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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루 쿠스코(세계 문화유산 순례:36)

    ◎잉카제국의 수도… 해발 3,650m에 거대한 요새가…/둘레 1,300m… 중앙엔 대형 해시계/하루 2만명 동원 83년 걸쳐 완성 쿠스코(Cuzco)는 잉카제국의 수도였다.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수목이 드문 안데스 산맥의 줄기 사이에 고고하게 자리한 고대도시.하늘에서 내려다본 쿠스코에는 신비가 가득했다.흡사 한마리의 푸마가 먹이를 막 덮치기라도 하듯 웅크린 형상을 한 쿠스코는 아직도 잉카의 웅혼한 정기를 뿜어내고 있었다.그것은 곧 하늘은 독수리가,땅은 푸마가,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던 잉카인들의 정신세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비행기로 수도 리마를 떠나 남동쪽으로 1천㎞쯤 날았을까.만년설의 장관을 구경하는 것도 잠깐,따갑게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해발 3천248m 고지에 덩그러니 깔린 공항 활주로에 닿았다.트랩을 내려서는 순간부터 숨이 가빠지면서 어지럼증을 느꼈다.여장을 풀기 위해 호텔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마테 데 코카라는 차를 한잔 내놓았다.코카인의 원료로도 쓰이는 코카나무 잎사귀로 만든 차다.과거 잉카인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했다. ○아마존강 시작되는 곳 쿠스코는 잉카의 본래 말인 케초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이다.우주의 중심을 쿠스코라고 생각했던 잉카인의 의식이 깔린 이름이다.또 이곳이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아마존강이 시작되는 곳이고 보면,잉카인들은 “모든 길은 쿠스코로 통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로 이르는 ‘태양의 길’어귀에는 잉카제국 아홉번째 왕인 파차쿠텍 잉카 유판키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문명의 최번성기를 이룩했던 인물이었다.유판키왕의 동상을 지나면 잉카인의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형상이 나타난다.푸마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한 파차 데 푸마르 추팡이라는 석조물이 그것이다.투유마요와 사피라는 두 강을 끼고 발전했던 잉카문명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는듯 했다.태양을 의미하는 둥근 돌을 중심으로 양쪽에 세워진 돌기둥 사이로 물이 흘렀다. 잉카인들은 뛰어난 도로건설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잉카의 도로는 크게 해안도로와 산악도로로 구분됐다.해안도로는 지금의 에콰도르 북쪽에서 페루해안을 따라 아르헨티나 북쪽까지 이어졌다.산악도로는 에콰도르 북쪽을 출발해 안데스 산맥을 뚫고 쿠스코∼볼리비아∼아르헨티나로 통했다.그런데 도로를 따라 4㎞마다 역참마을을 만들었다.차스키라는 파발꾼도 두어 쿠스코에서 내린 잉카왕의 명령이 3일만에 3천㎞가 넘는 에콰도르 북쪽까지 닿았다고 한다.특히 250m를 뻗어있는 가장 잉카적인 길 카예 로레토(Calle Loreto)를 걷다보면,잉카인들이 얼마나 정교하고 반듯하게 도로를 건설했는지 쉽게 알수 있다. 그러나 잉카의 도로는 잉카제국이 허무하게 무너지는데 큰 몫을 했다.1533년 11월15일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단지 163명의 군사를 이끌고 쿠스코를 공략했을때 잉카 도로는 활짝 열린 대통로 구실을 했던 것이다. ○태양의 신전도 웅장 시내에서 차를 타고 20여분쯤 코리칸차 언덕을 올랐다.무수한 신전 터가 눈에 들어왔다.그중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한 태양의 신전은 너무 웅장했다.스페인 정복자들이 쿠스코를 점령했을때 높이가 60m에 달했던 이 신전은 외벽이 모두 금판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정복당한 문명 앞에는 가혹한 시련이 기다렸다.정복자들은 기초만 남긴채 신전을 헐어버렸다.그리고 나서 신전의 기초위에 식민시대 건축물과 성당을 세웠다.잉카의 신이 노한 것일까.몇차례의 지진으로 식민시대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졌다.반면 잉카인들이 세운 건물의 기초나 벽면은 끄덕없이 남아있다.정교하게 돌을 깎아 벽돌을 쌓듯 만든 벽면은 지금도 면도날이 들어갈 틈새조차 없을 만큼 견고했다. 잉카의 신전은 어딜가나 문이 3개씩 나있었다.잉카인들이 믿었던 세가지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즉 땅위에 있는 영혼과 사후태양신에게로 간 영혼,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영혼이 이들 3개의 문을 드나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말하자면 잉카의 신전들은 신만을 위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신과 인간을 잇는 성소였던 셈이다. ○매년 6월24일 태양제 쿠스코에 남아있는 잉카유적의 압권은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는 뜻을 가진 3천650m 고지대 유적 삭사이와만(Sacsayhuaman)이다.푸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삭사이와만은 유판키왕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하루 2만여명씩 인원을 동원한 끝에 83년에 걸쳐 완성한 거대한 요새다.높이 7m에 무게가 126톤이 나가는 엄청나게 큰 돌들로 쌓은 성벽은 1천300m에 이른다.또 정상에는 거대한 해시계를 설치했다.당시 주요 농작물이었던 감자·옥수수의 재배나 수확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시계라는 것이다. 삭사이와만은 잉카제국 멸망후 잉카재건운동을 이끌었던 마지막 왕 망코의 근거지로도 활용됐다.그러나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스페인군에 패배한 망코는 결국 삭사이와만을 버리고 잉카 최후의 유적지로 알려진 전설속의 도시 빌르카밤바(Vilcabamba)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삭사이와만 앞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6월24일이면 인티 라이미(Inti Raymi)라는 태양제가 열린다.태양제와 관련해서는 전설 하나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잉카의 11대 왕 와이나 카파크가 태양제를 지내던중 갑자기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떨어졌다.당시 독수리는 왕을 상징했기에 잉카사회가 발칵 뒤집혔다.그때가 1523년인데,그로부터 정확히 10년후 잉카제국은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독수리의 추락은 잉카의 멸망을 암시한 신의 예언이었을까. 잉카의 흔적은 곳곳에 널려있다.삭사이와만이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는 요새였다면,서쪽 언덕의 켄코(Quenco)유적은 땅속을 지배하는 뱀을 제사한 정신적 요새다.또 언덕 중간에 잉카왕을 알현하러온 각 지역의 족장들이 몸을 씻던 목욕탕 탐보 마차이,숙박시설인 푸카 푸카라 등이 황금제국 잉카의 영화를 증거하고 있다.
  • Cartier/고품격 액세서리 총집합(패션가 산책)

    까르띠에(Cartier)는 보석뿐 아니라 시계 가죽제품 펜 선글라스 라이터 등으로도 유명한 프랑스의 명품이나 본래 보석으로 출발했다.1847년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Louis Francois Cartier)가 31세때 파리 몽토르게이 거리에 있는 스승인 아돌프 피카드씨의 보석상을 인수하면서 까뜨리에의 역사가 시작돼 150년의 세월이 지났다. 최고 품질의 에나멜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는 등 고품격으로 유명해지면서 당시 유럽 왕가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보석상 중의 왕은 까르띠에』라고 말할 정도였다.그는 까르띠에를 영국왕실의 공식 보석제작사로 지정했었다. 당시 프랑스 스페인 포트투갈 루마니아 이집트의 왕가는 까르띠에의 주고객이었다고 한다.미국의 재벌인 록펠러 밴더빌트 굴드 포드가도 마찬가지.「보석의 왕가」라는 별칭도 따라 다닌다. 까르띠에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보석은 3색 금반지.지난 1924년에 나와 까르띠에의 전설속의 명품으로 자리잡았다.우정(회색) 충성(노랑색) 사랑(핑크색)을 각각 상징한다는 3가지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영원한 애정과 순결함을 나타낸다고 한다.솔리테어 반지는 두개의 C자가 엮어내는 유명한 까르띠에의 더블 C로고를 절묘하게 연상시킨다. 60년대 후반에는 라이터로 유명한 로버트 호크가 까르띠에 이름을 사용하는 라이선스를 얻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달걀형의 고급 가스 라이터를 내놓는 등 까르띠에는 보석에서 벗어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토탈 패션으로 변했다. 세계 170여곳에 부티크가 있어 보석을 포함한 까르띠에의 모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국내에는 84년부터 까르띠에 제품이 부분적으로 들어와 판매되고 있다.지난 5월부터는 보석까지 판매하는 부티크가 갤러리아 백화점에 등장했다.서울 하얏트호텔과 현대백화점의 압구정점과 무역센터점,롯데백화점의 본점과 잠실점,대구의 대백프라자 등에서는 보석을 제외한 일부 품목을 판매중이다.3색 금반지는 46만∼1백30만원.
  • 원자력발전소(에너지 전력 특집:2)

