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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해안 양식단지 특화 시·군별 12개어장 조성

    강원도 동해안 각 시·군별로 차별화된 특화양식단지가 조성된다. 강원도환동해출장소는 올해부터 3년간 모두 18억원을 들여 시·군별로 2개 어장씩 모두 12개 어장에 참전복과 토종다시마 등 7개 품목을 양식하는 특화단지를 조성, 육성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동해안은 서·남해 어장과 달리 한해(寒海)성이면서 청정한 바다를 가지고 있어 이를 최대한 활용, 다른 해역과 차별화하면서도 질·가격면에서 경쟁력있는 품목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참전복은 동해안 공동 품종으로 육성하는 한편 강릉 토종다시마, 동해 해삼, 속초 성게, 삼척 우럭, 고성 북방대합, 양양 재첩 등 지역별 특화어종을 추가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군별로 2개 시범어촌을 선정, 각각 5000만원씩 3년간 지원키로 했다.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아침을 먹자] 힘 돼준 옛동료에 감사의 아침 배달

    [아침을 먹자] 힘 돼준 옛동료에 감사의 아침 배달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건강캠페인에 보내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개월 동안 아침도시락이 필요한 사연을 적은 글이 게시판과 이메일에 쏟아져 당첨자를 선정할 때마다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28일 햇반 전복죽과 애호박 게살전, 새송이 버섯구이, 야채 겉절이 무침, 장조림 등을 담은 아침도시락은 4그룹에게 전달됐습니다. 이해영씨는 전 직장 동료들에게 도시락을 선물했습니다.“고등학교 졸업후 처음 입사한 동아제지, 야간대학을 다니도록 격려해주신 사장님과 상무님, 선배 언니들에게 도시락을 보내주세요.” 윤금숙씨는 도시락으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아들 녀석이 아픈 뒤로는 남편 아침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합니다. 일터에서 도련님들과 함께 먹도록 도시락 부탁합니다.”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며 조수연씨가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고요.“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 일을 도맡은 시어머니께 따끈한 아침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경희씨는 “홀몸으로 사남매를 키우시고, 아직도 건물 청소 일을 놓지 못한 엄마에게 도시락을 보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이번에 당첨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고요. 걱정마시고 다시 신청하십시오. 아침도시락 선물은 새해 3월까지 쭉∼ 계속되니까요. 글 사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힘 돼준 옛동료에 감사의 아침 배달 “예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에게 아침도시락을 선물하고 싶어요.”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에 이해영(24)씨는 “어려울 때마다 울타리가 되어준 분들”이라며 동아제지 식구를 소개했다. 이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동아제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직장생활에 적응하던 이씨는 대학생의 꿈을 안고 2001년 야간대학에 몰래 원서를 넣었다.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집안에선 학비가 비싸다며 등록을 만류했다.“밤새 엉엉 울었어요. 회사 동료들이 격려하고,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그때 포기했을 거예요.”이씨는 적금을 깨고 현금서비스까지 받아 첫 등록금을 냈다. 2004년 무사히 졸업한 이씨는 최근 기업은행에 합격, 회사를 옮겼다.“힘들 때마다 옆에서 힘을 준 언니들, 막내라고 아껴주던 사장님, 상무님이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CJ가 만든 햇반 전복죽과 애호박 게살전, 새송이 버섯구이, 야채 겉절이 무침, 장조림을 담은 아침도시락을 갖고 28일 서울 중구 수표동 동아제지를 방문했다. 직원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지각한 거냐.”며 도시락을 반겼다. 권희진 대리는 “은행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늘 좋은 일만 가득하길 멀리서 응원한다.”고 해영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새해 1월 4일 아침에 배달되는 아침도시락은 삼색 주먹밥. 파래김, 잔멸치볶음, 검은깨·참깨가루로 각각 만들어 색도, 맛도 다양하다. 따뜻한 오뎅국과 해초 피클, 백김치를 곁들인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렇게 신청하세요“오늘, 아침은 드셨나요.” 챙기지 못했다면 서울신문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매주 수요일 아침, 아침도시락 30개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신청방법 ●누구 아침 도시락이 필요한 독자는 ●언제 수요일 오전까지 ●무엇을 도시락이 필요한 사연과 연락처를 ●어디에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와 이메일(breakfast@seoul.co.kr)
  • ‘아침을 먹자’ 캠페인 뜨거운 성원에 감사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건강캠페인에 보내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개월 동안 아침도시락이 필요한 사연을 적은 글이 게시판과 이메일에 쏟아져 당첨자를 선정할 때마다 고심을 거듭했습니다.▶관련기사 31면 28일 햇반 전복죽과 애호박 게살전, 새송이 버섯구이, 야채 겉절이 무침, 장조림 등을 담은 아침도시락은 4그룹에게 전달됐습니다. 이해영씨는 전 직장 동료들에게 도시락을 선물했습니다.“고등학교 졸업후 처음 입사한 동아제지, 야간대학을 다니도록 격려해주신 사장님과 상무님, 선배 언니들에게 도시락을 보내주세요.” 윤금숙씨는 도시락으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아들 녀석이 아픈 뒤로는 남편 아침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합니다. 일터에서 도련님들과 함께 먹도록 도시락 부탁합니다.”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며 조수연씨가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고요.“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 일을 도맡은 시어머니께 따끈한 아침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경희씨는 “홀몸으로 사남매를 키우시고, 아직도 건물 청소 일을 놓지 못한 엄마에게 도시락을 보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이번에 당첨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고요. 걱정마시고 다시 신청하십시오. 아침도시락 선물은 새해 3월까지 쭉∼ 계속되니까요.글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무허가 시설도 폭설피해 보상을”

    폭설로 피해보상에서 제외된 무허가 축사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남도 재해대책본부는 27일 “이번 폭설로 무허가 축사와 비규격 버섯재배사, 수산증·양식시설 피해액이 400억원대에 달하고 있으나 보상대상에서 제외돼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박준영 전남지사도 폭설에 따른 무허가 피해시설에 대해 정부의 보상과 함께 보상가 현실화를 행정자치부에 건의했다. 전남도의 무허가 축사 피해는 전체 118㏊의 46.1%인 82㏊에 373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무허가 수산증·양식 피해는 410개의 21.6%인 143건 11억원이고 비규격 표고버섯 시설은 36㏊의 14.3%인 4㏊에 10억원이다. 무허가 축사는 건축법에 의해 신고를 하지 않고 짓거나 기존 건물에 잇대어 맘대로 건물을 증축한 게 대부분이다. 또 논이나 밭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닭이나 오리를 기른 경우다. 또한 수산증·양식 시설은 고기를 기르겠다고 허가를 냈으나 전복을 기른 경우다. 비규격 표고버섯 재배시설은 산림청에서 규정한 시설하우스의 철제파이프 굵기나 간격을 어기거나 기존 채소나 원예용 비닐하우스에 표고목을 넣은 경우다. 또 농촌에서는 축사를 짓고도 대부분 등기를 하지 않아 무허가 시설로 간주되고 있다. 도 축산과 관계자는 “소나 돼지는 농촌에서 농민들의 생명이나 다름없이 소중한 것”이라며 “관행대로 또는 규정을 모르고 가축을 기르다 피해를 본 농민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강조했다.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아침을 먹자] 남편·부모·직장동료에 고마운 마음 깜짝 전달

    [아침을 먹자] 남편·부모·직장동료에 고마운 마음 깜짝 전달

    서울신문이 CJ㈜와 함께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에 다양한 독자들이 아침도시락이 필요한 사연을 보내온다. 남편과 부모님, 선배와 직장동료 등 가까운 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21일 아침도시락 당첨자는 다섯 그룹. 남지현씨는 며칠 전 할아버지, 할머니 댁들 방문했다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팔순이 가까운 노인이 변변한 반찬도 없이 식사하는 모습에 눈물이 나려고 했단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맛있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쁠까요. 어렸을 때 키워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출판사에 다니는 김동은씨는 선배를 떠나보내며 깜짝 파티를 열고 싶다고 신청했다.“‘마음을 위로하는 책을 기획하라.’고 말해주던 선배가 회사를 떠납니다. 고마웠다는 말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캠페인에 도착하는 단골 편지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쓴 ‘연서´다. 권길자씨는 하루 3시간40분씩 출퇴근하는 남편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유난히 병치레가 많고 깊이 잠 못드는 아이들 때문에 아침마다 조심해서 씻고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나가는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지쳐서 남편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도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잠깐의 행복이지만, 추억으로 남을 이벤트가 될 것 같아 (도시락을) 신청합니다.” 홍금자씨는 스물여섯살 어린 나이에도 매일 새벽 3시, 가락시장으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도시락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너무나 배고픈 부산아가씨´라고 소개한 박재윤씨는 “새벽 출근하는 처녀선생님들에게 맛있는 아침 부탁드려요.”라는 애교 넘치는 사연을 보내왔다.21일 햇반밥과 쇠고기 버섯볶음, 즉석 파김치, 시금치 명란나물, 새우 계란말이가 담긴 노란 도시락이 도착했다. 예쁜 포장에 이쑤시개까지 챙긴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나 국이나 찌개가 없어 아쉬웠다. 오는 28일에는 햇반 전복죽과 애호박 게살전, 새송이 버섯구이, 야채 겉절이 무침, 장조림을 넣은 건강도시락이 배달된다. 글 사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경주 ‘최부잣집 정식’등 대표 음식 11가지 선정

