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승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91
  • 금융기관 업무영역 무너진다/은행·보험사서 국공채 판매/내년부터

    ◎증권사 일부 외환업무 허용/홍재무 밝혀/10대그룹 투자승인제 폐지 10대 계열기업군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할때 주거래은행의 사전승인을 받는 제도가 내년 4월이전에 폐지된다.은행과 보험사들은 내년초부터 각종 국·공채를 직접 팔 수 있고 증권회사는 외국환업무를 취급할 수 있다. 홍재형재무장관은 30일 전경련조찬회에서「향후 재정 및 금융정책방향」에 관한 강연을 통해 『공정거래법의 계열기업출자한도가 축소되는데 발맞춰 10대 계열기업군에 대한 주거래은행의 기업투자승인제도는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는 재벌기업에 대한 여신관리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경제력집중을 완화하는 문제는 공정거래법으로 정책수단을 일원화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홍장관은 『금융의 국제화·개방화에 대비,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증권회사 등에도 고유업무와 관련된 외국환거래업무를 허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외국환업무는 원래 은행의 고유한 업무영역이었으나 지난 7월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리스(시설대여업)회사에 허용한데 이어 내년부터 증권회사에도 허용하는 것이다. 홍장관은 또 『채권시장을 활성화하는 한편 국·공채시장을 중심으로 공개시장조작이 활발해지도록 은행과 보험사에 국·공채창구매출업무를 조기에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무부관계자는 『신경제5개년계획에는 은행,보험사의 국·공채창구매출 허용시기가 오는 96년으로 잡혀 있으나 이를 1년 앞당겨 내년초부터 국·공채매출업무의 취급을 허용할 것』이라며 『특히 보험사는 모집인이 채권을 판매할 수 있어 영업에서 상당히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아테네/파르테논 신전(아랍서 지중해까지:14)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웅장한 유적/기원전 5세기 대페르시아 전승기념으로 수호신 아테나 위해 건립 아테네까지 와서 이것마저 보지않고 간다면 말도 안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까?그 재미없는 유적탐방으로 결국 하루를 보내고 말았지만,그런 상투적인 강박관념은 그리스로 넘어오기 전부터 염두에 늘어붙어 따라왔던 것이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까지는 차마 들지 않았다.아크로폴리스나 그 신전들은 그만큼 아테네 어디서나 노상 눈에 띄었다.시내 복판에 언덕이 있어서도 그랬지만 어쩌다 현대식 건물들에 가려 보이지 않을때는 예의 민주주의니 헬레니즘이니 하는 텅빈 관념들이 잊을세라 곧잘 뇌리로 스며들면서 자리를 메우려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런 관념을 불신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져서 감촉된 것까지도 믿지 못하는 기묘한 버릇이 필자에게는 있다.눈앞에 보이는 그 어떤 세계도 피가 통하지 않으면 결국은 헛것에 불과하다는 소린데,고질인 신경통의 오랜 경험 탓일지도 모른다.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헬레니즘 명성뿐 아크로폴리스의 유적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도리스 양식의 신전.건물둘레 1백60m,46개의 가공대리석 원주,기둥높이 10m,기단은 가로 31m,세로 70m.페르시아 전승기념으로 기원전 447∼432년에 걸쳐 집권자 페리클레스에 의해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지휘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그리스인의 건출술이 어떻고 부조가 어떻고 하면서 그런 상식적인 해설을 늘어놓은 책자와 그 확인만으로는 더구나 아무것도 알수 없다.필자는 급기야 숙소인 카라벨호텔 객실에 딸려있던 터무니없이 넓은 거실까지도 거기 연관을 시켜보았다.아마 가족용이거나 상용회의실 삼아 그런 공간이 덤으로 필요했던 것인지 덕택에 막혔던 숨도 몰아쉬고 거기서 편지도 쓰고 했지만,폴리스라 불리던 고대 도시국가의 소위 그 민주적인 이념이나 제도란 것이 이런 구닥다리 호텔의 공간배정 같은 것과도 무슨 연루가 있는 것이나 아닐까.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책이후 발진해서 근대 서구문명의 2대 근간정신이 되었던 헬레니즘이란 것은 또 어떤가.선지자가 고향에서 배척받고 불교가 발상지인 인도에서 떠나버렸듯이,아테네의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지 않은가.있는 것은 잔해와 상품화한 그 명성뿐,말이 통하지 않는 시민들은 입을 다물고 일행들은 가게만 기웃거리고 있다.결국 전 기항지인 이스탄불에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야 생각의 가닥이 잡혔다. ○조각상과 거리 멀어 그 이전의 로마시대는 제쳐놓고라도 그리스는 15세기부터 19세기 중엽을 넘어설 무렵까지 무려 4백여년 간이나 터기의 식민지였다.우리와 일본의 그것은 약과라고 할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지배과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만행,학살사건의 원한으로만 따진다면 그런 철천지 원수지간이 또 있을 것같지 않아 최근까지 설왕설래하던 영토분쟁까지 떠올리면서 주의를 기울였으나,항로에는 아무 이상의 기미가 없었다.하다못해 그리스인과 터키인이 서로 인상쓰는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했던 것은 아니다.그 이스탄불의 중앙통에서 구두를 닦다 바가지를 쓸 뻔했던 일이 엉뚱하게도 아크로폴리스가 발현하고 있는 그런 그리스 정신이란 것과도 연관이 될듯하면서 뇌리에 떠올랐던 것이다.그 에피소드란 것도 실은 하잘 것 없는 공중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숙해 보였던지 구두를 마무리한 소년은 처음 말했던 요금의 세배쯤을 더 내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그냥 달라고 했으면 동정심이라도 일어났을 것을 『돌라(딸라)!돌라!』하면서 하도 영악스럽게 굴어 이쪽에서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행인들이 한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엄한 어조로 소년을 꾸짖었다.아이는 얼굴을 붉히고 계면쩍어 하면서 비실비실 모습을 감췄다.명동이나 종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하는 연상이 그제야 필자의 얼굴마저 화끈거리게 했다.이방인 하나가 가령 그런데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찐드기를 당하고 있는 꼴을 보았다면 급하게 딴데로 눈을 돌려버리고 나는 모른척 그냥 지나쳐가고 말지 않았을까.이 경우 떼를 쓰는 아이는 각박한 현실이고,그것을 꾸짖는 어른은 전통이든가 소양에 등을 대고 있었을 것이다. 동서문화의 요충지라고는 해도 이스탄불의 그 터키행인들이 설마 공자한테서 그런 도덕심을 배운 것같지는 않았다.그들은 4백년 동안이나 지배를 하느라고 하면서도 모르는 새 그리스 전래의 그 시민정신이란 것을 제것으로 삼켜버렸던 게 아니었던가.이 사소한 사건에서 필자가 느낀 감상이나 거기서 끌어낼 수밖에 없었던 교훈의 요지는 그것이었다.물론 자국이나 다른 전통감각 내지 소양같은 것도 그 터키인들은 다분히 혼용해서 함께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옛 조각에서 흔히 보는 그런 균형잡힌 생김새가 아니었다.이마와 미간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코는 대체로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나 그밖에는 얼굴도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고,더구나 여인들의 표정이나 몸매는 팔등신의 그것과도 거리가 멀었다.그녀들이 보다 이지적이고 강해보이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면 차라리 그런 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인들의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이런데서까지 추출할 생각이 필자에게는 없다.쇳된 기타소리 비슷한 음색을 내고 만돌린을 닮은 전통악기 부주키를구경하려고 파네스피스티미우 대학가를 헤매면서 맞닥뜨린 그곳 젊은이들도 그런 인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유행가나 팝송을 흥얼대며 왁짜하게 거리를 메우면서도 어딘지 근엄하달까 절대로 자신을 방기해버리지는 않는 묘한 구석이나 기색이 학생들의 표정에는 역력했고,대중문학작품들 조차 고풍스런 표지디자인을 한채 일사불란하게 진열된 서점가 풍경 같은 것은 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악기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요르단에서부터 터기·이탈리아·스페인·파리에서까지 한번씩은 기웃거린 그런 가게에서 질좋은 물건이라며 내놓는 기타가 우리 제품이어서 어안이 좀 벙벙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쪽을 중국이나 일본인으로 착각했던 모양으로 코리안이라고 하자 그들은 실소했다.피아노 제작기술이 서방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비교적 싼 것에서부터 몹시 비싼 기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메이드 인 코리아 사태를 당하자 미상불 우쭐한 기분이 되지말란 법도 없었다.의식을 하고 있는지 무심한지는 몰라도,아테네 사람들이 가령 자국이나 외지에서 그들의 시민정신이라든가 거창하게도 예의 헬레니즘 운운하는 이념이나 그 편린이라도 깨닫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 아마 이 비슷한 우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도시국가의 몰락이후 헬레니즘은 불가피하게 내셔널리즘 혹은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소극적인 철학으로 삼고 범세계,전인류라는 생각을 적극적인 이상으로 밀어올리면서 동방과 유럽전역으로 퍼져갔다. ○근엄함 잃지 않아 서로 상충하는 이 두 논리의 거듭한 격돌,변천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치는 서구문명의 그 중심적인 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시내로 들어오는 거리 곳곳에서 보게되는 대형간판의 아름다우나 그로테스크한 그 온갖 상품광고들 역시 터전밖에서 번창했다가 지금은 몰락으로 접어들고 있음이 틀림없는 그런 문명의 잔해거나 그 상징으로 보였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밤이 깊자 이 지혜롭고 강인했던 유적도시도 어둠에 잠겼다.어느 옛거리에서 였던가 올리븐지 느티나문지 거창하게 얽힌 가지 한복판에 웅크린 커다란 들고양이 한마리가시야에 들어왔다.동물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눈길을 옮겨가노라니 무성한 잎사귀들 너머,황토빛 야간조명을 받은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얼핏 또 보였다. 어딘가 피가 통하는 듯하면서 신전의 윤곽이 비로소 분명해지는 듯한 느낌을 필자가 받은 것도 그때다.
  • 제19회 전승공예대전 입상작 발표

