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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세의 만화경] 만화 같은 인생이라면…

    [이현세의 만화경] 만화 같은 인생이라면…

    얼마전 고우영 선생이 타계하셨다. 어릴 때 고우영 선생이 그린 ‘느티나무 도둑’이라는 만화를 보고, 이렇게 문학적이고 예술성이 강한 만화라면 세상이 만화를 경멸하든 말든 나도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비록 선생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나를 만화계로 이끈 몇 분 안 되는 작가 중 한 분이시다. 선생을 보내고 난 다음날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있다 보니 이래저래 마음이 울적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성장한다지만 사실은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영원한 삶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고 유한의 삶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도 탄생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죽음은 슬픈 일이다. 산다는 것은 눈이 시리도록 눈부신 것이지만 또한 눈물겹도록 슬픈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가끔 터무니없는 얘기를 두고 ‘만화 같은 얘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야말로 만화 같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만화는 꿈처럼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고 인생은 현실의 삶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러나 세상살이는 만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실제로 만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소재가 무엇이든 간에 만화가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성장 드라마이다. 주인공이 소림사에 가 있든, 안드로메다 성운에 가 있든, 또는 암흑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태초의 전설 속에 가 있든 그 주인공은 갖은 역경과 고난을 뚫고 성장해 나간다. 그 성장드라마 속에 빠지지 않는 성공의 요소가 우정과 야망, 사랑과 승리이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요소를 눈물과 분노와 웃음으로 버무려 나가는 것이 만화다. 만화 속의 주인공은 어떤 역경 앞에서도 카리스마와 웃음을 잃지 않고 어떤 적과 분노 앞에서도 슬픈 눈을 잃지 않는다. 고우영 선생의 삶은 한편의 만화다. 광복 전에 하필이면 옛 고구려의 땅인 만주에서 태어난 것도,6·25때 피란오면서 온 가족이 남이냐 북이냐의 생사의 갈림길을 선택해야 했던 것도, 일찍 요절한 천재 만화가인 형을 따라 만화계에 뛰어든 것도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다. 시대보다 작품이 앞질러 가서 어린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선생은 젊은 날을 고독하고 치열한 삶으로 보냈다. 이런 삶이라면 마땅히 외롭고 지친 모습을 보여야 했을 테지만 선생은 웃음보따리였다. 누구보다 낙천적인 성품에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누구든지 만나면 단번에 허물허물하게 만들어버렸다. 거기다 스포츠라면 무엇이든 만능이었으니 선생이야말로 어떤 역경 앞에서도 카리스마와 웃음을 잃지 않는 만화 속의 주인공이었다. 이렇듯 해학과 풍자의 대가였던 선생은 1980년대 스포츠신문에 성인만화 ‘임꺽정’을 연재하면서 한국 성인만화의 장을 열었고 불같은 열정으로 눈을 감기 전까지 작품을 발표했다. 고우영 선생은 가장 만화 주인공 같은 모습으로 가장 만화 같은 삶을 살다가 가신 분이다. 그래서 선생의 삶에서는 따라하고 싶은 유혹의 향기가 있다. 어차피 인생이 허구가 아니라서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면, 고우영 선생처럼 온갖 매력으로 무장한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서 자신의 인생을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 수 있다. 어차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다. 멋지게 채색된 만화 같은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내 끝은 언제쯤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다 보니 30년 만화가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누구나 그렇듯이 분명 내 인생도 싫든 좋든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다. 엔딩이 좋으면 드라마는 성공한다.
  • [마니아] ‘싸움’ 보다는 ‘자부심’ 심기

