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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색거리 탐방] (11) 광진구 노유동 ‘로데오길’

    [이색거리 탐방] (11) 광진구 노유동 ‘로데오길’

    광진구 노유동 ‘로데오길’에는 브랜드 의류 상설할인점이 60여개나 밀집해 있다. 젊은 여성 취향의 패션이 넘치는 곳이다. 신촌 이화여대 앞과 비슷하지만 노유동 거리에는 미용점, 액세서리점, 음식점 등은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 옷 가게라는 점이 특징이다. ●정장부터 청바지까지 종류도 다양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에서 한강쪽 가로방향 골목길. 동2로와 능동로 사이의 도로명이 로데오길이다. 도로 폭이 8m쯤 되고 길이가 600m쯤 되는 길 양쪽에 옷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쪽에는 칼막스, 오즈,MF, 지오다노, 폴햄…. 다른 한쪽에는 GGPX, 본 더치, 스프리스, 리트머스,DOHC…, 젊은 여성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브랜드가 즐비하다. 취급하는 옷은 가벼운 정장부터 청바지, 셔츠, 운동복 등 다양하다. 가게마다 ‘10∼30% 할인가격’은 흔히 붙어 있고 가끔 ‘70∼80% 파격세일’도 눈에 띈다. 명품은 아니더라도 국내외 브랜드 제품이고, 최신 유행이 조금 지나 값이 쌀 뿐이다. 싼 옷을 한 곳에서 천천히 고를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더구나 거리가 깨끗하고 그윽한 가로등 조명, 멋스러운 벤치와 가로수, 화강석을 섞은 길바닥 등이 쇼핑하는 기분을 한껏 내게 만든다. ●대학과 강남권이 거리에 인접 노유동 로데오거리는 1995년쯤 유명 브랜드 점포가 하나둘씩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2002년 광진구가 이곳을 ‘환경개선 시범거리’로 지정하자 상인들끼리 ‘브랜드 거리를 만들자.’며 매장을 서로 끌어들였다. 건국대, 세종대, 한양대 등 주변 대학생들이 지하철을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2·7호선 환승역이라 강남 중심지를 10분 안에 오갈 수 있다는 점도 상권 형성의 좋은 조건으로 꼽힌다. 구의로 건너편엔 ‘먹자골목’을 끼고 있다. 광진구는 가까운 한강변의 갯버들을 이미지로 삼아 거리 입구에 ‘로데오거리’라는 상징조형물을 세웠다.‘차가 다니지 않는 길’로 정하고 가로등은 간접 조명을 사용했다. 또 거리에 어지럽게 서 있던 전신주를 매설, 거리를 깔끔하게 단장했다. ●한국의 밀라노로 만든다 옷 가게가 모이기 전에는 허름한 술집 등이 너저분하게 몰려 있어 상가 권리금도 수백만원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1억원을 웃돈다. 광진구는 노유동 로데오거리를 포함해 구의동 ‘멋의 거리’, 중곡동 ‘가구의 거리’ 등 특화거리에 지붕을 씌우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위해서다. 오는 9월 개장을 목표로 거리 근처 성동교육청 부지에 123면의 공용주차장도 만들고 있다. 정송학 구청장은 “일본 오사카나 이탈리아 밀라노처럼 세련된 정취의 거리를 만들어 상권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HAPPY KOREA]마늘 고장, 산수유 꽃에 물들다

    [HAPPY KOREA]마늘 고장, 산수유 꽃에 물들다

    경북 의성은 ‘마늘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마늘 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요즘 읍내에선 마늘종합타운과 유통센터, 마늘 직거래장터 조성이 한창이다. 그런데 최근 다른 이유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외지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곡면 화전2·3리의 산수유 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골마을이 관광지로 새롭게 떠오른 것이다. ●2주 사이 1만 5000여명 발길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네요. 갑자기 외지인들이 찾아오는데 난감해요. 주민들은 정작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화전2리 장성진(62) 이장은 3월 중순 이후 외지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에서 큰 소동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매년 이맘때면 화사하게 핀 산수유 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곤 했지만 올해는 일반 관광객들이 무더기로 몰려 왔다는 것이다. 장 이장은 “지난해 서울신문사와 행정자치부, 국가균형위가 공모한 지역자원경연대회에서 마을이 대상을 받으면서 ‘산수유 꽃 피는 마을’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산골에 관광객이 올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주민 김종래(45)씨도 “관광객들이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가정 집에 몰려드는데 정말 난감했다.”면서 “그래서 마을회관과 마을 논 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아낙네들이 칼국수를 끓이고 파전을 부쳐 요기를 시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며칠 동안 칼국수를 팔아 모은 수익금만도 1700만원에 이른다. 부녀회에서 3개조로 나눠 장사를 했다. 의성군 김신묵 균형발전담당은 “3월 23일 일요일에 무려 4000명이 찾아왔고, 그 전날인 토요일엔 2000명이 오는 등 보름 사이에 1만 5000명이 몰려 읍내에서는 사람구경 가자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경찰과 공무원들이 휴일에도 출근해 교통정리를 하고,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다. ●지역경연대회 대상 수상 후 유명해져 이 마을엔 50년부터 300년 된 산수유 나무가 3만 그루 정도 심어져 있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 모르지만 대대로 내려온 것이다. 깊은 골을 따라 산촌마을이 형성돼 집들이 점점이 이어지는데, 어김없이 논과 밭 사이 둑이나 야산 등엔 산수유 꽃이 만개해 있다. 마을 입구인 화전3리에서 화전2리 끝까지 장장 20여리는 노란 꽃 천지다. 겨울을 이기고 자란 초록의 마늘밭과 노란 산수유꽃이 어우러져 봄 기운을 더욱 자극한다. 길가에 주인 없이 서 있는 나무 같지만, 모두 임자가 있다. 주민들이 가구당 800∼1000그루씩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나무는 주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다. 장 이장은 “두 아이의 학교를 산수유 열매를 팔아 보냈고, 출가도 시켰다.”면서 “산수유 나무는 마을 주민들에겐 보배”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중국산 산수유가 수입되면서 값이 하락하기 시작해 지금은 소득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전체 소득 가운데 절반가량은 산수유에서 나온다. 평균 소득이 2500만원 정도 되는데, 이중 1200만원 정도가 산수유 열매를 한약재로 팔아 챙긴 수입이다. 산수유 열매는 강장, 항암, 노화 방지, 기력 증진 등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구당 800~1000그루씩 소유 “임자있는 나무” 이처럼 가을철 열매 채취로 수입을 올리던 산수유 나무가 봄철엔 관광객을 끄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자 주민들은 ‘산수유 나무 보존’에 팔을 걷고 나섰다. 주민들은 얼마 전 ‘산수유 보존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우선 30년 이상된 나무를 외부에 반출할 때는 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마을 경관에 부적합한 시설과 개인 건축물이 혐오스럽다고 판단될 경우 마을에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외지인에게 당분간 땅을 팔지 않기로 했다. 의성 조덕현 김상화기자 hyoun@seoul.co.kr ■ 자연이 곧 경쟁력… 기반시설은 부족 사곡면 화전2·3리는 자연상태가 잘 보전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전신주와 마을 한가운데로 난 2.5m의 콘크리트 농로 외에는 인공물이 거의 없다. 자연스러운 것이 경쟁력인 셈이다. 반면 기반 시설이 너무 없는 것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이다. 외지인들이 와도 머물 곳, 먹을 곳이 없다. 그래서 관광객은 자연적인 요소를 살리면서 불편한 것을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들 대부분이 고령자인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경북 영주에서 왔다는 진기오(40)씨는 “위치를 잘 몰라 찾아오는 데 고생을 좀 했지만 경치는 정말 좋다.”면서 “그러나 화장실도 부족하고 식당도, 민박도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조훈형(55·의성읍)씨도 “이곳은 오염되지 않은 것이 장점”이라면서 “마을 입구에 주차장을 만들어놓고 아예 걸어 다니며 시간적 여유를 갖고 구경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마을에 사는 김규세(65) 할아버지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밭을 막 밟고 다녀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면서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주민들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혁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의성한방병원 배진승 병원장은 “산수유가 잘 자라는 것은 토질이 좋기 때문”이라면서 “자연 경관을 잘 보존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풍부한 한약재를 활용, 한방산업을 육성하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의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계획도 주민과 관광객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지역 특산물인 산수유와 작약 등을 산·학·연·관 클러스트로 제품화와 브랜드화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추진 중이다. 마을 진입로를 황토로 포장하고, 생태 탐방로도 설치해 주민의 불편을 최소화할 생각이다. 전선을 지하에 매설할 계획이다. 산수유 광장과 주차장, 특산물 판매장, 포토존 등도 설치하고, 산수유 축제도 검토 중이다.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개선하고 주민들의 주택을 민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 소득을 현재 연 2500만원에서 3500만원으로 끌어 올린다는 것이다. 의성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머물 곳·먹거리촌부터 조성해야죠” “우선 머물 곳과 먹거리촌을 조성하려고 해요. 마을 입구 길도 좀 내고 주차장을 만드는 등 종합적인 개발계획을 세워 추진할 생각입니다.” 김복규 의성군수는 “산수유 마을인 사곡면 화전2·3리에 최근 들어 외지인들이 몰려 들지만 정작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주민과 관광객 모두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우선적으로 편의시설을 확충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군수는 산수유 마을은 가능한 한 보존에 비중을 두되 이용객이 불편 없도록 종합 계획을 설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마을 가운데로 난 폭 2.5m의 농로로 차량이 오가다 보니 차량 통행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주차장을 만들어 이용객들은 차를 세워 두고 걸어서 꽃 구경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그는 탐방로와 차도를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현재 단층으로 돼 있는 마을회관도 새로 지어 주민휴식 공간과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도 갖출 계획이다. 김 군수는 “마을 주민들의 대부분이 고령자이지만 이번에 외지인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많은 가능성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이제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김 군수는 또 의성에서는 산수유뿐만 아니라 사계절 내내 꽃을 볼 수 있도록 지역을 가꾸겠다고 말했다. 봄을 알리는 산수유 꽃이 제일 먼저 피고, 이어 개나리가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3월부터 4월 중순까지 의성은 온통 노란 색으로 뒤덮인다. 이어 피는 것이 한약재인 작약꽃이고 뒤 이어 메밀이 나온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국화꽃이 등장하고 산수유 열매와 감이 익으면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군수는 이런 화사한 꽃과 지역의 역사 유물 등을 연결하면 관광벨트화할 수 있고 지역 특산물인 마늘과 한우, 한약재 등을 적극 개발하면 주민소득도 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성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꼭 햇볕을 다시 찾아야죠

