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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타냐후의 굴욕… 선거유세 중 급히 피신소동

    가자지구서 발사된 로켓에 공습경보 이스라엘은 전투기 동원 ‘보복 공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승리해 연임하면 요르단강 서안 유대인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10일(현지시간) 로켓 공습경보에 피신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보복성 타격을 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텔아비브 근처 라마트칸에서 TV로 방송된 연설에서 “나는 새 정부가 구성되고 나서 요르단 계곡과 사해 북부부터 이스라엘 주권을 적용할 것”이라며 요르단강 서안의 모든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4월과 지난 1일에도 유대인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말했지만 병합 시기를 특정화한 것은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 덕분에 합병할 수 있다고 자랑했지만 미 백악관은 이날 성명에서 “현재 미국의 정책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의 합병 계획을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은 일제히 규탄했다. 사에브 에라카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은 “점령지의 일방적 합병은 전쟁범죄”라고 비판했고, 하난 아슈라위 PLO 집행위원은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각각 독립국을 세우는) ‘2국가 해법’을 파괴하고 평화의 모든 기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랍연맹은 “평화 프로세스 종료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형제, 자매의 권리와 이익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합병 연설을 한 네타냐후 총리가 저녁 남부도시 아슈도드에서 총선 유세를 하던 도중 공습경보가 울려 피신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청중에게 진정하라고 촉구한 뒤 경호요원들의 인도에 따라 피신했다가 공습 사이렌이 그친 뒤 연설을 재개했다. 이어 가자 북동쪽에 있는 항구도시 아슈켈론에서도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이스라엘 공군은 이날 로켓 두 발이 대공 방어망인 아이언 돔에 의해 탐지됐다고 밝혔다. 두 발의 로켓은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의해 2007년 테러단체로 지정된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dpa통신이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전투기들을 동원해 하마스의 무기 생산시설 등을 포함해 15곳을 타격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에하라와 에키타이

    [이해영의 쿠이 보노] 에하라와 에키타이

    도쿄생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ㆍ1896~1969)와 평양생 에키타이 안(한국명 안익태ㆍ1906~1965).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쩌면 근대 이후 한일 관계사의 가장 괴이하고, 희비극적인 한 대목일지 모른다. 꽤 오랫동안 에키타이의 행적을 추적해 온 나는 최근 3건의 원본 문서들과 한 건의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접할 수 있었다. 이 문서는 미 CIA 문서고에서 기밀 해제된 것들이다. 문서 중 하나는 전쟁 중인 1944년 4월 18일자 ‘터키에서의 일본 첩보·선전활동’에 관한 보고서이고, 다른 하나는 1945년 1월 30일자 ‘스칸디나비아에서의 일본 첩보활동’에 대한 보고서다. 전자는 미 전략첩보국(OSS) 이스탄불지부가, 후자는 영국 정보원이 생산한 것이다. 세 번째 문서는 종전 이후인 1949년 11월 18일자 미 육군 유럽사령부 정보국이 미 합참 정보국장에게 보낸 ‘전시 독일의 외교·군사 정보활동’이라는 보고서다. 그리 보면 마지막 보고서가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셈이다. 전시 일본의 재유럽 첩보활동의 본부는 베를린에 있었다. 2차 대전 직후 일본은 처음에는 ‘간첩활동의 수도’라 불리던 포르투갈 리스본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태평양전쟁이 확전되면서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위협하게 되자 마찬가지 중립국인 터키 이스탄불로 이동한다. 하지만 터키마저 연합국으로 기울자 스웨덴의 스톡홀름을 미·영 첩보전의 기지로 활용했다. 일본 첩보활동의 동선을 미국은 매우 촘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나라의 첩보 라인이 이렇게 ‘탈탈 털리는’ 경우는 드물다. 오직 패전이라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에하라의 회고에 따르면 에키타이안은 1941년 말부터 1944년 4월까지 자신의 베를린 사저에 기거했다고 했다. 안익태가 나치 독일의 제국음악원 회원증에 기재한 주소지가 바로 이 사저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에하라 고이치는 누구인가? 나와는 다른 시기에 또 다른 이유로 에하라 고이치를 추적한 학자가 있다. 북텍사스대학의 세계적으로 저명한 음악학 교수 팀 잭슨이다. 잭슨 교수는 에하라가 하얼빈 소재 731부대의 20세기 최악의 전쟁범죄와 연루돼 있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1938년 에하라가 독일로 건너간 뒤 731부대의 생체실험 정보를 독일과 공유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아우슈비츠 등에서의 생체실험과 731부대의 그것은 에하라를 고리로 해서 서로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잭슨 교수와 서로 자료를 공유해 온 내 쪽에서도 확인해 본 결과 에하라는 1935~1937년 하얼빈의 총무처장으로 있다가 1937년 7월 1일자로 하얼빈 부시장으로 승진한 뒤 1년 뒤 베를린 주재 만주국공사관 참사관으로 파견됐다. 731부대가 일왕 히로히토의 칙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하얼빈으로 확장 이전된 때가 1936년이다. 만주국의 직제는 이른바 일만정위(日滿定位) 원칙 곧 일계(日係)와 만계의 직위가 정해져 있었다. 일본의 괴뢰국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성장, 시장이나 공사 등은 만계에 할당하고 그 아래에 일계를 배치했는데 실세는 당연히 일계였다.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총무청(처) 중심주의를 기본으로 해서 인사ㆍ재정, 특히 모든 기밀업무를 총무(청)처장이 관장했고, 그 배후에는 관동군이 있었다. 그렇게 보면 에하라가 하얼빈 시절 직간접적으로 731부대와 연관됐을 가능성은 아주 농후하다. 위에서 말한 1949년 보고서에 따르면 에하라는 “재독 일본 첩보망의 총책”이었다. 이 진술은 페터 바이라우흐 나치 독일의 SS 해외첩보부(SD) 소련·일본국장에게서 나온 것이다. 독일과 소련은 군사동맹이었지만, 1943년 8월 이후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상호 첩보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에하라는 1945년 1월의 영국 첩보부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당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핀란드의 만주국공사관 참사관으로 등록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1949년 보고서만큼 정확한 정보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국 첩보원은 그가 일본과 러시아 간 협상을 담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OSS 이스탄불지부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베를린에서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약 300명의 정보망을 운용하고 있었다. 에하라 고이치는 외교관이라는 합법적 신분으로 위장한 ‘화이트’였다. 그의 집에 주소지를 둔 에키타이 안은 추축국과 나치 점령국을 돌면서 나치와 일제의 전쟁 수행을 음악으로 응원했다. 에키타이 안이 안익태다.
  • 日과 너무 다른 獨… 폴란드에 거듭 과거사 사과

