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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톱 셀러]식단불문 즉석식품 맛도 그만

    [톱 셀러]식단불문 즉석식품 맛도 그만

    ‘즉석식품이 똑똑해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와 주 5일제가 확산되면서 간편 음식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업계는 즉석식품 시장이 올해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석밥이 선두 대표주자는 즉석밥이다. 지난 1997년 ‘햇반’이 처음 나온 이후 해마다 매출이 30∼40% 증가하고 있다. 웰빙 열풍 덕에 흑미밥·현미밥·오곡밥 등 후속작도 인기를 얻고 있다. 즉석밥에 낙지·송이버섯·류산슬·마파두부·돈부리(일본식 덮밥) 등을 얹은 덮밥류는 반찬이 따로 필요치 않아 나들이용으로 제격이다. 버섯·해물·김치·쇠고기 야채 등을 넣은 이탈리아 리조토도 나왔다. 밥 용기 비닐을 벗기고 소스를 부어 전자레인지에 2∼3분 데우거나 끓는 물에 살짝 익히면 먹을 수 있다. 술먹은 다음날 속 풀고 싶다면 즉석국을 찾아보라. 쇠고기국밥·미역국밥·추어탕국밥·육개장밥 등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고급스럽다. 끓는 물을 붓거나 전자레인지에 물을 데운 후 밥을 말아서 5분 만에 먹을 수 있다. 상온에서 6개월간 보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먹어보니 ‘맛있는 낙지덮밥’은 종이 겉포장지를 잘 사용해 뜨거워진 밥 용기에 손을 데지 않도록 배려했다. 겉포장지에 구멍을 뚫어 밥 용기를 집어넣어 전자레인지에 돌리도록 고안한 것. 밥 용기를 만질 필요가 없다. 낙지와 당근, 양파 등을 손톱만하게 잘랐다. 붉은 빛이 감돌지만 맵진 않다. 오히려 단맛이 강해 어린이들이 좋아할 듯.340g 2500원. ‘햇반 송이버섯밥’은 당근 등 야채를 잘게 썰어 건데기가 씹히지 않는다. 죽처럼 색깔은 투명하지만, 후추 맛이 뚜렷하다. 특히 밥 용기가 뜨거워 밑부분을 잡으면 손을 다칠 위험이 있다.350g 3000원.‘해물리조또’는 고추 맛이 강해 매콤하다. 가로·세로 1㎝짜리 오징어가 눈에 띈다.300g 2400원.‘얼큰한 육개장밥’은 밥과 육개장을 따로 데워 섞어야 한다. 펄프 용기에 육개장 건데기와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여기에 뜨거워진 햇반을 말아 먹는 것. 술 먹은 다음날 해장하기 좋을 만큼 얼큰하다. 그러나 조리시간이 짧아 깊은 맛은 덜하다.210g 3000원. ●죽과 수프는 아침식사 대용 즉석죽과 수프는 아침식사 대용이나 다이어트식, 별미식으로 그만이다. 전복, 연어·발아현미·녹차·참치·꿀호박·홍게살·인삼닭 등 다양한 죽이 출시되고 있다. 전복 등 주재료를 30% 가까이 넣어 맛이 진하다. 참기름·꿀 등 소스를 추가로 넣어 기호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분말 수프를 물에 풀어 끓여 먹는 불편함을 없앤 액상수프도 나왔다.‘프레시안 브로콜리 치즈수프’는 적당히 익힌 브로콜리 야채에 고급 치즈와 감자 등을 넣어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다. 이밖에 감자를 주로 한 ‘베이크 포테이토수프’ ‘양송이 수프’가 있다. 유통기한이 짧고 냉장 보관하는 게 흠이다.40∼50대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누룽지. 전기밥솥으로 사라진 누룽지가 뜨거운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 바삭바삭거려 어린이용 과자로도 손색이 없다. 먹어보니 ‘인삼닭죽’은 인삼 향을 가득 머금고 있다. 실처럼 가늘게 찢어진 닭은 쫄깃하다. 찹쌀과 쌀 입자가 고와 유아식으로도 좋을 듯.230g 2100원. 햇반 녹차죽은 녹차와 김, 다시마 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초록색 죽에 향긋한 다시마 향에 더해져 개운하다. 아침식사로 적당한 양.273g 1650원 ●카레·짜장도 재탄생 3분 짜장·카레도 옷을 갈아 입었다. 건강음식인 백색카레는 기존 제품보다 강황 함량을 50% 높이고 로즈마리, 월계수잎 등도 넣었다.‘그대로카레’와 ‘그대로짜장’은 데우지 않고 밥에 바로 부어 먹는 제품. 나들이용으로 적합하다. 여러가지 야채와 고기를 볶아 느끼하지 않은 ‘사천식 짜장’도 나왔다. 매운 고추, 파, 마늘, 생강 등 갖은 양념이 들어가 붉고 매콤하다. 먹어보니 그대로카레는 뜨거운 밥에 먹으면 데우지 않고도 3분카레, 짜장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당근·감자도 깍두기처럼 큼직하게 썰어져 씹히는 맛이 제법 난다. 차갑게, 혹은 뜨겁게 먹으면 강한 카레 맛을 느낄 수 있다.200g 1380원. 이밖에 밥에 뿌려먹는 후리가케 ‘밥이랑’, 화로에 구운 ‘맛밤’, 전자레인즈용 팝콘 ‘액트투’, 실온에서 3개월간 보관 가능한 ‘영양떡’ 등도 즉식식품이 주말 식탁을 점령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번 주말엔 외식할까

