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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 부상당한 나에게 참수리호 펄 직접 치우라고 했다”

    “머리 부상당한 나에게 참수리호 펄 직접 치우라고 했다”

    갑판장으로 참전 이해영 예비역 원사머리 꿰맸는데 8일 만에 병원서 퇴원악몽 시달리는데 상부서 황당한 지시“너희들이 펄 안치우면 누가 치우겠냐” “상부에서 군 생활하는 동안 우리를 ‘특별관리’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대로 복귀하니 침몰한 참수리호를 뒤덮은 ‘펄’(해저 진흙)을 직접 치우라고 했습니다. 제가 맨발로, 그 썩은 펄을 치우다 무서운 독이 올라 병원까지 여러 번 다녔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2002년 제2연평해전에 ‘갑판장’으로 참전했던 이해영(56) 예비역 원사가 17년 만에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제2연평해전 전우회장으로, 지난해 9월 35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군복을 벗었습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이제 군인 신분이 아니니 속시원하게 우리 전우들 얘기를 해야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만 기억합니다. 그 뒤에 숨겨진 생존자들의 아픔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꼭 ‘진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합니다.●“내부에선 우리를 ‘패잔병’ 취급했다”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을 9시간여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내려온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참수리 고속정 357호’ 정장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습니다. 생존대원들은 포탄이 터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전투를 벌였고, 30여명이 사상한 적 경비정은 갑판이 대부분 부서진 채 NLL 너머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승전 대원들의 아픔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씨의 설명입니다. “머리 부위 피부가 탄에 맞아 찢어졌고 꿰맸는데 8일 만에 국군수도병원에서 내쫓기듯 나왔습니다. 실밥 겨우 뽑고 마음 안정도 안 된 나를 바로 2함대 의무대로 보내더라고요. 군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패잔병’으로 취급했습니다.” 전투 직후 정부는 이 사건을 ‘서해교전’으로 명명했습니다. ‘승전’이 아닌 ‘남북 충돌’ 의미가 강했습니다. 2008년이 돼서야 기존 승전인 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으로, 서해교전도 승전의 의미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했습니다. 그때 전사자 추모 행사도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정부 행사로 승격됐습니다. 이씨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내려온 상부의 지시는 인양한 참수리호에 가득 차 있는 펄을 치우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라우마로 악몽에 시달리는데 부대에서 생존대원들에게 펄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용역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지요. 그런데 상부에서는 ‘다른 대원들이 그걸 하겠냐. 너희들이 안 치우면 누가 치우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퇴원한 10여명이 그걸 물청소를 하면서 다 치웠습니다. 그때 군인 신분이어서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제2연평해전 ‘승전’했지만… 전사자만 특진 1999년 7월 4일 제1연평해전에 참가했던 해군 유공장병 7명은 1계급씩 특진을 했습니다. 군장병이 교전으로 특진한 것은 6·25전쟁과 베트남전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습니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 생존대원은 외면했습니다. 정부는 또 당시 윤영하 소령 등 전사자 6명과 심한 부상을 당했던 생존장병 3명을 각각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대상자로 정했습니다. 나머지 부사관 7명과 병사 6명은 무공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국방부 장관·참모총장 표창으로 격이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생존대원들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계속해야 할 상황이라 불만을 공개적으로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인사 우대도 없어 2007년 정식 심사까지 받은 뒤 상사에서 원사로 진급했습니다. 이씨는 이 대목에서 숨을 참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는 “참전용사에게 특진이나 훈장은커녕 국민 성금이 포함된 보상금 1000만원과 대통령 표창이 전부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훈격 격상 같은 명예 회복을 받고 싶다”고 토로했습니다. ●“12년 만에 트라우마 치료… 그것도 서울에서” 또 다른 생존자 곽진성(38) 예비역 하사는 제2연평해전 당시 ‘전기장’으로 참전했습니다. 그는 오른팔 관통상과 엉덩이 파편상을 입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 왔습니다. 8개월이나 치료를 받고 2003년 3월 전역했습니다. 그는 “‘부사관은 뺀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훈장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습니다. 또 “환자 후송이나 사후 지원을 하던 부대에서 승진자가 나오고 상을 받았지만 정작 참전대원은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전했습니다. 당시엔 국군기무사령부 관계자들이 사복을 입고 병원에 상주하며 모든 대화를 체크해 불만을 얘기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전기장으로 참전 곽진성 예비역 하사8개월간 부상 치료했는데 훈장 제외‘부사관은 뺀다’는 이상한 이유 내세워생존대원들 트라우마 치료도 못 받아 곽씨는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경험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생존대원 중에 정부 지원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대부분 사비로 치료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다 12년쯤 지나 정부에서 갑자기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러 서울로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곽씨는 “우리 일정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경남에 있는 내게 서울로 올라와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며 “실태조사를 해 보고 문제가 되니까 실적 쌓으려고 부른 것밖에 더 되겠나. 왜 오라고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보상금으로 300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씨보다 부상 정도가 심해 더 많은 보상금을 받은 겁니다. 그런데 10%인 300만원만 정부 지원금이었고 나머지 90%는 ‘국민 성금’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참전용사에게 보상금을 줄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전달한 것입니다. ●“지원부대 상 받는데 난 땡볕에서 박수 쳤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전투행위 자체는 보훈대상으로 예우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의 침략을 막으려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더라도 사망하거나, 7급 이상 상이 등급을 받거나, 훈장을 받지 못하면 국가유공자로 예우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17년이 지난 지금도 제2연평해전 참전 예비역 중 2명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받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세 번 이상 보훈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부상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연이어 탈락했습니다. 따라서 국가를 위해 특별히 헌신한 참전용사에 대해 예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제2연평해전 참전자는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수술하고 몸도 안 좋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청소를 했고, 깨끗한 군복 챙겨입고 땡볕에 나가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상 받을 때 박수 치고 있자니 너무 울적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게 우리가 과연 어떤 대우를 하고 있는지, 또 어떤 대우를 해 왔는지 곱씹어 봐야 할 때입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DMZ서 발굴한 유해까지… 6·25 전사자 630구 합동 봉안식

