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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기밀해제 보고서…전쟁투입 러軍 87% 손실”

    “美 기밀해제 보고서…전쟁투입 러軍 87% 손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전 보유하고 있던 현역 지상군 병력의 87%를 상실했으며, 마찬가지로 탱크의 3분의 2도 잃었다고 미국 CNN방송과 로이터통신이 각각 보도했다. CNN 취재원은 최근 미 의회에 제공된 기밀해제 정보보고서를 인용, 러시아가 계약병과 징집병 등 우크라이나전에 투입한 36만명의 병력 중 31만5000명을 상실했다고 전했다. 또 3500대의 탱크 중 2200대, 보병 전투차량과 장갑차 1만 3600대 중 4400대를 잃어 손실률은 32%에 이른다고 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도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군의 총 전사자 규모가 34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총참모부는 이날 공개한 전황 자료에서 “지난해 2월 24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적군의 총 전투 손실은 장병 34만 1500명”이라고 집계했다. 또 탱크 5682대, 전투장갑차량 1만 594대, 다연장포 919대, 방공망 605개, 전술 무인기(드론) 6173대, 항공기 324대, 순항미사일 1596기 등을 파괴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소식통에 따르면 기밀해제 정보보고서는 지난 11일 미 의회에 제공됐다. 보고서에서 미 당국은 11월 말 현재 러시아가 침공 전 지상군 장비 비축량의 4분의 1 이상을 잃은 것으로 집계했다. 또 러시아가 병력과 장갑차 등을 잃어 군사 현대화가 18년이나 늦어졌다고 평가했다. 소식통은 “러시아군이 이러한 손실로 인해 모병 기준을 완화하고 죄수나 나이가 많은 민간인까지도 전장에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러시아군은 전장에 1300대의 장갑차를 남겨두고 있으며 1970년대에 생산된 T-62 탱크로 전력을 보강해야 한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다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규모 인력과 장비 손실에도 불구, 내년 2월 전쟁 발발 2주년을 맞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취약하다”고 이 소식통은 경고했다. 그는 “기대를 모았던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별 성과가 없었고,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앞으로도 큰 이득을 볼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바이든 미 행정부가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추가 자금 지원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러시아는 서방측이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과장하는 반면, 우크라이나 사상자는 축소해 발표하고 있다고 반박해 왔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손실 규모를 국가 기밀로 취급하고 있다. 사상자 수가 공개된다면 전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8월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사망자 수가 약 7만명에 육박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 6·25전쟁 전사자 조도형 하사, 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6·25전쟁 전사자 조도형 하사, 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18세 젊은 나이에 고향인 전남 해남군을 떠나 6·25전쟁에 참전했다 강원 인제군에서 숨진 전사자가 72년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인제군 서화리 일대에서 발굴한 6·25전쟁 전사자 유해 신원을 국군 제8사단 소속 고(故) 조도형 하사로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한 이래 신원을 확인한 전사자는 224명으로 늘었다. 고인의 유해는 2021년 6월 지역주민과 참전용사의 증언을 토대로 6·25전쟁 당시 고지 쟁탈전이 치열했던 인제군 고성재 일대에서 국유단과 육군 제12사단 장병 100여명이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중 발견했다. 12사단 장병이 40㎝ 깊이에서 유해 한 점을 처음 식별했고, 국유단 전문 발굴병력이 최초 발견지점으로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머리부터 발까지 대부분의 골격이 남아 있는 형태로 수습했다. 이후 채취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분석해 가족관계를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1932년 2월 해남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1년 2월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노전평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노전평 전투는 1951년 8월 9일부터 9월 18일까지 인제군 서화계곡 노전평 부근에서 전개된 전투로, 국군 제8사단이 북한군 제2·13·15사단과 격전을 벌인 고지 쟁탈전이다. 고인의 유해를 유족에게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전날 유가족이 입원한 해남의 요양병원에서 열렸다. 고인의 외조카인 정완식씨는 “이렇게 외삼촌의 유해가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외삼촌의 유해를 보는 것만으로도 국가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 대만 외교부장 “우린에겐 중국과 달리 ‘자유볶음밥’ 있다” [대만은 지금]

    대만 외교부장 “우린에겐 중국과 달리 ‘자유볶음밥’ 있다” [대만은 지금]

    대만 외교부장이 볶음밥을 들고 “자유의 볶음밥”이라며 중국을 조롱했다.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은 5일 엑스(옛 트위터)에 볶음밥을 들고 찍은 영상을 공개하면서 최근 중국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된 계란볶음밥 논란을 비꼬았다. 공개된 9초짜리 영상에는 우 부장이 볶음밥과 맥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우 부장은 “저희는 ‘자유볶음밥’도 있고 ‘자유맥주’도 있다”며 “오늘 밤은 자유를 위해 건배하자”고 말했다. 우 부장은 대만에서 우리는 기분이 내킬 때마다 자유의 볶음밥 맛을 즐기고 자유의 맥주도 항상 신선하게 준비되어 있다며 사과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인들은 자유의 본질을 구현한 맛을 매일 즐긴다고 덧붙였다. 우 부장이 볶음밥을 들고 자유를 언급한 것은 중국에서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최근 계란볶음밥이 큰 논란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11월 25일경이 되면 계란볶음밥은 중국에서 금기처럼 여겨진다. 계란볶음밥은 1950년 11월 25일 6⋅25전쟁에서 사망한 마오쩌둥의 큰아들 마오안잉과 관계가 깊다. 그는 막사에서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가 나온 연기로 위치가 발각되면서 폭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계란은 북한이 중공 인민지원군의 지휘관 펑더화이(팽덕회)에게 준 것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 공산당에 불만이 있는 일부 중국인 네티즌들은 종종 마오안잉의 기일이나 생일인 10월 24일을 기점으로 계란볶음밥과 관련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올해에도 계란볶음밥 게시물이 중국 인터넷에 올라와 논란을 촉발시켰다. 지난 11월 27일 중국 셰프 왕훙 왕강은 웨이보(중국판 엑스)에 계란볶음밥 레시피 영상을 올려 중국 애국주의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다. 이들은 왕강이 마오안잉 서거일 직후 전사자를 모독하려는 의도를 갖고 악의적으로 계란볶음밥을 만드는 영상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영웅열사보호법에 따라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 법은 2018년 시행된 법으로 중국 공산당은 일부 학자들이 학문의 자유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미명 하에 중국 현대사를 왜곡하고 중공의 영웅과 열사를 폄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 회상한 文 “실명된 부인이 찾아와”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 회상한 文 “실명된 부인이 찾아와”