    ◎대통령상에 「남태나전칠 이층농」 정병호씨/국무총리상엔 김현희씨 「수보자기」/모두 2백7점/10월부터 한달간 경복궁서 전시 문화체육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는 제19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은 「남태라전칠이층농」을 출품한 정병호씨(55·서울 은평구 불광2동 170의139 효성빌라 303)가 차지했다. 남태라전칠이층롱은 전통의 목공예기법에 대나무를 이용해 문양을 새긴 남태나전칠을 가미한 작품으로 장식처리의 아름다움이 친근감을 자아내며 전통공예의 시대성 표출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무총리상은 「수보자기」를 출품한 김현희씨(48·서울 마포구 창전동 400의7)에게 돌아갔고 문화체육부장관상은 「죽장고비」를 출품한 윤병훈씨(60·경기 여주군 강천면 이호1리 445)와 화문석 「등메」를 낸 최헌설씨(53·서울 양천구 목동904 목동신시가지아파트 410­1106)가 차지했다. 또 문화재위원장상은 「여자누비바지」를 출품한 이은임씨(59·서울 종로구 사간동74)와 「괴목삼층책장」을 낸 이정곤씨(35·전남 담양군 객사리 171의5),문화재관리국장상은 「나전경함」을 낸 김성호씨(37·경기 성남시 중원구 금광1동 삼익2차아파트)와 「칠피반짇고리」를 낸 최남선씨(45·서울 강남구 자곡동 223의27),문예진흥원장상은 「나전피혁경함」을 출품한 박성규씨(41·서울 은평구 응암동 403의28)와 「삼층장」을 낸 천문종씨(32·경남 충무시 문화동116의1)에게 각각 돌아갔다. 이밖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은 「효제문나전삼층장」을 낸 정수화씨(40·서울 도봉구 번1동 412의97)와 「지승멍석」을 낸 나서환씨(32·서울 성동구 구의동 199의18 한양아파트 다동301)가 각각 차지했다. 올해 공예대전에는 9개 전승공예 부문에 모두 3백14명이 4백14점을 응모해 이 가운데 30점이 장려상을 받았고 1백65점이 입선했다. 수상작은 오는 10월1일부터 31일까지 경복궁내 전통공예관에서 전시된다. 장려상 수상자(작)는 다음과 같다. ▲이종덕(해주반)▲이재만(화각함)▲홍종덕(나전송죽모란나비당초문서류함)▲조정훈(대동여지도목판각)▲서신정(반짇고리)▲윤병훈(죽장서류함)▲김진철(법고)▲정경만(산조가야금)▲이승화(수저집)▲방연옥(생모시)▲정정순(한산백모시)▲이재순(가사)▲유희순(베개모및 목침)▲이상숙(비취발향)▲박국현(분청사기인화문태호)▲방병선(청자상감사군자팔각푼주)▲김해익(오리형토기)▲이명배(청화백자장생문장식판)▲마순관(백자투각필통외 문방구)▲김종호(청자진사채당초문다과상)▲유병호(분청사기인화문대발일괄)▲임천석(백동팔각도,갖은을자도)▲이점술(징)▲이종덕(놋동이)▲조성준(비녀)▲홍점석(단청문양)▲고광용(개구리연외)▲이영란(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이혜원(과기)▲정한성(흑대사립) ◎대통령상 정병호씨/“칠기인 모두의 경사… 이제 후배 키울차례” 『훌륭한 작품이 많은데도 제 작품을 뽑아주신 데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칠기종사자는 많지만 아직까지 기능공이 없다시피한 실정에서 칠기 후배양성을 위해 노력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제19회 전승공예대전에서 「남태라전칠 이층농」으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한 정병호씨(55)는 24일 수상직후 모든 칠기종사자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은 정씨가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외롭게 연구해온 남태칠기에 나전기법을 혼용해 완성한 2층짜리 농으로 전체적인 짜임새가 훌륭하고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칠해 붙인 문양효과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씨는 고교입학시험에 합격해놓고도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한 채 우연히 지나치던 충무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 입소한 것을 계기로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남태와 나전작업을 해왔다. 『중국과 일본엔 대나무를 이용한 남태칠기유물이 발견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까지 남태유물이 없어 제나름대로 공부를 해왔지요.대나무를 잘게 쪼개엮은 후 칠을 한 위에 나전기법을 접목한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연구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81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을 받은 것을 비롯,83년이후 전승공예대전에서만도 특별상 1차례와 장려상 2번을 받은 후 마침내 이 부문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 동거 여인·딸 토막살해/40대 전승려 구속