    ●롯데호텔잠실 한식당 무궁화(411-7801)는 8월31일까지 여름 보양식으로 전복삼계탕(4만원), 평양냉면반상(3만 2000원), 삼합찜 정식(3만 8000원)을 내놓고 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은 방송국이 사용하는 최첨단 입체 사운드 시설을 갖춘 가라오케(559-7637)로 개보수했다.4∼30명을 수용할수 있는 룸이 있으며, 훈제연어·토르티아 등의 안주도 준비됐다. 오후 6∼새벽 2시. ●호텔리츠칼튼서울 일식당 하나조노(3451-8276)은 이른 더위에 지친 여성들에게 건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레이디스 뷰티 시크릿 메뉴로 장어 코스요리를 내놓았다.8만원부터. ●밀레니엄서울힐튼 레이디스클럽(317-3060)은 14일 오전 10시 30분 박효남 총조리장이 프랑스 요리를 강의, 점심식사도 한다.6만원. ●홀리데이인서울 로비라운지 티볼리(7107-280)는 여름을 맞아 통밭에 오렌지·키위·수박·체리 등의 과일을 넣은 빙수인 파티오 스노콘 등 5가지 메뉴를 내고 있다.1만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알뜰살뜰 정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7일 오후 4시 문화센터에서 임산부를 위한 ‘출산강좌 교실 ’을 연다. 주요 강좌내용은 ▲아기 모자 직접 만들어보기 ▲출산 준비물 ▲출산 전후 몸매 관리법 등이다. 강좌에 참여하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출산용품·임부복·발육제품·신생아의류 등을 10∼30% 할인 해주는 특별 쿠폰북 등을 사은품으로 제공한다. ●롯데마트 수지점은 30일까지 식품·생활용품 등 인기상품 70여개 품목을 최대 50%까지 할인 판매하는 ‘절반가 5일장’을 연다. 대표 품목은 청정원 양조간장 2개 3800원, 취영루 군만두 2개 5500원, 한스푼테크 2개 7900원, 제주 선동갈치 3마리 8800원 등이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 )는 오픈 9주년을 맞아 다음달 6일까지 다양한 기념 이벤트를 연다.‘현빈 걱정마 게임’ 이벤트에선 게임을 즐기고 점수에 따라 홈시어터, 플레이스테이션2 등 경품을 받을 수 있다.‘9가 있는 사진전’은 생활 속에서 발견한 ‘9’ 모양을 찍어 사이트에 올리면 조회수에 따라 70만원짜리 여행상품권 등을 나눠준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6월7일까지 수도권 7개 점포에서 다양한 수산물 축제를 진행한다. 목동점(29일까지)과 신촌·중동점(30일∼6월5일)은 수협 직송전을 열고 완도산 양식 전복(100g·7000∼1만 1000원)·키조개(3000원)·자연산 골뱅이(100g·3200원) 등을 판매한다.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은 오는 2일까지 수박이나 참외를 사은품으로 증정하는 사은행사를 실시한다. 당일 여성캐주얼이나 가구, 주방, 침구용품을 10만원 이상 구매하면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수박이나 참외 중 하나를 증정한다. ●갤러리아백화점 수원점은 29일까지 하루 선착순 3명의 소비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행사를 갖는다. 고세·파비안느·트리아나·이뎀 등은 선착순 3명에게 50% 할인 혜택과 당일 15만/30만원 소비자에게 상품권 각 1만/2만원권을 사은품으로 증정한다. ●KT몰(www.ktmall.com)은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SK-Ⅱ 기획전’을 다음달 30일까지 열고 SK-Ⅱ 제품을 최고 40%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화이트닝소스 클리어 스팟(28세트)’을 8만 9600원에,‘페이셜 트리트먼트 마스크(6세트)’를 7만 3900원에 내놓았다. ●롯데닷컴(www.lotte.com)은 여름방학 배낭여행 성수기를 맞아 대학생과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29일과 다음달 5일 국가별 무료 배낭여행 설명회를 명동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개최한다. 참가자들은 유럽도시 지도와 현지 할인쿠폰 등을 선물로 받는다. 설명회에서 여행을 예약하면 상품비용 20만원을 할인해 준다. ●대상은 31일까지 참신한 아이디어로 제품 개발에 참여할 ‘청정원 주부모니터요원’을 모집한다. 모집인원은 120명.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은 20∼40대 서울·경기지역 거주 전업주부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모니터요원에게는 테스트료와 청정원 제품을 지급한다.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www.outback.co.kr)는 다음달 15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아웃백 와인파티’ 참가자 20명을 모집한다. 당첨자는 다음달 23일 오후 7시 아웃백 신천점에서 열리는 와인파티에 참여한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행정구역명은 북제주군 추자면이다. 그런데 추자도에서 제주도 토박이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대개 호남 말씨다. 남도 사투리의 ‘징함’이 빠진 채 표준화되어 조금은 무미건조하다.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조금 달라 제주도 말투가 엿보인다. 자연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지대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라남도 영암·완도군 등에 딸린 섬이었다.1946년 북제주군에 편입됐으니 불과 60여년 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1831년에 잠시 제주목에 이속됐다가 1891년에 완도군이 창설되면서 이곳으로 되넘어간 기록이 나온다. 좀 왔다갔다 했지만 그러나 추자도는 틀림없는 호남문화권이다. 뱃길은 여전히 목포로 열려져 있어 농산물 공급은 물론이고 상급학교도 대부분 이곳에서 다녔다. 덕분에 추자도 1세대들은 ‘전라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근래 2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이 덕분에 그들은 비교적 ‘제주도적’이다. 이곳 공무원들이 대개 제주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추자도 토박이로 제주도에서 교육받고, 집안에서는 전라도 말을 쓰는 사람의 경우, 그 문화적 정체성은 대단히 복잡하다. 제사나 장례, 세시풍속 등은 확실히 전라도적이다. 반면 제주도 출가 잠녀가 아니라 토박이 잠녀들이 물질하는 형태는 ‘제주도적’이며, 전복이나 소라맛 역시 ‘제주도적’이다. 그러나 묵리의 처녀당에서 해마다 올리는 당제의 명칭과 이때 걸궁이란 풍물굿을 동원하는 것은 ‘전라도적’이다. 풍물굿이 없던 제주도에 ‘걸궁’이 전파된 것이니, 추자도 걸궁은 본디 한반도 최남단의 풍물굿이 아니었던가 싶다.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추자도의 이런 중간자적 성격은 예로부터 육지와 제주도의 징검다리였다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졌다. 제주행 비행기에서는 망망한 바다 위에 떠있는 추자군도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다가 바람을 피해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추자도다. 지금도 상추자항의 봉줄리산 기슭에는 최영 장군 사당이 위엄있게 포구를 굽어보고 있다. 옛날에는 추자도를 징검다리 삼아 제주도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추자를 주자(舟子)로 불렀으니, 영암·무안·나주·진도 등 전라남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뱃길이었다. 제주도는 애월이나 조천으로 드나들었다. 당연히 이름난 유배지였다. 유배객 중에는 해배 후 되돌아간 이도 있었으나 아예 섬사람이 된 이도 많았다. 정조 때 안조환은 유배 당시 천신만고의 생활상을 이렇게 노래했다.‘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천리 다 지내어 추저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아는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상추자, 하추자로 위·아래 섬이 갈리는데 추자교로 이어져서 이제는 상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상추자항은 대서·영흥리, 하추자항은 신양리 소속이며, 그밖에 예초·묵리 같은 아름다운 포구들이 흩어져 있다. 단단한 바위밭에 해류가 거칠게 흘러 흐리멍텅한 고기들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참돔이나 감성돔·우럭·농어 같은 고급 어종이 바위밭에서 물살과 씨름하면서 육질을 키우는 까닭에 그야말로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도처에 보이느니 낚시꾼들이다. 추자도는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 집 드나들 듯 추자군도를 드나들었으며 심지어 20세기 초반까지도 수적(水賊)이란 이름의 바다도둑이 설쳐댔다. 일제시대, 이곳 수산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인들은 대서리에 진을 쳤다. 학교와 조합을 만들고 삼치어업에 매달렸다. 기선급 선박이 엄청난 양의 삼치를 잡아 그대로 상고선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른바 추자도 삼치파시는 이들 일본배들 때문에 이뤄졌다.1000여명이 넘는 ‘뱃동서’들이 일시에 포구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술집과 여관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일본 기생도 들어오고, 술꾼들은 취하여 쌈박질을 일삼아 이래저래 ‘난장’이었다. 당시의 여관 흔적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삼치어업은 이어졌다. 삼치는 예전 방식대로 잡는 즉시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덕분에 파시도 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시와다 그물사건’이라는 전설 같은 일제하 어민항쟁이 전해진다.1926년 5월14일, 추자면민들이 대거 운집해 면장과 추자어업조합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토로했다. 형세가 대단히 격렬해 목포와 제주에서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동자 21명이 검거,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어업조합과 면장 등이 공모, 은행 빚으로 어구를 사들인 뒤 2배나 비싸게 팔았는가 하면,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우뭇가사리를 강제 매입해 빚어진 사건이었다. 낌새를 알아 챈 조합장이 주재소와 결탁해 어민들을 억압하려 하자 예초리 남녀 700여명이 함께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본디 이곳 사람들은 외줄낚시로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낚았으나 일본인들이 대형 그물로 싹쓸이하듯 고기를 잡아가자 이에 반발한 사건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곳 노인들은 “물반 고기반이었는데 왜놈들이 싹쓸이해 가 그걸 못 보겠어서 다들 일어선 게지.”라고 말한다. 일제의 수탈적 약탈어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추자도에는 딸린 섬들이 42개나 된다. 돈대산에 올라서니 완도군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청산도 삼치파시가 추자도 삼치파시와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구로시오 해류가 흐르는 청산도와 나로도, 추자도 남쪽에 삼치떼가 몰려든 것이다. 추자도 최남단에는 관탈도가 있다. 옛적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러 다왔다는 생각에 갓을 벗었다 해서 ‘관탈’이라는 지명이 붙었단다. 관탈도에서는 불과 30분이면 제주항에 닿는다. 그러니 완도-청산도-추자도-관탈도 등이 징검다리처럼 일렬로 늘어서 육지와 제주도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와 남해 바다를 만들 때 징검다리는 박아놓은 섬들은 아닐는지. 이곳 토박이인 황필운(38) 선장과의 약속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갔다. 매일 아침 9시면 정확하게 행정선 추자호가 바다로 떠난다. 횡견도와 추포도를 들러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길게 누워 있는 횡견도의 바람막이 돌담이 이곳의 모진 삶을 웅변해 준다.13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여자들은 물질로 전복·소라 등을 잡고, 남자들은 톳·가사리·미역 등 해초를 뜯어 생활한다. 한때 횡견분교까지 있었으나 잡초만 무성하고, 보리농사로 자족자급이 가능했던 섬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한적하다. 추포도는 2가구가 등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가구만 산다. 낚시꾼들 뒷바라지로 생계를 잇는다. 고도에서 사는 1가구, 결코 쉽지 않은 삶일 것이다. 정 다산이 ‘남도경영’을 부르짖으며 경세유표에서 ‘남도의 섬을 잘 다스려야 재물이 숲처럼 일어서리라.’라고 했건만, 이들 낙도는 오로지 낙도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파도 아래 잠들어 있을 뿐이다. 요트처럼 빠른 배라면 뭍에서 불과 1시간도 채 안돼 당도할 수 있는 이 ‘보물섬들’이 오로지 ‘떠나가는 섬’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우리 바다의 미래는 아득하다. 추자군도의 최대 문제는 역시 물이다. 횡견도 같은 섬에서는 아예 빗물을 받아 쓴다.‘물 쓰듯’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추자 본도에는 담수화공장이 있어 바닷물로 만든 비싼 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 한두 개쯤은 갖추고 있다. 추자도는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너무나 덜 알려진 섬이다. 강태석 면장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천혜의 어족자원을 갖고 있어 21세기형 관광에 적합한 곳인데, 문제는 뱃길이지요.” 무인도를 이용한 청소년 자연생태체험학습장과 유료 유어장 등이 면에서 꿈꾸는 올 여름 사업들이다. 제주항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1일 관광도 가능하지만 배편이 하루에 편도 1회뿐이라 잠을 자고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추자의 돈대산을 오르자 눈 아래 신양항이 굽어보이고, 멀리 전라도 바닷가가 한눈에 잡힌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도 보인단다. 해양성 기후라 바람 심한 것을 빼면 아열대식물도 생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선지 곳곳에 동백이 유난히 많다. 추자도에 딸린 사수도는 상록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고, 여기에 흑비둘기와 슴새들이 번식해 1982년 천연기념물(333호)로 지정되었다. 전복, 소라, 미역, 톳, 천초가 지천인 곳이 이곳 말고 또 어딨겠는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상식이 하나 있다. 추자도 특산품하면 대개 멸치젓을 꼽곤 한다. 지금도 멸젓이 팔리고는 있지만 오늘날 추자도의 최고 특산은 ‘추자굴비’다. “어획량은 최고지만 문제는 덜 알려졌다는 점”이라는 김금충 수협 상무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조기들이 동중국해에서 추자도 근해로 몰려오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양이 잡힌다. 예전에는 그대로 영광 등지에 생조기로 출하했으나 이제는 아예 굴비로 말리고 있다. 어족이란 참으로 묘한 것, 칠산바다를 떠돌던 조기들 간 곳 몰라 했더니 추자도에 운집했었나 보다. 지금 추세라면 법성포 굴비 못지 않아 ‘추자굴비’ 없으면 차례도 지내지 못할 날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실제로 추자군도에서 최대의 주력품으로 굴비를 키우고 있으니 곳곳에 조기잡이 안강망 어선들이 눈에 뜨인다. 조기를 잡지 않는 비수기에는 돔이나 고등어 낚시로 살아간다. 떠나 오면서, 추자도가 ‘오지’란 생각을 싹 잊어버렸다. 제주항에 1시간 만에 도착했고, 곧장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데 고작 1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횟감과 함께 넣어 온 얼음이 서울에 도착해서도 그대로이니 ‘멀고도 가깝다.’거나 ‘가깝고도 멀다.’는 야누스적 표현이 모두 맞는 곳이다.
  • 유대인의 역사1, 2, 3/폴 존슨 지음