    1979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반란군들은 군사반란에 저항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고 했다.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 할 3공수가 반란군에게 가담하는 바람에 정병주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 유일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M16 소총에 왼팔을 맞았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문 전 대통령이 본 ‘서울의 봄’ 김오랑 중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며 실명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남편의 명예를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중령 진급과 무공훈장 추서를 받는 것이 목표였다. 백씨는 1990년 12월 당시 현직인 노태우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과 군사반란 장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려 했지만 소송을 포기했고, 1991년 6월 28일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지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5일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뒤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라며 백영옥씨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참으로 뼈아픈 역사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와 사회에 남긴 상처가 매우 크고 깊다. 아픈 역사일수록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때 그녀는 남편의 사망으로 인한 지극한 슬픔 때문에 눈물로 지내다 완전 실명 상태였고, 그 모습이 애잔했다”며 한 일간지 기자의 소개로 법률상담을 위해 찾아온 김 소령 부인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연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는 ‘전례 없는 소송이어서 결과를 전망하기 어렵지만, 피해자 개인 차원으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도모할 유일한 길’이라는 의견을 말해줬다. 그런데 소송 의지를 밝혔던 그녀가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기억했다. 문 전 대통령은 “기자로부터 들은 소식은 실족으로 추락사했다는 것”이라며 “장래가 촉망되던 남편에 이어 부인까지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 애달픈 일이다. 부디 저승에서 두 분이 이어져 행복하길 비는 마음”이라고 김 소령과 백 여사를 추모했다.지난해 ‘순직’에서 ‘전사’로 기존 군 기록에서는 “출동한 계엄군에게 대항하다가 김오랑 소령이 먼저 사격하자 계엄군이 응사하는 상호 총격전이 벌어져 계엄군이 발사한 M16 소총에 맞아 현장 사살”됐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반란군이 김 중령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고 총기를 난사하며 난입하자 김 중령이 권총을 쏘며 대항하다가 숨졌다는 선후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지 43년 만이자, 12.12 사건을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 지 25년 만에 故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탓에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 “역적이 잘 사는 역사 반복돼선 안 돼”…12·12 맞선 故김오랑 조카의 당부

    “역적이 잘 사는 역사 반복돼선 안 돼”…12·12 맞선 故김오랑 조카의 당부

    1979년 12월 13일 0시 20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반란을 진압하려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했다.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 할 3공수가 반란군에게 가담했기 때문에 정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뿐이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12일째 4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66)씨가 영화를 본 소감을 밝혔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아내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정해인) 배우가 삼촌과 많이 닮아서 보기 좋았다”면서 “삼촌이 죽는 장면은 눈물이 나서 차마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김 소령은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델이다.김 중령의 부고 소식은 12·12 다음 날 저녁이 돼서야 가족에게 전달됐다. 가슴과 배 등에 6발의 총탄을 맞은 김 중령의 시신은 거의 두 동강이 났고, 신군부는 김 소령의 시신을 특전사 뒷산에 암매장했다. 김씨는 “온 집안이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삼촌이 머지않아 별을 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며 “집안의 희망이었던 삼촌이 처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동네 강아지처럼 야산에 묻힌 충격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김 중령의 아내 백영옥 여사는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며 실명한 후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지었다. 김씨는 “수사관들이 숙모의 죽음은 실족사니까 너무 떠들지 말라고 하더라”며 “정병주 전 사령관 역시 숙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야산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까지 생각해보면 숙모의 죽음도 타살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2014년 정부는 김 중령에게 보국훈장을 추서했다. 김 중령이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여하거나 접적 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등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무공훈장 추서 요건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었다. 지난해 11월 국방부는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지 43년 만이자, 12·12사건을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 지 25년 만에 김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탓에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김씨는 “정부도 삼촌이 ‘전사’한 것이라고 결정한 만큼 이제라도 무공훈장으로 바꿔주는 게 맞다고 본다”며 “육군사관학교와 특전사령부 안에 삼촌의 흉상까지 세워진다면 그토록 매달렸던 명예 회복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국방부는 김 소령의 사망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김씨는 “요즘 보면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지 걱정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2019년 한 유튜브에 출연해 “12·12는 나라를 구하려고 나온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신 장관은 “쿠데타는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고, 대한민국 현실에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그때 (방송에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앞뒤 맥락을 좀 자르고 이야기한 것 같다. 저는 그(12·12)에 관한 대법원 확정판결과 정부 공식 입장을 100% 지지한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기도 안 찬다. 어떻게 반란을 편드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 될 수가 있느냐”면서 “이미 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판단이 다 끝난 사안에 대해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다. 그러면 우리가 역적의 가족이란 소리냐”고 되물었다. 영화가 흥행하는 것을 두고 김씨는 “시간이 흐르며 삼촌의 이름이 잊히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촌은 나라를 지키고 상관을 구하기 위해 몸을 바친 군인의 귀감이었다”며 “많은 분이 영화를 보고 삼촌의 희생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역적들은 편안하게 잘 살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은 고통받는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하마스 “전면 휴전 안하면 인질 석방도 없다”…전투 재개 후 240명 사망

