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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책임”vs“예의” 안희정에 보낸 대통령 조화 논란

    “무책임”vs“예의” 안희정에 보낸 대통령 조화 논란

    모친상을 당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광주교도소에서 나와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상주 역할을 하는 안 전 지사의 빈소에는 6일 오후 민주당 이해찬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변재일 홍영표 이원욱 송갑석 강훈식 강병원 의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손학규 전 의원,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여야 정치인들의 줄을 이어 찾았다. 정의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안 전 지사 사건은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일어난 성폭력 사건으로 정치 권력과 직장 내 위력이 바탕이 된 범죄”라며 “정치 권력을 가진 이는 모두가 책임을 통감했고 더불어민주당 역시 반성의 의지를 표했는데 오늘의 행태는 정말 책임을 통감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의당의 논평은 반발을 샀는데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과거 미래통합당조차도, ‘뇌물 받고 자살한 사람 빈소에 대통령 직함을 쓴 화환을 보냈다’고 비난하진 않았다”며 “죄가 미워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각박해지는 게 진보는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문 대통령의 조화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진 전 교수는 안희정 상가에 보낸 대통령의 조화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성추행범에게 조화를 보내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굳이 보내야겠다면 적어도 ‘대통령’이라는 공식직함은 빼고 보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은 제 식구가 아니라 국민을 챙겨야 한다”며 “대통령이 위로할 사람은 안희정이 아니라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김지은씨”라고 강조했다. 또 안 전 지사의 빈소에 정치권에서 대거 조문을 간 행태에 대해 “정치권에서 성범죄자에게 공식적으로 ‘힘내라’고 굳건한 남성연대를 표한 격”이라며 “코로나로 경제가 어렵다 보니 대통령 이하 여당 정치인들이 단체로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수출했나 보다”고 비판했다. 한편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김지은씨는 지난 2월말 ‘김지은입니다-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이란 책을 펴냈다. 안 전 지사의 모친 국중례 씨는 4일 오후 숙환으로 별세했다. 발인은 7일 오전 6시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안 전 지사의 형집행정지 기간은 오는 9일 오후 5시까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민자야 오빠 간다”… 70년 만에 돌아온 김 일병

    “민자야 오빠 간다”… 70년 만에 돌아온 김 일병

    文, 서울공항서 유해 직접 맞아 최고 예우 트럼프 “여러분 승리 축하” 영상 메시지“민자야, 오빠 간다. 엄마 아버지 잘 모셔라.”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정용 일병은 1950년 8월 부대로 향하기 전 여동생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고인은 “흥남부두에 앉아 바다를 쳐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편지를 쓴다. 부디 답장을 길게 보내다오”라고 쓴 편지를 끝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열아홉 나이로 참전했던 김 일병이 25일 70년 만에 전우 146명과 함께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날 ‘영웅에게’라는 주제로 경기 성남의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는 오후 8시 40분 고 하진호·김정용·김동성·최재익·박진실·정재술(이상 일병)·오대영 이등중사 등 국군 전사자 7명의 유해 봉환으로 시작됐다. 이날 행사는 고령층 참석자의 안전을 고려해 처음으로 일몰 이후 개최했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가족 6명과 함께 입장해 공군 항공기에서 내리는 유해를 예를 갖춰 맞이했다. 가수 윤도현이 이들을 추모하며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6·25 당시 미 7사단 17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예비역 이등중사 류영봉씨가 70년 만에 돌아온 전우들을 대신해 복귀신고를 했다. 류 중사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등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 25일 기하여 조국으로 복귀 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을 외치며 거수 경례했다. 참석자 300여명의 가슴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기억하는 ‘122609 태극기’ 배지가 빛났다. 조포 21발 발사와 함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조포 21발 발사는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예우로, 이 역시 6·25 행사 처음으로 이뤄졌다. 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 등 22개 유엔 참전국 정상들도 영상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면서 “우리가 합심해 이룬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전했다. 이번 유해 봉환은 한미 공동 감식작업으로 이뤄진 것으로,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되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번 유해봉환은 남북미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라며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 유해발굴 사업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면서 북한 지역 내 전사자 유해인계 관련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돌아온 전우 147명… 가슴에 묻은 12만명

    1950년 6·25전쟁에 참전했던 청년 김 일병이 70년 만에 전우 146명과 함께 그리운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는 6·25전쟁 당시 미 7사단 소속의 고 하진호·김정용·김동성·최재익·박진실·정재술(이상 일병)·오대영 이등중사 등 국군 전사자 7명과 미군 6명의 유해 봉환으로 시작됐다.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와 함께 유해가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일어나 묵념했다. 참전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등 300여명의 참석자 가슴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기억하는 ‘122609 태극기’ 배지가 달렸다. 이날 국가보훈처가 개최한 70주년 행사는 참전 유공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대한 경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유해가 확인돼 70년 만에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 국군 전사자 147구를 최고의 예우를 다해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유해 봉환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되면서 이뤄지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영국·호주·네덜란드 등 22개 유엔 참전국 정상들도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보훈처는 6·25 당시 매봉고지 전투에서 적의 거점을 파괴하는 등 공을 세운 공호영 하사 등 2명과 유족 12명에게도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또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6·25 당시 유엔참전국이 사용했던 수통, 탄피, 철모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패’를 참전국 대표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전달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김상돈 의왕시장, 6·25전쟁 참전자 3명 자녀에 화랑무공훈장 전수

