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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니아 내전 생존자들 “한트케 노벨상 철회하라” 시위

    스웨덴 왕세녀 빅토리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방문에 맞춰 그 지역 도시인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에서 생존한 여성들이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76)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였다. 1990년대 유고 내전에서 살아남은 이들 수십명은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스웨던 대사관 앞에서 한트케에 대한 노벨상 수여 결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일부 여성은 한트케가 1995년 7월 세르비아군에 의해 보스니아 무슬림 남성 8000여명이 집단학살당한 스레브레니차를 방문한 사진을 들고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한트케는 집단학살이 발생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1996년 여름 마을 입구 간판 앞에 서 있었다. 이들은 스웨덴 한림원에 “노벨상 사상 처음으로 수상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알렉산데르 불린 세르비아 국방장관은 한트케를 “위대한 인물”로 치켜세웠다. 한트케는 2006년 전범으로 체포돼 재판을 앞두고 사망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장례식에서 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이고 나는 작가이지 판사가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이에 스웨덴 한림원은 “폭력을 미화하거나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징용문제 해법 ‘1+1+α’ 제안한 文의장 “文대통령·아베, 부관페리서 정상회담을”

    징용문제 해법 ‘1+1+α’ 제안한 文의장 “文대통령·아베, 부관페리서 정상회담을”

