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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이 항일 무기…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중국의 3대 악성’

    음악이 항일 무기…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한 ‘중국의 3대 악성’

    정율성은 ‘중국인민해방군가’와 ‘옌안송’ 등 360여곡을 작곡한 작곡가로 중국인의 심금을 울린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항일운동가로서 정율성을 언급하기는 의열단장 김원봉처럼 조심스럽다.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귀국한 뒤 월북한 인물인데 남한 출신인 정율성은 광복 후 북한으로 들어갔고 6·25 전쟁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했다. 그 때문에 정율성은 이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국내에서 그의 생애는 오래도록 조명받지 못했다. 2018년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이 광복절 기념식에 중국에 거주하는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鄭小提)를 초청했을 때 논란이 됐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정율성은 1914년 8월 27일 광주광역시에서 정해업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의 공식 생일은 1918년 8월 13일로 돼 있다. 정율성이 생년을 4년이나 늦춰 적은 이력서를 당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율성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외적과의 싸움에서도 최후의 결전에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승전고를 울린단다. 군대가 진군할 때 사기를 돋우는 데는 우렁찬 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군가가 없거든….” 온종일 만돌린만 켜고 노래를 부르는 정율성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군가가 없다’는 말은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앞날을 예견한 듯했다.●분열된 독립운동단체 대동단결 결의문 주도 정율성가(家)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맏형 정효룡(건국훈장 애족장)은 임시정부 서기로 일했고 국내에서 선전활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다. 둘째형 정인제는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국민혁명군으로 북벌에 참여했다. 셋째형 정의은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학생을 모집하고자 국내에 잠입했다. 큰외삼촌 최흥종은 평생을 나환자를 돌보는 데 바쳤으며 작은외삼촌 최영욱은 의학박사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부다. 매형 박건웅(독립장)도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항일운동가다. 이런 가풍 속에서 자란 정율성이 중국행을 꿈꾼 것은 자연스러웠다. 마침 셋째형 정의은이 ‘조선혁명간부학교’ 2기생을 모집하러 국내에 들어와 입학을 권유했다. 항일의식이 투철했던 전북 전주 신흥중학을 중퇴한 정율성은 1933년 5월 8일 전남 목포항을 떠나 일본을 경유해 5월 13일 상하이 푸둥항에 도착했다. 함께 중국 땅을 밟은 이들은 모두 여섯이었는데 조카 정국훈도 있었고 1990년대에 광복회장을 지낸 김승곤도 있었다. 8개월 동안 그는 간부학교에서 군사학과 사회주의 이념을 배웠다. 매형 박건웅은 교관이었다. 1기 졸업생 중에는 시인 이육사와 석정 윤세주도 있었다.학교를 졸업한 정율성은 일본인들의 전화를 감청하며 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러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을 맞았는데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출신인 크리노와 교수를 소개받아 체계적인 성악 지도를 받은 것이다. 이름도 본명인 정부은에서 선율로 성공하겠다는 뜻을 담은 ‘율성’(律成)으로 바꾸며 음악에 몰두했다. 정율성은 상하이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특출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정율성에게 크리노와는 이탈리아 유학을 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정율성은 항일운동을 포기할 수 없었다. 1937년 8월 정율성은 마오쩌둥이 홍군(紅軍)을 지휘하고 있던 산시성 옌안에 도착했다. 그에게 옌안은 공산당의 본거지이기에 앞서 항일투쟁의 사령부였다. 옌안행에는 먼저 그곳으로 간 ‘아리랑’(님 웨일스)의 주인공 김산과 독립운동가 김성숙의 부인 두쥔훼이가 큰 영향을 주었다. 1936년 6월 정율성은 난징에서 김산과 한 달 동안 함께 지냈다. 옌안에서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어느 날 노신학원 문학학부 동기생인 모예(莫耶)가 노랫말을 들고 왔다. 정율성은 곡을 붙여 만돌린으로 반주도 하며 청중 앞에서 불렀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오르고 연하강 물결 위에 달빛 흐르네…” 마오쩌둥도 함께한 청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노래가 바로 옌안 정신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극찬을 받고 지금도 중국에서 널리 불리는 ‘옌안송’이다. 옌안송은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미국까지 퍼져 나갔다. ●당 결정 따라 北에… 조선인민군행진곡 작곡 1938년 8월 노신학원을 졸업한 정율성은 항일군정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틈날 때마다 작곡을 했다. 그 무렵 우리 독립운동 단체들은 사분오열돼 있었다. 정율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대동단결을 촉구하는 결의문’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듬해 7월 항일군정대학 군정단에 있던 궁무(公木)의 가사에 음을 붙여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현재 중국군의 공식 군가로 확정된 ‘중국인민해방군가’다. 그의 노래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명곡이 됐다. 정율성에게 일제와 싸운 무기는 음악이었다. 정율성은 노신예술학원 교수가 됐고 나중에 최초의 여성 중국 대사가 되며 저우언라이의 양녀로 알려진 딩쉐쑹(丁雪松)과 결혼, 가정도 꾸렸다.1942년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이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던 태항산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아 전투에 참여하고 후방 공작도 했다. 그러면서 광복을 맞았다. 정율성은 오랫동안 항일활동을 했고 부인의 조국인 중국에 남지 않고 당의 결정에 따라 조선의용군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군행진곡’도 작곡했다. 광주에 있던 어머니를 조카가 데려오자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 다시 어머니, 부인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갔다. 6·25 때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전선 위문활동을 했다. 정율성도 문화혁명을 피하지 못하고 고초를 겪었다. 자연에 묻혀 은둔하던 정율성은 든든한 후원자였던 저우언라이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76년 12월 7일 갑작스레 뇌일혈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중국의 국립묘지인 베이징 교외 팔보산혁명공묘에 묻혔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외동딸 정샤오티(1943년생)는 광주를 찾아 음악회 등 아버지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한중 우호활동에 힘쓰고 있다. 동요, 민요, 군가, 뮤지컬, 오페라, 영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남긴 정율성의 업적은 현대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리는 녜얼(耳·중국 국가 작곡가), 셴싱하이(星海)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가 창작한 동요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2000년대에 들어 한중 양국에서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순안공항에서 연주된 곡은 정율성의 ‘조선의용군행진곡’이었다. 2005년 중국 전승절 60주년에 신중국 건국 100인의 영웅 중 여섯 번째에 오른 이름은 정율성이었다. 중국 하얼빈에는 정율성기념관이 세워졌다. ●광주시, 생가 복원 등 추진… 하얼빈엔 기념관 우리도 그가 자란 광주 양림동에 정율성거리를 조성해 사진과 작품을 전시하고 생가도 단장했다. 기념사업회도 구성돼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찾아본 정율성거리는 훼손이 적지 않았고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개인 소유인 생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정율성 음악제도 매년 열려 왔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진행이 더뎌지고 있다. 광주시는 지난 5월 생가 부지 매입과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양림동에는 기념관을 짓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본적지로 돼 있는 불로동에는 역사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선양사업만큼 중요한 향후 과제는 그의 이념과 행적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례적 모습” 김정은 둘러싼 총 든 北군 간부들