    DMZ서 발굴한 유해까지… 6·25 전사자 630구 합동 봉안식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국군 유해 630구에 대한 합동 봉안식이 1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됐다. 특히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9·19 남북 군사합의의 성과물로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굴된 260여구의 유해도 포함됐다. 국방부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국군 전사자 630구에 대한 합동 봉안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이 총리를 비롯해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보훈단체 대표 등 35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 봉안된 630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및 해병대 부대가 지난 3월부터 11월 말까지 DMZ 화살머리고지를 비롯해 경기도 파주·연천, 강원도 인제 등에서 발굴했다. 지난해 10월부터 DMZ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박재권 이등중사 등 3명은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유해는 신원 확인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합동 봉안식을 가진 국군 전사자 유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유해보존실)에 보관돼 신원 확인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총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유해 발굴을 시작한 이래 1만 3000여구가 발굴됐지만 전사자의 90%(12만여구)는 아직도 모시지 못했다”며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합동봉안식…DMZ 발굴 260여구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합동봉안식…DMZ 발굴 260여구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국군 유해 630구에 대한 합동 봉안식이 18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국방부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국군전사자 630구에 대한 합동 봉안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올해 봉안되는 630구의 국군전사자 유해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및 해병대 31개 사·여단급 부대가 지난 3월부터 11월말까지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를 비롯해 경기도 파주·연천, 강원도 인제 등 전후방 각지에서 발굴한 유해다. 이날 합동 봉안식에서는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가 실시된 이후 최초로 비무장지대에서 발굴된 260여구의 유해도 포함됐다. 현재 지난해 10월부터 DMZ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박재권 이등중사 등 3명은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발굴된 유해는 신원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방부는 내년에도 DMZ에서의 유해발굴을 계속해 수습되지 못한 유해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북측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동참하지 않고 있어 공동유해발굴 여부는 미지수다. 이날 합동봉안식을 가진 국군전사자 유해는 이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유해보존실)에 보관돼 신원확인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방부는 6·25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지난 2000년 4월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처음 시작한 이후 올해 발굴한 630구를 포함해 현재까지 약 1만여 구를 수습했다. 다만 전 장병의 유전자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미군과 달리 한국은 관련 정보가 부족해 유해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방부는 “내년이 6·25전쟁 70주년임을 고려해 유해발굴 사업을 한층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며 “향후 비무장지대 전역으로 유해발굴작업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포토] 이낙연 총리,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봉안식 참석

