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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승기] 전설의 랠리카 ‘랜서 에볼루션’ 타보니…

    [시승기] 전설의 랠리카 ‘랜서 에볼루션’ 타보니…

    ‘랜서 에볼루션’(Lancer Evolution),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란에보’(LANEVO)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이 차는 월드랠리챔피언십(WRC)에 출전해 유명세를 탄 미쓰비시의 대표적인 스포츠카다.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랜서 에볼루션’을 직접 시승해봤다. ◆ “튜닝카야?”…랠리카 연상되는 개성있는 차체 첫인상은 강렬하다. 랠리카가 연상되는 공격적인 디자인 탓에 자칫 과격한 튜닝카로도 보일 수 있지만 이 역시 마니아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다. 파란색 차체에 커다랗게 자리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리어 스포일러가 고성능 스포츠카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랠리카 혈통답게 보닛과 휀더에는 열기를 식혀주는 에어 홀이 장착됐으며 18인치 BBS 알루미늄 휠과 브렘보(brembo) 브레이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 “운전자 움켜쥐네!”…경주용차에 탄 느낌 마치 경주용차에 탄 느낌이다. 운전자를 움켜쥐는 버킷시트는 코너에서도 쏠림 없이 운전자를 지지하는 레카로(Recaro)사의 제품이다. 스티어링 휠의 크기도 일반적인 승용차보다 작아 과격한 운전에도 조작이 쉽다. 스티어링 휠 뒤쪽에 장착된 패들 시프트는 빠른 변속을 돕는다. 고성능 스포츠카지만 5인승 랜서와 실내 크기가 같아 일상적인 주행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 “운전이 재밌다!”…폭발적인 가속력 매력적 랜서 에볼루션은 운전을 즐겨야 탈 수 있는 차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쏜살같이 치고 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랜서 에볼루션의 엔진 배기량은 2.0ℓ에 불과하지만 300마력대에 육박하는 295마력의 최고출력과 41.5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터보차저가 장착된 엔진은 TC-SST(Twin Clutch Sport Shift Transmission) 변속기와 조합돼 폭발적인 가속력을 뿜어낸다. 이 변속기는 두 개의 클러치로 변속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서스펜션은 노면의 정보를 그대로 읽어내지만, 승차감과도 일정 수준에서 타협해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원하는 사람은 이 차를 탈 자격이 없다. 급격한 가속에도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4개의 바퀴가 도로를 움켜쥐는 S-AWC(Super All Wheel Control)를 채용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코너 탈출 능력도 수준급이다. 성능은 만족스럽지만 연비는 아쉽다. 공인연비는 8.1km/ℓ로 시내 주행시 연비는 ℓ당 3~4km까지 떨어졌으며 110km/h로 정속 주행시에도 ℓ당 9km를 넘기기 어렵다. 운전의 재미를 마음껏 느껴볼 있는 랜서 에볼루션의 가격은 6620만원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정치연 자동차전문기자 chiyeon@seoul.co.kr 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 VJ bowwow@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월드이슈] 피하려는 선수 vs 받으려는 정부 ‘세금전쟁’

    [월드이슈] 피하려는 선수 vs 받으려는 정부 ‘세금전쟁’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 이것은 조세의 기본 원리이고, 스포츠 세계에도 예외는 없다.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 데이비드 베컴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을 이야기 할 때 언론에서는 흔히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이 오고 가기 때문에 조세의 원리에 따라 세금도 상당하다. 세금을 피하려는 스타들과 받아내려는 정부 당국의 줄다리기도 흥미롭다. ■ 해외 스포츠스타 2009년 7월 미국의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발표한 ‘미국프로선수 연간수입 상위 50인’에서 최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연소득 9973만 7626달러(약 1165억원)로 이 부문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 중 연봉 및 상금은 773만 7626달러에 그쳤지만 광고 등 부대수입으로 92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2위 역시 골프 선수인 필 미켈슨이 5295만356달러를 벌어들이며 전년도와 같은 자리를 유지했고 3위는 ‘농구의 전설’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식었던 미국 프로농구(NBA)의 열기를 되살리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로 4241만581달러의 연소득을 올렸다. 4위는 지난해 미 프로야구(MLB) 월드 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5위 NBA 공룡센터 샤킬 오닐 순으로 상위 5위권을 형성했다. ●천문학적인 몸값, 세금은? 그렇다면 연소득 1위 타이거 우즈의 세금은 얼마나 될까. 우즈가 내는 세금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득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미국의 다양한 세금제도 때문이다. 미국의 조세제도에 따르면 개인의 소득에 따라 세율이 차등 적용된다. 최고 소득군의 경우는 소득세가 35%에 달하지만, 연방제인 미국은 각 주별로 ‘주세’라는 명목의 개별 세금도 부과한다. 캘리포니아 9.3%, 뉴저지 9%, 콜로라도 4% 등 각 주별로 주세가 다양하며 텍사스와 플로리다처럼 주세를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따라서 고소득의 스포츠 스타들은 거액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텍사스와 플로리다에 연고를 두고 있다. 전 세계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타이거 우즈가 플로리다에 살고 있으며 야구, 농구 등 프로선수들도 팀 이적 시 이 지역의 프로팀을 선호하고, 일부 선수들은 홈 구단 연고지와 별도로 이 두 지역에 집을 마련하기도 한다. ●운동을 많이 하는 남자 ‘조크세금’ 프로 스포츠가 발전한 미국은 스포츠에도 독특한 세금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프로구단이 원정 경기를 가면 해당 지역 거주자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에서 경기한 날만큼의 수입에 대한 세금을 내야하는 것으로 ‘운동을 많이 하는 남자’라는 뜻을 가진 영단어 ‘조크(jock)’를 붙여 조크세금(jock tax)으로 불린다. 이 독특한 세금은 1991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가 NBA 결승에서 LA 레이커스를 누르고 우승을 거두자 캘리포니아주가 불스 선수들에게 LA에서 뛴 경기 수만큼의 세금을 부과해 ‘조던 세금’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미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의 간판타자 스즈키 이치로는 홈 구단 연고지인 워싱턴주에는 주세를 내지 않지만 2008년 한 시즌동안 캘리포니아주에서 25경기를 뛴 이유로 21만8000달러 이상의 세금을 해당 지역에 내야 했다. 미국에 ‘조던 세금’이 있다면 영국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세계 축구계의 양대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의 스페인에는 세금과 관련한 법안으로 ‘베컴 법안’이 있다. ‘프리킥의 마술사’ 데이비드 베컴이 영국에서 스페인 리그로 이적한 2004년 스페인 정부는 스페인 산업에 도움이 되는 사업가나 과학자 유치 명목으로 해당 외국인에 한해 세금을 대폭 인하했다. 이에 따라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축구선수들은 43%의 세금을 내야하는 스페인 선수의 절반 수준인 23% 세율 적용을 받게 됐으며 이러한 세법을 베컴 법안으로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라 세원 확보가 다급해진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후반기부터 베컴 법안을 폐지하고 외국인 선수도 내국인과 같은 세율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어 스페인 프로축구 협회와 마찰을 빚고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해외진출 한국 스포츠스타 해외에 진출한 한국 스포츠 스타들도 해당국가의 소득세법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 세금을 내고 있다. ●소득세 감면에서 유턴하는 영국 해외에 진출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납세왕’은 누구일까? 정답은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이다. 그가 받는 연봉은 추정치가 320만파운드(약 59억원)에 이른다. 박지성은 지난해까진 소득의 40%를 납부했지만 올해부턴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영국 정부가 지난해 4월 연소득 15만파운드 이상 고소득자에게 적용하는 최고세율을 21년만에 40%에서 50%로 올렸기 때문이다. 영국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최고소득세율이 99.25%까지 올랐고 1970년대까지도 95%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간접세를 지지하는 마가렛 대처가 1979년 총리에 오른 직후 최고소득세율을 83%에서 60%로 낮췄다. 1988년에는 40%까지 줄었다. 10년도 안 돼 최고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지난해 증세 조치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나타난 궁여지책인 셈이다. ●박찬호, 올해까진 역대 최저 세율 적용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박찬호(FA) 선수는 지난해 250만달러(약 30억원)를 연봉으로 받았다. 박찬호는 올해까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시행한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시 정부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최고소득세율을 39.6%에서 35%로 인하시켰다. 이는 미국 역사상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낮은 최고세율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최고세율 감면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금감면법안을 연장하지 않으면 최고소득세율은 자동으로 39.6%로 되돌아간다. 1963년까지 최고소득세율이 90%가 넘었던 미국은 린든 존슨 행정부 이후 감세정책을 이용한 민간경제 활성화 정책을 선택했다. 레이건 행정부 때는 28%까지 인하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연방제인 미국은 세금도 연방세와 주세를 따로 징수한다. 주소지가 펜실베이니아주인 박찬호는 연방세 35%에 더해 3.07%를 주세로 낸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 추신수는 연방세 35% 외에 오하이오주 세율인 6.24%를 납부해야 한다. ●부유세 내는 프랑스와 세금없는 모나코 2008년 프랑스리그 모나코에 입단한 박주영은 지난해 말 대폭 연봉인상을 통해 80만~90만유로(약 13억~15억원) 수준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최고소득세율이 40%이고 부유세까지 존재하는 곳이지만 박주영은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세금을 받지 않는 모나코 공국에 박주영의 급여 계좌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조세제도 전문가인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에 따르면 박주영이 프랑스에 거주할 경우 최고소득세율은 40%이다. 거기다 지난해 법률이 개정되면서 총재산이 79만 유로를 초과하는 경우 부유세를 납부해야 한다. 세율은 79만~128만유로는 0.55%이며 조금씩 높아지다가 1648만유로 이상은 1.8%를 부과한다. ●이영표, 세금 45%에서 0%로 2008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로 둥지를 옮긴 이영표 선수는 세금에 관한 한 극과 극을 경험했다. 독일에서 이영표는 소득의 45%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소득세 자체가 없다. 현재 이영표는 연봉이 18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지성과 연봉이 40억원 가량 차이나지만 세금을 빼고 나면 차이가 약 11억원으로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암컷의 사랑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수컷. 새끼를 돌보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암컷의 진한 모성애. 숱한 시련 속에서도 종족을 잇기 위한 동물의 사랑은 대자연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힘이다. 때로는 가슴 뭉클함으로, 때로는 애틋하게 다가오는 야생동물들의 본능적인 사랑을 들여다본다.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5분) 최근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위장결혼을 알선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거액의 알선비를 받아 한국 남성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관련 서류를 조작해 위장결혼을 알선하는 브로커들. 그들에게 접근해 위장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밀착 취재한다. ●음악여행 라라라(MBC 밤 12시35분) 대한민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세 아들이 뭉쳤다. 신대철과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 그리고 신석철 3형제가 함께하는 신중현 헌정무대를 만나본다. 김종서가 시나위로 돌아왔다. 그 시절로 돌아가 부르는 시나위의 전설적인 명곡들을 감상해 본다. 대한민국 록을 이끌어가는 그들이 선사하는 록의 향연에 빠져도 좋을 듯. ●괜찮아U(SBS 오후 6시25분) 오늘의 특산물을 찾아, 온 제주도를 헤매고 다닌 식객단. 수상한 마을로 발걸음을 돌리자마자 낯선 광경이 펼쳐진다. 굴리고 던지고 주무르는 것도 모자라 따뜻하게 데워 먹고 심지어 구워도 먹는 이것은 바로 오늘의 특산물 한라봉. 입에서 살살 녹는 한라봉 요리를 걸고 펼치는 요절복통 한라봉 퀴즈대결이 펼쳐진다. ●한국기행(EBS 오후 9시30분) 하늘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심(心)자를 닮아 마음이 착한 섬이라는 지심도. 동백나무 군락지로도 유명해 동백섬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군사시설인 포진지 터와 마을의 집 모두가 일제 때 지어진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역사와 자연의 원형이 잘 보존된 지심도를 찾아 간다. ●리얼메디컬 다큐 병원(OBS 오후 11시) 생후 50일, 4.5㎏의 아기 래현이가 힘겨운 수술을 받는다. 부모도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래현이는 ‘총폐정맥 환류 이상’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다. 심장과 연결된 폐정맥이 기형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래현이 엄마는 수술 당일날 ‘사랑한다’고 말하며 래현이의힘을 북돋운다.
  • “음악 진정성이 밴드 43년 유지 비결”

