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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PK의원들’YS 편들기’

    한나라당 PK(부산·경남)출신 민주계 의원들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편들기에 나선 가운데 김전대통령은 민주산악회(민산) 재건사업에 본격 시동을걸었다. 신상우(辛相佑) 강삼재(姜三載) 박종웅(朴鍾雄) 김도언(金道彦) 정문화(鄭文和) 정재문(鄭在文) 권철현(權哲賢)의원 등 PK출신 의원 7명은 29일 모임을 갖고 김전대통령과 민산에 과잉반응을 보이지 말 것을 당에 촉구했다. 이들은 민산 참여를 해당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당 방침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이어 “다시 오해가 생길 경우 당에 자신들의생각을 직접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과 김전대통령의 연대 가능성에 기대를 걸면서도 “큰 목적을 위해서는 합치될 수 있지만 전제조건으로 당이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당과 김전대통령은 민주정치 실현을 위해 동지적 입장”이라면서 김전대통령을 원군으로 생각하는 아량을 촉구했다. 의원들은 “민산 재건 취지는 현정권의 오만과 무소불위를 제재하기 위한정치집단을 형성하겠다는 뜻”이라면서 민산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임에 앞서 신상우의원은 상도동 김전대통령을 방문해 의견을 교환했다.이 자리에서 김전대통령은 “현재까지 신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창당설을 부인했다.그러나 신의원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수 있고 그때 가면 한나라당과 관계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한편 김전대통령은 이날 민산 지방대표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민산 재건사업을 계속했다. 지난 21일에 이은 두번째 모임으로 부산 경남 전남 경기 울산 등 5개지역민산대표 10여명이 참석했다.이 자리에서 김전대통령은 민산 재건에 나서게된 배경과 향후 활동 등을 설명했다. 김전대통령은 이르면 내달중 민산의 조직구성 및 향후 활동방향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후 9월쯤 발기인대회 형식의 ‘민산 전국대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인물영입을 위해 김동길(金東吉)전연세대교수,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전총재대행,박찬종(朴燦鍾)전의원과이인제(李仁濟)씨를 비롯,서석재(徐錫宰),김운환(金^^桓)의원 등 여권에 몸담고 있는 과거 측근들은 물론 재임시 각료 등에도 합류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대부분의 인사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준석기자 pjs@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1980년대 공산주의의붕괴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낸 최선의 제도로 판정받았다고 진단하고,이데올로기 논쟁은 끝났으므로 이 양대축을 여하히발전·개선시켜 나가는가 하는 것이 역사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보통선거,법치주의,견제와 균형,언론자유 등을 골간으로 하여 개인의 권리와 자유,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최선의 제도라는 것이다.또 시장경제는 민간자율과 공정경쟁을 근간으로 경제활동을 시장의 수요공급의 원리에 맡김으로써 부의 창출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떤 제도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21세기 우리의 최대 국가과제는 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있다.시대를 앞서가는 선진국가들은 모두 예외없이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다.우리 나라도 이들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1997∼98년의 금융위기는 우리의 경제적·사회적 체질을 재점검하고,민간자율과 공정경쟁에 입각한 진정한 시장경제의 새 틀을 짜는 구조개혁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우리는 1960년대에 경제개발에 착수하면서 시장경제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이제 비로소 그 기본틀을 짜고 있으니 시장경제의 실현은 참으로 긴 체제형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는 완벽한 이상형의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다만 끊임없는 개선의 과정이 있을 따름이다.그래서 그 틀은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른 유형을 가지고 있다.미국의 유형은 유럽대륙의 유형과 다르다.미국의유형은 자유에 중점이 있고 대통령중심제이며,유럽대륙의 유형은 평등에 중점이 있고 내각책임제 지향이다. 그러나 모든 유형은 두 가지 기본 전제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그 첫째는 계약사상이요,둘째는 정직과 신뢰의 덕목이다.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계약사상과 정직의 덕목 위에서만 번창할 수 있기 ^^문이다. 명령과 복종으로 움직이는 독재사회는 굳이 정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그러나 개인의 의지가 집합되어 움직이는민주사회는 사람들사이의 정직과 신뢰가 발전의원동력이다.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는 확률이 높은사회가 바로 민주국가요,시장경제라고말할 수 있다.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성숙도는 계약사상과 정직의 수준과 정비례한다.투명도지수,부정부패지수 등은 바로 그러한 평가표다. 어떻게해야 정직한 사회,계약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가.그 대답은 역설적이지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원칙을 더욱 뿌리내리고 확산하는 일이다.이것은정부의 몫이기도 하고 사회구성원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정직하게 사는 운동,지연·학연·혈연을 넘어 계약과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자각과 실천이 모든 개인의 작은 생활권에서 있어야 한다.이러한 작은 운동이 모여 큰 흐름을 이루어 우리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초석을 굳건히 하는 힘이 되리라.
  • 고양·용인시장 補選 서서히 열기

    고양시장(8월19일) 용인시장(9월초) 보궐선거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벌써부터 현지에선 누구누구가 나선다는 등의 얘기가 나돌자 여야 모두후보선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여당은 누가 후보로 낙점되든 양쪽지역 모두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국민회의는 27일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후보자심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양시장 후보는 원점에서물색중이다.후보로 내정됐던 이영복(李永馥)고양·덕양지구당 위원장이 불출마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이위원장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에따라 행정경험이 있는 조한유(趙漢裕) 현부시장(49),김학재(金學載) 2000년 고양시 꽃박람회 사무처장(59·전부시장),이성호(李星鎬) 전고양부군수(63) 등 3인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용인시장 후보로는 예강환(芮剛煥) 현부시장과 김정길(金政吉) 전의원과,김학민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박세호 용인문화정책연구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국민회의의 몫이라 자민련이 양보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자민련은 김학기(金學基·50)전용인시 지구당위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어 조정여부가 주목된다. 한나라당 경기지사 부부구속 사건 등으로 민심이 야당에 호의적이어서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16대 총선의 판세를 가늠할 전초전의 성격이 짙은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전략이다. 고양시장 후보에 모두 7명이 등록,이 가운데 김용수(金龍洙)부대변인과 황교선 한일약품 고문 등 2명으로 좁혀진 상태다.특정후보 내정설로 잡음이 생겨 후보선정이 늦어지고 있다.이에 따라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전권을 위임,28일 열리는 당무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용인시장 후보도 곧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이총재의 핵심측근인 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이 유력시 되고 있다. 강동형 박준석기자 yunbin@
  • 자민련 당무위원4명 임명

