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복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반성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내수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사치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모녀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52
  • 중,반혁명죄 폐지 검토/안보저해죄 등 11개 항목 월내 신설

    【북경 AFP 연합】 중국은 반혁명죄를 없애고 모든 인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규정하는 내용으로 현행 공산주의 범죄법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현재의 15개 반혁명 범죄조항이 없어지고 『국가통합을 저해한다』는 구절이 붙은 국가안보저해죄 및 외국자금 수수죄 11개 항목이 신설될 예정이다. 그러나 지난 79년 입법된 「범죄법」의 이같은 정치적인 수정은 중국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전복을 선동하거나 중국의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혁명죄를 자의적으로 적용해왔다. 전인대는 3월 중순께 개정 범죄법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 “북,일서 비밀첩보조직 운영”/전향 장용은씨

    ◎한국내 친북세력 지원 북한은 조총련을 중심으로 일본내에 남한정부전복과 한국내 친북세력양성 및 지원 등을 목표로 하는 비밀첩보조직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낙동강」이란 첩보명으로 암약해온 이 비밀조직은 특히 친북성향의 한국 젊은이를 일본으로 비밀리에 데려다 친북세뇌교육을 시킨 뒤 다시 남한으로 침투시켜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72년부터 90년까지 이 조직의 일본내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하는 등 일본에서 암약하다 전향한 장용은씨(56)가 3월10일자 발매예정인 미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폭로했다. 장씨는 『서울의 비밀조직이 친북 젊은이를 보내오면 이들을 일본내 비밀아파트에서 수개월동안 주체사상교육 등으로 무장시킨뒤 다시 서울로 되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장씨는 자신은 이 비밀조직 「낙동강」에서 한국내 친북세력에 대한 재정지원을 주로 전담했으며 재일조총련계 사업가로부터 모금해 북한으로 보내진 자금은 비밀루트를 통해 한국내 친북세력에게 전달됐다고 장씨는 밝혔다. 북한당국으로부터 「낙동강」으로 전달되는 지령은 일본의 니가타와 북한의 원산항을 운항하는 「만경봉」호가 일본에 입항해 있는 동안 이 배밑창의 비밀아지트에서 직접 전달됐으며 통상 2∼3명의 노동당원이 「만경봉」호의 선원으로 가장해 이 배에 승선했다고 장씨는 밝혔다.
  • 150㎝ 단구로 버틴 「개혁세월」 73년/등소평이 걸어온 길