    “음악 진정성이 밴드 43년 유지 비결”

     “음악이 굉장히 정교하고 진정성이 있다는 점이 우리를 계속 유지시켜 주는 힘입니다.”  결성된 지 벌써 43년. 아직도 해마다 100회 이상 공연을 하며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8명 가운데 원년 멤버 4명은 60세가 넘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40~50대다. ●멤버4명 60대…年100회 공연 오는 23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2003년 이후 7년 만에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 전설의 팝밴드 ‘시카고’가 그렇다. 2~5월에만 무려 서른 번 이상의 공연이 잡혀 있는 상태다.  시카고의 원년멤버이자 키보드와 보컬 하모니를 맡고 있는 로버트 램(66)은 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렬적인 음악 활동에 대해 “굉장히 쉬운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음악을 연주하고 여행하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 역시 매우 쉽다. 만약 우리의 연주를 본다면 우리가 50~60세라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아직 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램은 특히 시카고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사랑해줘 매우 행복하다. 우리는 수많은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마치 가족과도 같다. 어떠한 가족이라도 40년 동안 우리 밴드처럼 결혼이나 이혼, 죽음 같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함께 겪었다는 것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램은 2003년 내한 공연을 돌이키며 “우리 노래를 굉장히 잘 알고 있고 열광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팬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시카고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게 기뻤다.”면서 “이번 공연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또 다른 7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램은 이번에 서울로 다시 초대받고는 자신의 아내가 더욱 행복해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한국 출신이다. 램은 “어렸을 때 고국을 떠났던 내 아내는 2003년 공연 때 처음으로 다시 한국에 오게 됐다. 그때 아내의 얼굴을 보고, 그녀에게 서울을 다시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였던가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번에는 같이 오지 못해 아쉽다.”고 전했다. ●보컬 맡은 램 아내는 한국인  아직도 시카고 음악을 접하지 못했다면, 데뷔 앨범과 ‘시카고Ⅴ’, ‘시카고 XXX’, ‘Chicago XXXII’ 등 네 장의 앨범을 들어보기를 권한다는 램은 현재 신곡들을 작곡하고 있고, 내년쯤 발표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기존 곡들을 활용한 다른 프로젝트도 있다고.  “이번 무대는 조명, 사운드, 컴퓨터 등 무대장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4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생각하면 된다. 좋은 곡들을 골라 강렬한 연주와 재미를 선보일 것이다. 아시아 투어 마지막 무대라 멤버 전체가 완벽한 연주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진화하는 나니, 제2의 호날두 될까?

    진화하는 나니, 제2의 호날두 될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측면 날개 나니의 활약상이 연일 화제다. 시즌 초반 주전 경쟁에 밀리며 이적설에 휘말렸던 나니는 최근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웨인 루니와 함께 맨유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특히 아스날전 활약은 맨유의 전설 NO.7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지난 헐시티전 4-0 대승은 나니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산소탱크’ 박지성과 함께 측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나니는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개인기를 앞세워 헐시티 수비진을 무너트렸다. 비록 공격 포인트는 루니의 헤딩 골을 도운 크로스 하나였지만, 나니의 활약은 혼자서 4골을 넣은 루니 못지 않았다. 나니의 각성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와 함께 맨유의 역습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맨유는 호날두를 무기로 유럽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역습을 자랑했다.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의 철벽 수비와 마이클 캐릭의 송곳 패스 그리고 루니, 호날두로 이어지는 맨유판 ‘역습의 교과서’는 맨유를 잉글랜드와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맨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지난여름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위력을 잃고 말았다. 팀 스피드는 떨어졌고 가장 많은 골을 터트렸던 주득점원도 사라졌다. 결국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루니를 중심으로 역습에서 점유율 축구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뒷공간을 노리는 카운트 어택이 아닌 정면 승부를 선택한 셈이다. 문제는 점유율 축구가 맨유의 장점을 극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술 변화의 핵심 키워드로 지목 받았던 ‘백작’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부진과 측면을 이용한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막히며 상대를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적생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빠른 적응과 ‘백전노장’ 라이언 긱스의 활약으로 인해 맨유는 꾸준히 선두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늘 2% 부족한 모습이었다. 나니의 각성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호날두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스쿼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맨유의 특성상 그와 비슷한 스타일 등장은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퍼거슨 감독도 나니의 활약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영국 일간지 <더 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니는 이제 맨유에 완벽히 적응했고, 점차 성숙해져 가고 있다. 입단 초기에는 조금 미숙한 선수였지만 지금은 발전이 눈에 확실히 보인다.”며 나니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입단 초기 팀 적응실패와 지나친 개인플레이 그리고 시간을 거듭할수록 새롭게 진화하는 모습까지, 나니는 조금씩 호날두의 진화 과정을 닮아가고 있다. 과연, ‘닮은꼴’ 나니의 성장은 계속될 수 있을까. 올드 트래포드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할 수 있을지 축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日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