    자민련은 26일 김일주(金日柱)의원과 허재홍(許在弘)전의원,김순애(金順愛) 당 중앙위 해외교포 분과위원장,최종태(崔鍾泰)전부대변인을 당무위원으로임명했다.최종태 전부대변인은 청년위원장을 겸임한다. 곽태헌기자 tiger@
  • YS “민주산악회 재건하겠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은 21일 정권 창출의 기반이 됐던 사조직인 ‘민주산악회(민산)’를 전국적으로 재건하겠다고 밝혔다. 김전대통령은 이날 낮 상도동 자택에서 김동규(金東圭)전의원등 과거 민산간부들과 오찬을 한 뒤 “최근 현정권이 보여준 일련의 사태는 장기집권 음모”라면서 “독재와 장기집권을 분쇄하기 위해 민주산악회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고 측근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이 전했다. 박의원은 “민주산악회는 5공 시절 민주산악회가 주축이 됐던 ‘제2의 민주화추진협의회’와 같은 성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내년 총선에대비한 조직으로 보지 말고 현정권의 독재화와 장기집권을 분쇄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제2공화국과 張勉](30·끝)시리즈 결산 전문가 좌담

    ‘제2공화국과 장면(張勉)’시리즈를 30회로 마감하며 제2공화국 시대와 장면정부,그리고 장면에 관해 총정리하고 평가하는 대담을 갖는다.참석자는 ▲장면정부 때 민의원 의원으로서 내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김영구(金永求)씨와 ▲올 가을 ‘장면 재조명’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사진전시회 등을 준비중인 조광(趙珖)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이다. 김영구전의원 제2공화국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게 돼 장면정부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반갑습니다.그동안 장면정부의 실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왜곡된 모습만 강조됐습니다.뒤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지요. 조광교수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을 평가하려면 그 기준부터 제대로 마련해야 합니다.한국 현대사의 지향점은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입니다.정치적으로는 문민통치에 입각한 민주사회의 확립,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한 국민소득 증대를 추구하는 것 등이라고 봅니다.하나의 정권이나 인물을평가할 때 이런 정책들을 굳은 신념을 갖고 현명하게 추진했느냐가 중요한평가요소가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야말로 자유당 일당독재에 맞서 국민 참정권 회복에 공헌한 민주투사예요.제2공화국 내각 수반으로서 민주사회 확립을 도모했고,관료 공채제도를 최초로 시행해 관료사회의 전문화와 효율화도 꾀했고.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장기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해 이를 관(官)주도가 아닌민간자율 형식으로 실천했습니다. 조교수 장면박사는 이 땅에 단군이래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신화를 역사적 현실로 바꿔놓은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자유당 독재체제 아래 위축됐던 각 이익집단과 사회단체들이 분출해 내는 욕구를 권위주의적인 방법으로억누르지 않았습니다.대화라든지 협력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취했습니다. 김전의원 사실 억업됐던 자유를 풀어주니까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습니다. 방종으로 흘렀다고나 할까요.이를 극복하지 못해 군부세력이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키는 소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하긴 장면정부가 무능해서 쿠데타가일어난 것만도 아니지요.군부세력은 이승만정부 때부터 쿠데타를 계획해왔으니까요. 조교수 각종 한국사 개설서를 들춰보았는데 자유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부정 일변도로 기술했습니다.연구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 평가한 것이지요.저는 장면정부가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아니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부패,무능은 쿠데타이후 군사정권이 정당성을 강변하려고 조작한 것입니다. “부패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그보다는 혁명적인 열정과 순수성을 갖고 정치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그 청렴성은 정권에서 담보됐습니다.공채제도 하나만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이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전제해야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전의원 공개채용에는 사심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입학시험 보듯 한 거니까요.그때 뽑힌 사람들이 나중에 거의 전부 장·차관을 했습니다.유능한 사람을 시험 쳐서 뽑았으니까 그대로 키우니 인재가 된 거예요. 조교수 장면정부를 ‘데모공화국’운운하는 것도 잘못이지요.쿠데타 직전에는 오히려 데모가 줄고 사회가 안정돼 갔으니까요.데모 하나 진압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라는 비난은 쿠데타를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부패의 예라고 거론된 사건이 몇가지 있지만,모두 정략적 차원에서 나온 모략이라는 것이(쿠데타세력의)혁명재판에서 입증됐습니다.공판기록에 다 나와 있거든요. 당시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시급합니다. 김전의원 당시 우리는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영영 놓친다고 생각하고 밤낮으로 머리를 싸맸습니다.머리를 짜낼만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 밤을 샜어요.국토개발계획의 틀이 거기서 나왔습니다.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내려져야 해요.군사정부는 장면정부로부터 하나도 이어받은 것이 없다고 하고,국토개발계획도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민주당정부에서 만든 겁니다. 군사정부는 또 아무 기초도 없이 재벌을 양산했습니다.그래서 중소기업의 토대가 없어졌어요.재벌의 배만 불리는 재정·경제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IMF로 이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조교수 외교면에서도 대단히 유능한 정권이었습니다.우월한 입장에서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추진했지요.제2공화국이 한·일관계에서 어떤 정책을수립하고 무엇을 했는지 더 밝혀야 합니다. 김전의원 한·일관계 정상화 교섭 때 장면정부는 처음 일본에 배상금을 100억달러 요구했어요.일본정부가 깜짝 놀라 “그 절반 정도면 안되겠느냐”고 했습니다.교섭 당사자의 말을 들으니 50억달러는 무난했고 아마 70억∼80억달러는 받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그런데 쿠데타후 군사정권은 ‘3억달러+α’에 합의했습니다.국민을 배신한 것이지요. 조교수 이 문제가 밝혀져야 장면정권의 진면목을 알게 됩니다.군사정부는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서둘렀고 국민에게 이같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 6·3사태가 일어난 겁니다. 김전의원 군사정부는 ‘3억달러+α’를 받아서 기반을 닦았다지만 민주당정부를 그대로 두었더라면 50억달러이상을 받아 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저는 지금도 그것을 한(恨)으로 생각합니다. 조교수 이는 특히 강조해야 할 부분입니다.일본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매달릴 때 고자세로 나가야 했는데 말입니다.군사정부는 태생적인 취약성 때문에 열세의 입장에서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김전의원 신·구파 갈등을 많이 이야기하는데….조병옥(趙炳玉)박사가 일찍 돌아가신 게 비극이에요.조박사만 타계하지 않았더라면 신·구파가 갈라서지 않았을 겁니다.윤보선(尹潽善)씨나 김도연(金度演)씨는 리더십을 가진사람이 못됩니다.그나마 윤보선씨가 구파를 장악했더라면 일본 자민당처럼(신·구파가)교대로 정권을 잡았을텐데.그랬다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아30년 동안 군사독재 때문에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기지도,국민이 고생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교수 모든 정권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갈등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됩니다.요는 수습과정과 합의된 의견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의 정당성 여부입니다.장면정권은 권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합의를 도출해내는 힘을가졌습니다.내각이 몇차례 바뀌고 보강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쿠데타 직전에는 안정이 됐습니다. 김전의원 장면박사가 평화시에는 훌륭한 재상이 될 수 있지만 난세에는결국 어려웠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하지만 장박사는인간적으로,정치적으로 훌륭한 분입니다.상대방 파트너들이 나빴지요.그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쿠데타에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교수 장면박사가(정치에 어울리지 않는)성직자 상이라는 평가는 우리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정치인은 적당히 부패하고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는 평가는 전근대적 지도자 상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장박사는정치인으로서도 정당성을 확보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련의 저항세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이 때문에 쿠데타로 정권을 상실했다는 시각이 있지만,공과를 논할 때 공(功)은 장박사에게 돌리고 허물은 당시 한국사회의 후진성 내지는 미숙성에 돌려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당시 과(過)의 대부분은 개인의 능력부족이나 결함에서 유래했다기보다는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김전의원 제2공화국 사람들도 다 가고 내 나이도 이제 여든인데….대한매일이 진상을 파헤쳐준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이 시점에서 바로잡지 않으면(장면정부의 진실은)영원히 역사적으로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집니다.학자들이 깊이,또 많이 연구해 나가기 바랍니다. 조교수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그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출발선에 섰음을 알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민주사회의 정당성에관한 일반의 의식을 드높이는 데도 이바지했습니다.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학계에 부여한 점도 빼놓을 수 없지요. 덧붙이자면 장면박사와 제2공화국에 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우리의 장래를 위해 모델을 찾는 작업에 너무 무관심합니다.학계도 그렇고 일반인도,제2공화국 연구를 강화하고 이해를 깊이해 우리 민주주의를 건전한방향으로 이끌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매일의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현대적 요청에 부합하는,시의적절하고도 역사성을 가진 기획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 이용원 문호영기자 ywyi@■張勉시리즈 목차 지난 2월23일 시작해 오늘 30회로 끝을 맺은 ‘제2공화국과장면(張勉)’시리즈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2회 국토건설사업(상·하) 3∼5회 경제개발 5개년계획(상·중·하) 6∼8회 윤보선(尹潽善)과의 갈등(상·중·하) 9∼11회 신구파 대립과 분당(分黨)(상·중·하) 12회 소장파(少壯派)의 도전 13∼15회 분출하는 욕구(상·중·하) 16회 혁신계의 부침(浮沈) 17∼18회 봇물 터진 통일론(상·하) 19∼20회 요동치는 군(상·하) 21회 대일(對日)외교 전략 22∼23회 지지부진한 혁명과업(상·하) 24회 실패한 내각책임제 25∼27회 장면의 정치역정·생애(상·중·하) 28∼29회 김대통령 특별회고(상·하) 30회 시리즈 결산 전문가 대담대한매일·스포츠서울 뉴스넷(http:///www.kdaily.com 또는 http:///www.seoul.co.kr/)은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물 총 30회분을 정리,별도의 아이콘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의원들“내 지역구 어찌되나”초긴장

