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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산먼지도 불산처럼 위험…주민 건강대책 왜 안세우나”

    “비산먼지도 불산처럼 위험…주민 건강대책 왜 안세우나”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비산 먼지에 대한 대책을 강화해야 합니다.” 서울 강서구의회 황준환(55) 부의장은 구정질의 때마다 방화동 범머리 운동장 주변 건설폐기물 보관 현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관련 구정질의만 20여회를 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황 부의장은 10일 “건설폐기물 업체에서 발생하는 비산 먼지가 날아와 방화동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우선적으로는 모든 건설폐기물 업체에 비산 먼지 방지 차폐막과 오염측정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이 지역의 업체들을 이전해 주민들을 위한 근린공원으로 용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3선 의원인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주민 건강은 물론 장애인과 노약자 보호 등 생활 속 정치를 강조해 왔다. 그는 구정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구정에 반영하고 있다. 또 구정질문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관련된 전동휠체어 수리비용 지원, 노인문제 해결을 위한 경로당의 사회교육 프로그램 활성화를 제안했다. 웰빙마을 만들기에도 관심을 두고 방화근린공원 내 야외음악당을 설치했고,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작은도서관인 길꽃어린이도서관도 유치했다. 그가 제안한 어린이동화축제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등 교육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또 개화산 정상에 6·25전쟁의 비극적 역사현장을 복원하는 전투전사자 추모체육공원 개발을 제의해 추진 중이며, 그 일환으로 지난 4월 전망대와 운동시설, 족구장 등을 설치했다. 그는 “앞으로도 주민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는 생활정치를 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결코 전우를 버려두지 않는다” 총과 함께 마음도 내려놓는 하루

    “결코 전우를 버려두지 않는다” 총과 함께 마음도 내려놓는 하루

    “30년 전 소위로 해외 기지에서 근무할 때 부하 병사가 면도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일을 계기로 지휘관으로서 사병들의 스트레스를 이해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7일 오전 8시 30분(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포트 레너드우드’ 육군 기지 내 예배당. 1000여명의 장병과 가족들을 상대로 기지 사령관인 마크 옌터 소장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는 자살 예방의 중요성을 한참 설명한 뒤 청중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우리는 결코 사병들을 버려 두지 않는다.”는 내용의 선서를 하게 했다. ●미군 자살자 10년새 2배로… 위기의식 반영 이날은 미 육군이 사상 처음으로 지정한 ‘자살 예방 휴무의 날’로 본토와 해외 기지를 막론하고 미 육군 전체가 포트 레너드우드처럼 훈련을 하루 쉬고 일제히 자살 예방 행사를 열었다. 이처럼 ‘군인이 총을 내려놓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미군의 자살률이 위험 수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미군 자살자는 2001년 160명, 2006년 214명, 2009년 300여명으로 지난 10년 사이 2배 늘었다. 특히 올해에는 이달 현재까지 260명으로 사상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사자를 능가하자 “전쟁보다 자살 방지가 더 급선무”라는 위기의식이 급부상했다. 급기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은 최근 “자살 예방을 부대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라. 지휘관의 자살 방지 노력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밝혔고, 부랴부랴 자살 예방 휴무의 날이 지정된 것이다. 옌터 사령관이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관계 실패’라는 통계가 있는 만큼 지휘관은 장병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단상을 내려가자 이번에는 양복 차림의 남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육군 헌병대 가족 보호 훈련단’ 책임자인 러슬 스트랜드였다. 그는 성폭행 피해자의 사연을 담은 동영상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한 뒤 “부대 내 성폭행이 최근 자살 증가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면서 “성폭행 피해자에게 ‘왜 당했느냐’고 묻지 않는 태도로부터 자살 예방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새달 전 부대 카운슬러팀… 사병 고민 상담자로 한 시간가량의 행사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옌터 사령관은 “다음 달 1일부로 모든 미 육군 부대에 정신과 군의관과 카운슬러 등으로 구성된 ‘내면 행동 건강팀’이 발족된다.”면서 “병원 전 단계에서 사전에 문제 사병을 감지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부대 내 군목(軍牧)들도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넘어 장병들의 고민 상담자로 적극 활동하게 된다. 해외 파병 기간이 기존 12개월에서 9개월로 단축됐다.”고 밝히는 등 다양한 자살 예방 노력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살 예방은 사병을 최일선에서 접하는 동료와 상관의 관심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둘러본 포트 레너드우드 곳곳엔 ‘자살 예방 훈련’이라는 제목의 포스터가 눈이 아플 정도로 많이 붙어 있었다. 미군 전체가 ‘자살과의 전쟁’을 선포한 느낌이었다. 글 사진 포트 레너드우드(미주리주)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6·25 첫 승 ‘춘천대첩’ 격전의 3일 다시본다