    [포토] 이낙연 총리,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봉안식 참석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6·25 전사자 발굴 유해 합동 봉안식에 참석했다. 2019.12.18 연합뉴스
  •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민족민주 영령의 성지… 산 자에겐 치열한 정치공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2차 국립서울현충원’ 편이 지난달 30일 동작구 상도동과 동작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를 출발했다. 구립 김영삼도서관을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 가옥에 방문했다. 김영삼 기념도서관은 내년 3월쯤 개관할 예정이어서 외관을 살펴보고 경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정치사에 ‘상도동’이라는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 전 대통령 가옥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받으며 김상학 비서관으로부터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과 연금생활 등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듣고 눈에 익은 사진과 기념품, 휘호, 단풍나무를 즐겼다. 가옥에는 손명순(92) 여사가 기거하고 있다.서달산 명물로 떠오른 숲속도서관 가는 길은 11월의 마지막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현충원에서 호국지장사(옛 화장사)~박정희~김대중~임시정부 및 애국지사 묘역 순으로 둘러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앞에 화환이 즐비했는데 마침 전날이 고 육영수 여사의 94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상도동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현충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다들 아쉬워했다. 묘역 곳곳에 깃든 숱한 사연들이 저마다 앞다퉈 얘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김 전 대통령 가옥과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해설을 맡은 엄태호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의 만추 속으로 참가자들을 안내했다.동작은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한강 남쪽의 중요 나루였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던 동작진(銅雀津)이자 병선 6척이 주둔하던 군사기지 동작진(銅雀鎭)이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동재기나루라고 불렀다. 1954년 이곳에 국군묘지가 세워졌다.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이므로 군인과 인연이 있는 땅이다. 본래 동작이란 무덤을 장식한 구리봉황을 뜻하므로 땅 이름과 땅 주인이 서로 들어맞았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성이자 무덤이던 동작대에서 딴 동작이라는 지명이 조선 한양의 한강변 나루터 마을에 붙고 그곳이 현대 서울의 동작구와 동작동이라는 지명으로 이어졌다가 결국 국립묘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국군묘지에서 1965년 동작동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1996년부터 국립현충원이 됐다. 국립묘지라는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되 묘역 관리기관의 명칭만 바꿨다. 2006년 국립대전현충원 등과 구별하기 위해 국립서울현충원이 됐다. 144만㎡의 부지에 무명용사 11만여위를 비롯해 모두 17만 9000여기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대왕이 “아! 산천은 변천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저 오왕 합려의 북산 무덤에 색칠한 금오리가 남아 있지 않고, 위왕 조조 서릉의 망지는 동작이라는 명칭만 남았을 뿐이다…”라며 “내가 죽으면 동해바다에 장사 지내라”고 유언했다. 이 세상 영웅과 화려한 무덤이 다 사라지고 결국 ‘동작’이라는 이름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조의 무덤에 구리로 만든 거대한 새를 세운 동작대에서 이름을 이어받은 동작구와 동작동에 국군묘지와 국립묘지가 세워지고 독립지사와 임정요인, 전직 대통령 등을 모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장소인문학에서 말하는 땅의 내력이다.조선시대 한강이 오늘의 철도와 고속도로를 합친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할 때 왼쪽 서빙고나루, 오른쪽 노량나루의 중앙에 놓인 동작나루는 남대문을 나서서 용산 청파역을 거쳐 경기도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중 ‘경조오부도’에 이 길을 과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청파역에서 노량나루를 건너면 시흥으로 향했다. 동작진을 건너 과천으로 가거나 노량진을 건너 시흥으로 가는 두 길은 수원에서 만나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지방으로 이어졌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과 1900년 노량진~용산 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놓이면서 동작진은 노량진에 밀렸다. 조선시대 가리기 힘들었던 두 나루의 우열은 근대기 들어 노량진이 앞섰다. 그 덕분에 비어 있던 동작진에 국립묘지가 깃들 수 있었다.옛 동작나루를 그린 실경산수화 2점이 전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동작진’과 장시흥(1714~1789)의 ‘동작촌’이다. 동작진이 나루터를 포함한 마을 전체를 그렸다면 동작촌은 동작나루의 솟은 암산과 나루에서 사당, 과천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즐비한 기와집을 클로즈업했다. 정선이 1744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동작진’은 오늘의 현충원을 중심에 두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배경 삼았다. 동작나루 일대 한강을 동작강이라고 불렀다. 권문세가의 별서(별장)가 자리잡았다. 인조반정의 공신 이귀가 세운 창회정이 정선의 그림에 엿보인다. 광해군 때의 권신 박승종의 별서 퇴우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인조의 동생 능봉군이나 남용익, 이세필, 윤두수 등 문신의 별서도 상지동에 있었다. 조선시대 현충원 일대를 상지동이라고 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 호국지장사는 신라 고찰 화장사다. 삼성동 대부분이 봉은사 땅이었듯 현충원 대부분이 화장사 소유였다. 선조의 조모 창빈 안씨 묘도 널찍하게 자리를 잡았다.동작나루에는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산 정약용은 31세 때 ‘동작나루에서 진주로 가시는 부친을 송별하며’란 제목의 시를 남겼다. “나루터에 저 멀리 떠나가는 배/모래밭에 말 세우고 바라본다네…”로 시작하는 효심 어린 시를 썼다. 그러나 이 시를 쓴 해 부친이 진주에서 숨졌으니 마지막 이별 인사가 된 셈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도 동작나루 풍경을 그린 ‘동작진’이라는 시가 전한다. 동작나루는 정치의 공간이기도 했다. 숙종 때 남인의 영수 윤휴는 왕의 부름을 받자 “신의 애초의 뜻은 전하가 계시는 궁전의 뜰에 나아가 하직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면서 동작나루의 숙소에 3달을 머물며 출사 거부의 사직상소를 올렸다. ‘정치 쇼’였다. 그러나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세상이 바뀌고, 남인이 제거되면서 윤휴는 죄인이 돼 국문을 당한 뒤 사약을 받았다. 동작나루에서 여유작작하며 석 달을 버티다 동작강을 건넌 뒤 한 달 만에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은 민족민주영령들의 성지이자 국가 정통성의 뿌리다. 죽은 자의 공간이지만 산 사람들을 위한 정치공간이기도 하다. 혁명이나 변환의 시기나 행사 때마다 주요 인사들이 얼굴을 내미는 정치무대이기 때문이다. 246만명의 전사자와 전범자를 합사한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국립묘지로 성지화되면서 참배 여부를 놓고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빚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조조의 무덤 동작대에서 전래된 동작나루의 전설이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땅의 숙명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33회 양천고성 ■집결 장소:12월 7일(토) 오전 10시 양천향교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사설] 9·19 군사합의 위반한 북, 한반도 평화 거부해선 안돼