    국회의원 정수(定數)축소에다 선거구제 변경까지 맞물려 의원들은 ‘전시(戰時)’체제에 돌입한 것 같다.여야가 중·대선거구제로 합의하면 공천문제는 더 복잡해진다.신경전도 심할 수 밖에 없다.인접한 지역구의 같은당 소속 의원들은 더 이상 이웃사촌이 아니고 싸워야 할 경쟁자다.여야의원간의 신경전이야 말할 것도 없다. 재선인 국민회의 A의원(전북)은 요즘 중·대선거구로 될 것에 대비해 통합가능성이 있는 인근 지역구의 유지와 군의원들을 만나고 다닌다.해당지역 출신인 B의원측의 보좌관은 25일 “A의원의 행태가 몹시 불쾌하다”고 말했다. A의원처럼 인접지역을 넘는 월경(越境)은 요즘 일반화된 정치행태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국민회의 김근태(金槿泰)부총재(서울 도봉갑)와 설훈(薛勳)의원(서울 도봉을)의 관계는 요즘 동료의원들의 미묘한 입장을 대변하는 사례다.개혁파 기수인 김부총재나 동교동계의 실세인 설의원중 한명은 지역구를 다른 곳으로옮길 가능성이 높다.김부총재측은 설의원이 고향인 경남 마산으로 옮겼으면하는 눈치다.반면 설의원측은 김부총재가 출신지인 경기 부천쪽으로 가는 게 순리라는 논리다. 국민회의 C의원(서울)은 “내 지역구에 자민련의원이 돌아다니고 있다”며불만을 터뜨렸다.초선인 국민회의 D의원(서울)의 심기도 불편하다.현재는 정치권에서 벗어난 같은 당의 전(前)의원이 지역구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탓이다.자민련 초선인 E의원(충북)도 같은당 소속의 중진인 전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노리는 것 같아 불쾌해하고 있다. 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의원(경북 고령·성주)은 지난 달 16일 칠곡에서이회창(李會昌) 총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 청년위 발대식을 가졌다.고령·성주와 합쳐질 가능성이 있는 칠곡에서도 세를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제2공화국과 張勉](25)장면과 가톨릭…정치고비마다 후원자로