    김상돈 의왕시장, 6·25전쟁 참전자 3명 자녀에 화랑무공훈장 전수

    경기도 의왕시는 6.25전쟁 참전 유공자 무공훈장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전수식을 가졌다고 25일 밝혔다. 이는 ‘6.25전쟁 참전자에 대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의 하나다. 6·25전쟁 당시 국방부, 육군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헌신하였던 선배 전우의 명예선양을 위한 사업으로 이번에 전수한 훈장은 화랑무공훈장 훈격이다. 전수대상자는 5사단 소위 조도형, 9사단 병장 김학근, 3사단 하사 이병선 3명이다. 김상돈 시장은 화랑무공훈장을 참전자 유족인 김덕순 전몰군경유족회장과 유족 2명(조선훈, 이창례)에게 전수했다. 김덕순 전몰군경유족회장은 “아버지의 훈장을 이렇게 대신 받게 돼 참전자 후손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 시장은 “구국의 일념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세분의 전공을 오늘에서야 화랑무공훈장으로 전해 드리게 됐다”고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조국의 운명 앞에서 기꺼이 젊음을 바친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공로를 시민과 함께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6·25 참전 소년·소녀병도 국가유공자 되나

    6·25 참전 소년·소녀병도 국가유공자 되나

    강대식 의원 개정법안 대표발의재일학도병과 형평성 문제제기“헌신·희생에 합당한 예우해야”미래통합당 강대식(대구 동을) 의원이 6·25 전쟁 70주년을 앞두고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예우·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24일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국가유공자단체에 6·25 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를 추가하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단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6·25 전쟁 당시 병역의무대상이 아닌 17세 이하 소년·소녀들은 자원 또는 강제로 징·소집돼 대한민국 수호에 공헌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연령대인 재일학도의용군인의 경우 모두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있는 것에 비해 6·25 참전 소년·소녀병은 전사자·전상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강 의원이 발의한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은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해 보상 및 교육·취업·의료 지원 등에 있어 예우를 갖추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유공자단체법 개정안은 이들을 위한 위령제, 추모비 건립 등 보훈 활동을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강 의원은 “6·25 전쟁 당시 꽃다운 나이에 목숨 바친 소년·소녀병들이 백발의 노인이 다 됐고, 이제 2000여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21대 국회에서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야가 한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유공자법·국가유공자단체법 개정안에는 곽상도, 김상훈, 김승수, 김용판, 류성걸, 서정숙, 신원식, 양금희, 유의동, 윤재옥, 윤창현, 이명수, 이종배, 전주혜, 조수진, 조태용, 추경호, 홍석준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아이 꼭 안고 죽은 엄마들… 전쟁 비참함 알리는 게 마지막 임무”

    “아이 꼭 안고 죽은 엄마들… 전쟁 비참함 알리는 게 마지막 임무”

