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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화학 폭발은 안전불감증 참사”

    8명의 목숨을 앗아간 LG화학 청주공장 폭발 사고는 회사 측의 ‘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였다. 충북 청주 흥덕경찰서는 16일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치상)로 공장 임직원 6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책임자인 박모(44) 상무 등 3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고는 지난 8월 23일 오전 10시 16분에 발생했다. 당시 청주공장 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공장에서 폭발성 용매인 디옥산을 호스를 이용해 드럼통으로 회수하는 과정에서 드럼통이 폭발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화염과 열기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면서 인명 피해가 컸다. 현장에 있던 11명 전원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한 명이 숨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가 8명으로 늘어났다. 이 공장은 휴대전화와 TV의 디스플레이 장치에 사용되는 재료를 생산하는 곳으로 사고 발생 한 달 전에 준공됐다. 디옥산의 폭발성이 강하고 정전기가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작업장이지만 회사 측은 근로자들의 안전을 외면했다. 작업장에선 정전기를 예방하기 위해 제전화, 제전장갑, 제전복을 착용해야 했지만 사고 당시 근로자들은 제전화와 제전복을 착용하지 않은 채 일을 했다. 제전화는 회사 측이 아예 사 주지도 않았다. 정전기 차단을 위해 드럼통 등 작업장 내 모든 장비들에 실시해야 할 접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정부 “무력저항 선원 제압과정 우발적 사건”

    정부 “무력저항 선원 제압과정 우발적 사건”

    전남 신안군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선원이 해경이 쏜 고무탄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어기인 4~5월과 10~12월 우리나라 EEZ 접경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어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의 저항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16일 해경에 따르면 우리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해경에 나포된 중국 선박은 2009년 388건, 2010년 375건, 지난해 537건에 달했다. 지난달 24일 제주시 차귀도 서쪽 140㎞ 해상에서 불법조업하던 중국 어선이 검문검색을 차단하기 위해 선체에 철판을 둘러 4m 높이까지 올리고 쇠창살을 달아 해경의 단속을 방해하며 달아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해 12월에는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방 85㎞ 해상에서 불법조업하던 66t급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해양경찰관 2명이 중국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중국 선원이 숨지는 사고도 2010년 12월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전북 군산 해상에서 중국 어선이 우리 해경 경비함을 들이받고 전복돼 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면서 한·중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시신은 한·중 양국 입장차로 장례식장에 방치됐다가 지난 6월 화장돼 중국 측에 전달됐다. 이번 사건도 중국 내 반한감정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날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사건 개요에 대한 설명과 유감을 표명하고 대책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정부 당국자는 “무력으로 저항하는 선원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라면서 “인명 피해에 유감을 표명하는 등 외교적 사안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 양국은 지난 6월 ‘한·중 어업문제 협력 회의’를 갖고,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문제가 됐을 경우 신속히 논의할 수 있는 심의관급 핫라인과 협의체를 구축했다. 이날 중국 매체들은 각사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이 뉴스를 크게 보도했다. 신화통신과 인민망, 환구시보 등 관영언론 등은 지난 5일 한국이 중국의 불법조업 어민들을 상대하기 위해 관련 워크숍을 갖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며, 중국 어민을 타깃으로 한 한국 해경의 강경대응 방안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微博)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벌써부터 한국 해경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중국 외교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어 자칫 반한 감정으로 불길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목포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1895년 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과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의 간섭에 굴복하여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였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러시아가 동아시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 하겠다는 것과 일본이 아직 그에 맞설 만한 힘을 갖지는 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노출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는 조선의 왕실과 개혁관료들이 힘을 합하여 일본의 간섭을 배제한 근대개혁도 가능한 상황이 왔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이 택한 방법은 왕실을 무력화시키거나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왕실의 반격으로 박영효와 유길준은 권력에서 쫓겨나 오랜 일본 망명생활을 했다. 박영효는 삼국간섭 이후의 정세변화를 이용하여 일본 측의 반대에도 김홍집을 총리대신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박정양, 이완용과 같은 친미근왕적 관료들과 함께 박정양-박영효 연립내각을 출범시켰다. 한편, 일본이 강요했던 차관교섭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이때 박영효는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개혁을 주도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조선협회를 조직하여 개화세력의 정치조직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박영효, 왕실 무력화 계획 드러나 ‘몰락’ 그러나 여기서 그는 과욕을 부리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1895년 6월 말 박영효는 당시 궁궐을 지키던 시위대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던 훈련대로 교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왕실마저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고종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였으나 박영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모종의 과격한 조치’를 취하려 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무력으로 왕실을 제압하고 왕비를 폐비시키는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전에 일본인 장사의 편지가 유길준에게 입수되어 고종에게 보고되었고, 7월 6일 궁정회의를 통해 박영효의 체포가 결정되었다. 결국, 박영효는 일본 공사관의 협조를 얻어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하늘을 찌르던 그의 권력은 8개월 만에 좌절되고 만다. 이후 왕실은 본격적으로 왕권 회복을 시도하였다. 근왕세력들을 내각에 포함하는 한편, 유길준을 의주부 관찰사로 좌천시켰다. 왕실 측근 홍계훈을 훈련대 연대장에 임명한 것도 일본의 지휘를 받는 훈련대를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보호국화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무력을 이용한 권력의 재탈환을 위해 외교 경험이 전무했던 군 출신의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파견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일본군과 민간인이 주도하고 조선의 훈련대가 협력하여 왕비를 시해하고 김홍집-유길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이었다. 유길준이 여기에 직접 개입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지만, 그는 왕비를 폐서인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정당화시켜 주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왕비를 ‘세계 역사상 가장 나쁜 여자’라고 하면서 시해를 정당화하는 편지를 미국의 모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왕비 시해사건의 방조자로서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유길준, 단발령 반대 의병운동 부딪쳐 ‘추락’ 이후 유길준은 내부대신으로서 김홍집 총리대신과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며 개혁을 주도하여 이 시기를 김홍집-유길준 내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불과 1년 만에 주사에서 대신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도했던 단발령의 시행은 결국 갑오개혁은 물론 그 자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단발령에 반대하여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유길준은 한성을 수비하고 있던 병력을 지방으로 출동시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 상황을 이용하여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난 것이었다. 유길준은 체포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 일본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결국, 박영효를 왕실에 고발하여 몰락시킨 유길준은 왕실에 의해 자신도 역시 몰락하고 말았다.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일본 망명 시절에도 계속해서 정변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시 일본 측 정보문서에 의하면 두 사람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고베에서 회동을 한 적이 있었으나 망명 기간 내내 별개로 활동하였다. 박영효는 독립협회 활동을 이용하여 권력을 되찾으려 시도하였다. 그는 핵심 측근세력을 귀국시켜 만민공동회를 과격화하고 이를 통해 조성된 정치적 위기를 틈타 정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으나 일본정부의 제지로 실패하였다. 이때 독립협회 내의 추종세력들이 중추원에서 투표를 통해 대신으로 임명할 만한 인물을 추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박영효가 포함돼 있었고 이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고종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고종은 결국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고 말았다. 한편, 유길준은 박영효와 별개로 일본 육사에 유학했던 장교들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혁명일심회 사건을 주도하였다가 1902년에 발각되었다. 이로써 그는 일본의 외딴섬에서 유배생활을 4년 정도 경험해야 했다. 고종은 망명자들을 소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일본은 고종의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이용해 고종이 추진하는 자주적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바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를 전후하여 일본의 주선으로 귀국하였다. 박영효는 고종의 강제퇴위 이전에 1907년 6월 비밀리에 귀국하였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그의 특별사면을 주선하여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강제병합 후 박영효는 후작 작위를 받고 조선귀족회 회장이 되었으며 일제의 지배 아래서 대표적 친일파로 활동하다가 1937년 79세로 생을 마쳤다. 한편, 유길준은 고종이 강제로 퇴위된 이후인 1907년 8월 순종의 특사령에 따라 귀국한다. 그는 귀국 후 일본이 보호조약을 맺은 진의는 평화에 있고, 대한제국이 자초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통감정치는 한국외교의 대변이며 내정의 지도라고 옹호하였다. 또한, 헤이그 특사사건은 경거망동이었고 의병운동은 시국을 오해한 오합지졸이라 비난하였다. 그는 철저히 일본의 통감정치에 협력하였다. 유길준은 다시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활동에 주력하면서 친일적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성부민회를 조직하여 일본 통감의 부임 환영행사에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안중근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자 이완용 등과 함께 중국까지 가서 조문하였고, 이토의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이 강제병합을 당한 후 주어진 작위를 반납하였다. 그가 지향한 것은 일본의 지도로 자강을 이룩하는 것이었지 식민지배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1914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나마 부끄러움을 알았던 그의 처신은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결과로 나타났다. ●朴 끝까지 친일·兪 식민지배 반대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당대에 가장 깊이 있는 문명개화론을 바탕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개화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현실개혁을 주도했던 시기는 각각 1년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세월은 대부분 망명과 유배생활로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 것도 일본의 절대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일본을 모델로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왕권과 대립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명목상의 군주였던 일본의 천황과 달리 조선의 국왕은 국가권력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권을 조선 근대화의 걸림돌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려 하였고 전복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힘에 의존하여 왕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곧 일본의 침략이 확대됨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시도는 친일매국으로 치부되었고 몰락을 초래했던 것이다. 당시 대한제국이 자주적 근대국가를 수립하여 국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따라서 왕권과 개혁관료들이 일치단결하여 외압에 맞서면서 근대개혁을 추진하였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은 서로 끊임없이 반목하면서도 공통으로 왕권과 대립하고, 일본에 의존한 근대개혁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는 대한제국의 개혁사업 실패와 보호국화 그리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근대지상주의가 민족의식과 유리되었을 때 국가는 물론 개인들에게 어떤 비극이 나타나는지를 박영효와 유길준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서울신문·푸른역사 아카데미 공동기획
  • 변해야 산다!… 백화점도 무한 변신 시대 잡아라