    ◎20세 파리유학때 중 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혁명 1세대”/33년 첫 좌절후 3전4기… 78년 개방기치로 전권장악/사회주의 몰락 국제풍파속 말년엔 체제독려 지방순회 신장 150㎝정도의 땅딸막한 등소평은 외무부터가 오뚝이 같았다.부도옹이라는 그이 별명은 세력다툼의 와중에서 쓰러졌다가도 매번 다시 오뚝 일어섰울 뿐 아니라 마침내는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한손에 틀어쥔 탁월한 정치력에 대한 경탄을 담고 있다. 실용주의노선으로 12억 중국인민을 배고픔에서 해방시키고 최고 지도자이면서도 최고직책을 가져보지 않은채 중국을 15년 넘게 통치해온 등소평.하지만 그 역시 같은 세대의 거의모든 중국지도층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서사시적 삶을 살아왔다. ○맏아들로 본명 등희현 1904년8월22일 사천성 광안현에서 비교적 부유한 불교도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본명은 등희현.광안중학시절 그의 성적은 우수한 편이었고 성격은 온순 참착했다.겉으로는 매우 산박했으나 「마음은 겨자처럼 맵다」는 평을 들을 만큼 결단력에 냉혹성까지 갖추며 자라났다.16세 되던 20년 10월 은등 고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간후 24년에는 주은래·이입삼·조세염 등과 파리에서 주국공산단 유럽지부를 창설함으로써 일찍부터 혁명에 가담했다.이 시절 르노자동차회사의 조립공으로부터 기차화부,식당보이 등 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스런 시절을 보냈다.뒷날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때 길러졌다고 한다.그는 당면에 따라 26년초 파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여기서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공산주의학습을 시키던 중산대학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공산주의이론을 학습하고 군사훈련까지 받은뒤 그해 연말 귀국했다. 귀국후 그는 곧바로 서안의 중산군사학교에 배치돼 이 곳에서 정치처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중국혁명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이듬해인 27년 국공합작이 실패로 돌아간뒤 그는 중국공상당본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름을 등소평으로 개명했다.그해 겨울 중공중앙이 상해로 옮겨가자 함게 따라가 당비서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으면서 최초의 부인 장서원과 결혼한다.하지만이장씨부인은 멀지않아 난산으로 사망하게 된다.등은 28년 당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부턴 광서지역에 들어가 본격적인 게릴라활동을 벌였다. 31년에 들어서자 주덕이 이끄는 홍군제1군단에서 정치부주임을 맡게 되고 동시에 홍군총정치부부주임을 맡아 활동하던중 두번째 부인 김유영과 결혼한다. 그의 인생에서 최초의 큰 좌절은 33년에 찾아온다.강서성 위원회 서기로 취임하지만 그가 모택동파라는 이유만으로 곧 해임되고 「엄중경고」처분을 받는다.당시까지만해도 모가 전권을 잡지 못하던 시절이다.이것이 그이 첫번째 실각으로 기록되고 있다.설상가상으로 그의 처 김유영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그녀는 당시 중공중앙조직부장이던 이유한과 재혼해서 현재의 경제체제개혁위주임인 이철영을 낳았다. 34년10월 중국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끈질긴 소탕전에 견디다 못해 대장정에 나섰다.물론 등은 참여했다.이 장정도중 모는 준의회의에서 중공당 최고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당시 홍군기관지 「홍성보」 편집장 자격으로이 회의에 참석했던 은등 당중앙비서장(당사무총장격)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모파의 유력한 간부지위에 올랐다. 약 1년간의 대장정이후 계속된 붉은 공산혁명과 항일운동을 거치면서 등은 계속 모의 신임을 쌓아 가다가 38년8월에는 팔로군의 제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임명돼 사단장인 류백승과 함께 유등대군(제2야전군)의 기반을 닦아간다.그후 45년에는 군부내에서 주덕·팽덕회 다음으로 3번째의 지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군부내 기반과 인맥을 형성해나갔다. 그는 이에 앞서 39년9월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인 탁림과 결혼,지금까지 2남3녀를 둔채 반백년도 넘게 해로해왔다. 50년대말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극심한 가뭄등으로 수백만명이 굻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자 그는 그 유명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론」(흑묘백묘론)을 내놓았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사상이야 어떻든)쥐만 잘 잡으면(생산만 많이 하면)좋은 고양이(인민)다』는 의미의 이 주장으로 그는 자본주의 추종자라는 이른바 주자파로 주목받게 된다. 60년대 중반부터문화대혁명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그의 주변에도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홍위병들로부터 주자파라는 비판을 받아온 그는 류소기 국가주석과 함께 67년8월 모든 공직에서 해임,강서성 신건현에 유배돼 강제노동에 동원되어야 했다.2차 실각이었다. 그로부터 7년뒤인 73년3월 그는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됨으로써 화려하게 복권,오뚝이의 면모를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남쪽 언덕이든 북쪽 언덕이든 꼭대기에만 오르면 된다』는 의미의 「남파북파논」을 내놓아 골수 공산주의자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결국 76년4월 주은래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난동사건(일명 4·5사건)때 사인방(모택동을 등에 업은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등 강경파)으로부터 「난동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또다시 실각했다.3차 실각이었다.주추모집회에서 은등 추도사를 읽었었다. 이윽고 모사망과 사인방 실각 이듬해인 77년 그는 다시 부활,실각 당시의 모든 직책을 회복했다.이때 그의 재기용여부를 놓고 중앙공작회의는 격렬한 찬반논쟁을 벌였다.그런데등이 스스로의 과오를 시인,이미 당주석과 중앙군사위주석이었던 화국봉의 지위를 인정하는 편지를 씀으로써 부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때 화는 의등 부활에 반대했었다. ○강경책 내며 위기극복 이렇게 되살아난 등은 78년12월 당11기3차중앙위전체회의에서 향후 20년간에 걸친 「4개(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계획」선포를 주도함으로써 당의 최고 실권자임을 과시했다.이때부터 중국이 야심찬 개혁개방시대로 들어선 것이다.이는 곧 실사구시를 중심으로한 실용주의 「등시대」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이 최고실권자였음에도 당주석이나 국가주석과 같은 최고 자리에 오르지 않는채 호요방(당)과 조자양(정부)을 앞세워 화에 대한 문책과 강등에 착수,마침내 82년9월 화를 당중앙 위원이외의 일체의 요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권력투쟁에서의 기나긴 「장정」을 매듭지었다. 89년4월 전총서기 호요방 추모집회로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시위는 그에게 닥친 마지막 시험이었다.그러나 그는 이 시험문제를 시위대군중에 대한무자비한 발포와 함께 시위대의 추앙을 받던 총서기 조자양을 「폭란의 배후책임자」로 몰아 제거하는 방법으로 풀었다.13년전의 천안문폭동때 자신이 당했던 방법을 이번에는 자신의 심복이었던 조에게 그대로 되풀이한 셈이다.어쨌든 이로써 사회주의체제를 전복시켰을지도 모를 자유화물결을 일단 잠재울 수 있었다. 등은 그동안 자신의 후계자로 호요방과 조자양을 잇따라 내세워 봤지만 「홀로세우기」에 실패했다.그 뒤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고 꼽은 인물이 강택민.강은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에서 혼란을 신속히 수습했고 그동안 의등 개혁개방노선을 가장 능숙하게 실천해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강택민 지목한 뒤 은퇴 강을 후계자로 내세운 그는 89년 11월9일 당중앙위의 허락을 받아 당중앙군사위주석직에서 퇴임함에 따라 공직에서 은퇴,평민으로 돌아왔다.그러나 그가 은퇴한 뒤에도 배후에서 한동안 강체제를 지원하고 후견인역할을 해와서 최근까지도 「최고지도자」또는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는 칭호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동구공산체제가붕괴된데 이어 소련마저 무너져 중국이 망당망국의 위기의식에 휩싸이자 심천 주해 등 남부 개혁개방지역을 돌며 이른바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보다 적극화할 것으로 주창함으로써 사회주이체제붕괴의 도미노현상이 중국대륙에 밀어닥치지 못하게 했을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모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당노선으로 채택케함으로써 중국이 21세기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갈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불어넣기까지 했다. 중국경제가 이같은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힘입어 연10%가 넘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지속하며 전진을 계속하자 그는 『기회를 잃지 말고 성장을 계속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등소평 연보 ▲1904.8.22=사천성 광안현에서 3남매중 맏아들로 출생 ▲1918=중경에서 프랑스유학을 위한 예비학교 입교 ▲1920=프랑스 유학 떠남 ▲1924=파리에서 주은래와 중국공산당 유럽지부 창설 ▲1926=모스크바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수학한뒤 연말에 귀국 ▲1927=광서성에서 공산당 게릴라 조직.첫부인 장서원과 결혼 ▲1931=홍군제1군단 정치부주임.두번째부인 김유영과 결혼 ▲1933=강서성위서기로 취임직후 모택동파라는 이유로 해임.1차실각 ▲1934∼35=대장정 참가,준의회의에서 당중앙 비서장으로 선임 ▲1938=국공합작으로 홍군이 팔노군으로 개편될때 129사정치위원이 됨 ▲1939=세번째부인 탁림과 결혼 ▲1945=제7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 ▲1952.8=국무원 부총리에 임명 ▲1954=당중앙위원회 비서장,국무원 부총리,국방위원회 부주석에 선출 ▲1956=정치국상무위원겸 당총서기 선임 ▲1966=문화대혁염 시기 홍위병으로 부르주아 반동파로 비판받음 ▲1967.7=모든 당·정 직무에서 해임.2차 실각.남창으로 하양 막노동 ▲1973.3=주은래 천거로 국무원 부총리에 복직 ▲1974=당정치국원 승진.유엔총회 특별회의에 중국대표 단장으로 참석 ▲1975.1=당중앙 부주석,정치국 상무위원,국무원 제1부총리,중공군 총참모장 등에 선임 ▲1976.4=천안문사건이 발생하자 4인방에 의해 배후조종자로 지목,모택동의 제의로 모든 직무에서 물러남.3차실각 ▲1977.7=중공당 10기3중전회에서 당중앙정치국상무위원,당중앙부주석,군총참모자 등으로 복직 ▲1978.12=당11기3중전회에서 당최고영도자 지위 획득,향후 20년간 4개 현대화 추진계획 선포 ▲1979=핑퐁외교로 미국과 국교수립후 공식 방미,개혁·개방정책을 당지도노선으로 정식 출범시킴 ▲1980=경제특구제 시행 결정,호요방·조자양체제 출범토록 지원 ▲1981.6=당중앙군사위우너회 주석으로 권권장악 ▲1987.10=당정치국원,정치국상무위원직 사임 ▲1989.6=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지시 ▲1989.11=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정치일선에서 은퇴 ▲1992.1=남부개방지역 순시중 담화(남순강화)로 개혁·개방 가속화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 역설 ▲1992.10=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원로들을 은퇴시키고 강택민체제 구축토록 지원 ▲1993.8=막내딸 용등,「나의 아버지 등소평」전기 출간 ▲1993.11=「등소평문선 제3집」 발간 ▲1993.12=북경시 순시중 「기회를 잃지말고 계속 성장추진」역설 ▲1997=92세를 일기로 영면
  • 연세대의 한총련 보이콧(사설)

    연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의 이념투쟁노선을 비판하면서 이 노선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한총련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지난해까지만해도 연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고려대 등과 함께 학생운동권을 주도해온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같은 한총련 보이콧은 큰 변화가 아닐수 없다.오도된 학생운동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난해 연말 비운동권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한동수군은 『우리의 개혁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교내의 모든 한총련행사를 불허하고 일체의 한총련행사에 불참하겠다』고 밝히고 『분담금도 내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연세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학생회비의 3.8%에 해당하는 1천2백만원의 공식분담금과 특별분담금 등 2천여만원을 한총련에 냈다. 친북성향의 NL(민족해방)계가 장악하고 있는 한총련지도부는 해마다 전국의 각 대학 총학생회로부터 10억여원으로 추산되는 분담금을 징수해왔으며 이 자금으로 친북성향의 과격·폭력투쟁을 주도하고 지휘해왔다.학생회의 소중한 재원이 체체전복을 노리는 친북·이적단체의 난동을 위한 자금으로 유용된 것은 개탄할 일이다. 만일 전국의 각 대학 총학생회가 일제히 분담금을 내지 않는다면 한총련의 이념투쟁은 불가능하며 그 조직도 와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연세대 총학생회의 분담금납부 거부선언은 선도적 의미가 크다.우리는 연세대 총학생회의 결단이 전국의 대학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새 학기를 앞둔 요즘 대학가에는 건전한 대학문화의 정립과 면학풍토조성을 위한 새로운 학생운동이 움트고 있다.연세대·고려대·홍익대·이화여대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학가 정화운동」이 그것이다.한총련지도부는 이 새로운 물결을 직시해야 한다.우리는 이 물결이 대학가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힘차게 뻗어가기를 기대한다.
  • 세네갈 고레섬 「노예의 집」(세계 문화유산 순례:22)