    북한이 최근 북측의 최서남단인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포사격은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해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다. 남북군사합의에서는 창린도는 물론 연평도, 백령도, 장산곶 등 남북 총 80㎞에 이르는 서해 일대를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으로 설정, 군사훈련 및 포사격 등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교착 국면에 빠져 있는 북미, 남북 관계 속 대화의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짐작되더라도 이는 최후의 금도를 어긴 행위다. 이러한 군사합의 위반 행위에 대해 국방부는 어제 오전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이용해 엄중한 항의와 함께 군사합의 준수 등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보냈다. 문제는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이다. 9·19 남북 군사합의는 남북 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핵심 성과 중 하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 철수, 한강·임진강 하구 공동이용, 전사자 유해 공동 발굴 등을 담은 군사합의는 남북이 평화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물적 토대를 제공해 왔다. 그렇기에 그동안 북한 또한 연이은 미사일 실험 발사 등 군사행동을 진행하는 속에서도 이를 존중하며 지켜왔던 것이다. 이러한 남북 간 군사합의 자체가 깨졌다는 점에서, 또한 북측의 단순한 실수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 또한 일상적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전통문 수준의 항의로는 당초 설정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복원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의 주요한 합의이자 올 초 김 위원장 신년사의 주요 내용인 개성공단 재가동 및 금강산 관광 재개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등으로 지지부진한 현실이다. 이번 포사격은 남측과 미국을 향한 경고의 성격 또한 내포돼 있다.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해 북한에 공식 항의하는 것과 별개로, 금강산 시설물 철거 등을 의제로 남북교류의 새로운 접근법을 갖고 한반도 평화 및 남북 교류에 나서면서 북측 또한 이에 응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 “비극 반복되지 않아야” 한·미·베트남 참전 군인들, 평화를 외치다

    “비극 반복되지 않아야” 한·미·베트남 참전 군인들, 평화를 외치다

    세 국가 참전군인 대담 한국서 처음 열려“상대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리 절실”전쟁의 고통·인간에 대한 성찰 나눠“오늘 만나보니 투이 선생은 나의 적군이었네요.”(김낙영 작가) “어떤 적도 평생의 적은 아니잖아요.”(쿠엇꽝투이 작가) 1972년 국군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김낙영(71) 작가가 악수를 청하자 북베트남군 소속이었던 쿠엇꽝투이(69) 작가가 웃으며 화답했다. 서로 총을 겨눴던 이들은 종전 40여년 만에 손을 맞잡았다. 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갤러리허브에서 열린 ‘월남에서 돌아온 그들’ 대담에서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전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인 ‘미안해요 베트남’ 20주년을 맞아 이 행사를 기획했다. 1970년 파병됐던 미국의 제럴드 웨이트(72) 볼주립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까지 세 국가 참전군인이 참석했다. 한국에서 세 국가 참전 군인이 공개 대화한 건 처음이다. 세 사람은 자유주의 수호, 외화벌이, 조국 수호 등 각기 다른 명분으로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전쟁의 상처는 같았다. 군인 가문에서 자라 참전을 당연히 받아들였던 웨이트 교수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됐다”며 “지금까지 평화학을 가르치며 객관적 회고와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1년 베트남 여아를 입양한 웨이트 교수는 “딸을 보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베트남에서의 일이 떠올라 복합적 감정이 든다”고 했다. 김 작가는 당시 고뇌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신에게 ‘제발 적을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전장에 나가면 ‘가장 먼저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면서 “전쟁 이후에는 무소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혈서를 쓰고 자원입대한 투이 작가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상대가 쓰러지면 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고통이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작가와 인류학자로 평생을 살며 전쟁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이어 오고 있다. 이들은 “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폭력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막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이 작가는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기 위해, 또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전쟁에 발을 들이면, 그 전쟁을 빠져나오는 데는 훨씬 긴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했다. 이어 “베트남은 여전히 전사자 수천명의 유해를 찾지 못했고, 지뢰를 밟아 생명을 잃는 어린이들의 소식이 여전히 들려온다”고 전했다. 제럴드 교수는 “모든 전쟁은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군인은 복종을 해야할 의무를 갖고 있다”면서 “그것이 적법한지 판단하고 전쟁을 막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로 사상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돼야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대화의 기회가 더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도 “적이었던 사람들도 이렇게 모여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따뜻한 자리였다”고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폭력을 행사했던 경험이 광주 5·18의 민간인 학살로도 이어진다”면서 “베트남전에 대한 성찰은 우리가 가한 폭력을 넘어, 한국 사회의 남은 폭력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계기”라고 설명했다. 글 사진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137번째 6·25 전사자 故원영철 일등중사, 가족 품으로

