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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포격 도발 7주년 전사자 기리며…

    연평도 포격 도발 7주년 전사자 기리며…

    연평도 포격 도발 7주년을 하루 앞둔 22일 중앙대 학군단원이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서해수호 특별묘역에 안장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 묘소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당시 서 하사는 마지막 휴가를 가려고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북한군의 포탄 소리를 듣고 귀대하다가 전사했다. 문 일병은 대피호에 있던 중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주변에 터진 포탄 파편에 가슴을 관통당해 숨졌다. 대전 연합뉴스
  • 6·25전사자 추정 유해 서울 우이천 현장서 발굴

    6·25전사자 추정 유해 서울 우이천 현장서 발굴

    서울에서 6·25 전쟁 아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발견돼 정부가 확인에 나섰다. 서울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16일 오전 강북구 우이신설 경전철 차량기지 옆 우이천 정비공사 현장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이 발견됐다. 하천 옆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보강공사를 하던 작업 인부가 지하 4~5m 깊이에서 심하게 부식된 전투화 조각과 유골 일부를 발견했다. 공사 현장 관계자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는 오른쪽 정강이뼈 4점을 비롯해 M1 소총 탄클립과 버클 등 군용품이 추가로 발견됐다.현장 인수인계를 받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발굴된 군용품을 봤을 때 아군 전사자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면 추가 수습자 수와 국군인지 미군인지 여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식팀은 발굴 후 DNA(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신원 확인에 나선다. 서울 지역에서 6·25 전사자 유해가 다수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유해발굴감식단은 2014년 은평구에서 아군 유해 1구를 발견하는 등 2000년 이후 서울에서 모두 22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자치광장] 희생 없이 이루어진 국가는 없다/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자치광장] 희생 없이 이루어진 국가는 없다/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오늘의 대한민국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희생 없이 이루어진 국가는 없습니다. 보훈은 나라의 근간입니다. 낡은 보훈회관에 승강기가 없어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시는 어르신을 보고 가슴 아팠는데, 유공자의 명예에 걸맞은 보훈회관을 지을 수 있어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달 보훈회관 기공식에서 인사말을 하니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날따라 가슴에 달린 노병의 자부심인 훈·포장들이 더욱 반짝였다. 관악구에는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등 9개 보훈단체가 있고 유공자 수는 6700여명이다. 과거 보훈회관은 40년이 지나 노후한 데다 세 곳으로 분산돼 있었다. 당장 불편한 것도 문제지만, 초라한 보훈회관은 유공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식 보훈회관을 마련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당시는 국가적으로 사회복지가 대폭 확대되던 때였다. 법으로 신설되는 법정 분담금을 대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라 새로운 사업은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우선 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해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최대한 반영했다. 매년 1회씩 지급되던 위문금을 2회로 늘렸다. 몇 년 뒤 3회로 늘리고 사망위로금도 신설했다. 물질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훈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유공자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새 보훈회관 건립은 결단 없이는 불가능했다. 우선 건립 선언부터 하고 구 소유의 재활용센터를 보훈회관 부지로 선정했다. 큰 문제를 자체 해결하니 국비와 시비 지원이 따라왔다. 보훈단체의 대표들과 건축 전문가들로 건립자문회를 구성하고 구청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편의시설을 보강하고, ‘보훈나무’라는 상징성을 외관에 담아 품격을 높였다.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기념 조형물이 있다. 보훈 유공자들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미국의 심장인 워싱턴이라는 도시 전체가 보여 주고 있다. 한국전쟁 기념비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FREEDOM IS NOT FREE)고 큰 글씨로 씌어 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오늘의 자유가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다. 선진국일수록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에 대한 예우가 극진하다. 수십 년 전 전사자의 유해를 찾아 송환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급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보훈회관 기공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보훈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길 바란다.
  • 11월 11일 11시를 기억하자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양훈모>

