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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부고발자 안 죽는다’ 끝까지 버텨 보여주겠다

    ‘내부고발자 안 죽는다’ 끝까지 버텨 보여주겠다

    살아남은 자, 박창진(48). 대한항공의 잘나가는 서비스맨이었던 박창진 전 사무장은 스스로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았을 뿐 사회적으로는 죽임당한 존재”라고 했다. 5년 전 오너일가 장녀(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부당행위에 맞서면서 시작된 일이다. 잘못된 조직문화에 균열을 낸 공익제보자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그는 이후 버티는 삶을 살고 있다. 사무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지만 조직을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투사로서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던진다. 최근 세상을 떠난 태안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와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잇따라 찾기도 했다. 살아남은 자가 같은 어려움을 겪어 온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 행위였다. ‘땅콩회항’ 사태 이후 삶의 항로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박 전 사무장이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플라이 백’(Fly back·회항이라는 뜻)을 내놓고 돌아왔다. 그는 “이제 고통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혼자 아파하는 대신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연대하는 길을 택했다. 지난해 5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백태가 잇달아 폭로된 뒤 조직된 직원연대노조에서 지부장을 맡은 것이 첫걸음이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삶에 대해 들었다.-최근 김복동 할머님과 김용균씨 등 사회적 약자 또는 피해자의 빈소를 조문하셨는데요. “그게 제가 그분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요. 돌아가신 이후지만 연대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제 일(땅콩회항)을 겪은 뒤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다짐했거든요. (언론 등의 주목을 받았던) 그 쇼는 제가 원해서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원치 않게 무대에 올라야 했고, 발가벗겨진 채 조명을 받았죠. 쇼가 끝났을 때 불 꺼진 무대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힘든 기억이 강하게 남았어요.” -용균씨 빈소에서 “용균씨와 내가 겪은 일들이 닮았다”고 하셨죠. “영정사진을 봤어요. ‘교복 입은 건가?’ 싶었죠. 너무 앳되더라고요. 참담했어요. 순진한 청년이 사회를 믿고 나왔는데 사회는 착취만 한 겁니다. 허용된 착취였죠. 결국 목숨을 잃었고요. 저도 한때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용균씨처럼 복종하면 사회가 저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순진했죠. 전 생물학적으로 살아남았을 뿐 사회적으론 살해당했어요.” -회사(대한항공)뿐 아니라 매도했던 동료들이나 여론, 언론에 대한 원망도 느껴지는데 여전히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나요. “가족들이 큰 힘이 돼요. 제가 꽤 여러 번 극단적 시도를 했었어요. 그때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 등 가족들이 붙잡아 줬죠. 복직 이후엔 오기로 버텼어요. 일부 동료들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하고 제 앞에서 저를 험담하는 카톡을 돌려보면서 낄낄댔어요. ‘이거 봐, 박창진 옛날 사진이래’ 하는 식으로요. 처음엔 억울하더라고요. ‘내 폭로로 회사 내부에 긍정적 변화도 있었는데 나한테 왜 이러지’ 하는 마음이 들었죠.” -상처를 많이 받았겠는데요. “오기가 생겼어요. ‘당신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 주겠다’고 생각했죠. 사건 이후에도 5년째 이 조직에서 끈질기게 버티는 건 ‘어? 내부고발한 박창진도 안 죽고 잘 사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예요. 누군가 이를 보고 용기 내길 바라기 때문이죠. ‘불의에 항거해도 살아남을 수 있구나’ 하는 용기를 학습시켜 주고 싶어요.” -국내 미투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와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서 검사는 사건 이후 알아보는 시선이 두려워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던데. “지난주에도 만났어요. 그때도 마스크를 쓰셨더라고요. 서 검사님께 말씀드렸어요. ‘현실에서 자꾸 나를 가두고 회피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건 결국 이 현실이고 현재다. 환경이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헤쳐나가야 한다’고요. 저 역시 극복하는 중이지만 서 검사님이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도울 거예요. 요즘 검사님도 제 응원에 힘입어 조금씩 인터뷰도 하고 목소리를 내셔요. 그게 바로 연대의 힘이죠.” -요즘 개인적 일상은 어떤가요. “물론 저도 위축될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우연히 지인을 마주쳤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뒤에서 ‘박창진은 TV에 나와서 불쌍한 척 다하더니 백화점이나 돌아다니더라. 언론사에 제보해야겠어’라는 말을 하고 다녔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난 이제 평생 집 밖에 나가면 안 되나? 추레하게만 입어야 하나?’ 싶었죠. 사회가 우리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요. 전 삶에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고 싶거든요.”-승무원 일을 계속하시는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항상 웃어야 하는 서비스직이잖아요. “지금도 가식적으로 웃잖아요(웃음). 전 좋은 서비스맨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훈련했고 승무원이 됐어요. 그런데 ‘땅콩회항’ 사건 이후 핸디캡이 되더라고요. ‘멀쩡하시네요?’ 하고 의아해하는 승객 분도 있어요. 속상하죠. 실은 아직 공황장애에 시달려요. 사건 이후 누가 저를 공격하는 것에 트라우마가 좀 생겨서요. 한 예로 기내에서 누가 갑자기 옷깃 등을 잡아당기면 크게 놀라요. 그래도 제 일이니 티 안 내려고 해요.” -그래도 대한항공 내 ‘직원연대’를 조직하면서 동지들도 많아졌지요. “동료들에게 연대가 무엇인지, 용기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보여 주고 싶어요. 사건 이후에 오기가 생기고, 스스로 각성하고 그 단계를 넘어서 ‘내가 돕는 자의 입장이 돼야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전 경험해 봤으니까 조력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한때 500여명이던 조합원 수가 300여명으로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대한항공 오너 일가 갑질 사건이 이슈가 됐을 땐 호응이 컸었는데요. “실망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요즘 ‘직원연대 덕분에 현장에서의 변화가 느껴진다’는 얘기도 들어요. 슬프게도 (대한항공) 직원들은 동료끼리 감시하고 회사에 밀고해야 했던 경험이 있어요. 우리 모두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인 거죠. 희망의 씨앗은 뿌려졌으니 싹이 잘 자라나도록 보호막 역할을 하고 싶어서 지부장으로 있는 거예요.” -2016년 3월 복직했을 때 회사에서 버티는 마지노선을 처음엔 한 달, 그다음엔 3년으로 늘리셨습니다. “사실 전 지금도 많이 힘들어요.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죠. 직장에서 쌓아 온 지위는 온데간데없이 저연차 때 했던 일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어요. 지난해 11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해서 조양호 회장 등을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 달라’는 주장을 한 이후에 비행 스케줄이 타이트하게 잡힌다거나 기피 노선에 배정되는 일이 잦아졌어요. 제 손발을 꺾으려는 시도가 여전히 은밀히 이뤄지고 있죠. 제가 두 손 드는 게 그들이 원하는 일일 테니까 버티는 것이죠. 다만 직원연대에 제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제 역할을 대신 훌륭하게 해 줘도 좋고 다 함께 뭉쳐서 더 큰 힘을 내주면 더 좋고요.” -그런 측면에서 직원연대의 유튜브에 직접 출연하는 두 승무원 후배(편선화·정지은씨)가 참 고맙겠어요. “저희 조직 대부분이 여성 승무원이잖아요. 특히 여직원들이 가면 속에 갇히지 않고 용기 내주길 바랐어요. 여승무원들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어요. ‘예뻐야 한다’는 등의 편견에 여전히 시달리죠. 회사는 그걸 홍보 수단으로 이용해요. 심지어 직원연대가 생기기 전까지 생리휴가도 사유서 내고 허가받아야 했어요. 이게 말이 되나요? 불합리한 조직에 대항해 얼굴을 드러낸다는 게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두 후배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대한항공에 원래 있던 일반노조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최근 일반노조 측에서 소속 조합원들이 직원연대로 이동하는 걸 막으려고 온라인에 명단을 공표했어요. 복수노조가 법으로 인정되는 시대에 왜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는 행동을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지금 직원연대는 노조 지위 인정받으려고 회사와 협의하려고 하는데 회사는 슬그머니 빠지고 ‘거대 노조와 합의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어요. 노노(勞勞) 갈등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일반노조가 회사의 대리인 같다는 제 생각이 착각이길 바라요.” -‘박창진 개인’의 목표와 ‘사회적 박창진’의 목표는 각각 무엇인가요. “‘개인 박창진’이라고 하니 좀 울컥하네요. 전 원래 미술관이나 전시회 가는 걸 좋아하고 서점에서 책 보는 것도 좋아해요. 흥이 많은 사람이죠. 그런데 사건 이후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시간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시선 때문에 행동이 위축되기도 해요. 이젠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동시에 계속 목소리를 낼 거예요. 제가 나서서 얘기하는 게 효과적이라면 기꺼이 할 거고요. 저 같은 피해자는 없어야죠.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면 어떤 행동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 늦은 밤, 박 전 사무장이 메시지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의 한국어와 영어 시험 성적을 공유하는 이메일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한 직원이 우연히 자신에게 잘못 수신된 메일을 받았고 이 사실을 박 전 사무장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그는 “제 방송 낭독 점수를 임원들끼리 수시로 돌려 보면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왜 우연인 것처럼 아무 상관없는 일반 회사 사람들에게도 흘리는 걸까요. 이런 게 광범위한 의미의 직장 내 괴롭힘이자 2차 가해 아닐까요”라며 반문했다. 박 전 사무장은 이날도 갑자기 변경된 바로 다음날의 비행 스케줄을 통보받았다. 승무원 박창진의 일상에는 한 번도 견디기 힘든 우연들이 여전히 자주 반복되고 있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국내 환경산업 메카 ‘환경산업연구단지’