    변해야 산다!… 백화점도 무한 변신 시대 잡아라

    ■ 1020 잡아라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9년만에 ‘동안수술’… 오늘 재개장 롯데백화점 영패션 전문관 ‘영플라자’가 주름살을 걷어내고 5일 다시 문을 연다. 9년 만의 ‘동안수술’로 확 젊어진 영플라자를 보며 백화점 관계자들도 이곳이 백화점이 아닌 동대문 쇼핑몰인가 하고 놀랄 정도다. 2003년 11월 개점한 영플라자는 최근 이름에 걸맞지 않게 부쩍 노쇠한 모습을 보였다. 길 하나 건너에 있을 뿐이데 명동거리에 바글대는 젊은이들의 발길을 여간해서 끌어들이지 못했다. 당연히 매출도 신통치 않았다. 자라, 유니클로 등 외국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 입점 효과로 2007년 전년 대비 11% 신장률을 기록한 이래 최근 5년간 매출은 빠지기만 했다. 지난해 고작 2.1% 신장하는 데 그쳤다. ‘패션이 강한 젊은 백화점’을 표방하는 롯데백화점으로서는 여간 굴욕이 아니다. 영플라자에 쌓인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는 게 시급한 과제로 떨어졌다. 지난 5월 ‘수술대’에 올려진 영플라자는 주요 공략층의 연령대를 10대 후반까지 낮추고 얼굴을 90% 이상 바꾸었다. 입점 브랜드의 절반(53개)이 새롭게 선보이는 것들이다. ‘1020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길거리, 동대문 및 온라인 쇼핑몰 브랜드를 대거 영입했다. 홍대거리의 편집숍인 ‘카시나’, 가로수길의 ‘라빠레트’ 등을 비롯해 명동의 ‘스파이시컬러’와 ‘스마일마켓’도 당당히 둥지를 틀었다. 온라인 쪽에서 화제를 낳아온 여성의류 쇼핑몰 ‘스타일난다’도 들여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흔히 만날 수 없었던 수입 청바지브랜드 ‘칩먼데이’, ‘칼하트’도 백화점에 처음 들어섰다.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에도 문턱을 낮췄다. 토털 편집숍 ‘아이디’, ‘마리스토리즈’, ‘엘블룸’ 같은 생소한 브랜드가 즐비하다. 이들 브랜드로서는 수월한 판로를 확보한다는 이점이 있고, 백화점은 ‘새피 수혈’로 이미지를 젊게 가져가는 효과가 있다. 기존 ‘유니클로’, ‘자라’, ‘망고’ 등에 더해 해외 잡화 SPA 브랜드인 ‘찰스앤키스‘도 새로 입점했다. 마니아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무인양품도 의류 상품군을 강화해 5층에 더 넓게 자리 잡았다. 편집숍의 대거 수용은 매장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상품군, 브랜드별로 나뉘던 층과 구획 등의 경계를 없애고 모든 매장은 편집숍처럼 꾸며졌다. 1층만 보더라도 브랜드 구분 없이 화장품?잡화?의류?신발 등 다양한 상품군이 뒤섞여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보이기보다는 검색과 비교 구매에 익숙한 젊은 고객들의 쇼핑문화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식음 쪽도 ‘민토 비스트로’, ‘아비꼬 카레’, ‘카네마야 제면소’, ‘롱브래드’ 등이 자리 잡는 등 트렌디하다. 젊은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는 데 콘서트 등 공연만 한 것이 없다. 이를 위해 지하 1층에는 200㎡짜리 상설 이벤트 공간을 마련했다. 번잡한 도심에서 힐링의 여유를 선사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쓰던 옥상에는 정원을 조성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V·I·P 모셔라 갤러리아 명품관에 고급 식품관 새단장… 신세계도 업계 최초로 오페라 전막공연 백화점들이 불황을 타지 않는 ‘큰손 잡기’에 나섰다.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구매력 상위 20%의 VIP 고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고급 식품관을 단장하고 고급 오페라 공연으로 그들의 ‘오감’ 사로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5년 만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명품관에 식품관을 재단장했다. 5일 개장에 앞서 4일 언론에 공개된 갤러리아 식품관 ‘고메이494’(gourmet494)는 호텔 부티크 같은 세련미와 함께 기존 식품관보다 영업 면적이 523㎡ 확대된 3227㎡, 특히 식음 공간을 전체 면적의 57%로, 좌석 수도 300석으로 3배 늘려 고객의 편의성을 대폭 강화했다. 식품관 단장에는 지난 3월 부임한 박세훈 한화갤러리아 대표이사가 기획에서 메뉴 선정, 서비스 개발까지 직접 꼼꼼히 챙겼다는 후문이다. 이는 식품관의 주이용층이 백화점의 최대 고객이기 때문이다. 영업시간도 오후 9시까지로 한 시간 늘렸다. 갤러리아는 최고의 맛집들을 삼고초려 끝에 식품관에 입점시켰다. 스시마츠모토(초밥), 카페마마스(샌드위치), 디부자(피자) 등 스타 요리사들의 요리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다. 또 식료품점(grocery)과 레스토랑(restaurant)을 결합한 ‘그로서란트’라는 신개념 푸드코트로 꾸며 정육 코너에서 산 한우등심을 바로 앞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수산 코너에서는 초밥을, 전복 전문점에서는 전복찜 등을 테이크아웃할 수 있게 신선함을 강조했다. 싱글족들을 겨냥해 구매한 농산물을 무료로 세척·손질해 주고, 고구마와 감자 등은 즉석에서 굽거나 쪄 판매하는 ‘커트앤드베이크’ 서비스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고객이 받는 음식주문표에 위치추적 칩을 내장해 매장 어디에 자리를 잡아도 직원이 정확히 서빙해 주는 시스템도 갖췄다. 해외 직수입 식재료는 170개로 업계 최대 규모다. 박 대표이사는 “고메이494는 갤러리아 명품관의 심장이며 갤러리아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업계 처음으로 매장 내 문화홀에 오페라 전막 공연을 열기로 하는 등 고급문화 마케팅에 승부를 걸었다. 5~6일 경기점을 시작으로 인천점(6일), 본점(12∼13일), 의정부점(13일) 문화홀에서 돌아가며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와 ‘카르멘’을 2시간 30분 동안 전막 공연하는 ‘신세계 오페라 위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입장권은 각 점포에서 10만원 이상 구매고객에게 선착순으로 증정한다. 기존에는 주요 레퍼토리만 모은 오페라 갈라쇼 형식이었지만 이번에는 20인조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며 원곡을 그대로 살렸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공연을 보는 고객들은 대부분 VIP(연매출 800만원 이상) 고객들로 수준이 높고 전막 공연 요청 등이 있어 반영했다.”면서 “고객의 자부심과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쇼핑과 연계된 고급문화 마케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글램핑-캠핑에 힘빼지 말고 글램핑하자!

    글램핑-캠핑에 힘빼지 말고 글램핑하자!

