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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 (1) 천주교 前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경북 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586-1 봉양마을 주민들에게 두봉(78·본명 렌 뒤퐁) 주교는 ‘웃기는 괴짜 할아버지’로 통한다. 언제나 넉넉한 웃음으로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여는 맘씨 좋은 푸른 눈의 프랑스 선교사. 목사님이나 스님이나 거리낌없이 방 안에 들어가 허물없이 이야기를 꺼내도 껄껄 웃으며 들어주는 외국인.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이 문화마을에 두봉 주교는 없어서는 안 될, 그야말로 ‘분위기 메이커’인 것이다.2004년 11월 이 봉양마을에 왔으니 올해로 4년째. 한국인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며 거침없이 ‘나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는 두봉 주교에게 한국은 ‘하느님이 명령한 선교 임지’에 앞서 어쩔 수 없는 ‘인연의 땅’이다.1954년 11월 한국 땅을 밟은 뒤 53년간 단 한번도 한국 땅을 떠나지 않은 채 서슴없이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두봉 주교. 그에게 과연 한국은 무엇일까. “하느님의 뜻대로 살다 보니 이곳까지 왔습니다.” 왜 이토록 한국을 고집하느냐는 물음에 ‘능력있을 때까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지침을 따른 선교사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쩔 수 없는 선교사의 사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대답에 ‘한국은 나의 처음이자 끝’이라는 절절한 심중이 읽힘은 왜일까. 프랑스 오를레앙, 그러니까 잔 다르크의 전설로 유명한 그 고장에서도 한참 벗어난 궁벽한 농촌 마을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두봉은 저 멀찍한 한반도의 부름에 이끌려 왔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 형제, 아니 사촌형제 두 명까지 모두 7형제가 한 집에서 살며 어렵게 어린시절을 보냈던 두봉은 형제 중에 유일하게 ‘성소’의 뜻을 밝혀 신학자, 목회자의 길을 밟았다. 한국이라는 동양 끝 저쪽 나라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 채 신학교에서 신학수업을 쌓았던 그가 털어놓는 한국과의 인연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오를레앙 신학교 2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병영생활을 하던 말미에 한국전쟁이 터졌다.“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동료들이 거의 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내가 한국에 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그였다. 당시만 해도 ‘위험지역에 선교사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한국은 신학생인 나와는 상관없는 그저 먼 나라일 뿐”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참에 6·25전쟁으로 성직자들이 거의 전멸하디시피 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지원을 요청해 5명의 신부가 배정됐던 것. 휴전 한 달 전인 1953년 6월 발령을 받아 교육을 받고 일본을 거쳐 인천 땅을 밟은 게 1954년 11월. 처음부터 “한국에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던 그에게 “한국인으로 한국땅에 묻히겠다.”는 변함없는 소신을 준 것은 과연 믿음일까, 삶일까. 전쟁의 끝자락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폐허만 눈에 띌 뿐” 어느 한 곳 번듯한 게 없었던 한국 땅. 용산 성심여자고등학교 터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거처에서 6개월을 보낸 뒤 대전교구 대흥동본당 보좌신부를 맡은 게 한국 사목의 시작이다. ‘두봉’(杜峰)이란 이름은 당시 대흥동 본당 주임이었던 오기선 신부가 지어준 이름. 두봉 주교의 프랑스 이름자에 맞춰 지었다고 하는데 두봉 주교는 “중국의 두보와 같은 성씨”라며 은근히 이름 자를 치켜세운다.“두견새가 큰 봉우리에서 우니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 않겠느냐.”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중등학교 시절 ‘가톨릭노동청년회(JOC)’활동을 했던 때문일까,‘눈에 밟히는 가난한 이들’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대전 선화동 다리 밑에 50명쯤 되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집을 나와 움집을 짓고 살았는데 대전 JOC 청년회원들이 1년 넘게 같이 어울리며 살아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일은 지금도 감동으로 남아 있다. 당시 대전 MBC 라디오를 통해 진행한 ‘5분명상’ 프로그램은 대전 지역 가난한 이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했다.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가 분리돼 초대 교구장을 맡을 무렵 “바늘방석에 앉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두달 뒤 주교서품을 받았는데 주교 서품 때 응당 정하는 문장(紋章)과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아 당시 화제가 되었다. 주교라면 12사도 후손의 반열에 오르는 천주교의 큰 명예인데 굳이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마다한 까닭은 무엇일까.“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지 서민인 내가 무슨 문장을 가져.” 한사코 문장이며 사목표어를 내세우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외국인 사제는 한국인 뒷바라지만 하면 됐지 뭐 교구장 자리까지 차지하느냐.”며 안동교구장 자리를 고사했지만 교황청의 내리누름에 밀려 할 수 없이 눌러앉았다. 지난 1990년,22년 만에 안동교구장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한국인 사제를 교구장으로 임명하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 교황청에 탄원을 낸 인물이다. 전통 문화의 고집이 센 ‘유림의 땅’ 안동에서 22년간이나 큰 탈 없이 천주교 교구장을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안동지역 최초의 문화회관을 만든 것을 비롯, 함창에 상지 여중·고를 세운 일, 한국 최초의 전문대학인 가톨릭상지대학을 설립한 일…. “지금 생각해도 그 의롭고 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유교와 불교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도 안동은 전통이 살아있는 유별난 지역이었지요. 그런데 유림들은 양심에 따라 인간관계를 아주 중시하는 성격을 지녔더군요. 천주교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나 나의 가치관이 잘 맞았지요. 내가 부딪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1979년 ‘안동농민회사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잊지 못할 큰 사건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영양군이 알선한 불량감자씨를 심은 농민들이 감자농사를 망쳐 피해보상을 받았는데 보상운동에 앞장선 오원춘이 정부기관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사실을 안동교구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들고 일어서 전국에 폭로한 것.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교구장 두봉 주교의 출국명령을 내렸지만 로마 교황청이 나서 추방명령이 철회됐다. 두봉 주교에게 ‘한국 농민사목의 대부’라는 별명을 붙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젠 한국인 사제가 교구장을 맡아야 한다.”는 탄원이 받아들여져 교구장에서 은퇴한 게 1990년. 정년을 15년 앞둔 채였다. 고양시 행주외동의 조립식 가건물인 행주공소에서 능곡성당 신부를 도와 성직자와 수도자 신도들의 피정 지도를 14년간 하다가 지난 2004년 안동교구의 주선으로 이곳 봉양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고향격인 안동 지역에서 살게 해달라는 주문이 받아들여져 이곳에서 살게 됐는데 너무 잘 살아서 미안하다.”고 말한다.“사는 집에 따라 마음가짐은 물론 삶을 대하는 자세마저 달라진다.”며 한사코 번듯한 집을 마다했던 그다. “한국 천주교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중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은 나의 모범 선배”라는 두봉 주교. 그 10명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강조한다. 사목표어는 만들지 않았지만 마음속 표어는 있지 않으냐는 짓궂은 물음에 마지못해 떠듬떠듬 말한다.“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 “기도 많이하고 남과 함께 살다가 주님의 뜻이 뚜렷해지면 주님 뜻대로 하겠다.” 신부로 15년, 주교로 21년 한국에서 40여년을 선교한 끝에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피정에, 강의에 아주 바쁘다. 인터뷰를 마친 뒤 고추며 가지며 텃밭에서 손수 키운 푸성귀들을 주섬주섬 챙긴 주교가 거실 벽에 걸린 문구를 가리킨다. 두봉 주교 은퇴 후에 안동교구 사제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목표어란다.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두봉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 출생 ▲1949년 오를레앙 대신학교 철학과 졸업 ▲1951년 파리외방전교회 대신학교 신학과 졸업 ▲1954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신학교 대학원 신학과 졸업 ▲1953년 사제 서품 ▲1954∼1955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1955∼1965년 대전교구 대흥동 본당 보좌신부 ▲1967∼1969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 임명. 주 교 서품 ▲1982년 프랑스 나폴레옹훈장 ▲1990년 안동교구장 사임, 은퇴 ▲1991∼2003년 행주외동 행주공 소 피정 지도 ▲2004년∼ 봉양문화마을 거주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6) 장성 갈재~정읍 태인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 (6) 장성 갈재~정읍 태인

