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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rld cup] “新星 불가침”

    [World cup] “新星 불가침”

    그라운드의 ‘악동’과 ‘명품’이 충돌한다. 7월1일(이하 한국시간) 0시부터 시작되는 독일월드컵 8강전은 최우수 신인선수상을 벼르는 ‘신성’들의 본격적인 전쟁터다. 특히 2일 겔젠키르헨에서 만나는 웨인 루니(잉글랜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조우는 ‘한 지붕 두 가족’의 자존심 맞대결이다.21살 동갑내기인 데다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저마다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자부하는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난 배가 고프다” 부상으로 월드컵무대를 접을 뻔했다가 조별리그 2차전 교체 투입을 시작으로 이젠 주 공격수로 나서고 있는 루니는 2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확실히 골에 대해 배고프다. 이번 경기든 다음 경기든 가능한 한 빨리 골을 넣고 싶다.”며 골에 대한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그는 또 2년 전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에서 같은 부위를 다치게 했던 포르투갈과 이번 월드컵에서 다시 맞붙게 되자 “복수를 생각하며 경기를 치르지는 않겠다. 그러나 꼭 우리가 이겼으면 좋겠다.”면서 잉글랜드의 4강 진출에 한몫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직까지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진가는 8강전 이후에 나타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스벤 예란 에릭손 잉글랜드 감독 역시 마이클 오언(뉴캐슬)이 부상으로 중도하차한 터라 루니의 활약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사실은 내가 1등이다” 29일 현재 독일월드컵 최우수 신인을 뽑는 인터넷 투표에서 에콰도르의 루이스 발렌시아가 깜짝 선두에 올라선 가운데 호날두는 2위를 달리고 있다. 애국심에 넘친 에콰도르 축구팬들의 ‘몰표’를 감안한다면 ‘4파전’으로 전개되고 있는 신인왕 경쟁은 사실상 18%의 득표를 얻은 호날두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메시가 17%로 뒤쫓고 있지만 루니는 한참 떨어진 4%에 그치고 있다. 호날두의 무게를 한층 더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네덜란드와의 16강전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하기 했지만 그의 존재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맨체스터에서 같이 뛰는 잉글랜드의 철벽 수비수 리오 퍼디낸드는 호날두를 포르투갈의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았다. 그는 “내가 소속 팀에서 살펴본 바로는 정말 환상적인 선수”라면서 “경고 누적으로 데쿠와 코스티냐가 빠지지만 호날두 때문에 포르투갈은 위협적“이라고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느낌표! World cup] 앙골라, 식민통치 기억 한방에 날렸다

    |쾰른(독일) 박준석특파원|12일 쾰른경기장에서 열린 D조 포르투갈-앙골라전은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치열했다. 누군가 말했듯이 그야말로 총없는 전쟁터였다. 비록 골은 한 골밖에 터지지 않았지만 경고가 5차례(앙골라 3개, 포르투갈 2개)나 나온 것에서 경기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승리를 위해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부딪쳤고 대각선으로 마주선 양국의 응원단도 90분 내내 단 한 번의 쉼도 없이 승리를 외쳤다. 아프리카의 앙골라는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지금도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식민시대의 영향 탓인지 현 대표선수 가운데 8명이 포르투갈리그에서 뛴다. 때문에 앙골라가 포르투갈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국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광복 직후 일본 원정경기에서 지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던 한국선수단의 비장한 각오를 갖고 앙골라는 포르투갈과의 한판 전쟁을 위해 독일로 왔을 것이다. 반면 포르투갈은 한 수 위의 축구 실력을 통해 강호임을 다시 증명하려고 했다. 경기장을 찾은 독일인 등 제3국 관중들은 경기 막판 “앙골라”를 소리높이 외치면서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앙골라는 경기 막판 결정적인 골찬스를 맞는 등 여러차례 포르투갈의 문전을 위협했다. 물론 경기는 이변없이 포르투갈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패한 앙골라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식민통치를 받았던 포르투갈에 대항해 정정당당하게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했다는 데 만족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포르투갈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본 듯 했다. 경기장을 나서는 앙골라인들의 얼굴은 패배의 아쉬움보다는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가득차 보였다. pjs@seoul.co.kr
  • “아들 뜻 이루려 끝까지 싸워야죠”

    “한열아, 너 떠난 지 벌써 19년이야. 네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애미가 끝까지 싸울 게.”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커다란 불씨가 됐던 고 이한열(사망당시 21세)씨의 어머니 배은심(67)씨는 매년 6월9일 가슴에 묻은 아들을 그리며 연세대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참석한다. 이씨는 87년 6·10 대회 참여를 위한 연대생 총결의 대회에 나가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치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27일 만에 숨졌다. “아들보다 내가 더 많이, 더 오랫동안 연세대를 찾게 될 줄은 몰랐어. 아직도 그해 6월 병상에 누워 있던 한열이 모습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세월이 약이라는데 난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아.” 광주에서 5남매의 어머니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배씨의 인생은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180도 바뀌었다.민주화 집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건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 다녔다. 그게 억울하게 죽은 아들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아들과 함께 다닌다는 생각이었지. 그렇게 안 하고 집에만 있었더라면 나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배씨는 자신의 아들보다 몇개월 일찍 서울 남영동 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씨의 아버지 등과 함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회장을 지내면서 422일에 걸친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지난해 시위농민 사망사건 항의집회와 올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시위에도 참가했다. 배씨는 지난달 4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서 대추리 주민들의 퇴거집행 현장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참여정부가 무고한 시민들을 그렇게 전쟁터 같은 상황으로 내몰다니…. 전두환 정권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기가 막히고 서글펐다.” 배씨는 “참석자들이 많고 적고를 떠나 해마다 6월9일 우리 한열이의 후배들이 한열이를 기억해 주니까 고마운 마음으로 다닌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씨줄날줄] 독배/우득정 논설위원

    전설적인 종군여기자이자 소설가인 오리아나 팔라치는 자전적 2인칭 소설 ‘한 남자(A Man)’의 도입부를 소크라테스의 말로 장식했다.“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죽음의 길로, 당신은 삶의 길로. 하지만 어느 길이 옳은지는 신만이 알 뿐.”아테네도시가 숭배하는 신을 숭배하기를 거부하고 도시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법정에 고발된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毒杯)를 들기 전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들에게 남긴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대신 추방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불명예”라면서 진리에 대한 신념을 꺾기를 거부했다. 수많은 독재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독재의 잔혹함을 추상같이 추궁했던 팔라치는 그리스의 반체제 풍운아 파나굴리스와의 첫 만남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그리고 3년 후 파나굴리스가 의문의 암살을 당한 뒤 전설적인 영웅으로 다시 되살린 것이 ‘한 남자’라는 소설이다. 십자가에 못박힐 것 같은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숙명적인 인연의 끈을 끊지 못하는 팔라치 자신의 독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팔라치는 아무런 주저없이 독배를 든다. 훗날 팔라치는 1980년대 초 레바논 주둔 미군과 프랑스군 사령부의 자살폭탄 테러를 그린 소설 ‘인샬라’에서 참혹한 전쟁터를 헤집고 다니며 찾던 삶의 방정식 해답을 얻는다.“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체험해야 할 신비이다. 그 말은 바로 인샬라, 신의 뜻대로.”삶의 방정식을 찾아 레바논 근무를 자원한 이탈리아 병사 안젤로에게 해답을 전한 니네트는 밤 길거리를 헤매다 무참하게 살해된다. 다음 날 안젤로를 싣고 철수하던 이탈리아 군함은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자살보트의 공격을 받는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이 5·31 지방선거 참패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내몰린 당을 구하기 위해 “독배라도 마시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김 최고위원에 대한 ‘좌파 이미지’ 등 거부 시각에 대해 ‘김근태의 변명’이 없어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진실에 대한 믿음, 순수한 열정 등으로 성난 민심을 되돌리겠다는 각오가 아닌가 추정된다. 하지만 ‘싸가지’들이 그동안 국민들의 가슴에 남긴 생채기를 열정만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월드컵 앞서 호국영령 기억하자