    꼭 햇볕을 다시 찾아야죠

    월드컵의 열풍이 막 지나간 3년 전, 고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학창 시절 둘이 학교에서 사고란 사고는 모두 도맡아 치고 다녔다고 할 만큼 절친한 사이였기에 가슴이 뛰었다. 바로 그날 약속을 잡아 우리는 13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 것처럼 당시 별명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동안 서로 살아온 얘기도 나누고 또 학창시절 추억도 되살렸는데 자리를 파할 무렵 친구 얼굴이 매우 굳어졌다.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친구한테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우거지상이냐고 했더니, 요즘 회사가 너무 안 돌아가서 죽겠다고 끙끙거렸다.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계속 안주도 없이 소주만 들이키는 녀석이 너무도 쓸쓸해 보여 혹시 내가 도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내 손을 꽉 잡더니, 안 그래도 꼭 부탁할 일이 있었다며 보증을 서달라고 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에도 보증은 서주기 힘든 현실이지만 술이 머리끝까지 올라 있던 터라 남자는 의리라며 사내자식이 뭔 그깟 일로 눈물까지 흘리냐고 큰소리를 쳤다. 뒤돌아서서 후회했지만 만약 내가 그렇게 어려운데 녀석이 모른 체하면 얼마나 섭섭하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총각도 아니고 이미 가정을 꾸린 몸인데 이런 일을 혼자 결정하기는 곤란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보증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펄쩍 뛰었다. 자신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돈을 빌려주는 게 낫지 보증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만약 자기 몰래 보증을 섰다가는 당장 이혼할 줄 알라고 말하는 아내를 보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자 친구가 달려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고, 바로 그날 우리 집을 담보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친구는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곧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녀석과의 마지막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와의 우정을 제일 소중하게 여겼던 녀석이라 나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친구는 은행에서 4억을 받자마자 이미 정리된 회사를 내팽개치고 자기 가족까지 나 몰라라 하고 내연의 여자와 외국으로 사라졌다. 친구와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했지만 회의 때문에 전화를 못 받는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자 납부가 나에게 떠넘겨지고 계속 소식을 알 수 없어 불안했다. 그래서 회사로 찾아갔더니 이미 오래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곧장 친구네 집으로 갔지만 가족들 모두 친정으로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연이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동태처럼 바짝 얼어붙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힐끗힐끗 쳐다보고 개가 짖어도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남의 집 대문을 막지 말라는 주인의 손에 이끌려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전신주에 등을 기댄 채 밤을 꼬박 샜다. 아내에게 쉼 없이 전화가 걸려왔지만 차마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숨을 쉬면 쉴수록 목이 더 막혀오는 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동료들이 몇 번씩 불러도 듣지 못했고 계속 죽고 싶은 마음만 들어 엉뚱한 층에 올라갔다 내려오길 반복했다. 퇴근을 했는데 아내가 왜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왔냐고 걱정을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아내는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물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은행 직원의 전화로 아내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한마디 말도 없이 불 꺼진 방을 홀로 멍하게 지켰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유산과 은행 빚으로 겨우 마련한 우리 집을 불과 1년 만에 다시 뺏겨야 한다는 사실에 아내는 넋을 놓고 울기만 했다. 당장 사라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는 그녀에게 나는 큰 죄인이었다. 다른 건 우리 손으로 다시 하면 된다지만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지막 사랑을 어찌할 거냐고 항변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우리 형편에 4억은 하늘보다 높은 산이라 결국 정든 집에서 내쫓겼다. 하지만 우리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매 하루 전 아내가 아무 말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동네 인근을 샅샅이 뒤져도 보이질 않았다. 두 시간쯤 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음독자살을 시도했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경찰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달려갔더니 정말 아내가 있었다. 다음 날 저녁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아내는 이미 정신적으로 폐인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건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다며 그냥 놔두지 왜 다시 살렸냐고, 아내는 링거병을 깨고 그 파편으로 팔뚝을 내리그으며 2차 자살을 시도했다. 결국 아내는 사지가 모두 묶인 채 강제 입원이 됐고 퇴원 후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몸은 완치되었지만 정신은 더욱 추락했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아이한테 맡기고 출근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나마저 집에 있으면 우리 생활이 완전히 끝장날 것 같아 회사에 나갔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울면서 전화를 거는 딸의 다급한 목소리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아내의 입원비와 남은 빚을 정리하기 위해 사표를 썼다. 꽤 많아 보이던 퇴직금을 모두 쏟아부었는데도 빚은 남아 있었고 생활비와 아내 병원비 때문에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어차피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글렀고 또 아내와 아이도 보살펴야 했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나눠서 일을 했다. 새벽엔 도시락 배달차를 운전하며 배달 일을 했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엔 전기배선 공장에 나가 건설현장을 따라다니며 일했다. 두 가지 일을 해도 아내의 입원비와 생활비 대기가 벅찼다. 그래서 형의 도움으로 얻은 중고 1톤 트럭을 개조해 붕어빵과 떡볶이 장사에 나섰다. 장사를 마치고 나면 새벽 2시,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곧장 도시락 공장으로 달려갔다. 하루에 너덧 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매일 육체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하루쯤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자포자기하고픈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아내와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걸 해내는 딸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죽어라 고생했는데도 이자와 병원비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유치원에서 하는 연극에 출연하는 딸의 모습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딸에겐 멀어서 못 갔다고 변명했지만 마음만 먹었다면 갈 수 있었는데 일당 5만 원 때문에 포기했다. 세상 모든 게 암울했고, 또 마음속으로 수천 번도 더 넘게 자살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눈물 흘릴 시간도 내겐 사치였다. 그러나 항상 어둠만 들진 않았다. 아무리 긴 터널도 때가 되면 밝은 태양을 만나듯 우리에게도 기쁜 일이 하나 있었다. 1년이 지나도록 차도를 보이지 않던 아내가 작년 2월 초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제 발로 병원 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온 아내를 본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비로소 우리 집은 사람 사는 모습을 띠었다. 지금도 아내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한자리에 우리 가족이 다시 모였다는 것이 행복하다. 강력한 태풍이 우리 집을 휩쓸고 지나간 지 벌써 3년, 친구는 여전히 소식이 없고 가족들도 친구를 포기한 지 오래이다. 가끔씩 친구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나한테 가져간 돈을 돌려주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개꿈에 불과하다. 아직도 아내는 완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예전 모습을 되찾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사회생활도 다시 시작했다. 힘을 모으면 우리 집에 머문 먹구름이 빨리 사라지지 않겠냐며 월 70만 원을 받으며 대형 할인점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내…‘…. 지난 일은 이제 가슴에 묻고 우리의 행복을 되찾을 일만 생각하자는 아내가 고마워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직도 우리의 불행은 그치지 않았지만 이제 내리막길은 끝난 것 같다. 다 내려왔으니 이제는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 흩어지지 않고, 깨지지 않고, 한자리에 모인 우리의 행복을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2006) ‘이승욱‘_ 작은 트럭에서 어묵을 팔고 도시락 배달을 하며 사랑스런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소중한 모든 것을 잃을 뻔했지만 가족들에게 밝은 웃음을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를 이겨냈습니다. 그는 “이 세상 최고의 보물은 가족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예보 <오늘은 맑음>
  • [Seoul In] 강북구 자원봉사 원칙 제정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자원봉사활동이 널리 확산됨에 따라 자원봉사의 원칙을 정했다. 자원봉사 실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도 있다. 주요 내용은 성인은 실제 활동 시작 시간부터 종료 시간을 봉사 시간으로 정했다. 멀리 떨어진 재난 봉사는 이동시간을 포함한다. 중·고교생은 학생봉사활동 지침에 따라 전단지 수거는 50장을, 전신주 부착물 수거는 10장을 1시간 봉사로 정했다. 자원봉사센터에 등록을 하면 수첩을 발급하고, 이 수첩에 실적을 기록한다. 주민생활지원과 901-6819.
  • 노원역에 놀러와!

    노원역에 놀러와!