    국내 환경산업 메카 ‘환경산업연구단지’

    2017년 7월 인천 서구에 조성된 환경산업연구단지가 환경산업 육성 및 창업 생태계 거점으로 연착륙하고 있다.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올해 환경산업연구단지 입주기업을 80곳으로 늘리고 일자리 100개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17일 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환경산업연구단지는 국내 최초 환경기업의 실증 연구 지원을 위해 설립됐는 데 올해 1월 현재 59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서는 연구와 실험, 시제품 생산 시설을 갖춰 기술개발에서 사업화, 수출까지 전 과정 지원이 가능하다. 특히 물과 대기 등 환경 전 분야의 실증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파일럿 테스트동과 테스트 베드를 구축하고 있다. 2018년 상반기 기준 일반 기업과 벤처·창업(새싹) 기업의 평균 매출은 각각 78억 4000만원, 3억 8000만원으로 입주 전 실적대비 각각 55%, 13% 상승했다. 연구단지는 입주기업에 대한 종합지원 기능 확대를 위해 변리사·회계사 등이 참여한 외부 전문가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48건의 상담 및 특허연계 연구개발을 통해 10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특히 환경부·인천시 등 20개 유관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실증실험·투자·보증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중국·베트남 등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 중인 해외환경센터 등을 활용해 해외 정보와 전시회 참여, 통·번역 사업도 진행한다. 환경산업연구단지 입주 정보 등은 누리집(www.etechhiv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광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환경분야 창업 희망자뿐 아니라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환경강소기업도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연구단지가 중심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북한 전쟁고아 기록정리가 남은 일…더 늦기 전에 끝내야”