    천년 고도 경북 경주시의 대표적 음식으로 ‘최부잣집 정식’등 11가지가 선정됐다. 경주시와 경주시음식업지부는 최근 경주를 대표할 향토음식을 공모,11가지 음식을 선정해 이를 계승·발전시키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공모에는 총 47개 품목이 응모했다. 시는 앞으로 이들 음식을 관광상품화하는 한편 시 인터넷 홈페이지와 홍보 책자 등을 통해 전국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최부잣집 정식은 300년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고유 방식으로 조리하며,20여 가지 반찬을 기본으로 하는 5종류의 상차림이 있고, 육장·집장·사인지(백김치)·육포 등 전통 가정음식으로 구성된다. 이밖에 한방 전복 갈비찜, 솔잎 순두부, 대게장 순두부, 기능성 비빔 정식, 찰보리 정식, 대나무 밥, 버섯 생불고기, 백설 소갈비찜, 닭오리 백숙, 순두부 찌개 등이 뽑혔다. 최부잣집 집안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정식은 경주시 교동 최부잣집 옆의 전통 한정식집 ‘요석궁’에서 맛볼 수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들 음식이 관광상품화될 경우 관광산업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아침을 먹자] 네번째 도시락 햇반밥·죽

    [아침을 먹자] 네번째 도시락 햇반밥·죽

    서울신문과 CJ㈜가 펼치는 ‘아침을 먹자’ 건강캠페인의 네번째 아침도시락은 CJ 햇반으로 만든다. 앞으로 3주 동안 푸드스타일리스트 오희경씨와 최지은씨가 햇반밥과 햇반죽을 주메뉴로 웰빙도시락을 개발했다. 오는 21일 배달할 아침도시락에는 햇반밥과 쇠고기 버섯볶음, 즉석 파김치, 시금치 명란나물, 새우 계란말이가 담긴다. 쇠고기 버섯 볶음은 요리가 간편해 아침밥으로 제격이다. 우선 새송이·느타리·표고버섯을 가늘고 길쭉하게 손질해 소금에 살짝 절인다. 그리고 물기를 뺀다. 진간장과 설탕, 다진마늘, 다진파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버섯에 뿌려 밑간을 해둔다. 쇠고기는 우둔살로 준비해 채를 쳐서 같은 양념장에 버무린다. 프라이팬을 기름에 달구고 버섯을 살짝 볶다가 양념한 고기를 넣고 달달 볶으면 요리 완성. 시금치, 명란나물도 밋밋하기 쉬운 시금치를 명란으로 맛깔스럽게 요리했다. 즉석 파김치는 실파와 미나리를 손질해 3㎝로 썰어놓고 액젓, 고추가루, 설탕, 통깨를 넣어 살짝 버무리면 그만이다. 햇반밥과 어우러진 웰빙 반찬은 담백해 아침으로 일품이라고. 28일에 도착하는 아침도시락은 햇반 전복죽과 애호박 게살전, 새송이 버섯구이, 야채 겉절이 무침, 장조림을 넣었다. 일명 건강식이다. 전복의 쫄깃하고 담백한 맛을 제대로 살린 햇반 전복죽에 고른 영양을 고려한 밑반찬이 풍성하다. 눈에 띄는 반찬은 야채 겉절이 무침. 배추 속잎, 쪽파, 양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참치액, 설탕, 통깨, 고춧가루, 참기름에 살짝 버무렸다. 한국식 샐러드인 셈이다. 내년 1월 4일에 배달할 아침도시락은 어린이와 여성이 좋아할 삼색 주먹밥. 파래김, 잔멸치볶음, 검은깨·참깨가루로 각각 만들어 색도, 맛도 다양하다. 밥을 뜨겁게 데운 후 참기름을 섞어 파래김 부순 것, 멸치볶음, 간한 깨를 각각 묻혀서 동그랗게 말아 주먹밥을 만든다. 따뜻한 오뎅국과 해초 피클, 백김치를 곁들였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최지은씨는 “추운 날,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처럼 정성스레 도시락을 준비할 것”이라면서 “한끼 식사로 해맑은 미소가 지어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책꽂이]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전진성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1980년대 이래 국제 역사학계의 주요한 흐름이자 방법론으로 결국 역사학의 전환을 이끌어낸 신문화사 연구로 이어져오고 있는 ‘기억문화’의 이론과 실제를 소개한다.2만 3000원.●우리말에 대한 예의(이진원 지음, 서해문집 펴냄)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우리말의 오용과 오류의 사례들을 바로잡고, 잘못된 말글살이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함께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방안들을 제시한다.1만 1900원.●철학, 역사를 만나다(안광복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플라톤의 이상 국가와 ‘제자백가의 시대’로 불리던 춘추전국시대부터 프랑스 혁명과 마르크스 시대를 거쳐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에 이르기까지,2000여년에 걸친 철학의 주요 장면을 세계사와 함께 읽어나간다.9800원.●소리의 자본주의(요시미 야 지음, 송태욱 옮김, 이매진 펴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축음기, 전화, 라디오로 대표되는 음향미디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다양한 집단, 계급, 젠더 사이의 다툼 속에서 살펴본다 . 1만 8000원.●우리는 지금 빙하기에 살고 있다(더그 맥두걸 지음, 조혜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 45억년에 달하는 지구역사에서 빙하기가 언제, 몇번이나 뒤덮었고, 지구의 생명과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고 멸종시켰는지, 빙하기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1만 7000원.●대교약졸-마치 서툰 것처럼 보이는 중국문화(박석 지음, 들녘 펴냄)‘‘도덕경’에 나오는 ‘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뜻의 대교약졸의 관점에서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중국 문화사를 살펴보고, 현대 자본주의 문제점을 찾아 제시한다.2만 1000원.●인디고 서원, 내 청춘의 오아시스(아람샘과 인디고 아이들 지음, 궁리 펴냄) 16년간 부산에서 독서토론 교실인 ‘아람샘 소행성 612호’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의 문화공간인 ‘인디고 아이들’과 ‘인디고 서점’을 운영해온 허아람씨와 아이들의 책 읽기 이야기를 담았다.1만 8000원.●전복적 스피노자(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이기웅 옮김, 그린비 펴냄) 과거 ‘범신론’에만 주목했던 스피노자 연구에서 벗어나 그의 인식론·존재론·정치철학 모두에 주목하는 ‘스피노자 르네상스’ 관점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현재의 문제로 끌어들인다.1만 4900원.●성경과 코란(오아힘 그닐카 지음, 오희천 옮김, 중심 펴냄) 모두 구약성서에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의 유사성과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서로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1만 5000원.
  • 美 잇단 대북 강경발언 의도는 위폐문제 타협 “NO”

    美 잇단 대북 강경발언 의도는 위폐문제 타협 “NO”

    “작전을 짜 압박하는, 고의적 언급은 아니다.” “평소 미 행정부의 북한인식이 튀어나온 것.” “6자회담 재개 이전으로 회귀, 북 체제 전복까지 꾀하는 움직임.” “6자회담 협상용.” 최근 이어지고 있는 미 행정부의 대북 두드리기와 관련한 엇갈리는 분석들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미스터(Mr) 김정일’로 불러주며 조심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온 진단들이다. 어떻게 진단하든, 분명한 것은 최근 강경 발언 핵심엔 북한의 달러 위조로 야기된 마카오은행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미측의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부시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세계문제협회에서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총선’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다른 정권들의 교체를 요구한다.”라고 했다. 곧 이어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달러를 위조하고, 국민들을 굶겨 죽이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앞서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차관은 대북 추가 금융제재를 언급한 뒤 “북한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얼마나 더 오래가는가는 한국·중국 같은 외부지원에 달려 있다.”고 언급했다. 또 “인권 등의 차원에서 보면 도저히 미래가 없는 정권”이라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의 ‘범죄 정권’에 이은 연타(連打)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작전’ 차원의 조율된 언급들은 아니며, 미측 6자회담 협상팀의 입지가 좁아질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면서 부정적 의미 부여에 손사래를 쳤다. 버시바우 대사의 경우 부임한 지 얼마 안돼 강경 발언이 갖는 민감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부시 대통령은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두근두근 두고두고봐이~두바이

