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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직연대 문책… 책임행정 확립 “채찍”/교통장관·해운청장 경질안팎

    ◎관례 깨고 “해임” 강조… 민심수습 포석/최소한의 교체로 국정 일관성 유지/지방청장 포함… 일선 공무원 보신주의에 경고 김영삼대통령이 18일 상오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을 경질,서해훼리호 사건에 관한 문책은 사건발생 8일만에 매듭지어졌다.김대통령은 이날 하오에는 차관과 청장까지 참석하는 확대국무회의를 열어 공직자들의 심기일전과 책임행정을 강조했다.최소한의 문책인사로서 사건을 매듭짓고 평상국정으로 전환한 것이다. 인사내용을 발표한 이경재청와대변인은 전임자들이 해임됐다고 밝혀 이번 인사의 문책성을 강조하려고 애썼다.통상 장관이나 청장을 경질할때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하고…』로 발표하는 것을 관례로 삼아온 터다.이같은 관례를 깨고 당사자에게 불명예스럽기 짝이 없는 해임을 강조함으로써 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참사의 책임을 이들에게 지웠음을 분명히 한것이다. 이례적인 해임발표는 동시에 민심수습을 위해 문책폭이 넓어져야하지 않느냐는 세간의 여론을 무마하는데도 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이는 대통령에게 임면권이 없는 지방청장에 대해서까지 해임조치토록 한 사실을 함께 발표한데서 보다 분명해진다. 장관에서 일선책임자까지를 연대해 책임을 묻는 인사스타일은 문민정부에서 선보인 새로운 「책임행정」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김대통령은 이를 통해 「책임있는 자는 모두」문책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서해훼리사건이 터졌을 당시에 이같은 사고는 일선 관리들의 행태가 변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장관이나 상층부는 개혁이 됐지만 지방의 일선 행정관리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고 그런 행태가 사고를 잇따라 일으키고 있다고 본것이다.대통령은 따라서 문책도 윗사람을 많이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관련 라인에 있는 사람 모두를 처벌하는 것이 「책임행정」을 구현하는데 더효과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공무원의 보신주의·적당주의를 질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이는 김대통령이 앞으로 공직자 특히 개혁바람이닿지 않은 일선공무원들에대해 강도높은 채찍을 휘두를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김대통령의 이날 인사는 엄밀히 말해 취임이후 첫 장관경질에 해당한다.재산공개과정에서 몇몇 장관이 경질되고 후임자가 임명됐지만 이는 본격 장관교체라기보다는 준비가 부족했던 조각에대한 보완작업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때문에 이날 인사에서 나타난 문책인사의 모델은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다른 사고에서도 원용될 가능성이 크다. 사고초기 희생자수가 엄청나고 민심이 불안해지자 청와대가 대폭개각을 고려했던 흔적들이 없지 않다.그러나 우발적 사고를 놓고 대폭개각을 할경우 국정운영의 방향이 달라질 우려가 있고 시기적으로도 국정감사가 진행중인점과 정기국회가 임박했다는 점때문에 그리 오래 숙고대상에 들어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최소한의 문책인사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운영의 일관성을 꾀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후임자를 발표하면서 『교통행정에 경험이 풍부하고 청렴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김대통령도 신임 장관·청장에게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신임 정재석교통장관은 고박정희 대통령시대의 사람이고 김철용청장은 정통관료출신이다. 청와대의 설명과 이들의 전력에 비추어 앞으로의 인사에서는 모양이나 참신성보다는 업무능력이 중시될 것임을 읽을 수 있다.다만 업무능력을 중시하되 「청렴성」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인사의 이런 특징은 참신성과 개혁성만을 강조한 초기의 용인방법이 청렴성을 남기고는 상당부분 현실화됐음을 의미한다.김대통령은 이번 인사를 통해 사람을 자주 갈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집스럽게 재확인하면서 국정운영의 현실적측면에 보다 비중을 둘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인사가 최소한의 문책에 그침으로써 연말연시의 대폭 당정개편설은 더 힘을 얻게 됐다.
  • 프랑스:2(세계의 개혁현장:2)

    ◎“변화만이 살길” 지구촌의 혁신노력 조명/“실업추방” 학교마다 주제식 기술교육/2조원 투입… 야심찬 고용확대 5개년계획 얼마전 세일하는 동네 가방가게에서 절반 가까운 값으로 품질좋은 손가방을 샀다.그때 점잖아 보이는 주인은 여행가방도 값이 좋으니 필요하면 사라면서 『장사가 안돼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물건이 좋고 값이 유혹적이어서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여행가방을 사둘까 하고 며칠후 다시 갔더니 폐업해버린 뒤였다. 파리인접 인구10만의 도시 불로뉴­비양쿠르에서 르클레크장군 거리만 보아도 불과 몇달만에 가방점 말고도 여러개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기자가 사는 아파트 바로 건너편의 선술집은 유리창에 「주인이 바뀌었음」이라고만 써붙여져 있고 빈채로 계속 잠겨 있다.그집서 두집 건너 있던 라디오·텔레비전 가게를 『저렇게 손님이 없어 장사가 될까』하고 지나다녔는데 이 집도 망하고 컴퓨터 소모품점이 다시 들어섰으나 새 주인 역시 하품만 하고 앉아있다.정육점이 네거리 교회 맞은편 두번째집인데 올여름 휴가기간이 끝난 뒤 한달이 넘도록 철제 셔터가 계속 내려져 있고 밖에서 빙글빙글 돌던 통닭구이 기계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가게 주인들과 종업원들은 실업자가 되어 실업수당으로 지내고 있을 것이다.동네 한 거리에서도 프랑스의 경제불황과 실업의 심각함을 볼수 있다. 프랑스의 시사 주간잡지 르 푸앵 1992년 마지막호가 「이 해의 인물」로 뽑은 것은 정치인도,인기 연예인도 아닌 실업자였다.프랑스의 실업자는 현재 3백10만명이지만 계속 늘고 있어 금년말에는 3백4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실업률 11%는 유럽공동체(EC)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다.실업은 올해 지난 3월 총선거에서 사회당을 넘어뜨렸다. 발라뒤르 정부는 공룡과도 같은 실업과의 벅찬 싸움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발라뒤르의 개혁중 가장 역점이 주어지고 있는 것은 경제개혁이며 주된 목표는 실업의 감소다. 프랑스 정부는 실업문제에 본격적으로 맞서기 전에 먼저 이민 억제와 불법입국 규제를 강화했다.프랑스에서 이민유입이 본격화한 것은 1962년부터이며 현재 총이민자수는 4백20만 가량 되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파리에 와본 사람들은 뜻밖에 흑인과 아랍인이 많은데 놀라는데 파리 거주자의 16%가 외국인이어서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셸 지로 노동장관이 성안한 「노동·고용·직업교육 관계 5개년 계획법안」이 지난 13일 특별각의(미테랑 대통령의 한국방문 때문에 앞당김)의 심의를 거쳤다.예산 규모 1백40억프랑 (약2조원)규모의 야심적인 계획으로 국회에는 9월 하순경 상정될 예정이다. 그중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업측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수당 출연금을 국고로 부담하고,새로 기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창업 지원금을 제공한다. ▲업주가 노동자의 작업일수를 줄이거나 휴업케 할 수 있게 한다.가령,완구 제조업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그 이후는 생산량이 극도로 감소하는데도 업주가 인건비를 계속 지출해야 했었는데 이를 업주가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조정,시간제등의 활용으로 실업을 되도록 줄이고 고용기회를 늘리기 위해 일요일 영업금지를 완화한다. ▲노사문제에 있어서 중소기업의 의무를 완화한다. ▲26세 이하에 대한 직업훈련을 지방별로 실시하고 학교에서는 도제식 기술교육을 강화한다. 이 5개년 계획은 고용확대를 위한 것이지만 국민부담을 가벼이 하고 구매력을 높이기 위한 세제개혁도 추진되고 있다.프랑스 국민은 미국이나 일본 같은 다른 선진국보다 15∼20%나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발라뒤르는 국민 세금을 15% 내려야 한다고 총리가 되기 전부터 말해 왔다.그는 『독일서는 기업체가 사원에게 1백마르크를 지급하면 모든 것을 제하고 70마르크를 사원이 받게 되지만,프랑스에서는 1백프랑을 지급하면 손에 쥐어지는 것은 56프랑 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대신 프랑스에는 폭넓은 사회보장의 혜택이 있다.그러나 사회보장경비 지출이 많다보니(이미 3백억프랑 적자)세부담이 많아지고 이에 따라 상품 가격이 높아져 기업은 경쟁력을 잃고 소비자는 실질 소득이 떨어져 구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경제가안 돌아가니 실업자가 늘 수 밖에 없다.프랑스 정부의 개혁은 바로 이같은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다.따라서 사회보장쪽도 개혁의 손질이 가해지고 있다. 이처럼 발라뒤르의 개혁은 고통분담을 전제로 하고 있고 전임자들이 하지 못했던 일이다.르 피가로의 표현대로 「험난한 길」이다.발라뒤르는 이미 경영주와 노조 지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협조를 요청했다.특히 발라뒤르의 계획은 업주의 기업활동 의욕을 북돋우는 대신 상대적으로 노조 권익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현재까지는 잘 되고 있지만 국민들의 호응 여부가 성공의 열쇠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개혁이 성공하면, 파리 지하철에서 『숙녀 신사 여러분,일자리는 없고,아이들은 굶고 있고…』 읊조리며 적선을 호소하거나 「1프랑으로 당신은 우리 가족을 도울 수 있습니다」라고 쓴 판을 놓고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아마 줄어들 것이다.
  • 대만 국민당 10일 분당/개혁파,“신당창당 강행”

