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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 간다? MBC, 기안84 논란 한달째 묵묵부답… 시청자들이 속속 하차

    나 혼자 간다? MBC, 기안84 논란 한달째 묵묵부답… 시청자들이 속속 하차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본명 김희민)의 하차 여부를 두고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최근 웹툰이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인 이후 하차 요구가 빗발친 지 한 달째지만 방송국은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은 채 녹화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4일 ‘나 혼자 산다’ 361회 방송에는 고정 멤버인 기안84가 출연하지 않았다. 웹툰 논란 직후 촬영분이 나간 첫 주를 제외하면 3주째다. MBC 측은 “기안84의 개인 사정으로 녹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며 “하차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기안84는 지난달 11일 네이버 웹툰에 공개된 ‘복학왕’ 304화에서 능력이 부족한 20대 여성 봉지은이 남성 상사와의 잠자리 후 정규직이 된 것처럼 그려 성차별적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네이버 웹툰에 기안84의 연재 중단을 요구했고 같은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6일 기준 13만명을 넘겼다. ‘나 혼자 산다’에도 불똥이 튀었다.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은 문제가 불거진 후 전쟁터로 변했다. “수차례 논란에 휩싸인 기안84를 MBC가 여러 차례 감싸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방송으로 웹툰 창작을 보여 줘 홍보 효과가 있었다는 점도 하차 요구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반면 “만화의 표현을 문제로 프로그램까지 관두는 건 옳지 않다”는 옹호 의견도 맞선다. MBC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안84의 기여도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3년여 출연 기간 동안 특유의 기행과 ‘세 얼간이’ 등 코믹 캐릭터로 연예대상 수상 등 ‘나 혼자 산다’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지난해 5월 기안84의 작품이 장애인 희화화 등으로 문제가 됐을 때도 방송 활동에는 타격이 없었다. 제작진은 과거 인터뷰를 통해 “기안84는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태도가 7년간 간판 예능의 자리를 지켜 온 ‘나 혼자 산다’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월 최고 12.7%까지 올랐던 시청률은 논란 이후 7~9%대(닐슨코리아 기준)로 떨어졌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기안84의 지분이나 팬을 고려해 공식 하차 선언 대신 차차 출연을 안 할 가능성이 높지만, 논란이 지속되면 방송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오히려 최근 여성 출연자들의 인기를 활용해 새 구성을 도모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의료 무너진 ‘코로나 핫스폿’ … 중남미, 백신 개발 전쟁터 됐다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들이 중남미 지역으로 몰려가고 있다. 임상시험 대상을 충분히 구할 수 있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공공보건 체계가 무너져 감염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백신 시험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은 칠레와 아르헨티나, 페루에서 감염병 백신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3상 시험을 결정한 브라질과 멕시코, 콜롬비아에 이들 세 나라를 추가해 총 6만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다. 로이터통신은 “백신 개발자들은 더 신뢰할 수 있는 시험 결과를 얻고자 전파와 감염이 활발한 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페루에서도 중국의약집단(시노팜)이 개발 중인 백신 3상에 참여할 18~75세 자원자 6000명을 모집한다. 시노팜은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에서도 임상을 진행 중이다. 류징전 시노팜 회장은 “(페루 등) 해외 시험이 끝나는 대로 제품 허가를 신청할 것”이라면서 “올해 말이면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브라질에서는 영국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하는 백신과 중국 베이징커싱(시노백) 백신에 대한 임상이 시작됐다. 멕시코 역시 미국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제약사가 제안한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콜롬비아도 글로벌 제약사들과 임상 참여 여부를 논의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중남미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해 다양한 조건의 환자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7일 오후 2시 기준 국가별 누적 확진자 순위는 브라질(373만명) 2위, 페루(61만명) 6위, 멕시코(57만명) 7위, 콜롬비아(57만명) 8위, 칠레(40만명) 10위, 아르헨티나(37만명) 12위 등이다. 중남미 국가들도 적극적이다. 제품이 출시되면 ‘임상시험 참가국’이라는 명분으로 1차 제조 물량을 가장 먼저 확보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브라질의 사례를 소개하며 “광범위한 감염과 풍부한 전문 인력, 튼튼한 백신 제조 인프라 덕에 코로나19 백신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실험실이 됐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코로나19 백신 임상 ‘전쟁터’ 된 중남미…글로벌 제약사들 쇄도

    코로나19 백신 임상 ‘전쟁터’ 된 중남미…글로벌 제약사들 쇄도

    전 세계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들이 중남미 지역으로 몰려가고 있다. 임상시험 대상을 충분히 구할 수 있고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공공보건 체계가 무너져 감염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백신 시험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은 칠레와 아르헨티나, 페루에서 감염병 백신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앞서 3상 시험을 결정한 브라질과 멕시코, 콜롬비아에 이들 세 나라를 추가해 총 6만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다. 로이터통신은 “백신 개발자들은 더 신뢰할 수 있는 시험 결과를 얻고자 전파와 감염이 활발한 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페루에서도 중국의약집단(시노팜)이 개발 중인 백신 3상에 참여할 18~75세 자원자 6000명을 모집한다. 시노팜은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에서도 임상을 진행 중이다. 류징전 시노팜 회장은 “(페루 등) 해외 시험이 끝나는 대로 제품 허가를 신청할 것”이라면서 “올해 말이면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브라질에서는 영국 옥스퍼드대·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하는 백신과 중국 베이징커싱(시노백) 백신에 대한 임상이 시작됐다. 멕시코 역시 미국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제약사가 제안한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 콜롬비아도 글로벌 제약사들과 임상 참여 여부를 논의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중남미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은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해 다양한 조건의 환자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27일 오후 2시 기준 국가별 누적 확진자 순위는 브라질(373만명) 2위, 페루(61만명) 6위, 멕시코(57만명) 7위, 콜롬비아(57만명) 8위, 칠레(40만명) 10위, 아르헨티나(37만명) 12위 등이다. 중남미 국가들도 적극적이다. 제품이 출시되면 ‘임상시험 참가국’이라는 명분으로 1차 제조 물량을 가장 먼저 확보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브라질의 사례를 소개하며 “광범위한 감염과 풍부한 전문 인력, 의약품 제조 인프라 덕에 코로나19 백신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실험실이 됐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그리스·터키 영유권 분쟁 고조… 나토군 집결 동지중해 ‘일촉즉발’

    그리스·터키 영유권 분쟁 고조… 나토군 집결 동지중해 ‘일촉즉발’

    터키 지질탐사선, 함정 호위 받으며 조사그리스 “EEZ 해당… 주권보호에 맞대응”에르도안 맞불 예고에 佛·UAE 견제나서동지중해서 3국 합동훈련… 獨 자제 촉구지중해 동쪽 해상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인 그리스와 터키, 프랑스에 이어 아랍에미리트(UAE) 군사력이 집결하면서 최근 긴장 수위가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자칫 섣부른 판단에 의한 충돌 위험 경고가 나올 정도로 살얼음판 분위기다. 특히 앙숙 관계인 그리스와 터키가 해묵은 분쟁에 더해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지를 두고 함정을 동원하는 등 무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CNN과 BBC 등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10년 미국 지질조사국 조사에 따르면 동지중해에는 석유 최소 17억 배럴과 천연가스 3조 4546억㎥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된다. 오스트리아 유럽안보연구소 마이클 탠첨 선임 연구원은 “연안의 천연가스 자원이 동지중해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며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하는 지정학적 화약고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터키 국방부가 “이날 동지중해에서 동맹국 공조와 상호 운용성을 고양시키는 해상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히며 긴장이 한층 높아졌다. 터키 국방부가 밝힌 훈련 해상은 터키 탐사선 오루츠 레이스가 지난달부터 함정의 호위를 받으면서 지질을 탐사하는 해역의 연장선이다. 그리스는 터키의 지질 탐사 해역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라고 주장하면서 터키 남쪽에서 약 2㎞ 떨어진 카스텔로리조 해상에서 맞대응 훈련에 나섰다. 그리스 정부는 “주권을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그리스의 맞불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그리스의 대응은) 파괴적이고, 선박의 안전 운항을 위험에 빠뜨린다”며 “지금부터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어떤 부정적인 결과도 그리스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위협했다. 프랑스와 UAE도 터키 견제에 나섰다. 그리스와의 연대이자 터키의 해상 탐사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 프랑스는 동지중해에 군사력을 늘리고 있다. 크레타에 전투기 라팔 2기와 구축함을 파견, 그리스와 합동 훈련을 벌였다. UAE 역시 그리스와의 공조로 크레타 공군기지에서 F16 전투기 를 발진시키는 훈련도 했다. 탠첨 연구원은 “프랑스와 UAE는 터키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협력하는 반면 터키는 동지중해를 국익에 필수적이라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동지중해에서 무력이 집결되자 독일이 그리스와 터키 간 중재에 나섰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불똥 하나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양국에 자제를 호소했다. 동지중해는 그리스와 터키뿐 아니라 분단된 키프로스 사이에서도 전쟁터가 되고 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남키프로스가 프랑스의 토탈, 이탈리아의 ENI와 같은 에너지 기업에 천연가스 채굴을 허가하자 터키 정부는 터키령 북키프로스의 자원을 약탈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탠첨 연구원은 “오산에 의한 충돌 위험이 어느 때보다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유체이탈로 국민 조롱” 통합당, 김현미 ‘30대 영끌’ 발언 비난(종합)

