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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의 전쟁/시민들 표정...反戰 몸살 경제 걱정 테러 공포

    미국이 20일 오전 끝내 이라크를 침공하자 우리 사회 곳곳에도 심상치 않은 후폭풍이 몰려왔다. 시민들은 불안과 우려 속에 시시각각 전쟁 상황을 전하는 언론에 촉각을 기울였고,미 대사관 주변은 이날 밤 늦게까지 반전 촛불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무고한 희생은 최소화돼야 이날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를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뉴스를 지켜보던 실향민 이광민(66)씨는 “폭격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겪지 않은 젊은이들은 참담함을 모른다.”면서 “무고한 국민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신경림 시인은 “비참하다.”고 말문을 연 뒤 “미국이 이번 전쟁을 마무리하면 세계 여론이 나빠져 오히려 북핵문제에는 유연한 자세를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회사원 정희원(23·여)씨는 “전쟁이 혹시 국내 테러로 이어질까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이라크에 가족을 둔 사람들은 더욱 마음을 졸였다.‘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인간방패’ 역할을 하며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유은하(29·여)씨의 약혼자 이정기영(27)씨는 “연락이제대로 되지 않아 무사하기만을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와 상인들은 물가가 폭등하고 불경기가 이어질 것을 걱정했다.예지동 광장시장에서 한복도매상을 하는 이종임(41·여)씨는 “개시도 못한 상인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조되는 반전·반미 물결 7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과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등은 이날 오후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류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이들은 민중연대 오종렬 공동대표,녹색연합 김제남 사무처장 등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미 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 회원·직장인·대학생·네티즌 등 3000여명이 이날 밤 8시부터 1시간30분 남짓 광화문우체국 앞 8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촛불집회를 가졌다.22일 오후에는 1만명 이상의 시민이 종로 일대에서 대규모 반전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요르단에 체류 중인 민주노총 전쟁반대 대표단 김형탁(41) 단장은 이날 전화 통화에서 “세계 각국의 평화운동가와 함께 요르단·이라크 접경지대로 몰려든 난민 구호 활동과 반전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30여개 기독교 단체로 구성된 ‘반전평화기독연대’,‘반전평화 불교대책위’ 등 종교계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반전평화 교회여성연대’ 등 여성계도 잇따라 반전 성명을 냈다. 반면 강영훈 전 국무총리,황장엽 탈북자동지회장 등이 참여한 ‘자유통일국민대회’는 이날 시국선언문에서 “동맹국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적극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은 지난 18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 공병·의료·수송 등 한국군의 비전투병 파병에 54.2%가 ‘동의한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전투병 파병에는 75.6%가 동의하지 않았다. ●테러 대비 비상경계 강화 경찰은 이날 이팔호 경찰청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가진 뒤 미 대사관,미 8군,미 상공회의소 등 미국 관련 시설에 26개 중대 3200여명을 배치하는 등 주요 시설 690여곳의 경비를 강화했다. 인천국제공항은 경찰특공대 소속 장갑차를 여객터미널에 배치하고 외곽초소를 3배로 늘리는 등 비상체제에 들어갔다.폭발물 처리반도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구혜영 유영규 이세영 이두걸기자 koohy@
  • 말말말˙˙˙

    전쟁 중 스포츠 경기를 계속하는 것이 비애국적 행위라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전쟁터에 있는 우리 병사들도 경기 결과를 궁금해할 것이다.고국의 각종 경기가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병사들의 사기는 오히려 떨어질 것이다.-21일부터 열리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베이힐인비테이셔널 주최자인 아놀드 파머가 이라크 전쟁으로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 서상섭의원 바그다드 3信 “후세인 거처 아무도 모른다”

    한나라당 서상섭·안영근,민주당 김성호·송영길 의원 등 4명의 국회의원이 12일 전운이 드리워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정부 고위관계자들을 만나고,이틀째 반전·평화활동을 펼쳤다.열악한 통신사정에도 불구하고 서상섭 의원이 바그다드 현지에서 보낸 르포와 활동상을 세 번째로 싣는다. 바그다드에서의 이틀째 밤이 벌써 지났다.우리 일행은 이라크 국회 지도자와 정부 고위관료들 그리고 바그다드 시민과 반전평화운동가들도 만났다.하지만 이라크 사태의 한가운데 서 있어 전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만나보지 못했다.이라크 조야 인사들은 한결같이 “누구도 후세인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해 아쉬움이 남았다. ●바그다드 의외로 평온 이곳 바그다드의 낮은 몹시 뜨거워 실내에선 냉방시설을 가동해야만 한다.그러나 밤에는 난방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돌변한다.이런 바그다드에서 벌써 2박3일째를 보냈다.그런데 시내의 전력사정이나 식량,생필품 사정 등은 수급에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물가도 환율도 안정적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더욱 놀라웠다.어제 낮 하마디 국회의장과 회담하기 위해 들른 국회의사당과 의장관저에선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시내에선 결혼식도 열렸고,곳곳에서 새로운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전쟁이 오느냐 마느냐는 알라신의 뜻일 뿐이란다. ●시내곳곳에 전쟁의 그림자 하지만 바그다드에는 지난 91년 걸프전 이후 짙게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가 깊었다.걸프전 때 미국의 가공할 만한 폭격으로 400명의 민간인이 몰살해 유명한 아말리아 방공호를 찾아갔을 땐 전쟁의 참화를 실감했다. 우리 일행은 현장을 떠나면서 “전쟁터에서 태어났다는 원죄 때문에 죄도 없이 죽어가야만 하는,특히 어린이가 죽어가는 참상은 없어야겠다.”는 여망을 담은 서명을 남기고 왔다. 시민들도 겉으론 평온했지만 전쟁발발시 대피할 방공호를 확인하고 급수설비와 자가발전 시스템도 수시점검했다.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유엔 안보리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현저히 줄어든 외국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썰물처럼 빠져나가 전쟁 위기를 실감케 했다.우리 일행도 비행기편으로 요르단으로 가기 위해 표를 얻어보려 애썼지만 실패했다.유엔 인력들의 철수시한이 다가와 모두 철수해 버리면 자칫 우리 일행만 고립되는 건 아닌지…. 이라크행 비자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전쟁발발시 외국인들의 스파이 혐의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자부심 충만한 고위층 올해 73세로 정계의 원로이고,장관직도 여럿 지낸 하마디 국회의장은 “석유에 대한 서방의 욕심이 전쟁을 부른다.”며 “우리측은 남을 침범할 만한 무력도 없고,무기를 해체하라면 해체할 용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장은 또 “한국과 이라크 사이엔 앞으로 유류 공급이나 기술협력 등 많은 협력이 있을 것”이라며 우리의 방문에 감사를 표시했으며,국회측은 감사의 표시로 차량을 제공하고 있다. 오늘 만난 라마단 제1부통령과 부총리·보건상·무역상 등 정부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에선 이라크 고위층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미묘한 바닥 민심 후세인 정권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인사는 후세인과 그 가족·친척 등 1000명이 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었다.나머지는 군비경쟁을 하지 말고 지도부가 바뀌어서 먹고 사는 게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하지만 후세인 대체세력이 없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이라크는 북쪽의 쿠르드족,남쪽의 시아파,동쪽의 이란 때문에 정정이 불안,후세인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고 국민들은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체념상태라고 한다. ●고민스러운 반전·평화운동 바그다드에서는 각종 단체들이 반전·평화운동을 벌이고 있었다.한때 1000명선에서 지금은 100명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이들은 정유소,발전소,정수시설,병원,어린이 보호시설 등 이라크 당국이 지정해준 대표적인 곳을 3교대로 지키고 있지만 이라크 당국에 이용되고 있다는 불만도 있었다. 이런 갈등으로 대표적 반전단체인 ‘인간방패’ 대표 5명이 추방됐다고 한다.미국 출신 일부가 지참이 금지된 휴대전화로 간첩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걸프전 이후 10년 이상 순수민간운동으로 진행중인 ‘이라크평화팀’의 활동도 인상 깊게 지켜봤다.특히 한국인 반전활동가인 한상진씨는 “대포가 터진다고 해도 바그다드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반전결의를 보여 우리 일행을 숙연케 했다. 언론인들도 어려운 취재활동을 하고 있었다.엄청난 위성비용을 쓰며 보도활동 중인 CNN의 경우 최근 “이라크 사정을 정확히 안 알리고,미국 위주로 보도한다.”고 지목돼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 [시론]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야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난상토론은 일요일의 평온을 깨기에 충분했다.토론이 끝난 직후 검찰총장은 사직을 표하였고 곧바로 수리되었다.‘일요일의 전투’였다. 전쟁터였으므로 그곳에서 오간 평검사들의 언행을 되새김질할 것은 없다.하지만,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전파를 타고 전달된 그들의 토론태도는 검찰개혁에 있어서의 검찰의 ‘국민적’ 입지 내지 그 운신의 폭을 좁힐 것이다. 반면,검찰의 최종적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저토록 초조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까닭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지워지지 않는다.그런 점에서,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벌인 검찰과의 정당성 싸움이라고 하는 전투는 양쪽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한 나라의 공권력은 검찰권에 한정되지 않는다.거기에는 이미 두 차례의 쿠데타를 거사한 경험을 가진 군권,전국 곳곳에 그 망이 뻗쳐 있는 경찰권,그리고 정치권력에 좀 더 직설적 영향을 주는 정보사찰권을 지니는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의 권력도 있다. 이들 권력기관에 비할 때,검찰권은 오히려수사와 기소라고 하는 준사법적 권한에 한정된 소박한 수동적 기관 정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왜 검찰이 문제인가.전두환 정권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박종철 사건으로 경찰권의 사회적 위신은 땅에 떨어졌으며 이후 공동체의 질서형성기능에 주도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권위를 잃었다.이를 밝힌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상대적으로 커 갔다.노태우 정부 때부터의 일이다.문민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와 국민의 정부의 햇볕 정책 등으로 국정원이나 군권의 상당 부분도 침잠했다.검찰이 공동체의 질서와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고관대작이건 필부이건 법 앞의 평등 원칙에 따른 검찰권 행사로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사회적 기상을 창조하였어야 할 시대적 과제의 실천에 대한 미진함은 늘 지적되어 왔다.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성공한 쿠데타론’에 의한 처벌불가론이라든지 사상 최초의 특검을 가져 온 옷로비 게이트에 대한 수사미진 등이 그 한 예이다.경찰은 일부 수사권의 이양을 주장하고 있으며,그토록 비난받던 정치인과 그들이 임명한 정무직인 장관의 인사권에 의한 검찰권 통제의 가능성이라는 위기 상황으로까지 오고 있다. 이제 검찰은 80년대 중반 6월 시민항쟁에서 얻은,국민과 함께 선 사회적 신뢰의 상징이라는 위치를 되살려야 한다.공동체 리더로서의 기능 복권을 몸으로 느껴야 한다.대통령과의 토론에서 정치권으로부터의 인사의 독립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가져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은 다시 제 자리를 잡기 시작할 것이라는 평검사들의 단순한 인식은 답답하였다. 그 자리가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어쨌든 그들은 적극적으로 법질서 유지를 위한 검찰의 자세를 대통령에 대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로 한다는 진심 어린 자세를 가졌어야 했다. 검찰은 범법자들을 벌주는 것에 만족해서는 아니 된다.누구에게도 냉정하게 벌을 줌으로써 공동체의 법질서를 세우는 국민의 검찰이 되어야 한다.그것이 치안질서 유지를 일차의 목적으로 삼는 경찰과의 차이다.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그래야 이제라도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능동적으로 함께 저어 갈 수 있는 검찰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강 경 근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 베이징대생의 꿈은 미국 유학