    흥청망청식 먹자골목이었던 노원역 근처가 서울 동북부의 ‘문화코어’로 변신한다.8일 노원구에 따르면 노원역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기 위해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4∼8시까지 차없는 거리로 지정,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고 있다. 노원역 남측에 있는 문화의 거리는 롯데백화점에서 시작, 지하철 4호선을 따라 노원길에 이르는 총길이 1.8㎞로 하루 유동인구가 50만명에 이르는 이 일대의 핵심지역이다.110여개의 크고 작은 음식점, 의류상가 등이 몰려 있어 단순한 ‘먹고 놀자 거리’였다. 노원구는 이 거리를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이달부터 본격적인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인근 상인들도 협의회를 만들어 문화거리 조성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행사의 명칭은 ‘노원문화의 거리 아트 페스티벌’로 정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이동식 야외무대에서 노원구립 어머니합창단의 봄을 주제로 한 합창에 이어 팝페라가수 임태경, 정세훈의 열창, 인디밴드 공연과 살사춤을 선보인다. 거리공연에서는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떡메치기 행사를 펼치고, 노원구 목공예센터에서 목 공예품 30여점도 전시한다. 지난 3일 열린 첫회 행사에서는 비보이 공연이 펼쳐졌다. 또 키 120㎝, 몸무게 55㎏의 ‘휴보로봇’이 등장, 손목에 실리는 힘을 감지해 악수도 청하고 흔드는 등 인기를 독차지했다.3000여명이 참가했다. 또한 ‘미디어 아트 모바일 쇼’는 대형 미디어 보드판을 차량에 탑재해 현장을 찾은 주민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활용, 즉석에서 동영상 및 문자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아코디언에서 흐르는 동요를 들으며 자동차 형태의 부스에서는 어린이들이 책에 흥미를 유발할 수 있게 하는 ‘북-르네상스’ 행사도 펼쳐진다. 책속의 주인공 분장 행진이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노원구는 앞으로 노원문화의 거리에 아트갤러리, 연극단체 등을 유치하고, 평상시 조형미를 갖춘 작품에서 공연시 야외무대로 변신하는 조각 작품을 설치할 계획이다. 전신주 등의 시설물도 지하화할 계획이다. 그동안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하철 4호선 콘크리트 교각을 이동용 아트 설치미술 82개의 작품과 함께 조명을 쏘아 올려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구 관계자는 “먹고 노는 곳으로만 인식됐던 이곳을 테마가 있는 문화의 거리로 조성해 노원을 동북부의 문화중심 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우수기업 우수상품] 신도디앤텍 ‘불법부착광고물 방지 시트’

    [우수기업 우수상품] 신도디앤텍 ‘불법부착광고물 방지 시트’

    신도디앤텍의 ‘불법부착광고물 방지 시트´는 불법 광고물의 부착을 막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제품에는 투명의 부착방지 코팅이 돼 있어 불법 광고전단 등이 붙는 것을 막는다. 그림, 사진, 문구 등을 ‘플렉스(FLEX)´ 실사인쇄로 제품에 새겨 넣을 수 있다. 가로등 기둥, 신호등 기둥, 이정표 기둥, 전신주, 통신주, 한전 변전함 등 주로 공공시설물에 설치·사용되고 있다. 신도디앤텍은 실용신안 1건, 특허 2건 등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발명대전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았으며 100대 우수특허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구로구, 정보지 배포대 정비

    구로구가 무문별하게 뿌려진 생활정보지 배포대와의 ‘한판 승부’에 들어갔다. 구는 31일 “생활정보지의 개별 배포대가 주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가져오고, 길거리 경관을 해치고 있다.”면서 “오는 15일까지 일제 정비작업을 벌인다.”고 밝혔다. 현재 개별 배포대를 설치해 놓은 생활정보지 기업은 3∼4개사로 총 5000여개의 배포대가 도로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그동안 공무원들이 끊임없이 수거작업을 펼쳐왔지만 철거와 동시에 새로운 배포대가 생겨난다.”면서 “이번 일제 정비 기간을 통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는 지난달에 이미 배포대 4000여개를 수거했지만 곧바로 새로운 개별 배포대가 생겨나 골치를 앓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난 24일 생활정보지업체 대표들과 간담회도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개별배포대 허용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불법 개별배포대 설치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구는 이번 정비작업을 위해 건설관리과, 도시개발과,19개 동사무소로 이뤄진 합동철거반을 구성했다. 건설관리과는 간선도로 등 주요 도로상에 방치된 배포대를, 도시개발과는 전신주에 부착된 배포대를, 동사무소는 이면도로에 뿌려진 배포대를 수거할 방침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이장욱론/이찬