    ‘독일서 韓문화재 발굴’ 김영자 박사가 말하는 ‘북한 전쟁고아’“한반도 현대사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픔, 잊혀진 이들이 있다. 바로 북한의 전쟁고아야. 남편이 먼저 시작한 일인데 요즘은 그게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6·25 한국전쟁에서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전쟁고아가 많이 발생했지. 이들이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하룻밤 새 갑자기 싹 사라졌거든. 이들에 대한 기록 정리가 여생의 일이 됐어.” 독일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 발굴과 보존의 중심에 섰던 베커스 김영자(80) 박사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청했더니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 박사는 “서울 지리를 잘 몰라 다른 곳은 잘 찾아갈 수 없어. 그런데 민속박물관은 찾아갈 수 있어.”라며 “1층 안쪽 커피숍에서 만나자.”라고 했다. 독일에서 50년째 사는 그가 박물관 1층에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의 이력대로 문화재에 조예가 깊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민속박물관을 찾나 생각하고 설날 연휴인 지난 2일 약속 장소로 갔다.(※독일로 먼저 돌아간 남편이 북한 전쟁고아 사진을 보내주기까지 기사 발행이 미뤄졌다.) “체코의 北전쟁고아, 남편이 먼저 발굴60여명 작은 궁전서 5년간 위탁교육한국 모르는 남편 탓에 이 일에 빠져”‘요즘 어떻게 지내시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김 박사는 “나이가 이제 80인데 쉬어야지.”라며 잠시 뜸을 들였다. “남편(베커스 크리스토퍼·76)이 2015년 봄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체코의 어느 제후 궁전에서 북한 고아들이 1953~1958년까지 살았다는 기사를 읽은 거야. 아내의 조국 ‘코리아’라는 단어가 등장하니 솔깃했던 가봐. 남편이 당장에 차를 몰고 달려가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대. 60년이 훌쩍 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기숙사 사감을 지냈다는 여성을 만났다고 해. 요양병원에 있는 그 여성이 나이가 많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 정도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남편이 그 여성이 돌보고 교육했던 북한 고아들의 사진과 앨범, 이들이 돌아가서 그녀에게 보낸 엽서 등을 전달받았거든. 이 여성이 돌아가신다면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도 그냥 재로 사라질뻔한 것이지. 그런데 남편이 한국말과 한국 사정을 잘 몰라 한계가 있으니, 내가 이 일에 끌려들어 간 거지.” “北전쟁고아 1958년 하룻밤에 귀국가서 ‘보고싶어’ ‘그곳이 천국’ 편지도1962년 이후엔 서신 왕래도 뚝 끊겨” 팔순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발음은 또랑또랑했고, 말은 박력이 있었고 빨랐다. 기억은 엊그제 한 일처럼 생생했다. 그러더니 대뜸 김 박사가 “남한에선 북한 전쟁고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북한 전쟁고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잘 모르고 있다.”라고 답했다. 사실 기자도 수년 전 여자배우 추상미가 감독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을 다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한국 기자들이 우리 집에 많이 왔었어. 그때마다 남편이 북한 고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기자들이 ‘네, 네.’라고 대답했지. 그런데 기사는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남편도 거의 포기했어.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도 있고 해서인지 한국에선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 북한 고아 문제는 외국에서 더 관심이 있었어. 폴란드에서 북한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 영화 ‘김귀덕(Kim Ki Dok)’이 2006년도에 먼저 제작됐거든.” 영화 ‘김귀덕’은 폴란드에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걸 파버릴까 하다 동양인 무덤이 여기에 왜 있지 하고 조사를 하다 보니 북한 전쟁고아였다는 이야기다. ‘김귀덕’은 유튜브로 검색하니 나왔지만, 한글이나 영어 자막이 달려있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체코에 있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했다.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인 발리치(Valec Valech)에 북한 고아 60여명이 위탁 교육을 받았어. 이 궁전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공공건물로, 보육원으로 쓰였거든. 전쟁고아를 남쪽 한국에선 나쁘게 말하면 선진국에 팔았지만, 북한에선 우방인 동유럽 국가에 위탁교육을 했던 거야. 최근에 한국 PD 한 사람이 취재차 왔었어. 이 궁전에 전쟁고아들이 있었다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궁전 정원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벨리스크에 전쟁고아들이 위험하게도 올라가 영문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게 있거든. 글자가 많이 부식되고 상하고 있어 언제 없어질지 모르니 빨리 보존 조치를 취해야 해.” “北전쟁고아,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들 북한서 어떻게 됐는지 문득 생각위탁 부모도 고령, 구술 정리도 시급” 김 박사의 설명은 계속됐다. 전쟁 직후 여력이 없던 북한은 1951년부터 전쟁고아들은 체코를 비롯해 구동독,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으로 위탁교육 명목으로 보냈다. 정확한 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북한 전쟁고아는 몇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958년 어느 날 김일성의 명령에 의해 북한 고아들이 어느 날 싹 귀국했어. 주위 사람들도 모르게 밤새 다 데려갔다고 해. 정성 들여 애들을 교육하고 돌본 엄마들은 ‘지금도 보고 싶어서 운다.’라고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서 ‘엄마, 보고 싶어요.’, ‘그곳이 천국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엽서를 보냈지. 1962년 이후 편지 왕래마저 끊겼고, 그리곤 사라진 거지. 북한 전쟁고아들을 돌봤던 이들이 아주 고령이지. 더 늦기 전에 이들로부터 구술받지 않으면 전쟁고아의 기록은 사라질 수 있어.”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대개 6~12살쯤 되어 동유럽에 와서 몇 년 살았어. 돌아갈 때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가량 됐고, 유럽 문화를 알고, 한창 정이 들 무렵이었지. 그때 동유럽이 사회주의 체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북한보다는 자유스럽고, 풍족했지.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수용소로 끌려가서 자유스럽지도 못하고 혹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돼. 북한에서 적응을 잘한 아이들은 동유럽 언어가 되니 고급 인력으로, 외교관으로 살아남았을 거야. 북한 전쟁고아들의 나이가 내 또래여서 더 동질감이랄까 연민이 느껴져.” “발리치 궁박물관장이 전시실 한 두 개를 내줄 테니 한국관 전시실로 꾸미라고 우리한테 제안했어. 이 궁전이 1976년 화재로 불탔는데, 문화유산이어서 EU가 겉모습은 복원해 줬거든. 내부는 아직 텅텅 비어 있어서 주로 콘서트나 미술관으로 이용해. 여기에 ‘당시 아이들이 입었던 옷, 당시 영상물, 동요 등을 전시하면 좋겠다.’라고 나랑 남편이 이야기하지. 전시관 기획 잘해서 신청하면 (발리치궁이) 자국 문화재청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더라.” 김 박사 부부의 집에서 발리치까지는 차로 3~4시간 거리여서 체코 문화와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이 종종 놀러 간다고 했다.“1968년 장학금 받는다는 말에 獨유학레겐스부르크大 한국어문화 강좌 맡아직접 쓴 문법책 기초한국어 인기 여전” 베커스 김영자 박사는 어떻게 독일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193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그는 꽃다운 25살 때인 1965년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년 장학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신부님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땐 외국 나간다는 말에 무조건 좋았거든. 처음 수녀원에 도착해서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 말이 안 통하니 많이 울었지. 뮌헨대학에 서양사와 독문학을 전공하고, 레겐스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서양사를 전공했지. 건축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1975년에 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 1979년부터 레겐스부르크 시립박물관의 학예사로 근무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그때부터 한국과의 인연이 깊어졌지. 그러다 모교에 한국어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교수가 된 거야. 1987년부터 정년퇴직한 2005년 9월까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쳤지. 자매결연을 한 동국대에 독일 학생들을 보내 문화교류도 시키고 했어. 동국대가 독일 대학과 자매결연을 한 첫 한국의 대학일 거야.” 그가 사는 레겐스부르크는 뭔헨에서 동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맡을 사람으로 내가 뽑힐 때 독일어와 한국어가 되니, 한국사람이 한국어 가르치는 것을 처음엔 아주 쉽게 생각했어. 그런데 말은 잘해도 한국 문법을 모르니, 독일 학생들은 문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이 안 되면 이해는커녕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아. 얼마나 깐깐하고, 황당한 질문이 많이 날아들었는지. 한국에 들어와 시중의 문법책을 다 보고, 한국어학당을 다 가봤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 오죽 답답했으면 교육부에 들어가 ‘제대로 된 문법책 하나 내 놓으라.’라고 닦달했을까. 나중에 고등학교 국어 문법책을 하나 구해, 문법을 연구하면서 ‘기초한국어’를 썼어. 여전히 인기 좋아 지금도 잘 팔리고 있어. 한국으로 발령나서 가는 독일 외교관들이 ‘이 책을 들고가면 걱정이 없다.’라고 할 정도야. 한국어의 심화 과정과 한국 문화까지 소개하는 ‘한국어 플러스’도 냈어.” ‘삼국유사’ 독일어 번역…도서전서 호평“韓정체성 보여주는 역사책 내고파 번역” ‘삼국유사(국보 306호)를 독일어로 번역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김 박사는 그 뒷이야기부터 꺼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한국의 해’여서 삼국유사를 번역해 내겠다고 했더니 한국문학번역원이 글쎄, ‘삼국유사는 문학이 아닌 역사’여서 지원금 지원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이런 소식을 들었던 당시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 주지가 백방으로 뛰고 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하니 지원금이 나왔지. 당시 문학 100선이었는데 삼국유사가 더 들어가는 바람에 101선이 됐지. 출판기념회를 도서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문학번역원조차도 ‘선생님 번역 책이 최고.’라고 했지. 유럽에선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덜 알려진 게 아쉬웠는데, 한국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역사책을 유럽에 내보이고 싶었거든. 그게 번역에 나서게 된 계기였어.” 국립민속박물관이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도 나왔다. 김 박사가 한국에서 가장 자신 있게 잘 아는 곳이기에 그렇다. 1906년 한국을 방문해 기록 사진을 남긴 독일군 장교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 대위의 사진 기증전시회가 2006년 4월 여기서 열렸다. 당시 김 박사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문서와 관련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해 줬다. 또 2008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유물 전시회가 민속박물관에서 열릴 때도 김 박사가 깊이 관여했다. 그가 유럽에서 수십년간 수집한 근대조선 사료를 고스란히 민속박물관에 기증했고, 베를린 등 유럽 골동품 가게나 벼룩시장 등에서 취미로 사모았던 인형 600여점을 2009년 기탁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독일 문화재를 발굴해 정리할 때 민속박물관 학예사들의 도움도 컸다. “겸재 금강산 화첩 발견도 드라마틱수도원 ‘한국에 귀한 것…팔 수 없어’왜관수도원에 영구임대 형식 반환돼”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녀가 1999년 번역한 ‘수도사와 금강산’(노르베르트 베버 지음)을 꼽았다. “이 책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조선시대 미술사를 다시 쓰게 했거든.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장을 지낸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년)는 1925년부터 4개월간 선교차 방한해 금강산을 돌아보고 가면서 ‘금강산을 잘 그린 그림을 하나 사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금강산 등정에 동행한 독일인 헹켈이 나한테 선물을 했다. 수도원 박물관에 두었다.’라는 기록만 남겼지. 어디에서 어떻게 샀다는 말은 남기지 않았어. 어쩌면 이 선물이 금강산 화첩이었는지도 몰라. 그리곤 아프리카 선교를 가서, 그곳에서 선종하셨거든. 그러면서 그림이 책에 실렸어. 원서에 실린 이 그림을 본 한국의 한 미술사학자가 수도원에 편지를 써서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이 있느냐.’라고 하니 당시 수도원장은 ‘모른다.’라고 딱 잡아뗐다는 이야기 전해. 수년이 흘러, 그런데도 아주 이상하니 국립박물관 학예관 한 명이 직접 가서 보겠다며 수도원을 방문한 거야. 그리고 갔더니 직사광선을 받는 곳에서 그림이 빛바랜 채 다 죽어가고 있는 걸 본거야. 이 학예관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본 박물관 신부님이 ‘우리 이런 것 또 있어’하면서 두 폭의 그림을 더 갖고 나왔던 거야. 또다시 놀라자 이번에는 소장한 그림을 모두 갖고 보여준 거야. 이게 모두 21첩,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된 거지. 발견 과정이 드라마틱해.” “이 그림들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국보급 문화재 반환의 모범 사례지. 이 그림의 존재와 가치가 알려지면서 소더비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 회사들이 수도원에 그림을 팔라고, 그 비용으로 선교사업에 쓰라고 했어. 그렇지만, 예레미아스 슈뢰더 수도원 대원장이 ‘한국에 그렇게 귀한 것이라면 팔 수 없어. 돌려줄 거야.’라고 결심하고 자매관계인 경북 칠곡군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국가에는 주지 마라.’는 단서로 영구임대하지. 난 반환된 겸재 화첩을 한국에서 보려고 겨우 날짜를 잡고 방문하기 1주일 전, 왜관수도원에 큰 불이 났어. 그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지. 수도원이 거의 몽땅 다 불타버렸지. 다행히도 화첩은 다른 곳에 보관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거야. 이런 보관의 이유로 반환된 겸재 정선의 금강산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거지.” “韓근대복식 300벌 한꺼번에 나와불상·곤여전도 등 1200여점 보관유럽 최대 한국 유물 소장 박물관”김 박사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는 대학을 정년한 2005년부터 10년간 자원봉사직 학예사로 근무했다.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한국 유물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디다. 박물관에 가보니 조선시대 갑옷에 일본 사무라이 투구를 씌워 전시해 일본 유물로 착각하게 된 게 많았어. 설명도 엉터리가 부지기수였고. 동양관에는 한국·일본·중국 유물이 뒤섞여 있었던 거지. 선교박물관의 전시품 80%는 아프리카 것이었고, 나머지는 동양 3국의 유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뒤섞여 있는 거야. 나 혼자 어찌할 수도 없고 해서 민속박물관에 요청하니 학예사 4명이 3주간 파견 나왔지. 우리 다섯이 먼지 속에서 정리했지. 전시실을 정리하니 한국 유물 540점이 나왔지. 다음해에는 지하실 창고를 뒤지니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쳐진 곳에서 한국 유물이 수두룩하게 나왔어. 17세기 불상과 1869년의 곤여전도(坤輿全圖·세계지도) 등 모두 1200여 점이나 됐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2016년 한국관을 별도로 재개관한 거야.” “하루는 수사님이 불러서 수도원에 갔더니 함을 하나 보여주는 거야. 열어보니 좀벌레가 휙 하고 지나가. 신랑 저고리, 신부 치마를 비롯한 근대 복식 300여벌이 나왔어. 전문가도 아니고, 정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알고 지내던 조우현 교수(성균관대 복식과)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했어. ‘비행기 비용도, 작업비도 못 준다. 그래도 숙식은 제공해 줄 테니 와서 도와다오.’라고 부탁했지. 그가 조교 두 명을 데리고 와서 2주 동안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정리해 주고 갔지. 이게 1920년대 복식인데 보기보다 귀한 거야. 우리 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옷을 불태우는 관습이 있어서 근대 복식이 예상외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야. 문화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진 국립민속박물관·서울시립역사박물관의 학예사들과 국외소재문화재단, 문화유산회복재단, 재정 지원을 해준 문화재청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야. 감사할 따름이죠.”“내 나이 팔순, 사명감 있는 후배 나서야” “무보수로 선교박물관에서 일할 때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이 있었어. 훼손되는 귀중한 한국 유물을 복원하려고 독일과 한국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정말 동분서주했거든. 이젠 후배들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한독 문화교류의 지식과 기반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자기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김 박사의 백발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지훈 측 “윤호연 아나운서와 열애 아냐..친한 사이일 뿐”