    공산당원보다 학사관리 엄격 유학비 벌려 전문가 희망 졸업후 취업 중도탈락 속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전역의 30개 성(省)과 자치구,직할시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베이징 대학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규정 상 중앙 도서관은 밤 10시반에 문을 닫지만 5·4 운동장 옆 5층짜리 2개동(棟)은 밤샘족들을 위해 환하게 불을 밝힌다. 베이징대 학생들은 한국의 고3처럼 공부한다.엄격한 학사관리 때문에 중도 탈락자들도 속출한다.중국 대학생들의 꿈인 해외유학은 고학점이 아니면 원서도 내지 못한다.더 나은 직장을 잡거나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좋은 학점이 절대 조건이다.이래저래 베이징 대학은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전장 방불케 하는 도서관 중국 최고의 경제학부로 꼽히는 광화학원(光華學院) 금융학과에 입학한 리위안위안(李媛媛·20)양은 베이징 명문 제4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베이징대 전체 4위로 입학한 재원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새벽 1시 잠들 때까지 스케줄은 공부로 짜여있다.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영어 듣기로 시작해 오전8시 1교시부터 보통 5시간 정도 강의를 받는다. 나머지 시간은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수학과 통계 분야의 책을 주로 읽는다.취미 서클들도 적지 않지만 리양은 주로 연구원(석사과정) 선배들과 학회 할동에 치중한다.“학점 관리는 물론 외국기업에 대한 취업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다. 6명이 한방을 쓰는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10시 반이면 자동으로 불이 꺼져 철야 개방하는 교실로 달려간다.이러한 리양도 상위권에 들지 못한다.“저장(浙江)성,푸젠(福建)성,장쑤(江蘇)성 수재들이 워낙 공부를 잘해 지금 성적은 중간 정도”라며 한숨을 짓는다. ●꿈은 미국 유학 미국 유학은 베이징 대학생들의 꿈이다.국내 졸업장만으로 성공과 출세가 보장되지 않는다.미국 유학파들이 중국으로 돌아와 창업을 하거나 정부 고위직으로 대거 진출,대학생들을 자극한 측면이 크다.이 때문에 대학생들은 미국의 선진 기술과 매니지먼트 기법을 배워 기회가 많은 중국 대륙에서 돈과 명예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미국을 싫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윈펑(張云鵬·20·정보관리학과)군은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단칼에 자른다.2000년 전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를 설파한 손자(孫子)의 후예다운 답변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1년에 5만달러를 육박하는 학비와 생활비는 당 고위관리 자녀들이나 IT 부자들에게 큰돈이 아니지만 가난한 중국 가정에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이 때문에 많은 베이징 대학생들은 우회로를 택한다.마루이(馬銳·컴퓨터학과·21)군은 “졸업 후 직장에 취업해 2∼3년 정도 돈을 모으면 1년치 수업료는 만들 수 있고 유학 후에는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 예정”이라고 야무진 계획을 펼친다. 외국인 대기업에 취업할 경우 더러 ‘공짜(회사돈)’로 유학을 가는 행운을 잡는 이들도 있다. ●캠퍼스 휩쓰는 영어 열풍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어 열풍은 당연한 귀결이다.대학 교내에서 ‘워크맨’을 꼽고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 영어 테이프를 듣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이것은 미국 유학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일 뿐이다. 금융학과 등 일부 학부에선 전공 수업을 아예영어로 진행한다.시험도 영어로 보고 리포트도 영어로 제출한다.교수들의 빠른 영어 강의를 이해하지 못해 기숙사로 돌아와 녹음기로 다시 ‘제2의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학생들은 저녁이나 일요일에 대학 근처에 있는 신둥팡(新東方) 등 영어 학원에 다닌다.젊은 직장인들도 머리를 싸매며 영어를 배우는 정도로 영어 열풍은 대단하다.베이징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상당하다.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강조한 이유도 있지만 영어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교육 방식도 주효하다. ●대학원으로,대학원으로 베이징 대학생들은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다.공산당원이 돼서 권부에 진입하려는 학생들은 극소수다.우리처럼 사법고시 등 국가고시를 패스해 권력에 진입하기보다 ‘전문가’를 희망한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1인자가 되면 자연스레 당 중앙에 불려가 고속 출세가 보장된다고 한다.후진타오(胡錦濤) 당총서기 등 국가 지도자 대부분이 엔지니어 출신인 점이 학생들 진로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마핑(瑪平·화학과·23)군은 “엔지니어였던 주룽지(朱鎔基) 총리도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당 중앙이 채용한 사례”라고 말했다.이 때문에 유학 바람과 함께 대학원 진학 열풍도 거세다.기초과학 분야는 70% 이상이다.하지만 학생들은 졸업 후 일단 직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한다는 1차적 목적 이외에 대학원 진학 시 직장 생활 경험을 할 경우 가산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베이징 대학은 학사관리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대학이다.4년 동안 135∼149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보통 전공 과목에서 F가 5개(15학점)가 되면 퇴학이다.시험이 어려워 많은 한국·일본 유학생들이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시험 도중 커닝 등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무조건 퇴학이다.한 학기 출석을 3∼4번 정도 빠지면 시험 기회가 아예 박탈된다. 학점은 절대 평가이며 4.0(90점 이상) 만점에 1.0(60점) 미만이 F학점이다.평균 학점이 3.5 이상이 돼야 취업이나 유학을 지원해도 다리를 뻗고 지낼 수 있다.리위안위안 양은 “영어로 진행되는 전공 수업은 이해하기 쉽지만 시험이너무나 어렵게 출제된다.”며 “시험에 앞서 연구원(석사) 선배들에게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과외를 받는다.”고 밝혔다. oilman@ ◆中 대학생들은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샤오황디(小皇帝) ‘1세대’격인 대학생들은 과거 중국인과는 매우 이질적인 존재다.대부분 두성쯔(獨生子)로 자라면서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주의가 강하게 투영,‘신런레이(新人類)’라는 별명을 갖고있다. 처음 이들은 외국인,그것도 외국 특파원 앞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꺼려했지만 20∼30분 정도 지나면서 ‘생기 발랄한’ 보통 대학생으로 돌아왔다. 최근 중국 사회에서 화제가 된 대학생 동거문제나 성(性) 개방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의 의견을 내놓는다.성개방이 개혁·개방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성개방론자들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동거하는 학생들도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톈안먼 사태’나 ‘민주화’ 등의 문제에 대해선 대부분 학생들이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을 긋는다.반면 사회의식은 강했다.특히 부정부패에 대해선 “중국의 역대 왕조를 망하게 하고 우리가 20세기 제국주의에 유린된 것도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중학생부터 기숙사 생활에 익숙하다.독생자인 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통해 친구들과 부대끼며 ‘사회화’를 배운다.집단화를 중시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교육학이 강하게 배어있다. 베이징 대학생들의 70% 이상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으며 당 고위관리 자녀 등 극소수 학생들은 자가용을 갖고 있다.용돈의 30%는 휴대전화 비용이다.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한방에 보통 6명 선이다. 중국을 강타한 한류(韓流)에 대해선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다.우샤오(吳笑·법학과 2년)군은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들은 충격적”이라며 “응원 후 종이 한쪽 남기지 않는 그들의 성숙된 문화와 단결력은 감동적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왕후이쥐안(王慧娟·수학과 2년)양은 “한국인들은 너무 체면에 집착하고 남자들은 너무 여자를 우습게 안다.”며 한국의 대남자(大男子) 주의를 꼬집는다. 어려서부터 남자가 ‘밥하고 빨래하는’ 것을 보고 자란 이들은 한국 남자가 너무 권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 戰後이라크 ‘또 다른 전쟁터’ 전쟁복구시장 각국서 눈독