    “전투가 끝나고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오빠가 보이지 않았어. 여기저기 찾아보니 오빠가 헌 옷을 입고 죽어 있었지. 시신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모래로 대충 덮어 주고 올 수밖에 없었어.”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마포보훈회관에서 만난 여군 참전용사 박순애(83)씨는 처참했던 전투 상황을 설명하던 중 오빠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옆에서 박씨의 설명을 듣던 남편 김우춘(83)씨도 “요즘 사람에게 그때의 일을 설명하면 잘 믿지 못한다”며 거들었다. 이들은 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참전유공자 부부다. 부부는 1951년 봄 황해도 인근에서 활동한 8240부대 ‘구월산 민간인 유격대’ 소속이었다. 박씨는 황해도 인근 곰념섬에서 활약하며 북한군 침투를 저지했다. 김씨는 북한군의 기지를 기습하는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15살에 참여한 전쟁이란 말 그대로 ‘아픔’이었다. 황해도가 고향인 박씨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은율군 염천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소년단 회장을 할 정도로 총기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순탄했던 학교 생활은 전쟁으로 끝이 났다. 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폭격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박씨는 “누군가가 집 대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코가 큰 외국 사람이 서 있었다”며 “어머니가 미군 30명분의 밥을 해 줬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전쟁의 첫 모습”이라고 회상했다. 1·4 후퇴를 앞두고 그는 피란길에 올랐다. 맨발로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은율군 인근에 있는 곰념섬이었다. 무사히 피란처에 도착했지만 굶주렸다. 입대하면 굶지 않을 거란 생각에 당시 여대장인 이정숙의 권유로 1951년 봄부터 유격대 활동을 시작했다. 200명 남짓한 유격대의 생활은 열악했다. 허름한 초가집 한방에 40여명이 모여 누웠다. 8~10채의 초가집을 막사로 사용했다. 전염병으로 죽어 나가는 이들이 속출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북한군 눈을 피해 뭍으로 나가야만 했다. 길목에 설치된 지뢰도 피해야 했다. 박씨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일쑤였고, 미군이 먹다 남긴 닭다리를 먹는 게 그나마 잘 먹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남편 김씨는 서해 최북단에서 활동했다. 연평도·백령도 등 현재의 ‘서해 5도’를 기점으로 황해도 인근 섬인 초도 등을 기습하는 상륙작전에 주로 참여했다.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작은 배에서 내려 적진을 향해 뛰었다. 요즘 김씨의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희미해진다. “이젠 드문드문 떠오르는 게 전부야.” 박씨의 임무는 물골을 따라 침투하는 북한군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섬 바로 앞 물속에 몸을 숨겼다. 북한군은 총이 물에 젖을까 양팔을 위로 들고 걸어왔는데 그 순간 돌멩이와 몽둥이로 기습했다. 전투의 결말은 늘 비극이었다. 김씨가 목격한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길가에는 어머니들이 웅크린 자세로 죽어 있었다. 아이를 꼭 안고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들이 숨기 위해 파놓은 굴에는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박씨는 “우리 어머니도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면 나와 동생을 끌어안기부터 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끝났지만 곤궁한 삶은 그대로였다. 부부는 황폐화된 전국을 돌아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 갔다.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음식을 구걸하기도 했다. 부부는 각자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다가 21살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김씨는 처음에는 아내가 참전유공자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로부터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도 황해도에서 비슷한 시기 피란을 내려온 같은 실향민이자 전쟁을 같이 치른 전우애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부부는 코로나19가 오기 전 일주일에 세 번은 함께 청소년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을 했다. 청소년들이 부부의 얘기에 큰 관심을 가져 주기 때문에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이들은 인터뷰 내내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5년 전만 해도 부부 참전용사 5쌍 정도가 모임을 했다”며 “이제는 소식도 다 끊겨 몇 명이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정부는 부부 참전용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에겐 이번 6·25 70주년이 마지막 기념일이 될 수도 있어. 80주년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젊은 세대에게 전쟁의 비참함을 알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마지막 임무야.”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보훈대상] 평화의 싹 틔우는 당신… 그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보훈대상] 평화의 싹 틔우는 당신… 그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올해는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전쟁 후 7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현실 속에 안주하며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잊고 살았고, 전쟁의 기억을 가진 세대들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국가보훈처와 서울신문사가 추진하는 ‘서울보훈대상’은 나라를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가족을 잃는 등 커다란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가와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앞장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화는 구호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에게 평화가 거저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평화를 지켜내려는 의지와 평화의 감수성을 키우고 향유하려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서울보훈대상 수상자들은 가슴속 깊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고 국가와 지역사회에 공헌하여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의 씨앗을 틔우기 위해 열정을 다하신 분들입니다. 참전 유공자로서 국가 안보와 지역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고 참전자 가족의 자긍심 고취 및 명예 선양, 지역주민을 위해 실천적 봉사에 헌신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수많은 공을 세웠고, 이후 무공수훈자와 국가유공자의 명예 고양을 위해 수십 년간 헌신하신 분도 있습니다. 또 지역사회의 불우이웃과 전우들의 복지를 위해 수천 벌의 의류 기부활동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분도 있습니다. 순직 군경 유족으로 유공자의 위상 제고와 나라 사랑 국토 탐방, 전적지 순례 등 애국심 함양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한 분과 전몰군경 유족으로 6·25참전 유엔군 전사자 유족 돕기 선양사업 등에 적극 참여해 애국정신과 나라사랑 문화 확산에 기여한 분도 있습니다. 또 잘 드러나지도 않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다 부상당했지만 보훈 안보 활동으로 국민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환경 정화, 긴급 재난 구조 활동, 대민 봉사 등을 실천해 귀감이 되는 분도 계십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 진정 예우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영웅이 아닐까 싶습니다.우리 주변에는 많은 참전자와 보훈 가족들이 있습니다. 전쟁이 잊힐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고 또렷하다고 합니다. 주변의 보훈 가족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그들을 따뜻이 보살펴 아픔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살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세대, 그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아프게 보냈다는 상처보다 오히려 후손들을 걱정합니다.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마음이 숙연해지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 평화를 지키고 정착을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애국선열과 국가유공자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제광 학예실장 건국대박물관
  • [보훈대상] 참전 유공자 장년순

    [보훈대상] 참전 유공자 장년순

    장년순(74)씨는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서울시지부 수석 부지부장이다. 의류업체 대표로 월남전 참전 전우로서 각계각층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전우들에게도 의류제품을 기증해 단체의 화합과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불우이웃들에게 의류제품을 기부하고 있으며, 국외에도 의류제품을 기부하는 등 국위 선양에 힘쓰고 있다. 소외받고 어렵게 생활하는 주변 이웃과 월남전 참전 전우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봉사하는 기부천사로 명성을 얻으며 월남전참전자회 활성화와 전우들의 복지 향상에 공헌했다.
  • ‘최강 액션 배우’ 거듭난 최강희 “‘멋쁨’ 수식어 기분 최고”

    ‘최강 액션 배우’ 거듭난 최강희 “‘멋쁨’ 수식어 기분 최고”

