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처장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철회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시즌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3루타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526
  • 최근 5년간 숨진 전기 노동자만 37명...노조 “예견된 사고”

    최근 5년간 숨진 전기 노동자만 37명...노조 “예견된 사고”

    전봇대 감전사 산재 피해자 추모 기자회견“비정규직 노동자 산재 재발 막아야” 촉구전기 연결 작업 중 감전 사고로 사망한 김다운(당시 38세)씨 사건과 관련해 한국전력이 하던 일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면서 발생한 ‘예견된 사고’라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작업이 하청으로 떠밀리면서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이윤논리와 한전의 관리감독 부실로 2인 1조 작업이나 (전기 작업에 쓰이는) 활선차량 등 장비 동원이 갖춰지지 않게 됐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 사고 재발을 막으라고 촉구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5일 경기 여주에서 전봇대에서 작업을 하던 중 고압 전류에 감전된 뒤 19일 간의 투병 끝에 결국 숨졌다. 유족은 호소문에서 “한전은 발주처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아직도 유족에게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며 “한전과 하청업체는 유족과 전 국민 앞에 사고 경위를 비롯해 진실을 밝히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라”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최근 5년간 37명의 전기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며 “사고의 원인은 위험의 외주화에 있고, 직접고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청인 한전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뒤 김씨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중대재해처벌법 앞둔 안전관리 강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중대재해처벌법 앞둔 안전관리 강화

    기업과 공공기관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인력 보강, 현장점검 강화, 안전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한층 강화된 안전관리에 나섰다. 10일 기업체와 지자체에 따르면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안전관리 비상 대책에 들어갔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게 법의 핵심이다. 특히 산업 특성상 안전사고 발생이 불가피한 철강, 조선, 화학 등 중화학산업 기업들은 안전보건 업무를 책임지는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책을 신설하거나 직급을 높여 무게감을 싣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울산지역 산업계는 올해 시무식을 통해 ‘안전 최우선 경영’을 선포한 뒤 안전 관리자를 늘리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안전부문 인력을 증원하고 안전교육 및 평가를 내실화한다. 사내협력업체의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는 안전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안전정보시스템을 구축했고, 사고 위험요인을 목격하면 모바일 앱으로 제보할 수 있는 ‘안전신문고’를 운영하고 있다. 고려아연 등 지역 기업들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시설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도 안전관련 인력도 대폭 강화하고, 생산시설에 안전관련 인력을 최소 20~30% 늘일 계획이다. 또 울산시는 이달 말까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 관련 시설물을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 중 중대재해를, 중대시민재해는 특정원료·제조물 또는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 결함으로 발생하는 재해를 말한다. 울산지역 공중이용시설은 지난해 11월 기준 교량 389곳, 건축물 254곳, 터널 46곳 등 총 1002곳이다. 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련 기관 업무 협의회, 합동 캠페인, 전문가 특강 등을 통해 법 시행에 따른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노동정책과에 중대산업재해 전담팀인 산업안전보건담당을 신설하고, 안전총괄과에 중대시민재해 전담 인원을 증원했다.
  • [서울포토]‘故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서울포토]‘故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故 김다운 전기 노동자 산재사망 추모, 한국전력 위험의 외주화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5일 경기 여주시내의 신축 오피스텔 주변 10m 넘는 높이의 전신주에서 전기 연결작업을 하던 중 고압전류에 감전돼 사고 19일 만에 숨졌다. 이에 한전은 사망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안전사고 근절 특별대책을 마련해 지난 9일 발표했다. 2022.1.10
  •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1960년대 대혼란, 美 정치 지형 뒤엎다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1960년대 대혼란, 美 정치 지형 뒤엎다