    |쿠웨이트시티 연합|미국 주도의 이라크전 개전이 임박한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전후 예상되는 엄청난 규모의 이라크 특수를 선점하기 위해 벌써부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김유정 KOTRA 쿠웨이트 무역관장과 현대건설 권오식,대림산업 원석호 쿠웨이트지사장,조성환 SK건설 중동지사장은 9일 쿠웨이트시티에서 좌담을 갖고 이라크전 이후 일어날 중동특수를 따내기 위한 대책을 협의했다. 이들은 한국 건설업체들이 석유화학,발전,송배전,담수화,항만공사 등을 중심으로 전후 이라크 시장에서 상당한 과실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한국의 기술력과 그동안 중동에서 독보적으로 축적해온 시공경험을 결합시켜 엔지니어링 분야 등을 집중 공략할 경우 ‘제2의 중동특수’를 기대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었다. 전쟁 위기로 대다수 외국회사 직원들이 쿠웨이트를 떠났으나 한국 건설회사들은 쿠웨이트·이라크 접경지역에서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기대감과 무관치 않다. 10일 쿠웨이트 진출 한국 건설회사 관계자들에따르면 지난달 15일 군사지역으로 지정된 쿠웨이트 북부 이라크와의 접경지대에서는 대림산업과 SK건설이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후 이라크에 공급될 자동차와 가전제품,기타 소비재 등의 분야도 한국업체들에 경쟁력이 있어 진출 전망이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원석호 지사장은 “일례로 이라크의 전후 복구에서 농업은 꽤 중요할 것이다.하지만 중동에서는 제대로 농기계를 공급할 만한 나라가 없다.한국의 우수한 농기계를 이 곳에 가져다 파는 구상을 해보라.”고 제시했다. 이라크 특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추정되는 규모는 없지만 전쟁으로 파괴될 이라크내 석유시설을 복구하는 데만 향후 10년 간 매년 50억달러 이상의 공사물량이 투입돼도 부족할 정도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라크 특수는 전쟁을 주도할 미국이 가장 먼저,또 독점적으로 누릴 것임이 확실하다.후세인이 유전에 불을 지를 경우 진화업체로 딕 체니 미 부통령이 한때 몸담았던 헬리버튼이 선정됐고 또 다른 한 미국업체가 석유·가스부문 복구사업에 단독 입찰해 9억달러에 수주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고 지사장들은 전했다.그러나 미국 업체들은 프로젝트 기획·관리·컨설팅(PMC) 사업으로 단기 부가가치만 챙겨 떠나고 실제 현장공사(필드워크)는 제3국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따라서 현장에서는 한국이나 일본 업체,현지 중동업체들 사이에 치열한 수주전이 전개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권오식 지사장은 “전반적으로 가격경쟁력에서는 우리가 밀리는 게 사실”이라면서 “결국 우리 업체들로선 기술력을 요하는 고층공사나 설비부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 [열린세상] 우리는 형제 자매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도처의 많은 사람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이번 참사로 졸지에 세상을 떠난 분들과 부상자,유가족들에게 무슨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난감하다.그날 참사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대구에 살고 있는 친척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였다.다행히 친척들이 화를 당하지 않았지만,시내 전체는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라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였다.친척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서 잠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사고 현장에 내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고 해서 안심해도 좋단 말인가.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날 그 장소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은 넓은 의미에서 가족이요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모두 같은 시기에 이 땅에 태어나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는 하나의 커다란 인간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나도 그날 참사의 현장에서 통곡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함께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며 기도를 바쳤다. 이번 참사의 원인이 밝혀졌고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대책이 수립될 것이다.참사의 원인은 정신과 육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방화 때문이라고 한다.한 사람의 악행은 그 한 개인의 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삽시간에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부상자들의 고통과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과 충격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악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엄청난 파멸성을 가지고 있다.또한 이번 참사의 원인에는 개인의 탓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내면을 들여다보면 부실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인간 사회공동체에 꼭 필요한 정신적 가치인 윤리와 도덕도 붕괴되고 있다.인간이면 누구나 갈고 닦아야 할 양심과 조그마한 죄의식도 없는 가운데 범죄와 악행이 급증하고 있다.눈에 보이는 것도 외적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부실한 곳이 너무나 많다.오늘날사람들은 이 같은 총체적인 부실에 대한 인식과 대책도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 같은 총체적 부실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전체가 건강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한 사람의 작은 악행이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듯 작은 선행도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비록 한 사람의 작은 선행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병든 사회와 인간을 구원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우리 개개인이 윤리와 도덕,양심과 정의,정직과 성실,절제와 양보,나눔과 봉사의 삶을 실천한다면 사회 전체가 더욱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특히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는 사람,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자신이나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해서도 절실히 요청된다. 그동안 우리는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여기며 정신적 가치들을 유보하거나 무시하면서 살았다.그러나 이제는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의 영역을 포함하여 전인적으로 올바르게 잘 사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나 혼자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이번 참변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부상당한 사람들,크나큰 고통에 빠진 유족들,그들은 다름 아닌 나의 사랑하는 부모요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다.지금 우리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부상당한 사람들의 쾌유를 기원하며,유족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주저앉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그럴 때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참혹한 이 현실 속에서도 다시 일어 설 수 있을 것이다. 정 웅 모
  • 대구지하철 참사/긴박했던 당시 상황

