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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양 대성 전역, 빅뱅 모두 복귀 “많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태양 대성 전역, 빅뱅 모두 복귀 “많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그룹 빅뱅 태양(본명 동영배·31)과 대성(본명 강대성·30)이 군 복무를 마쳤다. 태양과 대성은 10일 오전 8시께 경기도 용인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앞에서 팬들과 취재진에게 함께 전역 인사를 했다. 태양은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며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고 부족한 저를 20개월 동안 이끌어준 간부님들과 전우들한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전역 소감을 밝혔다. 대성도 “사회생활 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더 많이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한 질문에 태양은 “일단 앞으로 많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열심히 고민하고, 저희끼리 의견을 모아서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들에게 보답 드리고 싶다”며 “군 생활했던 기간 동안 못 보여드렸던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쌀쌀한 날씨에도 위병소 앞에 팬 300∼400여명이 모여 이들을 기다렸다. 태양과 대성은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직접 준비한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이후 별도의 장소에 기다리던 팬 1천여 명과도 따로 전역 행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태양과 대성은 지난해 3월 현역 입대했다. 대성은 강원도 화천에 있는 27사단 이기자 부대에서, 태양은 철원 5포병여단 예하 부대에서 복무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항공작전사령관에 강선영 소장 진급자…첫 여성 소장

    항공작전사령관에 강선영 소장 진급자…첫 여성 소장

    김주희 대령, 정보병과 최초 여성 장군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에 처음으로 여군이 임명됐다. 정부는 8일 강선영(여군 35기) 준장을 여군 최초로 소장으로 진급시켜 항공작전사령관에 임명하는 등 하반기 장군 진급 인사를 단행했다. 강선영 장군은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항공작전사령관에 임명됐다. 강선영 장군은 임기제 진급이 아닌 정상 진급으로 최초 여성 소장이자 항공작전사령부 첫 여성 사령관이 됐다. 강선영 장군은 1990년에 임관 후 1993년 육군 항공학교에 입교해 회전익 조종사 95기를 1등으로 수료했다. 그는 최초 정조종사, 특전사 최초 여장교 강하조장, 특전사 대대 최초 여성 팀장, 최초 항공대대장, 최초 항공단장 등의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는 60항공단장과 11항공단장, 항공작전사령부 참모장에 이어 현재 항공학교장을 맡는 등 육군 항공 분야 전문가다. 항공작전사령부는 육군 헬기 전력을 총괄하는 야전작전사령부다. 1999년 4월 20일 육군 항공 작전의 지휘통제 효율성을 강화하고자, 각 부대에 분산 편성됐던 항공대를 통합해 창설된 부대다. 세계 최강의 공격헬기로 꼽히는 아파치(AH-64E) 36대를 비롯해 코브라(AH-1S) 공격헬기와 500MD 등이 배치되어 있다. 강선영 장군은 “국가를 위해 더욱 헌신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맡겨진 소임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다”면서 “지금까지 군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선배님들과 항공중대장, 대대장, 항공단장, 항공학교장 등 지휘관 재직 시 충성을 다해 준 전우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육군항공 병과장의 소임을 맡으면서 이번 진급의 영광을 안았다”며 “앞으로도 훈련과 임무 수행에 더욱 노력하고, 미래 항공 전투력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김주희(여군 35기) 대령도 정보병과 최초로 여성 장군에 발탁됐다. 국방부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우수한 인재 중 강선영(항공), 김주희(정보), 정의숙(간호) 등 여군 3명을 선발해 여성 인력 진출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강창구, 김현종, 박양동, 박정환, 허강수 육군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해 군단장 등에 보임된다.김현종 중장 진급자는 국방개혁비서관을 계속 맡는다. 육군 강선영 준장 등 15명과 해군 유근종 준장 등 2명, 공군 박웅 준장 등 4명을 포함한 21명은 소장으로 각각 진급했다. 육군 고현석 대령 등 53명과 해군 구자송 대령 등 13명, 공군 권혁 대령 등 11명을 포함한 77명이 준장으로 승진했다. 국방부는 “특정 분야에 편중되지 않은 능력 위주의 균형 인사를 구현한다는 원칙에 따라, 작년에 이어 박양동, 허강수 중장 진급자 등 비(非)사관학교 출신 중 우수자를 다수 발탁하여 사관학교 출신 편중 현상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맡은 직책에서 마지막까지 묵묵히 성실하게 복무한 인원을 다수 발탁했다”며 “앞으로도 우수자는 출신·성별·특기 구분 없이 중용되도록 공정하고 균형된 인사를 적극 구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산업의 활기는 2006년 그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는 비율이다. 2006년이 한국영화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다.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2년 만에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만들어낸다. 시장 규모에 맞는 한국형 장르가 다듬어졌고,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감독들이 작품을 이어갔다. 이번 연재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도약해 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한국형 장르의 역동성 200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서 주목할 장르 키워드는 바로 사극과 스릴러다. 퓨전의 길을 택한 사극·시대극 그리고 범죄·액션과 결합한 스릴러 장르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와 이합집산하며 더욱더 진화해갔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와 ‘복합장르화’ 경향은 2010년대로 이어지며 ‘한국형 장르’가 구축되는 방법론이 됐다. 물론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로맨스와 1990년대의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 코미디도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사극 장르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사극으로 부활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를 시작으로 2005년 ‘혈의 누’(김대승)·‘형사 Duelist’(이명세)가 이어졌고,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는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사극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련된 유머가 돋보인 ‘음란서생’(2006)과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자전’(2010)을 내놓으며 퓨전 사극의 유행을 이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사극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고려 왕조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쌍화점’(유하, 2008),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며 판타지 장르에 도전한 ‘전우치’(최동훈, 2009)가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 장르도 주목할 경향이다. 2004년에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하류인생’(임권택) 등 근현대사를 가공하거나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역도산’(송해성) 등 실존인물을 소재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수확됐다. 2005년에는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일제강점기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윤종찬)이 이어졌다. 2007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김지훈)가 전국 73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2008년 ‘추격자’(나홍진)에서 완성됐다. 실제 연쇄살인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추격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은 범죄·액션 등의 요소와 결합한 스릴러 장르의 유행을 촉발, 스릴러가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 등극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강우석), 잔혹한 이미지를 전시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가 흥행 배턴을 이었다. 액션과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장르인 액션이 더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들도 있었다. 2010년에는 남북 분단 상황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의형제’(장훈)가 540만 관객을, 2011년에는 ‘감성 액션’을 표방한 ‘아저씨’(이정범)가 6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주목을 받았다.범죄스릴러의 인척 장르라 할 누아르, 갱스터 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윤종빈, 2011)는 1980년대 시대상을 풍자와 해학 그리고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그리며 갱스터 장르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한국형 ‘케이퍼 무비’(범죄 전문가들의 정교한 범죄 과정을 보여주는 장르)를 성공시켰다. 이후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2006),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범죄영화 ‘도둑들’(2012) 등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법칙을 새롭게 재해석한 ‘달콤한 거짓말’(정정화, 2008), 박중훈의 귀환과 ‘88만원 세대’의 묘사가 인상적인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 2010), 장르 화법에 더없이 충실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김현석, 2010), 기획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 ‘댄싱퀸’(이석훈, 2011), 46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성공작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 키치적인 B급 정서가 매력적인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 등이 이어졌다. 멜로를 코믹호러에 접붙인 ‘달콤, 살벌한 연인’(손제곤, 2006),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에 호러를 녹여낸 ‘오싹한 연애’(황인호, 2011)도 주목받았다. ●예술영화·상업영화 아우르는 작가주의 1996~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중반 주요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은 미학적 성숙을 거듭하며 그들의 영화세계를 완성시켜갔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치면 단연 홍상수다. 그는 매년 1~2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새로운 미학적 실험과 변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06년 ‘해변의 여인’, 2008년 ‘밤과 낮’·‘첩첩산중’(단편),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년 ‘하하하’·‘옥희의 영화’, 2011년 ‘북촌방향’ 등 언뜻 앞의 영화와 겹치는 듯하면서도 매번 기존의 틀을 바꿔가는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의 연작들은, 각 영화의 제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홍상수 영화’로 호명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국내외 비평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관객들의 지지도 굳건하다. 김기덕은 ‘활’(2005), ‘숨’(2007), ‘비몽’(2008) 등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다’(장훈, 2008)·‘풍산개’(전재홍, 2011) 등 조감독 출신 감독의 영화 제작까지 겸했다. 그는 ‘아리랑’(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이창동 역시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미학적 성취를 이어갔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 주연 배우 전도연이 한국영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시’(2010)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이창동은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새롭게 발견된 시네아스트(cineaste·영화예술가)로는 재중동포 출신인 장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이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계’(2007), ‘중경’(2007), ‘두만강’(2009), ‘풍경’(2013)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조선족, 탈북 여성과 소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는 ‘경주’(2013) 이후 새로운 화법으로 전환해 더 넓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외에도 ‘천년학’(2007)으로 100번째 영화를 연출한 거장 임권택,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을 로맨스 장르에 녹인 ‘멋진 하루’(2008)의 이윤기,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파주’(2009)의 박찬옥, 제주도 4·3 사건을 독특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의 오멸 등이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제28회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회오리바람’(2009)의 장건재,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 ‘무산일기’(2010)의 박정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파수꾼’(2010)의 윤성현 등 인상적인 독립장편영화로 데뷔한 감독들도 특기할 필요가 있다.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독창적인 장르 해석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유지하는 감독군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나홍진이 있다. 봉준호는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은 ‘괴물’(2006),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마더’(2009) 그리고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의 성공작 ‘설국열차’(2013)를 이어가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진보시켜갔다.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 ‘친절한 금자씨’(2005), 디지털 영화 미학을 개척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8), 그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까지, 영화적 야심과 예술가적 자의식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지운은 만주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를 오마주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고어 영화(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가 특징)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통해 특유의 장르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2008년 범죄스릴러 ‘추격자’로 데뷔한 나홍진은 광기 어린 액션스릴러 ‘황해’(2010), 초자연적 미스터리스릴러 ‘곡성’(2016)을 내놓으며, 스릴러 장르를 그만의 스타일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세 작품은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추격자’는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는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제69회 비경쟁부문에서 세계 영화인들을 만났다. 그는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퓨전 사극·한국형 스릴러+미학적 작가주의… 흥행·작품성 인정받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불었던 산업의 활기는 2006년 그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되는 비율이다. 2006년이 한국영화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다.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2년 만에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9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만들어낸다. 시장 규모에 맞는 한국형 장르가 다듬어졌고,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감독들이 작품을 이어갔다. 이번 연재는 200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가 어떻게 도약해 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형 장르의 역동성 200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에서 주목할 장르 키워드는 바로 사극과 스릴러다. 퓨전의 길을 택한 사극·시대극 그리고 범죄·액션과 결합한 스릴러 장르는 다양한 장르적 요소와 이합집산하며 더욱더 진화해갔다. 이러한 장르 다변화와 ‘복합장르화’ 경향은 2010년대로 이어지며 ‘한국형 장르’가 구축되는 방법론이 됐다. 물론 한국영화의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로맨스와 1990년대의 인기 장르였던 로맨틱 코미디도 관객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1960년대 한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사극 장르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사극으로 부활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2003)를 시작으로 2005년 ‘혈의 누’(김대승)·‘형사 Duelist’(이명세)가 이어졌고, 2005년 12월에 개봉한 ‘왕의 남자’(이준익)는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사극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를 쓴 김대우 감독은 대담한 상상력과 세련된 유머가 돋보인 ‘음란서생’(2006)과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방자전’(2010)을 내놓으며 퓨전 사극의 유행을 이끌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사극의 인기는 계속되었는데, 고려 왕조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쌍화점’(유하, 2008),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하며 판타지 장르에 도전한 ‘전우치’(최동훈, 2009)가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 장르도 주목할 경향이다. 2004년에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하류인생’(임권택) 등 근현대사를 가공하거나 ‘슈퍼스타 감사용’(김종현)·‘역도산’(송해성) 등 실존인물을 소재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노스탤지어 영화들이 수확됐다. 2005년에는 대통령 시해 사건을 블랙코미디 감각으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일제강점기 여류 비행사 박경원의 일대기를 그린 ‘청연’(윤종찬)이 이어졌다. 2007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김지훈)가 전국 73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이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2008년 ‘추격자’(나홍진)에서 완성됐다. 실제 연쇄살인마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추격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500만 이상을 동원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성공은 범죄·액션 등의 요소와 결합한 스릴러 장르의 유행을 촉발, 스릴러가 현대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 등극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에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끼’(강우석), 잔혹한 이미지를 전시한 ‘하드보일드’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가 흥행 배턴을 이었다. 액션과 스릴러는 장르 특성상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적인 강세 장르인 액션이 더 전면으로 나서는 영화들도 있었다. 2010년에는 남북 분단 상황을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의형제’(장훈)가 540만 관객을, 2011년에는 ‘감성 액션’을 표방한 ‘아저씨’(이정범)가 6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과 비평 모두 주목을 받았다.범죄스릴러의 인척 장르라 할 누아르, 갱스터 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윤종빈, 2011)는 1980년대 시대상을 풍자와 해학 그리고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그리며 갱스터 장르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 한편 최동훈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으로 한국형 ‘케이퍼 무비’(범죄 전문가들의 정교한 범죄 과정을 보여주는 장르)를 성공시켰다. 이후 허영만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타짜’(2006),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범죄영화 ‘도둑들’(2012) 등을 내놓으며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큰 예산이 들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 법칙을 새롭게 재해석한 ‘달콤한 거짓말’(정정화, 2008), 박중훈의 귀환과 ‘88만원 세대’의 묘사가 인상적인 ‘내 깡패 같은 애인’(김광식, 2010), 장르 화법에 더없이 충실했던 ‘시라노: 연애조작단’(김현석, 2010), 기획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 ‘댄싱퀸’(이석훈, 2011), 46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성공작 ‘내 아내의 모든 것’(민규동, 2012), 키치적인 B급 정서가 매력적인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 등이 이어졌다. 멜로를 코믹호러에 접붙인 ‘달콤, 살벌한 연인’(손제곤, 2006), 로맨틱 코미디의 뼈대에 호러를 녹여낸 ‘오싹한 연애’(황인호, 2011)도 주목받았다. ●예술영화·상업영화 아우르는 작가주의 1996~1997년 데뷔해, 2000년대 초중반 주요 해외영화제를 통해 인정받은 작가주의 감독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은 미학적 성숙을 거듭하며 그들의 영화세계를 완성시켜갔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치면 단연 홍상수다. 그는 매년 1~2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새로운 미학적 실험과 변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2005년 ‘극장전’, 2006년 ‘해변의 여인’, 2008년 ‘밤과 낮’·‘첩첩산중’(단편),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0년 ‘하하하’·‘옥희의 영화’, 2011년 ‘북촌방향’ 등 언뜻 앞의 영화와 겹치는 듯하면서도 매번 기존의 틀을 바꿔가는 방식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마치 거울처럼 마주 보는 그의 연작들은, 각 영화의 제목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차라리 ‘홍상수 영화’로 호명하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국내외 비평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관객들의 지지도 굳건하다. 김기덕은 ‘활’(2005), ‘숨’(2007), ‘비몽’(2008) 등 본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다’(장훈, 2008)·‘풍산개’(전재홍, 2011) 등 조감독 출신 감독의 영화 제작까지 겸했다. 그는 ‘아리랑’(2011)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피에타’(2012)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았다. 이창동 역시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구원에 관한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미학적 성취를 이어갔다. ‘밀양’(2007)은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 주연 배우 전도연이 한국영화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시’(2010)는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본상을 받았다. 한편 이창동은 2009년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2000년대 들어 새롭게 발견된 시네아스트(cin?ste·영화예술가)로는 재중동포 출신인 장률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망종’(2005)이 제58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계’(2007), ‘중경’(2007), ‘두만강’(2009), ‘풍경’(2013)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조선족, 탈북 여성과 소년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경계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한 풍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그는 ‘경주’(2013) 이후 새로운 화법으로 전환해 더 넓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 외에도 ‘천년학’(2007)으로 100번째 영화를 연출한 거장 임권택, 현대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을 로맨스 장르에 녹인 ‘멋진 하루’(2008)의 이윤기, 리얼리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파주’(2009)의 박찬옥, 제주도 4·3 사건을 독특한 미학으로 승화시킨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의 오멸 등이 작가주의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또한 제28회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회오리바람’(2009)의 장건재,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예리하게 포착한 ‘무산일기’(2010)의 박정범,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창조한 ‘파수꾼’(2010)의 윤성현 등 인상적인 독립장편영화로 데뷔한 감독들도 특기할 필요가 있다.대중영화와 작가영화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 독창적인 장르 해석과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유지하는 감독군으로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그리고 나홍진이 있다. 봉준호는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은 ‘괴물’(2006), 뛰어난 미학적 완성도로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마더’(2009) 그리고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의 성공작 ‘설국열차’(2013)를 이어가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진보시켜갔다. 박찬욱은 ‘복수 3부작’의 완결편 ‘친절한 금자씨’(2005), 디지털 영화 미학을 개척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제62회 칸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2008), 그리고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 ‘스토커’(2013)까지, 영화적 야심과 예술가적 자의식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지운은 만주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를 오마주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고어 영화(선혈이 낭자하는 잔인한 묘사가 특징)에 가까운 하드보일드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을 통해 특유의 장르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2008년 범죄스릴러 ‘추격자’로 데뷔한 나홍진은 광기 어린 액션스릴러 ‘황해’(2010), 초자연적 미스터리스릴러 ‘곡성’(2016)을 내놓으며, 스릴러 장르를 그만의 스타일과 해석으로 새롭게 구축해가고 있다. 그의 세 작품은 모두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추격자’는 제61회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황해’는 제64회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제69회 비경쟁부문에서 세계 영화인들을 만났다. 그는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사람이 만든 지옥 한복판에서 짓뭉개진 인간성을 목격하다