    역사상 가장 많은 위인을 배출했으면서도 가장 많은 적대자들을 만났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장구한 세월 세계 각지를 떠돌며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 정도 질문만으로도 보통 상식의 소유자라면 ‘유대인’이란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예수, 마르크스, 프로이트, 스피노자, 하이네, 샤갈, 아인슈타인, 벤야민, 나치, 홀로코스트, 록펠러, 모건,GE, 이스라엘, 중동분쟁…. 사람이든, 사건이든, 기업이든, 과거든, 현재든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의 역사는 세계사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은 상식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도대체 무엇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통과 핍박을 견디며 위대한 성취를 거둘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너무 무지하거나 피상적인 이해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다. 영국의 지성 폴 존슨의 ‘유대인의 역사1,2,3’(김한성 옮김, 살림 펴냄)은 그에 대한 비교적 충실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저작이다. 폴 존슨에 따르면 유대인의 역사는 아주 특별한 세계사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무시한 적대자들을 만났으면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동질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이스라엘 건국에 이르기까지 4000년에 걸친 이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망되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사를 만나게 된다. ●피해자 입장서 조망된 새로운 세계사 폴 존슨은 옥스퍼드 대학을 나와 ‘뉴 스테이츠먼’ 편집장 등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인문·종교·역사 분야에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가 유대인의 역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시초는 앞서 나온 그의 저서 ‘기독교의 역사’를 저술하면서부터다. 기독교가 유대교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인류 최초로 인격적 유일신 개념을 창조했다. 그리고 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지적 통찰’에 몰두하게 된다. 훨씬 뒤에 시작된 기독교가 오랜 역사를 가진 유대교라는 유일신교에 새로운 해석을 첨가한 종교라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대교의 교훈과 교의신학, 각종 의식, 성물, 그리고 근본적인 개념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도 유대인들의 지적 통찰 덕분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인류 최초로 인격적 유일신 개념 창조 중요한 것은 이같은 지적 통찰이 신에 대한 사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자(랍비)에 의해 다스려졌던 유대인 공동체사회를 통해 다양한 지성인 배출의 장이 됐다는 점이다. 유대인들은 중세에 자신들을 강제 격리시키기 위해 만든 게토 안에 거주할 때도 오히려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지켜가며 지성의 탑을 쌓아올렸다. 19세기 게토에서 해방되자 이들은 끊임없이 지성의 거인들을 쏟아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이 대표적 인물들. 인간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을 전복시켰던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이론들도 사실은 천재들의 독창적 사유라기보다는 유대적 전통에 기인한 바 크다고 폴 존슨은 말한다. 이를테면 마르크스의 경우 진보개념에 관해 헤겔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역사관은 기본적으로 유대적인 것이었고, 그의 공산주의 천년왕국론도 유대인의 종말론과 메시아주의의 변주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경제적 번영이 가능했던 것에 대해 지은이는 ‘장소의 이동’이 주는 혜택이라고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언제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거나 재산을 몰수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살았다. 때문에 이주에 있어서 전문가들이었고, 그 와중에서 특히 부에 집중하는 기술 습득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가증권, 무기명채권 등 새로운 방식의 유동재산 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런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현대 자본주의에 가장 쉽게 적응해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반유대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 지은이는 유대인들이 단순히 세상을 떠도는 이주자들이 아니라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이방인들과 스스로를 구별하게 되면서 거꾸로 그들로부터 격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복합적인 인종과 민족들로 구성된 사회를 중시했던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고집하는 유대인들은 ‘사람을 싫어하는’ 민족으로 보였으며, 중세에도 음식과 도살, 할례 등 독특한 율법으로 인해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꼬리를 감춘채 살아간다, 하혈로 고생한다, 악마를 섬긴다, 중세시대 흑사병은 유대인들이 마실 물에 독을 탔기 때문이다.’ 는 등의 루머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이같은 음모는 20세기에 이르러 유대인들이 세계정복을 꾀하고 있다는 내용의 ‘시온의정서’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지은이는 ‘역사가 하나의 목적을 지니고 있고, 인류는 하나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유대인들만큼 강력하게 주장한 민족이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자신들이 신의 계획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과 인류에게 그 계획에 대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 아래 갖은 고난을 뚫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사명감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영역에서나 유대인들의 통찰력은 그 빛을 발했다. 지은이는 전 인류적 관점에서 이들의 노력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익한지에 대한 답을 내지는 않는다. 이는 결국 유대인들의 역사를 추적한 이 책을 읽고 독자가 스스로 찾아야 할 몫이다. 각권 1만 5000∼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연구성과의 의미와 전망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의 이번 연구성과는 크게 ‘난치병 환자의 배아줄기세포 배양’과 ‘이성간 배아줄기세포 배양’ 등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연구팀이 난치병 환자를 대상으로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처음으로 성공,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치료가 국내에서 먼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배아줄기세포로 난치병 치료 가능성 제시 가장 큰 의미는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했다는 점이 꼽힌다. 과학자들은 파킨슨씨병, 뇌졸중, 치매, 뇌척수손상, 관절염, 당뇨병 등에 배아줄기세포를 적용할 경우 체내의 손상된 세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까지는 난치병 환자의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가능성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쳤다. 또 황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 3명의 난치병 환자를 참여시켜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하는 데도 성공했다.2살짜리 선천성면역결핍증 환자는 남자여서 배아복제를 위해 건강한 여성의 난자가 제공됐다.6세 소아당뇨병 환자도 여성이긴 하지만 나이가 어려 역시 다른 사람의 난자가 사용됐다. 반면 척수질환을 앓고 있는 33세 여성은 100% 환자 자신의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성간, 다양한 연령에서 배아복제 성공 황 교수팀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를 확립한 이후 윤리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성간 배아복제 연구에 매달려 왔고 결국 이번에 남성환자의 세포를 이용해 이성간 배아줄기세포 배양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황 교수팀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배아줄기세포 생산기술은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빼낸 뒤 해당 여성의 난자 주변에 붙어 있는 난구세포의 핵을 이식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난자를 기증한 여성의 체세포를 다시 자기 난자에 이식한 것으로 이같은 배아복제 방식을 통상 ‘완전복제’라고 말한다. 결국 동일인의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한 완전복제는 미토콘드리아 DNA까지 완벽하게 일치함으로써 환자에게 이식할 경우 면역 거부반응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첫 복제동물로 꼽히는 복제 양(羊)‘돌리’의 경우 난자를 제공한 양과 체세포를 제공한 양이 서로 달라 각기 다른 미토콘드리아 DNA가 혼합됨으로써 엄밀한 의미로는 ‘완전복제’로 볼 수 없었다. 연구팀이 이번에 성공한 배아복제기술도 복제양 돌리와 같은 방식이다. ●향후 전망 및 문제점 과학자들은 그동안 배아줄기세포가 인체의 210여개 장기로 발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세포를 특정세포로 분화시키면 뇌질환에서 당뇨병, 심장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노력해왔다. 이 때문에 이번 연구는 난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배아줄기세포가 환자의 체세포를 이용한 것이어서 면역거부반응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있는 ‘유전자표식 항원 인자(MHC-HLA)’가 달라 환자에게 이식하기에는 아직 결함이 있다. 환자로부터 유래된 줄기세포는 체내에 주입돼도 역시 같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구멍난 수상레저 안전 두가족 7명 ‘휴일 참사’