    6·25 첫 승 ‘춘천대첩’ 격전의 3일 다시본다

    “탱크와 장갑차도 타 보고 막국수, 닭갈비도 맛볼 수 있는 춘천대첩 전승행사를 아시나요.” 청명한 가을, 강원 춘천 도심거리에 탱크와 장갑차가 다니고 하늘에선 블랙이글 에어쇼가 펼쳐진다. 육군 2군단은 새달 5일부터 7일까지 사흘 동안 삼천동 수변공원과 도심 거리에서 대대적인 시가행진 등 다채로운 ‘춘천지구 전투(춘천대첩) 전승행사’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춘천대첩 전승행사는 낙동강지구 전투,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국방부가 정한 3대 전승행사로 올해부터 규모가 대폭 커졌다. 춘천대첩은 한국전쟁 발발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3일간 군과 학도병, 춘천시민 등이 옥산포와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북한군에 맞서 싸워 첫 승리를 거둔 전투다. 이 전투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켜 한강방어선 확보를 가능케 하는 등 우리 군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승행사 첫날인 5일 오후 2시부터 옛 캠프페이지 터~중앙로터리~공지천 사거리~의암공원~삼천 사거리~수변공원을 잇는 3.7㎞ 구간에서 시가행진이 펼쳐진다. K1전차 등 각종 첨단 장비 36대와 군악대, 참전용사, 여성예비군 등 240명이 투입된다. 1시간 30분 동안 일반 차량이 전면 통제된다. 오후 7시 수변공원에서 열리는 국군방송 위문열차 공연에는 최근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싸이가 출연해 흥을 돋운다. 또 쇼콜라와 NS윤지를 비롯해 연예사병인 언터쳐블, KCM 등이 출연한다. 같은 날 군악 합동연주회와 특공무술 의장대 시범, 난타공연 등이 진행된다. 6일에는 7사단(칠성부대) 포병, 공병, 전차대대 등 장병 500명이 참가해 수변공원과 하중도 섬 일대에서 춘천대첩을 재연한다. 화포 6문과 전차 4대 등 450여 가지 장비가 동원돼 6·25전쟁 당시 소양강을 건너려는 북한군을 무찌르고 적 전차를 육탄으로 막아내는 장면 등을 생동감 있게 재연한다. 이후 축하행사에서 특전사 고공강하, 육군항공 헬기비행, 공군 에어쇼, 특공무술 시범 등이 펼쳐진다. 행사 기간 내내 수변공원 일대에서는 현재 육군이 운용 중인 전차·장갑차·자주포·박격포탄·전차탄·포병탄 등 각종 무기와 탄약류를 비롯해 6·25 전사자 유품, 사진 등이 전시되고 먹을거리 장터와 이동 PX 운용, 포토존, 기념품 판매 등 부대행사도 열린다. 또 일반인들이 장갑차에 직접 탑승해 기동도 하고 서바이벌 사격 체험도 할 수 있다. 2군단 정훈공보참모인 나승용 대령은 “춘천지구 전투의 위대한 승리를 기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행사”라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이벤트가 펼쳐지는 만큼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찾아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朴 “이외수 모셔라” 文 “김두관 지켜라” 安 “건너온 다리 불살랐다”