    日과 너무 다른 獨… 폴란드에 거듭 과거사 사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폴란드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독일이 거듭 용서를 빌었다. 과거사 사과를 거부하는 일본과는 다른 행보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1일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열린 2차 대전 80주년 행사에서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비엘룬 침공의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2차 대전 때 가장 먼저 독일의 침공을 받아 가장 많은 피해를 당했다. 독일 공군은 1939년 9월 1일 군사적 요충지도 아니고 방비도 돼 있지 않던 비엘룬을 공습하며 2차 대전을 일으켰다. 지붕에 붉은 십자가 표시가 선명한 병원을 폭격하는 것으로 시작된 공습으로 1200명이 숨졌다. 5년 넘게 이어진 2차 대전에서 유대계 300만명을 포함한 폴란드인 600만명이 숨졌고 곳곳이 폐허가 됐다. 독일은 그동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폴란드와 프랑스, 영국 등을 비롯한 전쟁 피해국들에 많은 배상과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도 계속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지난달 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폴란드인 사망자를 기리고 용서를 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지난 7월 아돌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우리가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이런 모습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솔한 사과는 말할 것도 없고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주목된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정-치어쓰] ‘백색국가 제외’ 끝내 강행한 아베는 누구인가

    [정-치어쓰] ‘백색국가 제외’ 끝내 강행한 아베는 누구인가

    일본이 지난 28일 예정대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강행했습니다. 이날 밤 12시를 기해 일본 기업들의 대(對) 한국 수출 절차가 대폭 강화된 겁니다. 지난 24일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한 바 있는데요.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리한 경제 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경제, 안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일본 내에서도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은 게 원인”이라는 자성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종전(패전) 74주년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반성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죠. 도대체 아베 총리는 어떤 인물이길래? 이런 ‘일방독주’의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아베 총리의 모든 것, 7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습니다.<아베와 세 친구(?)> 현재 아베 총리는 과거 한국 침략했던 일에 대한 사과 없이 개헌을 통해 전쟁국가로 거듭나려 합니다. 여기에 영향을 준 인물이 세 사람 있는데요. 첫 번째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A급 전쟁범죄 용의자로 구속 수사를 받았고, 군국주의의 화신이라 불리는 인물이죠. 총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아베 총리의 어머니이자 기시 전 총리의 딸인 기시 요코는 “아베 정책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두 번째는 아베 총리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입니다.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征韓論·조선정복론)을 주장하고 조선 침략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길러낸 인물입니다. 대표적인 일본 우익 사상가죠.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인 야마구치 현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카스기 신사쿠’입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데요. 아베 신조 총리와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 두 사람 모두 이 사람의 ‘신(晋)’이라는 한자를 함께 씁니다. 세 친구(?)를 보면 아베 총리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겠죠.<비선 실세? ‘일본 회의’> 비선 실세는 권력을 가진 자의 뒤에서 은밀히 실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아베 총리에게도 이러한 비선 실세가 있는데요. 바로 ‘일본 회의’라는 조직으로 우익세력의 정점에 있다고 지목되는 곳입니다. 사실상 공개된 조직이니 비선실세라기 보다 아베 총리의 지지세력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여하튼 이들은 “헌법개정을 통해 패망 이전처럼 자위대를 군대 화 해서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아야 한다”라고 일관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 회의 소속 국회의원 모임인 ‘일본 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입니다. 여야 의원들이 국회 안에 만든 모임인데요. 여기 속해 있는 각료가 전체의 80%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회의가 일본 정계를 주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아베 총리는 특별 고문이고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으면 주변 친구들을 보라고 하는데요. 아베 총리의 주변 인물과 조직을 보면 아베라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느낌이 오실 겁니다. <‘매파의 젊은 기수’ 아베> 아베 총리는 1993년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 야마구치현을 물려받습니다. 이후 한국의 국무총리실 역할을 하는 내각 관방부의 ‘넘버 2’에 오르는 등 이른 나이에 중요한 자리에 오릅니다. 집안의 후광을 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정치인 개인으로서 ‘아베 신조’의 능력을 널리 알리는 데는 실패하죠. 그러다가 2002년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함께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로 방북하면서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북한이 납치 문제에 사과와 인정을 하지 않자 아베 총리가 “안이한 타협은 없다. 차라리 도쿄로 철수하자”라며 강경하게 대응한 거죠. 국내로 돌아온 뒤 아베 총리의 강경한 발언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아베 총리는 ‘매파의 젊은 기수’로 떠오릅니다. 2004년에는 납치 피해자 5명이 일본으로 일시 귀국하는데 아베 총리가 “(피해자들을)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내면 안된다”라고 역시나 강하게 주장합니다. 자연스레 ‘납치 피해자 문제=아베’ 이런 공식이 생겼죠. 이 사건으로 북한과 일본은 외교적으로 갈라섰지만 ‘아베 신조’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최연소 총리, 최장수 총리(올해 11월 이후)라는 타이틀도 달 수 있었던 거죠.<왜 개헌에 집착할까> 앞서 말했지만 아베 총리와 세 친구들이 꿈꿨던 세상은 군사적으로 강한 일본입니다. 아베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한 뒤 “나의 맡겨진 임무로 남은 임기 동안 당연히 헌법 개정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도 “일본이 헌법 9조를 버릴 때가 됐다”라고 말했고요. 이들은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요. 현재 일본 헌법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히 패망한 직후다 보니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내용(헌법 9조)이 들어갔죠. 일본이 직접적으로 군사행동을 못 하게 한 겁니다. 실제로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신들만을 지키기 위한 부대인 자위대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정리해보면 일본 헌법은 아베가 꿈꾸는 ‘군사대국’ 일본으로 가는 데 걸림돌인 겁니다. 그래서 헌법, 특히 헌법 9조의 내용을 바꿔서 전쟁 도발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아베 총리 인생의 과업이지만 국회와 국민들의 찬성이 있어야 해서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사학 스캔들’의 중심, 아베 아키에> 아베 아키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입니다. 현재 일본은 ‘혼인한 부부는 동성(同姓)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민법 750조에 따라 부부는 서로 다른 성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름은 남편의 성인 ‘아베’를 따라 쓴 거죠. 여하튼 아키에의 아버지는 대형 제과회사인 모리나가제과의 사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재계 사람인 거죠. 이러한 이유로 1987년 두 사람의 결혼 당시 정재계의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많았습니다. 아키에는 매우 사교적이고 술 마시기를 좋아해 아베 총리와는 좀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키에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총리가 됐을 때 술집을 연 겁니다. 최근에는 사학 스캔들의 중심에 서면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아베의 한국 인맥은> 아베 총리 한국 인맥의 핵심은 롯데가(家)입니다. 유명한 일화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시게미쓰 사토시, 한국 이름은 신유열씨의 결혼식 피로연장에 아베 총리가 등장한 건데요. 그냥 얼굴만 내민 게 아니라 실제 축사를 하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롯데가는 신격호 명예회장이 재일교포로서 대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 일본 유력 정치인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신 회장이 결혼할 때도 주례를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맡고 그 외에 2명의 전현직 총리가 참석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아베 총리는 한국 인맥이 넓은 편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일간에 물밑 인맥이 중요하던 시절에는 정계에서 아베 총리가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불매운동의 중심’ 유니클로> 요즘 불매운동의 직격타를 맞은 유니클로의 본사는 야마구치현에 있습니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야마구치현 출신이죠.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고향과 같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정재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왔죠. 여하튼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일본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매년 부자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기업의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처음부터 회사가 엄청났던 건 아니고 시작은 야마구치 현에서 조그맣게 오고리 상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습니다. 1984년까지는 아버지가 사장을 맡아서 하고 이후에 야나이 다다시가 사장으로 취임해서 운영을 한 겁니다. 같은 해 6월 일본 서부 히로시마 시에 유니크한 의류라는 뜻의 유니클로 1호점을 열었고요. 지금은 전 세계에 매장만 2000여 개 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美 수도 워싱턴DC에 ‘평화의 소녀상’ 꼭 세우겠다”