    하마스 “전면 휴전 안하면 인질 석방도 없다”…전투 재개 후 240명 사망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2일(현지시간) 전면적인 휴전 없이는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도 더는 석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마스 정치국 2인자인 살레흐 알아루리 부국장은 이날 아랍권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전면적인 휴전과 모든 팔레스타인인 수감자의 석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인질을 풀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진행 중인 휴전 관련 협상은 없다”며 “이스라엘은 새로운 조건에 따른 인질·수감자 교환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알아루리는 “이스라엘은 아직도 우리가 아동과 여성 인질을 억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모든 여성과 어린이를 석방했으며, 이제 우리 수중에는 남성과 군인들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잡고 있는 성인 인질들은 과거에 군 복무를 했고, 지금도 (예비군으로) 복무 중인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알아루리는 또 휴전 합의의 조건으로 이스라엘과 시신을 교환하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숨진 이스라엘인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앞서 이스라엘 총리실은 휴전 재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며 중재국 카타르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 등에게 귀국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휴전 합의 위반을 이유로 가자지구 전투를 재개한 이스라엘군이 기존에 공격하지 않은 지역을 타격했다고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이 밝혔다. 갈란트 장관은 이날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된 예비군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지난 이틀간 개전 이후 공격하지 않은 지역을 타격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타격할 것”이라며 “우리는 지금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갈란트 장관은 또 “가자지구 북부의 하마스 지휘관들은 이스라엘군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며 “(가자 남부의) 칸 유니스와 라파의 지휘관들도 다른 이들의 상황을 통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교전 재개 후 이날 오전까지 가자지구 전역의 목표물 400곳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한편 하마스가 통제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 52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보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침략에 따른 희생자 규모는 1만 5207명으로 늘어났다”며 이 가운데 70%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주장했다. 보건부는 민간인 부상자만 4만 652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전날 오전 7시를 기해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합의 위반을 주장하며 전투를 다시 시작한 이후 19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보건부는 “이스라엘은 휴전이 끝난 후 민간인에 대한 공격 범위를 계속 확대 중이며, 가자지구에 폭격이 가해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하마스 측은 이날 다른 경로를 통해 휴전이 깨진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240명이 숨지고 540명이 다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와 전투원 전사자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집계한다. 사상자 수는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지만 대체로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푸틴, 러시아군 병력 17만 증원 “우리 할머니 때는 자녀 7~8명씩 낳았어”

    푸틴, 러시아군 병력 17만 증원 “우리 할머니 때는 자녀 7~8명씩 낳았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병력 17만명을 증원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1일(현지시간)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대로 실현되면 러시아는 기존 115만명에서 132만 명으로 15% 늘어난 군대를 보유한다.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 군사 작전’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이 이번 병력 증원의 배경이라고 밝히면서도 “병력 증원이 대규모 징병 확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자원병을 점진적으로 늘림으로써 증원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푸틴 대통령은 13만 7000명의 병력 증원을 위한 대통령령에 서명함으로써 병력 규모를 기존 101만 명에서 115만명으로 늘렸고, 다음달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30만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을 내려놓은 상태다. 군 의무 복무 연령 상한선도 기존 27세에서 30세로 높였다. 이와 함께 러시아 전역에서는 입대 시 현금 보너스를 약속하는 한편 대학·사회복지기관과 협업해 학생 및 실업자를 접촉하는 등 광범위한 동원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인권단체는 군 복무를 대가로 사면을 약속하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여름 이후 점령지의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에 빼앗긴 뒤 방어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이 주춤해졌음에도 추가 공세를 벌일 여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전사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지난달 영국 국방부는 이번 전쟁 기간 러시아군의 사망자와 영구적 부상자를 15만~19만명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반정부 매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러시아 군인이 약 4만 7000 명으로, 1979~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사자보다 3배 이상 많다고 보도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푸틴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온통 인구, 출산 등에 대한 생각들이 자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28일 크렘린궁에서 제15회 세계 러시아인 회의 화상연설을 통해 더 많은 자녀를 낳아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인사이더 닷컴은 그의 발언 요지를 전했다. “대가족이 보통이 되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할머니나 증조할머니들은 7~8명, 심지어 그 이상 아이들을 낳았다. 이런 특별한 전통을 보존하고 되살리자. 러시아인의 모든 인생 측면에서 대가족이 보통이 돼야 한다. 가족은 국가와 사회의 기초일 뿐만아니라 영적 경이이며, 도덕성의 원천이다. 러시아 인구를 보존하고 늘리는 일은 다가오는 10여년과 앞으로 몇 세대 우리 목표다. 이것이야말로 러시아 세계의 미래이며, 1000년 넘는 영원한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90만명의 추산되는 피란민을 양산했고, 러시아인 30만명이 징집되게 만들어 러시아의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켰다. 이에 책임을 져야 할 푸틴 대통령이 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녀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이런 것이 바로 독재자의 단면이다. 24년 전 집권한 이래 푸틴 대통령은 계속 출산율을 끌어올리려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했지만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러시아 통계청 로스스탯(Rosstat)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 러시아 인구는 1억 4644만 7424명으로 푸틴이 처음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보다 줄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예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인구학자 알렉세이 락샤는 지난 2월 AF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는 일꾼이 부족하다”면서 “이것은 오래 된 문제인데 징병이나 대량 이주 같은 요인 때문에 더욱 나빠졌다”고 말했다. 일부 러시아인들은 대가족을 이루면 정부가 토지를 불하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라디오프리유럽(라디오리버티)가 2002년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 본인은 4명 이상의 자녀를 둔 것으로 소문이 돌지만 한 번도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 푸틴, 115만→132만명 병력 증원 명령…우크라 침공후 두번째