    사람이 만든 지옥 한복판에서 짓뭉개진 인간성을 목격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주요 미 해군 기지와 조선소가 있는 진주만을 폭격한다. 불시의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미군은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다. ●스무살에 참전… 저자가 본 전쟁의 의미는 신간 ‘태평양 전쟁’은 미군 해병대 포병 출신 유진 B 슬레지 몬테발로대 교수가 겪은 1944년 필리핀 펠렐리우, 1945년 일본 오키나와 전투의 기록이다. 대개 ‘전쟁’이라 하면 죽음을 불사하며 적진에 뛰어들고, 적을 용감히 쳐부수는 영웅적인 군인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반 사병으로 직접 전장에서 뛰었던 그의 기록은 결이 다소 다르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젊은이라면 마땅히 전장으로 가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자는 만 20세인 1942년 12월 전쟁에 관한 호기심 반 의무 반으로 해병대에 지원한다. 그는 대학에서 기초 훈련, 해병대에서 실전 훈련을 받고 전장으로 향한다. 막상 도착한 전장은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 저자는 병력을 육지에 수송하는 보트인 암트랙에서 내린 뒤부터 지옥을 맛본다. 섬에 내리려는 순간 총탄이 눈앞을 스쳐 가고 모랫바닥에 처박힌다. 가까스로 일어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야말로 악몽의 세상이었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고.“사흘이면 끝날 것”이라는 소대장의 호언과 달리 전투는 1944년 9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10주간 지옥처럼 펼쳐진다. 일본군은 거의 전원이라고 할 1만 1000여명이 죽고, 미군도 8769명이 죽거나 다쳤다. 특히 저자가 속했던 해병 1사단은 6526명의 사상자를 냈다. 중대원 235명 가운데 죽지도, 다치지도 않은 사람은 85명에 불과했다. 극적으로 첫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두 번째 전장도 마찬가지였다. 패망 직전 일본은 오키나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당시 전투에서 확인된 일본군 시신만 10만 7500여구에 달한다. 미군도 사상자가 4만명에 이른다. 저자의 중대원 485명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50명에 불과했다. ●인간의 밑바닥 감정까지 긁어낸 참상 묘사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 그 자리에 인간성이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동료가 창자를 드러내고 죽어 있는 풍경이라든가, 미군이 죽은 일본군 입에서 금니를 빼내는 장면, 일본군이 죽은 미군의 시체를 훼손하는 등의 묘사가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다. 그러나 책은 전쟁의 참상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쟁을 겪은 인간의 온갖 감정을 밑바닥까지 긁어낸다. 저자는 자신이 쏜 총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일본군을 보고 부끄러움과 역겨움을 느끼며 “갑자기 전쟁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바뀌었다”고 했다가도 이내 “인간적인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감상주의일 뿐이라는 자각이 들었다”고 밝힌다.인간성 상실의 한복판에 서 있다가도 병사를 위해 노력했던 중대장의 죽음, 위기의 순간에 상사를 거스르면서까지 동료를 지킨 군인, 그리고 짧은 휴식 동안 이야기를 나눈 군인들을 통해 전쟁의 의미를 발견한다. 두 번의 치열한 전투를 마친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만일 우리 조국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좋은 나라라면, 이런 조국을 위해서 싸우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행동이다.” 저자는 전투 현장에서 수첩 크기의 작은 성경책에 몰래 기록을 남겼고, 이를 토대로 책을 썼다. 두 전투 모두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졌다. 전쟁이 끝난 지 36년 만인 1981년 책을 내며 그는 “이제는 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국을 위해 깊고 큰 고통을 감당했던 전우들에게 오랜 세월 지고 있던 빚을 갚는 셈”이라고 밝혔다.●톰 행크스 주연 인기 드라마 ‘퍼시픽’ 원작 2001년 저자 사망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2010년 10부작 드라마 ‘퍼시픽’으로 제작하면서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유럽 전선에서 전쟁을 다룬 ‘밴드 오브 브러더스’와 함께 명작 드라마로 꼽힌다. 드라마를 봤던 이들이라면 책에 관심이 가는 게 당연지사일 터고, 책을 모두 읽으면 드라마에 관심이 갈 법하다.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은 전쟁을 이처럼 한 발짝 멀리서 쳐다보지만, 책이든 드라마든 짓뭉개진 인간성을 보는 일은 고역이긴 하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우리는 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북도·삼성전자 2022년까지 2호 창업펀드 120억원 조성