    11월 11일 11시를 기억하자 <서울남부보훈지청 보훈과 양훈모>

    인터넷에서 11월 11일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기념일들이 나온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빼빼로 데이로 기억 될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며, 영연방 국가 사람들에게는 현충일, 미국 사람들에게는 제대 군인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 날은 우리나라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올해로 9년째 진행 중인 Turn Toward Busan(부산을 향하여)이라는 행사가 진행되는 날이다. 우리는 6.25전쟁을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만 기억하고, 이 전쟁에는 일면식도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자유, 평화를 위하여 참여했던 UN군이 있었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그들의 공훈과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행사는 6.25전쟁에 참여했던 캐나다의 빈스커트니씨가 2007년에 유엔군의 희생을 기리고자 제안하여 시작된 행사로 2008년부터 국가보훈처 주관 행사로 진행되고 있고, 2014년부터 유엔참전 21개국과 함께하는 국제추모행사로 진행하고 있다. 왜 부산인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1951년 유엔군 사령부 묘지를 시작으로 59년 유엔과 대한민국간 협정을 체결하여 6.25에 참여했던 11개국, 2,300기의 묘지가 안장되어 있고, 유해를 찾지 못한 전몰장병들의 추모명비가 있다. 6.25전쟁기간 유엔군의 전사자는 총 4만여명이다.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국가보훈처에서는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11월 11일, 11시에 1분간 부산을 향해서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11시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1분간만 부산을 향해서 우리를 위해 스러져간 무명의 용사들을 위해 추모의 묵념을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게 원조를 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는 6.25전쟁에 참여했던 유엔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하자. 11월 11일 11시 그 시간을.
  • 文대통령 “굳건한 한미동맹…北도발 반드시 막겠다”

    文대통령 “굳건한 한미동맹…北도발 반드시 막겠다”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 추념사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굳건한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공조로 반드시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에 보낸 추념사를 통해 “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북한 도발에 대응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긴밀한 공조로 역대 최고 수준의 제재와 압박이 이뤄지고 있으며 반드시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의 평화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고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2주 후에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며 “강하고 위대한 한·미동맹의 힘을 확인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지혜를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날 추도식은 6·25 전쟁의 가장 참혹한 전투로 꼽히는 1950년 11~12월 장진호 전투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거행됐다. 문 대통령의 추념사는 추도식에 참석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대독했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은 유엔군에 불리했던 당시 전세를 역전시켜냈다”며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저의 부모님은 흥남철수작전으로 구출된 피난민이었다”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장진호 용사들에게 저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한 참전용사와 한·미 양국 장병을 향해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의 공헌이 더욱 귀하게 기록되고 국민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추도식에는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군과 카투사 생존자, 전진구 해병대사령관, 루크먼 제임스 주한 미 해병대사령관,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회원 등이 참석했다. 흥남철수작전을 이끈 고 에드워드 포니 미 해군 대령의 증손자인 벤 포니 씨도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故윤영하 소령 어머니의 ‘특별한 편지’

    故윤영하 소령 어머니의 ‘특별한 편지’

    ‘제2연평해전 희생 잊지 않겠다’…文대통령 1년전 친필 서명 편지 윤소령 어머니 “큰 힘” 감사 인사에 …文 “전사자 예우 소급적용 기대”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제2연평해전 등 전사자·순직자 유가족의 청와대 오찬장. 제2연평해전에서 숨진 윤영하 소령의 어머니 황덕희씨가 특별한 편지 한 장을 품에서 꺼내들었다. 2016년 9월 문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에게 보낸 친필 서명이 담긴 편지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2002년 6월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14년이 흘렀는데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이 세월이 지났다고 희미해지겠습니까”라며 “정치인 이전에 부모 된 사람으로서 슬픔을 느낀다”고 적었다. 이어 “군인을 보면 내 자식을 보는 것처럼 짠하고 애틋한 마음, 다시는 자식 같은 군인들이 내 자식처럼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 말입니다”라고 썼다. 문 대통령은 또 “연평해전 용사의 희생에 보답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고자 평화를 지키는 안보를 넘어서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안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적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북방한계선(NLL)을 지켜 낸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겠다”면서 “유가족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맘 편히 지내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고 끝을 맺었다. 오찬에서 황씨는 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여준 뒤 유가족을 위로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큰 힘이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은 남북 교전이고, 그 의미에 맞게 예우되지 않아 안타깝다. 참여정부 때 예우 규정을 만들었으나 소급적용이 안돼 국민성금으로 대신했다”면서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앞으로 마음을 모으면 유가족들의 소급적용 소망이 이뤄지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이날 문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진 오찬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 유가족을 포함해 K9 자주포 폭발사고 순직 병사,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순직 공무원, 과로 순직 집배원, 화성 엽총난사 사건 순직 경찰 등의 유가족 33명이 참석했다. 낮 12시부터 80여분간 진행된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안녕하시냐고 인사드리는 것도 송구하지만 그래도 뵙고 싶었다”면서 “명절이라 가슴 한편이 뻥 뚫리고 얼마나 안타까우시겠느냐. 여러분의 마음 빈 곳을 국가가 채울 순 없지만, 국가가 함께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에게 “경내를 한 번 둘러보고 가시라. 안내하겠다”고 즉석 제안했고 국무회의실과 접견실, 대통령 집무실을 안내한 뒤 입구에 나와 배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베트남 파병 전사자 묘역에 헌화