    日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 후쿠모토 유타카

    ’세기의 도루왕’ 하면 얼마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리키 핸더슨(51)이 금방 떠오른다. 핸더슨은 통산 12번의 도루왕과 역대 최다인 1,406개의 도루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2년에는 무려 130번이나 베이스를 훔치기도 했다. 통산 출루율 .401 가 말해주듯 그는 도루를 할수 있는 필수조건까지 갖춘 위대한 타자였다. 하지만 핸더슨이 빅리그에 등장하기 정확히 10년 전인 1969년, 일본에서는 이미 ‘세기의 도루왕’ 이란 수식어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가 있다. 바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1번타자’ 라고 칭송받는 후쿠모토 유타카(한큐 브레이브스)다. 오사카 출신인 후쿠모토는 아마시절 때만 해도 그렇게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야구선수로서는 너무나 작은 168cm에 불과한 그의 키는 고교졸업 후 프로에 직행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고 결국 사회인 야구팀인 마츠시다 전기팀에서 활약하게 된다. 마츠시다 전기팀에는 당시 아마 최고의 선수로 주목받던 카토 히데지가 있었는데 카토의 플레이를 보러 왔던 한큐 스카웃터의 눈에 들어 1969년 카토와 함께 프로생활을 시작한다. 13년연속 도루왕, 그리고 106개의 도루 여타의 선수들이 그러하듯, 후쿠모토 역시 입단 첫해엔 주로 대타나 대주자로 기용되며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후쿠모토의 진가를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인 1970년 팀의 주전 외야수로 정착한 그는 단숨에 75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에 등극한다. 1971년 67개의 도루를 성공시켜 2년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후쿠모토는 1972년 일본야구 역사상 길이 남을 대기록을 수립하게 되는데 ‘불멸의 기록’ 이라고 평가받는 한시즌 106개의 도루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122경기에 출전하며 수립한 이 기록이 전무후무한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후쿠모토 이후 아직까지 한시즌 세자리수 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해에 후쿠모토는 106개의 도루 뿐만 아니라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었음은 물론 리그 MVP까지 거머쥐며 사상 최초로 도루왕-MVP의 타이틀을 동시에 수상하는 선수가 됐다. 이후 계속해서 도루왕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1977년 7월 6일 난카이 호크스전에서 히로세 요시노리(난카이)가 가지고 있던 일본 통산 최다도루 기록을 넘어섰다. 1982년까지 13년연속(1970~1982) 도루왕을 차지한 후쿠모토는 1983년 55개의 도루를 기록하고도 도루왕을 차지하지 못했는데 그의 도루왕을 저지한 선수는 작년시즌까지 오릭스 감독을 맡았던 오이시 다이지로(당시 킨테츠. 60도루)다. 이해 후쿠모토는 6월 3일(세이부전)에 당시 미국의 루 블록이 가지고 있던 도루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는 통산 939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에까지 그 이름을 알리게 된다. 세계기록 달성 후 당시 나카소네 일본수상이 국민영예상 및 특례 명구회 입회(통산 2천안타를 기록해야 가입)를 제의했으나 후쿠모토는 모두 거절한다. 후쿠모토는 그해 롯데 오리온스전(9월 1일)에서 통산 2,000 안타(사상 17번째)를 쳐내며 자신의 손으로 명구회 입회 자격을 획득하기도 했다. 후쿠모토가 가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들 후쿠모토는 도루에만 특화된 능력을 발휘했던 선수가 아니다. 그는 1969년 루키시즌과 은퇴년도인 1988년을 제외하고 18년연속 세자리수 안타(최다안타왕 4회)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타격실력을 겸비했음은 물론 통산 43개의 1회 선두타자 홈런기록(43개)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빠른발과 더불어 장타력까지 갖춘 타자였다.(1회초 24개, 1회말 19개) 더불어 한시즌 20개 이상의 2루타만 14회(일본 타이기록)를 기록했으며 일본시리즈 최다 도루(14개)와 올스타전 최다도루(17개) 기록까지 가지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도루가 현시대로 넘어오는 동안 기술적인 발전의 토대는 후쿠모토가 만들어 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도루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투수의 투구패턴과 버릇을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후쿠모토는 자신의 플레이를 직접 비디오 카메라로 담아 시합 후 상대 투수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열정을 높이 산 한큐 구단은 후쿠모토를 위해 구단에서 직접 비디오 분석을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다. 106개의 도루를 달성한 해에 후쿠모토는 칸베 토시오(전 KIA 투수코치)에게 유독 도루 실패를 하는 일이 빈번해 비디오 분석을 한 결과, 투구시 축이 되는 발의 움직임과 견제할때의 모습에서 미세한 차이점을 발견하고 이듬해부터는 편하게 도루를 성공할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후쿠모토는 은퇴할 때(1988년)까지 통산 1,065개 도루(당시까지 세계기록)를 기록하며 일본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중 한명으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다. 은퇴 후인 1992년, 메이저리그에서 리키 핸더슨이 자신의 기록을 돌파하자 미국으로 직접 날아가 축하를 해준 일은 너무나 유명하다. 후쿠모토는 오릭스를 거쳐 1999년까지 한신에서 코치생활을 했고 이후 TV 해설자로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아직도 야구와 인연을 끊지 않고 있다. 현역 생활 20년동안 가장 강렬했던 1번타자, 그리고 호타준족의 대명사였던 후쿠모토는 야구에서 발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증명해 준 선구자나 다름없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도시와 길] 서울 종로