    ◎“21세기 에너지원” 국내 11기 가동중/설비이용률 85%… 화전보다 고효율/석탄·석유·LNG대체 “청정연료” 각광 「21세기 에너지원은 원자력」.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은 매력이 많다.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는 부존량이 일정하고 부존지역이 중동과 동남아,캐나다 등 극히 일부지역에 한정돼 있어 우리나라의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석탄은 채탄비용 증가와 환경오염 등의 문제로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이 점차 축소될 수 밖에 없다.선택은 원자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원자력 발전은 건설비용이 많이 들고 공기가 긴 것이 단점으로 꼽히지만 안정적인 연료공급이 가능하고 발전단가가 적게 드는데다 시설유지비가 저렴한 장점이 있다.1백만㎾급 한국표준형 원전 1기 건설 비용은 1조6천억원(부지비 제외),공기는 66개월로 2기를 함께 건설할 경우 3조2천억원에 12년반이 걸린다.그러나 원전은 설비이용률이 85%이상 돼 70%선에 불과한 석유나 60%선인 가스 화력발전소에 비해 효율이 높아 경제적이다. 국내에 원자력발전소는 11기가 가동중이고 7기가 건설중에 있다.가동 중인 원전 설비용량은 9백61만6천㎾로 전체 발전설비의 26.9%.이달말 월성 2호기가 준공되면 가동 원전은 12기로,설비용량은 1천31만㎾로 늘어난다. 그러나 실제 발전량에서 원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다.지난해의 경우 원전은 7백39억2천4백만㎾의 전력을 생산,전체의 36%를 담당했다.설비용량 대비 발전량을 나타내는 이용률이 87.5%로 수력(19.1%) 무연탄(77.6%) 중유(70.8%) 가스(60.9%)보다 훨씬 높다.세계 4위 수준이다. 한전과 통산부는 원전의 설비비중이 97년 24.9%에서 2000년에는 26%로 높아지고 2010년 33.1%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발전량 비중도 올해 34.2%에서 2000년 37.5%로 높아지고 2010년에는 45.5%로 늘어난다.발전량의 근절반을 원전에 의존하게 된다는 얘기다. 한전은 95∼2010년까지의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이 기간중 원전 17기(설비용량 2천6백32만9천㎾)를 포함,122기의 발전소(설비용량 5천7백만㎾)를 건설할 계획이다.이같은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되면 2010년 설비용량은 7천8백20만㎾로 설비예비율은 19.1%,공급예비율은 12.1%로 우리나라는 전력수급 불안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게 될 전망이다.
  • 환경친화적 에너지 개발 추진을/이만우(특별기고)

    어느 해보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계속되는 무더위에 냉방용 전력수요가 급증,연일 전력사용량이 최고치를 경신한다고 한다. 국제기후변화회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특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지구의 평균기온이 2100년까지 섭씨 1∼3.5도씩 올라가고 해수면은 15∼19㎝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화석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나타나는 지구온난화현상은 빙하기와 현재의 연평균 기온차이가 섭씨5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파장을 짐작할 수 있다.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지구환경문제는 이제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2000년대에 가면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등 그린라운드의 영향이 우리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따라서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에너지부문부터 그린라운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문제를 이제는 단순히 경제성장의 기본요소가 아니라 지구환경보전 및 경제에 미칠 영향 등 종합적긴 시각에서 다루어야 한다.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의 개선을 위한 과감한 추진과 함께 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높여나가야 한다. 특히 국민 1인당 전력수요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전력수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따라서 전력수요를 충당하고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발전의 확대 추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원자력이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화석연료의 대체에너지로서 환경론자들이 지목하고 있는 태양력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아직 대용량의 에너지원으로서 상용화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때문에 원자력발전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체에너지로 평가되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하절기 전력수급 불안.원활한 전력수급을 위해서는 수요관리와 더불어 공급능력의 확충이 필요하다.여기에는 물론 국민 전체의 이해와 협조가 뒷받침돼야 한다. 에너지절약을 통한 수요관리는 경제규모의 확대와 생활수준의 향상에 따라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결국은 공급능력 확충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공급능력 확충,즉 발전설비의 증설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발전소 건설부지 확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문제해결의 관건인 것이다.무조건 우리 지역에는 안된다는 자세를 버리고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지금이야 말로 지역사회 발전과 국가의 공공시설 입지를 조화시킬수 있는 열린 시민의식이 절실한 때다.
  • 한국전력기술은 어떤 곳인가

    ◎원전 종합용역회사… 전문가 6백명 활동/“북 경수로 모델” 울진 3·4호기 참여 호평 한국전력기술(KOPEC)은 원전 발전,건설,방사성물질 관리,핵연료 주기사업 및 원전표준화 등 원전관련 기술의 모든 사업을 수행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용역회사로 자리잡았다. 75년 한국원자력연구소와 미국의 번즈 앤 로(BURNS AND ROE)가 합작으로 설립한 이 회사는 20여년 만에 150여명의 박사 기술사와 전기기사 1·2급 유자격자 600여명 등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상업운전중인 11기의 원자력발전소와 건설중인 원전의 설계 건설 시운전 감리 등을 맡고 있다. 특히 87년부터 영광 원전 3·4호기와 울진 3·4호기 및 5·6호기 등 1백만㎾급 가압경수로 건설사업의 플랜트 종합설계용역의 주계약자로 선정됐고 이어 월성 2·3·4호기 건설에 참여,원전기술 자립의 터전을 마련했다. 한전기술은 또 한국형 다목적 연구로 사업에서 설계와 기술지원 업무를 수행했고 핵연료 주기사업에 참여해 경수로 핵연료 가공공장의 기술용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냈다.82년부터 91년까지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원전표준화 사업에도 참여,축적한 기술을 영광 3·4호기와 울진 3·4호기의 설계에 반영,호평을 받기도 했다.울진 3·4호기는 북한에 제공될 경수로 모델.한기는 1백30만㎾급 차세대 원전설계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밖에 석탄화력발전소,복합화력발전소,열병합 및 지역난방 등의 기본설계,공사계약,기술지원,시공 및 시운전,감리를 전담하고 있으며 발전소 성능저하 방지 및 수명연장을 위한 정밀진단,운전경험의 전산화,공해방지 환경설비 설치기술 개발 등을 통해 「발전기술 전문기업」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 조선족의 농어업(송화강 5천리:30)

    ◎목단강유역 벌판서 중국 으뜸쌀 생산/무공해 무오염 무화학비료 3무의 향수미 일품/발해시대 「왕의 밥」 호칭,60년대엔 모택동 밥상에/강유역 칠색송어 양식장 즐비… 어업도 날로 번창 조선족의 농·어업 기술 길림성 연변 조선족자치주 도문시에서는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가는 열차가 있다.그러니까 두만강변에서 출발한 열차가 얼마동안 북쪽으로 가다가 흑룡강지류 목단강을 만나 강과 어깨동무하는 철도인 것이다.이 열차가 발해의 옛 도읍지 상경용천부 땅인 동경성을 지나고 나서 한참 달리다 보면 강가 벼랑에 돌계단이 나타난다.발해왕과 후비사이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돌계단은 제법 가팔랐다. 그 옛날 발해왕이 왕비를 잃고 어떤 인연이 되어 어부의 딸을 후비로 맞았다.목단강에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했던 어부는 왕을 사위로 삼고나서도 고기잡이를 고집했다.그런데 고기잡이를 하러 다니는 길이 바위벼랑이라서 늘 위험이 뒤따랐다.왕은 보다못해 벼랑에 계단을 내어 어부인 장인이 편하게 다니도록 배려했다.왕비도 백성을 잘 먹게 하고 잘 입히려면 자기부터 일을 해야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고 길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은 부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자 바위벼랑 근처에 뽕나무를 심어주었다.그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돌계단과 뽕나무밭이 아직도 강가에 남아있다.전설이기는 하나 어부와 그 딸인 왕비의 근면성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고나 할까.어떻든 오늘날 목단강유역에 사는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으뜸가는 향수쌀을 생산하게 되었다.향수는 발해진의 한 조선족촌이다.주변을 흐르는 목단강의 여울물소리가 유난히 울린다고해서 향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향수촌을 중심으로 영안일대에서 생산한 이 입쌀은 1992년 제1차 농업박람회에 이어 1993년 제2차 농업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았다.그래서「동경성표」로 이름난 향수입쌀은 나라가 베푸는 잔치용 쌀이 되었다.「영안현지」를 보면 「노주의 쌀은 공미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발해시대의 노주는 향수였다는 것이다.어떤 학자는 길림성 화룡시 서고성일대를 노주로 보고 있다.쟁론이야 어떻든 명나라 조정은 동경성 언저리를황제의 식량생산지인 황량구로 지정한 사실은 돌아볼만한 일이 아닌가한다. ○발해시대 황량구 그러나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이들 쌀주산지도 인적이 끊긴 봉금구가 되었다.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바람결에 흔들릴뿐 사람 그림자가 얼씬도 하지 않았던 향수일대에 벼꽃은 언제 다시 피었을까.「영안현지」는 1916년 조선족이 서련화포에서 벼농사에 성공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조선족들은 오늘의 발해진 향수,강서 일대에 논을 만들고 물을 끌어 벼농사를 지었다」고 기록했다.그리고 7년후인 1923년에는 영안현내 논은 4천683㏊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향수입쌀은 독특한 지질환경에서 수확되었다.논바닥밑에는 화산이 폭발할때 흘러들어온 용암이 10㎝ 정도가 깔려있다.그리고 토층이 얕기때문에 용암이 열을 잘 받아들여 벼의 생육을 한껏 돕게 된다는 것이다.또 청정한 경박호물이 이 지역을 지나면서 수온이 올라가 역시 벼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그래서 쌀알이 고르고 윤기가 흘렀다.밥을 지어놓으면 찹쌀처럼 끈기가 있는데다 향기마저 풍겼다. 발해시대 「왕의 밥」으로 호칭되었던 향수입쌀은 1960년대 들어 모택동의 밥상에 올랐다.공량미가 몽땅 북경으로 반출되었다.그럼에도 생산자들에게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개혁개방이 이루어진 이후 비로소 상품가치가 인정되어 농민들에게 부유한 삶을 안겨주었다.향수입쌀은 향수촌만이 아니라 발해진 전역에서 나오는 쌀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발해진 전체의 경작면적 7천㏊가운데 논이 5천㏊다.1㏊당 생산량도 7천500∼8천㎏에 이르고 있다.향수촌의 경우 40가구만이 한족이고 나머지 160가구는 조선족이다.말하자면 벼농사기술자라 할 수 있는 조선족판인 것이다.그런 탓에 다른 지역 입쌀보다 앉은 자리에서 3.75g당 20전을 더 받는다.향수촌의 임을선씨(41)는 지난해 5㏊의 논에서 4만원의 순수입을 올렸다.이웃 강서촌의 이성일씨(41)는 지난해 0.6㏊에 불과한 논에서 자그마치 8천원의 수익을 올렸다.1㎏당 6원이나 하는 검은 입쌀 흑향미를 재배했기 때문이다. 향수촌과 벼농사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강서촌은 403가구가 사는 농촌마을이다.조선족은 353가구인데 거의가 벽돌집에 살고있다.수돗물이 집집마다 넘치고 모두가 텔레비전을 갖추고 유선방송까지 시청했다.유선TV에서는 한국과 북한,연변 등지의 프로가 방영되었다.그런데 마을주민인 조순애씨(37)는 한국 KBS의 「가요무대」를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으로 꼽았다.그렇듯 「가요무대」는 중국 동북3성 조선족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목단강유역의 벼농사가 벌떡 일어서면서 쌀가공업도 기업화하고 있다.한국의 효림이라는 기업이 들어와 영안시 종묘회사와 합작으로 경박호알곡제품유한회사를 세웠다.이를 효시로 15개의 가공공장이 들어섰다.향수입쌀의 특징을 말할때 흔히 삼무라고 하는데,그것은 무공해,무오염,무화학비료다.아름다운 경박호를 낀 100리 벌판에서 두엄만으로 벼농사를 짓고있으니까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목단강유역은 농업 못지않게 어업도 번창했다.저 유명한 한반도 산골물에서만 사는 칠색송어까지 인공사육하고 있다.강원도 두류산 골짜기에 서식한다는 칠색송어는 사철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하천을 좋아하는 물고기라는것이다.목단강유역은 그런 조건을 갖추어 1초마다 1t 이상의 샘물이 솟고 여름에도 16도 이상 수온이 올라가지 않는 지점이 많았다.그래서 규격화한 칠색송어양식장들이 강가에 즐비했다.칠색송어는 지렁이와 풀이 먹이인지라,이들 먹이 역시 자연산으로 충당되었다. ○1㏊당 8천㎏ 생산 칠색송어가 목단강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59년 주은래수상의 북한방문때 일이다.주은래수상이 칠색송어를 맛있게 드는 것을 보고 김일성이 새끼 6천마리와 알 5만개를 선물했다는 것이다.이들 강원도 송어는 흑룡강성 양어연구원이 인수한 후 동경성 발해궁터 15리밖 구룡천마을앞에 양식장을 차렸다.그러나 양식장을 넘겨받은 칠색송어개발회사가 1995년 4월까지 3백40여만원의 빚을 지고 말았다. 그런 위기에서 칠색송어를 살려낸 사람은 동북농업대학 출신의 김광현씨(31)다.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양식장에 배치되었던 그는 회사를 떠맡았다.1991년 일본 북해도립수산부화장에 가서 6개월동안 연수하면서 칠색송어양식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혔다.그가 귀국한 뒤에는양식장이 제대로 돌아가 칠색송어가 북경을 비롯한 큰도시로 연간 7만5천㎏이 반출되고 있다.양식장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김광현씨는 이제 한숨을 돌리고 칠색송어 양식업의 장래를 낙관했다. 『이 고기는 희귀어종이라 원가가 높디요.그런데 막상 회사가 파산하니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데다.제가 대들었디요.자신이 있었으니까 뛰어든 것입네다.양식장 주변에 경박호라는 관광지가 자리했다는 지리적 여건을 고려해서 칠색송어양식을 관광항목으로 개발한 것이 주효했디요.낚시질 상품은 물론 동서양 각종 요리로도 개발했던 것입네다.지금은 전국 주문량이 늘어나 없어서 못 팔디요』
  • 화순 운주사·순천 낙안읍성·여천향일암/피서길 가족나들이 안성맞춤