    ◎자유와 영원한 이별… 「속박」으로 떠나는 출발지/노예로 팔려가는 흑인들의 처절한 절규가…/16∼18C 2천여만명 사냥/「돌아올수 없는 문」 거쳐 노예선에 병걸린 6백만명 상어밥 신세/건물 곳곳 몸부림친 그날의 흔적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유적·유물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류가 이룩한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지고 지정된 것들이다.타지 마할,베르사유궁,성베드로성당,마추픽추,자유의 여신상…등등. 그러나 모든 목록이 인류의 숭고한 기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그중에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과거의 기록들도 포함돼 있다.과거의 잘못에서부터도 교훈을 배우자는 뜻에서이다.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나치수용소,그리고 세네갈의 고레섬에 있는 「노예의 집」이 바로 그런 기록들이다.16세기초부터 300여년 동안 아프리카 전역에서 끌려온 2천여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이 노예의 집을 통해 신대륙 아메리카로 「돌아올수 없는」여행을 떠났다.고레섬은 바로 이들 아프리카인들이 자유와의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속박의 땅을 향해가는 여행의 출발지였다. 고레섬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서쪽으로 작은 여객선으로 30분 거리에 떠있는 넓이 16만㎡의 작은 섬이다.대서양의 따사한 햇살을 찾아 모여든 유럽의 관광객들이 벗은 몸을 태우는 작은 백사장 옆 부두에서 배를 내려 좁은 골목길을 걸어들어가면 불과 10분이면 이 「노예의 집」앞에 다다르게 된다. 좁은 출입문을 들어서면 서너 걸음 앞쪽에 2층으로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이 계단 아래쪽의 어둠을 부여잡은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좌우로 말밥굽처럼 뻗어있는 이 계단 바로 아래쪽은 그안에 갖혀있던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의 삶을 연상시키는 듯 한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아 마치 블랙홀 같은 어둠을 연출하고 있다.건물 1층에 있는 십여개의 크고 작은 토굴같은 방들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잡혀온 흑인들이 신대륙으로 떠나기 전 대기하던 곳이다.계단위 2층은 백인 노예상들이 쉬는 넓고 안락한 거실이다. 마당 왼편 첫번째 방은 「고르는 방」.20여평 남짓한 방의 한쪽 시멘트벽에는 60㎏이라는 숫자가 어렴풋이 남아 있다.성인남자 노예를 선발하는 몸무게의 기준이다.여인들은 젖가슴이 제대로 영글었는지를 보고 고르고 아이들은 치아가 여물었는지를 가지고 골랐다.방 한쪽에는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의 목과 손발에 채웠던 쇠사슬과 족쇄가 걸려있다.이어서 「처녀의 방」「어린이의 방」「반항자의 방」,그리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 「대기하는 방」식으로 10여개의 시멘트 방들이 촘촘히 연결돼 있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아프리카인들은 정면의 계단 앞마당에서 경매에 부쳐졌다.백인 노예상들은 2층 발코니 난관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코냑을 홀짝홀짝 들이키며 살만한 「물건」들을 골랐다.건물 전면을 정확히 양분하는 중앙의 말발굽 계단 한가운데에서부터 건물뒤편 바다쪽으로는 길게 복도가 나 있다.그 복도 끝 바다 쪽으로 난 장방형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블랙홀 같은 어둠의 끝에서 이 문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준다.폭 70여 ㎝,높이 2.2m의 이 장방형 문의 이름은 「돌아올수 없는 문」.3∼4개월 동안 토굴방에 갇혀있던 아프리카인들은 마침내 「죽음의 길」인 이 깜깜한 복도를 지나 「돌아올수 없는 문」을 걸어나가서는 200여m 떨어진 선창에 대기하고있던 노예선에 실려 떠났다. 몸무게가 모자라거나 병에 걸린 이들은 선창밖으로 내던져 주위를 맴돌던 식인상어의 밥이 됐다.당시 이 고레섬 인근해역은 유명한 식인상어 출몰지역이었다고 한다.이들은 마치 잡혀올라온 정어리떼 처럼 차곡차곡 선창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갔다.도중에 숨이 끊어져 바다로 내던져진 수가 6백여만명이었다고 한다. 목숨을 부지한 이들도 그뒤 인간의 삶을 산것은 아니었다.남편은 미국의 목화농장,아내는 브라질로,그리고 아이들은 아이티나 서인도로 보내지는 식으로 온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생이별을 당했다. 고레섬은 섬전체의 5분의 1가량이 방어요새로 만들어져있어 섬의 험한 역사를 웅변으로 보여준다.노예선 출발지로 최적의 요건을 갖춘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기를 쓰고 덤볐기 때문이다.서북단의 현무암 돌출바위 쪽에는 예외없이 시멘트 포대가 만들어져 있고 바다로 향한 녹슨 대형 포신들이 곳곳에 남아있다.백인들중에서 이 섬을 처음 발견한 것은 1444년 포르투갈인들이었다.아름다운 모래사장과 아늑한 항구를 갖춘 천혜의 요새였다.섬북쪽에는 영화 「빠삐용」에서 스티브 매퀸이 탈옥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했다는 절벽도 있다. 지금 남아있는 「노예의 집」은 1776년 네덜란드인들이 지은 것으로 이 섬에 지어진 마지막 노예의 집이다.많을 때는 150∼200명을 수용하는 이런 집들이 수십 곳에 달했다고 한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세네갈 정부는 통한의 과거사를 보존하기 위해 1975년 섬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1978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이제 당시의 퀴퀴한 감방의 악취와 아프리카인들의 비명소리는 사라졌지만 이곳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추악한 학대행위를 말없이 증언하는 역사의 교사이다. ◎여행가이드/유럽풍 휴양시설 즐비/「사막투어」 색다른 추억 세네갈은 피부색이 검은 아프리카인들이 사는 사하라사막 이남의 소위 블랙 아프리카치고는 기후조건이 좋은 지역.사계절 대서양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프랑스식민지의 영향으로 수도 다카르 해안지대와 고레섬 일대에는 유럽풍의 휴양시설과 레스토랑,고급호텔들이 많다.외국 관광객들이 많은 이유중 하나는 싼 비용으로 휴가를 즐길수있기 때문.호텔등 휴양시설 비용이 유럽의 절반 이하이다. 다카르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만 벗어나면 사하라사막의 서남단.그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하는 2시간짜리 「사막 투어」를 통해 사하라사막을 조금 들여다볼수 있다.사막의 경계지역에서 서식하고 소설「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군락도 있다. 아프리카판 사해로 호수전체가 붉은색을 띤 「라 크루즈(붉은호수)」도 뺄수 없는 관광코스.다카르해안에서는 한화 1만원이면 자연산 전복,성게를 「한가마니」는 살수 있다는 점도 이곳 한국교민들의 손꼽는 재미중의 하나.마드리드,로마 등 남유럽의 주요공항에서 다카르행 항공편이 있다.
  • 김영수 문체부장관에 듣는다(올해 국정 어떻게)