    [도시와 길] 서울 종로

    ‘길에서 길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길’은 단순히 차와 사람이 오고 가는 통로라는 사전적 의미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고, 그 길을 중심으로 집과 건물이 생기며 또 그곳에서 도시와 문화가 생긴다. 그래서 길은 도시나 나라의 흥망성쇠와 운명을 같이 한다. 유행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찾지 않아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있다. 서울신문은 ‘신년기획’으로 매주 월요일자에 ‘도시와 길’을 연재한다. ‘도시와 길’은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를 대표하는 길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부침을 겪었는지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는다. ‘종로로 갈까요~.’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 말 그대로 ‘1번지 길’이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수만명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영하의 강추위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외치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는 보신각종의 서른 세 번 울림.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도 지켜보는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시작. 1953년 이래 오늘날까지 ‘종로(鐘路)’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한 해를 시작하는 거리다. ●서민들 삶의 터전… 추억이 고스란히 종로는 서울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길’을 떠올릴 때 감히 비교할 만한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에서 이름에 유일하게 길을 담은 곳도 종로구뿐이다. 구로구가 있지만 구로(九老)는 길이 아닌 아홉 명의 노인이 장수한 곳이라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종로 138번지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로6가 78번지 동대문에 이르는 너비 40m, 길이 2.8㎞의 왕복 8차선길인 종로는 수백 년 전부터 언제나 번화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세종로 사거리에 자리 잡은 교보문고의 철마다 바뀌는 초대형 간판은 버스를 기다리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종각에서 인사동 초입, 종로3가부터 시작되는 귀금속 거리와 종로5가의 약국거리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추억이 담겨 있다. 종로3가에서 귀금속점을 운영하는 우정호(60)씨는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워서 장가를 보냈다.”면서 “종로는 나에게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종로에 살거나 종로를 즐겨 찾는 사람들도 종로를 생각하는 의미는 특별하다. 종로 토박이로 살아온 김학수(85) 할아버지는 “처음 기억하는 종로와 지금의 종로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서울의 중심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라는 점은 여전하다.”고 술회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종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종로의 어학원 앞에서 만난 김호연(25·여)씨는 “다른 번화가들은 유행에 따라 모습을 바꾸지만 종로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사람을 만날 때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이라며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져 아무리 번화한 밤에도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고 전했다. 또한 탑골공원의 어르신들 모습을 얼른 떠올리기만 해도 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편안하게 찾는 곳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상점과 간판이 바뀌고, 건물의 높낮이는 달라졌지만 종로는 그 자체로 역사다. 종로라는 이름은 지금의 종로사거리에 종을 매단 종루(鐘樓)가 세워져 있던 것에서 비롯됐다. 종가(鐘街), 종루가(鐘樓街), 종루십자가(鐘樓十字街)라는 이름도 모두 같은 연유다. 태종 때 시전행랑(오늘날의 상가)이 종로사거리에서 동대문까지 들어선 후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점과 노점들이 길을 잠식하면서 도로폭이 오히려 줄어들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에 종로는 ‘최첨단’, ‘신문물’의 거리였다. 1899년 5월에는 전차가 개통됐고, 1900년 4월에는 종로사거리에 처음으로 전기 가로등 3개가 밝혀졌다. 당시 조선을 찾은 러시아인 파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코레야 1903년 가을’이라는 기록에서 “종로에는 서울에서 가장 좋은 상점과 가게, 시장들이 있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은 종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21년부터 일제는 종로를 동대문에서 경희궁 앞까지, 폭을 28m로 좁게 줄였다. 일제가 조선인 상가가 밀집돼 있던 종로를 의도적으로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종로의 번영은 멈추지 않았다. 1931년 종로사거리 북동쪽에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현대식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들어섰고 1932년에는 동아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 상인들은 지금의 충무로인 ‘혼마치(本)’의 일본인 거리와 각축을 벌이며 상권을 지켜 나갔다. 3·1만세시위운동의 출발과 중심도 종로였고, 일제의 경제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경제자립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의 거점도 종로였다. ●‘도심재창조’… 변화의 갈림길에 선 종로 광복 후에도 화신백화점, 신신백화점, 배오개시장의 맥을 이은 광장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세운상가는 종로 상업의 번영을 상징했고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을 담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다. 그러나 19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이 급격히 커지자 종로는 번화가의 기능을 다른 곳에 나눠주고 있다. 젊은이들은 백양로로 대표되는 신촌과 대학로를 찾기 시작했고, 유흥가는 강남대로와 영등포로 옮겨 갔다. 오래된 건물과 노점은 서민의 정취를 담는 데 그쳤을 뿐 더 이상 유행을 만들지도 못했고,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피맛골도 세운상가, 청진동 해장국 골목도 변화의 물결을 피해가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과 간판들이 들어섰고, 오랜 세월 종로를 기억해 온 사람들의 ‘개발을 명목으로 역사를 지운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신 서울시는 종로를 중심으로 한 ‘도심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세운상가 주변을 재정비해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을 잇는 대규모 녹지축을 조성하고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다. 종로는 지금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변화의 중심인 셈이다. 몇 권의 책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600년의 세월, 길 자체가 서울시민의 역사인 종로가 앞으로 또 다른 60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터널을 거꾸로 도는 ‘슈퍼카’ 정체는?

    터널을 거꾸로 도는 ‘슈퍼카’ 정체는?

    슈퍼카 한대가 빠른 속도로 터널에 진입해 360도 회전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이 영상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새 슈퍼카 SLS AMG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한 광고 영상이다. 특히, 광고 영상에서는 ‘F1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미하엘 슈마허’가 드라이버로 출연해 눈길을 끈다. 슈마허는 2006년 은퇴 후 페라리팀 컨설턴트로 활동해오다 지난해 메르세데스팀을 통해 F1 복귀를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광고에 등장하는 슈퍼카 SLS AMG는 숙련된 기술자가 직접 수제작으로 생산하는 모델이다. 이 차는 571마력의 최고출력과 66.3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는 8기통 6.3ℓ AMG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 미션을 장착했다. 최고속도는 317km/h에 이르며 정지상태에서 100km/h를 3.8초 만에 주파한다. SLS AMG의 가격은 17만 7310유로(약 2억 8600만원)이며, 오는 3월 출시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정치연 자동차전문기자 chiyeon@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동양철학, 그 속에서 길을 찾다] 공자가 신화를 멸시했다고?

    일본 만화가 도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건볼’이라는 작품이 있다. 중국 신화에 크게 기대고 있는 신화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을 모티브로 삼았던 작품이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초반에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드래건볼을 모으러 다니던 손오공은 한 마을에서 나쁜 짓을 일삼는 토끼단을 혼내준다. 그리고는 여의봉을 길게 늘려 토끼 두목을 달에 두고 온다. 토끼 두목은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는다. 익숙한 모습이다. 달나라에 사는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다는 것은 어릴적 할머니의 팔을 배고 누워 듣던 우리의 전래 동화가 아니었나. 중국의 신화 학자 위안커(袁珂·1916∼2001)가 지은 ‘중국신화사’(전 2권, 김선자·이유진·홍윤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를 보면, 중국인들은 원래 두꺼비가 달에 살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중국 고서 ‘회남자’에는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간 항아가 두꺼비로 변해 달의 정령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나라 ‘오경통의’에서는 달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있다고 했다가, 진나라 ‘의천문’에는 토끼만 언급된다. 이렇듯 ‘중국신화사’는 동아시아 신화 또는 전설의 원형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위안커는 문화대혁명 등 굴곡진 중국 현대사를 겪으면서도 중국 신화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다. 그의 연구 덕택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견줘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여겨지는 중국 신화, 나아가 동아시아 신화가 풍성해졌다. ‘중국신화전설’ ‘중국신화대사전’과 함께 위안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중국신화사’는 온갖 문헌을 뒤져 신화와 관련한 자료를 찾고 풀이한 학술 서적에 가깝다. 그래서 독자들이 읽기에는 벅찬 부분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네 신화 및 전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우렁각시를 떠올리게 하는 백수소녀 설화와 오감 설화, 선녀와 나무꾼과 연결되는 동영 설화와 칠선녀 설화, 견우·직녀 설화와 판박이인 우랑·직녀 등이 그렇다. 유교의 시조로서 신화를 멸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공자를, 위안커는 원래 신화에 흥미를 느끼고 전파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점도 흥미롭다. 옮긴이들이 10여년간 중국을 답사하며 직접 찍은, 신화의 흔적이 담긴 사진 180여컷에 친절한 해설을 곁들였다. 원서에는 없는 것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돕는다. 위안커가 ‘중국신화사’에서 그동안 배척당한 소수민족 신화에 관심을 기울인 점도 주목된다. 53개 소수민족의 500여편 신화를 수집해 주제별로 분류해 공통의 모티브와 신화적 상상을 찾는다. 하지만 중국 고대 신화가 소수민족의 구전 신화에 영향을 줬다는 식의 한족 중심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게 한계다. 동북공정 논란을 생각했을 때 비판적인 책 읽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각권 3만 2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목표는 높게… 공부는 즐겁게”

    KBS 드라마 ‘공부의 신’은 일본 만화 ‘드래건 자쿠라’(국내 번역본 ‘최강 입시 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를 원작으로 했다. 만화 원작자인 미타 노리후사(52)가 한국을 찾았다. 28일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그는 드라마를 둘러싼 ‘1등 지상주의’ 조장 논란을 안타까워했다.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노력하면 그것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부터 ‘나는 안 된다.’고 꿈을 낮추면 성과도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드래건 자쿠라’는 발간 당시 일본 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2003년 일본 교육계에는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창의성과 자율성을 표방하는 ‘유토리 교육’(여유교육) 붐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학력 저하를 몰고 왔다는 그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유토리 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을 만화에 담아냈다.”며 “소극적이던 교사와 학생들이 제 작품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얻어 도쿄대에 많이 응시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고 자평했다. 한국 드라마 출연진 중에서는 ‘입시 트레이너’ 강석호 역을 맡은 김수로가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았다. 이어 “교육에 관한 한 의견이 워낙 다양해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다.”며 “제 이야기도 해결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제안으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이번 기회에 바람직한 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그는 “혹시 결과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자체가 헛된 일이 아니다.”라며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노력하는 자세만은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렇다면 모든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드라마에 나온 공부법을 한두 개라도 실천해 보세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영화 리뷰] 셉템버 이슈