    비극의 서막은 한 50대 남자의 방화에서 시작됐다. 지하철은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됐고,화염과 유독성 가스에 승객들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칠흑 같은 어둠에서 탈출구를 찾던 승객들의 고함과 울음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뒤늦게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시신들의 모습에서 95년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를 떠올렸다. 18일 오전 9시50분쯤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 6량짜리 전동차(기관차 최정환)가 반월당역을 출발,도심인 중앙로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오전 9시29분쯤 대곡역을 떠난 전동차는 9시52분을 조금 지나 중앙로역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순간 매캐한 냄새와 함께 5호차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범인 김대한(56)이 검은 가방에서 꺼낸 플라스틱 통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불길은 순식간에 5호차 천장으로 번졌다.불은 유독가스를 일으키며 객차 6량 전체로 삽시간에 옮겨 붙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승객 석모(35·여)씨는 “전동차가 멈춰 문이 열린 상태에서 김씨가 불을 붙이려 해 승객들이말렸으나 듣지 않았다.”고 몸서리를 쳤다. 설상가상으로 불길은 오전 9시55분쯤 대구역을 떠나 9시56분45초쯤 화재 차량의 반대편에서 중앙로역으로 진입하던 6량짜리 1080호 전동차로 번졌다.지하철 케이블에 불이 붙고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1080호 전동차는 중앙로역을 통과하지 못한 채 대형 인명 참사를 냈다. 1080호 전동차가 화재 사실을 미리 통보받았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1080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열기를 느낀 승객들은 일제히 술렁거렸다.전동차가 멈추고 출입문이 열렸으나 연기가 몰려 들어가자 기관사는 곧 문을 닫았다.승객들은 “10분 정도가 지난 뒤 ‘대피하라.’며 다급한 안내방송이 들려 왔고 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지하철역에는 유독가스가 서서히 번지고 있었고,그나마 일부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다.1080호 승객 김운경(20·여)씨는 “반대쪽 전동차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지만,내가 탄 차량에 옮겨 붙을 줄은 몰랐다.”고 돌아봤다. 두 전동차 객차 12량이 불길에 휩싸이고 전기까지 끊기면서 지하철역 구내는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밀폐된 전동차에 갇힌 승객들은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전동차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전동차내 좌석 시트와 천장이 타면서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고,불길한 최후를 감지한 승객들의 울부짖는 소리로 전동차는 아비규환에 빠졌다.출근길 날벼락을 맞은 한 승객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 갇힌 유태인을 떠올렸다.”고 부들부들 떨었다. 특별취재반 ◆화재현장 르포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18일 오후 5시30분쯤 화재로 수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중앙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쾨쾨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아직도 조금씩 피어오르는 누런 연기 속을 지나 지하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세상이 펼쳐졌다.구조대원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간신히 지하 2층 역사쪽으로 들어섰다. 바닥엔 긴박했던 당시의 순간을 증명하듯 승객들이 버리고 간 벗겨진 신발과 옷가지,가방 등이 널부러져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천장에는 녹아내린 철근이 눈높이까지 삐져나와 있었고 바닥은 콘크리트 돌덩이들과 소방차가 뿜어낸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걷기조차 힘들었다.역사내 벽은 불길로 인한 검은 그을음으로 온통 도배돼 처참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승강장에 들어서자 화재 당시의 엄청난 열기로 인해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차체도 군데군데 녹아내려 앙상한 철골만 남은 6량짜리 상·하행선 전동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천장 부근 전선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구조대원들은 마스크를 썼음에도 연신 기침을 해대며 힘겹게 사고 수숩을 하고 있었다. 전동차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최초 발화가 시작된 하행선 전동차 다섯번째 칸을 빼고는 모두 문이 닫힌 상태였다.깨진 창문 너머로 전동차 안을 들여다보니 불에 타 숯덩이로 변한 시신 수십여구가 눈에 들어왔다.최초로 발화가 시작된 하행선 열차 쪽보다는 옆의 상행선 열차 안에 시신이 몰려 있어 피해가 심한 듯했다.시신들은 형체를 분간할 수 없도록 훼손되거나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참혹한 모습들이었다. 엄청난 공포를 이겨내려고 서로 부둥켜 안은 채 굳어버린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시신들은 대부분 전동차 출입문 쪽에 몰려 있었다.한 시신은 손가락이 닫혀 있는 문틈에 끼인 채 굳어 있어 당시 몰려드는 불길과 유독가스를 피해 필사적으로 문을 열고 탈출하려 했음을 짐작케 했다. 참혹한 현장을 뒤로 하고 역을 빠져나오자 입구 앞은 어느새 이날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몰려든 수백명 유족들의 오열로 울음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딸 민심은(26)씨를 찾는다는 정숙자(54·여·대구시 수성동)씨는 “미용자격증을 따기 위해 사고 전동차를 타고 학원으로 가던 딸이 울먹이며 ‘엄마 지하철 안에 연기가 가득해 숨막혀 죽겠다.”는 전화를 해왔다.”면서 “이 말을 한 뒤 몇초 뒤 전화가 끊겼다.”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윤순택(47)씨는 연신 아내 이경숙(44)씨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하며 오열하고 있었다.윤씨는 “지하에 묻혀 있는 아내의 휴대전화에 전화가 걸린다.”면서 “혹시 전화벨소리를 듣고 구조대원들이 아내 시신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며 울먹였다. 대구 이영표기자 tomcat@
  • 오하이오 대학원 김현수씨 ‘포토올림픽’ 최고의 작품에