    1970년대 서구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했다. 특히 미국의 70년대는 60년대의 혼란을 물려받은 악몽 같은 세월이었다. 격동의 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정치적 지형은 새로 조성됐고 이를 토대로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했다. 미국 정치의 ‘보수화’가 이 시기에 결정됐고, 시공간을 확장해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도 잉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미국의 70년대를 재조명해 지금 미국을 이해하는 장기 연재를 맡았다.존 F 케네디가 1963년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린든 존슨(1908~1973)은 흑인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켰고 ‘위대한 사회’라고 불리는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남북전쟁 후 인종 분리 제도를 유지해 온 남부의 반발은 거셌다. 존슨은 케네디가 시작한 베트남전쟁을 물려받았다. 존슨과 그의 안보팀은 우월한 군사력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64년 대선에서 승리한 존슨은 1965년 초부터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고 지상군을 베트남에 증파했다. 그러나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중국의 개입을 우려한 존슨은 북베트남의 심장부는 그대로 두고 주변만 공습했다. 미군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느라 많은 희생을 치렀다. 1967년 말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은 50만명이었다. 1965년 2000명 수준이던 미군 전사자는 1966년 6000명, 1967년 1만 1000명을 넘어섰다. 미군의 항공 전력도 북베트남의 정교한 대공 방어망에 걸려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럼에도 미군 사령부는 베트남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로버트 맥너마라(1916~2009) 국방장관은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존슨 대통령에게 사임을 청했다. 전쟁에 지친 존슨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구정 대공세’로 미국 여론 반전 1968년 1월 31일 구정(舊正)을 기해 북베트남군은 정규군을 동원해 베트남 전역에서 대공세를 취했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이 베트콩에 의해 뚫렸고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후에가 북베트남군에 장악됐다. 미군은 반격해 사이공을 확보했고 치열한 교전 끝에 후에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에는 완전히 파괴됐고 포로가 된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수녀 등 3000명이 학살됐고 2000명이 실종됐다. 두 달 동안 계속된 전투로 북베트남군 6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미군 4000명, 남베트남 정부군 5000명, 한국군 200여명도 전사했다. 케산 고지 전투에서는 미 해병대원 500명이 전사했고 북베트남군은 전사자 1만명을 내고 후퇴했다. 전술적으로는 미군의 승리였다. 하지만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은 모습을 TV로 본 미국민은 정부가 거짓말을 해 왔다고 믿게 됐다. 게다가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는 전투가 한창일 때 남베트남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이제 미국이 협상으로 전쟁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방송했다. 모든 언론이 베트남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보도했다. 맥너마라 국방장관은 2월 말 퇴임했고, 존슨은 오랜 친구인 클라크 클리퍼드(1906~1998) 변호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SDS·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이 중심이 된 진보적 청년계층은 군산 복합체가 움직이는 미국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워 가고 있었다. 1965년에 이들은 UC 버클리, 하버드, 위스콘신 등 캠퍼스에서 집회를 열었고 10월에는 버클리에서, 11월에는 백악관 앞에서 큰 시위를 벌였다. 그해 8월 LA 남쪽 흑인 거주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많은 건물이 불타고 수십명이 사망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흑인 시위와 폭동이 빈발했다. 민권법 통과를 위해 존슨 대통령을 지지했던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가 이끌던 온건한 흑인단체도 반전대열에 가담했다. 1967년에는 학생 시위대가 국방부와 백악관을 포위하는 대형 집회로 발전했다.●유진 매카시, ‘반전 후보’로 나서다 학생운동 그룹은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1968년 대선에 나설 민주당 후보로 밀고자 했다. 이들이 접촉한 로버트 케네디(1925~1968) 상원의원 등은 정부의 전쟁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현직 대통령에 도전하기를 꺼려했다. 이때 나선 사람이 미네소타 출신 상원의원 유진 매카시(1916~2005)였다. 세인트존스대와 미네소타대에서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하원의원을 지낸 후 상원의원이 된 그는 학구적이고 종교적이며 양심적인 정치인이었으나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1968년 1월 초 매카시가 베트남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매카시 돌풍’이 일었다. 그해 3월 12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매카시는 42%를 획득해 49%를 얻은 존슨 대통령을 바싹 추격했다. 그러자 며칠 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매카시를 돕던 젊은이들은 케네디가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3월에 열린 매사추세츠 등에서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선 매카시가 1위를 달렸다. 존슨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클리퍼드 국방장관은 베트남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존슨에게 보고했다. 3월 31일 존슨은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 중단을 선언하고 하노이에 협상을 제안하면서 자신은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4월 4일, 멤피스에서 킹 목사가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워싱턴, 시카고, 뉴욕, LA, 워싱턴DC 등 미국 120개 도시에서 흑인들의 시위가 폭동으로 번졌다. 경찰과 주 방위군이 무장을 하고 폭동에 대처했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선 학생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컬럼비아대는 인근 할렘에 거주하는 흑인 주민들과 체육관 건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이 주도하는 신좌파 계열의 학생들이 베트남전쟁 반대와 징집 거부를 주장하면서 총장실을 점거했고 학장을 인질로 감금했다, 캠퍼스에는 체 게바라(1928~1967)와 맬컴 X(1925~1965)의 사진이 곳곳에 붙었고 무장한 경찰이 캠퍼스를 포위했다. 뉴욕시는 내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케네디 상원의원 암살로 좌절된 열망 로버트 케네디가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갖고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매카시의 선거운동은 동력을 상실했다. ‘케네디’라는 빅 네임은 미디어를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1968년 6월 5일, 로버트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다. 그날 밤 12시 넘어 케네디는 로스앤젤레스의 앰배서더 호텔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호텔 주방을 거쳐 이동하던 중 아랍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변화와 개혁을 이루려던 젊은이들의 꿈마저 좌절되고 말았다. ■이상돈 명예교수 1951년생. 서울대 법대를 거쳐 미국 툴레인대와 마이애미대에서 유학한 뒤 1983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대 법과대학 교수로 헌법 등을 가르쳤다.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활동도 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외할아버지.
  • SK ‘ICT 삼총사’ 손잡았다… AI 반도체로 글로벌 시장 공략

    SK ‘ICT 삼총사’ 손잡았다… AI 반도체로 글로벌 시장 공략

    AI 반도체 ‘사피온’ 미국법인 설립 1조 펀드 조성해 유니콘기업 육성 최태원 딸 “반도체 회사 넘어설 것”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3사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세계 시장 진출에 손을 맞잡는다. SK스퀘어, SK텔레콤, SK하이닉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2’에서 사업 공동 협의체 ‘SK ICT 연합’ 출범을 선언했다고 9일 밝혔다. ICT 융합기술의 개발·투자, 해외 진출까지 함께 추진한다. 이를 위해 이달부터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대표 겸 부회장이 이끄는 최고의사결정기구, ‘3사 시너지 협의체’도 가동한다. 3사는 먼저 SK텔레콤이 개발한 국내 최초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사피온’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다. 공동 투자로 미국 법인 ‘사피온 Inc.’를 설립해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사로 공략할 계획이다. 사피온은 딥러닝 연산 속도가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1.5배 빠르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전력 사용량은 기존 GPU의 80% 정도라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SK의 ‘ICT 삼총사’는 또 1조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한다. 해외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AI, 메타버스, 블록체인, 반도체 분야에서 혁신 기술을 갖고 있는 국외 기업에 투자한다. 미래 산업 지형을 뒤흔들 해외 유니콘 기업을 발굴해 SK의 ICT 주력 사업에 시너지를 불어넣겠다는 복안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SK ICT 연합이 힘을 모아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도약하고 혁신하는 한 해를 만들 것”이라며 “글로벌 반도체·ICT 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을 갖고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12월 말 중국의 승인으로 인수 1단계 절차를 마무리한 인텔의 낸드사업부에 대해 “(10조원의 인수가는) 결코 비싸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1500명의 미국 엔지니어들의 역량에 좀 더 확신이 들었고 이들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D램과 낸드 사업이 균형을 이루는 ‘제2의 도약’을 위한 전환점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미주사업 조직을 신설하고 전사 차원에서 ‘인사이드 아메리카’ 전략을 추진한다. 한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둘째 딸인 최민정(31) SK하이닉스 팀장은 지난 7일 CES가 열리고 있던 라스베이거스를 찾아 투자자, 스타트업 관계자들과 만났다. ‘SK하이닉스·GFT벤처스 이노베이션 나이트’라는 행사에서 최 팀장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 이를 넘어서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전략담당 산하 부서의 팀장인 그는 인수합병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전 “감전위험 전력선 접촉·전주 위 작업 금지”