    [영화 리뷰] 셉템버 이슈

    유리천장 제 아무리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다. 특히 여자, 그들이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똑같은 학력과 능력을 가졌어도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한자리 차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세상은 아직도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에 둘러싸인 곳이다. 냉혈한 그래서일까. 이른바 ‘성공했다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성공한 여성들은 왠지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 프로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일이 끝난 뒤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공허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 세상은 아직도 여자의 성공에 인색하다. 모두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라고 떠받드는 듯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안나 윈투어 여기 바로 그런 여자가 있다. 패션의 바이블로 불리는 ‘보그’의 전설적 편집장 안나 윈투어. 영화 ‘셉템버 이슈’는 미국 보그의 9월호 제작과정을 통해 이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낸다. 천재적인 패션감각과 칼 같은 일 처리로 유명한 이 편집장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보그 편집장 ‘미란다’의 실제 모델이 됐던 인물이다. 카리스마 늘 패션쇼 맨 앞줄에 앉아 명품 선글라스를 낀 채 경직된 표정으로 모델의 의상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차갑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어떤 말을 할지 벌벌 떤다. 이런 카리스마는 패션계가 알아서(?)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윈투어의 모습을 통해 성공한 여성이란 이렇게 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남자를 이길 수 없으며, 부드러움 따윈 내팽개쳐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보여 준다. 좋게 말하면 ‘여자는 이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티이고, 나쁘게 말하면 ‘성공하려면 여성성을 버려라.’라는 반(反)여성주의다. 엄마 한 술 더 뜨는 대목. 차가운 모습을 녹일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모성애 뿐이다. 이 냉혈 여성도 결국은 ‘엄마’였다. 영화는 성공한 여성도 결국은 훌륭한 엄마여야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내비친다. 모성을 발휘할 수 없다면 그냥 냉혈한일 뿐이니까. 그래야 완벽해진다.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미혼 여성들이여. ‘영화에 따르면’ 그대들은 불완전한 존재다. 28일 개봉.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바이올린 여제’의 귀환

    ‘바이올린 여제’의 귀환

    ‘한국을 대표하는’이란 말처럼 식상한 표현도 없다. 해외 유명 언론에 이름 석 자가 한번 실리기라도 하면 앞다퉈 이 표현을 남발한다. 하지만 이 수식어를 달아도 이견이 없는 이가 있다. 2005년 9월 왼손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 활동을 접고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후진 양성에 몰두하고 있는 정경화(62)다. 정경화는 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타이완 출신 첼리스트 요요마와 함께 동양인 클래식 음악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몇 안 되는 연주자로 꼽힌다. 부상으로 무대에서 물러났던 ‘바이올린 여제’가 올해 두 번의 공연과 데카 레이블 데뷔 40주년 기념음반으로 귀환을 알렸다. 정경화는 오는 5월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이어 11월21일에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정경화가 1970년 세계적 음반사인 데카 레이블로 데뷔한 지 4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음반은 벌써부터 돌풍이다. 지난 21일 5000세트 한정 출시된 음반은 벌써 3000세트가 예약주문으로 나갔다. 주요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 클래식 차트 1위는 물론 가요를 망라한 종합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28일 현재 알라딘 3위, 교보문고 4위, 예스24 7위다. 대중가요가 독주하는 요즘 음반시장에서 클래식 앨범이 10위권 안에 진입한 것은 간만의 일이다. 앙드레 프레빈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한 데카 데뷔음반과 언니 정명화, 남동생 정명훈과 함께한 베토벤 삼중 협주곡 등 전성기 시절의 음악이 담겼다. 15만원.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S급 히터’가 되기 위한 추신수의 과제는?

    ‘S급 히터’가 되기 위한 추신수의 과제는?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설적 3루수인 마이크 슈미트는 데뷔 초창기(1973년)엔 삼진수가 안타수보다 많은 타자였다. 여타의 타자들보다 좀 더 넓은 타격스탠스에서 마구잡이로 잡아당기는 그의 스윙은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역시 결국 타격폼에 대한 손질을 가하게 되는데 이듬해인 1974년에 36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명이 됐다. 훗날 슈미트는 1973년 시즌 이후 자신의 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잡아당기는 스윙을 버린것이 성공의 비결” 이라며 타격이 지닌 특성을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 있다. 지난해 ‘3할-20홈런’을 기록하며 단숨에 클리블랜드의 대표타자로 올라선 추신수(클리블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기복없는 플레이다. 작년에 3경기 연속 안타가 없는 시기는 단 2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부침이 적은 이상적인 한해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추신수에게 올시즌은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상태다. 올 11월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참가는 물론 ‘A급 타자’에서 ‘S급 히터’로의 도약시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추신수의 타격은 ‘무결점’에 가깝다. 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타격의 이면에는 약점 역시 공존한다. 너무나 뛰어나기에 나타날 수 있는 추신수의 약점, 그것은 뭘까? 빠른 허리회전, 때론 헛스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작년 여름 한때 추신수의 타율이 2할 8푼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때를 같이해 삼진수도 급증했다. 항상 2할 9푼에서 3할 언저리를 맴돌던 타율이 하락했던 원인은 지나친 허리회전 때문이다. 당시 클리블랜드 타격코치인 데릭 셀튼은 “스윙시 한타임 빠른 허리회전” 이 추신수의 부진 원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타격에서 몸의 회전은 타구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또한 그러한 회전이 있기까지는 빠른 배트스피드도 뒷받침돼야 한다. 추신수는 이 기준에 매우 특출난 타격기술을 보유한 타자다. 즉, 타자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빠른 배트스피드와 몸의 회전력이 추신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됐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타격시 추신수처럼 아주 짧은 레그 스텝(leg-step)을 내딛는 타자들은 처음 투수가 던진 공을 바라보는 시간적 타이밍이 빨라지게 되면 타격 마무리(Follow through)로 가는 동작에서 롤 오버(roll over)가 되기 쉽다. 롤 오버는 피니쉬 동작에서 뒷손목을 되감는다는 의미지만 지나치게 빠른 몸의 회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되면 헤드업(head up)이 발생할수도 있다. 결론은 충분히 자신의 포인트까지 공을 끌어와서 센터를 중심으로 좌측으로 공을 보내려는 마음가짐으로 타격에 임하는 것이 추신수의 ‘좋은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지름길이다. 여타의 타자들이라면 떨어지는 변화구에 스윙이 먼저 나가는 경우지만 추신수는 빠른 공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추신수는 작년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남겼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았던 삼진숫자를 줄일 필요가 있다. 마이크 슈미트가 그랬듯 한해의 경험이 올해엔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추신수의 빠른 배트스피드의 비밀, 그리고 30홈런 보통 타자들은 타격시 회전력에 따른 배트의 원심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손잡이 그립부분은 가늘고 배트 헤드는 무거운 걸 사용한다. 현역 최고 타자인 알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의 배트 헤드의 가로 지름은 7cm 정도다. 하지만 추신수의 배트 헤드 지름은 6.2cm로 매우 가는 편이다. 국산 배트(하드 스포츠)를 사용하는 추신수가 이렇게 배트 헤드가 가는걸 사용하는 이유는 배트스피드를 높이기 위함이다. 대신 이러한 배트는 공과 만나는 접점지점의 폭이 적어 컨택트(contact)시에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매우 간결한 타격폼, 그리고 배트 헤드가 가는 걸 사용하는 추신수의 폭발력 있는 배트스피드 비밀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추신수가 여타의 슬러거들에 비해 다소 가벼운(880g~890g) 배트를 사용함에도 올시즌 홈런 30개를 기대하는 이유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타격에서 빠른 배트스피드는 특정구종에 대한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중 하나지만 이와 더불어 그의 원론적인 타격기술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스테이 백 히터(Stay back- hitter)다. 어떠한 경우라도 타격시 상체가 앞으로 쏠리지 않고 무게중심이 뒤에 남아 있는데 작은 체구지만 자신의 체중을 모두 실어 타격하는 능력도 히팅시 상체가 스테이 백 상태가 돼 있기 때문이다. 타격의 일련과정에서 상체의 모습만 보면 흡사 미래의 프린스 필더(밀워키)를 보고 있는듯하다. 작년 아메리칸 리그에서 30홈런을 쏘아올린 선수는 모두 15명이다. 슬러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홈런숫자를 올해 추신수에게 기대해 보는 것은 결코 무리한 바람은 아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획 한국군 무기⑥] ‘살아있는 전설’ K-6 중기관총

