전쟁터(?)에 투입, 질서를 유지하게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부뇰이 이번 축제 쓴 돈은 모두 10만 유로(약 1억5200만원). 이 중 3만 유로(4500만원 정도)를 토마토 구입에 썼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벤 존슨 도핑 확인 경험 살리겠다”

    “벤 존슨 도핑 확인 경험 살리겠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막이 열리기 전부터 분주한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 1900여명이나 되는 선수들의 혈액 시료를 짧은 시간 내에 분석해야 하는 센터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연구실은 25명의 연구원을 제외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도핑테스트 공인 기관인 이곳은 19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축구월드컵, 이번 대구육상대회까지 국내에서 열린 크고 작은 대회에서 도핑테스트를 담당해 왔다. 88 올림픽에서는 남자 100m 금메달리스트였던 벤 존슨의 약물 복용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권오승(51) 도핑컨트롤센터장은 “20여년 전 존슨의 도핑을 걸러낸 것처럼 이번 대회에서도 철저한 검사를 통해 단 한명의 선수도 도핑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권 센터장을 지난 24일 오후 KIST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구 대회 준비는 어떻게 돼 가나. -센터에서는 이미 선수들의 시료 분석이 한창이다. 보통 약물 복용을 숨기려는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약을 먹는 경우가 많아 선수들이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시료를 채취해 도핑 테스트를 한다. 선수가 선수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반(反)도핑을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시료는 48시간 안에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클린대회를 선언한 이번 대회에서 특별히 마련한 도핑방지 계획은. -대회에서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주관하는 국제대회 중 처음으로 모든 참가선수들의 생체여권을 만든다. 보통은 순위권의 선수들을 지목하거나 참가 선수 중 무작위로 선정해 도핑테스트를 한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모든 선수에 대한 도핑테스트를 실시해 꼴찌를 한 선수라도 약물의 힘을 빌렸는지 미리 걸러낼 수 있다. 대구 현지에서도 경기장 옆에 설치된 부스에서 실시간으로 도핑 테스트를 한다. 자동혈액분석기를 이용해 1시간에 60~70여개의 시료를 빠르게 분석해 낼 수 있다. →테스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간단히 말해 선수의 혈액 등 시료를 채취해 성분을 분석하고,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규정한 250여가지 이상의 금지약물 표준품과 비교하는 과정이다. 1차 스크리닝 과정에서 의심소견이 나오면 2차로 확인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성시료로 확인된 경우에는 의심선수 본인이나 대리인이 직접 입회한 자리에서 새로운 시료를 개봉해 검사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거친다. 세 차례에 걸쳐 철저한 검증을 하므로 결과가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수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나. -도핑 방법이 진화하는 만큼 검사 방식도 발전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생체여권을 도입했기 때문에 블러드 도핑(자가수혈·적혈구 농도를 높여 산소운반능력을 끌어올리는 도핑 방식)이나 유전자 도핑까지 모두 걸러진다. WADA에서도 선수들이 복용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약물과 도핑 방법이 밝혀지는 대로 포괄적인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선수들이 도핑을 피할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번 대회에 최초로 도입되는 생체여권이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생체여권처럼 한 선수에 대한 고유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선수생활 기간 받았던 모든 도핑테스트 결과를 기록하면 추적이 쉬워진다. 기록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다가 어느 순간 결과가 변하면 도핑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도핑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88올림픽 당시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벤 존슨의 시료를 분석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존슨이 스테로이드 스타나조롤을 투여한 사실을 밝혔는데 금메달리스트의 도핑 결과가 잘못 나오면 큰일 난다는 부담감에 떨리기도 했다. →대회 개막을 앞둔 각오는. -국내에 도핑센터가 처음 설립될 당시에는 기술력이 부족해 독일의 분석 기술을 도입해야 했다. 그러나 20여년 만에 우리만의 독자적인 방식을 갖춘 센터로 성장했다. 그동안 발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무엇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해서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는 데 일조하겠다. 글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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