    ◎사체 암장… 수억 재산 노린듯 서울 종암경찰서는 24일 재산을 노려 동거하던 여인과 그 딸을 잇따라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 야산에 암매장한 성낙주씨(43·무직·성북구 월곡1동 71)를 살인및 사체 유기혐의로 긴급구속했다. ▷1차범행◁ 한때 스님이었다가 승적을 박탈당하고서도 계속 승려행세를 해온 성씨는 지난 13일 하오8시쯤 자신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있는 서울 성북구 월곡1동 90 황금장여관 주인 전옥수씨(49)의 딸 이향정양(14·J여중 3년)이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으니 집을 나가달라』고 말한데 앙심을 품고 다음날 상오 5시쯤 이 여관에서 5백m정도 떨어진 월곡1동 71의18 전씨집 작은방에서 잠자던 이양을 목졸라 살해했다. 성씨는 이양의 사체를 목욕탕으로 옮겨 주방용 칼로 수십차례 토막내 검정 비닐봉지에 넣고 다시 종이상자 2개에 나눠 넣은 뒤 자신의 이복동생인 성모씨(28)에게 『고사를 지내고 남은 돼지머리를 버리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부탁,하오 1시쯤 동생 소유의 승합차를 이용해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휴게소 인근 야산에암매장했다. ▷2차범행◁ 성씨는 이어 전씨마저 살해하기 위해 지난 19일 하오 서울 종로구 종로5가 모 의료기 상회에서 수술용 칼을 구입,21일 상오 3시쯤 여관내실에서 전씨가 『가진 것도 없고 사내구실도 하지 못하는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사느냐』며 폭언하자 상오 8시쯤 이 여관 107호실에서 잠자고 있던 전씨를 목졸라 살해하고 같은 방법으로 목욕탕에서 사체를 토막냈다. 성씨는 전씨의 사체를 비닐봉지에 넣고 라면상자 3개에 다시 나눠 싼뒤 여관내실앞 계단밑에 숨겨뒀다 다음날인 22일 상오 9시쯤 평소 알고지내던 김모씨(50·무직·강동구 천호동)에게 전화로 『급히 차를 사용할 일이 있으니 차를 가지고 와달라』고 연락,이날 상오 11시쯤 김씨가 몰고온 렌트카를 이용해 강원도 원주군 문막면 동화2리 도로공사장 현장부근에 암매장했다. ▷경찰수사◁ 경찰은 이양이 뚜렷한 동기없이 갑자기 행방불명된데다 전씨도 좀처럼 여관을 비우지 않는데도 갑자기 여관을 비운 것을 수상히 여긴 전씨의 친구 전영자씨(50·여)의 신고로 22일 하오 8시쯤 여관에 있던 성씨를 연행한뒤 24일 상오 2시쯤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경찰은 범인이 미성년인 전씨의 딸까지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 4∼5억원정도 되는 전씨의 재산을 가로채기위해 의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24일 사체가 암매장된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원주군 2곳에 형사대를 보내 사체를 발굴했다. 경찰은 또 이번사건이 범인 성씨의 단독범행이 아닐 가능성에 대해서도 김씨등 2명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범인주변◁ 범인 성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76년 7월 태고종에 입적,승려생활을 했으나 일정한 거처는 없었으며 한때 서울 도봉구 미아4동에서 철학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 김일성사망 한달… 평양은 지금/권력승계 왜 늦나