    ◎낙안읍성­선조들의 살던 모습 생생한 민속마을/운주사­사랑의 열병 치유… 천불천탑유래 간직/향일암­아열대 식물 울창… 정상의 일출도 장관 전라남도는 맛과 역사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고장이지만 그동안 발길이 쉬 닿지 않았다.국토의 서남단에 있는데다 지역감정 등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풍부한 문화 및 관광자원을 고스란히 남겨 놓아 나들이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남도는 최근 지역의 관광자원을 소개하고 가볼만한 관광지를 추천하는 등 「관광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이에 발맞춰 일선 자치단체도 내고장 관광자원에 대한 안내책자와 기념품을 배포하는 등 「관광전남홍보」에 열성이다.전남의 볼만한 관광자원을 소개한다. ▷화순 운주◁ 사군 관광 안내책자는 마음이 외롭거나 실연 등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을때 이곳을 찾으면 방황의 끝을 보여준다고 소개하고 있다.여기저기 꾸밈없이 흩어져 있는 소박한 석불들이 찾는 이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기 때문인듯 하다. 운주사는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1천개의 불상과 1천개의 탑을 세웠다고 전해지는 곳이다.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현재 91구의 불상과 21개의 석탑이 운주사 계곡 주변에 흩어져 있다.이중 길이 21m,폭 10m의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서울이 이곳으로 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산 중턱에 오르면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의 거리,밝기 등에 비례해 만들었다는 칠성바위도 있다. ▷낙안읍성◁ 마름으로 덮인 한옥과 마당,한켠의 남새밭,대나무로 엮은 사립짝,고샅길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돌담….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은 우리 선조들이 살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민속마을이다.40대이상의 기성세대들에게는 마치 고향에 온듯한 안온함을 신세대들에게는 조상들의 체취를 엿볼수 있게 한다.지금도 성안에 108세대가 초가집에 살고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달집태우기,성곽돌기 등의 민속행사가 열리고 10월1일부터 닷새동안 남도음식대축제와 전국대학생 풍물놀이대회가 개최되는 만큼 때를 잘맞추면 기쁨이배가된다.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전통혼례식도 구경할 수 있다.평상이 펼쳐진 민속잔치집,민속향토음식점에서 보리밥,빈대떡,녹두전,더덕주,동동주,식혜 등의 전통음식을 맛볼수 있다. ▷향일암◁ 향일암은 말 그대로 해를 향한 암자로 동해 낙산사와 함께 일출광경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이다.해돋이를 한번 구경하고 나면 암자이름을 왜 향일암이라고 지었는지 저절로 느낄 정도로 장관이다.여수에서 돌산대교를 거쳐 남동쪽으로 25㎞쯤 달리면 여천군 돌산읍 율림리 임포마을에 닿는다.기암절벽과 동백나무를 비롯한 아열대 식물의 울창한 수림이 장관을 이룬 마을 뒷편 금오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거북의 모습을 쏙 빼 닮았는데 향일암은 이 산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가파른 산길과 거대한 바위사이로 난 석문 등 가뿐 숨을 30여분 몰아쉬면 향일암이 나타난다.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향일암 앞마당에 다다르면 평화로운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더구나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염분이 없어 끈적거리지 않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게 한다. 허경만 전남지사는 『전남은 탁트인 해상경관을 끼고 있는데다 역사문화 유적지가 풍부하고 먹거리도 맛깔나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다』며 『한번 찾아오면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종교의 기원/지그문트 프로이트(화제의 책)

    ◎유대교·토템 등 정신분석학적 접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종교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 논문들을 수록.프로이트는 구약성서와 유대전설을 논거로 모세가 이집트인이었으며 모세가 히브리인에게 전한 유일신교는 이집트의 종교였다는 획기적인 주장을 편다.나아가 유대교의 성립과정을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고찰,유대인에 의한 모세 살해 및 그리스도의 고난을 토테미즘 시대의 살부 모티프와 동일시한다. 프로이트는 토템의 심리학을 토대로 토템과 터부에 대한 원시인들의 양가적인 감정습관을 분석해낸다.또 이 분석을 통해 태고적의 토테미즘이 어떤 식으로 유아기 신경증에 침윤하는지,또 현대인의 내면으로 회귀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힘을 쏟는다.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오는데 사용한 회향나무 대롱을 남근으로,독수리에게 파먹힐 때마다 새롭게 재생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성적 욕망으로 해석한 점도 흥미롭다.프로이트는 심지어 헤라클레스가 퇴치한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 히드라(Hydra)까지도 성욕을 상징하는 괴물로 해석한다.열린책들,이윤기 옮김,1만3천500원.
  • 대기업/고부가업 전환 구조조정 박차