    강원 인제군 서화면 일대에서 지난달에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원영철 일등중사로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9일 “10월 1일 강원 인제군 서화면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이 원 일등중사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원 일등중사는 2000년 4월 유해 발굴이 시작된 후 137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다. 유해는 인식표, 버클, 전투화 등과 함께 발견됐다. 이 중 유해의 가슴 부위에서 발견된 인식표는 신원 확인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인식표에 적힌 고인의 이름을 토대로 전사자 명부와 매화장 보고서(전사 기록지)에서 원 일등중사의 기록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원 일등중사의 남동생, 여동생, 친조카, 외조카 등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비교 검사를 진행해 신원을 찾아냈다. 원 일등중사는 1930년 9월 15일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20세 때 6·25 전쟁에 참전했다.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1951년 8∼9월 강원도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있었던 제1차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신원 확인은 유해 발굴부터 최종 확인까지 44일 만에 이뤄졌다. 유해발굴감식단은 “6·25 전사자 중 최단기간 내에 신원을 확인한 사례”라고 했다. 원 일등중사의 동생 원영화(77)씨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그동안 가족들이 형님을 많이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귀환 행사를 진행하고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포토] 전쟁기념관 찾은 유엔 참전용사들

    [포토] 전쟁기념관 찾은 유엔 참전용사들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찾은 유엔 참전용사들이 전사자명비에서 참배하고 있다. 2019.11.12 연합뉴스
  • 문 대통령 “3차 북미회담이 중대 고비…많은 진전 있었다”

    문 대통령 “3차 북미회담이 중대 고비…많은 진전 있었다”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 방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4일 노보텔 방콕 임팩트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실질·마무리 발언에서 “북미 간 실무협상과 3차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며 “오랜 대결·적대를 해소하는 일이 쉬울리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다행히 북미 정상 간 신뢰는 여전하고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 초소 철수 및 전사자 유해 발굴, 공동경비구역(JSA) 완전 비무장화,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 미국 대통령의 첫 군사분계선(MDL) 월경 등을 언급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아세안의 지지·협력으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위에서 대륙·해양의 장점을 잇는 교량국가로 동북아와 아세안의 평화·번영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의 지지·협력이 필요하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관심·지지를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3 과제로 모두발언에서 언급했던 보호무역주의 확산 외에도 테러, 기후변화, 재난관리, 미래 인재양성 등을 거론하며 한국의 역할을 설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다양한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협력체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며 “테러·기후변화·재난 등 초국경적 도전 과제들은 특히 인구가 밀집된 아시아에서 큰 위험요인이 되고 있고, 개별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 아세안+3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아세안은 초국가적 위기 대응을 위해 ‘2018-2022 아세안+3 워크플랜’을 마련했고 한국도 적극 참여했다”며 “매년 성과를 점검·개선해 실효성을 높여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말레이시아·태국이 제기한 ‘3차 동아시아 비전그룹’에서도 실효성 있는 협력 방안 연구를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며 “한국은 앞으로도 아시아가 마주한 도전에 함께 대처하고 공동 대응능력을 향상하는 데 적극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시아의 정신은 자연과의 조화와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며, 아시아의 정신이 기후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 중심의 미래를 여는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아시아의 인재 양성은 미래의 희망을 길러내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은 아세안의 이공계 대학생 연수와 직업훈련 교사 초청 연수를 확대 중”이라며 “아세안+3 인재교류 사업인 에임스(AIMS) 프로그램 참여 대학을 올해 두 배로 확대했고 내년부터 아세안 직업훈련 교사와 학생들을 초청해 기술직업교육훈련(TVET)을 실시하는 등 인재 양성 협력 폭을 더욱 넓히겠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아세안 10국 모두를 방문해 협력을 구하는 등 아시아 연계성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며 “개방성·포용성·투명성·국제규범 존중 원칙을 기초로 역내 다양한 구상과 연계 협력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 한중일 3국의 상호 연계와 협력이 굳건해질수록 아시아 공동체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새 유전자 검사로… 6·25 전사자, 발굴 10년 만에 가족 품에