    두근두근 두고두고봐이~두바이

    아랍에미리트의 제2도시인 두바이는 미래의 관광지다.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여행지로의 탈바꿈이 한창이다. 현재는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세계 최고 빌딩 부르즈 두바이(189층)와 세계 지도 모형의 인공섬 더 월드 등 4개의 인공섬이 만들어진다.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인 두바이에 가면 사막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오일 달러’의 위력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고 현재 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사막 구릉을 넘는 짜릿한 사막 사파리 투어가 있고, 곳곳에 살아 숨쉬는 아랍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지난 3일에는 400m길이의 슬로프를 갖춘 세계 최대 실내 스키장이 개장됐다. 아직까지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떠나는 ‘스톱오버’(중간기착) 관광객들이 잠시 스쳐가는 관광지이지만 미래에는 세계 관광의 중심을 꿈꾸고 있다. 글 사진 두바이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세계 최고 럭셔리 호텔 ‘버즈 알 아랍’ 새벽 4시 45분. 두바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으로 향했다. 하룻밤 숙박료가 최고 1만달러(약 1000만원)에 이른다는 세계 최고급 호텔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도착한 곳은 호텔이 가장 잘 보인다는 주메리아 비치. 비치는 아침 일찍부터 산책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 곳에서 바라본 돛단배 형상의 호텔은 볼수록 ‘럭셔리´함이 묻어난다.‘아랍의 타워’라는 의미의 호텔은 두바이의 랜드마크로 1997년 문을 열었으며, 자칭 혹은 타칭으로 ‘7성급’ 호텔로 불린다. 호텔은 복층으로 27층에 불과하지만 높이가 321m로 호텔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호텔은 숙박객이나 음식점 예약자 외에는 출입이 통제돼 있어 들어가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최근 결혼설이 나오고 있는 할리우드 톱스타 커플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휴가를 즐기며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두바이에서는 5성급 호텔들은 명함을 제대로 내밀지 못한다. 시내에 호텔만 290개, 호텔형 아파트도 100개에 이르는데 ‘6성급’이라는 명칭이 붙은 호텔들도 수두룩하다. 현재도 호텔이 계속 건립 중이며, 시내에 들어서면 곳곳이 각종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가장 널찍한 공사장은 ‘버즈 두바이’라는 700여m에 이르는 189층의 세계 최고 주상복합 레저단지 공사장으로 삼성물산이 2009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길이 400m짜리 슬로프를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스키장을 개장했다. 스키장은 높이 85m, 너비 80m로 총 5개의 슬로프를 갖추고 있으며,1년 내내 영하 1도의 온도가 유지된다. 앞으로는 30∼40도를 웃도는 열사의 땅에서 스키도 즐길 수 있다. 또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 규모의 테마파크인 ‘두바이랜드’를 건설 중에 있다. ●스릴넘치는 사막 사파리투어 현재 두바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투어는 ‘사막 사파리’.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 70㎞ 떨어진 하타에 도착하자 수십여대의 4륜구동 자동차들이 뜨거운 사막를 질주한다. 사막에서 들어서기도 전에 아프리카 출신의 운전사 겸 가이드는 “(차가 심하게 흔들려) 멀미를 할지 모른다.”며 겁을 준다. 사막 사이로 길게 뻗은 도로에서 벗어나 사막지대에 들어섰다. 먼저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타이어에 바람을 뺀 뒤 “안전벨트를 매라.”며 급하게 액셀레이터를 밟자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급경사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타이어 바람을 빼야 안정감이 있다고 한다. 모래 능선을 따라 곡예운전이 시작됐다. 능선을 힘겹게 올랐다가 내리면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입에서는 저절로 비명이 쏟아진다. 자동차가 모래에 비탈길을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면 차가 전복되는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차가 모래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느낌이다. 언덕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차가 사막 한가운데 들어서자 차가 잠시 멈췄다. 모래에 빠진 다른 차량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짬을 내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사막을 달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우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맨발로 사막을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같은 사막. 하염없이 먼 사막을 응시했다. 1시간 남짓 사막에서의 곡예 운전을 만끽할 쯤 저멀리 일몰이 시작됐다. 샛노란 모래 사막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어두워지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운전사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막 가운데 조성된 베두인 마을에 도착했다. 나무 울타리를 쳐놓은 이 곳은 베두인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민속촌. 물담배와 함께 양고기 바비큐 등을 맛볼 수 있으며, 베두인 전통 벨리댄스를 볼 수 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밝게 빛났다. 먼저 물담배를 즐기는 장소가 마련됐다. 물담배는 유리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기구 안에 물이 담겨 있으며, 연결 호스에 빨대를 끼우고 연기를 흡입하면 된다. 물담배 맛은 순하면서 박하향 같은 냄새가 좋았다. 아랍 전통요리인 ‘티카’(양고기 요리)와 시원한 맥주를 걸치자 무대에서 벨리댄스가 시작됐다. 풍만한 육체의 아리따운 무희가 아랍 음악에 맞춰 허리와 엉덩이를 육감적으로 흔들며 흥을 돋우었다. 까만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원없이 만끽한 사막의 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아랍인의 생활속으로 현지인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시티 투어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재래시장이나 시내에 있는 아랍 건축 양식 등을 둘러보았다. 두바이는 크릭강을 중심으로 데이라 지구와 두바이 지구로 나뉘는데 수상택시인 ‘아브라’를 타고 크릭강을 건너 보는 것도 좋다. 목적지 별로 여러명이 함께 배에 오르는데 요금은 1인당 1디아르. 저녁 무렵이면 강위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먼저 6성급 호텔인 알카사 호텔에 있는 ‘마리낫 숙´을 들렀다. 전통시장을 고급스럽게 재현해 놓은 곳으로 아랍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예품을 비롯해 향료와 비누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두바이 박물관에 들르면 두바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곳에는 허허벌판이던 사막이 어떻게 지금의 두바이가 됐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두바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금시장과 향신료 시장이다. 금시장은 브루나이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으로 두바이엔 300여개의 금 판매상이 밀집해 있다. 다양한 금은 세공품을 취급하는데 돌아보는 것만으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두바이는 면세지역으로 모든 제품을 면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같은 물건이라도 저렴하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 중 두바이 관광청을 찾았다. 수조원을 들여 변모해 가는 두바이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관광마케팅 담당자인 알리 빈 압둘 와합은 관광객 1억명 유치를 목표로 하는 원대한 ‘두바이 드림’ 계획(2018년 완료)을 설명했다. 그는 앞바다에 종려나무(대추야자) 모양을 본뜬 대형 인공 섬 ‘팜 아일랜드’와 세계지도 모양의 ‘더 월드’에 대해 설명했다. 두바이 해안에서 8㎞ 떨어진 바다 위에 조성되고 있는 ‘더 월드’는 가로 9㎞, 세로 6㎞의 넓이로 한국을 포함한 300여개의 섬으로 돼 있는데 각국을 닮은 섬들을 현재 분양하고 있다. 각 섬에는 고급 빌라, 주택, 호텔, 쇼핑몰 등이 들어서는데 한국의 섬 분양가는 200억원 정도라고 설명한다. 아파트나 건물 등을 구입하면 쉽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미리 알고 떠나세요 인천에서 두바이까지는 에미리트항공(www.emirates.com/korea/kr·02-779-6999)이 매일 새벽 0시 30분 직항편을 운항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5시간 늦으며, 운항시간이 9∼10시간 정도 소요돼 새벽 5시분쯤 도착한다. 돌아오는 편은 오전 2시40분 두바이를 출발,8시간 30분 걸려 오후 3시 50분쯤 인천에 도착한다. 한국이 오전 9시면 두바이는 오전 4시다. 기온은 4∼9월은 40도를 오르내리지만 10∼3월은 15∼30도 정도로 여행하기 좋다. 두바이는 한달간 관광 목적의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술 반입도 허용된다. 환율은 1000원에 3.6디람 정도이며, 전압은 220볼트,1인당 국민소득은 2만 5000달러다. 한국식당은 4곳이 있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30여곳에 이른다. 만나랜드(www.dubaiinform.com)의 경우 1박 3식에 60달러 정도로 전화를 하면 공항 픽업서비스도 해준다. 중동지역 전문 랜드사인 ‘디티티에스’(www.godubai.co.kr)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씨줄날줄] ‘1-4-2-1전략’/진경호 논설위원

    ‘1-4-2-1전략’. 독일 월드컵에 임하는 비장의 축구 포메이션이냐고? 차라리 그럼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경찰국가 미국의 안보전략이다. 미국 본토를 수호하고(1), 유럽·동북아·동남아·중동 등 4개 주요지역에서의 적대행위를 막는 한편(4), 동시에 벌어지는 2개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2), 특히 이 가운데 한 곳은 정부 전복을 포함한 결정적 승리를 거둘(1)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개념이다.9·11테러 이후 마련된 이 전략을 2003년 3월 처음 적용받은, 운 나쁜(?) 나라가 이라크이다. 이라크의 도발이 없었는데 먼저 쳐들어가고, 이를 통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낸 것이다. 잠재적 위협을 찾아내 그 싹을 미리 잘라낸다는, 부시 미 행정부의 이른바 이 ‘뉴롤백(new rollback)정책’은 알려진 대로 ‘선제공격’과 ‘체제전복’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과거 걸프전에서처럼, 받은 공격만큼 되돌려주는 식의 기존 안보전략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테러 등 안보위협이 될 만한 국가나 세력은 직접 찾아가 쳐부수고, 덜 위협적인 정권을 세운다는 개념이다.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가능성마저 없애려면 잠재적 안보위협을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말로 그 당위성을 설명한다. 본궤도에 오른 주한미군 감축을 비롯한 미군 재배치나 미·일 신안보구상 등도 이 전략을 바탕에 깔고 있다. 통상전력과 상위개념의 핵 전력을 통합 운용함으로써,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한층 높여 놓은 미국의 핵 운용구상도 여기에 포함된다. 2001년 10월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R)에서 제시된 이 전략을 미 행정부가 내년 이후에도 유지할 방침이라고 워싱턴포스트가 엊그제 보도했다.‘2개 전쟁 동시수행’ 전략을 포기할 것으로 알려지던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이다. 한반도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2개의 전쟁’이 겨냥한 나라가 사실상 이란과 북한이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이라크에서 총선이 실시된다. 새 의회가 구성되고, 정권이 안정을 찾는 속도에 맞춰 미군도 철수할 전망이다. 그러곤 다음 목표를 찾을 것이다. 북한은 생각보다 대화의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北의식 엉거주춤한 정부