    [마니아] ‘싸움’ 보다는 ‘자부심’ 심기

    ■ 마포구청장기 태권도대회 앞선 팀의 경연이 끝나고 다음 팀이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그 사이 짧은 정적이 지나고 태권도복 띠를 한번 더 질끈 잡아당긴 아이들이 첫걸음을 뗐다. 순간 마포문화체육센터를 뒤흔드는 음악이 터진다. 전설적인 록 그룹 ‘퀸(Queen)’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다. 아이들은 쿵, 쾅, 쿵, 쾅 터져나오는 음악에 지르기·앞차기 등은 물론 ‘얍’하는 기합소리까지 틀림없이 맞춰댄다. 지난 15일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마포문화체육센터에서는 마포구에 있는 크고 작은 태권도장 34개팀 800여명의 초등학교 선수들이 참가한 ‘제9회 마포구청장기 태권도대회’가 열렸다. ●마포구청장기 대회는 3무(無) 올해로 9번째 열리는 마포구청장기 태권도대회는 대련시합이 없는 것과 1등을 뽑지 않는 것, 우승기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태권도장간 과열경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다. 대련이 없기 때문에 각 도장별로 이 대회를 위해 준비한 ‘태보’(TaeBo)와 간단한 격파 시범을 위주로 경연을 펼치게 된다. 태보는 태권도의 발동작과 권투의 손동작, 그리고 에어로빅의 스텝이 흥겨운 댄스 음악과 어우러진 운동이다. 팀당 경연시간은 15분. 태보경연에 필수인 음악선정부터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참가한 도장마다 모두 다르다. 이 대회는 1등을 뽑지 않기 때문에 우승기도 없다. 참가한 모든 팀에는 똑같은 트로피가 수여되며, 참가한 아이들은 ‘태권도를 하며 큰 무대에 서봤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태권도대회라기 보다는 ‘한 판 뽐내기장’ 같아 보인다. 마포구 태권도협회 안덕기 전무이사는 “체급별 대련을 통해 승패를 가리게 되면 아이들이 다치는 사고가 분명히 발생하게 된다.”면서 “이럴 경우 태권도에 대한 아이들의 의욕이 떨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굳이 공식적으로 1등을 뽑지 않아도 이 자리에 모인 학부모들이나 관계자들에게는 잘하는 팀이 뻔히 보인다.”면서 “말하자면 관중들의 박수소리가 1등을 뽑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엄마들도 신나는 대회” 사진기를 들고 아이들을 쫓아 나온 엄마, 아빠들도 즐겁다. 일찍 15분 경연을 마친 팀들은 밖에 나가 부모님들과 함께 김밥, 통닭, 피자, 과일 등 한 보따리를 풀어놓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며 즐긴다. 그야말로 ‘봄 소풍’이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따라 대회장에 나온 박민주(36·주부)씨는 “처음엔 서로 싸워 겨루는 대회인 줄 알고 많이 걱정했다.”면서 “이 대회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걱정없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도복 컬러화 경연장? ‘태권도복의 변신은 무죄, 유죄?’ 마포구청장기 태권도대회가 열린 마포문화체육센터는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화려한 태권도복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대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흰색 도복을 입게 하고 있지만 몇몇 도장의 아이들은 파란색·빨간색·검은색, 혹은 상·하의가 다른 색의 도복을 입고 경연에 참가했다. 또 2∼3개 팀 아이들은 머리에 태극문양이 새겨진 두건을 쓰고 출전하기도 했다. 많은 흰색도복 사이에서 두건을 쓰고 색깔있는 도복을 입은 아이들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 대회에서 흰색이 아닌 다양한 컬러 도복이 허용된 것은 2년전인 제7회 대회부터다. 이에 대해 마포구 태권도협회 안덕기 전무이사는 “비록 마포구에서는 컬러도복을 입을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아직도 공식대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면서 “도장들이 화려한 도복 경쟁을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컬러 도복은 해외에 나갔던 태권도가 역수입되면서 나타나는 잘못된 현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컬러 도복에 대한 유혹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에게 컬러 도복을 입혀 출전한 한 도장의 사범은 “일단 옷이 예쁘기 때문에 부모님과 아이들이 좋아한다.”면서 “아이들에게는 태권도를 지속적으로 하게 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마포구에만 60여개 태권도장이 있는데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튀어야 되기 때문에 컬러 도복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태권도의 정통성을 해친다는 지적과 변화의 흐름에 태권도 역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는 “컬러 태권 도복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세계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간에 논의가 필수”라면서 “일부 도장에서는 색깔있는 도복을 입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아직까지 연맹이나 협회 차원에서 공론화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1)고군산군도의 경관적 가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1)고군산군도의 경관적 가치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신지도 곶리도 말도 횡경도 방축도 야미도 등이 별처럼 모여 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앉은 이 섬들 때문에 고군산군도는 ‘호수에 뜬 섬들’로 불렸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중국 사신들이 서해를 건너오면 고려군사들이 고군산까지 영접을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과 한반도가 뱃길로 연결되는 길목이었음은 물론이고 서남해안 쪽에서는 개경이나 한양으로 가는 중간 허리였다. 조운선과 상선, 군선이 상존했으며, 이순신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도 난중일기에 보인다. 사람과 배만 그러한가. 물고기에게도 필수 코스였으니, 유명한 칠산어장의 북단이 바로 고군산이다.1906년 군도 끝자락 말도에 등대를 세워 올해로 99년째 불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이곳은 일찍부터 서해 항로의 요충지였다. 때맞춰 북상하는 조기같은 회유어종의 통로라 함은 역으로 남하하는 홍어나 대구 같은 한류어종의 통로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군산 수협조차도 애초에는 육지가 아니라 장자도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군산진을 설치하고 서해를 경영하다가 옥구로 옮기게 된다. 왜구의 노략질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황당선의 ‘황당한’ 일도 자주 벌어졌다. 군산진만 육지로 떠난 것이 아니다.20세기 후반에는 물고기들이 떠나가는 일도 벌어졌다. 황금어장 칠산이 고갈되면서 섬사람들은 서울이나 군산 등지의 저잣거리로 떠나갔다. 모진 세월은 이 천혜의 섬들을 가만 두질 않았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공사용 차량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분진을 일으키더니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야미도와 신지도가 방조제로 이어졌고, 그 바람에 승용차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고군산 수천년 역사 속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변화’가 밀어닥친 것. 약삭빠른 업자들은 관광유람선을 띄웠고 부동산업자들은 ‘새만금 새땅‘식으로 서부 개척시대를 방불케하는 거품경쟁에 나선다. 물고기가 사라진 바다에 땅장사들이 대신 몰려든 셈이다. 수산과학원 산하 갯벌연구소의 전용 조사선에 몸을 실었다. 분기별로 행하는 정기 탐사 일정이었다. 연구원들은 항해 내내 포자망으로 해파리 유체를 채취하고, 멸치 난어를 조사했다. 예전에 없던 아열대성 해파리떼가 한반도를 휩쓸어 그물 가득 해파리만 든다.20세기 초반 시인 김억이 ‘해파리의 노래’를 상재했으나 이런 ‘괴물’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남방 해파리의 알이 고군산 근역에서 보임은 수온 상승의 반증 아니겠는가. 바다 물고기들의 동향도 수상쩍다. 조기 갈치는 물론이고 여타 고급 어종들이 대거 사라진 자리를 멸치떼가 채우고 있다. 고급 어종 비율이 1967∼69년도 39%에서 36년 만인 1999년 23%로 줄었으니 엄청난 감소다. 멸치는 1992년 군산수협 위탁량이 88t이던 것이 2002년에는 2359t으로 급증했다. 먹이사슬 상층부를 차지하는 큰물고기들이 사라지자 아래쪽 개체인 멸치떼가 극성을 부리는 것. 생태계의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이러다가 고기가 아예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진반농반의 걱정을 전하자 동행한 김수관 군산대 교수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동의한다.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동해안의 엄청난 인구증가와 산업화로 서해에 쏟아부어지는 오염총량을 계산할 때 서해가 죽음의 바다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란다. 일제시대에 고군산 근역에서 미역 김 해삼 상어 가오리 넙치 고등어 멸치 조기 삼치 대구 도미 청어 전광어 새우 숭어 참장어 가사리 병어 민어 홍어 오징어 뱅어 갈치 등이 잡혔다니, 종다원성이 해체된 비극이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바다의 젖줄인 동진강, 만경강을 끊어 놓으니 바깥 생태계에 엄청난 부담이 가해지고 있다.”는 갯벌연구소 조영조 소장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만금간척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반대해 온 환경운동가를 비롯, 뜻있는 많은 이들이 잠시 반성할 지점이 있다면, 바로 고군산 같은 방조제 바깥 섬들의 안위를 도외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막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바깥 바다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환경운동조차 언제나 육지 중심이었던 것이다. 현재 군산쪽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남쪽 일부만 트여 좁은 수로로 조류가 엄청난 속도로 드나든다. 그래서 신시도 아래쪽 무녀도와 비안도 사이는 거대한 물골이 패였으며, 이곳에서는 어떤 어업도 불가능하다. 무녀도 어민 김용문(55)씨는 “조류가 빨라 그물 설치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양식이나 조개 채취도 다 지난 얘기”라며 “방조제 안쪽은 그래도 보상이나 넉넉히 받았지만 바깥쪽은 단돈 1000만원이 고작이었다.”고 말꼬리를 흐린다. 어류가 산란을 위해 새만금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거대한 장애물이 가로막으니 애당초 어업은 결단난 것이다. 무녀도를 둘러보니 물고기 못지 않게 자연 경관의 훼손도 심하다. 왕왕 경제적 가치만으로 간척의 폐해를 계산하느라 대개 경관가치는 무시되기 일쑤다. 무녀산 중봉의 ‘삼각형’이란 곳까지 올랐다. 왼쪽으로 선유팔경이 펼쳐지고 무녀도 서두리 마을과 염전, 닭섬을 비롯한 자잘한 섬들, 그리고 비안도, 신시도 같은 섬까지 한 눈에 들어와 가히 관해의 요처답다. 선유도와 무녀도를 이어주는 현수교가 멋스럽다. 섬들은 아득한데 저 멀리 한 눈에 들어오는 방조제가 철책처럼 흉물스럽게 방벽을 두르고 있다. 무녀도가 한창 ‘잘 나갈 때’, 삼월 삼짇날이면 선남선녀들이 밥솥을 짊어지고 산정에 올라 진달래꽃 향기에 취해 놀다 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고군산은 예로부터 ‘신들의 본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춤추는 무녀의 형상에서 따왔다는 무녀도란 섬 이름이 말해 주듯 섬마다 신들이 좌정하고 있었다. 선유도 모래사장이 끝나는 지점에 망주봉이 기암괴석으로 솟아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절경만 보고 돌아올 뿐 거기에 오룡묘 신당이 있는 것은 모른다. 다섯 용을 모신 곳인 만큼 기와집이 화려한 폼새로 지어졌고, 산신각도 따로 세워져 신당의 위용을 자랑한다. 해마다 당제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음은 물론 수년에 한번씩 별신제를 올릴 때면 내로라는 굿쟁이들이 몰려들어 삼현육각을 잡고 남사당패까지 몰려와 신명의 굿판으로 바다를 달구었던 서해안 최대 신당의 하나였다. 신당 형체는 여전하나 문짝은 떨어져 나가고 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할 정도로 쇠락했다. 군의관으로 고군산에 근무하면서 이 일대의 신당을 조사, 세상에 알린 서홍관씨가 80년대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섬마다 있던 신당이 주민들의 기독교 개종으로 멸시와 박해를 당해 심지어는 불태워지기도 했단다. 여기서도 종교적 극단주의의 한 정형을 본다. 고군산 신당의 파괴는 문화적 반달리즘의 명백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장자도에도 어사대란 당집과 할머니바위가 있다. 비승비속의 당할머니가 모셨던 신당이다. 건너 횡경도에는 할아버지바위가 있어 양자간의 애틋한 전설이 전해진다. 고군산의 12섬에서 모두 신당 및 당숲이 확인되지만 당제가 남아 있는 곳은 없다. 당집이나마 문화유산으로 지정·보호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즉, 오룡묘같이 역사문화적 전통이 분명한 문화유산을 방치하는 군산시의 안목이 불안하기만 하다. 고군산에는 그동안 말로만 들어온 초분도 전해진다. 분묘 대신 짚으로 엮은 초분에 시신을 안치하는 초분 전통은 진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전통으로 알려졌다. 그 초분이 고군산에도 남아 있어 남해안뿐 아니라 서해안까지도 초분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녀도 초입에는 아예 궁금해 하는 외지인을 위해 ‘관광용 초분’까지 만들어 두었다. 무녀도에는 고군산 유일의 초분이 남아 해마다 짚을 갈아주면서 정성스레 보존해 오고 있다. 이처럼 신들이 잠을 청한 안식처이자, 초분 같은 고풍스런 유산까지 전해지는 것, 난초와 모감주나무군락을 비롯한 자연유산의 보고인 고군산의 경관가치에 관해서는 아무런 고려나 계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은 선유도에 잠시 들러 회를 먹고는 휘∼ 해수욕장을 한번 둘러보고 떠난다. 연육된 무녀도나 장자도는 그 관광객들이 떨구고 간 몇 푼의 푼돈 수혜도 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고군산이지만 이곳에도 ‘남북의 문제’가 빚어지고 있다. 선유도는 관광형 어촌으로 변신하면서 인심이 살벌해졌다. 멀리 떠있는 말도처럼 불과 15호 밖에 안되는 섬에서도 어제까지 ‘형님, 아우’하던 공동체가 깡그리 해체되는 중이다. 이웃 섬 주민들이 조개를 캐가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으나 지금은 어림도 없다. 대책없는 개발이 떠안긴 ‘인간성 파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고군산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고군산의 예스러움이 완벽하게 소멸되는 중이니 새만금 간척지가 가져다준 반갑지 않은 ‘보너스’ 아니겠는가. 다행스러운 일은 이곳 청년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3년전부터 고군산청년연합회를 조직한 이들은 해마다 체육대회를 열어 공동체의 연대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번갈아 12섬을 돌아가면서 여는데 박영구(43) 부회장은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다. 모처럼 12섬 젊은이들이 모여 단합도 꾀하고, 훗날을 생각하는 지혜도 모은다.”고 말한다. 대횟날이면 아침부터 각 섬에서 배를 끌고 집결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부녀회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술추렴도 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여 ‘섬들의 바다축제’를 연출한다. 청년들은 김양식을 하며 어렵사리 버티고 있으나 김값이 폭락하면서 하나, 둘 이곳을 떠나고 있다. 무녀도에만 청년들이 20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고작 8명만이 남아 있다. 살기 힘들어 떠나는 청년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다음 세대가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섬, 그런 섬을 만들지 않고서야 우리 바다의 미래가 어디에 있겠는가. 새만금의 거대 장벽은 안쪽의 갇힌 생물은 물론 이렇듯 바깥쪽 사람들의 삶까지 옥죄고 있다. 미래 세대와 해양의 종다원성을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 [일요영화]

    [일요영화]

    ●쿤둔(EBS 오후 1시40분) 전설이 되고 있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동양에 눈을 돌렸던 작품. 미국, 특히 뉴욕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던 이전과 이후에 견줘 다소 독특하다.14대 달라이 라마의 삶을 다뤘다. 초창기에는 ‘택시 드라이버’(1976),‘성난 황소’(1980),‘코미디의 왕’(1983) 등 로버트 드니로와의 작업이 많았다. 최근 들어서는 ‘갱스 오브 뉴욕’(2002),‘에비에이터’(2004) 등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와 함께한 영화가 늘고 있다. 현재 홍콩 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더 디파티드’를 찍고 있다. 비밀 경찰로 폭력 조직에 잠입한 양조위 역은 디캐프리오가, 갱으로 경찰에 위장침투한 유덕화 역은 맷 데이먼이 맡는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세상을 뜬 뒤 레팅 린포체는 환생하는 차기 달라이 라마를 찾을 때까지 섭정을 맡는다. 린포체는 ‘영적 스승’을 의미한다. 어느날 환영을 보고 길을 떠난 레팅은 변방의 국경지대에서 두 살배기 아기 라모 톤둡을 발견한다. 태어날 때 병을 앓던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불교의 성조 까마귀가 지켜줬다는 아이. 톤둡은 13대 달라이 라마의 물건들을 알아보는 시험을 통과,5살 때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쿤둔은 티베트어로 고귀한 존재라는 뜻. 하지만 쿤둔 앞에는 중국의 티베트 침략이 밀어닥치게 된다.1997년 작품.128분. ●보리울의 여름(KBS1 오후 11시30분) 신부님과 스님이 가르치는 산골 어린이 축구팀의 이야기를 그렸다. 따스한 봄날 같은 가족 영화다. 전라도 전주와 김제의 풍경이 화면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차인표와 박영규가 각각 신부와 스님 역할을 맡아 ‘티격태격’ 밉지 않은 줄다리기를 한다. 이야기 전개가 뻔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보면 볼수록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개같은 날의 오후’(1995),‘인샬라’(1997)를 연출한 이민용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으로 2003년 작품. 보리울 마을 성당에 젊은 주임신부(차인표)가 부임해 온다.6년전 출가한 아버지 우남 스님(박영규)을 찾아온 형우(곽정욱)와 함께 왔다. 형우는 아버지와의 어색함 때문에, 주임신부와 원장 수녀(장미희)는 성당 고아들의 잦은 말썽으로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보리울 마을 축구팀이 읍내 아이들에게 참패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축구 실력이 뛰어난 우남 스님 덕택에 보리울 아이들은 힘을 얻게 되고, 주임신부도 축구를 통해 아이들과의 사이를 바꿔 나간다.99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책꽂이]