    ◎국민당선 당수 투표선출 개혁안 마련 【대북 AFP AP 연합】 신당 결성을 추진하고 있는 대만 집권 국민당내 일부 개혁세력은 3일 국민당 지도부의 대화제의를 거부함으로써 오는 10일로 예정된 「신국민당」 창당결정을 확인했다. 신당추진세력은 3일 국민당 2인자인 허수덕 사무총장으로부터 이날밤 대화를 갖자고 제의받았으나 『당내 부패척결에 실패한 국민당 고위관리들과 만난다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이를 거부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국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결성하려는 결정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국민당은 지난 49년 본토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건너온 이후 처음으로 분당사태를 맞이하게 됐으며 현재 입법원(총 1백60의석) 보유의석도 1백1석에서 7석이 빠져나가 94석으로 줄어든다. 신국민당 추진세력은 오는 12월 열리는 현장및 시장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들과 대결하겠다고 밝혔다. 【대북 로이터 연합】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40년만에 최악의 참패를 당한 대만의 집권 국민당은 4일 당지도부의 무기명 선출 등을 골자로하는 창당이래 최대의 당개혁안을 승인했다고 국민당의 한 대변인이 이날 밝혔다. 대변인은 31명으로 구성된 당중앙상무위가 오는 16일 개최될 제14차 전당대회에서 당수를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는 개혁안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개혁안은 또한 7일간에 걸친 이번 전당대회가 중앙상무위 위원의 약 절반을 무기명투표로 선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고 이 대변인은 말했다. 이등휘총통은 지난 88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박수를 통해 당수로 추대됐으며 현재의 상무위원들은 그에 의해 지명됐다. 이총통은 국민당 보수파가 다른 후보를 내세우지 않을 경우 이번 전당대회에서 단독 당수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구조나 운영형태가 여전히 창당 초기의 레닌주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 국민당의 이번 개혁안은 지난 1919년 창당이래 최대의 것이다.
  • 대외정책 변화(일본은 변하는가:4·끝)

    ◎미 그늘 벗어나 독자외교 펼듯/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총력/경제대국 걸맞는 정치·군사대국화 겨냥/오자와등 “새 국제질서에 적극 참여” 표방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분쟁해결 역할을 담당하고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위해 상설 유엔대기군을 창설하는 등 자위대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일본의 차세대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 신생당대표간사는 최근 발간한 그의 정책집 「일본개조계획」에서 냉전종식후 일본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의 적극참여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오자와를 중심으로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등 신세대지도자들은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역할증대를 주장하며 강력한 일본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 일본은 7·18 총선을 계기로 한동안 정치적 혼돈을 경험할지 모르지만 자민당이 계속 집권하더라도 멀지않아 신세대지도자시대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일본에서는 이미 「95년 신체제」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1995년은 세계사와 일본에 매우 중요한 의미있는 해가 될것으로 보인다. 1995년은 제2차대전의 종결과 유엔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일단 발효만료되는 해다.현재 일본은 95년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기까지에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남아있지만 미국 등은 이미 지지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세계전략에서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제대국인 일본과 독일을 상임이사국에 진입시킨 다음 경제만이 아닌 정치적 책임도 맡게 하려는 외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유엔의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일본은 세계무대에서의 군사적 역할의 급속한 확대와 더불어 국제정치의 결정자가 되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력에 이어 군사력도 갖출 경우 미국의 세계전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이는 오자와의 외교목표이기도 하다.일본은 물론 미일동맹을 안보·외교정책의 기본축으로 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외무성 일각에서는 미일동맹이 완만한 해체과정에 들어갔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키신저 전미국무장관도 『일본은 앞으로 미국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외교정책의 변화가 대한외교에 영향을 미칠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한국은 기왕에 일본의 침략사를 지적하며 경제지원 등 여러가지 요구를 해왔다.그러나 한국침략에 죄책감을 느끼는 정치세대는 미야자와총리가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며 신세대지도자들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종래와 같은 양국외교는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신세대지도자들은 전임자들과 달리 한국에 요구할 것은 보다 당당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교및 정치경제정책은 국제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일본이 엔화관리와 무역정책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세계경제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일본국회가 해산된 지난달 18일 세계시장에서 엔화가치가 폭락한 것은 일본정치가 국제화됐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드골 전프랑스대통령은 『거대 경제력은 그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그는 독일의 경제성장을 경계하며 이같이 말했으나 그의 말은 바로 지금 일본에적용되고 있다.영국외교관은 『패전국의 외교는 50년간 침묵한다』는 말을 잘 인용한다고 한다.1995년은 일본이 패전 50주년을 맞는 해다.일본은 지금 오랜 침묵을 깨고 있다.
  • “클린턴방한 북핵개발에 경고효과”/「서울의 1박2일」세계언론 평가

    ◎판문점방문,대한방위공약 재확인/미사일수출 중국에도 우려감 표현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주요 기사와 사설등을 통해 지난 주말 클린턴 미대통령의 방한과 연쇄 한미정상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경고효과는 상당했다고 풀이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유력주간지 「아에라」는 최근호에서 김영삼대통령을 커버스토리로해 「한국의 무혈혁명」을 소개했다. 다음은 해외 언론들의 클린턴대통령 방한및 김대통령관련 보도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 뉴욕 타임스=▲『한반도 내지 이 지역 전체에 북한의 핵무기계획보다 더 어두운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도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클린턴대통령은 북한공산정부로 하여금 그 핵무기계획을 포기케하려는 압력을 가중시켰다.(11일자,1면) ▲클린턴대통령은 판문점을 방문하고 주한미군 유지공약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국인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대북한 외교를 계속할 시간을 벌고 있다.(12일자,사설) 워싱턴 포스트=▲클린턴대통령은 한국전쟁이 종식된이래 40년간의 전임자들이 맡았던 역할로 시야를 돌리고 있다.즉 공산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고독한 자유의 선구자를 지키는 강력한 파수꾼.(11일자,19면) ▲클린턴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어느 미국대통령보다 북한에 근접한 곳으로 나아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이는 북한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12일자,9면) LA타임스=▲클린턴대통령의 극동여행은 경제등 국내문제에서의 우유부단을 외교쟁점을 이용,얼버무리려하고 있다는 일부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합리적으로 잘 행동했다.(12일자,사설) 르 피가로=▲아시아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재확인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은 핵무기확산뿐 아니라 장거리미사일의 확산도 심각한 국제적 위협이 된다며 미사일수출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과 북한의 태도에 대해 우려를 표현했다.(12일자,4면) 더 스탠더드=▲비록 운동권 학생들의 폭력시위가 있었지만 클린턴의 방한성과는 긴밀한 한미관계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대이상이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12일자,사설) 인민일보=▲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원수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으며 미국은 한반도문제가 남북한 쌍방의 협상에 의해 해결돼야한다는데 지지를 보냈다.(12일자,6면) 아에라=▲일본 정계의 개혁파는 자민당 일당지배로부터의 탈피에 의한 정계정화를 부르짖고 있으나 한국의 김영삼정권은 한발앞서 사실상의 정권교체를 이룩했으며 32년간 계속되어온 군인정권의 묵은 때를 벗기는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김대통령의 심리적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은 여론의 압도적 지지이다.(김영삼대통령은 아에라지와의 특별인터뷰에서 박정희·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며 인간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피력.김대통령은 또 자신이 입수한 정보임을 전제,『북한은 아직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그러나 북한이 핵을 제조중인 것은 확실하며 그것이 완성되면 한반도의 7천만 국민은 물론 일본과 중국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위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수석비서관들에 「이해력」 밝혀 눈길