    북한인권국제대회가 개막된 8일 정부의 자세는 ‘엉거주춤’했다. 북·미간 금융제재 문제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북한은 범죄정권’ 발언으로 북측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정부 때리기’ 공세도 이어져 양쪽 뺨을 다 내놓고 있는 신세다. 정부는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워크숍, 실무회의 등에서 북한인권대회를 6자회담 진전의 주요 난제로 꼽을 정도로 노심초사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제이 레프코위츠 미 북한 인권특사의 면담 요청도 정부로선 ‘뜨거운 감자’.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정동영 장관에 대한 레프코위츠 특사의 면담요청을 거절하는 대신, 고경빈 사회문화협력국장이 특사를 만났다. 겉으로 밝힌 이유는 국장급인 특사의 격(格)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경우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아세안(ASEAN+3)회의 출장을 떠났고, 유명환 제1차관이 특사를 9일 오전 만난다. 조찬이 아닌 ‘티타임’으로, 장소도 정부청사가 아닌 외부에서 만나기로 해 공식적 모양새를 피하려는 기색이다.8일 레프코위츠 특사는 천영우 외교정책실장과 만나 “북한 인권 문제는 한국정부에도 매우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고 천 실장은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에 공감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방법에서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정책이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공개적인 요구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인권문제 제기를 체제전복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인권개선 요구는 남북관계에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8일 인권대회 만찬에는 외교부 최성주 군축심의관이 참석했으며 통일부 당국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9일 회의에는 김문환 외교부 인권사회과장이 ‘참관’한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박경서 인권담당대사 등은 참석하지 않는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독재정권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

    ●인혁당, 민청학련사건이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은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셌던 1964년 8월14일 인혁당이란 반국가단체가 북한 지령을 받고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이다. 서울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거부했지만 당직 검사가 관련자 26명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1965년 9월 대법원에서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사건은 1974년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된 상황에서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유신반대 투쟁을 주도한 관련자 180명을 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중정이 인혁당 재건위를 그 배후로 지목해 관련자 23명 중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이 2차 인혁당 사건이다.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독재정권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

    7일 국정원 과거사위가 발표한 인혁당·민청학련·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핵심은 과거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 남용’을 범하고 고문 등을 통한 ‘인권침해’의 과오를 빚은 대형 공안사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인혁당과 민청학련과의 연관성, 조직의 실체 여부 등에 대해 사실상 ‘관련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피해자 명예회복과 배상 문제, 정권 차원의 ‘명백한’ 조작 입증 등이 과제로 남아 향후 지속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의혹과 쟁점 인혁당 사건의 중요한 쟁점은 실체 여부와 민청학련과의 연관성이다. 고문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는 부분은 의문사위 발표 당시에도 포함됐었다. 진실위는 “인혁당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치활동이 전면 금지되자 혁신계 주요 인물들이 향후 합법화될 혁신정당 활동에 대비해 논의해오던 활동에 불과해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실위는 이어 “인혁당은 서클 형태의 모임이었고 강령과 규약도 정식 채택되지 않았으며 인혁당 명칭도 여러 명칭 중 하나”이라고 밝혔다. 중정은 당시 창당을 주도한 남파간첩 김영춘과 창당에 참여한 뒤 월북했다가 재남파된 김배영을 예로 들어 인혁당이 북의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한홍구 진실위원은 “김영춘은 4·19 직후 사회대중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전 동아대 교수 김상한이며, 남파간첩으로 월북한 게 아니라 거꾸로 박 정권으로부터 지시받고 북파됐다.”고 부인했다. 김배영도 인혁당 사건 발생 3개월 뒤에 월북했지만 중정은 그의 행적조차 모르면서 사건에 개입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 진실위측의 판단이다.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 “민주정권을 수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던 학생들을 인혁당의 배후조종을 받은 국가 전복자로 탈바꿈시킨 사건”으로 규정했다. 또한 진실위는 인혁당 재건위가 민청학련의 배후조직으로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조종하였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개입 확실하다” 진실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정황적 증거가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1975년 4월8일 대법원 선고 이후 18시간 만에 전격 집행된 관련자 8명의 사형집행의 경우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병욱 간사는 “1975년 2월21일 박 전 대통령은 민청학련 관계자들이 석방되자 ‘법무부와 중정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며 질책했고 곧바로 황산덕 법무부장관이 ‘인혁당 사건은 김일성의 지시로 북괴간첩에 의해 조직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며 정권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당시 윤모 수사팀장으로부터 “사건 처리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있는 문서를 본 적이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지만 진실위는 관련자 증언이나 자료도 확보하지 못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염주영칼럼] ‘황우석 재판’이 남긴 것

    [염주영칼럼] ‘황우석 재판’이 남긴 것

    수학자였던 갈릴레이는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의 별들을 관찰했다. 관찰을 통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천문대화’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일로 교황청에 소환돼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 재판에서 그 책의 내용을 부인하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는 파문돼 가택연금에 처해졌으며, 책은 금서처분을 당했다. ‘천문대화’는 그가 죽은 후 200년이 지나서야 금서에서 풀려났다. 갈릴레이가 완전복권을 받기까지는 이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무덤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가 재판장에서 풀려 나오는 날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한 말이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633년에 있었던 ‘갈릴레이 재판’과 흡사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MBC의 ‘황우석 재판’이다. 재판의 주재자는 교황청에서 MBC로 바뀌었고, 피고인석에는 갈릴레이 대신 황우석 교수와 그의 연구원들이 앉았다. 세월이 흘러 등장인물들은 바뀌었지만 재판의 본질은 동일했다. 과학을 비과학의 잣대로 검증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이 재판에서는 성서와 당대 신학자들의 성서해석이 과학을 검증하는 잣대로 사용됐다. 그렇게 한 검증의 결과를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파문’의 협박이 가해졌다. 그리곤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스스로 부인하도록 자백을 강요했다. MBC의 황우석 재판에서는 그 과학적 근거를 입증할 수 없는 악의적 제보가 검증의 잣대로 사용됐다. 황 교수의 연구원들에게 ‘구속’의 협박이 가해졌으며, 그들의 연구결과물인 사이언스 논문이 ‘페이크’(fake, 가짜)임을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갈릴레이 재판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필자는 황우석 재판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내 가슴이 아팠다. 한 과학자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내용을 담은 논문을 비전문가들이 이리저리 재단하며 마치 ‘인민재판’을 하는 식으로 심판하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400년 전으로 되돌아간 우리 사회의 과학문화의 후진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과학자들이 느꼈을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황우석 재판은 MBC PD 몇사람의 돈키호테적 만용에서 시작됐다. 돈키호테의 만용은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지만 언론기관의 만용은 사회적 흉기와 같은 것이다. 국내 과학자들은 과학의 문외한들이 세계 과학계를 상대로 ‘당신들이 틀렸다.’라고 외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PD 몇사람의 불장난으로 돌릴 수 있을까. 과학에서 윤리문제를 감시하는 것은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 과학논문의 진위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과학논문의 검증은 과학자들이 할 일이다. 세계 생명공학의 대가들이 지금 황우석의 논문을 검증하는 중이다. 그들은 같은 방법으로 실험을 할 것이고 오류가 발견되면 새로운 논문으로, 혹은 보다 진전된 논문으로 이를 수정할 것이다. 과학적 절차를 무시한 황우석 재판은 과학에 대한 만행이며, 과학자들에 대한 테러다. 과학을 비과학적으로 검증할 때 과학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 400년 전의 갈릴레이 재판에서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그럼에도 PD들의 위험한 불장난을 제지하지 않았던 MBC의 경영진들은 1차적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우리 사회의 낙후된 과학문화를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yeomjs@seoul.co.kr
  • 한국 최대의 그림 한산대첩도