    ●애경그룹회장 장영신(한국경영사학회 지음 및 펴냄) 여성으로 드물게 재계 총수로 활동한 장 회장의 생애와 경영이념에 대한 연구서. 남편의 뒤를 이어 갑자기 CEO가 된 장 회장이 어떻게 ‘경영의 천애 고아’에서 ‘경영 어머니’로 거듭 날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그렸다. 애경유지공업에서 시작,18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화학공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는 애경의 역사가 장 회장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1만 8000원 ●워런 버핏의 부(로버트 마일즈 지음, 권루시안 옮김, 황매 펴냄)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은 어떻게 서른살에 백만장자가 되고, 지속적으로 부를 축적하며, 증대시키는가. 그의 투자철학과 원칙, 실제수익률, 자산배분이 세세하게 묘사됐다.1만 4000원 ●해킹침입의 드라마(케빈 미트닉·윌리엄 사이먼 지음, 이성희·송흥욱 옮김, 사이텍미디어펴냄) 전설적인 해커로 추앙받는 인물, 케빈 미트닉이 해킹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커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소설의 형식으로 재구성.1만 5000원 ●마케팅은 미친 짓이다(더그 홀·제프리 스템프 지음, 임정재 옮김, 한스미디어펴냄) 판매와 마케팅에 필요한 100가지 진실과 402개 실천 아이디어를 제시한 책. 기존에 알고 있던 마케팅 지식을 버리고 견고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케팅의 허상을 파헤쳤다.1만 6000원 |유아·아동| ●퐁퐁이와 툴툴이(조성자 글, 사석원 그림, 시공주니어 펴냄) 숲속 옹달샘 두 개, 퐁퐁이와 툴툴이. 동물친구들에게 물을 나눠주는 퐁퐁이와는 달리 인색한 툴툴이에게는 가을 낙엽이 쌓여 숨을 쉴 수가 없는데….4세 이상.8000원. ●이야기에 홀딱 반한 괴물(사빈 드 그레프 글·그림, 김화영 옮김) 용감한 기사 로제가 칼과 창이 아니라 지혜로운 이야기 솜씨로 무시무시한 괴물을 물리치는 줄거리.‘이야기’가 칼보다 더 힘이 셀 수 있음을 알아챈 아이들, 독서의 참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지? 4세 이상.8500원. |초등·청소년| ●봉숭아꽃 선녀님(이상교 글, 김복태 그림, 으뜸사랑 펴냄) 눈밝은 작가가 요즘 아이들의 속성과 내면을 훤히 꿰뚫어 봤다. 깍쟁이, 새침데기, 많이 가질수록 행복한 것인 줄 아는 아이…. 단편 14편 속의 다양한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진지하게 ‘삶의 그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초등생.1만원. ●멍멍 나그네(마해송 글, 김세현 그림, 계림 펴냄) 한국 창작동화의 선구자인 마해송(1905∼1966)이 1960년에 쓴 장편동화. 밤에는 도둑을 감시하고 낮에는 사슬에 묶여 꼼짝 못하는 서글픈 신세의 ‘똥개’ 베스가 주인을 따라나섰다가 그만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잠시. 자유 가득한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될 줄이야! 초등고학년.8500원.
  • [책꽂이]

    ●동시성의 과학(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나타나는 동조현상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 수많은 반딧불이가 동시에 깜빡이는 이유, 태양계 행성들의 방전 이유 등 다양한 현상들을 통해 동조현상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1만8900원. ●문화와 제국주의(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우리가 아는 서양문화란 대체로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적 문화란 비판을 담았다. 서양이 동양을 한편으론 미개하게, 다른 한편으론 신비롭게 보아, 결국 타자화함으로써 식민주의를 정당화한다는 문화적 담론을 풀어낸다.3만2000원. ●한자, 백가지 이야기(시라카와 시즈카 지음, 심경호 옮김, 황소자리 펴냄) 한자의 형성과 변천 과정, 구성 원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고대인의 상징적인 사유체계를 설명한 한자 입문서. 한자의 기본자들이 만들어지고, 작은 부분들이 서로 합쳐져 복잡한 의미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2만3000원. ●넬슨(앤드루 램버트 지음, 박아람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넬슨의 평전.200여년 전 영국함대의 제독이었던 넬슨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력의 열세를 딛고 나폴레옹의 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이후 100여년간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지배케한 동력이 됐다.1만9800원. ●니체평전(강대석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평생을 통해 기존의 질서와 투쟁한 철학자 니체의 삶과 사상을 담았다.‘신성’과 ’사악’,‘삶을 사랑한 철학자’와 ’삶을 증오한 철학자’ 등 엇갈린 평가와 함께 수많은 해석을 낳은 니체가 오늘에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모색해본다.1만8000원. ●참선일기(김홍근 지음, 교양인 펴냄) 불교신자가 아닌 지은이가 일상의 표피적 세계 이면에 있는 근본적 실체를 찾아 나선 100일간의 참선일기.‘나’의 껍질을 벗고 본래의 나를 만나면서, 실제적으로 삶에 밀착하여 존재의 소중함과 생활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1만원.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2(한국역사연구회 지음, 청년사 펴냄) ‘그땐 어땠을까’란 궁금증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삶과 밀착된 내용을 담은 조선시대 역사서. 중요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구분, 왕조 등으로 짜여진 기존의 역사책과 달리 조선시대 일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각권 1만3500원. ●로마의 축제일(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한길사 펴냄)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축제일과 역사적 기념일을 중심으로 월별로 상세히 기록했다. 별자리에 얽힌 신화와 전설도 흥미롭게 풀어냈다.2만2000원.
  • 낙산사 산불 한달 “스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낙산사 산불 한달 “스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스님, 산불 이후 어떻게 지내십니까.” “중들이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부처님 앞에 정진, 또 정진할 뿐입니다.”우문현답. 천년사찰 낙산사의 웅장했던 가람은 잿더미로 변했지만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의 염불소리는 경내에 끊이지 않고 있다. 주변 수백년생 소나무 대부분도 시커멓게 그슬려 서 있지만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줄줄이 달아 놓은 연등은 여전히 세상을 밝히고 있다. 공양간과 숙소로 쓰이던 근행당, 취숙헌, 무설전, 종무소뿐 아니라 주 기도처인 원통보전마저 사라졌지만 기거하는 19명 스님들의 일상에는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달라진 모습이라면 스님들의 공양간과 숙소가 사찰에서 직영하던 인근 낙산유스호스텔로 옮겨지고 기도로 정진하는 시간이 더 늘었을 뿐이다. 그래서 화마를 피한 홍련암과 보타전, 관음전,7층석탑, 임시 원통보전(의상교육관)에서는 하루종일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이어진다. 교무스님인 지상(志常) 스님은 “부처님의 법력을 빌려 더욱 잘 해 보자는 뜻에서 스님들이 자진해서 기도정진에 나서고 있고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어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3대 관음성지로 잘 알려진 홍련암에서는 4명의 스님이 24시간 교대로 용맹정진 중이고 원통보전이 불타고 7층석탑만 남은 자리에서도 1000일 기도가 진행 중이다. 서울 불광사에서 내려와 공양시간 외에 하루종일 7층석탑 앞에서 정진하고 있는 주일(柱一) 스님은 “낙산사가 다시 중건되는 날까지 기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기도 덕분일까, 파랑새 전설을 간직한 관음송이 깊은 화상속에서도 푸른잎과 송화를 틔우고, 불타버린 홍련암 경사면에 대나무숲이 죽순을 내밀고 있어 여름철 장마걱정을 덜게 해주고 있다. 주지인 정염(正念) 스님은 “부처님 오신날 제등행렬은 산불로 모든 것을 잃은 양양지역 주민들의 아픔까지 밝히는 행사로 치르겠다.”면서 “부처님 법력 앞에 절망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자.”고 말했다. 글 양양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전설의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가 온다

    전설의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가 온다

    머스 커닝햄·마사 그레이엄 팀과 함께 미국 3대 현대무용단으로 꼽히는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AAADT)가 2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19∼21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AAADT는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안무가 앨빈 에일리(1931∼1989)가 1958년 창단한 무용단. 흑인 무용수들의 유연하면서도 정열적인 근육 움직임을 바탕으로 현대 감각의 테크닉을 구사,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보’가 빠른 무용팬이라면 이번 무대의 레퍼토리에 진작부터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예술감독 주디스 제이미슨이 취임 15주년을 기념해 직접 안무한 ‘러브 스토리’(Love Stories)와 지난해 내한한 파슨스 댄스컴퍼니의 데이빗 파슨스 감독이 안무한 ‘샤이닝 스타’(Shining Star) 등 화제의 근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흘 동안의 공연에서는 모두 7편을 바꿔가며 선보일 예정이다. 허름한 공간에서 무용수들이 연습하는 모습과 연습실의 고독 등을 표현한 ‘러브 스토리’는 무용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은유하는 ‘간판’ 레퍼토리. 흑인 노예들의 반항적 메시지를 담은 춤 주바에서 영감을 얻은 로버트 배틀 안무의 ‘주바’(Juba),1800년대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흑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계시’(Revelations) 등이 포함돼 있다. ▲19일 ‘러브 스토리’,‘트레딩’(Treading),‘주바’,‘계시’ ▲20일 ‘러브 스토리’,‘샤이닝 스타’,‘계시’ ▲21일 ‘은총’(Grace),‘역행하는 미묘한 흐름을 따라’(Following The Subtle Current Upstream),‘계시’.3만∼12만원.(02)599-5743.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우리동네 이야기] 도봉구 방학동

    [우리동네 이야기] 도봉구 방학동

    방학동(放鶴洞)에는 진짜 학이 살았을까. 도봉구 방학동의 이름에 관한 전설은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조선조 왕이 도봉서원의 터를 정하려 도봉산 중턱에 앉아 있다가 학이 평화스럽게 많이 앉아 노는 모습을 보고 ‘방학굴’이라고 불렀다는 전설과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방학이라 정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학과 관련된 전설은 한자로 방학리(放鶴理)란 지명이 붙여진 후 생긴 이야기로 추정되고 있다. 방학동이란 명칭이 정식으로 명명된 것은 1963년 서울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부터다. 이후 도봉구 관할이 되면서 방학 1∼4동으로 나뉘었고, 현재 면적 4.08㎢에 9만 3000여명이 터를 잡고 있다. 북쪽과 서쪽지역은 대부분 북한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북한산 자락에는 왕실과 귀족들의 묘소나 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 중 연산군묘와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대표적인데, 특히 연산군 묘역이 있는 산기슭 앞에는 수령이 1000년 정도 된 높이 24m, 둘레 9.6m의 은행나무(서울지정보호수 1)가 있다. 이 나무는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마다 불이 난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오래 전부터 연초가 되면 이 은행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산업화가 진행되고 동네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이 풍습도 맥이 끊겼다. 그러다 10여년 전, 동네 청년들이 중심이 돼 다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방학동에서 태어나 50여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어렸을 때 어른들이 돼지머리를 놓고 제사를 지내다가 1970년대부터 없어졌다.”면서 “어르신들께 풍습을 돌려주자는 의미에서 30∼40대 청·장년들이 제사를 부활시켰고, 지금은 정월대보름마다 경로 잔치를 겸해 무속인까지 불러 더 크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방학동은 서울에서 노인 복지가 가장 잘 돼 있는 동네로 꼽힌다. 방학 2동에는 만 60세 이상 주민 전용 컴퓨터교육실, 바둑실 등이 갖춰져 있는 노인복지센터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치매노인 전문 요양원인 도봉실버센터가 방학 3동에 문을 열었다. 도봉구청 문화체육과 최병우씨는 “방학동 주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방학동의 명소로 방학천 인근 ‘발바닥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200m의 지압보도가 있다. 방학천 주변 무허가 주택을 헐고 지난 2002년 만들어졌으며, 서울 시내 59곳의 지압보도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길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강기훈 유서대필’ 진상 밝혀질까] ‘3년 옥고’ 강기훈씨 본지인터뷰