    “유체이탈로 국민 조롱” 통합당, 김현미 ‘30대 영끌’ 발언 비난(종합)

    미래통합당은 26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30대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했다는 뜻) 발언에 대해 “국민을 조롱하는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맹비난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이날 “집값은 올려놓고 내 집 마련해보려는 불안한 30대에 장관은 ‘안타깝다’고 조롱하고, ‘그중 일부는 투기꾼’이라며 적폐로 몬다”며 “국민의 내 집 없는 설움을 아는가”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국민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정책 선회는 인사로만 가능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문가 장관을 찾아보라”고 여권에 촉구했다. 전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토교통위원회 결산심사 참석해 “법인과 다주택자 등이 보유한 주택 매물이 많이 거래됐는데 이 물건을 30대가 영끌로 받아주는 양상”이라며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최근 언론 보도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부동산 관련 법안이 통과됐고 이 효과가 8월부터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8월이 지나야 통계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김 장관을 향해 “집값과 전세값을 폭등시켜 온 국민의 영혼을 탈탈 털리게 만든 주무부처의 장관이 할 소리인가”라고 쏘아붙였다. 하 의원은 “30대가 패닉 바잉에 나서게 만든 건 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전쟁터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김 장관은 유체이탈 화법 말고 집값, 전셋값 폭등과 그동안 집값 잡힌다고 사기친 것부터 국민들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아프가니스탄 첫 여성 감독 사바 사하르 총격 받고도 목숨 건져

    아프가니스탄 첫 여성 감독 사바 사하르 총격 받고도 목숨 건져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사바 사하르(45)가 수도 카불에서 영화 작업을 하러 이동하던 중 총격을 받고 다쳤지만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남편 에말 자키가 전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이면서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사하르는 25일(이하 현지시간) 카불 서쪽에서 차량을 타고 이동 중 세 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남편은 사하르가 복부에 총상을 입었지만 수술이 잘 끝났다고 전했다. 피격 당시 사하르의 차량에는 두 경호원, 한 어린이, 기사가 함께 탑승하고 있었는데 경호원들은 총상을 입었지만 어린이와 기사는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까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히고 나선 단체는 없다. 사하르가 집을 떠난 지 5분 뒤에 총성을 들었다고 자키는 말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총격을 받고 배에 총알을 맞았다고 말했다고 했다. 현장에 달려갔더니 모두들 다친 채였다. 아내가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가 나중에 경찰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경찰관 교육도 받았고 여전히 내무부 소속으로 일하면서 영화 일도 한다. 자신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일관되게 정의와 부패를 다룬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 활동가나 인권 옹호자들을 겨냥한 공격이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한편 8년 전 영국 일요신문 옵서버는 사하르가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푸른색이 감도는 눈에 뾰족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코에 피어싱한 채 촬영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난 아프간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보수주의자들이 자기 딸들과 아내를 집에 가둬두지 말고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거나 나라의 재건을 돕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하르는 작품마다 여자 주인공으로 등장해 탈레반이나 반군들, 마약계 거물 등 악당들에 맞서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전통의상을 입고는 쿵후 식의 높은 발차기를 구사하고 희생자들을 어깨에 메고 안전한 곳으로 옮기며, 오토바이를 타면서 총을 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살해하겠다’는 식의 협박이 그치지 않고 여배우를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사 배역과 장비, 스태프, 자금을 모두 갖추더라도 여전히 일터는 진짜 전쟁터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매일 아침 집을 떠날 때마다 죽을 수 있고 가족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덧붙였다. 사하르는 1996년 탈레반이 권력을 쥐고 영화 상영마저 불법화하자 파키스탄으로 피신했다. 그 뒤 미국에 망명을 신청해 2001년 비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탈레반이 몰락하면서 카불로 돌아와 영화사를 설립했다. 2004년 첫 영화 ‘법(THe Law)’ 시사회를 할 때는 소요가 우려돼 영화관 소유주가 경찰들을 부르기도 했으나 소란은 없었고 영화는 뜻밖에 흥행을 했다. 남편과 아이 등 개인사는 말하려 하지 않지만 이미 이혼을 했고, 자신의 직업을 지원하는 가족이나 친지도 엄마를 비롯해 자매 등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고 말한 점을 보면 자키는 새 남편으로 보인다. 사하르는 ”나는 사람들에게 아프간에 전투와 마약, 테러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다른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노력하다가 내가 죽게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포연 속 렌즈, 치열하게 찍은 선악

    포연 속 렌즈, 치열하게 찍은 선악

    납치돼 목이 잘릴 뻔한 고비 ‘생생’전쟁과도 같은 사랑 여정도 담아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린지 아다리오 지음/구계원 옮김/문학동네/472쪽/1만 9800원 “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으며 내 피사체들과 생존의 기쁨이나 억압에 저항하는 용기, 상실의 비통함, 억압받는 자의 끈기를 나누었으며, 가장 추악한 인간의 잔인함과 가장 훌륭한 선의를 지켜보았다.” 자신을 납치한 반군에게 “오늘 밤 그 예쁜 모가지를 싹둑 베어 줄게”라는 살해 협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카메라를 놓지 못한 여성 보도사진가가 남긴 말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키 155㎝의 평범한 여성의 몸 어디에 저런 강인함이 숨어 있는 걸까.‘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는 전장(戰場)과도 같은 세계 곳곳의 갈등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진기자의 자전 에세이다. 긴 망원렌즈를 들 때마다 휴대용 로켓포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진실을 보여 줄 의무”를 되새기며 위험 속으로 직진하는 종군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을 전쟁과도 같은 사랑 이야기와 함께 그린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늘 최대 피해자로 남게 되는 여성과 아이들 문제에 분노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몇몇 매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하던 저자가 전환점을 맞은 건 2001년이다. 당시 금융 뉴스를 다루던 다우존스의 인도지국장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에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보라고 권했다. 이후 9·11 테러 등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중동에 쏠렸고, 저자 역시 종군기자로 상당한 경력을 쌓게 된다.위험 지역을 취재하는 만큼 죽을 고비는 무시로 찾아왔다. 이라크, 리비아에선 납치돼 목이 잘릴 뻔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의 매복 공격을 받아 저승 문턱을 오갔다. 납치 상황에서도 차별은 엄연했다. 이라크 반군들은 동료 남성 기자는 누워 자게 하면서도 저자는 꼿꼿이 앉아 있게 했다. 여성이 낯선 남성 앞에서 누워선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성추행은 ‘흔한’ 일이었다. 대규모 군중집회 때 특히 그랬다. 과도한 호르몬과 광기로 달아오른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남자들의 손 수십 개가 엉덩이와 사타구니를 동시에 주무를 때도 있었다. 책에 매캐한 포탄 냄새와 피비린내만 진동하는 건 아니다. 욱스발이라는 바람기 많은 멕시코 남성, 자신의 눈 호강을 믿기 어려울 만큼 미남이었던 이란 배우 메디를 거쳐 로이터통신 터키지국장이었던 현 남편 폴에게 가는 여정도 적지 않은 분량으로 곁들여진다. 저자는 전쟁터와 평화로운 곳을 오가며 겪었던 이 혼란의 과정을 “젊은 시절의 자멸적인 연애 행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저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남자들은 모두 동종 업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가 ‘자멸적 연애 행각’이라고 한 건 결국 옷에 밴 포탄의 흔적과 피 냄새를 씻기 위한 한순간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여겨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2006년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던 그날 밤, 터키에 머무르던 저자는 남은 인생을 이 남자와 함께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원제는 ‘잇츠 왓 아이 두’(이것이 내가 하는 일)다. 그는 뉴욕타임스 취재팀의 일원으로 취재한 ‘탈레바니스탄 시리즈’로 2009년 국제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민주주의는 ‘투쟁·통합’ 두 얼굴 가진 야누스의 정치