    ‘어른들의 소꿉놀이’라 불리는 캠핑. 좀더 편안하고 이것저것 다 챙겨주는 캠핑은 없을까? 정답은 바로 글램핑이다. 글램핑은 Glamorous Camping의 합성어로 화려하고 럭셔리한 캠핑을 말한다. 자, 이제 귀찮은 것 없이 먹고 놀 일만 남았다. 에디터 김명상 기자 K의 캠핑일기 난 아빠다. 아내에게는 휴식, 아이들에게는 풀과 나무 냄새, 맑은 공기를 쐬게 해주려고 캠핑을 시작했다. 캠핑장까지 3시간이 넘게 운전했다. 텐트를 치고 나면 발을 뻗을 새도 없이 준비해 온 요리를 한다. 맛있게 먹고 나면 쌓여 있는 설거지를 시작해야 한다. 내일은 또 몇 시간을 짐 꾸리고 차에 싣고, 운전하고 집에 도착하면 다시 장비 정리를 해야겠지. 아, 이제 캠핑은 또 다른 노동이 돼 버렸다. 나도 편하게 쉬고 싶은데. 고민하던 차에 지인이 번거로움 없는 글램핑에 대해 알려줬다. 식사와 숙소가 다 갖춰진 캠핑이라고? 그거 참 솔깃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제주신라호텔 고급 아웃도어 트래블 제주신라호텔은 11월까지 ‘글램핑카바나’를 선보인다. 카바나 스타일의 대형 텐트는 4인이 누워도 충분한 소파침대, 운치 있는 턴테이블과 아늑한 분위기의 펜던트 조명, 풋스파 등으로 꾸며져 있다. 글램핑카바나는 총 8개 동의 텐트로 구성됐으며 무선 인터넷과 보드게임도 즐길 수 있다. 대형 텐트 밖으로 펼쳐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역시 매력요소 중 하나다. 글램핑카바나 패키지에는 기본적으로 마운틴뷰 슈페리어 객실 1박이 포함돼 있으며, 런치 또는 디너 1회 선택이 가능하다. 식사때는 제주의 전통적인 맛과 해외 글램핑 인기 지역의 이국적인 맛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바비큐 메뉴로는 바닷가재, 와규 꽃등심, 흑돼지 오겹살, 수제 소시지, 전복, 그릴야채, 군고구마 등이 준비되고 식사 메뉴로는 밥과 토마토 라멘이 마련된다. 가격 37만~52만원(세금, 봉사료 별도) 기간 11월30일까지(2박 이상 예약 상품) 문의 1588-1142, 064-735-5114 www.shilla.net/jeju 부산웨스틴조선호텔 호텔 가든에서 캠핑과 바비큐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은 올해 말까지 ‘캠핑 & 그릴Camping & Grill’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천장이 열리는 인디언 텐트(티피 텐트)를 도입해 텐트 안에서도 숯불 바비큐를 즐길 수 있고, 내부에 스노우피크의 IGT테이블과 캠핑용 키친웨어를 구비했다. 텐트는 모두 6개 동이 설치돼 있으며 전체 수용 가능한 인원은 35명이다. 캠핑 & 그릴에서는 바비큐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제공하며, 주재료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A코스는 바다장어, 쇠고기 립아이, 전복이 포함되고, B코스는 쇠고기 립아이, 해산물, C코스는 돼지 목살을 메인으로 제공한다. 코스별 가격은 1인 기준 각각 7만원, 6만원, 5만5,000원이다. 특히 계절별로 신선한 제철 재료를 주재료로 하는 코스 메뉴도 있다. 저녁 캠핑 & 그릴은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용 가능하며, 점심은 토·일요일 및 공휴일에 한해 오후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즐길 수 있고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가격 계절코스 메뉴 10만원(세금, 봉사료 별도) 기간 올해 말까지 문의 051-749-7437 경주호텔현대 보문호와 가을의 낭만을 호텔현대(경주)는 다양한 캠핑 장비를 갖춘 프리미엄 텐트 5개 동을 선보이고 있다. 투숙객 대상으로만 진행되며 주말과 공휴일에는 점심과 저녁에 캠핑 및 바비큐를 이용할 수 있다. 글램핑 장소인 대규모 야외 잔디밭 테라스가든은 보문호와 인접해 가을의 낭만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3인분 이상 주문 가능한 세트 메뉴는 떡갈비 스테이크, 흑돼지 삼겹살, 전복, 가리비 등으로 구성된 A세트와 고급 알등심, 미니안심스테이크, LA양념갈비 등으로 구성된 B세트다. 세트 메뉴에는 밑반찬, 야채, 각종 쌈, 양념장, 생수, 각종 반찬, 계절과일이 제공된다. 캠핑 & 바비큐 그릴 파티는 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토·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낮 12시에서 오후 3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가격 1인 세트메뉴 A코스 7만원, B코스 6만원(세금 및 봉사료 포함), 캠핑 바비큐 1인 6~7만원, 객실 포함 23만원부터(세금, 봉사료 포함) 기간 연중 상시 운영 문의 054-779-7303 www.hyundaihotel.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쉐라톤 그랜드워커힐 도심에서 자연을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은 ‘캠핑인더시티Camping in the City’ 프로모션을 가을부터 시행한다. 도심 속 자연에서 누리는 캠핑 체험을 주제로 했으며 한강 조망과 아차산의 숲 속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리버파크에서 진행된다. 여기에 프리미엄 캠핑 장비를 활용하여 해산물과 육류를 비롯한 최고급 바비큐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프리미엄 텐트가 설치되며 숙박을 제외한 그릴 체험으로만 진행된다. 재료는 쇠고기 등심구이, 흑돼지 목살, 왕새우 구이, 소시지 등 다양하다. 또한 산림욕이 가능한 피톤치드 존에는 미니골프장이 설치되고, 텐트 안에는 보드게임 및 MP3 스피커가 구비된다. 가족과 연인을 위한 주말 나들이 장소로, 주중에는 바쁜 회사원을 위한 회식 장소로 추천된다. 또한 호텔에서 숙박을 하며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고 싶은 고객을 위한 패키지도 선보일 예정이다. 가격 객실 타입 및 캠핑 재료에 따라 다름 기간 미정 문의 02-455-50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홍콩 불꽃놀이 선박, 여객선과 충돌·침몰… 38명 숨져

    1일 홍콩 인근 해상에서 선박끼리 충돌해 38명이 숨졌다. 이날 오후 8시 20분쯤 홍콩 남서부 라마섬 인근 해상에서 홍콩전력 직원과 가족 124명을 태운 선박이 승객 10여명을 태운 소형 여객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홍콩전력 소속 ‘라마 4호’는 빅토리아항에 국경절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던 길에 홍콩 주룽페리회사 소속인 페리와 부딪쳤다. 충돌 직후 라마 4호는 뱃머리가 하늘을 향해 90도로 곧게 들린 채 해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여객선이 일부 파손됐으나 전복되지는 않았다. 홍콩 당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 양측 선원 7명을 체포했다. 홍콩 정부 신문처는 2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38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0명은 사고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 확인됐고 나머지 8명은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부상자 100여명은 5개 병원으로 나뉘어 치료를 받고 있다. 중상자가 9명이라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전력 측은 “여객선이 우리 선박의 측면을 들이받은 뒤 떠났다.”며 “우리 선박의 수용 인원은 200명으로 과적이나 다른 안전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고 후 현장에는 소방선 7척과 구급 요원 210여명, 헬기 2대 등이 동원돼 수색과 구조 작업이 이뤄졌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박영효vs유길준(상)

    [선택! 역사를 갈랐다] 박영효vs유길준(상)