    “수십년간 자행돼 온 군사독재정권의 부도덕성을 덮기 위해 운동권 흠집내기를 시도한 사건입니다.”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43·경기 고양시)씨는 8일, 이같은 주장을 하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1991년, 노태우 정권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김기설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의 분신 자살사건을 포함해 각종 분신 사건이 잇따랐다. 강씨는 “그해 5월 청와대는 당정 고위회담을 거쳐 배후조종세력을 조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정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전민련은 검찰이 유서대필 여부를 조사하려고 김씨의 필적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업무일지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는 게 강씨의 판단이다. 검찰은 업무일지와 김씨의 유서,1985년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강씨의 자술서 필적 등에 대한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그 결과 국과수는 강씨의 자술서와 김씨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을 내렸다. 강씨는 “조사과정에서 전민련 업무일지 작성자가 이동진, 임무영, 김기설씨 3인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진술했다.”면서 “당황한 검찰은 내가 조작해 작성했다고 자백할 것을 다그쳤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5월13일 김씨가 군대 동료 수첩에 20자 안팎으로 쓴 자필 자료를 검찰에서 압수해 갔고, 그 자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의 의혹은 증폭됐다. 강씨는 물론 당시 김씨의 상급부대 인사장교로 근무했던 이찬진 변호사는 “검찰은 그 자료를 찢어갔지만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군대 동료들 사이에서는 ‘연애편지의 전설’로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검찰이 동일필적 여부를 밝혀내려고 했다면 김씨의 부대에서 수많은 필적자료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 변호사는 주장했다. 강씨는 “유서대필 사건은 수사를 담당했던 세력들이 정권 요직에 그대로 남아 변한 게 없다.”고 주장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TV소설 바람꽃(KBS1 오전 8시5분) 느티나무 아래로 정님을 데려간 형주는 정님에게 파혼해 달라고 말한다. 정님은 그럴 수 없다며 갖은 변명을 해보지만 형주는 그런 정님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정님은 국밥집에 있는 억근을 찾아가서 형주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것을 빌미로 화를 낸다. ●건강 스페셜(SBS 오전 11시35분) 승려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좌선을 하지만,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푸성귀 나물과 밥 한 공기로 힘든 수행 과정을 이겨내고 장수까지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40년 동안 절 음식을 빚어 온 공양주(큰 사찰의 조리책임자) 적문 스님과 함께 사찰음식의 비밀을 알아본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경남 고성은 세계 3대 공룡발자국 유적지로 공룡의 흔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공룡의 고장’이다. 내년 4월14일부터 6월4일까지 52일 동안 ‘2006 경남 고성 공룡 세계엑스포’를 개최할 예정이며, 군에서는 고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공룡 관련 시설물 건립과 홍보행사 유치가 한창이다. ●애니토피아(EBS 오후 10시50분) ‘애니의 전설’에서는 이탈리아의 브루노 보제토, 프랑스의 르네 랄루와 더불어 세계 3대 애니메이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러시아 유리 놀슈테인의 작품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만난다.‘애니를 만나다’에서는 이소영 감독이 직접 이야기하는 수묵애니메이션 ‘극락강’을 만나본다. ●전파 견문록(MBC 오후 7시20분) 이선희 신지 MC몽 이성진 송은이 이승기 등이 출연한다. 어린이들의 눈을 통해 출연자들의 이미지를 알아본다.‘지금까지 외모 하나로 버티고 있는 사람’,‘학창시절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았을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지 어린이들의 눈에 비쳐진 출연자들의 모습이 공개된다. ●러브홀릭(KBS2 오후 9시55분) 강욱은 율주를 위해 동광고 패거리들에게 무릎을 꿇고, 그 모습을 본 율주는 강욱의 뺨을 때리고는 뛰쳐나온다. 율주를 따라 나온 강욱은 율주에게 “이미 시작됐다.”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율주는 강욱에게 그런 감정은 학생 때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는 것이라며 애써 부정한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⑨-KCC 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⑨-KCC 그룹