    “이례적 모습” 김정은 둘러싼 총 든 北군 간부들

    김정은, 연일 공개행보…이달에만 8번째전승절 맞아 군 사기 진작열사묘 참배와 기념권총 수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승전’ 67주년을 맞아 군의 사기를 진작하는 행보를 진행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김 위원장이 군 주요 간부들에게 ‘백두산’ 기념 권총을 수여했다고 보도했다. 기념 권총은 군수 노동계급에서 새로 개발한 것으로,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이름을 새겨 이를 군 간부들에게 선물했다. 신문은 수여식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군 간부들이 권총을 들고 김 위원장을 둘러싼 채 기념사진을 찍은 이례적 모습도 공개했다. 다만 이날 수여식에는 군의 최고위급 간부인 총정치국장과 인민무력상이 직급,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다.일각에서는 이들이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일 가능성이 있는 ‘재입북자’ 사건과 관련된 이번 수여식에서 빠졌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북한은 김 위원장이 주재한 당 정치국 비상확대회의 소집 사실을 전하며 지난 19일 한 탈북자가 3년 만에 고향인 개성으로 불법적으로 귀향했으며 그가 코로나19 확진자로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해당 인물의 월남 도주 사건과 관련한 지역 전연부대의 허술한 전선 경계 근무 실태를 엄중이 지적하고 책임이 있는 부대에 대한 집중 조사 결과를 보고 받아 엄중한 처벌을 적용할 것이 논의됐다고 덧붙였다.김정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열사묘도 참배 신문은 김 위원장이 박정천 총참모장 등 군 지휘관들과 함께 참전열사묘를 참배하며 “가렬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혁명의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마련한 1950년대 조국수호자들의 불멸의 공훈은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달에만 8번의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월 집계 기준으로는 올들어 최다 공개 행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트럼프·김정은 내년 5월 러시아서 만날까

    트럼프·김정은 내년 5월 러시아서 만날까

    러, 2차대전 승전 75주년 기념식 초청 트럼프 “가고 싶다”… 金은 답변 없어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내년 5월 9일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러시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 정상이 모두 참석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내년 5월 러시아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러시아의 초청에) 감사하다”면서 “정치적 시기 한가운데 놓여 있어 참석 여부는 봐야 알겠지만 될 수 있다면 가고 싶다”고 말했다. 2020년 11월 열리는 미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참석 여부를 당장 확정할 수는 없지만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북한 모두 러시아의 초청에 공식 답변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미 정상의 내년 5월 러시아 만남은 가능성은 있지만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내년 5월 러시아 전승절 행사 참석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선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에다 상원의 탄핵 조사가 그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러시아로부터 승전 75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참석을 검토 중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일본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0일 전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北 리설주 6월 이후 122일째 두문불출 왜

    넉 달 은둔 이례적… 임신·출산설 제기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6월 이후 넉 달가량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0일 북한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리 여사는 지난 6월 20~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의 방북 당시 모든 공식 일정에 참석한 이후 122일째인 20일까지 공개 행보를 하지 않고 있다. 리 여사가 올해 상반기에 김 위원장의 공개 행보 중 6차례 일정을 동행하며 한 달에 한 번꼴로 공개 석상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네 달 동안의 ‘두문불출’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리 여사는 지난 1월 7~10일 김 위원장의 방중을 시작으로 2월 8일 건군절 71주년 경축공연 관람, 4월 16일 신창양어장 현지지도에 동행했다. 지난 6월에는 2일 군인가족예술소조공연, 3일 대집단체조·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공연, 20~21일 시 주석 내외의 방북 행사 등 세 차례의 일정을 소화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7월 이후 리 여사 없이 23차례 공개 행보를 이어 갔다. 김 위원장의 하반기 일정의 약 39%가 신형 무기 시험사격 현지지도 등 군사 일정이어서 리 여사가 동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 7월 27일 ‘전승절’ 즈음 국립교향악단 기념음악회 관람, 지난 10일 당 창건 74주년 경축공연 관람 등 리 여사가 상반기에 참석했던 비슷한 문화 일정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리 여사의 이례적인 은둔으로 일각에서는 임신·출산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앞서 리 여사는 2016년에도 약 9개월간 모습을 감췄다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당시 임신·출산설 등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된 바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사라진 리설주…122일째 공개석상 안 나서

    사라진 리설주…122일째 공개석상 안 나서

    지난 6월 이후 北매체 한 차례도 언급 없어시진핑 방북 일정이 마지막…김여정은 활발 올해 6월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각종 현지지도와 정상회담 등에 동행하며 존재감을 나타냈던 리설주 여사가 4개월 가까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관심이 모아진다. 20일까지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올해 상반기 리설주 여사는 지난 1월 7~10일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에 동행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6차례 공개 행보를 보였다. 2월 8일 건군절 71주년 경축공연을 관람하고, 4월 16일 신창양어장 현지지도에도 함께했다. 지난 6월 들어서는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2일)과 대집단체조·예술공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3일) 관람에 이어 20~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의 첫 국빈 방문 기간 모든 공식 일정에서 ‘안주인’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그러나 시진핑 방북을 끝으로 벌써 122일째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하반기에도 비교적 활발한 공개 활동을 이어왔던 터라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이 기간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가 대부분 미사일 시험방사 등 무기 개발 현장방문과 같은 비교적 ‘무거운’ 정치·군사 일정에 집중됐던 만큼 동행이 여의치 않았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다만 7월 8일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 행사나 7월 27일 전승절 66주년 기념음악회와 같은 국가행사 일정에도 리설주 여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벌써 4개월 가까이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달에도 북미 실무협상 결렬 직후부터 농장 방문, 백두산 등정 등 열흘 새 벌써 네 차례의 공개 행보를 벌였는데, 관련 보도 어디에도 리설주 여사의 동행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리설주 여사가 한 달 이상 남편의 공식행보에 함께하지 않은 것은 최근 흐름을 보면 다소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매체들이 리설주 여사에게 ‘여사’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해의 경우 최소한 월 1회 이상은 그의 동행이 언급됐다. 최근 몇 년 사이 남북, 북중 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한동안 ‘부부 동반’ 행보를 공식화했던 김정은 위원장이 갑자기 ‘단독행보’로 전환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리설주 여사는 지난 2016년에도 약 9개월간의 두문불출 끝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데 당시 임신·출산설을 비롯한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됐다. ‘퍼스트 레이디’의 공백이 장기화하는 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리설주 여사가 불참한 김일성 주석 추모 행사를 비롯해 최근에는 무기개발 시찰 등에서도 동행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지난 16일 백두산 등정 보도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바로 옆자리를 지키며 ‘백두혈통’의 위상을 뽐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韓과 냉랭, 北과 화해, 러와 밀착… 한반도문제 전환기에 선 중국