    한국 최대의 그림 한산대첩도

    「예루살렘」이 세계의 성지라면 충남 아산의 현충사(顯忠祠)는 한국 유일의 성지다. 66년 4월 25일 사적 제155호로 지정되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성역(聖域)으로 지정, 공포된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구국의 얼이 어린 이 현충사가 깨끗이 새 단장을 마쳤다. 4월 28일 충무공 탄신 424돌을 맞아 새 모습을 드러낼 현충사엔 한국 최대규모의 벽화『한산대첩해전도(閑山大捷海戰圖)』가 이 성역을 찾는 이들 앞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충무공이 학익진(鶴翼陣)을 펴서 왜함(倭艦) 섬멸하는 극적 장면 때는 1592년 8월 14일(음력 7월 8일). 충무공이 지휘하는 우리 수군은 왜군 함선 70여 척을 한산 앞바다로 유인, 학익진을 펴서 적을 포위 섬멸했다. 이 해전에서 충무공은 그 전 해 만들었던 거북선을 실전에 처음 사용했으며, 이 해전 이후 우리 수군은 완전히 제해권(制海權)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 이 역사적 싸움이 가로 7m, 세로 4m의 거대한 화폭 속에 그대로 재생되고 있다. 노한 바다는 용의 머리처럼 꿈틀거리고 철포는 불을 뿜는다. 붉은 전복(戰服)에 푸른 전포(戰布)를 입은 우리 수군들이 활시위를 잡아 당기는가 하면 전고(戰鼓)를 두드리는 병사의 손길이 힘차다. 거대한 화폭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장엄한 민족의 서사시가 그대로 울려 오는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벽화 중 가장 큰 것은 육사(陸士) 본관에 있는 1천 5백호 짜리. 그런데 이번 제작된 한산대첩도는 무려 2천 5백호니 가위 한국 제일이다. 이 엄청난 벽화를 그린 사람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수인 문학진(文學晋·46), 정창섭(丁昌燮·43) 두 화백. 『한 작품을 두 사람이 나눠 그린다는 게 좀 이상스럽게 보이겠지만, 이건 개성이 있는 창작이라기보다 기록화니까 공동제작이 가능하죠. 전체구도나 거북선의 크기, 그리고「톤」의 통일 등 이런 것만 미리 정해놓고 두 사람이 나눠서 그렸죠』 이 거대한 작업이 시작된 건 불과 2개월 전 일. 『문공부 측에서 4월 28일까지 현충사에 갖다 놓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거예요. 무리였죠. 아무렇게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고 오래오래 현충사에 보존될 것이니 보다 더 시일을 주었어야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막판엔 우리 두 사람이 번갈아 밤샘까지 해야 했죠』 워낙 거대한 작업이라 우선「캔버스」를 마련하는 데서부터 골치를 앓아야 했다. 거대한「캔버스」3개를 조립식으로 도저히 그처럼 큰「캔버스」를 구할 길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세로 4m, 가로 2m 50cm의「캔버스」를 3개 만들어 붙여 놓았다. 그러니 자연 이 한산대첩도엔 두 곳의 이은 곳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다음은 그릴 곳이 문제. 가로 7m, 세로 4m의 화폭을 들여놓을 만큼 큰「아틀리에」를 구할 수 없었다. 궁리 끝에 미술대학 교무과장실 옆방을 비우고 이 방안에서「캔버스」를 조립해야 했다. 4월 22일 상오 10시 그림이 완성되자 그림을 현충사로 운반하기 위해 다시 그림은 3조각으로 나누어졌다. 현충사에 옮겨진 뒤 다시 현장에서 조립, 마지막 뒷손질을 해야 했다. 다음은 작업의 불편. 『하도 높아서 책상을 갖다 놓고 그 위에 또 의자를 놓아야 했죠. 그리고 그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리자니 우선 다리가 아파서 1시간 이상은 작업을 할 수 없었죠. 그럴 땐 내려와서 아랫부분을 그렸죠』 채광(採光)을 위해 특별히 전깃줄을 배선,「캔버스」부근엔 4개의 대형 전등이 밤낮없이 켜 있어야 했다. 그러나 가장 조심해야 했고 골치 아팠던 것이 바로 고증(考證). 최순우, 조인복, 김용국, 최영희씨 등 4명으로 구성된 고증위원회가 작업 개시에 앞서 여러 차례 두 화가와 만나 당시의 전함이 어떠했고 의복이 어떠했나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나오면 심지어 고증위원들까지 서로 의견이 엇갈려 두 화가를 골탕먹이기도 했다. 전함에 장치한 대포 1문을 그리는데 의견이 엇갈려 네 번씩이나 지우고 다시 그려야 했다. 골치 앓기는 거북선 고증, 이설(異說)많아 모형 특별주문 『거북선 같은 건 하도 이설(異說)이 많아 나중엔 모형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죠. 그래서 그 모형을 보면서 그려 갔어요. 그림을 그린 건지 임진란사(任辰亂史)를 공부한 건지 구별 못할 정도니까…』 화폭의 오른쪽은 학익진을 편 우리 수군 중 수선(帥船)인 충무공의 배에서 시작, 우리 수군의 우익(右翼)이 거북선을 선두로 늘어서 있고 중앙과 왼편엔 활에 맞아 죽고 대포에 맞아 불타는 왜함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 그림에 나타난 충무공의 모습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의 영정(影幀)을 토대로 했다고. 이 벽화는 현충사 안에 마련된 유물전시관에 자리잡게 된다. 『보수요? 글쎄 두고 보아야 알겠죠. 지금까지 받은 것이라곤 재료값뿐이니까요. 우리야 어디 보수 생각하고 그렸나요?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성심껏 일한 거죠』 완성된 한산대첩도를 아산으로 보내며 두 화가가 한 말이다. 2개월여의 엄청난 작업의 보수는「금일봉」과 현충사 벽화를 그렸다는 자랑만으로 참아야 할 거란다. [ 선데이서울 69년 4/27 제2권 17호 통권 제31호 ]
  • 호남선 마비… 전북 일부 휴교

    3일 밤부터 내린 폭설로 전국 도로와 해상에서 교통사고와 선박 침몰사고가 잇따라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또 고속도로 통행이 통제되고 전북 일부 지역에서는 휴교조치가 내려졌다.●어선 뒤집혀 5명 실종… 경부고속도선 19중 추돌 4일 오후 3시50분쯤 전남 영광군 안마도 남쪽 0.5마일 해상에서 9.77t급 연안자망 207 덕진호(44·선장 대동명)가 전복돼 선장 대씨 등 5명이 실종됐다. 또 이날 오전 7시35분쯤 서귀포 남서쪽 318㎞ 해상에서는 11t급 어선 제109 태성호가 높은 파도에 전복돼 선장 홍모(52·남제주군 성산읍)씨 등 선원 4명이 실종됐다.이날 오전 9시10분쯤에는 충북 충주시 이류면 중부내륙고속도로 하행선 마산기점 224㎞ 지점에서 서울 72바 13××호 관광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됐다. 이 사고로 신모(26·대학생)씨가 숨지고 유모(65·여)씨 등 2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오전 7시쯤에는 전남 영광군 노량면 서해안고속도로 목포기점 상행선 54㎞ 지점에서 관광버스 1대가 눈길에 전복돼 승객 나모(69)씨 등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오전 7시15분쯤에도 경북 구미시 오태동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166㎞ 지점 낙동대교에서 승용차 등 차량 19대가 연쇄 추돌했다. 서울에서도 이날 오전에만 100여건의 크고 작은 빙판길 교통사고가 이어졌다.●호남고속도로 익산~곡성 100㎞ 전면통제큰 눈이 내리자 교통당국은 4일 오후 5시부터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곡성에서 전북 삼례까지, 하행선 익산에서 곡성까지 100여㎞ 구간에서 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했다. 목포발 서울행 호남선 열차도 출발하지 못했다. 전북도교육청은 눈이 많이 내린 정읍, 고창, 부안, 순창 등 도내 서해안 지역의 초·중·고교에 임시휴교 조치를 내렸다.광주시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은 폭설이 내린 광주와 전남 나주, 담양, 장성, 화순 지역 초·중·고교 학교장에게 5일 휴교 여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오전 9시30분에 광주를 출발할 예정이었던 김포행 아시아나항공 OZ8702편이 결항되고 오전 11시30분발 김포행 대한항공 KE1304편도 취소됐다.광주 최치봉기자 서울 유영규기자 cbchoi@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7) 정치적 예언의 집대성 ‘정감록’