    ◎경쟁력 높은 우주·항공·정보통신 등 진출 주력/노동집약 한계사업 정리·해외이전·중기이양 불황 극복을 위해 사업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업종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단순 조립·가공업 등 노동집약적 한계사업은 정리하거나 해외로 이전,2000년대의 국제경쟁과 불황에 대처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중인 국내 주요 기업들은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이나 상품 개발쪽으로 구조조정의 방향을 잡고 있다.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미래형 첨단업종들로 기업들은 우주·항공·생명공학·정보통신·신소재·정밀화학 등을 업종 전환의 대상 분야로 꼽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사업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두산그룹은 정밀화학과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세라믹과 유리섬유 등 신소재 사업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대신 식음료 사업은 대폭 비중을 낮추고 유가공업 등 한계사업은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은 대기업에게는 부적합한 사업은 중소기업 등에 과감히 이양하고 우주·항공·통신·제철업을 미래사업으로 정해 사업확장 또는 진출을 추진중이다.중공업 분야에서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특수 선박·발전설비 제작 등에 사업의 초점을 맞추고 선박용 크레인 제작 등 단순 제조업은 중소기업에 넘겼다.전자에서는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과 인공위성 제작 사업 등 첨단분야를 핵심사업으로 설정했다. 금호그룹도 경쟁력이 없는 사업은 비중을 줄이고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등 새로운 사업을 강화하거나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석유화학 분야는 해외사업을 강화,올해말 중국에 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유통과 제과·음료업의 소비성 사업이 주력인 롯데그룹도 최근 정보통신분야 등 첨단 업종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코오롱·한솔·해태 등도 전자·정보통신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해 사업확장을 계획하고 있다.이밖에도 한화그룹은 화합물 반도체라는 일종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전담팀을 가동하고 있으며 위성방송사업에도 관심을 갖고있다.효성그룹은 정밀화학·멀티미디어·소재산업에 그룹의 무게중심을 둘 방침이다.
  • 서울예술단,20·21일 가무악 「네가 마음을 보느냐」

    ◎몸짓과 소리로 찾는 「마음의 세계」/춤·노래·연주 혼합… 주제 표현·관객 감흥 불러/희노애락·위협·투쟁·평온회복의 상념 스케치 서울예술단이 오는 20·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가무악 「네가 마음을 보느냐」를 공연한다.이 무대는 우리 문화예술의 세계화를 목표로 지난 88년 창단한 서울예술단이 어려운 성장기를 거쳐 2∼3년전 비로소 자신들만의 몫으로 찾아낸 「가무악」으로 야심있게 대중과 만나는 자리가 된다. 서울예술단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종합예술의 한 장르인 가무악은 원래 우리 전래 연희에서 원형을 찾을수 있다.춤과 노래,악기 연주를 한 무대에서 비슷한 비중으로 혼합시켜 주제의 표현과 관객의 감흥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양식이다.출연자가 무용과 소리,악기연주를 한꺼번에 소화해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는데다 일반에는 널리 알려져있지 않아 아직까지는 공연장르로 크게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하지만 서울예술단에서는 95년 첫 선을 보인 「신의 소리·춤」에 이어 지난해 「천년전설」이 연달아 국내외에서호평을 얻음에 따라 이제는 정기공연의 고정 레퍼토리로 굳혀졌다. 이번에 공연하는 「네가 마음을 보느냐」는 제목에서 나타나듯 명상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마음작용을 객관화시켜보려는 작품.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마음을 인간의 몸과 소리 및 다양한 악기음으로 꿰뚫어 그 실체를 찾아내려는 시도다.『형식적으로는 가무악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다양한 이미지 창출을 위해 현대적 특성을 보다 많이 가미했다』는 것이 안무와 주역을 맡은 김나영씨의 설명이다. 5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정돈된 상태의 고요한 마음이 애욕과 분노,위협과 투쟁,절망과 환희 등을 거쳐 다시 평온을 회복해가는 일련의 과정을 춤과 소리로 그려낸 상념의 스케치라 할 수 있다.변화무쌍한 마음의 작용을 다루는 만큼 몸짓과 소리의 변화폭이 크고 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용수들이 발휘하는 창과 연주도 즉흥성을 많이 띤다. 또한 각기 다른 상념의 특성 및 이들간 조화·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북·장고·징·꽹과리의 사물 및 바라·아쟁 등 다양한 전통악기와 함께 재즈피아노를 한 무대에 올려 전통악기와 현대 서양악기의 이색적 어울림을 맛볼수 있게 하고 있다. 안무와 주역을 맡은 김나영과 사물놀이패를 제외한 출연진 대부분이 20대 단원들이다.따라서 사물놀이의 타악 연주음과 이들 젊은 출연진들의 역동적 춤이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힘있는 무대분위기를 맛볼수 있다.피아노 연주는 유일하게 외부에서 초빙된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이 맡는다. 일반 대중과의 친화를 통해 우리 전통예술을 되살려 간다는 공연취지에 맞춰 관람료를 받지 않고 무료공연하며 국내공연이 끝나면 해외공연길에 나선다.20일 하오7시30분,21일 하오5시.523­0983.
  • 향가 설화문학/홍기삼 지음(화제의 책)