    韓과 냉랭, 北과 화해, 러와 밀착… 한반도문제 전환기에 선 중국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70주년과 한중 수교 27주년이다. 그간 두 나라는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세계 외교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비약적인 교류 발전을 일궜지만 2016년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빙하기에 들어갔다. 반면 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북중 관계는 지난해 북미 핵협상 재개를 계기로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여기에 ‘반미’를 매개로 중러 관계도 새로 정립되고 있다. 중국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는 모습이다. ●사드 배치로 어그러진 한중 관계 2일 중국 외교가 등에 따르면 중국은 수교국과의 관계를 크게 5단계로 분류한다. 단순 ‘수교관계’에서 ‘선린우호관계’, ‘동반자관계’, ‘전통적 우호협력관계’, ‘혈맹관계’의 순으로 협력 수위가 높아진다. 한중 두 나라는 1992년 선린우호관계로 시작해 1998년 협력 범위를 확대하는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했다. 이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2003)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2008)로 단계를 높이며 꾸준히 거리를 좁혔다. 이제 한국은 중국의 3대 교역 대상국으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대상국으로 발돋움했다. 일부 경제 전문가는 “1990년대에 우리가 중국과 수교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중진국의 덫’(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전후해 국가 성장이 지체되는 현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본다.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는 “딸과 함께 시 주석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시 주석과 베이징 톈안먼 성루에 올라 항일전쟁 승리 기념(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봤다. 같은 해 12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발효됐다. 이 시기가 두 나라 관계의 최절정기였다. 하지만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북한 압박의 키를 쥔 중국의 반응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박 대통령은 미국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사드 배치를 공식화했다. 중국은 사드를 미국의 대중 견제무기로 여겨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은 한국 연예인과 문화 콘텐츠를 규제하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에도 보복을 가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도 크게 줄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양국 관계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사드 이전 관계’로 복원하려면 갈 길이 멀다. 두 나라 모두 냉엄한 지정학적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외교관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악화일로 걷던 북중 관계는 데탕트 2017년 12월 중국 권력서열 4위 왕양 부총리는 중국을 방문한 야마구치 나쓰오 일본 공명당 대표에게 북중 관계에 대해 “과거에는 피로 굳어진 관계였지만 지금은 핵 문제 때문에 대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최고위급 인사가 북한과의 관계를 ‘대립’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북중 관계는 심각한 균열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시 주석에게 보낸 축전에서 “우리는 중국 당과 정부와 인민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언제나 (중국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6일 북중 수교 7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방중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가 읽힌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 내 조선인들이 만든 ‘조선의용군’은 중국 공산당 근거지인 산시성 옌안에서 팔로군과 항일활동을 벌였다. 중국도 6·25전쟁 때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를 명분으로 인민지원군을 파견했다. 이렇게 맺어진 두 나라의 혈맹 관계는 1961년 북중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극에 달했다. 하지만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맺은 뒤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중국에 안보를 의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북한은 핵 개발에 착수했다. 이에 중국이 지속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그러다가 지난해 초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서면서 관계가 급변했다.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해야 하는 북한은 전통 우방인 중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중국도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북한을 지렛대로 더 이용할 필요를 느꼈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중국은 비핵화 과정에서 자신의 국가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면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북한이 중대 외교 사안을 결정할 때 중국에 자문하는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미 매개로 러시아와도 관계 개선 북한과 마찬가지로 2일 수교 70주년을 맞은 러시아와의 중국 관계도 한층 끈끈해지고 있다.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빈이 됐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과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중국과 러시아가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갑자기 밀착했다. 그만큼 미국이 이들 국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미국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러 양국이 힘을 합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정성장 세종硏 본부장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 평가’ 발표문

    정성장 세종硏 본부장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 평가’ 발표문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28일 일본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민간남북경제교류협의회와 일본 동아시아총합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동아시아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파워 엘리트 변동 평가‘ 발제문을 소개한다. 이번 심포지엄 주제는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과 국제사회의 역할― 한일 관계 개선과 북일 국교 정상화를 향하여’로 정해졌는데 이수성 전 총리와 하토야마 전 총리가 20분씩 기조 강연을 하고 김덕룡 수석부의장과 아베 도코모 의원이 5분씩 축사를 하게 된다. 정 본부장 외에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 안드레이 란코프(러시아) 국민대 교수, 문호일(북한) 일본 일교대학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주제 발표에 나선다. 다음은 정 본부장의 발제문 요지다. 분량 때문에 ‘Ⅰ. 파워 엘리트 변동 요인’과 ‘Ⅱ.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결과: 세대교체의 완료, 외교?경제 엘리트의 부상, 군부의 위상 약화’는 생략한다.Ⅲ.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결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무국의 확대 개편, 내각 엘리트의 위상 강화 ○ 북한은 지난 4월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하고, 4월 1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와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당과 국가기구의 지도부를 대폭 개편했음.-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는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소환되었음. - 그리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중에서는 양형섭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소환됨. 리명수 인민군 최고사령부 제1부사령관도 정치국 위원직에서 소환된 것으로 판단됨. - 신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는 김재룡 내각 총리 내정자, 리만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최휘 근로단체 담당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박태덕 농업 담당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수길 인민군 총정치국장, 태형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내정자, 정경택 국가보위상이 보선되었음. 이 중 김재룡과 태형철은 처음으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진입했고, 리만건, 최휘, 김수길, 박태덕은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위원으로 승진함. -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는 조용원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덕훈 내각 부총리, 리룡남 내각 부총리, 박정남 강원도당위원장, 리히용 함경북도당위원장, 조춘룡 제2경제위원장이 보선되었음. - 그 결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수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가장 많은 34명으로 늘어남.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이루어진 인사에서 특기할 점 하나는 박봉주가 바로 다음날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내각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지만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임.- 이는 북한의 경제 개혁과 개방을 주도해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한 신임을 반영하는 것으로써 박봉주는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새로 맡아 김정은의 경제정책 결정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게 되었음. ○ 리만건의 핵심 실세로의 부상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인사도 주목할 부분임.- 리만건 전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조직지도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회 위원직도 겸직하게 되어 새로운 실세로 부상하게 되었음. -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자주 수행해온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은 제1부부장으로 승진하면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선출되어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 지위를 더욱 굳히게 되었음.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군사 담당 제1부부장도 황병서에서 김조국으로 교체된 것으로 분석됨. 김조국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에도 보선되어 신 실세로 부상했음. ○ 내각 엘리트의 당내 위상 강화도 이번 당 지도부 개편의 매우 중요한 특징임.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는 김덕훈, 리룡남 내각 부총리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어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내각 엘리트의 비중이 더욱 커졌음. ○ 박봉주가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됨으로써 김정은의 정책결정을 일상적으로 보좌하는 당중앙위원회 정무국 구성원은 역대 가장 많은 13명으로 늘어나고 정무국에서 경제 엘리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더욱 커졌음. -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이 최룡해에서 리만건으로 바뀜에 따라 정무국에서 최룡해가 소환되고 리만건이 새로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되었음. ○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장금철과 김동일이 새로 당중앙위원회 부장직에 임명되었음. - 장금철은 김영철이 맡고 있었던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직에 임명됨. -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직을 맡고 있다가 황해남도당위원장직에 임명된 리철만의 후임으로 김동일은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직에 임명된 것으로 추정됨. ○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김재룡 내각 총리, 리만건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 태종수 당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장, 김조국 당중앙위원회 군사 담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보선되었음. - 내각 총리에 임명된 김재룡 전 자강도당 위원장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에도 선출되어 군사정책 결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음. - 당중앙군사위원회와 국무위원회의 구성원들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후자에 포함되지 않은 인민군 총참모장(리영길), 총참모부 작전총국장(박수일), 인민무력성 제1부상(서홍찬)과 정찰총국장(장길성)이 들어가 있어 북한군을 지휘하기에 보다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음.Ⅳ.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결과: 국가기구에서의 세대교체 완료, 국무위원장과 국무위원회의 위상 강화 ○ 북한은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개최해 헌법을 개정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김영남에서 최룡해로, 내각 총리를 박봉주에서 김재룡으로 교체하는 등 큰 폭의 국가기구 지도부 개편을 단행했음. - 이번 국가기구 개편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 명문화, 국무위원회와 외교 라인 및 내각 엘리트의 위상 강화, 지도부 세대교체의 완성 등으로 특징지어짐. ○ 이번 헌법 개정 이전까지만 해도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직책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었음. - 그런데 4월 11일 헌법 개정으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로 규정됨으로써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두 명의 지도자가 ‘국가를 대표’하게 되었음. - 물론 미국,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중요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국가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두 직책 간의 권한의 충돌은 없을 것임. ○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북한의 외교라인이 대폭 강화되고 국무위원회의 역할이 더욱 확대된 것으로 분석됨. - 대외적으로 북한의 ‘국가(국가기구)’를 대표해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고령의 외교 엘리트인 김영남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실세 측근인 최룡해로 교체됨으로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위상이 더욱 높아짐. - 과거에 김영남은 국무위원회에서 그 어떠한 직책도 맡지 못했음. 그러나 최룡해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직뿐만 아니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도 임명되어 필요하다면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의 외교 엘리트들을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음. - 그리고 국무위원회에 북한의 외교 관련 최고책임자들뿐만 아니라 대미 협상에 참여해온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까지 들어감으로써 외교 라인이 대폭 강화되었음. ○ 박봉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내각 총리직에서 소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위원회에서 계속 부위원장직을 맡게 되어 국무위원회 위원에 임명된 김재룡 신임 내각 총리보다 더욱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 - 박봉주는 내각 총리 해임 이후에도 최룡해, 김재룡과 함께 ‘현지요해’를 계속하고 있음. ○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 등 국가기구의 핵심 간부들 세대교체가 거의 완성됨.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만 91세의 김영남에서 만 69세의 최룡해로 바뀜으로써 나이가 22세나 젊어졌음.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94세의 양형섭이 소환되고 대신 만 66세의 태형철 전 고등교육상이 선출되었음. - 최고인민회의 의장도 만 89세의 최태복에서 만 64세의 박태성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바뀜으로써 나이가 25세나 젊어졌음. - 김재룡 신임 내각 총리의 나이도 만 80세의 박봉주 전 내각 총리보다는 훨씬 젊은 것으로 판단됨. ○ 4월 12일자 북한 로동신문은 이례적으로 내각의 총리와 부총리 및 상(장관)들까지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음. - 이는 내각 엘리트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어 초고강도 대북 제재로 인한 현재의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됨. Ⅴ. 종합 평가와 전망 ○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의 당과 국가 지도부 개편을 통해 사실상 ‘외교?경제 병진정책’을 공식화한 것으로 분석됨. ○ 항일빨치산 2세의 대표주자인 최룡해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장이라는 매우 영향력 있지만 ‘위험한’ 직책을 측근인 리만건에게 넘겨주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라는 보다 안전한 직책으로 옮김으로써 명예와 영향력 모두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됨.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김여정, 현송월, 최선희 등 여성 엘리트들의 부상도 주목할 만한 현상임. - 김여정은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들과 동급의 핵심 지도자 지위에 오른 것으로 분석됨. - 과거 김여정 제1부부장이 맡았던 김정은 위원장의 행사 참가 지원 업무를 현송월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담당하게 되면서 현송월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높아짐. -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국무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직에 선출되고 현재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됨. - 공식적으로는 리용호 외무상이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지만 리용호는 과거에 영국과 아일랜드 대사를 지낸 유럽통으로 현재 전세계를 대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해야 하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임. - 지난 7월 27일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 기념 음악회에 김여정과 최선희는 김 위원장 좌우로 각각 두 번째 자리에 앉았음. 두 사람 모두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리수용·김영철보다 김 위원장과 더 가까운 자리에 착석해 실세 지위를 과시함.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은 외교와 경제, 여성 엘리트의 부상, 군부의 위상 약화, 군수공업 분야 엘리트의 견고한 위상 유지 등으로 특징지어짐. - 이 같은 엘리트 변동 결과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보다 유연하고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모색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등 재래식 전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 그런데 북한의 비핵화 협상 라인이 군부 출신의 김영철에서 외무성 인사로 교체되었다고 해서 북한의 대미 협상 전략이 단기간 내에 큰 변화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임. - 현실적으로 북한 내부에서 누구도 김정은 위원장에게 과감한 비핵화 협상안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에서 김정은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함으로써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확신을 주어야 할 것임. -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대한 포괄적 공정표’에 합의하고 이를 단계적?동시적?병행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함. 정리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서울포토] 김여정은 웃는데, 심기 불편한 김정은