    스가 관방 “日, 기존 입장 전달” 반복문희상 국회의장이 5일 한일 갈등의 최대 쟁점인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문제의 해법으로 한국·일본 기업과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 등으로 기금을 조성하는 ‘1+1+α’ 방안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양국을 오가는 배 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주요 20개국(G20) 국회의장 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 의장은 이날 도쿄 와세다대 국제화해학연구소 주최 특강에서 이렇게 밝혔다. 문 의장은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한국 국회가 징용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선제적 입법에 나설 것”이라며 “모든 피해자의 배상 문제를 일정한 시한을 정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 관건인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해 한일 양국 기업의 기부금과 민간 성금 및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와치유재단’ 잔액 60억원을 합하는 ‘1+1+α’의 기금 조성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양국 기업의 기부금과 관련해 징용 관련 기업뿐 아니라 그 외의 기업까지 포함시켜 자발적으로 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문 의장은 “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 명목의 돈이 지급될 경우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변제되는 것으로 하고, 민사적으로도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해 논란을 종결하자”고 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의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이어 “문 대통령의 지역구는 부산이고 아베 총리의 지역구는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라면서 두 지역을 오가는 연락선(부관페리)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열 것도 제안했다. 그는 “이를 통해 1965년 국교 정상화를 매듭지었던 한일 청구권협정과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양국의 현안 문제에 대한 대타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문 의장은 또 자신이 지난 2월 외신 인터뷰에서 일왕을 ‘전범의 아들’로 지칭하고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나의 발언이 일본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발언 이후 네 번째 공식 사과다. 한편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 성사된 지난 4일 한일 정상의 태국 방콕 환담에 대해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일본의 원칙적인 입장을 제대로 전달했다”고 전날 외무성 발표를 반복하며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이날 “(양국 정상이) 10분간 말을 주고받은 것을 갖고 커다란 평가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2회] ‘한솥밥’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의 경계…모호하거나 명확하거나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2회] ‘한솥밥’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의 경계…모호하거나 명확하거나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에는 ‘선’이 있다. 한 건물에 머무는 선후배 법관들의 업무가 재판과 사법행정으로 나눠지면서 이들 사이엔 벽이 요구된다. 그러나 과연 완벽한 분리가 가능했을까. 식사를 같이 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참고하도록 보고서를 주고받으면서 경계가 흐려지진 않았는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법정은 많은 전·현직 법관들에게 이 부분이 집요하게 묻는다. 그리고 많은 판사들은 식사와 메일, 전화통화, 가벼운 대화 속에서도 선은 넘어가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1회 재판에서는 지난달 25일 증인으로 출석했던 홍승면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홍 부장판사는 2013~2016년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2017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으로 일했다. 그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던 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재상고심 관련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줘야한다며 의견서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등 재판 관련 언급이나 관련된 보고서를 전달받은 것이 지난 증인신문에서도 쟁점이 됐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사이에 ‘재판’이 오고가며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검찰은 물었고 홍 부장판사는 그런 영향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도 이날 홍 부장판사와의 증인신문을 통해 대법원 재판이 영향을 받았거나 특히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에 영향을 주도록 지시한 적은 없다는 점을 역설했다. “증인께서는 대법원장이 특정 사건의 선고가 나면 보고를 해달라고 한 지시를 들었거나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증인이 경험한 바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다른 대법관들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에 전원합의체 회부에 주저하거나 전합에 회부하는 게 맞으니 내 뜻대로 해야한다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까?” (변호인) “그런 적은 없으셨습니다.” (홍 부장판사) “증인이 근무하는 동안 양승태 피고인이 증인이나 다른 재판연구관에게 전합 사건이 아닌 다른 특정사건의 검토를 지시한 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양승태 피고인이 대법원장으로서 전합 사건 외의 대법원 재판에 관여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양승태 피고인이 특정 재판의 결과와 사법부의 정책적 목표를 결부지어서 언급하는 것을 듣거나 전해들은 기억이 있습니까?” (변호인)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강제징용’ 재상고 주심 대법관의 ‘말씀정리’ …유일하게 잃어버린 메일 1통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중에는 강제징용 사건의 주심이던 김용덕 대법관을 상대로 외교부 의견을 전달하는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2013년 8~9월쯤 접수된 강제징용 사건 재상고심의 주심은 2014년 6월에야 김 대법관으로 지정됐다. 피고인 전범기업 측의 상고이유서가 그해 5월에서야 접수됐기 때문이다. 주심 대법관이 지정되자 양 전 대법원장이 ‘김 전 대법관에게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판결이 확정되면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거나 국제법적으로 문제될 것’이라며 사건의 방향과 결론을 언급해 김 전 대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했다는 게 검찰이 지적한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사실이다. 검찰은 그 근거 중 하나로 2014년 12월 김 전 대법관이 강제징용 사건 담당 재판연구관이었던 황진구 부장판사에게 건넨 2012년 판결의 재검토 지시를 제시했다. 그 뒤 행정처에서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 국가기관 등의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가 도입됐고, 외교부가 재판부에 의견서를 낼 것을 기다리며 재판이 2년 넘게 지연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황 부장판사가 홍 부장판사에게 2014년 12월 31일 보낸 ‘김용덕 대법관님 말씀정리’ 메일에 담긴 첨부파일 속에 김 전 대법관의 2012년 판결 재검토 지시 방안이 들어있는 만큼 홍 부장판사도 이미 강제징용 사건의 파기환송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홍 부장판사는 김 전 대법관의 지시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이 이 사건을 공동조(특정 대법관에 전속된 재판연구관이 아니라 여러 대법관들이 심리하는 사건을 공동으로 검토하는 재판연구관)에서 검토하라는 지시를 듣고 ‘대법관님께서 의문을 갖고 계시는구나, 사건처리가 힘들어지겠구나’ 생각했을 뿐”, “보통 공동조에 보내지면 심층검토를 할 것이고, 그럼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일반적인 내용만 설명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거듭 의문을 제기했다. 홍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메일을 삭제하지 않아 지난해 검찰 조사 당시 7000여개의 메일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했다. 행정처에서 메일 서버의 보존을 위해 ‘메일함을 정리하지 않으면 메일이 자동적으로 삭제될 것’이라는 취지의 공지를 하며 주기적으로 메일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지만 메일이 자동적으로 삭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한 차례도 삭제하지 않고 모든 메일을 그대로 보관했다는 것이다. 홍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를 받으며 이메일 압수수색을 통해 전체 메일을 검사와 함께 확인했다. 이 가운데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된 메일을 선별해 임 전 차장을 비롯해 17명과 주고받은 이메일 1487개가 추출됐다고 한다. 검찰은 홍 부장판사와 함께 1487개의 메일을 일일이 열어보며 다른 사람들의 진술과 상황 등을 맞춰보며 조사를 이어갔다고 한다. 홍 부장판사가 기억하지 못한 메일의 내용은 해당 메일의 발신인이나 수신인의 메일함에 담겨있던 메일과 그들의 진술로 퍼즐이 맞춰졌다. 그런데 1487개 메일 가운데 2014년 12월 31일자, 황 부장판사가 보낸 ‘김용덕 대법관님 말씀정리’ 메일 딱 하나만 퍼즐이 맞지 않았다. 홍 부장판사의 메일함에도, 홍 부장판사의 기억에도 해당 메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평소 이메일을 삭제하지 않은 증인이 유독 이 이메일만 삭제한 것은 그만큼 너무나 부적절하고 이례적인 이메일이어서 그대로 놔둔 것은 불안하다고 생각해서 삭제한 것 아닌가?” 물었다. 그러나 홍 부장판사는 “그 메일은 제가 황 부장판사에게 ‘이 사건은 국민들에게 쟁점을 공개하고 빠른 시일 내에 공개변론을 열어 각게각층의 의견을 신중하게 들어야 한다고 기재해서 그게 저한테는 유리한 내용이 있다”며 자신이 메일을 삭제하지 않았고 검찰의 메일 조사 과정에서 누락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부장판사가 보낸 메일 속 첨부파일의 문건에는 김 전 대법관이 언급한 강제징용 사건의 쟁점들과 함께 홍 부장판사의 의견이 말미에 담겼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황 부장판사에게 ‘청구권협정 관련 환송 판결의 판단은 쉽게 수긍하기 어려움’, ‘환송판결이 잘못이었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원고들(강제징용 피해자)이 직접 일본국이나 일본 회사를 상대로 청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숙제임. 방법을 찾아보아야 함’, ‘소멸시효 문제를 어떻게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시뮬레이션해 볼 필요가 있음’ 등의 검토 지시를 했다. 홍 부장판사는 “그 메일이 없었으면 오히려 제가 곤란해졌을 것”이라며 메일을 지울 이유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일상적인 제목도 아니고 대법관님 말씀을 파일로 정리했다는 내용의 메일인데 제목을 보는 순간 열어보겠고, 본문을 보는 순간 첨부파일을 열어보지 않으면 김 전 대법관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어 당연히 주의깊게 열어봤을 것 같은데 아니었나”라는 검찰의 물음에도 “재판연구관이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것을 제가 (대법관에게 전달하기 위해) 꼼꼼하게 읽고 법리적 문제가 있는지 치밀하게 검토하는데, 보고서가 오기 전에는 쟁점이 뭔지 읽어볼 필요도 없다. 실제로 강제징용 사건 보고서가 저에게 오지도 않았고, 검토하지도 않을 사건의 쟁점을 미리 제가 열심히 읽어볼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식당에서 대법원 사건 얘기 안 한다”면서도 “임종헌 언급 이례적인 건 아냐” 홍 부장판사가 ‘크게 관심을 갖지도, 깊이있게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대충이나마 내용을 알고 진행방향을 짐작하고 있던 건 임 전 차장 때문이었다. 임 전 차장이 ‘절차적 만족감’이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수 있다’는 등의 강제징용 사건에 대한 이야길 꺼낸 것이 대법원 전용 구내식당 또는 전화통화에서였다고 홍 부장판사는 말했다. 식당에서가 아니면 만날 일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도 홍 부장판사는 행정처 실장과 부장판사급 심의관,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 등 14명만 드나드는 전용식당에서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건의 이야기를 평소에는 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4명 중 행정처 인사가 12명이어서 그 안에서 대법원 사건을 거론하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 드문 일 중 두 번이 임 전 차장에게서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홍 부장판사는 “두 번이지만 간격이 8개월인가 그랬다”면서 “식당에서 법률적 쟁점도 제가 얘기했을 수도 있고, 대법원에서 돌아가는 사건이 아니면 궁금해하는 쟁점이나 견해를 물어볼 수도 있고,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장시간 하는 이야긴데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앞서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과의 증인신문에서는 식당에서조차 ‘선’이 지켜진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 업무와 재판 업무 사이가 모호했던 것으로 기억합니까?” (변호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홍 부장판사) “정보가 서로 간에 많이 오가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사적으로 인사하고 식당을 같이 이용하지만 업무적으로 연락할 일이 없는 상태라면 경계가 명확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변호인) “연구관들은 자기 사건 보고서를 쓰고 그 때 심의관들과 상의할 일은 없고요. 기수도 차이가 나고 해서 행정처와 논의할 일은 없습니다.” (홍 부장판사) “대법원 건물 안에 행정처도 같이 있고 식당이 한 군데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보면 증인이나 선임재판연구관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직급이고 그에 맞춰 행정처 실장이 고등부장 판사급이어서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는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식사하시면서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행정처 관계자는 정책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변호인) “행정처 부장, 실장이 훨씬 많고 행정처 간부가 10여명이고 대법원 간부가 2명입니다. 대부분 대화는 행정처 사담이겠죠. (대법원 간부인) 두 사람이 대법원 사건 얘기를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홍 부장판사) 다만 홍 부장판사는 민사사건 가운데 등기나 호적, 공탁과 같은 실무적인 사건 처리에 대해선 행정처 심의관들이 훨씬 전문적이고 능숙해서 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행정처에 자료를 요청했다고 했다. 또 행정처 심의관 가운데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있어 논문을 작성하거나 깊이 연구를 했다면 그에 대한 자료를 확보해 재판연구에 도움을 받았다고도 했다. “재판연구관이 현안 자료를 얻기 위해 행정처에 연구자료를 요청한 것이 특이하고 이례적인가“라는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질문에 “요청한 경우가 꽤 있었다. 검토 사건에 대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해 검토하는 것이 법관의 보편된 자세로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부장판사는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뒤 2016년 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을 지냈다. 그리고 지난해 대법원은 홍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를 청구했고 무혐의로 결론났다. 이날 재판에서는 지난해 홍 부장판사의 징계사건과 관련된 내용도 거론됐다. “동기 법관들은 법원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았고 증인은 법원 내부의 인사순위에서 법원장 발령의 선순위에 있던 것으로 아는데 법원장으로 인사발령이 나지 않은 이유를 아느냐”는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물음에서부터다. 홍 부장판사는 올해 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아 법원장으로 보임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 생각에도 발령이 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오랫동안 비재판 업무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남은 기간에 그래도 재판 업무를 하기를 희망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내년에도 법원장 보직을 희망하지 않고 계속 재판부에서 일할 생각입니다. 차장님의 전화를 받고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자신을 법원장으로 발령 내지 않는) 취지가 저를 보호하는 취지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지방법원장(윤성원 전 사법지원실장)이 특별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문제가 된 게 없는 데도 언론에서 상당히 공격을 받고 사직한 상태였고 바로 그 인천 자리에 제가 가야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다음에 (법원장으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차장님이 설명했고 저도 그 말씀을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홍 부장판사가 징계에 넘겨진 것은 이른바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구회 내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에 관여했다는 이유였다. 2017년 1월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고 전 대법관의 주재로 열린 회의(처장회의)에서 연구회를 최초에 가입한 연구모임 외에는 중복으로 가입하지 못하도록 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축소시키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 회의에 참석한 홍 부장판사는 징계에 넘겨졌지만, 이 회의에서 자신이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에 반대했다는 게 밝혀져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판사들이 많이 싫어할 것 같고, 탄압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게 그 자리에서는 그나마 강한 반대 목소리였던 것이다. 이날 법정에서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고 전 대법관은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는 점을 밝히려 했다. “당시 회의에서 고영한 피고인이 ‘무슨 논리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하지 않았나”, “정 조치를 해야한다면 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3월 이후에 하자고도 했다던데” 등의 질문을 변호인이 이어갔지만 홍 부장판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반복했다. 다만 “처장님이 많이 망설인 건 맞다”고 덧붙였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지난해 5월 법원행정처장 임기를 끝낸 고 전 대법관의 환송 만찬에서의 대화를 소개했다.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이 “처장님 말씀을 들었으면 이런 사태가 없었을 텐데 죄송하다. 임 전 차장이 주장하는 것마다 모두 하지 말자고 해서 임 전 차장의 면이 너무 서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중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가장 시행할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만찬에 임 전 차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홍 부장판사는 “이 전 실장이 고 전 대법관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은 들었다”면서도 구체적인 발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100초 인터뷰] ‘리멤버 베를린’ 일본의 적반하장 태도에 던지는 메시지