    김지훈 측 “윤호연 아나운서와 열애 아냐..친한 사이일 뿐”

    김지훈이 윤호연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을 부인했다. 15일 배우 김지훈 소속사 측은 “윤호연 아나운서와 친한 사이일 뿐 열애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이날 한 매체는 김지훈과 윤호연이 최근 설날을 맞이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 등 사랑을 키워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두 사람의 SNS에는 같은 장소에서 찍힌 사진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제주도에서 만난 건 사실”이라면서도 “당시 연락이 닿아 우연히 만났고 전시회를 함께 보러 갔다. 둘만 간 건 아니고 다른 일행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지훈은 TV조선 드라마‘바벨’에 출연하고 있다. 윤호연은 SBS CNBC에서 ‘생생경제 정보톡톡’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ICT가 이끄는 새로운 변화, ‘월드IT쇼’에서 만난다

    ICT가 이끄는 새로운 변화, ‘월드IT쇼’에서 만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성윤모)가 후원하는 ‘월드IT쇼 2019’가 오는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간 서울 코엑스(A, C, D Hall)에서 개최된다. 월드IT쇼는 빠르게 성장하는 글로벌 ICT 시장의 기술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수많은 국내외 ICT 관련 기업들이 최신 기술력을 뽐내는 경연장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드IT쇼는 지난 2008년부터 시작해 올해 12회째를 맞는 ICT분야 B2B 종합 전시회로써, 국내외 ICT 기업들이 매년 산업 간 영역을 넘나드는 혁신적 기술과 제품 등을 선보이고 있으며, 참가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오고 있다. 2018년에는 전 세계 30개국, 500여 기업들이 1,500 부스 규모로 참가했으며, 26개국 해외 바이어들이 행사 기간 중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월드IT쇼 참가기업들과 1,230만 불 규모의 비즈니스 성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월드IT쇼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의 해외시장 진출 플랫폼으로 기여해오고 있다. 올해 ‘월드IT쇼 2019’는 ‘Smart Innovation’을 주제로, 국내외 ICT 기업들과 자율주행 등 다양한 IT융합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들이 다수 참가한다. 주요 전시 참가분야는 ▲ICT 디바이스, ▲소프트웨어(SW)/컴퓨팅, ▲디지털콘텐츠/스마트 미디어, ▲융합서비스, ▲모바일과 커뮤니케이션 ▲가전 및 홈 어플라이언스로 구성될 예정이다. 특히 2019년 CES에서 산업 Key 이슈로 주목 받고 있는 인공지능(AI)과 최첨단 5G 서비스 및 사물인터넷(IoT)기술, 증강/가상현실(AR/VR), 자율주행기술, 스마트 시티&스마트 그리드, 스마트 헬스와 블록체인 기술 분야 등에서 다양한 신제품 및 비즈니스 모델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월드IT쇼 2019’ 사무국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 따르면, 올해 행사의 핵심으로 참가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B2B적 성격을 대폭 강화하고, 다양한 부대행사들을 통해 ICT 분야별 최신 트렌드를 공유하며, 국내외 기업 및 종사자간 협력 도모의 장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가기업들이 선호하는 바이어들을 초청해, 해외시장 공략을 돕는 한국무역협회 주관의 ‘글로벌 ICT 빅바이어 수출상담회’는 물론, 중/소 벤처 참가기업의 혁신기술을 발굴해 알리는 ‘2019 신제품/신기술발표회’와 ‘기술이전 상담회’ 등 참가기업을 위한 실효적 비즈니스 행사가 준비된다. 더불어 최신 ICT 기술동향을 소개하는 컨퍼런스/포럼/세미나 등도 다양하게 준비 중이다. 국내외 ICT분야 저명인사 등을 초빙해 최신 ICT기술 트렌드를 공유하고, 유관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2019 글로벌 ICT 트렌드 인사이트 컨퍼런스’를 필두로, ‘ICT 빅바이어 해외진출전략 세미나’ 등도 개최될 예정이다. 한편 ICT분야 교과과정과 산학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ICT 미래인재포럼’과 참가기업(기관)의 사업 분야별 기술이전, 공동연구/협업 등을 지원하는 ‘ICT기술사업화 페스티벌’ 등이 전시회 동시 행사로 개최될 예정이다. 특히 올해에는 중소벤처/스타트업 참가사들을 대상으로 사전 마케팅 지원 프로그램인 ‘월드IT쇼 16강 스타(기업)를 찾아라’(가칭)를 준비하는 등 풍성한 볼거리와 더불어 참가기업들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광장] 자율주행기반 미래서울교통 원년의 해/박근수 서울시 보행친화기획관