    ◎김 대통령,“군생리 누구보다 잘 안다”/“의원시절 절반 국방위원으로 활동”/절묘한 인사에 “비공식채널 보유” 추측도 ○“그건 날 모르는 소리” 김영삼대통령은 군정보를 어떻게 얻고 있고,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단행된 전격적인 군수뇌인사의 정교성에 군내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김대통령이 27일 군에 대한 자신의 높은 이해력을 스스로 공개해 화제다. 김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들과 만난자리에서 『일부에서는 내가 군에대해서 잘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국회의원생활의 절반이상을 국방위원으로 보낸 걸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밝혔다.김대통령은 백선엽장군부터 시작해 6·25참전군인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이면서 『군출신들보다 내가 군의 생리를 더 잘안다』고 말했다는 것. ○두 전 대통령 대위때 김대통령이 처음 국방위원이 되었을 때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들은 육군대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와관련,청와대의 한측근은 『김대통령과 두전임대통령의 이런 인연때문에 김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즉 김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의 재임시에도 『내가 국방위원이었을 때 겨우 대위였던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측근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3당합당후 노태우 당시대통령과 김영삼대표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격렬히 부닥쳤다.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재는 모양인데 웃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방에 대한 그런 관념이 격렬한 투쟁을 할 수 있었던 동력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급장교 잦은 접촉 이측근은 『김대통령이 군의 고급장교들과 수십년을 부딪혀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또 어디를 잡으면 되는 것인가를 잘안다』고 설명했다.때문에 어떤인사를 하면 군의 단결이 강화되고 군이 좋아하는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일련의 군인사가 군내부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라기보다 군에 대한 높은 이해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군내부에서도 지지 일련의 군수뇌인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군을 잘아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해군인사의 경우 청와대의 한고위관계자는 『해군내부에서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만세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오랜 국방위원으로서 갖게된 군에 대한 이해력만으로 이런 인사가 가능했을까. 이에대해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들은 군내부에 대해 비공식 정보라인을 갖고 있지않겠느냐고 풀이했다.검찰에 대해 가차없는 숙정을 지시했던 것도 걸러지지 않은 정보의 유입채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감각·결단력 큰 요인 실제 김대통령은 전임자들이 의존했던 기무사에 대해 큰 역할부여를 하지 않는 것 같다.사령관과의 독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높은 이해력과 풍부한 정보탓도 있겠지만,그보다는 타이밍에 대한 감각과 결단력이 군인사의 점수를 높인 결정적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 첫 각료회의 주재… 공식업무 돌입/클린턴 대통령취임 이모저모

    ◎핵암호 가방 브리핑받고 최우선 인수/입장료 1백불 넘는 무도회 6만명 참가 ○“새로운 출발” 들떠 ○…빌 클린턴이 제42대 미국대통령으로 취임한 20일 미국민들은 수도 워싱턴거리를 가득 메우거나 TV를 시청하며 40대 젊은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봤다. 다소 쌀쌀하지만 구름 한점없이 맑게 갠 날씨속에 진행된 이날 취임식과 가두행진을 지켜본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언급하면서 클린턴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것처럼 겨울속에서 봄을 불러내는 기분을 가졌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말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이라크 사태가 사담 후세인의 「선심」으로 당분간 일단락된 탓인지 푸른 넥타이를 맨 클린턴 대통령은 어느 때 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었고 취임사를 마친후 우렁찬 박수를 치는 시민들을 향해 미국의 재건을 향해 달릴 장거리 선수처럼 손을 높이 흔들었다. ○카터,“불안한 시대” ○…클린턴 대통령에 앞서 민주당 출신으로서는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20일 클린턴이 2차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국제정세가 불안한 시대에 대통령직에 취임한다고 논평. 카터 전대통령은 이날 「CBS 디스 모닝」프로그램에 출연,『클린턴은 불안한 국제정세를 가능한 한 빨리 안정시킨뒤 미국 국민들이 몸소 느끼고 있는 국내문제의 해결에 그의 노력을 집중시키고 싶어 할 것』이라고 언급. ○군사보좌관도 배석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식에 앞서 이날 아침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으로부터 미국 대통령이 핵전쟁시 핵무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극비암호가 들어 있는 핵암호가방 「풋볼」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이 브리핑석상에는 새행정부의 안보담당보좌관인 앤터니 레이크도 배석했는데 「풋볼」로 알려진 이 핵암호가방은 대통령이 어디를 가든지 항상 군사보좌관이 뒤따라 들고 다니게 돼 있다. ○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날 열린 11개의 무도회는 참가희망자를 가까스로 수용,아이젠하워대통령 취임기념 무도회가 당초 1개에서 황급히 2개로 늘려졌던 30년전의 기록과 규모면에서 큰 대조를 보였다. 입장전 외투를 맡기기 위해 3시간 줄을 서서기다렸다거나 파티복에 음료를 쏟는 불상사가 발생했다거나 발을 짓밟히며 들고 있던 레몬주스를 엎질렀다는 등등의 역대 취임기념 무도회의 「끔찍했던」경험담에도 불구하고 1백25달러짜리 입장권을 구입한 6만3천여 참여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 ○…클린턴이 이날 왼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 성경은 그의 할머니가 그에게 물려준 흠정영역 성서. ○조모가 물려준 성경 그는 신약전서중 갈라디아서 6장 8절을 펼쳐놓고 선서를 했는데 이 구절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는 내용. 클린턴은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이 성경을 받았는데 그는 아칸소 주지사로 재직하면서 리틀록의 교회에 갈때마다 이 낡은 성경을 들고 다녔었다. ○의회,새 각료들 인준 ○…레스 애스핀 국방,워런 크리스토퍼 국무,로이드 벤슨 재무등 3개 주요부처 장관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일인 20일 미의회로부터 재빨리 임명 인준을 받음으로써 곧바로 소관 업무에 들어갈 수 있게됐다. 다른 장관들도 21일중으로 상원의 인준을 받게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클린턴은 이날 첫 각료회의를 시험적으로 소집,정식 대통령 업무에 들어간다. 의회 인준과정과 전임자들과의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새 행정부 팀의 실제 출범은 항상 늦어지게 마련인데 디 디 마이어스 대통령 공보담당 비서는 『백악관 내부 구조에 익숙지 못한 새 정부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기 일쑤라면서 자신도 백악관 집무실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칸소주 최대사건 ○…클린턴의 고향 아칸소주 호프시에서는 이날 데니스 램시시장을 비롯한 1백여명의 주민들이 페어파크 체육관에 모여 두대의 대형 TV화면으로 중계된 클린턴의 취임식 광경을 지켜보았다. 램시시장은 『그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될 때까지만해도』이 호프시출신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줄은 몰랐다면서 이 고장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도 클린턴의 대통령취임과는 비교도 될 수 없다고 소감을 피력.
  • “김일성 죽어도 북체제 큰 변화 없다”/「민족통일연 보고서」 주장