    1. ‘인공정원’ 으로서의 ‘시’를 넘어서 시인은 자신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어떤 체험의 순간을 지금-여기로 다시 불러오는 존재이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시작품들 가운데, 이 순간을 상투적인 표현들로 재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구체적인 체험 속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생(生)의 순간들과 그 감각적 비의(秘義)들은 관례화된 문법을 통해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시’ 장르의 전래적인 형식과 표현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되었든, 지금까지 ‘시’가 보존해 온 관습적 전범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과격하게 실험하는 ‘전위적인 현대시’가 되었든, 이러한 ‘상투성’으로부터의 이탈은 ‘문학’(literature)이라는 현대적인(modern) 산물에 요구되었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자 ‘문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자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다. 이장욱의 시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건과 풍경들을 1인칭 화자의 감정과 의식과 가치를 표상하기 위한 대리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왕(旣往)의 관례화된 ‘시’의 문법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서정은 만상을 일인칭의 내면적 고도(高度)에 걸어두는 방식이다.”(‘꽃들은 세상을 버리고’,《창작과 비평》,2005년 여름,70쪽)라는 그의 진술은 우선 ‘시’(‘서정’) 장르의 일반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통상적인 ‘시’ 문법에 대한 그의 반감(反感)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장욱이 재래(在來)의 ‘시’의 문법에 대해 품고 있는 회의와 반감은 그것이 필연적으로 이 세계의 ‘만상’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동일적인 영혼을 표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유(專有)하며, 마침내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실상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휘발시키는”, 조작된 ‘인공정원’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이러한 ‘인공정원’으로서의 ‘시’(‘서정’)가, 세계의 그 풍요로운 다양성을 또한 사물과 사건 그 자체가 지닌 고유한 육체적 질감들을 “하나의 가치와 체계로 밀폐된 서정적 우주”로 복속시켜 버리거나 혹은 그 바깥으로 추방시킨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그에 따르면, 통상적이고 관례적인 ‘시’의 문법은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시인의 ‘일관된 가치와 의미와 정서’에 의해 세계의 만상들에 얼룩져 있는 ‘혼탁한 사물성’을 그 바깥으로 밀어내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조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1인칭 화자의 나르시시즘적인 ‘인공정원’이 가공될 수 있을 뿐, 세계 그 자체의 참다운 실상들이 발견될 수 없다. 2. 표상의 외부와 마주침의 유물론 “객관적인 아침/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깨어나고/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구름을 통과하는 비행기와/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리진다./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희미한 풍경 같아서.”(‘객관적인 아침’ 전문) ‘객관’(object)이란 철학적 인식론에서 주체의 의식 바깥에 놓여 있는 외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의 시선과 지시작용(designation)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는 어떤 미지(未知)의 영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곧 ‘객관’이란 주체의 의식 바깥의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 혹은 세계이기는 하나, 주체의 시선과 자기의식에 의해 호명되고 포획되어, 이미 ‘있다’고 알려진 어떤 인식적 대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장욱에게 ‘객관’은 이렇게 인식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객관적인 아침’은 ‘나’와 ‘당신’과 ‘침묵’과 ‘종이 비행기’가 서로 ‘무관하게’ 자신들의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시간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아침’이라고 명명(命名)된 것은 주체의 시선과 사유에 이미 포착되어 있는 어떤 외부적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의 자기회귀적인 의식의 궤도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풍요로운 실재성 또는 사물 그 자체가 지닌 복수적 다양성을 표현한다. 기왕(旣往)의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시작품의 경우라면, 위의 시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물들은 ‘단 하나의 소실점’을 위해 봉사하였을 테지만, 그리고 그것은 시인의 내면 풍경의 표상(表象)들로 고용되었을 것이지만, 여기에서 그것들은 시인이 설정한 ‘소실점’과는 ‘무관하게’ 그 자신의 존재를 보존한다. ‘내 시선의 끝’에서는 모든 사물이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 ‘그대와 나’라는 인간의 ‘시선 바깥’에선 ‘멸종 위기의 식물’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허공’에 ‘포자’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또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인간이 설정한 세계의 위계질서와 그것의 ‘소실점’ 역시 하나의 ‘희미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하늘’이라는 자연물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까닭은 분열되고 오염된 우리의 경험 세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마음의 도원(桃園)’을 표상(表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은 자기 내부에서 발아한 동일자의 표상(representation)들만을 세계로부터 수집할 따름이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위(僞)와 악(惡)과 추(醜)를 볼 수 없으며, 그것들과 결코 마주칠 수 없다. 이 영혼은 자신이 알고 싶은 것만을 보며, 보고 싶은 것만을 고백하며, 고백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등뒤에 있다”는 ‘절규’의 첫 구절은 시인 이장욱이 가진 인식론적 지평을 축약하여 드러낸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다양한 상징적 편린(片鱗)들로 산포되어 나타난다. 이 편린들은 예컨대 “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두 그루 전신주는 아름답고 밤눈은 내리고 녹슨 제 땅에서 제 어둠을 파 내려갔으므로 단 한 번도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그 오래된 이야기”(‘이상한 나라’),“꽃은 15층 베란다에 서서 까마득한 지상을 가늠하는 자와 그 흐린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꽃은, 오로지 나무일뿐 인 무서운 나무들 사이에서 아직도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사라지는 꽃’),“하지만 너무 흔한 최면처럼 아직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이 너무 흔한 최면처럼 실편백에 내리는 빗물이, 다시 나를 이끈다는 것 돌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돌아오지 않기 위해 내가 치를 수 있는 무엇이, 더 있었을 것이다”(‘너무 흔한 풍경’)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 시구들은 1인칭의 나르시시즘적인 영혼이 웅변하는 ‘기억’과 ‘고백’과 ‘이야기’가 ‘거짓’이거나, 세계의 풍요로운 실상과 ‘송신할 생애를 갖지 못한’ 폐쇄적인 ‘아름다움’에 불과하다는 이장욱의 인식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인칭의 유토피아적 영혼이 볼 수 있는 것은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자기 자신일 뿐이며, 그것이 도취하고 열망하는 자연의 풍경은 ‘너무 흔한 최면’일 따름이다.‘하늘’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을 때에만, 그리하여 모든 자연과 사물의 풍경이 ‘나’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에만, 시인은 ‘너무 흔한 풍경’을 재생하지 않을 수 있고,‘이 당대적 상투성의 거리’(‘상투적’)를 벗어날 수 있다. 이 벗어남은 1인칭의 고백적 화법이 마련한 자기 동일적인 표상체계 바깥으로부터 느닷없이 밀려닥치는 우발적 사건과 그것에 수반되는 ‘낯선 것의 폭력’을 통해 시작된다. 세계의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실재성과의 마주침은 바로 이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간 것이다. 뚜레쥬르 베/이커리를 지나가는 하오의 육신 쪽으로 수직 낙하하는 겨/울 잎, 겨울 잎 안에서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겨울 잎의 풍경 속을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으나./그것은 무성하고 울울한 저 너머, 횡단 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여자가 오래도록 통과할 숲의 풍경./나무에 깃들여 사라진 벌레들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의 어젯밤 꿈속을 나는 거/닐었는지도. 말하자면 그 꿈속의 눈 내리는 거리를./그러므로 이곳은 겨울 잎과 햇빛과 벌레들이 이루는 세/계. 뚜레주르 베이커리의 문을 열고 나오는 늙은 사내는/어젯밤의 아주 쓸쓸한 수음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다. 그/와 나는 떨어지는 겨울 잎에 눈을 두고 지나쳐갔으나 우/리가 그 겨울 잎이 기억하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의심의 여지가 없는 겨울 잎’ 부분) 이미 드러나 있는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사태들의 일부로서 성립된다. 우리가 그 자신들의 눈앞에 어떤 사물과 사건의 잔상(殘像)조차 데려다 놓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물과 사건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화자가 ‘지나가는’ ‘겨울’의 ‘거리’에 드러나 있는 것은 ‘겨울 잎’이나,‘겨울 잎 안’에는 ‘천천히 사라져간 햇빛도 있었던 것이’며,‘우리’가 ‘떠올리지 않’는 ‘햇빛과 벌레와 바람들이 이루는 세계’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모든 1인칭의 시점(視點) 내부에 선재하는 명석 판명한 대자의식(對自意識)으로서의 ‘나’의 확실성이 아니라,1인칭 주체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세계의 다양한 만상들이며 그것들이 이루는 변화와 이행의 과정이다. 결국 시인 이장욱이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자 하는 것은 뚜렷한 형태와 공간적 점유들로 구분지어진 사물과 사건의 가시적(可視的) 외면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구분의 경계들을 횡단하는 힘들의 배치이며, 모든 존재자들이 지닌 복수(複數)의 가면(假面)으로서의 ‘자세’와 ‘포오즈’이며,‘지나가’고,‘사라지’고,‘통과하’는 것으로서의 세계의 실재성이다.‘겨울 잎’ 속에는 ‘사라진 햇빛’이 ‘있었’듯이,‘나’와 ‘그대’의 ‘생’에는 ‘사라져가’고 ‘흘러간’ 것으로서 ‘무성한’ ‘잎 새’와 ‘숲’과 ‘천천히 사라진 햇빛’도 ‘있었던 것’이다. 설혹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명징한 감각과 사유가 아니라,‘꿈속을 거닐었는지도’ 모를 상상(想像)을 통해서만 겨우 감지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있었던 것’들이다. 위의 시에서 자주 활용된 ‘지나가다’,‘사라지다’,‘통과하다’ 등등의 동사들은 어떤 사물과 사건의 고정된 상태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어떤 경계를 구분지울 수 없는 사태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동사들은 ‘시’ 장르의 통상적인 화법 내부에 선재하는 자기의식의 투명성을 표상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것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의 다양성과 그 변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여러 시편들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지나치다’,‘건너가다’,‘흐르다’,‘멀어지다’,‘스쳐가다’ 등과 같은 동사들 역시 세계의 ‘천변만화’하는 실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물과 존재자들의 다양성과 이질성들을 1인칭 화자의 자기 표상적인 감정과 가치로 바꾸어버리는 ‘시’ 장르의 관례화된 문법을 벗어나기 위한 그의 시적 전략의 하나이다. 3. 假面과 ‘脫’ 인격적 주체로서의 화장 이장욱의 시가 ‘시’ 장르의 통상적인 문법에 내재되어 있는 ‘유토피아적 자기회귀’라는 ‘상투적’인 ‘최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주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적 화자’를 단일한 감정과 의식을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전제하는 관례적(慣例的) 설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정적 자아’의 단일한 목소리를 ‘시적 화자’의 분열적이고 다수적(多數的)인 목소리로 전환시키는 것이며,‘서정’의 화법에 내재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순결성과 엄숙한 고백체를 조롱하고, 그것 속에 은폐되어 있는 숱한 가면(假面)들을 폭로하는 것이다. “감정은 어떤 포우즈 금홍아 금홍아 마당귀 화단에 잘린 벽돌들 녹슬어 고요한 철대문, 어쩌다 딱딱한 것들과 친해졌는지 (중병에 걸려 누웠으니 얼른 오라)고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게 엽서를 띄우고 싶어 이십세기와 (짱껭뽕)을 해서라도 금홍아 금홍아 나는 네 품에 안기고 싶네 하루 종일 내 딱딱한 그림자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에 골몰중인지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만한 일일뿐 금홍아 금홍아아 하지만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니?”(‘금홍아 금홍아’ 부분)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이상’(李箱)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적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이상’과 그의 작품들 속에서 ‘나’로 표기되는 여러 작중 화자들이 동일한 존재일 수 없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이상’(李箱)이면서 ‘이상’이 아니며, 또한 ‘이장욱(李章旭)이면서 ‘이장욱’이 아니기도 하다. 다시 말해,‘이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 혹은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인격적 실체로서의 고유명사 ‘이상’(李箱)이 아니라, 그가 어느 한 시점(時點)에서 취한 하나의 정념과 태도로서의 ‘나’(假面)일 뿐이듯이, 이 시의 화자는 인격적 자기동일성을 전제하는 고유명사 ‘이상’(李箱)이거나 혹은 ‘이장욱’(李章旭)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정황과 그 순간적 배치 속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정념(情念)과 태도로서의 ‘나’일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나’는 그 정황과 배치의 변화에 따라 무한히 변양(變樣)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부기(附記),“금홍이는 시인 이상의 애인이다.箱(1910-1937)과 나(1968-)의 불편한 관계를 표시하기 위해 그의 소설 ‘날개’,‘逢別記’,‘終生記’ 등에서 몇 구절을 차용했다.”에서 ‘箱과 나의 불편한 관계’란 하나의 자기 동일적인 인격체로서의 ‘이장욱’이 ‘이상’이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서의 시적 화자를 차용하거나 혹은 ‘이상’(李箱)의 목소리를 재연(再演)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불화(不和)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이상’의 목소리 속에 ‘이장욱’의 목소리가, 또는 ‘이장욱’의 정념(情念) 속에 ‘이상’의 정념이 서로를 전제하면서 공명(共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공명은 ‘이상’과 ‘이장욱’이라는 경험적 인격체 전반이 공유하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또한 이 둘이 여전히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공명이 어떤 특정한 한 순간에만 존속(存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 자신을 위조하는 것이 할 만한 일일뿐”이라는 구절은 ‘시적 화자’, 더 나아가 모든 발화의 상황 속에 놓인 화자의 존재론적 특성을 축약하여 표현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시’ 장르가 전제해왔던 화자의 자기 동일성은 실상 ‘위조’된 것일 뿐이며, 화자는 시인의 전(全) 인격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 특정한 시적 정황과 맥락 속에서 구성되어지는 하나의 가면(정념)에 불과하다.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의 이러한 변양과 분열을 의식하지 못하는,1인칭 고백체의 화법은 ‘사기’,‘거짓’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사기치지 말라,高手는 그냥 느낀다, 그대 생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표식은, 그대의 육체이다”,“고백은 지겹다. 모든 고백은 거짓이다.”(‘감상적인 필름’),“당신이 당신을 증언하고 있으니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됩니다.”(‘편집증 환자가 앉아있는 광장’) 등은 이장욱이 1인칭 화자의 자기애적(自己愛的) 순결과 정직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1인칭의 발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위조’와 ‘위장’과 ‘가장’을 들추어내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거의 모든 시 속에 스며있는 위악적(僞惡的) 포즈와 하드보일드 문체(hard-boiled style)는 1인칭의 발화 상황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고백적 화법의 위선(僞善)에 대한 그의 근원적인 혐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위선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하여, 그의 시에서 빈번하게 활용된 시적 방법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시적 화자를 자기의식(自己意識)의 명석 판명함을 입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주체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상성의 외부로 추방될 수밖에 없는 병리적(病理的)이거나 환상적(幻想的)인 혹은 괴물과 같은 존재자들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편집증 환자’,‘투명인간’,‘킬러’,‘도플갱어’,‘뱀파이어’,‘좀비’ 등과 같은 화자들이 바로 이러한 사례에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화자의 진술 자체를 신빙성(信憑性)이 결여되거나 불명료한 어사(語辭)들로 구성함으로써, 시작품 내부의 단일한 ‘의미화’(signification) 주체로서의 화자를 그 중심의 자리에서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그를 지나 그녀를 지나 그대를/지나 내가 어느 이상한 날에 정오를 지나 새벽을 지나 오/후 네 시를 지나 그리고 어느 이상한 날에 빈 공터와 당구/장과 동대문 운동장을 지나 문득 흥겨운 술집의 죽은 친/구의 화사한 여자들의 기나긴 과거를 걸어가는 어느 이상/한 날”(‘결국,’ 부분) “그렇지. 나는 어쩌면 모든 일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혹시 모른다. 행복할 리도 황폐할 리도 없는 바람들/이 애초에 공릉동의 주민이었는지도 혹시 모르지. 이곳/에서 모든 빛들은 현재형으로 명멸한다. 너무 상투적인/가? 하지만 그때 한 마리 늑대가, 월계동 쪽의 불빛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문득 망망한 비가/내렸는지도, 혹시 모르지. 그의 마른 등을 향해 몇 장의/ 낡은 신문이 날아들었는지도.”(‘공릉동의 바람 속으로’ 부분)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여행중이었던/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생각하는 사람’ 부분) 위의 시편들에서, 화자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사유를 명징하고 확실한 것으로 진술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결국,’에서처럼,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나타내는 ‘동대문 운동장’과 ‘정오’와 ‘오후 네 시’라는 구체적 지시어들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이상한’이라는 형용사의 집요한 반복에 의해 정상적인 언어의 체계 혹은 일상적인 개연성의 세계로부터 추방된다. 또한 ‘공릉동의 바람 속으로’에서 볼 수 있듯이, 화자는 과거 추측의 의미를 지닌 어미(語尾),‘-이었는지도’의 반복과 기억의 불명확성을 표현하는 ‘모른다’라는 서술어의 반복에 의해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상실한다. 결국 그의 시의 화자들은 이러한 어법들로 인해 자신의 어떤 감정이나 기억, 이야기 등과 같은 의식 내용을 능동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어두운 골목을 지난 적 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라는 ‘생각하는 사람’의 한 구절은 화자인 ‘나’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이 화자를 ‘사로잡아’ 그를 지배하는 것처럼 언술됨으로써, 시의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주관)와 그 구성 요소로서의 대상(객관)의 관계를 역전(逆轉)시킨다. 이 시에서 여러 번 반복된 “어쩌면 여행 중이었던 거야. 아니 맥주를 사러 가게로”라는 구절 역시, 화자의 진술을 합리적으로 독해될 수 없는 ‘이상한’ 것으로 만들면서, 화자의 의식으로부터 기원하는 어떤 의미의 계열도 자명하지 않은 것이 되게 하거나 또는 어떤 신비에 둘러싸인 미지(未知)의 것이 되게 한다. 결국 이러한 어사(語辭)들의 반복적 활용은 전래의 시적 관습에서 전제되었던 단일한 의미화의 ‘소실점’으로서의 화자를 그 의미화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물러나게 하는 시적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장욱의 시는 재래의 ‘시’ 장르에서 화자에게 관례처럼 부여되어왔던 의미화의 지배권을 박탈함으로써, 화자의 단일한 감정과 의식과 가치가 아니라,‘脫’인격체로서의 시적 주체의 복수적인 가면들과 정념들, 그리고 사물들 그 자체의 다양한 변양들을 시의 새로운 의미 내용으로 새겨 넣는다. 아마도 그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실재성과 마주칠 수 있는 하나의 유력한 방법으로 이러한 시적 화법을 고안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4. 비선형적 시간과 존재의 주름 이장욱의 시에서, 화자를 자기의식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분열적 주체로 조형하는 또 다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시제(時制)이다. 그의 시는 시간의 일정한 단위 분절을 통해서만 수립되는 ‘현재’의 시제 속에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중첩시킨다. 즉 어떤 특정한 외연(外延)으로 수렴되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 그 외연을 넘어서 존재하는 비동시적인 사건들을 병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서는 (과거-현재-미래)로 연속되어지는 선형적(線形的) 시간의 투명성이 사라지게 되며, 그것의 명료한 경계 분할이 흐릿해지게 된다. “나는 오로지 지금 이곳에 있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시작된다./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결박한다./ 나는 얼어붙는다./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가 한꺼번에 다가온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결정’ 부분) “최선을 다해 개인적인 관계들을 생각하자/드디어 당신과 나는 10년 후의 야구를 이해한다./누군가 플레이 볼이라고 외치자/나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그리고 10년 후의 1루 베이스를 향해/필사적으로 달려갔다”(‘10년 후의 야구장’ 부분) “자꾸 다르게 보여/당신은 이미 태어났는데/당신은 사랑을 했었는데/당신은 지난해의 가을을 여행 중인데/당신은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막 떠올려 미소 지었는데”(‘정확한 질문’ 부분) ‘결정’에서 ‘오 분 전’과 ‘머나먼 미래’는 ‘다가온다’라는 현재시제 동사의 주어가 됨으로써 ‘지금 이곳’에 공존하는 것으로 나타나며,‘10년 후의 야구장’에서는 ‘1루 베이스’가 ‘10년 후’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에서,‘달려갔다’는 과거시제 동사의 목적어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정확한 질문’에서는 ‘지난해의 가을’이라는 과거 시점의 명사가 ‘여행 중인데’라는 현재진행형의 동사와 결합되는 시제의 혼란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제의 혼란과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공존은 어떤 특정한 현재적 사태 속에 감싸여져 있는 잠재성(virtuality)의 차원을 시의 표면으로 솟아오르게 한다. 위의 시들에서 표현된 ‘생각’과 “오래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화자의 자기동일성을 구축하는 명징한 자기의식과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시간 위에서 구축되는 주체의 실존적 동일성과 연대기적 서사(narrative)를 일그러뜨리는 존재의 주름들이자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이다. 이 잠재성의 차원에서 시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예컨대,“일어나지 않았던(일어났던)”이라는 과거시제나 “일어나지 않을(일어날)”이라는 미래시제는 모두 현실성(actuality)의 척도를 통해서만 측정되고 구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드러나 있는 것들로 구성되는 현실성의 차원은 실상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성의 차원들 가운데 그 일부가 선택되거나 배제됨으로써 성립된다고 할 수 있다. 잠재성의 차원은 그러므로 일정한 외연을 가진 어떤 ‘현재’로 수렴되지 않으며, 선형적이고 연대기적인 시간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늘 존속(存續)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의 주어진 물질적 사태로서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항상 ‘실재하는 것’(re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삼 분전의 잠’ 부분) 이 시를 단지 특정한 ‘잠’ 속에 나타난 잡다하고 무질서한 꿈의 내용 혹은 그 환상적 이미지들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의 많은 부분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화자의 현실적 의식으로 포착되지 않는 망각과 오해와 무의식의 무한한 잠재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꿈속에서 우리는 ‘삼 분 전의 문’과 ‘삼십 년 전의 그대’와 ‘삼일 전의 기슭’이 동시에 결합되거나 병치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꿈속에서 ‘일어났던 것’(과거)과 ‘일어나고 있는 것’(현재)과 ‘일어날 것’(미래)은 선형적인 질서를 벗어나 한데 뒤엉키며, 시간은 산술적 단위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연대기(年代記)를 벗어난다. 이것은 곧 꿈의 본질적 특성이 비선형적(非線形的) 시간의 조합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라는 구절은 이 시의 의미가 단지 화자의 ‘잠속’에 나타난 꿈 이미지들의 재구(再構)를 통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네 번이나 반복된 ‘잠에서 깨어’는 이 시의 화자가 위치하고 있는 공간이 ‘잠’의 안쪽만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모래산에 쌓이네”에서 ‘쌓이네’라는 술어(述語)는 ‘모래산’이 퇴적(堆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내 잠 깊은 모래산’은 그것이 화자의 신체에 부수되는 어떤 행위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내면적인 것인 동시에 퇴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기억’이다. 따라서 ‘잠’이 비단 현실적인 ‘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내 잠 깊은 모래산’은 ‘내 안에서 잠자고 있는 기억’ 혹은 ‘나의 의식에서 지워져버린 망각들’로 해석된다.‘기억’ 또한 의식 주체의 선택과 배제를 통해서 가공되고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세계의 실상 그 자체일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인칭과 시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축되는 개연적 서사(허구)에 가깝다. 따라서 ‘기억’의 내부에는 망각되고 삭제된 그 무엇이 여전히 어떤 잉여로서 남아있게 된다. ‘잠재성’의 차원은 단지 환상이나 몽상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이지만, 이미 실재하는 것이다. 잠속의 꿈과 의식되지 못한 무의식과 기억의 사슬에 무수하게 주름 잡혀 있는 망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내 잠 깊은 모래산’에 무수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이 기거하고 있듯이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또한 인칭과 시점을 달리한 숱한 망각과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명성은 주체의 의식과 기억의 자명성이 아니라, 주체에게 의식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잠재성의 차원들이 실재한다는 것의 자명성이며, 주체의 단일한 의식(기억)이 조작된 서사와 허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의 자명성이다. 모든 1인칭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그들의 처지와 욕망과 권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1인칭 주체의 자기의식은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이 아무리 많이 추가되고 보충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을 포착할 수 없다. 또한 그 어떤 충만한 기억도 ‘모래산’처럼 부서지기 쉬운 공허(空虛)와 무의미(無意味)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는 삶의 근원적인 공허와 무의미를 이미 깨달아버린 자의 언어이며, 이러한 현자(賢者)만이 지닐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표현한다. 현실성의 내부에 잠재성이, 의식의 내부에 무의식이, 기억의 내부에 망각이, 무한한 주름들로 감싸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에게만,‘우연’은 이 세계의 진상을 목도(目睹)할 수 있는 어떤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5. 시적 에피파니’를 위하여 “서랍 속으로 사라진 것들이/어느 날 문득 서랍 속으로 돌아오듯/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오래전의 목소리./……/어느 순간 너를 습격하는 상형문자들./너의 내부에서 드디어/다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는 날이 있다./혹은 돌아오는 날.”(‘복화술사’ 부분) ‘시적 에피파니’가 도래하는 시간은 시인이 어떤 신비를 능동적으로 예감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너를 습격하듯이’ 밀려닥치는 우발성의 시간이며,‘상형문자’로서의 시적 언어가 시인의 관습적 감각과 사유를 폭력적으로 뒤흔들어 놓으면서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그러므로 능동태(能動態)의 시간이 아니라 수동태(受動態)의 시간이다. 또한 이 시간은 시인에게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세계의 만상들이 그 자신들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따라서 이 순간은 “너(시인)의 내부에서 드디어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날”이기도 하며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는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시인의 명징한 의식과 관습적 표상작용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이기에,‘돌아오는 목소리’(반복)인 동시에 ‘다른 목소리’(차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복되는 것(‘돌아오는’)은 이미 실재하고 있었던 세계의 풍요로운 만상들이며, 이 반복을 통해 차이(‘다른’)를 발생시키는 것은 ‘너의 목소리’ 곧 시인의 관례적인 감각과 도식들이다. 김수영이 ‘絶望’에서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모든 미학적 실천과 시적 창조의 공간에서 우리들 자신의 관례적 감각과 도식을 매번 혁파하기 위해서는, 섬광처럼 우리를 헤집고 지나가는 모든 우발성들을 용기 있게 승인해야 하며, 이 우발성들이 우리들에게 가해 오는 ‘낯선 것의 폭력’과 과감하게 마주쳐야만 한다. 이장욱의 말처럼 “이 고투를 통과한 자에게만”,‘시적 에피파니’는 비로소 그 자신을 개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고투를 체험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 어떤 ‘에피파니’의 순간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장욱의 시에서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충직한 순결성을, 일상적 경험 속에서 피어나는 순박한 인간애를, 그 아름다운 빛으로 충만해 있는 시적 감동의 순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세계 그 자체의 실상이 아니라 1인칭의 자기애적인 영혼이 미리 전제하고 있는 어떤 관념적인 조화이자 이상적인 도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시는 이것들이 배제하거나 은폐하고 있는 세계의 잔인한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관점과 태도가 진정으로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혜안(慧眼)과 비전을 담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시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그 무수한 가면과 정념을,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그 혼탁하면서도 풍요로운 만상을, 현대적 일상의 그 지루한 반복과 권태를, 저토록 리얼하고 또 잔인하게 묘사해준다면, 그의 시는 하나의 예술로서 그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찬
  • 제망매가/강정규 지음