    해남 땅끝 마을에서 한양 남대문에 이르는 호남대로는 980리 길이다. 조선시대 9대로 가운데 제7로가 바로 이 호남대로이다. 옛 선조들은 해남에서 보름 동안 걸어 한양에 당도했다. 하루 평균 65리(26㎞) 정도를 쉬지 않고 걸어야 했다. 영남대로는 960리 길이지만 지세가 험준해 속도가 떨어진다. 이에 비해 호남대로는 20리 더 멀지만 평야지대가 많아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옛길은 국도 1호선과 겹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남에서 북을 향한다. 도시가 형성되고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기도 했지만 부분적으로 남은 옛길은 정다운 옛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노령산맥 토박이들은 장성 갈재라 불러 노령산맥은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른다. 토박이들은 노령산맥 대신 장성 갈재라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해남을 떠난 길손이 닷새쯤 걸으면 장성 갈재를 넘어 전라북도 땅에 이른다. 갈재는 해발 276m밖에 되지 않지만 많은 전설이 내려오는 제법 험한 고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노령보 고개길이 사나워 전에는 도적이 떼를 지어 있으면서 백주에도 살육과 약탈을 하여 통하지 않았는데 중종 15년에 보를 설치해 방수(防守)하다가 뒤에 폐지했다.’고 적고 있다. 장성 갈재에서 내려다 보면 남으로 전남 장성군이, 북으로는 동학의 고장 전북 정읍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멀리 펼쳐진 호남평야의 끝자락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옛길은 호남고속도로,1번국도, 호남선철도 등과 함께 갈재를 넘는다. 고속도로와 철도는 터널을 통해 전남·북을 소통시키지만 1번 국도는 고속도로 서편으로 꼬불꼬불 힘겹게 고개를 넘는다. 옛길은 호남고속도로의 동편으로 갈재를 넘고 있다. 서편보다 지형은 험준하지만 지름길이기 때문에 많은 이가 자연스럽게 이 길을 선택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통행이 거의 없는 옛길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숲이 우거진 곳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어렵사리 갈재를 넘으면 마을 앞 커다란 당산나무가 길손을 반긴다. 전북에서 처음 만나는 자연 부락인 정읍시 입암면 군령마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힘든 고갯길을 넘은 길손들이 쉬어가던 주막과 역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험준한 노령산맥에는 산적과 도둑이 많아 도방소도 설치됐었지만 이 역시 흔적조차 찾아 볼수 없다. 하지만 갈재에서 희미해졌던 옛길은 이곳에서 다시 모양을 되찾는다.1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를 왼편에 끼고 옛길은 정읍시내를 향한다. 입암 저수지를 지나 고개를 내려가면 현재 입암면사무소 자리인 천원역 터에 이른다. 역은 없어진 지 오래이고 우물만 덩그렇게 남아있다. 그러나 옛길은 그런대로 형체를 잃지 않고 입암초등학교 옆을 지나는 골목길로 남아있다. ●보천교 총본부 있던 대흥리에 전국 부자들 모여 옛길은 ‘보천교’의 발상지로 널리 알려진 입암면 대흥리에서 1번 국도와 잠시 겹치게 된다. 대흥리는 보천교(普天敎)의 교주 차경석(車京石·1880∼1936)이 교단의 총 본부를 만든 곳이다. 차경석은 이곳에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을 헌납하면 정도에 따라 사후에 벼슬을 얻을 수 있다고 해 전국에서 부자들이 몰려들었다. 함경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자가 거액의 재산과 식솔을 거느리고 이곳에 몰려왔다. 애초 입암면 대흥리는 농가 십여호로 이루어진 가난한 촌락이었으나 교세가 확장하면서 700여가구에 이르렀다. 교전인 십일전(十一殿)은 부지가 1만여평, 건평 350평, 높이가 99척이나 되는 웅장한 건물로 경내에는 3개의 탑이 있고 4대 문루가 있었다. 일제의 강력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교세를 확장해 한때 교도가 600만명에 이르렀다. 이 마을 전호남(64)씨는 “보천교가 흥할 때 대흥리는 서울이 될뻔 했던 곳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이제 모두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교단의 내분과 화재로 내리막 길을 걷게 됐지만 이곳에 남았던 건물을 뜯어다가 서울 조계종 대웅전을 지은 것만 봐도 보촌교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선비들이 급제하려면 반드시 건넜던 과교 대흥마을을 거쳐간 옛길은 1번 국도에서 오른쪽으로 벗어나 정읍시 시기동을 향한다. 늦더위에 오곡이 여물어가는 들판을 가로 질러 정읍시내 초입인 과교천을 넘는다. 과교는 이곳을 건너야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에 오를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보러 한양 가는 선비들은 반드시 거쳐가는 명소였다. 옛 모습의 과교는 찾을 길이 없고 현재는 정읍시내를 거쳐 태인과 전주시로 가는 차량들이 끊임 없이 오가는 2차선 시멘트 다리로 바뀌어져 있다. 과교를 넘어 정읍시내로 들어서면서부터 옛길은 찾기 힘들어진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 표기된 옛길은 도시 발달과 함께 사라졌다. ●최치원이 군수·이순신이 현감 역임했던 ‘태인´ 정읍시 북면을 지난 옛길은 농공단지를 지나 태인면에 이른다. 태인은 예전에는 1만가구가 넘는 큰 고을이었지만 지금은 여느 농촌 도시와 같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예부터 태인 주민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문향(文鄕)으로 꼽히는 고을이기 때문이다. 정극인이 말년을 보내며 상춘곡을 지은 곳이고 전라도를 대표하는 무성서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무성서원만은 남겨두었다. 최치원은 이곳 군수를 지냈고 이순신은 현감을 역임했다.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의 본적지 역시 태인이다. 이곳에는 1421년(세종3년)에 창건됐던 향교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옛 태인면사무소 옆에는 최치원이 세웠다는 피향정이 세월의 흐름을 꿋꿋이 견디며 온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태인초등학교 입구 옆에 복원된 동헌도 태인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신정일 우리땅걷기본부 대표 “걸어야 사유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고가 시작되면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됩니다.”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운동본부 신정일(53) 대표는 “걷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가 나를 만나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옛길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오랜 유산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는 옛길이 더 이상 파괴되거나 잊히지 않도록 이를 복원하고 관광자원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오늘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옛길에 대한 관심이 없지만 이는 곧 우리의 과거를 잃어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장성 갈재를 넘는 옛길이 거의 사라진 것을 보고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문경새재처럼 옛길을 하루 빨라 복원해야 합니다.” 신씨는 수많은 사연이 얽혀 있는 갈재야말로 호남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새로운 도로를 개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길을 복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고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옛길 복원과 함께 이곳에 얽힌 전설과 역사를 문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면 어떤 관광개발사업보다 지역을 널리 알리고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동원이나 객사가 있던 곳이 면사무소나 학교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드물지요. 옛 선조들의 영혼이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하실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는 옛길과 지역 문화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 땅 방방곡곡을 발로 뛰면서 기록하고 역사를 되짚어 내는 그는 “길위에 모든 것이 있다.”고 말한다.“명성 높던 고을들이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해져 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신씨는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지도 한장만 가지고도 옛길을 답사 할 수 있도록 폐허가 된 곳은 복원하고 남아있는 길은 보존하며 기록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미래 한국의 동력 5大 신산업] (5·끝) 도시화 산업

    [미래 한국의 동력 5大 신산업] (5·끝) 도시화 산업

    #1 인도 뭄바이에서 30㎞ 떨어진 아라비아해 연안의 ‘나비 뭄바이’. 분당 신도시의 18배 면적(344㎢)에 신공항, 항만, 학교, 병원, 골프장 등이 들어선다.2012년 완공된다. #2 영국 런던 동부의 ‘카나리 워프’. 씨티, 모건 스탠리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 50여개가 모여 있다.10년 전 이곳은 런던이 숨기고 싶어했던 낙후지역이었다. #3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하늘에서 내려앉은 밝은 진주’가 관광객을 맞이한다.‘동방명주’라고 이름붙인 거대한 방송관제탑이다. ●“스타급 대도시를 만들어라” 도시 경쟁력이 국가의 핵심역량으로 떠오르면서 스타급 대도시를 만들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 인위적인 프로젝트다. 도시 컨셉트를 정하고 인프라를 놓고 소프트웨어를 집어넣는다. 도시 만들기가 돈(산업)이 된 이유다. 수요도 풍부하다.31일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도시인구는 2005년 현재 32억명이다. 농촌인구(33억명)에 육박한다.2015년에는 도시인구 비중(52.9%)이 농촌인구를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이 일찌감치 예고한 ‘어반(Urban) 밀레니엄 시대’의 도래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인구 100만명 이상 대도시는 2005년 302개에서 2015년 405개로 100개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1년에 10개씩 생겨나는 셈이다. 포스코건설이 2020년 완성을 목표로 2조 6530억원짜리 베트남 하노이 신도시 개발에 참여중인 것은 도시화의 사업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도시화의 그늘이 돈을 만든다 인도 제1의 금융도시 뭄바이 한복판에는 ‘다라비’라는 아시아 최대의 슬럼가가 있다.60만명이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오염된 물로 생활한다. 급속한 도시화는 빈부격차 확대, 범죄 증가, 교통난, 상하수도 부족 등의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 이 부작용을 해결하는 과정에 또 ‘돈’이 숨어있다. 첫째,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 개발사업이다. 케이블카처럼 공중에 매달려 가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의 ‘에어로버스’(현수형 궤도전차), 쿠알라룸푸르의 모노레일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교통수단보다 투자비가 적어 도전이 쉽다. 비(非)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인프라 구축 시장규모는 2005년 52조원에서 2015년 75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둘째, 분산형 에너지 사업이다. 중앙 집중형이 아닌 자체 에너지를 공급하는 사업이다. 우리나라도 분당, 일산 등 신도시는 전력과 난방을 동시에 공급하는 열병합 방식의 분산형을 채택했다. 현재 31%인 중국의 분산형 비중은 2020년 40%를 넘을 전망이다. 이 틈을 파고 들어 캡스톤사는 분산에너지 발전설비인 마이크로터빈에 주력, 지난해 2410만달러(약 2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42%나 신장했다. 이 분야 세계 1위다. 분산형의 주된 에너지원은 태양광·풍력 등이어서 신·재생 에너지산업과도 연관된다. 셋째, 조명·온도·습도·교통흐름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지능형 제어 사업이다. 지난해 주택을 제외한 세계 빌딩 제어 시장은 2000억달러(약 190조원)였다. 초고층 빌딩은 물론 신도시, 재개발 도시도 주된 수익원이다. ●성냥갑 아파트 금지… 국내서도 도시 디자인 꿈틀 넷째, 도시 디자인 사업이다. 일본 MC데코사는 버스 정류장과 광고판을 멋지게 지은 뒤 광고비로 수익을 올리는 새 사업모델을 구축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외관 색채 등을 조언해주는 색채 컨설팅, 신개념의 버스정류장·벤치 등 스트리트 퍼니처(길거리 가구), 경관조명 등도 연관사업 고리다. 경관조명은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투자하는 ‘발광다이오드’(LED,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반도체)가 주된 광원(光源)이다. 최근 서울시가 ‘성냥갑 아파트’를 못짓게 한 것도 국내 도시 디자인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말해주는 한 요소다. 전영옥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도시 개발에 통상 30∼40년 걸리는 선진국과 달리 분당신도시를 7년만에 완성하는 등 우리나라는 신도시 개발에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다.”면서 “또 하나의 강점인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패키지 시장을 공략하면 U-시티(유비쿼터스 도시) 산업까지도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1) 영원한 이방인 애버리진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1) 영원한 이방인 애버리진