    ◎권력층 파벌없어 급속붕괴 가능성 희박/불안요인 사전제거로 「유일」기반 한층 강화/신중하고 방어적인 「점진적 변화」 시도될듯 북한의 스탈린주의적 체제를 지속시켜 주는 가장 큰 요인은 권력 엘리트층 내부에 파벌주의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며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 지배체제로 바뀌더라도 즉각적인 체제붕괴현상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용)은 최근 「북한의 권력엘리트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구소련이나 중국등에서는 정책노선을 둘러 싼 권력 엘리트간의 갈등(파벌주의 발생)으로 체제변화가 일어났으나 북한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일지도체제가 확고히 다져져 오면서 그같은 요소를 미리부터 제거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파벌주의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 봤다. 따라서 북한은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지배체제가 들어서더라도 단기간내에 파벌이 형성되기는 어려우므로 김일성 사후의 즉각적인 체제붕괴는 초래되지 않을 것으로 이 보고서는 결론지었다.다음은 이 보고서의 요지다. 중국과 구소련에 대한 선행연구에 의하면 발생요인은 서로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파벌주의가 발생했고 그 파벌주의가 대안적 정책노선을 중심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체제변화가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발견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모택동의 모순론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직운영에 있어 항시 반대의견의 존재를 인정하고 비록 소수 의견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존중해주는 정치풍토가 형성돼 있어 집권자들이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집단의 존재를 인정해주었다.이같은 풍토에서 화국봉·등소평등 개혁론자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구소련의 경우에도 보수적 노선의 스탈린 사후 개혁적 노선의 흐루시초프가 등장했고 그 뒤에는 다시 보수적인 브레즈네프가 집권했으며 브레즈네프 다음에는 다시 개혁적인 안드로포프,다음에는 보수파 체르넨코,개혁파 고르바초프가 차례로 집권하는등 보수·개혁 노선이 번갈아 등장했다. 중국이나 구소련 또는 그밖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권력 엘리트들 간에 공통적으로파벌주의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사회에서 발달한 복수정당제 만큼이나 일상적이며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북한 내에 존재했던 빨치산파,연안파,소련파,남로당파,국내파등 주로 지역적 연고에 따른 파벌들을 해방 직후부터 56년 「8월 종파사건」을 거치는 동안 빨치산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거했다.이어 김일성은 빨치산파 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충성파를 제외한 인물들을 또다시 숙청하고 72년 헌법개정을 통해 유일지배체제를 완성했다. 김일성은 구소련·중국등에서 발생한 전임자들에 대한 비판이나 도전을 예방하기 위해 친자인 김정일에 대한 조기권력승계체제를 구축,지난 20여년간 김정일에게 당·정·군 모든 분야에서 철저한 권력기반을 다져 주었다. 이처럼 파벌발생 소지를 없애고 권력 엘리트들 간에 철저한 통합을 이룬 북한권력 구조는 ▲김부자의 친·인척이 권력 핵심부서를 장악하고 있고 ▲노·장·청 삼합구조에도 불구,원로들은 상징적 기능만을 하고 정책결정권은 김부자에게 한정돼 있으며 ▲당중심의 일원적 구조와 상위 서열 40명 내외가 당·정·의회·군 등의 요직을 중첩해 맡는 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노선 차이에서 비롯되는 집단 갈등,보혁갈등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에서 파벌형성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첫째 중국이나 구소련에서처럼 혁명1세대 최고 지도자의 사망(김일성의 사망),둘째 해외유학이나 해외경험을 한 전문관료의 수적 증가,셋째 소외 엘리트의 잠재적 불만이 현재화되는 것등이다.특히 향후 경제난 극복과 외교적 고립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전문관료의 역할이 증대할 경우 김부자의 친·인척집단과 비친·인척 집단간에 파벌이 발생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 사회에서도 파벌이 형성될 수 있는 토대가 미약하나마 마련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은 파벌의 발달을 억제하는 요인이 더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즉 북한에서는 중국이나 구소련에서와 같은 경쟁적 파벌주의나 대안적 노선의 발달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유일지도체제 지도부의 매우 신중하고 방어적인 정책에 의해서 점진적인 방식의 변화가 시도될 것으로 전망되며 최소한 김일성 생존기간에는 노선갈등이나 불협화음은 노정되지 않을 것이다.또 김일성이 사망하더라도 김정일이 장기간 준비해 온 정치적 기반때문에 단·중기적으로는 지도부의 균열에 기인한 체제동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워싱턴에 부는 변화의 바람(클린턴 새로운 미국:6)

    ◎새 정부의 과제/“최대 난제” 재정적자 감축/단기적 경기부양책도 만만찮은 숙제/취임 1백일내 주요정책 대대적 추진 빌 클린턴 대통령당선자와 그의 참모들은 선거가 끝난지 1주일이 지난 지금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통령이 되는 일보다 새삼 어려운 일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간접시설 확대 클린턴은 「변화」와 「희망」을 앞세워 현직대통령을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한다.그러나 무엇을 언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듯싶다.필요성은 하나의 인식으로 충분하지만 변화를 실현시킬 정책에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클린턴의 문제점 상담역인 브루스 리드는 8일 『클린턴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한 일이 결코 없다』고 밝히고 『클린턴은 지금이야말로 정치지도자들이 문제를 풀기위해 노력을 시작할 때임을 다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미디어상담역인 맨디 그룬월드도 『국민의 기대가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수준은 아닐것』이라면서 『다만 클린턴은 문제의 심각성을 곧 성실히 밝힐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클린턴 참모들의 이같은 언급들은 너무 높아진 국민의 기대치를 낮추려는 일련의 계획된 대언론 공작일 것으로 분석된다. 클린턴 대통령당선자 앞에 놓인 도전은 지난 68년 선거에서 승리한 리처드 닉슨대통령의 경우와 비슷한 일면이 있다.베트남전쟁은 「존슨의 전쟁」으로 인식돼 민주당의 선거패배를 불러 공화당의 닉슨이 대통령이 되자 곧 「닉슨의 전쟁」이 되어 그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현직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내몬 오늘의 미국 경제가 곧 「클린턴의 경제」로 둔갑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클린턴은 1∼2주안에 미국의 주요 산업·경제지도자 회의를 소집할 것으로 알려졌다.그리고 그는 약속대로 백악관에 경제안보회의라는 새로운 기구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미국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직후 경기부양책으로 도로및 교량·하수처리장·전기통신망의 시설확대,첨단기술 분야의 투자확대등 사회 간접자본 투자사업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클린턴의 참모들은 이같은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이어 장기적인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민희생 강요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정적자 감축계획은 전적으로 경기부양책이 성공을 거둔 연후에만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재정적자 문제가 클린턴 정부의 가장 큰 딜레마가 될것이라는 것은 선거전 때부터 충분히 예상돼온 것이다. 클린턴 정부가 대담하게 재정적자 감축작업에 나서게 되면 선거전에서 주장한 수준 이상으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해야 하며 이를 미루다 보면 경제정책의 시행이 어려워진다.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 묶여있게 되면 경제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4년후에는 그가 패배시킨 부시대통령과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되리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이 들어서면 당장 나타날 「변화」도 적지 않을 것이다.부시행정부가 끈질기게 묶어두었던 낙태제한 규정들은 당장 사라질 것이요,동성연애자들도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에도 서명할게 확실하다.클린턴은 이와함께 부시대통령이 추진하려던 알래스카 등지의 저습지대 개발계획을 철회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로비압력 거세질듯 또한 부시대통령이 그동안 비도권을 행사했던 상당수의 법안들이 부활될 것이다.그의 임기중에는 최하 2명,많으면 4명의 대법관이 은퇴할 것으로 예상돼 그동안 지나치게 보수화된 대법원이 상당수준 자유주의 색채를 띠게 될것도 분명하다. 클린턴은 전임자들이 가지지 못한 이점도 누리게 된다.상·하원이 다같이 민주당 지배아래 있어 부시때와 같은 의회와의 마찰이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대신 의원들의 로비 압력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클린턴은 대통령에 취임한지 1백일 내에 그가 추진할 주요정책의 대부분을 내놓고 의회의 인준을 받을 계획이다. 취임 초기에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역사의 경험 때문이다.시간이 흐르면 정책수행의 부정적인 면들이 부각되고 압력단체들의 간섭도 커지는게 상례다.지난 33년에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의 유명한 뉴딜정책을 취임초기에 밀어붙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게 정설이다. 아무튼 클린턴 정부의 성패는 그의 젊은 야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상황과 국민들이 얼마나 희생을 감수하며 따라줄 것인가에 따라 성공여부가 가려질 것임 또한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 부시/퇴임후 갈곳이 없다/내년 1월20일이면 백악관생활 마감