    ‘해리포터’ 시리즈가 출간된 이래 아동출판계에서는 “팬터지가 아니면 대박이 날 수 없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너도나도 ‘튀는’ 이야기,‘잘 팔리는’ 이야기를 좇는 데 몰두하는 가운데 고전적인 스타일의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위대한 동심의 세계를 지켜오고 있는 작가들이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동문학 계간지 ‘시와 동화’를 발행하는 원로 동화작가 강정규(65)는 그런 점에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신작 동화집 ‘제망매가’(강전희 그림, 도서출판 달리)를 펴냈다. 작가는 표제작을 비롯, ‘이야기가 된 꽃씨’ ‘새’ ‘행복한 별나라’ 등 14편의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오롯이 전해 준다. “참새는 대숲에 항아리 모양의 둥지를 틉니다. 모시카락, 삼베오라기랑 지푸라기들을 물어다가 돌돌 틀어 감아 예쁜 집을 만듭니다. 어떤 놈은 마을의 짚지붕 속으로 뚫고 들어가 둥지를 만들기도 합니다.”(‘새’) 그러나 지금 새들은 갈 곳이 없다. 초가지붕도 없어지고 대숲도 사라졌다. 슬레이트 지붕 마을엔 참새가 깃들 곳이 없다. 전신주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살풍경한 까치집이 고작일 뿐…. 작가는 도시화로 인해 날로 삭막해져 가는 세상살이, 산업화에 따른 자연파괴, 인간성 상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린다. 천사의 말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와 다를 게 없는 법. 작가는 동화를 쓰면서 늘 이같은 진리를 가슴에 새긴다. “사랑으로 쓰고 싶은 열망만으로 또 한권의 책을 냈다.”는 그의 동화가 ‘사랑의 동화’로 불리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85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제주전역 야생노루떼 농작물 피해 심각