    朴 “이외수 모셔라” 文 “김두관 지켜라” 安 “건너온 다리 불살랐다”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 자택방문 캠프동참 요청 선대위 부위원장에 유승민·남경필 의원 내정 박근혜(얼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5일 영입대상 물망에 오르내리던 소설가 이외수씨를 찾아 대선 캠프 동참을 요청했다. 박 후보는 이날 강원 양구군의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둘러본 뒤 돌아오는 길에 화천군 이 작가의 자택을 비공개 방문했다. 역사 인식 관련 발언으로 약 2주간 국민통합 행보가 꼬인 이후 문화 분야에서 다시 통합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미다. 팔로어가 150만명에 달해 ‘트위터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이 작가는 그동안 박 후보 선대위의 파격 영입 대상으로 물망에 올랐다. 이 작가는 현재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쪽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가는 “(박 후보가) 국민행복을 모색하는 데 동참해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언제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하는 일에 저를 필요로 할 때는 돕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그는 “특정 정당에 소속돼 정치에 조언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어떤 정당이든 필요로 하고 조언을 구하면 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박 후보가 지난 24일 과거사를 두고 사과한 것에 대해 “굉장히 힘드셨을 텐데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후보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큰일 하셨다고 칭찬하는 분위기이고 국민들도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 같다는 취지의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이날 방문을 두고선 젊은 층·중도 계층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박 후보는 양구군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21사단 여군·부사관들과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거듭 안보를 강조했다. 한편 박 후보는 당내 인사를 중심으로 한 일부 선대위 인선안을 26일 발표한다. 당초 예정됐던 대구 일정도 취소했다. 최근 여러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선대위 인선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친박(친박근혜)계 유승민 의원과 중립의 남경필 의원이 선대위 부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는 이날 밤 장모상을 당한 유 의원의 빈소에 찾아가 직접 부위원장직을 제안했다. 비박(비박근혜) 대표주자인 이재오·정몽준 의원과 박 후보와 거리를 뒀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 등도 선대위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김두관 만나 협조요청…도라산역서 평화간담회 정동영·임동원·정세현·이재정 등 선대위 영입 문재인(얼굴)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25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햇볕정책 전도사들을 캠프로 영입했다. 17대 대선 후보이자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상임고문을 선거대책위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북정책을 총괄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정세현, 이재정,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위원으로 각각 위촉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 인사로 분류됐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위원으로 영입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문 후보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계승자로서 집권 후 대북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선포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안 후보를 의식해 정당 후보로서의 안정감을 부각시키고 전통적 민주당 지지 기반을 다지는 포석을 놓는 의미가 있다. 문 후보는 이날 남북 분단으로 끊긴 경의선 철도의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경기 파주시)을 방문해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정 위원장 등과 ‘평화가 경제다’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했다. 문 후보는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인사들의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해 달라고 남북 당국에 요청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당초 계획대로 3단계 2000만평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남북경제연합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북 수해 지원과 더불어 이산가족 면회소를 가동해 상시 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5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상회담 추진위원장으로 애썼던 문 후보가 남북경제연합 시대로 가기 위한 신북방 정책을 잘 펼쳐 나가길 바란다.”며 문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어 군사분계선 제2통문 앞으로 이동한 문 후보는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작성한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친필이 적힌 표지석을 찾아 잠시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한편 문 후보는 이날 저녁 서울 모처에서 대선 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김두관 전 경남지사를 만나 대선 캠프 참여와 함께 지원을 요청했다. 김 전 지사도 문 후보의 뜻에 공감하며 선뜻 지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대선 완주 의지 피력…야권단일화 논란 차단 감사인사 전하며 “한번 볼까요” SNS표심 잡기 안철수(얼굴) 무소속 대선 후보는 25일 ‘대선을 완주할 것이냐.’는 질문에 “지난주 수요일(대선 출마 선언일) 이미 강을 건넜다. 그리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고 밝혔다. 거듭되는 야권 단일화 논란을 차단하고 대선 완주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안 후보는 이날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PD수첩’ 정상화 촉구를 위한 호프콘서트에서 방송인 김미화씨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주최 측은 안 후보를 비롯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등 유력 대선 후보 3인을 초청했지만 안 후보만 행사에 참석했다. 안 후보는 또 추석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새 정치 청사진’을 제시하며 본격적인 정치개혁에 나설 예정이다. 안 후보는 이날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소통과 참여를 위한 정치 혁신 포럼’(정치혁신포럼) 회의를 주재하며 “경제 문제를 포함해 대립과 갈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정치 개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치혁신포럼은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생산적 결합’을 새 정치의 패러다임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 정치 ▲생활 정치 ▲상식 정치 ▲네트워크 정치 등 ‘4대 정치’를 제시했다. 26일에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후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처음으로 고향인 부산을 방문한다. 첫 지방 일정으로 새누리당의 텃밭이자 문 후보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경남(PK)을 찾는 것은 박·문 후보를 동시에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또 ‘이색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치’를 펼치면서 젊은 층 표심 잡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안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 ‘안스스피커’에 32초 분량의 동영상을 올려 캠프 명칭 공모에 참여한 네티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우리 번개 한번 할까요.”라고 즉석 모임을 제안했다. 앞서 안 후보 측은 페이스북을 통해 캠프 명칭을 공모하면서 선정된 사람에게는 안 후보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朴·文·安, 무상보육 폐기 반발 한목소리

    무상 보육 정책이 ‘미래 권력’과 ‘현 정권’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25일 정부의 0~2세 전면 무상 보육 폐기 방침에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정책 실시 7개월 만에 포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며 국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시 다루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오전 강원 양구군 육군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에서 이번 사안을 보고받은 뒤 문자 답변을 통해 “이 문제는 당이 총선에서 약속한 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은 이 문제를 두고 정부와 오랫동안 논의하며 관철시키고자 노력해 왔지만 전체가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조윤선 공동대변인이 전했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오후 브리핑에서 박 후보가 “0~2세가 아니라 0~5세 무상 보육이 꼭 필요하고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여당 대선 후보가 정부의 무상 보육 정책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드러낸 데다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당·정·청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무책임한 국정 운영의 극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문 후보는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포기한 것이자 보편적 무상 보육을 열망하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것”이라면서 “이 정부가 국민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환심을 사기 위한 선심성 정책의 말로”라고 지적하며 “폐기된 무상 보육안은 즉각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도 이날 “(정부의 폐기 방침에) 이래서 정치가 불신을 받고 국민들께서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착잡한 심정”이라면서 “복지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복지 정책이) 현실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복지 분야만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 조세까지 통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두·이영준기자 golders@seoul.co.kr
  • [글로벌 시대] 나쁜 국가, 착한 개인/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나쁜 국가, 착한 개인/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이 심상치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은 주로 영토분쟁 때문에 발발했다. 굳이 남북 간의 긴장고조를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현재 동북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나친 민족주의와 이로 인한 케케묵은 역사인식, 선거를 앞둔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표를 의식한 단견,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한·중·일의 경제적 역동성과 세계사의 위상 고조,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대한 한·일의 입장과 중국과의 미묘한 관계 등이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요 원인일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에 대한 해석, 현재에 대한 상호견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주도권 문제가 모두 동시에 얽히고설킨 매우 복잡한 상황이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분쟁은 거의 예외 없이 인접 국가들 간에 벌어진다. 그리고 분쟁이 발발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터로 불려나가 죽거나 죽이는 처참한 상황이 발생한다. 전사자들은 국가가 예를 갖춰 추모할 뿐만 아니라 많이 죽인 자는 영웅으로 추앙되기까지 한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 우리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무조건적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해야 하는 대상인가? 존 로크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보장하는 장치 혹은 수단이다. 과연 그럴까? 어떤 국가도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형성된 적이 없다. 무수한 전쟁을 거치면서 영토의 확장과 축소를 거듭해 온 결과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수단을 넘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권력이 되어버렸다. 국가 속의 개인은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따라서 국가의 명령이나 권위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행위는 금기시되고, 더 나아가 강제적 법적 구속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이런 체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개인은 국가란 이름 앞에 주눅이 들어 스스로 저항을 포기하고, 국가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구성된 주체’로 전락했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가 각 개인의 행복과 일치하는가? 나라를 빼앗긴 상황의 한 개인을 가정해 보자. 집에는 돌봐야 할 가족이 있지만, 찾아야 할 국가도 있다. 가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독립운동에 뛰어들 것인가? 둘 다 한꺼번에 수행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가치는 개인의 가치와 상충하기 마련이다. 나아가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 혹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엄청난 범죄를 무수히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나쁜 개인으로 돌변해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범죄의 공범자가 된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 스탈린의 공산일당독재정치, 일본의 군국주의, 유신독재 등에서 우리는 이런 경우를 헤아릴 수 없이 목격해 왔다. 나쁜 국가나 체제에서 착한 개인으로 남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정말이지 어렵다. 나치 정권하에서 독일의 평범한 국민은 절대다수가 나치를 지지하고, 나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애국이고 충성이라 믿었다. 그리고 나치의 이름으로 형언할 수 없는 범죄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질렀다. 이들 각 개인은 가정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였다. 유신독재의 추종세력들 중에도 개인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선 우리 스스로가 국가나 체제를 절대시 혹은 신성시하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으로 우리의 무사유 특히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 때문이지 않을까? 공약이 난무하는 대선을 앞두고 그리고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과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정치, 언론과 여론의 편협하고 과열된 반응을 지켜보면서,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의 역할 회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 “군복무 ‘비’ 공연 보세요”