    ◎문화유산 항구적 보호 제도화 추진/발굴 전담기관 설립·법정비… 개발 피해 예방/통일대비 북 주민 문화적응프로 체계화 노력 김영수 문화체육부 장관은 이헌숙 서울신문 문화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올해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우리 문화재 보호를 위한 문화재보호법을 전면검토하고 매장문화재 발굴 전담기관 설립과 같은 항구적인 문화재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다음은 대담내용이다. ­문체부가 정한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개발에 밀려 파괴되는 문화유산의 근본적인 보호책 마련이 시급합니다.적극적인 대책이 있는지요. ▲문화재보호법 등 문화재관련 법령을 전면검토,정비해 개발로 인해 역사유적지가 훼손되거나 매장문화재가 파괴되는 사례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항구적인 문화재 보호장치를 마련하겠습니다.특히 매장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발굴의 공공성·책임성 확보를 위해 학계의 전반적 의견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발굴전담기관의 설립」을 추진할 계획입니다.문화재보호법에 근거한 재단법인 형태의 특수법인도 검토중입니다. ○문화재관리청 승격 추진 ­통일문화 기반조성을 위해 탈북자 문화적응 프로그램 개발 등 단계적인 종합문화교류 기본전략 수립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얼마나 진전됐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수 있을까요. ▲북한주민들이 통일후 겪게 될 혼란과 문화적 갈등은 매우 심각할 것입니다.현재 그들의 문화적 의식이나 북한의 문화실태를 정확하게 분석해 적응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지난해부터 북한문화 전문가그룹을 양성해왔고 김정일의 문화관 연구같은 전문연구도 추진해 왔습니다. ­문화재관리국의 청 승격은 진전되고 있나요.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문화재관리청의 위상은 어떤 것일까요. ▲문화재관리국의 청 승격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성사되지 못했지요.국회에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고 유관기관에서도 비교적 이해가 깊습니다.문화재관리국이 청단위로 승격되면 문화재행정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고 문화재관리조직을 일원화하는 등 문화재 정책을 총괄,업무를 원활히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현행 문화재관리국의 조직은 2급인 국장을 기관장으로 정원이 603명입니다.관리하는 문화재만 7천93건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대단위 국토개발사업 대폭증가에 따라 매장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가 훼손위협을 받고 있습니다.또 문화재 행정전반에 대한 국민 관심이 크게 증가해 국단위의 조직으로는 원만한 관리행정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영화 민간심의기구 검토 ­지난해 영화 사전심의 위헌판결로 공륜이 홍역을 치렀습니다.문체부가 공륜의 명칭을 바꾸는 등 위상정립 작업에 나선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데 어떻게 달라지는지요. ▲현행 「공연윤리위원회」를 폐지하고 민간 자율등급 심사기구인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가칭) 신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종래의 공륜은 문제가 되는 특정부분을 일방적으로 제한 또는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는 영상물에 대한 등급만을 부여합니다.구성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는 해당위원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추천하는 인사를 대통령이 위촉해공정성과 객관성,자율성을 확보해 나갈 계획입니다. ○미술품 유통구조도 개선 ­OECD 가입에 따른 국내 문화예술계의 타격이 심각합니다.미술계를 비롯,문화예술계 전반의 우려가 큰데 주무부서의 대응책은 어떤 것인지요. ▲대규모 외국화상들이 국내에 진출할 경우 영세화랑들의 영업타격과 일부계층의 외국작품에 대한 투기,저질 외국복제품 유입 등 부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그러나 고가인 국내 미술품가격의 현실화,미술품 유통구조의 개선,우리 미술품의 해외진출 용이 등 긍정적인 면도 있지요.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미술계의 국제·정보화가 필요하고 미술품 감정기구의 기능강화 등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장기적으로는 경매제도 활성화를 통한 미술품 유통구조 개선과 미술전문 인력을 양성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문화의집 개관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시적인 성과가 어느정도 있었습니다.문체부가 올해를 「문화복지 확산의 해」로 정한만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체감적 차원의 복안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문화의 집 15곳으로 늘려 ▲지난해 전국4곳에 시범 건립한 문화의 집을 15곳으로 확충하고 전국 74곳에 시·군 단위 문예회관이 들어섭니다.체육부문에서도 300곳의 동네체육시설과 9곳의 공공운동장 등 생활체육시설을 체계적으로 확충해 나갈 계획입니다.올해부터는 전국적으로 「프로그램 네트워크」를 운영할 계획이며 중앙에 「문화프로그램 뱅크」를 설치,지방에 지원할 프로그램 자원을 집중관리하게 됩니다. ­지난해 문체부가 우리 문화상징으로 CI를 선정했습니다.문화산업 육성차원에서 이 CI의 지속사업이 있습니까. ▲관계부처,한국관광공사,무역진흥공사,해외진출 기업체 등으로 「한국문화이미지 관리기획단」을 구성 운영합니다.동시에 해외진출 기업체를 통해 민간차원의 문화교류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모색,추진할 계획입니다.또 지역민속축제를 관광자원화하기위해 상품성있는 10개 축제를 엄선,국제규모 행사로 육성지원할 방침입니다. ­경복궁 복원사업이 범국민의 관심사로 대두됐는데 문체부가 정한 일정에는 차질이 없는지요. ○경복궁 복원 2009년까지 ▲2009년까지 1천7백89억원의 예산을 투입,전각 93동 약3천223평을 건립하는 복원사업을 계획대로 추진중입니다.왕세자의 생활공간인 동궁권역의 전각 18동,352평 복원이 98년 완료예정으로 진행중이며 경복궁 중문인 홍례문과 주변회랑 등 고건물 6동을 복원하는 사업은 오는 5월 착수해 99년 완공됩니다.2000년부터 2009년까지 광화문 이전복원 등 기타 권역의 전각 32동 1천91평을 복원 완료하면 경복궁은 비로소 조선정궁의 기본궁제를 갖추게 됩니다. ­광화문 일대와 대학로 등 문화예술의 거리지정과 맞물려 문화특구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구체적인 진전상황을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 전국 35개도시 47곳에 문화거리가 지정돼 있지만 대부분 걸맞은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상태입니다.이보다 더 강력한 방안이 바로 문화지구 제도인데 문화지구 안의 업종이나 건물개조 또는 신축에 대해 일정한 억제 및 촉진장치가 동시에 필요합니다.도시계획법이나 건축법 등 관련법령의 개정이 필요하고 건설교통부에서 도시개발법을 추진중인 만큼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갈 방침입니다. ­세제혜택 등 근본적인 지원책 없이는 기업과 문화의 접목을 쉽게 기대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혁신적인 정책을 단행할 용의는 없는지요. ▲우리나라의 세제가 외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고 보지 않습니다.미국의 경우 오히려 세제혜택은 우리보다 불리한데도 워낙 기업의 문화분야에 대한 기여풍토가 강해 기업과 문화간 연결이 잘 형성돼 있다고 봅니다.문제는 기업이 이윤을 보다 많이 문화에 기부할 수 있도록 기업가의 인식이 개선돼야겠지만 문화에 기부하는 기업에 대해 찬사를 보낼수 있는 국민의식 발전도 필요합니다. ­체육부문에서는 올초 월드컵조직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2002년 월드컵 준비가 본격화됐습니다.정부차원의 지원책과 한·일간 스포츠교류 활성화를 위한 복안은 무엇입니까. ○문화월드컵 되도록 지원 ▲2002년 월드컵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대회 조직위 운영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경기장을 포함,대회에 필요한 직·간접 시설의 건설 등 제반분야에 대해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순수민간기구인 「월드컵축구대회 지원 국민운동협의회」를 금년중 발족시키고 「문화월드컵」 준비에도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스포츠의 프로화 추세가 뚜렷합니다.아마스포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도 있는데 프로와 아마스포츠를 동시에 발전시킬수 있는 정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각종 국제대회에서 아마와 프로와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지고 있고 모든 스포츠 종목은 점차 프로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프로화 강세로 인해 결코 아마가 위축되거나 경기력이 저하될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프로스포츠의 활성화가 곧 아마스포츠의 발전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선호도가 높은 종목은 프로화하도록 행정적 지원을 할 방침입니다.또 아마스포츠 진흥을 위해 각 기업의 특성과 경기단체의 성격이 조화되는 종목은 실업팀을 창단할 수 있도록 권유할 것입니다.대표선수 훈련에 필요한 시설과 복지를 확대,경기력을 향상시켜 나가고 프로·아마팀간 지원체제 구축을 위한 연고지별아마팀 재정지원과 선수 수급체제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남북 스포츠교류 활성화 ­오는 5월 부산동아시아대회와 성곡컵국제유도대회 등에 북한의 출전을 유도키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요.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우선 통일축구대회 등을 대상으로 교류를 추진할 계획입니다.동아시아경기대회와 성곡컵국제유도대회 뿐 아니라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북한이 참가할 수 있도록 초청장 발송 등 체육분야의 남북교류를 위한 여건조성에 노력하겠습니다.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구체적인 방안을 밝혀주십시오. ▲우리나라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2010년 대회때부터 가능합니다.시설면에서는 이번 동계U대회 시설중 일부만 보완하면 가능하고 강원도에서도 동계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보여집니다.그러나 동계올림픽 유치는 각계 여론을 수렴,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 군트럭 전복 5명 사상