    ◎전설적 성격으로 본 「삼국유사」속 향가설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설화에 대한 본격 연구서.지은이는 특히 향가 설화가 지니고 있는 전설적 성격에 주목,그 특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춘다.향가 설화를 전설로 파악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삼국유사」가 정사가 아니라 잡사·잡기·만록 등에 적합한 「유사」라는 데서 찾을수 있다.이 책에서는 향가 관련 설화를 지배하는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문법적으로 꼼꼼히 살핀다.전설의 사실적 부분과 허구적 부분은 문장에서의 주술관계처럼 서로 긴밀하게 조응하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여기서 전설은 허구적 설화이지만 「믿지 못할 허구」로서의 민담과는 달리 「믿을 만한 허구」의 성격을 지닌다. 「삼국유사」는 전통적 무속신앙에서 유·불·선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어우러진 「외불내무」 혹은 「사교융합」의 통합적 세계관을 반영한다.이러한 흐름은 향가 설화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한 예로 「안민가」는 불교계 향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실은 유교적 가르침이 반영된 교훈가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효소대왕 죽지랑」「수로부인」「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월명사 도솔가」 등 모두 12편의 향가 설화가 실렸다.민음사, 2만5천원.
  • 이종훈 한전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전력예비율 7%… 여름철 안정수급 무난/축적기술 활용… 동남아 플랜트수출 역점/인건·경상비 동결 등 경쟁력 높이기 박차/발전소 건설 등 투자늘어 요금조정 안되면 적자 우려 이종훈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전력요금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내년에 한전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며 요금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이사장은 『2002년부터 연간 3백만t의 액화천연가스(LNG)를 한전이 직접 도입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수급안정과 국제 시장에서의 가격협상력을 높일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력수요가 많은 여름이 다가옵니다.올해는 전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 ▲올 여름철에는 전력수급에 어려움이 덜할 것입니다.수요증가 예측량보다 공급설비 증가량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공급능력은 3천8백52만2천로 지난해보다 4백22만7천가 늘어납니다.반면 전력 최대 수요는 지난 해보다 3백72만6천 증가한 3천6백만에 그칠 전망입니다.따라서 예비전력이 2백51만4천나 돼 문제가 없다고 자신합니다.이 정도의 예비전력은 원자력 발전소 2기반에 해당하는 양으로 예비율이 7%에 달합니다.적정 예비율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공사 중인 발전소 17개소를 적기에 준공하고 민자 발전소로부터 전력구입을 늘릴 계획입니다.자율절전 요금제도와 빙축열 냉방설비,고효율기기 보급,가스냉방기기 보급 등 수요관리도 강화할 작정입니다. ­여름철 전력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아슬아슬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상고온 등 변수 존재 ▲절대 안심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아졌다는 뜻이지요.예측불허의 이상고온으로 냉방수요가 급증할 경우 사정은 좀 달라집니다. ­발전소 건설에는 문제가 없습니까.한보사태로 국제신용도가 떨어졌는데요. ▲전력수요는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입니다.여기에 맞추기 위해 해마다 400만 이상의 발전 설비와 이를 수송하기 위한 송·변전 설비를 건설해야 합니다.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요.올 해엔 발전소 건설 등에 8조3천억원을 투자하며 내년에 9조4천억원,99년 8조3천억원,2000년 8조4천억원을 각각 투자하게 됩니다.이중 한전의 자기자본은 올해 3조7천억원,내년 3조1천억원,99년 3조원,2000년 2조8천억원 등에 그쳐 올해 4조6천억원을 비롯,해마다 5조∼6조원의 자금부족이 생깁니다.자체조달과 외부차입금으로 이를 조달할 계획입니다만,외부차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국내 자본시장의 한계로 올 해 2조2천억원 이상을 국내에서는 빌리기가 쉽지 않습니다.해외자본 차입도 용도가 엄격해 투자재원 조달에 애로가 적지 않습니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요금조정의 필요성이 있습니다.환율인상으로 발전용 연료인 석탄,LNG의 수입가격이 올라 발전단가가 높아졌습니다.환차손도 있습니다.이같은 비용증가와 함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전력설비 건설에도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합니다.그러나 현행 전력요금은 적정 투자보수율(투자에 대한 수익비율·9%)을 크게 밑돌고 있습니다.지난해의 경우 5.4%에 그쳤고 올해엔 4.5%,내년엔 3.2%로 떨어집니다.요금은 조정되지 않고 환율과 유가가 올라 한전의 순익규모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95년 9천1백억원을 기록한 한전의 순익은 올해 4천6백53억원으로 예상되고 내년에는 2백11억원의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분석됩니다.요금조정과 관련해서는 정부측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2차 민자발전사업(대구 민자발전)은 잘 진척되고 있습니까. ▲대구 민자발전은 대구지역의 만성적인 저전압을 해소하기 위한 장기대책으로 추진되는 사업입니다.대구지역은 최대 전력수요가 전국의 10%나 되지만 발전소가 없어 항상 전압이 낮습니다.한전은 이곳에다 45만급 LNG 복합화력발전소 2기를 지어 저전압을 해소할 계획입니다.2003년과 2004년에 잇따라 준공할 계획입니다.오는 11월 말까지 사업신청서를 받아 12월말까지는 사업예정자를 선정,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대구 민자발전소 추진 ­한전에 대해 「공룡같은 조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내부 경영은 어떻게 챙기고 계십니까. ▲공룡이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한전은 정부가 「국가경쟁력 10% 이상 높이기 운동」 차원에서 올해 인건비와 경상비 총액을 지난 해 수준에서 동결키로 한데 맞춰 올해 업무추진경비 20% 이상 줄이기 등 씀씀이 줄이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해외 출장이나 단기성 해외 교육훈련,행사비 최소화도 들어가 있습니다.조직과 인력관리 분야에서도 감량경영을 단행,유사 또는 중복기능을 통폐합하고 결재단계 축소(5단계에서 3단계로),권한이양 등 조직간소화에 노력하고 있습니다.감량경영과 소수정예 인력구성으로 「작지만 강한 본사」를 지향하는 본사 슬림화를 추진 중입니다.비주력업무는 위탁업무로 넘기고 변전소를 무인화하는 등 자동화와 전산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인력을 자율적으로 감축하는 사업소에 대해서는 내부평가에서 가점을 주는 제도도 시행,자율적인 감축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해외 사업으로는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중입니까. ○건설·시공·운전후 인도 ▲요즘 범국가적인 과제는 무엇보다 무역역조의 개선입니다.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는 국산품 애용과 국산시설 구매 일변도 정책이 자칫 무역마찰을 불러올 소지가 큽니다.때문에 한전은 타개책으로 기술 및 자본집약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인전력플랜트 수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특히 중점을 두는 분야는 건설·시공·운전후 넘겨주는 사업입니다.축적된 전력기술과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자원개발과 연료구매의 연계추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자금과 기술이 부족한 동남아 및 중국지역이 주공략 대상입니다.95년 5월 필리핀전력공사(NPC)로부터 65만급 말라야 화력발전소 성능복구 사업을 수주한 이후 지난해말 세계 최대의 가스복합화력발전소인 일리얀 발전소를 수주했습니다.시설용량이 1백20만에 이릅니다.현재 추진중인 사업은 중국 연길의 열병합발전소,산동 원자력발전소,베트남 푸미 복합화력발전소 건설과 인도 라마군담 등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터키 아쿠유 원전 시운전 등 용역사업이 있습니다. ­한전이 LNG를 직도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2002년 LNG 직도입 ▲한전은 2002년부터 연간 3백만t을 직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87년부터 한국가스공사에서 LNG를 독점 공급받고 있는 탓에 연간 2천억원 이상(97년 기준)의 연료비가 추가로 나가는 손실과 함께 물량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입니다.현행 LNG수급과 가격구조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증가추세인 발전소용 LNG사업 수행을 위해 LNG 물량을 경제적인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높습니다.물론 이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가스공사의 안정적 LNG 사업수행을 돕기 위해 현행처럼 한전이 민수용 수급조정 역할을 계속해야 된다면 현재 가동중인 LNG발전소의 소요량은 가스공사로부터 계속 구입하면 됩니다.다만 앞으로 준공될 LNG발전소에 필요한 LNG 물량은 한전이 도입하자는 것이지요.LNG 도입창구 다원화로 국제시장에서 가격협상력이 높아지고 국내 가스공급의 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한전은 동일 부지 안에 발전소와 LNG 인수기지를 동시에 건설,중복투자의 우려를 없앨 계획입니다. ­북한 경수로 원전사업은 잘 돼 갑니까. ▲북한 원전사업은 94년 10월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간 기본합의문 서명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이 95년 말 경수로공급협정을 체결했고 이 협정에 따라 현재 후속조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KEDO가 지난해 3월 한전을 북한 경수로 사업의 주계약자로 선정,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확보하게 됐습니다.그러나 북한 원전사업이 수행되려면 건설인력을 위한 숙소,통신,동력 등 초기 기반시설 건설 등 넘어야 할 고제가 많습니다. ○통일후 전력수급 자신 ­통일에 대비한 발전설비 확충계획은 진전이 있습니까. ▲남북간 전력협력은 남북관계 진전상황에 따라 유연한 대처가 필요합니다만 한전은 95년 장기 전력수급계약때 남북전력협력과 통일 이후 단일 계통망 구성을 대비한 설비계획을 포함시켰습니다.다만 북한과의 발전협력이 성사된다하더라도 남한에서 북한으로 송전할 수 있는 전력량은 20만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이는 내년 남한의 설비용량 4천만(추정)의 1% 미만에 그치는 만큼 국내 공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전력 예비율이란/전력 수급사정 나타내는 지표… 설비·공급 2종류/감소량 고려한 공급예비율이 안정성 판단기준 여름철 전력사정을 나타내는 지표로 흔히 예비율이 사용된다.이는 전력수요 예측의 불확실성이나 발전설비의 보수,혹은 뜻하지 않은 고장으로 전력공급의 차질을 막기 위해 최대수요를 넘는 여유설비(예비력)를 최대수요의 백분율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예비율은 설비예비율과 공급예비율로 나눠지는데 전자는 투자규모 및 경영효율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후자는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판단하는데 이용된다.설비예비율은 설비용량에서 최대수요를 빼 최대수요로 나눈 것을 백분율로 표시한 것이다.예컨대 설비용량이 100이고 최대수요가 80이면 예비율은 20.5%가 된다. 반면 공급예비율은 최대수요 발생시기에 발전소 정기보수,설비노후로 인한 성능저하,가뭄에 의한 댐수위 저하 등 예측가능한 발전감소량을 고려한 공급능력에서 최대수요를 뺀 값에 최대수요를 나눠 구한 수치로 설비예비율보다 낮다.올해 한전의 목표는 7%.공급능력은 지난해보다 11.3%가 증가한 3천8백15만9천㎾,최대수요는 작년보다 11.9% 증가한 3천6백12만1천㎾에 달해 공급예비율은 5.64%로 추정되지만 자율절전 요금제도,수요관리강화를 통해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물론 5.64%나,목표치인 7%의 공급예비율은 흔히 말하는 적정 예비율보다는 낮은 게 사실이다.한전은 수요변동 대비(4%),주파수 조정용(3%),고장대비(5%) 등 12%를 적정한 예비율로 보고 있지만 5.64%든,7%든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예비공급능력이 2백만㎾(원전 2기에 해당)이상이나 되는 만큼 원전 2기가 동시에 완전히 가동중지되지 않는 이상 여름철의 최대 전력수요를 커버할 수 있다고 한전은 확신하고 있다.
  • 죽산예술제·현대무용제/두 국제무용제 동시 개최 「개성」 대결

    ◎죽산예술제­첨단 전위예술들의 국제적 집합무대/현대무용제­3개 외국팀·9개 국내무용단 기량 겨뤄 우리 춤의 저변확대와 세계화를 꿈꾸는 두 개의 국제무용제가 한날 동시에 시작,똑같은 기간동안 열린다.5일부터 8일까지 4일간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용설리 야외무대에서 갖는 죽산국제예술제와 서울 교육문화회관에서 진행되는 국제현대무용제. 올해로 세번째인 사단법인 웃는돌 주최의 죽산예술제는 첨단 전위예술들의 국제적 집합무대.「테크놀러지와 미스테리」라는 주제가 상징하듯 기술문명과 자연의 신비,여기에 인간이 보태져 이들 3자간 조화와 교류를 통해 인간의 내면성찰을 모색하는 자리다.죽산의 수려한 경관속에 비디오 설치미술이 꾸며지고 이를 배경으로 각종 퍼포먼스와 굿판이 벌어진다. 「웃는돌」을 이끄는 무용가 홍신자씨가 굿의 의미와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씻김 그리고 재살이」를 춤과 민요로 풀어내며 만능 예술인 장성식씨가 정신대 여성들을 소재로 만든 뉴에이지 연극 「천황의 하사품」이 마을굿과 총체극의 접목이라는 실험적 형태로 공연된다.또 비디오아트의 박현기,무용의 이영희 김복희 김기인씨 등이 각자 개척한 독특한 공연을 통해 국내 전위예술의 현주소를 짚어준다. 외국 참가자로는 일본의 노부키 소이치로와 오치 요시아키가 각기 비디오 아트및 환경음악을 선보이며 몽골의 국립예술원이 몽골 전통음악과 춤을,덴마크의 현대무용가 키트 존슨이 페루 만년설속에서 발견된 미라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전위무용을 보여준다. 지난해 기대이상의 관심을 모아 힘을 얻은 주최측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올해는 다양한 워크숍도 준비하고 인근 사찰 등에 민박도 알선,예술과 함께 하는 주말나들이를 꾀하고 있다. 한국현대무용협회 주최로 올해 16회째를 맞은 국제현대무용제는 국내외 유명 현대무용단들이 각자의 개성과 예술성을 발휘하면서 서로의 역량을 견줘보는 자리.이를 통해 안팎 현대무용의 흐름도 자연스레 정리해볼수 있다.중국 이스라엘 스위스 등 3개의 외국 무용단이 참가하며 국내에서는 대학교수들이 이끄는 무용단들이 참가한다.중국 제일의 무용수 양리핑이 중국 전국콩쿠루 대상작 「공작춤」을 비롯,「전설」「달빛」「가랑비」등 4편의 독무를 선보이며 이스라엘 버티고무용단은 영상과 춤·음악이 어우러진 「콘택트렌즈」 등 3편의 2인무를,스위스 필립세르무용단은 「작은 인위적인 재앙」 등 3편을 공연한다.국내에서는 이숙재밀물현대무용단 등 9개 무용단이 이들과 현대무용의 기량을 겨룬다. 문의 죽산예술제 0334­675­0661,현대무용제 578­6810.
  • 천안문사태 8돌(외언내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1989년 6월 북경의 천안문광장에 진입한 인민해방군 탱크부대를 맨몸으로 막아선 한 청년의 담대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4일은 그 「천안문사태」의 8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에서는 「천안문사태」하면 1976년 4월에 있었던 민중소요사태를 말한다.그해 1월 주은래 사망을 계기로 주은래를 추모하는 추종자들이 당시의 실권자들이었던 4인방을 주요 표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던 사건이다.따라서 89년 사태를 중국에서는 「6·4동란」혹은 「6·4폭란」이라고 한다. 천안문은 중국 공산정권에겐 영욕이 엇갈린 곳이다.1919년 5·4운동이일어난 곳도 천안문이고 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수립선포식도 천안문광장에서 있었던 반면 두번에 걸친 반혁명사건도 모두 이 천안문광장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어찌됐든 세계는 89년 시위사태를 「천안문사태」라 부른다.4일 북경은 매우 평온했다.홍콩반환을 자축하는 소리만 요란할뿐 천안문사태를 되새긴다거나 기념하는 어떤 행사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천안문사태」8주년은다른 의미가 있다.등소평사망후 처음 맞는 날인 것이다.「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물밑에서나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2월 등소평사망 직후 광동성 광주에 「천안문」을 재론해야 한다는 대자보가 붙은 이래 내외에서 재평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등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강택민 주석은 지금까지의 공식표현인 「동란」,「폭란」이란 용어대신 「풍파」라는 표현을 써 작은 변화를 암시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의 재평가는 등소평을 재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싱가포르의 전설적인 이광요 전 총리는 「천안문사태」에서 등소평이 12억인구의 중국을 재앙에서 구해냈다고 평가한다.그의 그런 결정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단정한다. 「천안문사태」 평가는 등소평의 업적과 맛물려 중국현대사에서 하나의 딜레마다.
  • 축제를 기다리며(송정숙 칼럼)