    “설사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라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셔터를 누를 것입니다.” 세계적인 종합 다큐멘터리 교양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1월호에 작품 사진과 함께 소개된 미국 유학생 김현수(사진·32)씨는 9일 “신문사나 통신사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미국의 오늘을 묘사하기 위해 오하이오대의 사진전공 학생 114명이 찍은 1만 2000장의 작품 사진을 대상으로 특별 기획한 ‘ZIP CODE 45701 포토 올림픽’에서 다른 동료학생 1명과 함께 최고의 작품에 선정돼 잡지에 실렸다. 오하이오대는 퓰리처상 수상자,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장 출신 등 유명 교수진이 대거 포진,보도사진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다.김씨는 현재 이 대학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다. 연합
  • 책꽂이/삶이 있는 도시디자인 외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얀 겔 지음,김진우 등 옮김,푸른솔 펴냄) 활기차고 건강한 옥외공간을 만들기 위한 도시설계 안내서.1970년대 초반에 만연했던 기능주의적 도시계획과 주거지역 개발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도시계획에서의 집중과 분산,통행하기에 쾌적한 부드러운 경계 만들기 등의 사례를 소개한다.1만 8000원. ●루시의 유산(앨리슨 졸리 지음,한상희 등 옮김,한나 펴냄) ‘남성주의적 전쟁터’로 인식돼온 기존의 진화론에 대한 반론.세계적인 영장류 동물학자인 저자는 여성주의적·전체론적 관점에서 과감한 ‘진화론 정상화 수술’을 벌인다.암컷이 수컷을 완전히 제압하는 마다가스카르의 둥근꼬리여우원숭이의 생태를 연구,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파헤친다.진화는 적자생존에 의한 생존경쟁이라기보다는 공존을 위한 협력과 조직화의 과정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1만 8000원. ●청국장 다이어트&건강법(김한복 지음,휴먼 앤드 북스 펴냄) 볏짚이나 공기에 있는 ‘바실러스’란 균에 의해 발효되는 청국장은 2∼3일이면 만들어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콩 단백질의 인체 흡수율이 98%나 된다.청국장 30g엔 수백억 마리의 미생물과 항산화물질,항암물질,면역증강물질 등의 생리활성물질이 들어 있다.‘청국장 먹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가 이상적인 건강식품인 청국장의 효능을 정리했다.1만 4500원. ●다영이의 이슬람여행(정다영 지음,창작과 비평사 펴냄) 여고생의 눈높이에서 본 이슬람 나라들의 어제와 오늘.지중해 연안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웨스트 뱅크의 팔레스타인 자치구,‘영원한 파라오의 왕국’ 이집트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우리의 서구편향주의,근대화제일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9800원. ●박인하의 아니메 미학에세이(박인하 지음,바다출판사 펴냄) ‘아니메’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하는 말.만화평론가인 저자는 아니메 속에 숨겨진 여덟가지 코드를 통해 아니메의 미학을 분석한다.종(終)의 미학,하늘의 미학,바다의 미학,우주의 미학,영원의 미학,검과 피의 미학,테크놀로지의 미학,섹슈얼리티의 미학이 그것이다.1만 2000원. ●내 피부에 딱 맞는 천연비누 만들기(조영길 지음,영진팝 펴냄) 비누의 어원은 로마의 ‘사포(Sapo)’라는 산 이름에서 유래됐다.이 산에선 동물을 잡아 불에 태워 제사를 지내곤 했는데,비가 내리면 동물을 태운 기름과 재가 진흙과 함께 섞여 티베르 강에 흘러들었다.여인들은 이 진흙을 이용하면 훨씬 쉽게 빨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이런 원시적인 비누가 오히려 피부엔 더 좋은 게 아닐까.천연비누의 제조법과 효능을 소개한다.1만 2500원. ●경영혁신자(대니얼 렌 등 지음,정현경 옮김,범문사 펴냄) 현대경영의 선구자 31명의 삶과 업적을 조명.목화엔진의 창시자 엘리 휘트니,1908년 100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제너럴 모터스를 창설한 윌리엄 듀런트,엘튼 메이요·에이브러햄 매슬로 같은 동기유발형 전문가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9500원. ●동아시아 인권의 새로운 탐색(성공회대 인권평화연구소 엮음,삼인 펴냄) 개인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서구 인권개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대안을 모색.1만원. ●위대한 CEO 제자백가의 경영정신(나채훈 지음,지오북스 펴냄)춘추전국시대를 경영한 제자백가의 사상적 특성은 그들의 경영스타일에서 드러난다.순자의 경영스타일은 ‘전문가형 리더십’,오자는 ‘현실전략형 리더십’,한비자는 ‘규제형 리더십’에 바탕을 두고 있다.저자는 2500년전 중국의 고대사상 속에서 오늘날 최고경영자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끌어낸다.1만2000원.
  • ‘미국문화의 몰락’저자 모리스 버만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반미감정’이 초점이 되고 있다.초강대국 미국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든 구체적인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견해차이든 주목되는 현상이다.이런 가운데 미국안에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모리스 버만이 미국의 정치지도자와 문화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 관심을 끈다.그는 저서 ‘미국 문화의 몰락’에서 미국 문화는 로마의 종말과 비슷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 책은 뉴욕타임스로부터 ‘뛰어난 책’으로 호평을 받았다.미국 문화의 종말 근거는 엔론 사태와 같은 부패의 만연과 지성의 빈곤이 바로 그 잣대라는 것이다. ◆멕시코지 '프로세소'대담 요약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플로리다 선거의 개표 부정으로 출범한 정권의 수장’이라고 거침없이 표현한다.그런가 하면 문법에 맞는 문장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질타한다.또 연설대 앞에 원고를 읽어주는 텔레프롬프터 스크린이 없으면 기자회견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혹평한다.그러나 이보다 큰 미국의 문제는 대학이나 연구소의 지적 엘리트와 유리(遊離)된,‘무지한’ 인구 다중의 지적·정치적 빈곤이다. 설가이자 비평가인 수전 손탁은 얼마 전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이렇게 강한 나라의 ‘미국 여자’인 것이 부끄럽다.허영에 대한 숭배도,매스컴도,무기도,할리우드 영화도,폭력도,타국의 문화를 무너뜨리는 대중문화도 모두 싫다.이런 생각을 한 적도,말 한 적도 없지만 이젠 차라리 스페인 여자나 이탈리아 여자가 되고 싶다.미국에선 더 이상 편안하지 않다.9·11테러 사태 이전에도,내 생애 전체가 그랬다.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중요하다.보들레르가 그랬지 않은가.승자들보다는 패배자들이 훨씬 내게 흥미가 있다고.” 미국 지식인 사회에는 좌절감이 팽배해 있다.그 가운데 버만은 가장 직설적으로 위정자들과 사회 전체를 향해 칼을 겨눈다.그는 9·11테러 이후의 사정과 미국 사회의 위기상황을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은 어떤 나라보다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특히 과학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상층부에는 뛰어난 지적 작업을 수행하는 소수의 층이 있지만 인구 다수와는 극도로 유리돼 있다.마치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 하다….길을 잃은 바보 같은 인구 다중에게 민주주의란 웬디스나 버거킹 햄버거를 골라 사는 것과 같다.그들은 CNN과 같은 계도된 뉴스를 보면서 진실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이미 (책에서)말했듯이 기업 헤게모니,미국 모델에 기초한 민주주의,글로벌 소비주의의 승리는 바로 미국 문명의 종언이다.” 버만의 경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미국과 문화적 거리를 유지하라.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라.그러면 훨씬 좋은 세계가 될 것이다.”다음은 작년말 버만이 멕시코 주간지 ‘프로세소’와 가진 대담의 요약. ●부시의 행동 양태로 보면 이라크와의 전쟁을 통해 지적 빈곤을 덮으려고 하는 것 같다. 부시는 그렇게 지적인 인물이 아니다.세련된 사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이렇게 지성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사고하는 유일한 방식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이다. ●‘악의 축’에 대항하는 테러리즘 전쟁은 어떠한가. 1991년에 끝난 냉전의 연장이다.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도무지 알수 없었고,또 어떤 주장도 제시하지 못했다.아버지 부시는 미국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만 찾으려고 애썼다.1년 동안 ‘마약전쟁’을 한 것도 그 일환이다.물론 완전히 실패했다.그리고 나서 이라크를 공격하는 걸프전쟁을 수행했다.이것은 잘못된 전쟁이었다.단순히 전쟁터에 달려가는 행위에 불과했다.그후 미국인들은 빌 클린턴 대통령 밑에서 바보 같은 몇 해를 또 보냈다.섹스 스캔들,O J 심슨 재판이 지면을 도배했다.9·11테러가 발생하고 난 뒤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했다.걸프전쟁을 재개하고,‘공산주의’란 용어를 ‘테러리즘’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시민들은 부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뉴욕타임스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누가 미국 정부를 관리하고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5%는 부시가 아니라 기타 사람들일 것이라고 대답했다.직관적으로 정확한 응답이어서 나는 참 놀랍다고 생각했다. ●정치지도자뿐 아니라 기자,작가,사회과학자들에게도 지적 빈곤을 읽어낼 수 있는가. 미국에는 지적 엘리트와 기타 인구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항상 존재하지만 격차가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미국 학술지들의 분석은 최상급이다.매우 정확하다.과학분야는 그 어떤 나라보다 노벨상 수상자가 많다.이렇듯 미국사회의 상층부에는 뛰어난 지적 작업을 수행하는 소수계층이 있다.하지만 이들은 인구 다수와 극도로 떨어져 있다.더욱 심각한 점은 비판적 지성의 층은 매우 얇고,정부에 비판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적인 빈곤과 정부관리 능력의 저하가 ‘부시 리스크’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미국에는 ‘뉴요커’ 같은 좋은 잡지가 있다.훌륭한 학자 겸 기자인 데이비드 렘닉 편집인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선거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지적이든 아니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대통령 주변에는 준비된 보좌진 그룹이 있고,그들이 실질적인 일을 하니 대통령은 머리가 없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부시는 이라크와 전쟁을 치러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적 엘리트의 처신 방식,즉 인구 다중과 괴리돼 자기들 수준에서 멈춰있는 것도 미국 문화 위기의 일부가 아닌가. 식인과 인구 다수의 괴리가 이전에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고 본다.과거에 미국의 지식인들은 항상 멸종 위기에 놓인 종자인 것처럼 자신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사실 지금도 그들의 영향력은 없다.부시 같은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쳐다보지도 않는다.클린턴은 그렇지 않았다.그러나 일반적으로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은 지식인들에게 관심도 없다.지식인들은 나라 내부에서 멸종돼 가는 위기에 처한 종자라고 스스로 여기기 때문에 불안해한다. ●부시와 폭스 현 멕시코 대통령이 비슷한 점은 있는가. 자기 나라에 대해 위대한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비슷하다.두 사람 모두 실제 행동하는 것보다 말을 많이 한다.이미지로 존재하지 실제적이지 않다.멕시코 역사의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이나 미국사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같은 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두 대통령의 대권 장악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는 설명할 수 있다.‘미국문화의 몰락’이란 책에도 써 놓았다.미국은 고대 로마제국처럼 제국기의 최후 단계에 서 있다.로마제국의 경우 마지막 위대한 황제는 4세기쯤의 디오클레시아누스였다.그 이후의 로마황제 이름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황제권력을 이었고,제국은 쇠락해 갔다.현재 미국에서도 보잘 것 없는 대통령들이 계속 집권하고 있고,미 제국은 붕괴되고 있다.똑같은 과정이다.우리가 죽어가듯이 문화도 마찬가지다.미국 문화가 죽어갈 때 부시 같은 이가 나타나는 법이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미국문화의 몰락'어떤 책 53%의 미국인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하루 또는 한 달에 한번 돌고 있다고 믿는다.성인의 60%는 전혀 책을 읽지 않고,6% 정도만 1년에 겨우 한 권의 책을 읽는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지적 능력으로 볼 때 미국은 유엔 소속 158개국 가운데 49위에 불과하다.미국 대학의 위상은 중세말 교회나 다를 바 없다.그곳은 고수익 직장(천국)에 갈 수 있는 학위(면죄부)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변질해 버렸다. 문명비평가 모리스 버만은 ‘미국 문화의 몰락’에서 ‘맥월드’(McWorld)로 통칭되는 기업문화가 지배함으로써 미국은 우민화되고 있고,그 문화는 상업화되면서 스스로 소진돼 간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세우는 미국 문명 몰락의 징후는 네 가지다.첫째,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중산층의 사회’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둘째,노령화 사회의 진행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위기에 처해 있다.셋째,비판적 사고가 사라지고 전체적인 지적 수준도 급격히 저하됐으며 문맹률이 확산되고 있다.넷째,문화의 실질적인 내용이 사라지는 대신 이것을 저급한 수준으로 재가공하는 것만 성행한다. 버만은 이런 징후군은 로마 문명의 몰락에서 똑같이 나타났던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이나 피트림 소로킨의 역사순환론에 빗대어 소비주의·상업주의에 찌든 미국문화 전체를 도마에 올린다.대학에서도 교양문화가 사라지고,뉴에이지,해체주의,가이아 이론,유너바머,감성 생태학,종교적 원리주의,디팩 초프라 신드롬,알트유같은 원격 교육기관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이다. 그는 ‘미국화된 세기’가 될 21세기는 미국문명의 몰락과 새로운 재건을 꿈꿀 ‘새로운 수도사적 인간’을 준비해야 한다고 설파한다.신인간은 중세 암흑기에 르네상스를 준비한 수도사들처럼 계몽주의를 꽃피게 한 이성에 대한 사랑과 낙관주의를 가지고 유목민적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문명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앨런 블룸의 ‘미국 정신의 종언’이 보수주의 입장에서 교양문화의 종말을 비판했다면 이 책은 자유주의 입장에서 소비주의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형 연구위원
  • 편집자에게/군대는 국민의 의무 수행하는곳

    -‘군대는 인(忍)의 학교인가’ (대한매일 1월11일자 7면) 칼럼을 읽고 얼마 전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이렇게 추운 날씨에 훈련을 합니까?식사가 입에 안 맞는다고 합니다.편히 쉴 공간도 마땅치 않고,새벽에 보초를 서야 한다면서요?” 아들이 이웃 친구집에 놀러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아들이 간 곳은 군대입니다.군인은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는 사람입니다.낙오되면 며칠을 굶기도 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군대는 무엇을 얻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국민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군대는 인(忍)의 학교가 아니다.외국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봉급받고 일하는 직장도 아니다.국민을 지키기 위해 온갖 희생을 감수하는 곳이다.복학생들이 C학점이라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복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52년 전에 비해 변한 것이 없다고?‘줄빠따’ 맞기를 ‘밥먹듯’했고,물속에 가라앉는 밥 몇알을 먹기 위해 커다란 물통의 물을 다 마셔야 했던 옛날 군대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았는가?조금이라도 구타하면 ‘영창’가고,자유배식으로 밥이 남아도는 오늘의 군대를 알면서도 50년 동안 변한 것이 없다니. “젊은이들이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군대를 만들자.”는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그러나 이것은 군대가 좋아진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젊은이들의 군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설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정호 예비역 육군 대령
  • [씨줄날줄] 훈 장