    박영효(1861~1939·왼쪽)와 유길준(1856~1914·오른쪽). 두 사람은 19세기 말 조선을 대표하는 개화파였다. 두 사람은 모두 1894년부터 1895년 사이에 이루어진 갑오개혁을 주도한 핵심적 인물이었으며 이미 갑오개혁 이전에 구체적이며 명확한 개혁안을 담은 ‘상소문’과 ‘서유견문’을 각각 집필했다. 당시 조선 내의 권력 지형에서 개화관료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갑오개혁 기간 내내 협력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대립했다. 왜 그들은 협력이 아닌 대립을 선택한 것이었을까? 1883년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남아 유학생활을 하던 유길준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후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유길준이 포도대장이던 한규설의 집과 민영익의 별장에서 유폐생활을 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민영익이 유길준을 청과 조선의 보수 세력으로부터 보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유길준은 당시 왕실의 비밀창구로서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한규설의 숨은 자문역이었다. 그는 이 기간에 주로 집필에 전념하여 1889년에 ‘서유견문’을 탈고, 한규설을 통해 고종에게 제출하기도 하였고 몇몇 외교문서를 대신 작성해 주기도 했다. 이후 유길준은 1894년 6월 당시 민씨 척족을 대표하던 민영준에 의해 ‘일본당’을 대표하여 외아문의 주사로 발탁됐다. 민영준은 일본당을 등용하여 일본 측과의 관계를 개선할 속셈이었다. 하지만, 유길준은 일본 공사관 측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한편, 공식적으로는 외아문의 주사로서 일본의 개혁 요구와 속방론 철폐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는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 공사관 측에서는 그가 일부러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려 했다고 파악했다. ●군국기무처를 주도한 유길준 1894년 7월 23일 일본은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을 불법 점령, 정부를 전복시켰으며 군국기무처를 수립했다. 이때부터 유길준은 갑오개혁의 핵심 브레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파격적으로 군국기무처 의원으로 발탁된 그는 총리대신 김홍집을 직속으로 보좌하면서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본 측에서는 당시 유길준이 군국기무처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간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찡그린 얼굴, 냉소적인 말, 기염 높은 논의, 대담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내정의 신법’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7월부터 10월까지 군국기무처가 진행한 개혁안은 190개에 달했다. 대외적으로는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취했다. 일본의 군사교관을 초빙하는 한편 일본의 화폐 유통권을 허가하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동학 농민군의 폐정개혁 요구를 초기에는 일정 정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농민군이 2차 봉기의 움직임을 보이자 10월 중순부터는 무력탄압에 들어가게 됐다. 그 밖에도 궁내부를 설치하여 왕실과 정부를 분리시켜 왕권을 약화시켰으며 의정부에 권한을 집중시켰다. 사실 이 모두를 유길준이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 군국기무처 내에 유길준만큼 근대국가를 직접 체험했거나 체계적인 저술을 남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를 개혁의 중심인물이 되게 했을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 유길준은 이때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과 함께 대원군 세력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유길준은 10월 일본에 파견되어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일본인 고문관과 군사교관의 파견 및 차관 제공을 요청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무쓰 무네미쓰 외상을 만나 ‘세 가지 수치(三恥論)’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스스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일본의 강요에 의해 개혁이 진행됨으로써 조선 국민, 세계 만국 그리고 후대에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을 보전하고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박영효의 귀환 갑신정변 실패 후 박영효는 10년간 일본 망명생활을 하다가 1894년 8월 23일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일본은 박영효를 귀국시켜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대원군 세력과 개화관료 세력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길 의도를 갖고 있었다. 박영효는 개화세력의 대표인물이면서 부마라는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어 왕실과도 일정한 소통이 가능했고, 망명 중 대원군과도 수차례 접촉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박영효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상소를 올린 후 고종을 알현하여 자신에게 개혁의 전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원로 대신들이 반대 상소를 올리고 미국과 러시아 공사관이 일본 공사관 측에 항의하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단 제물포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에 대한 보호국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메이지 유신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노우에 가오루를 공사로 파견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노우에는 10월 27일 부임하자마자 대원군 세력을 정계에서 축출하고 조선 왕실의 고문관 또는 ‘외신’(外臣)으로까지 불리며 왕실과 손을 잡았다. 이와 함께 박영효의 기용을 요청했고 결국 12월 17일 김홍집-박영효 연립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이때 박영효는 내무대신에 임명됐다. 박영효는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의 조선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았다. 박영효는 이 시기 개혁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추구한 것은 동학 농민군에 대한 확고한 진압과 일본을 모델로 한 개혁의 추진이었다. 박영효는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의 처형에 결정적으로 관여했다. 그리고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확고하게 하려고 종속관계의 상징물을 파괴하고 태극기를 사용하며 공문서에 한글을 사용하게 했고 독립기념일을 제정했다. 그는 이때 내무대신 직권으로 ‘자주독립을 방해하는 자를 역적으로 처벌하는 건’을 ‘내무대신령’ 1호를 통해 발표했다. 또한, 그는 지방제도 개편에 심혈을 기울여,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와 331개의 군으로 개편했다. 아울러 경무청관제를 발표하여 무장경찰을 육성하고 상비군을 육성하려 했다. 그런데 박영효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본 측의 기대와는 달리 김홍집을 ‘줏대 없는 소인배’라며 내각에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총리대신이 될 생각으로 권력투쟁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효는 자신의 세력을 지방관은 물론, 군부와 경찰의 요직에 임명했다. 더욱이 일본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본의 보호국화 정책에 맞서 일정하게 조선의 국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결국, 박영효는 김홍집을 5월 17일에 총리대신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총리대신의 자리는 박정양에게 돌아갔다. 다만, 박영효는 내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그들은 왜 대립하였을까? 박영효와 유길준. 어찌 보면 함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해 보일 법한 이들은 실제로는 처음부터 첨예하게 대립했다. 윤치호의 당시 일기에 보면, 유길준은 철저하게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과 함께 세력을 형성하여 박영효와 전면적인 대립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그 사상적 이유는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에서 찾을 수 있다. 유길준은 ‘개화의 등급’에서 김옥균, 박영효 등을 ‘허명의 개화’를 주장하는 자들로 비판하면서 ‘실상개화’를 제시한다. 그는 허명개화를 “사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서도 남이 잘된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혹은 두려워서 덮어놓고 시행하자고 주장하여 비용은 많이 들이면서 실용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아무런 분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다 좋다고 생각하고 심지어는 외국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 있는데 이들을 개화당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개화하는 데 있어서 폐해는 지나친 것이 모자란 자보다 더욱 심하다고 말하면서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개화의 병신”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둘 사이의 정치적 차이도 존재했다. 유길준은 민영익과 동문수학한 사이였고 그를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데려가 미국에 유학까지 시켜 준 사람 또한 민영익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민영익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유길준 자신이 갑신정변 후 미국에서 보낸 편지 안에서도 그는 “그들이 군왕에게 충성하고 국가에 진실할 때에는 내 친구들이었으나 그들은 역적이고 나라에 큰 해를 끼쳤기 때문에 이제는 나의 큰 원수”라고 써서 보냄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유길준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1894년 박영효가 다시 등장했을 때 그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길준이 박영효 세력을 ‘개화의 병신’으로 비판한 부분은 1889년에는 없던 내용으로 6년 뒤인 1895년 출간 당시에 새로 써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유길준은 박영효가 개혁을 주도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개혁관료들의 결집이 절실하던 시절에 치열하게 대립함으로써 결국 모두 몰락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식품 알레르기 표시 확대해야”

    식품 알레르기 사고의 절반 이상이 표시의무 대상이 아닌 재료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한국소비자원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원인이 확인된 식품 알레르기 사례 437건 가운데 표시의무 대상이 아닌 재료에 의한 알레르기 사고가 전체의 54%인 236건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표시의무 대상 품목은 우유·땅콩·밀·메밀·고등어·게·복숭아·토마토·돼지고기·새우 등 13종이다. 표시의무 대상이 아닌 닭고기에서도 81건, 소고기에서는 35건의 알레르기 사고가 발생했다. 굴(19건), 홍합(13건), 전복(10건), 골뱅이(6건) 등 갑각류나 조개류에서도 알레르기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눈에 잘 안 띄는 표시방법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럽연합(EU) 등은 표시 대상 원재료의 명칭이 나머지 원재료와 구분되도록 활자 크기, 글자체, 배경색을 달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원재료 성분과 같은 크기로만 표기하면 된다. ‘제조공정에서 비의도적으로 알레르기 유발 성분이 들어갔을 수 있다.’와 같은 소극적인 표시도 허용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업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소비자원은 우려했다. 표시 대상 품목도 우리나라는 게·새우처럼 단위 품목별로 정하는 데 비해, EU·미국·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갑각류·조개류와 같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범이슬람 反美로 결집… 무장단체 세 확장 기회로