    KCC 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페인트 ‘숲으로’ 하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금강고려화학의 영문 첫글자를 아예 사명으로 정한 KCC는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매우 밀접한 기업이다.KCC 제품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리, 창호재, 바닥재 등 웬만한 건축자재는 거의 다 만든다.“없는 것은 시멘트와 철골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1958년 8월, 스물두살의 대학생이 “장형의 유학 제의를 뿌리친 채” 직원 일곱명을 데리고 서울 영등포에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세운 게 KCC그룹의 출발이다. 땀에 흥건히 젖어 ‘슬레이트’를 직접 찍어내던 대학생 사장이 바로 오늘날의 정상영(69) 명예회장이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왕 회장)의 막내동생이기도 하다. “왕 회장의 형제나 자식들은 대부분 크든 작든 기업체를 떼어 받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오롯이 혼자 힘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공장의 벽돌 한 장, 물빠지는 배수로 위치, 못 하나까지 직접 얹고 정하고 박았다.” 정 명예회장과 30년 가까이 동고동락해온 한 임원의 얘기다.KCC가 짧은 시간 안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현대’라는 확실한 납품처 덕도 있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창업주의 저력을 빼놓을 수 없다. KCC그룹은 지난해 1조 9000억원의 매출과 130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KCC건설(옛 금강종합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자동차유리 생산업체), 고려시리카(유리원료 제조사), 금강레저(골프장 운영업체) 등 7개 계열사 모두가 흑자를 내고 있는 재계 서열 29위(공기업 제외)의 알짜그룹이다. 특히 건축·산업자재 부문에서는 2위와의 격차를 갈수록 넓히며 독주하고 있다. 자산규모는 4월1일 현재 3조 5300억여원으로 현대백화점그룹(3조 7800억원)과 비슷하다. ●왕회장도 꺾지 못한 막내의 고집 그 자신 “공부가 싫어 소학교 졸업장이 전부가 된 것이 아니었기에, 아우들은 유학 아니라 그 이상도 해주고 싶었던”(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가운데) 왕 회장은 동국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막내동생 상영(SY)도 유학보내려 했다. 그러나 SY는 “나도 내 사업을 하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왕 회장의 한마디가 곧 법이었던 현대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대가 사람들은 “막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유학자금을 불모지나 다름없던 건자재 사업밑천으로 털어넣은 SY는 “통금시간(밤 12시)에 맞춰 퇴근하고 해제 사이렌(새벽 4시)에 맞춰 출근”했다. 운도 따라주었다. 때마침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초가 지붕이 속속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금강스레트는 찍어내기가 바쁘게 팔려 나갔다. 제법 돈이 모이자 젊은 상영은 슬몃 욕심이 생겼다. 당시 인기있었던 초콜릿시장 쪽을 기웃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장형의 호된 꾸지람이 돌아왔다.“초콜릿은 네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다. 이왕 사업을 할거면 국가경제에 도움되는 것을 하라.” 정신이 번쩍 든 SY는 이때부터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매달리며 한 우물만 팠다. 변변한 기술 하나 없이 선진국이 장악하고 있던 도료(74년), 유리(87년), 실리콘(2003년) 사업에 차례로 진출했다. 다들 “무모하다.”며 말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13년이나 걸려 완공한 전주의 실리콘공장은 SY의 뚝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진(45) 회장은 언젠가 사석에서 “전후복구사업과 수입대체 사업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아버지의 자부심은 큰아버지(왕회장)에 못지 않다.”고 말했다. 불같은 성정도 비슷하다. 왕 회장에게 혼쭐나 넋이 나간 현대건설 임원이 출입문 대신에 캐비닛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듯,KCC에는 한 임원이 정 명예회장에게 야단맞던 도중에 기절한 실화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아들들이 소신껏 일하도록 부러 13층 회장실에는 출근하지 않는 정 명예회장은 대신 지방공장 순시로 ‘취미’를 바꿨다. 전국 13개 시·도에 모두 공장이 한 곳씩 있어 발길 닿는 대로 불쑥 들러 젊은 날 자신이 직접 들여놓은 설비들을 살펴보곤 한다. ●5개국어 능통한 정몽진 회장 SY는 아들만 셋을 두었다. 지난 2000년 그룹 경영을 장남인 몽진씨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앉았다. 이 해는 그룹의 양축인 ‘금강’(슬레이트 등 무기화학 전문)과 ‘고려화학’(페인트 등 유기화학 전문)이 합병돼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장남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귀국후 1991년 고려화학 이사로 경영에 합류했다. 예나 지금이나 비즈니스 영어는 그룹 안에서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러시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 중국 곤산의 페인트공장 준공식 때는 유창한 중국어로 식사를 해 현지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실리콘 기술 개발을 위해 해외 과학자들과 담판을 벌일 때도 통역 없이 직접 설득에 나섰다. 이런 그를 보고 정 명예회장은 임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저렇게 잘 하는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왕 회장을 닮아 칭찬에 인색한 정 명예회장은 아들 앞에서는 일절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이 그룹의 기반을 닦았다면 정 회장은 ‘3대 키워드’로 제2 도약을 노리고 있다. 첫번째 키워드는 해외다. 국내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현재 3곳(중국 2, 싱가포르 1)인 해외 생산공장을 앞으로 3년 안에 5개를 더 지어 8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환경 파괴를 대체할 차세대 성장산업인 실리콘과 건자재 유통도 핵심 키워드다.“유통을 빼앗기면 이름없는 하청업체로 전락한다.”는 것이 정 회장의 지론이다. 한 임원의 얘기다.“명예회장님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 다소 보수적이다. 반면 회장님은 해외유학파답게 세계시장의 변화와 큰 흐름을 빨리 읽어낸다.” 장남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세 아들 가운데 가장 털털해 친화력이 좋다. 한때 고려대 ‘막걸리 시범조교’로 활약했던 술 실력을 바탕으로 해마다 경기도 여주 남한강변에서 임직원들과 삼겹살 소주 파티를 벌이곤 한다. 요즘에는 위장이 나빠져 와인으로 주종을 바꿨다. ●SY의 또다른 자부심 둘째 아들 몽익 둘째 아들 몽익(43)씨는 미국 시러큐스대학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을 전공했다. 이어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국제재정학 석사학위를 땄다. 그는 이 전과정을 4년만에 끝마쳤다. 금강과 고려화학 합병 직후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도록 경영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주역이 바로 그다. 최근에는 사무실 기기를 최신 오피스용 가구로 교체하고 소프트웨어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룹의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강화시켜온 덕분에 올 2월 KCC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물론 직급은 총괄 부사장으로 같은 대표이사인 형보다 아래다. 입사(89년 금강)는 형보다 2년 빠르다. 적절한 긴장관계를 통해 건전한 경쟁을 이끌어내려는 정 명예회장의 의도가 엿보인다.KCC 지분을 몽진(17.7%)-몽익(8.82%)-몽열(5.29%) 세 아들에게 모두 나눠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 부사장은 형보다 더 꼼꼼한 편이다. 과묵해서 임원들이 말붙이기를 다소 어려워한다. 의외로 운동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잘한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체전에서 승마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농구·스키·수영 실력도 프로급이다. 골프는 싱글(핸디 10)에 가깝고 엄청난 장타다. 반면 정 회장은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클래식이나 재즈 등 집에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정 회장이 동생 얘기가 나오면 사석에서 곧잘 하는 얘기가 있다.“딜(deal)은 아무래도 내가 좀 더 강하다. 그러나 디테일은 동생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내가 협상을 통해 골격을 세우면 그 골격에 맞게 디테일을 짜는 것은 몽익이다.” 유난히 용산고 출신이 많은 것도 KCC가의 특징이다. 막내 몽열씨를 빼고는 3부자(父子)가 모두 용산고를 나왔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도 용산고 출신이다. 모교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애정은 유명하다. 장남 몽진씨가 이른바 ‘뺑뺑이’로 용산고에 배정됐는데도, 발표난 그 길로 친구들에게 한 턱 냈을 정도다. 용산고에 승마반도 만들어줬는가 하면 농구 코트까지 지어줘가며 허재 등을 영입, 오늘날의 ‘농구 명문’으로 키워냈다. 몽진씨와 몽익씨는 고등학교-대학교(고려대)-대학원(조지 워싱턴) 동문이기도 하다. ●‘스위첸’ 성공시킨 ‘리틀 정상영’ 셋째 아들 몽열 89년 미국 FDU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물여섯살의 나이에 고려화학에 입사한 셋째 아들 몽열(41)씨는 97년 금강종합건설 상무가 되면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건설 체질’이다. 공사판에서 소주잔 기울이기를 좋아하고, 낭만도 아는 기분파다. 그러나 한번 화가 나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그룹 임직원들이 정 명예회장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존재다. 정 회장도 “우리 형제 가운데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 막내”라며 “몽열이가 화나면 나도 무섭다.”고 농반진반 얘기할 정도다. 작고 단단한 체구나 사업 수완도 아버지를 빼닮았다. 2003년 사장으로 승진한 몽열씨는 주택사업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만에 ‘스위첸’(아파트)과 ‘웰츠타워’(주상복합)를 유명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았다. 여기에는 정 사장의 정보기술(IT) 지식도 한몫 했다. 컴퓨터학을 전공한 그는 일상생활은 물론 기업 경영에도 IT를 일찌감치 접목시켰다. 선진국형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공사를 맡은 주택의 소프트웨어에도 “유별날” 만큼 공을 들였다. 덕분에 KCC건설은 도급순위 32위, 신용도 9위의 중견업체로 성장했다. ●‘창업동지’ 조은주 여사 현대가의 가풍이 그렇듯 정 명예회장은 연애결혼을 했다.“큰형님 회사(현대건설)를 드나들면서 경리팀의 동갑내기 아가씨에게 반해” ‘작업’을 건 것이 결혼까지 이어졌다. 조은주(69) 여사다. 서울 진명여고를 나온 조 여사는 당시 이화여대에 합격해 놓고도 등록금이 없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독립군이었던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된 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사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조씨는 ‘대학생 사장’을 남편으로 둔 덕분에 물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슬레이트공장 인부들의 밥이며 새참은 으레 그의 몫이었다. 직원들 식사를 지어 나르는 일은 그후로도 20년 넘게 이어졌다. 지금도 서울 서초동의 구사옥에서 근무하는 고참 직원들 가운데는 사원식당에서 밥을 짓는 조 여사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큰며느리는 음대… 셋째며느리는 미대 자유연애로 결혼한 정 명예회장은 아들들의 ‘사랑’에도 너그러웠다. 몽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홍은진(41)씨와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다. 홍씨는 한때 아이스크림 ‘퍼모스트’로 유명했던 옛 퍼모스트유업 사장의 딸이다. 전자부품회사인 ‘퍼시픽 컨트롤스’ 홍준 사장이 처남이다. 그렇다면 소개팅 주선자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사촌형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촌동생에게 친구의 처제인 음악도를 엮어준 것. 정 의장과 죽이 맞아 처제를 소개팅 장소로 내몬 이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치과 주치의이자 성균관대 교수인 임순호 박사다. “연애할 때 플루트를 불어주던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는 정 회장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결혼후에는 한번도 플루트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투덜대곤 한다. 내로라하는 재벌 집안과의 혼사는 몽익씨에 이르러 이뤄졌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 최은정(42)씨가 부인이다. 가톨릭 계통인 일본 성심대학 교육심리학과를 나왔다. 최씨의 언니 은영씨는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과 결혼했다. 조 회장이 몽익씨의 손위동서인 셈이다. 막내 몽열씨는 큰형수의 영향을 받았는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이수잔(35)씨와 결혼했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외국인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한자이름이다.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장인이 ‘쌓을 잔( )’자를 썼다고 한다. 여자들의 사회활동을 싫어하는 가풍 탓에, 큰동서와 마찬가지로 결혼과 동시에 그림을 접었다. 막내 며느리답게 활달한 편이다. ●‘숙부의 난’ 할 말 많지만… 정 명예회장은 조카 며느리인 현대그룹 현정은(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었다. 현대가 사정에 밝고 당시 분쟁에도 깊숙이 개입했던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한 명예회장님의 생각은 분명하다. 현 회장의 외가를 포함해 정씨 집안 사람이 아닌 제3자가 큰형님이 평생을 바쳐 일군 현대를 넘보려 한다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대상선 등 관련 지분을 팔지 않고 계속 갖고 있는 것은 이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라고 설명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정몽헌 회장에게 200억원을 조건없이 내준 것이 ‘의리’가 아니라 ‘경영권을 염두에 둔 계산된 행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 “지나간 상처를 다시 헤집고 싶지는 않다. 명예회장님도 더이상 언급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리셨다. 다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명예회장님은 장조카인 고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이 아버지(왕 회장)와의 갈등으로 방황할 때 형님 눈치 보지 않고 우리 회사 부사장 자리를 선뜻 내줬다. 또다른 조카가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릴 때 70억원을 조건없이 빌려준 분도, 몽헌 회장이 군 복무를 6년이나 할 때 뒤를 봐준 분도, 명예회장님이었다.” ●“숫자는 기본” 전문 경영인들 건장한 체격의 김춘기(59) KCC 대표이사 사장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정몽진 회장이 “(그룹에)꼭 필요한 분”이라고 언급한 이다.75년 고려화학으로 입사해 꼬박 30년을 KCC와 함께했다. 특히 영업쪽에서 잔뼈가 굵었다. 마당발 인맥과 철저한 고객관리로 KCC의 영업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말단사원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력도 흔하지는 않지만 ‘국가대표 스키선수’라는 경력이 더욱 눈길을 끈다. 강원도 강릉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때 우연히 본 스키영화 ‘백령의 왕자’에 푹 빠져 스키선수가 됐다. 대학생(경희대)때는 동계 유니버시아드와 올림픽 대회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그러나 취직과 동시에 “스키는 깨끗이 잊었다.”고 김 사장은 털어놓았다. 꼼꼼함은 모든 임원들의 공통점이지만 김 사장은 유난히 치밀하고 숫자에 밝다.“노력은 능력을 앞선다.”는 게 30년 직장생활의 신조다. 김 사장의 좌우 양쪽으로는 정몽진 회장에 버금가는 영어 실력으로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김영호(55·부사장) 해외본부장과 전문 무기화학 지식으로 제품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정복동(58·부사장) 생산기술본부장이 포진하고 있다. 금강레저 박연구(51) 대표와 고려시리카 이성수(53) 대표는 대학 졸업장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전문인력들이다.“학교 공부는 다소 게을리했을지 몰라도 추진력과 친화력은 (전교 1등보다)훨씬 낫다.”는 KCC의 독특한 사풍이 반영된 결과다. 코리아오토글라스 주원식(62) 사장과 금강화공의 한상기(57) 중국 곤산·신세균(55) 베이징 법인장,KCC 박성완(47) 싱가포르 법인장 등은 전문 기술인맥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 출신의 시마나가 모토야스(61) 부사장 등도 KCC를 떠받치는 핵심 인력들이다. hyun@seoul.co.kr ■ 정상영 일가 ‘밥상머리 교육’ 정상영 명예회장의 세 아들 부부는 한주 걸러 일요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이태원 본가를 찾는다.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서다.“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며 자식들과 아침식사-사실상 새벽밥-를 함께 했던 왕 회장에 비하면 며느리들의 부담이 한결 덜하다. 음식도 각자 집에서 ‘주특기’ 한가지씩을 싸들고 와 끓이기만 하면 된다. 며느리들의 음식솜씨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정 명예회장은 며느리를 들이면 반드시 반년씩 데리고 살았다. 그래야 가풍도 익히고 속정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대학 내내 플루트만 불다온 큰며느리가 음식을 잘 할 리 만무했다. 둘째며느리에게 기대를 걸었다. 요리학원을 다녔다는 재벌가의 둘째며느리는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내놓았다. 견디다 못한 정 명예회장은 급기야 “이러다가 굶어죽겠다.”며 하소연했다고. 그 며느리들이 ‘사원식당 주방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시어머니의 특별지도 아래 지금은 ‘선수’가 됐음은 물론이다. 정 명예회장은 자식들에게 매우 엄격하다. 그 영향을 받아 정몽진 회장도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아들 명선(11)군을 굳이 외국인 학교나 사립학교가 아닌 집 부근의 일반 공립학교에 보내고 있다. 학교도 자가용을 태우지 않고 걸려서 보낸다.“어렸을 때부터 보통사람, 못사는 사람의 삶도 느껴봐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다만 큰딸 재림(15)양은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귀국해 “성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 hyun@seoul.co.kr ■ 정 명예회장 ‘씨름꾼 경영론’ 왕 회장이 ‘빈대의 철학’으로 유명하다면 정상영 명예회장은 90년대 중반 ‘씨름꾼 경영론’으로 회자됐다.“씨름은 씨름꾼에게 맡겨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논리였다. 정 명예회장은 “씨름꾼이 아닌 사람이 씨름판에서 승리하기 어렵듯 기업간의 경쟁은 기업가에게 맡겨야 한다.”며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강조했다.KCC그룹의 사시인 ‘맡은 자리의 주인이 되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왕 회장의 지론이기도 하다. 지역 거상들이 장악하고 있던 총판(판매실적에 관계없이 물건값 선지급) 체제에 맞서 팔린 만큼만 대금을 지급하는 코카콜라식의 ‘루트 세일’을 도입해 유통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당시로서는 ‘생뚱맞기’ 그지없는 슬레이트 홍보영화를 만들어 275개 시·군에 배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큰형에게 영향받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렇듯 정 명예회장에게 있어 왕 회장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형이라기보다는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차이만 스물 한살이었다. 조카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는 두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젊었을 때 잠깐 초콜릿사업에 눈돌린 것 외에는 한번도 한 눈을 팔아본 적이 없는 그가 1970년 8월 현대차 부사장으로 홀연히 옮겨간 것도 “와서 미수금 70억원을 해결하라.”는 장형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자까지 회수해주고 다시 KCC로 돌아왔을 때는 1년 반이 흘러 있었다. 훗날 정 명예회장은 “중요한 시기에 내 사업에 공백을 가져 아쉬워한 적은 있었어도 불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여기에는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왕 회장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막내동생을 가까이 대했던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KCC측은 펄쩍 뛴다. 한 임원의 얘기다. “92년 대선 패배 이후 두문불출하던 왕 회장이 다시 산업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95년 KCC의 여주 유리공장 3호기 점화식에서였다. 또 거동이 심하게 불편해지기 전까지 왕 회장이 거의 매일같이 들러 골프를 친 곳이 금강CC였다. 라운딩 멤버는 언제나 정상영 회장이었다.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왕 회장 성격에 이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정 명예회장도 세상 사람들의 짐작 이상으로 장형에게 극진했지만, 왕 회장 역시 막내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컬러여행/빅토리아 핀레이 지음