    한국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적 예언이 있었다. 그것은 주제에 따라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풍수설에 입각해 새 왕조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있었는가 하면, 미륵불이 지상에 내려와 이상세계가 열린다는 예언도 있었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서로 교대할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예언이 역사상 한꺼번에 존재한 적은 오히려 드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나타나기도 하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예언이 혼합되기도 했다. 역사상 존재한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실개천들에 비유된다.‘정감록’은 그 냇물들이 한데 모여들어 이뤄낸 호수라고 볼 수 있다.18세기 전반, 조선 영조 때 역사의 무대 위로 처음으로 등장한 ‘정감록’은 지난 200∼300년 동안 더욱 내용이 풍부해졌다. 이제 ‘정감록’은 민간에 유행하는 예언서를 모두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어 있다. ‘정감록’의 핵심은 정감과 이심 및 이연 등 3인의 대화다. 이를 ‘감결’이라고도 하는데 이본이 많다. 길이가 가장 짧은 한글 본은 약 2430자, 가장 긴 한문본은 6030여자나 된다.‘정감록’에는 ‘감결’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예언서가 속해 있다.‘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화악노정기(華岳路程記)’,‘구궁변수법(九宮變數法)’,‘동국역대본궁음양결(東國歷代本宮陰陽訣)’,‘무학비결(無學秘訣)’,‘도선비결(道詵秘訣)’,‘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징비기(徵秘記)’,‘토정가장비결(土亭家藏秘訣)’,‘경주이선생가장결(慶州李先生家藏訣)’,‘삼도봉시(三道峰詩)’,‘옥룡자기(玉龍子記)’ 등이 그것이다. ‘정감록’이 예언서의 집성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한국 역사상 등장했던 모든 예언서가 그 이름 아래 묶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진짜 이유는 여러 예언서에서 탐지되는 중요한 특징이 모두 ‘정감록’에 살아있어서다. ●삼국통일 무렵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돼 삼국시대 초기에는 예언서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예언서가 출현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성스러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 신기한 전설이 있었을 따름이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를 비롯해 신라의 탈해왕과 김알지, 가야의 김수로왕의 등극을 알리는 설화가 나온다. 이처럼 위인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는 자연현상이나 태몽 등은 고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는 물론이고, 서양 고대의 문헌에도 보인다. 이웃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들은 이상한 동물의 출현과 예외적인 천문현상 및 자연계의 이변을 정치적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삼국사기’ 등에는 이에 관한 기록이 수백 군데나 있다. 고대 한국에는 국가의 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자명고 같은 물건이 있었다고도 한다. 신라에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란 신기한 피리도 있어, 불기만 하면 적군이 저절로 물러나고 질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처음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말인 7세기 후반이다.“백제는 달 바퀴와(月輪)와 같고 신라는 초승달(月新)과 같다.” 백제는 망하고 신라는 흥하리란 정치적 예언인데, 이런 내용이 거북 등에 적힌 채 백제의 왕궁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 짤막한 문장은 한국 최초의 정치적 예언서였다. 이것이 발견되고 얼마 안 돼서 이번엔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고려비기’가 발견되었다. 요컨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해 정치적 예언이 문자로 정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전해오던 예언이 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것은 외래문자인 한자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초의 예언서는 길이가 극히 짧고 시적이었으며 비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신라말 최치원이 썼다고 하는 예언서 역시 그랬다. 그는 “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시구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고 하는데, 비유법이 눈길을 끈다. 이와 같은 특징이 10세기 초 철원에서 나온 ‘고경참’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140여자로 구성된 ‘고경참’은 왕건이 궁예를 꺾고 개성에 새 나라를 세우게 된다고 했다. 고려는 12대 360년간 유지된다고 예언되었다. 이 예언서는 단군신화나 주몽설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러나 왕건 같은 ‘성인’이 결국 최종적인 승자가 되리라고 예언한 점에서 ‘정감록’의 원형이다. 고려의 국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관한 점에서도 ‘정감록’의 선구가 된다. ●풍수지리설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풍수지리설이 유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언한 글이 많이 등장했다. 풍수설은 ‘정감록’의 경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는다. 미래의 수도를 계룡산, 가야산, 전주 및 개성으로 예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풍수설에 기초한 것이다. 아울러 십승지설을 비롯해 전국의 길지를 따져본 것도 풍수설의 영향이다. 풍수설을 대표하는 고려의 예언서로는 도선(道詵·827∼898)의 저술로 알려진 몇 가지가 있다. 아울러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 하는 것이 또 있다.‘신지비사’는 고조선의 예언가 신지가 저술했다고 하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 도선의 저술이라고 알려진 예언서들도 위작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도선은 풍수설의 대가였다. 다만 고려태조와 가까운 사이였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태조와 긴밀했던 것은 그의 제자 경보(慶甫·868∼948)였고, 그로 인해 역사책에는 도선과 고려 왕실의 관계가 과장되었다. 11세기 중엽, 고려 문종 때부터 이른바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 널리 유행했다. 땅 기운은 일정하지 않아 때로 약해지나 적절한 방법을 쓰면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수도 이전 논의가 활발했다. 처음에는 평양이 길지로 각광을 받았지만,13세기 고종 때부터 한양이 길지로 떠올랐다.14세기에는 한양천도가 기정사실로 취급될 정도였다. 결국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았다. 한양 천도론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당시 천도론을 이끈 예언서는 도선의 저술이라 하는 ‘도선비기(道詵秘記)’,‘송악명당기(松岳明堂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등이었다. 앞서 말한 ‘신지비사’는 논쟁에서 보조기능을 담당하였다. 아직 예언서 형태로 자리매김된 것은 아니나 7세기 후반 고구려에서도 풍수설이 위력을 발휘한 적이 있다. 당나라가 파견한 도사(道士)들이 풍수설을 이용해 고구려의 국운을 연장시키겠다며 소란을 피웠다. 도사들은 평양에 새로 성을 쌓거나 바위를 부숨으로써 고구려의 국운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고구려에 수입된 풍수설은 점차 부동의 위치를 확립했고, 도선과 그 제자들의 손을 거쳐 고려 이후 줄곧 예언서의 중심 사상이 되었다.‘정감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천 후천설 고려 때는 점성술에 입각한 예언서도 유행했다. 고려 인종이 즐겨 인용한 ‘고현유훈(古賢遺訓)’을 이같은 예로 들 수 있다. 거기에는 머지않아 역사의 새 출발이 가능하다고 했다.‘정감록’에 암시된 선천과 후천의 교대설은 그 싹이 바로 ‘고현유훈’에 있었다.‘고현’이란 옛날의 현인 즉, 과거의 뛰어난 예언가다. 여기서 말하는 ‘고현’은 특히 천문과 역법에 밝았던 사람이다. 책에는 이렇게 주장돼 있다 한다.“천지가 생긴 지 수만 년이 지나면 동지(冬至)가 갑자일이 되는 때를 만나리라. 그때가 되면 해와 달 그리고 (수 화 목 금 토) 다섯별이 모두 정북(正北)에 모여들 것이다. 이를 상원(上元)으로 삼고, 이 날로 달력의 기원을 삼아야 된다. 이때 천지가 열리고 성인(聖人)의 도가 행해질 것이다.” 당시 인종은 묘청과 백수한 등 예언전문가들에게 정치를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했다. 왕은 묘청의 권유로 ‘고현유훈’을 읽어 보았음 직한데 특정한 날이 되면 역사의 무대가 새로 펼쳐져 이상정치가 가능하리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체의 운행을 인간사회의 변화에 직결시킨 점에서 동양 고대의 우주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관념은 19세기말까지도 민간에 널리 통했다. ‘고현유훈’의 기초가 되는 점성술은 운수설과 결합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역사에는 아홉 번에 걸쳐 새 왕조가 등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예언서도 나왔다. 조선 초기 식자층이 읽은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그런 식의 책이다.‘정감록’에도 역대 왕조의 운수가 밝혀져 있고, 계룡산시대 이후의 도읍지가 예언돼 있다. 그와 동시에, 머지않아 선천이 끝나고 후천 이상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꿈이 깃들어 있다. ●미륵하생설 선천 후천설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편 것이 미륵하생설(彌勒下生說)이다.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이상세계를 연다는 믿음이 한국에는 널리 유행했다. 스스로를 미륵의 화신으로 간주한 사람도 여럿이었다. 이미 죽은 지 천년도 더 된 궁예를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미륵불로 믿는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 포천시 구읍리 반월성터에 있는 궁예 미륵상이나 경기도 안성시의 국사봉에도 궁예 미륵은 민간의 신앙 대상이다. 고려 말에 경상도 고성 출신 이금은 스스로 미륵이라 주장했다. 그는 다가올 미륵 세상의 모습을,“내가 조화를 부리면 풀에서 파란 꽃이 피며 나무에 곡식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씨앗을 뿌려서 두 번 거두게 되리라.”고 묘사하였다. 수고를 들이지 않고서도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예언한 점에서 그의 설명은 ‘미륵하생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금을 따랐다 한다. 이금을 추종하는 신앙 집단은 우선 규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부 고위관리들까지 신도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국가의 탄압을 받아 이금 일파가 송두리째 제거되었다. 그 뒤에도 자칭 미륵불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고려 우왕 때 개성에서 미륵불을 일컫는 승려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미륵불로 믿고 쌀과 베를 앞다퉈 바쳤다. 사노(私奴) 무적도 미륵불의 화신이라 주장하다 관헌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후반 고려는 거듭된 왜구의 침입과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말세 의식이 만연해, 어서 미륵불이 내려와 이상세계를 펼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자칭 미륵이 속속 등장했다.17세기 후반 조선 숙종 때 승려 여환은 미륵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아 조선왕조를 전복시키려 했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그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환은 추종자 11명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여환이 사라진 뒤에도 미륵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영조39년(1763) 10월2일자 ‘실록’을 보더라도,“지난번 황해도에서 미륵불이라고 일컫는 자가 있었기에 어사(御史)를 보내 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19세기 말 증산교를 창립한 강일순(姜一淳·1871∼1909)은 자신을 천자 미륵이라고 일컬었다. 임종 때 그는 말하기를,“나는 미륵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불을 보라.”고까지 했다. 자칭 미륵불들은 다들 그 나름으로 예언을 일삼았는데, 강일순은 다가올 미륵세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세상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고 밤과 낮이 막힘없이 환하게 통하고 100가지 곡식을 오래도록 거두어들이고 만 가지 과일이 굵고 크며 풍성한 음식이 저절로 생기고 아름다운 옷이 스스로 이른다.” 이러한 견해는 ‘미륵하생경’과 대체로 일치한다. 미륵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고 믿는 미륵하생신앙은 고대 중국과 티베트를 비롯해 동양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금강산을 법기도량(法起道場)으로 믿어, 내세불인 미륵불이 반드시 한국에 출현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예부터 예언서나 도참(圖讖) 또는 노래를 빌려 이 점이 늘 강조됐다. 자연히 ‘정감록’에도 미륵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불법이 다시 부흥하리라는 예언을 낳았다. ●정성진인 또는 해도진인설 조선후기 예언서에서 미륵은 진인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때로 진인은 미륵세상을 맞이할 세속군주 전륜성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승려 여환 사건 때도 이미 ‘정성인(鄭聖人)’이 등장한다.18세기부터는 각종 반란이나 대규모 민란 때마다 ‘진인(眞人)’이 거의 늘 등장했다. 이지서의 괘서 사건에서도 그랬고,19세기 초 서북인의 차별에 항거해 들고 일어선 홍경래의 난 때도 진인이 언급됐다. 진인은 ‘정감록’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새 세상을 열 미래의 왕이 다름 아닌 ‘정성진인(鄭姓眞人)’이거나 ‘해도진인(海島眞人)’이었다. 그 성씨가 정이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섬에 숨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감록’을 가탁한 민중운동은 갈수록 증가했다. 심지어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여러 민란이나 그때 창궐했던 화적들은 “이재궁궁(利在弓弓·이로움이 궁궁에 있다)”을 구호삼아 외치는 형편이었다. 도적의 우두머리도 진인을 자처하였다. 진인의 시대가 열리고 보니, 그의 사주(四柱)까지 조작되었다. 진인은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난다. 그의 사주는 뱀이 변하여 용(龍)이 되는 것이라 크게 길하다 했다. ●‘정감록’의 질적 변화 조선후기부터 ‘정감록’에 약속된 새 날의 도래를 믿고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등졌다. 그들은 곧 진인이 섬에서 나와 계룡산에 천도할 줄로 철석같이 믿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정감록’ 신앙의 영향 아래 여러 신종교가 출범했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가 그 대표적인 것이지만 개중에는 민중의 금전과 노동력을 갈취하려는 사교 집단도 비일비재했다. 사교 집단은 ‘정감록’을 빙자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일부 신종교에서는 ‘정감록’ 해석에 차원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정성진인이 오기만 기다리며 계룡산에 들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는 ‘정감록’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했다.“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개조(開祖) 소태산 대종사의 말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정성진인은 실상 정법(正法)일 뿐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소태산은 앞서 도적들이 되뇌던 ‘정감록’의 한 구절 “이재궁궁”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는다.“세상에는 구구한 해석이 많이 있으나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無極) 곧 일원(一圓)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도덕의 본원을 밝힘이라.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실천하여 남과 다투지 않고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상 숱하게 많았던 예언서들이 ‘정감록’ 호수에 이르기까지 그 길은 거칠고 아득했다.‘정감록’이 도달한 종점엔 천만다행으로 살벌한 투쟁이 아닌 상생(相生)이 웃으며 우리를 기다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남북화해기조 깨진다해도 북한인권문제 미룰수 없어”