    이슬람을 모욕한 미국 영화로 촉발된 반미시위가 확산되면서 그동안 나라와 종파에 따라 각기 다른 성향을 보였던 이슬람의 무장단체들이 한목소리를 내며 결집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를 비하해 전 세계 무슬림들을 분노시켰던 1988년 영국 소설 ‘악마의 시’ 사건과 2006년 덴마크 풍자 만화 사태의 연장선으로 보는 종교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이슬람권의 민주화 분위기를 전복하려는 강경 이슬람 세력의 정치적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슬람 4대 무장단체 가운데 하나인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도자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는 17일(현지시간) 베이루트에서 열린 반미 시위현장에 이례적으로 등장해 “무슬림들이 마호메트에 대한 모욕 앞에 침묵하지 않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범이슬람의 대미 항전을 촉구했다. 나스랄라는 2006년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충돌 이후 암살 우려 등으로 공개 석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도 반이스라엘 무장 노선을 추구하는 수니파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주도하는 반미 시위가 열려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앞서 테러단체 알카에다는 이번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 습격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뒤 “이슬람 모독 영화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미국 외교관을 죽이고 대사관을 습격하라.”고 주장했다. 18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선 ‘헤즈비 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 소속 여성 대원이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해 차량에 타고 있던 외국인 9명 등 11명이 숨졌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HIA는 탈레반에 이어 아프간 제2의 무장단체다. HIA 측은 이번 테러가 “반이슬람 영화에 대한 복수”라고 주장했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반이슬람 영화에 반발해 영국 해리 왕세자가 복무 중인 아프간 공군기지를 공격한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브루스 라이델 연구원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겨냥한 미군의 공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일이 증가하는 등 반미감정이 커지는 상황에서 반이슬람 영화 한편이 이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반면 미 후버연구소 코리 샤케 연구원은 “민주적으로 정권을 잡은 각국의 중도·온건 이슬람 세력이 경제 문제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과격주의자들이 반미시위를 세 확장의 기폭제로 삼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뉴질랜드 퀸스타운(Newzealand Queenstown)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뉴질랜드 퀸스타운(Newzealand Queenstown)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Newzealand Queenstown 거친 자연을 원초적으로 즐기는 법 뉴질랜드 남섬의 퀸스타운Queenstown. 트레킹, 번지점프, 스키, 스카이다이빙 등 사계절 즐길거리가 무궁한 이 작은 마을에서 걷고, 뛰고, 날았다. 퀸스타운을 겪고 나니, 스포츠, 레포츠, 어드벤처로 이름지어진 세상 모든 것들이 시시해졌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뉴질랜드관광청 www.newzealand.com 퀸스타운에서는 뉴질랜드 3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루트번트랙을 하루 코스로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우거진 숲 속을 걷다가 만난 협곡의 풍경이 황홀하다 Trekking Routeburn Track 산소의 농도가 다른 숲을 걷다 뉴질랜드 남섬은 두 발로 구석구석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퀸스타운에서 시작되니 이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유럽의 알프스, 캐나다의 로키와는 다른 어떤 매력이 있길래 전세계 등산광들이 버킷리스트로 뉴질랜드 남섬을 꼽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 가벼운 등산 장비를 챙겼다. 뉴질랜드 3대 트레킹 코스로 꼽히는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 루트번 트랙Routeburn Track, 케플러 트랙Kepler Track의 관문 도시가 바로 퀸스타운이다. 가장 짧은 코스라 해도 40km가 넘고, 완주를 위해서는 최소 3일이 필요하다. 3대 인기코스 중 퀸스타운에서 가장 가까운 루트번 트랙을 선택했다. 초행길인 데다 모든 등산 코스를 개방하는 여름철이 아니었던 만큼 산악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1일 트레킹 코스를 선택했다. 퀸스타운에서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1시간쯤 달려 루트번 트랙 진입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시작하는 40km의 등산로는 서쪽의 피오르국립공원 테아나우Te Anau에서 끝이 난다. 16세기 마오리족이 그린스톤을 찾기 위해 개척했던 길이 이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대중적인 등산로가 된 것이다. 기자가 도전한 코스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루트번 플랫 코스로, 가이드 숀Shaun과 천천히 이야기하며 왕복 14km를 약 3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이끼에 뒤덮여 가지까지 초록으로 물든 너도밤나무, 허리춤까지 자란 고사리, 잎사귀에서 매운 맛이 나, 마오리족 여성들이 아기 젖을 뗄 때 가슴에 붙였다는 페퍼트리, 연중 노란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취목 등, 우거진 숲길을 걷노라면 휘황찬란한 풍경이 없어도 좋았다. 등산길 중간중간 나타나는 계곡의 물빛은 몰디브의 에메랄드빛 바다보다 더 영롱했다. 등산 중에는 방울새가 나타나 앙증맞은 소리로 지저귀고, 유유히 상공을 가르는 매가 시시로 나타나 루트번 트랙의 때묻지 않은 매력을 증명했다. 드넓은 평원 루트번 플랫에서 숀과 함께 샌드위치로 가볍게 요기를 마쳤다. 숀은 루트번 폭포를 가리키며 바로 폭포 옆에 산장이 있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허락된 시간이 없어 아쉬움을 머금은 채 발길을 돌렸다. 지금까지 밟아 보지 못한 루트번트랙의 나머지 26km가 아련하기만 하다. Crusing Milford Sound 주름진 바닷길에 압도당하다 여행지 중에는 이름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혹하게 하는 곳들이 있다. 바이칼, 마추픽추, 샹그릴라, 마다가스카르 같은 곳들 말이다. 이곳들이 여행지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사람들에게 동경을 일으킨다면, 마치 록음악의 한 장르 같은 ‘밀포드 사운드’는 이름만으로 끌리는 그런 곳이다. 좁은 해협, 그러니까 바닷물이 숲과 언덕, 산 사이로 비집고 흘러든 풍경은 우리에게는 꿈에서나 봄직한 그런 풍경이 아니던가. 호주 방향의 태즈먼해로 나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장면을 볼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밀포드 사운드를 한바퀴 둘러보는 크루즈 안에서 이 모든 꿈꿨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고야 말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퀸스타운에서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길, 천장까지 유리로 된 버스를 타고 파노라마로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2 태즈먼해에서 육지 방향으로 비집고 들어온 15km의 해협, 밀포드사운드는 흡사 칼데라 호수를 연상시킨다 3 밀포드사운드 크루즈를 타면서 돌고래, 물개 등 야생 동물을 마주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4 크루즈는 절벽 가까이 붙어 운항한다. 해협 속에 배 한 척 떠가는 풍경은 물개잡이 어선이 이곳을 처음 발견한 19세기를 연상케 한다 돌고래가 사는 육지 속 푸른 바다 퀸스타운에서 4시간. 버스를 타고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은 다소 지루했다. 풀 뜯는 양떼들의 풍경은 ‘복사하기+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무한반복됐고, 비를 뿌릴 채비라도 하듯 잔뜩 찌푸린 하늘은 밀포드 사운드의 장관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바위산을 관통하는 호머터널을 지나자 전혀 다른 색의 하늘이 펼쳐졌다. 기어이 도착한 밀포드 사운드의 선착장. 거대한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해협은 흡사 백두산 천지 같은 칼데라 호수처럼 보였다. 배에 올라타지 않아도 그 풍경만으로 황홀했다. 여행 가이드북과 뉴질랜드 여행깨나 했다는 이들이 했던 말들, ‘남섬에서 날씨는 기대하지 말라’거나 ‘갈 때마다 비가 와서 실망했다’는 말들은 모두 나를 비껴갔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과 함께 배에 올라탔다. 허기부터 달래려 뷔페 식사(중국식 요리에 김치까지 나오는 걸 보면 관광객의 상당수는 아시아인인가 보다)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창밖을 보니 돌고래 두 마리가 지나가는 것 아닌가. 브이자 모양의 꼬리를 치켜 올린 범고래는 아니었지만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 돌고래를 본 것 자체만으로 흥분할 만했다. 유람선은 절벽 가까이 붙어 태즈먼해로 천천히 나아갔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겹겹의 봉우리들이 모두 걷히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태즈먼해의 수평선뿐이었다. 배는 갔던 길을 돌려 다시 해협으로 접어들었다. 절벽을 타고 돌아오는 길,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물개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배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스털링 폭포 쪽으로 바싹 다가갔다. 150m 높이에서 쏟아붓는 폭포는 갑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의 전신을 적셨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 밀포드 사운드를 굽어보고 있는 산봉우리에는 토성의 고리 같은 모양의 얇은 구름이 걸려 있었다. 지구 밖 풍경처럼 밀포드 사운드의 모습은 끝까지 경이로웠다. 리얼 저니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는 다양한 일정의 상품을 운영하는 관광업체인 리얼저니Realjourneys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다. 퀸스타운과 밀포드 사운드까지 왕복 버스를 포함한 크루즈 상품은 198뉴질랜드달러, 크루즈만 이용할 경우는 95뉴질랜드달러다. 버스 대신 왕복 경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약 425뉴질랜드달러. www.realjourneys.co.nz Skydiving Queenstown 4,500m 상공에서의 아찔한 추락 퀸스타운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액티비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스카이다이빙이라 말하겠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4,000m 상공에서 추락하는 쾌감을 유보한다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1 상공 1만5,000피트(약 4,500m)에서 수직 하강하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와카티푸 호수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2 스카이다이빙 포인트까지는 경비행기를 타고 올라간다. 다이빙을 하기 바로 전, 최고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3 낙하 조교와 한몸이 되어 뛰어내려 약 50초간 직하강을 하며, 함께 다이빙을 한 포토그래퍼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보았다. 물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4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 아쉬움과 함께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땅 위에 중력을 받고 서 있는 기분이 오히려 어색했다 하늘에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어 볼까 먼저 밝혀 두자면 본 기자는 테마파크에 가도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는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데다가 돈을 써가면서 기계한테 고문당하는 느낌이 퍽 유쾌하지 않은 까닭이다. 테마파크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랜드에서도 놀이기구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허나 스카이다이빙, 이건 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번지점프를 포기하고 스카이다이빙을 선택한 것도 왠지 이 이상의 극한 체험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버스를 타고 다이빙 출발지로 갈 때까지도, 신상명세를 기입하는 등록절차를 하고 안전복장을 착용할 때까지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았다. ‘다이빙 하는 순간 팔다리를 개구리처럼 만들어라’, ‘안전띠를 꽉 잡아라’, ‘착륙할 때 다리를 높이 들어라’ 이것이 전부였다. 4,000m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안전교육치고는 너무 단순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착륙할 조교 닉Nick과 악수를 하고 일행과 함께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금까지 7,000번 이상 다이빙을 했다는 닉은 집 앞 산책을 나가듯 휘파람을 불며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경비행기는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도 주지 않고 짧은 활주로를 달려 순식간에 와카티푸 호수 위로 날아올랐다. 경비행기의 안전장치는 상당히 허술해 보였다. 1번 주자로 뛰어내릴 내 옆의 문은 구멍가게 셔터처럼 닫혀 있는 게 전부였다. 지금까지 12만명 이상이 안전하게 뛰어내렸다니 믿는 수밖에 없었다. 1만5,000피트(4,572m) 상공. 사진 촬영을 위해 함께 탄 리키Ricky는 주저없이 비행기의 셔터를 올리더니 먼저 뛰어내렸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거침없이 나를 출구 쪽으로 내몬 닉은 원, 투, 쓰리를 외쳤고, 닉과 나는 하나의 점이 되어 약 50초 동안 시속 200km의 속도로 수직 하강했다. 와카티푸 호수와 산맥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반면 닉은 덤덤히 미소를 지으며 리키가 찍는 사진에 7,000번 다이빙을 하면서 익숙해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해발 1,000m 정도 높이가 됐을 때 닉은 낙하산을 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내 속도가 급감했고, 귀가 떠나갈 듯한 소음도 사라져 그야말로 평화로이 발 아래 풍경을 유유히 감상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약 5분간의 낙하 시간, 목장에서 풀 뜯는 양도 또렷이 보였고 호숫길 따라 산책 중인 사람도 보였다. 안전하게 착지를 마치고 나니 미세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하늘을 자유로이 날다가 두 발로 중력을 받으며 걷는 게 오히려 어색했나 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스카이다이빙 NZONE은 남섬 퀸스타운과 북섬 로토루아에서 스카이다이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격은 낙하 높이에 따라 269~429뉴질랜드달러. 사진과 비디오 촬영은 각각 179뉴질랜드달러가 추가되고, 사진과 비디오를 함께 신청하면 219뉴질랜드달러. www.nzone.biz Driving Queenstown 빙하가 훑고 간 길을 달리다 퀸스타운은 빅토리아 시대의 여왕이 살면 어울릴 법한 풍경을 지녔다 하여 이름지어진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이 형성된 과정은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영국 여왕의 우아한 이미지와 상반된, 거칠기 짝이 없었는 것이다. 수만년 전, 산보다 더 큰 빙하가 훑고 지나간 길에 물이 고여 와카티푸 호수가 생겼고, 19세기 금광 채취를 위해 모여 든 유럽인들은 뗄감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 호수 주변을 모두 민둥산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마을이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액티비티의 천국이 됐으니 어떤 여행지의 숙명이란 이다지도 아이러니한 것이다. 퀸스타운의 거친 자연풍광을 만끽하려면 4륜구동 RV차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영화 <반지의 제왕>이 촬영된 장소들은 영화보다 더 SF적인 풍광으로 여행자를 압도했다. 퀸스타운 드라이브 여행은 낭떠러지길을 달리며, 번지점프 장소로 유명한 카와라우Kawarau 다리를 지나 금광개발 시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애로우타운Arrowtown으로 향했다. 강가에서 금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상권이 형성됐던 마을은 생각보다 일찌감치 쇠락해 지금은 박물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애로우강에서 내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직접 사금 채취도 해보았다. 엄마뻘 되어 보이는 가이드는 겨자씨만한 금을 채취하는 시범을 보였고, 이곳이 <반지의 제왕>에서 악당들이 말을 타고 등장한 ‘그 장면’의 배경이라 설명했지만 금도, 영화도 상상으로 즐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 코스는 스키퍼스 캐니언Skippers Canyon.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절벽길은 그 자체로 음산했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낮게 구름이 깔려 있는 주름진 바위산 어느 틈에 골룸이 숨어있을 것처럼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전망대에 서자 퀸스타운과 와카티푸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이 빙하와 사람의 손으로 쓸어내린 지형과 묘하게 교차됐다. 퀸스타운의 거친 자연 풍광을 만끽하려면 와카티푸호수와 숏오버Shotover강과 카와라우Kawarau강을 제트 보트를 타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방법도 있다. 배가 뒤집힐 듯 거친 물살을 가르며 호수와 강, 계곡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질주하는 쾌감이 짜릿하다. 노매드 사파리 <반지의 제왕> 촬영지 투어, 19세기 마을 풍경을 간직한 애로우타운Arrowtown, 글레노키Glenorchy 등 퀸스타운 주변의 명소를 4륜구동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다. 가격은 성인 165뉴질랜드달러. www.nomadsafaris.co.nz 카와우라 제트 퀸스타운 선착장에서 출발해 카와우라강, 숏오버강을 가로지르는 제트보트. 가격은 코스에 따라 245뉴질랜드달러부터. www.kjet.co.nz 1 제트보트를 타고 카와라우강과 숏오버강을 질주하면서 퀸스타운의 광활한 풍경을 감상했다 2 번지점프는 뉴질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액티비티.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다 3 스키퍼스 캐년에서 내려다본 퀸즈타운의 풍경. 수만년 전, 빙하가 거칠게 훑고 간 자리에 물이 고이고, 사람이 살고, 양이 풀을 뜯으며 살고 있다 Walking Around Queenstown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서의 달빛 정찬 연간 200만명 가량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퀸스타운은 인구 2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다. 도심의 규모도 도보로 10분 이내에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다. 이 작은 도시에도 쇼핑과 다이닝을 즐길 만한 매력적인 곳들이 많아 평화로운 호반의 풍경과 잔디밭에 누워 한가로이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여유를 누리다가 아담한 다운타운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퀸스타운 가든에서는 주말마다 장터가 펼쳐진다. 미술 작품, 수제 공예품이 전시되며, 히피 같은 음악인들의 라이브 공연도 펼쳐진다. 이곳 타운에서는 뉴질랜드산 아웃도어 제품, 옥으로 만든 액세서리 등을 구매하면 좋다. 특히 양모 중에서도 메리노울Merino wool로 만든 옷들은 땀 배출이 잘 되면서도 보온력이 뛰어나다. 퀸스타운에서 가장 근사하게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는 케이블카를 타고 봅스힐Bob’s Hill로 올라가 와카티푸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라인Skyline을 꼽을 수 있다. 저녁을 기다리면서 마오리족의 전통공연을 보거나 창가에 앉아 너른 호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누가 익스트림 스포츠의 메카가 아니랄까 봐, 이곳에서도 패러글라이딩, 언덕썰매, 산악자전거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다. 스카이라인 퀸스타운 다운타운에서 곤돌라를 탑승하고 산에 올라 다양한 액티비티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곤돌라 탑승은 성인 25뉴질랜드달러, 뷔페 식사와 곤돌라 탑승 패키지는 성인 72뉴질랜드달러. www.skyline.co.nz 4, 5 봅스힐에 자리한 스카이라인에서는 원주민의 전통공연을 관람한 뒤, 석양을 마주보며 근사한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다 6 호반에 위치한 주민들의 쉼터, 퀸스타운 가든에서는 라이브 공연과 다양한 수제품을 파는 노천시장이 주말마다 열린다 ▶travie info 항공 뉴질랜드 퀸스타운까지 가려면 최소한 한 차례 이상 환승을 해야 한다. 대한항공이 북섬의 오클랜드에 취항하고 있지만, 국내선 항공을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도쿄에서 출발하는 에어뉴질랜드를 이용하면 북섬의 오클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를 경유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문의 에어뉴질랜드 02-737-4025 기후 퀸스타운은 남반구에서도 남쪽에 위치해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다. 우리의 여름철인 6~8월 퀸스타운은 스키의 메카로 변신하고, 11월부터 4월까지는 온화한 날씨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환율 1뉴질랜드달러 = 914원(8월 기준). 물가는 우리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한전 등 도로 점용대가 치러야” VS “전깃줄에 세금? 근거 없다”