    새 유전자 검사로… 6·25 전사자, 발굴 10년 만에 가족 품에

    호국영웅 귀환 행사… 재검사로 확인2009년 강원 인제군 일대에서 발굴된 6·25 참전용사의 유해가 10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에 돌아갔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31일 경기 부천 보훈회관에서 고 김영인 육군 결사유격대원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고 유가족에게 신원확인통지서 등을 전달했다. 행사에서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김 대원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국가보훈처장 위로패와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했다. 김 대원은 1951년 1월 28세에 육군 결사유격대 제1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같은 해 2∼3월쯤 설악산 일대 침투 작전 중 매복한 인민군의 총격을 받고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대원은 1923년 경기 화성시 향남읍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8세에 결혼해 네 자녀를 두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입대했다. 김 대원의 유해는 2009년 9월 인제군 일대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지만 당시에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국방부는 2013년부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을 도입했으며 지난 6월부터는 2013년 이전에 검사했던 6·25 전사자의 유해를 재검사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초 아들 김해수(75)씨가 등록한 DNA를 통해 김 대원의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으로 유해를 재검사해 신원을 확인한 사례는 김 대원이 처음이다. 김 대원의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돼지열병 확산에… 새달까지 연장 DMZ 유해발굴 ‘난감’

    ASF 지속 땐 소규모 병력 투입 등 구상 국방부 “다음주 지자체 등과 재개 협의”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진행돼온 6·25 전사자 유해발굴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한 달 가까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진행되던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은 ASF가 확산함에 따라 이달 4일부터 중단됐다. 해당 지역은 지난해 11월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남북을 잇는 전술도로를 개설해 멧돼지가 남측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또 유해발굴을 위한 대규모 병력이 투입됐던 부분에서도 ASF 확산 우려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에서는 이달 30일까지였던 유해발굴 기간을 다음달 말까지로 연장했던 터라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해 합의한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는 이달 30일까지로 유해발굴 기간을 정했지만 북한은 북미 대화 결렬 여파로 끝까지 호응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최근 북미 대화 재개 기류와 유해발굴의 추가적 성과를 내기 위해 기간을 연장키로 했다. 하지만 ASF의 확산으로 의도했던 추가적인 성과에 장애물이 발생해 군도 난감한 모습이다. 국방부는 일단 ASF의 상황을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만약 상황이 오래 지속된다면 소규모의 지뢰 제거 등 기초작업을 완료해 유해가 드러난 지역만이라도 소규모 병력을 투입해 유해를 수습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음주 지자체 등과 재개 시점 및 병력 출입 등을 협의할 예정”이라며 “기존에 발굴된 유해와 유품만을 수습해도 3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내년에도 DMZ 유해발굴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의 참여 여부는 북미 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초상화 속 6·25 전사 부친, 68년 만에 찾아

    초상화 속 6·25 전사 부친, 68년 만에 찾아

    2011년 강원 평창군 일대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8년 만에 확인됐다. 딸이 사전에 등록한 유전자(DNA) 시료와 유전자 검사기법의 향상 덕택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1년 5월 6일 강원 평창군 면온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에 대해 김홍조 하사(그림·현 계급 일병)로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김 하사의 신원은 딸 김외숙(69)씨가 등록했던 DNA를 통해 최종 확인됐으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을 적용해 가능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김 하사 유해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 발굴을 시작한 후 136번째이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으로 신원확인을 한 두 번째 사례다. 국방부는 2013년 이전에는 DNA 검사에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유전자 정보인 좌위 16개를 분석했으나, 최근에는 23개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2013년 이전에 검사했던 6·25 전사자 유전자에 대해 재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김 하사는 1950년 27세에 국군 제7사단 8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듬해 2월과 3월에 강원 평창군 면온리 일대에서 벌어진 속사리·하진부리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하사는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9세에 결혼해 네 자녀를 낳았다. 김 하사가 전사하자 부인은 사진을 본뜬 초상화를 액자로 만들어 방에 걸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초상화 속 아버지를 68년 만에 만난 딸 김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이 순간을 맞이하시면 좋을텐데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국방부는 추후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허준 축제에서 강서의 숨은 영웅 만난다

    서울 강서구는 지난 13일 허준근린공원 일대에서 열린 ‘허준축제’에서 ‘제23회 강서구민상’을 시상했다고 15일 밝혔다. 구는 매년 남다른 열정으로 지역 사회 발전에 공헌한 주민들을 선정, 구민상을 시상하고 있다. 올해는 9명이 수상자로 뽑혔으며 양승춘(75) 개화산전투전사자 추모사업회장이 대상을 받았다. 양 회장은 6·25 무명용사 충혼위령비 건립과 위령제 개최 등이 호평을 받았다. 지역사회발전 부문은 지역사회봉사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한 신영숙(65)씨와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주민자치사업을 이끈 이광현(62)씨가, 구민화합봉사 부문은 36년간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한 박경희(69)씨와 사랑의 집수리 사업 등을 주도한 이정하(61)씨가, 환경보호 부문은 15년간 환경 정화 활동을 한 김상열(53)씨와 지역 공원지킴이 배흥태(67)씨가, 문화체육발전 부문은 청소년 축제를 활성화한 한상숙(64)씨가, 미풍양속 부문은 15년간 소외계층 어르신을 돌본 윤윤임(53)씨가 수상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미국, 북한과 유해송환 재개 협의 시도