    ◎“김정일옹립 합의 불구 요직배분 난기류”/충성경쟁 형태 친위세력 암투설/「화려한 대관」 분위기조성 분석도 김일성이 사망한지 한달이 다 되도록 후계자인 김정일이 최고 권력직인 당총비서와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가주석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나오지 않아 구구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권력승계 마무리가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최근 북한을 다녀온 외국인사들의 전언도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그의 권력세습에 결정적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이미 1백% 권력을 장악했다는 첩보도 있는 탓이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다음 3가지 사실이다.첫째 김일성 사후 북한의 공식매체들이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당연시하는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둘째 반김정일세력이 표면화됐다는 징후가 아직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셋째 그러면서도 그의 이름 뒤에 주석이나 당총비서라는 호칭이 따라붙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3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관측통들은 김의 1인자 옹립엔 북한 권력층 내부의 이견이 없으나 당·정·군 요직 배분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즉 공동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김의 권력승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으나 북한권력의 핵심인 당정치국 및 비서국,당중앙군사위 등을 충원 또는 물갈이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 확고한 장악력이 없는 김이 이를 효과적으로 교통정리하지 못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다.다만 이같은 갈등이 지금까지의 도식적 예상처럼 「빨치산 1세대」 대 「혁명2세대」,보수파 대 개방파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친위세력 내부의 충성경쟁의 형태이므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놓고 김의 매제인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과 당공안담당비서 계응태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또 같은 「혁명2세대」인 당작전부장 오극렬과 군정치국 부총국장 이봉원의 암투로 김의 군부장악에 혼선이 초래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이 때문에 김이 전권을 장악하는 「1인지배체제」가 아닌 다른 형태로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가 정돈될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즉 김을 당총비서에 추대하되 당정치국원들이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결판이 날 것이라는 분석이다.북한방송들이 김일성추도대회나 「전승기념일」 등 주요행사 때마다 「당의 두리(주변)」 또는 「당중앙위」 중심으로 뭉치자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 것도 그 징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복동생으로 잠재적 경쟁자인 김평일이 최근 핀란드대사로 귀임하는 등 이와는 정반대의 징후도 있다.특히 북한권력의 풍향계인 노동신문이 2일자 사설에서 「당의 위업을 완성할 영도의 계승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때문에 수령의 유일지도체제가 주된 특징인 북한체제에서 이미 20여년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을 세뇌시켜온 마당에 당총비서 등의 승계는 요식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즉 김이 이미 실권을 장악했으나 북한전역의 추대분위기를 고조시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려는 각본에 따라 승계절차가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이같은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그의 공식 1인자 등극시점은 북한정권 창건일(9월9일)이나 노동당 창당일(10월10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 변했나/대남긴장 조성·핵줄다리기 불변/체제 안정까진 부분개방도 곤란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의 대외 정책은 당분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 김일성이 죽은지 한달이 다되고 있으나 북한의 대남 및 대외 노선의 변화 조짐이 감지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의 권력승계라는 내부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나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자세 및 「핵전술」등에서 생전의 김일성노선과의 차별성이 아직 엿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보다는 핵카드를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고,체제동요를 우려해 극히 제한된 범위내의 개방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 등은 김일성노선의 복사판에 다름 아니다. 북한은 5일부터 재개된 제네바 미북 3단계회담에서 현재와 미래의 핵동결을 미끼로 미국과의줄다리기에 들어갔다.이처럼 대미협상에선 김일성이 죽기 직전의 적극적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남북관계에서는 정상회담 연기통보 이후 계속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극렬한 비방 등 대남 비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더욱이 6일엔 북측이 전화통지문 접수를 거부해 심상치않은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남한측 조문단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식으로 우리측 당국과 비당국을 이간시키는 통일전선전술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같은 북측의 반응들은 종래 주적으로 설정했던 미국에 대한 직접적 비방을 자제하고 있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이는 끊임없는 긴장조성을 통해 체제유지를 도모해온 구태의연한 행태를 당분간 적어도 대남 관계에서는 고수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북한이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통일 3원칙과 이른바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도 김일성의 대남 정책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행태다.이는 결국 일단 국력의 열세를 감안해 흡수통일을 피하기 위한 시간을 벌면서 장기적으로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대남 혁명전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사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의 개념이란 외세추방,곧 주한미군철수를 뜻하고 민족대단결도 우리측 민간과의 「통일전선」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은 김정일체제가 확고한 궤도에 오르는 시점까진 남한과의 합작을 통한 본격적인 대외개방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등소평이 선도한 중국식 부분개방노선을 김정일체제가 곧바로 답습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나진·선봉 경제특구안에 소규모 합작 무역회사를 설립했으나 본격적인 대외개방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나진·선봉이라는 제한된 울타리 안에 안주할 뿐 남포나 신의주 등 사회간접자본 등 상대적으로 투자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개방을 확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을 방문해 그곳의 대북전문가들을 만나고 온 외교안보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북측은 남한사정 등 외부정보 유입과 자본주의 바람의상륙으로 인한 체제동요를 우려해 단기적으로는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개방노선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북한도 어쩔 수없이 개방노선을 채택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그 성공여부도 확실치않아 김정일체제가 3년을 넘기지 못해 중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게 중국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당국 뭘하고 있나/“후계 확립” 선전 안간힘/생산차질 극복도 총력 북한 당국은 김일성사망이후 김일성의 뒤를 잇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생산차질을 극복하기 위한 산업활동 독려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특히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후계체제 공식출범을 앞두고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요즈음 북한 방송이나 신문들은 김일성의 혁명유업계승을 내세워 김정일을 후계자로 떠받드는 일에 온통 매달려있다. 김정일이 지난 30년 동안 사상·이론활동을 비롯,정치·경제·군사·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과제들을 「빛나게 해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룩한 업적은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상과 이론, 영도예술의 걸출한 영재」,「신념과 의지의 최고의 화신」,「인덕과 사랑을 베푸는 위대한 은인」등으로 표현하면서 「김정일 없는 세상은 태양이 없는 암혹」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더욱이 지금까지 김일성에 의해 창시되고 김정일에 의해 계승·발전됐다고 주장해온 주체사상마저 김정일이 발전·완성시켰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는 김정일시대를 맞아 「주체사상=김일성주의」에서 「주체사상=김정일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사상이론적 정지작업의 일환이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업적 부각과 함께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 확립을 부르짖고 있다.지난 20년 동안 후계구축작업이 진행되어 왔음에도 김일성사후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틈타 일어날 지도 모를 반김정일 세력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차단하기 위해서이다.김정일에 대한 호칭도 「수령」,「운명의 수호자」,「민족의 태양」,「인민의 위대한 어버이」등으로 갈수록 격이 높아지는등 우상화작업이 극에 달하고 있다. 북한은이와함께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주민들의 사기저하를 극복하고 생산손실을 만회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북한 언론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은 눈물이나 격조높은 맹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이 준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헌신적 투쟁에 있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애도분위기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생산활동에 주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모든 당원과 근로자들이 생산과 건설에서 혁신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만이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고 김정일을 잘 모시는 길』인만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건설투쟁에 떨쳐나서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 김용순·김영남·계응태 두각/김정일 뒷받침 인물들

    ◎조문대표 접견·추도대회 주도… 활동 활발 서열이 중시되는 북한 권력상층부에 아직 이렇다할 변화가 감지되지않고 있는 가운데 김일성사망이후 김용순 노동당 대남비서등 몇몇 사람의 행보가 두드러져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김용순과 함께 주목되는 인사는 부총리겸 외교부장인 김영남,노동당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인민무력부 부부장인 김광진등. 이중에서도 그동안 활동이 활발했던 사람은 남북정상회담 실무접촉 북측단장이기도했던 김용순.대남및 대외업무를 다루어온 그는 김일성의 장의위원 서열로는 29위에 불과하나 김일성의 시신이 처음으로 공개됐을때 참배하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를 부축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으며 북한 지도부를 대표해 조문차 방북중이던 조총련대표들을 만나는등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그는 김정일이 김일성사망이후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인 이탈리아의 국제관계연구소 총서기 면담때도 배석했을 정도.또 최근엔 외국방송으로 김일성사후 평양에서 첫 실황방송을 했던 미국의 CNN방송의 대표단과 만나고 5일엔 방북중인 독일자유민주당 간부들을 만나기도 했다. 김영남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김일성추도대회에서 김정일의 위임에 의해 대표 추도사를 하면서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그를 후계자로 옹립하고 나온 김정일의 핵심측근.이날 군을 대표해서 나온 차수 김광진도 『김정일을 당정군의 최고수위로 받들자』는 내용의 추도사를 낭독해 주목을 끌었다. 김일성 추도대회때 사회를 본 계응태는 지난달 27일 열린 「전승기념일」행사에서 보고를 해 관심을 집중시켰는데 그 역시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곧 모습을 드러낼 김정일체제의 권력핵심부에서 요직을 차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충성 결의모임 개최/최광 등 참석

    【내외】 북한은 27일 하오 「전승」(휴전)41주를 맞아 평양 서장동에 위치한 전승기념탑에서 육해공군 청년군인들의 「충성의 결의모임」을 개최하고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해 주체혁명위업과 조국통일의 과업을 앞당겨 달성할 것을 다짐했다. 북한군 총창모장 최광,차수 김봉율,김광진을 비롯한 북한 육해공군 청년군인들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는 『김정일의 명령을 곧 김일성의 명령으로 받들어 김정일동지가 있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을 안고 군전투력을 더욱 향상시킬 결의를 다졌다』고 평양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 「김정일승계」 발표 왜 늦어지나/북 「전승기념일」 행사와 권력향배