    “군복무 ‘비’ 공연 보세요”

    육군이 개최하는 최대 시민 참여 행사인 ‘지상군 페스티벌’이 올해 10회째를 맞는다. 육군본부는 다음 달 10~14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6개 분야 27개 종목으로 이뤄진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마술공연 등 친숙한 프로그램이 많이 더해졌다. 6·25 전사자 유품전시회, 특공무술 및 고공강화 시범 등도 있다. K1 전차와 탱크, 헬기, 자주포 등 최신 군장비가 전시되고 로봇경진대회, 모형헬기 경기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특히 11일 오후 7시부터 군복무 중인 인기가수 ‘비’의 공연이 펼쳐지고, 런던올림픽에서 ‘멈춘 1초’ 때문에 눈물을 흘린 펜싱 메달리스트 신아람 선수 팬 사인회도 열린다. 대전현충원역에서 20~3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계룡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주말 영화]

    ●서편제(EBS 일요일 밤 11시)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에서 동호는 소릿재 주막 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리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갓집 잔칫집에 불려 온 소리꾼 유봉은 그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한편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이 그만 아기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수리품을 파는 틈틈이 송화에게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하지만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줄고 냉대와 멸시 속에 살아가던 중 동호는 어미 금산댁이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 나간다. 이에 유봉은 송화가 그 뒤를 따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그렇게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 가는 송화를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 결국 송화의 눈을 멀게 한 일을 사죄하고 숨을 거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정무문:100대1의 전설(OBS 토요일 밤 11시 25분) 정무문의 후계자 진진은 중국 노동참전군 15만명과 함께 세계 대전 프랑스 전선에 파병돼 맨몸으로 독일군에 맞서 활약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전사자로 기록되고 만다. 그리고 7년 후 1925년 상하이에서는 기천원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외교관과 군인, 스파이와 미녀들이 모여드는 사교클럽 카사블랑카에 등장해 모두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다. 한편 상하이 유력 인사들에 대해 연이은 암살 테러가 벌어지고 살생부까지 공개되면서 일본군에 대한 증오와 공포심이 날로 커져 간다. 그 가운데 당대 최고 스타인 천산흑협이 홀로 암살자들을 처단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군에 맞서 상하이 밤거리를 누비며 활약하는 절대 고수 천산흑협.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해리슨의 꽃(EBS 토요일 밤 11시) 해리슨 로이드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기자다. 해리슨의 부인 사라 역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사진 편집자로 일하는 언론인이다. 해리슨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일을 하기 위해 사진기자 일을 그만두려 한다. 하지만 해리슨의 동료인 카일은 해리슨이 기자답지 못하게 안전만을 추구한다고 비난한다. 이에 해리슨은 내전이 발발한 유고슬라비아에 가서 마지막 취재를 하기로 한다. 해리슨이 파견되고 나서 얼마 후 사라는 해리슨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사라는 남편이 살아있다고 믿고 직접 남편을 찾아 나선다. 사라는 카일과 마크 스티븐슨의 도움을 받아 전장을 뒤진다. 그렇게 이들은 전쟁의 중심지인 부코바로 향한다.
  • 아름답죠? 소중한 우리 독도