    [100초 인터뷰] ‘리멤버 베를린’ 일본의 적반하장 태도에 던지는 메시지

    “폭력적인 행동이 아니라 일본에 우아한 방법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 손기정 선생님의 생각이, 지금 그들에게 다시 필요할 것 같아요.” 지난 29일 오전 과천 관문체육공원 운동장 육상트랙에 특별한 작품 하나가 설치됐다. 목재로 만든 높이 1미터 64센티미터 폭 2미터 44센티미터의 흰색 바탕 벽에 붉은색 일장기가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월계수 화분 하나가 놓여 있다. 작품 벽 좌측 상단에는 ‘리멤버 베를린’(Remember Berlin)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설치미술가 이효열 작가의 작품이다. 리멤버 베를린이라는 이름의 작품에 대해 이 작가는 “일본은 아직까지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강제징용 문제, 그리고 독도 영유권 분쟁 등 본인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는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11월 15일 서거하신 손기정 선생님을 기리고자 함”이라며 “제 작품을 통해 많은 분들이 손기정 선생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과 부끄러운 태도를 일삼는 일본을 우리 스스로 가리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고(故) 손기정 선생(1912∼2002)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오른 그는 일본 국가가 흘러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월계수 나무로 가슴을 가렸다. 이후 그는 경기 출전이 금지되고 일거수일투족 일본의 감시를 받았다. 이런 “손기정 선생의 조국애 정신을 작품에 녹여냈다”는 이효열 작가는 “폭력적인 행동이 아닌, 가장 우아한 방법으로 일본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 손기정 선생님의 생각이 지금 일본에 다시 필요할 것 같았다”며 “그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부정할수록, 우리는 월계수 나무처럼 더 꼿꼿이 자라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작품 속 일장기는 “일부 나쁜 정치인과 전범기업들을 의미하는 것”일 뿐 “일본이 다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며 “무엇보다 손기정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럼에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본에 던지는 메시지이니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효열 작가는 이번 작품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일본과 관련된 상징적인 곳에 게릴라 형식으로 설치할 생각”이라며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했다. 한편 이효열 작가는 계절마다 특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에는 그늘막 쉼터에 양산을 설치하는 ‘우리의 그늘’이라는 캠페인을, 겨울에는 버스정류장 의자에 노란 방석을 설치하는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전하고 있다. 현재 그는 버스 정류장 유리벽에 네모난 쿠션을 설치, ‘힘들면 잠시 기대요’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손진호, 박홍규, 문성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징용 피해는 범국가적 인권 문제… 정부가 나서 배상 요구해야”