    “드라마 ‘7급 공무원’ 때 실제로 국정원에서 실탄 사격을 했는데, 사람 모양 과녁에 총을 쏘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쫓겨났었어요.” ●“과녁에 총 못쐈는데 17대1도 거뜬해” 지난 16일 종영한 SBS 드라마 ‘굿캐스팅’에서 국정원 에이스 백찬미로 열연한 최강희(43)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의외의 답을 내놨다. 화려한 액션을 쉴 새 없이 선보였지만 ‘7급 공무원’(2013) 속 신입 요원 역을 준비할 땐 “능력이 있어도 국정원 직원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근데 두 번째는 달랐다. 17대1은 족히 넘어보이는 집단 격투, 유도, 오토바이 액션까지 어느 때보다 센 액션을 수월하게 선보였다. 촬영 한 달 전부터 무술 감독에게 지도를 받는 등 노력한 덕분이었다. 그는 “액션 연기가 너무 재밌어 힘든 줄도 몰랐다”며 “액션 잘한다는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5년 KBS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최강희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2008) 등에선 상큼한 멜로퀸으로, ‘추리의 여왕’(2017~2018)에서는 범죄 해결사 ‘추리퀸’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 줬다. 백찬미도 최근 맡았던 ‘능력자’ 캐릭터의 연장선이다. 가장 믿음직한 현장 요원의 모습을 소화한 덕분에 ‘멋쁨’(멋지고 예쁨)이라는 기분 좋은 수식어도 얻었다. 배우 김지영, 유인영 등 세 여성 요원이 좌충우돌하며 임무를 완수하는 ‘워맨스’도 큰 응원을 받았다. 최강희는 “저희 셋을 ‘미녀 삼총사’라고 불러주신 것도 좋았다”며 “전우애도 돈독해졌다”고 전했다. 두 동료에 대해서는 “지영언니는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인영씨는 똑똑하고 털털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늘 소통했다”고 팀워크를 뽐냈다. ●송은이·김숙 등과 오랜 우정 쌓아 세 사람 ‘케미’처럼 그는 장기간 우정을 이어 온 여성 동료들이 많다. 코미디언 송은이·김숙, 배우 선우선 등 종종 방송에서 친분을 비치기도 한다. 최강희는 “정말 친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주 만나진 못한다”면서도 “서로 지적이나 훈계를 하지 않고, 그냥 많이 좋아하는 데서 에너지와 자극을 받은 덕에 나도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25년간 부지런히 달린 것처럼 빠르면 올해 하반기 새 작품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그는 “시원한 게 필요할 때 시원함을, 따뜻함이 필요할 땐 위로를 주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무엇이든 도전하며 성실히 연기하겠다”고 신인 같은 포부를 남겼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칠곡군, 호국영웅 8인을 만나다

    칠곡군, 호국영웅 8인을 만나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66) 선장, 제2 연평해전 참전 용사 권기형(39), 천안함 폭침 생존자 전준영(33·천안함 전우회장), 북한의 목함지뢰사건으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26) 예비역 중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국영웅 8명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호국평화의 도시’ 경북 칠곡군은 오는 22일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호국영웅 8명을 초청해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재조명하는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을 만나다’ 행사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석 선장 등 4명 외에 한국전쟁 낙동강전투에서 반전 기틀을 마련한 조석희(95)옹,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발휘해 즉각 대응사격에 기여한 권준환(48) 예비역 해병 소령, 1969년 비둘기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이길수(74) 월참유공자회 칠곡군지회장, 2004년 자이툰부대 1진으로 이라크에 파병돼 한국대사관을 방어하고 파발마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강문호(53) 예비역 해병 대령 등도 초청한다. 칠곡군은 이날 호국영웅들에게 공모해 제작한 호국영웅 배지를 달아주고, 청소년들과 호국보훈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기념식을 마친 뒤 왜관읍 호국의 다리로 이동해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 호국의 다리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폭파한 교량이다. 이번 행사는 백선기 칠곡군수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과 대한민국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직접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천안함 전우회장은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게 존경받았으면 한다”고 했고, 석 전 선장은 “호국영웅을 기억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일로 부디 이들의 헌신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 군수는 “칠곡군은 앞으로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선진 보훈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부단히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칠곡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이자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 승리의 토대가 된 낙동강 방어선전투(1950년 8월 1일~9월 24일)가 벌어진 곳이다. 칠곡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칠곡군, 호국영웅 8인을 만나다 석해균 선장·제2 연평해전 용사 등 22일 초청… 희생·헌신 재조명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66) 선장, 제2 연평해전 참전 용사 권기형(39), 천안함 폭침 생존자 전준영(33·천안함 전우회장), 북한의 목함지뢰사건으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26) 예비역 중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국영웅 8명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호국평화의 도시’ 경북 칠곡군은 오는 22일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호국영웅 8명을 초청해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재조명하는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을 만나다’ 행사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석 선장 등 4명 외에 한국전쟁 낙동강전투에서 반전 기틀을 마련한 조석희(95)옹,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발휘해 즉각 대응사격에 기여한 권준환(48) 예비역 해병 소령, 1969년 비둘기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이길수(74) 월참유공자회 칠곡군지회장, 2004년 자이툰부대 1진으로 이라크에 파병돼 한국대사관을 방어하고 파발마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강문호(53) 예비역 해병 대령 등도 초청한다. 칠곡군은 이날 호국영웅들에게 공모해 제작한 호국영웅 배지를 달아주고, 청소년들과 호국보훈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기념식을 마친 뒤 왜관읍 호국의 다리로 이동해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 호국의 다리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폭파한 교량이다. 이번 행사는 백선기 칠곡군수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과 대한민국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직접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천안함 전우회장은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게 존경받았으면 한다”고 했고, 석 전 선장은 “호국영웅을 기억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일로 부디 이들의 헌신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 군수는 “칠곡군은 앞으로도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우고 선진 보훈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부단히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칠곡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이자 대한민국 최후의 보루로 승리의 토대가 된 낙동강 방어선전투(1950년 8월 1일~9월 24일)가 벌어진 곳이다. 칠곡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포토] 평양 지하에 ‘황홀경의 세계’

    [포토] 평양 지하에 ‘황홀경의 세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3일 ‘지하 평양이 젊어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평양 시내 위치한 지하철역 내·외부 사진을 공개했다. 신문은 “평양 지하철도의 여러 역이 연이어 개건되어 인민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면서 “지난해에 개선역과 통일역이 현대적으로 개건된 데 이어 올해에 들어와 전승역과 전우역이 또 다시 새로운 모습을 펼치었다”라고 밝혔다. 사진은 개선역 지하철에 탑승하는 북한 주민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코로나19로 맞물린 미국 내 시위로 이중고 겪는 한인들 “그래도 지금은 Black으로 연대”