    [서울포토] 김여정은 웃는데, 심기 불편한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66주년(북한은 전승절로 기념)을 맞아 국립교향악단의 ‘7·27 기념음악회’를 관람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8일 보도했다. 사진은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것으로, 김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베이징도 혹했다 … 對中 교류 대상감 ‘박·나·뢰’

    베이징도 혹했다 … 對中 교류 대상감 ‘박·나·뢰’

    中 민감한 ‘미세먼지 대응’ 발판 놓고 베이징 ‘빨간 바지 마케팅’ 화제 만발 발길 뜸했던 유커 다시 서울로 불러 “말 한마디에 한중관계 금 갈라 조심”지난달 25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3박 4일 일정으로 3년 만에 중국 베이징을 찾았다. 방문 기간 베이징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박 시장은 천지닝(陳吉寧) 베이징시장 등을 만나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대기질’을 화두로 끄집어냈고, 미세먼지 심각성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한·중 두 도시의 미세먼지 공동 대응 발판을 마련했다. 한동안 뜸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의 발길과 투자자 시선을 서울로 돌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박 시장이 이처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대중국 협력·교류를 선도하는 서울시 ‘미녀 3인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교류 사업을 총괄하는 박인성 국제교류담당관 주무관, 중어권 언론 홍보를 전담하는 한나리 언론담당관 주무관, 중국인 시각에서 유커 유치 전략을 짜는 이뢰 관광사업과 주무관, 일명 ‘박나뢰’가 그 주인공이다. “대중국 업무는 변수의 연속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요. 행사 하나를 추진하려면 100가지 경우의 수를 헤아려야 하고, 각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 21일 서울시청에서 만난 박나뢰 3인방은 중국 사회의 특성상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나뢰의 맏언니인 박 주무관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후 2002년 서울시에 입사해 16년간 한·중 교류 사업을 이끌어온 베테랑이다. 그런 그도 중국 순방을 준비할 때면 매번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고 한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극복을 위해 중국을 다녀온 이후엔 ‘이석증’까지 앓았다. 박 주무관은 “메르스로 인한 서울에 대한 호감도 추락과 유커 급감을 막기 위해 결정된 긴급 순방이었다”고 했다. 당시 중국은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야외 행사를 전면 금지했다. 박나뢰 3인방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베이징 중심거리에서 관광홍보 활동을 펼치는 계획을 세웠고,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고 성사시킨 박 시장의 ‘빨간 바지 마케팅’은 양국에서 화제를 모았다. 박나뢰 3인방이 자매 이상의 정으로 똘똘 뭉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이듬해 포상관광으로 서울을 찾은 중마이그룹 직원 8000여명을 한강 삼계탕 파티장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박나뢰 파트너십’은 서울시 고유 브랜드로 굳어졌다. 박나뢰 막내이자 2013년 입사 이후 중국 언론인을 상대로 서울시 ‘입’ 역할을 하는 한 주무관은 “제 말 한마디가 한·중 관계를 금가게 하는 건 아닐까 매순간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했다. 이 주무관은 중국인 1호 서울시 공무원이다. 2005년 청계천 오프닝 행사 통역을 계기로 2007년 서울시에 입사했다.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한다. 이 주무관은 “태생적인 양국의 간극을 자신에게 엄하고 남에게 관대하라는 ‘엄기관인’(嚴己寬人)의 자세로 좁혀가고 있다”고 했다. 박나뢰 3인방의 최근 관심사는 중국의 떠오르는 ‘동북3성’인 지린(吉林)성·랴오닝(遼寧)성·헤이룽장(黑龍江)성과의 교류다. 이들의 각오는 비상했다. “중국은 한번 외교 전략을 세우면 담당자가 20~30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뚝심 있게 추진합니다. 이런 중국과 돈독하게 교류해 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동북3성에서도 서울시 위상을 드날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김정은 첫 訪中] 김정일도 2000년 남북회담 앞두고 방중… 닮은꼴 행보