    ◎대선패배 생각안해 살곳·일거리 등 결정못해/일부선 “전임자와 달리 공익사업 추진” 추측만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날 날을 불과 70여일 남겨두고 있으면서도 아직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3일밤 선거패배 연설을 하면서 손자손녀나 돌보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말이고 실제로는 아무런 대책이 없어 주위사람들까지 난감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퇴후의 일 뿐아니라 심지어 거처조차도 마땅치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부시는 미국의 최동북단 메인주의 케네번크포프에 방이 28개나 되는 저택이 있으나 오랫동안 살지않아 겨우살이를 할 시설이 전혀 돼있지 않으며 휴스턴 교외에 있는 그의 법적주소지도 실은 호텔방에 불과해 장기체류에는 적절치 않다는게 주변의 얘기다.그렇다고 이제 집을 지어 이사할 시간도 없는 형편이다. 그의 측근들은 부시대통령이 그동안 선거운동에 전념하느라 그같은 계획을 세울 계제도 아니었지만 선거에 패배하리란 생각도 해본 일이 없었던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때문에 부인 바버라 여사가 이제야 살집문제를 친구들과 상의하러 곧 휴스턴을 방문하게 될것이라고 그의 공보비서가 8일 밝혔다. 그의 친구들은 살집보다 우선 어느곳에서 살것인가부터 결정을 해야할 형편이며 이번 주말 플로리다로 가는 낚시여행을 다녀와서나 구체적인 얘기들이 나올것 같다고 전한다. 요 며칠사이 그의 모교인 예일대 총장설,야구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설 등이 나돌았으나 다 근거가 희박하다.부시 대통령은 또 그의 최근 전임자들의 선례도 따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미 카터 전대통령은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며 직함없는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로널드 레이건,제럴드 포드 전대통령은 퇴임후 거액의 사례금을 받고 연설을 하러 다녀 비난을 많이 받았었다. 부시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피터 틸리 주캐나다 대사는 자기의 느낌일 뿐이라면서 『부시가 학문적인 입장에서 국제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를 만들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은 본래 2차임기가끝날 무렵인 96년에 맞춰 텍사스에 그의 기념도서관을 완성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어쩌면 도서관건립사업을 앞당겨 추진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 미 허드슨연,한국 역대대통령 업적 평가

    ◎“노 대통령의 북방외교 경이적 성공”/유엔가입·동구권과 유대강화 등 결실/전 전대통령은 정통성문제로 괴로움 미국의 「허만 칸 센터」부설 허드슨연구소는 최근 「냉전후 동북아정세」라는 책자를 발간,외교전문가인 페리 우드씨가 쓴 역대 한국대통령의 외교정책과 업적을 평가하는 글을 실었다.다음은 이글 가운데 한국의 민주화와 외교적 성취에 대한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대외외교활로 개척과 대내경제면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룩한 전두환대통령은 그러나 정치적 정통성 문제로 그의 임기동안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그의 임기말 광범위한 국민들의 민주화시위,미국의 압력,86년 필리핀 마르코스대통령의 퇴진 등 대내외적인 상황은 노태우씨를 대타협의 민주적 인사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노태우씨는 대통령후보로 나서 자신의 민주화 방안을 천명하고 전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모든 공직을 사임하겠다는 결의를 했었는데 그의 그러한 과감한 정치적 아니셔티브와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87년 12월 국민이 드디어 직접 선출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한국에서 최초의 민주적 대통령으로 선출된 노태우대통령은 대외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주도했다.특히 당시 한국과 미수교국이었던 거의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이 참가한 88년 하계올림픽대회의 성공적 개최,89년 2월 헝가리를 필두로한 모든 북방국가들과의 수교,역대정권의 희망이었던 유엔가입 등이 그러한 변화의 두드러진 것들이다. 이상과 같이 노대통령이 이룩한 성과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실용주의 외교노선,공산권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한국의 경제력,일소간의 갈등,노대통령의 부단한 남북대화 개선노력과 공산세계와의 유대강화 등의 상호 조화 속에서 이루어졌으나 무엇보다도 노대통령의 88년 「7·7선언」이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노대통령의 이른바 「북방정책」은 외교정책에 있어서 그의 민주화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공산권 관계개선과 대북한 긴장완화 노력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이로 인해 과격학생그룹의 반정부적 통일논의를 차단시켰고,대외적 안보역량을 강화하였으며,점증하는보호주의에 대응하여 대외시장의 확대를 달성했다.또한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위상과 정당성을 제고 시켰음은 물론 노대통령자신의 명성도 드높였다. 이러한 노대통령이 이룩한 외교분야에서의 민주화의 업적은 어느 외교분석가가 말한것 처럼 한국이 지금처럼 뭔가 활기에 차 있게했고,한국민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다.노대통령의 외교정책의 목표는 한국의 국제적 지위향상,안보역량 강화,그리고 경제성장의 지속 등이었는데 이러한 그의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의 외교적 노력은 그의 전임자들 보다 더욱 과감하고 독자적으로 추진되었으며 경이적인 대성공을 거두었다.한국이 지역적으로 APEC를 주도하고,유엔에 가입한 것은 이러한 외교적 업적의 두드러진 일면들이다. 노대통령은 부강해지고 있는 한국이 경제력과 정치적 명성에 상응하는 국제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노대통령은 오랜 적대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은 물론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 일본과는 동등한 관계수립도 모색하고 있다.
  • 분리된 체코­슬로바키아 갈길

    바츨라브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 그의 전임자들이 그러했듯 임기를 채우기도 전에 퇴임했다.지금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은 공산주의 출신들이건 민간출신들이건 끝까지 대통령직의 임무를 끝낸 사람이 없다. 하벨의 표상이라고 할 수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를 건국한 마자릭은 대통령임기를 2년 남겨놓고 1935년 퇴임 해야만 했으며 그 뒤를 이은 베네스는 두 번씩이나 임기전에 그만두었다.즉 베네스는 38년 히틀러의 압력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10년후에 그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 함으로써 다시 물러나는 비운을 맞았다.그 이후의 대통령들도 제대로 임기를 채운 사람은 없으며 이를테면 크레멘트 고트발트는 사망으로 인해,후자크는 공산당이 붕괴하는 바람에 사임을 당했다. 이같은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원수의 불행한 역사는 이 나라가 건국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는 불안한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중부유럽 한가운데 가로놓여 서쪽은 독일 바이에른주로부터 동쪽은 우크라이나와 접경하고 있으며 체코와 슬로바키아라는 전혀 이질적인공화국으로 구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나라의 지정학적인 불안요소를 가늠할 수 있다.이제 두공화국이 분리하게 됨으로써 체코공화국은 좋던 싫던 서쪽의 강국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돼 프라하에서의 독일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반면 슬로바키아는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오스트리아와의 유대를 종전보다 더욱 강화할 것이다.오스트리아 빈은 프레스부르크의 슬로바키아정부가 서구와 협조하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지역의 장래는 새로 독립한 슬로바키아가 전체국민의 11%가 되는 헝가리계 주민들을 어떻게 처우하느냐에 달려있다.연방국가였을 때는 헝가리 민족 비율이 3%밖에 안돼 문제가 없었으나 슬로바키아가 독립함으로써 헝가리민족은 가장 큰 소수민족그룹으로 부상했으며 민주화이후 동구를 휩쓸고 있는 민족주의가 슬로바키아에서도 잠재하고 있다. 프레스부르크의 정치지도자들은 민족문제를 잠재우고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와 서구와의 중간다리역할을 하도록 해야하는 사명을 안고있다.중부유럽과 그 주변의 정치상황이 변하고있다.
  • 외언내언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하기 위해 16일 내한하는 우즈베크공화국의 이슬람 카리모프대통령은 공산당 제1서기 출신으로서 권력기반도 과거 공산당세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그는 전임자들에 비해 개방적이기는 하나 매우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전문가들은 현재의 우즈베크 정치체제를 가리켜 스탈린주의와 호메이니주의를 결합한 형태라고 말한다.한때 미국은 우즈베크의 정치체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수교를 거부했다가 지난2월 카리모프대통령으로부터 민주화 약속을 받고서야 수교와 공관개설에 응했다.◆우즈베크라는 용어가 민주명으로 최초로 사료에 등장한 것은 14세기 후반이다.그러나 우즈베크의 수도 타슈켄트와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는 실크 로드의 중심지로서 옛날부터 우리 귀에 익은 곳이다.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지배권에 들어간후 세계적인 면화 산지가 된 우즈베크는 지금도 구소련 전체의 60%를 상회하는 면화를 생산하고 있다.우즈베크엔 매장량이 세계 10위내로 추정되는 석유를 비롯,석탄·금등 각종 천연자원이 풍부하다.이같은 자원에 한국의 개발 경험을 접목시켜 경제발전의 불을 댕겨보겠다는 것이 취임1년도 안된 카리모프대통령이 독립국연합 11개국 지도자 가운데 최초로 한국을 찾게된 이유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구소련내 한인 최다거주 지역인 우즈베크엔 현재 약 20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이들은 지난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분산정책에 따라 극동지역으로부터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의 후예로서,다른 민족들에 비해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말을 거의 잊은채 우리문화와 풍습의 일부만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정부는 이들의 민족교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5월 타슈켄트에 한국교육원을 설립했다.이젠 우즈베크에 상주 공관을 서둘러 개설하고 적극적인 경제협력정책과 교민보호시책을 펴나갈 때가 아닌가 싶다.
  • 한자리에 모인 미 다섯 대통령