    “징용 피해는 범국가적 인권 문제… 정부가 나서 배상 요구해야”

    보수 언론들이 한국 책임 거론하는 상황 배상은커녕 건전한 여론조차 발 못 붙여 소녀상 전시 방해도 안 따지니 배상 더뎌 외교로 풀 생각 말고 인권 차원 접근해야“2000년 제소 당시 피해국인 한국에서는 소송이 1~2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전범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결을 받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피해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정부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네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내려진 지 만 1년째인 30일 최봉태(57) 변호사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정치, 외교가 아닌 인권 문제”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20년 가까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곁에서 싸워 온 인물로,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00년부터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대리해 진행했고, 2012년 이들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첫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확정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뒤에도 그가 있었다. 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배상은커녕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전한 여론조차 형성되지 않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또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인권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에 앞장서지 않으면 문명국가가 될 자격도 없는 것”이라고 정부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판결 이후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일부 보수 언론이 오히려 피해자인 한국 측 책임을 묻고 있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 이후 이런 시각은 더 심해졌다”면서 “이는 한국 정부에서 사법부 판결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아 생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행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고 배상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니 일본은 ‘보여주기식 판결’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라면서 “나고야 평화의 소녀상 전시 방해 등 명백히 일본이 잘못하고 있는 것도 따지지 않으니 배상 문제는 더딜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최 변호사는 1994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일본에서 현지 시민, 변호사들이 적극적으로 소송에 참여하며 피해자를 돕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면서 “한국인으로서 부끄럽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나섰다”고 돌이켰다. 이런 관심을 계기로 지금까지 그가 맡았던 관련 재판만 10여건에 달한다.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포함해 2004년 한일협정 문서 공개 청구 소송, 정부가 원자폭탄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이 피해자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과의 외교를 통해 강제징용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손사래를 쳤다. “사람의 고통, 피해에 관한 문제는 정치·외교로 풀 문제가 아닙니다. 범국가적인 인권 차원의 문제입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日 반성커녕 한일관계 파탄 내…기약 없는 기다림은 더 큰 아픔”

    “日 반성커녕 한일관계 파탄 내…기약 없는 기다림은 더 큰 아픔”

    “동물 취급한 생각만 하면 이가 갈려 사죄 않으면 눈 감을 수 없다” 눈시울 “할아버지, 자책하지 마시고 행복하세요” 초등생 편지 등 국민 지지에 감사 전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 추가 손배소 “한국 사람을 동물 취급한 생각만 하면 이가 갈려.”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됐던 양금덕(90) 할머니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1년 전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내렸을 때만 해도 양 할머니를 비롯한 징용 피해자들은 “이젠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일본 정부와 기업은 사과와 배상의 뜻을 내비치기는커녕 한일 관계 파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또 다른 보복을 가했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우리 때문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것 같다”며 자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법원 판결 1년을 맞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이 30일 주최한 기자회견에는 양 할머니와 이춘식(95) 할아버지가 직접 참여해 지난 1년의 소회를 밝혔다.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아픔은 지난 1년 동안 오히려 커졌다. 이 할아버지는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인당 1억~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받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양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또렷한 기억이 묻어 있었다. “44년에 여수에서 배를 타고 138명이 동원돼 나고야로 갔어. ‘학교를 보내준다’는 교장의 회유에 배를 탔는데, 밥알 두 쪽 먹고 동물 취급당했어.” 양 할머니는 “나고야 미쓰비시는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면서 “사죄하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없다”고 외쳤다. 양 할머니의 증언을 듣던 이 할아버지는 그 시절이 기억나는 듯 눈물을 훔쳤다. 마이크를 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 말이 아주 많은데 목이 막혀 다 못 하겠다”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나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할아버지, 이제 자책하지 말고 행복하세요”라는 초등학생의 응원 편지에 또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할아버지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승소한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할아버지는 1943년 신일철주금의 가마이시 제철소로 강제동원돼 석탄을 탄차에 퍼올리고 용광로에 쏟아 넣는 일을 했다. 피해자들은 대법 판결 이후 일본기업의 국내 압류자산을 매각 신청하는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민변은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을 넣고, 일본 기업 쿠마가이 구미, 니시마쓰 등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노총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에 일본 정부와 기업을 제소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제 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는 일본 기업은 10곳이 넘는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끝내 사과 못 받고… ‘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눈 감다

    끝내 사과 못 받고… ‘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눈 감다

    열세 살에 日 건너가 무임금 강제노동 후지코시 상대 손배소 대법 판결 앞둬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이춘면(88)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전범기업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지만,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할머니가 지난 26일 오전 0시 20분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28일 밝혔다. 이 할머니는 열세 살이던 1944년 4월 “일본에 있는 공장에 가면 중학교와 전문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후지코시 측의 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야마로 간 이 할머니는 약속과 다른 현실을 맞이했다. 이 할머니는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12시간씩 무임금으로 철을 깎거나 자르는 강제노동을 했다. 일본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던 이 할머니는 1945년 7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할머니는 2015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7년 3월 1심에서 승소했다. 후지코시 측은 이 할머니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소멸했다며 항소했지만 지난 1월 항소심도 이 할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후지코시 측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할머니는 항소심에서 이겼을 때도 기뻐하지 않고 회사 측이 승복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더 냈다”면서 “올해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대법원 결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몸이 안 좋아졌다며 속상해했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의 소송은 유족이 이어갈 계획이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끝내 일본 측 사과 못 받은…‘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별세

    끝내 일본 측 사과 못 받은…‘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별세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이춘면(88)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전범 기업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이겼으나 끝내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할머니가 지난 26일 서울 동대문구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28일 밝혔다. 이 할머니는 13살이던 1944년 ‘근로정신대에 지원하면 상급 학교에 진학 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후지코시 측 회유에 속아 강제노동을 하게 됐다. 이후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에서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12시간씩 철을 깎거나 자르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이 할머니는 2015년 5월 자신이 입은 정신적·육체적·경제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후지코시에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에 2017년 3월 1심에서는 후지코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이 할머니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후지코시 측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소멸했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지난 1월 열린 항소심도 마찬가지로 법원은 “회사 측이 1억원을 지급하라”며 1심과 같이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후지코시가 다시 불복하면서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간 상태다. 소송은 할머니의 유가족이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속보]나루히토 일왕 즉위 선언 “세계 평화·헌법 준수”