    이번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중국 베이징 방문은 2000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문 목적과 비슷하다. 김정일 위원장도 첫 남북 정상회담을 2주 앞두고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중 관계를 복원하고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북·중 관계 복원 목적도 ‘판박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한 북한 고위급 인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시 노동당 행정부장이었다. 장성택은 2012년 8월 나선경제무역지대 공동 개발 북측 위원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고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장성택을 특사급으로 예우했다. 하지만 북한이 2012~2013년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친중파로 분류된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되면서 북·중 관계는 얼어붙었다. 이후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2015년 9월 중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주석과의 단독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2016년 6월에는 노동당 대표단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수용 당 부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인사와 구두 친서를 전했다. ●김정은, 장성택 처형 후 북·중 냉각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8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0년 5월 29일부터 사흘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하고 1992년 한·중 수교로 다소 소원해진 북·중 관계 복원에 주력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이후 2001년 1월과 2004년 4월, 2006년 1월 중국을 집중 방문하면서 후진타오 당시 주석 등 중국 4세대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고 경제협력 문제 등에 대한 논의도 심도 있게 이뤄졌다. 김 국방위원장은 건강이 악화되고 북한의 1·2차 핵실험 이후 양국 관계가 나빠진 2010년 5월 다섯 번째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중국의 경제 발전 모델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으나 중국 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지원을 얻지 못했다. 김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원조와 경제발전이 주목적으로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유일하게 의존할 ‘혈맹’이 중국이라는 당시의 시각을 반영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행사는 단출했지만… 北 ICBM급 화성 14ㆍ15형 실물 공개

    행사는 단출했지만… 北 ICBM급 화성 14ㆍ15형 실물 공개

    북한이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실시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은 내부용으로 지난해 대비 규모가 크게 축소됐지만, 보여 줄 건 다 보여 준 행사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과 화성15형 실물을 공개했다. 지난해 4월 15일 실시된 김일성 105주년 생일(태양절) 기념 열병식에서는 두 ICBM의 발사관만 공개했지만 이후 두 차례씩의 시험발사로 성능을 검증하자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열병식에서는 이 밖에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과 군사분계선(MDL)에서 쏘면 계룡대까지 사정권인 300㎜ 방사포 등 대미 전략자산과 대남 위협무기 등을 모두 보여 줬다.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로키’(low-key)로 평가된다. 우선 행사 시간이 대폭 줄었다. 열병식은 이날 오전 11시 30분(북한시간 11시)부터 1시간 40분여 진행됐다. 2시간 50여분간 진행된 지난해 열병식보다 1시간 이상 줄어든 것이다. 2월 열병식은 북한으로서도 처음이라 강추위를 의식한 시간 단축으로도 볼 수 있다. 동원 장병 및 주민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짙은 입김이 나왔고, 주석단에 자리잡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열병식을 관람했다.김정은 연설도 ‘내부’에 집중했다. ‘핵단추’ 등 미국을 자극할 만한 표현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김정은은 대신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발전된 강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상을 과시하게 됐다”는 등 건군절 의미 등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외신과 외빈들을 대거 초청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문을 걸어잠근 채 내부 행사로만 치른 점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또 이례적으로 생중계가 아닌 편집녹화분을 6시간 만에 방영했다. 북한이 이처럼 로키로 방향을 잡은 것은 김정은이 여동생인 김여정을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로 파견하는 등 북한이 취하는 대대적인 평화 공세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전 세계 이목이 열병식에 쏠리면 자신들의 평화 제스처라든가 진정성 자체가 불신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대화 등을 통해 북·미 관계 개선,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까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북한으로서는 대대적인 열병식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것에 부담을 가졌을 수도 있다.군의 한 소식통은 “지난해 미 전략폭격기가 원산 인근까지 비행했을 때 북한 지도층 내부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면서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가시화되는 것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 부인인 리설주가 열병식에 처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조선중앙TV 아나운서는 ‘리설주 여사’라고 호칭했다. 주석단의 변화도 눈에 띈다. 최근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김정각이 김정은 오른쪽 옆자리를 차지한 채 사회를 봤다. 원래 황병서가 지켰던 자리다. 황병서는 현재 사상교육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리설주와 9일 방남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박봉주 내각 총리 등은 별도로 마련된 특별석에 자리잡았다. 김여정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주석단 뒤에서 긴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또다시 포착됐다. 최근 6년간 실시된 북한의 열병식은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60주년과 같은 해 9월 9일 정권수립 65주년,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그리고 지난해 4월 15일 태양절 105주년에 이어 이번 건군절 70주년까지 6차례나 된다. 주요 기념일이 많아 5년, 10년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가 매년 돌아오고 있어 열병식 또한 거의 매년 하고 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대중국 레버리지가 없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대중국 레버리지가 없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한·중 관계에 훈풍이 솔솔 분다. 한·중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동결’한 데 이어 정상회담을 열면서 꽉 막혔던 양국 간 교류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았던 관광 업계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맞을 채비로 부산하다. 항공 노선은 속속 증편되고 명동과 백화점 면세점은 마케팅 열기로 뜨겁다. 부산 중소기업청이 상하이 펑셴(奉賢)개발구와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광주시는 다음달 1일 상하이에 사무소를 개설한다. 24일에는 한·중 학자들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한·중 차세대 정책 전문가 포럼’이 개최되고, 이달 말에는 기업인·학자들이 참석하는 ‘한·중 협력포럼’이 열린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다음달 초 베이징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협력 사업을 소개한다. 사드 보복으로 불거진 경색 국면이 눈 녹듯 한순간에 풀리고 있는 셈이다. 관계 회복 소식은 반갑지만 쫓기듯 이뤄지는 것은 유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기에는 사드 보복으로 우리가 입은 생채기가 너무 크다. 코리 가드너 미국 상원 동아태소위원장은 “중국은 한국 경제에 90억 달러(약 10조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지적했고, KDB산업은행은 손실 규모를 22조원으로 추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직접 손실 18조원, 직간접 생산유발 손실 34조원, 부가가치 유발 손실 15조원 등 67조원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마당에 정부는 중국과의 분쟁이 불거지기만 하면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 서둘러 봉합했다. 2000년 마늘분쟁과 2005년 김치분쟁 등 주요 분쟁 협상 때마다 큰소리 한번 내보기는커녕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이 대중국 레버리지만 헌납하곤 했다. 물론 국가 운영에 경제가 매우 중요한 만큼 중국과의 관계 회복이 필수적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현상 타개에만 집착한 나머지 요긴하게 쓸 ‘무기’를 손쉽게 넘겨주었다. 1992년 수교 때는 6·25 전쟁에 대한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고, 2000년 마늘분쟁 때는 농민보다는 재벌을 위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철회했다. 2005년 김치분쟁 때는 덤핑 방패막이인 시장경제지위(MES)를 양보했고, 2015년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중국 전승절 참석’ 카드를 갖다 바쳤다. 이번에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3불 입장’(사드 추가배치 불검토, 미 미사일방어(MD)체계 불참여, 한·미·일 안보협력 군사동맹 불격상)채택을 선물했다. 과거에는 산업기술 수준이 앞서다 보니 이를 협상수단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형마트들은 중국에서 짐을 싸야 했고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 스마트폰과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은 곤두박질친다. 차세대 ‘4차 산업혁명’ 기술도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와 유용한 지렛대가 못 된다. 더구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며 한국의 책임 있는 조치를 거론해 ‘사드 불씨’가 상존한다. 한류 콘텐츠 제한과 한국 여행 금지가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제 중국에 내놓을 히든 카드가 없는 현실에 직면했다. 한·중 관계 회복에 들뜨기보다 냉철하게 새로운 대중국 레버리지 마련을 모색해야 할 때다. khkim@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미·중·일 속의 한국/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중·일 속의 한국/이석우 도쿄 특파원