    6·25전쟁때 전사한 국군장병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기념일인 현충일(6일)을 맞아 EBS가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달 10일 개막하는 월드컵으로 들썩이는 상황에서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도 현충일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 눈길을 끈다. EBS는 6일 오후 8시5분부터 50분간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사업 관계자들의 편지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특집 다큐멘터리 ‘다섯 통의 편지’를 방영한다. 현충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1인칭 편지 5편을 통해 현충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다. 20대 초반의 심규일 상병에게 현충일은 그저 ‘쉬는 날’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름도 생소한 발굴부대로 차출된 뒤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 유가족의 품에 안겨주면서 현충일은 심 상병에게 더이상 공휴일의 의미가 아니다. 발굴부대는 최근 6주간 대구 다부동 전투지역에서 반세기가 넘게 가매장돼 있던 105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다부동 전투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인 심 상병을 비롯, 함께 싸웠던 전우의 시체를 하나라도 더 찾아서 유족에게 안겨줘야 한다며 발굴사업에 참여한 팔순의 황대형 할아버지,50년 전 남편을 잃은 김영조 할머니와 딸 추옥분씨, 전쟁터에서 잃은 친구를 잊지 못하는 재미교포 최창호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 할머니는 당시 3살배기 딸을 키우고자 재가할 수밖에 없었지만 질곡의 세월, 그래도 모녀에게 ‘아빠’와 ‘남편’은 잊지 못할 그리움의 대상이다. 교포 최씨는 미국으로 이민간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전쟁터에서 만난 친구의 주검이었다. 후퇴하면서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것이 괴로웠다는 그는 국방부로 편지를 보내왔다.현충일에 띄우는 다섯 통의 편지는 “50년 동안 조국에 의해 잊혀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 누군가에게,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王자형 터널 500명수용 규모 “日본토~한반도 잇는 초계지”

    王자형 터널 500명수용 규모 “日본토~한반도 잇는 초계지”

    ■ 강제 동원된 거문도 생존자 증언 “비가 오고 파도가 높게 치는 날에도 배를 타고 다른 섬에 건너가야 했어.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십장’이라는 일본인들이 사정없이 우리들을 방망이로 내려쳤지. 나야 워낙 어렸지만 연세 많은 아저씨들까지 스무살도 안돼 보이는 십장들한테 얻어맞는데, 정말 비참하더라고.” 1944년 거문도 군사시설 건설에 강제 동원됐던 이성화(76) 할아버지는 격앙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일본군이 매일 필요한 인원을 요청하면 면사무소 직원이 나와서 ‘어느 집 누구 내일 나오시오.’ 하는 거야. 나가지 않으면 식량배급표를 안 주는데 안 나가고 배길 재간이 있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우리 집에 남자는 나뿐이라 고기잡이도 못하고 매일 끌려다녔지.” ●할아버지, 청소년 100여명 노력동원…몽둥이질 일삼아 16세 나이에 강제 부역을 해야 했던 이성화 할아버지는 “60년이 지났지만 당시 일본군이 섬에 머무르며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저지른 만행은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1938년 5월 일제는 전국에 국가총동원령을 내려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전시체제에 맞춰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1937년 300만명이던 조선 내 노동가능인구를 1941년 400만명으로 늘려잡는다. 노동가능 연령대를 20∼40세에서 14∼50세로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김윤미(26) 조사관은 “생업에 피해를 받으며 무임금으로 부역에 동원됐으면서도 강제동원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군사시설들은 1944년 12월부터 광복 직전인 1945년 6월에 걸쳐 지어졌다. 일본인의 관리감독 아래 황해도 옹진 등의 내국인 발파 기술자를 데리고 왔다. 동원된 100여명의 주민들은 돌을 옮기고 굴을 파는 등 단순작업을 시켰다. 거문도를 구성하는 3개 섬 중 동도에서만 9개의 터널이 발견됐다. 이중 7개는 해안가에 지어졌으며 배를 댈 수 있도록 콘크리트 접안시설까지 갖췄다. 터널은 폭 2.5∼3.0m, 높이 3m, 길이 15∼25m로 h·I·王·T자형의 다양한 형태로 지어졌다. 위원회 한흥수(45) 조사1팀장은 “전쟁이 났을 때 군수물자, 식량, 어뢰정 등의 보관·대피시설로 활용하거나 주변 정찰을 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王자형 터널의 경우 최고 500명까지 수용할 수 있고 해안가 터널은 군용정 4∼5척까지도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규모”라면서 “특히 콘크리트 벽의 두께가 30㎝ 이상으로 매우 견고하게 지어졌다.”고 말했다.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려 했을 가능성”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큰 일제시대 군사시설은 제주도의 터널 300여개였다. 그러나 거문도의 시설물은 제주도의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 지영임 연구원은 “이번에 처음 학계에 알려진 거문도 군사시설은 일제가 한반도 자체를 전장(戰場)으로 삼으려 했음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면에서 제주도 군사시설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서도리 불탄봉(해발 195m) 정상 근처에 있는 참호 2개는 군수물자 보관용이라기보다는 주변 정찰의 용도가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참호에서는 남동쪽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여 지나는 선박의 움직임 등 주변 정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로 입구 두 곳에는 철문을 달 때 쓴 경첩이 남아 있어 유사시 공격에 대비해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찰용 참호를 지을 때에는 주민들이 위치와 형태에 대해 알 수 없도록 비밀리에 진행했다. 이규동(81) 할아버지는 “우리는 중턱까지 시멘트나 목재 같은 물자를 올려주는 일만 했고 그 위로는 올라오지도 못하게 했다.”면서 “불탄봉에 주둔해 있던 육군들이 직접 짓고 포탄을 숨기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돌로 만든 80m 이상 전쟁용 방어벽도 건설 한 주민은 “일주일에 2∼3차례 수송용 비행기가 진해에서 물자를 날라 왔고 1944∼45년 사이에 함정 6∼7대가 항상 정박해 있었다.”고 증언했다.“해안가에 막사를 짓고 일본군과 기술자 100여명이 생활을 했지. 권총을 찬 해군이 군수물자를 지키고 있었는데 내게 권총을 보여주며 나를 귀여워하기도 했어. 나중엔 일본군이 집단 이질에 걸려 일본인 대위가 친구집에서 매실즙을 마시고 나았다고 들었어.”(70세 원용삼 할아버지) 가운데 섬인 고도 거문리의 회양봉 중턱에서는 돌을 쌓아 만든 높이 60∼80㎝의 방벽이 발견됐다. 산책로를 따라 섬의 북쪽을 두르고 있는데 눈으로 확인된 것만 80m 이상이었다. 거문리 신사터 뒤편에는 1938년 일본이 거문리에 130m에 이르는 방파제를 개축했다는 기념비가 있다. 1904년 일본군이 매설한 해저 케이블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직경 약 1㎝의 구리선을 수십가닥 엮어 만든 케이블은 광복 전까지 일본군이 통신용으로 사용했다. ●일본식 건물, 신사(神社)터…황민화 등 일제 잔재 그대로 현재 거문도에서는 1000여명의 주민이 어업·양식업에 종사하거나 낚시꾼을 상대로 하는 민박·식당업을 하고 있다. 하루 두번 관광객과 주민을 실은 배가 오갈 뿐 조용한 모습이다. 그 속에 일제의 잔재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도에는 일본식 건물의 흔적이 많다. 고도는 원래 주민들이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20세기 초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일본인 거주지역이 됐고 현재는 면사무소, 우체국 등이 있는 중심지다. 일본인들이 거문도에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로 1897년 원양어업장려보조법을 만들어 국가차원에서 어업이민을 장려했다. 김윤미 조사관은 “연중 어장이 풍부하고 지리적 요충지인 거문도는 일본인을 이주시켜 정보를 수집하고 물자를 조달하는 목적으로 활용하기에 최적의 섬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1942년에는 87가구가 이주해 346명의 일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250가구 이상 살았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다. 일본인이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소학교 3곳과 신사 터도 그대로 남아 있다. 비석만 흉칙하게 남은 200여평 넓이의 신사터는 현재 헬기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도 소학교를 다닌 원용삼 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10장의 카드를 주고 한국말을 사용하면 친구에게 카드를 뺏도록 해 카드의 개수가 적으면 마구 때렸어. 정월 초하루와 해군이 출격하기 전날엔 동네사람들을 모아 억지로 신사참배도 시켰지.”라면서 60여년 전 기억을 더듬었다. 글 사진 거문도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하필 거문도에 왜 지었나 거문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중간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와 부산의 사이에 있지만 거리로 따지면 일본에 더 가깝다. 거문도∼부산이 198㎞인 반면 거문도∼규슈는 161㎞밖에 되지 않는다. 예부터 일본∼중국, 여수·부산∼제주를 오가는 선박들이 풍랑을 피하거나 식수를 얻는 중간 기항지로 이용한 이유다. 이 때문에 19세기 말부터 열강들은 호시탐탐 거문도를 점령할 기회를 노렸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1885년 ‘거문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영국해군은 거문도에 무단으로 침입해 2년 동안 점령했다. 그래서 거문도에는 영국군이 만든 국내 최초의 테니스장과 영국군 묘지가 남아 있다. 일본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터지면서 거문도에 해군과 육군을 1개 중대씩 배치했다. 그러다 1944년 말 군사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로 이미 미군이 일본 오키나와까지 치고 들어가 있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일제는 최후의 항전을 앞두고 거문도를 본국과 한반도를 잇는 초계기지 겸 병참기지로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도와 서도 사이 내해(內海)의 물결이 잠잠하고 외부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활용하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비슷한 시기 제주도에 건설된 군사시설은 지하갱도 300여개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제주대 지영임 연구원은 “제주 해안가 갱도는 길이가 40∼60m에 이르며 함정을 출격시킬 수 있는 추진장치도 발견됐다.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제주도에서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시네드라이브] 중국의 영화 배짱