    [속보]나루히토 일왕 즉위 선언 “세계 평화·헌법 준수”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즉위식에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헌법에 따라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일왕은 이날 오후 도쿄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자신이 일본 헌법과 황실전범 특례법에 따라 왕의를 계승했다고 즉위를 선포했다. 이날 즉위식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와 이낙연 국무총리 등 180개국 대표가 참석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경찰 ‘미 대사관저 침입’ 대진연 관련 사무실 압수수색

    경찰 ‘미 대사관저 침입’ 대진연 관련 사무실 압수수색

    최근 주한 미국 대사관저를 침입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학생 중 한 명이 밝힌 주소지에 대해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서울경찰청은 22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시민단체 ‘평화이음’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대진연은 이날 경찰의 압수수색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경찰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주한 미국 대사관저를 침입한 혐의로 붙잡힌 학생들 중 한 명이 주소지를 평화이음 사무실로 적어 이 곳에서 오전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미 대사관저 침입) 사건을 기획·지시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면서 “구속된 회원들의 휴대전화도 압수해 공모 여부 등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진연 소속 학생들은 지난 18일 낮 2시 50분쯤 사다리를 이용해 서울 중구 덕수궁 옆 미 대사관저 담을 넘어 침입한 혐의(공무집행방해,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를 받고 있다. 이들은 ‘미군 지원금 5배 증액 요구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해리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가리킨다.당시 미 대사관저에 침입한 대진연 학생은 17명이고 침입을 시도한 학생은 2명이다. 모두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이 중 10명을 지난 19일 밤 10시 전후로 석방하고 9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7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각각 나눠서 진행한 서울중앙지법의 명재권·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명에 대해서만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나머지 3명은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죽은 새와 흉기 등이 들어 있는 소포를 보내 협박한 혐의로 지난 8월 구속기소된 유모(35)씨는 대진연의 서울 지역 조직 소속이다. 대진연은 또 지난 4월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나경원 원내대표 의원실을 점거하는 농성을 벌였다. 지난 7월 9일에는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한국 계열사 건물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여기는 일본] 日 언론 “욱일기에 대한 한국의 알레르기 반응은 병적”

    [여기는 일본] 日 언론 “욱일기에 대한 한국의 알레르기 반응은 병적”

    내년 7월 시작되는 도쿄올림픽 경기장 응원도구로 욱일기를 사용금지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요구에 대해 일본정부의 정당화 홍보와 한국을 조롱하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석간 후지 등 현지 언론은 한국이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의 욱일기 사용을 항의한 것을 “반일 마니아들의 선동”이라며 “한국이 반일 신드롬에 걸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후지TV의 토론 방송에서는 “한국의 반일 신드롬은 병적”이라며 “세계에서 욱일기를 전범기로 보며 매도하는 유일한 국가는 한국”이라며 혐한 발언이 이어졌다. 석간 후지는 19일자 보도에서 “한국은 자위대 군함에 있는 욱일기를 군국주위의 상징으로 억지를 부리고있다”며 "세계 곳곳의 닮은 마크에 다 클레임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채권 속의 욱일기 마크”를 언급하며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성대하게 축하한 문재인 정권이지만, 독립 전 임시정부가 미국에서 발행한 채권의 배경에는 욱일마크가 또렷이 그려져있다"면서 "이상하리만큼 욱일기에 집착하는 한국이지만 자국의 독립운동 자금이 욱일 마크가 그려진 채권에서 비롯된거를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며 조롱조로 보도했다. 신문은 기사 말미에 “문재인 정부가 이 채권의 존재를 알면 선조를 부끄러워하며 은폐하려고 들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또한 16일 발매한 주간문춘 11월호에서는 “욱일기 문제에 대한 한국의 알레르기 반응은 병적이다. 그들은 빨간색과 흰색 태양광 모양의 그림만 봐도 ‘앗! 일본 군국주의’라며 거부반응을 보인다"며 “한국에서 욱일기 술집이 유행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혈안이 되어 반일 불매운동을 선동하지만 가게에는 젊은층 고객으로 가득차있었다"며 서울의 한 일본식 술집을 예로 들기도 했다. 정은혜 도쿄(일본)통신원 megu_usmile_887@naver.com 
  • 책상, 벽, 바닥 어디서든 무선충전 OK

    책상, 벽, 바닥 어디서든 무선충전 OK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컴퓨터, 디지털카메라는 물론 오디오 기능까지 수행하는 등 그야말로 만능 스마트기기로 활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운용되는 기능들이 늘어나면서 배터리 용량도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배터리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충분히 충전이 돼야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5G통신,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충전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무선 충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언제 어디서든 빠르게 무선충전이 가능하며 여러 개의 전자기기를 동시에 무선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변영재 교수팀은 여러 개의 스마트기기를 동시에 무선 충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선충전대에 정확히 거치시키지 않아도 충전이 가능한 대면적 자율배치 무선충전기술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IEEE 트랜쟁션 온 파워 일렉트로닉스’에 실렸다. 스마트 기기의 무선충전은 전류가 자기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자기장이 전류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전원장치의 전류에서 발생된 자기장을 전자기기가 받아 다시 전류로 바꾸는 것이다. 기존 무선충전 기술을 자기장을 보내는 매질로 공기를 이용하는데 전자기기와 무선충전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위치에 놓이지 않으면 충전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충전이 중단된다. 이에 연구팀은 자기장을 전달하는 매질을 ‘페라이트’라는 물질로 바꾼 것이다. 페라이트를 이용할 경우 공기로 자기장이 전달될 때보다 전송효율이 1000배 가량 좋아진다. 연구팀은 이와 함께 전원장치에서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코일을 감는 방식도 다르게 해 전송효율을 높였다. 평평한 판형 구조의 페라이트에 코일을 위 아래로 감으면 판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의 전류방향이 반대가 되면서 자기장이 상쇄된다. 그렇지만 코일을 비스듬하게 감으면 자기장 상쇄현상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변영재 교수는 “공기보다 자기저항이 낮은 페라이트를 이용함으로써 충전범위도 넓힘으로써 충전하고자 하는 휴대기기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며 “이번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책상, 탁자, 벽, 바닥 등 원하는 부분에 무선충전장치를 설치해 어디서든지 간편하게 충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영원히 잊을 수 없어!”… 선 넘은 유니클로에 한방 날린 韓대학생