    [기획 한국군 무기⑥] ‘살아있는 전설’ K-6 중기관총

    국군에는 1921년에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당당히 현역을 지키고 있는 무기가 있다. ‘K-6 중기관총’이 그 주인공이다. K-6 중기관총의 원형은 미군의 ‘M-2HB 중기관총’으로 그 역사가 9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투기에 장착해 쓰던 ‘M1917 기관총’의 위력을 강화하고자 12.7x99㎜ 탄과 함께 ‘M-1921 중기관총’을 개발한다. 이 기관총이 1933년에 ‘M-2HB’란 이름으로 미 육군에 정식 채용돼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두 기관총은 총열의 냉각방식이 수랭식에서 공랭식으로 바뀐 것과 경량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빼면 구조와 작동방식이 거의 같다. K-6 중기관총은 이 M-2HB를 개량한 것으로 ‘잠금턱방식’을 채용해 총열을 약 5초만에 교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M-2HB 중기관총은 ‘나사회전식’이라 달궈진 총열을 석면 장갑을 착용하고 교체해야 했다.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화상의 위험도 있었다. 미군도 이 점을 개선한 QCB(Quick Change Barrel)형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국군은 6·25전쟁 이후 미국제 M-2HB 중기관총을 써왔으나 1988년 이후로는 K-6 중기관총을 쓰고 있다. 사용탄약과 구조, 성능이 동일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전력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K-6 중기관총은 1654㎜에 이르는 길이와 37.7㎏이라는 무게 때문에 주로 고정식으로 운용되거나 차량에 거치되어 쓰인다. 이 기관총은 K-77 지휘장갑차와 K-30 비호 대공포, 최근 실전배치된 K-21 보병전투장갑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갑차량에 장착돼 있다. 해병대에서는 수송용 트럭에도 일부 장착해 운용하고 있다. 해군도 제 1 연평해전 이후 참수리급 고속정에 K-6 중기관총을 2정씩 장비하고 있다. ◆K-6 중기관총의 잠재력 ① K-6 중기관총으로 저격을? K-6 중기관총은 37.7㎏이라는 듬직한(?) 무게와 1143㎜에 달하는 총열 길이 덕분에 명중률도 매우 뛰어나다. 분당 발사속도도 450~600발로 그리 빠르지 않아 숙련된 사수라면 한 발씩 끊어 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K-6 중기관총과 동일한 성능을 가진 M-2HB는 약 2280m 거리의 적을 저격한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미 해병대의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이라는 저격수가 기관총에 스코프를 장착하고 세운 기록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전쟁 때도 아르헨티나군은 언덕 위에 M-2HB 중기관총 진지를 설치하고 다가오는 영국군을 향해 저격을 시도했다. 큰 피해를 주진 못했지만 쏠 때마다 영국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② K-6 중기관총으로 헬기-장갑차를? K-6 중기관총이 쓰는 12.7 x 99㎜탄은 애초부터 전투기용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사거리와 위력이 매우 뛰어나다. 때문에 국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군대에선 이 기관총을 대공용으로 쓰고 있고 실제로 4~5정이 화망을 이룰 경우 장갑이 빈약한 수송헬기에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또 철갑탄(AP탄)이나 철갑소이탄(API탄)을 이용하면 ‘M-113’급의 장갑차를 충분히 파괴하거나 작동 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 K-6 중기관총 제원 길이 : 1654㎜ 무게 : 37.7㎏(총몸) 사용탄약 : 12.7 x 99㎜탄(보통탄 KM33, 철갑탄 KM2, 철갑소이탄 KM8, 철갑소이예광탄 KM20, 예광탄 KM17, 고압탄 KM1) 발사속도 : 450~600발/분 총구속도 : 930㎧ 총열 : 1143㎜(8조 우선) 급탄방식 : 탄띠 급탄방식(좌우 선택 사용가능) 유효사거리 : 1930m 최대사거리 : 6765m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슬람 건축문화의 정수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

    이슬람 건축문화의 정수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기억 나십니까. 제목은 아스라할망정, 듣고 나면 무릎을 치며 반색할 클래식 기타의 명곡이지요.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1852~1909)가 작곡한 이 노래에는 타레가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대를 풍미하던 기타리스트 타레가는 ‘콘차’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이미 결혼한 처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밤이면 타레가는 기타를 들고 알람브라 궁전을 찾아 아름다운 사랑의 세레나데를 만들어 냅니다. 애틋한 사랑이 켜켜이 쌓여 명곡을 만든 셈입니다. 그 곡이 잉태된 곳이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입니다. 이슬람 건축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곳으로,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보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빼어나지요. 그러나 명곡이 탄생한 진짜 이유는 이와 다르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 백인철씨는 “알람브라 궁전에 ‘알박기’하듯 르네상스 양식의 거대한 건축물을 세운 가톨릭 교도들의 행태에 대한 회한과 반성을 담은 노래”라고 주장합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문제의’ 건축물입니다. 얼핏 보아도 주변 건물에 견줘 크고 위압적이지요. 이슬람 왕조를 무너뜨린 가톨릭 정복자의 오만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슬람 잔향(殘香) 가득한 그라나다 │그라나다 손원천특파원│그라나다를 품고 있는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자 남부 최대의 자치주다. 유럽이지만 유럽 같지 않은, 이방(異邦)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면 그 까닭을 쉽게 알 수 있다. 기원전에는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이후에는 로마와 반달, 그리고 사라센 등이 차례로 지배했다. 안달루시아란 이름도 ‘반달족이 살던 땅’이란 뜻. 특히 사라센은 8세기부터 800년 동안 통치했는데, 사라센이 곧 이슬람이자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이다. 더욱이 그라나다는 지중해 너머 북아프리카와 인접한 탓에 이슬람의 잔향이 한결 진하게 배어 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5시간가량 내려오면 이슬람 왕조의 옛 영토, 그라나다에 닿는다. 알람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당당한 자태로 서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성’이란 뜻으로, 13세기 가톨릭 세력에 코르도바를 뺏기고 남하한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나스르 왕조를 세우면서 알람브라 궁전도 함께 축조했다. 이후 나스르 왕조 마지막 왕 보압딜이 에스파냐 통일을 완성한 부부왕, 카스티야왕국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왕국의 페르난도 왕 연합 세력에 패배, 알람브라 궁전을 내줄 때까지 260년 가까이 유럽 내 이슬람 최후 보루 역할을 담당했다. ●알람브라 절정은 술탄들이 놀던 ‘사자의 정원’ 겉에서 보는 알람브라 궁전은 놀랄 만큼 수수하다. 하지만 안으로 한발짝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화려함은 더해간다. 이슬람 건축양식의 특징이다. 알람브라와의 첫 만남은 ‘카를로스 5세 궁전’에서 시작된다. 부부왕에 이어 스페인 왕위에 오른 카를로스 5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궁전을 알람브라의 정수리에 세운다. 밖에서 볼 때는 정사각형 형태.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경기장처럼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여태 미완성이란 게 이채롭다. 카를로스 5세 궁전에서 본궁으로 접어들면 한순간에 가톨릭과 이슬람 문화가 교차하는 묘한 시각차를 경험한다. 우선 벽면에 새겨진 아랍 문자와 문양들이 시선을 끈다. 수많은 기둥과 벽, 천장마다 아라베스크 문양과 ‘코란’ 문장으로 빈틈없이 장식돼 있다. 세세한 부분까지 알맞은 색채가 곁들여진 것은 물론이다. 인간의 손길이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술탄(이슬람 정치 지도자)이 외교관 등을 접견했던 ‘대사의 방’ 앞은 ‘아라야네스 안뜰’이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아치형 조각 기둥이 조화를 이루고, 작은 연못 물위에 비친 맞은편 건물은 수중도시처럼 느껴진다. ‘아라야네스 안뜰’은 인도의 타지마할 조성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현지 가이드는 전했다. 알람브라의 절정은 ‘사자의 정원’이다. 술탄의 후궁들이 머물던 내밀한 공간. 정원 중간에는 유대인이 선물했다는 12마리 사자상이 저마다 분수처럼 물줄기를 내뿜는다. 현재 복원 공사중이어서 실물을 볼 수는 없다. 알람브라 궁전 어디서고 이처럼 크고 작은 수로를 볼 수 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궁전까지 끌어들인 것으로, 식수는 물론 한여름 40℃까지 치솟는 열기를 식히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모든 물줄기는 사자의 정원으로 집결된 뒤 다시 분산돼 거미줄 같은 수로를 따라 궁전 곳곳으로 흘러간다. ●우울한 중세의 기억 남은 알바이신 마을 궁전 외곽의 알카사바 요새에서 내려다보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바이신 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아랍인 거주지역이었던 곳으로 우울한 중세의 기억이 깔려 있는 마을이다. 이슬람 왕조 멸망 뒤,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 주겠다는 항복 조건을 내팽개친 스페인 병사들은 닥치는 대로 마을을 약탈하고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 앞에 한 문명이 무참히 스러진 것. 그리고 요새 성벽에 세워진 무슬림의 초승달 첨탑도 십자가와 종이 들어선 생경한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알람브라 북쪽의 ‘헤네랄 리페’도 놓쳐서는 안 될 진귀한 볼거리. ‘건축가의 정원’이란 뜻으로, 알람브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건축가’는 예의 이슬람 유일신 ‘알라’다. 업무에 지친 술탄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칼리프(이슬람 최고 통치자)들이 애첩들과 밀회를 나누는 장소로 이용됐다고 한다. 현재는 두 개의 작은 궁전만 남아 그 시대를 웅변하고 있다. 글 사진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알람브라 궁전은 하루 8260명의 관람객만 받는다. 따라서 관광객이 몰렸을 경우, 입장권을 잃어버리면 사실상 그날은 관람이 어렵다. 또 일정 구역을 정해진 시간에 지나야 한다. 한 구역을 지날 때마다 관리인이 바코드를 꼼꼼하게 찍어 확인한다. 입장료는 1인 13유로(약 2만 2000원). →스페인은 한국보다 8시간 늦다. 수도 마드리드는 우리나라와 날씨가 비슷하지만, 그라나다 등 남부 지방은 초겨울처럼 포근하다. →콘센트 형태가 우리와 같다. 어댑터 없이 국내 전자제품을 쓸 수 있다. →카타르항공(02-3708-8571, www.qatarair ways.com/kr)은 카타르 도하 경유 마드리드행 항공편을 운항한다. 3월부터 도하 직항노선이 개설돼 한층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 페가수스코리아(02-733-3441)는 뛰어난 현지 가이드들과 함께 다양한 일정의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 칸토나에서 루니까지…맨유 에이스 변천사