    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일 게다.어렸을 적에는,나쁜 짓을 해도 전쟁터에서 큰 공로를 인정받은 훈장이 있으면 한번은 감옥에 안 가도 되는 것으로 알았었다.그만큼 훈장은 언제나 영예스러움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오래전 6·25 기념행사에서 한 늙은 예비역 장교의 연설을 들으며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학생시위로 나라가 어수선할 때였다.“오늘 아침 녹슨 충무무공훈장을 가슴에 차면서 목이 메었다.어떻게 세운 나라이고,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그에게 훈장은 생명이며,역사이며,먼저 산화한 전우들과의 추억이었기에 그랬으리라 짐작했다. 실제 1943년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에 패퇴하는 독일군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 ‘철십자 훈장(Cross of Iron)’은 전쟁터의 군인에게 훈장이 무슨 의미인가를 잘 보여준다.주인공인 슈타이너 중사가 가슴에 찬 철십자훈장은 군인으로서 명예이며,자존심이며,국가에 대한 뜨거운 충성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목숨을 담보한 전쟁의 광기이기도했지만…. 훈장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된 것은 1900년,광무 4년때이다.당시 금척대훈장 등 4종류였으나,오늘날에는 무궁화 대훈장을 비롯해 건국,국민,무공훈장 등 12가지 종류의 훈장이 있다.전 현직 대통령 및 그 배우자,우방원수와 그 배우자에게만 수여하는 무궁화대훈장만 등급이 없고,나머지 훈장에는 5등급이 있다.예컨대 무공훈장의 경우 태극·을지·충무·화랑·인헌으로 나눠져있다. 우리는 너무 칭찬에 인색하다고들 한다.그래서 나라의 칭찬이자 격려인 훈장을 받는 유공자가 많다는 것은 어쨌든 반길 일이다.최근 현 정부에서 봉직한 장·차관급 인사 300여명에 대해 행정자치부가 훈장을 상신했다는 보도다.역대정부처럼 퇴임 후 곧바로 수여해야 하는데,미루다 보니 대상자가 많아졌다는 해명이다. 늦게나마 훈장을 챙긴 것은 잘한 일이나,장·차관을 6개월 이상하면 그가 남긴 성과나 업적에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권위를 잃는다면 그것은 이미 ‘훈장’이 아니다. 양승현 yangbak@
  • 민주 신·구주류 北核 시각차

    북한 핵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27일 소집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민주당과 차별화된 ‘노무현 신당’의 색깔이 드러나 주목된다.햇볕정책을 바탕으로 정부와 일치된 견해를 밝히던 과거와 달리 미국의 책임론과 평등외교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민주당 의원에게서 터져 나온 것이다.차별화는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의 측근인 추미애(秋美愛) 의원이 주도했다. 추 의원은 북핵 문제 및 최근의 반미시위와 관련,미국의 책임을 강도 높게따지고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북핵 문제와 관련,추 의원은 “북한을 강하게 다룬 결과 핵시설 봉인,감시카메라 제거로 이어졌다.”며 “경수로를 약속대로 완공시켜야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미국뿐 아니라 우리 정부와도 다른 시각을 보였다.그는 또 “럼즈펠트 미 국방장관의 이라크·북한 동시전쟁 가능 발언은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반도가 전쟁터가 된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미국 각료의 강성 발언이 문제를 꼬이게 한다.”고 주장했다.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대한 정부의자세도 맹비난했다.그는 최성홍(崔成泓) 외교부장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불평등하지 않다.”고 하자 “중요한 것은 조항이 아니라 평등하게 운영하느냐,사건이 생겼을 때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느냐인데 이를 못하면 평등하지않은 것”이라며 “이런데도 불평등하지 않다니 이게 주권국의 입장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 대표인 한화갑(韓和甲) 의원은 북핵 문제의 접근방법상에 있어서 추 의원과 다소 차이를 보였다.한 의원은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 북핵 문제는 북·미 간에 해결될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우리는 지속적인 남북교류로 우리의 발언권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지난 93년 핵 위기 때는 우리가 아무런 역할을 못했으나,지금은 조정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력이 나아졌다.”며 “이는 햇볕정책의 성과로 이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도 말했다. 최근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긴 이인제(李仁濟) 의원은 “국민들가운데는 통일이 되면 북한 핵이 우리 것이 된다는 시각이 있다.”며 “이는 경제적 제재수단을 써서라도 북한의 핵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전쟁론으로 몰아붙인 결과”라고 노 당선자를 비난했다.한편 국회 통일외교통상위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에 대해 조건없는 핵개발 포기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즉각 수용 등을 촉구하는 5개항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진경호 박정경기자 jade@
  • [씨줄날줄]파경

    파경(破鏡)이라는 말이 있다.깨진 거울이라는 뜻이다.대개 부부의 이혼을비유해서 쓴다.본래의 뜻은 전혀 다르다.불가피한 사연으로 헤어지는 부부가 나중에 서로를 찾는 수단으로 깨진 거울을 썼다는 고사가 엉뚱하게 변질됐다.얘기는 진시황에 이어 중국 천하를 통일하던 수나라로 올라간다.수나라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진(陳)나라의 한 장수가 전쟁터로 나가면서 아내와 거울을 깨뜨려 나눠 가졌다.1년 후 정월 보름날에 깨진 거울을 시장에 내다 파는 것으로 생사를 알리는 수단으로 삼자고 했다.천신만고 끝에 전쟁에서 살아온 남편은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바로 깨진 거울을 추적해 아내의 소재를알아 냈다는 것이다. 깨진 거울은 우리네에겐 좋은 징조로 여겨졌다.거울이 깨지는 꿈은 지금까지 상황이 반전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했다.춘향전에서 이도령이 남원골에 암행어사로 출두하기 전에 생사의 기로에 있던 춘향은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꾼다.인조 임금도 반정 거사를 앞두고 거울이 깨지는 꿈을 꿨다고 한다.예언가들은 절망으로 보지 않았다.거울이 깨지면 소리가 날 것이니 팔자가바뀌는 전환을 예고하는 길몽이라고 풀었다.부부가 헤어지며 지혜롭게 깨진거울을 나눠 가졌다는 고사와 상황이 반전된다는 해몽법이 얽혀 지금의 변형된 파경의 의미를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 시대를 예고하는 제16대 대통령을 선거하는 날 아침,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2년 전 이맘때쯤 세상의 부러움을 받으며 백년가약을 맺었던 프로야구 조성민 선수와 탤런트 최진실 부부가 파경 위기를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조성민·최진실 부부는 보통 부부가 아니었다.최고의 프로 야구 스타와 연예계 최고의 스타의 결합이었다.최진실씨가 다섯살이 더 많아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더욱 모았다.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정책 공조를 약조했던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지지 철회’도 충격이었다. 그러나 파경의 변을 들어 보면 그 얘기가 그 얘기다.남남이 ‘사랑’으로인연을 맺었다가 바로 그 ‘사랑’이 믿음을 잃게 되자 남남으로 돌아 섰다.‘권력’추구로 인연을 맺고 두 손을 맞잡았다가 바로 그 ‘권력’불신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 갔다.인연은 맺는 것보다 인연을 가꾸기가 어렵다고 했다.인연은 맑은 수정과 같아서 갈고 닦을수록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고 한다.인연의 소중함이 새록새록해지는 요즘이다.인연은 가꾸고 볼 일이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마지막 주민 독거노인 50명 “연말 강제철거 어디로 가나”