    “영원히 잊을 수 없어!”… 선 넘은 유니클로에 한방 날린 韓대학생

    유니클로, 광고 중단… “추가조치 고민” 불매운동에도 매장 개장 등 마케팅 공세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한국어판 광고 자막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조롱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광주 지역의 한 대학생이 강제 징용 피해 할머니와 함께 이를 비판하는 패러디 영상을 제작해 일침을 놨다. 유니클로는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해당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20일 유튜브에 따르면 지난 19일 20초짜리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이 게재됐다. 전남대 사학과 4학년생 윤동현(25)씨가 제작한 이 영상에는 일제시대 당시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89) 할머니와 윤씨가 함께 출연한다. 영상에서 윤씨가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고 묻자 양 할머니는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외친다. 윤씨는 최근 불거진 유니클로 광고를 본 뒤 이 같은 패러디 영상 제작을 기획했다. 문제가 된 유니클로 광고는 지난 15일 처음 송출된 15초짜리 ’유니클로 후리스’ 편으로 9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나와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소녀가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 못 한다”(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고 답한다. 이 영어 대화와 함께 제공된 우리말 자막은 할머니의 대답을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느냐?”로 바꿨다. 이는 80년 전인 1930년대 후반이 강제 징용과 위안부 동원이 이뤄지던 시기라는 점에서 일제 전범 피해자들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유니클로는 “특정 목적을 가지고 제작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자 지난 19일 밤부터 송출을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유니클로는 지난 7월 일본 제품 불매운동 시작 이후 오히려 국내 사업을 더 키우고 있다. 일부 매장이 계약 만료 등을 이유로 문을 닫았지만 지난 8월 롯데몰 수지점 등 새롭게 개장한 매장들을 포함하면 현재 유니클로 매장은 지난해보다 1개 늘어 187개가 됐다. 앞서 지난 3일부터는 대표 상품을 최대 50% 할인하는 ‘15주년 감사 세일’에 돌입했으며, 이달 중 내년 신입사원 채용을 위한 설명회도 열 계획이다. 유니클로 측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유니클로의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추가 조치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서울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유니클로 광고, 한국 대학생이 올린 패러디 영상보니..

    유니클로 광고, 한국 대학생이 올린 패러디 영상보니..

    유니클로 광고가 논란을 사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대학생이 패러디 영상을 올렸다. 전남 광주에 한 대학생이 위안부 희화화 논란에 휩싸인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광고를 패러디한 영상을 강제징용 피해 할머니와 함께 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전남대학교 사학과 4학년생 윤동현(25)씨는 19일 오전 소셜미디어에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게시된 영상은 총 3편으로 한국어·영어·일어 자막 버전이다. 영상에는 일제시대 당시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89) 할머니와 윤씨가 함께 출연했다. 영상은 논란이 되고 있는 유니클로 광고와 비슷한 콘셉트로 촬영됐다. 이 영상에서 양 할머니는 일본어로 ‘잊혀지지 않는다’ 팻말을 들고 등장한다. 한국어판 영상 자막에는 ‘유니클로 후리스 25주년’ 대신 ‘해방 74주년’이라는 문구가 써있다. 윤씨가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고 묻자 양 할머니는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외친다. 유니클로 광고에서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라는 질문에 패션 컬렉터로 소개된 98세 여성이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대답한 장면을 패러디하며 비판한 것이다. 촬영은 이날 양 할머니 자택 근처에서 이뤄졌으며 윤씨의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양 할머니가 흔쾌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유니클로가 최근 공개한 15초 분량의 광고에서는 9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나와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어 버전과 달리 의역된 한국어 자막은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바뀌었다. 80년 전인 1930년대 후반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이 이뤄지던 시기라는 점에서 일제 전범 피해자들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와 논란을 샀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전남대생, 유니클로 온라인 광고 패러디 영상 제작 눈길

    전남대생, 유니클로 온라인 광고 패러디 영상 제작 눈길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한국어판 광고 자막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등을 조롱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광주 지역의 한 대학생이 강제징용 피해 할머니와 함께 이를 비판하는 패러디 영상을 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전남대학교 사학과 4학년생 윤동현(25)씨는 지난 19일 오전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업로드했다. 이 영상물은 하루만인 20일 오전 현재 조회수 2만 1000여 회를 웃돌고 있다. 게시된 영상은 한국어·영어·일어 자막 버전으로 총 3편이다. 영상에는 일제시대 당시 근로정신대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89) 할머니와 윤씨가 함께 출연했다. 영상은 논란이 되고 있는 유니클로 광고와 비슷한 콘셉트로 촬영됐다. 이 영상에서 양 할머니는 일본어로 ‘잊혀지지 않는다’ 팻말을 들고 등장하며, 한국어판 영상 자막에는 ‘유니클로 후리스 25주년’ 대신 ‘해방 74주년’이 쓰여있다 윤씨가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고 묻자, 양 할머니는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외친다.논란이 되고 있는 유니클로 광고에서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어요?라는 질문에 패션 컬렉터로 소개된 98세 여성이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대답한 장면을 패러디하며 비판한 것이다. 윤씨는 최근 불거진 유니클로 광고를 본 뒤 이 같은 패러디 영상 제작을 기획했다. 촬영은 이날 양 할머니 자택 근처에서 이뤄졌으며, 갑작스러운 윤씨의 제안에도 양 할머니가 흔쾌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한글날인 지난 9일 다른 대학생과 함께 일본 욱일기가 나치 독일의 전범기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라는 뜻을 담아 카드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유니클로는 최근 ’유니클로 후리스 : LOVE & FLEECE 편‘을 방송하고 있다. 15초 분량의 이 광고에서는 9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등장,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어 버전과 달리 의역된 한국어 자막에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바뀌었다. 80년 전인 1930년대 후반은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이 이뤄지던 시기라는 점에서 일제 전범 피해자들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여야 “화성 8차사건 진실 밝혀야” 국감서 한목소리