    ◎LA 레이건기념도서관 개관식서 웃으며 만나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시미 벨리의 숲이 우거진 언덕에서 4일 낮 거행된 로널드 레이건 미 제40대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은 단순한 테이프 커팅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자리를 함께 하기는 미역사상으로도 이번이 처음이라지만,한국에서 반목·적대하는 전현직 대통령 관계만을 보아온 기자에게는 신기하고 부럽게만 느껴졌다. 이들은 재임중 후견인으로서 후계자를 돕기도 했고 경쟁자로서 서로 싸우기도 했다.또한 한사람의 행운은 다른 사람의 불행이기도 했으며 한사람의 승리는 다른 사람의 패배를 뜻하기도 했다. 연단에 부인과 함께 나란히 앉은 다섯 대통령 가운데 제37대 리처드 닉슨과 다음의 제럴드 포드는 78세,지미 카터는 67세,레이건은 80세,그리고 현재의 제41대 조지 부시는 67세로서 모두가 미국정치의 연륜과 활기를 읽게 하는 원로요 노익장들이다.특히 이날의 주인공 레이건에게 1980년 선거에서 고배를 든 카터는 아프리카의 잠비아에서 선거감시 임무를 수행하던중 급거 귀국,행사에 참석해 많은 눈길을 끌었다. 부시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전임자들의 치적을 열거할 때 장내에선 환호와 박수로 호응했고 전임자들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부시는 닉슨을 가리켜 『국내에선 개혁자였고 국외에선 평화의 개척자였다』고 칭송했고 포드에게는 그의 의욕과 인품에 찬사를 보냈다.카터에 대해서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그는 레이건에 언급,『보수주의의 물결을 선도한 정치적 선각자였으며 그의 강력한 군비증강 정책이 미국인들에게 걸프전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찬양하며 그의 밑에서 보낸 부통령 생활 8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간 헌금 5천7백만달러를 들여서 지은 레이건 도서관은 지금까지 건설된 미국의 대통령 기념도서관 10개소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거기엔 5천5백만건의 문서가 소장돼 있고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가 실물 크기로 재현됐으며 3t짜리 베를린장벽이 냉전의 유물로 전시돼 있다. 그러나 레이건 도서관은 이러한 외형이나소장품 보다도 한자리에 모인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통해 반목이 아닌 화합,단절이 아닌 축적의 건강한 미국정치를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개관 첫날부터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 세계외교의 조율사/새 유엔총장 각축 뜨겁다

    ◎6대 총장 10월에 누가 뽑힐까/대처·셰바르드나제등 10여명 물망에/불·소선 현케야르 지원… 본인은 고사/G7회담서 “역할 증대” 결의… 영향력 커질듯 오는 10월로 예정된 새 유엔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세계외교가에 무수한 하마평과 함께 벌써부터 치열한 탐색전이 시작되고 있다. 현 사무총장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재임 10년만인 금년 말 퇴임할 계획이다. 전임자들처럼 중임할 경우 앞으로 10년간 유엔을 이끌어 나갈 새 사무총장은 과거 유엔을 오랫동안 마비시켰던 초강국간 대립이 뒷전으로 밀린 가운데 집단안보와 지역분쟁의 해결을 유엔에 의존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총장의 책임은 너무 막중하기 때문에 마거릿 대처 전영국총리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소련외무장관처럼 국제무대에서 「슈퍼스타」의 신망을 쌓은 사람들이 이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다.그러나 일부 외교관과 유엔관리들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교가 밖의 의외의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사무총장 선거운동은 9월부터 본격화될 전망이지만 벌써부터 공식·비공식으로 많은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아프리카의 경우 거물후보는 없지만 희망자가 수두룩하다.1백59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약3분1을 차지하고 있는 블랙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번 사무총장은 우리 지역이 맡을 차례』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총장후보에 거론되고 있는 아프리카 인사로는 전 나이지리아대통령 올루시건 오바산조,짐바브웨 재무장관 버나드 쉬드지로,운크타드(유엔 무역개발회의)사무총장인 가나의 케네드 댓지,유엔 사무국 수석직원인 시에라리온의 제임스 조나,뉴욕 소재 국제평화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는 우간다의 올라라 오툰누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블랙 아프리카 인사가 총장직을 차지할 기회는 두명의 새로운 유력인사 때문에 전망이 흐려지고 있다.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을 역임하고 지금은 걸프지역 구호활동을 지휘하는 사드루딘 아가 칸 왕자와 이집트의 외교정책 수립에 오랫동안 큰 영향을 미쳐온 부트로스 갈리가 바로 그들이다.아프리카 인사의 피선 가능성은 미·소화해로 인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분석이다.두 초강국은 이제 「표」때문에 제3세계의 환심을 살 필요는 없게 되었다.게다가 아프리카 후보들은 모두가 불어권이 아닌 영어권 출신이라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프랑스는 불어가 유창하지 않은 후보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70세가 다 된 부트로스는 회원국들의 기대에 부응해 유엔 사무국을 활성화시키기엔 너무 고령이고 대가 약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사드루딘은 행정수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과거에 유엔 일을 보면서 적을 많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후보로 부상하지 않은 인사가 결국 총장으로 간택될 것이라는 관측은 사드루딘과 부트로스의 이러한 문제점에서 싹이 튼 것이다.일부 소식통들은 주미대사를 역임한 싱가포르의 토미 고와 스웨덴의 유엔 수석대표 얀 엘리아손이 앞으로 많은 관심을 끌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고는 능숙한 외교관으로서 제3세계가 신임하는 이점을 갖고 있으며유엔주재 외교사절중 가장 명석한 대사로 손꼽히는 엘리아손은 유엔 사상 최강의 사무총장이었던 1950년대의 다그 하마슐트에 비유되고 있다.하마슐트도 스웨덴인이었다. 페루 외교관으로 1982년 사무총장에 선출된 케야르는 역임중인 두 임기의 대부분을 하마슐트 이후 허약한 존재로 전락한 유엔 사무총장상을 답습하는데 그쳤다.그러나 지난3년간 미·소관계가 개선되면서 사무총장의 활동영역이 넓어지자 케야르는 이란­이라크전쟁,아프가니스탄,나미비아,서사하라와 중미등 지역분쟁에서 유엔의 중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성가를 높였다. 프랑스와 소련은 케야르만한 적임자가 없다면서 케야르가 1,2년 더 유임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올해 71세인 케야르는 퇴임결심을 굳히고 프랑스와 소련에 대해 후임 물색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죄의식 없는 “살인 경관”/백철우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한 경찰관의 총기난동사건으로 의정부 사고 현장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았다. 서울북부경찰서 도봉파출소 소속 김준영 순경의 단 10분간에 걸친 광기가 4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면서 이처럼 피비린내나는 아수라장을 만든 것이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과 이웃주민들이 밤새 공포에 떨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27일 상오 1시쯤 인천 연안부두에서 검거돼 서울로 압송된 범인 김 순경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들이 2년 동안이나 나와 우리 가족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당연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경찰관의 책무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불사할 수 있다는 말투였다. 전경과 순경으로 근무하면서 적어도 수십 차례 이같은 경찰관의 복무자세를 훈시받고 되뇌었을 법도 한데 그에게는 쇠귀에 경읽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물론 경찰관의 수가 14만명에 이르다보니 한두명 「중뿔나기」가 나올 수는 있다. 때문에 경찰수뇌부는 이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죄송스럽다』는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재발방지책을 마련,다시는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경찰관의 이같은 범행은 끊이질 않았음을 보아왔다. 이종국 치안본부장은 이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타난 제반 문제점을 철저히 조사 분석해 모든 경찰관에 대한 근무기강을 대폭쇄신하고 총기관리 등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이같은 불행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임자들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제는 경찰수뇌부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 말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정말로 대책다운 대책을 세워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야겠다. 아울러 해마다 8천명의 경찰관을 충원하면서 인성검사 등 자격심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경찰수뇌부에 묻고 싶다. 국민들은 어쩌면 이런 저런 이유로 경찰로부터 보호받기보다는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는지도 모른다.
  • 대처,“인생은 65세부터 다시 시작”