    메모도 없이 맨손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와 열정적이고 설득력있는 수사학으로 『미국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받고있는 도덕적 의혹같은 것을 뛰어넘게 한다.은발의 노신사 슈미트 전 서독총리가 8순의 노인이라기에는 너무도 맑은 총기와 온화한 친화력으로 통일시대를 대비한 충고를 들려주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지성의 빛나는 분위기는 그것만으로 축복이다.우리도 언젠가는 옛시대의 정치적 묵은때를 벗고 탄탄한 지적무장을 한 지성을 정치지도자로 가지게 되기를 고대해 왔다. 요즈음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다.비명을 올리며 쓰러지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생업이 어려워 마음들이 스산해서 대권경쟁자들이 이렇게 설치는 일에 고운눈이 안가는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나라를 잘 다스려보겠다』는 다짐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을 이모저모 훑어보며 저녁시간을 보내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특히 여당의 경선후보는 너무 여럿이어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난립의 혼선이 걱정이고 마침내 이전투구의 모양을 띨터인즉 큰일이라는 것이다.『용은 커녕 지렁이도 안되는』후보가 키재기를 한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여론주도층은 물론,이제는 대중의 비평안도 어찌나 발달했는지 무작위로 들이대는 마이크앞에서도 당당하고 준열하다.이 똑똑한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전까지 여당의 이런 경선모습을 구경하리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었다.우선 여야간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나도 한번 나서보겠소』하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도 「어른」의 한말씀이면 기가 죽어 물러나는 「가부장」적 구도의 경선이 더러 있었을 뿐이다.고작해야 재수에 재수를 거듭하며 「용못된 한」을 벼르는 우두머리를 둘러싸고 들러리서는 유사경선을 보았을 뿐 완전한 자유분위기에서 제각기 달리는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국민 비평안목 높은 수준 여론도 적응훈련을 미처 못했을 것이다.여론은 오히려 마지막에 가서 실세가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결판나는 방식의 후보지명방식을 쓰지말라고 진작부터 경고했었다.지금은 그일을 까맣게 잊은듯 「난립」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아뭏든 우리에게는 처음인 이 경선후보들의 토론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괜찮다.공화정의 광장정치를 뿌리로 가진 서양사람들처럼 풍부하고 자연스런 제스처가 동반된 감동적 연설에까지는 아직 못갔어도 복모음 발음이 잘 안되거나 술부가 긴 문장을 읽는 일이 서툴러 듣는 이를 불안하게 하는 경선후보는 없어 보인다.여러 수를 거듭하여 논리도 억양도 싫도록 들어 기억하고있는 기성도 아니어서 신선하고 들을 맛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여 건국한 대통령,경제발전으로 민족의 삶을 개선한 대통령,단임실현으로 독재의 고착화를 극복한 대통령,시민의 민주혁명을 수렴한 대통령,문민정부를 출범시켜 정치개혁을 이룩한 대통령……』ㅡ.보수주의를 표방하지않는 후보라도 전직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당당하게 전개할 수 있는 콤플렉스가 없는 세대들이다. 게다가 첨단장비의 연출이 볼거리를 더욱 다양하게 한다.주자의 아내들을 영화배우처럼 클로즈업시키는 대형화면,토론자의 배당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사회 데스크의 「특수장치」,재미있고 새로운 소도구들이 동원되고 있다.이런 대선산업의 특수도 일고 있는 것이다. 부인들은 또 어떻게 그리 기품도 있고 교양도 있어 보이는지 첨단기기의 영상에 투영되기에 어색하거나 모자라보이는 사람이 없다.대선주자의 아내쯤 되면 이만큼은 세련되는 모양이다. ○투명·당당한 경선이 되길 「무슨무슨 심」의 권위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대선시간표대로라면 이런 것은 즐길수 없었을 것이다.『용은 커녕‥』이라는 비아냥도 좀 성급한 일이다.동구앞 수심깊은 연못에서 천년묵은 영험한 구렁이가 여의주를 물고 하늘에 오르는 전설속에서 용은 태어난다.용이란 승천의식을 치러야 비로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용으로 태어나지는 않는다.대선을 꿈꾸며 『나도!』를 표명한 상태의 경선주자들은 아직은 「용」이 아니다.그중의 하나가 용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처음부터 모두를 「용」으로 부른 것은 언어의 인플레였다.그러니 『지렁이 운운』의 폄하는 부당하다. 그러나,그러나 꼭 한가지 걱정은 남는다.투명하고도 당당하고 깨끗하게 진행되는 축제로서의 대선이 끝끝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일이다.경선결과에 불복하여 밖으로 튀어나가 볼썽사나운 짓을 벌이는 일 같은 것은 안보았으면 좋겠다.고품질의 아름다운 기술력에 준하는 이벤트로 끝끝내 즐길수 있었으면 좋겠다.영상을 달구는 토론의 열기에 취해가며 유권자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 「서유기」의 무대 연운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9)