    미국, 북한과 유해송환 재개 협의 시도

    미국이 한국전쟁 북한에 있는 미군 유해 소환을 재개하기 위해 북한과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북한에 제안할 2020 회계연도(2019년 10월 1일∼2020년 9월 30일) 공동조사 계획서를 작성한 상태”라며 “조사단이 내년 봄에 북한을 방문해 유해 발굴을 위한 북한과의 공동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계속해서 협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대변인은 이어 “2019 회계연도에는 서신 교환과 두 차례 실무급 회담 등 일련의 소통이 있었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전했다.미군 유해 송환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사항이다. 북한은 지난해 8월 미군 추정 유해를 상자 55개에 담아 송환했고, 이를 통해 미국은 현재까지 35∼40명의 미군 전사자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등을 거치며 이후의 송환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6·25 미군 전사자 2명 유해 69년 만에 부모 곁에 묻혀

    6·25 미군 전사자 2명 유해 69년 만에 부모 곁에 묻혀

    6·25전쟁 당시 실종됐던 미군 전사자 2명이 69년 만에 고향의 부모 묘소 곁에 묻히게 됐다. CNN이 2일(현지시간) 소개한 이들은 미 아칸소주 러마 출신 육군 상병 제리 개리슨과 뉴욕주 던커크 출신 육군 병장 제럴드 버나드 래이매커다. 이들은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실종돼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지난해 북미 대화 국면에서 북한이 미국에 전달한 미군 유해에서 최근 이들의 신원이 확인됐다. 자신이 13살 때 헤어져 수십년 만에 오빠의 유해를 찾은 개리슨의 여동생 앨리스는 상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소회를 밝혔다. 앨리스는 “오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묘 옆에 그를 묻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리슨의 장례식은 오는 22일 예정돼 있다. 래이매커는 장진호 전투 당시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은 뒤로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조카 달린 쿨리는 “삼촌이 드디어 집으로 오게 돼 가족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래이매커는 19일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 곁에 묻힐 예정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中, DNA 기술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신원 첫 확인

    中, DNA 기술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신원 첫 확인

    중국이 처음으로 DNA 기술을 활용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글로벌타임스 등에 따르면 국가퇴역군인사무부는 전날 중국 랴오닝성 선양의 ‘항미원조(한국전쟁) 열사능원’에서 신원이 확인된 6명에 대해 유가족 재회 행사를 가졌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돕고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 가운데 19만 7000여명이 전사했다. 중국은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전사자 유해 599구를 찾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대다수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2015년부터 군사과학원 군사의학연구원 등에서 DNA 기술을 활용해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천쩡지의 동생은 CCTV 인터뷰에서 “형이 이렇게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면서 “(유해를 돌려받아 신원을 확인할 만큼) 중국이 강해졌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쉬광위 중국 군비관리·군축협회 이사는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앞두고 열린 행사로 중국 전역에 애국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들 전사자를 통해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희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단독] 軍 “DMZ 유해발굴 한 달 더 연장”… 北, 참여할까

    북미 대화 움직임 재개 속 공동발굴 기대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이 9·19 군사합의서에 명시된 기간보다 한 달 연장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30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DMZ 유해발굴을 올해 11월 말까지 실시할 계획”이라며 “오늘 유해발굴감식단 등 관련 부대에 발굴계획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앞서 남북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를 통해 화살머리고지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했다. 남북은 유해발굴 기간을 지난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로 정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북한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여파로 공동 유해발굴에 응하지 않아 남측 단독의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돼 왔다. 기한인 10월 말이 임박함에 따라 국방부는 최근 발굴 연장 여부를 검토, 기온 저하로 땅이 얼어 유해발굴이 어려운 12월 전까지는 계속 발굴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관계자는 “11월 기온을 확인해 보니 추가적인 지뢰제거 작업은 제한되지만 이미 지뢰제거를 완료한 지역의 유해발굴은 계속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기간을 연장한 배경에는 최근 북미 대화 움직임이 재개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유일하게 군사합의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유해발굴 작업을 최대한 지속해 북한 참여 분위기를 계속 조성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관계자는 “북미 간 대화가 북한의 참여에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남측은 오래전부터 북한 참여 시 바로 공동으로 발굴작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춘 상황”이라고 전했다. DMZ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도 인도적 차원에서 추가 유해발굴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조만간 북측에 추가 발굴 계획을 통보할 계획이다. 지난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화살머리고지에서 약 1600여점의 유해와 4만 3000여점의 유품을 발굴했다. 그중 3명의 국군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시우민·온유·엔 등 ‘K팝 스타’ 총출동...군대 뮤지컬 ‘귀환’ 흥행할까?