    경북도와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3년간 창업펀드 120억원을 조성한다. 경북도와 삼성전자는 2022년까지 3년간 해마다 60억원씩 출자해 120억원 규모 경북창조혁신창업펀드를 조성할 계획으로 31일 협약식을 했다. 2015∼2019년 창업펀드 200억원을 출자한 데 이어 2호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2호 펀드는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보육 프로그램(G-Star Dreamers)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가진 중소·창업기업을 지원한다. 국내외 투자유치는 물론 ‘삼성맨’들로 구성한 전담 멘토단이 기술을 지원하고 중앙정부의 전국 혁신센터 연계사업에 참여하도록 도와준다. 1호 펀드는 지금까지 75개사를 발굴해 보육했다. 하드웨어 기업 72억 9000만원, 소프트웨어 기업 43억 4000만원, 농식품 기업 14억원, 뷰티 기업 2억 5000만원 등 모두 141억원을 투자했다. 전우헌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1호에 이어 2호 펀드까지 지원한 삼성전자에 감사한다”며 “경북 창업·벤처 기업 성장에 밑거름이 된 1호 펀드 성과를 바탕으로 2호 펀드를 우수 스타트업 발굴·지원에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기고] 팔랑크스 대형과 한일 안보협력/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

    [기고] 팔랑크스 대형과 한일 안보협력/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

    영화 300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그리스 팔랑크스 대형은 왼팔에 방패를, 오른손에 긴 창을 든 보병들이 밀집해 고슴도치 모양의 사각형 방진을 이루는 전투 대형이다. 병사들은 적의 공격을 커다란 청동 방패로 막았는데, 창을 들고 있는 오른쪽 무릎과 어깨 사이가 공격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 방패로는 내 심장과 내 좌익에 선 전우의 오른 가슴을 가려 주고, 내 오른 가슴은 내 우익에 선 전우의 방패를 믿고 밀집대형을 형성해 거대한 방패 벽을 세웠다. 하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에 방패를 내 몸 쪽으로 당기거나 내 우익의 방패로 내 몸이 쏠려 방패 사이에 틈이 생기면 대형은 금세 무너졌다. 즉 내 옆에 선 전우에 대한 믿음과 전우애가 필수였다. 한미 동맹은 한국전쟁을 통해 피로 맺어 지난 70년간 적대세력과 공산세력으로부터 정전협정체제라는 세력균형을 유지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 낸 버팀목이었다. 최근 이들이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을 내세워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동맹의 설득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체결의 배경이었으리라. 하지만 지소미아 체결 이후 일본의 행동들은 함께 전열에 섰다고 보기에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심지어 무능력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12월 초계기 사건 때 일본은 광개토대왕함이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누명을 씌우려 들었다. 지난 2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을 때 일본은 1발을 2발이라고 발표해 정보 판단에 실패했다. 이를 수정하는 데 무려 4시간이 걸렸다. 이들 사례에서 일본의 정보분석 체계가 실무자의 초도 평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5월 이후 북한의 신형탄도미사일 활동에 대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평가 확정 전까지 발사체라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한국 합참과 대조적이다. 천황 즉위식을 계기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마도 일본은 그 이벤트를 또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할 것이고, 우리는 다시 외교적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와 대형을 이뤄 방패를 들 자격이 있는지 고민할 때다.
  • [이정수의 원픽] 늴리리야 옹헤야… 원어스가 그린 한국 전통미

    [이정수의 원픽] 늴리리야 옹헤야… 원어스가 그린 한국 전통미

    해마다 수백 명의 아이돌이 데뷔하지만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아이돌은 극히 소수에 그친다. 케이팝이 전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아이돌 음악을 평가절하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아이돌 음악 중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숨은 보석’을 찾아 4주마다 소개한다.전 세계에 불고 있는 케이팝 열풍은 몇몇 히트곡이나 가수의 인기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케이팝의 인기에 해외 팬들은 한국 대중가요를 넘어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는다. 아이돌 스타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노랫말을 통해 한국어와 한글을 배운다. 케이팝에 대한 애정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인 보이그룹 원어스(레이븐, 서호, 이도, 건희, 환웅, 시온)가 지난달 말 발매한 3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 ‘가자’는 케이팝이 담을 수 있는 한국 전통의 색을 최대한 담은 곡이다. 원어스와 마마무 등 소속사 RBW 대표인 작곡가 김도훈은 최근 유행하는 트랩힙합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멜로디 라인을 비롯해 여러 요소에서 한국적인 색채를 가미한 곡을 완성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할 민요풍 가락에 ‘늴리리야 옹헤야 얼쑤 얼쑤’ 등 구수한 추임새가 곁들여진다. ‘가자 오늘 달이 좋구나 가자/ 풍악을 울려 피리를 불어’로 시작하는 노래는 ‘힙합 달타령’이라 할 만하다. 전우치, 강강수월래 등 외국인은 알기 힘들 전통 소재들이 가사에 빼곡하다. 케이팝에서 흔히 끼워 넣는 영어 가사를 완전히 배제한 점도 인상적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해외 팬들은 한국어 100% 노래라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환호하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역시 단청의 오색이 선명한 한옥풍 세트, 상모돌리기 등 전통색으로 가득하다. 방탄소년단의 ‘아이돌’(2018)과 얼마간 겹치는 이미지지만 굳이 한국적 전통과 세계적 보편성의 결합을 의도하지 않고 한국 본연의 색에 최대한 집중했다. “서구의 팝 대신 한국을 보여 주려는 원어스를 존경한다”, “한국 전통 의상과 사운드가 놀랍다. 나도 한국인이고 싶다” 등 팬들의 반응은 한국 문화가 케이팝을 통해 가장 매력적인 문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원어스의 건희는 지난달 30일 연 쇼케이스에서 “미국에 가기 전 한국적인 멋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을 들려드릴 수 있게 돼서 기분 좋다”며 “미국 분들이 저희 무대를 통해 한국의 멋을 알 수 있게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달 말 국내 활동을 마치는 원어스는 다음달 3일 뉴욕 공연을 시작으로 시카고, 애틀랜타, 댈러스, 미니애폴리스,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6개 도시에서 첫 번째 미국 투어를 진행한다. tintin@seoul.co.kr
  • 시우민·온유·엔 등 ‘K팝 스타’ 총출동...군대 뮤지컬 ‘귀환’ 흥행할까?

    시우민·온유·엔 등 ‘K팝 스타’ 총출동...군대 뮤지컬 ‘귀환’ 흥행할까?

    군복무중인 연예인 출신 병사들이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주제로 한 육군본부 창작 뮤지컬 ‘귀환-그날의 약속’ 무대에 선다. 과거 전쟁의 한 가운데서 끊임없이 고뇌하던 청년 승호 역에 엑소 시우민(김민석), 샤이니 온유(이진기)가 더블 캐스팅됐으며 친구들의 경외 대상이었던 해일 역에 빅스 엔(차학연)과 뮤지컬 배우 이재균이 출연한다. 승호의 친구 진구 역에 인피니트 이성열과 배우 김민석이, 승호의 손자 현민 역에는 조권과 뮤지컬 배우 고은성, 유해 발굴단으로 현민을 이끄는 우주 역에 인피니트 김성규, 워너원 윤지성이 각각 캐스팅됐다.‘귀환’은 6.25 전쟁 참전용사 승호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유해를 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 6.25 전쟁이 남긴 미수습 전사자의 유해는 13만 3000여위에 달한다. 육군은 지난 2000년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해 1만여 위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아직도 12만 3000여위의 호국 영웅들이 산야에 묻혀있다. 작품은 승호의 현재와 6.25 전쟁 당시 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과거 승호 역에 더블 캐스팅된 시우민과 온유는 같은 소속사인데다 현재 육군 2사단에서 함께 군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엑소 멤버로는 처음 입대한 시우민은 영화 ‘봉이 김선달’과 웹드라마 ‘도전에 반하다’에서 연기를 선보인 적은 있으나 정식 뮤지컬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우민은 “뮤지컬 발성은 제작진의 도움 하에 많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있다”면서 “훈련소에서 7주 훈련을 하고 나서 공연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오디션에 임했다”고 밝혔다. ‘귀환’은 육군본부가 선보이는 5번째 창작 뮤지컬이다. 강하늘, 지창욱 등이 출연한 전작 ‘신흥무관학교’가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이례적인 흥행을 거두며 ‘군뮤’(군대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귀환’은 내년 한국 전쟁 70주년을 앞두고 비무장 지대 DMZ에 묻힌 남북 전사자 공동 유해 발굴을 염원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귀환’에는 연예인 출신 병사 이외에도 20여명의 군 장병들이 앙상블로 총출동한다. 군은 연예병사 제도가 사라진 가운데 연예인 출신 병사들이 뮤지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국민과 장병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됐으며, 모든 부대에 공문을 보내 지원자를 받았고 오디션 과정을 거쳐 공정하게 배우들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공연 관계자는 이들의 두발을 문제 삼는 일부 지적에 대해 “연출자의 의도와 요청에 의해 일부 출연자의 경우 두발을 기르고 출연했다”고 말했다. ‘귀환’은 10월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개막한다. 시우민, 온유 등이 직접 부르는 뮤지컬 ‘귀환’의 뮤지컬 넘버와 기자회견 포토 타임 현장을 지금 네이버TV, 유튜브 ‘은기자의 왜떴을까TV‘에서 만나보세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모던패밀리’ 이미영 친오빠는 ‘맹구’ 이창훈 “폐암 투병 후..”