    민주주의는 ‘투쟁·통합’ 두 얼굴 가진 야누스의 정치

    이변이 발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침체의 늪에 빠졌던 미래통합당의 정당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질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공고한 대세론을 유지하던 이낙연 전 총리의 지지율을 앞섰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으로 40% 이하로 떨어졌다. 이 상황을 호사다마(好事多魔)로 해석해야 할까? 이 상황은 민주당이 넉 달 전 4·15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과 대비되고 두 달 전 60~70%대를 유지하던 대통령의 지지율과도 대비된다. 민주당, 대통령, 이낙연 전 총리의 지지율이 한배를 탄 양상이다. 총선 후 오거돈 사건, 박원순 사건, 윤미향 사건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 문제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이 강력한 것인가, 아니면 정당체제가 취약한 것인가?● 한국, 해방 후 75년간 투쟁 일변도 정치 지속 프랑스가 낳은 20세기의 실천적 석학 모리스 뒤베르제가 창안한 이론에 ‘뒤베르제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정당정치에서 소선거구제는 양당제에 가깝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에 가깝다는 법칙이다. 현실정치에 잘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그러나 소선거구 양당제 정치나 비례대표 다당제 정치의 어느 쪽이 정치 안정에 더 기여하는지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이 없다. 정당정치는 시민혁명 이후 유럽에서 먼저 발달해 근대의 정치 발전과 정치적 안정화에 기여했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근대가 시작되던 혁명기에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이해관계의 갈등을 조절하는 데 정당과 의회와 선거라는 기제가 유용하게 작용했다. 정당은 좌파와 우파, 자본가와 노동자, 지역과 종교, 언어와 문화를 대표했고 정당정치는 이들 간의 차이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사회통합과 정치 발전에 기여했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 정치의 모습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에 비견되는 근대정치의 유산을 만들지 못했다. 유럽이 봉건제의 모순을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해결하면서 근대를 열어 나갈 때 조선은 왕조체제의 내적 모순으로 자멸하면서 결국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를 강요당했다. 우리에게서 근대는 굴절이자 몰락이었다. 우리는 식민지 근대 위에 해방 후 미국식 현대가 수입돼 중첩되는 제3세계의 보편적 과정을 거쳤는데, 여기에 분단과 전쟁이라는 예외적 사건이 부가되면서 한국 정치의 특수성이 만들어졌다. 그 후 해방 75년이 분단 75년이 됐다. 우리는 해방이 곧 분단인 비극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해방 정국은 근대에서 현대로의 과도기였고 한국전쟁은 그 과도기 정치의 결정판이었다. 한반도는 동포와 형제를 절대 악으로 간주하는 절멸의 정치를 구사했다. 절멸의 정치가 남한에서는 우편향의 극단적 이념 대결로 나타났다. 이념 대결은 군사독재를 낳고 군사독재는 지역 대결을 낳았으며, 부조리와 몰상식과 폭력을 낳았다. 이것이 얼마 전까지 보았던 한국 정치의 원형이다. ● 의회는 투쟁에 대한 ‘백신’ 역할 하는 장치 1987년 6월항쟁은 몰상식한 한국 정치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버린 대사건이다. 이 사건의 여파가 노태우 정부의 자유화, 김영삼 정부의 탈군사화, 김대중 정부의 재벌개혁,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주의화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출범으로 역사적 반동화가 시도됐지만 반동의 물결이 6월항쟁의 벽을 넘지는 못했고, 다시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면서 원상회복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 역사적 탈군사화로 독재가 몰락하고 극단적 이념 대결의 시대가 퇴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는 여전히 분단에 기초한 우편향적 이념 구조와 내면화된 지역 대결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구조는 한반도에서 분단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분단국가의 유전자와도 같은 것이다. 그저 분단 구조 위에서 국내외 정세의 영향을 받아 남북 대결과 이념 대결의 강도가 달라지는 정도에 따라 정치적 대결의 양상이 달라지는 정도의 부수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기본틀이다. 한국 정치에 작용하는 최근의 대표적인 국내외 정세는 밖으로는 미중 대결이고 안으로는 대통령 탄핵이다. 미중 대결은 과거의 미소 대결처럼 한국 정치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절대 변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외생 변수의 특성상 미중 대결이 아직은 한국 정치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다만 미래의 파급력을 미루어 유추할 뿐이다. 반대로 내적 변수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상황은 최근 3년간 우리 정치에 직접 작용하고 있다. 이것을 탄핵정치 혹은 탄핵의 후폭풍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인데 대결정치, 막말정치, 장외정치 등 최근 보았던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는 탄핵정치의 생생한 사례들이다. 이것은 보수도 아니고 실용도 아닌, 이념도 없고 철학도 없이 그저 편협한 지역주의에 근거한 극우 화풀이 정치 그 자체였다. 탄핵을 인정하지도 않고 탄핵에 반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미래통합당의 정당 지지율이 올랐다. 오비이락 격으로 몇 가지 정책에서 진보에 버금가는 정책적 선회를 감행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의 정책적 선회가 어떻게 될지 쉽사리 결론을 전망하기는 어렵지만 미래통합당이 탄핵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우리 정치가 탄핵정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싶다. 정당 지지율 1위 정당이 앞장서서 동식물 국회를 만들지는 못할 것 아닌가. 뒤베르제는 서구 민주주의를 야누스의 두 얼굴에 빗대서 투쟁과 통합의 정치로 설명했다. 투쟁이 없는 통합은 사기성이 짙다. 반대로 통합 없는 투쟁 일변도의 정치는 자기 파괴적이다. 인간사회에서 이익이 대립하는 한 갈등과 투쟁은 불가피하겠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갈등의 방식과 투쟁의 장소는 선택할 수 있다. 적벽에서 칼로 싸울 것인지 여의도에서 말로 싸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역사적 진보의 결정적인 증거는 칼을 말로 바꾸고 폭탄을 투표용지로 바꾼 후 의회라 불리는 유연한 상설 전쟁터를 설치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에 백신이 있는 것처럼 의회는 투쟁에 대한 백신 역할을 하는 장치인데 이 속에서는 투쟁과 통합이 일거에 이루어진다. 중세가 저물어 가면서 신에 대해서 인간이 주목받고 속박에 대해서 자유가 부각되던 인류사 격동의 시절에 뒤베르제가 자유에 대한 논란을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난다”는 말로 정리했다. 뒤베르제의 자유론은 그보다 200년 앞선 계몽주의 시대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승계한 것인데, 유럽에 비해 자유를 위한 투쟁의 경험이 제한적인 우리로서는 깊이 경청할 만하다. 특히 절대자유를 방종으로 경계하는 제한자유론이 절대권력의 등장을 몰락의 서막으로 간주해 차단하고자 한 제한권력론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분단·반공 기억 넘어 ‘통합’의 정치 시도 기대 우리는 해방 후 75년 동안 투쟁 일변도의 정치를 했다. 우리 정치사의 투쟁은 남북 대결의 연장이었고 미소 냉전의 그림자였다. 그 와중에도 통합의 정치가 시도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냉전과 분단과 지역주의가 넘사벽이었고 몰상식과 부조리가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도 있었다. 미소 냉전구조가 사라졌고 남북 관계도 예전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분단과 반공과 과거의 기억에 기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마침 미래통합당의 정당지지율이 크게 오르고 당의 정강정책에도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는 상황이니 이참에 투쟁 일변도의 정치가 투쟁과 통합의 두 얼굴의 정치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신화 속의 비판적 야누스가 우리 정치에는 희망일 수도 있겠다. 상지대 총장
  • 일제강점기 ‘초등생 강제노역’ 학적부 공개

    일제강점기 ‘초등생 강제노역’ 학적부 공개

    국가기록원과 국립중앙도서관, 동북아역사재단은 13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쟁에 동원된 아동과 여성’을 주제로 전시와 공동 포럼을 열었다. 해방 75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번 전시에선 각 기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 기록 가운데 아동·여성 강제동원 관련 각종 기록물 35건이 공개됐다. 관련 기록물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기록원 소장기록으로는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노역 현장에 강제동원한 ‘학도동원’(學徒動員) 내용이 담긴 학적부가 눈길을 끈다. 그동안 학생 동원과 관련한 연구는 있었지만 실제 인물과 동원내용이 기재된 명부가 공개된 것은 드문 사례라고 기록원에선 설명했다. 일제가 1938년부터 학교별로 결성했던 근로보국대에 동원된 학생이 졸업 후 전쟁터로 끌려간 사실을 학적부(중학생)와 일선 파견부대 군인·군속 명부인 ‘유수명부’(留守名簿)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영도 기록원 학예연구관은 “공주의 한 국민학교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1944년에 6학년 학생(12∼13세)을 부대 형태로 만들어 강제노역을 시킨 것을 찾아볼 수 있다”며 “당시 일제는 항공유가 부족해 나무껍질에서 기름을 추출했다. 한 달에 20차례나 강제동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국가기록원 등 3개 기관은 이번 포럼과 전시를 계기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기록 분석,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 관련 사업과 연구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일제강점기 35년, 독립운동가도 부역자도 기억해야”

    “일제강점기 35년, 독립운동가도 부역자도 기억해야”

    “3·1운동, 유관순 기억으로만 그쳐선 안 돼6월 항쟁까지 이어진 우리 민족의 DNA”김 알렉산드라·최재형 선생·손기정 선수그림 그리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꼽아 “너무나 많은 독립운동가가 잊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친일 부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광복 이후에도 그들이 권력을 누리며 영화롭게 살도록 해 준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박시백 작가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린 역사만화 ‘35년’ (비아북) 기자간담회에서 출간의 의미로 ‘기억’을 꼽았다. 책은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35년을 담았다. 앞서 300만부가 팔린 밀리언셀러 ‘조선왕조실록’(20권)을 완간한 2013년부터 시작해 7년이나 걸려 모두 7권으로 완간했다. “일제강점기 35년사에 관해 일반인들 이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그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공부하며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전작에서는 ‘실록’이라는 명확한 자료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는 관련 자료들이 상충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무엇보다도 등장해야 할 인물이 너무 많았다. 박 작가는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독립운동가와 친일 부역자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조선인 최초로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했다가 총살당한 여성 김 알렉산드라, 연해주에서 큰 부를 일구고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바친 최재형 선생, 일장기 말소 사건 정도로만 기억하지만 여운형의 건국동맹 밑에서 활동한 손기정 선수 등을 꼽았다. 그는 이렇게 수많은 인물이 살아낸 35년이 “우리가 사는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해방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35년은 그저 그런 역사가 아니에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단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박 작가는 전체 7권 가운데 3·1운동을 다룬 2권과 친일파를 추적한 7권을 꼭 읽으라고 추천했다. 3·1운동에 관해서 “그저 유관순 열사로만 기억하는 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세계 민중운동사에서 찾기 어려운 혁명이었고, 4·19와 6월 항쟁까지 이어진 우리 민족의 DNA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7권에선 “당시 글이나 강연으로 ‘천황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라’고 한 지식인들을 다룬다. 광복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들에 관해 우리가 좀더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중국 댐 때문에 동남아 국가 물 부족” 美中 갈등 새 접전지 떠오른 메콩강