    “한전 등 도로 점용대가 치러야” VS “전깃줄에 세금? 근거 없다”

    도로 위 전깃줄에 점용료를 부과하는 문제는 2008년쯤부터 서울시 등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전력 사이에 툭하면 불거지던 이슈였다. 그럴 때마다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논란만 부르다 오늘에 이르렀다. 그만큼 이해가 엇갈려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문제다. 최근 공중선 정비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국토해양부의 입장에는 어느 정도 명분이 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민간 사업자들의 항변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학계 전문가나 시민단체들도 어느 한쪽의 입장에 쏠릴 뿐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7일 국토부와 방통위에 따르면 국토부는 전봇대에 내걸린 전력선, 통신선, TV케이블의 관리 주체가 복잡해 화물차 등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사고가 났을 때 책임 소재를 따질 수 없다고 도로법 시행령(제28조) 개정의 이유를 제시했다. 실제로 폭우가 쏟아지면 난마처럼 얽히고 늘어진 전봇대 전선 때문에 화물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한전은 전국의 전봇대 16만여개에 대해 이미 개당 연간 425~925원의 점용료를 관할 자치단체에 지불하고 있다. 관리 책임을 한전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은 전봇대 외에 지상 5~6m 위를 지나는 선로의 주인인 한전과 통신사, 유선방송사도 도로 점용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게 취지다. 또 선로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함으로써 관할 자치단체가 원하는 ‘도시 미관’을 되살리겠다는 이유도 있다. 더불어 최근 세수입 부족난을 호소하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촉구하는 지자체에 재정적 보탬을 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에 대해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드림라인 등 유선방송사 대표, 한전 등 12개 민간 사업자들은 공중선 점유 허가 및 점용료 부과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도시 미관은 자발적 기구인 ‘환경정비지원센터’를 신설해 해결하자는 공동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특히 이미 한전과 공동으로 낡고 흉한 공중선을 단계적으로 정비하는 ‘그린켑코(KEPCO)’ 사업을 통해 지난해의 경우 1032억원을 들여 1만 1512곳을 자체 정비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면 ▲신규 선로 점용료(895억원) ▲행정업무 인건비(284억원) ▲전봇대 점용료 인상분(221억원) ▲공중선 측량비(2조 1071억원) 등 총 2조 2472억원의 비용이 한꺼번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신사들은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에서 그 비용이 이용자들의 통신비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지중화 작업은 꼭 필요하지만 100m당 1억 3000만∼1억 6000만원의 공사비가 들고, 지중화를 해도 전봇대에 준하는 점용료로 구간당 1만 7500원(전선 175㎜ 기준)을 내야 하는 만큼 도시 변두리와 시골을 도심처럼 바꾸는 작업은 단계적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서비스의 가입과 해지가 빈번한 사업 특성상 통신사 변경 때마다 구청을 찾아가 신청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행정업무가 폭주하고, 처리 시간도 현재 1~2일에서 7~10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점용료 수입이 지자체의 도시 미관 사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점용료는 목적세가 아닌 세외 수입으로 일반회계로 처리되기 때문에 제 목적대로 쓰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공중선 측량비 등 2조원대 추가 비용은 불필요한 부분도 포함된 것이어서 많이 부풀려진 액수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 전력선이든 통신선이든 전봇대를 지나는 전선을 3개선 이하, 4~5개선, 6개선 이상 등 3종으로 나눠 점용료를 차등 부과하고 있다. 전봇대 외에 공중선에는 별도의 점용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전깃줄 관련 사고 1만건… 교통안전 위해 규제 필요”