    4일 하오1시40분쯤 강원도 철원군 주파리 부근 도로에서 군인 10명을 태우고 달리던 2.5t 군트럭이 전복,오두현 병장(22)과 박진석 병장(22) 등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
  • 독 핵폐기물 운송열차 탈선/불 로렌서/선로변환중…방사능 누출안돼

    【메스(프 모젤주) DPA AFP 연합】 독일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적재하고 영국으로 가던 기차가 4일 오전 7시30분(현지시간) 프랑스 동부지역에서 탈선했으나 방사능 누출사고는 없었다고 프랑스 경찰이 밝혔다. 독일 북부에서 핵폐기물을 밀폐 컨테이너에 실은 총 4량의 이 기차는 프랑스 로렌 지방 인근 아라크 철로 분기점에서 선로변환중 탈선했으며 전복되지는 않았다. 사고 기차는 별 손상을 받지 않았으며 사고로 인한 부상자도 없었다. 프랑스 관리들은 현장에서 방사능을 측정한 결과,방사능이 누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핵폐기물은 영국북부의 셀라필드 재처리공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 신선하고 값싼 옥돔·오분자기등 가득/제주 수산물백화점으로 오세요

    ◎“품질·값 믿을만” 관광객 인기 독차지/어민후계자 직매장도 「회」손님 북적 제주의 청정해역에서 생산된 싱싱한 어패류와 해조류·젓갈류 등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특히 제주산 마른옥돔을 의심하지 않고 살수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물어물어 찾아오는 곳.제주시 연동에 자리한 수협 수산물백화점(대표 한재순)과 제주시 오라3동 어민후계자수산물직판장(대표 고경범)이 그곳이다. 수협 제주도지부 2층 75평의 주 매장과 출입구 왼쪽 27평짜리 활선어 회센터 등 총 102평으로 이뤄진 수협 수산물백화점은 비록 매장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팔릴만한 수산물들만 골라 판매품목으로 정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주요 품목으로는 옥돔·백조기·고등어·건한치·오분자기 등 건어류 20여종과 제주 돌미역 등 해조류 7종,냉동갈치와 문어 등 냉동 어패류 25종,참돔·갓돔·광어·다금바리 등 활선어 10여종,그리고 자리돔젓과 성게젓·오분자기젓·멸치젓 등 젓갈류 10여종이 있다. 가장 인기있는 것은 마른옥돔으로 품질좋고 값이 저렴해 도민들은 물론 외래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당 2만7천원으로 시중가에 비해 10%정도 싸며 1㎏에서부터 15㎏까지 단위별 포장이 가능해 우편주문량도 많다. 이곳 활선어 회센터에서는 활어를 시중보다 35%정도 싼 ㎏당 7만8천원씩에 팔고있는데 즉석에서 활어맛을 보고자하는 주당들과 미식가들을 위해 다섯종류의 안주용 횟감을 뷔페식으로 100g당 2천원씩에 팔고있다. 수협 수산물백화점은 지난 90년 처음 문을 열어 마른옥돔을 주로 판매해 오다 지난해 7월 매장을 넓히면서 판매품목을 늘렸다.지난해에는 총 34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신제주에서 삼양방면으로 가는 연삼로 입구 그린벨트지역에 자리한 어민후계자 수산물직매장은 제주시 어민후계자연합회가 주축이 돼 지난해 9월5일 문을 열었다. 750여평의 부지에 지하1층 지상 3층 연건평 300여평규모의 이 수산물직매장은 들어서면서부터 매장 중앙에 있는 10평짜리 대형 수족관이 눈길을 끈다. 수족관안에는 전국에서 당일 특송된 전복·소라·해삼·멍게·키조개·대합·피조개·굴·모시조개 등이 산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는 이것말고도 마른옥돔 등 건어물 20여종을 비롯,해조류·젓갈류·냉동 어패류·활패류 등 100여종의 도내외 각종 수산물들을 팔고있으나 역시 주요 판매품목은 마른옥돔이다. 직매장측은 다른 곳과의 차별을 위해 옥돔을 당일 잡은 「당일산」과 「근해산」등 2종류로 구분,「당일바리」는 ㎏당 2만8천∼3만2천원씩에,「근해산」은 2만5천∼2만7천원씩에 팔고 있으며 「당일바리」의 경우 품질유지를 위해 2층창고에서 직접 말리고 있다. 개장이후 지난 4개월동안의 매장 총 매출액은 9억원으로,개장당시에는 수천명의 고객들이 몰려 하루평균 4천여만원씩의 매상을 올리기도 했다. 직매장측은 판매상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2월말까지 7억7천만원을 들여 북제주군 한립읍 금릉농공단지내에 부지 1천평 연건평 300평 규모의 냉동어류 및 젓갈류·건제품 가공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수협수산물백화점 (064)43­2989,제주시 어민후계자수산물직매장 (064)43­9333.
  • 「문화유산의 해」에 바란다/이달순(특별기고)