    ‘모던패밀리’ 이미영 친오빠는 ‘맹구’ 이창훈 “폐암 투병 후..”

    배우 이미영이 친오빠인 개그맨 이창훈의 근황을 전했다. 20일 방송된 MBN ‘모던패밀리’에는 배우 김원숙과 이미영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이미영은 두 번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했다. 그는 “예전에는 매일 술을 마셨다”며 “나쁜 생각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김원숙은 “힘들 때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잖냐. 맹구 오빠”라고 이창훈을 언급했다. 이를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던 임하룡은 “이창훈은 연기할 때 엄청 재밌는데 실제로는 얌전했다. 보이는 것과 다른 사람이다”고 회상했다. 이수근은 “폐암 투병 후 많이 좋아졌다더라. 이후 연극 무대도 서고 봉사도 많이 다닌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김원숙은 “힘들었을 때 오빠랑 얘기 좀 했냐”고 물었고 이미영은 “얘기 안 했다. 난 식구들한테 힘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가족들도 나름대로 사는데 내가 그런 모습 보이면 얼마나 힘들겠냐”고 답했다. 이어 이미영은 “오빠가 많이 힘들어했다. 내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제일 많이 화냈다. 오빠와 6살 터울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 이불 덮고 잘 만큼 친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미영은 지난 1979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우리 갑순이’, ‘황홀한 이웃’, ‘유부녀의 탄생’ 등에 출연했다. 1985년 가수 전영록과 결혼을 했으나 12년 만에 이혼했다. 슬하에 딸 전보람, 전우람이 있다. 이후 2003년 미국인 교수와 재혼했지만 2005년 이혼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모던패밀리’ 박원숙, 이미영 모녀와 여행 “두 딸 부러워” 눈물

    ‘모던패밀리’ 박원숙, 이미영 모녀와 여행 “두 딸 부러워” 눈물

    “먹고 나누고 사랑하라!” 박원숙과 이미영 모녀, 임고 부부와 개그맨 후배들이 ‘먹고 나누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20일 방송된 MBN ‘모던 패밀리’(기획 제작, MBN 연출 송성찬) 30회에서는 박원숙이 후배 연기자 이미영과 그녀의 두 딸, 임지은 고명환 부부와 후배 개그맨들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누며 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시청률은 2.8%(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기록했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은 3.6%까지 치솟았다. 동시간대 종편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연예계 대모’ 박원숙은 후배 이미영의 초대로 강화도 힐링 여행을 즐겼다. 이미영은 “어릴 때부터 절 아껴주셨던 (박원숙) 선생님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여행을 기획했다”며, 강화도 제철 요리인 ‘대하 소금구이’를 대접했다. 이어 바다가 보이는 펜션으로 옮겨 박원숙과 두 딸 전보람, 전우람을 산책하라고 내보낸 뒤, 홀로 잡채와 된장찌개를 만들어 따뜻한 저녁 밥상을 선물했다. 박원숙은 자신과 비슷한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이미영과 두 딸들이 더욱 대견하고 애틋해서인지,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줬다. 강화도에서는 시종일관 웃음과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지만,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이 영상을 모니터하던 박원숙은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모던 패밀리’ 출연진들을 찡하게 만들었다. 박원숙은 “아무리 딸들이 말 안 듣고, 티격태격한다 해도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하냐. 적금 같은 두 딸이 있는 미영이가 부럽고 장하다”라고 덤덤히 말했다. 임고 부부는 통영에서 올라온 거대한 해산물 택배 박스로 ‘번개’ 홈 파티를 벌였다. 전국 팔도의 지인들 덕분에 제철 특산물들을 수시로 선물 받는다는 고명환은 문어, 참돔, 한치 등으로 각종 회, 감바스, 샐러드 등을 만들었다. “냉동실 넣기 전에 얼른 먹어치워야 한다”는 소명 의식에 고명환은 개그맨 후배들을 긴급 소집했다. 본격 ‘해산물 먹방’ 홈 파티가 시작됐고 개그맨 후배들은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 달라”고 요청, 분위기를 달궜다. 이에 고명환은 임지은에게 먼저 프러포즈 받았지만 헤어졌던 일, 그 후 여자 후배와 썸을 타다 프러포즈를 하려던 순간, 임지은에게 연락이 와서 극적으로 재결합하게 된 사연 등을 신나게 털어놨다. 임지은은 덤덤히 수긍하면서도 “(고명환이) 자유로운 영혼이라 여러 모임에 나가는 것까지는 이해하는데, 온 동네 여자를 다 만나고 다닌다”면서 갑자기 욱했다. 고명환의 넓은 오지랖과 ‘여사친’까지 이해해주는 임지은의 모습에 개그맨 후배들은 “진정한 국민보살이다. 이제 형수님을 ‘국보’라고 부르겠다”며 기립 박수를 보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박원숙과 임고 부부의 따뜻한 정, 인간미에 반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추억을 쌓는 모습에 저절로 힐링이 됐다” “박원숙이 만난 사람들 같은 ‘토크쇼’ 기획해 달라” “임고 부부, 너무 귀여워서 빠져든다” 등 호평을 보냈다. 금요일 밤 ‘실검 장악’ 예능 MBN ‘모던 패밀리’는 매주 금요일 밤 11시 방송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참전용사는 말합니다… 빚진 것 없으니 자유를 전달하라고”

    “참전용사는 말합니다… 빚진 것 없으니 자유를 전달하라고”

    ‘현장’과 ‘사람’에는, 책과 자료로 걸러지지 않은 것들이 남겨져 있기 마련이다. 인천상륙작전 때 뻘밭에서 죽어간 군인들에 관한 이야기, 전장에 투입되는지도 모른 채 한국 땅을 밟은 사연들이 그런 것이다. 현효제(40)씨가 이런 이야기들을 줄줄 내어놓을 수 있는 건, 그가 ‘현장 속 사람들’을 직접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6·25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며 무료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 사진작가이다.엔젤 에세베도 버나드는 다른 6만 1000여명의 푸에르토리코 출신처럼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참전했다가 제대로 된 군복 없이 헝겁과 붕대로 몸을 감싸며 난생처음 눈을 맞고 혹한을 겪었다. 눈, 비, 배고픔은 푸에르토리코 출신 참전용사들에게 6·25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이다. 상륙정의 문이 열린 뒤 그에게는 가장 큰 비극이 펼쳐졌다. 아무도 그곳이 뻘밭이라고 미리 말해 주지 않았고, 앞서 먼저 내린 전우들은 한국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익사했다. 그 자신도 고향 친구들의 어깨와 몸을 밟고 밟아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뻘밭에서 몸부림쳤던 너무 많은 친구들과, 살기 위해 그들을 밟고 나가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그를 괴롭힌다.미 해병대 출신 살 스칼라토는 장진호 전투 때 정찰 중 쏟아진 포탄에 부모는 죽고 손목이 절단된 채 누나 품에서 울던 5살쯤 된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아기를 안고 뛰어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왔는데, 가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끊어진 아기 손목을 다시 전달해 주려 들어갔더니 이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안을 때 자신의 목덜미를 잡았던 아이의 손이 2019년 88세 나이에도 느껴진다 했다. 17세에 참전한 영국 리버풀 출신 앨런 가이는 미국령 버뮤다로 가는 줄 알고 군에 지원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부산항이었다. “북진 때 탔던 미군 기차에는 고기, 치즈, 빵, 우유, 초콜릿이 있었는데 나중에 탄 영국군 기차에는 딱딱한 빵에 햄 한 장 들어간 샌드위치에 물도 주지 않아 ‘미군에 입대했어야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윌리엄 웨버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은 그에게 “고조선의 역사를 아느냐”고 물었던 미국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소위로 참전, 첫 부임지인 필리핀에서 맥아더 사령관으로부터 “일본에 가서 조선소, 비행장 등 군수공장의 ‘조선인 노예’를 해방하고 본국 송환을 도우라”는 첫 명령을 받았다. 자신이 담당한 곳의 자료를 찾아 700여명을 안전하게 귀국시켰고,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과 결혼하는 등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핍박을 면하게 하기 위해 안전지역으로 옮겼다. 종전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한국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는 한국 역사를 꿸 정도가 되기에 이르렀다. 6·25 때는 대위로 참전했다. 전투 중 포탄에 오른쪽 팔이 절단돼 후송되다 호송 차량이 포탄을 맞아 같은 날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미군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를 살려냈는데 “감각이 없을 정도로 모르핀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의 ‘수색하는 병사’ 19명 중 하나가 그다. 1000여명의 외국인 참전용사를 만났다니, 현씨는 6·25전쟁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한양대 사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예술대학(AAU)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10년 귀국해 ‘라미스튜디오’를 차렸다.-언제부터 참전용사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 “2013년 육군 모 사단 홍보 동영상 작업을 하게 됐다. 그때 군생활 28년간 사진첩 반 권을 채우지 못했다는 한 원사의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큰 보람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다른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사진도 찍게 되었다. 2014년 ‘육군지상군 페스티벌’ 영상 작업을 하면서는 군복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웨덴은 2년마다 남녀 모델을 써 계절과 용도, 상황에 맞는 군복 착용법을 다룬 책자를 낸다. 다른 선진국들도 그렇게 하는데 우리 군은 그런 게 없다. 군복의 연원과 변화와 종류를 알기 어려웠고 사진도 없다. 2014~2016년 3년간 60여개 군 부대를 돌며 육군 군복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군 단체, 군 가족, 한국전쟁 참전용사 개인 및 단체 사진을 찍으며 5000여명의 군인을 만났다. 그중 1000여명은 외국인 참전용사들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나. “많이 들었다. 처음부터 돈을 받을 생각도 없어지만 초기부터 ‘사진 찍어다 어디에 팔려 하나?’거나 ‘군을 팔지 말라’ 등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 더욱 생각을 굳히게 됐다. 방위산업전 군복시리즈 전시, 국군의날 특별사진전 등을 거치며 ‘나도 찍혀 봤으면’ 하는 마음에 연락 오시는 분들이 늘면서 편지로 사연을 받기 시작했다. 정말 모든 편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발길을 이끄는 사연들을 담았다. ‘나는 군인이다’에서 ‘우리는 군인이다’, ‘우리는 군인가족이다’ 등으로 프로젝트가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 참전용사들을 알게 됐고, 영국과 미국을 20번 정도 오가게 됐다.”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학교를 졸업하고 나무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것들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그는 초기에 나무 사진작가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4850세 ‘므두셀라 나무’, 가장 부피가 큰 ‘제너럴셔먼 나무’, 가장 키가 큰 종인 자이언트세콰이어의 ‘쓰러진 모나코 나무’ 등 유명한 나무들을 찾아가 앵글에 담았다.)” -그래도 비용 감당이 어려워 보이는데. “2억원쯤 썼는데 스스로도 버틴 게 신기하다. 정작 어려움은 액자 비용이었다. 사진은 액자로 전달될 때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SNS 등을 통해 사연을 접하고 액자비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현지에 가면 차량, 숙박 등을 제공해 주시는 분들도 늘어 가고 있다. 참 감사하다. 참전용사들이 액자를 전달할 때면 꼭 ‘얼마냐’고 물어온다.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라고 하면 꼭 껴안아 주신다. 그런데 윌리엄 웨버 대령은 ‘그게 아니야. 너는 틀렸어. 모든 자유를 가진 사람은 자유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의무가 있어. 우리는 그 의무를 다한 것뿐이고, 너희는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다. 다만 우리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면 너희들도 의무가 있다. 북에 있는 너의 동족, 동포들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게 너희의 의무야’라고 했다. 웨버 대령은 ‘우리 때문에 분단의 비극이 왔다’면서 ‘통일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 현씨는 내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2년간 미국을 누비며 참전용사들을 만나 사진을 찍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죽기 전에 빨리 와 달라”는 연락들이 많아져 마음이 급하다. 미국에서만 날마다 대략 400명꼴로 세상을 뜨고 있다. 작년에만 18만명이 작고했다. 그들 대부분이 다른 누구로 남기보다 6·25 참전용사로 기억되고 싶어 하는 것을, 현씨는 잘 알고 있다. jj@seoul.co.kr
  • [인사] 한국면세뉴스, 조달청, 산업통상자원부, 충북도교육청