    문화가 국력이란 엄연한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스크린 안팎에도 많다. 할리우드 최대의 잠재소비국 중국이 할리우드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다. 최근 중국 당국은 ‘미션 임파서블 3’의 상영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주인공 톰 크루즈가 여자친구를 구하려고 찾은 상하이 뒷골목이 대나무 빨랫줄에 속옷들이나 걸쳐놓은 남루한 장면으로 묘사됐다는 이유에서이다. 국제도시의 체면을 구겨놨으니 괘씸죄를 묻겠다는 얘기이다. 중국의 할리우드 딴죽걸기는 지난 2월에도 요란하게 외신을 장식했다. 장쯔이 주연의 스필버그 대작 ‘게이샤의 추억’이 심기를 건드렸다. 장쯔이가 게이샤가 된 것도 불쾌한데 일본인 남자의 정부로 묘사된 장면들은 도저히 국민적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한다는 이유였고, 끝내 영화는 상영금지됐다. 사전 검열제도가 없는 지구촌 국가들이 볼 때 이런 뉴스는 거의 코믹 해프닝에 가깝다. 상하이라고 뒷골목이 없을 리 없고 그곳 사람들이 대나무 빨랫줄을 쓰지 말라는 법 없으니, 중국의 제스처는 대책없는 민족주의로 꼬집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 태도를 ‘영화 미개국’의 촌극으로 우리까지 고민없이 재단해버릴 일은 아닌 듯싶다. 스크린은 총알 없는 문화전쟁터이다. 누가 뭐래도 할리우드는 힘이 세다. 그들 입맛대로 조합된 이미지들이 세(勢)를 얻어 현실을 압도하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향신료처럼 자주 등장하고 있는 ‘스시 바’만 해도 그렇다.2,3년 전까지 할리우드는 젓가락질 서툰 주인공을 클로즈업하며 웃기는 식사도구나 쓰는 나라로 일본을 희화화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개봉한 할리우드산 로맨틱 드라마에선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 스시 바에 노련한 포즈로 앉은 남 주인공은 어느새 “진정한 뉴요커라면 반드시 와봐야 하는 곳”이란 대사를 날린다. 할리우드가 스시바의 나무젓가락을 동양문화의 대변자로 일방적으로 가치 재평가한 셈이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의기소침한 극장가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독식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발 외신을 할리우드와 똑같이 코믹 가십으로 즐기기엔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무래도 심상찮다.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유통지존은 나” 숙명의 백화점 대전