    푸틴, 115만→132만명 병력 증원 명령…우크라 침공후 두번째

    국방부 “나토 확장 대응…대규모 징병 대신 자원병 점진적 확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병력 17만명을 증원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전체 러시아 병력 규모는 기존 115만명에서 132만명으로 15% 늘어나게 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군사작전’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으로 인해 자국에 대한 위협이 증가한 것이 이번 병력 증원의 배경이라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 국경 부근에 나토 연합군이 증강되고 방공망과 공격무기가 배치되고 있다”며 “나토 전술핵전력의 잠재력도 강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병력 증원은 나토의 공격적 활동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다만 “병력 증원이 대규모 징병 확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원병을 점진적으로 늘림으로써 증원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병력 규모를 확대한 것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3만 7000명의 병력 증원을 위한 대통령령에 서명함으로써 병력 규모를 기존 101만명에서 115만명으로 늘린 바 있다. 그 다음 달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30만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을 내리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러시아 국방부가 병력 규모를 150만명으로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26년까지 필요한 무기를 공급하고 관련 기반 시설을 건설하기로 하는 등 관련 작업 추진에 나섰다. 군 의무복무 연령 상한선도 기존 27세에서 30세로 상향됐다. 이와 함께 러시아 전역에서는 입대 시 현금 보너스를 약속하는 한편 대학·사회복지기관과 협업해 학생 및 실업자를 접촉하는 등 광범위한 동원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인권 단체는 군 복무를 대가로 사면을 약속하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추가 동원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동원령 자체가 무기한인 만큼 군이 필요할 때 언제든 예비군을 추가 소집할 수 있다고 AFP는 지적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병력 충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탓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여름 이후 점령지의 상당 부분을 우크라이나에 빼앗긴 뒤 방어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이 주춤해졌음에도 추가 공세를 벌일 여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전사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지난달 영국 국방부는 이번 전쟁 기간 러시아군의 사망자와 영구적 부상자를 15만~19만명으로 추산했다. 러시아 반정부 성향 매체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러시아 군인이 약 4만 7000명으로, 1979~1989년 10년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전사자보다 3배 이상 많다고 보도했다.
  • ‘서울의 봄’ 정해인이 연기한 ‘참군인’…일가족 실명·사망

    ‘서울의 봄’ 정해인이 연기한 ‘참군인’…일가족 실명·사망

    1979년 12월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수전사령부(특전사) 2층 사령관실에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제3공수여단 부대원 10여명이 들이닥쳤다. 반란군들은 군사반란에 저항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하려고 했다. 유사시 특전사령관을 지켜야 할 3공수가 반란군에게 가담하는 바람에 정병주 사령관 곁에 남은 건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 유일했다. 김 소령은 당시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사령관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반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M16 소총에 난사 당해 숨졌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M16 소총에 왼팔을 맞았다. 당시 35살이었던 김 소령은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지키고 군사 반란에 맞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다 희생됐다.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14년에는 보국훈장이 추서됐다. 김오랑 중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되며 실명한 후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지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12.12 군사 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6일 만에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김오랑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는 27일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배우의) 얼굴 자체가 삼촌 젊었을 때와 좀 많이 닮은 형태라, 베레모 쓰고 해놓으니까 생각이 많이 나더라”라고 전했다. 김씨는 김오랑 중령을 살해한 박종규 중령이 임종 직전 남긴 말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박 중령이) 자기가 죽으면 ‘오랑이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겠다’는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그렇다”라고 울먹였다. 김씨는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하면 다 아는 그런 계기가 됐으니까 이 영화 만든 사람한테 고맙다고 이야기나 한번 해주이소”라며 사과받지 못한 마음이 그저 답답하게 사무치면서도 역사를 다시 한번 남겨 줘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지난해 ‘순직’에서 ‘전사’로 기존 군 기록에서는 “출동한 계엄군에게 대항하다가 김오랑 소령이 먼저 사격하자 계엄군이 응사하는 상호 총격전이 벌어져 계엄군이 발사한 M16 소총에 맞아 현장 사살”됐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반란군이 김 중령의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고 총기를 난사하며 난입하자 김 중령이 권총을 쏘며 대항하다가 숨졌다는 선후 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란군의 총격에 숨진 지 43년 만이자, 12.12 사건을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 지 25년 만에 故 김오랑 중령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변경했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전사자는 ‘적과의 교전 또는 무장 폭동·반란 등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 탓에 사망한 사람’, 순직자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다.
  • 연평도 포격전 유족 “北 도발, 울분 삼키며 살아”

    연평도 포격전 유족 “北 도발, 울분 삼키며 살아”

    “우리는 국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과 잔혹함만을 원망하고 울분을 삼키며 살아왔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13주기인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산화한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씨는 추도사에서 “결혼도 하고 소중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갔을 아들이 없는 지난 13년의 시간 동안 우리 부모들은 아들 없는 아들 생일을 보내야 했고, 명절에는 아들의 묘역을 찾으며 아픔의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해병대 사령부는 순직한 서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유족이 참여한 가운데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연평도 포격전 제13주기 전투영웅 추모 및 전승기념식’을 열었다. 김씨는 “소중한 생명을 국가에 바친 전사자들의 희생 가치가 좀더 예우를 받고, 평생 고생 속에 살아가는 부모들의 아픔을 품어 주는 보훈 문화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연평도 포격전 유족 “北 도발, 울분 삼키며 살아”

    연평도 포격전 유족 “北 도발, 울분 삼키며 살아”