    ■ 한국면세뉴스 △ 사장 겸 편집국장 박홍규 ■ 조달청 ◇ 부이사관 승진 △ 감사담당관 박이철 ◇ 과장급(직위승진) △ 조달품질원 품질총괄과장 이창호 △ 서울지방조달청 경영관리과장 노대희 ◇ 서기관 승진 △ 기획재정담당관실 임영훈 △ 원자재비축과 방형준 ◇ 기술서기관 승진 △ 서울지방조달청 정보기술용역과 김상헌 ■ 산업통상자원부 △ 통상협력국장 엄찬왕 ■ 충북도교육청 ◇ 5급 승진 내정 △ 청주농고 김동년 △ 보은교육지원청 행정과 김영일 △ 무극중 김용성 △ 청주중앙여고 김위숙 △ 흥덕고 김정희 △ 총무과 김현경 △ 충주교육지원청 행정과 노대열 △ 정책기획과 민선영 △ 산남고 박노경 △ 증평여중 박정희 △ 봉명고 박종구 △ 교육도서관 박현미 △ 주성고 손영빈 △ 보은중 신정희 △ 청운중 안동훈 △ 충북에너지고 연규웅 △ 군남초 오병수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행정과 오은숙 △ 감사관 유재명 △ 총무과 윤교한 △ 청주여고 윤병국 △ 옥동초 이경은 △ 단재교육연수원 이정원 △ 청천중 임재성 △ 학생수련원 장영철 △ 남평초 장영희 △ 목도고 전우석 △ 행정과 정덕순 △ 청주중 정철희 △ 청주교육지원청 총무과 최미영 △ 보은정보고 최혜경 △ 미래인재과 김영은 △ 교육연구정보원 최병창 △ 청주여고 이태희 △ 교육도서관 이채봉 △ 미래인재과 이상근 △ 옥천교육지원청 행정과 양승도 △ 체육건강안전과 윤치선 △ 충주교육지원청 체육평생건강과 윤원규 △ 청주교육지원청 체육건강과 남광우 △ 시설과 손상수 △ 충주교육지원청 행정과 이덕희
  • 김생환 서울시의회 부의장,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

    김생환 서울시의회 부의장,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

    서울특별시의회 김생환 부의장(더불어민주당, 노원4)은 지난 7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살림터에서 진행된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 행사에 참석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날 행사에는 서울특별시의회를 대표하여 김 부의장과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이경선 부위원장, 고병국 의원이 참석하였고, 박원순 서울시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유동균 마포구청장 외 각국 주한 외교사절 및 문화원장, 명예시장, 일반시민 등 300여 명의 관계자들이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였다. 김 부의장은 축하의 자리에서 “도시건축 비엔날레를 준비해 주신 박원순 시장님, 총감독을 맡아주신 임재용 감독님, 프란시스코 사닌 감독님을 비롯 함께 해 주신 내외빈, 시민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라고 전하면서 “시민의 삶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소통을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에 역사와 현대, 미래를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감회를 전했다. 김 부의장은 “특히 ‘건축’은 도시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지키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는 시민의 공간과 건축이 어떠한 상호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도시’의 모습을 고민하는 자리인 만큼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서울의 주인인 시민이 도시를 공평하게 누리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당부의 말씀을 전했다. 이번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개막식 행사는 전우치연희단의 평양검기무, 서울한량춤, 전통놀이 등 다채로운 축하 이벤트로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악몽 꾸는 내게…그들은 참수리호 펄을 치우라 했다”

    [단독] “악몽 꾸는 내게…그들은 참수리호 펄을 치우라 했다”

    제2연평해전 생존자들, 17년 만의 증언“너희들이 펄 안 치우면 누가 치우냐”‘특별관리’ 한다더니 진급 혜택조차 없어“지금이라도 명예 회복받고 싶다” 울분“상부에서 군 생활하는 동안 우리를 ‘특별관리’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대로 복귀하니 침몰한 참수리호를 뒤덮은 ‘펄’(해저 진흙)을 직접 치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맨발로, 그 엄청나게 썩은 펄을 치우다 무서운 독(毒)이 올라 병원까지 여러 번 다녔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2002년 제2연평해전에 ‘갑판장’으로 참전했던 이해영(56) 예비역 원사가 17년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제2연평해전 전우회장으로, 지난해 9월 35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군복을 벗었습니다. 이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군인 신분이 아니니 속시원하게 우리 전우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만 기억합니다. 그 뒤에 숨겨진 생존자들의 아픔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꼭 ‘진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합니다. ●“내부에선 우리를 ‘패잔병’ 취급했다”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을 9시간여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해 내려온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참수리 고속정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습니다. 생존대원들은 포탄이 터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벌여 적 경비정을 NLL 북쪽으로 쫓아냈습니다. 적 함정은 갑판이 대부분 부서졌고 3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적을 패퇴시킨 참수리호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해저로 가라앉았습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승전 대원들의 아픔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씨의 설명입니다. “머리 부위 피부가 탄에 맞아 찢어졌고 꿰맸는데 8일 만에 국군수도병원에서 내쫓기듯 나왔습니다. 실밥 겨우 뽑고 마음 안정도 안 된 나를 바로 2함대 의무대로 보내더라고요. 일반 수술 환자도 그런 대접을 하진 않습니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패잔병’으로 취급했습니다.”전투 직후 정부는 이 사건을 ‘서해교전’으로 명명했습니다. ‘승전’이 아닌 ‘남북 충돌’ 의미가 강했습니다. 2008년이 돼서야 기존 승전인 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으로, 서해교전도 승전 의미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했습니다. 그 때 전사자 추모행사도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정부행사로 승격됐습니다. 이씨는 전투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지금도 배에 물이 들어오는 꿈을 꾸고 총탄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악몽을 꾼다”며 “피가 나오는 전쟁영화를 못 본다. 동물 다치는 것만 봐도 손이 덜덜 떨릴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내려온 상부의 지시는 인양한 참수리호에 가득 차 있는 펄을 치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라우마가 있는데 부대에서 생존대원들에게 펄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용역을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죠. 그런데 상부에서는 ‘다른 대원들이 그걸 하겠냐. 너희들이 거기서 생활했는데 너희들이 안 치우면 누가 치우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빨리 퇴원한 10여명이 그걸 물청소를 하면서 다 치웠습니다. 그 때 군인 신분이어서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제2연평해전 ‘승전’했지만…전사자만 특진 1999년 7월 4일 제1연평해전에 참가했던 해군 유공장병 7명은 1계급씩 특진을 했습니다. 군장병이 교전으로 특진한 것은 6·25와 월남전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제2연평해전 생존대원은 외면했습니다. 윤 소령 등 전사한 6용사가 특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정부는 또 당시 전사한 6명과 심한 부상을 당했던 생존장병 3명을 각각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대상자로 정했습니다. 나머지 부사관 7명과 병사 6명은 무공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국방부 장관·참모총장 표창으로 격이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생존대원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씨는 “5년 뒤인 2007년 심사까지 받고 다음해 상사에서 원사로 진급했습니다. 2함대에서 인사 고과에서 특별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우대해준 게 없어요. 작심하고 함대 사령부에 따졌지만 변화가 없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라고는 충남 계룡대에서 군의관에게 진료 1번 받은 것 뿐이에요. 트라우마 치료 기록이 있으면 오히려 보직을 제대로 맡지 못할까봐 걱정부터 했습니다.” 그는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계속해야 할 상황에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씨는 이 대목에서 숨을 참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군은 ‘사기’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참전용사에게 특진이나 훈장은 커녕 국민 성금이 포함된 보상금 1000만원과 대통령 표창이 전부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훈격 격상 같은 명예 회복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습니다. ●“12년 만에 트라우마 치료…그것도 서울에서” 또 다른 생존자 곽진성(38) 예비역 하사는 제2연평해전 당시 ‘전기장’으로 참전했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오른팔 관통상과 포탄 폭발로 인한 엉덩이 파편상을 입은 상태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왔습니다. 8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2003년 3월 전역했습니다. 곽씨의 설명입니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 등 군 관계자들이 사복을 입고 병원 주변에서 상주하고 모든 대화나 상황을 모니터링했기 때문에 불만을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참전 부사관들은 심한 부상을 당해도 훈장 대상자에서 모두 빠졌고, 상부나 부대에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는 “나도 8개월간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지만 ‘부사관은 뺀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훈장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습니다. 또 “환자 후송이나 사후 지원을 하던 부대에서 승진자가 나오고 상을 받았지만 정작 참전대원은 승진에서 제외되고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습니다.곽씨는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경험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생존대원 중에 정부 지원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대부분 사비로 치료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다 12년쯤 지나 정부에서 갑자기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곽씨는 “우리 일정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지방에 있는 나에게 서울에 올라와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며 “실태조사를 해보고 문제가 되니까 실적 쌓으려고 부른 것 밖에 더 되겠나. 왜 오라고 하는 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해전 이후 보상금으로 300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씨보다 부상 정도가 심해 더 많은 보상금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10%인 300만원만 정부 지원금이었고 나머지 90%는 ‘국민 성금’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참전용사에게 보상금을 줄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전달한 것입니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전투행위 자체는 보훈대상으로 예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의 침략을 막으려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더라도 사망하거나, 7급 이상 상이 등급을 받거나, 훈장을 받지 못하면 국가유공자로 예우받지 못 합니다. 그래서 17년이 지난 지금도 제2연평해전 참전 예비역 중 2명이 국가유공자 지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3번 이상 보훈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부상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연이어 탈락했습니다. 이는 현재 복무 중이거나 보훈심사 중인 대원을 제외한 인원입니다. ●“지원부대 상받는데…난 땡볕에서 박수쳤다” 따라서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처럼 특수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특별히 희생하거나 헌신한 참전용사에 대해 예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제2연평해전 참전자들은 서울신문에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수술하고 몸도 안 좋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청소를 했고, 깨끗한 군복 챙겨입고 땡볕에 나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상받을 때 박수치고 있자니 너무 울적했습니다.” “참전 병사와 부사관만 차별해 국무총리상, 국방부 장관상을 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유가족들이 있으니) 일단 알았으니까 너희들은 조용히 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참전용사는 그냥 ‘쩌리’(보잘 것 없는 사람)로 취급받는다는 느낌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우리가 과연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지, 또 어떤 대우를 해왔는지 곱씹어봐야 할 때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김고은X정해인 ‘비긴어게인3’ 서울 버스킹 합류 “너무 떨려”