    새달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북한 국제인권대회’가 열린다. 지난 18일 유엔 총회에서 한국이 북한 인권 결의안에 기권한 것을 놓고 논란이 분분한 와중이다. 행사에는 옛 소련의 반체제 인물로 이스라엘로 망명한 뒤 내각 장관까지 지낸 나탄 샤란스키를 비롯, 제이 레프코위츠 미 북한인권특사 등 인권 관련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이 대회 공동준비위원장은 이인호(68) 명지대 석좌교수이다. 러시아학의 독보적 석학으로 최초 여성대사(러시아·핀란드)를 지낸 이 교수는 기자에게 “왜 이 시점에 북한 인권을 얘기해야 하느냐.”면서 말문을 열었다. 연구실을 나와, 북한 인권 대회 공동 준비위원장을 맡게 된 배경은. -어느 시점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얘기하는 것은 ‘금기’의 영역이자, 보수집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왔다. 단언코 아니다. 이제는 북한 인권에 대해 지식인들이 뭔가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절박성이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지 오래다. 국제사회가 나서 북한인권을 얘기하는데, 정작 같은 동족인 우리가 냉담한 것은 말이 안된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나마 쌓아온 남북화해 기조를 허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대화가 깨진다면 그 대화는 깨지는 게 낫다. 결국 나중에 돌아오는 게 무엇이겠는가. 혹자는 핵문제까지 거론하는데, 핵 문제는 미국이 더 집착하지만 인권문제를 거론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느냐, 그건 아니다. 지난 2002년 유엔차원에서 인권 문제가 처음 제기됐을 때부터 우리가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 역풍을 걱정하기에는 북한 인권이 최악의 상황이다. 외부에서 압력을 넣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민주화·인권 개선 과정을 돌이켜보면 자명하다. 탈북자를 양산하는 북한의 경제상황이 미국의 봉쇄 정책 때문이고, 이번 인권대회도 미국의 대북 체제전복 일환이란 지적에 대해선. -물론 우리는 냉전의 희생자다. 그러나 반미·친미의 문제로 북한 인권 문제를 봐선 안된다. 남한이 잘 살게 된 게 소련 덕분인가. 북한은 소련식 공산주의를 택했고, 주체사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인권문제 제기로 전복될 체제면 전복되는 게 맞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정치적인 잣대로 이 대회를 재단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동참하고, 기부금을 내고자 하는 많은 분들이 눈에 날까 걱정하고 눈치보고 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뭔가 공적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것을 외면하는 속성이 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그 전에 군부독재 하에서 탄압받은 사람들이 왜 북한 문제엔 냉담한가. 깨고 나와야 할 스스로의 속박이다.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등이 참석하나. -참석을 간곡히 요청했으나 거절한 것으로 들었다. 슬픈 일이다. 인권운동을 해서 국가 민주화에 공헌했고 이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원칙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대한민국이 대외에 내보인 모습은 ‘인권’ 이미지였다. 지금 우리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8)일본의 차 문화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8)일본의 차 문화