    한국전력이 감전사고를 막기 위해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을 작업자가 직접 만지는 ‘직접활선’ 공사를 완전 퇴출하고, 끼임·추락사고도 근절하기로 했다. 한전은 이런 내용을 담은 3대 주요 재해 근절 대책을 마련해 9일 발표했다. 하지만 3대 주요 재해는 충분히 예견된 데다 공사 감독만 철저히 해도 막을 수 있는 사고라는 점에서 뒷북 대책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한전은 먼저 직접활선 작업을 즉시 퇴출하기로 했다. 전기 흐름을 끊고 공사를 하는 ‘정전 후 작업’과 전력선에 접촉하지 않는 ‘간접활선’ 작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끼임사고 근절을 위해서는 전기공사용 절연버킷(고소 작업차에 달린 작업대) 차량에 고임목 등 밀림 방지 장치를 의무 설치하도록 했다. 추락사고 근절을 위해서는 작업자가 전봇대에 직접 오르는 작업을 전면 금지한다. 불법하도급과 부적정 행위를 한 업체에는 공사 수주 기회를 주지 않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도입할 방침이다.
  • “주민 의견 반영 새 공유사업 발굴 힘쓸 것”

    “주민 의견 반영 새 공유사업 발굴 힘쓸 것”

    구, 청년들 교육… ‘늘품집’ 통해 맞춤형 집수리주거 개선 어르신엔 안전, 청년엔 취업 ‘윈윈’“전국을 대표하는 공유 도시로서 앞으로도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신규 사업을 발굴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서울 성북구가 지난해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1위 ‘공유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공유를 행정의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구 전체가 공유 사업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끈 이승로(사진) 성북구청장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청장은 지난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역사회가 지닌 자원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공유를 통해 선보인 각종 정책이 구민을 비롯해 대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특히 지난해는 국민평가단이 직접 서비스를 이용해 보고 체감 만족도를 평가한 점수가 반영된 만큼 1위에 선정된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성북구는 ‘공유로 함께하는 행복한 도시’라는 비전 아래 구정 전 분야에서 공유 행정을 펼쳐 왔다. 이 구청장은 “공유 주차 서비스, 미디어 콘텐츠 시설·장비 공유, 방역 물품·생활공구 공유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도 구민들이 두루 활용할 수 있다”며 “성북구민의 일상은 공유와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정릉동에 위치한 성북마을관리소 ‘늘품집’을 공유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상주하는 주거 코디네이터가 주민들에게 집 수리 상담이나 기술 교육을 하고 다양한 공구도 무료로 대여해 준다. 무엇보다 저층 주거지에 사는 저소득층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와 주거 환경에 맞게 집을 수리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어르신 안전사고의 대부분이 노후한 집 안에서 발생하는 낙상 사고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점은 성북구가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집 수리 전문 교육 과정을 실시해 고령자 맞춤형 주거 환경 전문가를 양성했고, 이 청년들이 집 수리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이다. 이 구청장은 “어르신께는 더 안전한 일상을, 청년에게는 일자리 기회까지 제공한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릉동 일대에는 임대주택에 홀로 거주하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분들에게 어떤 점이 가장 시급한지 청년들이 한달간 직접 방문해 파악한다”며 “그간 고독감을 느꼈던 어르신들이 청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느꼈다는 반응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앞으로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공유 사업을 발굴하겠다”며 “특히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주민이 주도하는 공유 문화를 확산하겠다”고 덧붙였다.
  • 카불공항 미군에 건네진 뒤 사라진 갓난 아기, 넉달 만에 외조부 품에

    카불공항 미군에 건네진 뒤 사라진 갓난 아기, 넉달 만에 외조부 품에

    왼쪽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하미드 사피(29)다. 지난해 8월 19일(이하 현지시간) 형 가족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다 공항 바닥에서 혼자 울고 있는 갓난 사내아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길렀다. 아들이 없었던 그에겐 이 아기가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겨져 애지중지 키웠다. 그런데 이 아기는 탈레반의 재장악에 겁을 먹고 조국을 떠나려던 이들이 아비규환을 이룬 카불공항의 철조망 너머 미군 병사에게 건네졌다 실종된 아기 중 한 명이었다. 사피는 지난 8일 오른쪽 외할아버지 무함마드 카셈 라자위에게 아기를 돌려주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9일 로이터 통신의 단독 보도로 아기가 넉 달 만에 외할아버지 품에 안기게 된 극적인 사연이 처음 알려졌다.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얘기가 담겨 있다. 미르자 알리 아흐마디(35)와 수라야(32) 부부는 17세, 9세, 6세, 3세, 그리고 생후 두 달 된 소하일 등 다섯 자녀를 데리고 그날 카불공항에 도착했다. 아흐마디는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10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한 경력 때문에 탈출해야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철조망 너머 미군 병사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부부는 막내아들 소하일이 군중에 떠밀려 압사할 것을 우려해 팔을 위로 들어 아기를 건넸다. 아흐마디는 “입구가 불과 5m 앞이라서 곧바로 아기를 되찾을 것으로 생각해 건넸는데, 갑자기 탈레반이 피난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반대편 입구를 찾아 공항에 들어갈 때까지 30분 넘게 걸렸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부부는 공항 안에 들어간 뒤 사흘 동안 필사적으로 소하일을 찾았지만 아무도 소식을 알지 못했고, 결국 소하일 없이 가족들은 카타르와 독일을 거쳐 미국 텍사스주의 난민촌에 도착했다. 소하일이 미군에 건네질 당시 사진은 찍히지 않았다. 같은 날 공항 철조망 너머 미군에 건네지는 모습이 촬영된 생후 16일된 여아 리야는 가족과 곧바로 상봉해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친척 집에서 부모와 함께 지내고 있다. 소하일의 부모는 미국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해서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고, 한 지원단체가 지난해 11월 초 소하일의 사진을 넣은 ‘실종 아기’ 게시물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옮겨 날랐고, 이를 보도한 로이터 통신 보도가 하나의 계기가 됐다. 같은 달 말 한 카불 시민이 사진의 아기가 이웃집에 입양된 아기 같다고 제보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사피는 페이스북에 소하일의 사진까지 버젓이 올려놓고 있었다. 사피는 “난 딸만 셋을 뒀는데 어머니가 죽기 전 소원이 손자를 보는 것이라 하셨다”며 “그래서 내가 키우기로 하고, 집으로 데려와 ‘무함마드 아베드’란 이름을 붙여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소하일을 발견한 뒤 부모를 찾아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어 할 수 없이 집에 데려와 키우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하일의 친부모는 아프간에 남아있는 친척들에게 소하일을 찾아가봐달라고 부탁했고, 북동부 바다크샨 지방에 멀리 떨어져 사는 소하일의 외할아버지 등이 카불의 사피를 찾아가 양과 호두, 옷가지 등을 선물로 주며 아이를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사피는 거부하고 자신과 가족들도 미국으로 함께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그 바람에 7주남짓 두 가족은 밀고당기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소하일의 친부모는 국제 적십자사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자 결국 소하일의 외할아버지가 탈레반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아기 납치 사건’으로 수사하지 않는 대신 두 가족의 협상을 중재해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하일이 외할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든 사피 부부는 아기를 돌려주면서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소하일의 가족은 다섯 달 동안 아기를 돌본 대가로 사피에게 10만 아프가니(약 115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영상통화로 소하일의 얼굴을 본 친부모는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른 시일 안에 소하일을 미국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외할아버지 라자위는 현재 미시건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위가 “아들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기쁨에 취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더라”고 전했다.
  • ‘흑인 배우 첫 오스카’ 시드니 포이티어 하늘로