    [자치광장] 자율주행기반 미래서울교통 원년의 해/박근수 서울시 보행친화기획관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CES) 2019가 개최됐다. CES는 52년 전 미국 가전업체 100여곳이 참가한 조촐한 전시회로 시작했지만 컴퓨터 마우스, CD, DVD, 3D프린터 등이 이곳에서 신고식을 치르며 지금은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로 자리잡았다. 이런 CES의 최근 별칭은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다. 세계적인 완성차 기업뿐 아니라 IT전자기업이 자율주행 등 미래자동차 기술을 앞다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자율주행이 무인운전 개념을 넘어 도시 공간과 우리의 삶을 바꾸는 핵심 기술이자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세계 최초 5G 융합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를 6월 상암에 개관, 올해를 자율주행 기반 미래 서울교통 원년으로 만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공공 테스트베드로 기획해 국내 자율주행 업계의 세계 시장 진출을 앞당기는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테스트베드 내 모든 장비와 편의시설을 국내 업계에 24시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도 신청해 상암을 자율주행기반 스마트도시 특구로 조성한다. 승인되면 규제 적용을 유예 내지 면제받아 관련 업계가 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 테스트베드 구축과 함께 커넥티드카 기술을 고도화해 교통안전을 강화한다. 버스운행 관리시스템, 교통카드,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과 5G, 차량사물간통신기술 등을 집약한 ‘올인원 플랫폼’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10월부터 버스에 시범 적용한다.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에는 택시에도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시범 적용하고 내비게이션으로 시민들이 직접 커넥티드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시민 삶 속에 서울 미래교통이 녹아들 수 있도록 첨단 기술을 시연하고 청사진을 공유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6월 중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하고 자율주행 페스티벌도 연다. 차세대 먹거리 산업의 주역이 될 미래세대가 교통 신기술을 체험하며 꿈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년을 미래 서울교통의 원년으로 삼아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등의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교통안전을 혁신해 나간다는 서울시의 포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규제 완화라는 훈풍을 희망해 본다.
  •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노동 인권·민주화 등 현대사 질곡 관통 ‘세상 속 교회’ 기치로 민주적 가치 실현 분열된 사회, 자비·사랑으로 포용 실천 선종 후 ‘바보 정신’ 재단 통해 유지 이어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여야 4당이 문제 발언을 한 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그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발언이라지만 민주화운동 폄훼와 왜곡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5·18 민주화운동을 놓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어디 5·18 민주화운동뿐인가. 김 추기경은 생전 약자 편에 선 채 불의에 강하게 맞선 쓴소리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일부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 추기경을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16일은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 그날을 중심으로 추기경의 사랑과 배려 정신을 되새겨 실천으로 옮기자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모 미사(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추모 사진전(23일까지 명동성당 지하 1898광장), 유품 전시회(16일~6월 20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기념 음악회(18일 오후 8시 명동성당),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토크콘서트(17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그런데 이어지는 그 추모의 몸짓들이 요란하지 않다. 천주교의 최대 지도자, 시대의 사표, 민족의 양심…. 그 막중한 수식어들만 보더라도 성대한 행사가 있을 법한데 영 딴판이다. 그 조용하고 잔잔한 추모 열기를 놓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들은 귀띔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무려 8배 넘게 교세가 불어났다. 그 종교적 위업에서 비롯된 존경과 추모만일까. 김 추기경의 어록을 다시 뒤져 보았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 미사), “항상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추기경이란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 퇴임 소견)김 추기경은 그랬다.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기꺼이 서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각 개인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인권과 노동, 생명 사랑의 족적은 너무 혁혁하다. 경제성장이 지상의 과제였던 1960, 1970년대 추기경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1967년 5월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조원 해고 사태 당시 김 추기경의 건의에 따라 주교회의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교단 공동 성명서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유사한 노동 탄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기경은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 서울 상계동 철거 사태 등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철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무렵 추기경은 스스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접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정부의 정책이 빈민을 양산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지금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바로 그 추기경의 의지를 담아 탄생한 단체다. 그렇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신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한가운데서 뚫고 나갔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명당성당에 들어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던진 말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그런가 하면 1971년 12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선 이렇게 소리쳤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또 1972년 10월 유신 개헌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곤 큰소리로 외쳤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랬던 추기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기도를 남겼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면서 ‘밥이 되고 싶다’고 외쳤던 김 추기경의 아호는 옹기다.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는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웃었던 추기경의 유지와 정신을 이은 사랑과 봉사의 물결은 추기경 선종 이후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박신언 몬시뇰이 설립을 건의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털어 2002년 설립된 옹기장학회와 김 추기경의 바보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설립된 (재)바보의나눔은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포용하려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옹기장학회는 통일 이후 북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 양성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현재 북한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놓고 있다. (재)바보의나눔은 종교와 지역, 계층을 초월해 국내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원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돌봄이 필요한 노인, 편견에 휘청이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돕고 있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이다. 물신주의 팽배와 경쟁 심화,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 어두운 모습 탓에 김 추기경이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좋은 집들이 많네

    좋은 집들이 많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건축자재 전시회 ‘2019 하우징브랜드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행사는 오는 17일까지 진행된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게임인가 마켓인가, 지금까지 이런 컬래버는 없었다