    베트남 파병 전사자 묘역에 헌화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6번 묘역에서 농협 대학생 홍보대사 ‘NH영서포터스’가 헌화 및 묘역정화 활동을 하고 있다. 26번 묘역은 월남 파병 전사자 1482명이 안장된 곳으로 농협중앙회는 2012년 현충원과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빨치산 토벌작전 영웅, 66년 만의 귀환

    6·25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에서 북한 빨치산을 토벌하다가 전사한 한진홍(당시 21세) 일병의 유해가 전사 66년여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9일 경남 합천군 초계면 내동 마을회관에서 이 마을에 사는 한 일병의 아들 한윤식(68)씨에게 아버지의 유해 등을 전달하는 ‘호국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했다. 유해와 함께 가족에게 전달된 물품들은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 수습 시 관을 덮었던 태극기, 발굴 유품 등이다. 한 일병은 결혼 후 아들을 낳고 살다가 1951년 1월 육군 직할부대인 결사유격대에 입대했다. 한 달여 만에 북한군 후방지역 침투 작전에 참가한 한 일병은 대원들과 함께 강원도 어은산을 향해 침투하던 중 2월 15일 인제군 설악산 저항령 일대에서 빨치산을 공격하다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유해는 지난해 11월 8일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저항령에서 수습됐다. 한 등산객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저항령 등반 중 유해 목격담이 단서가 됐다. 이 글이 유해발굴단 소속 서일권(38) 탐사관의 눈에 띄었고 곧바로 현장탐사와 발굴이 이어졌다. 한 일병의 신원은 아들 한씨가 이미 2014년 11월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둬 가능했다. 한 일병은 지난 2000년 국군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122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로 기록됐다. 한씨는 “너무나 감격스럽고 국방부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국군 전사자는 12만 3000여명에 이른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단독] 역사의식 없는 정부… 천안함 기림비도 “가치 없다” 졸속 반출