    “美 수도 워싱턴DC에 ‘평화의 소녀상’ 꼭 세우겠다”

    “日 전쟁범죄 인정… 피해자에 사과하라” 위안부 실상 알리기 자전거 횡단팀 참가21일(현지시간) 수요일 미국 워싱턴DC 일본대사관 앞. ‘일본은 전쟁범죄를 인정하라”, “할머니께 명예를”, “일본은 부끄러운 줄 알라” 등 일본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구호가 영어와 한국어로 울려 퍼졌다. 현지 시민단체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정대위)와 워싱턴 희망나비가 한국의 1401회 수요집회의 연대 차원으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에 나선 것이다. ‘위안부 여성들은 정의를 원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한 참가자는 “일본이 한국에 경제 침공에 나서면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위안부와 강제노역 등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 어린 사죄는 과거사 해결뿐 아니라 새로운 한일 협력시대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실 워싱턴 정대위 회장은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역사에서 가르쳐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미국 내에서 5번째로 수도인 워싱턴DC에 ‘평화의 소녀상’을 꼭 세우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집회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미 횡단에 나선 ‘5기 트리플 A 프로젝트(3AP)’팀 이하얀(27)씨와 나도훈(26), 기효신(24)씨 등도 함께했다. 트리플 A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와 피해를 인정하라는 의미의 Admit(인정하다),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는 Apologize(사과하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동행하라는 Accompany(동행하다)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트리플 A팀은 이날 성명에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라면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와 군의 개입 인정,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이고 진정성 있는 사죄, 과거의 잘못 인정 등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낭독한 뒤 나씨가 대표로 일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지난 6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오클라호마,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디트로이트, 피츠버그를 거쳐 이날 워싱턴에 도착했으며, 오는 29일 뉴욕에 도착해 활동하는 것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이영훈 또 망언 “위안부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

    이영훈 또 망언 “위안부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

    친일 식민사관 논란 ‘반일 종족주의’ 저자“광복 이후 한국군·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MBC 기자 폭행 사과하면서도 “정당 방위”친일 식민사관 논란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해방 이후에도 한국군·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했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여성성 착취가 일제강점기만의 문제는 아니며 오히려 광복 이후 위안부의 실상이 더 참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승만학당 교장으로 있는 이 전 교수는 16일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올린 영상 ‘반일 종족주의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자기 소신을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이야기’를 펴낸 2007년에는 위안부 연구를 주도한 요시미 요시아키 학설을 채택해 위안부제는 일본군 전쟁범죄이며, 위안부는 성노예였다고 정의했다”면서도 이후 12년간 연구하면서 남성이 여성의 성을 착취한 것이 일제강점기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이 전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이 제도는 해방 이후 민간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했다”며 “위생 상태, 건강 상태, 소득수준, 포주와 관계는 (일제강점기 이후가) 일본군 위안부보다 훨씬 참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군인과 노무자 경력이 있는 인물 50여명 인터뷰 ▲동남아시아 일본군 위안소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한 사람의 일기 ▲일본에서 나온 공창·위안소 제도 연구 성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학생들이 1964∼1967년에 발표한 논문 ▲한국 정부가 작성한 보건사회통계연보 등을 통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지난 4일 MBC 기자를 폭행한 것과 관련해서는 “원숙한 인격이었다면 피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이었다”며 “개인적으로 기자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고 마이크를 들이대거나 촬영하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라며 인격권과 초상권을 무시한 처사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항변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여야 4당, 일제히 ‘일본 규탄’…한국당 “위기의 대한민국”

    여야 4당, 일제히 ‘일본 규탄’…한국당 “위기의 대한민국”

    제74주년 광복절인 15일 여야 4당은 일제히 논평을 내고 일본 규탄과 경제보복 극복 의지를 강조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경제 파탄과 안보 불안으로 나라가 ‘위기의 대한민국’으로 전락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와 함께 ‘제2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개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우리는 침략과 굴종의 역사를 호혜와 평화의 역사로 바꿔내는 세기적 전환을 지향하고 있다”며 “그러나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배상은커녕 과거사를 빌미로 경제 침략을 노골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이 시작된 일본 경제침략에 맞서야 한다”며 “‘독립운동은 못 했으나 불매운동은 한다’는 시민적 저항에 힘입어 결연한 의지로 일본 아베 정부의 반역사적, 반경제적 조치를 분쇄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어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뉴라이트 인사들의 ‘1948년 건국절’ 주장을 옹호했다”며 “이는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피 흘린 선열들의 무덤에 침을 뱉는 행위이며, 친일파를 건국의 주역으로까지 신분 탈색하려는 쿠데타와 다름없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제1야당 대표가 몰지각한 역사 인식으로 헛된 이념 논쟁을 불러오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며 “과거 친일을 미화하고 아베 정권의 야욕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면 헌법정신에 입각해 국민을 통합의 길로 이끄는 공당의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에 충실해 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선조들이 74년 전 각고의 노력과 희생으로 광복을 이루었듯 우리는 일본의 경제 도발을 물리치고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물리치기 위해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기업은 산업 경쟁력 강화를, 국민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통해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일본의 경제 도발을 극복하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역사를 잊고 경제 도발을 감행한 일본 아베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오 대변인은 “일본이 강제동원 등 식민 지배의 역사를 부정하고 경제 도발을 감행한 것은 제2의 침략에 다름 아니다”라며“오늘은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단 스무명만 남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진정한 광복을 찾아가는 날이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전쟁의 과오를 되새기고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보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일본은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고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최도자 수석대변인은 “위안부 문제와 전범 기업의 강제징용은 개인의 삶과 인권을 파괴한 흉악한 전쟁범죄였다”며 “일본 정부는 경제보복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추가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와대와 여당도 지금처럼 반일감정을 자극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최 대변인은 “한국과 일본은 아픈 과거에도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국가로서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할 분야가 매우 많다”며 “양국이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의 발전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행동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숭고한 뜻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국가유공자분들의 헌신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바른미래당이 앞장서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기적의 대한민국이 정부 실책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고 경제 파탄과 안보 불안이라는 위기의 대한민국으로 전락했다”며 정부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김명연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고, 북한의 계속되는 무력 도발과 도를 넘은 막말로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은 35년간의 암흑과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자유를 찾았으며 해방을 맞아 선조들의 눈물과 피, 땀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일어섰고 성장했다”며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던 그 날처럼 오늘을 변곡점으로 대한민국은 새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자유, 민주, 공정이라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되살리고, 대한민국 안보 수호와 성장을 위해 국정 방향부터 새롭게 수정돼야 한다”며 “특히 애국선열들께서 피로 지킨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제1야당으로서,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역사를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며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미래 세대와 함께 지키고 이어나가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미 역사학자 “일본이 과거 잘못 속죄 안 한 것이 세계경제 위협”