    ‘흑인 배우 첫 오스카’ 시드니 포이티어 하늘로

    흑인 배우 중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시드니 포이티어가 별세했다. 94세.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의 체스터 쿠퍼 부총리는 7일(현지시간) 페이스북에 “우리는 아이콘이자 영웅, 멘토, 전사, 국보를 잃었다”며 포이티어의 별세를 알렸다. AP통신은 포이티어가 전날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고 바하마 외교부를 인용해 보도했다. 192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바하마 토마토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포이티어는 미국·바하마 이중 국적으로 1997∼2007년 주일본 바하마대사, 2002∼2007년 주유네스코 바하마대사를 맡기도 했다. 포이티어는 최근까지도 인종 관련 논란이 적지 않는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1950년대부터 차별의 벽을 무너뜨려온 상징적인 존재다. 15세에 바하마에서 미국으로 돌아와 연극 무대에 선 그는 1950년 영화 ‘노웨이아웃’으로 할리우드에 정식 진출했다. 또 인종주의자인 백인 죄수(토니 커티스)와의 탈주극을 그린 ‘흑과 백’(1958), 동독을 탈출한 수녀들을 도와 교회를 짓는 퇴역 군인을 연기한 ‘들판의 백합’(1963),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 흑인 의사를 연기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 인종 차별 속에 살인 수사를 이어가는 흑인 형사를 연기한 ’밤의 열기 속에서‘, 영국 빈민촌 학교에 부임한 아프리카 출신 교사를 열연한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상 1967)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흑과 백‘으로 1958년 흑인 배우 중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으며 6년 뒤 ’들판의 백합‘으로 흑인 배우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의 역사를 썼다. 앞서 1974년에는 영국 영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명예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밖에 골든글로브와 베를린영화제, 영국아카데미상, 그래미상 등도 수상하며 할리우드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는 2002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으며 2009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민간인 최고 영예인 자유 메달을 수여했다. AP통신은 “포이티어는 흑인이 스크린에서 그려지는 방식을 바꾼 획기적인 배우”라며 “흑인이든 백인이든 포이티어만큼 스크린 안팎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 SK ‘ICT 삼총사’, AI 반도체 세계 진출에 맞손

    SK ‘ICT 삼총사’, AI 반도체 세계 진출에 맞손

    SK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3사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세계 시장 진출에 손을 맞잡는다. SK스퀘어, SK텔레콤, SK하이닉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2’에서 사업 공동 협의체 ‘SK ICT 연합’ 출범을 선언했다고 9일 밝혔다. ICT 융합기술의 개발·투자, 해외 진출까지 함께 추진한다. 이를 위해 이달부터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대표 겸 부회장이 이끄는 최고의사결정기구, ‘3사 시너지 협의체’도 가동한다. 3사는 먼저 SK텔레콤이 개발한 국내 최초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사피온’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인다. 공동 투자로 미국 법인 ‘사피온 Inc.’를 설립해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사로 공략할 계획이다. 사피온은 딥러닝 연산 속도가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1.5배 빠르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전력 사용량은 기존 GPU의 80% 정도라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SK의 ‘ICT 삼총사’는 또 1조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한다. 해외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AI, 메타버스, 블록체인, 반도체 분야에서 혁신 기술을 갖고 있는 국외 기업에 투자한다. 미래 산업 지형을 뒤흔들 해외 유니콘 기업을 발굴해 SK의 ICT 주력 사업에 시너지를 불어넣겠다는 복안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SK ICT 연합이 힘을 모아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도약하고 혁신하는 한 해를 만들 것”이라며 “글로벌 반도체·ICT 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을 갖고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이날 간담회에서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12월 말 중국의 승인으로 인수 1단계 절차를 마무리한 인텔의 낸드사업부에 대해 “(10조원의 인수가는) 결코 비싸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12월 말 조직을 들여다봤는데 1500명의 미국 엔지니어들의 역량에 좀 더 확신이 들었고 이들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로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노종원 사업총괄 사장도 “이 회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에 비하면 충분히 적당한 가격에 산 것”이라며 “앞으로 사업을 통해 증명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D램과 낸드 사업이 균형을 이루는 ‘제2의 도약’을 위한 전환점을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미주사업 조직을 신설하고 전사 차원에서 ‘인사이드 아메리카’ 전략을 추진한다. 이 사장은 올해 시장에 대해서도 낙관했다. 그는 “수요가 굉장히 견조하다”며 “전체적으로 지난해 이상으로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한전 직접활선 공사 즉시 퇴출···감전사고 뒷북대책 지적