    색깔만큼 다양한 것이 있을까.‘빨주노초파남보’, 영롱하게 빛나는 무지개의 일곱색깔을 각기 양을 달리해 섞으면 실로 무한대의 색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색은 실제로 고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빛의 산물일 뿐이다. 사물에 빛을 비추면 사물의 특성에 따라 특정 빛은 흡수하고 일부는 반사시키는데, 이때 반사되는 빛이 바로 우리 눈에 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같은 빛의 산물인 색을 재현하기 위해 쏟아낸 인류의 노고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요즘 쓰이는 안료나 염료 등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19세기 말이었으니, 아주 오랜 기간 인간에게 컬러를 빚어내는 일은 마술같이 신비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미술기자를 거쳐 작가로 활동중인 빅토리아 핀레이의 ‘컬러여행’(이지선 옮김, 아트북스 펴냄)은 이같은 컬러 탄생의 기원과 역사를 쫓아 세계를 여행한 체험적 기록을 담고 있다. 지은이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등을 직접 답사하였다. 그 결과 열개의 색, 즉 오커, 검은색과 갈색, 하얀색, 붉은색, 주황, 노랑, 녹색, 파랑, 인디고, 자주색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은 크게 두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하나는 컬러의 탄생과 역사 이야기, 다른 하나는 좀더 좋은 컬러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애썼던 화가들의 이야기다. 지은이는 인간이 컬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그리고 그 역사속에 사랑과 투기,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가득했는지 알려준다. 지금도 오랜 세월 전승되어 온 천연염료를 사용하고 있는 오지를 탐험해 직접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전설처럼 전해지는 컬러의 원료를 찾는다. 르네상스 시대에 성모 마리아의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썼다는 울트라마린의 원료를 찾아 지뢰가 널린 아프가니스탄의 광산을 찾아 신비한 청색돌을 만져보고, 인도에선 망고 잎을 강제로 먹인 소의 오줌으로 만들었다는 인디언 옐로의 미스터리도 확인한다. 이같은 탐험 하나하나를 통해 컬러의 비밀을 벗겨내는 체험을 생생히 기록했다. 책엔 수많은 명화와 화가들이 등장한다. 컬러에 민감하고 사활을 걸 수밖에 없던 사람은 누가 뭐래도 화가들이었다. 물감을 스스로 만들어 써야 했던 19세기 이전의 화가들에게 컬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전부였고, 때론 애써 그린 그림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는 존재였다. 지은이는 미켈란젤로, 반 고흐, 터너, 휘슬러, 르누아르 등 수많은 거장들에게 컬러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컬러로 인해 이들의 명화가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도 상세히 알려준다. 반 고흐의 ‘백장미’로 알려졌던 작품은 1990년에야 원래 분홍색 장미를 그린 것이 물감 때문에 희게 변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분홍장미’로 이름이 바뀌는 불운을 겪었다.19세기 초기 활동한 조슈아 레이놀즈는 버터색 니스 메길프를 몇몇 그림에 발랐다가 시간이 지나 그림이 뭉개졌으나,1세기 뒤 등장한 인상주의 그림처럼 변모하는 바람에 가장 인기있는 작품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미술의 역사는 미술을 창조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예술 창조에 필요한 재료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는 지은이의 말이 의미심장하다.1만 6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이집이 맛있대] 서울 압구정동 ‘밀탑’

    [이집이 맛있대] 서울 압구정동 ‘밀탑’

    날씨가 더워지면 간절한 것이 팥빙수다.20년 동안 한자리에서 팥빙수를 파는 집이 있다. 그것도 입맛 까다로운 서울 강남, 고급의 대명사격인 백화점에서.‘아니 어떻게 단순 메뉴 팥빙수 하나로 20년을 버틸까.’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전설의 빙수’를 찾아 나섰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5층에 있는 밀탑에서 밀크팥빙수를 주문했다. 커다란 통팥이 하얀 얼음 위에 올려져 나오는 겉모습이 여느 레스토랑의 세련됨보다는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 하얀 눈송이 같은 빙수를 한 수저 떠넣었다. 차가움보다는 혀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아이스크림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번엔 팥과 함께 먹어봤다. 통팥이 씹히는 질감이 예술적이다 못해 오묘하다. 말랑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적당한 느낌과 고소함이 묻어났다. 빙수 맨 위에 올린 두 개의 찰떡은 말랑말랑한 것이 보통 팥빙수집의 그것과는 격이 달랐다. 갖은 맛의 전쟁터인 백화점에서도 단순한 팥빙수로도 장수하는 노하우인 듯했다. 밀탑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얼음 가는 기계를 쓰는데도 얼음이 한겨울 눈송이처럼 곱고 부드럽다. 얼음을 얼리는 온도와 강도를 조절해 부드러운 얼음을 만들어 낸다. 또 팥은 국산을 고집하며 매일 직접 삶는다. 과일빙수에 올리는 과일은 하루 2차례 백화점 슈퍼에서 사와 신선도를 유지한다. 손님에게,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 1985년 현대백화점 개장과 함께 문을 연 밀탑이 오늘까지 인기를 끄는 비결이다. 커피를 즐기고 단것이 싫은 사람을 위한 커피빙수, 팥을 싫어하거나 새콤함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딸기빙수, 웰빙족을 위한 녹차빙수,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밀크팥빙수까지 모두 5000원이다. 장담하건대 가서 한번 맛을 본다면 지금까지 읽은 것이 불필요하리라.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혁신 공기업 탐방] ⑥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터뷰

    [혁신 공기업 탐방] ⑥ 한준호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터뷰

    한국전력공사(KEPCO)는 종종 ‘공룡’에 비교된다. 직원 수 및 자산 규모 등 외형적인 크기가 재벌기업 못지않게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룡은 제때 변화하지 못해 멸종됐다. 한준호 사장도 이같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직내 벽을 없애지 않으면 변화에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 패거리 문화의 상징이었던 직군을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공기업 최초로 ‘부조리 신고 포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윤리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범주다. 한전이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데는 이같은 이유가 있었다. 한 사장과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혁신의 방향부터 설명해 달라. -어느 조직이나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개편이 뒤따를 수 있다. 지난 2002년 4월 전력산업구조 개편에 따라 한전 조직이었던 발전부문이 6개 자회사로 떨어져 나갔다.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대한 한전 조직을 유연한 조직으로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잭 웰치가 GE를 이끌면서 벽없는 조직을 만든 것처럼 한전 조직내 그래도 남아 있는 벽을 깨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한전은 내부에 파벌과 패거리 문화가 있다고 들었다. -경영의 핵심은 올바른 인사에 있다. 인사제도의 혁신은 유연한 조직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보직인사 때 직군을 없앴다. 조직간 벽을 허물어 화합을 유도하려는 차원이다. 실제로 1직급 보직인사 때 사무·배전·송변전 등 직군에 관계없이 인사를 단행했다. 또 국제무대에서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할 글로벌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2015년까지 세계 최고의 글로벌 종합에너지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 사업영역별·지역별·직무별 전문가집단을 양성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를 총 인력의 10% 수준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우리의 시야를 국제무대로 넓히고 각자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자연스럽게 벽은 허물어지고 조직활력이 높아질 것이다. 공기업 이전 문제가 큰 이슈다. 모두들 한전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데 복안이 있나. -한전이 먼저 어느 곳으로 이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정부 방침에 충실히 따르겠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복안을 짜고 있다. 공기업 최초로 ‘부조리신고 포상제도’를 만들었다. 이같은 윤리경영으로 부방위 청렴도 조사에서 최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 같다. 앞으로의 방향은 어떤가. -윤리경영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요체다. 취임 이후 무엇보다도 윤리경영을 최우선과제로 추진했다. 그 결과 부방위 청렴도 평가에서 15개 공직 유관단체 중 4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3년까지 2년 연속 최하위에서 상위권으로 크게 도약한 것이다. 향상도면에서는 전체 조사대상 기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부조리신고 포상제도를 신설했고, 전자공개 입찰제도를 확대했다. 청렴계약제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변화와 혁신은 전직원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전은 규모가 커 직원들의 의식변화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작은 물은 쉽게 물길이 바뀌나 지속성이 없다. 반면 큰물은 그 물길이 더디게 바뀌나 한 번 방향을 잡으면 파급력이 대단하다. 규모가 큰 것이 단점이자 장점일 수 있다. 취임 후 가장 큰 성과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직원들의 의식변화라고 할 수 있다.21세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우리 회사가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고, 그러한 변화는 타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주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종전 계약관계에선 한전이 갑이었고, 하청업체가 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갑이 아닌 을의 자세에서 한전의 모든 제도와 절차를 개선하고 있다. 고객의 불편을 사전에 예방하고 민원사항을 적극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다.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 비결은. -고객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1984년부터 최근까지 소비자물가는 153% 상승했지만 전기요금은 4.7% 인상하는 데 그쳤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저렴하다. 한국이 당 74.58원인 데 반해 일본 201원, 미국 79.02원, 영국 106.28원 등이다. 고급화·다양화하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서비스도 혁신했다. 이사하는 고객의 전기요금 계산을 24시간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세금계산서·전기요금 납부증명서도 인터넷으로 발급하고 있다. 해외사업의 추진현황과 향후 계획을 설명해 달라. -국가간 장벽이 없어지고 있다. 전력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한전이 갖고 있는 역량을 결집해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중국의 전력 성장률은 연 10%에 달할 정도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은 이같은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매년 3000만 이상의 발전설비의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허난성에 10만 규모의 순환유동층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한준호 사장은 한준호 사장은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섭섭한 에너지정책 전문가다. 동력자원부 자원개발·석유가스국장, 통상산업부 자원정책심의관·실장을 지낸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공직생활 30여년 동안 에너지 분야에서만 20여년을 근무했다. 지난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중소기업청장과 한국생산성본부회장, 대통령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하며 중소기업 분야에서도 업무수완을 발휘했다. 한 사장은 등산 경영론자다. 국내 대부분의 산을 가봤을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특히 직원들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끈끈한 정을 나눈다. 지난 2월에는 임원들과 한라산을 등반하며 ‘산상 경영전략회의’를 가졌다. 그는 “산을 오를 때는 왼발과 오른발이 같이 움직여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거나 “나무와 바위, 계곡, 풀 등이 제자리에 있어야 산이 산답다.”고 강조한다. 모든 직원이 제 위치에서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조직의 승패가 갈라진다는 얘기다. 2000년에는 경희대 대학원에서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활성화 요인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늦깎이’이기도 하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출입기자 등 동력자원부에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막동회’ 회원들과 가끔 어울린다. ▲경북(60) ▲경북고·서울대 법학 ▲행시10회 ▲동자부 공보관 ▲산자부 기획관리실장 ▲중소기업청장 ▲중기특위 위원장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사업장별 267개 소규모 봉사회 구성 한국전력공사의 사회봉사활동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업무의 특성상 산골오지에 사는 어려운 주민까지 대하다 보니 봉사활동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한준호 사장의 취임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사업장별로 이뤄지던 봉사활동을 조직적으로 이뤄지게 한 것이다. 한전은 지난해 5월 전국의 사업장에 있던 소규모 봉사회를 267개 봉사단으로 구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켰다. 출범 당시의 봉사단원만 4033명에 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봉사활동을 위한 성금도 자발적으로 거뒀다. 전체 직원 2만명 가운데 89%인 1만 7400명이 성금을 내 모두 8억 6000만원을 마련했다. 사측도 봉사단 활동에 적극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직원들이 거둔 성금에 해당하는 8억여원을 지원, 지난해에만 16억 6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봉사활동은 한전의 특성을 살렸다. 우선 저소득층에게 효율이 높은 조명기기를 무상으로 달아주는 사업을 했다. 지난해에만 5000가구에 고효율기기를 지원했다. 올해는 5만가구로 확대할 예정이다. 혹한기나 혹서기 동안 전기요금이 체납된 고객에 대해서는 단전을 유보하는 한편 저소득 가정에 대해서는 전기요금을 대신 내줬다.2437호 가정에 1억 2000여만원을 지원했다. 저소득 가정에 대한 전기요금은 봉사기금과 별도로 캠페인을 통해 마련했다. 지난해 9월부터 2개월 동안 한전 직원들이 ‘빛 한줄기 나눔 캠페인’을 통해 1억 5000여만원을 추가로 조성했다. 지난 1월에는 간부급도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부장급 이상으로 승진한 222명 전원이 일산홀트복지타운과 가평꽃동네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한전은 2일부터 시작되는 어린이주간에는 미아예방을 위해 전국 놀이동산 등에서 어린이들에게 ‘이름표 달아주기’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달 강원도에 큰 산불이 났을 때는 송전선로 보호를 위해 직원들이 산불진화에 나섰다.”면서 “앞으로도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한전의 특성을 살려 사회공헌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의회]강서·양천구 의원들 레미콘공장 이전 반대 강도 ‘UP’