    게임인가 마켓인가, 지금까지 이런 컬래버는 없었다

    홍대 골목길 복고 매장에 9일간만 운영 방문객, 메신저·게임하듯 제품에 친근감 비티·신디 등 귀엽게 변신한 게임 캐릭터 편의점·영화관·키즈카페 등 다양한 제휴 키덜트 문화 타고 年20조 시장 경쟁 가세“저 소주잔 살까.” “그걸 어디에 써. 마시지도 못하는데….” “ㅋㅋㅋ 그래도 예쁘잖아.” “예쁘긴 이 인형이 예쁘지~.” 14일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시간 분홍색으로 벽을 칠한 좁은 가게에 들른 학생들이 상품을 둘러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옛날 동네 점방처럼 카운터가 있는 한쪽 벽면을 뺀 3개의 벽면을 빙 두른 좌판과 선반에 가방에 매다는 인형, 텀블러, 노트와 펜 같은 학용품, 스티커 등이 빼곡하게 채워진 가게는 ‘스푼즈마켓’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스푼즈(Spoonz)는 게임 회사인 엔씨소프트의(엔씨) 캐릭터 브랜드로 각종 제품을 선보이는 ‘스푼즈마켓’은 지난 9일 개점해 17일까지만 운영되는 팝업숍이다.가게도, 제품도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었지만 기자가 머문 20여분 동안 스푼즈마을 찾은 5~6개 일행은 마치 메신저나 게임에 접속한 것처럼 움직였다. 그저 지나가다 들른 이들도 있지만, 홍대 대로변도 아닌 골목에 위치한 이곳을 찾은 이들 대부분은 9일 동안의 짧은 운영기간에 맞춰 주로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제품을 실제로 만져보고 사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가게에 들어선 뒤엔 목적의식은 옅어졌다. 원래 사려던 게 아닌 다른 제품을 기웃거리고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그러다 제품을 사거나 구경만 하고는 빠져나갔다. 할 말이 있어서 메신저 대화창을 열었다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끄적이다 특별한 결론도 없이 대화창을 닫는 것처럼 말이다. ‘큰 목적 없는 즐거운’ 팝업 스토어를 통해 스푼즈를 선보이고 있지만, 엔씨는 철저한 기획을 거쳐 스푼즈를 출시했다. 엔씨 내 UX디자인실이 엔씨의 히트 게임인 블레이드앤소울과 아이온의 괴물·괴수·요정 캐릭터에서 영감을 얻어 비티, 신디, 디아볼, 핑, 슬라임 등 5개 캐릭터를 만들었다. 다소 험악하고 괴기스러운 면모를 지닌 게임 속 원작 캐릭터가 쉽게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귀엽고 무해(無害)한 이미지의 캐릭터다.일단 귀엽게 변모한 캐릭터는 제휴(컬래버레이션)할 곳이 많다. 탄생한 지 1년도 안 된 스푼즈 캐릭터 역시 다른 사업과 다양한 분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과 손잡고 만든 ‘스푼즈 크림모찌’는 지난해 5월 이 편의점 디저트 카테고리에서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6월엔 롯데시네마 모바일 앱에 스푼즈 캐릭터가 등장하는 ‘올라올라 스푼즈’가 출시됐다. 스푼즈 캐릭터 ‘신디’를 좌우 버튼으로 조작해 창문 틀을 밟고 롯데시네마 영화관 건물을 타고 올라가며 점수를 얻는 게임이다. 엔씨는 나아가 스푼즈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2048 스위츠 스타’를 지난해 8월 독일 쾰른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게임전시회 ‘2018 게임스컴’에 선보였다.스푼즈의 오프라인 진출은 지난해 겨울부터 활발해지고 있다. 엔씨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 7층에 미니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엔씨는 또 지난달 메가박스와 손잡고 디지털을 접목한 놀이 공간인 ‘타이니 키즈카페’를 열었다. 경쟁사인 넥슨에 비해 엔씨는 게임 외 사업 분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왔다. 그래서 게임 출시보다 캐릭터 사업을 먼저 키운 형태로 진행되는 스푼즈는 엔씨의 이례적인 외도로 읽힌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메신저 캐릭터인 라인프렌즈와 카카오프렌즈의 성공이 자극제가 됐다. 메신저 라인 스티커에서 출발한 라인프렌즈는 2015년 1월 독립 법인으로 분사한 뒤 서울·뉴욕·상하이·베이징·홍콩·도쿄 등 전 세계 11개국에 132개 매장을 둘 정도로 성장했다. 브라운, 초코, 코니, 샐리 캐릭터가 주축이고 방탄소년단과 함께 개발한 BT21 등으로 라인업을 학대하고 있다.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IX의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도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 2개 매장을 열었을 때 개장 첫날 2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고 한 달 동안 두 개 매장에 35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라인프렌즈와 카카오프렌즈의 성공으로 K캐릭터 산업이 주목받았는데,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은 2011년 7조 2000억원이던 캐릭터 산업 매출 규모가 2015년 20조 800억원으로 증가했다고 집계한 바 있다.캐릭터 산업이 사회 변화, 이에 따른 게임산업 변화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콘진의 위탁을 받은 세종대 산학협력단은 지난해 8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1인 가구 확산과 노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키덜트 콘텐츠 대상과 정서적인 애정 관계를 형성해 삶의 만족을 추구하려는 ‘키덜트 문화’를 형성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이 보고서는 “국내 캐릭터의 독자적 성장은 어려운 환경”이라면서 “국내 키덜트 캐릭터 성공 사례는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로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업체 엔씨의 시도가 키덜트 캐릭터의 또 다른 성공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계명문화대 중장년기술창업센터 입주기업, 해외전시회 프로그램’에 선정

    계명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 중장년기술창업센터 입주 기업들이 창업진흥원이 지원하는‘2018년 중장년창업기업 해외전시)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3월 1일부터 4일까지 중국 상해에서 개최되는‘2018년 중장년 창업기업 해외전시회’는 중국 화동지역 최대 규모이고, 행사거래금액이 큰 B2B 성격의 전시회로 운영된다. 미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 18개 국가에서 일상 소비품, 섬유, 의류 등 종합소비재 품목을 전시하며 4만여명이 참관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시장 판로개척 및 수출확대 등 중장년 창업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며, 선정된 중장년 기업은 전시회 참가비 전액, 전시제품 물류, 항공·숙박비가 50% 지원된다. 이번 지원은 전국 25개 중장년기술창업센터 745개 입주 및 졸업기업 중 10개 기업에게만 지원되며, 계명문화대학교 중장년 기술창업센터에서는 화장품 제조회사인 ㈜와이드오션(대표이사 서문지)과 휴대용온수매트, 온수보일러 제조회사인 ㈜초송(대표이사 신기언) 등 2개의 기업이 선정돼 지원을 받게 됐다. 김윤갑 계명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장은“2019년에도 계명문화 중장년 기술창업센터는 창업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창업지원시책을 아낌 없이 지원하여 중장년 창업이 일자리 창출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2016년 중소기업청 공모에 선정돼 개소한 계명문화 중장년 기술창업센터는 계명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제조업과 지식서비스업 기술창업 분야에서 중장년 기술창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경기도, 3.1절·임정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3개 분야 10개사업

    경기도, 3.1절·임정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3개 분야 10개사업

    경기도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올해 ‘백년의 역사에서 천년의 미래로’를 주제로 각 시·군과 함께 다양한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14일 도에 따르면 도와 각 시군은 올해 기념·기억, 성찰·발전, 포용·미래 3개 분야로 나눠 10여 가지의 기념사업 및 행사를 추진한다. 우선 기념·기억 분야로 ▲시군과 함께하는 100주년 기념사업 ▲경기도박물관 독립운동가 특별전시 ▲100주년 기념 문화공연 ▲항일운동 문화유산조사 및 항일유적 안내판 등 설치 ▲3·1운동 100주년 기념 민속경기 ▲경기도 3·1운동 기념 웹 모바일 동영상 제작 등 6가지 사업이 펼쳐진다. 시군과 함께 하는 기념사업으로는 21개 시군의 29개 사업을 선정했으며, 지난해 29개 시군 62곳에 이어 올해 65곳의 항일운동유적지 안내판과 표지판을 설치한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독립운동가 특별전시회 ‘동무들아! 이날을 기억하느냐(가제)’는 3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이어지며, 독립운동 관련 자료와 사진 등 100여점이 전시된다. 성찰·발전 분야에 행사로는 ▲경기도의 재외 항일운동가, 3·1운동 관련 책자 발간 ▲ 공모를 통한 다양한 민간 기념사업 등이 추진된다. 포용·미래분야에서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위대한 여정’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테마관광 코스개발 등을 추진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행사로,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그동안 소외됐던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초청하는 기획 행사이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쿠바 등에 거주하는 국외 독립유공자 후손 100여명이 초청될 예정이며, 이들은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진행되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공연도 펼칠 계획이다. 이같은 다양한 기념 사업에 도는 43억원을 투입한다. 오후석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을 단순한 기념식에 머물지 않고 1년 내내 도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면서 “경기도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기념사업을 통해 도민의 역사의식과 자부심을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광명시 100인 위원’ 위촉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광명시 100인 위원’ 위촉 3·1운동·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경기 광명시가 ‘광명시 100인 위원’을 위촉하고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한다고 14일 밝혔다. ‘100인위원회’는 세대별로 어린이 33인과 청소년 33인, 성인 34인 등 모두 100인으로 이뤄졌다. 성인 위원은 광복회 회원 11인과 일반 시민 신청자 18인, 시민단체 및 탈북인과 농민 등 5인으로 구성됐다. 아동 위원은 초등교재학 중인 3학년 이상으로 선발했고, 청소년 위원 33인은 광명시청소년재단에서 추진하는 ‘33인 청소년, 100일간의 여정 프로젝트’ 역사기행 프로그램을 위해 공개 모집된 청소년으로 선발했다. 시는 강연회와 영화상영, 전시회 개최 등 전 시민이 동참하는 시민참여형 사업 중심으로 다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3월1일 기념사업 추진 100인 위원과 광복회 회원 등 시민과 함께 온신초등학교에서 3·1절 기념행사를 치른다. 이후 광명사거리역에서 시민회관까지 만세제창 가두행진을 벌이고 시민회관에서 3·1절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박승원 시장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를 ‘역사의 해’로 지정하고 근현대사 100년 역사를 인문학 강의와 뮤지컬·영화·음악회 등 다양하게 공부하는 해로 삼고 싶다”며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있다면 바로잡고 일제 잔재들을 청산하는 원년으로 만들어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100년 역사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화랑 대신 SNS 택한 화백… “돼지 통해 기득권 악덕 풍자”

    화랑 대신 SNS 택한 화백… “돼지 통해 기득권 악덕 풍자”