    한국전력이 감전사고를 막기 위해 전기가 흐르는 전력선을 작업자가 직접 만지는 ‘직접활선’ 공사를 완전 퇴출하고, 끼임·추락사고도 근절하기로 했다. 한전은 이런 내용을 담은 3대 주요 재해 근절대책을 마련, 9일 발표했다. 하지만 3대 주요 재해는 충분히 예견된데다 공사 감독만 철저히 해도 막을 수 있는 사고라는 점에서 뒷북대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전은 먼저 직접활선 작업을 즉시 퇴출하기로 했다. 전기 흐름을 끊고 공사를 하는 ‘정전 후 작업’과 전력선에 접촉하지 않는 ‘간접활선’ 작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전은 “2018년부터 간접활선으로 전환했으나 약 30%는 여전히 직접활선 작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를 완전히 퇴출해 작업자와 위해 요인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끼임사고 근절을 위해선 전기공사용 절연버킷(고소 작업차에 달린 양동이 같이 생긴 작업대) 차량에 고임목 등 밀림 방지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고임목 설치 여부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확인한다. 추락사고 근절을 위해서는 작업자가 전봇대에 직접 오르는 작업을 전면 금지한다. 모든 배전공사 작업은 절연버킷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절연 버킷이 진입하지 못하거나 장비수급 여건이 곤란한 때에만 사전 안전조치를 검토·승인한 뒤 제한적으로 예외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또 모든 전기공사에 ‘1공사현장 1안전담당자 배치’ 원칙을 적용한다. 현장의 인력·장비 실명제를 도입하고, 이를 안전담당자가 전수검사하기로 했다. 불법하도급과 부적정행위를 한 업체에는 공사 수주 기회를 주지 않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도 도입할 방침이다.
  • ‘마오쩌둥 맏며느리’ 류쓰치 92세로 별세

    ‘마오쩌둥 맏며느리’ 류쓰치 92세로 별세

    신중국의 국부로 불리는 마오쩌둥(1893∼1976)의 맏며느리였던 류쓰치(劉思齊)가 7일 새벽 베이징에서 별세했다고 베이징일보 등이 9일 전했다. 92세. 고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과 1949년 10월 결혼했다. 마오안잉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인민지원군에 자원입대해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다. 참전 한 달 만인 1950년 11월 미군 공습으로 28세에 숨을 거뒀다. 마오쩌둥은 “다른 전사자와 똑같이 대우하라”며 아들의 시신을 중국으로 옮기지 못하게 했다. 지금도 마오안잉의 묘지는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에 있다. 마오안잉의 죽음은 오랜 논쟁거리였다. 지금까지는 막사에서 계란볶음밥을 만들다가 위치가 노출돼 폭사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방공수칙을 어기고 불을 피웠다가 연합군 폭격기에 연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계란볶음밥은 마오안잉의 죽음을 조롱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지난달 쓰촨성 당 기관지 사천일보는 26일 공식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에 한 누리꾼이 “소시지 관련 요리를 공유해왔다”며 ‘소시지 계란볶음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가 홍역을 치렀다. 중국 좌파(한국의 극우에 해당)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계정 ‘아름다운 마오 시대’(美好毛時代)가 “영웅을 모욕했다”며 비난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12월 26일이 마오쩌둥의 생일이었는데, 해당 누리꾼이 의도적으로 마오 전 주석의 아들을 모욕하려고 게시글을 올렸다는 주장이다. 최근 들어 중국 정부는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가 폭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마오안잉의 죽음을 희화화는 헛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진짜 이유는 부대 사령부의 무전이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장진호’에서 마오안잉은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자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도 지도를 챙기러 작전실로 들어갔다가 폭탄이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묘사됐다.한편, 류쓰치는 1955∼1957년 구소련 모스크바대학에서 유학했다. 1961년부터 인민해방군에서 통역으로 일하다 1962년 2월 공군학원 교수인 양마오즈(楊茂之)와 결혼해 2남 2녀를 낳았다.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에서 퇴직 때까지 일했다. 2010년 중국중앙(CC)TV가 방영한 34부 대하드라마 ‘마오안잉’에서 당시 80세이던 류쓰치가 직접 출연해 열사능원에서 남편의 흉상을 쓰다듬으며 “60년 전 당신은 작별인사도 없이 떠났다. 나는 매일 당신이 보고 싶었다”고 추모했다.
  • ‘섬광탄’만 쏴도 얼어죽은 중공군…공군의 힘 [밀리터리 인사이드]

    ‘섬광탄’만 쏴도 얼어죽은 중공군…공군의 힘 [밀리터리 인사이드]