    [우리는 맞수 CEO] “유통지존은 나” 숙명의 백화점 대전

    화려한 미소 뒤에 감춰진 비수는 날카롭다. 조그마한 빈 틈만 보여도 결점을 ‘치고’ 들어온다. 유통업계를 양분하는 롯데와 신세계의 ‘백화점 대전’ 양상이다. 일촉즉발의 위기는 늘 따라 다닌다. 롯데와 신세계의 신경전은 손대면 터질 듯 팽팽하다. 정상을 수성하려는 롯데와 황제 자리를 엿보는 신세계다. 유명 브랜드의 독점적 유치, 상대에 대한 첩보전, 고소와 고발…. 유통에서 백화점은 중심 축이다.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유통의 핵심은 백화점이다. 백화점이 바탕이 돼야 할인점, 온라인 쇼핑몰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런 구매력 덕분에 유통이란 서비스가 제조업 위에 설 수 있다.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롯데쇼핑의 이인원(59) 백화점부문 대표와 신세계의 석강(57) 백화점 대표는 매일 매출로 승부를 결정한다. 하루살이 전쟁터의 최고 사령관이다. 이들의 전투는 상대 회사의 고객 빼앗기다. 최근 백화점 시장의 크기가 정체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상대방의 고객을 유혹하지만 ‘제로섬’ 게임이다. ●유통가의 산 증인들 격전을 독려하는 이 대표나 석 대표는 유통의 산증인이자 백화점 영업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다. 모두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1973년 호텔롯데로 입사한 이 대표는 87년 롯데쇼핑 관리담당 이사와 상품매입본부 전무, 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49세인 97년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그의 경영스타일은 오너가인 신격호 회장과 비슷하다. 그는 현장 제일주의다. 롯데백화점 직원이 동대문시장을 둘러보다 이 대표를 만나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롯데 관계자는 “요즘도 이 대표는 틈만 나면 매장을 돌고 있다.”면서 “고객 동향과 현장 개선 아이디어 등도 먼저 제시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CEO들이 골프를 즐기지만 그는 등산으로 건강을 챙긴다. 석 대표 역시 75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 신세계 영업총괄·마케팅실장·영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야전사령관 스타일의 석 대표는 최일선 사원이라도 대표를 어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신세계 관계자는 “석 대표는 현장이나 사무실에서 직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석 대표는 한달에 2∼3번 필드에 나간다. 롯데의 이 대표는 “윤리경영이 곧 기업가치를 결정한다.”며 직원들의 윤리의식을 강조한다. 협력업체와의 동등한 파트너십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석 대표는 특유의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영업에 활발하다. 강남점의 초대 점장을 역임하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전국이 두 회사의 전쟁터 지난해 소매업에서 백화점 시장 크기가 1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가 전국 22개 매장에서 7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세계는 7개 매장에서 2조 200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롯데의 승리다. 하지만 전투는 계속될 전망이다. 두 회사의 전선은 전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격전지는 국내 상권의 대명사격인 서울 명동. 신세계는 내년에 본점 구관을 리뉴얼하고 롯데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 태세다. 이처럼 롯데와 신세계의 같은 상권 접전지는 서울 영등포, 인천 구월동, 광주 대인동 등 4곳에 이른다. 격전지는 더욱 늘 전망이다. 올 연말 롯데 미아점이 개관하면 미아상권을 양분하게 된다. 부산 센텀시티점은 롯데가 내년, 신세계가 2008년 각각 오픈할 예정이다. 부산 해운대 상권을 두고 또다시 격전을 치러야 한다. 숙명의 라이벌이다. ●유통 명가냐 월드 클래스냐 지난해 8월 서울 소공동에 명실상부한 롯데타운을 조성한 롯데는 세계 진출 전략을 달구고 있다. 올 연말 러시아를 비롯해 인도·중국 등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같은 달, 서울 충무로에 각국의 고급 백화점을 벤치마킹해 개관했던 신세계는 다분히 롯데를 겨냥,“기존과는 다른 진정한 세계 수준의 백화점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단순히 쇼핑만이 아니라 ‘꿈을 파는 백화점’으로 거듭난다는 전략이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中 문화대혁명 40주년] 사회부조리가 부른 마오의 부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당신의 검색어는 관련 법률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단어에 대한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반응이다. 문혁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히 법률로 제한돼 있다는 얘기다. 아예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안내어가 뜨는 곳도 많다. 신화사 등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나 다른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다.16일로 발발 40주년을 맞는, 문화대혁명의 현주소다. ●16일 40주년… 기념식·정치행사 없어 올해 문혁과 관련, 국가차원의 특별한 기념식이나 정치행사가 준비된 것은 없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도 올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등에서 공산당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문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움직임조차 없는 건 아니다. 문혁을 재조명하자는 주장도, 간헐적이나마 끊임이 없다. 대문호 바진(巴金)을 비롯,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비서를 지낸 리루이(李銳) 전 공산당 조직부 부부장 등이 대표적이다.“마오는 위대했으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해 문혁과 같은 참상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주장의 실질적 핵심이다. 이같은 ‘전통적인’ 문혁 재조명론 외에 양극화 문제 등 일련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제2의 문혁론’ 등 문혁 재조명론의 이유도 양분돼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한 주요인사는 최근 한 사석에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잣대가 있다.”는 표현으로 공식적인 문혁의 재조명 가능성을 일축했다. 평가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시각이 있지만, 그것과 재조명과는 별개의 일이란 얘기다. 그는 “지금 문혁을 드러내놓고 떠들어봐야 중국 사회에 득 될 게 없다는 사실에 지도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혁 재조명은 중국이 전면적 발전단계에 진입하는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면서 “경제의 성장 정도가 그 여부를 가름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의 부패·빈부격차에 불만 팽배 이런 가운데 정작 문혁의 주역 마오쩌둥 전 주석은 이미 문혁의 ‘어두운 그림자’을 떨쳐냈다는 데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건국 이후 역사 문제에 관한 약간의 결의’(1981)를 통해 “마오 전 주석이 오류를 저질렀으되, 공과(功過) 비율은 7대3”이라는 ‘체면치레’ 평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전직 언론인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차라리 그 때가 좋았다.’며 마오를 추억하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당의 부패, 빈부 격차, 사회적 불평등에 따른 불만이 마오를 다시 불러내고 있다.”며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은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적 역기능이 심화될수록 옛날에 대한 향수와 동경은 더 깊어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신좌파 지식인’의 문혁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는 이런 분위기와 맞물린 것이다. ●“지도부 실질적 재산공개하라” 베이징의 한 주요 대학에 재직중인 A교수는 마오 신드롬의 한 요인을 ‘솔선수범’에서 찾아냈다.“마오는 전쟁터에 아들을 보냈고 그 아들은 죽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의 지도층의 자제는 모두 외국에 나가 있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떼돈을 벌고 있다. 마오 이후의 당과 지도부는 솔선수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질적 재산 공개 없이 현 지도부와 당은 결단코 마오 시대와 같은 신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지식인도 있었다. 그는 “법에 따라 재산신고를 할 때 어느 성(省)의 성장(省長)은 비서가 월급봉투에 적힌 액수만을 적어낼 뿐 예금이나 부동산 등은 숨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그나마 국가 최고 지도자급은 그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4세대 지도부가 반부패를 강조하고 ‘팔영팔치(八榮八恥)’ 등을 선전하는 배경을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중국 사회가 다시 문혁을 들춰낼 기미는,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마오에게만 조용히 손짓만 하고 있을 뿐이다.‘사회 부조리’는 마오를 부르는 주문(呪文)인 셈이다. jj@seoul.co.kr ■ 성장이냐 분배냐 中 지도부 딜레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가난이 걱정이 아니고 균등치 못한 게 근심이다.’(不患貧而患不均) 중국에서 평등 의식을 제고시키며 마오쩌둥을 불러내고 있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동시에 인터넷 토론방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중국 사회 전체에 ‘효율과 균형(또는 공평)’, 즉 ‘성장과 분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화두이기도 하다. 나아가 ‘물질재부가 적은 게 두려운 게 아니고 분배가 고르지 못한 게 두렵다.’(不物質材富少,而是分配不均)는 말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사회 진단은 ‘분배 불공평’(分配不公平)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를 감안,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정권은 분배를 선택한 마오쩌둥의 정책 노선을 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2006∼2010 5개년 경제규획 등에서 성장 일변도 경제 정책을 조정한 데 대해 “중국이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며 좌파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곁들인다. ●‘부의 획득 단계, 우파 논리 그대로’ 그러나 당의 동향에 밝은 전문가들은 이런 분석을 일축한다. 이들은 “현 정권은 마오쩌둥식 분배 정책을 실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절대 그런 식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 핵심부 및 싱크탱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효율과 균형’ 논의는 사회 일반에서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균형, 즉 분배에 관한 논의가 사회 일반에서는 뭉뚱그려져 있으나, 당 내부에서는 세분화돼 있다. 즉 ‘생산과정 또는 부의 획득 과정’에서는 여전히 효율이 중시돼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분배 여력 많지 않아’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남은 ‘균형(분배)’은 교육, 의료 등에 있어 기회의 평등이다. 나아가 엄청난 부를 축적중인 기업 등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조성, 공적부조를 통한 분배도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 또는 정부가 균형, 분배에 역량을 쏟더라도 실질적인 분배 효과를 내기에는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농민·저소득층의 제반 문제를 ‘혜택’으로 해결하기에는 재정이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기부나 각종 기금 등이 보조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의식이 현저하게 낮은 중국에서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 부의 획득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면 ‘부패 및 각종 경제범죄 척결’을 통한 간접적인 ‘기회 조정’ 방식 정도가 꼽힌다. 그러나 이마저도 뿌리깊은 관행을 뽑아내기엔 갈 길이 멀다. 중국 싱크탱크 집단의 한 전문가는 “지금의 사회 갈등과 문제점들은, 교육·의료·양로 등 모두 국가가 책임져 오던 것들이 시장경제 도입 이후 개인 부담으로 전가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면서 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고충을 토로했다. 시대가 마오를 찾으나 마오로도 시대를 아우르기 쉽지 않은, 문혁 40주년 중국의 현실이다. jj@seoul.co.kr ■ 아직도 금지단어?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츠부바오(吃不飽).´ ‘그 시절´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가장 일반적인 답변은,“배부르게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립적이되 다소의 ‘판단´이 가미된 이 표현은, 중국 사회가 문혁에 대해 암묵적으로 내리고 있는 대체적인 ‘평가’다. 지식인, 예술인 그룹을 중심으로는 “전통이 사라졌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답변이다.“한국은 전통을 잘 유지했다….”는 부러움도 종종 접할 수 있다.“한류(韓流)의 배경에는 ‘전통’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고 평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다. 중년의 교수부터 유력 언론사의 중견 간부, 택시기사에까지 어려서라도 그 시절을 경험한 이들의 답변은 의외로 담담해 보인다. 답변도 길지 않다. 물론 ‘문혁’은 묻지도 못하고,‘어려웠던 당시’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물었을 때의 얘기다. 가까운 사이에서라면 간혹, 억눌린 시절에 대한 울분을 들을 수도 있다.“문혁은 정치 투쟁의 산물일 뿐이며 당과 국가에 의해 명백히 과오로 인정된 일 아니냐.”는 단정적인 반응도 접하게 된다. 젊은이들에게서라면 확실히 국수적인 태도를 확인할 때가 많다. 베이징 모 대학의 한 4학년생은 “결과적으로 당과 사회의 모순을 한번에 들춰내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는 순작용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한껏 긍정론을 폈다. 칭화대(淸華大)의 한 중견교수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또 다른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유력 방송사의 30대 초반의 PD는 사회 금기에 대한 외국기자의 호기심이 못마땅한 듯,“도대체 뭘 알고 싶은 게냐, 서점에 가면 책도 많은데…”라는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한 3학년 여대생의 대답 역시 젊은 부류의 또 다른 반응이다. 한편 많은 중국인들은 문혁이란 단어가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아해했다.“아직도 금지 단어냐?”는 반응인 셈이다. jj@seoul.co.kr
  • [평택 미군기지터 ‘대집행’] 헬기서 철조망 투하…10시간만에 상황끝