    ‘호주댁’과 ‘쌕쌕이’를 아시나요. 전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한국 전쟁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운 호주전투기를 말한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이민국의 하나로, 캥거루와 코알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의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호주의 실체를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 둘 벗겨본다. 호주 시드니는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이곳에서 연중 관광객들로 북적되는 서큘러 키 페리선착장 바로 옆에서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흰 물감으로 보디 페인팅한 건장한 체구의 흑인 남자들이 통나무 피리(디주리두)를 불면서 전통음악이 담긴 음악 CD를 판다. 독특한 악기소리에 관광객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다 호주 돈 10달러(7360원)를 주고 CD 한 개를 사고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관광객 김영수(41)씨는 “호주 주류사회의 문화자원은 아니지만 잘 다듬고 발전시키면 새로운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非)호주적인 거리의 악사는 시드니 도심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호주의 그랜드캐니언 블루마운틴에서도 등장한다. 슬픈 전설이 새겨진 세 자매 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에코 포인트 한 구석에서 전통 돗자리를 깔고 디주리두를 불어댄다. 관광객들이 호주 돈 2달러를 내면 환한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게 해준다. 이들이 바로 호주가 자랑하고 싶지 않은 애버리진(이하 원주민)이다. 이들은 호주대륙에 백인들이 몰려오기 전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았던 원주민들이다.4만여년 전인 제4빙하기 중반 인도네시아에서 호주대륙으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백인이 오기 전 원주민 인구는 최대 100만명이었고 200개의 언어와 600개의 방언을 사용했다. 하지만 백인들이 오면서 호주 대륙은 원주민에게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되었다. 백인들은 총과 칼을 앞세워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노예처럼 부려 먹었다. 원주민들은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떠돌거나 척박한 아웃백(호주의 오지)으로 강제 이주되기도 했다. 호주판 굴락(옛소련의 노동수용소)에서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보낸 보호관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보호관의 비위를 거스르면 추방이나 재산 압수는 물론 정신병원에 갇히는 벌을 받았다. 100여년간에 걸친 백인들의 차별정책으로 원주민 수는 크게 줄었다. 한때 90% 가까이 줄었다가 지금은 조금 늘어 45만명선. 호주 총인구 2100여만명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동화정책으로 최대 희생양된 ‘도둑맞은 세대´ 호주에 남아공과 함께 대표적인 인종차별국가란 오명을 안겨준 차별정책의 하나가 동화정책이다.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아 교회나 고아원 등 강제수용시설에서 기르며 영어를 가르치고 동화가 됐다고 믿으면 시민권을 주는 정책이다. 최대 10만명의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이들이 바로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로 1900년부터 72년 동안 계속된 동화정책의 최대 피해자다. 지금은 차별정책이 폐지됐지만 원주민들은 여전히 차별정책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른 4명 중 1명이 당뇨병을 앓고 류머티즘열 발병률은 세계 최고. 여성 사망률은 백인여성의 무려 6배나 된다. 가난과 차별의 이중고 속에서 원주민들은 어른이 돼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 놀면서 술과 마약에 찌든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절망에 빠져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4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길거리로 나선다. 파란만장한 생을 자살로 마감한 원주민 지도자 톱 라일리는 생전에 “백인들이 우리의 주권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당신들도 주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잘나가는 원주민들도 있다.2000년 시드니올림픽 육상에서 2관왕에 오른 캐시 프리만과 호주 럭비리그 대표선수로 활동했던 앤서니 먼딘, 포트 아델레이드 축구팀의 선수로 뛰었던 찰스 퍼킨스 등이 대표적이다. ●레드펀 블록 재개발땐 원주민에 토지 소유권을 하지만 이들처럼 개천에서 용난 사람은 드물다. 미국의 인디언처럼 처량한 신세가 돼버린 이들이 불평등의 멍에에 구부러진 등을 맞대며 살아가는 곳이 ‘레드펀 블록’이다.1973년 역근처 1에이커에 조성된 이 블록은 백인들에게 마약과 음주, 폭력이 만연한 곳이지만 애버리진에게 고향과 같은 곳. 대도시의 유일한 집단거주지로 원주민 젊은이들이 꼭 찾는 아지트다.3년전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던 이곳 주민의 대부분은 도둑맞은 세대 출신이다. 기자가 한때 하숙했던 집주인의 큰딸은 “레드펀은 무서운 곳”이라며 “밤엔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아름다운 중세풍의 건물과 현대식 고층빌딩들이 하모니를 이뤄 작은 뉴욕을 연상시키는 도심지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레드펀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날선 풍경’에 적잖이 놀란다. 역사엔 경찰과 철도보안요원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연방 흘리고 있어 승객들은 절로 긴장하게 된다. 역사를 나오면 아침부터 깡마른 검은 피부의 여인이 말없이 종이컵을 들이댄다. 동정을 담은 동전이 종이컵에 들어가도 담배만 피워댈 뿐 고맙다는 말도 없다. 이 여인의 이름은 신디 프랜치(52). 나홀로 살며 교도소도 몇 차례 들락거려온 그녀는 마약중독에 따른 합병증으로 최근 병원에 실려갔다. 레드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임순영(51)씨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이곳 주민 일부는 아직도 가난과 백인에 대한 증오로 술과 마약에 젖어 살아간다.”고 말했다. 원주민 지도자 믹 먼딘(58)은 “레드펀 블록을 재개발할 때 원주민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주정부가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호주가 경치만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이런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씻김굿이 중요하다. 과거사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이 먼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타스마니아 주정부가 주정부로는 처음으로 공식사과와 보상을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다른 5개주와 연방정부는 동참에 미적거리고 있다. 그렇게 돼야 레드펀 역사 담장에 대자보처럼 휘갈겨 쓴 ‘4만년 세월은 길고도 길다.4만년 세월은 내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다.’ 라는 원주민의 절규가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질 수 있다. 원주민이 진정으로 대접받는 날이 와야 호주가 자랑하는 다문화주의가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다. 원주민과 백인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함께 추는, 진정한 호주로 거듭날 수 있다. siinjc@seoul.co.kr ■ “슬픈 과거 청산하고 미래 향해 나아가길…” 레드펀 자원봉사 임순영 선교사 “슬픈 과거에 더이상 머물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호주 시드니 ‘레드펀 블록’에서 8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선교사 임순영씨가 30일 원주민들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백인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자는 뜻이다.1988년 호주로 이민온 임씨는 “어려운 이웃들을 늘 돕고 싶었다. 해서 1999년 새순교회 선교팀의 일원으로 레드펀 블록에 들어왔다.”며 봉사를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임 선교사에 따르면 그가 봉사를 시작하던 당시엔 레드펀 블록은 무서운 곳이었다. 주민 90%가 마약중독자였고 무장 강도, 살인 등 강력범죄가 잦았다. 교도소를 밥먹듯이 드나드는 주민들은 오랫동안 실업자 신세였고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질렀다. 뉴욕의 할렘가보다 위험했던 이 지역에 경찰들도 경찰차가 아니면 순찰하지 않을 정도였다. 길가에는 마약주사기가 널려 있고 구급차 사이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며 가난과 백인들에 대한 증오로 주민들이 술과 마약에 절어 살다 죽어가는 절망뿐인 곳이었다. 하지만 임 선교사는 누구도 들어오길 겁내는 이곳에 들어왔다. 아내 최경섭(50)씨와 밤마다 원주민들을 찾았다. 샌드위치와 커피 등을 대접하며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랬다.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다. 원주민들에게 두들겨 맞고 칼로 협박당하기도 했으며 아내는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 선교사 부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봉사하러 왔다가 금방 떠나던 이전 사람들과 달리 한결같이 지극한 이들의 정성에 원주민들은 마침내 2003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온 지 4년 만의 일이었다. 이때부터 원주민들은 임 선교사를 따랐고 임 선교사와 함께 레드펀의 어둡고 습한 분위기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5년부터 이 지역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약을 끊고 일자리를 구한 주민들이 하나 둘 생기고 범죄도 많이 줄었다. 임 선교사는 “기본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주민들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소득” 이라고 강조했다. 원주민 사이에 스탠리 리베카로 통하는 임 선교사는 “호주 내륙의 원주민들도 찾아가 아픈 과거를 보듬을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1대100(KBS2 오후 8시50분) 퀴즈쇼 ‘1대100’에 두 번째 5000만원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행운의 사나이는 바로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에 근무하고 있는 이욱륜(38) 연구원. 이씨는 지난 8회 1인 출연자로 출연했던 적이 있다. 두번째로 도전한 이번 퀴즈대결에서 그는 차분하게 문제를 풀어나가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천혜의 자연 경관과 아름다운 해변으로 ‘중동의 파리’라 불리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이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어 베이루트를 찾는 관광객 발길이 뚝 그쳤다. 호텔 예약도 크게 감소해 아예 직원들에게 휴가를 준 호텔도 적지 않다.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시테솔레이의 유령’(EBS 밤 12시10분) 도미니카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섬나라 아이티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가난, 절망, 폭력이 난무하는 아이티에서도 가장 험악한 슬럼가인 시테솔레이의 전설적인 갱스터 래퍼의 음악은 가난에서 추출한 시(詩)다. 덴마크의 아스거 레트가 감독했다.   ●왕과 나(SBS 오후 9시55분) 처선은 도자소를 몰래 보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듣고는 놀라 도망치다가 자신의 뒷덜미를 잡는 개도치 때문에 비명을 지른다. 월화는 처선에게 도자소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한편 궁궐에서 세조는 자신이 폭군으로 기록될까 두렵다는 말과 함께 눈을 감고, 이어 예종이 왕으로 등극한다.   ●내곁에 있어(MBC 오전 7시50분) 용기는 지애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선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선희는 지애를 만나기로 했다고 말하고, 둘은 지애가 중간에서 만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희는 용기와 이야기를 나누다 용기가 오래 전에 약속했던 러시아 여행을 준비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TV책을 말하다(KBS1 밤 12시35분) 이번 주에는 세권의 책을 소개한다. 첫 번째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까지의 인간 내면을 보여준다. 제주설화를 바탕으로 한 ‘바리데기’에서는 주인공 ‘바리’를 통해 전 세계에 닥쳐 있는 문제를 볼 수 있다.‘위키노믹스’는 경제 구조에 대한 관찰을 시도하고 있다.
  • 여수 ‘백도’ 20년만에 개방