    제주전역 야생노루떼 농작물 피해 심각

    ‘늘어나는 노루와 까치를 어찌하면 좋아요.’ 제주도가 한라산 등 도 전역에 걸쳐 크게 늘어난 까치와 야생 노루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도 노루는 한라산의 우수한 자연 생태환경을 상징하는 보호동물. 한때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지난 20여년간의 보호운동으로 개체수가 크게 늘었다. 한라산연구소에 따르면 한라산국립공원 고산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노루는 모두 1160여마리. 하지만 국립공원 지역이 아닌 제주 중산간지대 골프장과 공동묘지 등에 이미 상당수의 노루가 서식 중이어서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개체수가 늘면서 영역싸움과 먹이경쟁 등으로 한라산과 멀리 떨어진 해안지역 오름에서도 노루가 관찰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고구마·감자·더덕·콩 등 야생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도 심각한 상태다. 지난해 308농가 410만평이, 올해는 754농가 371만평이 각각 노루 피해를 보았다. 피해 면적은 줄었지만 피해 농가는 2배 이상 증가했다. 도는 지난 2004년부터 3억여원을 들여 밭을 둘러싸는 그물망 359㎞를 지원했지만 피해 농가들은 노루포획 등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노루의 경우 보호동물이어서 함부로 포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농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길조로 알려진 까치도 고민거리다. 제주에는 원래 까치가 서식하지 않았으나 지난 1989년 모 항공사가 제주 취항 기념으로 53마리를 방사한 뒤 강한 번식력으로 개체수가 급증했다. 최근 3년간 포획한 까치 수는 2004년 5200마리,2005년 2만 600마리, 올해 4만 2000마리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까치는 감귤이나 한라봉 열매를 쪼아 먹어 과수원을 망쳐 놓는 것은 물론 당근, 감자 등 밭농사에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까치떼에 의한 농작물 피해 면적은 한해 85만 4000여평에 이르고 있고 전신주에 둥지를 틀면서 매년 100건 이상의 정전 사고도 일으킨다. 까치는 1994년 이후 유해 조수로 지정돼 포획을 허용했지만 천적이 적은 제주 지역 특성상 개체수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라산연구소 오장근 박사는 “한라산 국립공원이 아닌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노루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통해 포획 허용 여부 등 적정 수준의 야생 노루관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Metro] 용인 불법광고물 어림없다

    용인시가 13일 불법광고물 추방을 위해 도로변 대부분의 지역에 ‘불법광고물 부착 방지시트’를 설치했다. 이 시트는 가로등, 신호등, 전신주, 배전함, 교각 등에 전단지, 유해광고 등 불법광고물을 붙일 수 없도록 표면을 특수처리한 것. 시는 사업비 2억원을 들여 국도 42,43,45호선 및 국지도 23호선 구간의 가로등과 신호등, 전신주, 공용 시설물 박스 등 총 20㎞에 이 시트를 설치했다. 내년에는 3억 3000만원을 들여 국지도 23호선 나머지 구간과 시도 1호선, 정평중∼풍덕고교 사거리 등의 구간에 대해서도 설치할 계획이다. 또한 전력공사와 대형택지지구의 사업자에게는 원인자 부담 형식으로 이 사업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Metro] 용인 불법광고물 어림없다

    용인시가 13일 불법광고물 추방을 위해 도로변 대부분의 지역에 ‘불법광고물 부착 방지시트’를 설치했다. 이 시트는 가로등, 신호등, 전신주, 배전함, 교각 등에 전단지, 유해광고 등 불법광고물을 붙일 수 없도록 표면을 특수처리한 것. 시는 사업비 2억원을 들여 국도 42,43,45호선 및 국지도 23호선 구간의 가로등과 신호등, 전신주, 공용 시설물 박스 등 총 20㎞에 이 시트를 설치했다. 내년에는 3억 3000만원을 들여 국지도 23호선 나머지 구간과 시도 1호선, 정평중∼풍덕고교 사거리 등의 구간에 대해서도 설치할 계획이다. 또한 전력공사와 대형택지지구의 사업자에게는 원인자 부담 형식으로 이 사업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인조잔디로 전신주 불법광고물 퇴치

    인조잔디로 전신주 불법광고물 퇴치

    ‘인조 잔디가 불법광고물을 퇴치한다?’ 전신주나 가로등주에 더덕더덕 붙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각종 광고물을 인조 잔디를 이용해 확실히 처리하는 자치구가 있다. 서초구(구청장 박성중)는 지난해 말부터 인조 잔디를 가로등주 하단부에 설치해 불법광고물을 뿌리뽑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동장 등 바닥에 설치하는 인조잔디를 발상의 전환으로 가로등주 포장에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불법광고물을 원천 봉쇄하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 푸른 잔디로 도로변 환경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또 인조잔디가 주변 미세먼지를 흡수해 친환경적 효과까지 보고 있다. 구 관계자는 “인조잔디에 도로변 미세먼지가 달라 붙어 환경정화 효과가 있는 데다 비가 오면 인조잔디의 먼지가 싹 씻겨 내려가 따로 청소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 인조잔디의 설치비는 개당 4만 5000원 정도로 기존에 설치했던 고무포장의 절반 가격이다. 게다가 불법광고물을 제거하기 위해 동원했던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연간 10억원의 예산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가로등주에 인조잔디를 포장하기는 국내에서 서초구가 처음으로 이색적인 행정혁신 아이디어로 꼽히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서울시 지방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구청 토목과 성태진 주임으로 100만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성 주임은 “잔디가 깔려 있는 운동장을 보다가 인조잔디를 바닥에만 깔라는 법이 없지 않나 생각해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인조잔디의 효과가 획기적인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설치 구역을 확대해 올해 연말까지 모두 800곳의 도로변 가로등주에 인조잔디를 설치할 계획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공중에 설치된 전선 도로 점용료 물린다