    “이제까지 전봇대 공중선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해 여러 가지 문제를 키워 왔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국토해양부의 정연호 도로운영과 사무관은 17일 “도로법뿐만 아니라 통신 사업법도 전봇대 통신선 설치가 최대 12가닥이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런 규정이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고, 따라서 점용료 부과를 통해 규제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도시미관’ 때문에 점용료를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정 사무관은 “미관도 개정안 취지이기는 하지만 도로교통 안전상의 문제가 더 크다.”면서 “지난 5년간 정전, 전신주 전복 등 공중선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고가 1만건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태풍이나 폭설 등 기상악화가 발생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전력공급이 끊기는 등 주민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무관은 점용료 부과가 통신 등 이용자들에게 비용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토부에서도 그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마 사업자들이 점용료 부과를 이용료 인상 등의 방법으로 국민에게 전가시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렇다고 거미줄처럼 얽힌 공중선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를 계속 양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도시의 경우 전기선 등을 지하에 설치함으로써 전봇대 전선 난립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거의 없다.”면서 “지중화와 공중선 정비를 통해 이면도로에 대한 관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선전·칭다오 극렬시위 왜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에 항의하는 중국 내 반일 시위가 격렬해지는 가운데 광둥(廣東)성 선전(深?)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시위가 특히 ‘폭도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전의 반일 시위가 과격한 것은 이 지역에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일용직 노동자)들이 집중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선전은 대표적인 수출 가공 기지로 각지에서 몰려든 농민공만 100만명이 넘는다.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은 물론 최근 경제난으로 일자리까지 불안해지면서 반일 시위를 빌미로 그동안 응축됐던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16일 선전에서는 시위대가 시 공산당위원회 청사로 몰려가 돌멩이와 물병 등을 투척하고, 공안 차량을 전복시키는 등 반정부 양상으로까지 치달았으며 공안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는 등 총력 대응했다. 칭다오는 일본 기업이 많은 데다 과거 제국주의 열강의 조차지 경험으로 반일 감정이 뿌리 깊은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칭다오에는 파나소닉 등 일본기업 500여개가 진출해 있다. 지난 이틀간의 시위에서 일본 기업 10곳에 시위대가 난입해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손했다. 파나소닉의 생산라인이 방화로 파손된 것은 물론 토요타자동차 판매1호점도 전시된 차량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닛산 승용차 매장도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시위대는 일본계 대형마트인 ‘자스코’에 난입, 창고에 보관된 24억엔(약 340억원)어치의 상품 가운데 절반 정도를 약탈하거나 파손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사고차 앞에서 ‘스마일’ 사진 찍은 구급대원 논란

    구급차 전복사고 현장에서 즐겁게 웃고 떠들며 ‘기념사진’을 찍은 영국의 구급대원들과 경찰관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주(현지시간) 켄트주 펨버리 병원 인근서 구급차와 승용차의 충돌로 구급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구급차에는 긴급후송환자가 탑승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사고가 난 두 차량의 운전자와 탑승자들 역시 매우 경미한 부상만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근 도로의 교통이 마비되는 등 불편이 잇따름에도 불구하고, 당시 현장에 있던 구급차 대원들과 경찰은 전복된 차량 앞에서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등 몰지식한 행동을 보였다. 이 장면을 목격한 한 남성은 “그들은 사고 현장서 웃고 떠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절대 프로정신이라고 할 수 없으며 보는 이들을 매우 불쾌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때문에 차가 막혀 도로에 서 버린 다른 운전자들이 매우 격분하며 항의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우스이스트코스트 앰뷸런스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고 구급차에는 환자가 탑승하지 않았다.”며 “다른 구급차가 재빨리 출동해 환자 이송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할 뿐 사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켄트주 경찰청 역시 “구급차와 자동차의 충돌사고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성난 시위대 日대사관에 계란 투척… 日공장 방화도

    중국 전역이 반일 구호로 뒤덮이고 있다. 16일 베이징·상하이 등 중국 전역의 80개 도시에서 전날에 이어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에 항의하는 격렬한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의 주중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성난 중국인 시위대 1만여명이 온종일 반일 구호를 외치며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조치에 항의했다. 중국 공안(경찰) 당국은 일찌감치 원천 봉쇄를 포기하고 일본 대사관 앞 왕복 7차선 도로를 시위대에 모두 내줬다. 대사관 주변에 철제 바리케이드를 치고 곤봉과 투명 방패로 무장한 경찰을 대거 배치해 시위대의 일본 대사관 공격에 대비했다. 도로 양쪽에는 제복을 입은 공안과 무장경찰 수천명이 촘촘히 늘어섰고, 공중에서는 경찰 헬기가 시위 상황 점검을 위해 굉음을 내며 저공 비행해 긴장감을 높였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베이징에서 이 같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시위대는 ‘댜오위다오를 되찾자’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등의 문구가 적힌 붉은 플래카드를 들고 일본 대사관 앞길을 오가며 연신 호전적인 내용의 일본 성토 구호를 외쳤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앞세우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을 부르는 등 당국과 ‘손발’을 맞춘 듯한 모습도 엿보였다. 시위대 선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를 앞세우기도 했다. 일부 흥분한 시위대는 일본 대사관 정문을 지날 때 음료수 병과 계란 등을 대사관 안으로 마구 집어던졌다. 날계란이 무수히 날아든 일본 대사관 정문은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도 잇따랐다. 이날 수만명이 참가한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시위에서는 시위대가 무장경찰을 향해 물병과 돌멩이를 투척하는가 하면 공안 차량을 전복하기도 했다. 이에 공안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시위대를 해산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공안이 곤봉으로 시위대를 구타하는 장면도 목격됐다고 중화권 언론들이 전했다. 또 최소 1만명 이상이 참가한 광저우(廣州)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일본 총영사관 부근의 화위안(花園)호텔로 몰려가 호텔 정문 앞에서 일장기를 불태우는 등 난동을 부렸지만 현장의 무장경찰 100여명은 이를 제지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고 홍콩 명보 포털 뉴스가 보도했다. 아울러 일본 대사관 부근에서 중국과 타이완의 합작으로 운영되던 한 일식집이 당분간 폐업을 선언하는 등 중국 내 대부분의 일본 음식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한 식당 주인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지난 15일 낮 10여명의 중국 남성들이 고기를 시켜 먹은 뒤 식당 내 각종 집기를 마구 던지고 다른 손님들을 향해 ‘매국노’라고 욕을 퍼부었다.”면서 “이들은 식사비 결제도 거부한 채 영업을 방해했으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전날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토요타자동차 판매 1호점이 방화 피해를 봤다. 일본계 대형마트인 ‘자스코’는 건물 내 엘리베이터가 파괴되고, 창고에 보관 중이던 24억엔(약 340억원)어치의 상품 가운데 절반이 약탈당하거나 파손됐다. 시위대는 칭다오의 파나소닉 공장에 난입해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손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이날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동중국해 일부 해역의 대륙붕 경계안을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지난 11일 댜오위다오 영해기선 선포를 계기로 영해 범위를 명확히 한 만큼 추가적인 대륙붕 확보 계획을 공언한 것이다. 베이징 주현진·도쿄 이종락특파원 jhj@seoul.co.kr
  • 안전띠 미착용때 중경상 위험 18배

    안전띠 미착용때 중경상 위험 18배

    버스가 전복됐을 때 안전띠를 매지 않은 승객은 안전띠를 맨 승객보다 상해(중경상) 가능성이 18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해양부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13일 언덕 위 도로를 시속 25㎞로 주행하던 버스(승합차)가 6m 언덕 아래로 구를 때 안전띠를 맨 승객(인체모형)과 매지 않은 승객의 위험성을 실험해 비교·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특히 안전띠를 매지 않은 어린이의 상해 위험은 안전띠를 맸을 때보다 48배 높았다. 연구원은 실제 차량이 전복될 때 센서를 부착하지 않은 신체 부분도 큰 충격을 받기 때문에 부상 가능성은 실험 결과보다 클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안전띠를 맨 승객은 몸이 의자에 고정돼 심하게 흔들리기만 할 뿐 단단한 부위에 부딪히지 않아 부상 정도가 경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띠를 매지 않으면 승객이 자동차 밖으로 튕겨 나갈 가능성도 매우 커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 결과 자동차 사고로 차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할 가능성은 16.8%로, 차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았을 때의 사망률(0.7%)보다 24배 높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승용차 안전띠 착용률은 73.4%,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안전띠 착용률은 각각 66.9%, 18.3%로 매우 낮아 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1965년 독도서 움막생활 시작… 81년에 첫 독도 주민증”

    “1965년 독도서 움막생활 시작… 81년에 첫 독도 주민증”