    두 가족 8명을 태운 레저용 모터보트가 서해상에서 전복돼 7명이 숨지고 1명은 구조됐다. 주5일제 근무 이후 수상레저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나 안전법규는 미비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발생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구자훈(39·경기 안산시 상록구)씨 가족과 구씨의 매제 김심환(33·서울 서대문구)씨 가족 등 2가족 8명을 태운 구씨 소유의 모터보트(1t급·150마력)가 15일 오후 4시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입파도를 떠나 12㎞ 떨어진 대부도 전곡항으로 가던 중 전복됐다. 이들 가족 14명은 이날 오전 9시 20분 전곡항을 출발해 입파도로 들어갔다. 구씨의 동생 자경(29)씨는 “입파도에서 관광을 한 뒤 형과 누나 가족 8명이 먼저 보트를 타고 전곡항으로 나갔는데 5시간이 넘도록 배가 돌아오지 않아 해경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해경은 함정과 헬기 등을 동원, 수색에 나서 16일 오전 6시20분 대부도 인근 제부도 남단 김양식장에서 부표를 잡고 있는 김씨의 아내 구자희(30)씨를 14시간 만에 구조했다. 해경은 보트가 안개가 짙게 낀 바다를 달리다 양식장 그물에 걸려 전복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터보트는 인승 개념이 없으나 사고보트는 길이 5m, 폭 2m여서 5명 정도가 적정 승선인원으로 알려졌다. 승선자 안전장치도 구명 조끼와 튜브가 전부다. ●개정법은 1년뒤에나 시행 개인 소유 모터보트 등 수상레저기구는 수상레저안전법상 등록대상이 아니어서 정원 및 안전, 검사 등을 규제할 수 없다. 그래서 보유대수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상레저기구 정원, 개인 소유 기구 등록 및 검사, 보험가입 등을 규정하는 수상레저안전법 개정안이 지난 3월2일 국회를 통과했으나 하위법 제정 관계로 시행은 내년 4월로 미뤄졌다. 사고가 난 배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든 레저용 보트로 최대속도 30노트(시속 54㎞)에 달하며, 종류에 따라 수천만원을 호가해 부유층들이 선호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FRP 보트는 가볍고 빠른 대신 상대적으로 뒤집어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국제플러스] 네팔반군 학생500명 납치

    |카트만두 연합|네팔 서부지역에서 납치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네팔 공산 반군이 지난주 학생 500여명을 학교에서 납치해 반군 거점지인 산간 오지로 끌고 갔다고 네팔 관리들이 15일 밝혔다. 반군은 지난 13일 학교에서 수업중인 학생을 인근 타하누 및 팔파 지역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두 지역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300㎞ 떨어진 곳이다. 중국식 공산혁명을 꿈꾸는 반군은 과거에도 학생들을 데려가 며칠간 혁명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킨 뒤 돌려보낸 적이 있다. 왕정을 전복시켜 공산 국가를 설립하려는 반군과 정부군간 내전으로 지난 96년부터 1만 1500명 이상이 희생됐다.
  • 우즈베크 反정부 시위 격화

    |타슈켄트·안디잔 연합|우즈베키스탄 동부 도시 안디잔에서 대규모 탈옥에 이은 격렬한 시위로 정부군이 시위대에 총을 쏴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반정부 소요 사태가 격화되고 있다. 외신들은 적어도 9명이 숨지고 34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현지 시민과 정부 관리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현지시간)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면서 12일 밤 반정부 무장세력이 안디잔 교도소를 습격했다. 로이터통신은 60명가량의 재소자가 탈옥했다고 전했으나 BBC방송은 4000명가량의 재소자가 모두 탈옥했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13일에는 탈옥수와 시민 등 수천명이 종교탄압 중지와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며 시청사 점거를 시도하는 등 시위 양상이 격렬해지자 정부 보안군이 시위대에 발포,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5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총을 쏜 군인 30명을 인질로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요는 우즈베크 당국이 23명의 이슬람교도 사업가들에 대해 헌법파괴 행위 및 범죄단체 구성 혐의로 재판에 회부한 데 대해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안디잔 지역 주민들이 종교탄압이라고 반발하면서 촉발됐다. 사태의 발단이 된 이슬람교도 사업가들은 모두 탈옥했다. 우즈베크 당국은 외국 방송 전파를 차단하고 인터넷과 이동전화도 두절, 소요 사태는 안디잔 외부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 공보실은 사태가 안정을 찾고 있다면서 안디잔에 계엄령을 선포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가 옛소련 지역에서 빈번했던 정권 교체를 포함한 ‘시민혁명’으로 번질지 관심이 모아졌으나 시위대 스스로 “정부 전복을 기도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요구한다.”고 밝혀 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 “농성으로 하루 1억씩 손해”

    ‘하루 1억여원씩 손해가 나는데, 꼬박꼬박 먹을 것이 올라가고 내려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울산지역건설플랜트 노조원 이모(42)씨 등 3명의 SK㈜ 정유탑 점거농성이 13일째 이어지면서 SK㈜ 회사가 애를 태우고 있다. ●크레인 하루 임대료만 1200만원 회사측은 외부 노조원이 국가보호시설을 불법점거해 농성을 함에 따라 불필요한 경비지출에다 업무 지장이 많다고 하소연한다. 회사측은 플랜트 노조원들이 지난 1일 70m높이 정유탑 꼭대기에 올라간 뒤 투신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50∼100t 규모의 크레인 7대를 임대해 탑 중간쯤에 빙둘러 안전그물을 설치해 놓았다. 또 사다리가 100m높이 까지 올라갈 수 있는 350t짜리 대형 크레인 1대를 탑아래에 대기시켜 놓고 음식을 비롯해 농성자들이 요청하는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크레인 하루 임대료는 중·소형 각 100만원, 대형은 500만원으로 모두 1200만원. ●용역경비 인원도 280명으로 배 늘려 회사측은 평소 124명이던 용역경비인원을 정유탑 점거 이후부터 280명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비슷한 점거사태가 또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안 크고 작은 정유탑 50여곳과 주요시설물 등에는 직원들이 2명씩, 모두 140여명이 밤새 경비를 선다. 회사측은 증원된 용역경비원 임금으로 하루 3600여만원, 직원 야간초과근무 수당으로 5300여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밤에 올빼미 경비근무를 한 직원들은 다음날 오전 근무를 쉬어야 하기 때문에 업무에도 많은 지장을 준다고 한다. 회사측은 플랜트노조 점거농성으로 발생하는 손해에 대해 해당 노조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와 경찰은 농성자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을 비롯한 물품은 노조측과 노동단체 등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전복죽·잣죽 등이 탑위로 올라가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통닭을 비롯한 고기류도 요청했으나 경찰 등이 거절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농성자들이 배고픔을 참고 겨우 연명하며 치열한 노동투쟁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데 진짜 그런 음식들까지 요청했느냐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경찰 강제해산 않는한 장기화 조짐 농성 노조원들은 건설플랜트 노사협상타결 가닥이 잡히면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노사협상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경찰이 강제해산을 하지 않는 한 농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유쾌한 상상 · 기발한 일탈 씨네큐브 ‘오!컬트!영화제’로