    칸토나에서 루니까지…맨유 에이스 변천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No.10’ 웨인 루니의 상승세가 무섭다. 지난 헐 시티전에서 혼자 4골을 터트린데 이어 칼링컵 4강 2차전에서는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를 격파했다. 맨유의 확실한 에이스가 된 느낌이다. 잉글랜드는 물론 유럽 최고의 명문 클럽 중 하나인 맨유는 그동안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해왔다. 특히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 부임 이후 맨유는 희대의 영웅들과 함께 프리미어리그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0년, 루니가 그 반열에 오를 태세다. ▲ 전설의 7번, 에릭 칸토나 (1992~1997) ‘퍼거슨 시대’ 서막을 연 주인공이다. 1992년 11월 26일, 120만 파운드의 헐값에 리즈에서 맨유로 이적했다. 그 해 맨유는 프랑스 출신의 칸토나를 앞세워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칸토나는 서로 다른 팀에서 2회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최전방 공격수로 화려한 개인기와 폭발적인 스피드 그리고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 수비진을 무너트렸다. ‘백작’ 베르바토프와 같은 우아함과 ‘악동’ 루니의 파괴력을 동시에 지녔던 세기의 공격수였다. 또한 시야가 넓고 패스 능력도 뛰어났다. 1995년 12월 2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관중석의 팬이 욕설을 하자 ‘쿵푸킥’을 날리며 징계를 받았던 사건은 아직까지 유명하다. 그러나 악동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칸토나는 1993/94시즌 18골로 리그 최우수 선수에 뽑혔으며 5년간 맨유에 4번의 리그 우승과 두 번의 더블을 선사했다. ▲ 황금의 오른발, 데이비드 베컴 (1993~2003) 칸토나 7번의 계승자이자, 프리킥의 마술사다. 맨유 유스 출신인 데이비드 베컴은 어린 시절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유 아카데미에 스카우트됐다. 이후 1992년 FA 유스컵 우승을 이끌며 그해 브라이턴과의 리그컵을 통해 1군 무대에 데뷔했다. ‘꽃미남’ 베컴이 잉글랜드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996/97시즌 리그 개막전이었다. 당시 베컴은 상대 골키퍼가 전진한 것을 보고 60여 미터 거리에서 장거리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그의 오른발은 계속해서 그림과 같은 프리킥을 만들어냈고, 맨유는 칸토나의 공백을 완벽히 메울 수 있었다. 베컴의 황금기는 1998/99시즌 트레블(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시기다. 당시 맨유는 후반 막판까지 바이에른 뮌헨에 0-1로 뒤진 상태였다. 그러나 후반 추가시간 베컴이 시도한 두 번의 코너킥은 셰링엄과 솔샤르의 동점, 역전골을 만들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 득점 기계, 루드 반 니스텔루이 (2001~2006) 1999년 트레블 달성 당시 맨유의 최전방은 4명의 공격수가 자리했다. ‘영혼의 파트너’ 앤디 콜과 드와이크 요크 그리고 ‘노장’ 테디 셰링엄과 ‘동안의 암살자’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상대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투입되며 맨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이 하락세를 보이자 퍼거슨 감독은 새로운 공격수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상대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67경기 62골을 터트린 ‘득점 기계’ 루드 반 니스텔루이였다. 퍼거슨은 부상으로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있던 그를 기다려줬고, 결국 2001년 여름 당시 EPL 최고 이적료인 1,900만 파운드(약 380억원)에 그를 영입했다. 퍼거슨의 선택은 옳았다. 반 니스텔루이는 데뷔시즌 23골을 성공시키며 대박을 터트렸고, 콜과 요크 이후 최전방에 무게감이 떨어졌던 맨유는 반 니스텔루이를 앞세워 다시금 잉글랜드 정상에 올라섰다. 이후 반 니스텔루이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탁월한 골 감각을 선보이며 맨유의 킹으로 자리매김했다. ▲ 토탈 패키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2003~2009) 2003년 여름, 포르투갈 출신의 10대 소년이 올드 트래포드에 등장했다. 베컴의 등번호 7번을 입고 그라운드에 올라선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볼턴과의 데뷔전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선보이며 맨유 팬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당시 호날두의 이적료는 EPL 10대 최고액인 1,220만 파운드(약 240억원)였다. 그만큼 퍼거슨 감독의 기대가 컸던 선수였다. 입단 초기, 지나친 개인플레이로 인해 팀 적응에 애를 먹었으나 반 니스텔루이가 떠난 2006/07시즌 17골을 터트리며 4년 만에 팀에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호날두의 성장세는 계속됐다. 2007/08시즌 무려 31골을 폭발시키며 맨유의 리그, 리그컵,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단독 돌파, 헤딩, 프리킥, 도움 등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선보였다. 결국 호날두는 그해 올해의 유럽 선수상인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 맨유의 희망, 웨인 루니 (2004~) 에버턴 유스 출신의 웨인 루니는 유로2004를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고, 그 해 여름 2,700만 파운드(약 56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유로 이적했다. 루니는 반 니스텔루이의 파트너로 낙점됐고, 2004/05시즌 페네르바체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환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루니는 데뷔시즌 리그에서 11골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고 이후 꾸준히 두 자릿수 득점을 선보이며 맨유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의 왕성한 활동량과 이타적인 플레이는 맨유의 경기력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특히 ‘단짝’ 호날두 역시 루니의 도움이 있었기에 보다 공격적인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루니는 반 니스텔루이와 호날두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갖췄음에도 늘 2인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2009/2010시즌 루니가 변하기 시작했다. 플레이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한 채 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맨유의 진정한 에이스는 루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축구통신원 안경남 pitchactio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장 행정]중랑구청 야구동호회