    미 역사학자 “일본이 과거 잘못 속죄 안 한 것이 세계경제 위협”

    미국의 한 교수가 일본이 일제강점기 때 저지른 반인륜범죄, 전쟁범죄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 계속 논란을 부추기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조지워싱턴대 역사·국제문제 교수인 그레그 브래진스키가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일본이 과거의 죄를 속죄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11일(현지시간) 보도됐다. 이 글에서 브래진스키 교수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잔혹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일본이 과거 잔혹행위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동아시아를 훨씬 넘어서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1945년 미국이 일본과 한국을 점령했을 때 “미국은 공산주의 저지에 초점을 맞췄고, 한일의 역사적 분쟁을 신속히 해결하도록 압박했다”면서 일본의 사죄는 미국에게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과정을 거쳐 한국이 미국의 지원 속에 1965년 일본과 청구권 협정을 체결했지만 이 협정이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을 권리를 무효화했고, 한국이 군사정권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되면서 이 협정은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됐다는 것이 브래진스키 교수의 설명이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1990년대 이래 일본 지도자들이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는 성명을 수십 차례 발표했지만, 이후 야스쿠니 신사 방문과 같은 행동으로 이런 성명들을 훼손했다면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불성실한 노력으로 논란을 계속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일과 달리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만행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공공 기념물이나 박물관을 짓지 않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전임자들보다 역사 문제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해 그의 정부에서 더는 사과가 없을 것을 분명히 했다고 비판했다. 브래진스키 교수는 “일본 사회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자국 군대가 한 일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면서 “이런 모든 경향은 국수주의적 대중의 기억을 강화하고 현재의 무역 분쟁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또 “한일 간 분쟁이 해결되더라도 일본이 이웃 국가들과 화해하기 위해 더 일관되고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시아는 항상 다른 경제적 또는 군사적 위기에 불안한 상태로 근접해 있을 것”이라면서 “일본이 힘든 역사를 청산하지 않는 것은 향후 번영을 제한할 것이며 세계도 그 결과를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전쟁범죄 사죄하라” 日 대사관 앞 수요집회 학생들의 외침

    “전쟁범죄 사죄하라” 日 대사관 앞 수요집회 학생들의 외침

    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중·고교생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전쟁범죄 사죄하라” 日 대사관 앞 수요집회 학생들의 외침

    “전쟁범죄 사죄하라” 日 대사관 앞 수요집회 학생들의 외침

    7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중·고교생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사설] 평화소녀상 해외 철거에 전시마저 중단시킨 일본

    일본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은 아이치현 지사는 정부와 우익단체의 항의와 테러 예고 등으로 그제 ‘표현의 부자유, 그후’ 전시에 참여한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을 철거하고 전시를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정치·사회적 이유로 일본 각지의 미술관에서 철거됐던 작품 20여점을 전시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려던 이번 기획전에서 또다시 정치적 이유로 소녀상 전시가 중단됐다는 점은 일본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또 2017년부터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나치수용소 여성 피해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소녀상이 지난해 1월 일본의 압박으로 철거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한국인들은 분노하고 있다. 여기에 독일 베를린 여성예술가 전시관에서 지난 2일부터 전시 중인 소녀상도 주독 일본총영사관이 집요하게 철거 요구를 한다니 우리 외교부도 강력히 대응하길 바란다. 일본의 소녀상 전시 중단 및 철거행위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억압이자 검열이다. 백번 양보해 일본 안에서 일본인의 작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은 내치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범죄의 반인류성, 반인권성을 상기하려 해외에서 열린 다른 나라 작가의 작품 전시에 일본의 입장을 들이대며 강요·압박해 전시를 중단하려는 행위는 부당하고 파렴치한 만행이다. 일본은 정치·외교의 문제를 경제보복의 이유로 삼으면서 국제무역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자유를 보장해야 할 문화예술 분야까지 보복 대상으로 삼아 억압하고 있다. 이는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파시즘 국가에서나 나타났던 퇴행적인 행태다. 오죽하면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등 자국 언론을 비롯해 일본펜클럽 등 문화예술인조차 일본 정부의 문화예술 탄압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던지겠는가.
  • 조국 “일본 강제징용 배상 책임 인정한 대법원 판결 부정하면 친일파”

    조국 “일본 강제징용 배상 책임 인정한 대법원 판결 부정하면 친일파”

    최근 한일 갈등을 다룬 조선일보·중앙일보의 일본어판 기사 제목이 “매국적”이라면서 페이스북 글로 강하게 비판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번엔 일본에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 등을 부정하는 사람은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조국 민정수석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법학에서 ‘배상’과 ‘보상’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라면서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해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다음 세 가지 사례를 들어 ‘1965년 한일 양국의 청구권 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은 역대 한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자 최근 대법원에서 인정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조 수석은 “1965년 한일 협정(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는 받았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수석은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되어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참여정부 당시 민관공동위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조 수석은 “2012년 대법원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해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면서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지난해 확정된다”고 밝혔다.앞서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면서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의 확정 판결 등에 근거해 1941~43년 신일본제철(당시 구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서울고법은 신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신일본제철이 불복해 재상고하면서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5년이 넘도록 시간을 끌었고, 지난해가 돼서야 신일본제철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원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부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공모해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고, 청와대가 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조 수석은 앞의 세 가지 사례를 제시한 뒤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65년 일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 아니냐?’는 표피적 질문을 하기 전에, 이상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의 한국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느냐가 모든 사안의 뿌리”라고 덧붙였다. 앞서 조 수석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일 갈등을 다룬 조선일보·중앙일보의 일본어판 기사 제목에 대해 “혐한 일본인의 조회를 유인하고 일본 내 혐한 감정의 고조를 부추기는 매국적 제목을 뽑은 사람은 누구인가”라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7일 브리핑을 통해 “조선일보는 (지난 4일자에)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마이너스 40%, 요즘 한국기업과 접촉도 꺼려’라는 기사를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로 제목을 바꿔 일본어판 기사를 제공했다”면서 (지난 5월 10일) 중앙일보가 일본어로 게재한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거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법서라] 고작 6일 누린 ‘납북어부 재심’ 무죄 기쁨…‘과거사 원칙’ 저버린 검찰