    ◎“권력서열 조정작업 진행” 추측/화려한 「대관식」 앞둔 준비설도 27일 열린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 행사에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발표가 나오지 않아 김일성 사후 북한권력의 향배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이 해마다 휴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치르는 연례행사이긴 하나 이번에는 김정일체제 출범을 알리는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관측이 빗나간 것이다. 물론 이번 행사가 조용히 끝난 게 반드시 김정일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김일성부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요란하게 치렀던 지난해와 달리 소규모 실내행사로 진행되었지만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당정치국위원이자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가 보고를 통해 『전체인민과 인민군 장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우리 혁명의 수호자로 높이 모시고 당의 사상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자』고 충성을 유도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김정일체제의 조기구축 가능성에 의문점을 던지는 몇가지 특이사항이 노정됐다는 분석도 있다.그가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그에 대한 호칭도 여전히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에 그친 것이 그 하나이다.또 군의 최고실력자중 한사람인 최광 인민군총참모장이 군행사에 참석지 않은 사실도 퍽 이례적인 대목이다.더욱이 지난 대회에서 보고서를 낭독했던 권력서열 3위 강성산 총리가 그의 사위의 한국 귀순사실이 밝혀진 이날 불참한 것도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이같은 특이점들은 이날 행사에서 오진우·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한명씩 호명되지 않고 「정치국 후보위원들」이라는 식으로 일괄소개한 것과 함께 권력핵심부간 내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즉 김정일의 권력승계 그 자체에 결정적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권력서열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미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사회저변의 충성서약을 좀더 이끌어낸뒤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즉 핵문제 등을 일괄타결한 뒤 이같은 업적을 이용해 오는 10월 전당대회에서 축제분위기 속에 추대식을 치르려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 북 어제 「전승기념일」 행사/김정일·강성산 불참

    북한은 휴전 41돌을 맞아 27일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2·8문화회관에서 「조국해방전쟁승리경축 중앙보고대회」를 갖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 김정일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호칭도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으로 종전과 변함이 없었다. 통일원과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부주석인 이종옥,박성철,김영주등이 참석했으나 권력서열 3위이자 사위가 귀순한 강성산정무원총리와 최광 군총참모장이 참석하지 않아 주목을 끌었다.이와관련,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행사규모 축소로 강성산등이 불참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관측하고 권력서열에 이렇다할 변화도 감지되지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해와 달리 이날 행사를 소규모 실내행사로 치른 것은 김일성장례식과 추도대회등으로 이미 많은 군중들이 동원된 바 있어 주민들을 또 다시 동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이날 행사를 하오 5시부터 녹음실황으로 보도했다.
  • 김일성위상 가늠할 첫무대/오늘 북 「전승기념일」 행사

    ◎군주요간부 서열­충성강도 윤곽/「총비서 대관식」 군중집회 가능성 김정일의 권력승계의 공식화 시점이 지연됨으로써 27일 열리는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행사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휴전협정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고 있는데,이날 행사를 통해 군부 주요인사들의 서열변동 여부와 충성서약의 강도를 통해 김정일의 권력장악 정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번 행사는 또 그동안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 절차가 늦어짐으로써 제기됐던 ▲김정일의 건강악화설 ▲권력핵심부의 암투설 등 갖가지 의문들의 진위를 파악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물론 이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격으로 참석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온갖 수사를 동원해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를 「위대한 수령」,「인민의 영도자」,「절세의 위인」,「동방에 솟아오른 창공의 태양」 따위의 호칭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 뒤엔 권력승계 절차의 완결을 뜻하는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등의 직책이 따라붙지 않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를 김정일 추대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군중집회로 치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매체들이 김일성 사망 이후 각계각층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 사실을 선전해온 연장선상에서 정권장악의 최대 관건인 군부의 충성서약을 북한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각본을 연출할 것이라는 얘기다.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한 군고위인사는 의외로 손꼽을 정도로 적다.14명의 당중앙군사위원 중에서 김광진인민무력부 부부장과 김일철해군사령관 둘 뿐이다. 때문에 이번 행사에 도열할 주요 군간부들의 서열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발언의 강도 등으로 김의 군장악력과 1인자 공식화 시점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이번에 그의 당총비서 선출사실을 공표함으로써 행사 자체를 김정일의 「대관식」 성격으로 치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북한은 김일성의 장례기간인 지난11일 당중앙위원 전원을 평양으로 소집해 놓은 바 있어 20일 추도대회 이후 어느 시점에 비밀전원회의를 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북한은 지금까지 요직인선을 위한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의 대부분 비밀리에 개최했고 그 결과도 일정한 시점이 지난 뒤에 발표하는 게 상례였다.
  • 김일성사망 「정전체제」 변화 줄까/오늘 「휴전협정」 41주년

    ◎평화협정 전환싸고 남북한 입장차이/미·북회담 등 계기,전기맞을 가능성 27일로 휴전 41주년을 맞았다. 50년 발발한 6·25는 53년 7월27일 유엔군사령관과 북한·중국군사령관등 3자합의로 전쟁의 일시적인 중단을 위한 정전협정이 맺어짐에 따라 불안정한 평화상태로 돌아섰다. 양측은 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54년 제네바회담을 열었으나 이 회담이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역사상 가장 긴 휴전상태에 놓인 것이다. 북한은 지난 41년동안 정전협정을 유명무실화하기 위해 갖가지 위반행위를 저질러왔다. 53년부터 93년까지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이 모두 43만여건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최근들어서는 92년 유엔정전위 수석대표가 한국의 황원탁소장으로 임명되자 수석대표회담을 거부하고 있으며 올 4월에는 일방적으로 정전위 철수를 통보,비서장회담을 거부하고 중립국감독위의 폴란드대표를 돌려보냈다. 그 며칠뒤에는 판문점 정전위회담장의 북측 마이크등 집기를 철거하는등 정전위를 유명무실화하기 위한 실력행사를 계속 벌이고있다. 한국은 이에 대해 북한은 궁극적으로 한국을 배제한채 미국과 직접 대좌,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한국내 미군을 철수토록 하려는 계산을 깔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 북한핵문제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이 높아지자 초점을 흐리기 위한 양동작전으로도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91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이후 채택된 남북간 기본합의서에서 규정한 대로 「남북사이의 공동 노력」에 의해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정전협정은 현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유일한 틀이라는 점에서 대화를 통해 새로운 틀이 짜여지기 전까지는 현 체제가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문제는 이처럼 남북간에 큰 견해차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올해는 6·25를 일으킨 김일성이 사망함으로써 이같은 불안한 정전상태에 다소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북,남·북간 정치회담이 계속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휴전체제가 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해마다 6월25일부터 7월27일까지 한달동안을 반미주간으로 설정,마지막날일 7월27일을 전승기념일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는 것이 전례였다.그러나 김일성의 사망으로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 있어 당분간 북한은 조용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 흥망성쇠(백제를 다시본다:20)