    코로나19로 맞물린 미국 내 시위로 이중고 겪는 한인들 “그래도 지금은 Black으로 연대”

    미국 내 한인들에게 ‘조지 플로이드 사건’ 항의 시위를 묻다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관련해 미국 내 시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한인 사회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한인들은 코로나19로 지난 두 달여간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을 겪은 뒤인 만큼 피해가 더 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한인들은 “지금은 Black(흑인)의 이름으로 힘을 모을 때”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에 시위까지…한인들의 이중고 LA 한인타운에서 23년간 거주한 지근옥(58)씨는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조지 플로이드 시위로 터져 나온 것 같다”고 했다. 무역업을 해온 지씨는 코로나19 당시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여전히 미국 사회에 뿌리 박힌 인종차별을 느꼈다. 지씨는 “한창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백인들이 한인들이 모는 우버 택시는 탑승하도고 다시 내리는 등 차별이 종종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이 코로나19로 인한 조치들을 서서히 풀 때 즈음 발생했다. 지씨는 “통행금지 시간이 생기고 일상생활은 물론 경제적인 상황도 여전히 좋지 않은 말 그대로 ‘이중고’”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씨는 이번 시위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지씨는 “한인 상점도 약탈로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시위는 평화로 돌아서고 있고, 시위대와 약탈자는 분리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평화 분위기로 돌아선 ‘조지 플로이드 시위’ 실제로 미국 내부의 분위기도 평화 시위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LA에서 한인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레이TV’ 채널의 지성운(36)씨는 “지난 4일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시위에 참석했는데 큰 충돌 없이 시위대가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면서 “시위대들 사이에서도 약탈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제지시키는 분위기였고 경찰들도 시위대로 충돌하지 않고 함께 하는 등 분위기는 대체로 평온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유학생인 김중연(28)씨 역시 “초반에는 가게를 파괴하거나 그래피티를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서로 자제하자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면서 “처음 의도와 벗어나면 오히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92년 LA 폭동 떠올리게 한 ‘조지 플로이드 시위’?…“그 때와는 다르다” 특히 한인들에게 이번 ‘조지 플로이드 시위’는 92년 ‘LA 폭동’을 떠올리게 했다. LA 폭동은 교통신호를 어긴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폭행한 백인 경찰관이 무죄 판결을 받은 데에 대해 흑인들이 격분해 난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흑인과 백인 간 갈등이 애꿎은 한인사회로 튀며 한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한인들은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쉽게 피해의 대상이 됐다. 당시 기억을 바탕으로 LA 한인들은 이번 시위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때와는 달라진 한인들의 위상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씨는 “그 때와는 분위기가 천지차이”라면서 “그간 한인들은 홈리스 흑인이나 히스패닉계를 돕는 등 사회적인 활동도 많이 해 왔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주방위군도 군 병력을 곧바로 전격 투입했고, 한인들은 재미 해병전우회 회원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비상 순찰대’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한인들의 피해는 작지 않았다. 지역 별로 시위의 정도나 강도가 달랐다. 지난 6일 기준,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 내 150개 한인 상점에서 약탈 등 재산 피해 발생했다는 신고가 현지 공관 접수됐다. 뉴저지에 사는 이주향 미동북부한인회연합회 회장은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는 다른 곳보다 시위가 과격한 편”이라면서 “피해 보고하기 꺼려하는 한인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실제로 피해는 더 클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인들도 “Black 이름으로 연대할 때” 그럼에도 한인들은 시위의 취지 자체에 공감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다. 단 한 번의 시위 참여로 인종차별이라는 미국의 오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한인들은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뉴저지에 거주 중인 소리나(30)씨는 “피부색을 이유로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Black(흑인)의 이름으로 연대할 때”라고 말했다.지난 6일 LA에서는 한인들이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을 지지하는 아시안·태평양 주민 모임’이 주최한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텍사스주에서 22년째 거주 중인 최종원(53)씨의 딸 역시 얼마 전 자신의 동네에서 열린 평화 시위에 동참했다. 최씨는 “인종차별은 미국 내에서 해묵은 논쟁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면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과 같은 잘못된 수사 관행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있어야만 정치인이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육군 39사단, 6·25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유해발굴 진행

    육군 39사단, 6·25전쟁 낙동강 전선에서 유해발굴 진행

    육군 제39보병사단은 오는 8일 부터 다음달 3일까지 경남 창녕군 본초리·산지리 일대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6·25전쟁 70주년인 올해 유해발굴을 하는 지역은 6·26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최후 방어선으로 북한군 제4사단 공세에 맞서 미 2사단과 국군 장병들이 북한군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 곳이다.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승전의 역사 현장이다. 육군 39사단은 지난해 유해발굴 작전을 진행해 완전 유해 2구와 부분 유해 21구 등 모두 23구의 유해와 탄피를 비롯한 유품 15종 669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39사단은 앞서 지난 4일 창녕군 박진 전쟁기념관에서 ‘2020 6·25 전사자 유해발굴 개토식’을 개최했다.박안수 39사단장은 개토식 추념사에서 “지금도 이름 모를 산야에서 미처 수습하지 못한 호국용사들의 유해가 우리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며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내 부모, 내 가족을 찾는 간절한 심정으로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끝까지 찾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발굴 유해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시료 채취가 매우 부족한 상태여서 유가족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중장비까지 동원해 약탈” 한인 상점들 속수무책