    아름답죠? 소중한 우리 독도

    강남구는 2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구청 1층 로비에서 ‘아름다운 섬 독도사진전’을 개최한다. 구는 최근 일본 정부가 우리땅 독도를 국제 분쟁 지역화하기 위한 공세에 나서고 있는 데 자극받아 우리 국토의 소중함을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독도사진전을 마련했다고 20일 밝혔다. 특히 이번 전시는 독도교육 시범학교인 경남 창원의 소답초등학교에서 독도전경, 독도 빛내림 등 독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 34점을 지원했다. 구는 독도사진전에 앞서 21일에는 구청 1층에서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6·25 참전 전사자 유해품 전시 및 사진전’을 개최한다. 국방부의 유해발굴 감식단에서 제공한 전사자 유품 150점과 관련 사진 51점 등을 전시해 주민들이 6·25 전쟁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길 수 있도록 했다. 신연희 구청장은 “사진전은 2012년 을지연습에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면서 “사진전을 통해 주민들이 독도사랑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6·25 격전지 경남 하동군 동산리 호국 충혼탑 2014년 말까지 건립

    6·25 때 최초의 장군 전사자였던 채병덕(1916~1950) 육군참모총장이 전사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남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에 호국충혼탑이 건립된다. 경남 하동군은 14일 하동읍 읍내리 하동공원 안에 있는 기존 충혼탑을 대신해 6·25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인 적량면 동산리 산 25-1 일대에 새로운 호국충혼탑을 2014년 12월까지 건립한다고 밝혔다. 모두 31억원을 들여 8465㎡의 부지에 충혼탑과 애국지사·국군·경찰·한청기동대원 등 호국영령들의 위패 757위가 봉안된 봉안각, 경찰전적비, 한청기동대 전공충혼탑 등을 함께 건립한다. 채병덕 소장은 육군참모총장을 두 차례나 지냈으며 1950년 7월 27일 지형 정찰을 하다 북한군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군은 1971년 건립한 충혼탑과 주변 부지가 비좁아 이전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사설] 보훈 되새기게 하는 제2연평해전 10년