    [의회]강서·양천구 의원들 레미콘공장 이전 반대 강도 ‘UP’

    서울 강서구의회(의장 이창섭)와 양천구의회(의장 정욱채)가 뚝섬 레미콘·아스콘 공장의 강서구 외발산동 이전방침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두 기초의회는 ‘레미콘·아스콘공장 이전설치를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데 이어, 일부 의원들은 삭발투쟁을 벌이며 주민들과 함께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에 항의 방문하는 등 투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서울시, 외발산동으로 옮기기로 서울시는 뚝섬에 서울숲을 조성하면서 성동구 성수1가 683의 1에 있는 3260평 규모의 레미콘과 아스콘 공장 2개를 강서구 외발산동 383 일대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1월 도시계획조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3월2일 조례규칙심의회에서 원안 가결한 후 시의회에 개정안을 상정해 놓고 있다. 개정안은 종전 자연녹지지역과 공항시설보호지구안에 건축할 수 있는 건축물에 레미콘 공장 또는 아스콘 공장을 추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이 이달초 강서구와 인근 양천구 등에 알려지면서 기초의회를 중심으로 반대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이들 두 기초의회 의원들은 지역출신의 서울시의원들과 함께 현재 조례개정안이 상정된 서울시의회에 개정안의 심의 및 통과를 저지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조덕현 강서구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25일에 열린 주민궐기대회에는 무려 5000여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했다.”며 “이전방침이 철회될 때까지 의회가 앞장서 주민들과 함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조례개정안 통과 저지에 온힘 강서구의회와 양천구의회는 서울시가 뚝섬 서울숲 조성을 위해 인근에 있는 2개의 레미콘 공장을 강서구 외발산동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이달초 감지하고 곧바로 반대투쟁에 나섰다. 우선 강서구의회와 양천구의회는 지난 22일을 전후해 열린 임시회에서 ‘레미콘·아스콘 공장 강서구 외발산동 이전 설치반대결의안을 채택’하고 주민들과 함께 공동 저지운동에 나섰다. 강서구의회 신낙형 의원과 양천구의회 강원웅 의원, 백금만 의원 등은 삭발투쟁까지 펼치고 있다. 특히 신 의원은 19일부터 삭발 후 무기한 단식투쟁을 벌이다 7일째인 지난 25일 서울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하다가 쓰러져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또 지난 26일에는 양지역의 주민 100여명이 의원들과 함께 서울시의회를 찾아 항의농성을 벌여 이날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키로 예정된 조례개정안의 상정 자체를 유보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앞서 서울시의회 유선목(양천구)의원은 21일 열린 서울시의회 본회의 시정질의를 통해 “강서·양천주민의 생존권을 무시한 처사”라며 서울시의 레미콘·아스콘 공장 이전방침을 강력히 꾸짖었다. ●외발산동과 주민 정서 서울시가 뚝섬에 위치한 레미콘 공장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외발산동 384의 2일대 3920평은 현재 자연녹지지구이면서 동시에 공항시설보호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인근에는 김포공항으로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위한 유도등이 설치돼 있다. 또 부천시와 올림픽대로를 연결하는 40m 간선도로가 나있어 교통이 상당히 양호한 지역이다. 특히 발산택지지구가 근접해 있는 지역으로 오랜 기간 공항시설 보호지구로 결정돼 장차 구민이 편히 쉴수 있는 쉼터로 조성될 것으로 기대됐던 땅이다. 따라서 외발산동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의 양천구 주민들도 이곳이 레미콘 공장부지로 전락해 먼지와 함께 하루 4000∼5000여대의 레미콘차량이 들락거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강서구 주민들은 다른지역에 비해 3∼4번째로 많은 임대아파트, 서남 하수처리장, 지하철 차량기지 등 현재도 혐오시설이 가득한데 또다시 레미콘 공장을 이곳으로 이주하려는 서울시의 정책에 대단히 불쾌해 하고 있다. 이한기 (강서구)서울시의원은 “항공기 소음과 각종 규제 등으로 오랫동안 재산권침해를 받아왔는데 또다시 레미콘·아스콘 공장을 이전하려는 것은 주민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며 서울시의 이전계획 철회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28일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기획하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연출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28일 개봉)은 변신술의 귀재 너구리를 주인공삼아 무차별적인 환경파괴에 경종을 울리는 ‘친환경 애니메이션’이다. 1960년대 일본 도쿄 외곽. 뉴타운개발 계획으로 하루아침에 산과 들이 깎여나가자 오랜 세월 이곳에 터잡고 살던 너구리들은 서둘러 자구책을 마련한다. 회의 끝에 이들이 내놓은 대응방안은 ‘인간연구 5개년 계획’과 ‘변신술 부흥’. 이와 함께 지방에 살고 있는 전설의 장로에게 지원을 요청하러 특사를 보낸다. 너구리들은 외부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변신술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으로 공사를 방해하지만 인간들의 개발계획을 저지하는데는 역부족. 마침내 지방에서 올라온 세 장로는 너구리 변신학을 집대성한 ‘요괴대작전’을 실행할 것을 선언한다. 인간의 자연파괴에 맞서는 너구리들의 분투기는 나름대로 절박하면서도 대단히 유쾌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인간 연구를 목적으로 너구리들이 단체로 사람으로 변신해 도시탐험에 나서는 대목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피곤할 때 눈밑에 생기는 다크서클의 유래를 인간 변신 효력이 떨어지기 직전 너구리의 상태로 응용한 장면은 절묘하다.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너구리의 외모도 시선을 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학적인 너구리의 모습, 두 발로 걷는 일상의 모습, 그리고 기분 좋을 때와 패배했을 때 등 세심하게 신경 쓴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이 눈을 즐겁게 한다. 너구리 사회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정치비리와 연예계 스캔들에 묻혀 환경문제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되는 현실을 풍자하는 동시에 강경파와 평화주의자, 사이비종교에 매달리는 현실도피자 등 외부 탄압에 맞서는 너구리 사회의 내부 분열상을 통해 인간사회를 비꼬는 대목은 유쾌하면서도 씁쓸하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너구리들의 전통놀이. 공놀이, 줄넘기 등을 할 때 너구리들이 부르는 노래가 우리가 어릴 적 부르던 그것과 똑같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탓일까, 사소한 일본 문화의 잔재에도 새삼 마음이 쓰인다.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압록강의 신의주, 대동강의 진남포, 한강의 인천, 금강의 군산, 그리고 영산강에 목포가 건설되었다. 개항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집중되었으니 이는 바다를 통해 들어온 해양제국들이 젖줄인 강을 따라서 식민 내륙까지 뻗어나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1897년 7월4일, 조선정부는 각국 사신 앞으로 동년 10월1일을 기해 목포와 진남포 두 항구를 외국통상을 위하여 개항하고 외국인 거주를 허가하는 칙령을 통보한다. ●1897년 10월 자주적으로 개항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이노우에(井上馨)영사는 1895년 1월6일 기선을 타고 인천을 떠나 약 한달반 동안 서남해안을 시찰하고 현재의 목포가 가장 합당한 지역임을 건의한다. 그러나 일본의 외압과 무관하게 개항 초기는 아직은 대한제국기로서 제한적이나마 자주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의 압력에 의해 개항이 서둘러지기는 했으나 상업을 확장하여 민국의 이익을 발달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칙령에 의해 자주적으로 개항한 셈이다. 목포의 출발은 매우 활기찼다. 자주적이었던 만큼 초기 건설도 일본 뜻대로 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힘이 미쳤기 때문. 조계지 이외의 도시건설은 전적으로 조선인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헌병대목포분견소가 들어서서 위압적으로 나선다. 마침내 1906년에 목포주재 일본 이사청 이사관인 와카야마(若松兎三郞)는 각국 거류지에 관한 권한을 빼앗아 간다. 이로써 목포개항장은 일본인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일합병이 되자 일제는 가장 먼저 시가지를 33정 51구획의 일본식으로 바꾼다. 마치(町)는 일본인 거리, 한국인거리에는 동(洞)을 붙여 이름에서부터 차별한다. 즉 목포는 도시계획상의 이중성을 갖고 태어났다. 서울 북촌의 양반, 남촌의 일본인처럼 일본마을(각국공동거류지역)과 조선마을(옛 목포부)로 나뉜다.‘제국주의신도시’ 목포출신의 동반작가 박화성은 데뷔작 ‘추석전야’에서 ‘남편으로는 늘비한 일인의 긔와집이오 중앙으로는 초가와 넷 긔와집이 섯겨있고, 동북으로는 수림 중에 서양인의 집과 남녀학교와 예배당이 솟아있는 외에 몇 긔와집을 내놓고는 땅에 붙은 초가뿐이다. 다시 건너편 유달산을 보자, 집은 돌틈에 구멍만 빤히 뚫러진 도야지막같은 초막들이 산을 덮어 완전히 빈민굴이다.’고 하였다. 일본과 한국으로 분명하게 갈려진 목포시의 이중적 성격을 주목한 고석규(목포대·‘근대도시 목포의 역사 공간 문화’의 저자) 교수는 ‘일제 강점기 서울을 비롯한 식민지 근대도시는 왜곡된 근대 도시화가 만들어놓은 공간의 이중성과 식민지라는 억압구도가 낳은 대중문화의 이율배반성, 신파성을 동시에 갖는 기이한 도시’라고 압축정리한 바 있다.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목포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산강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래서 영산포 북관정에서 목포하구언까지 내려가는 뱃길을 택하였다. 마침 영산강살리기운동이 한창 벌어지면서 도지사 이하 여러 기관장들이 탄 배에 동승하였다. 배는 영산강을 내려가다 영암 몽탄나루에서 잠시 쉬고 다시 유장하게 흘러가다 하구언에서 막혔다. 그쯤에서 전남도청 이전부지인 ‘남악신도시’가 강가에 보인다. 다시 말하여, 목포는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자리잡은 요충지인데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엉망이 돼버렸다. 