    [평택 미군기지터 ‘대집행’] 헬기서 철조망 투하…10시간만에 상황끝

    4일 경기도 평택시 대추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새벽 4시10분쯤 경찰이 마을 전체에 대추분교 철거를 위한 경력 진입을 알리는 사이렌을 울리면서 대추리의 긴 하루가 시작됐다.20분 뒤 경찰과 군병력 1만 5000여명이 마치 군사작전 전개라도 하듯 대추리로 몰려들었다.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시위 집결지인 대추분교를 겹겹이 에워쌌다. 하늘에서는 UH-60 헬기가 굉음을 내며 철조망 등 장비를 공중 투하했다. 공병들은 이를 받아 대추리와 도두리 등 5개리 농지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오전 9시20분쯤 경찰 3000여명이 학교에 본격 진입하자 시위대는 대나무봉을 휘두르고 돌과 연탄재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경찰의 공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방패와 곤봉에 맞은 50여명의 시위대가 이마가 찢어지고 이가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입었다. 전경측에서도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인해전술에 밀려 운동장을 내주고 2층 학교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낮 12시20분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현장을 찾아 전날 밤 10시부터 대추분교를 지키던 민주노동당 천영세 대표와 합세해 옥상에서 투쟁을 벌이던 문정현 신부 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10명을 만났다. 임 의원은 “이날 상황은 1980년 광주 전남도청 진압을 연상케 한다. 특전사가 강제 진압했던 당시와 같은 비참한 현실”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천 대표도 “오늘 일은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당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 한명숙 총리에게 책임을 묻고 국방부장관 해임 건의안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오후 1시35분쯤 경찰 34개 중대 3400여명이 2대 살수차를 앞세워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의 자진해산을 경고했다. 경찰은 소방차 4대와 앰뷸런스 9대를 대기시키며 긴장 상황을 연출한 뒤 1시58분부터 2층 4개 교실에 분산돼 농성하던 시위대 420여명을 한명씩 전원 연행했다. 대추분교에서 경찰과 시위대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인근 들녘에서는 공병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5m 간격으로 미리 박아 놓은 말뚝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농사만은 짓겠다고 각오를 다지던 주민과 시위대는 이 광경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굴착기 2대를 동원해 대추분교 정문과 운동장에 세워진 동상과 주변에 심어진 수십년 된 나무들을 쓰러뜨렸다. 또 국방부가 동원한 철거 용역반원들은 학교 마당에 설치된 집회용 무대와 주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이던 비닐하우스를 치웠다. 오후 5시 문정현 신부와 임 의원, 천 대표 등이 연행자 전원 석방을 경찰과 합의한 뒤 옥상에서 내려오자 용역반원은 철거 작업에 돌입,2시간 만에 학교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대부분의 대추리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학교를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경찰의 진압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대추리 주민 신모(69)씨는 “왜 우리가 세번이나 이 땅에서 쫓겨나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학교 안 시위대가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저 사람들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득도 없이 우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총무신부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만큼 나쁜 죄악은 일궈낸 땅을 빼앗는 것이다. 미군이 이 땅을 빼앗아가는 것에는 어떤 합리성도, 공동선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평택 김병철 이재훈기자 kbchul@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할인점 정상도전” 명예 건 유통대전

    [우리는 맞수 CEO] “할인점 정상도전” 명예 건 유통대전

    “승부는 지금부터다.” 할인점 업계 1위인 이마트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는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는 ‘압축성장’의 발판으로 한국까르푸 인수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의 ‘복병’ 이랜드로 넘어갔다. 두 업체는 경쟁업체가 인수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세계 2위 유통업체인 까르푸가 철수할 정도로 국내 소매 유통업은 치열하기가 전쟁터와 다름없다. 세계 1위인 월마트 역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할 만큼 ‘레드오션’이 됐다. 까르푸 인수 무산 이후 두 업체 최고경영자(CEO)인 이승한(60)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사장과 이철우(63) 롯데마트 사장이 원점에서 다시 할인점 유통 대전을 지휘하고 있다. 그동안 까르푸 인수건에 매달리느라 다소 흩어졌던 분위기를 추스르고 있다. 국내 할인점 시장은 297개 매장에 연간 매출액만 23조 5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업계 2위인 홈플러스가 42개 매장에서 지난해 기준 4조 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롯데마트가 43개 매장에서 3조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홈플러스를 바짝 뒤쫓고 있는 형국이다. ●두터운 신임의 삼성 출신 이들 CEO는 오너의 신뢰가 두텁다. 영국의 테스코가 지분의 89%를 보유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경우 영국인 직원이 단 5명에 불과하다. 이승한 사장 단독 경영체제를 굳혔다. 롯데마트 이철우 사장은 롯데쇼핑에 속했던 인사와 재무 관련 업무를 독립시켰다. 오너 신격호 회장의 오른팔 왼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안팎의 신임이 두텁다. 둘 다 삼성 출신인 것도 공통점. 롯데마트 이 사장이 세 살 위이지만 삼성 입사는 오히려 3년 늦다. 이 사장이 서울대를 마친 다음 병역과 경영학 석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지난 73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을 거쳐 신세계백화점 과장을 지냈다. 유통에서 30년 이상 몸담으면서 산전수전을 겪은 백전노장이다. 반면 홈플러스 이 사장은 영남대를 마친 70년 제일모직으로 입사,74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기획팀장을 거쳤다. 주로 건설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부사장을 시작으로 유통에 발을 담갔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이 사장이 면밀한 전략가형 CEO라면 롯데마트 이 사장은 현장을 누비는 야전사령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신바레이션’vs 현장제일 올해 매출을 6조원으로 늘려 잡은 홈플러스 이 사장의 경영이 상당히 창의적이다. 그는 이미 우리의 신바람 문화와 서구의 합리성(ration)을 합쳐 ‘신바레이션’ 경영을 들고 나올 정도로 적극적이다. 올해 이미 매장 2개를 추가했던 이 사장은 14개를 추가할 계획이다. 또 할인점의 식품을 압축한 형태의 슈퍼익스프레스도 18개를 낼 생각이다.3년 뒤인 2009년 99개의 매장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선다는 야심찬 복안을 갖췄다. 이에 비해 롯데마트 이 사장은 현장 제일주의다. 회의가 없을 경우 1주일에 서너차례씩 매장을 둘러본다. 직원들의 월급 명세서에도 “귀하의 급여는 고객으로 인하여 지급됩니다.”는 문구를 인쇄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5% 늘린 4조원으로 잡았다. 올해 12개 매장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미 37개의 부지를 확보,4년뒤인 2010년 100여개 점포를 운영, 백화점처럼 할인점도 업계 정상에 등극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블루오션 방법은 서로 달라 두 CEO는 블루오션 창출에는 한 목소리지만 방법이 다르다. 롯데마트 이 사장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신입사원을 세계 유통업체의 각축장인 중국으로 9일씩 연수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 인재 양성차원이다. 직원들에게 역사와 중국어 시험을 치게 하는 것도 이런 사례다. 홈플러스 이 사장은 한국 내수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 5위 유통업체인 테스코가 이미 외국에 진출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 이 사장은 “성장률이 이마트보다 7∼8% 이상 앞서며 매출도 25%가량 높다.”며 다분히 이마트를 겨냥하고 있다. 할인점 명가를 위한 진검승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 ▲46년 경북 칠곡생 ▲70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70년 제일모직 입사 ▲94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팀장 ▲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부사장 ▲99년 삼성데스코 대표이사 사장 ● 이철우 롯데마트 사장 ▲43년 서울생 ▲65년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70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73년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76년 롯데쇼핑 입사 ▲03년 롯데마트 대표이사 사장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1]