    전국 시가지 도로 공중에 설치된 전선 및 통신선에 도로점용 사용료가 부과될 전망이다. 울산시는 18일 도로 위를 지나는 공중선(線)에 대해 도로점용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건교부에 건의해 건교부 등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중선 도로점용료를 부과하는 관련법은 내년에 마련될 전망이다. 울산시는 지방세 수입을 확대하고, 시가지 공중에 무질서하게 설치돼 미관상 보기에 좋지 않은 전선·통신선을 지중화로 유도하기 위해 공중선 도로점용료 부과와 전주 도로점용료 인상을 혁신과제로 발굴, 전국 시·도와 공동으로 건교부에 건의했다. 건교부는 전주 도로점용료 인상 건의에 대해서는 평균 64.2% 인상해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도로법시행령을 개정했다. 전신주 1개당 갑지(특별시)는 1200원에서 2200원, 을지(구)는 900원에서 1500원, 병지(군)은 600원에서 1000원으로 인상됐다. 전주 도로점용료 인상으로 울산시는 내년부터 시내 6만 8167개의 전주에 대해 8492만 4000원의 지방세를 거둔다. 시는 현재 공중선은 선로소유자가 전주소유자에게 이용료만 내고 도로점용료는 내지 않기 때문에 전국 시가지마다 각종 공중선이 무분별하게 설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개성공단 송전탑 착공식 연기”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24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악재들로 인해 남북 관계가 경색돼 오는 28일로 예정됐던 개성공단 송전탑 착공식이 무기한 연기됐다.”고 말했다. 한전은 개성공단 시범단지 2만 8000평에는 전신주를 통해 전기를 공급하고 있지만 1단지 100만평은 전력수요가 많아 송전탑을 세우고 있다. 한 사장은 또 최근의 고유가 상황과 관련,“우리나라 전기요금이 너무 싸서 전기절약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며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9개 지사의 독립사업부 전환에 대해서는 “경영혁신으로 내부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 전력사업의 역량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가전제품 완전건조뒤 사용 물 빼지 않은 채 시동 금물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물폭탄’이 떨어졌다. 남부 지방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주택이나 차량 침수 등에 대한 대응요령을 알아두는 것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비가 그쳤더라도 오랫동안 땅에 빗물이 스며들어 지반이 약화된 만큼 붕괴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특히 경사도 30도 이상의 비탈면은 통행을 삼가는 것이 좋다. 늘어진 고압선이나 넘어진 가로등·전신주 등은 감전사고 위험이 크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물에 잠겼던 집안은 가스가 차 있을 수 있으니 창문을 열어 충분히 환기시키고 들어가야 한다. 피해복구 과정에서 안전사고 우려가 큰 전기설비나 가스·수도관은 함부로 손대지 말고, 전문기관에 맡겨야 한다. 가구와 책 등은 이물질을 제거한 뒤 그늘에서 말리고, 가전제품은 사용하기 전에 완전히 건조됐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자동차는 잠시라도 물에 잠기면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침수 차량에서 물을 빼내지 않은 채 시동을 걸면 전기장치나 엔진 등 주요 부품이 완전히 망가져 차량을 아예 못쓰게 될 수도 있다. 물에 완전히 잠겼던 차는 오일류와 냉각수, 연료 등을 교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물에 젖었던 시트는 그늘에서 천천히 말려야 변형과 악취를 막을 수 있다. 침수 차량도 자동차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1999년 보험약관을 개정하면서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차량을 주차하거나, 정차했다가 태풍과 홍수 등 천재지변의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무조건 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자동차보험 ‘자기차량손해’ 담보 항목에 가입해 있어야 한다. 다만 침수지역인 줄 알면서도 운행하는 등 보험 가입자나 운전자의 부주의가 피해에 영향을 미쳤을 때는 보상은 받을 수 있지만, 보험료가 할증된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산사태가 마을 통째 삼켜 폐허로

    마을이 사라졌다.15일 새벽부터 뚫린 하늘 아래서 단 너댓시간만에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덕산리 1,2반은 벌건 흙언덕으로 변했다. 마을 주민 1명이 숨졌고 1명은 실종됐다. 다행히 화를 면한 60여명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평생 뿌리박아온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에 장맛비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고립 주민 구조 안하고 총리만 오면 뭐하냐” 비는 잦아들었지만 산사태가 휩쓸고 간 흔적은 처참했다. 마을 앞 20m 폭의 개천은 두 배 이상 커져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거의 끊어진 허리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물 먹은 논밭과 산이 토해놓은 흙더미로 가득한 도로는 늪처럼 한발 딛기조차 힘들 정도다. 하지만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날이 밝자 집에 흔적이라도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종종걸음을 했다. 뿌리째 뽑힌 나무와 전신주를 넘고 넘어 계곡으로 변해버린 도랑을 건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다. “저 산 아래 양봉 치는데 가봐야 해. 아이고 몇 억이 한 순간에 날아갔어.” 우산도 받치지 않은 한 주민은 성큼성큼 산으로 향해 간다. 말릴 틈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미 흙이 삼켜버린 집보다 인근 마을에 고립된 친척과 친구들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른다. 구조대원도 죽어 나가는 판이라 마음만 산을 오를 뿐 몸은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주민 손봉월(47·여)씨는 “산 바로 아래 사는 시동생이랑 어제부터 통화가 전혀 안된다.”면서 “거긴 여기보다 가구 수도 많은데 큰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병수(54)씨는 “국무총리가 여기만 슬쩍 둘러보고 갔다. 고립지역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단 몇분만에 휩쓸려” 인제군청으로 대피한 덕전리 주민들은 악몽 같은 기억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15일 오전 인제군에는 시간당 20㎜ 안팎으로 비가 내렸다. 하지만 마을이 풍비박산 나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짧았다. 산사태가 나면서 거대한 물길이 만들어졌고 이곳을 따라 거대한 물폭포가 쏟아져 10여가구를 산산조각냈다. 박병삼(61)씨는 “사고 30분 전만 해도 물이 발목까지밖에 안 차 넘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면서 “산이 무너져내려 마을을 덮친 것은 채 3분도 안된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고립 지역은 접근이 불가능해 정확한 피해상황 조차 파악되지 못했다. 날씨 탓에 헬리콥터를 단거리 외에는 띄울 수 없었다. 마을별로 탈출한 한 두 사람의 입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만 전해들을 뿐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참다 못한 일부 주민들은 실종된 가족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공진학(48)씨는 “친구가 금요일 이후에 전화가 끊겨 가족들이 직접 산으로 찾으러 갔다.”면서 “이러다 또 사고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전기가 끊긴 터라 식료품을 전달한다고 해도 냉장고 가동이 안돼 고립 기간이 길어질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원래 사고 없는 곳” 재해 대비 없이 방치 이번 비로 인제군에는 258가구 55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7명으로 실종자 20명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곳은 비 피해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몇년 전 400㎜ 이상의 비가 왔을 때도 수해는 인제군을 비켜갔다. 이곳에서 태어난 덕산리 토박이 최옥순(78)씨는 “평생 덕산리에서 살았지만 물난리 한번 난 적이 없어 복받은 동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전에 사고난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게 피해를 더 키운 것으로 보인다. 덕산리에서 사망한 김모(88)씨의 경우 밭고랑을 정리하다 미처 피하지 못해 화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이번과 같은 폭우를 겪어 본 적이 없는 주민들이 대피할 생각을 못해 피해를 키웠다.”면서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라 빨리 대처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고 설명했다.인제 나길회 윤설영기자 kkirina@seoul.co.kr
  • 아산 아파트 사기분양 시비 속출

    충남 아산신도시 지역에 아파트 신축이 잇따르면서 ‘사기분양’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15일 아산시에 따르면 준공을 앞두고 있는 배방면 J아파트 입주자 100명은 이틀전 시청 앞에서 하자보수후 준공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시공사측이 약속했던 안방 이중창 설치, 초등학교 개교, 등산로 조성, 전신주 지중화 등을 지키지 않았다며 시의 철저한 준공검사를 촉구했다. 같은 지역의 G아파트 입주예정자 600여명도 지난달 28일 모델하우스 앞에서 당초 분양광고처럼 공사가 안 되고 있다며 항의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분양당시 건설사측이 ‘국도에서 600m 이상 떨어져 조용하고 아파트 옆에 하천이 흐르는 등 조망권이 보장되는 웰빙아파트’라고 했지만 높이 6m의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바로 옆을 지나게 돼 소음이 우려되고 조망권 보장도 안 되는 사기분양이라고 주장했다. 음봉면에 건설되고 있는 P아파트 입주예정자 30여명도 지난달 24일 아산시청 앞에서 “건설사측이 공원조성, 아파트 진입로 6차선 확장, 초등학교 신설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아산시 풍기동 D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은 지난 3월 시행사에서 철길과 7.5m밖에 떨어지지 않은 사실을 알면서도 30m 떨어진 것처럼 속여 분양했다면서 두달간 줄다리기 끝에 방음시설을 설치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와 같은 분양과열이 우려되자 주택공사 아산신도시사업본부는 다음달 처음 공급하는 아파트 1순위 분양신청자격을 공고일 현재 천안·아산에서 6개월∼1년이상 거주한 무주택자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도시내 배방지구에 분양되는 1102가구의 이 아파트는 대전·충남지역 최초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기도 한다. 이 일대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이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아산신도시는 2008년까지 111만평의 1단계 건설이 마무리되고 이후에 510만평의 2단계가 이어진다.아산 이천열기자 skyi@seoul.co.kr
  • 평택 미군기지터 CCTV설치 논란