    “한국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외교 정책을 다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박근혜 정권 초기 가까워지던 한·중에 대해 당시 일본의 정책 결정자들과 한반도 관련 업무 종사자들은 신랄하다 못해 거칠고 감정 섞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2015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방문으로 이 같은 반응은 절정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곤두박질치던 한·일 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더 꼬였고, 정부 관계 악화를 넘어 국민 감정까지 건드리며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이 방한하려면 사과가 필요하다”는 발언 등을 계기로 불붙은 반한 감정은 ‘헤이트 스피치’ 확산과 일본 내 한류 냉각 등으로 옮겨 가며 심화하고 있었다. 거기에 박근혜 정부의 ‘대중 접근 정책’은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키고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한·중 밀착’에 대한 일본 내 반응은 예상 밖으로 감정적이고 민감했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 됐나?” “한국이 중국의 일부분이 돼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일본 여론 주도층들을 만났던 한국인들은 “이렇게까지 과민 반응를 할 수 있나”라며 놀란 모습이었다. 일본 내 이런 반응은 한·중 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불거지자 사그러드는 분위기지만, 한국의 ‘중국 경사론’에 대한 경계는 여전하다. 냉전시대 일본에게 한국은 북한과 옛소련 등으로부터 자국을 지켜 주는 ‘안보 방파제’이자 전방의 개념이 강했다. 전두환 정부가 1983년 당시 일본의 경협자금을 얻어 내는 과정에서 집단안보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내세웠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지금도 그런 경향은 여전하고, 안보 방파제의 ‘변심’을 자국의 안보 불안으로 연결시킨다.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면서 한·일 양국은 미국을 둘러싸고 소위 ‘고자질 외교’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의 중국 중시 문제점을 제기하며 미국을 자극했다. 버락 오바마 미 정부도 아시아 회귀·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중국 접근 정책을 의구심 속에서 달가워하지 않았다.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동북아 역학 관계를 변화시키면서 한국 외교의 시련과 고민을 더했다. 한국은 자칫 의구심으로 덜커덩거리는 한·미 동맹 속에서 일본과는 역사 갈등, 중국과는 안보 갈등을 겪는 사면초가의 상황 속에 빠질 수도 있다. 때마침 베트남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과 이어 필리핀에서 개최되는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담 등은 ‘중소 규모’의 동남아 국가들이 덩치 크고 일방적 미·중을 상대하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압도적 힘을 가진 거인들에게 둘러싸인 중견국 한국이 주변 강국들의 힘과 무게에 질식되지 않고 자존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중 정상은 지난 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와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러나 강대국의 달콤한 말과 선의에만 운명을 맡기기엔 현실은 냉혹하고 가변적이다. 아세안 국가들처럼 다자적 그물망을 생존과 자존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미·중 사이에서 비슷한 처지인 일본과의 전략적 관계 강화는 동북아 다자적 관계 형성의 출발점은 될 수 없을까. 베트남에서 열린 외교 제전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jun88@seoul.co.kr
  • 북한, “고위급 인사 제외하고 주유소 급유 중단돼”

    북한, “고위급 인사 제외하고 주유소 급유 중단돼”

    북한이 지난달부터 고위급 간부 차량을 제외하고 주유소에서 급유를 중단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4일 보도했다.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도발 이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따른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주로 당 중앙위원후보 이상 직급에게 부여되는 ‘727’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단 자동차 이외에는 급유가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727은 북한이 ‘전승절’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체결일(1953년 7월 27일)을 상징하는 것으로, 김정은 당 위원장이 고위급 간부에게 내려 준 차량번호판의 고유 번호다. 한미일은 위성 정보를 통해 그동안 급유제한에 따라 각지의 주유소에 급유를 위해 길게 늘어서 있던 차량 행렬이 모습을 감춘 것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관계 소식통은 “돈을 아무리 얹어줘도 휘발유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택시나 버스 등에 대한 급유에 변화가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문재인 대통령답지 않은 ‘사드 이후’/임일영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문재인 대통령답지 않은 ‘사드 이후’/임일영 정치부 차장

    “훗날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에 대해 ‘나도 개인이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했다’라고 술회했다. ‘옳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했다. …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다.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문재인의 운명’ 중)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은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 참여정부의 고뇌와 맞닿아 있다. 문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의 설명이다. 애초부터 문 대통령에게 옵션은 거의 없었다.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때 천안문 망루에 올라 역대 최고의 한·중 관계를 뽐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어설픈 ‘신균형외교’가 이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허물어지고, 쫓기듯 ‘사드 대못’을 박아 버리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비가역적 사안이 됐다. 대선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사드는) 다음 정권에 넘겨 외교적 협상 카드로 써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미 동맹 합의이기에 없던 일로 할 순 없겠지만, 시간을 끌면서 ‘레버리지’로 삼으려 한 것이다. 북한이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지 않도록 중국이 통제한다면(북한은 4월 20일 6차 핵실험을 감행하려다 “핵실험 시 북·중 국경을 장기간 봉쇄하겠다”는 경고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도 환경영향평가를 앞세워 ‘시진핑(習近平) 2기’가 출범하는 10월 공산당대회까지 추가 배치를 미뤄 여지를 만들 것을 기대했다. 물론 김정은의 폭주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다. 북한의 핵 개발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 최고조에 이른 군사적 긴장이나 ‘예방전쟁’조차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압박과 공조를 고려하면, 추가 배치의 불가피함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추가 배치 결정 이후’가 외려 갈등을 키웠다. 대통령의 방러 기간 새벽에 ‘군사작전’을 하듯 밀어붙인 까닭을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최대한 설득한다. 밀고 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했던 청와대였기에 허탈함은 더 컸다.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우니 스텝이 계속 꼬였다. 대통령이 귀국한 다음날(8일) 오후 청와대는 고위 관계자의 백브리핑 형식을 빌려 ‘대통령이 사드 메시지를 고심 중’이라고 운을 띄웠다. 이미 성주 주민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집회에선 “적폐로 쫓겨난 정부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까지 비판 수위가 고조된 터. 지지층 여론도 심상치 않았다. 급기야 청와대는 이날 밤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는 대통령 메시지를 부랴부랴 내놓았다. 대국민 담화 형식을 취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지만, A4 용지 두 장짜리 텍스트가 전부였다. 국민이 지난 5월 이후 감동과 위로를 받은 몇몇 순간이 있었다. 5·18 희생자 가족을 안아 주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세월호 유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대통령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이번에도 사드 추가 배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진솔하게 성주 주민과 사드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먼저였어야 했다. 그런데 순서도 뒤바뀌고, 형식도 문 대통령답지 않았다. 사드 추가 배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으로 문 대통령의 정치력은 시험대에 올랐다. 현장 목소리를 듣고 대통령이 정책 취지를 직접 설명하겠다는 콘셉트로 시작된 ‘찾아가는 대통령’이 필요한 건 지금이다. 성주를 찾지 못할 이유도 없다. argus@seoul.co.kr
  • 전투복 입은 시진핑 “세계 최강”… 신형 ICBM 선보이며 군사굴기