    원시의 비경을 간직한 전남 여수시 삼산면 백도(명승지 제7호)가 20년 만에 한시적으로 개방된다. 여수시는 ‘거문도 백도 은빛바다 축제’ 기간인 31일∼9월2일 한시적으로 백도에 일반인의 상륙을 허가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1987년 문화재관리청에 의해 ‘출입 금지’ 조치가 내려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문화재관리청은 환경 보호와 생태 보존을 위해 그동안 백도 입도를 금지해왔다. 허가 지역은 상백도 등대 인근으로, 관광객들은 기존 등산로를 따라 백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매바위, 서방바위, 각시바위, 형제바위, 석불바위 등에 얽힌 갖가지 전설도 가득하다. 또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를 비롯해 30여종의 조류와 풍란, 석란, 눈향나무, 동백, 후박나무 등 300여종의 아열대 식물들이 분포한다. 인근 해역은 큰붉은 산호, 꽃산호, 해면 등 170여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수중의 경관이 더욱 극치를 이룬다. 삼산면사무소 (061-690-2607)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우리지역 명물] 우이동 ‘봉황각’

    [우리지역 명물] 우이동 ‘봉황각’

    우이동 산길을 오르다 보면 봉황각(鳳凰閣)’이라고 불리는 단아한 기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기와의 아름다운 선에 취하다 건물의 사연을 알게 되면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선열의 비장함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곳이다. 봉황각은 강북구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도선사 입구로 300m쯤 올라가다 길 왼쪽 양지바른 곳에 있다. 넓이 92.5㎡에 정면 5칸의 팔각 기와지붕 건물이다. 가운데에 시원한 대청이 있고 오른 편의 두 방은 돌기둥이 떠받쳐 방 안에서도 뜰이 잘 보이도록 했다. 소나무가 감싸고 있는 마당에서 ‘삼각산’을 바라보면 백운봉(백운대), 인수봉, 국망봉(만경대) 등 3개 봉우리가 뚜렷하게 보인다. 봉황각은 경술국치(庚戌國恥) 2년 뒤인 1912년 의암 손병희 선생이 “10년 안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당시 경기 고양군 수양면 우이동 땅에 세웠다. 산속 9만 2231.8㎡ 부지에 봉황각을 비롯한 13개동의 건물을 지었다. 이곳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젊은이 483명을 가르치고 수련시켰다.3·1운동 때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15명이 봉황각 출신이다. 최남선 선생은 봉황각에 한동안 머물며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애국지사들은 3·1운동 직전에 거사를 모의했다. 봉황각이라는 이름은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시에 나오는 ‘봉황’에서 따왔다. 봉황은 성인(聖人)의 탄생에 맞춰 세상에 나타나는 전설의 새로, 나라를 구할 인재를 기다리는 마음을 담았다. 현판은 중국 명필들의 필체를 빌려 수련생 출신 오세창 선생이 썼다. 일제는 3·1운동 이후 봉황각만 두고 나머지 건물들을 모두 헐어 버렸다. 서울시는 봉황각을 선열의 뜻을 기려 유형문화재 2호로 등록했다. 강북구는 매년 3월1일 청소년 300여명이 솔밭공원에서 봉황각 입구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는 3·1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봉황각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도 한다. 봉황각에서 50m 떨어진 손병희 선생 묘소 앞에서는 주민을 위한 마당극, 택견 공연 등이 열린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커투어, 곤자가 눕혔다

    관록이 패기를 압도했다. 뜨거운 관심을 모은 미국 종합격투기 ‘UFC 74’의 헤비급 타이틀전은 44세의 노장인 ‘UFC 전설’ 랜디 커투어(미국)의 완승으로 끝났다. 프라이드FC 이적생인 ‘하이킥의 달인’ 미르코 크로캅(33·크로아티아)을 하이킥으로 무너뜨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신예’ 가브리엘 곤자가(27·브라질)는 UFC 무대 4연승에서 질주를 멈추고 말았다. 커투어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이벤트 센터에서 열린 대회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도전자 곤자가를 3회 1분37초 만에 TKO로 꺾었다.2006년 초 은퇴를 선언했다가 1년 만에 복귀, 지난 3월 팀 실비아(31·미국)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제압하고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탈환한 뒤 첫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장식한 것. 커투어는 ‘하이퍼 고릴라’로 불리는 곤자가를 맞아 클린치 상태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줄곧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연방 주먹을 곤자가의 안면에 꽂아넣었고, 상대를 쓰러뜨린 뒤 등 뒤를 제압하거나 철망으로 밀어붙여 팔꿈치 공격을 퍼부었다.3라운드 들어 커투어는 하이킥을 맞기도 했으나 상대 중심을 무너뜨려 쓰러뜨린 뒤 깔고 앉아 일방적으로 주먹을 내리꽂았고,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저스틴 킹밴드 31일 내한공연

    저스틴 킹밴드 31일 내한공연

    ‘어쿠스틱 기타의 전설’ 저스틴 킹과 그의 밴드가 첫 내한공연을 벌인다. 킹은 3년 전 자신의 기타 연주 모습을 담은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인물. 당시 더블넥(두줄 기타) 어쿠스틱 기타를 단지 태핑(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지판을 손으로 직접 때리면서 소리를 내는 연주법)만으로 건반악기처럼 연주하는 모습이 미국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로부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킹은 2001년 첫 솔로 앨범 ‘Le Blue’를 발매하면서 기타와 피아노, 드럼, 베이스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다재다능한 음악가로서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그는 오랜 음악 친구들인 드루 드레스맨(베이스), 크리스 플랭크(기타, 보컬), 나디르 지방지(드럼) 등과 함께 ‘저스틴 킹 밴드’를 만들어 미국 20여개 도시에서 공연을 펼치며 어쿠스틱 기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미국 현지보다 국내에서 먼저 선보이는 첫 정규앨범 ‘저스틴 킹 & 더 어폴로지스(The Apologies)’ 발매를 기념한 이번 공연에서는 앨범 수록곡을 중심으로 모던 록의 황금기인 1990년대의 음악을 담백하고 세련된 소리로 들려줄 예정이다. 도시적인 분위기의 ‘세임 미스테이크’,‘체인지’ 등 킹의 감미로우면서도 내지르듯 시원한 보컬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그의 솔로 연주도 감상할 수 있어 기타 음악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공연의 주요 레퍼토리가 될 첫 정규앨범의 수록곡들은 킹의 화려한 기교를 기반으로 한 유려한 멜로디가 주를 이룬다. 다이아나 크롤, 제임스 테일러, 비비 킹 등 유명 음악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다져온 그만의 노련하고 숙련된 연주가 일품이다.‘묘기’ 수준의 기교가 돋보이는 현란한 연주와 대중적 성향의 모던록풍 곡들에서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서정적 깊이가 느껴진다.31일 오후 8시.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 3만5000∼5만원.(02)2230-6626.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KPGA 50년 개근’ 뒤 아름다운 은퇴 한장상 고문