    6·25 전쟁 전세 뒤집은 유엔군 공군공중우세로 北 공세 저지…속도 절반으로연이은 공습에 전투력 50~60%로 줄어산길로 다니다 체력 소모…탈영 속출하기도우리는 왜 공군력을 강화해야 할까. 왜 거액을 들여 첨단 스텔스기를 사고, 공격력을 극대화한 전투기를 만들어야 할까. 왜 늘 ‘공중우세’를 점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이 될 만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루 만에 6·25 전쟁의 판도를 바꾼 ‘인천상륙작전’은 기억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북한군과 중공군을 공격해 전세를 역전시킨 ‘항공차단작전’은 잘 모릅니다. ‘항공차단작전’은 지상군에 대한 근접지원과 별개로, 공군이 직접 나서 적을 공격하고 이동을 지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적 기지나 철도, 이동하는 병력에 대한 폭격이 해당됩니다. 북한군과 중공군 입장에선 참담한 일이었겠지만, 공습작전이 이들의 공세를 저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북한군 파상공세 저지한 유엔군 공습 9일 이형재 공군작전사령부 전투계획과장이 작성한 ‘6·25전쟁 초기 유엔공군 항공차단작전의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본격적인 폭격은 북한의 남침 사흘 만인 1950년 6월 28일부터 시작됐습니다.유엔군은 이날 북한군 물자 수송 열차가 집결하는 ‘문산조차장’을 B26 폭격기로 공격했습니다. 29일부터는 한강 교량과 이북에 있는 북한군을 공격하라는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시로 출격이 늘었습니다. 29일 ‘평양 비행장’을 폭격해 항공기 25대와 무기고를 폭파시켰고, 7월 20일부터는 계속 공중우세가 유지됐습니다. 어찌나 폭격이 매서웠는지 개전 후 3일 동안 하루 25㎞씩 이동하던 북한군은 이후 11㎞ 밖에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그 해 11월까지 북한 전차 452대, 차량 8367대, 기관차 228량, 항공기 104대, 교량 118곳, 포대 243곳이 폭격으로 파괴됐습니다. 특히 개전 초기인 7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간 서울에서 평택으로 이동하던 북한군 수송트럭 300대 이상이 파괴됐습니다. 다리가 끊기고 대낮에 트럭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당장 식량 배급량이 하루 800g에서 400g으로 줄었습니다.북한군은 공습을 피하기 위해 야간행군을 시작했고,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산악지역으로 이동해야 해 시간이 지체됐고 체력 소모가 심했습니다. 교량을 피해야 해 병사들의 발은 늘 물에 젖었고 동상에 걸리는 인원이 늘었습니다. 심지어 낮에 은신할 때도 유엔군의 감시를 피해 도로에서 1.5~4.0㎞ 떨어진 지역에서 숙영해야 했습니다. ●공포감에 탈영 속출…김일성 “대전 점령 왜 못 하나” 이 때문에 북한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를 뒤집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북한군 825명을 심문한 미 공군 문서에 따르면 사기 저하 이유로 식량부족(21.4%), 무기 부족(9.8%), 휴식 부족(8.2%)이 무려 39.4%를 차지했습니다. 직접적인 공격인 공군기 공습(17.9%), 포병 공격(4.7%)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심지어 유엔군 공습으로 사망한 인원보다 탈영한 인원이 훨씬 많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개전 초인 7월 19일 북한 소련대사 테렌티 포미치 슈티코프에게 편지를 보내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김책, 강건에게 2번이나 대전 점령을 지시했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미 공군 때문”이라고 토로합니다. 8월 낙동강 전선에 다다른 북한군의 전투력은 전쟁 직후와 비교해 50~60%로 낮아졌습니다. 이후 5개월 동안 전체 전쟁기간 북한군 포로의 90%인 13만 6000명이 항복하게 됩니다.10월 참전한 중공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공군 포로들은 “34㎏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 36㎞씩 걸어야 해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야간에 행군한 산길은 가팔랐고 많은 이들이 얼어죽었다”, “참호를 팔 시간이 없어 온종일 떨고 있었다”, “적기가 무서워 불을 피우지도 못했고 굶주림에 떨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한 공습으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남한 후방에서 게릴라 작전을 펼치기 위해 11월 투입된 북한군 10사단은 초기 8000명으로 출발했으나 12월 38선에 도달했을 때는 추위와 동상으로 무려 3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000명을 보충한 뒤 38선을 넘어 2월엔 경북 안동에 도착했지만 2000명이 또 고열과 동상으로 사망했습니다. 결국 사단장은 후퇴를 명령했고, 강릉에서 국군의 포위망에 걸려 부대가 전멸되다 시피했습니다. 이때 붙잡힌 포로들의 진술은 처참했습니다. 보급을 받지 못해 비상식량을 소진한 뒤에는 무작정 굶었다고 합니다. 군화를 보급받지 못해 짚신이나 고무신을 신고, 심지어 맨발로 산길을 걸어간 인원도 있었습니다. 공습을 피하기 위해 불을 피울 수 없었고, 적진이어서 마을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섬광탄’ 공포…미군 “폭격보다 더 효과적” 눈 위에서 잠자고 추위에 떨었습니다. 하루에 단 한번만 밥을 지을수 있었기 때문에 ‘얼음밥’을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밤 7~8명이 죽었습니다. 일부는 “고열에 시달리는 병사가 많아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붙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유엔군에 붙잡힌 북한군 10사단 병사와 중공군 병사들은 의외로 ‘섬광탄’의 공포를 많이 언급했습니다. 심문 중 섬광탄이 공포스럽다고 밝힌 비율이 평균 71%나 됐습니다. 야간 행군 중 우연히 섬광탄을 발견하면 유엔군 공습이 이어질까 두려워 숨었고, 한동안 눈밭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상당수가 얼어죽었습니다. 미 공군 작전분석실은 섬광탄을 ‘저렴한 비용으로 적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로 판단했습니다. 심지어 적의 행군을 늦추는데는 교량을 타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섬광을 내다 다 타면 폭음을 내는 ‘기만용 섬광탄’ 개발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왜 우리가 공군력을 강화해야 하는지, 공중우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할리우드의 인종 장벽 무너뜨린 시드니 포이티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할리우드의 인종 장벽 무너뜨린 시드니 포이티어

    흑인 배우로는 처음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94세를 일기로 저하늘로 떠났다. 카리브해 바하마의 체스터 쿠퍼 부총리는 7일(이하 현지시간) 페이스북에 “우리는 아이콘이자 영웅, 멘토, 전사, 국보를 잃었다”며 포이티어의 별세를 알렸다. AP 통신은 그가 전날 저녁 바하마에서 숨졌다고 바하마 외교부를 인용해 보도했다. 포이티어는 흑인 배우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했던 1950∼1960년대 할리우드에서 인종의 벽을 깬 개척자였다. 존경받는 인도주의자였으며 외교관이기도 했다. AP 통신은 “포이티어는 흑인이 스크린에 그려지는 방식을 바꾼 획기적인 배우”라며 “흑인이든 백인이든 포이티어만큼 스크린 안팎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기렸다. 1927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바하마 토마토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5세 때 미국으로 돌아가 연극 무대에 서다 1950년 영화 ‘노웨이아웃’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인종주의자 백인 죄수(토니 커티스)와의 탈주극을 그린 1958년작 ‘흑과 백(The Defiant Ones)’을 비롯해 포이티어의 출연 작품들은 흑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1967년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에선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약혼한 의사를 연기했고, 같은 해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에서는 인종차별을 견디며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역할을 맡았다. 영국 빈민촌 학교에 부임한 아프리카 출신 교사로 출연한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도 대표작 중 하나다. 포이티어는 ‘흑과 백’으로 1958년 흑인 배우로는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 6년 뒤 ‘들판의 백합(Lilies of the Field)’으로 흑인 배우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역사를 썼다. 이 밖에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상, 그래미상 등도 수상했다. 영화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에게 2002년 아카데미 공로상이 주어졌으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9년 그에게 민간인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걸어줬다. 오바마는 고인에 대해 “위엄과 영예의 전형이었으며 독보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말했다. 미국과 바하마 이중 국적을 지녔던 포이티어는 1997∼2007년 일본 주재 바하마대사, 2002∼2007년 유네스코 주재 바하마대사로 일하기도 했다. 대배우의 별세 소식에 영화계 안팎에선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오스카를 수상한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며 “당신의 작품이 내 삶을 얼마나 급격하게 변화시켰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며 “당신이 연기를 통해 보여준 위엄과 힘, 탁월함 등은 우리 흑인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배우 우피 골드버그도 트위터에 “그는 우리에게 별에 가닿는 법을 보여줬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20년 전 고인이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할 때 남우주연상을 받은 덴젤 워싱턴은 수상 소감을 통해 “40년 동안 시드니만 쫓아 했다. 그랬더니 그들(아카데미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한날 밤에 그에게 상을 주네”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스타트렉’의 조지 타케이, ‘웨스트월드’의 제프리 라이트, 영화감독 애바 두버나이 등도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두 차례 결혼해 낳은 여섯 자녀를 남겼다.
  • [서울포토] 백마고지에서 발견된 전사의 숟가락
  • ‘반도체의 힘’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매출...“올해 더 좋다”