    장면(張勉)을 정치가로서 해부하건,인간적으로 이해하건 그 출발점은 같은자리에 있다.곧 가톨릭 신앙이다.장면의 정치는 출발부터 마감까지 신앙의테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장면을 정치의 길로 ‘내몬’사람은 노기남(盧基南)대주교다.한국인으로서처음 서울교구장이 되고 주교자리에 오른 그는 해방 당시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노주교는 대한민국 출범을 앞두고 정계에도 가톨릭을 대변하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가 염두에 둔 인물이 장면이었다. 장면은 노주교보다 나이는 겨우 3살 많았지만 소신학교에서 직접 그를 가르쳤다.게다가 인품·덕망이 뛰어나 노주교를 비롯한 제자들에게서 진정한 스승으로서 대우 받았다.그런 한편으로 신자인 장면에게 노주교는 순명(順命)의 대상이었다.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노주교에게 정계진출을 권유받은 장면은 처음에 펄쩍 뛰며 거부한다.교육자로 남겠다고 했다.그러나 거듭되는 강권에 못이겨출마한다.선거전이 시작되자 노주교가 진두지휘를 했고 가톨릭이 운영하는경향신문·경향잡지가 총동원돼 선거운동을 벌였다. 제헌의원이 된 장면은 첫번째 주요 임무인 ‘유엔에서의 한국 승인’을 받아낼 때도 가톨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당시 국내에는 친한파인 패트릭번 신부가 교황사절(바티칸이 국교를 맺기 전에 파견한 대사)로 있었다. 장면이 출국인사차 번 신부를 찾아가자 그는 파리주재 교황대사와 유럽·중남미의 가톨릭국가 대표들에게 보내는 소개장 10여장을 건네주었다.이 소개장은 파리에서 큰 효력을 발휘한다.한국을 몰라 냉담하던 이들이 소개장을받고나서는 앞장서서 다른 나라 대표들을 인사시켜줄 정도로 적극 협력했다. 장면은 훗날에도 주위사람들에게 이때 일을 자주 이야기하며 고마워했다. 한편 이승만(李承晩)은 나름대로 장면과 노주교의 관계를 이용했다.이승만은 장면에게 유엔대표단장·주미대사·총리 등 중책을 맡길 때마다 노주교를불러들여 상의하는 형식을 취해,장면으로 하여금 거절하지 못하도록 미리 쐐기를 박았다.이러한 삼각관계는 장면이 52년 4월 총리를 그만둘 때까지 계속된다. 장면이 제헌의원-주미대사-총리-부통령을 단계적으로 밟아 결국 제2공화국정부를 맡은 정치가로 성장한 바탕은 물론 그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이다.그러나 가톨릭 세력의 끊임없는 지원이 큰 보탬이 된 것도 사실이다. 장면 자신의 정치형태 또한 신앙인의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장면내각에서 총리 공보비서관이었던 송원영(宋元英)은 “종교인으로서 성실의 원칙을정치에 적용하려 했으며 소위 정치적인 권도(權道)나 거짓말을 이용하는 일을 거의 생리적으로 배척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장면의 정치활동도 가톨릭의 테두리 안에서 끝났다.5·16쿠데타가 일어나자그는 수녀원으로 도피,쿠데타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뒤에야 그곳에서 나왔다. 수녀원에 있던 55시간동안 장면은 누구보다도 고뇌했을 것이다. 세월이 어느정도 흐른 어느날 민주당 신파의 장경순(張慶淳)전의원이 수녀원에서 지낸 시간에 관해 조심스레 물었다.장면은 “정치인과 종교인이라는 갈림길에서 정말 고민했다.결국 종교 쪽으로 결정했다.정치를 택했다면 (쿠데타군과 진압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서울시민의 희생이 컸을 것이다.권력을빼앗겼다거나 무능한 정치인이었다는 낙인은 감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한다. 이용원기자
  • ‘DJ 내란음모사건’재조명 추진

    - 여권의 한화갑의원등 당사자들 주축 오늘 회동…내년 기념사업개최 논의 지난 80년 ‘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사건에 연루돼 옥고를치렀던 대표적 인사들은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 김상현(金相賢) 김옥두(金玉斗) 김홍일(金弘一) 설훈(薛 勳)의원과 한승헌(韓勝憲)감사원장,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이문영(李文永)아태재단이사장,한완상(韓完相)전부총리,이해동(李海東)목사,고은(高銀)시인,김종완(金鍾完) 예춘호(芮春浩)전의원 등. 이들과 그 가족 30여명은 사건발생 19주년인 17일 모임을 갖고,20주년을 맞는 내년에 이 사건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사건 관련자들이 기념사업 준비에 나선 것은 그동안 사건자체를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준비모임측은 우선 이 사건이 갖는 의미와 평가를 담은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제)라는 책과 사건 관련자 및 가족들의글·회고담을 엮은 ‘좁은 공간,긴 사연’(가제)이란 책 출간을 구상하고 있다.또 당시 재판사진을 비롯,민주화운동 관련 사진들을 모아 ‘렌즈로 본 20년’이란 사진집을 내고 내년 20주년을 전후로 사진전시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이와 함께 이 사건과 관련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건 관련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화하기로 했다.이를 다른 민주화 관련 사건이나 단체의 홈페이지와 연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설훈의원은 16일 “그동안 정기모임을 가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사건 전체를 재조명하고 총정리하는 기회를 갖자는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제2공화국과 張勉](23)-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下)