    제2연평해전 10주년 기념식이 어제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기념식에 참석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대통령이 전사자 6명을 일일이 호명하고, 유가족을 위로한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북한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낸 이들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들을 잊고 지냈다. 그들의 영결식에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국방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일반인의 조문마저 막으며 황급히 그들을 떠나 보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을 당시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전사자들에 대해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한 전사자의 부인은 “이런 나라에서 어떤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 싸우겠느냐.”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유족에게 위로 편지를 쓴 사람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다니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기념식을 정부 차원의 행사로 격상하며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은 대통령이 해외를 방문하면 미군 부대부터 찾을 만큼 군인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준다. 군 작전 중 헬기사고로 숨진 전사자들의 유해가 도착하면 거수경례로 맞는 이도 바로 대통령이다. 군인이 기꺼이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사자는 물론 나라를 지키는 군인 대접을 너무 소홀히 해온 것은 아닌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나라를 위해 바친 고귀한 희생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폄훼하거나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려 한 것은 아닌지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는 나라를 위해 촌각의 주저나 망설임 없이 목숨을 던진 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임을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 여인들의 눈물, 외면할 수 있습니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다룬 ‘학살, 그 이후’(권헌익 지음, 유강은 옮김, 휴머니스트 아카이브 펴냄)는 제사상에 올리는 한 잔의 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저자는 한국인 인류학자다. 인류학자로서 1994년부터 틈나는 대로 베트남을 드나들며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전 특수로 인해 “내가 살던 가난한 동네에서도 물질적 상황조건이 개선”됐다는, 나중에 깨달은 “도덕적 궁지” 때문이다. 한국인 인류학자로서 저자는 이 책을 “공물(供物)로 내놓는다.”고 해뒀다. 학문적 땀방울 못지않게 인간적 눈물방울이 읽히는 이유다. 저자가 처음 꺼내 놓은 얘기는 1968년 2월 25일 한국군 해병대가 민간인 135명을 학살한 뒤 살아남은 몇몇 주민들이 시체들을 가매장해 둔 것까지 불도저로 모조리 밀어버렸다는 ‘하미 학살’이다.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3월 16일, 미군도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이는 ‘미라이 학살’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군의 행위가 그에 못지않게 잔혹했고, 노엄 촘스키가 “43건의 미라이 학살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쓸 정도로 빈번했음에도 왜 미라이 학살만 알려졌을까. “하위 행위자는 폭력적인 마을 평정 작전에서 지배적 행위자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도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쉽게 말해 이름을 떨친 종군기자나 연구자들은 미군만 쫓아다녔지, 한국군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국가 정체성 운운하며 흥분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가 만난 학살 생존자들은 시계추처럼 오간 군인들의 극단적 이중성에 곤혹스러워했다. 어제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집 짓는 걸 도와주던 이들이 오늘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다는 것이다. 이 극단적 이중성이 어찌 그들 탓이랴. “전쟁이라는 냉혹한 태엽장치에서 시계추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시계추에는 자체의 동학이 있지만 자신의 운동을 통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저자는 “전후의 삶을 통해 이런 잔인한 동요의 기억과 싸웠다고 믿는다.”는 수준에서 매듭짓는다. 저자가 힘을 모으는 지점은 학살된 이들을 베트남 사람들이 추모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저자가 에밀 뒤르켐의 수제자 로베르 에르츠의 ‘상징적 양손잡이’ 개념을 주된 화두로 붙잡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아노미 개념에서 보듯 뒤르켐은 사회적 유대감에 관심을 가졌다. 에르츠는 그다음 단계, 그러니까 사회적 유대가 격렬하게 깨졌을 경우 어떤 양상이 벌어지고 이를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를 연구했다. 이를 위해 제안한 것이 양손잡이 개념이다. 오른손에게 바른 손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왼손도 함께 바라봐 온전한 양손잡이가 되자는 것이다. 영웅적 군인이 오른손이라면, 학살 피해자는 왼손이다. 저자는 실제 현지조사를 통해 학살 피해자들이 베트남 내부에서도 왼손 취급당했음을 드러낸다. 전쟁 이후 베트남도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수행했다. 전선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젊은이들에게 국가는 전쟁영웅이란 칭호를 부여했고 기념비와 묘지를 바쳤다. 그러나 균열도 드러난다. 북베트남 전사들은 전쟁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 투입됐다. 해서 시체를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 웅대한 기념비 옆에 묻으면 된다. 접경지대격인 베트남 중부의 학살 피해자는 다르다. “영웅적 전사자라는 도식 안에서 보면, (학살 피해자들의) 집단 무덤은 재생의 가치가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편의 유해와 상대편의 유해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모호한 대상”이다. 그래서 “혁명 열사들의 유해를 모아 마을의 중심부로 가져왔을 때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유골은 논으로 바꿀 예정인 곳에서 외곽의 모래투성이 황무지로 옮겨졌다.” 비극적 죽음에 눈물 흘릴 공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해원을 위해 사당을 짓고 무당을 불렀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교조화되면서 의지할 곳을 잃은 부녀자들이 절과 무당집에 몰려갔듯, 베트남 주민들도 민간전통신앙에 의지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었다. 문제는 국가적 공식 기억에 맞지 않고 과학적 사회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베트남 정부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이는 딜레마를 낳는다. 전쟁 당시 베트남 인민들이 가장 분노한 것은 외국 군인들이 조상을 모신 사당을 부수고 사람을 함부로 죽였을 뿐 아니라, 장사조차 못 지내게 시체를 마구 훼손하고 뒤섞어 버린 만행이었다. “전쟁 동원 체제에 가장 뚜렷한 기여를 한 조상 사당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 정치적 불순성과 문화적 후진성의 상징으로 꼽힌 것은 아이러니다.” 이 갈등은 1990년대부터 수면 위로 치솟는다. 여러 가지 형태의 이장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조성한 공식 무덤에서 개인 사당으로 유골을 빼내오거나, 버려졌던 유골을 국가의 공식 무덤에 안치하는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베트남전은 이데올로기나 박정희 평가 문제,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의원의 반발(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도 북한에 사과해야 하느냐.”고 공격했다.) 등이 있어서 한국에서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빙빙 에둘러 왔지만, 사실 책의 백미는 이 부분이다. 하나만 꼽자면, 하미 전쟁열사묘지에는 ‘전쟁범죄 희생자 35인의 공동무덤’이 있다. 1986년 9월 하미에서는 하미 근처 하지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35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주민들은 이들 역시 열사라 보고 공식묘지에 묻어 달라고 요구하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열사란 직접 적과 맞서 싸운 이들”이라서다. 주민들 압력으로 결국 무덤은 조성되지만, 정부는 이들 묘를 파내려고 한다. 그때 주민들은 “낫이나 작대기를 무기 삼아 들었다.” “오늘부터 너희가 우리 적”이라면서. 저자는 무차별적인 학살 때문에 그 수많은 뼈와 해골 가운데 어느 것이 누구의 유골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한 구 한 구 파내 정성스럽게 쓰다듬고 정리하고 가지런히 다시 묻는 이장의 과정 자체가 후손들에게는 정신적으로 커다란 치유가 된다는 증언들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저자가 끊임없이 길어올리는 것은 ‘농민인지 전사인지 구분 안 되는 악독한 빨갱이 베트콩’ 대신 ‘조상 모시면서 제 땅을 제가 파먹고 살길 원하는, 농경사회라면 흔히 발견되는, 한국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농민의 얼굴’이다. “농민 전사들이 군복을 입은 정규군 병사들과 악수를 하고, 정치 장교들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연설을 참고 들으며, 달 없는 밤을 틈타 재빨리 집으로 달려왔을 때, 그들이 여전히 군인이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까 “체제가 공간의 균질성과 정체성의 불변을 고집한 반면, 삶으로 직접 겪는 냉전의 현실은 모순적 공간이나 변증법적 공간이었고, 이러한 현실 속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 동일자가 아니라 쉽게 변화하는 존재였으며, 이런 변형성이야말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했다.” 모두가 베트콩이었으되, 그 어느 누구도 베트콩이 아닌 이런 상황을 저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07년 미국 인류학회가 수여하는 클리퍼드 기어츠상을, 후속작 ‘베트남전쟁의 혼령들’로 2009년 미국 아시아연구협회가 주는 조지 카힌상을 받았다. 해서 책 앞에는 드루 파우스트 하버드대 총장의 서문이 붙어 있다. 한 구절 따온다면 이렇다.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들은 정치적 목적과 이데올로기를 위해 죽은 이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가족들에게서 그들을 앗아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자(死者)들을 역사의 행위자가 아니라 도구로 뒤바꾼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지금까지도 격렬한 이념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연구가 수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저자는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손잡고 ‘한국전쟁을 넘어서’라는 국제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다려지는 부분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9일 제2연평해전 10주년…MB, 현직대통령 첫 참석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참석한다. 청와대는 28일 “이 대통령이 29일 오전 10시 경기 평택 해군2함대에서 열리는 제2연평해전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기념식에 앞서 제2연평해전 전적지를 참배하고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전사자 6명의 이름을 딴 고속함들을 순시하면서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까지 연평해전 기념식은 국무총리 주재로 치러졌지만 올해는 10주년인 데다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 등을 감안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게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념식은 전사자 유족과 승조원, 정부 주요 인사, 각계 대표와 시민, 학생 등 약 3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제2연평해전 10년… 서해 안보는