    [스포츠 라운지] ‘KPGA 50년 개근’ 뒤 아름다운 은퇴 한장상 고문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한국의 아널드 파머’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단 한장상(69)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 이제 더이상 정규대회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지난 21일 경기 용인 코리아골프장(파72·6440m)에서 개막한 제50회 KPGA선수권대회를 끝으로 50년의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했기 때문.1958년 이 대회가 시작된 이후 50회를 맞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출전했던 대회였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더욱이 68년부터 71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모두 7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려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그다. 지난 2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장현그린골프클럽’에서 만난 한 고문은 여전히 후배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팔로스윙에서도 힘이 남아 있잖아. 팔로에선 힘이 완전히 빠져 있어야 돼. 클럽을 그냥 들었다 놓는 기분으로 치란 말야.” 칠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기력이 왕성했다.“몸은 필드를 떠나지만 마음은 죽는 날까지 필드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좀 쉴 때도 됐지만 골프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란다. 한 고문은 1954년 집 근처 군자리골프장 (현 서울컨트리클럽)을 드나들다 캐디가 되면서 골프와 연을 맺었다. 이듬해 골프장을 자주 찾던 손님으로부터 낡은 아이언 두개(5번과 7번)를 얻어 골프를 시작했다. 한 고문은 “그 손님이 준 채를 들고 남들 흉내를 내가면서 열심히 연습했던 게 뒷날 ‘아이언 샷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1958년 프로에 입문한 그는 통산 22승을 쌓아올렸다. 시니어투어까지 포함하면 통산 25승.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골프장이 생긴 게 1900년쯤이었으니 골프사의 절반은 그와 함께했던 셈. 프로골프 1세대로서 한국프로골프협회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를 출범시킨 산파이기도 하다. 그는 50년 선수생활 동안 잊을 수 없는 장면을 회상했다.“66년 일본 도쿄 요미우리CC에서 열린 월드컵 18번홀(파4·420야드)에서 친 세번째 샷은 잊을 수 없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탓에 핀에 붙인다는 생각으로 쳤어. 그런데 벙커샷이 핀을 지나 3m 지점에 떨어지더니 백스핀을 먹고 그대로 홀컵에 들어간 거야. 내 인생 최고의 샷이었지.”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했을 때와 같은 해 한국오픈에서 65타를 쳐 코스레코드를 경신했을 때, 그리고 73년 마스터스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마스터스 출전은 한국인 최초였다. 그는 아널드 파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아널드 파머와는 마스터스대회 때 처음 만났고,82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을 함께 했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말한다. 한 고문에게 레슨을 받은 사람 가운데 거물도 적지 않다. 특히 육군 이등병 시절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쳤고, 프로 입문 후에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스승’도 했다.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 두산그룹 박두병 회장 등 정·재계의 유력자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일본에서 활약 중인 장익제·구옥희 프로를 수제자로 둔 한 고문은 후배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기량이야 좋아졌지만 근성이 부족해.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야.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잘 쳤다고 우쭐대고, 못 쳤다고 주눅들어서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지.”라고 강조했다. 한장상, 그도 세월의 무게에 겨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겠지만 ‘한국 골프의 자양분’인 그의 열정과 근성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글 남양주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한장상 프로필●출생 1938년 3월28일 서울생 ●체격 167㎝,67㎏ ●학교 경동초-피란으로 천막학교에서 중학과정 이수-한영고 중퇴 ●가족 부인 박의순(67)씨와 사이에 아들 성욱(40)씨, 딸 지수(38)씨와 지희(35)씨 ●취미 바둑 ●경력 개인통산 25승(국내 정규대회 19승, 해외 3승, 시니어 투어 3승).1968∼71년 KPGA선수권 4연패 등 대회 통산 7승.1965∼67년 한국 오픈 3연패 등 대회 통산 7승 .72년 일본 오픈 우승.73 년 한국인 첫 PGA 투어 마스터스대회 출전.2007년 8 월21일 KPGA선수권대회 5 0번째 출전. 초대 한국여자프로 골프협회(KLPGA) 회장. 제 6대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장, 현 한국프로골프협회고문
  • [24일 TV 하이라이트]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05분) 세상의 어느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사이가 이렇게 좋을까. 속옷도 같이 입고 목욕도 같이 할 정도로 거리낌없이 지내는 두 사람.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와 다정하게 찜질방에 갔던 인경은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한다. 술에 취해 치근덕거리는 남자를 시어머니가 거의 한손으로 메다꽂은 것이다.   ●라이프n조이(YTN 오후 80시35분) 자연이 살아 숨쉬는 전북 부안.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긴 기암절벽과 전설 속 섬으로 떠난다. 켜켜이 쌓여있는 절벽이 세월의 숭고함을 일깨워주고,600년 전 조선시대가 한 눈에 펼쳐지는 승마체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자갈 백사장과 해수욕장까지,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 여행을 떠난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1994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진도 6.7의 지진이 일어나 이 일대가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모두 4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낸 지진은 고가도로의 연결부위를 지탱하는 교각의 약한 지지대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어진 건물들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날아오르다(SBS 오후 9시55분) 버스를 놓칠 뻔한 진희는 무의식중에 벗은 신발을 던져 버스를 향해 던지는데, 신발은 열린 창문 안으로 들어가 한 남자를 맞히고 만다. 이에 버스는 급정거를 하고, 그 덕에 진희는 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가 던진 신발을 맞은 사람이 아는 체하자 난감해 하면서 종가집으로 돌아온다.   ●생방송 오늘아침 ‘특집기획’(MBC 오전 8시30분) 통조림 갈비탕, 찐쌀, 어패류 등 국내 모든 먹을거리를 점령하다시피 한 중국산은 과연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염색약으로 물들인 오리알, 항생 물질이 검출된 어패류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과 국수, 고기류 등 대다수의 중국산 먹을거리의 위생 상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KBS1 오후 10시) 어느 날 밀린 전화요금 250만원을 내라는 독촉장을 받은 김씨. 알고 보니 누군가 김씨의 명의를 도용해 무려 861개의 전화를 개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함께 비상구 없는 극장을 고발하는 등 UCC의 힘을 살펴보고, 칡 성분은 거의 들어있지 않은 ‘칡냉면’의 실태도 알아본다.
  • [씨줄날줄] ‘제로존 이론’/함혜리 논설위원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적 사고방식, 혹은 방법론을 ‘관찰-가설-예측-실험-수정’의 다섯 단계로 도식화한 다음 이러한 기준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의 명제이며 그러지 못하는 것은 비(非)과학이라고 구별지었다. 포퍼의 구분에 따르면 창조설, 점성술, 형이상학, 정신분석학 등이 반증이 불가능한 비과학으로 분류된다. 아마추어 과학자 양동봉(53) 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장이 제시한 ‘제로존 이론’이 화제다. 제로존 이론이란 질량, 길이, 시간, 광도, 물질량, 전류, 온도 등의 7개 기본 단위를 광자(光子)의 개수로 통일해 호환되도록 한 것이다. 물질이 측정되기 이전의 상태를 숫자 1로 보고, 이를 가장 작은 에너지 단위인 플랑크 상수와 같다고 가정한 결과 모든 물리량(단위)은 전하(C)와 전위(V), 길이(m)로 표현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만 적용하면 지금까지 어떤 복잡한 방정식으로도 풀지 못한 물리현상들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양 원장의 주장이다. 제로존이라고 한 이유는 자연상태의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과의사 출신인 양 원장이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지극히 비과학적이다. 그는 지금부터 15년 전 가을 어느날 무의식적으로 흰 종이 위에 원형성, 원칙성, 동인성, 방향성, 보상성, 희귀성, 통일성이라는 7개의 단어를 써내려 갔다. 이후 3000권에 이르는 과학 관련 서적을 독파하며 수학과 물리학을 깨우친다. 인도의 전설적 수학자 라마누잔이 그랬던 것처럼 직관과 명상이 그의 독자적 이론 확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양 원장의 제로존 이론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어려운 물리학 수식을 동원하고 있으나 개념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다.”고 평가한다. 논란을 잠재우는 것은 역시 과학자들의 몫이다. 한국물리학회는 과학적 틀 안에서 제로존 이론을 검증할 계획이다. 제로존 이론을 대서특필한 신동아의 표현대로 ‘세계 과학사를 새로 써야 할’만큼 엄청난 발견인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사건과 학력위조 파문으로 가뜩이나 뒤숭숭한데 또 다시 혹세무민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5) 광주~장성 길재