    “그 영화가 그 영화 같아서…”라며 심드렁했던 관객에게 반갑고 별난 영화제가 찾아간다.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마련되는 ‘오!컬트!영화제’. 상식이 전복되는 낯선 감상, 판에 박힌 영화의 장르문법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유쾌한 일탈을 맛보고 싶다면 꼭 챙겨볼 프로그램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선보일 작품은, 독특한 작품색채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컬트영화의 고전 5편. 마니아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대번 호기심을 자극할 작품이 ‘헤드윅’이겠다. 조승우 주연의 인기 뮤지컬 ‘헤드윅’의 동명 영화(존 캐머론 미첼 감독·미국)로, 음악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거는 여장 남자의 이야기.2002년 국내 개봉 때에도 마니아팬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컬트영화의 효시로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짐 셔먼 감독의 ‘록키호러픽처쇼’(영국)를 비롯해 기괴한 묘사로 인간 무의식을 파헤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레이저 헤드’(미국), 러시아 변두리 밴드의 미국 방문기를 그린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핀란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영국)도 모처럼 다시 만나볼 수 있다. 때론 낯선 상상력에 충격을 받는가 하면, 또 때론 엉뚱함과 기발함에 대책없이 폭소가 터지기도 하는 작품들이다. 행사기간중 날마다 5편의 영화들이 번갈아 상영된다. 한편에 7000원.www.cinecube.net (02)2002-777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열린세상] 지속가능한 지역축제를 위하여/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축제는 말 그대로 축(祝)과 제(祭)가 혼합된 문화현상이다. 애초 시작부터 농경사회의 풍요를 하늘에 기원하고 감사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신명나게 쉬는 것이 축제였다. 현대사회의 세속화와 상업성이 이제는 축제의 종교성을 박제시키고, 유희성을 부각시키고 있을 뿐이다. 5월, 전국의 지방마다 축제가 한창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단절되고 파괴되었던 한국의 지역축제들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지역축제의 부활 자체가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반성,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염원, 잃어버린 뿌리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반영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잠재욕구들이 지방자치라는 시대적 환경과 맞아떨어져 우리나라 곳곳에서 1000여개의 축제가 1년 내내 펼쳐지고 있다. 등장하는 소재도 다양하다. 지역적 특산물이 가장 눈에 띈다. 녹차, 인삼, 고추, 수박, 마늘, 송이버섯, 목화 등 농산물이 축제의 소재이다. 황토, 진흙, 고로쇠약수와 같은 천연자원도 활용된다. 빙어, 병어, 전복, 고래, 새우젓, 키조개, 장어와 같은 수산물도 축제의 무대에 올라 있다.‘장보고축제’ ‘왕인문화제’ ‘다산문화제’ ‘율곡문화제’에선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5월에 열리는 축제 가운데 친환경축제가 특히 눈길을 끈다. 함평에서는 나비와 꽃과 곤충의 축제가 열린다. 유채꽃과 자운영꽃이 물결을 이룬 가운데 수십만 마리의 나비가 날아 오른다. 아름다운 봄꽃 사이로 비행하는 호랑나비, 노랑나비, 배추흰나비 등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별천지로 안내한다. 경남 하동의 야생차 축제도 인상적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다녀온 대렴공이 차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심은 곳으로, 올해로 10회째의 연륜을 쌓아가고 있다. 방문객들은 차 잎을 따고 차를 마시면서 푸르른 자연의 향취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지역축제가 모두 성공적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축제가 왜 이곳에서 개최되어야 하는지 그 연관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곳, 연예인이나 불러 1회용 주민동원 잔치를 벌이는 곳, 예산을 낭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지역도 허다하다. 무슨 엑스포니 해서 축제의 규모가 클수록 예산의 낭비와 부패의혹이 축제의 뒷전에 무성하다. 상업성과 정치성이 앞서는 지역축제일수록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대체로 성공하는 지역축제는 친환경, 친역사적 특징을 갖는다. 지역적 정체성을 발굴하고, 지속가능한 소재를 활용했다는 얘기이다. 역설적으로 지역홍보와 관광수입 효과를 일차적 목표로 하는 축제일수록 실패한다. 지역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축제 행사 자체가 아니라 축제를 즐기고 향유하는 지역민들의 모습이다. 그 축과 제의 향연에 함께 어울리고자 하는 기대가 관광객의 가장 큰 욕구인 것이다. 우선 지역민들이 즐기고 향유하는 축제라야 지속가능성도 있고 지역홍보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성공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성공적인 지역축제의 전형으로 인용되는 일본의 마쓰리나 독일의 맥주축제 역시 지역민의 잔치가 먼저이다.6만 여 지역에서 행해지는 일본의 마쓰리는 대부분 지역사회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모티브로 하는 일종의 제례적, 전통계승적 축제이다. 그만큼 지역민 동원력이 크고 전국적인 주목도 받는다. 독일의 맥주 축제는 10월 추수의 절기에 맞춰 지역민들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휴식의 장이다. 지역민들의 흥겨운 어깨동무와 노랫소리에 참여하고자 전국에서 600만명의 방문객이 몰려들고, 경제효과도 9000억원에 달한다. 지역축제의 만개는 무너진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지역발전의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제는 사라진 제의 의미 대신 공동체의식을 회복하고 함께 어우러짐을 즐기는 대동의 의미를 살리는 장이 되어야 한다. 농경의 기반이 사라진 도시지역 축제일수록 대동과 어울림의 의미를 되살리지 않으면, 길거리 포장마차들의 잔치판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도시지역은 도시의 특성이 반영되도록 주민과 대학, 기업이 어울리는 축제를 구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첨단과 유용성, 공동체의식을 구성원들이 나눌 수 있는 장이 호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 교수
  • [서울광장] 美 바짓가랑이라도 붙들라/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美 바짓가랑이라도 붙들라/이목희 논설위원

    한반도 상공에 ‘2차 한국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이렇게 말씀할 것 같다. “나의 첫번째 소원은 전쟁방지요, 두번째·세번째 소원도 완전한 전쟁방지다.” 한반도 전쟁 발발을 막는 일은 절대명제다. 비핵화가 중요하지만 수십만, 수백만명의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쟁방지를 최고가치로 확고히 올려놓으면 북한핵을 풀어가는 수순은 비교적 단순해진다. 북핵이 쟁점화된 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3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세 정권 모두 민족협력을 앞세웠다.YS는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당시로선 엄청난 말을 했다.DJ는 줄곧 대북 포용노선을 견지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적이라는 시선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세 정권은 핵에 관해 북한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북한은 YS정권이 출범하자마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DJ는 취임 첫해 북한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 파문을 겪었다. 노 대통령 집권 후 상황은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YS때보다 심각하다. 북한은 지난 2월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하고 나섰다. 북한에게 핵은 남한 정권과의 담판거리가 아니다. 미국이 김정일체제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공포에 남한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안중에 없다. 따라서 남측의 선택폭은 극히 좁다. 민주적 협의절차를 가진 미국을 우선 설득하는 편이 그래도 성공 가능성이 높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지금 북핵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북핵은 안보리에서 해결되지 못한다.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경제제재도 어렵다. 기껏해야 의장성명 정도가 나올 것이다. 수개월 이상을 그러는 동안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고,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게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이라크에서처럼 미국이 유엔틀 밖의 군사행동으로 북핵을 저지할지 선택이 남게 된다. 1994년 북핵위기때도 그랬다. 유엔 제재가 여의치 않자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제한폭격하는 도상연습까지 했다. 당시 YS정부는 남한을 따돌리는 북한이 미웠다. 그러나 전쟁은 막아야 했다.YS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설과 미국 스스로 철회했다는 설이 혼재하지만 북폭은 실천되지 않았다. 경수로건설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북·미수교까지 하자는 제네바협정이 타결됨으로써 위기는 진정됐다. 전쟁방지라는 대전제를 깔면 패키지 딜을 통한 제2의 제네바협정이 지금도 해답이다. 미국이 1994년 협정보다 진전되고, 실천력 있는 대북제안을 내놓고 6자회담을 통해 관련국이 동참할 때 북핵은 풀린다.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라도 ‘대담한 대북 제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동북아균형자니, 뭐니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수사(修辭)보다는 통사정이 효율적일 수 있다.7000만 생명이 달렸는데, 자존심을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과 중국 외교장관은 어제 회담을 갖고 북·미에 대한 양비론의 일단을 표출했다. 미국을 달래도 시원찮을 판에 또 오해를 부르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미국에 ‘대담한 제안’을 요구하고, 북한판 마셜플랜을 거론했다. 경제지원, 불가침약속, 북·미수교, 북·일수교 등과 북한의 핵동결 및 폐기를 단계적으로 맞춰나가는 협상안에 반대할 국내 정치세력은 별로 없다. 정부는 대북 온건·강경을 넘나드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의 주된 외교상대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다.“노력했는데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그야말로 대미 총력외교에 나서야 한다.8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과 새달로 예정된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다른 국정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만사휴의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젊은이들은 원래 반항적” 獨영화 ‘에주케이터’

    “젊은이들은 원래 반항적” 獨영화 ‘에주케이터’

    ‘세상을 바꾸자’는 젊은 구호는 독일에서도 ‘세대 고정적’인 것인가보다. 우리나라에 ‘386 세대’가 있다면 독일에는 ‘68혁명 세대’가 있다.6일 개봉하는 독일 영화 ‘에주케이터(edukator)’는 청춘시절 품었던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상실한 오늘날 ‘68혁명 세대’의 현주소를, 새로운 세대의 세 청춘을 통해 풍자한다. 감독 한스 바인가르트너는 “젊은이들은 본래 반항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당시 그들의 순수한 에너지는 지금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라고 질책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교육자’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젊은이가 있다. 피터(스티페 에르켁)와 얀(다니엘 브륄)은 선배 혁명가들과 달리 손에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지 않는다. 비어있는 부잣집에 침입해 가구와 고가품들을 재배치해 마치 설치미술처럼 쌓아놓고는 유유히 사라진다.“풍요의 날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물건은 훔치지 않는 것이 이들의 불문율. 이들은 이같은 ‘혁명 놀이’를 통해 사회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주위를 환기시킬 뿐이다. 피터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피터의 여자친구 율(율리아 옌치)은 얀과 함께 이 놀이에 나선다. 이들은 벤츠 자동차를 소유한 하르덴베르크(버그하르트 클로브너)의 고급 빌라에 침입해 이 ‘혁명 놀이’를 하다 그만 휴대전화를 두고 나온다. 다시 이를 찾으러간 두 사람은 경찰에 발각되고, 돌아온 피터와 함께 얼떨결에 하르덴베르크를 납치, 산장으로 도망간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세 사람. 그들이 증오한 전형적인 부르주아 하르덴베르크는 한때 세상 전복을 꿈꾸며 68세대의 선봉에 섰던 인물. 이후 하르덴베르크는 세 젊은이를 통해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세 젊은이들은 순수한 이상을 흔들리게 만드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발칙한 결말을 선택한다. 젊은이들과 하르덴베르크가 서로를 배신하는 것.“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화면속 메시지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독일 영화 답지 않게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풍자와 경쾌한 유머의 맛깔스러운 조화가 돋보인다.15세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알뜰살뜰 정보]