    “올해 남북관계가 더 무르익고, 서민 행복과 정의사회가 구현되길 바라는 의미로 사회현상을 녹이려 애썼습니다.” 기해년을 맞아 지난 4일부터 황금돼지를 주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풍자 수묵화전’을 열고 있는 정태관(60) 화백은 13일 “몇 년간 틈틈이 사회적 이슈였던 주변 현상들을 묘사해 오다 무술년 개띠이던 지난해 개를 주제로 20점을 그려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며 이렇게 밝혔다. 국내 사회현상을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모습으로 담아 냈다. 12지신상(十二支神像)의 하나인 돼지라는 동물을 인용해 지도자들의 사회적 결함과 악덕, 비뚤어진 상황 등을 비꼬고 오늘날의 사회현상을 꼬집는다. 가로 45㎝, 세로 35㎝ 족자 형태에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최근 목포에서 논란을 일으킨 손혜원 의원과 관련된 ‘목포 기(氣) 대회’는 재미를 준다. 박지원·나경원·손혜원 의원이 서로 끈을 이로 물고 기 싸움을 하는 모습은 최후의 승자는 누구라는 제목으로 그려졌다. 돼지 위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종말도 웃음을 자아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건배를 하는 ‘평화통일의 만찬’, 한라산 백록담에서 두 지도자가 서로 껴안고 있는 ‘한라산의 평화’는 국민 염원을 대신하는 듯하다. 대학에서 민중미술에 심취했던 정 화백은 한국민족미술인협회 목포지부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동안 꾸준하게 생활 주변 모습을 시대상에 비유하는 작업을 펼쳤다. 작업실엔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5·18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폐기물 쓰레기 차량에 버린 모습도 걸려 있다. 2017년 10월엔 세월호 목포 신항 거치 200일을 기록한 관련 수묵화 35점을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정 화백은 “기존 전시회에서 탈피해 미술관을 찾아가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을 살리는 온라인 작품 전시를 계속할 계획이다”며 “앞으로 매년 10년 동안 나머지 동물 하나씩을 작품에 담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현재 목포문화연대 공동대표이기도 한 정 화백은 앞서 박근혜 퇴진 목포운동본부 문화예술 총연출, 세월호 잊지 않기 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상임공동대표 등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무심서가’ 춘강 첫 전시회…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

    ‘무심서가’ 춘강 첫 전시회…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

    “난 서가이지, 서예가 아니다…9살때 훈장 노릇도”한자성경 붓글씨 완서…5000여시간에 130만자 써한자 성경을 붓글씨로 완서한 서가(書家) 서정건(82)의 첫 작품 전시회가 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열린다. 특유의 글씨체와 함께 글에 담긴 그의 마음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주미술관은 다음 달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낙원상가 남쪽 대일빌딩) 2층에서 ‘무심서가 춘강 서정건 선생 초대전’을 연다고 밝혔다. 작가와의 만남은 3월 9일 오후 3시부터다. 석주미술관이 주최하고, 협찬은 ㈜인풍, 후원은 한국미술관과 월간 서예가 맡았다. 전시회에는 춘강이 1992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간 후 27년간 공들여 쓴 작품 2000여점 가운데 300점을 추려 선보인다. 한국 대기업의 기술사 출신인 그가 붓글씨에 도전, 5000여 시간 4년여에 걸쳐 130만 자의 한자 성경을 모두 옮겨썼다. 이와 관련해 서예계 원로 김응현(1927~2007년) 선생은 “글씨를 100만 자쯤 쓰면 당신은 이제 명필이요. 글씨에 통달한 것이지.”라고 했다고 전한다.춘강은 작가의 말에서 “나는 스스로를 서가라고 지칭하지, 서법가(書法家)나 서예가(書藝家) 등의 호칭을 쓰지 않는다.”라며 “(작품을) 아무런 목적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의도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무심서가’라고 한다. 춘강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그의 친구 류성우씨 덕분이다. 2014년 5월 밴쿠버에 왔던 류씨가 그의 작품을 보고 어쩔 것이냐고 묻기에 춘강은 “뒤뜰에 모아 놓고 모두 불태울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에 깜짝 놀란 류씨는 이런 계획을 말리며 그의 작품 일부를 고국으로 가져왔고, 결국 전시에 이르게 되었다. 춘강이 한자성경을 쓰게 된 것은 그가 한문에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네 살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을 배웠고, 7살에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완독했다.”며 “시경과 서경을 공부하다 9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아버지 뒤를 이어 훈장 노릇도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자의 도덕경, 부모은중경, 퇴계선생 언행록, 중용, 율곡선생풍악기 등을 완서하기도 했다.그는 틈틈이 글을 써 책을 낸 것이 20여 권에 이른다. 수필집 ‘물이고 구름이어라’ ‘피리부는 목동’ ‘청강에 배 띄우고’ 등을 냈고, 한국과 중국 고전과 문집 수백편을 번역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한국춘란 무명품 대회 23~24일 경남 합천에서 개최

    한국춘란 무명품 대회 23~24일 경남 합천에서 개최

    경남 합천군은 13일 ‘제1회 한국춘란 무명품(미등록품) 전국대회’를 오는 23~24일 이틀간 합천체육관 일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한국춘란 무명품 전국대회는 한국춘란 미등록품(명명등록 전 한국춘란)을 발굴하고 명품화 하기위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개최하는 행사로 합천군이 주최하고, 합천난우회와 (재)국제난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난을 좋아하는 전국 애란인들이 명품춘란 탄생의 기대와 꿈을 갖고 애지중지 키워온 한국춘란 미등록 작품을 선보인다. 합천군 지역은 한국춘란이 생육하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명품 난이 많이 나오는 한국춘란의 대표적인 자생지로 꼽힌다. 군은 전국 난인의 날 행사를 4차례 개최하고 한국춘란 전시회를 30차례 여는 등 난 관련 행사를 꾸준히 개최하고, 지난해부터 ‘선물용 난 시장개척’을 위해 한국춘란 종묘장 사업을 추진하는 등 한국춘란 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제1회 한국춘란 무명품(미등록품) 전국대회 출품작 접수는 오는 22일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시장안 사무국에서 받는다. 작품 출품은 전국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대회장인 문준희 합천군수는 대회 초대사를 통해 “전국 난 산업 메카인 ‘난향가득 화려한 합천’에서 열리는 한국춘란 전국 전시회가 한국춘란 별들의 대잔치가 되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꽃망울 터지듯 피어난 가슴 속 이야기… ‘순천 소녀시대’의 인생 그림일기

    3년째 평생학습관서 한글 공부 삼매경 거침없는 리얼리즘… 伊·美 등서 전시회“내 친한 친구 백명자는 학교를 다녔지만 배운 티를 안 내고 나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친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는 나와 사귀자고 연애편지를 줬습니다. 나는 친구를 배신할 수 없어 거절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그 친구는 내 남편을 좋아했습니다.” (안안심 할머니·78) 핍진한 묘사에 거리낌이 없다. 50대 후반부터 내일모레면 아흔에 이르기까지, 늦은 나이에 글과 그림을 배운 전남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를 엮은 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가 출간됐다. 2016년부터 3년째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공부한 할머니들이 저자다. ‘순천 소녀시대’로 불리는 할머니들은 글공부와 함께 그림책 작가에게서 동그라미, 네모를 그리는 것부터 배워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일기로 순천과 서울 등에서 원화 전시를 열었다. 곧 졸업을 앞둔 할머니들은 이제야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다.할머니들은 자기소개서부터 처절하게 가난했던 친정 살림, 시댁과 남편에게서 구박받았던 세월, 아들을 낳지 못해 겪은 설움, 글을 몰라 무시당했던 기억 등을 거침없는 리얼리즘으로 그렸다. 자신을 배신한 친구의 이름도 실명으로 등장할 정도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80년 이상 참았던 표현 욕구가 터져 나온 탓이다. 그 와중에도 엄마만 쳐다보는 금쪽같은 자식들, 시아버지에게 “그러려고 남의 집 딸을 데려왔냐”며 한마디했던 남편 덕에 거의 모든 일기는 ‘지금은 다 잘살고 있습니다’로 끝맺음한다. 할머니들의 인생 일기는 한국을 넘어 외국으로 진출한다. 올해 이탈리아 볼로냐 북페어, 미국 뉴욕, 워싱턴DC, 필라델피아 등에서 전시회가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현실이 되는★사업 아이템… 강남, 청년사업가 70명 모집