    “우리는 국가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과 잔혹함만을 원망하고 울분을 삼키며 살아왔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13주기인 23일 북한의 포격 도발로 산화한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씨는 추도사에서 “결혼도 하고 소중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갔을 아들이 없는 지난 13년의 시간 동안 우리 부모들은 아들 없는 아들 생일을 보내야 했고, 명절에는 아들의 묘역을 찾으며 아픔의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해병대 사령부는 순직한 서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유족이 참여한 가운데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연평도 포격전 제13주기 전투영웅 추모 및 전승기념식’을 열었다. 김씨는 “소중한 생명을 국가에 바친 전사자들의 희생 가치가 좀더 예우를 받고, 평생 고생 속에 살아가는 부모들의 아픔을 품어 주는 보훈 문화가 조성됐으면 한다”며 “이렇게 될 때 13년 전 북한 공산세력에 의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서정우와 문광욱의 억울한 영혼이 하늘에서 위로받고 그나마 행복한 안식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반대했다. 그는 “아들 정우가 자라고 태어난 광주에서 6·25전쟁 중에 중공군으로 참전한 정율성의 공원을 조성한다는 소식에 정말 하늘에서 아들이 분노하고 항의하고 억울해 할까 봐 적극적으로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연평도 포격전 참전용사와 현역 장병,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유승민 전 의원, 최원일 전 천안함장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 군에서 임무중 얻은 부상으로 전역 후 사망해도 전사·순직 인정

    군에서 임무중 얻은 부상으로 전역 후 사망해도 전사·순직 인정

    군 복무 중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이나 병을 얻은 뒤 해당 사유로 전역 후 사망해도 전사자나 순직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국방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군인사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공포됐다고 10일 밝혔다. 개정안에는 군 복무 중 부상이나 질병을 얻어 전역한 후 전역의 원인이 된 질병과 부상 때문에 사망한 경우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전사자 또는 순직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이전까진 신분이 군인인 경우에만 기준에 따라 전사·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전역 뒤 민간인 신분으로 사망하면 인정되지 않았다. 심신장애로 현역 복무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역 조치를 당할 수 있는데, 임무를 수행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은 경우라도 전역 뒤 사망하면 전사·순직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군은 현재 전투나 대간첩작전 등을 수행하다 사망한 군인을 전사자로, 심해 해난구조나 지뢰제거 등 임무 중 사망한 군인을 순직자로 인정하고 있으며 전역 뒤 사망한 경우까지 추가한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군대에서 당한 부상으로 사망했더라도 사망 당시 신분에 따라 예우와 보상에 차별이 있었다”며 “법과 시행령 개정으로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아시아 전쟁 위 쌓은 평화…냉전시대 폭력의 지정학

    아시아 전쟁 위 쌓은 평화…냉전시대 폭력의 지정학

    한국전·베트남전 등 아시아 전선미소 45년간 원조 80% 쏟아부어이념 대리전 넘어 종교·민족 대결작은 국가 세력균형 추 역할 강조 지리가 국가이익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지정학’(Geopolitics)은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고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던 19세기에 등장했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팽창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됐다는 오명으로 한동안 ‘문제적 학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지정학에 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지정학의 인기 덕분에 자국의 정치적, 외교적, 안보적 목적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지경학’, 기술이 국가의 성패를 가른다는 논리의 ‘기정학’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정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벽돌책’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폴 토머스 체임벌린 교수가 쓴 ‘아시아 1945-1990’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cold war) 기간 서구에서는 큰 전쟁이 없었는데 동아시아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은 왜 참혹한 ‘열전’(hot war)에 시달려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와 ‘국가 안보 문서보관소’가 기밀 해제한 미국, 소련, 중국의 문서, 중앙정보국(CIA) 문서, 비정부기구와 인권단체의 자료와 구술, 목격담 등으로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구성한다.중국 내전 250만명, 한국전쟁 300만명, 베트남전쟁 400만명, 캄보디아 킬링필드 167만명, 이란·이라크 전쟁 68만명 등 1945년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굵직한 전쟁 몇 개만 보더라도 희생자가 엄청나다. 미소로 대변되는 초강대국도 냉전 이후 아시아의 전선에 45년 동안 대외 원조 80%를 쏟아부었고 미군 전사자의 99.9%, 소련군 전사자 95%가 이곳에서 발생했다. 저자는 냉전 시대 아시아 지역 전쟁을 단순히 초강대국의 대리전으로 해석하는 기존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뿐 아니라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대규모 전쟁을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장기 평화’의 냉전 시대에 진입했다”는 서구의 역사적 시선은 아시아에 관한 한 완전히 잘못된 평가라고 강조한다.그런가 하면 ‘강대국 지정학’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출간된 그야말로 지정학의 살아 있는 고전이다. 이 책은 환태평양 지역과 유럽, 남미 지역 국가들의 지리와 힘의 관계를 분석하고 힘의 관계와 지리의 상호작용을 보여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은 고립주의가 아닌 늘 다른 대륙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했다. 단순히 이론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에 기반한 통찰과 예측을 제시하고 있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집필한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대항할 수 있도록 독일을 강한 국가로 남겨 두는 것이 미국에 이익이라는 조언이나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중국과 소련이 서로를 견제하게 될 것, 중국이 아시아 지배 세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다시 봐도 놀랍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세력균형론’은 주변 4강에 끼인 우리에게도 주는 의미가 크다. “세력균형 정책은 원래 강대국을 위한 정책이지만 작은 나라는 누구도 그 나라 영토를 원치 않게 하거나 완충국이나 세력균형의 추로 역할을 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 그의 말은 요즘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 유탄발사기로 이스라엘 장갑차 공격…하마스, 가자 전투 영상 공개