    겨울의 난곡은 유난히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짙은 안개 속에 겨울비가추적추적 내리던 16일 오후.철거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서울 마지막 달동네서울 관악구 신림7동 난곡 마을은 부서진 장롱 등 가재도구와 콘크리트 더미,동강난 전봇대가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마치 전쟁터 같았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당국과 맞서던 주민들도 대부분살 곳을 찾아 떠나고 오갈 데 없는 주민 50여명이 마지막까지 마을을 지키며 겨울을 힘겹게 나고 있었다. 대부분 생계 능력이 없는 60,70대의 독거 노인인 ‘최후의 주민’들에게는하루하루가 삶의 투쟁이다.참으로 연탄 한장,쌀 한톨이 아쉽다. “겨울이 한참 남았는데 어떻게 날지 걱정이야.갈 곳도 없고,창문을 뚫고들어오는 칼바람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 간신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주공금(72)씨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포클레인의굉음을 들으며 마른 눈물부터 삼켰다.얼음장 같은 오막살이마저도 이달 말까지 비우지 않으면 강제 철거당할 처지다. ‘냉동실’ 같은 1평 남짓 공간에는 때묻은 이불 한 장만 한기를 막고 있었다.끼니는 반신불수 장애인인 이웃 윤복남(71·여)씨가 남부노인복지관에서제공받는 하루 두 끼 도시락을 나눠먹는 것으로 해결한다.온풍기가 있지만전기값 걱정에 켜지도 못한다. 주씨는 “자식들과 소식이 끊긴 지 오래”라면서 “이주 보상비 몇 푼을 받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때마침 도시락을 들고 주씨 집을 찾은 윤씨는 “이곳 주민은 대부분 카드빚이 쌓여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라 은행 대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면서 “양로원에갈 여력도 없다.”고 말했다.대통령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골목 어디에도 흔한 선거포스터 하나 찾을 수 없었다.강아지 서너마리만이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골목길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80년대 중반 최대 6000여가구가 대규모 달동네를 형성하고 있었다.재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젊은 사람들은 하나 둘 난곡을 떠났고 노인들만 남았다. 거동이 불편하고 나이가 많아 일거리를 구할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다.이들은 “올해 말까지집을 떠나라.”는 최후의 통보를 받은 상태다. 33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박모(64)씨는 “난곡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고 고개를 떨궜다.연탄 한 장 살 돈이 없다며 두꺼운 이불이라도 한 장 구할 수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이웃 김모(72)씨는“누군가 화장실 문을 고철로 팔기 위해 떼어갔다.”면서 “죽지 않으려고악으로 버텼는데 이젠 희망의 촛불이 점차 꺼져가는 듯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백발 할머니는 허리를 구부린 채 폐허 속에서 고물상에 내다 팔 고철과빈 병을 줍고 있었다.30여년을 이곳에서 살았다는 이 할머니는 “이곳 사람은 사람 취급도 못받는다.”면서 “선거 포스터도,유세하러 오는 후보도 없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모닥불로 추위를 피하고 있던 고복수(70)·김세명(41)씨는 “끼니와 추위 걱정에 선거엔 관심도 없다.”면서 “선거 비용의 1만분의1이라도 이곳 주민을 위해 쓰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언덕배기에는 달동네 마지막 재래시장이 형태만 남아 있었다.20년 남짓 대폿집을 운영해온 문순심(57·여)씨는 얼어 터진 수도관을 고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문씨는 “대포 한 잔에 달동네 사람의 애환을 달래주곤 했었는데 이젠 찾는 사람도,대접할 술도 없어진 지 오래”라면서 “이젠 연탄도 다 떨어져서 큰일”이라고 말했다. 난곡에서 17년째 집배원 일을 해온 전모(52)씨는 “요즘 이곳에 배달되는우편물이란 선거공보와 카드고지서 20여개가 고작”이라면서 “힘들게 동네꼭대기에 올라 편지를 배달하고 어르신들께 얻어먹는 냉수 한 잔의 맛은 이제 옛추억이 되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저녁 무렵 땅거미가 내리자 반짝이는 10여개의 가로등만이 아직 난곡이 사람사는 마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영표 황장석기자 tomcat@
  • [대∼한민국 24시] 새벽 주문진항/펄펄뛰는 생선 만큼 어민 삶도 ‘싱싱’

    “펄펄 뛰는 오징어가 개락이래요(많습니다).한 두름(20마리)만 사 가우(사세요).” 늦가을 강원도 강릉 주문진항의 새벽은 짭짜름하고 비릿한 바다냄새와 어민들의 왁자한 목소리로 시작한다.어스름이 걷히기 시작하는 오전 5시30분쯤 주문진 부두는 배가 들어올 때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밤새 전국에서 달려온 활어차 운전사,출항을 준비하는 선원들이 모여들면서 분주하게 아침을 맞는다.부두 한쪽 옆에 설치된 해수관을 통해 연신 쏟아져 내리는 바닷물을 활어차에 싣는 작업부터 부두끝 포장마차에서 새벽 속풀이 해장국을 먹는 출항 앞둔 선원까지 표정도 다양하다. 겨울이 가까워짐에 따라 오징어떼가 울릉도 외항까지 이동하면서 배 입항시간이 오전 7∼8시로 늦어져 그나마 여유로운 시작이다.한여름 연안에서 오징어 어군이 형성될 때는 새벽 3∼4시면 배가 들어오기 때문에 밤을 꼬박 지새우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침 7시를 넘어 부두끝 오징어 위판장으로 집어등(燈)을 주렁주렁 매단 50t안팎의 오징어배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부두는 더욱 부산해 진다.입찰을 위해 빨갛고 노란 모자로 구분된 수협직원과 중매인,중간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시끌벅적해 진다.입찰 때는 조용하다가 막상 입찰이 끝나면 활어차를 뱃전으로 부르랴,오징어 나르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이때는 모두가 뛰다시피 뱃전과 활어차를 오간다.싱싱한 산오징어를 상전 모시듯 조심스러우면서 재빠르게 차량 수조로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부두에 정박한 오징어배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선원들은 밤새 채낚(낚시)으로 잡은 펄떡거리는 오징어를 뜰채로 20마리씩 그릇에 담아 뱃전으로 내느라 정신이 없다. 선원생활 40년이 넘었다는 오징어 배 명전호(52t) 선원 손한용(56·주문진읍)씨는 “주문진에서 8시간 걸리는 울릉도 외항까지 나갔다가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오징어 6000여마리를 잡았다.”면서 “어황이 예년만 못해 갈수록 힘이 든다.”고 푸념이다.그래도 “내 손으로 잡은 오징어를 하선시킬 때가 제일 보람 있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배 가두리식 수조에서 건져낸 오징어들은 조금이라도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활어차를 배 가까이 정차해 놓고 순식간에 활어차 수조로 옮겨 싣는다.중간 상인 아줌마들까지 동원돼 릴레이식 작업이 이어진다. 중간상인 김매자(56)아주머니는 “주문진 사람이면 누구나 어항에서 장사할 수 있다.”면서 “그동안 고기장사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이만큼 사는 것도 어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더구나 아들이 중매인으로 활동,매일 아들과 얼굴을 대하며 장사할 수 있어 뿌듯해 한다. 활어차에 옮겨진 오징어들은 곧장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의 횟집으로 달려간다.주문진항이 어항 가운데 활어 선도율이 좋다 보니 강원도 동해안 활어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수협 지도과 원명식(48)계장은 “고속도로와 국도,어항으로 통하는 교통이 편리하고 어선들도 다른 항구보다 신선도 유지를 잘해줘 활어차들이 주문진항을 가장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활어차 운전사들의 애환도 부두 곳곳에서 묻어난다.충분히 잠을 못자는 것도 그렇고 겨울에는 도로에 바닷물을 흘리고 다닌다며 눈총받는 것도 달갑지 않다. 부부가 함께 소형 활어차(1t)를 10년간 몰고 있다는 방종성(59)씨는 “뱃사람으로 30년을 지내다 이제는 평창,제천,횡성 등 강원 영서지방의 횟집을 오가며 활어를 날라다 주고 있다.”면서 “아내와 활어차를 몰고 있지만 평생 바다에서 살아 그런지 육지생활 적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부두 입구에 있는 수협어판장에서는 오징어를 제외한 각종 잡어배들이 속속 입항하며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대부분 5∼20t급의 소형어선인 잡어잡이배들은 도루묵과 문어,청어,고등어,아지,게르치,새치,도치,연어,삼치,홍게 등 동해안 연안에서 나는 다양한 고기들을 연신 부두로 올린다.부두로 올라온 고기들은 곧장 앉은뱅이 저울로 달아 무게를 잰 뒤 수협직원들의 땡강거리는 종소리에 맞춰 즉석 경매가 이뤄진다.이때도 노란 모자를 쓴 중매인들이 나서 무슨 횟집,무슨 활어차를 부르며 북새통을 이룬다.일순간 번지수가 바뀌어 활어차 수조에 부어질 때면 억센 강원도 사투리 속에 삿대질까지 오간다. 펄펄 뛰는 고기만큼 이곳 부두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의 모습도싱싱하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중매인들은 모두 14명으로 벌이도 짭짤하다는 것이 뱃사람들의 귀띔이다.중매인들은 대부분 직원 한명씩을 두고 한창때인 여름철에는 한달에 700만∼800만원,연간 평균 월 300만∼400만원은 거뜬히 번다는 것이다.최연소 28호 중매인 안명일(30)씨는 “푹풍주의보가 내리거나 안개가끼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며 “더위와 추위 속에 고생도 만만찮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어판장 옆 수협수산물직판장 한쪽 벽에는 ‘당신도 적 잠수함을 잡을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북한 잠수함 사진을 넣은 대형 패널이 걸려 있어 이채롭다. 부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좌판 어시장과 횟감을 떠주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손님들을 따라 다니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주문진항의 또 다른 풍경이다. “싱싱한 오징어 횟감 사시우.”를 연발하며 리어카에 바닷물과 함께 산오징어를 싣고 다니는 아주머니들은 한번 ‘찍은’ 손님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횟감을 사러온 손님이다 싶으면 리어카를 이리저리 끌고 따라 다니고 바닷물을 튀기면서 어떻게든팔아야 직성이 풀린다. 횟감을 살 때쯤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회를 썰어주는 아주머니가 득달같이 나타난다.20마리정도를 횟감으로 썰어 주는데 5000원정도의 수수료를 내야하니 칼 한자루와 도마 하나로 벌어들이는 돈이 쏠쏠한 편이다. 몇년 전 주문진항이 새롭게 단장되면서 부두 내에서는 회를 썰지 못하게 됐지만 그래도 이들 아주머니들의 터전은 골목골목으로 옮겨가 번창(?)하고 있다.일손이 바쁘다는 핑계로 나 보란 듯이 부두 한쪽에서 횟감을 썰어 내는 배짱좋은 아주머니들도 있지만 다들 바쁜 마당에 단속의 손길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횟감을 맡긴 아주머니를 찾지 못해 부두 뒷골목 곳곳을 기웃거리며 ‘내 횟거리’ 찾기에 진땀을 흘리는 손님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그래도 아주머니들은 용케 횟거리 주인을 찾아내 아직 한번도 배달사고가 난 적이 없다니 대단한 노하우다. 횟감 뜨는 일만 15년을 넘게 했다는 이음전(54)아주머니는 “오전 이른 시간에는 지방 손님들이 많고 10시가 넘어서면 외지 관광객들이 모이기시작해 주말이면 하루 20명정도 손님은 거뜬히 받아 벌이가 괜찮은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아무렇게나 고기들을 늘어놓고 파는 좌판 아주머니들도 손님을 부르느라 왁자하다.손님과 흥정하다 맘에 들었다 싶으면 덤도 몇마리씩 더 얹어 주며 후한 인심을 쓰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이웃 좌판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내 손님을 불러들여 왜 장사를 못하게 하느냐.”는 것이 시비의 시작이고 고성의 원인이다. 걸쭉한 입심으로 욕지거리가 오가다 보면 삽시간에 손님은 사라지고 이곳저곳의 아주머니들까지 합세해 한동안 시장통은 아수라장이 된다.부두의 치열한 또 다른 삶의 모습이다. 수협 확성기에서는 “수입 수산물은 사지도 팔지도 말자.”고 목청을 높이지만 어시장 곳곳에는 러시아산 대게(일부 어민들은 북한산이라고 주장)도 많이 눈에 띈다. 시각이 아침 11시를 넘어서면서 고기를 내린 배들이 항구의 자기자리를 찾기 시작하고 활어차들이 썰물 빠지듯 떠나가고 나면 어항내 사람들은 출출한 늦은 아침 끼니 해결에 나선다.이때쯤이면 네발 오토바이로 아침을 날라주는 식당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외지 단풍관광객들을 싣고온 대형 관광버스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주문진 부두의 손님맞이 제2라운드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때쯤이면 아침나절 한가하던 부두밖 건어상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번듯한 상점을 마련하지 못한 거리의 상인들도 골목마다 또 다른 좌판을 벌여 놓고 정성스레 담은 젓갈류와 말린 고기류를 파느라 시끌해진다. 동해바다의 새벽을 열며 치열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주문진항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배들이 꼬리마다 수십마리씩 갈매기떼를 달고 하나둘 자리를 찾으면서 고달픈 하루를 서서히 마감한다. 주문진 조한종기자 bell21@
  • [2002 길섶에서] 삶의 방정식