    [법서라] 고작 6일 누린 ‘납북어부 재심’ 무죄 기쁨…‘과거사 원칙’ 저버린 검찰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오는 25일 취임하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겠다는 한 어부가 있습니다. 이 어부는 박정희 정권 당시 간첩 누명을 뒤집어 쓴 채 50년을 살아오다 최근 재심심판을 통해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한 검찰이 항소를 제기하면서 지난한 재판을 다시 이어가야 합니다. 어부는 “검찰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약속은 지켜달라”면서 새로이 검찰조직을 이끌어갈 신임 검찰총장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실질적으로 불법구금·가혹행위가 인정될 수 있는 경우 법원의 재심개시결정을 존중하여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고, 재심 무죄 선고시 일률적인 상소를 지양하고, 유죄 인정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소를 제기하지 않는다.”- 2019년 6월 27일 대검찰청 ‘과거사 사건 관련 후속조치’ 中 위 문장은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선 새로운 증거가 있지 않은 한 상소하지 않겠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달 27일 전국 검찰청을 지휘하는 대검은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과거사 재심사건 업무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과거 검찰이 일부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문무일 현 검찰총장이 직접 사과한 데 따른 변화입니다. 검사는 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과거사 사건은 고문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 진술이 많기 때문에 검찰도 적극적으로 ‘무죄 가능성’도 찾아내겠다는 취지죠. 군사 독재정권 시절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던 이들에게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과거사를 반성하겠다고 외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 벌써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간첩 누명은 쓴 6명 가운데 이미 5명이 세상을 떠난 ‘제5공진호 납북 어부’ 재심 이야기입니다.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검찰은 즉각 항소했습니다. 유일한 생존자는 “말뿐인 원칙과 약속이었느냐”고 절망했습니다. ■납북된 18살 막내 선원…불법감금·고문으로 ‘간첩’ 누명 1968년 5월, ‘제5공진호’ 막내 선원 남정길씨는 조업 도중 동료 5명과 함께 북한에 납치됐다가 5개월 만에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남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군사 독재정권의 ‘간첩몰이’였습니다. 정보과 형사들은 남씨 일행을 한달 동안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를 가해 ‘납북 피해자’에서 ‘간첩’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당시 남씨의 나이는 고작 18살.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1969년 징역 1~3년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검찰 공소장엔 “피고인들이 1968년 5월 24일 12시경 제5호 공진호에 승선해 경기도 연평도 근해 해상에서 어로작업 중, 선장인 김창록이 북괴 지배 하에 있는 지역인 안골에 들어가야만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으니 안골에 들어가서 어로작업을 할 것을 제의하자, 피고인들은 모두 이에 찬동했다”면서 “반국가 단체인 북괴의 지배 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했다”고 명시됐습니다. (남씨 일행은 군사기밀 누설 관련 혐의로도 기소됐지만, 당시 법원은 ‘북괴 구성원들에게 강요된 행위’라며 이 부분에 국한해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유죄 판결의 핵심 근거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의 자백이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스스로 고기잡이를 위해 북한 영해에 들어간 사실을 인정했고, 법정에서도 유사하게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받아낸 진술은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고, 고문 경찰은 법정까지 나타나 어부들을 지켜보며 심리적으로 압박했습니다. 그 속에서 경찰, 검찰, 법원, 누구도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남씨 일행은 평생을 반공법을 위반한 간첩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50년 만에 무죄 판결 “고문, 가혹행위에 의한 진술은 증거능력 없다” 그렇게 50년을 억울함 속에서 살아온 남씨는 원곡 법률사무소를 만나 이미 세상을 떠난 납북 어부 5명의 유가족과 함께 지난해 7월에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지난 3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고, 4개월 만인 지난 11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는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장기간 불법구금과 광범위하게 이뤄진 가혹행위, 협박, 회유 등으로 인해 피고인들이 경찰 진술뿐만 아니라 검찰 및 법정에서의 진술까지도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추단되거나, 적어도 그 임의성에 강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임의성이 없는 진술’이란 허위진술을 강요할 위험성이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라는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1968년 경찰 조사나 법정에서 나왔던 진술 역시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죠.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납북됐다가 1968년 10월 인청항으로 귀환한 뒤 11월 군산경찰서로 이동해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은 사실 ▲군산경찰서 소속 수사관 등이 무허가 여관에서 자백을 강요하면서 구타, 물고문, 잠 안 재우기 등으로 강압적인 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내요의 진술서 등을 작성한 사실 ▲검찰 조사와 공판기일(법정)에서도 고문 경찰관이 배석해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 등을 기록에 의해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50년 만에 이뤄낸 명예회복이었지만, 남씨의 동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가장 모진 고문을 당했던 기관장 박남주씨는 징역을 마치고 2년도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남씨 본인도 고문 후유증으로 뇌출혈이 생겨 말이 어눌하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무죄 결과를 받아든 남씨는 “50년의 세월 동안 누구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었는데 이제 우리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됐다”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이제 겨우 1심이 끝났지만, 대검이 불과 한 달 전에 ‘과거사 원칙’을 발표했기 때문에 남씨 측은 사실상 재판이 끝났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행보를 남씨 측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한 것입니다.■검찰의 항소 “재판부가 법리 오인…법정에서 진술은 유효” 1968년 남씨 일행을 재판에 넘겨 유죄를 이끌어내고, 51년이 흘러선 이번 재심 공소유지를 맡은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지난 17일 ‘납북어부 사건’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했습니다. 6일 만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임의성’, 즉 강요에 의한 진술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해 재판부가 법리적으로 오인을 했다는 취지입니다. 군산지청의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대검에서 규정한 ‘과거사 원칙’의 방향과 취지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해도 법정에서 고문받은 건 아니잖아요? 