    [단독] 역사의식 없는 정부… 천안함 기림비도 “가치 없다” 졸속 반출

    문화재청이 지난해 말 평택기지로 반출을 승인한 용산 미군기지 내 기념물 55점은 대부분 주한미군과 관련된 것들이다. 따라서 얼핏 가볍게 생각하면 ‘미군 기념물을 미군이 가져가겠다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볼 수도 있다. 문화재청도 이런 판단을 토대로 반출을 승인했을 수 있다.하지만 이는 역사의식이 결여된 편의주의적 사고로, 특히 공무원들이 이같이 사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역사나 문화재, 기념물을 통시적(通時的) 관점에서 보지 않고, 단일 물품(item)처럼 사고하는 단편적 시각이 정부의 판단을 지배할 경우 우리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주한미군의 기념물이라고 모두 반출을 허용해 버리면 지난 60여년간 축적된 ‘용산의 현대사’가 통째로 공동화(空洞化)되는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서울신문이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용산 미군기지 내 기념물·기념비 이전 평가 결과 목록’을 살펴보면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13일 단 하루 만에 미군 측이 요구한 용산기지 내 기념물 68점 중 55점에 대해 반출을 승인했다.문화재청은 이날 1차 서면평가만으로 미군 측이 요구한 용산기지 내 기념물 68점 중 51점에 대해 ‘주한미군 역사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모두 이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미7사단 소속 코이너 소위의 이름을 딴 캠프 코이너 안내 동판, 첫 미국고문사절단장 윌리엄 로버츠 장군을 기리는 로버츠 광장 안내 동판,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제8군 사령관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한 낙동강전투 등을 지휘한 워커 장군을 기리는 동상과 안내판 등이 포함됐다.또 이순신 장군 동상과 천안함 관련 기림비, 석탑, 석등 등에 대해서는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반출을 승인했다. 문화재청은 같은 날 2차 현지실사를 통해 기념물 4건을 추가로 반출 승인했다. 졸속 심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반면 문화재청이 용산에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은 포탄병기념비, 조선시대 남단 유적터, 조선시대 문인석상, 일제시대 초소 등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사팀 명단 공개 요청엔 “불가” 문화재청이 이처럼 반출을 승인한 55점 가운데 지난 6월까지 윌턴 H 워커 장군 동상 등 12점이 평택기지로 이전 완료됐다. 나머지 43점은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함께 모두 이전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반출을 승인한 조사팀의 명단을 공개해 달라는 서울신문의 문의에 대해 “한·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문화재보호분과회의의 ‘주한미군기지 내 문화재 조사를 위한 절차서’ 규정상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정부의 판단 기준은 단순히 ‘용산기지 조성 후 미군과 관련이 됐느냐, 안 됐느냐’”라면서 “기념물 하나하나로 판단할 것이냐 역사적, 공간적 차원에서 판단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한국 정부는 기념물 하나하나에 대한 판정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도 “결국 기나긴 용산 군사기지 역사에서 미군이 주둔했던 역사는 소거해 버린 것”이라면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만 용산의 역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역사라는 것은 단편적으로 볼 게 아니라 유적이나 돌 하나도 전체 맥락 속에서 역사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반출을 허가한 캠프코이너 안내 동판의 코이너 소위는 단순히 주한미군 역사와 관련된 인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해 사망한 군인으로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전 승인된 나이트 필드 기념비도 3사단 7보병연대 F중대 소속의 노아 나이트 일병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이트 일병은 1951년 11월 23~24일 고왕산 부근 고지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급조폭발물을 휴대한 채 아군 진지로 돌입하는 중공군을 저지하다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미국은 나이트 일병의 탁월한 용기를 인정,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김 실장은 “나이트 필드는 한미연합군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의 주요 의식이 치러졌던 곳”이라면서 “군 수뇌부와 역대 대통령들이 이곳에서 행사를 치렀는데 이를 가져가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1차 서면조사에서 반출을 승인한 한국전쟁 미군 기념비(만주사변 전사자 충혼비)는 미군 역사와만 관련이 됐다고 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본래 충혼비는 일본군이 1931년 만주사변에서 사망한 일본군 병사들을 추모하고자 1935년 용산기지 자리에 세웠다. 주한미군이 1953년 용산기지 주둔을 시작하면서 충혼비의 비석을 교체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전사자 기념비로 재건립했다. 이는 일본군 병참 기지에서 미군기지로 외국군의 주둔지가 됐던 용산의 역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주한미군 역사와 관련성이 높고, 원형이 심하게 손상됐다”는 이유를 들어 반출 승인했다. 신 교수는 “충혼비는 한국을 식민 지배한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고, 한국을 구해준 미군의 역사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면서 “미군이 여기에 얹혀서 기념비를 만들었으니 미군이 가져가도 된다고 하는 것은 한·미 기억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이를 소거시켜 버리고 미국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용산기지 역사화’ 공론화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이처럼 역사에 대한 주체 의식 없이 기념물 반출을 허가함에 따라 용산기지 이전 후 조성되는 국가공원도 ‘미군 주둔의 역사’는 빠진 허울뿐인 국가공원이 될 공산이 커졌다고 우려한다. 신 교수는 “1953년부터 현재까지 미군이 주둔했던 64년간의 세월을 어떻게 역사화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나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 실장은 “미군 존재의 흔적을 모두 소거하면 미군 주둔의 역사가 어떻게 설명되겠느냐”면서 “기념물을 되돌려받지 못한다면 이를 기록할 표지석이라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기지를 어떻게 역사화할 것인지 공론화가 필요하다”면서 “현재 용산국가공원 사업은 국토교통부에서만 맡고 있는데, 다양한 주체가 공원 조성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국무총리실 산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서해 용사들의 흉상