바닷배가 오르락거리면서 바다와 직접적으로 통하는 도시였던 광주시도 바다는커녕 강물조차도 끊긴 단절의 도읍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이중환도 택지리에서 ‘영산강은 서쪽으로 흘러 무안 목포에 이르는데…강 건너는 큰 평야를 이뤄…풍기가 화창하고 땅은 넓고 물자도 넉넉하여 서남쪽 강과 바다는 운수의 이익을 통제하여 광주와 함께 명읍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광주를 오로지 내륙도시로만 간주함은 대단히 그릇된 시각이며, 하구언만 터진다면 충분히 해양연계도시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일본인·조선인 마을 차별 심각 목포는 발전을 거듭했다. 전남의 현관이요 물산집합의 중심지로 조선에서는 제3위를 점할 만한 중요항이자 상업의 요지로 자리잡았다.1930년대에 인구 6만을 돌파하였다. 전남에서는 최초 최대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전국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 세례는 사람이나 구역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려졌던 것은 아니다. 차별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일본과 조선인마을에 대한 차별은 일제강점기 목포도시화의 주요특성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기 편하도록 도시를 꾸몄다. 정거장, 관청, 은행, 학교, 시장 그밖에 근대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요기관을 자신들과 가깝고 편리한 곳에 세웠다. 상하수도, 도로포장, 교통통신, 전기, 가스, 보건, 위생 등도 예외없이 일본인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그네들 거리는 짜임새 있고 깨끗하고 편리하였다. 반면에 조선인거리는 무참하기 그지없었다. 농촌에서 패잔한 무리와 봇짐행상들이 방황하는 곳이 상업도시 목포항의 이면이었다. 청년은 생선장수·지게벌이, 여자는 덕장수·고구마장사, 소년은 겐마이빵·덴뿌라·수건양말장사, 소녀는 콩기름·나물장사 등으로 길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교통정리를 한답시고 내쫓는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가련한 신세였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걸인도 무리지어 나다녔다. 엄청난 숫자의 유곽거리가 존재하여 창녀들이 득실대고 성병이 만연하였다.‘항구의 낭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비참하였다. ●목포시내는 ‘거리 박물관’ 영산강하구언에서부터 찻길을 내달리며 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목포시 구분법을 제시하였다.“영산강변의 전남도청부지가 21세기형이라면,1980년대 매립지에 1990년대 세워진 하당신도시는 합리주의식이지요. 신식모텔들이 아파트와 공존하는 90년대식 합리주의의 거리를 벗어나면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같은 공공시설이 몰려있는 문화의 거리가 나오지요. 세계은행(IBRD)차관으로 만들어진 1970년대식 거리가 나오는데 보행자중심 거리를 만든다고 어정쩡하게 T자형도로를 만들어 어데서고 직진이 불가합니다. 저기에 삼학도가 보이고 유달산이 있지요. 거기가 조선인과 일본인거리가 판이하게 갈렸던 목포시내지요.” 이쯤되면 ‘거리박물관’이다. 일본식과 한국식,70년대식,80년대식,90년대식,21세기식이 병존하면서 차곡차곡 쌓여져서 항구도시를 만들어 왔다. 지난 백년사를 웅변해주는 목포답사 1번지는 오늘날 목포문화원으로 쓰이는 일본영사관이 아닐까.1900년(고종37년) 러시아건축가의 손으로 지어졌는 바, 최고급 대리석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등 백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견고한 모습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동척을 비롯하여 일본인 조차지역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권위적인 위치에 도도하게 자리매김하였다.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쓰이다가 광복 후에는 시청, 시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었다. 문화원에서 조금 내려오니 동양척식회사 석조건물이 나온다.1920년대 영산포에서 엄청 몹쓸 짓하다가 이리로 옮겨 왔다고 전해지는 바, 남도의 고혈을 빨아먹고 성장한 기관이다. 동척 목포지점은 전국 최대의 소작료를 거두어들였으며 부동산 담보 대부, 고리대 등으로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다.1930년대 유행한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이같은 슬픈 사연을 안고 흐르는 것이리라. 해군 소유였다가 철폐될 위기에 몰린 것을 시민들이 되살려서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추고 있으니 동척 부산지점과 더불어 전국에 유일하게 남았다. 백미는 역시 이훈동정원이다.1999평이라는데 우치다니 만빼이란 사람이 1930년대에 세웠다. 광복 이후에 해양경비대가 주둔하였고, 국회의원 박기배 소유를 거쳐서 1947년에 조선내화를 설립한 이훈동(1917년 해남출신)에게 넘어갔다. 목포의 진산인 유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았으며 입구정원, 알뜰정원, 임천정원, 후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남도에서 가장 큰 정원으로 나무 종류만 113종에 이르러 난대지방식물의 보고다. 일본식 석등은 물론이고 일본식다원정, 연못, 석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정원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노적봉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적을 시험할 요량으로 위장볏가리를 두르게 하여 싸움 한번 없이 물리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왜식정원을 굽어보고 있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다. ●충무공 진지가 목화수탈 현장으로 노적봉에 오르니 코 앞에 고하도가 보인다. 이순신이 명량대첩 후에 1597년 10월29일 고하도로 진을 옮겨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가 이듬해 2월17일 고금도로 진을 옮길 때까지 108일 동안의 진영터다.1722년, 통제사 오중주와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이 유허지에 이충무공 고하도유적비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고하도선착장에는 또 하나의 비석이 있으니 조선육지면발상지비다.1899년 일본영사가 미국산 육지면을 시험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재배에 성공하면서 전국으로 육지면이 퍼졌다. 수확기에는 목포항이 온통 흰 목화로 뒤덮였으니 쌀과 더불어 남도수탈의 상징이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영사의 공적비까지 세웠으니 충무공의 진지가 목화수탈의 현장으로 뒤바뀐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목포 100년은 이렇게 슬프게 흘러갔다. 누가 식민지근대를 이야기하는가. 그 누가 계량적 통계수치만으로 식민지축적론과 식민지개발론을 논하는가. 식민지시대의 인간군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항구의 삶은 식민지의 자본축적이 오로지 일본인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 열매는 조선인과는 무관함을 웅변한다. 목포항에 산처럼 쌓였던 쌀과 솜은 남도 백성 수탈의 상징이었다. 그러한즉,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서 강조되고 있는 식민지근대론의 허구와 결과론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국내 일부의 탁상이론가들에게 목포항 방문을 강권하고 싶다. 목포항을 1시간만 걷는다면 근대적 개발이 오로지 민족차별 및 착취를 바탕으로 한 날조였음을 금세 느낄 수 있으리라.
  • [25일 TV 하이라이트]

    ●바람꽃(KBS1 오전 8시5분) 인표는 영실에게 친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그동안 말 못하고 지켜온 사랑을 고백한다. 같은 시각, 진우 역시 영실을 사랑한다고 명희에게 말한 뒤 도와주겠다는 명희의 말에 몸이 다 나으면 영실에게 고백하겠다고 다짐한다. 한편, 정님은 인표와 영실의 만남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공부가 지겹고 힘들다는 상식을 뒤집고 재밌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 우등생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 공부의 의미와 함께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아이들 학습에 있어 부모에게는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이야기 해본다. ●사이언스+(YTN 오후 1시25분) 온 가족이 함께 과학의 신비로 빠져보자. 과학을 좀 더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과학축제가 아닐까?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렸던 2005가족과학축제를 찾아가 가족로봇경연대회, 극지체험관, 팔도로봇전시회, 과학영화, 우주관 등 재밌고 흥미로운 행사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애니토피아(EBS 오후 10시50분) 인형 애니메이션의 전설적인 감독, 이지 트릉카의 1959년작 ‘한여름밤의 꿈’을 만나본다.‘한여름밤의 꿈’은 이지 트릉카 감독의 마지막 장편이자 체코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인형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꿈처럼 환상적이다. ●김약국의 딸들(MBC 오전 9시) 박의원이 정국주네 부부와의 상견례를 미루고 서울로 돌아가자 김여사는 마리아와의 혼사가 깨지는 게 아니냐며 걱정한다. 홍섭은 용빈과 결혼을 하든 마리아와 결혼을 하든 신경 쓰지 말라고 화를 낸다. 한편, 홍섭의 사랑을 굳게 믿은 용빈은 한실댁을 찾아가 홍섭을 용서해주라고 부탁한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지배자가 돌아왔다는 호구의 말을 의심하던 주비는 지배자를 흉내 낸 계란장수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기를 발견하게 된다. 코야는 사라를 만나 다른 마법사들 몰래 아라를 만나야 한다고 부탁하고 마침내 아라를 만나게 되지만, 때마침 나타난 마패와 장미로 인해 다음을 기약한다.
  • 쉬어가기˙˙˙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1932년 월드시리즈에서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 유니폼이 온라인 경매에 나왔다. 리글리필드에서 손가락으로 중앙 외야석을 가리킨 뒤 정확하게 같은 방향으로 홈런을 날렸을 때 입은 유니폼이라는 고증이 힘을 얻고 있어 과연 얼마에 팔릴지가 초점. 지난 1991년 15만달러에 팔린 뒤 99년에는 값이 2배 가까이 뛰어 28만 4000달러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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