    ◎“손오공의 출생지” 화과산 곳곳에 전설이…/삼원궁경내 현장법사의 기념관 우뚝/칠십이동 괴석원에 「저팔계」도 의젓이/지장암·숙성촌에 아직도 신라고승·무역상 체취가… 중국 4대 기서의 하나로 「서유기」의 발상지요,그 주연인 당승 삼장법사와 돌원숭이 손오공의 출생지인가하면 청대의 「홍루몽」과 「유림외사」의 혼성 아류소설로 보여지는 또 하나의 명작 「경화연(경화연)」의 산실은 바로 강소성 북단 항구인 연운항이다. 그곳은 명작의 무대요 산실일 뿐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위도상 부산과 목포에서 줄곧 서쪽으로 황해를 건너면 닿는 곳.일찍이 당나라때는 신라 사람들이 무역하던 해상의 거점이요,신라의 고승들이 도를 닦느라 부락을 이룬 곳이다. 중국문학사상 가장 성공한 신마소설로서 오승은(1504∼1582)의 「서유기」는 시작부터 황당무계했다.화과산 산상에 있던 한덩이 신선 바위.그 바위가 열리면서 알이 나오더니 석란은 바람속에서 돌원숭이로 변하고 돌원숭이는 수렴동 동굴속에서 동천복지를 발견,거기다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깃들이다가 그들로부터 「미후왕」으로 추대되고,그 뒤 천궁과 지부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삼장법사를 도와 팔십일난을 극복,끝내 서천인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어오기까지 위기를 배제하고 요마들을 소탕하는 용감하고 슬기있는 손오공의 영웅신화인 것이다. 그 돌원숭이 영웅인 손오공과 당승 삼장법사의 출생지인 화과산이 바로 오늘날 연운항시 동쪽 15㎞지점의 운대산이라서 거짓말같은 사실에 누구나 얼얼할 수 밖에 없다. 「서유기」그 첫회를 펼치면 12만9천600년을 1원으로 하는 천지의 역수로부터 망망묘묘한 혼돈의 세계를 말하면서 영기를 통한 원숭이가 태어난 화과산을 묘사했다. 「동승신주,해외일국토,명왈오래국.국근대해,해중유일명산,환위화과산.차내십주지조맥,삼도지래용,자개청탁이입,홍판후이성,진개호산!」 (동승신주의 바다 저쪽에 또 하나의 국토가 있나니 이름하여 「오래국」.오래국은 넓은 바다를 끼고 바다 한복판에 산이 솟았나니 이름하여 「화과산」.이 산은 십주의 할아버지요,3도의 기원으로 천지가개벽되어 청탁이 갈라진 뒤의 정말 명산이었다)고. 물론 중국에는 여러곳에 「화과산」이 있다.1982년 10월,연운항시에서 전 중국의 「서유기」전공학자들이 모여 제1회 「서유기」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현지 답사와 많은 문물의 고증을 통해 연운항시외에 있는 화과산이야말로 「서유기」의 발상지임을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서유기」의 저자인 오승은의 고향­회안에서 불과 130㎞요,외가가 연운항인데다 오승은이 두번이나 화과산을 올랐다는 방증 외로도 「서유기」에 묘사된 화과산이 사실과 근접했고,「서유기」의 스토리가 연운항 일대에서 수백년 전래했던 전설과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둘러 화과산으로 차를 몰았다.불과 20분에 작은 어촌을 방불케하는 화과산향에 이르렀다.거기서 동쪽으로 운대산의 주봉인 화과산(해발 625m)까지는 갈수록 비탈이었다.그 산구 왼편에는 대촌댐,댐옆으로 그 유명한 아육왕탑.그것은 40.6m의 높이에 9층8각탑,북송 천성1년(1023)무렵에 고대 인도의 아육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뒤 열네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탑.강소 북부지역에서 가장 오래고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산구에는 높이 12m,가로 28m의 아치형 산문,거기에는 원숭이를 비롯,사자·호랑이·돼지·곰등 백쌍의 동물이 형형색색의 조각으로 섰으니 과연 손오공의 고향임을 실감케 했다. 산문을 지나 선인교를 넘고 다시 남천문.한참을 오르자 사로탑,그 옆에 해발 580m의 청풍정에 운대산 그 복부를 굽어보는 삼원궁이 있다.삼원궁은 화과산의 가슴이다.당승 3형제를 기린다는 그 절에는 현장법사의 기념관이 있고 「서유기」의 유적이 모두 삼원궁을 중심으로 분포되었다. 거기서 동북으로 오르면 높은 벼랑에 동굴,그 동굴밖에 드리운 물줄기,이름하여 「수렴동」이라 일컫지만 물은 마른채 「고산유수」라는 각자가 선명했고,그 각자가 쓰여진 명·가정23년(1544)은 「서유기」의 저작시기보다 몇십년 빨랐다.수렴동에서 북으로 오르면 옥황각,내려가면 후원,그 아래로 칠십이동에 괴석원,물론 팔계석도 그 곁에 있다.그 괴석의 숲속을 거닐다 보면 「서유기」의 교과서를 읽는 양 흥미진진했다.어떤 것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에 유사했고 어떤 것은 억지 춘향인데,400여년전 여기 어디쯤 「서유기」를 구상하며 거닐었을 오승은의 발자국이 찍혔으리라. 그렇게 오르내리다가 문득 만난 것이 문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본다는 정각­조해정에 이르렀을때,멀리 굽어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괴석들만 어수선했다.옳지! 이 화과산이 300년전엔 강소 유일의 해도에 솟은 산이었지.1668년의 대지진때 운대산 해안선이 북으로 14㎞나 이륙된데다 토사에 메운채 1700년대부터 벽해가 상전 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때는 이 산이 출렁이는 황해속에 우뚝 솟았고 사슴과 여우가 뛰놀면서 기화요초와 송백·지란을 품에 안았겠지.뿐만 아니라 이 산의 서쪽 골짜기 지장암과 숙성촌에는 신라의 중들과 신라의 선원들이 도를 닦고 부락을 형성했던 곳이다.하긴 조선 성종때 우리나라 최세진이 엮은 중국어교재인 「박통사언해」속에는 벌써 「서유기」를 소개한 바 있으니 해주(연운항의 옛 이름)는 여러모로 한·중 교류의 거점이었다. 화과산을서둘러 하산한 뒤,필자는 다시 남쪽으로 20㎞지점인 판포까지 단숨에 달렸다.「경화연」의 산실을 찾아서. 당나라 여황이었던 무칙천의 황제 찬탈과 붕괴과정을 겉으로 과거에 낙방한 당오란 사람이 해외 40여개국을 나들이한 견문과 당규신 등 백명의 재녀들이 여권을 신장하는 고사를 안으로 쓴 재자소설로 윤리성·애정성·사회성·무협성·철학성·풍자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의 저자 이여진(1763∼1830)이 스무살무렵 그의 고향인 북경을 떠나 이곳 포구에 와서 그의 불우했던 벼슬살이의 체험을 살려 20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1818년에 출판,중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그 산실이 여운항시 판포진 동대가에 재현되었는데 지금은 비옥한 농촌이지만 당시는 소금을 만들던 염장.역시 상전벽해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경화연」속의 「군자국」이 예의지국으로 그려졌는데 그 군자국의 모델이 신라라는 설이 있어 우리 입맛을 다시게 했다.
  • 프랑스/몽생 미셸(세계 문화유산 순례:32)

    ◎천년세월이 만든 「섬아닌 섬」 바다 한가운데 고고히/바위위 축조된 성당 주변숲 침식당해 섬으로/불 혁명뒤 형무소로도… 영욕의 역사 간직 희한한 섬이 다 있다.멀리서 바라 보면 분명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인데도 다가서면 섬이 아니다.배를 타고 가지 않고 승용차나 관광버스로,아니면 걸어서라도 섬까지 갈수 있다.부드러운 카망베레 치즈로 유명한 프랑스의 동북부 노르망디의 동쪽끝 몽셍 미셀(Mont saint Michel)은 그런 곳이다. 파리를 떠나 프랑스 대륙의 동쪽끝 대서양에 가까워지면 삼각형의 몽셍 미셀이 아스라한 자태를 드러냈다.대서양의 바다 안개에 휩싸여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몽셍 미셀로 향하면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모습이 분명해질수록 몽셍 미셀은 우리의 시각과 함께 청각,후각을 골고루 자극했다.짠 바다 내음새와 몽셍 미셀 꼭대기에서 바다와 육지를 향해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때문인 것이다. 섬이면서도 섬이라고 부를수 없는 이유는 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 탓이었다.최고 15m 간만의 차이는세계에서 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한 곳중의 하나다.매분마다 62m의 속도로 드나 드는 바닷물은 바다와 뭍의 경계를 18㎞까지 바꾸었다.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몽셍 미셀은 대서양의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섬이 됐다. 몽셍 미셀에 다가서면서 되새기는 역사와 전설은 신비감을 더해준다.커다란 바위덩어리 몽셍 미셀은 옛날만 해도 시시(Scissy)라는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있는 완전한 육지에 속했다.조용하고 외딴 지역이라 수도승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수도에 정진하기에는 적격이었다는 것이다.대서양 건너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이 조용하고 풍요로운 이곳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몽셍 미셀의 역사는 서기 7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몽셍 미셀의 부근 아브랑슈에 살던 오베르 대주교가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었다.그는 어느날 꿈속에서 대천사 미카엘을 만난다.미카엘 대천사는 커다란 돌이 있는 곳에 예배당을 세우라고 말한다.오베르주교는 바위에 예배당을 세우라는 미카엘 대천사의 말을 반신반의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화가난 미카엘 대천사는 세번째 꿈에 나타나서는 손가락으로 오베르주교의 머리에 강한 빛을 쏘았다.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전설같은 이야기이지만 오브랑슈의 박물관에 구멍난 오베르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는 것을 보면 전설만은 아닌 듯했다.또 이웃 마을에서 잃어버린 소가 몽셍 미셀 바위 위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자 사람들은 드디어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이게 됐다.그리고 바위를 깍아 토대를 만들고 이탈리아의 몽테 가르가노에서 화강암을 가져와 미카엘을 기리기 위한 성당을 지었다.미카엘의 프랑스식 이름이 미셀.몽셍 미셀은 우리 말로 「성 미카엘 언덕」정도로 바꿀수 있다. 몽셍 미셀은 처음에는 예배당만 세웠으나 수도승들의 숙소를 추가로 짓는등 18세기까지 1천년동안 증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드러냈다.시시 숲은 천년동안 바닷물에 침식당해 없어지고 말았다.그래서 검붉은 색깔의 몽셍 미셀만 1천년의 연륜을 자랑하면서 고고히 바다 한가운데 서있다.입구에 들어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기념품 판매가게나 식당들이 즐비했다.옛날에는 수도승들의 숙소와 250여명의 수도승이 포도주를 마시던 술집,잡화가게들이 들어 앉았던 자리다.언덕길의 돌바닥은 신비스러운 건축물과 희한한 섬 모습에 반한 중세시대 순례자들의 무수한 발길에 닳아 반들거렸다. 꼭대기의 성당 서쪽 테라스에서는 대서양과 노르망디지방의 육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몽셍 미셀은 AD966년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리차드 1세 공작이 베네딕트 교단의 수도원으로 지정됐다.그뒤 6세기동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영적,지적,예술의 중심역할을 다 해냈다.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육각형형의 프랑스 영토를 휩쓸고 간뒤에는 형무소로도 쓰여 영욕의 역사가 함께 배어있다.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물과 진흙 모래만 보이는 몽셍 미셀은 이내 빠삐용이 연상됐다.하지만 이제는 대서양의 바닷바람에 쓸려 간듯 형무소의 자취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몽셍 미셀의 성당은 얼핏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때문에 화려하고 웅장한 유럽 성당을 이미 본 사람이면 몽셍 미셀에서 약간은 실망할 것이다.80m 바위위에 솟아 있는 성당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157m.아래서 올려다보면 육안으로는 성당의 첨탑 꼭대기에 금빛 동상을 찾기가 어려웠다.성당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다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산 사진엽서에서 비로소 셍 미셀 동상 모습을 만났다. 오른 손에는 칼을 들고,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는 성 미카엘,다시말하면 셍 미셀 동상의 유래도 흥미롭다.멀리 영국땅에 거대한 용이 나타나 마을 주민들을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민심은 흉흉해졌다.왕이 용을 죽이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군인들이 도착했을때는 용은 이미 죽어있었다.용의 시체 주변에는 칼과 방패가 발견됐는데 사람들은 미카엘천사가 용을 죽였다고 믿었다.그런 전설을 반영하고 있고 동상의 발아래 부분에는 죽어 나자빠진 용이 놓여있다. □여행가이드 몽셍 미셀에 가는 길은 쉽지 않다.파리에서 동쪽으로 4백㎞정도 떨어진 몽셍 미셀까지는 승용차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열차는 몇번씩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프랑스에는 시외버스가 발달돼 있지 않으므로 주의를기울여야 한다.숙박시설이 많이 있으나 연휴기간에는 적어도 1주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 구하기가 어렵다. 몽셍 미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야경.은은한 간접조명은 신비함을 더해주고 바다물에 비친 야경은 환상적이다.여름철인 5월부터 8월사이가 관광의 최적기이며 5월에는 민속춤을 볼수 있다.7,8월말 금요일밤부터 토요일밤 사이의 주말에는 각종 콘서트가 열린다.
  • 2야 담화특사 왜 거절했나/국민회의­담합 오해소지 사전차단 포석