    “중장비까지 동원해 약탈” 한인 상점들 속수무책

    중장비, 사다리차까지 동원해 약탈미 한인 상점 피해 속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인 점포 심야 약탈행위로 미용용품점 30여곳이 피해를 입었다. 일단은 다소 진정된 모습이지만 미국 전역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와 맞물려 심야 약탈행위가 이어지고 있어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특히 매장을 약탈하려고 시위대가 중장비까지 동원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뷰티서플라이(미용용품) 업종도 최소한 이번 주까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표정이다. 3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뷰티서플라이 업체 30여곳이 약탈 피해를 봤다. 지난 주말에 집중적인 약탈이 이뤄졌다. 필라델피아 한인회장 샤론 황은 “경찰에게 연락을 해도 (경찰이) 오면 약탈은 끝난 상황이고, 한국 사람들은 약탈을 당하는 것을 집에서 CCTV로 보고 있지만 위험하니까 못 가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나성규 펜실베이니아 뷰티서플라이 협회장은 “추가적인 약탈 피해는 많이 줄었다. 어제(2일) 심야에는 1개 점포가 털렸다”며 “한차례 광풍이 지나갔고 이미 다 털어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직은 불안하고 안심하기 이르다. 이번 주까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뷰티서플라이’는 흑인 여성의 필수품인 가발과 미용용품 등을 파는 곳으로, 필라델피아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업종이다. 피해액은 대략 2천만 달러(240억 원대)로 추정된다. 보험으로 일부 보상받을 수 있겠지만, 상당 부분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2년 흑인 폭동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경우 일부 한인 상점들이 피해를 입은 가운데 주 방위군이 한인타운 보호를 위해 전격 투입된 상태다. 현재 한인 점포들은 두꺼운 나무판자로 상점 외벽을 둘러싸고 추가적인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동시에 협회 차원에서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한인 상점의 피해 보상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LA 한인사회, 흑인 사망 시위에 비상순찰대 구성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 사회는 흑인 사망 시위에 따른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자체 비상 순찰대를 구성했다. LA 한인회는 3일(현지시간) 한인타운 내 범죄를 막기 위해 ‘커뮤니티 비상 순찰대’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재미 해병전우회 회원 등으로 구성된 순찰대는 이날부터 코리아타운 순찰에 들어갔다. LA 현지 경찰의 협조 아래 비상순찰대를 식별할 수 있도록 차량 앞에는 한인회 로고를 부착했다. 재미 해병전우회는 2015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촉발된 퍼거슨 흑인 소요 사태 당시에도 한인타운의 치안 유지에 힘을 보탠 바 있다. LA 한인회는 야간 통행금지 시간 이후에도 순찰하는 방안을 경찰과 협의 중이다. LA 한인회는 한인 상점의 피해 복구와 영업 재개를 돕기 위한 ‘타운 클린업 봉사대’도 운영할 방침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샤프 前 사령관 “탄도미사일 탑재한 북한 잠수함 곧 등장할 것”

    샤프 前 사령관 “탄도미사일 탑재한 북한 잠수함 곧 등장할 것”

    월터 샤프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2일(현지시간)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북한의 잠수함이 곧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LBM 3~4기 탑재 가능한 3000t급 신형” 샤프 전 사령관은 이날 주한미군전우회(KDVA)가 주체한 화상 세미나에서 북한의 핵능력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탄도미사일 능력을 갖춘 잠수함을 곧 보게될 것이라고 계속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나는 매우 강력한 옵션이 중요하고 북한에 ‘하지 마라, 한다면 우리는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할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날 샤프 전 사령관이 언급한 북한의 잠수함은 조만간 진수식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3000t급 신형 잠수함으로 분석된다. 이 잠수함은 북한 신포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것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4기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보당국은 신형 잠수함이 북한의 기존 로미오급 잠수함을 개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포조선소 미사일 모의 사출 정황도 포착 최근에는 신포조선소에서 모형 미사일 사출 시험을 한 정황이 위성에 포착되면서 조만간 ‘북극성 3형’ 등 신형 SLBM 추가 시험발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원은 지난달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최근 SLBM 지상 사출 시험을 진행한 정황과 수중 사출 장비들이 잇따라 식별돼 군과 정보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4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이 제시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새 전략무기를 보게될 것”이라며 “충격적 실제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며 무력도발 가능성을 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는 오는 10월 10일을 기해 SLBM 활동에 나서는 것 아니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이는 해)을 맞이해 대규모 열병식 등 군사행보를 보여 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장군의 아들까지 알 수 없는 죽음 당해…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軍 변하지 않아”