    시우민·온유·엔 등 ‘K팝 스타’ 총출동...군대 뮤지컬 ‘귀환’ 흥행할까?

    군복무중인 연예인 출신 병사들이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주제로 한 육군본부 창작 뮤지컬 ‘귀환-그날의 약속’ 무대에 선다. 과거 전쟁의 한 가운데서 끊임없이 고뇌하던 청년 승호 역에 엑소 시우민(김민석), 샤이니 온유(이진기)가 더블 캐스팅됐으며 친구들의 경외 대상이었던 해일 역에 빅스 엔(차학연)과 뮤지컬 배우 이재균이 출연한다. 승호의 친구 진구 역에 인피니트 이성열과 배우 김민석이, 승호의 손자 현민 역에는 조권과 뮤지컬 배우 고은성, 유해 발굴단으로 현민을 이끄는 우주 역에 인피니트 김성규, 워너원 윤지성이 각각 캐스팅됐다.‘귀환’은 6.25 전쟁 참전용사 승호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유해를 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 6.25 전쟁이 남긴 미수습 전사자의 유해는 13만 3000여위에 달한다. 육군은 지난 2000년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해 1만여 위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아직도 12만 3000여위의 호국 영웅들이 산야에 묻혀있다. 작품은 승호의 현재와 6.25 전쟁 당시 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과거 승호 역에 더블 캐스팅된 시우민과 온유는 같은 소속사인데다 현재 육군 2사단에서 함께 군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엑소 멤버로는 처음 입대한 시우민은 영화 ‘봉이 김선달’과 웹드라마 ‘도전에 반하다’에서 연기를 선보인 적은 있으나 정식 뮤지컬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우민은 “뮤지컬 발성은 제작진의 도움 하에 많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있다”면서 “훈련소에서 7주 훈련을 하고 나서 공연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오디션에 임했다”고 밝혔다. ‘귀환’은 육군본부가 선보이는 5번째 창작 뮤지컬이다. 강하늘, 지창욱 등이 출연한 전작 ‘신흥무관학교’가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이례적인 흥행을 거두며 ‘군뮤’(군대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귀환’은 내년 한국 전쟁 70주년을 앞두고 비무장 지대 DMZ에 묻힌 남북 전사자 공동 유해 발굴을 염원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귀환’에는 연예인 출신 병사 이외에도 20여명의 군 장병들이 앙상블로 총출동한다. 군은 연예병사 제도가 사라진 가운데 연예인 출신 병사들이 뮤지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국민과 장병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됐으며, 모든 부대에 공문을 보내 지원자를 받았고 오디션 과정을 거쳐 공정하게 배우들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공연 관계자는 이들의 두발을 문제 삼는 일부 지적에 대해 “연출자의 의도와 요청에 의해 일부 출연자의 경우 두발을 기르고 출연했다”고 말했다. ‘귀환’은 10월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개막한다. 시우민, 온유 등이 직접 부르는 뮤지컬 ‘귀환’의 뮤지컬 넘버와 기자회견 포토 타임 현장을 지금 네이버TV, 유튜브 ‘은기자의 왜떴을까TV‘에서 만나보세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軍사망사고 13건 진상규명… 명예 되찾았다

    1985년 육군의 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김모 병장은 6월 20일 오전 1시 50분쯤 전방초소(GP)에서 순찰근무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면서 초소에서 경계용 수류탄 1발을 훔쳤다. 이어 내무반에서 약 7m 떨어진 벙커 계단에서 자신의 몸에 수류탄을 터뜨려 사망했다. 군은 당시 “전역 8개월을 앞둔 김 병장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장기간 GP 근무로 인한 염증으로 자살했다”고 결론 냈다. 이후 34년여가 지나서야 김 병장의 사망 배경에 선임하사의 지속적 가혹행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5일 출범 1주년을 맞아 ‘조사활동 보고회’를 열고 김 병장을 포함해 13건의 진상규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김 병장의 경우 부대 차원에서 가해자와 격리 조치를 해야 한다는 군의관의 조언을 무시하고 계속 선임하사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도록 했는데, 이 점도 김 병장의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 이날 위원회는 1951년 6·25전쟁에 참전해 포탄 파편이 가슴에 박히는 부상으로 제대 후 사망했지만, 군 병원 치료기록을 확인할 수 없어 ‘전사자’로 인정되지 못한 박모 소위 사례도 소개했다. 위원회가 군 병원 참고인 등을 조사한 결과 치료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1969년 원인 미상의 수류탄 폭발 사고로 사망한 뒤 호기심에 수류탄을 만지다 폭발시켰다는 누명을 썼던 정모 일병 역시 조사 결과 폭발에는 본인 책임이 없었으며, 따라서 공상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위원회의 재심 요청을 수용해 전사 및 순직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위원회는 지난해 9월 출범 후 총 703건의 진정사건을 접수해 619건을 조사하고 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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