    [땅끝마을에서 한양까지 다시 걷는 옛길](5) 광주~장성 길재

    말(馬)이 요즘의 고속철도 역할을 하던 때, 광주에서 한양까지 대략 720리길이었다. 광주에서 긴급한 문서를 보내려면 잘뛰는 놈을 골라 역에서 갈아타고 하루 180리(72㎞)씩 달려 4일만에 한양땅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의 고려 역사서인 ‘고려사’에는 오늘날 비상 사이렌을 단 차량처럼 비상문서용 말은 방울 3개를 달고 요란을 떨며 길을 재촉했다고 적고 있다. 낮이 긴 2∼7월에는 6개역(驛)을, 그렇지 않은 8∼1월엔 5개역을 하루만에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하급 관리나 봇짐 장수, 민초들은 짚신을 허리에 꿰차고 산길과 지름길을 찾아 허기진 채 한양길에 올랐다. 고갯마루, 나루터마다 이들을 노린 주막(酒幕)거리와 역촌(驛村)이 생겼고 자연스레 물품과 사람이 모이면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옥동마을은 동학군-관군 격전지 광주 광산구 평동은 나주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초입이다. 여기서 장성을 거쳐 한양에 오르는 길은 두갈래였다. 복룡산 서쪽 길은 험하고 인적이 뜸해 이용자가 적었다. 대신 동쪽 길이 애용됐다. 대개 옥동마을과 황룡강 둑길, 송촌리 원등을 지나 나룻배를 타고 건너 선암역촌으로 들어섰다. 평동사무소 삼거리를 못미친 오른쪽 길옆 논가에는 옥동이란 돌 표지석이 있다. 백제 때 복룡현의 ‘치소(감영)’가 있던 자리다. 이곳은 본래 나주땅으로 나주와 광주, 장성의 요충지였다. 때문에 후백제군과 고려군, 동학군과 관군의 격전지였다. 복룡산 꼭대기에는 지금도 봉화터와 성터가 있다. 선암마을은 선암사가 있어 탑골이다. 마을 안쪽인 정찬연(74·광산구 선암동)씨의 집 대문 옆에 서 있는 3층 석탑이 옛 흔적을 살려낸다. 정씨는 “본래 5층 석탑인데 광주공원으로 옮겨진 뒤 마을에 나쁜 일이 많이 생기자 주민들이 다시 탑을 찾아오면서 3층으로 줄었다.”고 증언했다. 선암역은 장성∼광주∼나주∼영광을 잇는 역할을 했다. 인근 소촌동에는 광산구 부자이던 천석꾼 박용철(1904∼1938) 시인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 절골마을은 연안 차씨의 집성촌이다. 인근에 있는 연화약수비(蓮花藥水碑)가 눈길을 끈다. 표지석 뒷면에 ‘만수원천 감약수(萬壽源泉 甘藥水·일만살까지 살게 하는 감로약수)’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마을 차판오(90·광산구 운수동)옹은 “한양 가는 마을 앞길을 ‘무내미재’라 부른다. 삼국시대부터 이 길이 있었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들었다.”고 또렷하게 기억했다. 무내미재는 물도 넘어갈 정도로 넘기 쉬운 고개라는 뜻이다. 이 고개는 경운기 한 대가 너끈히 지나갈 만하고 200m쯤 황톳길로 이어져 있다. ●주막집 딸 길손들 유혹하다 장군의 칼에 죽어 이 고개의 오른쪽 한길 낭떠러지 아래로는 다랑치 논이고 왼편으로는 산비탈이다. 막힌 산비탈 길을 돌아서면 하남역이 나온다. 마을 앞쪽 논 가운데에 시멘트 벽이 둘러친 마을 공동우물이 방치돼 있다. 이 샘이 ‘한우물’이다. 이후 ‘하나몰’이 되었고 다시 하남으로 바뀌었다. 광산구 송정리 이름도 ‘솥머리’에서 ‘솔머리’가 되었고 솔을 소나무 송(松)자로 바꿔 송정리가 됐다. 하남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 전남 장성군 남면 행정리 승가마을이다. 동네 동쪽 1㎞쯤에 고속도로가 나면서 한적한 마을이 됐지만 한 때 하남과 장성읍, 진원 등으로 통하던 길목에 신거무란 큰 장터가 있었다. ‘장성읍지’에는 ‘신거무 전설’이 전해진다.‘노 부부가 100일 치성(致誠)으로 낳은 아들이 거미같이 생겨 신거무라 불렸고 커서 현감까지 죽이는 등 갖은 행패를 부리다 죽었다. 이후 장날이면 맨 늦게 돌아가는 장꾼이 죽는 일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 고장에서는 ‘신거무장 파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장이 섰다 금세 파한다는 뜻이고 일이 흐지부지 끝나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또 후백제 견훤의 장남인 신검과도 연관된다. 지금도 승가 들판이 신거무들 또는 신검들로 입에 오르내린다. 마을 앞에 놓인 승가교 양쪽에는 신거무 다리의 돌머리가 세워져 있다. 높이는 1m80㎝쯤으로 길게 ‘기역자’로 홈이 난 화강암이다. 주민 고광석(54)씨가 10여 년 전 하천공사를 하다 2개를 발견해 다리 앞에 마을 수호신으로 세웠다. 장성읍내 바로 못미쳐 못재(마령고개)가 나온다. 맛재라고도 하는 데 주요 고개란 뜻이다. 옛날 이 고개 주막에서 어떤 효자가 호랑이를 길렀다해서 목호치(牧虎峙)라고도 불린다. 이어 호남고속도로 옆에 장성댐이 위치한다. 옛날 댐 밑에 청암역(단암역)이 있었다. 향토 역사서인 ‘호남역지’에는 청암역은 11개 역에 역리(驛吏) 등 50여명을 거느렸다고 전한다. 원래 청암역은 나주에 있었고 당시 장성역은 단암역으로 불렸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 광주세가 나주를 누르면서 나주 청암역 찰방(察訪)이 장성 단암역으로 옮겨갔다. 이후 장성 청암역으로 불린다. 전라남·북도의 경계인 입암산 아래 왼쪽으로 보이는 게 갈재다. 한자로 갈대노(蘆)자를 써 노령고개로 불린다. 장성댐 밑 청암역에서 이 고개를 넘으려면 고개밑 원덕리 미륵원에서 쉬거나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넘어야 했다. 고개는 산적들 소굴이었다.1520년 중종 때 군사까지 파견될 정도였다. 이 미륵원 인근 500m쯤에 주막이 7개나 된 주막촌 ‘목란’이 있었다. 장사꾼이나 과거 지망생들이 목란에서 투전판이나 술 따르는 여인의 유혹에 걸려 인생을 망친 일이 많았다는 전설이다. ●장성 현감 셋 파직시킨 기생 ‘노화’ 목란과 미륵불이 있었던 원덕주막 사이 동쪽 산허리에는 처용암(處容岩)이란 미인 바위가 보인다. 짙은 두 눈썹 형상이 마치 아리따운 여인과 같다. 이곳 주막에서 태어난 ‘갈아’란 여인은 뭇사내들의 신세를 망쳐 어떤 장군의 칼에 찔려죽었다고 한다. 이후로 바위는 애꾸눈이 되고 인근 마을에서 애꾸눈 미인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다. 이 전설과 관련, 정비석씨의 ‘기생열전’에서는 조선시대 성종때의 기생 ‘노화’가 나온다. 미색이 뛰어나 그의 치마폭에서 장성 현감 셋이 파직된다. 파견된 사헌부 관원마저 노화의 유혹에 걸려 팔뚝에 정표를 해준다. 다음날 관헌에게 붙들려 온 노화는 그의 팔뚝을 보여주며 노래한다.“노화의 이 팔뚝에 뉘 이름 새겼는고, 고운 살에 먹이 베어 글자도 선명코나.” 결국 이 기생은 관원의 첩으로 들어앉는다. 갈재 옛길 밑으로 지금은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터널 2개가 뚫렸다. 갈재는 전라좌도는 물론 전라우도 등 크고 작은 한양길이 모이는 주요 통로였다. 재를 넘으면 전북 전주 길목인 정읍이 펼쳐진다. 글 사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 “사람 모이는 요지… 길 속에 돈 있다” “지금의 광주∼장성간 고속도로와 철도, 국도는 선조들이 다녔던 옛길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김경수(49·지리교사·문학박사) 향토지리연구소장은 호남에서 한양가던 옛길은 현 호남선과 위치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큰 길을 뚫기 전에 인근의 옛길들을 사전 조사하면 적잖은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 소장은 “100년 전쯤 지금의 광주 시외버스터미널 역할을 하던 자리가 시내쪽에서는 경양역이고 광산구쪽에서는 선암역”이라고 소개했다. 경양역은 관할 6개 역으로 군졸 1만명, 말 300마리, 역둔토 300결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한다. 오늘날 시내 중심이 된 광주교대, 동신고, 옛 광주상고 터가 경양역촌이었다. 그는 “우산동 서방시장 건너편에 경양역 표지석이 세워졌다. 동신대학교와 동신고 등을 설립한 동강학원 이사장이 역터(383번지)에 집을 지어 대물림한다.”고 전했다. 풍수학상으로 이곳은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의 말대로 조선시대 경제의 중심축이던 역촌(驛村)들이 산업단지와 산업동맥으로 다시 이름을 잇고 있다. 그는 “선암역도 송정역에 밀려 쇠락하다가 오늘날 이 일대가 다시 길목이 되면서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말했다. 선암역인 선암마을 앞쪽은 광주에서 무안국제공항을 잇는 고속도로와 광주에서 영광을 잇는 국도 22호선 우회로, 평동과 하남산업단지 진입도로가 교차하는 사통팔달로 통한다. 한양가는 길목이던 하남산업단지는 광주시 전체 제조업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김 소장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불문하고 길속에 길(돈)이 있다.”며 “교통의 요지에는 사람과 물품이 모이기 마련이어서 눈여겨 두면 뒷날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새 아이맥스 영화 ‘자이언캐년’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창조물로 일컬어지는 ‘자이언캐년’은 미국 유타주와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등 3개주에 걸쳐 펼쳐진 거대한 국립공원. 이곳을 배경으로 전설의 황금 십자가를 찾는 인간들의 모험을 그린 새 아이맥스 영화 ‘자이언캐년’이 9월1일부터 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영화는 이곳에 발자취를 남겼던 인디언, 수도사, 사진 작가, 암벽 등반가 등 실제 인물들에 이야기를 입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깎아지를 듯 기기묘묘한 협곡 위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여성 등반가의 사투. 줄 하나에 의지해 암벽을 오르다 줄이 풀려 끝도 없이 하강하는 장면은 가슴 조이는 긴장감과 함께 짜릿한 스릴을 안겨준다. ‘나이아가라’‘옐로스톤’ 등을 연출한 아이맥스 영화의 거장 키스 메릴의 작품. 비경을 담아내기 위한 촬영진의 2년여 노력이 스크린에 생생하게 나타난다.(02)789-5663.
  • [뮤지컬]