    “중국 댐 때문에 동남아 국가 물 부족” 美中 갈등 새 접전지 떠오른 메콩강

    美 “댐 너무 많이 지어 하류지역 피해”中 “댐이 물 저장해 유량 확보에 도움”양국 ‘제2의 남중국해 충돌’ 재현 우려코로나19 책임론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총영사관 폐쇄 등을 두고 전방위에서 충돌 중인 미국과 중국이 이번에는 ‘동남아의 젖줄’ 메콩강(4350㎞)을 두고 맞붙었다. 강 하류의 가뭄이 심해지자 미국은 “중국이 상류에 댐을 너무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고, 중국은 “오히려 우리 댐 덕분에 강이 살아났다”고 반박했다. 메콩강 유역이 제2의 남중국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일 “미중 두 나라가 메콩강 가뭄에 정반대의 분석을 내놨다. 양국 갈등의 새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메콩강은 중국의 티베트에서 발원해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가는 동남아 최대 하천이다. 이 강에 의존해 사는 사람만 700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인도차이나반도의 곡창지대에 가뭄이 잦아졌다. 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중국이 1990년부터 강 상류에 짓기 시작한 댐들이 원인”이라고 토로해 왔다. 올해 4월 미국의 컨설팅 업체 아이스온어스는 메콩강 수계 분석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우기(5~10월)에 상류 수위는 평균을 넘었지만 하류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 중국이 우기 동안 물을 흘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댐들이 470억㎥의 물을 붙잡아 둬 중·하류 지역이 가뭄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유엔의 후원을 받는 ‘지속가능인프라파트너십’(SIP)과 ‘메콩강하류지역협력이니셔티브’(LMI)가 의뢰해 작성됐다. LMI는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5개 메콩강 유역 국가들과 설립한 기구다. 반면 중국 수자원연구소와 칭화대는 지난달 전혀 다른 결과를 소개했다. 중국의 댐들이 우기에는 메콩강의 홍수를 완화하고 건기에는 저장된 물을 방류해 가뭄 문제를 해결한다는 반론이다. 칭화대는 “메콩강의 가뭄은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량 감소의 결과”라면서 “오히려 중국의 댐이 우기에 물을 저장했다가 건기에 방류해 강의 유량 확보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세상의 나쁜 것은 다 중국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미국 등) 외국 연구자들의 음모에 대한 반박”이라고 치켜세웠다. 수자원 전문가인 세바스티안 비바 독일 괴테대 연구원은 “메콩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분석이 이렇게 상이한 것은 이 지역이 남중국해처럼 두 나라의 전쟁터가 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윤리의 출발점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윤리의 출발점

    단호한 말들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발언의 권리는 누가 정하는가? 주관적 경험과 사태의 진실 사이 낙차는 무엇인가?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질문이다. 영화 ‘1917’은 1917년 4월 6일 하루 동안의 전투를 다룬다. 사병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겪는 경험의 생동감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 기법을 많이 주목한다. ‘나누어 찍은 장면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씨네21’)이다. 인물들의 행보를 좇는 카메라의 운동은 관객에게 전투를 직접 체험한 것처럼 감각적 쾌감을 준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그 감각적 실감은 두 사병이 참전해 죽거나 살아남는 참혹한 당일의 전투 혹은 더 나아가 1차 세계대전의 진실을 얼마나 오롯이 전달하는가? 개인의 체험은 얼마나 사태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가? 이런 말들을 듣곤 한다. “나는 전쟁에 참여했다. 그래서 전쟁의 진실을 잘 안다.” 더 쉽게 말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다. 언뜻 수긍할 만한 주장이지만 착각이다. 직접적 경험이 사태의 진실을 가리는 경우도 많다. ‘1917’처럼 전쟁터에서 바로 옆에서 죽어 가는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 아마 대부분의 군인은 격한 슬픔과 분노, 적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정념(passion)에 쉽게 사로잡힌다.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다. 오히려 정념에 사로잡힌 존재다. 그리고 그런 분노, 슬픔, 적개심 때문에 사태의 진실을 종종 보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 지닌 감각의 한계다. 전쟁이든 무엇이든 어떤 사태의 진실에 도달하려면 휘몰아치는 정념의 혼란스러운 계곡을 통과해 냉철한 인식의 지평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자적으로 생생한 주관적 경험을 했다고 해서 꼭 사태의 진실을 보게 되지는 않는다. 경험은 진실에 이르는 주요한 통로이지만 둘은 같지 않다. 당사자주의라는 말이 있다. 당사자는 어떤 일을 직접 몸으로 겪은 존재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 일을 직접 경험했으므로 당사자는 누구보다 사태의 진실을 잘 알 것이다.’ 절반만 적중한 말이다. 물론 당사자가 겪은 경험의 가치를 십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면도 유념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청년 맑스’는 그 지점이 무엇인지를 포착한다. 두 혁명가 바이틀링과 마르크스 사이의 논쟁이 인상적이다. 바이틀링은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난 편지를 수천 통 받았어요. 민중의 고통과 유리된 탁상공론보다 내 겸손한 노력이 대의에 훨씬 이바지함을 입증한 편지를요.” 마르크스가 분노하면서 대꾸한다. “무지가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바이틀링은 노동자 출신의 혁명가였다. 당대에 이미 혁명운동에서 자리를 확고히 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노동계급 출신이 아닌 마르크스가 어쩌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출신을 따지면서 그 출신만이 발언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걸 출신주의(nativism)라고 한다. 예컨대 흑인 등 차별받는 유색인종만이 인종주의를, 무산자(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계급 문제를, 성적 소수자만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언급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태도. 지금, 이곳에서도 종종 확인하는 모습이다. 직접 경험이 주는 생생한 감각의 힘이 있다. 하지만 그게 관건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그 점을 날카롭게 타격한다. 출신이 무엇이든 당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무지가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무지와 만용은 그렇게 통한다. 자신이 속한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생활 경험은 소중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경험에 수반되는 정념의 강한 힘 때문에 진실을 호도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물며 사안의 당사자를 대변하는 이들이 진실을 선험적으로 파악한 듯이 확언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누구도 사안의 진실을 선험적으로 알 수는 없다. 진실은 자임하는 것이 아니라 입증돼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조차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리어왕’)라고 물어야 하는 곤혹스러운 존재다. 감각과 인식에서 구멍이 많은 존재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어쩌면 불가능한 노력만이 가능하다. 그 지점이 내가 생각하는 윤리의 출발점이다.
  • ‘총성없는 전쟁터’ 영사관… 양자외교 한 축이자 패권경쟁 축소판