    미남(美男), 미성(美聲)의 가수 손인호씨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비 내리는 호남선’ ‘울어라 기타줄’ ‘해운대 엘레지’ ‘하룻밤 풋사랑’ ‘한 많은 대동강’ 같은 우리의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10여년 간 정상에 서 있는 동안에도 방송 무대에 전혀 서지 않았다. 심지어 일반 무대에서조차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시 일반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본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그는 가수로서 150여곡의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기사로는 무려 2000여편 이상을 작업했다.‘돌아오지 않는 해병’ 그리고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모두 그가 녹음작업을 한 영화들. 이로 인해 대종상 녹음상을 무려 일곱 차례나 수상했을 만큼 영화녹음작업에 있어 독보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손인호씨가 가수로서 받은 상은 단 한차례도 없다. 보릿고개 시절, 라디오와 영화가 국민들에게 최고의 오락수단이었던 때, 그 두 무대를 동시에 장악한 인물로 ‘소리의 마술사’라고까지 불리던 손인호씨는 속칭 ‘38 따라지’다. 본명 손효찬(孫孝燦).1927년 평북 창성에서 출생해 창성보통학교 6학년 때, 수풍댐 건설로 인해 마을 일대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가족 모두 만주 창춘(長春)으로 이주해 생활했다. 광복 후 신의주로 옮긴 손인호씨는 평양에서 열렸던 이북 도민 전체 노래자랑대회인 ‘관서콩쿠르대회’에 참가,‘집 없는 천사’를 불러 1등을 차지한다. 이때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가수가 되려면 이남으로 가야 소질을 살릴 수 있다.’는 권유를 받고 이남 행을 결심, 광복 이듬해인 46년 12월 여섯 살 터울의 형과 단둘이 서울로 내려온다.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들 몸에 뿌려진 것은 DDT, 즉 살충제였다. 나이가 어려 곧바로 수용소에서 생활을 시작해야 했던 그는 당시 서울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람은 1주일 동안 굶어도 물만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고 회고할 정도다. 그는 당시 작곡가 김해송씨가 이끌던 KPK악단에서 실시한 가수모집에 응모, 참가자 300명 중 1등을 차지해 악단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윤부길씨가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곧이어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는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제대 후 공보처 녹음실에 입사한 그는 ‘대한뉘우∼스(뉴스)’ 녹음을 담당하며 아울러 영화 녹음기사로도 활동을 시작한다. 그 무렵 많은 음악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작곡가 박시춘씨. 이 인연으로 그는 노래 두 곡을 받아 취입하게 되는데 그 노래가 바로 ‘나는 울었네’와 ‘숨쉬는 거리’다. 휴전 이듬해인 54년도의 일이다. 그의 노래 중 56년에 발표한 ‘비 나리는 호남선’과 관련,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자유당 시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당 대통령후보로 출마한 해공(海公) 신익희 선생이 유세 도중 호남선 열차 내에서 심장마비로 급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발생했기에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마치 추도곡처럼 ‘비 나리는 호남선’을 애창했다. 때를 같이 해 온갖 유언비어가 꼬리를 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신익희 선생의 미망인이 직접 이 노래를 작사해 만든 노래라는 것.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진 이 소문으로 인해 노래를 부른 주인공 손인호씨를 비롯해 작사가 손로원, 작곡가 박춘석씨도 줄줄이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 수모를 겪는다. “담당 수사관이 대뜸 ‘이 노래를 취입할 때 어떤 감정으로 불렀느냐.’고 묻더군. 그래서 ‘가수는 감정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지, 감정 없이 노래 부르면 그건 가수가 아니죠.’라고 대답했지. 그러자 수사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거야.” 손인호씨의 회고다. 사실 이 곡은 바빠서 일년 이상 차일피일 취입을 미뤄왔던 곡으로 취입 도중 반주가 틀렸음에도 별로 히트되지 않을 곡이라고 판단,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긴 곡이었다. 노래 역시 단 한번 만에 OK사인이 났다.(계속) sachilo@empal.com
  • “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

    “‘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입니다.” 동학군 최대·최후 전쟁터인 국가사적지 387호인 충남 공주 우금치 이름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는 상반기중 ‘우금치 사적지’의 명칭을 ‘우금티 사적지’로 변경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키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달 23일 열린 총회에서 명칭변경안을 결의했으며 명칭 변경을 위해 고고학자 자문, 문헌자료 및 주민들의 증언 등을 수집중이다. 사업회가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이유는 원래 ‘고개’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은 ‘티’나 ‘재’이나 일제가 지도를 제작하면서 한자에 ‘고개 티’자가 없어 ‘치(峙)’를 붙였기 때문.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두 이름이 섞여 불리고 있다. 우금치는 옛날 부여에서 공주로 넘어가거나 호남 등에서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갔던 고개로 1894년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군 수만명이 관군 및 일본군과 싸워 전멸한 동학농민 전쟁의 최후 격전지다. 이곳에는 1973년 동학농민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져 해마다 추모예술제가 열리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던 1994년에는 사적지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우금티기념사업회 조동길(공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이사장은 “우금이란 이름은 고개가 험해 도둑이 많으니 ‘소를 끌고가지 마라’는 전설과 공주 곰나루와 비교해 ‘윗곰’이란 말에서 변형됐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다.”면서 “‘티’로 이름을 변경하려는 이유는 지명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월드컵 인사이드] (7) 불꽃 튀는 광고 마케팅

    [월드컵 인사이드] (7) 불꽃 튀는 광고 마케팅

    독일월드컵이 두달 남짓 남았지만 SK텔레콤 광고팀에 근무하는 권철근(36) 과장은 벌써부터 월드컵 특근을 하고 있다.SK텔레콤이 월드컵 길거리응원 공식주관사로 지정돼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140억원이 투입되는 행사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 권 과장은 매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업무에 매달리다 밤 8시30분이 넘어 퇴근한다. 회사 동료들은 주5일 근무를 즐기고 있지만 지난 2월 중순부터 매주 일요일도 출근하고 있다. 기업들의 월드컵 마케팅이 벌써부터 가열되고 있다. 기업들은 독일월드컵이 지난 2002한·일월드컵만큼이나 회사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하고 기업홍보 마케팅에 ‘올인’하고 있다. 업계는 월드컵과 관련한 광고·홍보비가 1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월드컵 무대는 기업들의 전쟁터 기업들은 올 경영성과와 광고홍보 효과가 월드컵이 열리는 6월 한달 동안 갈린다고 보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부심하고 있다. 월드컵 마케팅은 크게 3종류로 분류된다. 독일월드컵 공식스폰서, 대한축구협회와 응원단 ‘붉은악마’를 지원하는 비공식스폰서,‘월드컵’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앰부시(매복) 마케팅’ 등이다. 독일월드컵의 공식 스폰서는 현대자동차다. 현대차는 독일월드컵의 광고 홍보 효과가 2002한ㆍ일월드컵에 비해 1.5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보고 해외 시장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박채훈 스포츠마케팅팀장은 “이번 대회에서는 온라인 마케팅에 주력해 2002년 65억달러보다 많은 90억달러(약 8조 7390억원) 이상의 광고 홍보 효과를 거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후 코리아는 모기업이 인터넷기업 중 유일하게 독일월드컵 공식 후원사여서 한국 경기 입장권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야후는 토고·프랑스·스위스전 입장권 320장과 왕복 항공편, 호텔 숙박권을 포함한 ‘월드컵 패키지’를 내세워 네티즌들을 공략하고 있다. 공식스폰서는 아니지만 축구협회와 붉은악마를 지원하는 기업들도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있다.KTF는 붉은악마와 함께 새로운 응원가를 발표하고 월드컵 응원의 중심이 되기 위해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내세워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데 진력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앙골라전을 포털에서 생중계한 다음은 독일월드컵 문자중계, 하이라이트,10분 지연중계권을 따내는 등 포털업계에서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박지성을 모델로 기용한 하나은행은 월드컵 펀드 가입 고객에게 붉은악마 T셔츠와 월드컵 관람권을 제공하는 등 신규가입자를 모집중이다. ●매복 마케팅도 성행 월드컵 공식·비공식 스폰서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체들은 앰부시(매복) 마케팅에 사활을 걸고 있다.FIFA가 월드컵 불법 마케팅을 감시하는 대행사를 선정, 월드컵과 관련한 모든 마케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들은 ‘월드컵’이라는 단어는 물론이고 ‘2006독일’ 등도 직접 사용하지 않은 채 월드컵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대한민국’‘태극전사’‘독일’‘축구’‘응원’ 등의 단어를 쓰며 월드컵 특수에 합세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아드보카트와 히딩크 감독을 동원해 파브 브랜드를 광고하고 있다.‘PAVV’에서 ‘VV’를 연이어 강조, 마치 월드컵의 약자인 ‘W’처럼 보이게 한다.LG전자는 박지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응원전도 월드컵 응원전이 아닌 박지성 개인 응원전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FIFA의 감시의 눈길을 따돌리고 있다. 대우일렉은 이달부터 코미디언 이경규씨와 탤런트 조형기씨의 ‘이경규가 간다’ 형식의 광고를 준비중이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축구’와 ‘애국심’을 강조하지만, 월드컵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영표를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는 외환은행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성적에 따라 최고 10%까지 200명을 추첨해 보너스 금리를 지급한다. 농협은 한국대표팀 성적을 맞힌 고객에게 최고 5% 추가금리를 제공한다.LG카드도 레저 전용 위키카드의 독일월드컵 버전을 오는 7월까지 판매한다. 현대카드는 아드보카트 감독을 등장시킨 기업 광고를 제작하고 월드컵 관련 신용카드를 만들어 시장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FIFA 수익 얼마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독일월드컵을 통해 벌어들일 수익금은 얼마나 될까.FIFA가 독일월드컵 공식 스폰서들과의 계약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대략 2억 5000만달러(약 2500억원)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위스 국내법상 비영리기구로 등록돼 있는 FIFA의 순자산 규모는 7200만달러. 그러나 월드컵 때마다 TV중계권과 각종 후원업체들과의 계약을 통해 ‘떼돈’을 벌고 있어 실제로는 부동산 자산 1억달러, 현금 자산 40억달러에 이른다는 게 중론이다. 초창기 경영난에 허덕이던 FIFA는 1960년 TV중계권료 수입이 현실화되면서부터 부를 거머쥐게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배가 되는 방송 중계권료 수입과 마케팅 사업권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중계권 협상이 벌어질 때마다 최고치를 경신해 오던 계약 금액은 2002∼2006년 대회 협상시 무려 15억 5300만달러를 넘어섰다.90이탈리아 대회부터 98프랑스대회까지 3개 대회를 중계한 유럽 컨소시엄이 3억 4000만달러를 지불했던 것을 고려하면 10년 사이 중계료가 5배나 급등한 셈이다. 여기에 15개 공식 스폰서들은 분야별로 1000만∼4000만달러씩 모두 3억 5400만달러를 FIFA에 지급했다. TV중계권과 스폰서 후원금 19억 700만달러 중 27%인 5억 1489만달러가 FIFA에 고스란히 들어온다.FIFA 월드컵 관련 계약은 8년마다 이뤄지므로 FIFA는 독일월드컵을 통해 2억 5000만달러 이상을 챙기게 되는 셈이다. 축구협회 고승환 국제국장은 “FIFA는 막대한 수익금을 협회 자체 재정 확충과 독일월드컵조직위원회 분배금, 저개발국의 축구지원 프로그램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儒林(57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0)