    ■ 시카고9월18∼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1920년대 시카고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벨마와 록시 두 여자의 관능적인 생의 욕망. 스콧 파리스 연출.3만∼13만원.(02)577-1987.■ 조지엠코핸 투나잇9월7일∼11월30일 동양아트홀. 브로드웨이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작곡가·배우인 조지 엠 코핸의 모놀로그 뮤지컬. 이지나 연출. 화∼목 오후 8시 금 오후 7시30분·10시 토 오후 4·7시 일 오후 3·6시.4만원.(02)515-8643.
  • [주말탐방] 카레이싱의 조연 ‘치프 미케닉’의 하루

    [주말탐방] 카레이싱의 조연 ‘치프 미케닉’의 하루

    천지를 진동하는 머플러의 굉음과 치열한 속도경쟁을 벌이는 화려한 자동차의 몸싸움, 경주를 모두 마친 뒤 샴페인을 뿌려대는 드라이버들, 그리고 팔등신 미녀들의 아슬아슬한 몸동작들. 이 모두가 카레이싱을 연상케 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게 마련. 카레이싱이 ‘스피드’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갈증을 자동차라는 도구를 통해 해결하는 만큼 경주차의 성능은 절대적이다. 비록 앞에 성큼 나서지 않는 조연들이지만 스피드라는 욕망의 보따리를 풀어헤치는 ‘미케닉‘들은 어찌보면 레이싱의 주역들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라는 카레이싱의 절대 명제. 그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미케닉들의 차지다. 은퇴한 ‘포뮬러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독일)도 그의 전담 미케닉 로스 브라운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이름 앞에 ‘황제’라는 별명도 없었을지 모른다. ●국산차 경주용 개조비에 8500만원 2007CJ슈퍼레이스 3차대회가 열린 지난달 용인스피드웨이.S-OIL레이싱팀의 유경록(36) 팀장은 전날 고된 자동차 튜닝작업으로 녹초가 돼 있었다. 그는 모두 5명으로 구성된 정비팀의 ‘치프 미케닉(Chief Mechanic)’이다.“나머지 4명 전문 기술 요원들의 역할 분담을 총괄하고 감독한다.”는 그는 “엔진과 동력전달 장치, 변속기, 타이어, 연료보급 등 자동차경주에 필요한 필수 요소들에 대한 개조작업(튜닝)과 준비는 반드시 내 손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비장함이 절절이 묻어난다. 유 팀장은 경기가 열리기 2주 전부터 하루 전 꼬박 16시간씩 자동차에 매달렸다. 차량은 국내산 경주용차인 투스카니.“흡입과 배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피스톤을 교체하고 실린더 직경을 넓히는 등 엔진을 개조했다.”는 유 팀장은 “가속 능력을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 변속기도 6단으로 개조한 건 물론, 완충장치(쇽업소버)와 브레이크 디스크와 패드 등 제동장치 부품도 갈아치웠다.”고 말했다. “‘뚜껑’으로 불리는 차체에 스포일러(공기 제동날개)를 부착하고 차체를 가능한 한 지면에 가깝게 하기 위해 섀시의 높이까지 낮추는 개조작업을 단행했다.”는 그는 “들어간 비용만 8500만여원이고, 차체가 외국산이라면 2억원은 족히 들어갈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드라이버의 호흡까지 읽는다 출발 30분 전. 유 팀장은 가장 먼저 노면의 온도를 직접 쟀다. 타이어의 공기압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트랙의 환경을 예측하기 위함이다. 그는 “카레이싱의 승패는 사실상 타이어에 의해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따라서 타이어에 영향을 미치는 노면과 타이어는 물론, 대기의 온도까지 체크하는 게 레이싱에 대비하는 최종 단계”라고 설명했다. 5분 전.4명의 미케닉들이 차를 손으로 밀어 출발대에 놓는다. 엔진 시동을 건 뒤 움직일 경우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춰놓은 각종 장치가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유 팀장은 ‘버킷 시트(운전석)’에 앉은 드라이버 김중군(25)씨에게 말을 건넨다.“출발 직전 드라이버의 말 한마디, 호흡 한 줄기를 통해 심리상태의 안정 유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내부 온도가 섭씨60도에 이르는 차체에 앉아 있는 드라이버에게 서로에 대한 굳은 신뢰감을 확인시키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마침내 출발을 알리는 깃발이 펄럭이고 수십대의 자동차들이 폭발음을 터뜨리며 트랙으로 튀어나간다. 이제부턴 머리카락 한 올까지 쭈뼛 서는 긴장의 연속이다. 찌푸린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트랙을 돌던 드라이버 김씨에게 ‘피트(정비구역)’로 들어오라고 무전을 날린 유 팀장은 2명의 미케닉에게 타이어 교체를 지시한다. 순위 싸움인 만큼 시간이 관건. 밋밋한 ‘드라이 타이어’를 홈이 파인 4개의 ‘ 타이어’로 교체하는 시간은 딱 26초가 걸렸다. 마침내 승리의 순간. 드라이버가 시상대 위에서 샴페인 세례를 받는 동안 유 팀장은 격렬한 레이스 끝에 다 떨어지고 헤진 자동차를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늘 밤 캠프로 돌아가면 그와 4명의 후배 미케닉들은 마지막 부품 한 개까지 모두 뜯어내야 한다.“레이스를 끝낸 이 자동차의 목숨은 다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밖엔 남지 않았죠. 그게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용인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국내 카레이싱 관전법 카레이싱은 경기가 벌어지는 장소에 따라 아스팔트트랙에서 열리는 ‘온로드 레이스’와 비포장트랙에서 열리는 ‘오프로드 레이스’로 구분된다. 또 온로드레이스는 경기방식에 따라 스프린트 레이스(순위)와 타임트라이얼(기록), 내구레이스 등으로 우승자와 팀을 가린다. 또 경주차의 종류에 따라 투어링카와 포뮬러,RV 등으로 나뉜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식 경기는 온로드 투어링카 레이스인 ‘CJ슈퍼레이스’ 하나뿐이다. 물론,‘머신(Machnine) 수준의 특수 전용 자동차를 사용하는 유럽의 포뮬러1(F1)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웅장함과 긴박감은 그에 다를 바 없다. 국내 카레이싱의 관전법을 짚어본다. CJ슈퍼레이스 경기 종목은 엔진 배기량과 개조 정도에 따라 GT(Grand Tour)와 투어링 A,B로 나뉜다.GT는 2000cc 엔진을 장착한 양산차종으로 엔진을 제외한 전체 개조가 가능하다. 투어링 A와 B는 각각 2000cc와 1600cc 엔진을 사용하며 부분개조만 가능하다. 포뮬러1800 종목도 있지만 1800cc급 엔진에 그치기 때문에 성능과 스피드는 F1과 많은 차이가 난다. 레이스를 주최하는 KGTCR의 사공수경(30)씨는 일반 관람석보다는 ‘패독(Paddok)’에서 관람하기를 권한다. 경주차와 드라이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진한 휘발유 냄새와 함께 레이스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피트(정비구역)에 들어온 경주차의 바퀴를 갈아끼우는 미케닉들, 늘씬한 몸매를 뽐내는 레이싱모델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모두 모여있다. 0.001초를 다투는 카레이싱의 특성상 스타트는 매우 중요하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경주차 간의 몸싸움과 웅장한 배기음 등은 압권이다.“스타트 장면을 봤다면 레이싱의 절반은 본 셈”이라고 사공씨는 얘기한다. 스타트 방식은 보통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스탠딩스타트를 채택하지만 GT와 투어링A 통합전 오전 경기에서는 선두차량을 따라 트랙을 돌다 출발하는 롤링스타트로 바뀐다. ‘피트 인(정비구역 진입)’은 레이싱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GT클래스의 경주차들은 5바퀴 주행 이후 의무적으로 타이어를 모두 교체해야 한다. ‘피트 인’ 시간은 레이스 전체 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절차를 수행하고 트랙으로 복귀하느냐가 승부를 가르기도 한다.F1의 경우 7명의 미케닉이 급유와 타이어 교체를 하는 시간은 단 5초 안팎. 규정상 급유 없이 요원 2명만으로 한정된 국내에서는 바퀴를 가는 데만 25초 남짓이 소요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카레이스 현장은 자동차 레이스 현장은 양산차 개발을 위한 직·간접적인 시험대다. 서킷(경주 트랙)은 그 어떤 주행 환경보다 ‘한계’를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한 실험현장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킷은 자동차 기술을 키우는 ‘거대한 인큐베이터’라고도 불린다. 엔진과 완충장치(서스펜션), 공기역학적인 디자인 등 오늘날 양산차의 빼대를 이룬 핵심기술들 대부분이 모터스포츠 현장에서 탄생했다. 국내에서 DOHC(트윈캠샤프트)엔진이 생산되기 시작한 지난 90년대 자동차 메이커들은 마치 그들이 자동차 기술의 일대 혁신을 일궈낸 것처럼 광고했다. 그러나 DOHC기술이 처음 등장한 건 80년가량이나 앞선 1910년대였다. 이탈리아 레이싱카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알파로메오’의 엔진 설계자인 비토리오 야노가 엔진의 힘을 폭발적으로 키우고, 결과적으로 레이싱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개발해낸 엔진 기술이었다. 공기역학(에어로다이내믹)이 자동차 성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우친 사람들도 레이싱 엔지니어와 미케닉들이었다. 1970년대 탄생한 ‘로터스78’은 바닥을 둥글게 하는 간단한 구조 변형을 통해 차체가 납작하게 지면에 달라붙는 이른바 ‘다운포스 효과’를 경이적으로 높였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유선형의 차체 디자인도 레이싱에서 숙성된 공기역학 기술이 이끌어낸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소형차들이 채택하고 있는 모노코크보디(일체구조 차체)라든가, 자동변속 기어 장치도 모두 레이싱 무대가 탯줄이었다. 물론 국내 미케닉들의 기술은 이들에 견줘 다소 무게가 떨어진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부터 드라이버를 보호하는 안전장치 가운데 하나인 롤케이지(Roll-Cage) 제작 기술은 세계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차체 내부에 10개 안팎의 파이프로 마치 새장 모양의 완충 구조를 꾸며 경주자동차가 충돌하거나 구를 경우에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가톨릭상지대학 자동차·모터스포츠과의 이영배 교수는 “국내 롤케이지 기술은 카레이싱의 본토인 유럽의 그것보다 더 인정받고 있다.”면서 “국내 모 레이싱팀의 미케닉이 설계·제작한 롤케이지는 최근 험난한 러시아 사할린의 유전지대를 누비는 4륜구동 자동차 안전장치로 새로 채택돼 수출을 위한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U-17 월드컵’D-3…윤빛가람·룰라 등 스타 예고