    장면(張勉)정부에게 부정축재자 처벌은 정치비리 사건 처리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국민감정을 만족시키려면 ‘부정축재’범위를 넓혀 주요 기업인들을 대부분 구속하고 그들의 재산을 국고에 환수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경제활동을 크게 위축시켜 가뜩이나 어려운 국민생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더욱이 국정지표의 으뜸으로 ‘경제제일주의’를 내건 장면정부로서는 민간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도 있는 정책을 섣불리 시행하기가 어려웠다. ‘국민감정을 따른다’는 명분과 ‘경제건설의 토대를 망칠 수 없다’는 당위 사이에서 그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장면정부의 고민이었다.그고민은,장면이 총리로 등극해 처음 민의원에서 밝힌 시정방침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장면은 우선 “구정권 하에서 부정·불법 축재한 자를 처단할 것은 물론이나 사업과 경제를 마비시키지 아니하는 적절한 한도는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이어 과도정부가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적발한 46개사,23명을 계속 수사하는 한편 추가조사도 벌이겠다면서 “증거를 포착하기 곤란한 만큼 국민의 협조가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정축재자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정치비리 관련자에 대한 것 못지않았다.이승만(李承晩)이 하야한 지 10여일만인 1960년 5월1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부정축재자의 재산을 환수하라”는 데모가 일어날 정도였다. 반면 부정축재의 범위를 정하고 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는 정치사건에 비해 훨씬 힘들었다.게다가 허정(許政)과도정부가 부정축재자 처리를 ▲징역형보다는 재산형(財産刑)으로 ▲그것도 현금이 아니라 주식으로 헌납하도록 테두리를 정한 터여서 운신의 폭은 좁았다. 장면정부가 출범한 나흘 뒤인 8월27일 참의원(상원)은 ‘부정축재자 조사특별위원회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31일에는 정부가 부정축재한 46개 업체에 벌과금 87억환,추징금 109억환을 통고했다. 장면정부는 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 추진하던 부정축재자 처벌은 정치비리 관련자 처리와 맞물려 소급입법 대상으로 넘어간다.개정헌법을 바탕으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청조직법은 60년 말에 속속 제정되지만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은 해를 넘긴다. ‘부정축재처벌법’제정이 늦어진 까닭은 장면정부의 경제진흥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61년 봄 국토건설사업을 시작해야 했고 경제개발5개년계획(1962∼66년)을 거의 성안(成案)한 입장에서 민간경제계를 ‘죽일지도 모르는’모험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더욱이 장면정부는 60년 12월5일부터 닷새동안 ‘종합경제회의’를 열어 경제개발을 해나가는 데 민간경제계와 보조를 맞추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부정축재처벌법’안은 61년 2월9일 민의원을 통과한다.60년 4월26일을 기준으로 그 5∼8년전까지를 조사대상 기간으로 정해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한 자 ▲‘3·15부정선거’에 1천만환 이상 정치자금을 제공한 자 ▲지난 5년간 연 1천만환 이상 탈세한 자를 처벌대상으로 삼았다.경쟁입찰에서 담합했거나 재산을 해외도피한 자,뇌물수수로 연 600만환 이상 이득을 취한 공무원도 부정축재자에 포함시켰다.경제계는 예상을 뛰어넘는 엄격한 기준에 큰 충격을 받았다.법안대로라면 처벌받을 사람이 5만7,00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61년 초 결성된 한국경제협의회(전경련의 전신)는 대한상의·무역협회·방직협회·건설협회와 뜻을 모아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3월4일 몇몇 일간지에 발표한 경제 5단체 성명서의 뼈대는 다음과 같다.“이 법안이 그대로 참의원을 통과하면 사회에 일대 혼란을 불러들여 기업인의손발을 묶을 것이다.기업활동을 가로막고 민족자본을 흐트러뜨리며 나아가분열을 조장하는 이 법안을 제정하지 않기를 충심으로 진언한다.”이 성명서는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그 안에 “북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남한의 경제 번영이라면,이 법안은 북괴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약속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의원이 곧바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경제협의회 대표를 출석시키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성명서 해프닝’은 경제5단체가 해명서를 신문에 싣는 것으로 결말짓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권은 “중소상공인 5만여명이 피의자로 묶인다면 경제진흥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경제계 주장을 어느정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참의원에서의 법안 심의에 반영됐다.민의원에서 통과된 법안 내용을 참의원이 대폭 완화한 것이다.수정안은 처벌대상을 ▲3·15선거에서 자유당에 자진해서 3,000만환 이상을 제공한 자 ▲공무원 및 정당인으로서 부정하게 재산상 이득을 취한 자로 제한했다.피의자는 5만7,000여명에서 600여명으로 크게 줄었다. 참의원의 수정안은 4월12일 민의원에서 그대로 통과됐다.재석 163석 가운데찬성 138표,반대 25표였다.장면총리는 각료를 모두 대동하고 표결 현장에 참석해 재계를 지원했다. 국민감정을 만족시키느냐,아니면 경제진흥을 위해 정치에 연루된 경제인들을 용서하느냐 라는 갈림길에서 장면정부는 후자를 택했다.경제발전이야말로시대적인 사명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법에 따른 부정축재처리위원회(위원장 沈宗錫 참의원 의원)는 5월4일 가동됐다.위원회는 처벌 대상자에게 5월16일까지 자진신고하라고 공표했는데 그 마감일에 쿠데타가 터졌다. 군사정권은 61년 12월20일 기업체 30개사에 494억여환,공무원 32명에 75억환의 부정축재분을 환수한다고 최종 통보했다.이어 62년 1월23일 백인엽(白仁燁)예비역 육군중장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부정축재자 12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張총리“소급입법 위헌”첫 지적 장경순(張慶淳·73)씨는 민주당 신파 출신으로 5대 국회에 진출,재경분과위원회에서 활약했다.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의 추천으로 중앙정계에 데뷔한그는 장면(張勉)정부의 경제관련 정책을 가까이서,두루 지켜보았다. “부정축재자 처리를 민의원에서는 재경분과위에서 맡았습니다.민주당 신파건 구파건 구분없이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뜻이 같았지요.하지만 장면총리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장 전의원은,민의원이 ‘부정축재자 처벌법’제정을 놓고 갑론을박하던 어느날 밤 장총리가 신파 간부 15명을 중앙청으로 불러 회의를 열었다고 했다.한명씩 돌아가며 발언한 뒤 장총리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좋다.그러나 제정 후에 위헌 판정을 받으면 어쩌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소급입법은 위헌이므로 개헌을 거쳐야 가능하다’는 생각들을 못했기 때문에 장총리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그는 “장총리는 특별법 제정에 끝까지 신중을 기했지만,여론의 압력이 거센데다 윤보선(尹潽善)대통령마저 10월10일 특별담화를 발표해 독촉하는 바람에 소급법을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장 전의원은 부정축재자 처벌과 관련해 민주당이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말들이 나돌았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명했다.만약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챙겼다면 5·16쿠데타 후에 무사했겠느냐는 설명이다. 다만 몇몇 의원이 개인적으로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가령 민주당 이(李)모 의원이 나서 기업인들을 위협하는 발언을 하면 주위에서 “또낙전지변(落錢之辯=돈 달라는 말)이군”하며 혀를 차곤 했다고 기억했다. 장 전의원은 “장면정부가 몇년만 계속했어도 우리 경제가 훨씬 빨리,그리고 정경유착·빈부격차와 같은 부작용 없이 발전했을 것”이라며여러가지 근거를 들었다. 먼저 장총리를 비롯해 경제각료들이 모두 열의에 차 있었음을 꼽았다.“김영선장관 집으로 전화할 때는 새벽 5시 전에 해야 했다.그 시각이 지나면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참 부지런하고 청빈한 분들이었다”고 아쉬워했다. 국회 분위기도 마찬가지여서,의원 대부분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각오 아래 소장층은 건설복을 입고다니며 새생활운동을 실천했다고 회고했다.또 국정감사를 앞두고는 의원들이 “일체의 향응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의도 했다는 것. “서민생활 안정에 주력해 세법도 많이 개정했다”고 밝힌 장 전의원은 자신이 발의해 근로소득세 면세점을 1만6,500환에서 3만환으로 높였다고 공개했다.“하루벌이가 1달러(당시 달러당 1,300환)도 안되는 근로자에게서 소득세를 받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해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는 5·16쿠데타후 민주당 재건에 참여,6대 국회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이후에도 “당복(黨福)이 없어(당을 잘못 선택했다는 뜻)” 낙선을 거듭하다“가족을 먹여살리려고” 정치를 포기하고 사업가로 돌아섰다.지금은 여권전직의원들의 모임인 ‘일오회(一五會)’회장으로 있다. “장면정부를 무능·부패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악선전일 뿐”이라고 잘라말한 장 전의원은 “장면정부때 데모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 있느냐”“그때경제비리가 무엇이 있었냐”고 거듭 반문하면서 “데모가 전투처럼 변한 거나 대형 경제사건이 터진 것도 모두 박정희(朴正熙)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용원 기자
  • 여·야 ‘6·3결전’ 숨고르기