    ◎자민련­JP일정 들어 “사후설명” 요구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를 앞두고 청와대측과 야권의 신경전이 한차례 벌어졌다.청와대측이 「사전설명」을 위한 특사파견을 제의했으나 국민회의는 「양해특사」로 오해받을까봐 거부했고,자민련은 「사후설명」으로 바꿔 수용했다. 국민회의 정동채 비서실장에 따르면 지난 28일 하오 청와대정무수석실에서 『담화와 관련해 내일(29일)사람을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다.정실장은 언급을 회피했지만 「특사」는 강인섭 정무수석이고,설명대상은 김대중 총재라고 한 관계자가 소개했다. 정실장은 김총재에게 보고한 뒤 29일 상오 거부의사를 전달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절차보다는 담화의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라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정대변인은 또 『사람을 보내면 오해나 혼선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담합오해」를 차단하려는 뜻임을 분명히 했다. 강수석은 또 28일 자민련 이동복 총재비서실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30일 상오 김종필 총재를 뵙고 싶다』고 제의했다.31일 자민련 창당기념임 축하를 명분으로 걸었다.강수석은 아울러 담화발표전 담화와 관련한 배경설명도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그러나 김총재의 진주방문 일정때문에 하오에 「사후설명」을 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 경박호와 조선족(송화강 5천리:26)

    ◎“용암이 만든 절경”… 발해멸망 전설간직/화산 용암 목단강 줄기막아 호수로/거란군에 쫓기던 발해왕 보경품고 몸던져/30년전 조선족 이주… 척박한 땀서 인고의 세월/개방 바람에 “천지개벽”… 관광산업으로 부촌 일궈 중국 관동의 명승지로 꼽히는 경박호는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150㎞,길림성 돈화시에서는 110㎞ 거리에 있다.흑룡강성 동남부 장광재령과 노야령사이의 경박호는 이름 그대로 수면이 거울처럼 맑고 잔잔하다.그리고 병풍을 쳐놓은 듯 사방을 둘러쌓은 웅위로운 산봉우리들이 물위에 어려 호수는 더욱 아름답다. 경박호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당나라 때만해도 홀한해 등 3개나 되었다.홀한해는 목단강의 옛 이름인 홀한하를 뜻하는 것이다.실제 경박호는 목단강 강줄기가 화산폭발로 쌓인 용암에 막히면서 생겨났다.그러니까 화산이 뿜어낸 용암에 의해 이루어진 호수다.호수의 길이는 50㎞,너비는 9㎞까지 이르는 지점도 있다.호수의 전체면적은 90.3㎞나 된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달리느라면 호수와 섬,양안의 경치에 도취하게마련이다.무수한 산비들기가 둥지를 틀고 사는 비들기 바위며 발해때 호주성터가 남아있는 두개의 가지런한 섬을 만날수 있다.발해가 거란의 침입을 막기위해 세운 호주성터에는 지금도 성벽은 물론 서문터가 비교적 잘 남았다.그리고 발해의 장수가 마치 투구를 쓰고 천산만악을 딛고 선 모습의 백석바위도 눈으로 들어온다. 그렇듯 경박호는 발해와 인연이 깊은 사연들을 꽤나 간직한 호수다.발해의 마지막 왕인 대인전이 최후에 겪었다는 슬픈 전설도 경박호에 담겨 있다.이 전설은 주색에 빠진 대인전을 치기 위해 거란군이 오늘의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 상경용천부로 물밀듯 들어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왕은 황급한 나머지 보경을 품에 안고 삼십육계를 놓았지만 거란군이 뒤를 쫓았다.그래서 왕은 경박호에 다다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그대에 보경이 물속에 잠겼대서 경박호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경승지 자리를 굳힌 경박호는 화산폭발로 재창조된 자연이다.경박호에서 50㎞ 떨어진 장광재령도,화산구삼림도 역시 화산폭발로 이루어졌다.화산분화구 6만6천㏊에서 홍송과 백송,피나무등이 저절로 자랐다.세계에서 유명한 화산구원시림으로 산꼭대기보다 낮은 분화구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하삼림이라고도 부른다.그러한 분화구는 한둘이 아니다.어떤 분화구는 함지박처럼,또 다른 분화구는 키처럼 생겼는데 모두 9개나 된다. ○길이 50㎞ 너비 최고 9㎞ 경박호와 그 주변에서 대자연의 외경을 분명하게 느낀다. 경박호 경물중에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경박폭포다.경박호텔에서 산길을 다라 용천산 아래쪽 호광각에서 음료수 한 컵을 마시고 왼쪽으로 돌아 비홍교에 올랐다.다리 아래로 급류가 흐른다.그리고 쏴하는 폭포소리가 벌써 귓전을 대리기 시작한다.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서 육강성 정자에 올랐을때 경박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바위 절벽에서 내리 꽂히는 물줄기가 정관을 이루면서 함성을 질러댄다. 그래서 경박호를 동양의 나이애가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갈수기에 폭포 너비는 40m에 지나지 않지만 물이 좀 불면 200여m로 넓어진다.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발전소댐이 나타난다.그 댐을 품고있는 산기슭으로 오순도순 모여앉은 마을이 보였다.조선족들이 살고있는 폭포촌이다.137가구에 540명의 조선족들이 지난 1966년에 세운 마을이니까 마을 역사는 30년이 넘는다. 흑룡강성 영안시 영안현에 속하는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사회주의를 고수한다는 뜻에서 홍위라 지었다.당시 조선족 이동민현장이 영안일대의 조선족을 모아 벼농사를 지을 요량으로 마을을 세웠다.그러나 논 20㏊,밭 70㏊의 농토가 고작인데다,척박한 용암지대여서 농사를 짓는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오히려 정부에서 대주는 옥수수로 연명을 했다. 폭포촌의 서러운 삶은 90년대에 들어 겨우 마감되었다.관광바람이 불면서 천지개벽으로 말해도 좋을만큼 생활이 바뀌었다.여관을 꾸리거나 사진업에 종사하고 더러는 고기잡이로도 돈을 벌었다.그리하여 초가집을 헐어버리고 벽돌집을 지었다.오늘날 여관업을 하는 집은 모두 58가구로,하루 3천명의 손님을 받아들일수 있다.그리고 마을에서 폭포까지 가는 삭도까지 가설했다.이 삭도가 중국농촌의 첫 케이블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마을에서 맨 먼저 관광에 눈을 뜬 사람은 임파(55)다.돈화시 태생의 조선족인 그는 1974년 이 마을에 와서 교편을 잡았다.머리가 좀 트인 사람인지라 1984년 교편을 집어치우고 사진업에 뛰어들었다.얼핏 모험으로 보였으나 한해에 8천원이라는 큰 수입을 올렸다.사진업 말고도 여관업까지 손을 댄 그는 폭포촌의 자본가가 되었다.모두가 개혁개방의 덕이라는 그는 자랑이 대단하다. ○기업형 민속촌 개발추진 경박호 전설에 의하면 호수에서 보경을 찾는 사람은 모든 소원을 다 이룬다는 것이다.그처럼 머리가 일찍 깬 사람들은 경박호에서 보경을 건진것이나 다름 없는 횡재꾼들이 아닌가.요즘 몇해 사이에 거의가 부유해져 벽돌집을 덩실하게 지어놓은 사람들이 많다.오늘의 현실 그대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류철원촌장은 미래지향적 청사진을 펼쳐 보인다. 『우리 폭포촌 사람들 다들 잘 살게하는 보경이 있다면 기업형 민속촌 개발이 아닌가 합네다.사진업과 여관업은 벌써 한물이 갔디요.카메라가 많이 나오고경박호 주변에 호텔이 자꾸 들어서기 때문에 그렇습네다.그래서리 우리는 연변대학이 사업을 기획하고 연안농업은행과 목단강자동차공장과 합작으로 민속촌과 호텔을 짓기로 했디요.
  •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 선다/2000년까지 건설/헬리포트 등 갖춰

    ◎태양열 자체발전 제주도 남쪽에 있는 전설의 섬 이어도에 오는 2000년까지 210평 규모의 종합해양과학기지가 건설된다.해양수산부는 22일 한국해양연구소와 삼성중공업의 공동연구로 이어도 종합기지에 대한 기본설계 최종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이에 따르면 이어도 정상에서 서북서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해난사고시 구난기지로 활용할 수있도록 헬리포트를 포함한 210평 규모의 과학기지가 설립된다. 이 종합해양과학기지에는 관측실험실,선박계류시설,오수처리시설 등을 갖추게 되며 7명이 14일간 임시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된다.또한 각종 기상관측 장비,해양관측장비,환경관측장비 등이 설치될 예정이며 전원은 태양열,풍차발전,디젤발전 등으로 자체 공급체제를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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