    29일은 제2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10년 동안 서해를 지키는 우리 해군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해상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는 주 전력을 148t급 참수리 고속정에서 570t급 유도탄고속함(PKG)으로 바꾼 것이다. 해군은 지난 2003년부터 당시 전사자의 이름을 딴 윤영하함, 한상국함 등 6척을 포함한 9척의 유도탄고속함을 건조하기 시작해 실전배치했다. 해군은 2014년까지 건설되는 백령도 해군기지에 이를 전진배치할 예정이다. 이 함은 물 분사방식 워터제트 추진기가 장착돼 얕은 바다에서도 작전을 펼 수 있다. 3차원 레이더와 대함유도탄, 분당 600발을 발사하는 40㎜ 함포 등을 갖췄으며 선체에 스텔스 기법을 적용해 북한의 레이더탐지를 피할 수 있다. 해군 관계자는 “유도탄고속함에서는 지휘 및 기관 통제시스템을 분리해 함장이 밖의 함교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면서 “다수의 적함을 상대할 최강의 연안 전투함정으로 예전같이 전사자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은 또한 북한이 최근 사거리 300m 이상의 대전차로켓 및 유도탄을 경비정에 탑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작전과 화력을 대폭 보강했다. 기존 참수리 고속정 선체를 방탄 능력이 있는 강철판으로 바꾸고 한번에 2척씩 출동하던 편조를 3척으로 늘렸다. 이는 1척의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을 저지하기 위한 기동에 나서면 나머지 2척은 기습공격에 대비해 격파사격을 준비하도록 전술적 변화를 준 것이다. 기존에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로 이뤄지던 교전수칙은 ‘경고방송→경고사격→ 격파사격’의 3단계로 축소했다. 북한 경비정에 근접하지 않고 원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해군은 교전이 발생하면 북한 지역 육지에 배치된 지대함 미사일과 해안포까지 포격한다는 방침이다. 해군 관계자는 “최근 합참에서 발표한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은 물론 핵심세력까지 단호히 응징한다는 방침이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해상의 질적인 전력지수는 높아졌으나 노후된 참수리 고속정의 퇴역에 따른 함정 수의 감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NLL자체가 방대한 수역인데 질적으로 우세한 유도탄고속함 전력을 늘린다고 해서 기존 함정 수를 줄이는 것은 문제”라면서 “전면전 상황이면 몰라도 불시의 기습도발에서는 함정의 수량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與 “반납세비 14억원 유해발굴 기부”

    與 “반납세비 14억원 유해발굴 기부”

    새누리당이 국회 개원 지연으로 반납한 소속 의원들의 6월분 세비 13억 5000만원을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기부한다. 김영우 대변인은 25일 “6·25전쟁 발발 62주년을 맞아 147명의 의원들이 반납한 세비를 전액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무노동 무임금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진복 의원은 “6·25를 맞아 정부 차원에서 애쓰고 있는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 기부하는 게 뜻깊을 것이라는 의견이 최고위에서 수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예산이나 철책선 문제 등으로 아직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들이 많아 안타깝다.”면서 “우리가 비용을 지원해 책임 있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전사자들의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6·25 전쟁으로 피해를 겪은 분들에 대한 보훈을 한다면 국가보훈처를 다시 격상시켜 장관급 기관으로 예우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안동환·최지숙기자 ipsofacto@seoul.co.kr
  • [주말 여야 대선주자 행보] 박근혜 “약속 지킬수록 많은 국민이 행복”

    [주말 여야 대선주자 행보] 박근혜 “약속 지킬수록 많은 국민이 행복”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미니홈피를 통해 “약속은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더욱 힘이 생긴다.”면서 “우리가 약속을 지키면 지킬수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활동했던 것을 두고 “국민과의 약속 실천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이 된 날”이라고 소감을 남기면서다. 박 전 위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민의 행복’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위해서는 정책을 중심으로 국민들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위원장은 또 “요즘 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의 피해가 심각해서 걱정”이라면서 “당장 신속한 대책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6·25 전쟁 62주년을 앞두고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과 국군포로 송환에 최선을 다해서 조국이 결코 그분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6·25 62주년] 재일학도의용군은 월 98만원인데… 소년병은 월 12만원