    여야 “화성 8차사건 진실 밝혀야” 국감서 한목소리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8차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처벌받은 윤모(52) 씨의 판결문을 보니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가 부실하고,절름발이라고 놀림당한 게 범행 동기인데 어떻게 피해자 자택의 1m가 넘는 담장을 뛰어넘겠나”라며 “당시 현장검증 등에 문제가 있는지 밝혀달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또 “현재 윤씨 측이 재심 청구를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경찰이 협조를 제대로 안 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윤씨가 재심을 청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경찰에 30년 몸담았지만 당시 경찰이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방사성동위원소감별법은 처음 듣는다”며 “이 분석기법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국과수와 함께 조사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차 사건뿐만 아니라 화성사건의 피의자인 이춘재(56)가 자백한 청주에서 저지른 2건의 살인사건 때도 억울한 시민들이 범인으로 몰려 재판까지 넘겨졌다가 간신히 무죄를 받은 사실이 있다며 이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화성사건 범인으로 밝혀진 이춘재를 경찰이 검거하지 못한 데 대한 질타도 있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은 “화성사건 10건 중 3건은 이춘재의 직장에서 반경 5㎞ 안에서 이뤄졌다”며 “범인의 혈액형을 B형으로 단정해 놓쳤고 구타에 의한 것으로 알려진 윤씨의 진술만 믿고 그를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화성사건을 자세히 정리해서 경찰 수사의 교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화성사건은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특이한 사례”라며 “이 시점에서는 모든 것을 다 정리해서 백과사전으로 만들어 경찰 수사의 전범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화성경찰서에 공교롭게도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씨가 화성사건의 8차 사건이 발생한 1989년까지 근무한 것으로 안다”며 “이씨가 당시 형사들에게 고문기술을 전수해줬을 가능성이 있어 이 부분도 조사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화성사건수사본부장은 “이씨가 수사에 참여한 기록은 없고 당시 화성경찰서에서 근무했는지 여부는 인사 기록상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화성사건 수사에 투입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다시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글·사진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나치 수용소 간수 지낸 93세 노인 오늘 독일 법정에 선다

    나치 수용소 간수 지낸 93세 노인 오늘 독일 법정에 선다

    두 차례나 인류를 상대로 잔학한 죄악을 저지른 독일이 역사 청산에 앞장서고 매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44년부터 이듬해 종전까지 폴란드 스투트호프 수용소 간수로 일하며 5230명의 유대인들이 숨지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했다는 이유로 올해 93세의 노인 브루노 데이가 17일 독일 법정에 선다. 그의 나이 18세 무렵에 벌어진 일이지만 수용소 밖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안에서 잔인한 학살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의 전범 기소 이유다. 검찰은 데이가 “살인기계의 작은 톱니”였다고 규정했다. 데이 자신은 학살 음모에 일절 가담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이번 재판은 아마도 전직 나치 간수들을 상대로 한 재판 가운데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영국 BBC는 이날 예상했다. 다만 피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심리는 일주일에 두 번을 넘지 않고, 한 번에 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제한했다. 잡지 슈피겔에 따르면 이 수용소에 수용됐던 5000명은 목표를 겨냥하듯 처형됐고, 200명은 가스를 주입시켜, 30명은 ‘Genickschussanlage’란 끔찍한 방법으로 죽였다. 쉽게 말해 뒤에서 몰래 다가가 뒤통수에 총알을 박았다. 핵심 쟁점은 유대인들을 특정해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 데이가 협력했느냐는 것이다. 당시 만 21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70년도 훨씬 지난 일로 이 노인은 소년법정에 선다. 검찰은 2016년에야 그를 기소하는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그의 이름이 박힌 나치친위대(SS) 복장을 찾아내고 스투트호프 문서저장고에서 그의 서명이 담긴 문서를 발견한 데 따른 것이었다. 1969년부터 나치 수용소 직원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가 굳어졌다. 하지만 2016년 유대인 30만명 이상이 희생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회계원으로 일했던 오스카르 그로에닝에게 4년형이 선고되면서 판례는 뒤집혔다. 이때 유죄 주장의 핵심이 액세서리 이론이다.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막으려 하지 않고 액세서리처럼 들러리만 섰다는 이유로 면책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데이의 너무 많은 나이 때문에 재판을 진행시키지 못했다. 때맞춰 같은 수용소의 간수로 일했던 요한 레보겐(95)이 지난해 12월 입원하는 바람에 데이의 재판도 지연됐다. 스투트호프 수용소는 1939년 9월 나치가 침공한 폴란드 단치히(지금의 그단스크) 동쪽에 중간 기착지로 지어졌다가 1942년에 집단수용소로 격상됐다. 독일 영토를 벗어나 처음 들어선 수용소는 아니었지만 1945년 5월 9일 소비에트 적군에 의해 가장 늦게 해방된 수용소이기도 했다. 이 수용소에서 숨진 사람만 6만 50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간수들은 1944년 6월부터 가스실을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강제노동 공장이 만들어져 나치 전쟁 장비들을 생산했다. 루돌프 스패너 박사가 이곳 수용소에서 죽은 이들의 시신에서 나온 기름을 모아 비누를 만들었다는 증거도 나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단독] 유엔사 유사시 日자위대 한반도 전개 계획 못 버렸나

    [단독] 유엔사 유사시 日자위대 한반도 전개 계획 못 버렸나

    ‘유엔사 전범국 군대 지원받을 계획’ 의심 외교·국방부는 약속 이행 확인·보고해야주한미군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으로 기술된 주한미군의 ‘2019년 전략 다이제스트’ 보고서 한글본을 수정하겠다고 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수정본을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홈페이지에는 2018년 보고서까지만 올라와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유엔군사령부가 여전히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계획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송영길 의원실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보고서 중 ‘(한반도) 위기 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는 한글 번역부분이 당초 수정하겠다는 주한미군 측의 입장과는 달리 수정본이 홈페이지에 올라오지 않고 있다. 송 의원실 관계자는 “수차례 국방부와 미국 측에 사후 조치 결과를 요구했지만 몇 주째 아무런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논란은 주한미군이 지난 7월 발간한 보고서 한글본에 ‘유엔사령부’에 대한 소개 부분에서 “유엔사는 위기 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기술하면서 시작됐다. 주한미군이 매년 발간하는 이 보고서 한글본에 해당 문구가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해당 표현은 유엔사가 후방기지라는 일본의 기존 역할을 넘어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 전력제공국’으로서 자위대를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큰 논란이 됐다. 논란이 일자 주한미군 측은 “단순한 번역 오류”라며 “보고서와 관련해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어 ‘through Japan’(일본을 통해서)이란 원문 표현에 맞게 수정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논란 이후에도 지난 8월 실시된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에서 유엔사 주도로 일본의 개입 상황을 상정한 훈련이 실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미국 측이 자위대 개입 속내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란 이후 주한미군은 수정을 이유로 홈페이지에서 보고서의 영문본과 한글본을 내렸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속내를 들킨 미국 측이 논란을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송 의원은 “유엔사가 한반도 유사시 ‘전범국가’인 일본 자위대의 지원을 여전히 계획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며 “외교·국방부는 상대방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하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보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김두관 “한국투자공사, 일본 전범기업에 5000억 넘게 투자”