    ‘반도체의 힘’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매출...“올해 더 좋다”

    ‘반도체의 힘’이 삼성전자의 연간 매출을 역대 최대로 끌어올렸다. 7일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결기준 잠정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매출은 총 279조 400억원이었다. 이는 반도체 슈퍼호황기에 세운 2018년(243조 7714억원) 기존의 최대치 기록을 3년만에 깬 것이다. 영업이익은 증권사 추정치(52조원)을 소폭 밑도는 51조 5700억원이었다. 이는 2018년(58조 8900억원), 2017년(53조 6500억원)에 이은 3번째 규모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보다 17.83%, 43.29%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76조원으로 분기 최대 기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분기 사상 처음으로 매출 70조원을 넘어섰는데 4분기에 이를 다시 경신한 것이다. 다만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 12.77% 줄어든 13조 8000억원에 그쳤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줄어든 데는 일회성 특별격려금 지급, 메모리 가격 하락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지난해 말 임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2013년 이후 8년만에 계열사 20곳에 특별격려금을 지급한 바 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 3번째 영업이익이라는 성과를 일군 일등공신은 단연 ‘반도체’로 꼽힌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의 60%인 30조원 가량을 반도체 부문에서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매출만 94~95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년보다 20조원가량 높은 수치다. 지난해 3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했지만 글로벌 IT 기업들의 서버용 수요가 늘어나며 하락 폭이 크지 않았다. 비메모리 반도체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도 단가 상승, 수율 개선 등으로 수익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스마트폰과 TV, 가전도 실적 신장에 힘을 보탰다. 특히 갤럭시Z플립·갤럭시Z폴드 등 폴더블폰인 갤럭시Z 시리즈의 흥행이 한몫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폴더블폰 판매량은 전년의 4배 이상인 800만대로 추산된다. 다만 지난해 4분기에는 마케팅 투자가 늘며 수익성은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가전 사업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 등 연말 성수기 효과로 프리미엄 TV, 비스포크 시리즈의 판매가 확대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부문의 경우 스마트폰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가 견조했으나 QD디스플레이 양산이 4분기에 시작되면서 이에 따른 비용 증가가 손익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올 2~3분기쯤 반등하며 삼성전자의 올해 실적이 다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증권사 컨센서스(전망 추정치)로는 연간 매출 300조원, 영업이익 56조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의 생산 조정은 낸드 시황 개선과 가격 상승으로 나타날 전망”이라며 “메모리 상승 사이클, 파운드리 단가 상승, 엑시노스 판매량 증가 등에 힘입어 올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예상 영업이익은 44조원으로 전년보다 47% 성장하며 전사 실적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 강동구, 설 연휴 전 지역 내 공사장 안전전검 실시

    강동구, 설 연휴 전 지역 내 공사장 안전전검 실시

    서울 강동구가 이번 설 연휴 전 지역 내 민간 주택·건축공사장 50여 곳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한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안전점검은 사고발생 위험이 큰 민간 주택·건축공사장의 위험요인을 사전에 발굴·해소하고 공사장 현장관계자와 관리주체의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연휴 전에는 공사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작업일정이 요구되는 등 안전사고 발생률이 크게 올라가는 시기다. 대형 건설기계(타워크레인 등) 및 중장비들이 현장에 수시로 가동된다. 현장 위해요인이 많은 연면적 1만㎡ 이상 대형 주택·건축공사장은 안전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강동구 건축안전센터가 점검을 주관한다. 또 서울시 건축안전자문단 소속 건축분야 전문가(건축시공기술사, 건설안전기술사 등)가 민·관 합동으로 점검한다.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경미한 지적사항은 현장에서 즉시 시정지시하여 조치할 예정이다. 중대한 지적사항은 즉각 공사중지 조치하고, 보완 완료 후 공사재개를 지시할 방침이다. 반복·상습적으로 지적사항이 발생한 현장에 대해서는 관계자 행정조치 등 강력한 시정지시를 실시하고, 수시로 추가 안전점검으로 실시하여 개선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정훈(사진) 강동구청장은 “이번 설 연휴 대비 안전점검은 민간건축공사장 외 주택건설사업 현장, 재건축?재개발 사업현장을 포함하여 점검범위를 확대하여 실시한다”며 “공사장 내 방역수칙 준수 여부도 함께 점검할 계획이니, 공사 현장에서는 연휴 전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인사]

    ■농촌진흥청 ◇고위공무원 전보 △농촌지원국장 서효원△국립농업과학원 농산물안전성부장 김덕호 ■한전KDN ◇보직 발령 △ICT본부장 정재훈△전력지능화본부장 권오득△미래사업개발본부장 신재문△안전관리실장 오대현△ESG경영처장 김미경△정보보호실장 김성철△ICT기획처장 권대혁△IT운영사업처장 구은영△영배사업처장 김태연△대외사업처장 전병우△산업부사이버안전처장 이규철△배전사업처장 박학열△계통사업처장 강경수△에너지미터링사업처장 김준호△미래시스템개발처장 최진수△시스템인프라처장 조대현△보안사업처장 전명규△탄소중립처장 유승규△서울인천지역본부장 김지호△경기강원지역본부장 최영환△대전충청지역본부장 윤흥구△대구경북지역본부장 박병기△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장 정수옥△광주전라제주지역본부장 설환욱
  • 한팀서 3명 참변… 군복 입은 아들도 상복 입은 약혼자도 오열했다