    “훈이 생각하면 너무 기가 막혀. 내 마음을 정리해서 표현할 문구를 아직까지 못 찾았어. 슬픈데 얼마나 슬픈지, 고통스러운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아직도 정확히 말할 수가 없어요.” 육군 장교의 부인으로 평생 ‘꽃길’만 걸으며 살았던 ‘사모님’이 50대 중반에 돌연 ‘투사’가 됐다. 아버지를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는 아들을 말리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남편이 몸담았던 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가 22년째 군을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초소에서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자살한 것으로 몰아간 것을 잘못했다는 말을 군으로부터 듣기 위해서다.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동에서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77·육사 21기) 예비역 중장과 함께 만난 어머니 신선범(76)씨 눈에는 아들을 먼저 보낸 참척(慘慽)의 아픔을 풀어내는 내내 연신 눈물이 맺혔다. 19년 만에 순직 결정 직후 국가 배상 ‘다시 시작’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10월 가까스로 순직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다. 부모는 “국방부가 사망 원인을 자살로 고집하며 20년 가까이 순직 결정을 미뤘다”며 순직 처분 다음해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곧바로 항소해 지난달 20일 항소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었다가 재판부의 변론 재개 결정으로 오는 25일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됐다.사망원인 여전히 외면… 1심 패소·오는 25일 항소심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은 분노의 연속이었다.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며 1심이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그사이에도 우리는 국방부에 ‘훈이의 사망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과거 훈이를 자살로 몰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데 대해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런데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지난 4월 13일 국방부는 재판부에 낸 참고서면에서도 ‘재판 중인 사항에 관하여는 공식 답변이 제한된다’며 끝내 우리를 무시했다.”(김) -국가(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송이 이번이 두 번째다. “2000년에는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훈이가 자살했다고 결론 내고 사망 사건을 은폐·조작했다고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에서 군의 1차 수사 과실이 최종 인정됐고, 처음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 냈다. 이후 추가 조사도 안 이뤄졌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순직 처분을 미루고, 여전히 국회 국방위원회를 비롯한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훈이를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로 몰았다. 2017년 5월 정부가 바뀐 뒤 군 의문사가 ‘적폐’로 규정된 뒤에야 그해 순직 처분이 됐다. 두 번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판단 이후 11년간의 시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김) -순직 결정으로 유족들의 요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인식도 있다. “그래서 순직 처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다. 우리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훈이는 ‘직무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애국자로 정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됐으니 다 끝난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군 안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약한 군인으로 기록돼 있다.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기는커녕 진실을 덮은 뒤 순직 결정을 미뤄 온 그 시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돌려놓고 싶은데 여전히 국방부는 훈이 사망 원인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김) “장군의 아들도 의문의 죽음… 우리가 멈추면 軍 안 변해” -어떤 과정들이 특히 고통스러웠나. “훈이 아빠가 3성 장군 출신으로 평생 군에 몸담았는데도 훈이가 떠난 그 순간부터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다.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공공연히 훈이가 자살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1998년 12월 특별합동조사단이 꾸려져 재수사를 할 때도 ‘형님, 형수님’ 하며 따랐던 후배 장군마저 ‘조사단 회의를 지켜보게만 해달라’던 우리를 부하들을 시켜 끌어냈다(당시 특조단이 연 법의학자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8명 가운데 가족들이 추천한 노여수 박사만 유일하게 타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후 특조단은 1999년 4월 다시 한번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발표했다).”(신)-김 중위의 사망으로 가족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결국 가족들이 나서야 했다. 훈이와 함께 근무했던 전역한 병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었고, 훈이 육사 동기생들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확보했다. 서울역 버스정류장 앞에서 약국을 하던 친언니가 문산에서 오는 버스에서 내리는 군인들이 볼 수 있도록 약국 벽에 훈이 사진과 제보 요청 글을 써 놓기도 했고, 진상을 밝혀 달라는 내용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평생 정갈하고 예쁘게 삶과 가정을 꾸려 왔던 나의 인생이 거친 길을 헤매고 시도 때도 없이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뒤바뀌었다.”(신) “훈이가 떠난 그날 오후 군에 남아 있던 동기로부터 ‘너희 집 무슨 일 있니? 훈이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밥을 먹은 날이 없다(김척 예비역 중장은 1997년 예편). 우리뿐 아니라 훈이 동생까지 평온하던 가정이 깨지다 못해 하루아침에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지옥 속에 들어갔다. 훈이가 갑자기 떠난 것도 아프지만 그 죽음이 헛되게 매도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군인을 하겠다’던 아이였고 워낙 올곧은 원칙주의자여서 육사 동기생들 사이에서 별명이 ‘곰’이었다. 그런 훈이를 두고 ‘부모의 강압적인 입대 권유 등 가정 환경의 영향을 받아 우울함으로 자살했다’고 한 군을 용서할 수 없었다.”(김) -군 의문사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들이 여전히 많다. “내가 멈출 수 없는 게 바로 그 이유다. ‘장군의 아들’도 이렇게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하고, 엘리트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그 진실을 풀기가 이토록 힘든데 다른 부모들은 오죽하겠나. 간단한 자료 하나 얻기도 어렵다. 3성 장군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군을 상대로 그렇게 싸우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많았는데, 내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더 싸워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군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순수하게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이 많은데 군에서 혹시 잘못되더라도 명예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그들에게 줘야 한다.”(김) -22년째 이어 온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나. “진실을 밝히는 것과 진심의 사과를 받는 거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국방부가 공식 사과를 한다면 소송도 취하할 것이다. 오히려 재판은 국방부가 ‘당시 법령 등 근거가 명확지 않았다’며 순직 결정을 미뤄 온 이유를 합리화할 수 있는 면피 수단이기도 하다. 소송은 돈 때문이 아니라 훈이가 정신질환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다. 아버지이자 전우로서 훈이 죽음의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다. 훈이 사건은 또 다른 ‘드레퓌스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가족들은 군의 규정을 어긴 누군가의 큰 잘못을 덮기 위해 훈이가 죽게 된 것이라 믿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듯 언젠가 훈이 죽음의 진실도 밝혀질 것으로 믿고 그때까지 버텨 낼 것이다.”(김) “우리 훈이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뛰고 자라면서 군인을 꿈꿨다. 육사를 졸업하고도 공수부대에 자원하려고 했다.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컸다. 나 역시 군인의 아내로 살며 군을 사랑했다. 부대 병사들 간식이며 생일잔치까지 챙겨 줬고, 수색대대를 떠난 뒤에도 수색대 병사들만 보면 반가워서 남편 주려고 산 떡이나 담배를 아낌없이 쥐여 보냈다. 편안히 군 생활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내조했다.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한 남편이 자랑스러웠고, 그 길을 이으려던 아들이 멋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군이 이토록 잔인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다.”(신)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전우이자 부부… 함께 나라 지키는 ‘부부愛 세계’