    서울 강남구는 청년창업지원센터에 입주할 제9기 청년창업가 70여명을 모집한다고 12일 밝혔다. 대상은 정보기술(IT)·기술·디자인·지식 서비스 분야에서 우수 기술을 보유한 지역 내 20~39세 청년창업가다. 참가 희망자는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사업계획서 등 관련 서류를 갖춰, 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접수 시작일 기준 3년 미만 창업자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1차 서류심사와 2차 발표심사(PPT)를 거쳐 심사위원 평가 고득점 순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선정된 팀은 5월부터 1년간 창업활동 사무 공간을 받을 뿐더러 창업교육, 1대1 전문가 컨설팅, 멘토링, 마케팅 홍보, 국내외 전시회 참가 등 다양한 지원도 받게 된다. 구는 1년 후 창업 성과 우수 기업을 선발, 입주 기한을 1년 연장해 준다. 청년창업지원센터는 2010년 신설됐다. 우수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사업화나 자금조달 어려움을 겪는 강남구 거주 청년창업가들에게 무상으로 창업 공간과 창업프로그램을 제공, 창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현재 166개 청년 창업기업을 배출했다. 이정헌 일자리정책과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등 창업을 적극 지원해 ‘미래형 매력 도시, 강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아시아 국제도자교류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아시아 국제도자교류전

    건축도자 전문미술관인 경남 김해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11일 큐빅하우스에서 오는 16일부터 4월 28일까지 ‘2019 아시아 국제도자교류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2019 아시아 국제도자교류전은 ‘2018 여름국제도자워크숍’과 ‘2019 겨울국제도자아트캠프’에 참여해 작품 제작 활동을 한 작가들의 결과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다.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4개국에서 참여한 작가 31명의 다양한 현대 도자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개관 이후 꾸준히 국제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국제도자워크숍’은 각국의 도예가를 미술관으로 초청해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국제교류사업으로 2013년부터 인도·호주·미국·이란·중국·일본·대만과 교류를 하고 있다. 2018년 여름국제도자워크숍에서는 한국·중국·일본·대만의 신진 및 중견 작가 11명이 참여해 5주간 작품 제작과 발표, 특별 강연, 문화예술투어 등을 진행했다. ‘2019 겨울국제도자아트캠프’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 ‘2018 아시아현대도예전’에 공식 협력 기관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2019년 처음 개최했다. 지난 9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아시아 3개국 20명의 작가가 참여한 가운데 5주간 작품 제작과 작가 프레젠테이션, 초청 특강, 문화예술투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김해 진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용택, 손현진 도예가를 초청해 분청과 다기 제작 공부 시간도 가졌다. 이에 따라 미술관측은 이번 전시에서는 아시아 4개국 도예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승택 큐레이터는 “아시아 지역 젊은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아시아 현대 도예의 흐름을 살펴보고 미래를 가늠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히틀러의 수채화 다섯 점, 진위 논란에 독일 경매에서 유찰

    히틀러의 수채화 다섯 점, 진위 논란에 독일 경매에서 유찰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다섯 점의 수채화가 독일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전 대중 선동 집회의 무대였다가 나중에 전범 재판이 열렸던 남부 뉘른베르크에 있는 웨이들러(Weidler) 경매소에서 진행된 경매의 시초가는 4만 5000 유로였는데 독일을 비롯해 중국, 프랑스,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온 고객 가운데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이번 경매에는 히틀러가 소유했다고 알려진 꽃병과 팔걸이 부분에 스바스티카(철십자)가 새겨진 흔들의자도 포함됐다. 경매에 앞서 이들 그림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울리히 말리 시장은 “나쁜 취향”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히틀러가 권좌에 있었던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6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죽음에 몰아넣고 민간인과 저항하는 이들의 수많은 재산을 빼앗았다. 나치 심벌들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일은 독일에서 범범이 되는데 교육이나 역사 연구 명목으로는 예외를 인정받는다. 경매소 측은 카탈로그 안의 나치 상징들을 모자이크 처리함으로써 법 위반 소지를 피해나갔다.지난 주 독일 경찰은 이곳 경매소를 수색해 “AH”나 “A Hitler”가 표시된 63개 품목을 압수했다. 지방 검사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류를 가짜로 꾸미고 사기를 벌이려 했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여 검사는 경매소도 긴밀히 협조하고 있으며 작품들을 자발적으로 검찰에 인도했다고 덧붙였다. 늘 히틀러가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그림들은 논란이 되곤 했다. 지난달 베를린에서도 전시회 목록 전체가 진위 논쟁에 휘말렸다. 오스트리아 빈 예술 아카데미 입학을 두 차례나 퇴짜 맞은 히틀러는 젊은 시절 엽서 같은 곳에 그림을 그려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몇년 동안 그의 작품으로 소개된 것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형편 없는 것으로 분류됐다. 2015년에도 웨이들러 경매소는 수십 점의 히틀러 작품을 40만 유로 가까이에 판매했다. 그 전 해에도 히틀러가 뮌헨 시청을 그린 작품이 13만 유로에 팔렸다. 나치 지도자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이들은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산다고 하지만 제3 제국의 이상을 떠받드는 극우 집단이 종국에는 이 작품을 소유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지난해 영국의 시민단체들은 나치 물품들을 거래하는 행위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계명대 행소박물관, ‘민속 이야기’ 제14기 문화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계명대 행소박물관이 ‘민속 이야기’를 주제로 제14기 문화아카데미 수강생을 모집한다. 2006년 1월 시작된 계명대 행소박물관의 문화아카데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대구시민과 재학생을 위한 문화강좌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우리의 옛 그림, 재미있는 한국 도자사 산책,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조선시대 왕실문화, 화가들의 생애와 예술세계, 신라 이야기, 백제 이야기, 화려한 제국 고려, 한국의 사지 이야기, 한국의 성곽 이야기, 북방초원의 역사, 신화와 설화 이야기 등의 주제로 개설되어 왔다. 올해는 ‘민속 이야기’를 주제로 세시풍속을 포함한 다양한 민속학적인 내용을 다루게 된다. 3월 12일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의 ‘열두 동물 이야기’를 시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10개의 강좌와 2차례의 문화유적 답사로 진행된다. 이번 강좌는 ‘열두 달 세시풍속과 농경분화 이야기’,‘장승과 솟대 이야기’,‘민속과 주택 이야기’,‘한국의 목기구 이야기’,‘한국의 어촌 신앙 이야기’,‘불교의례에 보이는 민속신앙 이야기’,‘무속신앙과 판소리 이야기’,‘한국이 민속의상 이야기’,‘상장례 이야기’등 다양한 주제로 전문 강사들을 모시고, 우리 민속과 풍습을 알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나갈 예정이다. 10주간의 강의를 마치고 나면 수료생에게는 특별회원증을 발급하고 무료강좌 초대, 문화유적답사 및 사회교육프로그램 우선 선정, 전시회 및 문화행사시 초청, 박물관 시설 할인혜택 등도 주어질 예정이다. 접수문의는 계명대 행소박물관 학예연구팀 053)580-6992~3 으로 하면 된다. 행소박물관은 문화아카데미 뿐만 아니라 가을 문화강좌, 수요공개강좌, 문화유적답사 등을 통해 지역과 소통하는 열린 대학박물관으로 도약하고 있다. 또 행소박물관에서는 자유학기제 체험 프로그램 운영 및 초?중?고등학생들이 스마트폰 체험학습 앱과 가상현실(VR)을 이용하여 스스로 전시를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체험 행사를 계획 중 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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