    - 공명선거 실천 대안 마련 원칙적 합의 '정책대결 협의' 사무총장 회동도 추진 6·3재선거를 둘러싸고 설전(舌戰)을 벌이던 여야가 호흡 조절에 들어갔다. 여야는 13일 선관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명선거 감시단’을 구성하는 데 동의했다.여야 모두 공명선거 실천 의지를 확인한 셈이다.그러나 여야간 독설(毒舌)과 압박전술은 여전해 공명선거 다짐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칠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여당 국민회의는 이날 고위당직자회의 직후 ‘선거 리콜제’ 도입을 야당에 제의했다.시민단체와 선관위로 구성된 선거감시단에 ‘선거 리콜권’을부여하자는 것이다.감시단이 선거를 모니터한 뒤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당선자의 법적 심판이 끝날 때까지 등원을 보류토록 하자는 요지다. 공명선거와 정책선거를 위한 여야 사무총장 회동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여당은 대야(對野)공세를 멈추지 않았다.손세일(孫世一)총무는이날 회의에서 “과거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은혜를 받아 대법관에 임명,군사정권 시절 법관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린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제2의민주화투쟁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총재를 몰아붙였다. 국민회의 박홍엽(朴洪燁),자민련 김창영(金昌榮)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이 12일 여의도집회에서 서울과 인천의 재선지역 등 수도권에서 50여대의 버스를 동원했다”며 “이는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이라고 규탄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선관위에 한나라당의 사전선거운동 행위를 고발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당 지도부는 이날 정당을 배제한 선거감시단을 구성하자는 여당의 제의를 받아들였다.‘선거 리콜권’ 부여에는 원칙적으로 의견을 같이했으나 “법적 근거가 필요하므로 6·3재선거부터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난색을 표했다.공명선거 다짐을 위한 여야 3당 사무총장 회담에도 긍정적인반응을 보였다.한편 이날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송파갑지구당 임시대회에는 소속의원 134명 가운데 112명이 참석,이총재 출마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특히 대회에는 이기택(李基澤)전총재대행,김덕룡(金德龍)부총재를비롯해 그동안 이총재와 소원한 관계를 보였던 조순(趙淳)명예총재도 모습을 보였다.전날 여의도집회에 불참했던 이한동(李漢東)전부총재 등 당내 비주류 인사들도 대거 동참했다. 조순 명예총재는 축사에서 “과감한 정치개혁에 앞장서 지역주의와 붕당성,그리고 공멸의 논리에 찌든 우리정치를 바로잡아 달라”고 당부했다.이총재의 송파갑 출마를 줄곧 주장한 이 지역 출신 홍준표(洪準杓)전의원은 “오늘 이 자리는 차기 대통령을 여러분의 힘으로 만드는 역사의 현장”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박대출 박찬구 박준석기자 dcpark@
  • 한나라·5共세력 신경전

    한나라당과 ‘5공’세력 사이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에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활발한 정치행보를 보이자 한나라당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7일 이회창(李會昌)총재 주재로 열린 당직자회의에서 “전전대통령의 부산·경남지역 방문은 정치적 저의가 내포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또 “5공 세력의 정치활동 재개는 현 정권의 방조 아래이루어지고 있다”면서 “김대중(金大中)정권이 여기에 대답해야 한다”고양측을 모두 겨냥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도 기자간담회를 자청,“5공 세력이 다시 준동하는 것은 역사를 깔보는 행위”라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역사를 비웃었던 사람들이 설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비난했다.이총무는 5공과 현 집권세력의 정신적 교감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산·경남 방문일정 도중 한나라당의 공세 소식을 전해들은 5공 인사들은“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전전대통령도 이날 언양읍 한 농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치인이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말고 서로 화합,양보하고 관용을 가져야 한다”고 한나라당 지도부를 간접 비판했다. 그는 이어 “여야간 싸움은 자기들끼리 풀어야지,나는 상관하고 싶지 않다”며 “서로 잘 이해하고 양보해야지 당리당략에 집착하면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고 국민을 걱정시킨다”고 충고했다. 허삼수(許三守)전의원은 “정치 움직임의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여권의 방조 운운할 수 있느냐”고 맞받았다.이양우(李亮雨)변호사도 “정치 재개를하지 않겠다는 마당에 한나라당의 주장은 가당찮은 얘기”라고 거들었다. 오풍연·부산 박찬구기자poongynn@
  • 자민련 ‘PK거물’ 영입작전

    자민련이 외연(外延)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16대 총선을 겨냥한 포석이다.최근에는 부산·경남지역이 주 공략 대상이다.특히 이 지역은 박태준(朴泰俊)총재의 고향이다.박총재로서는 각별한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박총재는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부산 방문 직후인 지난달 15일 부산시지부 개편대회에 참석했다.그러나 김전대통령을 비판하는 말을 삼갔다.매우이례적이다.김전대통령측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외연확대에 도움이 된다는계산이 깔려 있다. 이 지역에서는 김동주(金東周)의원이 박총재의 대역을 맡고 있다.영입 1순위는 박찬종(朴燦鍾)전의원이다.김의원은 박총재에게 “지역 연고가 확실하고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박전의원을 영입하면 차기 총선에서 부산지역에 자민련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적극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총재직을 제외한 모든 조건을 들어주자는 아이디어도 냈다고 한다. 그러나 박 전의원은 일단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자민련에 입당할 생각이 없다”는 반응이란 전문이다.김의원은 그러나 “아직포기할 단계는 아니다”며 ‘영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선의원 출신인 허재홍(許在弘)전의원의 영입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접어들었다.허 전의원은 전국구인 정상구(鄭相九)의원이 맡고 있는 부산남갑을 희망하고 있다.그러나 정의원이 지구당 양보 입장 표명을 유보,허 전의원의 입당이 지연되고 있다. 5공 핵심인사 허삼수(許三守)씨도 영입 대상이다.허 전의원은 자민련 간판으로 부산지역에서의 당선가능성에 대한 득실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대출기자 dcpark@
  • [사설] 犯法정치인 법정에 세워야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이호우 부장판사)는 김포매립지 용도변경과관련해 동아건설로부터 1억2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나라당백남치(白南治)의원이 공판에 두 차례나 출석치 않음에 따라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곧장 구인장(拘引狀)을 발부하겠다고 얼마 전 밝혔다. 우리는 정치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고관집 전문털이’사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범법 혐의로 기소돼 있는 국회의원들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기야 국가의 조세권을 악용해서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던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이 여야 동료 의원들의 감싸주기로 체포를 모면한 마당이긴 하다.그럼에도 재판에 나오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구인문제를 챙기고 있는 법원이 무척 대견하다.그러나 사실은 이달 초 서울지법 형사단독부와 합의부 판사들은 연석모임을 갖고 “법원이 정치인 재판에 단호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두차례 소환장을 받고도 출석하지 않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구인장을 발부하는 등 강경하게 조처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그에 따라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대휘 부장판사)는 공천헌금 3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김윤환(金潤煥)의원과 ‘공업용 미싱 발언’의 김홍신(金洪信)의원,경성사건과 관련해 3,000만원을받은 혐의의 이기택(李基澤)전의원에 대해 오는 30일 오후 2시 재판에 출석하라고 이미 소환장을 보낸 상태다.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법원의 소환장을 받은 정치인들이 고분고분하게 재판에 출석할 것 같지는 않다.그동안의 기록이 그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불법 정치자금 2,000만원을 받은 혐의의 국민회의 김종배(金鍾培)의원은 15회소환을 받고도 대부분 불출석했고,명예훼손 혐의의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10회 소환 요구에 불응한 채 유엔 인권위에서 한국의 인권유린 상황을 성토하기 위해 제네바에 가 있다.한 두차례 소환을 받은 다른 정치인들은 당연히(?)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 정치인들은 대부분 혐의가 무거운 데도 여야간의 정치적 타협으로 불구속 기소로 처리돼서 가뜩이나 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받고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소된 뒤에도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행위다.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한다.법원은 소환에 불응하는 정치인들을 구인해와야 한다.또한 법정태도를 양형(量刑)에 반영해야 한다.시민단체들은 재판을 거부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소환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시민들이 나서서라도 범법 정치인들을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 鄭亨根의원 제네바서‘국제망신’