    서해 용사들의 흉상

    16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동산에서 열린 서해수호 55용사 흉상 부조 제막식에서 한 유족이 부조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있다. 대전현충원에는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 도발로 희생당한 전사자들이 잠들어 있다. 대전 연합뉴스
  • 日서 ‘한반도 징병자 명부’ 첫 출판

    日서 ‘한반도 징병자 명부’ 첫 출판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강제로 징병당했다가 일본군으로 희생된 군인과 군속의 명부를 한 일본인이 20여년 동안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학원강사 출신인 기쿠치 데아키(75·도쿄도 다치가와시)는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군인 또는 군속으로 징병당했다가 전쟁에서 숨진 한반도 출신자 명부를 정리한 책 ‘구(舊) 일본군한반도출신 군인·군속사망자명부’를 9일 일본 도쿄의 신칸샤에서 펴냈다. 도쿄신문은 이날 책에 적힌 사람들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전달한 한반도 출신 전사자 명단 속 2만 2000명이라고 전했다. 한국 시민단체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일본 소송을 돕다가 해당 명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쿠치는 명부를 개인적으로 입수한 뒤 1993년부터 일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 개별 인물들의 자세한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과거 군부대 기록 등 다양한 과거 자료를 찾아 생년월일, 소속부대, 사망 이유, 본적지 등 14개 항목으로 책에 적어 넣었다. 이름은 당시 창씨개명으로 바뀌어 있던 일본명으로 돼 있다. 사망지는 오키나와에서부터 동남아 지역까지 광범위하다. 한반도 출신 징병자의 명부가 책으로 출판된 것은 처음으로, 한반도 출신자들이 전쟁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전할 귀중한 자료가 된 셈이다. 기쿠치는 일본군에 의해 전선으로 투입되기 직전, 도쿄의 해군숙사에 대기 중이던 한국 경상북도 출신 120여명의 청년이 1945년 3월 10일 도쿄 공습으로 하룻밤 사이에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책을 출판한 신칸샤의 고이삼 대표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조선인들도 많이 희생됐음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역사학자인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가쿠인대 명예교수는 “기쿠치의 집념으로 한반도 출신자들이 어떻게 끌려왔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게 됐다”며 “책을 보면 일본의 전후 처리가 얼마나 불충분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속초 유골, 6·25 전사자 유해 아니다”

    “속초 유골, 6·25 전사자 유해 아니다”

    29일 강원 속초에서 주차장 공사 중 발견한 유골 여섯 구는 6·25전쟁 전사자 유해가 아니라는 유해발굴감식단의 감식 결과가 나왔다.유해발굴감식단은 이장 흔적, 다양한 연령대, 유류품 미발견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전사자 유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감식단은 처음부터 함께 묻힌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딘가에 묻혀 있던 뼈를 한 곳에 옮겨다 묻었다는 추측이다. 턱뼈나 치아 상태 등을 보아 연령대가 어린이에서부터 노인까지 다양했으며, 여성 유골도 간혹 섞여 있었다. 사망 당시 20대로 보이는 유골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군번 줄, 헬멧, 수통, 군화 등 전사자로 볼 수 있는 유품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감식반은 전사자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감식단 관계자는 “여러 정황을 미루어보아 6·25전쟁 전사자로 보긴 어려웠다”며 “유골을 경찰에 인계하고 현장에서 철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6·25전쟁 전사자는 아니라고 결론 나면서 이들 유골이 어떻게 한곳에 묻혔는지에 대한 궁금증만 커지고 있다. 주민 다수가 이 일대가 예전에 공동묘지로 쓰였다고 얘기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1963년에 해일이 일어나 주민 다수가 숨졌다는 얘기도 있으나 기상청 확인 결과 실제 1964년 일본 니가타 현 부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강원 동해안에 해일이 일어난 사례가 있으나 집계한 피해규모는 없다. 6·25전쟁 전사자 유골만 모아 이장해 유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설도 돈다. 이번 유골 발견 현장에서 멀지 않은 ‘모래기’라는 지역에서 주택을 짓던 중 엄청난 양의 유해를 발견한 적이 있으며 이를 모아 어딘가에 이장했는데 그곳이 바로 이번 발견 장소라는 이야기다. 경찰 관계자는 “감식절차를 거친 뒤 행정기관에 인계하면 무연고자 시신으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초서 공사 중 20대 추정 유골 6구 발견…“6·25 전사자 가능성”