    儒林(574)-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0)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0) 박제가(朴齊家·1750~1805)는 ‘북학의(北學議)’에서 이 무렵의 과거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유생들이 마실 물과 불, 짐바리와 같은 물건을 시험장 안으로 들여오고, 힘센 무인(선접꾼)들이 들어오며, 심부름하는 노비들이 들어오고, 술파는 장사치까지 들어오니, 과거 보는 뜰이 비좁지 않을 이치가 어디 있으며 마당이 뒤죽박죽이 안 될 이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심한 경우에는 마치로 상대를 치고, 막대기로 상대를 찌르고 싸우며, 부문 앞에서 횡액을 당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욕을 얻어 먹기도 하며, 변소에서 구걸을 요구당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하루 안에 치르는 과거를 보게 되면 어느새 머리털이 허옇게 세고, 심지어는 남을 살상하거나 압사당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온화하게 예를 표하여 겸손해야 할 장소에서 강도짓이나 전쟁터에서나 할 짓거리를 행하고 있으므로 옛사람이라면 반드시 과거장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박제가의 생생한 묘사처럼 율곡은 ‘부문 앞에서 당한 횡액’을 아슬아슬하게 모면하고 마침내 아수라장을 벗어나 거장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수협관은 율곡의 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붓주머니를 뒤져 붓통 속까지 훑어 보았다. 많은 거자들이 반드시 휴대하여야 할 붓 대롱 속에다 깨알 같은 글씨로 커닝 페이퍼를 말아 놓고 들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수협관은 율곡이 입고 있는 옷의 소매 속까지 검사하였다. 이는 혹시 옷소매 속에 수진본이 들어 있을까 수색하기 위함이었다. 수진본(袖珍本). 이는 ‘소매 속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한 작은 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소에는 암기용, 혹은 휴대용 학습서로 유생들이 자주 이용하던 일종의 메모노트였는데, 몰래 거장 안으로 갖고 들어가 시험을 볼 때 틈틈이 훔쳐보기에는 안성맞춤의 책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수협관은 율곡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많은 거자 중에는 콧구멍이나 귓구멍 속에 깨알 같은 글씨로 예상 답을 적은 종이를 말아 끼우고 입장하는 부정행위가 적발되는 사례도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수협관에게 발각되면 6년간 과거시험을 치를 수 있는 응시자격을 박탈당하기 때문에 유생들은 수협관을 ‘저승사자’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모든 수색을 끝낸 율곡은 마침내 반수당 안으로 들어섰다. 시험장인 명륜당 뜨락에는 이미 입장한 거자들이 여섯 자의 거리를 두고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시험장은 일소(一所)와 이소(二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는 부자, 형제,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한자리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형제들이 같은 시기에 시험을 볼 경우 각기 다른 장소에서 치르게 하기 위해서 구역을 두 개로 미리 갈라놓은 것이었다. 이를 상피제(相避制)라 하였는데, 율곡이 앉은 자리는 이소 중에서도 자연 가장 후미진, 지금도 남아 있는 은행나무의 밑둥이었다. 율곡이 자리를 잡고 앉자 동시에 부문이 닫혔다. 율곡으로서는 운명적인 과거시험이 시작된 것이었다.
  • [환경·생명] 남해안 벨트는 거대한 ‘소나무 무덤’

    [환경·생명] 남해안 벨트는 거대한 ‘소나무 무덤’

    정부대전청사를 이륙한 산림청의 재선충병 방제 헬기가 시내를 벗어나자 겨울을 견뎌낸 짙푸른색 솔숲 사이사이로 연녹색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속 240㎞로 대전에서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를 따라 한시간쯤 날아간 헬기가 서부 경남 지역에 다다르자 상황은 달라졌다. 산중턱마다 늦가을 볏가리처럼 쌓아놓은 나무더미가 널려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를 잘라낸 뒤 훈증처리한 ‘소나무 무덤’이라고 했다. 사람이 오르기 어려운 깊은 산속은 물론 바닷가·등산로·도심·인가 주변 할 것없이 소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무덤이 만들어졌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 검정리 남해안고속도를 따라 있는 2㏊의 산림은 아예 ‘까까머리´였다. 울창했던 소나무숲은 이제 나무 밑둥만 남겨진 채 흔적을 찾을 수 없게 사라져버렸다. 사천 와룡산 들머리에서는 산불현장처럼 산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까이 날아가 보니 재선충병에 걸려 벌목한 소나무를 소각처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불구덩속으로 던져진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희뿌연 연기가 포연이 자욱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진주시에서는 방제단이 일정규격으로 피해목을 자른 뒤 연기로 재선충을 박멸한 뒤 비닐을 덮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비닐색깔이 흰색, 파란색, 녹색으로 갖가지였다. 벌목한 연도를 색깔로 구분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요즘에는 감염된 소나무뿐 아니라 재선충이 확산될 우려가 있는 지역의 소나무까지 톱날이 가해진다고 했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5∼7월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삼나무 등의 새잎을 갉아먹을 때 상처부위를 통하여 전파 감염된다고 한다. 진주시 관계자가 “이유가 없다.”면서 “매개충의 유충이 성충이 되는 우화(羽化)시기 이전인 4월까지는 붉게 말라죽은 소나무를 모두 없애야 한다.”고 다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에는 재선충병의 최대 피해지인 부산으로 기수를 돌렸다. 사천에서 진주∼김해∼양산∼부산으로 이어지는 ‘남해안 벨트’는 어느 곳이나 전해듣기보다 훨씬 처참한 모습이었다. 부산 해운대구와 기장군은 더욱 심각했다. 구철웅 부산시 산림팀장은 “지난해 10월 부산지역의 산은 재선충 감염으로 내장산 단풍을 방불케 할 만큼 울긋불긋했다.”면서 “부산에서만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제거될 소나무가 76만여그루”라고 안타까워했다. 재선충병 발생 밀도가 30%가 넘으면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있는데, 이 때문에 민둥산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11일 부산 기장군 기장읍 당사리에서는 300년이 넘은 당산목 3그루가 베어졌다. 당연히 주민들은 벌목에 동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작업반조차 “당산목을 건드리면 다친다.”며 나서지 않았다. 결국 당산목에 제사를 지내고서야 베어낼 수 있었다. 오기표 산림청 재선충병방제과장은 2일 “재선충병은 다른 병해충과 달리 한 그루만 방제작업에서 누락되어도 피해가 급속히 번지는 암세포와 같다.”면서 “방제에 ‘올인’하고 있는 만큼 올해와 내년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산림청 헬기에서 글 사진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참전용사 우태조씨, 안과의사 아들 따라 의료봉사 나서