    ‘U-17 월드컵’D-3…윤빛가람·룰라 등 스타 예고

    ‘될성부른 나무들이 한국에 모였다!’ 12회를 맞은 국제축구연맹(FIFA) 17세이하 월드컵은 미래 스타의 산실이다.10년 안에 세계 그라운드를 휘어잡을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무대다. 지난해 독일월드컵에서 뛴 선수 가운데 67명이 17세이하 월드컵을 경험했을 정도. 루이스 피구(1989년),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1991년), 잔루이지 부폰, 프란체스코 토티(이상 1993년), 파블로 아이마르(1995년), 호나우지뉴(1997년), 아드리아누, 마이클 에시엔(이상 1999년), 카를로스 테베스, 페르난도 토레스(이상 2001년), 존 오비 미켈(2003년) 등 쟁쟁한 스타들이 이 대회 졸업생들이다.2005년 대회 최우수선수(MVP) 안데르손(브라질)은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이번 한국 대회에 출전한 504명 가운데 브라질 공격수 룰라(17·코린티아스)와 스페인 공격수 보얀 크르키치(17·바르셀로나)가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자국 대통령과 이름이 같아 ‘룰리냐(작은 룰라)’라는 별명을 지닌 룰라는 이미 8살 때 코린티아스와 계약을 맺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난 3월 남미예선 9경기에서 12골을 몰아쳐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우상 호나우지뉴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는 그는 현란한 개인기와 패스 능력, 탁월한 골결정력을 겸비해 성인 대표팀 발탁은 시간 문제라는 평가다. 크르키치는 세르비아 혈통으로 ‘축구 가족’ 출신이다. 아버지가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를 지냈다. 올 초 바르셀로나 2군으로 승격했고, 친선경기에서 1군 무대를 밟는 등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1999년부터 7년 동안 유소년 무대에서 889골을 뽑아내며 ‘작은 전설’을 썼다. 스페인에는 일찌감치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프란 메리다(17)도 있다. 남미예선 MVP를 차지한 레이몬드 만코(17·알리안자 리마)는 ‘안데스의 호마리우’로 불릴 정도로 전성기의 호마리우(브라질)를 빼닮았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의 미국 공격수 알렉스 니모(17·포틀랜드대)는 ‘제2의 프레디 아두’를 꿈꾼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떠나 가나의 난민캠프에서 공을 차며 자란 경험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4강을 노리는 한국에서는 플레이메이커 윤빛가람(부경고)과 ‘쌍포’ 배천석(포철공고), 주성환(이상 17·광양제철고)이 비상을 노린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엘비스 프레슬리 30주기…추모 초콜릿바도 나와

    엘비스 프레슬리 30주기…추모 초콜릿바도 나와

    오는16일 전설의 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30주기를 앞두고 미국 전역이 추모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프레슬리 저택이 있는 미국 멤피스시 그레이스랜드에는 이미 5만명의 팬들이 모여들고 있고 그의 정원에서는 촛불 추모 행사가 밤새도록 열릴 예정이다. 또 저택 정원에서는 모창 경연대회가 열린다. 수년간 계속돼온 전통의 이 대회에는 생전 모습과 똑같이 분장한 열성팬들이 세계각국에서 몰려든다. 이외에도 프레슬리의 전 아내 프리실라와 프레슬리의 밴드 맴버들이 참가하는 추모 공연은 이미 표가 모두 매진되었다. 한편 프레슬리의 30주기를 이용한 기업들의 상술도 눈에 띈다. 초콜릿 회사인 허쉬 제과(Hershey confectionary)는 프레슬리를 추모하는 바나나 맛 나는 피넛버터 초콜릿바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생전의 프레슬리가 피넛버터와 바나나 샌드위치를 좋아했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왕년의 팝스타 마리 오스몬드는 작은 프레슬리 인형을 판매하고 있다. 특유의 점퍼를 걸치고 마이크까지 쥐고 있는 꼬마 엘비스의 모습이 앙증맞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35년 1월8일에 태어나 1977년 8월16일에 사망했다. 19세에 멤피스의 ‘선 레코드’에서 노래하기 시작했으며 81개의 골든 앰범과 빌보드 팝싱글 100에 149곡을 올려놓은 전설의 팝스타다. 영화에도 31편이나 출연, 은막의 스타로도 명성을 날렸다. 명 리 캐나다 통신원 myungwlee@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천연동굴로 간 음악회

    ‘섬속의 섬’ 제주 우도에서 11일 오후 3시 이색적인 동굴음악회가 열린다.10회째다. 행사 장소는 속칭 ‘고래콧구멍동굴(동안경굴)’로 불린다. 음악회 무대인 동안경굴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가 큰 날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신비스러운 동굴로 예전에 고래가 살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동굴음악회는 동굴의 울림으로 인해 다른 음향 장치가 없이도 우수한 공명을 풍부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동굴음악회에는 테너 현행복씨와 제주챔버코랄의 제주민요 ‘이어도 사나’, 김희숙 춤아카데미 단원들의 해녀춤 등이 공연된다. 또 전명선씨의 양금 독주,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왔던 김정(1486∼1521)의 한시 ‘우도가’ 낭송, 이명선씨의 기타 로망스 변주곡, 현악4중주, 합창 등이 공연된다.김순두 행사추진위원장은 “동굴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문화공간과 다름없어 음악회 장소로 충분하다.”면서 “시원스러운 바다 풍경과 함께 관객들에게 이색적인 예술체험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064)743-9793.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연극]

    ■ 테너를 빌려줘 17일∼10월28일 상상나눔 씨어터. 오페라와 코미디의 만남.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 티토가 리허설에 나타나지 않자 조수 막스가 가짜 티토로 나선다.1989년 토니상 수상작. 함영준 연출. 화·목·금 오후 8시 토 오후3·7시 일 오후 4시.3만원.(02)744-0079.■ 변 31일∼9월14일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춘향, 몽룡 대신 변학도와 아전들이 권력과 인간을 조롱하며 한바탕 유희를 펼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일컫는 변라도와 변상도로 팀을 나눠 공연한다. 이상우 연출. 월∼목 오후 8시 금·토 오후 4·8시 일 오후 3·6시.2만5000원.(02)3673-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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