    전투복 입은 시진핑 “세계 최강”… 신형 ICBM 선보이며 군사굴기

    軍퍼레이드 아닌 전투모드로 사열 美와 대등한 군사대국 발돋움 다짐 “당 명령에 군 절대 복종” 군권 과시중국이 30일 건군 90주년을 하루 앞두고 아시아 최대 훈련기지인 네이멍구 주르허(朱日和) 훈련기지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열었다. 방대했던 군 조직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정점으로 한 단일 명령체계로 재편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군사대국으로 굴기(?起·우뚝 일어섬)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열병식은 톈안먼 광장에서 열렸던 기존 군사퍼레이드와 달리 ‘전투 모드’로 치러졌다. 우선 시 주석이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부대를 사열했다. 국가주석이 전투복 차림으로 열병식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시 주석이 군의 최고사령관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면적보다도 큰 야전 기지에서 열병식이 열린 것도 처음이고, 국경절이나 전승절이 아닌 건군절에 열병식이 열린 것도 처음이다. 중국은 1927년 8월 1일 공산당 홍군(紅軍)의 난창 무장봉기를 인민해방군의 건군절로 기념해 왔지만, 이날에 맞춰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하지는 않았었다. 시 주석의 군사 굴기에 대한 집념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이날 병사들은 과거 열병식 때 쓰던 ‘서우장 하오’(首將好·대장님 안녕하십니까)라는 구호 대신 ‘주시 하오’(主席好·주석님 안녕하십니까)를 외쳤다. ‘서우장 하오’는 사열하는 고위 인사에게 일반적으로 붙이는 구호이지만, ‘주시 하오’는 당 중앙군사위 주석인 시진핑에게만 붙일 수 있는 특별한 구호다. 1984년 덩샤오핑이 국경절을 맞아 주관한 톈안먼 열병식 때도 병사들은 일반적인 구호인 ‘서우장 하오’를 외쳤다. 시 주석은 사열 직후 1만 2000여명의 사병과 지휘관들 앞에서 “우리 군대는 모든 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면서 “오늘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가장 가까이 다가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는 지금 평화롭지 않으며, 평화는 보위돼야 한다”면서 “어느 시기보다 강대한 인민군대의 건설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미·중 대결구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특히 “군은 당의 영도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면서 “당의 지휘가 향하는 곳은 어디든 가야 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당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시 주석이 군권을 더 확실하게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국방부는 “이번 열병식이 주변 정세와는 관련이 없다”면서도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에 대한 우리 군대의 결연한 충성을 잘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오는 10월로 예정된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군의 내부 분위기 결속과 당에 대한 충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열병식에는 항공기 129대, 571개의 무기 장비가 동원됐다. 열병식에 나온 무기 중 절반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31AG였다. 이 미사일은 일반 전술 미사일뿐만 아니라 핵탄두를 탑재해 전략 무기로도 쓰일 수 있는 ‘핵상겸비’(核常兼備)형 ICBM이다. 올 3월 실전 배치된 젠20 편대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젠20은 미국의 F22(랩터)와 F35의 대항기종으로 개발된 5세대 스텔스 전투기다. 최신 지대공미사일인 훙치22와 훙치9B, 스텔스 무인기도 모습을 드러냈다. 사거리가 100㎞에 이르는 훙치22는 무선 지시와 반능동 레이더 유도를 혼합한 방식이 적용돼 전파방해 차단 능력이 높다. 잉지83K 공대함 미사일도 첫선을 보였다. 이 미사일은 공중에서 발사돼 항공모함 등 해상 목표물을 타격한다. 공중급유기가 하늘에서 전투기 2대에 급유하는 장면이 연출됐으며, 최근 새로 배치된 첨단 전투기인 젠16이 처음 공개됐다. 훙6K 폭격기, 젠15 항공모함 함재기도 상공을 날았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둥펑26, 대함 탄도미사일 둥펑21도 열병식을 장식했다. 2015년 9월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했던 장쩌민·후진타오 등 원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장쩌민과 후진타오 전 주석은 10년 임기 중에 건국 50주년과 60주년 기념일에 각각 한 차례씩 톈안먼 열병식을 거행했지만, 시 주석은 취임 5년만에 두 번째 대규모 열병식을 사열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북한 심야발사 ‘꼼수’ 안통했다