    유탄발사기로 이스라엘 장갑차 공격…하마스, 가자 전투 영상 공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북부에서 하마스 전투원들이 유탄발사기를 들고 이스라엘 군용 차량에 발포하는 모습 등을 담은 전투 영상을 공개했다.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하마스는 현지시간으로 8일 텔레그램을 통해 하마스 전투원 여러 명의 보디 카메라에 찍힌 이같은 영상을 공개하며 존재를 과시했다. 하마스는 해당 영상이 지난 2, 3일과 5, 6일에 각각 촬영됐다고 했다. 영상에 나타난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을 보면 이스라엘군에 대한 공격은 서로 다른 날짜나 몇 시간 간격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영상은 대부분 편집돼 있어 하마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측 피해 여부를 알 수 없다. 하마스는 임무가 성공적이었다고 할 뿐 이스라엘군 측 피해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또 영상이 어느 지역에서 찍힌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CNN은 지리적 위치 분석을 통해 세 곳의 주요 장소를 확인했다.여기에는 가자지구 북동쪽 끝 도시 ▲베이트 하눈과 이 도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7㎞ 떨어진 마을 ▲알아타트라, 그리고 이 마을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약 5㎞ 떨어진 ▲알샤티 난민캠프의 모습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알샤티 캠프는 현재 이스라엘군이 완전 포위 상태로 시가전을 벌이는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 안에 있다. 건물이 즐비한 도시나 주로 올리브 나무 과수원이 있는 시골 지역도 나오지만, 지리적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그러나 이같은 영상은 이스라엘군이 한 달 이상 하마스의 진지와 땅굴을 공격해 왔는데도 이 이슬람 무장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CNN은 지적했다. CNN의 군사분석가이자 퇴역장군인 마크 허틀링은 영상 검토 후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의 장갑차 등 일부 군용차량에 대해 특히 파괴적인 잠재력을 가진 성형작약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아군의 지상작전 중 무력화되거나 파괴된 군용차량의 수는 “작전상의 보안”을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자시티 내 땅굴과 그안에 있을 하마스 전투원들을 소탕하는 데는 최소 몇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습 등으로 폐허로 변한 건물을 활용해 매복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허틀링 분석가는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매복 공격에 완벽하게 대응하려면 모든 땅굴 기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며 입구 뿐 아니라 갱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하마스 잔당에 대한 소탕 작전은 차량으로 수행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되면 두더지 잡기와 같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각 건물을 직접 수색해야 하므로, 하마스의 소총병이나 저격병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지상전 개시 후 전사자 수는 33명으로 늘었다.
  • 이스라엘군 “하마스, 가자 북부서 통제력 잃어…땅굴 130곳 파괴” [핫이슈]

    이스라엘군 “하마스, 가자 북부서 통제력 잃어…땅굴 130곳 파괴” [핫이슈]

    이스라엘군(IDF)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통제권을 잃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다니엘 하가리 IDF 수석대변인(소장)은 이날 “하마스는 통제력을 잃었으며, 북부에서도 통제력을 계속 상실하고 있다”며 “하마스 지도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하가리 소장은 “가자지구 주민 5만명이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그들도 하마스가 북부에서 통제력을 잃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휴전이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은 주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특정 시간마다 인도주의적인 (교전) 일시 중단을 허용해오고 있다”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우리는 가자시티에 대한 공격을 계속 심화하고 있으며, 민간인 거주지와 인접한 땅굴 갱도를 차단하고 있다”며 “전략적 공격을 계획하던 하마스의 항공 및 해군 전력에 큰 타격을 가했다”고 전했다.실제 IDF는 지난달 지상작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터널(땅굴) 갱도 130여곳을 발견해 파괴했다고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이 이날 보도했다. IDF는 지상군이 땅굴과 로켓발사대 등 하마스 자산에 대한 기동과 위치 파악, 파괴할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전투공병부대가 노력해왔다고 TOI는 전했다. IDF에 따르면 460기갑여단 병력이 공병부대와 함께 땅굴의 환기 시스템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배터리가 있는 구조물 옆에서 땅굴 입구를 다수 발견했다. 또 나할 보병여단이 가자지구 북부에서 점령한 하마스 훈련소에서도 여러 개의 땅굴 입구를 발견했으며 발견한 모든 땅굴을 파괴했다고 IDF는 덧붙였다. 그 밖에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하눈 지역에서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가 운영하는 학교 인근에서도 땅굴이 발견돼 파괴했다고 IDF는 전했다. IDF는 몇 년 전부터 하마스가 유엔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테러 활동의 근거지로 삼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IDF는 지난달 27일부터 가자지구에 들어간 지상군이 현지에 머물면서 작전을 지속하며 병력 투입 규모와 공격 강도를 계속 늘려 왔다.특히 이번 가자지구 지상전에는 예비군으로 구성된 252사단 전체가 참전해 수백명의 하마스 대원을 제거하고 하마스 시설 등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IDF는 밝혔다. 예비군 사단 전체가 적진에서 작전한 사례는 지난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이후 41년 만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 개시 후 전사자 수는 33명으로 늘었다. 하루 전 가자 북부에서 하마스 테러분자들과 싸우다 전사한 공군 특수부대 샬다그 소속 요나단 차조르 일병과 이에 앞서 전사한 나할 여단 931대대 소속 노암 오세프 아부 하사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와 별도로 전투공병대 7107대대 소속 병사 2명, 460여단 198대대 소속 병사 1명, 460여단 196대대 소속 병사 1명이 이날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다.
  • 4주 만에 입 연 헤즈볼라 지도자…CNN “전쟁의 북소리 안 울려” 서방 안도