    ●농협e쇼핑(shopping.nonghyup.com)은 5월 한달 동안 매출액의 1%(쌀 판매액 제외)를 추가로 적립해 농촌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 기간 동안 참외·토마토 등 과일·채소류는 물론 사골세트, 한우 갈비세트 등 축산물과 홍삼·전복·고급차 선물세트 등을 최고 30% 할인 판매한다. ●그랜드백화점 일산점은 어버이날을 맞아 15일까지 당일 1만원 이상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2명을 뽑아 양평 공원묘지(10평)를 무료 증정한다.10평형은 시중가격 770만원이며, 당첨자는 직접 현장 답사를 통해 선택할 수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8일까지 부모님의 건강에 좋은 과일을 색깔별로 구성한 ‘5 a Day 과일세트’를 선정, 어버이날 특별상품으로 판매한다. 당일 구매금액 20만원 이상의 소비자들에게는 카네이션 바구니를 선물로 제공한다. 하루 선착순 50명. ●호주축산공사(www.ilovebeef.co.kr)는 청정우 출시 3주년을 맞아 15일까지 전국 482개 유통 및 패밀리 레스토랑 매장에서 호주 여행 기회를 제공하는 ‘333 페스티벌’ 행사를 진행한다. 호주청정우 홈페이지를 방문하거나 행사 매장에 마련된 엽서를 작성해 응모하면 된다. ●신세계 이마트는 15일까지 오뚜기 상품을 최고 30%까지 할인 판매하는 ‘이마트-오뚜기 특별 공동 기획전’을 연다. 이번 행사에는 239개 품목이 참여하고 물량은 모두 50억원 규모이다. ●롯데백화점은 15일까지 10만원 이상 상품권 구매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포장과 함께 전국 무료 유가증권 등기 배송서비스를 실시한다. 또 8일까지 20만원 이상 구매 소비자들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인 T.G.I.F 무료 식사권(1인1장·선착순) 증정행사도 갖는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7일까지 서울무역전시장에서 ‘2005 TV홈쇼핑 인기상품박람회’를 연다.TV홈쇼핑에서 인기를 얻은 100개 업체가 참여, 저렴한 가격에 히트 상품을 내놓는다. ●BBQ치킨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제너시스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한국식 패밀리 레스토랑 ‘찹스(Chops)’ 1호점을 오픈했다. 찹스는 한식 일품요리와 숯불구이를 접목한 식당이다.1인당 2만∼2만 5000원.(02)542-9800. ●CJ몰(www.cjmall.com)은 5월 한달 동안 ‘부모님 전상서’ 이벤트를 진행한다. 고객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올리면 추첨해 27명에게 ‘아산 스파비스 이용권’ 등 상품을 준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kr)는 16일까지 정기 바겐세일을 열고 전 상품을 최고 80% 할인 판매한다. 어버이날, 스승의날을 맞아 꽃바구니를 최고 15% 저렴하게 판다. 모든 화장품도 10% 싸게 내놓았다. ●GS이숍(www.gseshop.co.kr)은 5주년을 맞아 10일까지 그랜드세일을 실시한다. 가전 및 컴퓨터를 최고 50만원까지 할인하고, 패션, 홈리빙, 레포츠 등 상품도 최고 50%까지 저렴하게 판매한다. 고객 모두에게 할인쿠폰도 준다. ●옥션(www.auction.co.kr)은 자선단체들이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 수 있는 ‘사랑의 e가게’를 연다. 자선단체들은 이곳에서 기증품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며 사이트 이용료와 수수료는 무료다. 참여를 원하는 단체는 옥션 고객센터(1588-0184)로 문의하면 된다.
  • 이슬람 과격운동 이집트서 불붙나

    중동지역에서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것으로 여겨져온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외국 관광객을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과 총격전이 2시간 간격으로 발생했다. 이번 사건으로 범인 3명이 모두 숨지고 외국인 관광객 4명 등 9명이 다쳤다. 지난달 7일 이후 또다시 외국인을 겨냥한 테러인데다 여성이 테러에 직접 가담한 것도 전례가 없어 관광대국 이집트가 큰 충격에 빠졌다. 당국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생적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갈수록 행동수위를 높이고 있어 90년대말 자취를 감춘 이슬람 과격운동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2시간 간격 관광객 겨냥 테러 이날 오후 3시15분쯤 카이로 국립박물관 근처 다리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리며 사제폭탄을 터뜨려 이스라엘인 부부 등 외국인 4명과 이집트인 3명이 다쳤다. 내무부는 이 남자가 지난달 7일 관광객이 즐겨 찾는 칸 엘 칼릴리 시장에서 폭탄테러를 저질러 프랑스인 2명과 미국인 1명을 희생시킨 단체에 연계된 이합 유스리 야신이며 경찰 포위망이 좁혀오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엔 야신의 누이동생과 약혼녀가 얼굴을 히자브로 가린 채 폭탄테러 현장에서 3㎞쯤 떨어진 올드 카이로구역의 사이다 아이샤 모스크 근처에 정차된 관광버스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경찰은 두 여인이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목격자들은 경관 총에 맞아 숨졌다고 주장하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 이집트인 2명이 다쳤을 뿐 관광객 피해는 없었다. ●과격 이슬람운동 재연될까 전전긍긍 사건 발생 직후 ‘순교자 압둘라 아잠 여단’이란 생소한 이름의 단체가 이슬람 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통해 “지난해 10월 시나이반도 폭탄공격에서 순교한 이들의 희생에 값하고, 경찰의 무차별 연행에 대한 보복으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집트 무자헤딘 그룹’ 명의의 성명도 동일 사이트에 등장했다. 실제로 이집트 당국은 지난해 폭탄테러 직후 4000여명을 무차별 연행, 아직도 수십명을 감금하고 있고 다른 조직사건까지 포함하면 전체 구금자는 1만 6000명에 이른다. 이집트에선 지난 1992년부터 약 6년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97년 9월 카이로 국립박물관 앞 타흐리르 광장에 서있던 관광버스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독일인 9명이 숨졌고 같은 해 11월 룩소르 신전 앞에선 총격으로 외국인 58명 등 62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그 후 잠잠했던 외국인 겨냥 테러가 지난달 7일 칸 엘 칼릴리 시장 사건 이후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 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의 테러문제 전문가 디아 라슈완 박사는 최근 일련의 테러가 가족이나 친구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의 소행이며 분노심에서 공격을 단행했을 뿐 진정한 조직을 갖추진 못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른 분석가들은 ‘자마아 알 이슬라미야’나 이슬람지하드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과격단체가 결성돼 행동에 나섰을지 모른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정신이 불구인 사회/이덕일 역사평론가

    ‘이방인’이란 소설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는 칼 마르크스가 아니라 ‘악령(惡靈)’을 지은 도스토예프스키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칼 마르크스가 혁명 이후 유토피아의 수립을 예언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악령’으로 혁명 후 그 반대의 사회를 예언했던 것이다.‘악령’은 1868년 제정 러시아에서 발생한 네차예프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인데, 이 사건은 당시는 물론 200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J M 쿠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소설 속에 끌어들여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라는 소설을 썼을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다. 제정 러시아를 전복하기 위한 비밀 혁명결사에서 탈퇴하려는 인물을 네차예프와 그 동료들이 살해한 것이 사건의 개요이다. 이 소설을 쓰기 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른바 혁명의 동조자였다.1846년 발표한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에서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과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도스토예프스키는 3년 후인 1849년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 생활까지 했던 전력까지 있었다. 그러나 ‘악령’이 발표되자 그를 동지라고 생각했던 많은 인물들이 비난하고 나섰다. 그중 한 명인 막심 고리키는 “오늘날 러시아인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는 것은 스타브로긴(‘악령’에 등장하는 허무주의자)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에너지원(源)인 민주주의와 민중과 사회성과 과학에의 복귀다.”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금서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E H 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반응을 예상했음을 말해 준다. 그는 “문학 작품을 항상 그 정치적 경향으로서 판단하는 나라에서 젊은 세대가 ‘악령’의 작가에게 분노를 느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동지라고 생각했던 만큼 그 분노는 더욱 치열했다. 그러나 청년들의 노여움을 샀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별반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는데,‘악령’ 출간 이후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혁명 이후의 결과도 미리 짐작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언대로 혁명 이후 현실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라는 인류 역사상 희대의 좌파 전체주의로 현실화하면서 역시 인류 역사상 희대의 우파 전체주의인 나치와 함께 인류에게 무수한 고통을 주었다. 현재도 이런 역사적 과오를 애써 외면하는 일부 경직된 좌파들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슬라브주의 민족주의적 성향의 반동 보수파로 낙인찍고 있지만 그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령’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개인적인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러시아의 대문호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인물을 우리 사회에서 찾기는 어렵다. 우리사회도 E H 카의 말대로 ‘문학 작품을 항상 그 정치적 경향으로서 판단하는 나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사회의 많은 작가나 지식인들은 인간과 사회의 진실보다는 자신이 속한 진영의 반쪽짜리 진실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정치권과 경제계·노동계 그리고 언론계·학계를 막론하고 우리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이중 잣대와 반쪽짜리 정의가 횡행하고 있다.‘철새’가 날아들면 선거 때가 가까운 것이라는 한국정치 불변의 법칙 또한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이번 재보궐선거는 또 보여 주었다. 이를 뛰어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같은 찬 샘물이 정수리를 치지 않는 한, 이런 성찰에 우리사회가 화들짝 놀라 반성하지 않는 한 우리사회는 점점 겉은 멀쩡하지만 정신은 심각한 불구 상태가 될 것이다.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클릭 이슈] ‘태백산맥’·’최장집 교수’ 로 본 이적성 기준