    ◎근초고왕,북 평양성·남 마한까지 정복/야심적 국토 확장… 가야도 영향권에/고구려 장수왕에 한성 잃고 공주로/한강유역 되찾은 성왕 사후엔 서남부에 고립… 1백년뒤 멸망 우리 역사상 삼국시대처럼 장기간에 걸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때는 달리 없다.삼국이 본격적으로 정립의 형세를 갖추게 된 것은 대략 4세기 중엽이었다.그리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7세기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이었으니,삼국간의 항쟁은 3백년동안이나 지속된 셈이다. 현재 남한지역에는 약 8백개소에 달하는 고대 산성이 분포되어 있다.삼국간의 항쟁이란 이 산성의 탈취를 둘러싼 공방전에 다름아니었다.그런데 삼국의 전쟁양상을 보면,고구려와 신라가 대체로 영토팽창을 목적으로 하여 시종일관 공세적 입장을 취한 반면 백제는 고토의 수복 내지 조국수호를 목적으로한 수세적 입장을 취한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하긴 이는 어디까지나 대체적인 경향을 말한 것일뿐,주어진 형편에 따라서 혹은 군주의 개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방어적 입장 견지 백제가 가장 야심적인 팽창을 꾀한 것은 4세기 중엽 근소고왕때였다.실로 그는 백제의 전역사를 통틀어 으뜸가는 정복군주였다.바야흐로 당시는 중국이 남북조 분열의 혼란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이에 따라 그때까지 줄곧 중국세력과 대치해 있던 고구려는 재빨리 대동강유역에 있던 낙낭군을 없애버리고 여세를 몰아 황해도일대로 진격해왔다.이에 이른바 대방고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던 근초고왕은 북진을 개시,고구려군을 황해도방면에서 잇따아 격파했다.근초고왕은 369년 고구려대군을 치양(백천)전투에서 크게 이겼고,2년 뒤에는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케 했다.한편 근초고왕은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호남지방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던 마한 잔존세력을 정복했고,다시 서쪽으로 손을 뻗쳐 경상도 남해안지방의 가야세력에도 영향력을 과시했다.신라는 백제의 위협에 직면하여 고구려에 원조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다만 근초고왕이 죽은 뒤 백제는 차츰 수세에 몰리게 된다.광개토왕의 대원정으로 백제는 크게고전했고,서기 475년에는 장수왕이 거느린 고구려대군이 수도 한성(서울)을 기습적으로 포위공략하여 개로왕을 잡아 죽였다.이때 백제는 기름진 한강유역을 송두리째 고구려에 빼앗겨 충남 아산∼천안을 국경선으로 하여 고구려의 남침에 대비했다.이렇게 시작된 공주시대 60여년간은 백제 최대의 시련기였다.다만 이 시기에 신라와 우호친선관계를 유지한 것이 그나마 큰 힘이 되었다. 서기 538년 성왕은 야영도시 공주를 버리고 오래 전부터 점찍어둔 부여로 천도했다.성왕은 국가중흥을 기약하며 여러 부문에서 나라의 면목을 일신했다.그런 다음 신라의 진흥왕을 설득하여 551년을 기해 북진을 개시,한강유역에서 고구려군대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지난날 백제의 심장부이던 한강하류 현서울일원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동맹국이었던 신라가 갑자기 표변하여 한강 상류지역에서 하류지역으로 소리없이 침투하여 순식간에 백제군을 몰아내었다.이로써 성왕의 웅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신라의 배신행위에 격분한 성왕이 신라국경으로 쳐들어가던중 현 충북 옥천지방의 관산성에서 신라군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부여로 옮겨 정비 이때부터 백제는 660년에 멸망될 때까지 한반도 서남부에 고립된 채 국가경영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비록 때때로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에 대항했으나,서해안과 남해안을 제외한 모든 방면에서 신라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하긴 신라의 약점도 있었다.왜냐하면 백제와의 국경선이 너무나 길어진 결과 전선의 탄력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7세기 전반기에 무왕은 이 점을 최대로 이용했다.그는 40여년간 재위하는 동안 신라의 약점을 계속 건드렸다.전북 무주에 있는 나제통문일대와 남원 설봉에서부터 소백산맥을 넘어 경남 함양에 이르는 일대가 당시의 격전지였다.백제는 이 두 방면의 전투에서 우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전선은 고착되고 말았다. 무왕의 아들 의자왕은 641년 즉위하자마자 신라에 대해 야심적인 전쟁을 벌였다.즉 백제군은 함양을 발진기지로 하여 단기간내에 멀리 진주·협천방면에까지 손을 뻗쳤다.신라의 낙동강방면군 사령부가 위치했던 합천의 대야성이 함락된 것이 642년의 일이었다.이로써 백제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신라 수도 경주를 위협하게 되었다.그러나 이같은 의자왕의 군사적 승리가 백제 멸망의 원인이 되었음은 역사의 아리로니가 아닐 수 없다.왜냐하면 이로써 의자왕은 헛된 자만심에 빠져 그 뒤 정치를 그르치게 되었고,반면 신라는 국가위기상황에서 절치부심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제국의 군사력을 이용하고 말겠다는 비밀외교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항쟁을 통해서 볼 때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평화지향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근초고왕때 고구려군대를 격파하면서 승승장구 수곡성(황해도 신계)서북에까지 이르렀던 장군 막고해가 이 정도의 승리로 만족해야 한다며 회군을 건의한 사실이라든지,불교 교리에 투철했던 법왕이 599년 즉위하자마자 일체의 생물을 죽이지 말도록 금령을 내리면서 심지어 물고기 잡는 그물까지 불태워버리게 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다.사실 같은 시기 신라 최고의 지성이었던 원광법사가 세속5계를 제정,비록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살생을 허용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합천 대야성 함락 삼국시대는 첩보전이 유행한 때이기도 했다.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치기 전에 승려 도임을 첩자로 백제에 밀파하여 개로왕을 유혹,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게 하면서 내부분열을 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이 점은 신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김유신은 현령이었던 조미곤을 포로로 가장하여 백제에 잠입시킨 뒤 그를 통해 백제의 기밀을 입수했을 뿐아니라 끝내 좌평 임자와 같은 유력인사를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백제의 경우에는 이같은 비열한 첩보전략에 열중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항상 비정한 것이고,인간의 선의만 가지고서는 결코 대업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전쟁기록/6세기후반부터 본격 삼국항쟁/옥천전투선 백제 성왕등 3만명 전사 삼국이 정립한 시기는 영토확장을위한 많은 정복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사실상 대립의 시대에 해당한다.「삼국사기」에 나타난 크고 작은 정쟁기록만 보아도 4백80회에 이른다. 이 같은 기록은 「삼국사기」 전체 기사 가운데 16.8%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전쟁기사의 비중은 큰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횟수는 「삼국사기」기록 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을 통한 전쟁기록만 검토해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광개토왕 재위연간(AD 392∼412년)의 전쟁기사는 고작 3회 정도이지만,능비에 적은 전쟁기록은 7회로 집계되었다. 광개토왕 자신이 종횡무진으로 전쟁에 참여한 정복군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문 기록이 합당할 수도 있다. 광개토왕릉비가 보여주는 것처럼 4세기는 우선 국왕중심으로 지배체제를 확고히 하는 시기다. 권력이 국왕에게 집중되면서 국왕이 친히 총사령관으로 정복전쟁에 참여한다. 보기라는 말로 보병과 기병이 동원된 가운데 오늘날 경기 북부와 서울일원에서 광개토왕이 백제 아화왕과 직접 조우하는 것도 이시기다. 동북아 세력판도변화에 따라 고구려가 후연과 같은 북방에 신경을 쓰고 있을 무렵 고구려 남방을 공략하기도 했다. 이같은 전쟁은 일반백성의 참여는 물론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결국 잦은 전쟁은 국력 대결양상의 총력전 기반구축을 촉진함으로써 6세기 후반이후 1백년 동안 삼국은 피나는 항쟁기를 맞는다. 백제의 경우 「삼국사기」 백제본기 전체기사 가운데 전쟁기록은 20.6%를 차지한다. 전체평균치(16.3%)에 비해 높은 것은 고구려와 신라를 겨냥하고 싸웠기 때문이다. 백제 쪽에서 볼때 가장 처참한 전쟁은 왕이 전사하는 AD554년 관산성(옥천)전투다. 신라에 의해 3만대군을 잃었다. 이를 원상 회복하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삼국이 막바지 각축을 벌인 7세기 중반에 백제가 거둔 빛나는 승리가 있다면 AD642년 신라의 수도를 위협한 대야성 함락. 같은 해 신라군을 몰아낸 당항성(경기 화성군 서신면 당성) 전투와 더불어 백제의 마지막 전승으로 기록된다.
  • 「중앙당의 보선 개입」 여야 공방