    ◎서울 역사탐방로 개설하자 문화유산의 해에 반드시 찾고 가꾸어야 할 과제가 있다.사직터널에서 인왕산쪽으로 100여m 오르다보면 보이는 붉은 벽돌집 대한매일신보 사옥(서울 서대문구 행촌동 1의 18)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1904년7월18일 영국인 베셀에 의해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측이 한국언론에 대해 검열을 실시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그 당시에도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한 일본헌병사령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민족진영의 대변자역할을 다할수 있었다.을사조약의 무효를 논파,배일독립사상을 고취했으며 고종의 친서를 게재했다.친서를 영국의 「런던트리뷴」에도 게재,일본의 강압적 침략정책을 외국에 폭로한 베셀은 결국 1908년 일본인 배척을 선동하고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제도를 전복하려다 상하이에서 3주일의 금고생활을 보내고 1909년 서울에서 병사했다. 그 대한매일신보 사옥과 베셀이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사옥 곁에는 권율장군의 집터가 있고 베셀이 살던 집앞에는 이율곡의 사당자리가 있다.그곁에 한국의 최초여기자 고 최은희 여사가 살던 초라한 한옥도 있다.그 이웃에는 역사적인 음악가 홍난파가 살던 양옥도 보존돼 있다.훌륭한 문화유적지로 개발할 가치가 있는 타운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역사적 가치 훌륭 이 지역을 역사탐방로가 통과되도록 설계돼있다.어느 용역팀의 가상시나리오다. 교동과 재동의 전통한옥단지에서 출발,안국동 민영환기념탑을 지나 구총독부 건물터에서 일제만행을 확인하고 사직공원에서 민족정기를 가슴에 쓸어안고 인왕산을 끼고 돈다.곧 다가서는 것은 대한매일신보사옥이다.그 사옥을 신문박물관으로 개관하는 것이다.역대 독재정치에 항거한 우리나라 신문의 민주투쟁기록이 담겨진 그곳에서 민주화와 세계화의 미래를 전망하고 권율장군과 선비 이율곡,작곡가 홍난파의 집터에서 우리 후손이 우리문화 역사를 꽃피우는 것이다.베셀의 집터에서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친한 영국인의 고마움에 머리숙여야 하며 최은희 기자 집은 한국여기자 박물관으로 개관돼야 한다.여기자상 수상자의 공로의 기록은 한국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그 역할을 증대시키는 큰 몫을 할 것이다. 이 역사탐방로는 이어 한국초기의 관상대앞을 지나 경희궁터를 지나 광화문에 이른다. 발전하는 서울의 도시계획에는 이러한 문화유적의 보존과 개발이 병행돼야 한다.그런데 역사탐방로와 문화유적지 개발사업이 현재 멈춰진 모양이다. 당초 종로구청은 임자 없는 건물에 무려 20여가구가 살고 있는 대한매일신보 사옥을 매각하려 했다.주민의 건의로 서울시 문화재과에서 이를 중단케 했고 문화유적지개발을 위한 기본기획수립에 필요한 용역을 주기로 했다.그 계획과 예산은 시의회에 제출됐고 시의회에서 승인,예산안도 통과됐다. ○예산부족 사업 주춤 그러나 해가 바뀌어 민선시장이 들어서고 시의회 의원도 바뀌면서 이 용역계획은 보류됐다.사옥에 살고 있는 20가구에게 줄 보상비가 엄청나고 이를조달할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그 문제가 해결돼야 역사탐방로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유적지 단지조성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실무자의 말이다.수치스러운 역사유물도 보존돼야 하고 자랑스러운 역사유물은 더욱 개발돼야 한다.정부의 돈이 부족하면 민자라도 유치하고 기업이윤을 문화유적지 형성에 투자하는 보람도 일깨울 수 있는 방도도 여러가지 있을수 있다. 문화유산의 해에 베셀의 훌륭함을 높이 평가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 통일 대비 북 주민 포용방안 마련을/윌리엄 클라크(지구촌 칼럼)

    ◎하급관리 관용적 처우 약속 등으로 불안없애야 한국의 고등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형을 무기형으로 감해주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형량을 줄인 결정은 통일후 북한 지도자들의 장래에 관한 문제를 생각케 한다.얼마남지 않은 미래에 한국 국민들과 정부는 통일 이전에 북한을 통치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어려운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나 분명 북한에서 자기들의 계속되는 쇠락 추세에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사안일 것이다.자고로 변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며 약자의 처지에서 예전의 적과 협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은 이중으로 어렵다. 이 문제에 참고가 될 모델이 몇 건 있다.첫번째는 가장 많이 거론되는 통일 독일의 경우다.통일후 동독 군대의 장교들과 고위 관리들은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직위에서 해직되었지만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인을 사살하는데 책임이 있는 경우를 빼곤 분단시절의 행위로 보복받은 사례는 놀랄 정도로 드물었다.분명히 같은 민족인 동독의 소행에 심대한 불만을 품고있는 서독인도 많았다.이런 감정이 통일과정에서 주조를 이뤘다면 통일과정은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동독인들은 서독을 왕래할 수 있었고 서독 텔레비전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던 덕분에 통일후 자신들의 육체적인 안위나 경제적 안정에 별 걱정없이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동독인들이 통일후의 자신들 운명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커다란 혼란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복사례 거의 없어 동부 유럽의 여러 나라도 이전의 통치자들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대부분 이 일은 폭력이나 보복 없이 민주적으로 이뤄졌다.가장 최근에 루마니아 국민들은 민주화후 정부를 장악하고 있던 공산당을 몰아내고 야당에 정권을 넘겨 주었다.이런 전환은 동구의 공산권 시절 동독민중 봉기나 「프라하의 봄」,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 같은 유혈 대결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뤄지고 있다. ○자연스런 통합 모색 마지막으로 남아공 새 정부 케이스가 있다.인종을 철저히 갈라 지배하던 극악한인종차별 정권 대신 반정부의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들어섰다.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시절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이 조용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경주되고 있다.백인의 다수가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변화에 대한 저항이 장기간 이어졌거나 백인들의 대탈주가 발생했을 것이다. 최근 북한 일가족의 집단이탈 사건이 증언하듯 북한에도 한국실정에 대해 어느정도 알려져 있는게 사실이지만 널리 전파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50년간의 악선전,강토 전역을 황폐화시킨 전쟁,한국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끊임없는 음모 등을 행해온 만큼 북한 지도층이 통일후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그러나 북한의 보통 주민들이 통일은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민주사회로의 접목이라고 이해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그들에게 실제로 이같이 환영해주는 일은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또 통일후 북한주민들이 환영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그들에게 전달하는 일도 매우 어렵다. ○통일 훨씬 빠를수도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북한주민들이 환영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하는 일이 아주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그러한 일은 한국의 유력 지도층들이 북한 주민들을 한국사회로 자연스럽게 통합시킬 구체적 방안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할수 있으며,그렇게하면 북한정권은 크게 당황할 것이다.북한지도층은 이제까지의 주장대로 움직이자면 이같은 발언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서야 할 것이겠지만 이는 한국의 생각을 북한에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통일 방안에 북한의 하급관리에 대한 관용적 처우가 언급된다면 한층 유익할 것이다.관용이 약속되는 계급이 상향될수록 통일은 용이한 길을 걷는다. 이런 제안은 잠수함사건 직후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또 북한정권에 내재된 위험을 경시한다는 지적을 받을수 있다.그러나 위험 측면에만 정신을 쏟다보면 폭넓은 정책을 구사할 수가 없다.이제 통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훨씬 더 가까이 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볼 때이며 이에따라 북한주민들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사로잡을 그런 단계를 밟을 때다.그렇게 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통일이 도래했을 땐 결정적 힘을 발휘할 것이다.독일의 통일이나 소련의 붕괴를 예견한 전문가는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 통일이라고 해서 전문가들이 더 나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 DMZ 무인도서 외로이 병마와 투쟁/「유도 황소」 뭍에서 새삶