    [현장 행정]중랑구청 야구동호회

    “불사조라는 이름에 걸맞게 야구 불모지인 이곳에서 영원히 야구를 알리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겁니다.” 서울 중랑구청 직원들로 구성된 ‘피닉스(Phoenix)’야구단 총무인 박노명씨의 각오다. 원년멤버인 박 총무는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21년째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전설의 새 ‘불사조’란 이름을 붙인 만큼 우리팀은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최고의 전통을 자랑한다.”고 자랑했다. 27일 중랑구에 따르면 32명으로 구성된 피닉스 야구단은 1988년 창단 이래 활발한 활동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1년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앞세워 구 행정과 지역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1년째 단합 과시… 야구 불모지 개척 그 흔한 리틀 야구단조차 하나 없는 야구 불모지에서 열정 하나만으로 22개팀이 참가하는 도시철도공사 사장배 관공서 대회에서 2008년 5위, 2009년엔 6위라는 상위권 성적을 차지했다. 2007년 최우수 투수상(정성영), 2008년 최우수 타자상(정창민), 2009년 홈런상(박근식) 등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도 배출했다. 특히 2008년 최우수 타자로 선정된 정창민씨는 다른 자치구에서도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13경기 50타석 37타수 21안타로 타율은 5할6푼8리. 동료들은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상대 투수들이 정면대결을 피할 정도로 유명하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2008년 중구청과의 첫 경기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던 기억이 너무 짜릿해서 아직까지도 생생하다.”고 감회를 전했다. 현재 1부와 2부 리그로 팀을 나눈 피닉스 야구단은 고덕 차량기지에서 개최되는 관공서 리그와 시즌별 각종 경기에 7년째 참가,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야구를 통해 얻는 기쁨은 이뿐만이 아니다. 피닉스 야구단은 경기가 없는 날엔 저소득 가구 사랑의 집수리 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이웃을 위한 ‘홈런’을 날린다. 올해부턴 기부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사랑의 집수리’ 등 봉사활동까지 창단 이래 감독직을 계속 맡고 있는 유제학 면목 3·8동장은 “서로 일하는 분야가 다르지만 서로 같이 봉사하고 운동도 하며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우정만큼은 우승감”이라며 “단순한 동호회를 넘어 운동과 자원봉사, 대민서비스를 총괄한 종합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야구단은 팀 운영에 만만찮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변변한 연습공간이 없어서다. 야구 경기 특성상 운동장 내 외부인 출입이 적어야 하고 최소한의 경기시설인 마운드와 홈, 펜스, 플레이트가 갖춰져야 하지만 이런 공간이 적어 정기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운동장 확보가 시급한 상태다. 유 감독은 “다행히 문병권 구청장의 격려와 구청의 지원금, 회원들이 모은 회비 등으로 큰 무리는 없지만 앞으로 공간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월드컵 공인구 역사

    월드컵 공인구 역사

    가죽으로 된 축구 공 원조는 사형수의 머리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중세 때 영국에서 피가 흐르는 머리를 군중 속에 던져 마구 차도록 했다는 이야기. 무시무시하다. 공 하나만 있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어서 가장 인간적인 스포츠라는 축구는 기원전에 생겼다는 게 정설이다. 처음엔 마른 풀을 뭉치거나 돼지 등 동물을 잡아먹을 때 나온 오줌보를 찼다. 온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깡통에 돌멩이를 집어넣어 차던 아련한 추억을 웬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갖고 있기도 하다. 월드컵 개막이 26일로 135일 남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공인구로 자블라니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온 공 가운데 최첨단이라고 봐도 괜찮다. 역사상 가장 원형에 가까우니 가장 공평하다는 말도 된다. 공인구 발표는 갖가지 시비를 막기 위해서다. 물론 기술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신비롭게 포장하려는 상업적 의도도 담겼다. 페어플레이를 외치면서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공을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서로 자기네들 공이 낫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지구촌 최대의 잔치로, 연인원 400억명이 지켜본다는 월드컵도 다르지 않았다. 첫발을 뗀 1930년 대회 결승전은 좋은 사례로 꼽힌다. 홈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추첨까지 거쳐 전반에 아르헨티나 공, 후반엔 우루과이 공을 번갈아 사용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빚었다. 처음 나타난 가죽 공은 있는 그대로 기다랗게 자른 조각을 붙인 것이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때 공인구 텔스타가 탄생했다. 육각형과 오각형 가죽을 덧대 만들었다. 지금도 흔한 ‘점박이’ 모양이었다. 기본적인 틀은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유지됐다. 점박이 전형을 처음 벗어난 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달군 피버노바였다. 흰색 바탕에 황금색 삼각형 바람개비와 붉은색 불꽃 무늬를 새겼다. 2006년 독일 대회의 팀가이스트엔 32개였던 가죽 조각을 14개로 줄이고 손으로 꿰매는 수작업까지 없앤 뒤 고열, 고압에서 조각을 붙이는 특수공법을 썼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동작구 에코시티 만들기 첫 발

    도심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서울 동작구가 본격적인 에코시티로 첫발을 내딛는다. 26일 구에 따르면 올해 3곳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구축하고 생태형 주차장 조성을 위한 잔디블록 보급, 2012년까지 태양광 주택 그린홈 100호 보급 추진 등 다양한 에코사업을 추진한다. 올해 대방동 은하어린이집과 구 문화복지센터, 구의회 등 3곳에 예산 4억 6000여만원을 투입, 태양광 발전설비 구축에 나선다. 먼저 오는 31일 은하어린이집과 구 문화복지센터의 태양광 발전설비가 본격 가동된다. 이로써 60%는 태양광으로, 나머지 부족분 40%는 전기를 이용하게 된다. 구의회는 하반기에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구는 태양광 발전으로 시설 한 곳에서 연간 100만원 이상의 비용 절감뿐 아니라 4.5t나무 40그루를 심는 환경적 효과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태양열 온수설비를 노인정, 어린이집 등 사회복지시설 44곳에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이와 함께 2012년까지 태양광 주택 그린홈 100호 보급을 목표로 가구당 1400여만원의 태양광 발전(3㎾기준) 설치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한편 구는 주차장에도 친환경을 입힌다. 주차장을 아스팔트대신 친환경적인 잔디블록으로 시공해 주택가 주차난 해소와 녹지공간 확충에도 적극 힘쓰고 있다. 현재 상도4동과 대방동 일대 공영주차장 2곳 2404㎡에 시범적 조성을 마쳤다. 특히 상도4동 공영주차장에는 태양열 가로등과 투명 방음벽 설치 등으로 친환경 주차장의 명소로 눈길을 끌고 있다. 앞으로 신규 공영주차장 조성시 잔디블록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며 기존 주차장은 연차별로 주차 사각지대에 녹지공간을 확충할 예정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40년 넘은 ‘스콜피언스’ 해체 왜

    [문화계 블로그] 40년 넘은 ‘스콜피언스’ 해체 왜

    “가장 화려할 때 마침표를 찍고 싶다.” 40년이 넘도록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살아 있는 전설’로 군림하던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록 밴드 스콜피언스가 최근 해체를 선언<서울신문 1월25일자 29면>했다.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에 서정적인 멜로디의 기타 사운드로 ‘올웨이스 섬 웨어’, ‘홀리데이’, ‘스틸 러빙 유’ 등 수많은 히트곡을 이어가고 있는 밴드라 한국은 물론 전 세계 팬들이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음반은 전 세계에서 1억장 이상 팔렸다. 명(名)기타리스트 마이클 쉥커와 울리히 로스를 배출한 밴드도 이들이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때 스콜피언스의 히트곡 ‘윈드 오브 체인지’가 울려퍼지던 장면은 아직도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생생하다. 루돌프 쉥커(62·기타), 클라우스 마이네(62·보컬), 마티아스 얍스(55·기타) 등 핵심 멤버 3명의 나이를 고려하면 해체 선언은, 그럴 법 하다. 하지만 그동안 멤버 간 불화도 없었고, 최근에도 전성기에 버금가는 라이브 연주실력을 과시해온 스콜피언스인지라 해체 선택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과거가 아니라 언제나 오늘이고 싶다.”고 버릇처럼 읊조리던 루돌프 쉥커의 말에서 해체 배경을 짐작할 따름이다. 박수받을 때 떠나고 싶고, 마지막 순간을 멋진 모습으로 장식하고 싶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1965년 결성된 스콜피언스가 지난 24일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공식 해체배경은 이렇다. “최근 몇 달 동안 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여전히 즐거웠고, 우리 작품이 정말 박력 있고, 창의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결성 때부터 지금까지 음악에 대해 변함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동의했다. 우리는 지금껏 녹음했던 것 가운데 최고의 앨범으로 활동을 끝내려고 한다.” 쉥커는 “처음 밴드를 시작했을 때 많은 바람들이 있었다. 꿈꿔왔던 것 이상을 이뤘다는 게 놀랍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스콜피언스가 당장 해체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앨범 ‘스팅 인 더 테일’(Sting in the Tail)을 다음달 19일 발표한 뒤 5월부터 독일을 시작으로 3년 동안 5대륙을 돌며 작별을 고한다. 우리나라 팬들도 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직접 박수를 보낼 수 있을지는 미정이다. 스콜피언스는 2001년과 2007년 내한공연을 가졌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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