    ◎“과열부축” 우려… 야에 자제 촉구/민자/“당 본연의 역할… 제약말라” 반발/민주 대구 수성갑,경주시,영월·평창등 3개 보궐선거 지역의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민주·신민당이 거당적인 총력지원체제를 펼치고 있는 데 대해 민자당이 이의를 제기,이 문제가 여야 사이의 새로운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민자당은 20일 중앙당의 보선개입이 자칫 과열선거분위기를 유발,개정 선거법의 공명선거 취지를 해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이를 자제하라고 민주당에 요청하고 나섰다.그러나 민주당은 오히려 민자당이 외곽지원단체를 자원봉사자로 위장해 동원,선거과열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자당◁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이기택대표를 위시한 민주당지도부의 선거지원이 「과잉개입」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공명선거분위기 진작차원에서 자제를 요청하기로 결론. 박범진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민주당은 이대표의 지시로 보선지역에 수십명의 소속의원을 상주시키며 선거활동을 지원,결과적으로 선거분위기를 과열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선거가 새 선거법정신을 존중,공명분위기속에서 조용히 치러질 수 있도록 과잉개입을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논평. 박대변인은 이어 『언론의 보도를 보면 민주당의원들이 각 동·면마다 책임자를 정해 옛날식으로 하고 있는 것같다』고 말하고 『이번 선거법은 대단히 엄격해 현지에 가서 활동하더라도 크게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경고. 박대변인은 그러나 이번 주말의 정당연설회 때도 중앙당에서 일체 내려가지 않을 것이냐는 물음에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여운. ▷민주당◁ ○…민자당의 주장을 「가진 자의 횡포」로 규정짓고 강력히 반발. 민주당은 개정된 선거법이 입은 풀고 돈은 묶는 선거운동 원칙에 기초한 만큼 이기택대표등이 보선지역을 방문,지원활동을 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주장. 오히려 민자당이 수백명의 관변단체 회원을 자원봉사자로 「위장취업」시켜 교묘히 법망을 피해 선거운동에 악용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 민주당은 이처럼 민자당측이 중앙당의 개입여부를 놓고 물고 늘어지는 저변에는 민자당후보들이 「8·2 보선」에서 전승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으로 해석. 또한 민주당 지도부의 이같은 활동을 쟁점으로 삼아 이를 적극 선거전에 활용하겠다는 계산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 박지원대변인은 이날 『민자당이 태산같은 국정을 제쳐놓고 남의 당의 선거운동을 간섭하는 일이나 한단 말인가』라고 비아냥거리면서 『패색이 짙어지는데 따른 괜한 생트집』이라고 힐난.
  • 정오 북전역서 3분 묵념/김일성 추도대회 이모저모

    ◎김정일 「교시」없이 참관만 북한 김일성의 추도대회는 20일 상오 10시부터 약 1시간 18분동안 평양 시내 중심부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일을 비롯한 당정군핵심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 북한방송은 이날 추도식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행사진행상황을 생방송으로 북한전역에 중계했고 이를 수신한 미CNN이 세계로 송출.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김일성광장과 연결된 모든 대로와 주체사상탑앞 광장,전승광장등 평양시내 곳곳에는 대형스피커가 설치돼 수백만명의 주민들이 이를 청취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보도.또한 평양시내 모든 경기장과 체육관,학교운동장에는 수많은 시민들과 북한군 장병들이 운집해 인산인해. ○…추도대회 참석 규모는 김일성광장에 20만명,대동강 건너편의 주체탑 아래 10만명등 약 30만명에 이른다고 평양주재 한 외교관이 추산.이들 북한주민은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이 외교관은 덧붙였다. ○…추도대회에서는 김영남 부총리겸 외교부장이 김정일의 위임으로 대표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이어 근로자대표,농민대표,군대표 김광진인민군차수,해외동포대표등의 순으로 추도사를 낭독. 이들의 추도사는 하나같이 반제혁명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김일성의 혁명투쟁을 열거,추앙한 데 이어 김정일을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자는 내용.특히 추도사 내용가운데는 과거 「미제국주의」를 극렬히 비방하던 내용이 없어 북·미3단계 회담 등 향후 북한의 대미외교 노선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모습. ○…김정일은 김일성 광장 앞면에 마련된 주석단 단상 중앙에서 검은색 상하의에 왼쪽 팔에 검은색 완장을 차고 선 채로 추도대회에 참석.그는 전날 장례식때와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상체를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인 채 서 있었는데 무척 초췌한 모습.당초 추도대회장에서 김정일이 새 지도자로서 북한 인민들을 향해 추도사를 겸해 「교시」를 내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한 마디 말 없이 묵묵히 참관. ○…북한 주민들은 이날 김일성참배나 장례식때처럼 광적으로 울부짖는 모습과 달리 비교적 엄숙한 표정으로 대오를 지키며 질서있게 참석.그러나 추도대회가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데다 날씨가 무척 더운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비틀고 자리를 벗어나거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주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이들은 남자의 경우 검은색 상하의,여자들은 검은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로 동일한 복장이며 군인들은 인민군 제복 차림. 이어 낮 12시에는 북한 전역에서 추모경적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한주민들은 3분간 묵념을 올렸다. ○…김일성 추도대회는 예정보다 40분 일찍 끝나 참가자들은 11시30분부터 해산하기 시작. 평양 주재 외교관들은 이처럼 추도대회가 예정보다 빨리 끝난 것은 무더운 날씨로 인해 대회장 곳곳에서 여성들이 쓰러지고 대형 스탠드에 있던 일부 초청 손님들도 견디지 못해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추측.
  • 방북 박보희씨 내주 소환조사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부장검사)는 19일 세계일보 박보희사장의 방북 조문과 관련,실정법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해 내주중 박사장이 귀국하는대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사장이 갑자기 방북,김일성의 시신앞에서 조문한 것은 언론사 사장으로서 순수한 취재목적및 남북교류협력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기 힘들다』며 『박사장이 정부당국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았고 조문행위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커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 르완다 반군/“새정부 곧 출범”/미선 대사관 폐쇄