    ◎해병대 장교들 90분만에 구출작전 완료/부상치료뒤 「평화농장」 만들어 사육키로 『누렁이를 구출하라』 비무장지대 무인도에서 죽어가는 황소 한마리를 구해내기 위해 해병대 장병들이 펼친 이색「구출작전」은 90분만에 끝났다. 해병 2사단소속 수색대 장병 22명은 17일 정오 고무보트 4대에 나눠타고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보구곤리 해안에서 북쪽으로 500여m 떨어진 유도에 상륙,하오 1시30분쯤 황소를 뭍으로 옮겼다. 황소는 섬해안가 갈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가 마취총을 쏜뒤 접근한 장병들에 의해 별다른 저항없이 보트에 실려졌다. 이날 황소 수송을 지휘한 군 수의관 주민석 대위(28)는 『황소가 수송도중 보트에서 움직이면 전복될 우려가 있어 마취를 시킨 뒤 배에 실었다』고 말했다. 이 황소는 약 150㎏짜리 수소로 왼쪽 앞다리를 심하게 다쳐 고름을 흘리고 있었으며 영양상태가 상당히 악화돼 여위어 있었다. 이날 구출된 황소가 보구곤리 해안을 지키는 해병장병들에게 처음 발견된 것은 지난해 8월초.수십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은비무장지대의 무인도에 느닷없이 소가 나타난 것이다. 이곳 대대장 조건철 중령(40)은 『지난해 여름 홍수때 경기북부지역에서 떠내려오다 유도에 기어올라 지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던 황소가 겨울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여위고 활동량도 줄어들었다.지난해 12월말 때마침 유정복 김포군수(40)가 장병위문차 이 부대에 들러 소가 살고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부대에 황소구명을 제의,이날 구조가 이루어졌다. 군측은 유도가 비무장지대에 위치해 정전협정상 남북 양측이 상륙할 수 없는 지역임을 고려해 지난 16일 북한측에 유도상륙을 사전통보한 뒤 이날 구조작전을 폈다. 김포군은 이날 하오 3시쯤 마취에서 깨어난 황소를 검단동물검역소로 보내 검역을 실시했으며 곧바로 김포군 농촌지도소로 보내 20여일동안 부상을 치료해주기로 했다. 유군수는 『올해가 소의 해이고 어렵게 구출한 황소인 만큼 관내에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농장」을 만들어 사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시위현장 유인물 논평 대결

    ◎여­“체제전복 시도… 이념투쟁현상 대단히 위험”/야­“북의 남한민주세력에 찬물 끼얹는 망동 경계” 노동계 파업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법 반대시위 현장에 체제전복을 꾀하는 불온 유인물이 등장,여야의 공방을 가열시키고 있다. 신한국당은 전날에 이어 16일 김철 대변인의 성명 등을 통해 노동법 반대시위 현장에 불온유인물을 배포한 불순세력의 실체와 배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김대변인은 『이들 유인물은 「김정일찬양노래 악보」,「자본가정권 타도」,「노동자 총파업 전선을 전민중적 투쟁전선으로」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파업을 단순히 노동법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체제전복 투쟁으로 이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은 이어 고위당직자회의 논의와 김대변인의 논평 등을 통해 『야당의 파업지지 및 동참선언은 노동시위현장에 이념투쟁현상마저 일고 있는 점을 고려할때 대단히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야당은 제도권내의 정치세력인지 체제반대세력인지 정체를 자백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이에대해 국민희의정동영 대변인은 『노동현장에 대한 검찰의 용공혐의 제기는 과거 독재정권이 반대세력을 용공혐의를 씌워 억압했던 기억을 연상시킨다』고 공박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은 시대착오적인 무력도발을 포기하지 않고 남한의 민주세력에 찬물을 끼얹는 망동을 저지르고 있다』고 경계했다.
  • 여,파업정국 돌파 다각 모색

    ◎“야서 노동법 독자안 마련땐 특위구성 검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15일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신한국당은 야권이 독자적인 안을 내놓을 경우 국회특위를 구성,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는 등 다각적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관련기사 4면〉 신한국당은 특히 노동계 파업사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노동법 반대투쟁 집회장에서 체제전복을 꾀하는 불순세력이 출몰하고 있다고 주장,공안당국에 불순세력의 배후와 연계세력을 색출해줄 것을 촉구했다. 신한국당은 이날 상·하오 고위당직자회의와 당무회의를 잇따라 열고 16일 이홍구 대표의 신년회견 발표문에 담을 정치적 차원의 수습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야당이 분명한 대안을 내놓으면 여야중진회담과 국회특위구성 등에 응할수 있다는 입장을 회견문에 담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 「파업정국 풀기」 신한국의 전략(정가 초점)

    ◎당은 대화·정은 법집행 “역할분담”/일단 대국민 홍보 주력… 돌파구 모색/분위기 익히면 여야대화·총재회담 노동계 파업사태에 대한 신한국당의 해법은 여전히 「대화」에 있다.언뜻 불법파업에 대한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 다짐과 상치되는 듯 비쳐진다.그러나 이는 동전의 양면일 뿐이라고 신한국당은 주장한다.궁극적으로 대화만이 문제해결의 열쇠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15일 강삼재 사무총장은 당정간에 강온기류가 혼재되어 있는 듯이 비쳐지는 것을 「당정역할론」으로 풀어 정리했다.『불법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법집행을 책임진 정부의 역할이다.하지만 당은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끝없이 대화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 이홍구 대표위원도 당무회의에서 『정부는 국민안녕과 법질서를 지켜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는 반면 신한국당은 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대화의지를 강조했다. 문제는 어떻게 대화의 돌파구를 여느냐에 있다.신한국당은 야권이 총재회담을 요구하며 국회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에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대국민 홍보활동을 강화,노동관련법의 불가피성을 적극 설명해 일반국민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신한국당은 아울러 노동계의 파업사태가 정치투쟁으로 변질되는 것은 적극 차단한다는 방침이다.김철대변인이 15일 성명을 통해 『노동법반대시위 현장에 체제전복을 획책하는 세력이 출몰하고 있다』며 공안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신한국당은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둬 파업사태가 진정국면을 맞는다면 결국 대화분위기도 마련될 것으로 보고 있다.교착정국이 장기화하면 여론은 정치권의 대화에 시선을 돌릴 것이고 야권도 결국 대화에 응하리라는 판단인 것이다.일단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이후 신한국당의 운신은 그 폭이 상당히 넓어질수 있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중진급회담 등을 통해 타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총재회담까지도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중 TV서 특별방송/등소평 발언록 관심