    4주 만에 입 연 헤즈볼라 지도자…CNN “전쟁의 북소리 안 울려” 서방 안도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끄는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이 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 대한 입장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뜻밖에도 상당히 온건한 내용이어서 서방 각국이 안도하고 있다. 그는 베이루트의 전사자 추모 행사에 동영상 연설을 통해 “모든 선택지가 고려 대상”이라며 이스라엘과 전면전 가능성도 언급했다. 하지만 “일차적 목표”는 가자지구에서 휴전을 달성하는 것이라면서 즉각 확전에 선을 긋고 이스라엘과 미국에 공을 넘겼다. 미국 CNN 방송은 팔레스타인 유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미국이 적대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그의 언급에 주목, “강경 발언에도 전쟁의 북소리를 울리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CNN은 “몇 주 동안 숙고한 끝에 자신의 강력한 준군사조직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며 “더 큰 규모의 지역 분쟁을 우려하고 그에게 싸움에 뛰어들지 말라고 경고해온 이스라엘의 서방 동맹들은 안도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스랄라는 약 90분간 연설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대해 언급하는 데 할애했다. 미국은 헤즈볼라 등 하마스 우호세력의 본격 참전을 억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근에 2개 항모전단을 배치한 상태다. 나스랄라는 “미국이 먼저 시작한 만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미국”이라며 이스라엘을 통제해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이런 언급은 당장 그의 계획에 더 광범위한 분쟁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짚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이튿날인 지난달 8일부터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군과 교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스랄라는 하마스의 기습이 동맹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고, 기습 결정을 내린 건 ”100%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BBC 방송은 “공격의 배후에 이란이 있다는 일각의 의혹에 거리를 둔 것”이라며 “나스랄라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또 다른 전쟁에 대한 욕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논평했다. 개전 이후 한 달 가까이 침묵을 지켜온 나스랄라의 이날 연설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일부 지역에 생중계됐다. 헤즈볼라에 전쟁을 촉구해온 일부 지지자들은 실망하는 기색도 보였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의 한 카페에서 연설을 지켜본 아부 모우사는 WP에 “연설에서 많은 걸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이스라엘은 며칠 안에 침묵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군사작전을 계속하며 “무력하고 혼란에 빠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인질이 억류됐을지 모를 장소를 폭격하는 이스라엘을 두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입장 표명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 “이것이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며 이스라엘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지 나흘 만에 나온 것이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지난 1일 테헤란에서 학생들에게 연설하며 이슬람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석유와 식량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무력충돌 중인 하마스를 비롯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 반군 후티,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등 무장세력을 지원하며 반미·반이스라엘을 내건 ‘저항의 축’을 구축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친이란 무장세력 가운데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등 서방은 현재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과 제한적으로 교전 중인 헤즈볼라의 본격 참전을 우려하고 있다.
  • 네타냐후, 병사 11명 희생에 “고통스러운 손실” 난민촌 희생자들은?

    네타냐후, 병사 11명 희생에 “고통스러운 손실” 난민촌 희생자들은?

    “우리는 중요한 성취도 이뤘으나 고통스러운 손실도 겪었다. 우리 군인들이 정의로운 전쟁, 조국을 위한 전쟁에 쓰러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날 가자지구 지상 작전 와중에 9명의 추가 전사자가 있었다며 숨진 장병은 모두 11명이라고 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확인했다. 추가 전사자 가운데 한 명은 지상전에 투입된 제7 기갑여단 77대대 소속이며, 나머지 8명은 기바티 보병여단의 일원이다. 전날 발표된 전사자 2명도 기바티 보병여단 소속이었다. 이스라엘군은 “기바티 여단 소속 전사자들이 타고 있던 전차가 하마스의 대전차 유도 미사일 공격을 받았고, 제7 기갑여단 소속 병사는 전차가 폭발물 위로 기동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기바티 여단에서는 중상자 1명을 포함해 4명이 부상했고, 전차 폭발 과정에 2명의 중상자가 나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소 11명의 전사를 확인한 뒤 “고통스러운 손실”이라면서도 하마스와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 통신과 BBC 방송이 전했다. 그는 이날 TV 연설을 통해 “우리는 어려운 전쟁에 처해 있고, 긴 전쟁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승리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가자지구 최대 난민촌인 자발리아 난민촌이 쑥대밭이 되면서 50여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요원 50명과 지하 땅굴, 하마스의 시설들을 제거하고 파괴했다고 주장했지만 팔레스타인 보건부와 하마스는 무고한 민간인과 어린이, 노약자들이 희생됐다고 반박했다. 숫자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들으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임에 틀림 없다. 하마스는 또 이번 공습 여파로 외국인 3명 등 인질 7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나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등은 지상 작전 확대가 인질 구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밀어붙였지만 실제로는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일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가자지구의 시가전은 이전 다른 곳에서 행해진 것보다 훨씬 잔인한 전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0일 가자지구 지상전이 이라크 내전 당시 모술 전투와 비견되지만, 훨씬 민간인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모술 전투는 2016~2017년 미군과 영국군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군이 이슬람국가(IS)로부터 모술 시를 탈환하기 위해 벌인 것이다. 사상자 규모가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지만, 매장 기록 등을 근거로 9000~1만 1000명의 민간인이 전투 과정에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모술 전투가 벌어졌던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모술을 빠져나간 민간인은 전쟁 전 인구의 절반 정도인 90만명에 달했다. 반면 가자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에 이어 이집트와의 국경도 닫혀 대피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통보했으나 여전히 3분의 1 정도가 북부에 남아있는 상태며 남부에도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시가전 전문가 에이머스 폭스는 “주민들은 실제로 떠날 수 없고 도심에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가자 시가전은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봐왔던 어떤 전투보다 그 대가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당시 모술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최전선에서 10∼15분 떨어진 곳에 긴급 치료를 제공할 수 있었고 한 시간 거리에 더 큰 야전병원이 있었지만, 가자지구에는 병상이 3500개밖에 없어 민간인들의 위험은 가중되고 있다. 가자지구는 모술과 달리 민간과 군사 기반시설이 혼재돼 있는 점도 민간인 피해를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모술에서는 IS가 점령한 지 2년이 넘은 시점에 탈환 작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하마스는 1987년 가자지구에서 설립됐고, 그 뿌리는 197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약 반세기 동안 가자지구의 사회 구조에 완전히 녹아 든 상태다. 전술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모술에서는 가장 격렬한 공습이 이뤄졌던 두 달 동안 폭탄 7000발이 투하됐으나 이스라엘은 이번 가자지구 공습 첫 엿새에 무려 6000발을 퍼부었다. 당시 이라크군은 모술의 동포들에 친밀감을 갖고 있었고 정치 지도자들도 민간인 보호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리 만무하다. 전장 정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모술에서는 IS를 싫어하는 주민들이 이라크군에 직접 휴민트(인적 정보망) 정보를 줬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IS를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는 주민들이 하마스에 이스라엘군 관련 휴민트 정보를 넘겨 하마스가 정보 우위를 점할 가능성도 있다. 폭스 전문가는 “이스라엘군은 더 잘 계획되고 준비된 방어를 통해 체계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 가자지구 지상전 본격화에…이스라엘 군인 11명 사망