    ‘총성없는 전쟁터’ 영사관… 양자외교 한 축이자 패권경쟁 축소판

    ‘G2’(주요 2개국) 미중의 갈등이 ‘영사관 전쟁’으로 한층 격화하고 있다. 양국이 코로나19 책임론, 무역·정보기술(IT) 전쟁에 이어 휴스턴·청두 주재 상대국 영사관 폐쇄 조치로까지 치달으며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고비를 맞았다. 대개 영사관 폐쇄는 단교 직전이나 그 과정에서 취해지는 외교 조치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짐작된다. 중국은 27일 오전 10시를 기해 청두 주재 미 총영사관을 개관 35년 만에 완전히 폐쇄했다. 앞서 미 총영사관은 72시간의 시한인 지난 사흘간 화물 트럭 5대를 투입해 짐을 내보냈고, 이날 오전 6시 18분 성조기를 내리며 폐쇄 절차를 사실상 마쳤다. 중국 공안은 아침 일찍부터 주변 도로를 통제하고 외부 접근을 막았다. 중국 외교부 군공사는 이날 정오 “우리는 정문을 통해 들어가 정당하게 접수 절차를 집행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미국에 항의하는 현지 주민 수백명은 건물 앞에 몰려 있다가 공안이 바로 진입하지 않자 “당장 끌어내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이날 장면은 양자외교의 한 축이자 패권 다툼의 공간이었던 영사관이 ‘겉은 우아하되 본질은 냉혹한’ 국제외교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순간이었다. 영사관은 대사관과 더불어 외교 및 재외국민 보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외 주재국에 설치된 접수국 외교부처 소속 재외공관이다. 1961년 체결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각국은 자국의 강제력·위협의 공포 없이 주재 외교관들이 고유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외교 공관에 권한을 부여한다. 주로 주재국 수도에 설치되는 대사관이 주재국과 상대국 정부 간 공식 대화·외교 창구 역할을 한다면, 영사관은 기타 주요 도시에서 해당국 교민을 위한 여권·비자 발급, 자국민 보호, 경제투자 등 민원 업무를 처리한다. 대사관은 국가승인을 해야 설치할 수 있지만, 영사관은 국가승인 없이도 설치할 수 있다. ●中, 61개국 중 1위… 韓 13위로 선진국 대열에 영사관을 포함한 재외공관은 그 나라의 국력과 외교 파워, 상대국과의 관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65년 상주대사관 24개, (총)영사관 9개 등 재외공관이 35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달 기준 전 세계 191개 수교국 중 상주대사관 115곳, (총)영사관 46곳, 대표부 5곳 등 총 166개 공관으로 55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에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시카고, 애틀랜타, 호놀룰루, 휴스턴 등 9곳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중국에는 광저우, 상하이, 선양, 시안, 우한, 청두, 칭다오, 홍콩 등 8곳에 총영사관이 있어 미국(6곳)보다도 많다. 아프리카는 수교 48개국 중 18곳에 대사관을 두고 있으며 영사관은 없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글로벌 외교 인덱스’에 따르면 중국이 전 세계에서 운영하는 재외공관 수는 총 276개로, 미국(273개)을 앞지르며 61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13위에 올랐다. 재외공관으로만 따지면 한국의 외교력도 선진국 대열에 든 셈이다. 영사 및 영사관의 신분과 임무, 특권·면제조항은 1963년 채택된 ‘영사관계에 따른 빈 협약’에 따라 대사·대사관에 준해 보장된다. 영사 역시 외교사절로서 불체포, 형사소추 면제의 신체 불가침 특권을 누린다. 접수국 관리는 영사 등의 동의를 얻은 경우, 전염병 방지·화재 등 긴급 조치를 요할 경우를 제외하고 치외법권 지역인 영사관 영내에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문제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해외 주재 북한 재외공관이 마약밀매와 카지노, 레지던스 등 불법 외화벌이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북러 합작회사가 주소를 버젓이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영사관으로 등록해 놓는 등 대놓고 불법 영업을 자행하고 있지만, 제재가 쉽지 않다. 이번 미중 갈등처럼 드러났듯 영사관이 면책특권을 이용해 상대국 안보·산업 정보수집에 나서는 은밀한 기지라는 점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본 시사주간지 슈칸다이슈는 2017년 4월 일본 내 중국 간첩 실태를 전하면서 “도교 중국대사관을 거점으로, 오사카·후쿠오카·나고야 등지 총영사관을 중계지로 해 (중국이) 스파이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외교 불가침 구역’이라는 점에서 영사관 침입이나 폐쇄는 국제사회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갈등 관계에 있는 나라나 자치령·소수민족 출신들이 상대국 영사관 월담을 곧잘 시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영사관 폐쇄는 즉각 단교를 의미하는 대사관 폐쇄보다는 충격이 덜하지만 상징적 측면에서 충분하다는 점에서 헤게모니 경쟁 때마다 흔히 시도돼 왔다. ●습격·추방·폐쇄… 반복되는 ‘오욕의 역사’ 2017년 1월 호주 멜버른의 인도네시아 총영사관에 서파푸아 독립 깃발이 게양된 사건으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호주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파푸아는 20세기까지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지배를 연달아 받다가 1971년 분리독립선언 이후 오늘날까지 인도네시아에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는 미승인 국가다. 서파푸아 출신 용의자는 2.5m 벽을 넘어 들어가 독립을 상징하는 샛별기를 매달고 도주했는데,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범인 체포와 처벌, 영사건물의 안전 보장을 강력히 촉구했다. 지난해 11월 이라크의 시아파 이슬람 성지인 카르발라시에서는 반정부 시위대 수십명이 이란 영사관을 습격, 콘크리트담을 기어 넘어 이란 국기를 끌어내리고 자국 국기를 게양하기도 했다. 반정부 시위이지만 적대국 이란에 대한 분노도 겹치면서 영사관을 침범하는 행위를 통해 정부와 이란에 대한 불만을 중첩 표출한 셈이다. 영사관 폐쇄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2018년 러시아와 영미 등 서방세계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해 3월 영국에서 러시아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당시 66세)과 딸 율리아(33)가 독극물 암살 미수를 당했는데, 약물이 옛 소련서 개발된 노비촉으로 밝혀지며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됐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유럽국가들이 줄줄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고, 이에 동조한 미국도 시애틀 소재 러시아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동시에 자국 내 러시아 외교관을 무려 60명 추방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맞서 러시아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국·영국 총영사관을 퇴출하고 동수의 미국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한동안 파장이 지속됐다. 영사관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운을 달리하기도 했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조선땅에 가장 먼저 진출한 서구 열강 프랑스가 공사관을 영사관으로 격하시켰던 비운의 역사도 있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국교가 단절된 타이완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타이완은 1948년 수교 이후 공산주의에 맞섰던 공통적인 경험으로 인해 우방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북방외교 일환으로 한중이 외교관계를 맺자 타이완은 단교를 선언했다. 그해 8월 24일 마지막 주한 대사였던 진수지가 눈물의 퇴임사와 함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내리는 것으로 서울 명동 대사관은 영원히 문을 닫았다. 이듬해 7월 양국은 각국 수도에 영사관을 대신하는 대표부를 설치하며 교류를 겨우 재개했지만, 명동 건물에는 주한 중국대사관이 들어섰다. 외교 상황이 반전됐지만 영사관을 다시 열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좌파정권을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행보로 관계가 악화된 콜롬비아에 지난해 2월 일방적 단교를 선언하며 영사관을 폐쇄했다. 그러나 경제 실패로 ‘남미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베네수엘라는 폭증한 자국 이주민들이 콜롬비아에서 출생신고도 못 하고 범죄인 인도에도 애를 먹자, 올 1월 “영사급 관계를 복원할 준비가 돼 있다”며 다시 손을 내밀었지만 콜롬비아로부터 단칼에 거절당했다. 외교관계가 개설이나 단절은 쉬울지 몰라도 복원은 쉽지 않다는 것을 세계 각국 영사관이 오욕의 역사로 증명하는 셈이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야간 검역 후 쪽잠 자고 또 근무… 땀·노력만으론 방역에 한계

    야간 검역 후 쪽잠 자고 또 근무… 땀·노력만으론 방역에 한계

    “승선·특별입국 검역조사 3교대 하려면 여수검역소 검역인력만 20명 더 있어야”공항검역은 해외 유입자 늘며 부담 커져 “질본까지 총괄, 행안부에 인력 증원 요청충원은 복지부 본부부터, 검역소는 뒷전땜질식 인원 보강이 아닌 체계적 처방을”지난달 22일 러시아 국적 화물선에서 확진자가 쏟아진 이후 항만 검역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승선 검역을 강화하고 27일부터 방역 강화 대상 국가 외국인 입국자는 진단검사를 의무적으로 두 번 받도록 했다. 이렇게 업무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일손은 태부족이다. 현장에선 언제까지 체력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땀과 노력만 갈아 넣는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검역 구멍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여수 검역관 증원은 5년간 2명씩 그쳐 김인기 국립부산검역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역관들이 누적된 피로에 지쳐 있다”며 “지금 현장은 전쟁터 같다”고 호소했다. 김 소장은 “확진자가 생기면서 교대근무를 한 뒤 쉬어야 할 검역관들까지 동원돼 연장근무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 부산검역소에서 승선 검역을 하는 인원은 40여명이다. 부산 신항에 5명, 검역소 본소에 7명을 지원받았지만 밀려드는 검역 물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검역소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립여수검역소는 지원인력 7명을 포함해 29명이 검역을 하고 있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검역관들이 야간 검역을 하고 돌아와 쪽잠을 청하고서 오전 검역에 다시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역소 인력 부족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검역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매번 ‘찔끔 증원’에 그쳤다. 부산검역소 검역관 정원은 2015년 49명에서 2019년 51명으로, 여수검역소는 2015년 23명에서 2019년 25명으로 각각 2명이 늘었을 뿐이다. 피로 누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방역에 구멍이 나지나 않을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지원 인력은 정규인력이 아니어서 아무래도 숙련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손발을 맞춰 같이 맞물려 돌아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하루 입국 3000~4000명… 매일 긴장의 연속 승선 검역은 고도의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에 떠밀려 좌우로 흔들리는 철제계단이나 줄사다리를 밟고 건물 3~5층 높이의 갑판에 올라야 한다. 부산검역소 관계자는 “지금은 검사 물량이 늘어 검체 채취 장비 등 챙겨 가야 할 장비가 한 보따리”라면서 “큰 짐을 지고 사다리를 오르다 보니 위험성이 더 커졌다. 선원들의 검체를 일일이 다 채취해야 해 승선 검역에 1시간 이상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먼바다에 있는 선박을 검역할 때는 세관정을 타고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이 걸린다. 승선 검역에 검역관 3명을 투입하고 특별입국 검역조사를 하는 데 3명 이상이 필요하니 동 시간대에 적어도 검역관 6명이 일해야 한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이 인원으로 3교대 근무를 하려면 순수 검역 인력만 지금보다 20명 이상이 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항 검역은 항만 검역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최근 해외 유입자가 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관계자는 “인천공항은 그동안의 증원 노력으로 인력 충원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하루에 3000~4000명의 입국자가 들어오고 있어 피로가 중첩되고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고 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조금씩 검역을 보강하는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검역 체계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내려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까지 총괄해 행정안전부에 인력 증원 요청을 하는데, 정작 충원 인력은 복지부 본부부터 챙기고 나머지를 내주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그러다 보니 검역소 인력은 매번 후순위로 밀렸다”고 말했다. 인원 충원을 미뤄 온 ‘늑장 행정’의 폐해는 이번 사례에서 보듯 고스란히 국민과 검역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쪽잠으로 버텨”… 확진자 폭증하는 항만 검역소, 인력 충원 감감