    속초서 공사 중 20대 추정 유골 6구 발견…“6·25 전사자 가능성”

    강원 속초에서 주차장 공사 중 유골이 다수 발견된 가운데 6·25 당시 전사자들의 것일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29일 속초경찰서에 따르면 오전 10시 15분쯤 속초시 영랑동의 한 횟집 주차장 조성 공사장에서 굴착기로 땅을 파던 중 유골 여섯 구가 발견됐다. 치아 상태 등 외관상 유골 상당수가 20대 정도의 젊은 사람으로 보인다 유골은 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땅을 파던 중 50년 된 은행나무 밑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들어 유골 최초 발견 지점과 1m 떨어진 공사장 내에서 한 구가 추가로 발견됐으며, 현재도 주차장 터에서는 유골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유골 중에는 두개골이 부서지는 등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도 있다. 총상 등 눈에 띄는 흔적은 없다. 그러나 군번 줄, 헬멧, 수통, 군화 등 전사자로 볼 수 있는 유품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6·25 때 매장당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면서도 단순 공동묘지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유골이 발견된 일대가 해안가와 밀접한 구릉 지형으로 예전에 공동묘지로 쓰였다는 주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 매장이 아니라 집단매장인데다 관이 발견되지 않아 공동묘지로 보기에도 석연찮은 점이 있다. 현장에는 군 유해발굴감식단도 나와 유골을 살피는 중이다. 군 관계자는 “공동묘지라면 일정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묻었을 텐데 집단매장일 가능성도 있다”며 “6·25 때 일대에서 큰 전투가 일어나 전사자가 꽤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인근 지역에서 6·25 전사자 유해도 발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1963년도에 해일이 일어나 주민 다수가 숨졌다는 얘기도 있으나 당국은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실제 1964년 일본 니가타 현 부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강원 동해안에 해일이 일어난 사례가 있으나 집계된 피해규모는 없다. 경찰은 유골을 수습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2연평해전 6용사 부친 ‘명예함장’ 된다

    해군 오늘 15주년 기념식 위촉 “희생장병 영원히 기억해 주길”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6용사의 아버지들이 아들 이름을 붙인 해군 유도탄고속함의 명예함장이 된다. 해군은 29일 오전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열리는 제2연평해전 15주년 기념식에서 6용사 아버지들을 명예함장으로 위촉한다고 28일 밝혔다. 이에 따라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정의 정장이었던 윤 소령의 부친 윤두호(75), 조타장 한상국 상사의 부친 한진복(70), 21포 사수 조천형 중사의 부친 조상근(74), 22포 사수 황도현 중사의 부친 황은태(70), M60 사수 서후원 중사의 부친 서영석(64), 의무병 박동혁 병장의 부친 박남준(60)씨가 각각 자식의 이름을 함명으로 사용하는 400t급 유도탄고속함의 명예함장을 맡는다. 6용사 아버지는 자식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해군 장병들의 정신전력 고취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앞서 해군은 6용사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수호하는 유도탄고속함의 이름을 윤영하함,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 박동혁함 등으로 명명했다. 유도탄고속함은 길이 63m, 폭 9m로 승조원 40여명을 태우고 40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다. 해성 대함미사일 4기와 76㎜ 및 40㎜ 함포 각각 1문을 탑재하고 있다. 윤두호씨는 “함명을 아들의 이름으로 해 준 해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국민들께서 제2연평해전 6용사를 비롯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병들을 영원히 기억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2연평해전은 한·일월드컵 3·4위전이 열렸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이 전투로 우리 측은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으며, 북한군은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평생 찾아 헤맨 전우들, 그 곁으로 떠난 老兵