일부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일부는 인정했습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진술했다고 판단되기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재판부가 그 부분에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 입장에선 유사한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도 유죄로 인정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대로 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경찰 단계에선 고문을 받았더라도, 재판 단계에서까지 고문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검찰은 재심심판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신문이 확보한 검찰 변론재개 의견서에 따르면 검찰은 ‘피고인 등이 그 공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에서 받은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심리적 억압상태 때문에 자유롭게 진술하기 어렵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거나 그런 의심을 할 만한 사정을 찾아보긴 어렵다’며 혐의를 자백한 당시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그 근거로 1969년 당시 공판 조서를 제시했습니다. 조서를 살펴보면 남씨 일행은 고기잡이를 위해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사실이 있느냐는 판사의 물음에 대부분 ‘맞다’는 취지로 대답한 내용이 나옵니다.재판장 : 연평도에서 고기잡이가 여의치 않아 선장인 김창록의 제의로 군사분계선 넘어 황해도 구월골에 고기잡이를 간 사실이 있는가요남정길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재판장 :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 북괴에 납치된다는 사실을 몰랐던가요남정길 : 그런 위험성은 인식하였읍니다만 고기를 못 잡으면 보수를 못 받게 되니까 설마 붙잡히지는 않을 터이지 하는 요행수를 믿고 고기 잡을 목적으로 선장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 넘어가서 조업을 한 것입니다검찰은 남씨 일행이 법정에서 경찰의 고문을 폭로하기도 했다며, 이는 강요받아 진술하는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재판장 : 군산에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말도 했다는데 어떤가요피고인1 : 그런 말은 전혀 한 일이 없는데 군산경찰서 정보과에서 너무 심한 고문을 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거짓 진술했습니다재판장 : 군산비행장의 비행기 대수가 500대쯤 금년에 들어왔다는 말을 했든가요피고인2 : 이북에서는 그런 말을 묻지 아니하여 말한 사실이 없는데, 군산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배 안에서 그런 말이 있었는데 왜 말한 일이 없다고 하느냐면서 고문을 하기에 할 수 없이 그런 말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변호인의 반격 “고문 29일 만에 열린 재판, 자유로운 환경이었다고요?” 남씨의 변호를 맡은 원곡 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의 입장이 충격적”이라고 탄식부터 내뱉었습니다. 고문을 당하고서 겨우 29일이 지나 공판이 열렸는데, 그들이 고문당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고문으로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는데,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는데, 법정에서 제대로 된 진술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법정에서 고문을 당하진 않았겠죠. 또 누군가는 혐의를 인정하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 고문 사실을 밝혔겠죠. 그렇다고 이미 짓밟힌 상태에서 한 법정 진술을 꼬투리 잡으며 ‘너네 그때 자백했으니까 지금도 유죄야’라고 말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고문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에 억압된 환경이 아니다’라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남씨 측은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검사가 일부 부인 취지, 고문 폭로라고 언급한 진술들은 현재 재심심판절차에서의 유무죄 판단대상으로 삼는 공소사실과 관한 군사기밀누설과 관련된 진술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고문 관련 진술을 하면서도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서류의 진정성립과 진술의 임의성은 다투지도 않는 등 강한 의심이 듭니다. 심리적 억압상태 때문에 자유롭게 진술할 수 없다는 사정은 명백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무죄 판결을 통해 어부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검사가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만으론 임의성에 대한 의문점을 없애는 검사의 적극적인 입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상급법원이 자신들의 주장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어부라서 무시하는 건가요” 항소와 상고, 즉 상소제도는 형사소송법 체계의 기본입니다.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사 사건만큼은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이미 수십 년 고통과 억울함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제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 변호사는 “일반 사건이라면 이해한다. 검사도 법률가인데, 당연히 자기 주장이 있고 고집이 있으니 법률 판단을 더 받아보고 싶겠다”면서도 “그런데 과거사 사건에 대해 대검이 매뉴얼까지 만든 것은 ‘무조건 대법원까지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국가도 할 말은 있겠지만, 국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니까 적어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한 ‘우리가 물어뜯진 말자’는 취지 아니었냐”고 덧붙였습니다.남씨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다고 합니다. 무죄 판결을 받아들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까지 말했지만, 검찰 항소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재판에 다시 뛰어들어야 합니다. 항소 소식을 듣고 “유학생 사건은 자체적으로 조사까지 해주면서, 우리 사건은 고작 어부라서 무시하는 거냐”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동료들을 떠내보내고서 외로움도, 허망함도 큰 탓이었을 겁니다. 오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로 취임합니다. 윤 신임 총장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 전쟁범죄 등 반인권적인 범죄에 대하여 공소시효의 예외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5공진호 납북 어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를 비롯한 국가권력의 피해자들은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트럼프, 전범 군인 ‘현충일 특사’ 논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신모독, 살인과 같은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되거나 유죄 받은 몇몇 군인들을 사면시키기 위한 서류 작업을 지시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사면 명단에는 이라크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네이비실 특수작전부장 등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NYT는 두 명의 관료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를 위해 싸운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전몰장병기념일)인 27일을 전후로 사면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속한 서류작업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미 법무부는 지난 17일 이러한 요청을 받았으며 통상 몇 개월이 걸리는 작업을 이달 마지막주 주말까지는 완료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 포함된 에드워드 갤러거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특수작전부장은 민간인 사살과 포로 살해 혐의로 이달 말 재판이 예정돼 있다. 갤러거는 2017년 5월에는 이라크에서 15세로 추정되는 ‘이슬람국가’(IS) 포로의 목과 몸을 흉기로 찔러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같은 해 6월에는 이라크 북부 모술에서 물동이를 나르던 노인을, 7월에는 강둑을 걷던 소녀를 사살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당시 비무장 탈레반 억류자를 살해한 매튜 골스테인 육군 소령 역시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법조 전문가들은 “한 번에 여러 명의 전범 혐의 피고인과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을 사면하는 것은 최근 들어 행해진 바가 없다”면서 “이러한 사면이 군법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군내 질서와 규율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미 법무부와 백악관은 NYT의 보도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허난설헌 묘~신익희 생가·나눔의 집 5㎞…경안천 ‘역사문화체험길’ 만든다