    김고은X정해인 ‘비긴어게인3’ 서울 버스킹 합류 “너무 떨려”

    패밀리밴드가 김고은, 정해인과 함께 한 여름 밤의 서울 버스킹을 선보인다. 23일 방송되는 JTBC ‘비긴어게인3’에서는 패밀리밴드와 김고은, 정해인이 ‘당신의 BGM이 되어드립니다’라는 버스킹 주제에 맞춰 각자 의미가 담긴 곡을 선곡해 버스킹을 펼친다. 김고은, 정해인과 함께한 첫 만남에서 선곡을 마친 출연진은 이후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시간을 쪼개 연습하고 합주를 맞춰보며 버스킹을 준비했다. 드디어 다가온 버스킹 당일, 처음으로 버스킹에 도전하는 정해인과 김고은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김고은은 “너무 떨려서 눈물 날 것 같다”며 연신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정해인 역시 “생애 첫 버스킹을 앞두고 밤새 잠 한숨 못 잤다”고 고백했다. 정해인은 쉬는 시간에도 악보를 놓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는 열정으로 패밀리 밴드를 감동시켰다는 후문. 한껏 긴장한 두 사람에게 패밀리밴드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헨리는 긴장한 두 사람에게 “나도 버스킹 처음 할 때 손이 많이 떨렸다”고 공감했다. 김필은 “버스킹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우애가 생길 것”이라며 긴장한 정해인과 김고은에게 든든한 위로를 전했다. 하림 역시 “버스킹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실어줬다. 이윽고 한여름 밤의 서울 버스킹이 시작됐다. 매회 역대급 무대를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패밀리밴드와 스페셜 게스트의 환상적인 듀엣곡이 연이어 펼쳐졌다. 막내 수현과 정해인은 청량함을 뽐내며 ‘너의 의미’를 함께 불러 관객들의 환호를 자아냈다. 헨리는 김고은과 함께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엔딩곡인 ‘I‘ll Never Love Again’ 무대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순간을 선물했다. 한편, JTBC ‘비긴어게인3’는 23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 해군 참수리 고속정 357호정 정장(대위)이었던 윤영하 소령은 253편대 기함인 358호정과 함께 기습도발을 감행하던 북한 경비정 차단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NLL)을 1.1㎞가량 침범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참수리 357호정과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고, 참수리호의 좌현이 노출됐습니다. 이때 북한군이 갑자기 85㎜포로 기습공격을 했습니다. 150m 거리에서 날아든 포탄에 순식간에 357호정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함교에 올라와 있던 윤 소령은 즉각 대응사격 명령을 내렸지만 연이어 날아든 총탄에 피격돼 안타깝게 산화했습니다. 당시 참수리호 함교는 지붕과 벽면이 없었기 때문에 윤 소령의 위치가 그대로 노출됐고 적의 집중적인 사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함교 아래 조타실에서는 조타장 한상국 상사가 치열한 교전 과정에 가슴에 흉탄을 맞았습니다. 그는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키를 놓지 않은 상태로 숨을 거뒀습니다.적의 포화는 20㎜ 벌컨포 사격을 맡은 병기사 황도현 중사에게도 집중됐습니다. 그는 포탄 파편이 머리 쪽으로 날아드는 순간에도 몸을 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 모습 그대로 발견돼 동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40㎜ 함포로 적함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던 병기사 조천형 중사도 좌석에서 화재로 숨지는 순간까지 함포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M60 기관총으로 사격하던 서후원 중사는 적함의 저격수에게 희생됐습니다.●희생 장병들 방아쇠 놓지 않고 끝까지 응전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은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내달렸고 서 중사가 쓰러지자 직접 M60 기관총을 붙들고 응사하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그에게 다시 총탄이 쏟아졌고 온몸에서 100여개의 총탄과 파편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과다 출혈로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인공호흡기와 수많은 의료기기를 단 상태로 사투를 벌인 박 병장은 결국 84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함께 반격하는 358호정은 그대로 두고 집요하게 357호정만 공격해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윤 소령을 포함한 모든 장병이 목숨을 걸고 반격해 적 경비정을 NLL 북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권기형 상병은 왼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소총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응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황창규 중사는 적의 기습공격으로 40㎜ 함포의 전원 장치가 손상되자 수동 사격으로 전환해 적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부장(중위)이었던 이희완 중령은 지휘관인 윤 소령이 전사하자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이들의 분전으로 적함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갑판이 대부분 부서진 채 NLL 북쪽으로 퇴각했습니다. 참수리 357호정은 적과의 교전에서 큰 상처를 입고 결국 침몰했습니다. 조타장 한 상사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357호정 조타실에서 발견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함정 추진 방식 프로펠러→워터제트로 당시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오후 8시에 열리는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날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6용사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각각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윤영하 소령, 박동혁 병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한상국 상사와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서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뉴스로 보거나 영화로 봤던 ‘제2연평해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분전과 헌신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남긴 수많은 ‘유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 대응지침(교전수칙)은 ‘경고방송 →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였습니다. 이것이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등 3단계로 단순화됐습니다. 단계별 조치를 취하다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호의 교훈을 되새기는 의미였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서해 NLL의 경비는 130t급의 참수리 고속정(PKM)이 맡았지만, 지금은 400t급 유도탄고속함(PKG)과 검독수리(230t)급 신형 고속정(PKMR)이 맡고 있습니다. 검독수리급 고속정은 76㎜ 함포와 130㎜ 유도로켓을 장착해 원거리에서 북한 경비정을 타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함교를 함 구조물 내부로 넣어 정장이 비바람은 물론 적의 표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외관 구조를 대폭 개선했습니다. 또 윤영하함(400t)급 유도탄고속함은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선체에 76㎜ 함포와 대함유도탄을 장착했습니다. ‘프로펠러’로 기동하던 함정의 추진 방식도 ‘워터제트’로 바꿔 기동력을 높였습니다. 새로 건조된 유도탄고속함에는 윤 소령을 포함한 6용사의 이름이 차례로 붙여졌습니다.●16년 지난 작년에야 특별법으로 전사자 예우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일반순직’으로 처리됐습니다. ‘전사자’를 전사자로 부르지 못하고 ‘순직자’로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당시 ‘군인연금법’에는 ‘전사’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었고, 분노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무상 사망’ 보상기준에 따라 1인당 3000만~6000만원의 보상금을 제공하는데 그쳤습니다. 정부에서 돈을 줄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후 2004년 법 개정을 통해 군인연금법에 ‘전사’에 대한 보상기준을 신설했지만 정작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16년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유족에게 추가 보상금(1인당 1억 4400만~1억 8400만원)을 지급하게 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가 이제야 도리를 다하게 됐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한 해군 관계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으로 보상제도 등 군 체계가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라며 “군은 피를 흘리면서 발전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전사하신 분들의 아픔이 너무 컸다”고 토로했습니다. 제2연평해전 직전 윤 소령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남긴 갚진 유산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법서라] 검사들은 그만둘 때 왜 흔적을 남길까