    ◎측근들과 송별연서 「철의 여인」다운 고별사/재단운영·회고록 집필 등 바쁜 일정 보낼 듯 영국역사상 가장 긴 11년간 총리직을 맡아온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를 떠나는 절차는 신속하면서도 평범하다. 짐꾼들이 그녀의 사물을 끌어내고 있는 동안 대처는 새로 차릴 사무실용품을 사기 위해 쇼핑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장차 회고록을 쓰시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이삿짐 빨리 꾸리는 법에 대한 안내서를 쓸 수 있을 거예요』­짐싸기를 거들던 딸 캐롤(37)은 TV기자가 대처총리의 장래계획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전임자들에 비하면 대처가 받아놓은 6∼8일 후의 이사날짜는 아주 느긋한 편이다. 대처가 밀어낸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 전 총리의 경우 지난 79년 5월3일 대처가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하루도 안돼 관저를 비워줘야만 했다. 의회와 지척인 다우닝가 10번지의 17세기 건물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은제·식기·샹들리에·유화 등 값진 물건들은 대부분 국가재산이지만 11년반 동안이나 한 주인이 써온만큼 옷가지외에 물건도 늘어났다. 대처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상자에 차곡차곡 쌓인 개인문서들로 이는 모든 출판업자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철의 여인의 회고록」의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이밖에 사퇴발표 후 전세계로부터 그녀의 문앞에 보내진 1천여개의 꽃다발과 하루 1천여통씩 쌓이는 지지자들의 편지도 새로운 이삿짐 목록으로 추가됐다. 대처 총리는 26일 밤 측근보좌관으로부터 청소부에 이르는 2백명의 총리실 직원들을 위해 송별연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인생은 예순다섯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제 미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선언,사임을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때와는 판이한 면모를 과시했다. 세실 파킨슨 운수장관에 따르면 대처총리는 각료들에게 퇴진결정을 발표할 때 울었으며 다른 3명의 장관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고 나머지 각료들은 침묵속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는 것. 대처의 장래계획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추측만 난무하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에 빠지는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1만7천5백파운드(3만5천달러)의 연금이나 받으며 에드워드 히드 전 총리처럼 불만에 가득찬채 평범한 의원노릇을 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여왕으로부터 백작부인 작위를 받고 상원에 나와앉아 지루한 의사일정을 지켜보고 있게 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모유럽은행을 운영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보좌관들은 그녀가 런던 중심부에 개인사무실을 구해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자유시장 정치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재단을 운영하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 대처는 지난 85년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약 11㎞ 떨어진 곳에 40만파운드(80만달러)를 주고 2층집을 장만,앞으로는 이곳을 거처로 삼게된다. 딸 캐롤은 「어머니가 지난 12년동안 한번도 슈퍼마켓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식료품을 잔뜩 주문했다면서 『어머니가 총리직은 물러났지만 진짜 은퇴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 경제팀웍 활성화 전망/이승윤팀의 향후 입지 예진

    ◎「문제장관」나가 부처간 잡음 제거/관료출신 입각… 경제난 호전 기대 19일 단행된 일부 경제부처에 대한 보각은 이승윤경제팀의 팀웍다지기에 역점을 둔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개각으로 경질된 강보성 농림수산ㆍ권영각 건설장관은 출범 6개월째를 맞는 이부총리의 리더십에 강한 의문을 갖게 했던 대표적인 인물들로 받아들여 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 농림수산의 경우는 정치권의 3당통합에 따른 이해조정의 결과로 이승윤 팀과 한 배를 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출발부터 과히 어울리는 인사는 못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물가ㆍ농산물개방 등 핵심적인 경제현안을 두고 재임기간내내 이부총리를 불편하게 했던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특히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미방출 확대 등에 농수산부의 협력이 필수적인 요소였으나 강장관이 이를 외면함으로써 경제기획원과 농수산부간에 잦은 불협화음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강농림수산의 입각은 그가 구 야당출신으로 현재는 집권여당의 현역의원이라는 점 때문에 의원내각제의 실험무대로비쳐 입각초기부터 주목을 받았었다. 그가 이승윤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6개월의 단명으로 그친 것은 경제부처 내에서 시도된 자그마한 의원내각제 실험이 일단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함께 물러나는 권건설의 경우도 군출신 인사가 경제팀에 융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재임기간중 매우 의욕적이고 청렴하게 업무를 추진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외곬」식 업무추진이 기획원ㆍ상공부 등과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는 점에서는 강 농림수산과 다를 바가 없다. 권건설은 건자재 수급난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기획원에서 주택 2백만호 건설 일정을 재조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나 상공부가 산업인력난 해소를 위해 수도권 공장설치인가의 완화와 수도권 공과대학 첨단학과의 증원을 요구했을때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그래서 부처간 이견이 있는 주요현안들을 다루는 경제장관회의가 열릴 때마다 매번 그는 설득이 불가능한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외곬」식의 업무추진은 건설부내에서도 말썽을 일으켰다. 그가 입안했던 건설부기능축소안이 건설부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끝내 하극상사태로까지 번지게 했던 책임도 그의 경질을 재촉한 요인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강농림수산이나 권건설에 대해 이승윤경제팀의 여타 멤버들은 입을 닫고 있지만 이들이 경제팀 내에서 「환영받지 못할 인물(persona non grata)」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비해 이번 개각으로 이승윤경제팀의 핵심멤버로 등장하게된 조경식 신임 농림수산과 이상희 신임 건설은 모두 기존멤버들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들이다. 조농림수산은 예산실장까지 거치면서 기획원에서 관료생활의 기반을 다졌고 이건설도 내무부 정통관료출신이어서 전임자들과는 경력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번 개각에 담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이승윤팀의 향후 진로와 관련해 매우 주목되는 대목이다. 경제팀장인 이부총리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해 『각 부처가 개별부처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국가전체의 차원을 고려한경제정책을 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임명권자의 의중을 간접 전달했다. 이번 개각이 이승윤팀의 팀웍보강 쪽에 초점이 맞춰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부총리 자신도 전임자와의 관계상 이번 개각에 대한 호ㆍ불호의 감정표출을 억제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환영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래서 그가 이번 개각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일과 13일에 있었던 두차례의 이부총리 청와대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5일에는 2개월동안 중단돼오던 끝에 이루어진 대통령과의 독대형식이었으며 13일은 예산안 보고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두번의 청와대행보에서 개각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기획원관계자들의 얘기로는 이부총리가 경제현안 전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보고했고 노태우대통령도 보고를 들은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앞으로 잦은 독대기회를 약속했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경제팀장의 의견을 노대통령이 참고했을 가능성은 다분히있다. 그러나 경제팀에 대한 부분적인 개각의 필요성ㆍ개각대상ㆍ기용인물 등에 대한 노대통령의 생각이 이부총리의 생각과 우연하게 맞아 떨어졌을 뿐 개각에 관해 대통령이 부총리의 의견을 묻는 것은 관례상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이부총리는 이번 개각으로 출범이후 팀내부 융화의 걸림돌이 됐던 부분을 정리함으로써 팀플레이를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이번 개각을 이승윤경제팀의 장래와 관련지어 정반대의 두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하나는 이번 개각이 이승윤팀의 전면 교체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이승윤팀을 상당기간 지속시키기 위한 부분수술이라는 시각이다. 지금까지의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해보면 후자의 견해가 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 이유로는 다른 부총리감을 찾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팀장을 바꾼다고 해서 현재의 경제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 “미국은 십자군이 될 필요없다”/미 보수파,페만개입에“볼멘소리”