    ◎「민주화 바람」 예견/89년 강 후계 지시 12일 끝난 중국중앙TV의 대형다큐멘터리 「등소평」은 방영배경과 함께 최초로 공개된 자료들이 적잖아 관심을 끈다.천안문사태 직후인 지난 89년6월9일,사태진압 계엄부대 군단장급이상을 중남해 회인당에 모아놓고 한 연설과 78년12월 그의 중앙공작회의 폐막연설 모습은 최초 공개된 대표적인 것들이다.『이런 풍파는 닥쳐오게 돼 있었다.세계 추세도 국내상황도 그렇다.국내자산계급의 자유화 시도 무리와 외국세력이 함께 일을 꾸몄다.구호는 공산당 타도와 사회주의제도 전복이다…』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치켜든 손이 떨리고 주위엔 이붕 총리와 흰머리의 노장군들이 보인다.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 자세로 단결해 나가자(향전간)』는 78년12월 연설은 곧바로 열린 공산당 11기3중전회의 주제로서 개혁개방을 출발시킨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90년1월 홍콩의 재벌 이가성을 접견하면서 『우리땅을 보고싶어 97년 홍콩반환까지 살려고 노력하나 한해 한해가 힘들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89년11월 중앙군사위 확대회의때 군지도자들에게 『강택민을 핵심으로한 제3세대 영도집단이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한 모습은 처음 공개된 것이다. 13일자 인민일보는 등소평의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이론을 심화·학습하고 사회주의 정신문명건설과 혁명전통 강화가 이 작품의 방영의의라고 강조했다.이 작품은 3년간의 준비기간과 8백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 이 고속열차 탈선… 8명 사망/피아첸차 인근

    ◎객차 7량 전복… 60여명 부상/코시자 전 대통령 탑승… 무사 【피아첸차(이탈리아) AFP 연합 특약】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역 인근에서 밀라노를 떠나 로마로 향하던 고속열차가 12일 하오1시50분쯤(현지시간) 탈선,최소 8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이탈리아의 ANSA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수십대의 엠뷸런스가 사고현장으로 급파됐다고 말했다. 이날 탈선으로 기관차와 객차 7량이 모두 전복됐으며 밀라노와 로마를 잇는 철도편이 마비됐다.철도회사 대변인은 아직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프란체스코 코시자 전 이탈리아 대통령도 사고열차에 탑승했으나 다행히 다친데는 없다고 밝혔다.
  • 고속도 중앙분리대 신소재 철재 등장/RIST­도로연

    ◎기존 콘크리트 보다 충격 흡수력 뛰어나/차량 전복 방지·2차사고 예방에도 효과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도 새로운 소재가 등장할 전망이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원장 신창식)은 12일 한국도로공사 부설 도로연구소와 공동으로 기존의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보다 충격 흡수력이 뛰어난 철재 중앙분리대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개발된 철재 중앙분리대는 철재로 만들어졌으며 가운데 부분에 일정공간과 간격재를 두어 차량이 충돌했을때 충격 흡수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차량의 전복을 방지해 탑승자의 인명피해감소는 물론 2차 사고의 예방에도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연구원측은 설명했다. 철재 중앙분리대는 프랑스 국립교통안전연구소가 지난 93년부터 1년간 1천㎞의 고속도로 구간에서 기존의 콘크리트 제품과 성능을 비교해 본 결과 부상 유발 사고율이 0.05%로 콘크리트 중앙분리대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고 차량 전복률은 8.4%로 콘크리트 중앙분리대의 20%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것으로 밝혀진바 있다. 이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 등의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철재 중앙분리대의 사용이 보편화됐고 일본에서도 그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철재 중앙분리대는 콘크리트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점이 단점이다.즉 철재 중앙분리대는 미터당 설치비용은 5만2천원으로 콘크리트 제품의 미터당 3만7천원보다 40% 가량 더 든다. 최근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는 콘크리트 타설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비용이 상승 추세에 있는데다 기초 설치부분에 콘크리트 포장을 해야 하는능 별도의 설치 비용이 추가되지만 철재 중앙분리대의 경우 단순 설치비 외에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아 실제 비용 면에서는 콘크리트 제품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연구원측은 지적했다. 연구원은 이 제품을 지난해 12월 말부터 경부고속도로 황간 IC부근 서울기점 199㎞ 지점에 시범 설치했으며 앞으로 컴퓨터 모의 실험과 실제 충돌시험 등을 추가로 실시,유럽 통합 기준에 따른 인증을 획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안기부법 비판사설 반박/김 주미공사 NYT 투고

    한국정부는 미 뉴욕 타임스가 최근 게재한 「한국에서의 독재망령」이라는 제하의 사설과 관련,『이 사설은 안기부에 일부 수사권을 회복시킨 안기부법개정이 대학생과 정부비판자를 비롯한 국민을 사찰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는 오해에 따른 곡해』라고 주장했다. 김준길 주미대사관 공보공사는 9일 이 사설에 대한 반박투고문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이 (안기부)법은 안기부의 기본수사기능을 회복시키는데 목적이 있으며 수사기능은 대간첩임무수행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밝히고 『이 법의 목표는 북한 간첩과 한국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전복시키고자 위협하는 동조자』라고 강조했다.
  • 일,좌초 러 유조선 기름피해 심각

    ◎이시가와·후쿠이현 해안 덮쳐 어민들 절망/강풍에 속수무책… 23년만에 최악 유출사고 일본 서부 해안에 검은 기름이 덮치고 있다.동해에 면한 일본 이시가와,후쿠이현은 지난 2일 새벽 2시51분 러시아 프리스코 트래픽사 소속의 중유운반 탱커 나호드카호(1만3천157t)가 동강나면서 새나온 기름과 잘려진 선수가 1주일만에 해안가를 덮치면서 지역 어민들이 절망에 휩싸이고 있다. 사고지점은 시마네현 오키섬 북방 100㎞ 지점이었다.사고 당시에는 겨울철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쓰시마난류의 영향으로 기름이 북상할 것으로 기대됐다.하지만 강한 서풍의 영향으로 새나온 기름이 동진을 거듭,이들 현 연안을 덮치게 된 것이다.또 선수 부분도 동쪽으로 표류,7일에는 후쿠이현 앞바다 암초에 얹히게 됐다.선수에는 2천800㎘의 중유가 담겨 있는데 7일 해상보안청에 의해 새로 중유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는 지난 74년 세토나이카이에서 발생한 기름오염 사고 이래 최대의 해상오염사고로 기록되고 있다.전복,소라,돌김,새우,게 등 고급 해산물을 한창 걷어올릴 철을 맞아 끈적끈적하고 검은 기름덩어리들이 덮쳐오자 어민들은 『악몽이 현실로 나타났다』,『올해 일은 글렀다』면서 발을 구르고 있다. 피해가 커진 것은 지난 1주일 동안 전혀 손을 쓸 수 없었기 때문.겨울철 동해에 면한 일본 서부지역 해안은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세기 때문에 사고 선박을 처리하기도 어려웠다.선수 인양을 한차례 시도했지만 로프가 끊어지고 말았다.파도가 높아 오일펜스 설치도 무용지물.오일중화제는 다량을 준비하고 살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이제는 반경 200㎞의 해역에 기름이 번져 있어 처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 등은 8일부터 중화제 살포와 기름흡입기 등으로 제거에 나서고 어민들은 양동이 등으로 기름덩어리를 떠내고 있지만 밀려드는 기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나호드카호는 기름유출 사고에 대비해 2억달러의 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하지만 피해액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