    [클릭 이슈] ‘태백산맥’·’최장집 교수’ 로 본 이적성 기준

    이적표현물은 ‘시대의 면류관’인가, 아니면 ‘국가 전복의 도화선’인가. 검찰은 지난달 31일 소설 ‘태백산맥’과 고려대 최장집 교수를 무혐의 처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건국회 등은 지난 28일 검찰의 태백산맥 결정에 불복, 서울고검에 항고하면서 이적표현물 판단에 대한 논란이 다시 떠올랐다. 이적표현물이란 과연 무엇일까. 판단 기준은 시대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반정부=이적표현물’ 1981년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을 쓴 대학생 박모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됐다. 정파(正派)와 사파(邪派)의 대결 구도로 변증법을 설명했다는 이유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사회주의 서적과 김지하와 리영희씨의 저서들도 대표적인 ‘불온 고전’이다. 올 광복절에 독립 유공자로 추서될 예정인 장지락(일명 김산)의 일대기 ‘아리랑’도 마찬가지다. 당시 대법원은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서적이라도 일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 고무하거나 동조하는 내용이 있다면 처벌했다. ●1990년대 중반,“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체제 위협해야.” 하지만 이적표현물의 기준도 변하기 시작했다.1991년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 국보법 제7조 1항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문구가 추가된 이후부터다. 대법원은 1992년 이후 판례를 통해 이적표현물은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북한 관련물들은 여전히 된서리를 맞았다.1990년대 초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된 ‘북한바로알기운동’의 일환으로 알려진 ‘꽃 파는 처녀’등 북한의 4대 소설과 황석영씨 등의 북한방문기도 이적표현물로 분류됐다. ●1990년대 후반, 경직된 이적성 판단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94년 사망하자 남북 관계가 급랭했다. 이적성 판단도 경직됐다. 경상대 교재 ‘한국 사회의 이해’와 ‘태백산맥’도 이때 검찰의 심판대에 올랐다. 하급심의 무죄 판결들이 대법원에서 번복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대법원은 1998년 북한 소설인 ‘용해공들’ 등에 대해 “김일성 개인에 대한 찬양과 미화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여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이지 않다.”는 원심의 판결을 깨고 이적표현물로 인정했다. 또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었다. 당시 재판부는 “그림 내용이 민중민주주의 혁명과 연방제 통일 등 북한 공산 집단의 주장과 같다.”고 밝혔다. ●2000년대, 이적성 판단에 ‘봄바람’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에도 해빙기가 찾아왔다. 대법원은 2001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레드 헌터’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한국사회의 이해’에 대해 검찰이 기소한 지 11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송두율 교수의 저서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도 소설가 조정래씨와 최장집 고려대 교수에 대해 남북 관계를 감안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식지 않는 이적성 논란 이적표현물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1992년 이적표현물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이회창, 이재성, 배만운 등 세 명의 대법관은 “판단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법원 관계자는 “예전의 이적표현물들을 다시 심판한다면 변경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무혐의 결정을 통해 2000년대 중반 판단 기준을 살짝 내비쳤다. 남북 관계와 대중성(태백산맥)그리고 학문과 순수 예술성(최장집)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시대에 따라 법적용은 변한다.”면서 “국보법이 폐지돼 내란·외환의 예비음모죄로 이적표현물을 처벌한다면 남용의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송호창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의 이적성 판단은 매우 자의적”이라면서 “사회가 미숙해 국보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보법이 사회의 성숙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6) 정감록, 언제 누가 썼나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6) 정감록, 언제 누가 썼나