    북한 심야발사 ‘꼼수’ 안통했다

    북한이 28일 밤 11시41분 자강도 전천군 무평리 일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을 다시 한번 시험발사했다.무평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곳이다. 밤 11시대에 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보름간의 잠행 끝에 전날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를 참배하는 방식으로 공식행보를 재개한 뒤 하룻만에 미사일 발사장을 찾아 도발을 직접 지휘했다. 며칠전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는 김정은 전용차량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 군 정보당국의 추적을 기만하려는 ‘기습’, ‘회피’, ‘교란’ 의도가 농후하다. 군 관계자는 “야간에 한번도 발사하지 않은 곳에서 미사일을 쏘아올렸다는 점에 주목한다”면서 “기습 및 대비태세 교란과 요격회피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역시 미사일 발사후 “ICBM의 기습발사 능력을 과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단 이 같은 북한의 ‘꼼수’는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미 군 정보당국은 북한이 이른바 ‘전승절’로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27일)을 전후해 추가적인 미사일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찰위성과 레이더 등 감시자산을 총동원해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있었다. 평북 구성과 함경남도 원산을 비롯한 요주의 지역은 물론 이번에 미사일을 발사한 무평리 일대도 감시망에 포함됐다. 특히 전날부터 무평리 일대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 등의 움직임이 포착돼 예의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한·미 양국 군이 지속적으로 북한 움직임을 추적감시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군은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그린파인 레이더와 동해상 이지스 구축함이 곧바로 포착해 궤적을 추적하는 등 적시대응에 나섰다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김정은이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켓을 기습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됐다”고 주장했지만 한·미 감시자산의 눈은 피하지 못하지 못한 셈이다. 김정은은 전날 친필명령으로 이번 시험발사 실시를 직접 지시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밝혔다. 북한이 24일만에 또다시 발사한 화성 14형 미사일은 최대 정점고도 3724.9㎞까지 상승해 998㎞를 47분12초간 비행해 동해상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졌다. 최대고도 2802㎞까지 상승해 933㎞를 39분간 비행한 1차 시험발사보다 고도를 1000㎞ 가까이 더 올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실제 최대사거리 비행조건보다 더 가혹한 고각발사 체제에서의 재돌입 환경에서도 전투부(탄두부)의 유도 및 자세조종이 정확히 진행됐으며 수천도의 고온조건에서도 전투부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되고 핵탄두 폭발조종장치가 정상동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매우 높은 고도에서 낙하했는데도 안정적인 대기권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사거리는 ICBM급이지만 대기권재진입 기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미 본토를 위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한·미 양국의 평가를 의식해 ‘이래도 안믿을래?’하며 두번째 시험발사에 나섰음을 시사한다. 김정은 역시 “오늘 우리가 굳이 대륙간탄도로켓의 최대사거리 모의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은 최근 분별을 잃고 객쩍은(의미없는) 나발을 불어대는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또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확실한 사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엔진 추력을 보강한 것으로 보여진다”면서 “2단엔진에 변화를 주거나 추력을 상당부분 끌어올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심은 북한이 또다시 ICBM 도발에 나설 것이냐는 점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북한은 지금까지 지난 4월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7종의 신형 미사일 가운데 6종을 쏘아올렸다. 화성 14형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아직 쏘아올리지 않은 ‘미지의 1발’이 남아 있다. 열병식 당시 한 축 바퀴 7개짜리 대형 트레일러에 발사관만 얹혀진채 등장한 미사일이다. 미사일 실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이 역시 ICBM급 미사일로 보고 있다. 화성 14형이 액체엔진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미지의 1발’은 고체엔진을 장착한 ICBM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열병식에 등장시킨 미사일을 순차적으로 모두 공개해온 북한이 반드시 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화성 14형의 3차 시험발사도 예상된다. 이번 시험발사에서도 대기권재진입 이후 탄두 폭발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탄두 폭발조종장치가 정상동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지만 탄두는 폭발하지 않고 동해상에 그대로 낙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아직 이 부분은 미완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3차 시험발사로 이 부분을 입증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北, 동해상으로 향상된 ICBM급 미사일 발사…3700㎞ 치솟아

    北, 동해상으로 향상된 ICBM급 미사일 발사…3700㎞ 치솟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쏜 지 불과 24일 만에 이보다 성능이 향상된 ICBM급 미사일을 발사했다.북한이 이번에 쏜 미사일은 정상각도로 발사하면 사거리가 1만㎞를 안팎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미사일 사거리만 놓고 보면 미국 본토의 상당 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우려가 나온다. 합동참모본부는 29일 “북한은 어제 오후 11시 41분경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 미사일은 최고고도가 약 3천700km, 비행거리는 1천여km로, 사거리를 기준으로 할 때 화성-14형보다 진전된 ICBM급으로 추정된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한미 군 당국은 이 미사일의 추가 정보에 대해 정밀 분석 중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발사각을 최대한 끌어올린 고각 발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지난 4일 고각 발사한 화성-14형의 최고고도와 비행거리는 각각 2천802㎞, 933㎞였다. 화성-14형을 정상각도인 30∼45도로 쏠 경우 사거리는 7천∼8천㎞로 추정됐다. 그러나 이번에 발사한 ICBM급 미사일은 정상각도로 쏠 경우 1만㎞를 넘을 수도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이번에 쏜 미사일의 고도와 비행거리를 보면 정상각도로 쏠 경우 탄두 중량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사거리가 9천∼1만㎞는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거리가 약 1만㎞인 탄도미사일을 북한 원산에서 쏠 경우 시카고와 같은 미국 북동부 지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워싱턴DC와 뉴욕 등 미국 동부 연안까지는 못 미치지만, 본토의 상당 부분을 타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은 화성-14형 개량형 또는 신형 ICBM으로 추정되며, 미국 알래스카주를 사정권에 두는 화성-14형보다 훨씬 위협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이번에 ICBM 기술의 최종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시험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ICBM이 대기권에 다시 들어갈 때 발생하는 엄청난 열과 압력으로부터 탄두를 보호하고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떨어질 수 있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주로 이른 아침에 미사일 발사를 해온 북한이 이번에는 심야에 기습적으로 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자강도에서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이 언제, 어디서든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고 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동엽 교수는 “자강도는 앞으로 북한이 ICBM을 실전 배치할 경우 기지와 부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라며 “이번 발사가 ICBM의 실전배치와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이번을 포함해 모두 7차례에 달한다. 북한은 자신들이 ‘전승절’로 주장하는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직전이나 당일에 대형 도발을 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결국 하루 뒤에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화성-14형을 발사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함에 따라 당분간 한반도 정세는 크게 얼어붙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발표한 ‘베를린 구상’에서 올해 정전협정 체결 기념일을 기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자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수한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후속 조치로 국방부가 지난 17일 제의한 남북 군사당국회담에도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맞서 핵·미사일 기술 완성을 향해 내달리겠다는 김정은 정권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새벽 1시 긴급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보다 강력한 무력시위를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부성명’에서 “북한은 지난 7월 4일에 발사한 미사일보다 진전된 ICBM급 미사일을 7월 28일 발사했다”면서 “지난 7월 4일 북한의 도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 감행된 이번 도발은 안보리 관련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미사일 한밤중 도발

    日 교도통신 “45분 비행… ICBM 추정” 文대통령, 새벽 1시 NSC 긴급 소집·주재 합동참모본부는 29일 “북한은 28일 오후 11시 41분쯤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불상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전 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지 24일 만이다. 한미 군 당국은 비행 궤적 등을 정밀 분석 중이다. 북한이 자강도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늦은 밤 기습적으로 미사일을 쏜 것도 매우 이례적이다. 언제, 어디서든 미사일 발사를 감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전승절’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직전이나 당일에 도발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하루 뒤 감행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ICBM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9일 새벽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 미사일이 약 45분간 비행했다고 밝혔다. 일본 방위성은 미사일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낙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中, 사드 전자교란 가능 ‘둥펑-26’ 미사일 공개

    중국이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겨냥해 전자기 교란이 가능한 최신형 둥펑-26 미사일을 공개했다. 8일 신랑군사 등은 최근 중국 북부 모기지에서 시험 발사한 뒤 사막지대에서 추락한 미사일 잔해라며 ‘EA/DF-26B’라는 글자가 새겨진 탄체 잔해 사진을 공개했다. 외피에 새겨진 ‘EA’는 전자공격(Electronic Attack)이라는 두 단어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여겨진다. A가 대(對) 레이더 미사일(ARM·anti-radiation missile)의 약자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랑군사는 이는 중국군이 전자기 펄스 탄두를 장착한 개량형 둥펑-26 미사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레이더 시스템을 초전에 무력화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제 상황에서 개량형 DF-26B 미사일을 일반 둥펑-26과 섞어서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괌 기지 타격이 가능해 ‘괌 익스프레스’로 알려진 둥펑-26은 중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로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 모두 장착이 가능하고 이동식발사 차량(TEL)을 통해 지상에서도 항공모함 전단에 대한 공격 능력도 갖췄다. 2015년 9월 전승절 열병식 당시 처음으로 등장한 뒤 이번에 처음으로 개량형을 선보였다. 홍콩 군사평론가 량궈량은 “이 미사일이 주로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배치한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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