    가자지구 지상전 본격화에…이스라엘 군인 11명 사망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궤멸을 위한 가자지구 지상전 중 아군 11명이 전사했다고 1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따르면, 전날(31일) 가자지구 북부에서 군인 9명이 추가 전사했다. 이로써 전날 발표된 기바티 보병여단의 전사자 2명을 포함해 이스라엘 측 전사자는 모두 11명으로 늘었다.전사자 가운데 2명은 지상전에 투입된 제7기갑여단 77대대 소속이며, 나머지 7명은 기바티 보병여단 차바르 대대의 일원이다. 이스라엘군은 “기바티 여단의 이번 전사자들은 타고 있던 장갑차가 하마스의 대전차 유도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며 “제7기갑여단의 군인들은 전차가 폭발물 위로 기동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대전차 유도 미사일 공격을 받은 기바티 여단에서는 4명(중상자 1명), 전차 폭발에서는 2명의 중상자가 나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관련 소식을 전하며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테러범들과 싸우는 이스라엘군 전사들의 사망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유족들과 함께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는 또  “가자지구의 깊은 곳에서 벌어진 격렬한 전투의 중요 성과들은 안타깝게도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며 “우리는 용기와 결단력, 인내심이 필요한 길고 복잡한 작전을 벌일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앞서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은 “길고 어려울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 “우크라이나-러시아, 직접 소통중…인도주의 사안 물밑 협상” (WP)

    “우크라이나-러시아, 직접 소통중…인도주의 사안 물밑 협상” (WP)

    장기전을 치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포로 교환 등 사안을 두고 물밑 협상으로 분주하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양국은 포로나 전사자 시신 교환, 흑해 항구 선박 통과, 러시아로 이송된 우크라이나 어린이 귀환 등 인도주의적 사안에 관한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협상은 양국 대표가 대면 회의나 전화 통화로 직접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밝혔다. 대면 회담은 주로 양국 간 국경 지역이나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특히 러시아는 포로 교환 협상에 연방보안국(FSB)도 투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바티칸, 국제적십자위원회 등 중재자를 통한 협상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타결된 뒤 포로 및 전사자 교환은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접경지인 이곳은 러시아군이 적극 공세를 가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지난달까지 실종 군인 수색 등을 담당한 우크라이나 관리 올레흐 코텐코는 한 달에 1∼2번 양국 관계자가 전사자를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국경 지대로 와서 시신을 교환하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측이 관련 문서를 확인하고 양국 보안 당국 요원 다수가 이 과정을 지켜본다고 코텐코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포로로 잡힌 자국 병사가 몇 명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공개적으로 포로 교환이 이뤄진 건 7월이다. 당시 양국은 포로 45명씩을 교환했다. 앞서 러시아로 강제 이송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을 거쳐 귀국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이 발부된 뒤 이들 어린이 귀환이 수월해졌다고 한 현지 인권 단체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양국은 이 같은 물밑 협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WP는 전했다. 포로 관련 협상을 감독하는 우크라이나 군 정보 관계자 드미트로 우소우는 “감정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그들(러시아)은 적이지만 협상 과정에 관해 얘기하려면 이해충돌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이 무슨 관계에 있든 우리는 국민 귀환에 관심이 있고 모든 소통 채널을 금지하면 그것이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 최태원 “용사의 헌신, 최빈국을 첨단산업국 만든 씨앗”

    최태원 “용사의 헌신, 최빈국을 첨단산업국 만든 씨앗”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양국 동맹의 상징이자 6·25 전쟁영웅인 윌리엄 웨버 대령과 존 싱글러브 장군 추모 사업을 지원해 온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해 고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최 회장은 12일 경기 파주 임진각 보훈단지에서 열린 추모비 제막식에서 “웨버 대령과 싱글러브 장군을 비롯한 참전 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은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씨앗을 선물했다”면서 “이로 인해 세계 최빈국에 속했던 우리나라가 반도체, 배터리 등 최첨단 산업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어 “웨버 대령이 워싱턴 DC 추모의 벽을 건립한 후 우리 곁을 떠나기 전 ‘생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말씀을 남겼다고 들었다”며 “우리가 그 미션을 이어받아 한미 양국 협력을 발전시키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숭고한 희생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웨버 대령은 6·25전쟁 당시 공수부대 장교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 등에서 활약하다 원주 전투에서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전역 후에는 장애를 딛고 워싱턴 6·25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19인의 용사상’ 및 전사자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 건립에 앞장서는 등 미국에서 6·25전쟁을 재조명하는 데 헌신했다. 싱글러브 장군은 1977년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미 행정부 결정에 강하게 반대하는 등 한미동맹에 기여한 상징적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난해 별세해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최 회장은 웨버 대령이 평생을 두고 추진한 추모의 벽 사업에 국내 기업 최초로 100만 달러(약 13억원)를 후원하고 지난해 7월 추모의 벽 건립식에 참석해 웨버 대령의 부인인 애널리 웨버 여사(2022년 10월 별세)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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