    이탈리아의 여류작가 오리아나 팔라치는 중학생 시절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 활동에 뛰어든 이래 종군기자로 베트남전쟁,인도·파키스탄전쟁,중동전쟁,남미 폭동 등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누볐다.그녀는 긴장과 갈등이 폭력화되는 현장에서 무수한 생명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삶의 방정식을 찾고자 고뇌했다. 팔라치는 환갑이 지난 1990년대 초 신의 아들들이 자행한 자살폭탄 테러로 베이루트 주둔 미군 400여명과 프랑스군 100여명이 학살된 사건을 소재로 ‘인샬라’를 발표했다.그녀는 이 소설에서 삶의 방정식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군 베이루트 분견대에 자원한 안젤로를 통해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체험해야 할 신비’라며 자신이 찾아낸 해답을 제시했다.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뛰어넘는 값어치가 있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죽기살기식으로 물고 뜯으며 대선 방정식 해법에 골몰하고 있다.전국의 책사(策士)들이 정치권에 집결했다.대선 방정식도 팔라치가 제시한 삶의 방정식과 유사하지 않을까. 우득정 논설위원
  • “이라크, 시가전에 승부걸것”

    미국이 이라크 공격 수순에 본격 돌입함에 따라,이라크도 내부적으로 치밀한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공식적으로는 유엔의 무기사찰 허용 의사를 밝혔으면서도,한편으로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특히 91년 걸프전 패배를 교훈삼아 전략·전술면에서 과거와 전혀 다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관심을 모은다.그것은 광활한 사막에서의 무모한 승부를 피하고,수도 바그다드 안팎에 방어 화력을 집중시켜 회심의 ‘카운터 블로’를 날린다는 전략으로 집약된다. 이번 미국 공격의 궁극적 목표가 91년과는 달리 ‘후세인 축출’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후세인 대통령으로서는 바그다드 시가전을 최종 승부처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시가전으로 승부-이번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라크는 미군을 바그다드와 같은 대도시로 유인한 뒤 시가전으로 승부할 전망이라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가 이라크 정부 고위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28일자로 보도했다.이라크가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를 전쟁터로 삼는 것은 무엇보다 미군이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공습을 마음껏 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에서다.또 도시에서 싸울 경우 이라크 시민들까지 저항에 가세할 것이란 기대도 감안됐다. 이라크는 91년 걸프전 때 남부 사막에 참호 등 방어선을 구축해 다국적군에 맞섰으나,단 며칠만에 수천명의 병력손실을 당하고 패퇴한 전례가 있다.이번 전략수정은 그같은 경험에서 나온 대책이다. 즉,어차피 정면승부로는 불가항력이라는 점을 인정하고,변칙적 게릴라전에 승부를 건다는 전략이다.이는 과거 월남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월남전이 정글을 방패막이로 삼았다면,이라크는 빌딩숲과 무고한 시민을 보호막으로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현재 인구 480만의 바그다드에만 이라크 최정예군인 공화국수비대가 최소 3개 사단(3만여명) 이상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라크 정부 고위관료인 모하마드 메디 살레는 “사막은 미국이 가져라.우리는 바그다드에서 미군을 기다릴 것이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이라크는 또 최근 바그다드로부터 불과 30㎞ 떨어진 외곽지역에 집중적으로 참호를 파고,6만여명의 공화국수비대를 배치시키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3일 보도했다.후세인은 자신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강한 군인들을 이 지역에 집중 배치하고 있으며,이들에게는 중간단계의 명령체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통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효성 있을까-이라크 주재 한 서방외교관은 “이라크 군은 적어도 도시에서는 미군을 압도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며 “이라크군이 아파트에서 미군을 공격하더라도,미군이 건물을 날려버리지는 못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이라크의 전략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풍’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미국의 상당수 군사전문가들은 “미군은 이번 전쟁이 주로 시가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예상해 왔다.”며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오히려 후세인에 반감을 가진 이라크 시민들이 이라크군의 위치를 미군에 제보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편집자에게/ 美 ‘평화와 화해’ 대세 역행 말아야

    -‘美 새 안보독트린 발표'(9월23일자 1면)를 읽고 몇 년전 ‘하버드 리포트-한반도,그 운명에 관한 보고서’라는 책을 읽고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떠오른다.이 책은 1994년 한반도 핵위기 당시 미국이 마음먹기에 따라 한반도가 한순간에 전쟁의 참화 속에 빠질 뻔했고,정작 우리 국민들만 이를 몰랐음을 충격적으로 고발하고 있었다. 한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날 부시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이라는 선물을 보내왔다.북한과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 생산국으로 지목하면서 선제공격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혔다.구체적인 위협이 없더라도 자신의 판단에 의해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겠다는 얘기다.8년이 흘렀지만 한반도를 전쟁의 위협에 몰아넣으려는 미국의 의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11테러 이후 끝없이 가속되던 부시의 군사패권주의는 이 발표로 속내를 유감없이 드러냈다.‘테러방지,전쟁억지’라는 명분은 잠재적 위협국에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세계를 언제든 전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부시 대통령은 올해 초미국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전 국민적 방한 반대에 부딪혔다.하지만 그는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부시 대통령은 군사 패권을 앞세워 전쟁과 분열,갈등을 강요하며 ‘평화와 화해’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어리석음을 택하지 않기를 엄중히 경고한다. 이주현/ 민주주의민족통일 서울연합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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