    [법서라] 검사들은 그만둘 때 왜 흔적을 남길까

    검찰 내부망에 ‘사의 표명’ 문화대부분 자기반성·당부·감사 인사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검찰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검사들이 조직을 떠날 때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 글을 남긴다는 점입니다. 의무는 아닌데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하면서 이제는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고 낯설다고 합니다. 대체로 검사들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자기 반성과 당부의 글을 남기고 선·후배 등 검찰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물론 일부 검사는 검찰 인사에 따른 불만, 서러움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다른 정부 부처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풍경인데요. 같은 법조인인 판사들 세계에서도 이런 문화는 없다고 합니다. 댓글에 울고 웃는 검사들...‘댓글패’ 선물 지난 6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70여명의 검사가 옷을 벗으면서 수 많은 사의 표명 글이 내부 게시판에 올라 왔는데요. 이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첫 번째로 사퇴를 알린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글이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반듯하게 쓴 손글씨에 검찰 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직접 펜으로 꾹꾹 눌러 쓴 4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내부 게시판에 올렸기 때문인데요. ‘봉욱체로 지정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흘러 나왔습니다. 이렇게 사의 표명 글이 올라오면 댓글이 달립니다. 실명 게시판이기 때문에 ‘악플’이 달리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한 전직 검사 표현에 따르면 성의 있게 댓글을 단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뉠 뿐입니다. 보통 평검사가 그만둘 때는 100~150개, 부장검사는 150~200개, 검사장급 이상은 300개가량의 댓글이 달린다고 합니다. 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검찰 안에서 인연을 맺은 직원들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댓글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텐데요. 봉 전 차장의 글에는 616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역대 최대치입니다. 4년 전 그만 둔 ‘마지막 중수부장’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이 세운 기록(613개)을 간발의 차이로 앞섰습니다. 이 두 사람 모두 댓글이 많은 이유는 “적을 만들지 않는 스타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올해는 특히 댓글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검찰 내에서 평판이 좋은 검사들이 대거 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 박윤해 전 대구지검장, 차경환 전 수원지검장, 권익환 전 서울남부지검장에도 500개 안팎의 댓글이 달렸다고 합니다. 마지막 떠나는 인사에 달리는 댓글 수와 댓글의 진정성은 그 검사가 검사 생활을 제대로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냉정한 ‘성적표’가 아닐까 싶은데요. 검사 입장에서도 자존심이 달린 문제입니다. 일부 검찰청에서는 댓글만 따로 출력해 ‘댓글패’를 만들어 퇴직 선물로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지난 6일 새로 보직을 받은 법무부, 대검, 재경지검 간부급 검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후배 검사와 수사관, 직원들을 배려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결국 우리(검찰)한테 부여된 업무를 얼마나 잘 하느냐는 우리 조직에서 얼마나 멋진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운영해 나가느냐와 직결돼 있다.”가족주의 문화, 전국 근무 특수성 반영 사직 인사 글은 이프로스 내 ‘검사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검찰 내부 직원들만 볼 수 있는 실명 게시판인데요. 검사 게시판이 만들어진 게 2001년 7월쯤이니 검사들의 ‘인터넷 작별 인사’ 문화도 그즈음부터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사의 표명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2003년쯤으로 보입니다. 검사들이 그만 둘 때 사의 표명 글을 올리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직에 몸 담았다는 것은 뭔가 보람 있고 뜻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을텐데, 막상 떠나려고 하면 자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게 된다. 검사로서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프로스)까지 있으니 관례 비슷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지방의 한 차장검사는 “검사들의 근무 특수성에 기인한 문화”라고 바라봤습니다. 검사는 전국을 돌며 근무를 하기 때문에 일선 검찰청 직원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은데, 나중에 퇴직할 때 일일이 전화를 할 수 없으니 온라인을 통해 인사를 나눈다는 설명입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가족주의 문화가 온라인 공간의 활성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검찰만의 끈적끈적함, 서로 밤 늦게까지 업무를 하면서 쌓인 ‘전우애’가 공직을 떠날 때도 발휘된다는 설명입니다.검사의 메시지 진화...작심발언에서 완곡법 배경이 어찌됐든, 검찰 인사가 날 때마다 어김없이 사퇴를 알리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물러날 때임을 직감했던 검사장들은 미리 준비한 글에 사자성어나 시 한 구절을 더해 자신의 생각을 대신 전했습니다. ‘특수통’, ‘공안통’ 등 수사 검사로 승승장구한 검사들도 떠날 때는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옷 벗을 각오를 한 일부 검사는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3월 요직 중 하나로 꼽히는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인사 발령을 받은 장윤석 전 검사장이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은 상당히 수위가 쎈 편입니다. “개혁을 위한 서열 파괴라는 미명 하에 선배를 후배 밑에 앉히는 것은 떠나라는 협박이다. 오늘 불명예스럽게 서울고검에 부임하고 사직하는 것은 스스로 물러서기보다 차라리 인사의 총탄에 맞아 죽어나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혼외아들설이 제기된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압박성 감찰을 비판하며 사의를 표명한 김윤상 전 대검찰청 감찰1과장의 글도 비장함이 묻어납니다. 김 전 과장은 당시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당시 황교안)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최근 사표를 낸 검사들이 올리는 사직 인사 글에서는 과거처럼 강경 발언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신 세련된 방식으로 불만이나 아쉬움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의 최근 사의 표명 글이 대표적인데요. 그는 “제 공직관이 흔들리고 있는데 검사 생활을 더 이어가는 것은 국민과 검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주 부장의 글은 완곡법이 더 강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인사] 국토교통부, 대구시교육청, 충북도교육청