    6·25 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전장에 나갔던 만 18세 미만의 소년병 가운데 생존자가 7500여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학업의 기회마저 포기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이들의 예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국방부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까지 전쟁터에 나간 소년병의 숫자는 2만 9603명이고 이 중 전사자가 2573명, 현재 생존해 있는 인원은 7500여명이다. 당시 소년병들은 62년이 지난 지금 평균 나이가 70대 후반이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소년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법상 만 18세 미만의 소년·소녀 징집은 금지되어 있어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8년에 와서야 이들의 실체를 명확히 인정해 병적을 정정해 주고 참전 사실을 전사에 기록하는 등 예우에 나서고 있다. 이에 앞서 2001년에는 참전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참전유공자들에게 월 5만원씩의 명예수당을 지급했고 이는 지난해부터 12만원으로 올랐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2008년 9월부터 6·25 참전유공자는 국가유공자의 18가지 그룹 중 하나에 속하도록 법이 개정됐으며 소년병들은 넓은 의미의 국가유공자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전시 혼란기 속에서 병적 기록이 미비한 일부 참전자의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월 12만원의 명예수당이 희생에 대한 적절한 예우인지도 논란이 일고 있다. 6·25참전 소년 지원병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나이에 일본에서 입대해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에 대한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에 대해서는 1968년부터 정착수당까지 지급했으며, 1981년부터는 당시 생활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국내에 정착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인이나 유족에게 월 98만 4000원 이상의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6·25참전 유공자로 명예수당의 혜택을 받고 계신 분들이 18만여명인데 예산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며 “소년병 출신들에게 상이군경 6급 수준의 연금인 월 90만원씩을 책정하기에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6·25전쟁과 통일의 필요성 바로 알기

    6·25전쟁과 통일의 필요성 바로 알기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2주년을 맞았다. 아직도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납북자 문제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맘때쯤 진행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 5명 중 2명은 6·25전쟁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고 있다. 누구에게는 아픔이 계속되고 누구에게는 잊혀지는 게 현실이다. EBS는 25일 낮 12시 10분에 ‘기획특강-끝나지 않은 전쟁, 6·25’를 방송한다. 기획특강은 학교 수업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기획한 EBS 모델 수업의 하나로, ‘3·1절 특강’과 ‘선거 특강’에 이은 3번째 프로그램이다. 최태성 대광고 교사가 강사로 나서, 남침을 위한 북한 내부의 전쟁 준비 상황과 중국·소련·미국 등 주변국 움직임 등 6·25 전쟁의 발발 배경을 설명한다. 낙동강 전선을 두고 북한군과 벌인 치열한 공방전, 인천상륙작전 진행 과정, 휴전 협정문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서명이 빠진 이유 등 다양한 동영상 자료와 문서, 지도로 알기 쉽게 살펴본다. 또 ‘가거라 삼팔선’, ‘전우야 잘가라’,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 대중가요 속에 담긴 애절한 가사와 음률로, 당시 상황의 절박함을 되새긴다. 이와 함께 이산가족이 겪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되짚어 보며 진정한 통일의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동원 담당PD는 “청소년 상당수가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혼동하고, 심지어 6·25전쟁을 일본, 소련 또는 러시아가 일으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면서 “호국선열의 피가 서린 6·25전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이번 특강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수능강의 전문 사이트 EBSi(www.ebsi.co.kr)와 포털 다음의 ‘EBS 지식’에서도 볼 수 있다. EBSi 사이트에서는 시청 소감 달기 이벤트도 진행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6·25 62주년] 6·25 참전국 ‘보은 순방’ 마무리

    [6·25 62주년] 6·25 참전국 ‘보은 순방’ 마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중남미에서 유일한 6·25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를 국빈방문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6·25 전쟁 휴전 이후 59년만에 도시국가인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참전국 15개국 모두를 직접 찾아가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대통령이 재임 기간 방문한 6·25 참전국은 13개국이다. 사실상의 참전국 순방 마침표도 이 대통령이 찍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보고타에서 참전기념탑에 헌화한데 이어 시내 한 호텔로 참전용사와 가족 200여명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6·25전쟁 때 군인 5314명과 프리깃함(2000t) 1척을 파견했다. 콜롬비아 참전 군인 중 전사자는 213명, 부상자는 567명이다. 이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많이) 피를 나눈 형제국가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우리 국민은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고 영원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참전용사인 카를로스 푸리뇨의 82번째 생일을 직접 축하하고 생일 케이크도 전달했다. 푸리뇨는 두 팔을 벌리며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6·25 전쟁 영상물을 함께 시청하는 순서에서는 일부 노병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날 만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가자 큰 박수가 터졌다. 이 대통령은 “전쟁이 일시 중단된 상태로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면서 “전쟁을 하게 된다면 싸워서 이기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우리의 더 큰 목표는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보고타(콜롬비아) 연합뉴스 sskim@seoul.co.kr
  • 국방부 ‘유가족 찾기팀’ 신규 편성

    국방부는 6·25 전쟁 62주년을 맞아 유해발굴감식단에 ‘유가족 찾기팀’을 신규 편성하고 다음 달부터 조직을 본격 가동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군 관계자는 “6·25 전쟁 전사자는 13만 7899명으로 공식 발표했지만 당시 전사자 중 2만여명은 병적자료가 부실했다.”면서 “이들은 최근까지 유가족을 찾지 못함에 따라 전사통지를 못하고 60여년간 보훈조치를 유보해 왔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에서 유해발굴과 더불어 유가족 찾기를 2대 중점 사업으로 선정하고 추진했으나 130여명을 찾는 데 그쳤다. 이후 2009년에는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단이 창설되면서 이를 재개해 유가족 1921명에게 전사통지서를 전달했다. 군은 이후 육·해·공군에 16명의 전담요원을 두고 유가족 찾기에 나섰지만 이들이 3개월 단위로 근무하면서 업무의 영속성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업무를 전담할 계약직 군무원 10명으로 새 팀을 편성한 것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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