    ◎“국익이 우선… 이상주의적 모험은 곤란/분쟁해결에 전세계의 공동대응 마땅” 미국내에서 수주전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도를 나타냈던 부시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대해 불평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미국의 외국사태 개입에 대해 새삼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는 보수파들이 이러한 불평에 앞장서고 있어 시선을 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보도했다. 현재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은 좌우 양파에서 다같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의원들의 경우는 보수파라도 위기의 시기엔 대통령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 미유엔대사 커크 패트릭이나 컬럼니스트 패트릭 부캐넌과 같이 보수파 견해를 선도해온 정책연구가와 논평가들은 거리낌없이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대 중동 군사개입이 장기화되면 부시 대통령도 결국 그의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에서 거센 비판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이다. 좌파들의 비판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전 법무장관 렘지 클라크를 비롯한 소수의 재향군인들은 「중동개입정책 반대연합」을 결성했다. 중도좌파의 생각을 대변하는 잡지인 「네이션」은 24일자 사설에서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잡지는 부시의 대응책을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개입」이라고 지칭하면서 「시작은 요란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는 헐리우드의 대작 영화」에 비유했다. 미국의 개입정책에 대해 전통적으로 비판해온 일부 의원들은 『왜 미국은 항상 그런 일을 저질러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면서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근년의 미국 정치에서 대외개입에 대한 좌파의 비난은 단골 메뉴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좌파가 중동사태에 대해 비교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파가 부시의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정책에 대한 보수파들의 볼멘소리는 소련의 위협이 감소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한 대토론회에서 나왔다. 이 보수파 토론회의 근저에 깔려 있던것은 「보수파들은 소극적인 국제주의자」라는 사실이라고 헤리티지 재다의 버튼 파인스 부소장은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우파들은 진보주의자들과 더불어 미국의 세계문제 개입과 군비증강 비판에 앞장섰다.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이 공산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공의 임무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졌다. 공산주의가 죽자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세계적 역할은 실제적인 국가이익에 바탕을 두어야지 대외 재난을 초래할지 모르는 고상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파에 대한 비판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고립주의,즉 반개입주의로 회귀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레이건 백악관에 재직했던 컬럼니스트 부캐넌은 『말과 공약이 너무 앞서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라크로 하여금 쿠웨이트를 토해 내게 하는 것이 미 지상군의 사용을 고려할 만큼 미국의 중요한 이해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CSIS(전략국제연구센터)의 대외정책 전문가 에드워드 러트와크의 비판은 강도가 더하다. 그는 『미국인들이 그곳에 가서 목숨을 바쳐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오일 때문이라면 유럽 일본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알바니아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반동적이며 절대군주 정권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켜야할 정치적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잡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의 편집자인 보수주의자 톰 베텔은 『쿠웨이트의 오일이 아랍 전통의상을 걸친 몇몇 토후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독재자의 장악 아래 들어갔다고 해서 왜 미국인들이 분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시 정책에 비판적인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또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아랍 세계와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지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대외개입에 통상적으로 반대해온 진보파들은 대부분 강력한 친이스라엘주의자들이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험한 적인 이라크에 타격을 주는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친이스라엘파 가운데도 커크패트릭 여사 같은 사람은 부시의 개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페르시아만에서 갖고 있는 미국의 이해가 단독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과 광범위하게 나눠 갖고 있는 국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이들 나라들로부터 실질적인 기여를 끌어내 사태해결의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컬럼니스트 폴 지고트는 보수주의자들이 부시의 페르시아만 사태 개입 명분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보수주의자로서의 부시에 대한 회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만일 레이건이 이번과 같은 개입정책을 단행했다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부시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 이라크 강경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인 잡지 내셔날 리뷰의 편집자 존설리반은 『앞으로 부시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가 대외 개입문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진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이번페르시아만 사태가 서방측의 승리로 끝날 경우 신고립주의 성향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정치ㆍ경제안정이 통일의 지름길/슈미트 전서독수상「전경련특강」내용

    ◎「동ㆍ서독통합」은 한반도에 교훈/동구변화 북한에도 파급 기대 전직수반회의참석차 내한한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수상이 25일 상오 신라호텔에서 전경련 주최로 국제정치전망에 대해 특별 강연을 했다. 30년전에 한국에 와 보고 이번이 두번째이다. 나는 그사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았다. 여자들이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도 산업발전과 함께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최근 2∼3년 사이에 중요하면서도 흥미있는 변화가 있었다. 특히 소련이 대내외적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동구뿐만 아니라 한국ㆍ일본 등 전 아시아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구에서는 평화로운 혁명이 발생했고 이제 다원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련은 동구의 변화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르바초프는 분명 전임자들과는 다르다. 동독의 가장 큰 변화는 오는 7월초면 서독정부와 기술ㆍ경제 및 화폐의 통합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실상 서독으로의 흡수라고 볼 수 있다. 냉전은 이제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군비축소가 압력때문이 아니라 자발적 의사에 의해 계속될 전망이다. 재래식무기에 관해서는 다소 지연될 전망이지만 전략무기제한은 지속될 것이다. 다른 큰 어려움은 소련의 국내문제와 고르바초프의 입지에 있다. 지난 25년의 어느 시절보다도 소련내 물자의 공급이 부족하고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자유덕택에 불만이 자유롭게 토로되고 있다는 측면도 있으나 사실상 북경보다 더 어려운 실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중의 지지가 떨어진 상태에서 3개월후 3년후의 고르바초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프간침공 같은 사태는 다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또 남한의 능력이 북한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동ㆍ서독관계에서도 동독의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줄 능력이 서독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와 함께 한번도 대화의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면도 중요하다. 수십억마르크의예산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어주었고 양심적 인사를 석방하는 대가로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정치적ㆍ경제적ㆍ심리적으로 통일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는 듯하다. 풍선속에 선전물을 넣어 날리는식의 비생산적ㆍ비효율적 방법은 지양돼야 한다. 유럽의 변화는 여타지역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92년까지 「유럽요새」가 완결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제로 57년이래 계속돼 온 통합노력은 92년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12년전 지스카르 데스텡(당시 프랑스대통령)과 함께 EMS(유럽통화제도)를 만들때 고정환율제도가 채택되어 있어 어려웠던 점에 비하면 큰 진전이라 하겠으나 유럽의 11개 중앙은행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한 실질적인 유럽통합이라고 볼 수 없다. 새 유럽이 보호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유럽은 무역에 관한한 일본보다 자유로웠고 앞으로도 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농산물이 예외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이탈리아에 쌀을 수출하려고 기도하지 않는한 이는 큰 영향을 주지못할 것이다.권력은 총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미래세계에서는 권력이 경제력에서부터 나오고 다른 나라를 도우려는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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