    허난설헌 묘~신익희 생가·나눔의 집 5㎞…경안천 ‘역사문화체험길’ 만든다

    경기 광주시는 16일 송정동 칠사산에서 경안천을 따라 초월읍 지월리 허난설헌(1563~1589) 묘와 서하리 해공 신익희(1894~1956) 생가,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을 잇는 5㎞ 탐방로 역사문화체험길을 이달 착공해 9월 완공한다고 밝혔다. 팔당호와 인접한 경안천 주변은 상수원 보호 등 중첩 규제에 묶여 개발이 정체된 대표적인 지역이면서 천혜의 자연환경이 보전된 곳이다. 경안천 누리길 코스는 생태환경을 보호하면서도 걷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설계된 게 특징이다. 칠사산 등산로와 연결되는 코스는 데크 계단을 설치해 자연스럽게 경안천 소로와 이어지도록 설계해 트래킹의 즐거움과 역사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코스는 허난설헌 묘역에서 시작한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1569~1618)의 누나이자 조선 중기 문인으로 유명한 허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과 혼인 후 돌림병으로 두 아이를 잃은 슬픔 등으로 건강을 잃고 많은 시를 남긴 채 27세에 요절한다. 유작으로 ‘난설헌집’이 있다. 탐방로 중간엔 해공 생가가 있다.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26년간 해외를 돌며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고 광복 후에는 국회의장을 지냈다. 선생은 이승만 정권에 맞서 장면·조병옥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으며 1956년 3대 대통령 후보로까지 출마했으나 선거를 열흘 앞둔 5월 5일 지방 유세를 가던 열차 안에서 돌연사했다. 시는 민주평화에 힘쓴 선생을 기념하며 임시정부 100주년인 올해 ‘해공 신익희상’을 제정한다. 선생이 태어난 매년 7월 수여하고 기념 학술대회와 행사를 마련한다. 누리길 마지막 경유지인 나눔의 집엔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위치해 있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역사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곳에서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아픔을 승화시켜 그린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경안천 누리길 조성엔 국비 등 6억원이 투입된다. 시는 2020년 서하보~무수리∼도마리∼광동리 경안천생태습지공원을 잇는 누리길 확대를 국토교통부 사업공모에 신청했다. 선정되면 전체구간 사업 완료로 광주시의 문화역사 인프라와 경안천 생태환경이 어우러져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신동헌 시장은 “팔당호 지류 경안천에 생태·역사를 테마로 한 탐방로를 만들어 새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수단 독재자 바시르, 법의 심판 받는다

    수단 독재자 바시르, 법의 심판 받는다

    수단을 30년간 철권통치하다 쫓겨난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AFP통신 등은 13일(현지시간) 수단 검찰이 다수의 반정부 시위자를 살해한 혐의로 바시르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바시르 전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군부에 의해 축출돼 수도 하르툼의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바시르 전 대통령은 테러자금 지원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받는다. 검찰은 이달 초 바시르 전 대통령의 자금세탁방지법과 테러자금지원법 위반 여부 수사를 시작했다. 앞서 수단 경찰과 군 당국은 바시르 전 대통령의 자택에서 35만 달러(약 4억원)의 거액이 든 가방을 발견하기도 했다. 바시르 전 대통령은 2009년과 2010년 다르푸르 내전과 관련한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당시 30만명이 사망하고 2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수단 군부는 그러나 바시르 전 대통령의 신병을 ICC에 인도하지 않고 수단에서 재판받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날 권력 이양 문제로 대립해온 수단의 군부와 야권은 한 달여 만에 ‘과도체제 권력 구조’에 합의했다. 수단의 과도 군사위원회와 야권은 현재 군부가 장악한 권력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과도기의 권력 구조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합의 사항을 14일 공식 발표한다. 하지만 수도 하르툼에서 시위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총격으로 사망자가 속출해 이날 합의의 빛이 바랬다. 군부는 총격의 배후로 권력 이양 합의에 불만을 품은 무장세력을, 시위대는 전 정권 측을 각각 지목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동영상] 적을 처형하고 시신 훼손하는 동영상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동영상] 적을 처형하고 시신 훼손하는 동영상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적군 병사를 처형하는 모습이나 시신을 훼손하고 촬영해 선전하기 위해 공표하는 일은 국제법으로 전쟁범죄가 된다. 이 당연한 상식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영국 BBC의 아라비아 지부는 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에 떠돌아다니는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한달째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를 놓고 리비아통합정부군, 트리폴리 민병대와 교전을 벌이고 있는 리비아국민군(LNA)이 자행한 전범 행위를 고발하고 있다. 이 동영상은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군벌 지도자 칼리파 하프타르가 트리폴리 함락까지 눈앞에 둔 것처럼 장담했지만 한달째 교전을 거듭하고 있는 LNA의 한 병사가 적군 병사 셋을 꿇어 앉혀놓고 뒤에서 다가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페이스북에 2년 전부터 돌아다니는데 BBC는 화면을 지우고 여러 발의 총성만 들려준다. 방송은 이 밖에도 LNA가 적 병사나 민간인들의 시신을 훼손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100건 가까이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전범을 다루는 국제형사사법재판소(ICC) 리비아 지부의 수석 검사인 줄리안 니콜스는 “매우매우 심각한 전쟁범죄다. 적군 병사의 몸을 절단하는 일을 금지한 것은 수백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말했다. 방송은 나아가 이런 끔찍한 일들을 저지른 이의 신원을 일부 확인했는데 셰리프 알마르가니는 하프타르와 함께 찍힌 사진을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았다. 그가 LNA의 정예 병력인 알사이카 여단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진도 보여줬다. 그리고 2017년 LNA의 공격에 희생된 간푸다 지역의 민간인 시신들을 보여주는 동영상도 있다. 알리 함자는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이 처참하게 살해된 사진들을 보여주며 오열한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이런 끔찍한 동영상이 공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에린 솔트먼 대변인은 “이들이 테러리스트인지 민간인인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를 둘러싸고 설명이 엇갈리곤 한다. 우리가 진실을 재단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페이스북은 그 뒤 제보받은 동영상들을 모두 삭제했다. 하지만 끔찍한 사진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유튜브는 방송이 알린 동영상 가운데 단 하나만 삭제했다. BBC는 유튜브 동영상에 올라온 전범들의 신원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유튜브의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튜브는 성명을 통해 “끔찍하고 폭력적인 콘텐트를 금지하는 명백한 정책을 갖고 있으며 이 정책을 위반하는 제보받은 동영상들은 삭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외교부는 이런 전범 혐의를 진지하게 다룰 것이며 최근 리비아에서의 폭력이 민간인들에게 더욱 많은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한편 하프타르가 지난달 4일 트리폴리 진격을 지시한 뒤 같은 달 28일까지 345명이 숨지고 1600여명이 부상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집계했다. 피란민도 4만 2000명으로 파악됐다. 리비아가 다시 내전의 격랑에 휩싸인 것은 국제사회가 하프타르 사령관의 공격을 비판하는 데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클링겐달연구소의 자렐 연구원은 최근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휴전조차 요구하지 못하며 마비돼 있기 때문에 하프타르가 대담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지적햇다. 미국 정부의 ‘변심’도 하프타르의 도발에 큰 변수가 됐다는 평가가 많다. 안보리에서는 지난달 중순 영국 주도로 리비아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추진됐지만, 러시아와 미국이 지지하지 않아 불발됐다. 당시 러시아는 결의안에 하프타르를 비난하는 문구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고, 미국은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뒤 트럼프 정부는 사실상 하프타르를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9일 백악관 성명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달 15일 하프타르와 전화 통화를 한 뒤 대(對)테러전과 리비아의 석유자원을 확보하는 데 하프타르의 역할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미국은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리비아 통합정부를 지지해왔는데 유전지대를 많이 장악한 하프타르 사령관에 힘을 실어주기로 바꿨다. 프랑스 역시 리비아 동부에 유전 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신중한 입장이다. 또 리비아통합정부의 주축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형제단이란 이유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도 하프타르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파예즈 알사라즈 총리가 이끄는 통합정부는 유엔과 친무슬림형제단 성향 터키, 카타르의 지지를 얻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일본군, ‘호주 여성 간호사 학살’ 성범죄 또 드러나