    “쪽잠으로 버텨”… 확진자 폭증하는 항만 검역소, 인력 충원 감감

    “외국인 입국자 2번 검사 의무교대근무 무의미 …전쟁터 같아”숙련 필요한 ‘승선 검역’ 아슬아슬해외유입자 늘면서 업무 더 가중본부 충원에 검역소는 늘 후순위지난달 22일 러시아 국적 화물선에서 확진자가 쏟아진 이후 항만 검역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승선 검역을 강화하고 27일부터 방역 강화 대상 국가 외국인 입국자는 진단검사를 의무적으로 두 번 받도록 했다. 이렇게 업무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일손은 태부족이다. 현장에선 언제까지 체력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땀과 노력만 갈아 넣는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검역 구멍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인기 국립부산검역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역관들이 누적된 피로에 지쳐 있다”며 “지금 현장은 전쟁터 같다”고 호소했다. 김 소장은 “확진자가 생기면서 교대근무를 한 뒤 쉬어야 할 검역관들까지 동원돼 연장근무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 부산검역소에서 승선 검역을 하는 인원은 40여명이다. 부산 신항에 5명, 검역소 본소에 7명을 지원받았지만 밀려드는 검역 물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른 검역소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립여수검역소는 지원인력 7명을 포함해 29명이 검역을 하고 있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검역관들이 야간 검역을 하고 돌아와 쪽잠을 청하고서 오전 검역에 다시 투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역소 인력 부족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검역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매번 ‘찔끔 증원’에 그쳤다. 부산검역소 검역관 정원은 2015년 49명에서 2019년 51명으로, 여수검역소는 2015년 23명에서 2019년 25명으로 각각 2명이 늘었을 뿐이다. 피로 누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방역에 구멍이 나지나 않을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지원 인력은 정규인력이 아니어서 아무래도 숙련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손발을 맞춰 같이 맞물려 돌아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승선 검역은 고도의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에 떠밀려 좌우로 흔들리는 철제계단이나 줄사다리를 밟고 건물 3~5층 높이의 갑판에 올라야 한다. 부산검역소 관계자는 “지금은 검사 물량이 늘어 검체 채취 장비 등 챙겨 가야 할 장비가 한 보따리”라면서 “큰 짐을 지고 사다리를 오르다 보니 위험성이 더 커졌다. 선원들의 검체를 일일이 다 채취해야 해 승선 검역에 1시간 이상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먼바다에 있는 선박을 검역할 때는 세관정을 타고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 약 3시간이 걸린다. 승선 검역에 검역관 3명을 투입하고 특별입국 검역조사를 하는 데 3명 이상이 필요하니 동 시간대에 적어도 검역관 6명이 일해야 한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이 인원으로 3교대 근무를 하려면 순수 검역 인력만 지금보다 20명 이상이 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항 검역은 항만 검역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최근 해외 유입자가 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 관계자는 “인천공항은 그동안의 증원 노력으로 인력 충원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하루에 3000~4000명의 입국자가 들어오고 있어 피로가 중첩되고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고 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조금씩 검역을 보강하는 ‘땜질식 처방’에서 벗어나 검역 체계에 대한 근본적 처방을 내려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보건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까지 총괄해 행정안전부에 인력 증원 요청을 하는데, 정작 충원 인력은 복지부 본부부터 챙기고 나머지를 내주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그러다 보니 검역소 인력은 매번 후순위로 밀렸다”고 말했다. 인원 충원을 미뤄 온 ‘늑장 행정’의 폐해는 이번 사례에서 보듯 고스란히 국민과 검역관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美 시위현장에 엄마들이 떴다… ‘인간방패’ 만들어 시위대 보호

    美 시위현장에 엄마들이 떴다… ‘인간방패’ 만들어 시위대 보호

    미국 시위 현장에 엄마들이 떴다. 20일(현지시간) CNN은 두 달째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중년 여성 수십 명이 ‘인간 방패’를 만들어 시위대를 보호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소속이 불분명한 연방요원들이 포틀랜드 시위대를 마구잡이로 체포하는 영상이 떠돌아 SNS가 발칵 뒤집혔다. 현지 ‘엄마 방패’(Wall of Moms) 창립자인 베브 바넘도 해당 영상을 접하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명백한 인권 침해였다. 다른 비슷한 영상을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밝혔다.분개하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시위대를 위한 모금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바넘은 포틀랜드 워킹맘 단체를 향해 ‘엄마 방패’를 만들어 시위대를 보호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모인 ‘엄마 방패’ 회원과 워킹맘 70여 명은 시위 현장으로 달려가 스크럼을 짜고 대항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부터 ‘정의 구현 없이는 평화도 없다’(NO JUSTICE NO PEACE), ‘침묵도 폭력이다’(SILENCE IS VIOLENCE) 같은 인종차별 반대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평화 행진을 전개했다. 5주째 평화 행진에 참여하고 있는 레베카도 시위대 보호를 위해 다른 엄마들과 연대했다. 보복이 두려워 성은 밝히지 않은 그녀는 “시위 현장은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젊은이들이 최루가스에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입소문이 나자 엄마부대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19일까지 ‘엄마장벽’ 운동에 합류한 중년 여성은 2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연방군은 평화 행진을 벌이는 엄마부대를 향해서도 최루가스를 발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엄마부대는 시위 현장을 계속 지킬 생각이다. 바넘은 “보호가 필요한 시위자가 없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위 현장에는 보통 주 혹은 시 소속 경찰이 투입된다. 그러나 국토안보부는 사전 조율 없이 포틀랜드에 요원들을 급파해 시위대를 진압했다. 연방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을 앞세웠지만, 목적은 사실상 시위대 해산이다. 시위대는 물론 포틀랜드 시장과 오리건 주지사까지 나서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시위대는 연방요원 투입 이후 시위가 격화되고 최루탄까지 등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방요원을 ‘트럼프 개인 군대’로 규정한 테드 휠러 포틀랜드 시장도 “연방 정부가 권한을 넘어서 평화로운 포틀랜드 시위자를 위협한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 주지사 역시 “포틀랜드에 주둔한 ‘트럼프의 군대’는 해결책이 아니다.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고 반발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트위터를 통해 “포틀랜드를 도우려는 것이지 해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포틀랜드 지도부는 몇 달 동안이나 무정부주의자와 선동가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연방 재산과 ‘우리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따라 국토안보부 휘하 연방요원들의 시위 진압 활동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레깅스 보라고 운동하는 거 아냐, 날 찾으려는 거야!