    참전용사 우태조씨, 안과의사 아들 따라 의료봉사 나서

    “40년 만에 월남(베트남) 땅을 다시 밟네요.” 우태조(62)씨는 주말인 1일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다. 개발도상국을 돌며 무료 안과치료를 해 주는 ‘비전 케어 서비스’ 봉사팀의 일원이다. 아들·손자 등 우씨 가족 5명이 함께한다. 40년 전 이맘때 그는 베트남 전쟁터에 있었다.1965년 제주도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던 중 갑자기 차출돼 죽어 돌아올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나섰다. 이듬해 무사 귀환할 때까지 우씨는 서로에게 쏘아대는 포화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낮이면 지루한 전쟁 속에 삶과 죽음에 무덤덤해진 베트남인들과 함께 살았다. 귀국해 그렇게 산 1년을 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 한편의 베트남이 갈수록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헐벗고 굶주려 있던 그들의 얼굴과 표정들, 집에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반복되는 공포….“베트남 전쟁이 그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우리에게는 경제를 살리는 방편이었죠. 그게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뭔가 하고 싶었다. 마침 비전케어 회원으로 매년 해외봉사를 나가는 아들 진호(35·안과의사)씨가 올해에는 베트남으로 간다고 했다.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아들을 따라 나섰다.8박9일(4월1∼9일) 동안 전액 자비로 활동하게 될 봉사팀 14명(의사 2명, 간호사 3명, 비의료진 9명) 중 6명이 우씨 가족이다. 이번에 가는 롱하이 지역은 참전 때에도 여러 번 가봤던 곳이다. 기억 속 그곳은 모든 것이 열악하고 특히 의료혜택은 거의 전무한 곳이다. 직접 병을 고치지는 못하지만 가서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오고 싶다. 기억 속의 40년 전 롱하이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20대 건장한 청년시절 자기 모습의 편린들을 약간이라도 되찾아 보고 싶은, 약간은 낭만적인 기대감도 없지는 않다. 평균 39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60대의 몸으로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설렘과 자신감이 넘친다.“아직은 건강은 걱정 없습니다. 이번 활동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다양한 봉사에 나설 생각입니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새영화] 시리아나 / 31일 개봉

    조지 클루니가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따낸 화제작 ‘시리아나’(Syriana·31일 개봉)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적 상상력을 기대하긴 어려운 작품이다. 스릴러의 장르를 빌렸으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긴박감은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석유전쟁터 중동 깊숙이로 카메라를 디밀어, 그러니까 애시당초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무채색 보고서를 쓰기로 작정한 것이다. 영화는 에너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동에 4명의 남자를 던져놓고 그들의 각기 다른 관심사를 엮어 중동문제 전반을 환기시킨다. 석유, 테러, 돈과 권력 등 중동을 둘러싸고 이해국가들 사이에 물고 물리는 음모를 사실주의 기법으로 그리는 것. 은퇴를 앞둔 CIA요원 밥 반즈(조지 클루니)는 무기밀매상 암살임무를 수행하던 중 사고를 겪고 끝내 조직에 배신 당한다. 에너지 분석가 역의 맷 데이먼도 비중이 적잖다. 중동의 개혁파 왕자 나시르의 자문을 맡으면서 자신도 몰래 음모의 늪으로 빠져든다. 여기에 미국 대형 석유회사의 합병을 담당한 변호사(제프리 라이트), 중동의 석유회사에서 해고당한 젊은 파키스탄 청년 등이 가세해 얼기설기 유기적 고리를 걸어간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즐거움을 주는지 팔짱을 끼고 본다면 끝까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극적 재미요소 없이 잠입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대하는 듯 관객을 진공상태에 가둬놓기 때문이다. 결국 관객에게 이 작품의 의미는 선택의 시점에서부터 갈라지게 되는 셈이다. 중동문제와 강대국간의 역학관계를 가감없이 진지한 시선으로 고민해볼 의향이 관객 스스로에게 있는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할 영화이다.‘시리아나’는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자국이익에 따라 중동지역을 분할해 지칭하는 용어. 스티븐 개건 감독.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공짜폰’ 기대는 금물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이 얼어 붙었다. 보조금 지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소비자들의 대기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1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테크노마트 6층.230여곳의 휴대전화 도·소매상이 모인 전국 최대의 휴대전화 전쟁터다.평소 같으면 휴대전화 구입 고객들로 붐비던 이 곳도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박종천(39) LG텔레콤 테크노마트 지점장은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너무 크다.”며 “전 주에 비해 판매 실적이 3분의1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가격에 민감하고 정보가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면서 “가격만 묻고 돌아가는 등 대기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보조금이 지급되는 27일부터는 휴대전화를 바꾸려는 고객들이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고객들의 기대만큼 싼 값으로 휴대전화를 구입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7일 약관신고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보조금이 법으로 금지되던 종전의 ‘공짜폰’을 염두에 두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이동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보조금이 약관에 반영된다는 것은 모든 이용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보조금을 지급받게 된다는 의미”라며 “지급 규모는 소비자들의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상황에서 예상되는 보조금의 지급 규모는 10만원 정도. 기업의 재무상황이 고려된 금액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같은 지급 규모는 공짜폰을 생각하던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하지만 이통사 쪽에서는 보조금 지급대상이 전체 이통 가입자의 63%인 24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보조금이 10만원만 되더라도 2조 4000억원가량의 마케팅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대가 컸던 고객들은 그만큼 실망도 클 것으로 보인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낮에도 전운… 밤되면 폭력사태로

    |파리 함혜리특파원| 18일(현지시간) 저녁 파리의 소르본 대학 앞. 평소 젊은이들의 활기로 넘쳐나는 이곳의 분위기는 마치 결전을 앞둔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상점의 유리는 곳곳에 금이 가 있고 길옆 바닥에는 방화된 차량의 잔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프랑스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소르본 대학 앞 광장에는 높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소르본 대학은 최근 정부의 실업해소 정책인 최초고용계약(CPE)에 반발하는 시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학생들의 강의실 점거 농성, 경찰의 강제해산 등으로 폐쇄된 상태다.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벌이는 가운데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날 낮 파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의 평화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낮에는 사고 없이 시위가 진행되지만 밤이 되면 시위가 폭력성을 띠기 때문이다. 경찰은 학생들이 모여 있으면 곧바로 다가가 과격한 행동을 하는 기미가 보이는지 살폈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신분증과 짐을 검사하며 현장을 떠나도록 했다. 파리에서는 이날 수십만명의 학생, 노동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동참해 정부의 CPE 철회를 요구했다. 프랑스에서는 시위가 일상화돼 있지만 주로 평화적인 가두행진의 형식을 띤다. 이날 낮 시위도 대규모의 국민 축제 같은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위가 끝날 무렵 급격하게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날도 가두행진 종착지인 나시옹광장에서 오후 6시쯤부터 경찰과 일부 시위대의 본격 대치가 시작됐다. 빈병과 돌, 최루탄이 오가며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과격한 젊은이들은 근처 가게에 돌을 던지며 유리창을 박살내고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다. 소르본대 재학 중이라는 벤자민(철학전공)은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과격한 극우파 젊은이들, 사회에 불만이 있는 젊은이들이 가담하면서 경찰과 충돌해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낮시간에 평화시위에 동참했었다는 프랑크는 “모든 프랑스 젊은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CPE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시위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가는 것도 반대한다.”며 “빨리 정부가 해결책을 찾아내 학교가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눈길은 어느새 바리케이트에 가려진 소르본 대학을 향해 있었다. 이날 밤 소르본대 앞에서는 학생 500여명이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하다 경찰의 물대포에 밀려난 뒤 해산했다.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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