    일본군, ‘호주 여성 간호사 학살’ 성범죄 또 드러나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호주 여성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잔학한 성범죄 진상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역사 전문가들은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와 같은 그릇된 태도를 버리고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검증과 사죄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BBC는 1942년 2월 호주의 종군 여성 간호사 21명이 일본군 병사들에게 집단총살을 당한 ‘인도네시아 방카섬 학살사건’에서 희생자들이 죽기 전 일본군들에게 잔인한 성폭행을 당했음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군사 사학자 리넷 실버의 조사를 인용해 지난 18일 보도했다. 기존에는 희생자들이 단순히 총살된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성폭행까지 있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싱가포르에 종군해 있던 호주 간호사들은 1941년 12월 일본군이 침공해 들어오자 배를 이용해 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폭격으로 배가 침몰하면서 표류하다 방카섬에 상륙했고, 결국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일본군은 간호사들을 바다로 걸어 들어가게 한 뒤 등쪽에서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이었던 비비안 불윙클은 총상을 입은 뒤 바다 위에 죽은 척 하고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전쟁포로가 돼 귀환했다.일본군들이 저지른 성폭행 범죄는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명예훼손 등을 우려한 호주 군당국에 의해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 실버는 “당시 호주군 간부들은 슬픔에 잠겨 있는 유족들에게 가족이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불명예를 안기고 싶지 않아 했다”며 “여기에는 성폭행 피해는 죽음보다 더 가혹한 운명으로 여겼던 당시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생존자 불윙클은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군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그러나 2000년 사망한 불윙클은 생전에 당시의 참상을 한 방송국 관계자에게 전했다. 그는 “대부분 간호사가 총살되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다. 나는 이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 일본군이 성폭행을 저지를 때의 상황은 당시 방카섬에서 말라리아 치료를 받고 있던 일본군 병사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29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번 보도에 대해 “개별 사안을 정부가 검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도쿄신문에 “일본 정부가 여성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방카섬 사건을 제대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자나 관계자에 사죄 및 보상을 해야 한다”면서 “국제적으로 두번 다시 성폭력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검증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쟁범죄사 전문가인 다나카 도시유키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과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폭력을 포함한 전쟁범죄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영원히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일본군, 호주 간호사 21명 성폭행·학살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호주 여성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잔학한 성범죄 진상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일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BBC는 1942년 2월 호주의 종군 여성 간호사 21명이 일본군 병사들에게 집단총살을 당한 ‘인도네시아 방카섬 학살사건’에서 희생자들이 죽기 전 일본군들에게 잔인한 성폭행을 당했음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군사 사학자 리넷 실버의 조사를 인용해 지난 18일 보도했다. 싱가포르 종군 호주 간호사들은 1941년 12월 일본군이 침공하자 배를 이용해 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배가 침몰하면서 표류하다 방카섬에 상륙했고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일본군은 간호사들을 바다로 걸어가게 한 뒤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 중 한 명인 비비안 불윙클은 총상을 입은 뒤 바다 위에 죽은 척하고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전쟁포로가 돼 귀환했다. 일본군의 성폭행 범죄는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명예훼손 등을 우려한 호주 군당국에 의해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 왔다. 생존자 불윙클은 성폭행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군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그러나 2000년 사망한 불윙클은 생전에 당시의 참상을 한 방송국 관계자에게 전했다. 그는 “대부분 간호사가 총살되기 전에 성폭행을 당했다. 나는 이 사실을 밝히지 못해 너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29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별 사안을 정부가 검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야시 히로후미 간토가쿠인대 교수는 “일본 정부가 여성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방카섬 사건을 제대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죄 및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범죄사 전문가 다나카 도시유키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과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성폭력을 포함한 전쟁범죄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국제적인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30년 독재자 몰아낸 수단, 아직 갈 길 먼 ‘민주화 봄’

    30년 독재자 몰아낸 수단, 아직 갈 길 먼 ‘민주화 봄’

    군부 “2년 안에 문민정부에 권력이양” 시위대, 과도군정 시사에 “후퇴 없다” 군부 자녀도 시위 동참… 진압 어려워30년 독재자를 끌어내린 수단 민중의 뜨거운 민주화 열망에 군부마저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수단 군부가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을 축출한 지 이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압델 팟타 알부르한 과도군사위원회 위원장(육군 중장)은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2년 만에 문민정부가 수립될 수 있다”면서 야간 통행금지 해제, 체포된 반정부 시위 관련자 석방을 지시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알부르한 위원장은 지난 12일 군부 지도자가 됐다. 일각에서는 군부가 시위대를 의식해 알부르한을 선택했다고 분석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알부르한은 알바시르 정부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연루되지 않은 베테랑 군인으로 시위대에 친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군부가 문민정부 수립을 공언하면서도 2년의 과도 군정을 고집하고 있는 만큼 갈등의 씨앗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시위대는 군부의 양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즉각적인 문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날에도 시민 수천명이 수도 하르툼의 국방부 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한 단체 수단전문직업협회(SPA)는 국방부 청사에서 7일간 연좌시위를 하기로 했다. 수단교수협회는 “권력을 문민정부에 이양해야 한다는 국민의 합법적 요구가 이뤄지도록 후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알부르한 위원장의 연설은 민주화 세력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시민들은 알바시르 정권을 재창조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알자지라도 “알바시르 정권에 충성한 세력이 군부에 너무 많아 시위대는 군부가 권력을 쥐는 것을 경계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2011년 아랍·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에 빗대기도 한다. 이와 관련, 미 시사지 애틀랜틱은 “아랍의 봄 참가자는 주로 젊은 활동가, 대학생 위주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의사, 기술자 등 좀더 다양한 분야의 조직, 단체가 시위에 참여했다”며 수단 시위가 폭발력이 큰 이유를 설명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4개월간 수만명이 참여한 수단 반정부 시위에 대해 “중산층은 물론 군부 인사의 자녀까지 시위에 동참해 군부가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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