    레깅스 보라고 운동하는 거 아냐, 날 찾으려는 거야!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먹기 위해서 운동하는 여자가 최근 화제다. 주인공은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출연자인 코미디언 김민경이다. ‘맛있는 녀석들’의 유튜브 콘텐츠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그는 운동 경험이 전무하지만 어떤 동작이든 척척 해내는 ‘로보캅’으로 변신했다. ‘근수저’(근육 금수저)라고 불리며 무거운 운동 기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서 건강한 자극을 받아 운동을 시작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김민경에게 환호하는 건 그가 다이어트 강박으로부터 해방감을 선사하기 때문일 터다. 유독 여성에 대한 외모 규범이 엄격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온갖 시선이 쏠리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지 않으면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나태한 사람으로 치부당하는 까닭에 여성은 늘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한다. 그런 가운데 운동 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늘도 잘 놀고 잘 먹었다’고 말하는 김민경의 모습이야말로 여성들에게 진한 쾌감을 선사한다. 오프라인에서 여성들을 위한 운동 수업을 기획하고 유튜브에서 운동 채널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운동친구’가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목적도 이와 맞닿아 있다. ‘운동친구’는 여성에게 운동의 목적이 반드시 ‘아름다움’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여성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시선으로 내 몸을 바라보게 하는 것. 맹목적인 다이어트가 아니라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 ‘운동친구’가 탄생한 이유다. ‘운동친구’의 대표이자 지난해 3월 출간한 에세이 ‘운동하는 여자:체육관에서 만난 페미니즘’의 저자 양민영씨와 ‘운동친구’에서 일일 운동 수업을 기획하는 이효나씨, 운동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강지영씨를 만나 여자들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 봤다. -‘운동친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사회적기업 형태로 운영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양민영 지난해 책 ‘운동하는 여자’를 냈을 때 이벤트성으로 여성들을 위한 일일 운동 수업을 진행했었어요.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고민하다 운동을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사업의 형태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 10~20대 여성은 60대 여성보다 운동을 안 한다는 자료가 있더라고요. 이건 사회적인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에 지원을 했고요.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일일 운동 수업을 두 번 진행했어요. 지난 5월부터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영상을 제작해 올리고 있는데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운동하기 어려운 분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손쉽게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려고 합니다. -일일 운동 수업을 진행한 소감은요. 양민영 운동 종목에 따라서 외부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역도를 이용한 데드리프트 운동과 호신 발차기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운동을 함께했어요. 참가자들이 여자들끼리 수업을 해서 안전한데다 남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나중에는 대규모 운동회를 한다든지 여성들이 참여하는 대회도 열어 보고 싶어요. 이효나 첫 수업 때는 한국에서 크로스핏 역도를 가장 잘 하는 여성 전문가가 지도하셨고, 두 번째 수업 때는 격투기 선수 생활을 10년 한 분이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그냥 운동을 잘하는 여자들이 운동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고무되더라고요. 여자 분들이 멋있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다들 그런 부분도 좋아해주었어요. 세 사람은 취미로 운동을 시작했다. 양 대표는 처음에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가 약 5년 전부터 크로스핏을 하면서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씨는 친구 권유로 무에타이를 시작한 이후 격투기와 주짓수를, 강씨는 1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에서 여성들을 위한 운동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럭비와 유사한 얼티미트와 헬스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각각 다른 이유로, 다른 종목으로 운동을 처음 접했지만 세 사람이 운동을 통해 얻게 된 효과는 비슷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삶의 변화가 있나요. 양민영 체력이 좋아진 것과 더불어 정서적인 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예전의 저는 생각만 많고 행동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생각한 것 중 한두 가지를 실행으로 옮길까 말까였는데 운동을 하면서 ‘무조건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체화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할 때도 ‘할 수 있겠구나. 해보자’ 이런 도전 의식이 생기더라고요. 이효나 케틀벨 같은 도구를 이용한 운동을 할 때 처음부터 무거운 걸 들어 올릴 수는 없잖아요. 몇 주에 걸쳐서 점점 더 무거운 케틀벨을 들다 보면 하는 만큼 느는 게 운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평소에 벼락치기를 하거나 어떻게든 꼼수를 부리는 사람이었는데 운동에서는 그런 게 안 통하거든요. 꾸준히 하면 된다는 점을 알게 된 후로는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양 대표는 지난해 펴낸 에세이 ‘운동하는 여자’ 중 ‘레깅스, 너 보라고 입은 게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짚었다. ‘파이고 달라붙는 옷까지 갈 것도 없이 여성의 몸은 가만히 있어도 대상화된다. (중략) 남성들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눈앞에 어떤 여성이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운동을 하는 동시에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과 맞서는 중이다’라고. 신체를 단련하는 공간인 체육관이 여성들에게는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한 공간임을 짚는 구절이다. -체육관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강지영 운동을 배우고 싶어서 헬스장에 상담을 하러 갔는데 트레이너가 저를 보더니 ‘지금도 딱 보기 좋은데 운동을 왜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체육관에 간 건데 트레이너는 무조건 제가 살을 빼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가 친구랑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주변 남자들이 저랑 친구를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운동 자체를 하기 싫더라고요. 양민영 미국 사람들은 조깅을 많이 하잖아요. 어떤 통계를 봤는데 조깅하는 여성 열에 여덟아홉명은 조깅을 하다 성추행 발언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여성이 밖에 나와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력 운동 중에 데드리프트를 하려면 엉덩이를 뒤로 많이 빼야 하는데 어떤 여성이 그런 동작을 하면 미디어는 보통 섹시함과 연결하잖아요. 여성들이 운동이 힘들고 할 여건이 안 되니까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시선 때문인 경우도 많아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면서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양민영 예전엔 제 다리가 가늘지 않아서 불만이 많았어요. 그땐 ‘다리는 가늘지 않지만 키는 크니까 괜찮아’ 이런 식으로 제 자신을 평가했어요. 막상 운동을 해보니까 하체가 발달하고 뼈대가 큰 건 힘을 내고 운동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조건이더라고요. 돌아보니 틀에 제 몸을 가둬놓고 있었던 거죠. 서른 살 넘어서까지 한 번도 제 몸을 주인이 되어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늘 어떤 물건을 평가하듯이 바라본 게 제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효나 운동을 하기 전에는 제 팔다리를 이렇게까지 쭉쭉 뻗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격한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제 몸이 얼마나 많은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고요. 그저 시각적인 부분에서만 제 몸을 바라봤죠. 신체 외적인 부분만 몰입해서 본다면 1㎝, 1㎏이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야를 넓히면 오히려 운동을 할 때 몸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감각에 집중하게 되죠. 상대적으로 노출이 많아지는 여름철이 아니어도 한국은 늘 다이어트 열풍이 거세다. 눈과 귀를 현혹하는 온갖 다이어트 식품과 병원의 각종 시술 광고가 넘쳐난다. 여성의 경우 ‘꿀벅지’, ‘애플힙’, ‘황금 골반’을 갖추지 않으면 이상적인 체형에서 벗어난 듯 사회는 늘 다이어트를 강요한다. ‘운동친구’의 운영진들은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건강보다 몸매를 가꾸는 데 집중하는 상황을 우려했다.-다이어트 산업은 여성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서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양민영 다이어트 마케팅의 문제는 ‘아, 살을 못 빼면 이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거구나’ 하고 압박한다는 점이에요. 어떤 전문가들은 자기 만족을 위해 적당한 다이어트는 괜찮은 것이라고 하죠. 생각해 보면 다이어트에는 상한선이 없는 것 같아요. 그 기준은 계속 올라가잖아요. 더 큰 문제는 연령대의 제한도 없다는 거예요. 아이들의 외모를 두고도 ‘완성형 미모’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잖아요. 성형 광고도 지하철과 같은 일상 공간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고요. -맹목적인 다이어트보다 나 스스로를 위한 운동에 힘쓰는 게 중요한 이유를 꼽자면요. 양민영 운동은 제가 온전히 자립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나의 안전과 나의 자유를 내가 스스로 책임지는 게 자립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성은 남성과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그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어릴 때부터 계속 주입하는 것 같아요. 격투기를 배웠을 때 그 운동이 제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체력 면에서도 그렇고 외부 위협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혹시 누가 나를 공격할 때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거든요. 다른 여성들도 그걸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운동친구’가 앞으로 여성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운동 경험은 어떤 것인가요. 양민영 나중에는 많은 여성들이 뭉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여성들에게 승리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여성들은 뭉쳐서 뭔가를 이뤄낸 경험을 해 본 적이 드문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팀별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또 이런 움직임이 붐이 되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어린 여성들에게까지 확산되면 좋겠어요. 저희가 일일 수업을 마치고 운동이 끝나면 참가자들에게 메시지를 써달라고 부탁하거든요. 과거에 운동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혹은 15살의 어떤 여성에게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깨달은 바가 있으면 써달라고요. 그렇게 모은 메시지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하고 어린 친구들도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70년간 외면한 한국군 위안부 300여명…“아픈 과거사 직면할 때”

    70년간 외면한 한국군 위안부 300여명…“아픈 과거사 직면할 때”