    김두관 “한국투자공사, 일본 전범기업에 5000억 넘게 투자”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가 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에 5000억원 넘게 투자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KIC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IC는 일본 주식시장에 4조 737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이 가운데 12%인 5455억원은 신일본제철, 스미토모석탄공업 등 전범기업 또는 강제동원기업 46곳에 들어갔다.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 정당화 주장을 펴는 일본 극우단체 ‘새역모’(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가 후원하는 기업의 주식도 보유하고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민들이 수출규제와 무역 보복을 하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부펀드가 전범기업, 강제동원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해영의 쿠이 보노] 한흥수와 박영인

    [이해영의 쿠이 보노] 한흥수와 박영인

    일제 식민지시대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고통의 그것이었음은 굳이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해서 그 통증이란 것이 아직도 우리 삶과 앎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 있음도 당연하다 하겠다. 일본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시기, 2차 대전이라는 세계체제 차원의 대충돌 속에서 유럽 특히 중동유럽의 극소수 ‘코리안’들이 아차 하면 목숨 줄 놓을 판에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류학자 혹은 고고학자 한흥수(1909~?)는 개성생으로 일본의 상지대학을 거쳐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수학했다. 스위스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그 뒤 2차 대전 직후 빈대학에서 하빌리타치온 즉 교수자격논문이 통과되어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내가 알기에 한흥수는 독일어권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한 최초의 코리안이다. 전시에 체코 프라하에 거주하면서 빈대학 민족학박물관에 근무했다. 인류학자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흥수 연구에 따르면 그는 미주 코리안 좌파와도 연결되어 활동했다. 그들 중 핵심이 미군정에 의해 스파이 혐의로 추방된 뒤 입북해 박헌영의 비서로 활동했던 엘리스 현(玄)이었다. 한흥수는 1948년 북측의 해외인재 유치작업의 일환으로 김일성의 친서를 받고 입북해 내각수상 직속의 이른바 ‘물보’(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한흥수는 한국전 말기 남로당계열과 함께 숙청되어 흔적도 없이 역사무대에서 사라진다. 나치독일의 제국안전본부(RSHA) 제6부는 해외첩보부를 말한다. 이 해외첩보부의 C4국은 극동국을 말하는데 여기 국장이 페터 바이라우흐다. 이자는 전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되는데 이와 관련해 연합국 측의 심문기록이 남아 있다. 그 뒤 바이라우흐 등의 진술에 근거, 미육군 유럽사령부 정보부가 1949년 ‘전시독일의 첩보활동보고서’라는 비밀문서를 펴냈다. 그런데 이 보고서 코리아편을 보면 한흥수는 ‘첩보원’(intelligence agent)이라고 표기되고 위 극동국이 그를 “온건 자치론자로 간주”했으며 도나트 교수와 밀접히 접촉했다고 되어 있다. 극동국이 운영한 기관 중의 하나가 동아시아연구소인데 여기 소장이 도나트였다. 또 4인으로 구성된 코리안 ‘스터디 그룹’이 있었는데 그룹의 장이 한흥수였다. 한마디로 한흥수는 나치 해외첩보부 정보원이었다는 말이다. 박영인(1908~2007)은 울산생으로 알려지기로 도쿄제대 출신의 ‘일본’ 무용가다. 일본명은 구니마사미(邦正美), 나라의 바른 아름다움, 그런 말이다. 일본정부장학금으로 당시 베를린대에 유학, 나치독일의 선전성이 설립한 당시 세계유일의 국립무용학교에서도 수학했다. 전시에는 독일군을 위한 종군위문단의 일원으로 유럽 각지에서 공연했다. 그는 당시 국내 언론에도 음악에서 안익태 못지않게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소개되었던 인물이다. 이후 미국에서도 활동하였고 일본 현대무용에서 빠질 수 없는 일본에 귀화한 코리안이다. 그런데 전시 터키 이스탄불의 미전략첩보국(OSS)이 생산한 1944년 4월 18일자 ‘일본의 터키 내 첩보 및 프로파간다 활동’이란 보고서가 있다. 뜬금없이 터키가 등장하는 이유는 전시 일본은 중립국에서 대연합국 첩보활동을 전개했는데,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처음엔 포르투갈의 리스본, 다음은 터키 이스탄불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웨덴 스톡홀름이 그 전방기지였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다양한 일본 첩보원의 명단을 밝히고 있다. 그중 “에지리, 동맹통신 베를린 지국장. 그는 흥미로운 타입의 첩보원인 구니를 특수첩보원(special agent)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는 일본 무용가로서 언제나 자신의 직업으로 위장된 특별한 임무를 띠고 유럽 각국의 수도에 나타난다. 그는 그들이 데리고 있는 첩보원 가운데 가장 영리한 자 중 하나다. 그가 곧 여기로 온다.” 전시 일본의 국영통신사였던 동맹통신사의 베를린지국장 에지리 스스무(江尻進)는 동시에 박영인의 대학동문이기도 했다. 전후 일본신문협회전무이사, 일본저작권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전시유럽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한흥수와 박영인. 일인은 나치독일의, 다른 일인은 군국일본의 스파이였다. 지금 기준으로도 뛰어난 지식인들인 이들의 소명을 현재로선 들을 수 없다. 고문서를 뒤지다가 툭 튀어나오는 옛날 지식인의 깨알 같은 행적에 학문하는 즐거움보다 나라 없는 민족의 씁쓸함이 앞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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