    제네바 오일만특파원 제네바로 날아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현정부의 인권침해를 고발하겠다며 유엔 인권위에 참석했으나 정작 아무 발언도 하지 못했다. 대신 정의원은 인권위 회의장에서 낯뜨거운 ‘입씨름’을 벌이다가 다른 참가자의 눈총을 받았다.정의원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대표방양균씨와의 설전 때문이다.20·21일 이틀간 회의장에서 마주친 이들은 각국의 인권단체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문기술자가 유엔인권위에 참석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방씨)”,“내가 고문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대라.당신을 고소하겠다(정의원)”며 언성을 높였다.과거 안기부 고위직을 지냈던 정의원은 현재도 서경원 전의원과 ‘고문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이에 앞서 인권운동사랑방,민변 등 국내 15개 시민단체들은 “고문기술자정형근의원의 회의 참가를 막아달라”는 서한을 각 NGO대표들에게 전달했다. 당연히 정의원을 바라보는 회의 참가자들의 눈길이 싸늘해졌다.이 때문인지정의원은 정작 한나라당이신범(李信範)의원의 연설이 있던 22일엔 아예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문제가 됐던 정의원의 인권위 참가자격도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정의원은 자신이 관여하지도 않은 ‘국제교육개발(IED)’회원으로 참가했다.민변의 한 관계자는 “이신범의원이 미국 체류 당시 참여했던 이 기구에정의원의 이름을 올려 편법으로 유엔 출입증을 받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정의원은 ‘사진찍기’만은 열심히 챙기는 모습도 보여줬다.인권운동 사랑방(대표 서준식)의 한 관계자는 “21일 정의원이 회담장 안의 ‘유료사진사’를 동원해 자신이 직접 원고를 읽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전하고 “회의에 참가했다는 ‘증명사진’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고 꼬집었다. 이신범의원의 연설도 본래의 취지와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다.회의 목적대로 국가인권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총풍(銃風)과 고문논란,국회 529호실 문제 등 야당탄압 주장을 집중적으로 거론해 ‘정치선전장’으로 유엔인권위를 이용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한나라당측의 정치공세에 대해 장만순(張萬淳) 주 제네바대표부대사는 연설을 통해 “한국정부는 금년내에 국민인권위원회를 설립할 계획이며,인권위활동은 인권보장체제를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 정부의 인권보호 노력을 각 대표단에 강조했다. oilman@
  • 李仁濟씨 귀국후 행보는

    이인제(李仁濟)전의원이 27일쯤 귀국한다.지난해 10월27일 미국으로 떠난지 6개월 만이다.현재 그는 국민회의 당무위원이다.당무 복귀와 정치 전면에 나설지 벌써부터 관심이다.그동안 그는 미국의 조지워싱턴대와 조지타운대에서 국제정치학을,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수업을 받았다.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고 재충전을 하려는 뜻에서였다. 미국 연수를 끝내고 지난달 30일부터는 유럽을 여행중이다.이탈리아 영국독일 프랑스를 거쳐 18일부터는 일본을 방문한다.독일에서는 발터 리스터 연방 노동사회부장관을,프랑스에서는 차기 사민당 당수로 유력한 피에르 기든의원을 만났다.일본에서는 가이후 전총리,호소카와 전총리 등을 만날 예정이다.유럽 및 일본 순방은 국제적으로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서다.그는 전당대회가 8월로 늦춰져 6∼7월에 다시 외유를 떠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 당무위원은 차세대 주자의 유력한 후보다.그래서 귀국 후의 행보와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게다가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젊은 피 수혈론을 밝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이 당무위원은 8월의 전당대회에서 부총재로 기용될 가능성이 점쳐지지만그의 한 측근은 “현재처럼 17명이나 있는 부총재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명실상부한 부총재는 맡겠지만 유명무실한 부총재를 할 생각은없다는 의미다. 이 당무위원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당내 역학구도에 변화가 있을지도 관심거리다.대권의꿈을 간직한 그는 내년 총선에서는 차세대주자 위치를 확실히 다진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곽태헌기자 tiger@
  • [사설] 鄭亨根의원과 인권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55차 유엔 인권위 회의에 참석해서 현정부의 인권유린 실태를 보고하겠다고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회의는 정의원이 과거 안기부 수사국장과 차장을 지낸 전력을 들어 인권위 참석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공안사범 고문에 직접 가담한 혐의,북풍공작에 개입한 혐의,13대 총선때 홍사덕(洪思德)의원에 대한 안기부의 흑색선전공작에 개입한 혐의 등이 있는그가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 회의에 참석해서 인권에 관해 발언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뱉기이자 ‘국가망신’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정의원은 국회법사위 위원으로서 논란이 많은 한국의 인권위 설치와 관련,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유엔 인권위에 참석하는 것이라며 “구체적 증거도 없이 명예를 훼손하는 언행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우리는 이 논란에 굳이 끼어들 생각은 없다.그러나 과거 국민의 인권유린과 관련해서 악명이 높았던 안기부 고위직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사람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국민앞에 한마디 진솔한 사과도 없이 감히 인권을 들먹인다는 것은 국민을 얕잡아보는 태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아무리 공의(公義)가 땅에 떨어졌다 해도 그렇다. 그동안 정의원의 안기부 재직시 국민 인권과 관련한 활약상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그래서 우리는 정의원에게 딱 하나만 묻겠다.정의원은 안기부 재직시 그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해 있는 상태다. 그를 고소한 사람은 서경원(徐敬元)전의원이다.89년 당시 평민당 의원이던서씨는 북한을 몰래 방문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고 나왔다.서씨는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당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를 그 사건에 얽어들이기 위해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법정에서 밝혀질 일이다.말하자면 서씨의 고문 주장은 당장은 ‘증거’가 없다.그렇다면,정의원이 유엔 인권위에서 성토하겠다는 총풍사건 피의자에 대한 고문 의혹은 증거가 있는가? 자신에대한 비판은 증거가 있어야 하고,자신이 하는 비판은 증거가 없어도 된다는말인가? 정의원의 제네바행은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할 문제다.그럼에도 우리는 그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유엔 인권위에서 현정부의 인권유린을 성토하기에 앞서,자신의 안기부 경력과 자신이 고문 혐의와 관련해 피소된 사실을 밝히라는것이다.그리고 그같은 ‘자백’에 대한 국제인권운동가들의 반응을 전해주기바란다.
  • ‘鄭亨根 인권’ 유엔까지 확산 조짐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유엔 인권위 참석 정당성을 둘러싼 여야간시비가 유엔에까지 옮겨지게 됐다. 국민회의는 15일 당 3역회의를 마친 뒤 “안기부 재직 당시 ‘고문 연루’혐의로 고소된 정의원의 유엔 인권위 참석의 부당성을 직접 유엔에 직접 호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정의원 참석의 부당성을 지적한 자료를 유엔 인권위 고등판무관실에 보냈다.또 양성철(梁性喆) 당 국제협력위원장등 대표단을 16일 제네바에 직접 보내 부당성을 설명할 방침이다.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고문과 인권 탄압의 장본인이 NGO대표로 참석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인권에 대한 모독이자 국가망신”이라고 공세를 폈다. 국민회의는 또 정의원등이 한국 NGO 사칭행각을 하고 있다며 자격문제를 걸고 나왔다.정대변인은 “정의원등은 한국NGO가 아닌 미국 국제교육발전위원회 회원으로 유엔에 가는 것”이라며 “이들은 단지 유엔에 가기 위한 편법으로 회원자격을 급조했다”며 가짜 NGO대표라고 몰아 세웠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은 “정의원이 문제가 있다면 사법절차에 의해 유죄 선고를 내려야 한다”면서 “야당의원을 외국에까지 비방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이고 인권유린”이라고 반박했다. 시민단체들도 공방에 가세했다.민가협등 10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한국인권단체협의회는 이날 정의원의 유엔인권위 참석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서경원(徐敬元)전의원도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정보원 시절 정의원의 행적에대한 입장을 밝히고 유엔 참석의 부당성을 강조한다. 오풍연 최광숙기자 bori@
  • 與 “인권거론 자격있나” 野에 반격