    전우이자 부부… 함께 나라 지키는 ‘부부愛 세계’

    공군 항공의무대 서종철·김미정 중령 코로나 검체채취·역학조사로 ‘감염자 0’ “두 아들에 모범 되는 부모 되도록 노력” 육군 신병 훈련하는 김현규·김나영 상사 ‘올해의 훈련부사관’으로 함께 표창받아“임무 수행 때문에 먼 부대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 항공의무대대장 서종철(43) 중령은 ‘부부의날’을 하루 앞둔 20일 아내 김미정(42) 중령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내 김 중령도 서 중령과 같이 공군 제11전투비행단에서 항공의무전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군내에서 급속히 확산하자 각 부대의 의무분야 총책임자로서 큰 활약을 했다.이들은 소속 부대에서 검체채취반과 역학조사반을 이끌었다. 유증상자의 검체를 채취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의뢰하고, 유증상자의 이동동선 파악 및 격리상황을 수시로 확인하며 코로나19 예방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들 부부의 노력으로 소속 부대에서 집단감염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같은 의무특기를 가진 두 사람은 지난 2월부터 바쁜 업무로 떨어져 지내다 이달 초 무려 3달 만에 집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서 중령은 “두 아들에게 언제나 든든하고 모범이 되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아내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육군훈련소 신병훈련 소대장으로 함께 근무하는 김현규(27) 상사와 김나영(27) 상사도 부부의 날을 맞아 함께 임무수행의 각오를 다졌다. 훈련부사관은 신병을 교육하는 직책인 만큼 탁월한 업무 능력을 갖춘 소수만이 선발된다. 부부가 함께 훈련부사관으로 활약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동안 수상한 표창과 상장을 합하면 70여개에 달한다는 이들은 지난해 모든 훈련부사관들이 선망하는 ‘올해의 훈련부사관’으로 동시에 선정돼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해군 군수사령부는 부부의날을 맞아 부대 내에서 함께 근무하는 군무원 부부들과 ‘덕분에 챌린지’를 진행했다. 군무원 부부들은 부대에 세워진 ‘덕분입니다’ 비석 앞에 모여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현재 해군에는 부부 군무원 150여쌍이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여군 대위, 소아암 환자 위해 머리카락 기부한 이유

    여군 대위, 소아암 환자 위해 머리카락 기부한 이유

    모발, 항암치료 아이 위한 가발로 제작 해군 대위가 4년간 길러온 머리카락을 기부했다. 18일 해군 제7기동전단 소속 72전대 소속 김현아 대위가 4년 동안 기른 모발을 소아암 환자에게 기부했다. 2015년 6월 군 생활을 시작한 김 대위는 임관 후 4년 동안 기른 45㎝의 모발을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김 대위는 ‘어머나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나 운동은 ‘어린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의 줄임말이다. 김 대위가 기부한 모발은 ‘어머나 운동 본부’를 통해 항암치료 중인 아이들을 위해 가발로 제작될 예정이다. 김 대위는 “감사하는 마음은 나눔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며 “군인으로서 나의 작은 행동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면, 언제든 그 나눔의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 대위는 지난달 20일부터 29일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금융지원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군 복무 중에도 헌혈과 대민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계속해서 참여해왔다. 72기동전대장 이동길 대령은 “김 대위는 평소 감사함을 자주 표현하며, ‘함께하는 나눔’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전우다. 계속해서 초심을 잃지 않고 군 생활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9·11테러보다 나빠”… 中 더 때리는 트럼프

    “9·11테러보다 나빠”… 中 더 때리는 트럼프

    “中 밖으로 바이러스 퍼지지 말았어야” 트럼프, 1단계 무역합의 파기까지 언급 中 “국채 동결한다면 ‘달러 시대’ 붕괴”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은 감염병으로 인한 대규모 사망이 자신이 아닌 중국의 책임이라며 ‘무역협상 파기’ 카드를 꺼냈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미국에 대한 비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 내 바이러스 피해를 묻는 기자들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최악의 공격”이라면서 “이는 진주만과 세계무역센터 사태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2000명이 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2001년 9월 11일에도 뉴욕 세계무역센터 등에 대한 테러로 3000명가량 숨졌다. 코로나 사망자가 7만명을 넘어서자 역사상 미국이 받은 최악의 공습 사례에 비유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감염병이) 중국 밖으로는 퍼지지 못하게 막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거듭 중국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1단계 무역합의 관련 질문에도 “중국이 제대로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 1~2주 뒤에는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중국이 무역 합의를 지킬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중국은 지난 1월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를 타결하면서 앞으로 2년간 농산물 320억 달러(약 39조 2000억원)를 포함해 미국산 제품 2000억 달러를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바이러스 사태로 지난 2~3월 중국 내 혼란이 커지면서 미국 업자들 사이에서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왔다. 중국도 늘 그랬듯 가만있지 않았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에 비교한다면 미국의 적은 (중국이 아니라) 코로나19”라면서 “중미는 전투에 함께 나선 전우이지 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화 대변인은 “우리는 미국의 일부 인사(트럼프 대통령 등)가 시비를 걸고 책임을 피하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의학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충칭시장을 지낸 황치판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부이사장도 신랑재경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한) 국채 동결의 날이 온다면 이는 곧 달러 제국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어느 나라도 자신의 명운을 (미국 국채에) 걸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미 정부가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묻고자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를 무효화하려고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데 대한 반응이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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