    한팀서 3명 참변… 군복 입은 아들도 상복 입은 약혼자도 오열했다

    ‘베테랑’ 이형석 두 아이 남기고 순직결혼 앞둔 박수동… 부친은 망연자실8개월차 신참 조우찬도 예비신랑각 1계급 특진 추서·옥조근정훈장 8일 영결식… 국립묘지 안장 예정경기 평택시 물류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를 진압하다 6일 순직한 소방관들의 빈소가 차려진 평택 제일장례식장 3층은 침통함으로 가득했다. 순직한 3명은 모두 송탄소방서 119구조대에서 동고동락하던 동료였다. 팀장인 이형석(50) 소방경, 박수동(31) 소방장, 조우찬(25) 소방교. 오전에 함께 출동했던 동료를 화마에 빼앗긴 송탄소방서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먼저 도착한 박 소방장의 유족은 영정사진을 바닥에 두고 “살 자신이 없다”고 흐느꼈다. 박 소방장의 아버지는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울었다. 이 소방경의 유족도 “어떡하면 좋아. 이런 날벼락이 어딨어”라며 통곡했다. 박 소방장과 조 소방교 빈소의 상주는 각각 형과 누나가 맡았다. 위험한 직업을 선택한 아들을 말릴 걸 그랬다는 자책감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는 상주를 맡지도 못한다는 현실이 겹쳐 유족을 무너뜨렸다.두 사람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난해 5월 임용된 신참 소방관인 조 소방교의 막내외삼촌 A(50)씨는 “우찬이 약혼자도 같은 소방관인데 아침 9시에 퇴근하고도 연락이 안 돼 오후 1시까지 우찬이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예식장과 집도 구했다고 들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A씨는 조 소방교에 대해 “특전사를 나오고 사명감이 투철했던 아이였다”며 “사람을 살리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해서 위험한 일이라 말렸지만 본인의 뜻이 워낙 확고해 중사 제대 후 바로 소방관 시험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조 소방교 임관 동기이자 직장 동료인 B(30)씨는 “(조 소방교가) 울산 출신이라 송탄에서 혼자 자취하며 솔선수범하며 일해 왔다”며 “동기 형들하고도 잘 어울렸던 착한 동생이었다”고 전했다. 박 소방장과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는 이날 빈소에 찾아온 조문객을 맞으며 “어떻게 살아. 어떻게 살아”라며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였다. 박 소방장의 동기이자 6년간 함께 일한 동료 박천복(37) 소방교는 박 소방장에 대해 “분위기메이커인 친구였다”며 “맡은 일은 항상 끝까지 책임졌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전 결혼할 계획이라고 말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경의 아들은 군복 차림으로 장례식장에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오열했다. 눈물을 참던 소방 동료들이 끝내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세 사람은 이날 1계급 특진이 추서됐고 영정 앞에는 ‘옥조근정훈장’이 놓였다. 영결식은 8일 오전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엄수된다. 이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전날 밤새 화재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이날 오전 긴급사태에 대비한 상태로 2층에 들어섰을 때 불길이 다시 치솟았고 3명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투입된 대원수색팀은 정오 무렵이 돼서야 심장이 멈춘 이들을 2층에서 찾아냈다.
  • “믿을 수 없어”…오열로 가득한 순직 소방관들 빈소[현장]

    “믿을 수 없어”…오열로 가득한 순직 소방관들 빈소[현장]

    평택 공사장 화재 소방관 3명 사망순직 소방관들 빈소 눈물바다 경기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6일 순직한 소방관 3명의 빈소가 마련된 평택 제일장례식장은 유가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순직 소방관 중 최선임인 송탄소방서 119구조대 3팀장 이형석(50) 소방위의 빈소에서는 목놓아 우는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소방위는 1994년 7월 임용된 28년차 베테랑으로,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이다. 그는 이날 오전 큰 불길이 잡힌 뒤 후배들을 이끌고 인명 검색 작업에 나섰다가 다시 거세진 불길에 그만 화를 당하고 말았다.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으로 알려진 박수동(31) 소방교의 가족들도 이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눈물을 쏟아냈다. 박 소방교의 아버지는 “미안하다. 꼭 천국에서…(만나자)”라며 “막둥아 미안하다. 아빠도 곧 따라갈게”라며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혔다. 특수전사령부 출신인 임용 9개월 차의 팀 막내 조우찬(25) 소방사의 군 시절 동료들도 부고를 듣고 군복을 입은 채 그대로 달려와 눈시울을 붉혔다. 조 소방사의 군 선배는 “특전사 같은 팀에서 함께 근무한 아끼는 후배였다”며 “언제나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친구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가슴 미어지고 죄송”…정치인들도 ‘평택 화재’ 소방관 조문 빈소가 마련된 경기 평택시 독곡동 평택 제일장례식장에는 정치인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조문했다. 각각 별도 마련된 빈소에 한차례씩 방문한 윤 후보는 “안타까운 사고로 유족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들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원인을 잘 파악해 안타까운 희생이 다시 없도록 해야겠다”고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앞서 빈소를 찾은 김부겸 국무총리는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에 대해 또 근무환경에 대해 계속 정부가 고치겠다”며 “명복을 빈다”고 머리를 숙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희생에 죄송하다”며 “조 소방관은 같은 소방관 동료 중 약혼녀까지 있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도 “가슴이 미어진다”며 “소방관들이 안전 조치를 취했음에도 대형사고를 피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이번 화재는 전날 오후 11시46분쯤 경기 평택시 청북읍 고렴리 소재 지상 7층·지하 1층 규모(연면적 19만9762㎡) 팸스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 1층에서 일어났다. 소방당국은 6일 0시쯤 대응1단계를 발령해 진화에 나섰지만 LP가스통, 산소통 등 위험물질이 산재한데다 유독가스를 내뿜는 보온재 등이 많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적극적인 진화에 수그러든 불길이 오전 9시쯤 다시 거세지자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진화에 나섰으나 그 과정에서 이 소방위, 박 소방교, 조 소방사 등 소방관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은 화재 발생 19시간여 만인 이날 오후 7시 19분 완전히 진화됐다.한편 영결식은 오는 8일 오전 10시쯤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순직 소방관 3명에게는 1계급 특진과 훈장이 추서된다. 유해는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