    인권문제 거론 ‘자격론’을 둘러싸고 여권의 대야 공세가 거세다.시민 사회단체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한나라당이 정형근(鄭亨根)의원을 비정부기구(NGO) 대표자격으로 이신범(李信範)·김영선(金映宣)의원과 함께 17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55차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 보내겠다고 발표한게 발단이 됐다.한나라당 인권위는대표단을 통해 김대중(金大中)정부 아래에서의 인권탄압사례를 국제인권단체들에 공표하겠다는 자료를 냈다. 국민회의가 발끈했다.14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안기부 수사국장,차장출신의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을 집중 성토했다.정의원에 대한 ‘정계추방론’까지 제기했다. 국민회의는 전력과 자질,윤리적 측면 등 어떤 면에서도 정의원이 국제인권기구에서 현정부의 인권상황을 비판하겠다는 것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시각이다. 한 간부는 “국제인권기구에서 규탄받아야 할 인물은 바로 정의원 자신”이라며 정의원을 비판했다.또다른 참석자는 “국제기구에서 정의원이 연설을한다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없을 것”이라며 그 의미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바깥세계에서 이같은 행태가 계속되면 국익에 심대한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약발’은 없지만 나라 전체로 봐 국익에 피해를 주는 ‘중대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과 김현미(金賢美)부대변인은 “정의원은 고문을 당한 피해자로부터 고문혐의로 피소돼 있다”며 “정의원의 전력을 볼때,꿈에서도 인권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 등 각계도 ‘정의원 선정’에 곱지않은 시각이다.경실련 김영재(金英材)간사는 “정의원은 과거 우리나라 인권을 유린해온 책임자로 활동해왔던 사람”이라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부분을거론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명지대 신율(申律)교수(정치학)도 “검증되지 않은 (고문)얘기를 나라 밖에서 공표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인권유린행위”라며 “국익을 고려하는 정치인의 신중한 행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정의원과 한나라당도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정의원은 “현 정부가 (인권)문제가 많아 겁이 나서 그런 것”이라며 “인권문제에 당당히 응할 것”이라는 반응이다.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은 정의원이 서경원전의원으로부터 피소된 것을 겨냥,“국가보안법으로 복역한 서씨의 고소는 적반하장이며 서씨에게서 간첩꼬리는 뗄래야 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5공세력 개별출마로 갈듯

    5공 인사의 정치참여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영남지방을 나들이중인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5공 신당’ 창당 가능성을 부인했다.하지만 개별 출마를 통한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은 있다는 게 주변의 시각이다. 전 전대통령을 수행중인 정호용(鄭鎬溶)전의원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도와야 하며 이 점에서 전 전대통령도 생각이 같다”고 말해 5공이 국민회의에 우호적임을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영남권의 지역정서를 감안할 때 5공세력의 국민회의 입당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선거를 앞두고 정치상황을 보아가며 이들은 특정정당 입당이나 무소속 출마 등의 가능성을 타진할것으로 보인다.장세동(張世東)전안기부장도 “5공이 역사의 방관자가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그러나 5공에 절대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간접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16대 총선을 준비중인 인사로는 포항북갑 출마를 선언한 허화평(許和平)전의원 등 10여명에 이르는 것을 알려졌다.가운데 7∼8명은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 전대통령 측근의주장이다. 장 전안기부장은 “서울 송파갑 재선 출마는 내가 나서면 마치 5공 세력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비쳐 포기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16대 불출마 단언은 유보했다.지역구로는 대구 중구 등이 지목되고 있다.정호용 전의원도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그는 10일 “장세동,허삼수(許三守)씨와 뜻이 맞는 정당이 생긴다면 출마하겠다”고 말했다.허삼수 전의원도 “나간다는 이야기도,나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않겠다”며 여운을 남겼다.지역구는 정 전의원의경우 대구 서구갑,허 전의원은 부산 중·동이 거론된다.전 전대통령의 동생인 경환(敬煥)씨도 고향인 합천·거창에서 총선 출마를 위해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이종구(李鍾九)전국방장관(대구 동구갑),최열곤(崔烈坤)전서울시교육감(성주·고령),이치호(李致浩)전의원(대구 수성을),오일랑(吳一郞)전청와대경호실안전처장(고창),오한구(吳漢九)전의원(영주),김길홍(金吉弘)전의원(안동갑),김길부(金吉夫)전병무청장(대구 북갑) 등도 출사표를 던질 움직임이다. 추승호기자 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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