    일본군 위안부는 한국군 위안부라는 또 다른 아픈 과거사로 이어졌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한국군 장교들은 동족과 싸워야 하는 군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고스란히 심었다. 일본 우익에서는 한국군 위안부를 두고 피장파장의 오류로 왜곡시키기도 한다. 1996년부터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 교수는 이를 반박한다. 그는 “우리 정부가 한구군 위안부라는 아픈 과거사에 대해 진상조사하고 사과할 때”라며 “자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도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1951년 5, 6월부터 전선이 지금의 휴전선 부근으로 교착되며 지난한 장기전이 시작됐다. 이에 한국군은 전선에서 조금 남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공식적으로 ‘특수 위안대’를 만들었다. 군의 공식 문서에 확인된 곳만 서울, 강원 강릉, 춘천, 원주, 속초에 이른다. 때로는 최전선에서 교대휴식하는 병사들에게 여성들을 출동시켰고, 섬에 있는 부대에는 따로 위안부를 배치했다. 당시 서울은 행정 복구가 덜 된 데다가 일제시대부터 있던 군부대 시설에 떨어져 있었기에, 서울에서 군 위안부는 민간인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러나 군이 마을을 빼앗아 주둔하던 속초는 달랐다. 속초 주민들과 주둔하던 미군 폴 팬처는 “시청 인근에 있던 군 위안부 앞에 육군이 줄지어 서 있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이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낮에는 밥과 빨래 등 일을 노예처럼 하고, 밤에는 성착취를 당했다”고 증언한다. 위안부는 일반 병사들이 ‘총알받이’를 한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제5 보급품’이었다. 고위 장교들은 북에서 데려온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포로를 ‘첩’으로 삼았는데, 병사들이 이를 좋게 볼리도 없었다. 납치된 이북 여성이나 북한군이 점령할 당시 부역했다는 죄목으로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됐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장교들은 일반 병사에게 너희들도 북에서 여성들을 데려와 같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했다”고 해석한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 우리 육군은 사기 진작을 위해 60여명을 1개 중대로 하는 위안부대 3, 4개를 운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예비부대로 빠지기만 하면 사단 요청에 의해 모든 부대는 위안부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5연대도 예비대로 빠지기도 전부터 장병들의 화제는 모두 위안부대 건이었다.……우리 연대는 위안부대는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순서대로 티켓을 나눠줬고, 훈장을 받았다면 우선권을 줬다.” 한국군 위안부에 대한 육군과 장교들의 기록 한국군 위안부의 규모는 군 공식 기록을 통해 추산할 수 있다. 1956년 육군본부가 후방 지원 업무를 발전시키기 위해 ‘후방전사(인사편)’를 펴내면서 특수 위안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서울 1개 소대와 강릉 3개 소대(총 79명)라는 기록과 서울 3개 소대와 강릉 1개 소대(총 89명)를 적은 표를 종합하면, 서울 3개 소대와 강릉 3개 소대에 약 128명의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김 교수는 “여기에 춘천, 원주, 속초 등의 위안부와 1953년 서울에 추가로 설치된 4개 소대를 합하면, 전국 위안부는 약 300명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또한 ‘후방전사’의 ‘특수위안대 실적 통계표’에 따르면 서울과 강릉의 4대 소대에서 위안부 89명이 1952년 한 해에만 20만명이 넘는 군인을 ‘위안’했다. 단순 계산하면 위안부 한 명이 하루 평균 6명 이상의 군인에게 성착취를 당한 것이다. 소대별로 들여다보면 서울 제2소대(중구 초동 105번지)가 그해 8월 1명의 위안부가 상대한 군인수가 한달 평균 269.6명(하루 8.7명)으로 가장 많았다. 1952년 4월과 8월 강릉 제1소대(강릉 성덕면 노암리)에서도 30명의 위안부가 1명당 한달 평균 266.7명(하루 8.6명)을 ‘위안’했다. 1954년 3월에야 특수 위안대는 없어졌다. 김 교수는 “이들은 직업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 납치된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목격자들이 “치장하지 않은 매우 어린 여성으로 보였다”고 증언하고, 한 북파 공작원은 김 교수에게 “자기가 살던 마을에서 여성을 납치해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고 리영희 교수도 1988년 첫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역정’에서 “낙산사 주변 방공호에서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케 하는 은전을 베풀었는데, 병사 한명이 자기 고향에서 흘러온 아가씨를 만나 눈물에 젖었다”고 적었다. 복수의 증언자의 소개로 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들을 찾았다. 이들은 “나는 자식들을 키웠을 뿐”이라며 낯선 연구자에게 울음만 토해냈다. 다만 당시 의대생이던 정씨는 국군에게 부역자로 몰려 위안부가 될 뻔했다고 말했다. 피난을 가지 못한 학생들과 인민군을 치료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씨는 “○○여대다. ○○여중생이다 하면 모두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했다. 국군들은 우리를 인민군에게 버림받은 찌꺼기로 여겼다. 친구 3명과 나는 부대 장교 4명에게 배정됐지만 한 군인(남편)의 부탁으로 빠져나왔다. (헤어진 친구 3명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긴다. 못 다한 얘기는 가슴에 묻은 채 관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원류가 조선시대 기생제?” 한국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특별 위안대의 설치·운영 책임자는 육군본부 후생감(휼병감)이다. 위안대가 만들어진 1951년 무렵 부임한 장석윤 후생감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10여년을 일본군, 만주국군에서 복무했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그의 뒤를 이은 김병길 후병감도 태평양 전쟁 당시 학도병 출신이었다. 김희오 장군은 회고록 ‘인간의 향기’에서 “우리 중대에도 주간 8시간 제한으로 6명의 위안부가 배정됐다. 이는 과거 일본군대 종군 경험이 있는 일부 연대 간부들이 부하 사기 앙양을 위한 발상을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정면 반박한다. 조선시대에는 군 위안부가 없었고 일제시기부터 생겨났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조선시대 전통적 기생은 예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본이 강화도 조약을 맺고 제물포(인천) 등지를 조차하면서 예인이 지워진 기생이 등장하고 러일전쟁 때 확산됐다. 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없었다면 한국군 위안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역사 왜곡도 경계한다.장군들의 회고록에는 위안부에 대한 반성이나 문제의식을 찾기 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론화가 한국군 위안부의 ‘불편함’을 일깨웠다. 김 교수는 “상급 장교들은 ‘자신을 왜 일본군 취급을 하느냐’며 위안부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북한 여성을 납치한 군인은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는 일본인과 달리 정이 통한다’고 변명했다. 또 다른 군인은 ‘위안소를 이용하면 빨리 죽는다는 소문이 돌아 나는 이야기만 나눴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고 리영희 교수는 “사실 내가 강릉 부대에 있을 때 위안부를 만났다. 그때는 내가 인권 의식이 부족해서 전쟁 체험담으로 기록을 했는데, 부끄럽다”고만 할 뿐 말을 아꼈다. 군 당국은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 교수가 2002년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외압도 이어졌다. 당시 재직하던 학교를 통해 청와대와 국방부는 ‘조용히 연구하라’고 전했다. 지금도 군은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함구하며 외면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서울신문에 “한국군 위안부 관련 진상조사는 한 적이 없다”면서도 “후방전사 인사편에는 특수 위안대 관련 일부 내용이 기술돼 있으나 지금까지 기술된 내용 외에 구체적인 사료나 자료가 없어 추가적인 사실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또한 “관련 희생자 위령사업 등에 대해 현재 별도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군 경력이 있는 일부 한국군 간부들이 위안부를 설치·운영했다’는 “학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육군에서 언급할 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아픈 과거사 진상조사해야…일본에도 더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김 교수는 공개되지 않은 군 자료 가운데 진상의 실마리가 숨어 있을 것으로 본다. ‘후방전사’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일본군 위안부처럼 한국군 위안부가 일주일 2회 군의관에게 성병 등을 검진받도록 했다. 기초 신상과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는 단서가 기록됐을 것으로 본다. 발굴 작업은 김 교수의 은퇴 이후 연구 목표이기도 하다.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지만 군 위안부는 다뤄지지 못했다. 전쟁 중 만연했던 성범죄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여순 사건 등 직권조사한 사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피해자나 유가족이 신청한 사건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만들어지기 전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김 교수는 성폭력 사건과 한국군 위안부를 다루자고 제안했지만,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지난 5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연말쯤 꾸려질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교수는 “내년부터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하늘의 영웅들·노병의 목소리…한국전쟁 70주년 담은 다큐

    하늘의 영웅들·노병의 목소리…한국전쟁 70주년 담은 다큐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주역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EBS는 25일 오후 8시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의 영웅들’을 방송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전쟁 출격 조종사 129명 중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7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94·예비역 대장)을 비롯해 박재호(93·예비역 준장), 최순선(90·예비역 대령), 신관식(91·예비역 대령), 이배선(90·예비역 대령), 이학선(90·예비역 중령), 임동선(94·예비역 중령) 등 당시 출격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다시 돌아보고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조국의 의미를 되짚어보자는 취지다.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은 외조부가 국가유공자인 가수 윤하가 맡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공군은 전투기는 물론 무기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약 1900명의 병력과 단 22대의 연락기, 훈련기가 전력의 전부였던 대한민국 공군은 정전협정이 체결될 무렵엔 총병력 1만 1461명, F-51전투기 80대를 포함해 110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공군으로 성장한다. MBC는 이날 오후 10시 6·25 전쟁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노병과 소년’을 방송한다. 80~90대 후반에 접어든 참전 유엔군 노병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방송은 그들이 겪은 전쟁,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참혹한 기억,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엔 22개국 참전 노병들의 전쟁에 대한 기억과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는 ‘마지막 소원’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됐다. 밴드 호피폴라의 첼리스트 홍진호가 OST에 참여해 세계 각국의 어린 소년병들을 위로한다. KBS ‘한국인의 밥상’은 한국전쟁을 맞아 전쟁터의 생명줄 역할을 한 음식을 되짚어 본다. 지게부대원이 전달한 주먹밥과 보급품 등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했던 간절한 음식의 기억들을 풀어낸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권수정 서울시의원 제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건의안 통과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이 대표로 제안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건의안이 18일 서울특별시의회 제295회 정례회 기획경제위원회 상임위에서 통과됐다. 권 의원이 건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에는 기업에 중대 사업재해 책임을 물어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중대 산업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 관리·감독의 주체인 기업에 대한 처벌이 미미한 현실을 개선해 안전한 노동환경을 마련하고자 함이다. 지난 4월 경기도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참사는 38명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사 원인과 유형은 2008년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 창고 화재사고와 유사했다. 12년 전 노동현장과 달라진 게 없다.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아달라는 외침은 계속되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여전히 부재하다.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사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산재사고 사망자의 절대 다수는 하청노동자이다. 그러나 현 산업구조상 산업현장 안전관리의 책임은 기업 최고경영자가 아닌, 하위 직급 종사자에게 분산되어 있다. 산업현장의 중대재해 책임을 원청업체와 사업주에 직접적으로 연계시킬 관련 처벌 근거 역시 미비하다. 하청 노동자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회사 비정규직 노동자 故김용균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28년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으나, 현행법으로는 여전히 원청의 최고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2009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으로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사건은 전체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솜방망이 처벌로 사용자와 정부가 방관하는 사이, 노동현장에서는 안타까운 죽음만 늘어만 갔다. 권 의원은 “기업은 비용, 기업이윤, 효율성, 안전 불감증 등의 이유로 살인적인 인명피해를 이어오고 있다. 사용자의 안전책임 회피현상으로 안전해야 할 노동현장을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로 만든 것이다.”라며, “경영자에게 원천적 안전 책임을 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구비해야만 중대재해 발생을 강력히 예방을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7년 영국에서 제정된「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도입 2년만에 산재 사망률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권 의원은 국가권력이 적극적으로 작동해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국회를 향해 “산재 사망 1위 국가 대한민국의 오명을 벗고 노동을 존중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21대 국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를 착수해야 한다.”라며 관련 법 제정을 위해 국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본 건의안은 오는 30일 서울특별시의회 제295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상정된 이후 국회로 이송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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