    경찰이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 일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주민들이 “인권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19일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세집네, 대추리삼거리, 배수로사무실 주변 전신주 등 3곳에 CCTV를 설치했으며, 본정리 본정삼거리와 도두리 초지농장 주변 2곳에도 설치중이라고 밝혔다.또 기지 이전터 주요지점 5곳에 CCTV를 추가로 설치한 뒤 모두 10대를 이달 안에 가동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기지이전터 철조망 훼손이나 군인폭행 등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히 출동, 초동조치하기 위해 CCTV를 설치중이며 주민감시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만일 주민 감시가 목적이었다면 마을내에 설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지역주민과 범국민대책위원회측은 “경찰의 CCTV 설치는 주민과 마을 전체를 감시하겠다는 것”이라며 “마을 통행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CCTV를 즉각 철거하라.”고 요구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충남 천안 쇠내골 나서화 할머니의 전기없는 삶

    충남 천안 쇠내골 나서화 할머니의 전기없는 삶

    우리의 삶 아주 가까이 있어 종종 그 존재조차 잊어버리곤 하는 전기(電氣). 전기없는 일상생활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엔 아직도 전기가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산간오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인이 보기엔 어쩌면 원시생활이나 다름없다. 충남 천안의 산골마을 쇠내골에 사는 나서화(76)할머니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전기없는 삶을 20년째 살고 있다. 전기로 환히 방을 밝히고,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TV도 보면서 사는 것이 소원인 나 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생활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글 사진 천안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물질적인 풍요로움속에 살고 있는 도시인들은 간혹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오지에서의 생활을 꿈꾼다. 아침에 산새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저녁이면 별을 헤며 스르르 잠속에 빠져든다. 전화올 곳도 없고 휴대전화에서 스팸메일 같은 것은 더 더욱 올리도 없다. 그야말로 무공해 자유로운 삶이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상상속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정안IC를 나와 원덕리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민가의 굴뚝에서 나오는 흰연기가 목가적인 풍경을 흠씬 자아낸다. 외지인의 방문에 놀란 멍멍이는 사립문 뒤에 숨어 요란스레 짖어댈 뿐,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지는 않는다. 희뿌연 안개속에서 밭고랑을 돌보는 촌부(村夫)의 모습은 세상살이에 지친 가슴 한자락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할 만큼 여유롭다. 아랫마을 원덕1리에서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윗마을 쇠내골까지는 4여㎞. 온통 울퉁불퉁한 산길이다. 양지바른 곳에는 겨우내 언 땅이 녹아 군데군데 진흙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차바퀴가 헛돌기만 할 뿐,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4륜구동차가 아니면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조용하던 산자락을 시끄러운 자동차의 엔진소리로 뒤엎은 후에야 나서화 할머니가 사는 쇠내골에 도착했다.“이런 산골에 혼자 사는 노인네 뭐 볼게 있다고 찾아와?” 나 할머니댁의 방문을 열자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지청구부터 한다. 두평 남짓한 방. 조그마한 자개장과 책장, 그리고 어렸을 적 봤던 요강 등이 눈에 들어온다.“오늘 아침에 새들이 시끄럽게 우짖기에 누군가 올 줄 알았지.” 손님이 찾아오는 날에는 집앞 자두나무에 딱새며, 곤줄박이 같은 산새들이 먼저 알고 몰려와 시끄럽게 울어댄단다. 세상풍파가 고스란히 내려앉아 허옇게 센 머리카락이었지만, 거울을 보며 정성스레 다듬는 모습에서 여전히 여성스러움이 묻어났다. 할머니가 보는 거울에는 특이하게 온도계가 달려 있었다. 영상 10도를 가리킨다. 염치불구하고 이불이 깔려 있는 아랫목을 슬쩍 차지했다. 옛날 얘기라도 들을 참이었다. 쇠내골은 원래 쇠와 금이 많이 난다는 곳. 현재 8가구가 있지만 365일 상주하는 사람은 할머니가 유일하다. 나머지 7가구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 거처를 두고 있으면서 농사철 등 때가 되면 찾는다. 할머니의 고향은 평안남도 성천.1948년에 어머니, 동생과 함께 월남했다. 서울 남대문과 상계동 등지에서 힘들게 생활하던 할머니는 진작부터 쇠내골에서 종암사라는 암자를 짓고 기거하던 같은 고향 스님의 권유로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이때가 78년. 당시 50만원을 주고 초가 한 채를 사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할머니의 일과는 아침 7시부터 11시 사이에 시작된다. 배 고프면 일찍 일어나지만 추운날엔 늦게까지 이불속에 있는다. 아침에 밥을 짓고 온돌난방을 하기 위해 불을 지피는 것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어지간히 추운 날에도 불은 하루 한번 이상 때지 않고, 아침에 지은 밥으로 저녁까지 해결한다. 반찬은 양념한 무채 한가지.20년 가까이 다른 반찬이라고는 만들어본 적이 없다.“싱싱한 무가 건강에 최고여.”라고 몇번 강조한다. 여름에는 300평정도 되는 집앞 텃밭에 무우나 상추, 깨 등을 심고 가꾼다. 집 주변에 무성하게 나는 잡초를 뽑는 것도 중요한 일과. 하루라도 안 뽑으면 할머니 키만큼이나 훌쩍 자란다. 또 주말이나 휴가철엔 쇠내골을 찾은 행락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해야 한다. 겨울철이나 농한기때엔 주로 건전지를 사용하는 소형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밖으로 나 있는 유일한 창(窓)이다. 그나마 얼마전 안테나가 부러져 좋아하는 가곡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트로트보다는 가곡이 좋단다.‘봄처녀 제 오시네’,‘청산에 살리라’ 등을 즐겨 부른다.“내 고향 북쪽바다∼그 파란물결 눈에 보이네∼” 즉석에서 곱고 애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어느덧 할머니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고향에 두고 온 할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나기 때문이다.“꼭 석달후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또한 산골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책을 읽는다. 고향생각에 ‘동토의 땅’,‘옥화동무 날기다리지 말아요’와 같은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다. 얼마나 보고 또 봤는지 책갈피마다 손때가 묻어 있다. # 군불 지피다 집도 태우고 잠시후 할머니가 불을 지피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서자 강아지 ‘애술(愛戌)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꼬부라진 삼각형의 귀에 누런 몸빛깔을 가진 전형적인 시골개다. 할머니는 애술이를 ‘세번째 손녀딸’이라 부를만큼 애지중지 여긴다. 어린아이 이름 작명하듯 획수와 음양오행 등을 따져 지었다. “가을에 땔나무를 구해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예전엔 3m 가까이 되는 큰나무를 톱으로 썰어서 혼자 끌고온 적도 있어.”요즘은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나 사회봉사단체 회원들이 땔감을 잔뜩 쌓아두고 가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불을 지피다 집에 불을 내기도 했다. 대나무를 때던 아궁이에서 불씨하나가 틱∼소리를 내며 부엌 뒤에 쌓아놓은 억새풀에 옮겨 붙었다. 그러고는 미처 손 쓸 겨를도 없이 부엌전체로 불이 번졌다. 다행히 뒷집 사람들과 함께 집앞 개울가에서 물을 길어와 불을 끄긴 했지만, 집을 수리할 여력이 없어서 한동안 비만 오면 재가 섞인 빗물이 떨어지는 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이젠 물을 길러 가야 할 차례. 파란 플라스틱통에 조롱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넣고 100m쯤 떨어진 뒷산 개울가로 향했다.“한겨울에는 개울이 얼어붙어 얼음을 가져와야 혀.” 어느덧 쇠내골엔 어둠이 찾아들었다. 할머니는 해가 지면 방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것 외에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예전엔 촛불을 켜놓고 책을 보기도 했지만, 깜빡 잠이들어 좋아하던 책과 머리카락을 태운 이후로는 촛불조차 켜지 않는다. 꼭 필요할 때만 손전등을 사용한다. 책장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며 가까스로 손전등을 찾아내자, 건전지 아깝게 왜 켜냐며 면박이다. 할머니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생활안정자금 27만원과 교통비 1만 2000원, 그리고 산지기 등을 해서 생기는 약간의 돈 등 30여만원이 한달 고정수입이다. 이 돈마저 집을 보수하기 위해 빌린 융자금의 원리금을 매달 갚고나면 주머니엔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쇠내골에 전기가 들어오면 환히 불을 켜놓고 TV로 좋아하는 가곡 프로그램이나 고향소식 담은 프로그램을 밤새 보는 것이 할머니의 소원이다. 쇠내골에는 오는 6월말쯤 전기가 들어올 예정이다. 원덕1리에서 쇠내골까지 4.7㎞구간에 1억 7000여만원을 들여 140개의 전신주를 세우는 공사가 곧 시작된다. 할머니는 “내년 7월이면 뒷집 할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다 갚을 거야. 그때쯤이면 손에 몇만원이 남으니까 그걸로 전기요금을 내면 될까?” 전기가 들어와도 걱정이다. 나 할머니를 뒤로 한 채 어두운 산길을 내려왔다. 초저녁이었지만 주위는 어느새 칠흑같은 어둠이 깔렸다. 마을에는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문득 무수한 생각들이 겹쳐진다. 한명밖에 없었던 ‘반원’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해서,‘반장 한명, 반원 한명’인 생활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얻는 것만큼 잃는 것이 많지는 않을까? 할머니는 현재 쇠내골 8가구의 대표인 ‘반장’완장을 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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