    평생 찾아 헤맨 전우들, 그 곁으로 떠난 老兵

    유해 찾아 수십년간 전국 순회 전투 현장서 우연히 국유단 만나 생생 증언으로 유해발굴에 기여 예비역 이등상사 서정열씨는 6·25전쟁 참전 용사다. 7사단 소속으로 강원도 양구 전투와 경상도 영천 전투 등 수많은 격전에 참여했다. 전우들의 운명은 생존자와 전사자로 갈렸다. 서씨는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 품에 돌려보내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평생 다짐하며 살아 왔다. 홀로 전투의 흔적을 좇아 전국의 산야를 돌아다닌 지 수십년이다.2014년 10월 여전히 전투 현장에서 기억을 되살리던 서씨는 자신의 책무 완수에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지원병’들을 만났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양구 백석산 일대를 찾았다가 우연히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장병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의 기억을 토대로 국유단은 현장에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서씨는 국유단과 함께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을 오르며 전투 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유해 발굴에 큰 힘을 보탰다. 국유단도 서씨의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유해 발굴에 속도를 냈다. 하지만 ‘노병’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자 평생의 책무로 삼았던 일을 끝내 완수하지 못하고 영면했다. 지난 4월 말 인천의 다세대주택 자택에서 가스 폭발로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다 지난달 초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국유단은 26일 국립대전현충원 내 고인의 묘소를 참배하고, 감사패와 생전 고인의 유해 발굴 활동을 담은 영상물을 헌정했다. 앞서 국유단의 유해 발굴 홍보 영상에 고인과 함께 출연했던 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도 지난 13일 참배 후 “명복을 빕니다. 이 땅의 자유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겼으며 많은 국민들도 댓글로 애도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국유단 관계자는 “국유단이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고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아직도 산야에 홀로 계신 12만 3000여위의 호국영령들이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유해 발굴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대한해협 해전 승리를 기억하며…

    대한해협 해전 승리를 기억하며…

    26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열린 대한해협 해전 전승 67주년 기념행사에서 구축함 문무대왕함(4400t)을 탄 해군 장교들이 백두산함 전사자를 추모하며 해상헌화하고 있다. 대한해협 해전은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이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침투하던 북한 1000t급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해전이다. 부산 연합뉴스
  • 6·25 한국전쟁의 숨은 영웅…목숨 바친 경찰들