    독도 최초 주민 최종덕(1925~1987)씨의 생활상을 담은 책자가 발간됐다. 독도최종덕기념사업회(공동대표 박해선·박영희)가 오는 16일 최씨 사망 25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펴낸 ‘영원한 독도인 최종덕’. 280쪽 분량의 책자에는 평남 순안 출신인 최씨가 울릉도로 이주한 뒤 1965년 독도 서도 물골에서 움막집을 짓고 어업 활동을 하게 된 동기를 비롯해 현재 주민 숙소가 있는 서도 어민 숙소 건립 및 증축 등 무인섬 독도에 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모습들이 자세히 소개됐다. 또 최씨가 1981년 10월 14일 최초로 독도로 주민등록지(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 산63)를 옮겨 ‘독도 주민 1호’가 됐다는 기록과 함께 독도 전복 양식장과 수중 창고, 선착장을 손수 짓는 장면과 헬기장 공사에 참여했던 활동 모습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와 함께 최씨가 1987년 9월 태풍 다이아나로 파손된 서도의 집과 선가장(배를 뭍으로 끌어 올리는 장소) 시설 복구를 위한 자재 구입차 방문한 대구에서 뇌출혈로 숨질 때까지의 독도 생활(22년)과 관련해 독도 출신 해녀와 울릉도 주민의 생생한 육성 증언을 담아 냈다. 1965년부터 1992년까지 27년간 해마다 최씨와 그 가족들이 독도에서 생활한 일수(日數)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밖에 최씨의 독도 생활과 관련한 각종 연구 및 사진 자료, 언론 보도 내용 등도 수록했다. 독도최종덕기념사업회는 20일 오후 7시 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경기 성남시청 한누리관 3층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최씨의 둘째 딸로,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인 경숙(49)씨는 “평생 독도를 가꾸고 지키셨던 아버지 독도 사랑 정신을 기리고 국내외에 독도가 우리 땅이란 사실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책자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특히 일본 정부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신문 광고를 시작한 즈음에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독도 최초 주민과 관련한 기록이 처음으로 정리돼 책으로 출판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부고]

    ●이환수(전 상업은행 이사)씨 별세 주영(새누리당 국회의원)주홍(인하대 교수)성애(약사)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631 ●구본건(언론인회 원로회원·전 대한여행사 대표이사)씨 부인상 관모(미국 거주)인모(〃)정모(〃)씨 모친상 6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31)787-1507 ●이정의(해병 중령)선의(목사)씨 모친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2227-7572 ●이영수(신우회계법인 전무)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37 ●최혁재(NH농협 과장)효영(SUONO 대표)씨 부친상 오중석(SK텔레콤 매니저)박종문(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씨 장인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47 ●장용규(자영업)용화(경북 칠곡상공회의소 사무국장)용휴(자영업)씨 모친상 6일 칠곡 혜원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54)972-1405 ●박완규(기호일보 중부권취재본부장)씨 모친상 6일 산본 원광대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31)394-4438 ●김태진(전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고문)씨 별세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2227-7550 ●임창균(한국건설기술인협회 상근부회장)씨 부친상 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40 ●박부옥(안산시청 과장·안산도시공사 파견)씨 장인상 6일 안산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31)438-4546 ●김재교(삼연엔지니어링 부사장)재형(춘천MBC 사장)씨 모친상 유외숙(서울여대 겸임교수)봉현숙(MBC미술센터 국장)씨 시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010-2265 ●전복수(KBS 해설위원)경록(장수산업 대표)경식(장수산업 대표)경삼(명문부동산 대표)씨 부친상 서형원(주 일본대사관 경제공사)박광재(파티마의원 원장)김병호(제일포장중기 대표)씨 장인상 6일 순천의료원, 발인 8일 오전 8시 (061)759-9186
  • [여행가방]

    ●비발디 파크 등 시즌권 출시 대명리조트 비발디파크는 30일까지 2012~2013 시즌권을 34만원(초등학생 20만원)에 판매한다. 대학생권(30만원) 커플권(2인 60만원) 패밀리권(3인 75만원) 레이디권(여성 30만원) 프리미엄 평일권(26만원·초등학생 17만원)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02)721-7780. 용평리조트는 10일까지 1차 특가 판매한다. 시즌권 37만원, 논스톱시즌권 45만원, 패밀리시즌권(3인) 84만원 등이다. 초심스페셜권(20만원)도 경제적이다. 1588-0009. ●한화리조트 가을 패키지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는 27일까지 ‘가을 패키지’를 판매한다. 쏘라노 객실 1박+워터피아(2인)+조식뷔페(2인)로 구성됐다. 금요일 19만 5000원, 주말 22만원이다. 홈페이지(www.hanwharesort.co.kr) 참조. 대천 파로스도 10월 28일까지 ‘노을 패키지’를 준비했다. 객실 1박+조식 뷔페(2인)+사우나(2인)+대천김으로 구성됐다. 금요일 18만 2000원. (041)930-8550. ●서울랜드 입장료 40% 할인 서울랜드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입장료 40% 할인 이벤트를 벌인다. 홈페이지(www.seoulland.co.kr)에서 할인쿠폰을 다운받아 매표소에 신분증과 함께 제시하면 본인 포함 총 4명까지 할인된다. 9일까지. ●獨 관광청 ‘100대 관광명소’ 앱 독일관광청이 애플리케이션 ‘TOP 100’을 선보였다. 독일의 100대 관광명소를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모바일 앱이다. 여행지 정보는 물론 모바일 할인쿠폰도 제공한다. ●테마파크 원마운트 직원 모집 경기 일산 한류월드에 들어서는 ‘원마운트’가 내년 봄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사업장 전 부문에서 경력 직원을 채용한다. 테마파크나 호텔, 리조트 등에서 경력 3년 이상이면 우대한다. 이메일(ceh0014@gocw.co.kr)이나 전화로 신청받는다. (031)819-7310. ●하얏트 리젠시 제주 바비큐 뷔페 하얏트 리젠시 제주는 7일~10월 31일 오미(五味)마켓그릴에서 주말 바비큐 뷔페를 선보인다. 전복, 왕새우 등의 해산물과 흑돼지 등 육류를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다. 매주 금·토요일에만 선보이며 어른 5만 8000원(어린이 3만 5000원, 세금·봉사료 별도)이다.
  • 완도 전복양식장 태풍 피해 보상 ‘막막’

    4일 전복 양식장이 밀집한 전남 완도군 보길면 예송리. 주민들은 최근 태풍 볼라벤으로 폐허가 된 양식시설물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짓는다. 이 마을 118어가 가운데 75가구가 어가당 200~500칸(2.4m×2.4m)의 양식장을 운영해 왔지만 이번 태풍으로 쑥대밭이 됐다. 짙푸른 바닷물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해안가는 태풍으로 떠밀려온 양식 시설물과 썩은 전복 냄새로 악취가 진동한다. 이들 어가는 적게는 2억~3억원에서 많게는 20억원 이상을 투자해 전복을 양식하고 있다. 올 추석을 앞두고 출하 준비에 한창이었으나 지금은 시장에 내놓을 전복이 거의 없다. 이 마을 이장 배학민(73)씨는 “20여억원을 투자해 500칸의 양식장을 운영했으나 한푼도 건질 수 없게 됐다.”며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 보상금이라도 몇 푼 건지려면 정부의 피해조사가 끝날 때까지 파괴된 양식장을 철거하면 안 된다.”며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어가들이 보험마저 들지 않아 빚더미에 앉을 판”이라고 한숨 짓는다. 같은 마을 이모(45)씨는 “초기 투자금을 담보 없이 융자해 주는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재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복 양식 어가는 재난지원금을 최고 5000만원까지밖에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파산에 따른 생계난이 유려된다. 전남 완도군에 따르면 지역 내에 3787가구(면적 3161㏊)가 전복 양식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생산하는 연간 생산량은 7400t(3700억원)에 이른다. 전국 생산량의 81%를 차지할 만큼 양식장이 몰려 있다. 이날 현재 피해 신고가 접수된 전복 양식시설은 10만여칸, 피해액은 240여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조사가 끝나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식수산물 재해보험에 든 어가는 150가구, 4%에 불과한 실정이다. 나머지는 대규모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정부가 2009년부터 도입, 운영 중인 ‘양식수산물 재해보험’은 국비지원 70%, 자부담 30%로 책정돼 있다. 여기에 전남도가 어가의 자부담 30% 가운데 10%를 추가 지원한다. 그럼에도 보험 가입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이 보험이 자동차보험처럼 소멸성인 데다 자연재해가 없을 경우 연간 수백만원이 그냥 사라진다는 이유로 어민들이 가입을 기피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기존 넙치, 전복, 굴, 김, 조피볼락(우럭) 등 5개 양식 수산물에 적용해 온 보험을 올부터 참돔, 돌돔, 감성돔, 쥐치, 농어, 기타 볼락류 등 6개를 추가해 11개 품목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전남도내 양식어가의 전체 가입률은 5%대에 불과하며 해안을 낀 다른 지자체의 사정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최근 적조와 고수온 등으로 260만 마리의 전복 폐사 피해를 입은 전남 고흥군 금산면 일대 20여 어가들도 거의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도 관계자는 “지난 4월 신안 흑산도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A씨가 12억원가량의 양식수산물재해보험(연간 자부담 219만원)에 가입한 뒤 강풍으로 일부 양식시설이 파손되면서 4억 4000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사례도 있다.”며 “관내 양식 어가들에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재해에 따른 보상기준을 상향 조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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