    ■ 국토교통부 ◇ 국장급 승진 △ 부산지방항공청장 장만희 ◇ 국장급 개방형 직위 신규 임용 △ 국토지리정보원장 사공호상 ◇ 과장급 전보 △ 규제개혁법무담당관 윤종수 △ 건축정책과장 김성호 △ 토지정책과장 남영우 △ 해외건설정책과장 박재순 △ 항공안전정책과장 김상수 △ 항공운항과장 오성운 △ 항공기술과장 민풍식 △ 항행시설과장 유병수 △ 서울지방항공청 안전운항국장 곽영필 △ 부산지방항공청 안전운항국장 김봉진 △ 제주지방항공청장 정의헌 △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사무국장 이정복 ■ 대구시교육청 ▣ 유·초·특수 ◇ 교육전문직 [승진] ▷ 교육연구사에서 교육연구관 △ 팔공산수련원 운영부장 박재의 [전직] ▷ 교감에서 장학관 △ 동부교육청 초등교육지원과장 류은영 ▷ 교육연구사에서 장학사 △ 남부교육지원청 신선혜 ▷ 교사에서 장학사(교육연구사) △ 동부교육지원청 남인숙 △ 교육연수원 최수정 ◇ 교장(원장) [승진] △ 옥산초 곽영배 △ 인지초 류애경 △ 매천초 윤은숙 △ 두산초 권보경 △ 선원초 김인숙 △ 명덕초 김재봉 △ 해서초 김진도 △ 서변초 김희숙 △ 청림초 문영철 △ 대구초 변영은 △ 내서초 이지응 △ 가창초 전경희 △ 남동초 한신자 △ 율금초 황재수 [중임] △ 매곡초 김윤일 △ 동평초 송인수 △ 동성초 오상목 △ 도림초 윤보식 △ 학산초 전구학 △ 신흥초 현상환 [초빙] △ 남덕초 김혜주 [전직] ▷ 장학관에서 교장 △ 현풍초 김성곤 [전보] △ 세천유 김월계 △ 대실유 정지애 △ 비슬유 차경순 △ 이현초 강호순 △ 범어초 김광순 △ 도원초 김창원 △ 다사초 류성진 △ 파호초 이향숙 △ 서촌초 임도영 △ 대덕초 임인오 △ 대진초 장명순 △ 조야초 정효석 △ 경운초 최순희 ◇ 교감 [승진] △ 수성초 도종윤 △ 현풍초 문덕주 △ 동평초 서민열 △ 동천초 이경순 △ 관천초 임기숙 [전직] ▷ 장학사에서 교감(원감) △ 이현초 전명진 △ 대구세명학교 김현경 [전보] △ 지산초 박정하 △ 성북초 권은숙 △ 복현초 김미옥 △ 달서초 김정애 △ 운암초 여명숙 △ 서대구초 임후남 △ 관음초 조현주 △ 월서초 정승수 △ 월촌초 최성애 △ 한샘초 김충현 △ 월암초 최학섭 ▣ 중등 ◇ 교육전문직 [승진] ▷ 장학관에서 과장 △ 시교육청 체육보건과장 임오섭 ▷ 장학사에서 장학관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이혜정 [전직] ▷ 교장에서 장학관 △ 시교육청 미래교육과장 김차진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김동호 ▷ 교감에서 장학관 △ 시교육청 체육보건과 이영길 △ 남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한숙원 ▷ 교사에서 장학사(교육연구사) △ 동부교육지원청 송인용 △ 서부교육지원청 박세진 △ 남부교육지원청 조영진 △ 교육연수원 이주양 [전보] ▷ 장학사(교육연구사) △ 시교육청 미래교육과 배중수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정혜금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이현아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인경수 △ 시교육청 체육보건과 김윤희 △ 동부교육지원청 문미양 △ 교육연수원 박규서 △ 창의융합교육원 김유경 [파견] △ 중앙교육연수원 교원능력개발과 최덕민 △ 교육부 교육정보화과 양치구 [파견 복귀] △ 시교육청 융합인재과 이승일 △ 남부교육지원청 이옥순 ◇ 교장 [승진] △ 경북여고 남영목 △ 서부공고 장진곤 △ 입석중 장현주 △ 학산중 박문근 △ 이곡중 조혜련 △ 대서중 정재혁 [중임] △ 성서고 이호근 △ 동부중 황명식 △ 관음중 신문호 △ 용산중 신종열 △ 서동중 이종순 [공모] △ 포산고 이한곤 △ 수성고 최재홍 △ 천내중 최면숙 [전직] ▷ 장학관에서 교장 △ 운암고 장재화 △ 대곡고 장정묵 △ 동원중 황진숙 △ 율원중 장순균 △ 평리중 김경숙 [전보] △ 달서공고 황용선 △ 동촌중 김선희 △ 경혜여중 안영희 △ 성서중 김정애 ◇ 교감 [승진] △ 함지고 박정미 △ 전자공고 전병수 △ 교동중 김미숙 △ 중리중 조은영 △ 조암중 신재건 △ 성당중 안상희 [전직]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감 △ 달성고 김영주 △ 호산고 김영화 △ 경덕여고 류영미 △ 대구과학고 구교석 [전보] △ 시지고 안병관 △ 대진고 전병학 △ 경북여고 이화정 △ 수성중 최술한 △ 제일중 송선화 △ 성지중 이경희 △ 대곡중 서도성 ■ 충북도교육청 ◇ 초등 장학(교육연구)관 전보·전직·승진 △ 특수교육원 원장 신사호 △ 보은교육지원청 교육장 박인자 △ 영동교육지원청 교육장 성경제 △ 음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장병욱 △ 교육국 미래인재과장 이남덕 △ 교육문화원 문화기획부장 백우정 △ 청주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장 김영순 △ 충주교육지원청 교육과장 함종철 △ 제천교육지원청 행복교육센터장 고승식 △ 옥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조계숙 △ 교육국 미래인재과 장학관 김긍수 △ 교육국 미래인재과 장학관 김명숙 ◇ 초등학교장 승진 △ 청주 서원초 송관영 △ 청주 직지초 오병미 △ 청주 남일초 윤기순 △ 청주 남성초 이경세 △ 청주 상봉초 이순자 △ 청주 대길초 이월영 △ 청주 강서초 이정애 △ 청주 석성초 최향미 △ 제천 청풍초 이성희 △ 옥천 장야초 이숙경 △ 옥천 군서초 최임복 △ 영동 매곡초 조갑연 △ 진천 학성초 이득희 △ 괴산증평 목도초 장광수 △ 괴산증평 청안초 최세권 △ 음성 청룡초 강지현 △ 음성 맹동초 김희열 △ 음성 평곡초 조성미 △ 단양 가평초 김병희 ◇ 유치원장·초등학교장 전보 △ 청주 청남초 김한모 △ 청주 창리초 박명금 △ 청주 율량초 박은영 △ 청주 진흥초 오희은 △ 청주 죽림초 원선희 △ 청주 주성초 이은미 △ 청주 운동초 이주각 △ 청주 서경초 조효숙 △ 청주 풍광초 채민자 △ 청주 주중초 최미자 △ 충주 주덕초 백춘자 △ 충주 충주 대림초 지태환 △ 제천 명지초 김길수 △ 제천 왕미초 박효순 △ 제천 의림초 음용란 △ 제천 신백초 임희섭 △ 옥천 증약초 김화자 △ 음성 용천초 김순남 △ 청주 덕성유 이양순 △ 제천 홍광유 김경숙 △ 진천 옥동유 구난숙 △ 음성 동성유 김미영 ◇ 유치원장·초등학교장 중임·전보 △ 청주 비봉초 강연철 △ 청주 가덕초 김경호 △ 청주 산성초 김서우 △ 청주 원평초 김태곤 △ 청주 내덕초 양순원 △ 청주 봉명초 이정순 △ 청주 덕성초 이형숙 △ 청주 덕벌초 임태빈 △ 충주 목행초 황규만 △ 충주 산척초 김기령 △ 충주 삼원초 심선보 △ 충주 성남초 한미자 △ 제천 남천초 김남호 △ 제천 송학초 변정구 △ 제천 봉양초 윤영희 △ 제천 동명초 조성봉 △ 제천 장락초 홍준락 △ 옥천 죽향초 김미정 △ 단양 매포초 박용철 △ 청주 비봉유 김미옥 △ 청주 산남유 박희숙 ◇ 초등학교 공모교장 △ 괴산증평 청천초 송호인 ◇ 초등학교장 전직[장학(교육연구)관→교장] △ 청주 경산초 박준석 △ 충주 대미초 배승희 △ 영동 양산초 박영자 ◇ 유치원·초등 교(원)감 승진 △ 청주교육지원청 김미숙·박정례·송효진·이석우·정구준·정은희 △ 보은교육지원청 이상선 △ 영동교육지원청 전신용 △ 진천교육지원청 안종숙·임미랑 △ 음성교육지원청 김명희 △ 청주교육지원청(유) 이경미·배재순 ◇ 유치원·초등·특수학교 교(원)감 전보 △ 청주교육지원청 안인혁 △ 청주혜원학교(특) 김윤아 ◇ 초등학교 교감 전직[장학(교육연구)사→교감] △ 청주교육지원청 김범식·손미옥·정연우 △ 충주교육지원청 이승숙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임혜옥 ◇ 교육전문직 전보·전직[장학(교육연구)사] △ 기획국 정책기획과 김종현 △ 교육국 학교혁신과 송은경 △ 교육국 미래인재과 손민희 △ 단재교육연수원 김종욱 △ 교육문화원 김선화 △ 국제교육원 전영미 △ 특수교육원 박경원 △ 청주교육지원청 배상호·이현미·천주영·최혜영 △ 충주교육지원청 박미숙 △ 보은교육지원청 이혜진 △ 옥천교육지원청 박시우 ◇ 교육전문직원 신규[교감·교사→장학(교육연구)사] △ 교육국 미래인재과 김명수 △ 교육국 학교자치과 김경영 △ 교육연구정보원 신은희 △ 충주교육지원청 윤학준 △ 진천교육지원청 최선미 △ 옥천교육지원청 허윤희 △ 음성교육지원청 배홍열 △ 단양교육지원청 강창원 ◇ 교육전문직원 파견[교육연구사] △ 교육부 지방교육자치지원단 전은숙 ◇ 중등 장학(교육연구)관 전보·전직 △ 단재교육연수원 원장 이유수 △ 옥천교육지원청 교육장 김일환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교육장 박영철 △ 공보관 오영록 △ 기획국 체육건강안전과장 한상묵 △ 청주교육지원청 교육국장 조의행 △ 단재교육연수원 원격연수부장 홍석중 △ 교육연구정보원 정보교육부장 임용희 △ 교육국 학교자치과 장학관 정문희 △ 청주교육지원청 체육건강과장 손태규 △ 청주교육지원청 행복교육센터장 조선진 △ 국제교육원 남부분원장 유영철 ◇ 중등 장학(교육연구)관 승진 △ 진로교육원 진로기획과장 이교배 △ 진로교육원 진학지원센터장 손기향 ◇ 중등 교장 승진 △ 중원중 김순희 △ 청천중 김현철 △ 충주중앙중 김호형 △ 한송중 나덕문 △ 목도고 민경석 △ 보덕중 박규범 △ 괴산고 박대우 △ 학산고 손문종 △ 증평정보고 이경희 △ 음성여중 이은자 △ 충주예성여고 이춘형 △ 동성중 이태호 △ 충주여고 정석영 △ 주성고 진영필 △ 수안보중 천월봉 △ 삼성중 홍영준 ◇ 중등 교장 전직[장학(교육연구)관→교장] △ 충북상업정보고 권오석 △ 복대중 안희철 △ 충북예술고 이영정 △ 충북고 장재영 ◇ 중등 교장 전보 △ 원평중 김선휘 △ 청주공고 김수태 △ 서원고 김승환 △ 서원중 김신회 △ 청주하이텍고 박기주 △ 증평중 연정호 △ 충주예성여중 오억균 △ 오송중 전연화 △ 영동중 정민교 △ 덕산중 조장희 △ 원봉중 차상운 △ 제천여중 최정순 ◇ 중등 교장 전출 △ 한국교원대 이병래 ◇ 중등 교장 중임 △ 충북과학고 김형길 △ 봉명고 민병하 △ 봉양중 송선일 △ 용암중 신해인 △ 청주여고 정우정 ◇ 중등 공모 교장 △ 진천상고 김원묵 ◇ 중등 교감 승진 △ 진천교육지원청 강석범 △ 충주교육지원청 김규성·김양규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김인숙·연동열 △ 청주교육지원청 노승찬·우경숙·윤영희 △ 제천교육지원청 이기완 △ 영동교육지원청 이미란 △ 주덕고 이우형 △ 음성교육지원청 이종기 △ 한국호텔관광고 조성현 ◇ 중등 교감 전보 △ 청주교육지원청 김태곤·김흥수·이정수·임항규 △ 충북상업정보고 인신환 △ 제천교육지원청 최장민 △ 영동산업과학고 하헌정 △ 청주혜화학교 남경희 ◇ 교육전문직원 전직[장학(교육연구)사→교감] △ 청주교육지원청 김성은·신희숙·류지연 △ 흥덕고 오남진 △ 봉명고 조삼현 △ 충주고 이상민 ◇ 중등 교육전문직원 전보 △ 감사관 안광성 △ 교육국 학교혁신과 김진회·정정희 △ 교육국 학교혁신과 지현옥 △ 교육국 미래인재과 박훈 △ 교육국 학교자치과 김귀현·나은정·전현주 △ 교육국 교원인사과 김태완 △ 자연과학교육원 전병숙 △ 단재교육연수원 민현숙 △ 특수교육원 원수라 △ 청주교육지원청 김민정 ◇ 교육전문직 신규[교사→장학(교육연구)사] △ 공보관 김기열 △ 교육국 미래인재과 최윤희 △ 교육국 학교자치과 정승현 △ 단재교육연수원 김만균 △ 청주교육지원청 가재남·송용범 △ 충주교육지원청 남정민 △ 음성교육지원청 이순희 △ 제천교육지원청 임수미·전우석 △ 보은교육지원청 이나영 △ 옥천교육지원청 김현숙 △ 괴산증평교육지원청 나상호·변지영 △ 진천교육지원청 이유남 △ 단양교육지원청 홍영은 △ 교육문화원 박재성 ◇ 중등 사립교원 교육전문직(장학사) 특별채용 △ 교육국 학교혁신과 김봉호 △ 영동교육지원청 한순재 ◇ 중등 교감 전출·입 △ 충북대학교 정관숙 △ 진천고 김종섭 ◇ 교육전문직 파견[교육연구사] △ 교육부 박재성
  • 나경원 ‘우리 일본’ 발언 논란에 여야 “스스로 돌아보라”

    나경원 ‘우리 일본’ 발언 논란에 여야 “스스로 돌아보라”

    여야는 7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전날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 일본’이라는 용어를 쓴 것과 관련해 나 원내대표가 국민이 공분하는 이유를 스스로 돌이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제1야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도 참으로 민망한 일이고, 이런저런 경우를 일일이 들어가며 해명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참으로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한국당과 나 원내대표는 말버릇이자 단순한 습관으로 인한 해프닝일 수 있었던 ‘우리 일본’ 한 마디에 왜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공분하고 있는지 그 연유를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그간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과 함께 노력하는 정부의 발목을 잡아가며 ‘아베 정권 기 살리기’에 몰두한 것부터 반성하고 바로 잡으라”고 지적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나 원내대표의 ‘우리 일본’ 발언이 깊은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해명처럼 의미 없는 말버릇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싶다”며 “그런데도 국민이 나 원내대표의 진심을 오해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스스로 발언과 행보를 돌이켜보라”고 밝혔다.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 정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거나, 일본에 대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동질감을 느끼거나 둘 중 하나”라며 “전자라면 국민 정서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없는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이며, 후자는 토착왜구의 본심이 드러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국당의 동맹은 ‘우리 일본’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막무가내로 ‘우리 대한민국’에 굴복을 강요하는 아베 총리에게 오히려 사절을 보내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한국당 주장은 외교적 해법으로 포장된 투항 주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원내대표실 명의의 설명자료를 내고 “의미 없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덧붙여진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가 평소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의미 없이 ‘우리’란 단어를 발언한 6개 사례를 첨부했다. 원내대표실의 자료에 따르면 나 원내대표는 지난달 KBS 수신료 거부 출정식에서 ‘우리 KBS’라는 표현을, 이달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중소기업중앙회’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2일 의원총회 때는 ‘우리 기다려주신 의원님들’이라는 단어를 썼으며 ‘우리 동아일보’, ‘우리 고엽제 전우’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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