    6·25 한국전쟁의 숨은 영웅…목숨 바친 경찰들

    6·25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불행한 역사 속에는 또다른 희생자들이 있다. 각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던 수만명에 이르는 경찰도 여러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24일 경찰청은 한국전쟁 기간 동원된 경찰력은 6만 3427명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 1만 859명이 교전 중 전사 또는 실종되거나 북한군에게 납치돼 순직 처리됐고, 698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들 경찰관들은 연합군과 함께 투입돼 최전선에서 전투를 치르거나 각자 근무하던 지역에서 북한국과 교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1950년 6월 25일 춘천의 내평지서(지구대)에서 근무하던 노종해 지서장 등 9명은 압도적 장비와 화력, 병력으로 공격을 퍼붓는 북한군과 1시간 이상 교전하며 군의 움직임을 묶었다. 이들이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는 동안 국군 6사단은 춘천 남쪽에 저지선을 구축했고 이는 이후 북한군의 춘천 점령 시도를 무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들 9명은 모두 전사했다. 7월에는 호남 지역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의 파죽지세 속에 곡성경찰서 경찰관들이 지역을 지키고자 곡성에 남았다. 상부는 이미 퇴각 명령을 내린 후였다. 이들은 29일 압록교 주변에 매복했다가 북한군을 기습해 완승을 거뒀다. 이에 북한군은 주변 지역에 주둔하던 부대들을 곡성으로 소집해 북한군 2개 연대가 전경대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고, 전경대는 결국 48명의 전사자를 낸 뒤 태안사에서 탈출했다. 같은달 강경경찰서(논산경찰서) 경찰관 220명은 1000여명에 이르는 북한군 부대와 교전했다. 북한군과의 18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서장을 비롯한 경찰관 83명이 전사했다. 강경서 전투는 북한군 주력부대의 호남지역 진출을 지연시켜 낙동강 도하작전에 차질을 빚게 했다. 11-12월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매우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다. 이 전투에서는 경찰관 중 자원자를 뽑아 별도로 훈련해 구성한 ‘화랑경찰대’와 ‘소속 미상의 경찰 1개 소대’가 연합군과 함께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참전한 미군 증언에 따르면 이들 경찰부대는 열악한 장비와 무기를 갖고도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최전선뿐만 아니라 후방에서도 경찰들의 활약이 빛났다. 1951년 9월 13일 경남 산청군 일대에서는 빨치산 57사단과 산청군 생비량지서의 전투가 벌어졌다. 빨치산 병력은 1000명, 지서를 지키는 경찰은 100명에 불과했다. 이날 생포된 경찰관 5명과 의용경찰 15명은 다음날 인민재판을 거쳐 목숨을 잃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군부대 사격장서 두개골 발견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군부대 사격장서 두개골 발견

    6·25 전쟁 발발 67주년을 앞두고 전방 지역에서 사람의 두개골이 발견됐다. 이 곳은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곳이다.연합뉴스는 지난 21일 오후 6시쯤 경기 포천 지역의 한 군부대 사격장에서 중장비로 진지를 구축하던 중 두개골 하나가 발견됐다고 23일 보도했다. 이 유골은 최소 20년 이상 지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해졌다. 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6·25 전쟁 당시 군사 작전 지역이었으며, 20년 전에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군과 경찰은 이 두개골이 6·25 전쟁 전사자의 유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신원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44회 서울보훈대상] 특수임무 공로자 서상수

    [제44회 서울보훈대상] 특수임무 공로자 서상수

    서상수(67)씨는 보훈 및 안보활동으로 국민들의 호국정신 함양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받아 왔다.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이나 호국보훈 퍼레이드 등 각종 보훈 기념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은 물론 독도영유권 수호 행사나 북한 핵개발 저지 규탄대회 등을 주도하는가 하면 특수임무 전사자 추모제를 실시해 국민들이 잘 몰랐던 특수임무 유공자들의 공훈을 알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공훈을 인정받아 2004년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지역 및 대민봉사 활동 또한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서울시지부 도봉구지회장을 맡아 월 10회 이상 회원들과 지역을 순찰하며 성폭력 예방 및 청소년 선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수임무부대 출신으로서 잠수 특기를 살려 수중정화 활동도 정례적으로 하고 있다. 회원 복지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연간 한 차례 회원 및 유가족들을 초청해 안보전적지 등을 답사하고 있다.
  •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전몰군경유족 안상필

    [제44회 서울보훈대상] 전몰군경유족 안상필

    안상필(76)씨는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서울시지부 성북구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보훈사업을 통해 국가유공자들을 예우하고, 국격을 높이는 데 앞장서 왔다. 2006년부터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 지킴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국립서울현충원의 무연고묘지 헌화 운동도 벌이고 있다. 터키와 태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 전사자 유족들을 위한 성금 모금에도 앞장서는 한편 매년 6·25 하루 전날에는 유자녀들을 대상으로 호국영령 추모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지역 공동체 의식 증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연말연시에는 지역의 90세 이상 노인과 불우이웃들을 살피고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과 등·하교생 지킴이 캠페인 등의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지역 내 공훈선양시설인 심우장과 미아리격전지 등의 보존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2008년에는 성북구청장, 2010년에는 서울상이군경회장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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