    【키갈리·유엔본부 AFP 로이터 연합】 르완다애국전선(RFP)은 정부군과의 내전승리에 따라 오는 18일 새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했으며 미국은 워싱턴주재 르완다대사관 폐쇄와 외교관들의 출국을 명령했다. RPF는 기존 르완다잠정정부 지도자들이 수도 키갈리를 RPF에 빼앗긴 후 프랑스군 경비구역으로 패주함으로써 르완다의 정권을 장악했다. RFP는 이에 따라 다수 후투족의 대대적인 국외탈출을 막기 위해 곧 일방적 휴전을 선언하고 RFP측에서 총리로 지명한 파우스틴 트와기라뭉구를 행정수반으로 광범위한 정파를 망라한 새 통일국민정부를 오는 18일 정오 출범시킬 계획이다.
  • 박보희씨 입북 파문/문선명씨는 조화/조문여부 안밝혀져

    ◎정부,“법저촉땐 사법처리” 통일교 교주인 문선명세계평화연합회장이 김일성사망과 관련,중국주재 북한대사관에 조화를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문회장의 측근인 박보희세계일보사장이 방북해 파문이 일고 있다. 박사장은 취재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과정에서 김일성빈소를 직접 조문하거나 김정일등 북한 고위인사와 만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공안당국은 이날 박사장의 방북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히고 박사장이 김일성빈소를 조문하거나 애도표시를 하는 행위,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고위당국자와의 회담,이들과의 공동성명발표행위등을 할 경우 실정법에 따라 사법처리키로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앞서 박사장은 방북직전 문회장의 특별보좌관 김효율씨와 함께 북한에 조전을 보내 김일성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고 북한의 언론들이 보도했다. 문회장도 지난 11일 중국주재 북한대사관에 조화를 전달한 것으로 북한언론이 보도,「조의파장」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한편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3일 저녁 박사장과 문회장의 특별보좌관 김효율씨의 조문사실을 보도하면서 『박사장과 김씨가 40여년간의 식민지 억압을 끝장내시고 그렇듯 강력하고 기백있는 국가를 창건하시고 공화국을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슬픔을 금할수 없다고 애도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측은 박사장이 13일 하오 북경을 통해 평양에 도착했으며 앞으로 수일간 평양에 머물면서 김사망이후 북한의 정치상황변화등을 취재하고 김정일과도 면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사장의 방북에는 재미언론인 문명자씨·김진경·홍동근목사등이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장은 91년 11월 문회장이 북한을 방문,김일성을 면담했을때도 같이 간 적이 있다. 한편 통일원 김형기대변인은 『박사장의 법적 지위는 한국국적을 가진 미국영주권자로 북한방문증명서 발급신청이나 북한왕래의 신고가 없었다』고 밝혔다. 대검공안부는 이날 박사장의 방북과 관련,박사장이 귀국하는대로 소환해 방북절차와 경위를 조사한뒤 방북행적중 국내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가보안법등을 적용해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박사장이 당국의 사전승인없이 북한을 방문했다고 해도 미국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교포)신분으로 방북했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시행령 18조에 따라 귀국후 10일이내에 사후신고만 하면 절차상 하자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남북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안에서 다른 법률(국가보안법)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박사장의 방북이 「정당한 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 30기 패왕 새달 16강전 돌입

    ◎“조훈현·서봉수·유창혁 4강진출 무난”/티켓 1장 놓고 「신4인방」등 각축 예상 패왕전 본선 16강 대진이 확정돼 오는 8월 중순부터 8강진출을 위한 본격 대결이 펼쳐진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전통의 제30기 패왕전(패왕 이창호) 16강전 대진추첨결과 A그룹에는 김일환7단대 서봉수9단,허장회7단대 최명훈3단,B그룹에는 조훈현9단대 이동규7단,양재호9단대 임선근8단,C그룹은 윤현석3단대 양건2단,강훈8단대 정현산5단,D그룹에는 박상돈6단대 장수영9단간의 대결이 펼쳐지게 됐다.유창혁6단은 한상수초단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부전승,8강에 올랐다. 추첨결과 서봉수9단 조훈현9단 유창혁6단등 「4인방」은 4강진출까지 대체로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나 C그룹은 4강의 나머지 한자리를 놓고 혼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16강전가운데는 최근 승단대회에서 입신에 오른 양재호9단과 명인전 도전권을 따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임선근8단간의 대결과 신4인방 라이벌인 윤현석3단과 양건2단간의 초반 격돌이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양9단과 최명훈3단,장수영9단등은 각 그룹에서 4인방을 위협할 다크호스로 지목되고 있다.
  • 독헌재,해외파병 합헌판결/의회승인 거치면 나토역외 파병 가능

    【베를린 연합】 독일은 12일 기본법(헌법)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해외파병 범위를 전세계로 확대,전후 엄격하게 제한되어온 대외적 군사역할을 사실상 전면개방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날 판결을 통해 독일군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역외파병은 의회의 사전승인등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기본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기본법은 정부가 평화유지 지원활동을 위해 집단안보체제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하고있다』고 전제,『따라서 독일군은 유엔평화유지군의 틀안에서 해외에 파병될수 있다』고 해석했다. 헌법재판소는 특히 독일군의 해외파병시 무력사용이 불가피하게 요청되는 경우에도 이같은 해석은 똑같이 적용된다고 지적,전투목적 파병도 원칙적으로 승인했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나 독일군의 나토 역외파병시 매경우마다 의회의 사전동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는 정족수에 언급하지 않았으나 법률상 명시된 경우 이외의 일반 정족수는 단순 과반수다. 헌법재판소는 독일군의 활동범위를 전세계로 넓히는 이날 판결의 근거로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독일이 참여할수 있다는 기본법 제24조2항 규정을 확대 해석했다. 지금까지 독일은 이 조항을 나토역내에서의 방위활동 범주내에서만 군사적활동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해왔다. ◎나토·미,환영 표명 【브뤼셀·베를린 로이터 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2일 독일군의 나토 역외파병을 승인한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환영을 표시했다. 나토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만프레트 뵈르너 나토 사무총장은 독일군의 나토역외 파병 승인에 관한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말하고 『독일군파병은 국제사회의 책무 수행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을 방문중인 빌 클린턴 미대통령도 이날 베를린에서 헬무트 콜 총리와 자크 들로르 유럽집행위원장과 만난 뒤 『독일이 유럽에서 보여준 지도력에 힘입어 유엔의 국제군사활동에 참여할수 있게 됐다』면서 독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환영했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