    ‘정감록’이 수백년 동안 인기를 누려왔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런데도 막상 언제, 누가 정감록을 썼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정감록은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언한 책자라 왕조 말까지 금서(禁書)였고, 그래서 저작에 관해 참조될 만한 기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럼, 우리는 정감록의 저자와 출현 시기를 하나도 알 수 없단 말인가? 여러 해 전부터 나는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고심했다.‘조선왕조실록’,‘비변사등록’,‘승정원일기’ 등 조선시대의 정사를 샅샅이 뒤지며 여러 가지로 궁리해보았다. 이제는 정감록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를 답할 수 있게 됐다. 이 글에선 정감록의 기원에 관해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그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겠다. ●선조22년 정여립 역모사건이 기원? 처음으로 정감록을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이는 이능화다. 그는 선조 22년(1589)에 발생한 정여립의 역모 사건을 ‘정감록’의 기원으로 간주했다. 이능화의 저서 ‘조선기독교급 외교사(朝鮮基督敎及 外交史)’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정여립은 뜻을 잃고 나라를 원망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계룡산에 갔다가 반란할 마음을 적은 시(反詩)를 지어서 자기의 뜻을 보였다. 그리고 장차 나무 아들(木子, 즉 이씨)이 망하고 전읍(奠邑, 즉 정씨)이 일어난다는 노랫말을 지어서 퍼뜨렸으며, 스스로 그에 응하였다. 이것이 정감록에 관한 주장의 시초가 된다.”요컨대 정여립이 계룡산에서 지은 ‘반시’에서 정감록이 시작됐다는 말이 된다. 일제시기엔 정감록의 기원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히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애써 찾아낸 답도 근거가 불명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1923년 도쿄(東京)에서 간행된 ‘정감록비결집록(鄭鑑錄秘訣集錄)’을 보면 그 사정이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그 저자에 대하여도 항간의 주장은 구구하다. 어떤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승려인 무학(無學, 또는 舞鶴)이라고도 한다. 무학은 고려 말의 뛰어난 승려였다. 조선의 태조가 무학을 존경하고 숭배하였던 것은 고려의 태조가 도선(道宣 또는 道詵이라고도 함)을 대우한 것과 비슷하였다. 조선 태조는 도읍을 한양에 정하였는데, 사실은 무학의 결정을 따른 것이었다. 무학의 비석은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에 있다. 결국 오늘날에 와서는 그것이 누구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입증할 수 없다.” 정감록의 작자와 출현 시기에 관한 논의는 최근까지도 별로 진척되지 못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고나 할까.1973년 안춘근은 현재 남아 있는 정감록의 이본들을 대대적으로 수집 정리하여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을 간행했다. 그는 정감록의 저자를 확인하기가 곤란한 사정을 이런 식으로 요약했다. “작자에 대한 확증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파란을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알 수 없게 숨겨질 것이기 때문에 당대는 말할 것도 없고, 시일이 경과할수록 더욱 알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정감록과 같이 허황하면 그럴수록 또 작자는 미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 이른바 술서(術書) 또는 그 밖의 미신과 관련 있는 저작들의 작자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요, 그것이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논증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 말대로 정감록을 언제, 누가 썼는지를 정확히 알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선시대에 금서로 낙인 찍혀 있었던 책이라서 그 사본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베끼는 사람의 개인적인 목적이나 학식에 따라 변형됐을 것은 틀림없다. 내 자신의 연구결과 확인된 사실이지만 역사상 여러 기록에 나와 있는 정감록의 내용은 현재의 정감록과 많은 점에서 달랐다. 어떤 연구자는 정감록이 등장한 시기를 16세기 말 또는 17세기 전반으로 보기도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정감록이 등장했다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 주장 역시 뒷받침할 증거는 뚜렷하지 못하다. ●‘정감록’은 고구려 때 나왔다? 학자들의 생각은 그렇다 치고 정감록을 애독한 민중들은 그 저자를 누구라고 생각할까? 1979년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에 살던 강성도(조사 당시 69세) 노인은 정감록의 유래를 이렇게 말했다. “정감록이라고 하는 사람이 상고(上古)에, 뭐라더냐. 고구려 때, 그 때쯤 되었던 모양이라. 응 그 때쯤인데 어디 사람인가 하니 평안도 사람이야. 나면서부터 이 양반은 참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중국 땅을 한번 시찰로 나갔는데. 이 정감록은 남방의 화직성(火直星, 화성임) 정기를 타고난 사람이야. 이 재주를 당할 재주가 없어. 미래를 다 알고 앉았으니 말이야. 뭐 요새 정감록비전(鄭鑑錄秘傳)이 그런 소리가 있지? 그 정감록이 남긴 책이 그렇지.” 강성도 노인은 정감록의 저자를 고구려 사람 정감록으로 보았다. 정감록을 평안도 출신이라고 못 박은 점도 재밌다. 젊었을 때 누구 못지않게 ‘정감록비전’을 자주 읽었다고 하는 강 노인의 이런 확신이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강 노인의 견해가 일반의 인식을 대표하는지도 솔직히 의문스럽다. 하지만 구비 전승의 근본적인 성격을 고려해 볼 때 노인의 주장을 완전히 억지주장이라 매도하기도 어렵다. 강 노인 역시 어디선가 그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을 것이다. 말을 바꾸면, 한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감록’이 삼국시대 고구려에 살던 정감록이란 사람의 저작으로 알려져 왔다는 뜻도 된다. ●‘정감의 참위한 글’을 서로 널리 전하였다 정감록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것은 언제, 어디서였을까?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았다. 영조 15년(1739) 음력 8월6일(경진)이었다. 그 날짜 실록엔 정감록의 성격과 그 책에 대한 당시 조정의 입장을 알려주는 중요한 구절이 실려 있다. 정감록에 관해 워낙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어 몇 줄만 그대로 옮겨 보겠다. “이때 서북변방(평안도와 함경도)의 사람들이 ‘정감의 참위한 글’(鄭鑑讖緯之書)을 서로 널리 전하였다. 그래서 조정의 신하들이 그 책을 불살라 금지시키기를 청했다. 아울러 소문의 뿌리를 캐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금은 말하기를,‘그것이 어찌 진시황이 서적의 소유를 금지한 것과 다르겠는가? 바른 기운(正氣, 유학을 숭상하는 기풍)이 충실하면 나쁜 기운(邪氣)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바른 기운을 북돋우는 데 학문이 아니면 무엇으로 하겠는가?’ 이어서 왕은 수백 마디 말로 훈시하였다.” 방금 읽은 실록 기사는 정감록에 관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을 한꺼번에 다 거론하기는 어렵겠기에 우선 한 가지 사실만 특히 강조해 둔다. 정감록은 1739년경 황해도, 함경도 및 평안도 지방에 유행했다는 점이다.“이 때 서북 변방의 사람들이 ‘정감의 참위한 글’을 서로 널리 전하였다.”라는 구절로 보아 명백하다. 만일 그 때 ‘정감록’이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면 특히 서북지방이 심하였다는 식으로 기술되었어야 할 것이다. 이미 앞에서 인용한 강 노인의 진술에서도 예언서의 작자가 평안도 사람 정감록이라고 했다. 물론 노인의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가 전한 말 가운데는 정감록이 평안도를 비롯한 북부지방에서 처음 등장한 역사적 사실이 반영돼 있다. ●문제의 인물 조유제는 누구? ‘정감록’이 1739년 서북지방에서 출현했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은 또 다른 자료인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실록보다 약 두 달쯤 앞선 그 해 6월15일자 기록에 정감록의 유행에 대해 새로운 단서가 포착된다. “우의정 송인명이 또 아뢰었다.‘정감록(鄭鑑錄), 역년(歷年) 등에 관한 일은 조사에 있어 철저를 기해야 하고 또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함경감사에게 명령해서 조사 결과를 보고하게 하는 게 옳습니다. 그런데 본사(비변사)에 있는 서류를 살펴보니 조유제(趙裕齊) 등이 아주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가지고 비밀리에 함경도로 내려보내서 수사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합니다.’ 임금은 그 말대로 하라고 말했다.” 문맥으로 보아 정감록이나 역년은 모두 예언서가 틀림없다. 이들 예언서의 전파에 직접 관여한 이는 조유제로 밝혀져 있다. 전후 관계로 보아 함경도에서 중앙에 보고한 문서 가운데 언급된 사항은 아니다. 함경도 관찰사는 미처 모르고 있는 정보를 비변사가 입수했다는 뜻으로 봐야 된다. 어쩌면 조유제란 이는 예언서나 괴문서를 조작한 전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실이 있었더라면 함경도 측이 몰랐을지 의문이다. 내가 짐작하는 마지막 가능성이 하나 더 있다. 당시 서울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함경도 사정에 정통한 사람이 있어 비변사에 조유제를 밀고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 짐작이 옳다 해도 조유제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다. 나는 조유제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싶어 실록 등을 검색해 보았으나 도무지 정보가 없다. 좀 더 추측해 보면, 서울의 비변사가 그의 행적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어떤 사건에 연좌돼 함경도로 유배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본래 함경도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지방에선 이름이 다소 알려진 식자층에 속했을 것이다. 예언서를 저술할 정도라면 상당한 학식을 갖추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실록에 조유제란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점으로 볼 때, 그의 정치적인 비중은 대단하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하필 서북지방에서 ‘정감록’이 출현한 이유는? 조선 왕조는 오랫동안 북부 지방 출신을 차별했다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조선 왕조를 개창한 이성계가 함경도 출신이었고, 개국공신(開國功臣)들 중에는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의 무인(武人)들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는 초창기부터 이들 무인을 박대하였다. 게다가 서북 사람들은 본래 상무적(尙武的) 기질이 강해 문과를 비롯한 과거 시험에서도 성적이 부진했다. 결과적으로 서북인들은 중앙 정계로부터 더욱 소외되었다. 자연히 서북 사람들은 조선왕조에 대한 원망이 컸는데, 이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긴말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위주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러하다. 서북 출신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대우는 20세기 초까지도 서북 출신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었다. 박은식은 광무 10년(1906)에 창립된 서우학회(西友學會)의 기관지 ‘서우(西友)’ 창간호에서 그간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할 정도였다. “여러 백년 동안 이른바 서토(西土 평안도와 황해도)의 출신이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대우를 받았던가. 책 읽는 선비는 재상 집안의 심부름꾼이요, 일반 평민은 모두 관리배들의 희생물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되었다는 이가 이른바 진사(進士)니 급제(及第) 등으로 붉은 대문(재상의 집)에 찾아가서 종일토록 머리를 숙이고 손님(벼슬을 구하기 위한 비굴한 행동을 말함) 노릇을 하면서 서울의 여관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지 않았던가. 이렇게 하여 평생을 그르쳤으니, 뜻을 이루지 못한 이는 진실로 안타깝다 하려니와 설사 뜻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라 한들 만족할 만한 지위를 얻은 이가 있었던가.” 또 한 가지. 정감록이 하필 서북지방에서 출현하게 된 데는 서북지방이 악명 높은 유배지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16세기 말부터 시작된 당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중앙 정객들은 산간 오지가 많은 평안도나 함경도로 유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우리들에게 익숙한 속담 중에 “내일은 삼수(三水, 함경남도) 갑산(甲山, 함경남도)을 갈지라도.” 라는 표현이 있다. 함경도의 삼수나 갑산 같은 곳으로 유배를 당할망정 지금 당장은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말이다. 이 속담이 웅변하듯이 서북지방의 유배지는 누구에게도 최악의 거주 장소였다. 권좌에서 축출돼 서북 변경으로 쫓겨온 정객이라면 현실 정치에 대해 불만이 컸을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 차별 정책으로 말미암아 국가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서북지역에 다수의 불만 정객들이 원한을 품은 채 지내는 실정이었다. 서북지방은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볼 때 일촉즉발의 화염병이었다. 따라서 ‘정감록’처럼 “민심을 현혹시키는” 예언서가 서북 지방에서 출현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 필연이 아니었을까? 앞에서 나는 비변사등록에서 정감록 사건의 관련자로 거론된 조유제를 유배객 또는 지방 양반으로 추정했다. 바로 그와 같이 불우한 인사들이 예언서를 조작하고 유포하였을 것이다. ●나라를 원망하는 뜻이 꺾인(怨國失志) 사람들 손에서 탄생 정감록이 실제 출현한 시기는 1739년보다 앞섰는지도 모른다. 예언서란 것이 민간에 남몰래 유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정에서 문제로 삼기 전에 이미 항간에 유포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점은 정감록이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이 1739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그 때부터 조선왕조는 정감록을 문제의 책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읽어본 실록 기사를 되새겨 보면, 정감록은 “참위(讖緯)”라고 했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왕조의 정치적 운명에 관한 예언서란 뜻인데, 왕조의 뜻에 반하는 예언서라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예언서는 당시의 정치적 현실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조작하고 유포했다고 봐야 한다. 일찍이 이능화는 그 점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했다. “정감록은 나라를 원망하는 뜻을 잃은 무리(怨國失志)의 손에서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당쟁에서 실패한 사람들과 애써 관직을 구하던 선비들이 조선 왕조를 전복시키고자 할 때면 반드시 정감록의 예언에 의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감’은 가공인물인가 역사적 인물인가 이 지점에서 나는 한 가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진다. 실록에선 ‘정감록’을 “정감의 참위한 글”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당시 조정은 정감이란 사람을 예언자 또는 정감록의 저자로 인식하였다는 뜻이 된다. 정감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는 가공인물인가 또는 역사적 인물인가?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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