    늦가을과 초겨울 하늘은 참으로 투명하고 맑다. 마치 가을걷이를 위해 풍성하게 들어차 있던 들판이 텅비어 버린 것 같이 아름답고 맑아서 눈이 아프도록 시리다. 코발트빛 밤 하늘은 또 얼마나 깊고 청순한지 모른다. 너무 높아서 까치발을 들고 손을 눈썹위 이마에 얹고 쳐다봐야 하는 밤하늘은 마치 술이 술술 익어가는 시골의 마을처럼 우리의 애잔한 삶을 살포시 위로하는 길손같이 정겹기만 하다. 하늘에 떠있는 별은 또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가. 천목(天目) 즉 하늘의 눈 같은 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 중생들에게 혜안(慧眼)의 살림살이를 살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가로등 같은 것이다. 산에 뜨는 달 또한 마찬가지다. 산에 뜨는 달은 등불이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는 마치 관현악의 장중한 울음 같다. 그림자 가득한 뜰을 지나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홈통을 타고 졸졸 밤새도록 울어대는 유천의 물을 발우에 담는다. 발우에는 달이 담기고 별이 담기고 영원한 적막이 흐른다. 푸른 돌솥에 찻물을 담아 차를 달여 마신다. 차의 살림살이는 차인의 마음에 따라서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자신이 속한 일상속에서 잠깐 마음의 눈을 돌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고즈넉한 시간을 갖게 한다면 차는 내 삶속에 뜨거운 용광로처럼 피어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웰빙적인 측면에서 단순한 음료로 기능한다면 그 삶은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메마르고 강파를 것이다. 일본다도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큐 소우준 선사는 주광문답(珠光問答)에서 차의 살림살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일미청정(一味淸淨)하고, 법희선열(法喜禪悅)하니 조주선사는 이를 체득했지만, 육우는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사람이 다실(茶室)에 들어가면 겉으로는 남과 나의 구별을 떨쳐버리고 , 안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한 덕을 함양하며, 서로 간에 교제함에 있어서는 삼가고(謹), 공경하고(敬), 사념을 품지 않고(淸), 평온해지며(寂) 결국 온 세상이 평안해진다.” 이큐선사의 근, 경, 청, 적은 후일 센리휴에 의해 화(和), 경(敬), 청(淸), 적(寂)으로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일본다도의 핵심사상이 되고 있다. 이큐선사 이전에 일본에는 ‘다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송나라 때 전해진 음차풍속의 일환인 ‘투차(鬪茶)’가 성행했을 뿐이다. 일본에 맨 처음 말차를 전한 사람은 에이사이스님으로 천태산 만년사에 주석하며 5가7종 가운데 1파인 황룡파의 선을 배우고 귀국하면서부터로 말하나 그같은 것은 현상적인 측면이 강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중국으로 많은 스님들이 유학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선가에서는 선수행과 더불어 다양한 음다법이 성행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말차법은 중국에서 귀국한 많은 유학승들에 의해 시작된 문화의 공통분모 같은 것으로 봐야 한다.12세기 일본 사찰에서는 좌선때 애용된 말차가 단순한 음용의 수준을 떠나 하나의 다례로 정착됐다. 당시 일본의 선종사찰에서는 중국 선종사찰에서와 같이 생활규범으로서의 청규가 있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사찰에서 대규모의 차회가 열릴 정도로 끽다법이 일반화됐다고 보여진다. 그같은 선종사찰의 말차법은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건인사의 경우에서 보면 확연해진다. 건인사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네머리의식(四頭·요쓰가시라)’을 진행한다. 그 다례를 살펴보면 맨 먼저 향을 피우는 헌향, 다과(茶菓)와 함께 말차가 들어간 천목이 배치되는 행잔(行盞), 그리고 스님이 정병을 가지고 손님이 천목(찻잔이름)에 끓은 물을 붓고 차를 저어 돌리는 행다(行茶)순으로 되어 있다. 일본교토 상국사에도 사두재연이라는 말차법이 지금까지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선종사찰에서 말차법에 의한 다례가 일상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마쿠라시대를 거쳐 아시가가 시대에는 송나라로부터 ‘투차’의 풍속이 전해졌다.‘투차’풍속은 일본무사들의 정신적인 성향과 맛물려 당시 사회지배계층의 전형적인 음차문화로 자리잡았다. 무로마치 막부시대에 일본의 다도는 화려한 꽃을 피운다.‘서원차(書院茶)’로 불리는 당시 차문화는 값비싼 차와 다완을 자랑하는 등 외형적인 화려함에 치우쳐 차의 정신이나 형식보다는 차의 품격, 다완의 가격 등 사회적인 부의 수준에 따라 그 차회의 품격이 정해질 정도로 사치스러워졌다. 서원차는 화려할 뿐만 아니라 너무도 귀족적인 차회였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서원차를 주도했던 무가(武家)와 막 꽃피기 시작한 상업자본가들의 외형적인 자기과시욕 때문이었다. 사무라이들의 근엄하고 권위적인 취향과 상업자본가들의 자기과시욕의 결합은 심지어 차가 도박으로까지 발전할 정도로 지배계층 내부의 극단적인 정신적 사치를 불러왔을 정도다. 서원차의 병폐는 사회경제적 균등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의 구축을 이루려는 집권막부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갔다. 일본 다도의 창시자랄 수 있는 무라다 주코와 이큐 소우준 선사의 만남은 이때 이루어졌다. 주코의 스승인 이큐선사는 고코마쓰일왕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사찰로 보내졌다. 어린시절 여러 가지 고난을 이겨낸 이큐선사는 조주의 끽다거를 갈파해낸 탁월한 선승이었다. 조주의 끽다거의 공안을 깨쳤던 그는 왕실 막부의 투차의 화려함을 대신해서 원오극근선사의 ‘다선일미’를 다도의 근본형식으로 이끌어냈다. 이큐는 그의 나이 60세 때 30살의 주코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나라출신인 주코는 11살에 출가하였으나 그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지 못해 환속, 이곳 저곳 떠돌며 ‘투차’나 여러곳의 ‘다사(茶事)’를 보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코는 우연히 이큐선사의 설법을 듣고 그 문하에 다시 입문하게 된다. 주코를 조주차의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이큐선사 일화 한토막을 소개해본다. 이큐는 주코가 ‘끽다거’의 공안을 깨칠 수 있도록 각고의 수행을 주문했다. 천재였던 주코에게도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이큐선사는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다. 선수행중인 주코를 이큐선사가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끽다거”. 그러나 주코는 이큐선사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이큐선사가 차탁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담아 주코에게 건넸다. 주코가 그 찻잔을 받아들기 위해 손을 내밀자 이큐선사는 “끽다거”하며 찻잔을 깨트려버렸다. 공안이 익을 대로 익어 있던 주코는 이큐선사의 벽력같은 소리에 단박에 깨칠 수 있었다. 마침내 조주차의 근원을 알게 된 주코는 이큐선사의 인가를 받았으며 원오극근선사의 묵적을 전수받았다. 이큐선사의 인가를 받은 주코선사는 당과 송에서 전해진 투차의 차 문화를 대체하는, 즉 차와 선이 하나인 일본화된 품차의 정신을 만들어냈다. 주코를 통해서 차가 선이며, 선이 차이며, 끽다가 참선이고 참선이 끽다인 ‘다선일미’를 구현해냈다. 이같은 주코의 차도는 다케쇼오를 커쳐 센리휴에 의해 완성된다. 부유한 피혁상의 아들이었던 다케쇼오는 주코의 제자로부터 다도를 배웠다.36세 때 사카에로 돌아온 다케쇼오는 20세나 아래인 센리휴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다케쇼오는 일본이 다도를 통해 민족적인 정신을 눈뜨게 했다. 교토에서 와카와 다도를 함께 배운 다케쇼오는 와카를 다도에 접목시켰다. 그는 주코의 다도를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선가의 기풍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와카를 표구해 차실에 걸어놓아 일본다도에 민족적인 정신을 심어냈다. 사카에 상인 가문 출신이었던 센리휴는 주코와 다케쇼오의 차 정신을 완성해냈다. “여름에는 차실을 시원하게 하고 겨울엔 차실을 따뜻하게 하며 연료를 찻물이 잘 끓게 넣고 차는 맛있게 우려내는 것이야말로 차정신의 비결”이라고 말한 센리휴는 다다미 스무장 넓이의 넓고 화려한 서원차의 차실 대신 두세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겨우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이른바 초암차실을 완성했다. 센리휴는 전국시대의 최고의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차 시종을 거쳐 일본을 천하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시종관이 되었다. 센리휴가 일본차계에 그 이름을 떨친 것은 1587년 히데요시가 주관한 천하통일 기념차회와 기타노 신사에서의 차회에서다. 센리휴는 이 차회에서 원나라 때 화가 옥간의 ‘원사만종’을 걸고 최고급 차합과 쌀 4천만섬의 가치가 있다는 ‘송화(松花)’라는 아름다운 다관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서원차의 극치를 보여준 차회였던 것이다.1589년 기타노 신사의 황금차실은 그같은 호화로운 차회의 극점이었다. 온통 황금으로 이루어진 황금차실과 8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차인들의 참석은 ‘거처는 비가 새지 않으면 되고 음식은 배가 부르면 충분하다.’는 센리휴의 생각과 정 반대가 되는 것이었다. 센리휴는 일단 작은 차실을 선호했다. 그리고 중국에거 전래한 천목찻잔이나 청자완보다는 조선서민들이 사용했던 막사발(이도다완)을 즐겨 사용했다. 모양이 고르지 않고 검은 빛을 띠며 무늬가 없는 막사발을 센리휴는 최상의 다완으로 쳤다. 이같은 다도를 통해 센리휴는 마침내 주코의 ‘근경청적’의 정신을 ‘화경청적’으로 완성해낸 것이다. 일본차의 정신은 흔히 ‘와비차’로 표현된다.‘와비’란 이른바 ‘한적(閑寂)’하다는 말로 정신성이 강한 차예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차의 첫 번째 목적은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차와 선이 상통하는 점은 바로 정신적 경지의 정화와 승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차를 마실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맛을 음미한다. 참선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참선을 할 때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생각을 끊어야 한다. 다도(茶道)와 깨달음은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주체의 맑고 고요한 근원적인 감각에 치중한다. 연차, 자차, 점차, 음차 등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며 윤회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선다일미라는 것이다. 다도는 또 근원성의 문화라는 점에서 깨달음과 일치한다. 다도의 완성은 일종의 무형의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신이 표현해내는 근원적인 문화양식인 것이다. 다도는 무형의 근원에 도달한 자신의 외재적 표현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또다른 문화양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위대한 선사들이나, 다도를 완성한 차인들은 이미 또다른 문화를 창조한 문화의 창조인들인 것이다. 센리휴선사는 이렇게 말한다.“물을 긷고, 땔감을 하고, 물을 끓이고, 차를 따르고, 부처께 올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이 마시고, 삽화분향하는 것 모두가 불법을 수행하는 행위인 것이다.” 차와 선의 문화는 그런 점에서 인류 미래문화의 진보를 앞당기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지암 암주 ■ 日 茶界 최고보물 ‘다선일미’ 묵적…中 송나라때 원오극근선사가 전해 일본차계 최고의 보물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이도다완’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송나라때 선승으로 유명한 원오극근선사가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묵적이다. 서원차와 투차의 화려하고 권위적인 차 문화를 선과 결합시켜 내 ‘다선일미’라는 일본의 차도를 창조해낸 주코가 그의 스승인 이큐선사로부터 차도의 인가증서로 원오극근선사의 묵적을 전해받은 것이다. 이큐선사로부터 묵적을 물려받은 주코는 그것을 다실 안에서 가장 잘 보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위치인 벽감속에 걸어 두고 사람들이 그의 다실을 드나들 때마다 무릎꿇고 예를 행하여 경의를 표하게 했다. 일본 경도 대각사에 소장되어 있는 ‘다선일미’에 대한 일화는 아주 재미있다. 원오극근선사가 어느날 중국 성도에 있는 소각사에서 설법을 하였다. 원오극근선사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일본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직접 그 제자에게 ‘다선일미’라는 네자를 써주었다. 그 제자는 그 글씨를 큰 대통에 담아 귀국하는 배를 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도착한 그 스님이 탄 배가 항구에서 전복되고 만 것이다. 그 대통과 글귀는 이사람 저사람 손을 전전하다 마침내 이큐선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큐선사는 그 대통에 든 글귀를 보고 오랫동안 참문을 하였다. 출중한 선승이었던 이큐선사는 마침내 원오극근선사가 쓴 ‘다선일미’의 오의를 깨쳤다. 그리고 그 정신과 묵적을 자신의 수제자였던 주코에게 차도의 인가증으로 전해준 것이다. 주코는 교토에 주광암을 개원했다. 그리고 선종의 중흥조인 육조혜능선사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선지를 바탕으로 차를 마심으로써 ‘초암다풍’을 형성한 것이다. 주코는 “차실에 들어가면 밖으로는 남과 나의 구분을 모두 잊고 안으로는 유화의 덕을 쌓으며 서로 응대함에 있어서는 근경청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천하태평에 이른다.”고 말한다. 주코는 선을 통해 일본의 다도를 철학이자 종교로 승화시켜낸 것이다. 청담스님은 차의 진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차의 맛이 지닌 진수는 어디까지나 술처럼 교만하지 않고, 커피처럼 자만하지 않으며, 코코아처럼 천진한 기취와는 달리 엄절한 청정미에 있다. 그러기에 다도는 미를 발견하고도 오히려 환희를 감추려는데 묘미를 느끼는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선을 실행하고도 그 공덕을 숨기는 윤리이자 참을 체득하고도 오히려 빛을 묻는 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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