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범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침몰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오즈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제품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 변화
    2026-02-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78
  • “백지 구상 위해” 靑 노영민·김상조·김종호 동반사의…文 “숙고”(종합)

    “백지 구상 위해” 靑 노영민·김상조·김종호 동반사의…文 “숙고”(종합)

    靑·내각 인적쇄신 시작…1월도 계속될 듯文, 추미애 사표 수리, 박범계 후임 내정김진욱 공수처장도 지명… 검찰개혁 재확인추미애 “공수처 야당 우려, 근거 없다”한정애 환경, 황기철 보훈 등 내정김종호 민정, 임명 넉달 만에 사의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상조 정책실장, 김종호 민정수석이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되는 등 청와대와 내각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사의 표명을 한 청와대 3인에 대해 “숙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어수선한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집권 5년 차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다음달 초 이들 전원을 교체하는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靑 “文, 백지 위서 국정 구상 할 수 있게”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 일신의 계기로 삼고,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이 백지 위에서 국정운영을 구상할 수 있도록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담을 더는 차원에서 이뤄진 동반 사의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인사는 청와대 참모진의 대폭 개편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청와대 ‘투톱’인 노영민·김상조 실장은 오랜 기간 몸담은 만큼 물러날 때가 됐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노 실장은 2년 가까이, 김 실장은 1년 반 동안 문 대통령을 보좌했다. 또한 노 실장은 최고위 참모로서 국정 상황 전반에 대해, 김 실장은 부동산 파동과 코로나19 백신 확보 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불거진 상태다. 김종호 수석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논란 등과 관련해 주무수석으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감사원 출신인 김 수석은 불과 넉 달 전인 지난 8월 임명됐다.秋 후임 법무장관에 박범계 내정한정애 환경·황기철 보훈처장 내정 문 대통령은 연내 예고된 소폭 개각도 이날 마무리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총장과 갈등을 빚어온 추미애 장관의 사의를 수리하고, 후임에 박범계 의원을 내정했다. 또 환경부 장관에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 국가보훈처장에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을 발탁했다. 문 대통령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 내정과 동시에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에 김진욱 헌재 선임연구관을 지명해 검찰개혁 의지를 재확인했다. 박 후보자와 김 후보자는 모두 판사 출신이다.추미애 “공수처, ‘수사의 전범’ 될 것” 추 장관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수처는 ‘수사의 전범’이 되도록 운영될 것”이라며 공수처 출범과 관련한 야당의 우려를 일축했다. 이어 “공수처 준비기획단은 지난 6월 공수처 내에서 수사부와 공소부를 분리해 내부에서도 상호 견제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따라서 공수처에 대한 막연한 야당의 우려는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추 장관은 전날 저녁에도 SNS에 “(윤 총장 측이 요청한) 검사징계위원회의 기피 신청 기각 절차는 적법했다”면서 “법원의 판단에 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게 소송 대리인과 다수 법률전문가의 의견”이라고 밝혔다.내년 1월 등 내각 개편 순차적으로 정총리 대선·박영선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 12·4 개각을 시작으로 한 내각 개편은 내년 1월, 그리고 3월 또는 4월 재보선 후 순차 개각으로 이어지며 완성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차기 대선 출마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 등도 제기돼 인사 변동 폭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1월 초 인적 쇄신을 통해 집권 5년 차 국정 구상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아이스크림 막대’에 덜미잡힌 발바리 성폭행범…징역 12년

    ‘아이스크림 막대’에 덜미잡힌 발바리 성폭행범…징역 12년

    범행 발뺌했지만 DNA 분석으로 들통광주지법 특수강간 등 혐의 중형 선고“과거 범죄 의심되나 3월 사건만 유죄”“왜 제 DNA가 거기(피해자의 속옷)에 묻어 있죠” 성폭행범 A(51)씨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으나 법원은 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노재호)는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보호관찰 5년·해당 지자체 출입 금지 등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가 2016년 범행의 범인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난 3월 발생한 사건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2016년, 피해여성 속옷에 신원불명 남성 DNA A씨는 전남의 한 지역 시골마을에서 2016년~2020년 사이 홀로사는 노인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 ‘발바리’로 통했으나 치밀한 범행 수법 등으로 장기간 수사망을 비켜 나갔다. 이 기간 이 일대 마을에서는 모두 8건의 야간주거침입간강 및 미수가 잇따라 발생했다. 경찰이 피해 사실을 파악한 경우만 7명에 달했다. 그러나 흔적을 남기지 않은 범행 수법 탓에 좀처럼 범인은 특정되지 않았다. 2016년 5월 어느날 새벽, 시골 마을에서는 누군가가 고령의 피해자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고 달아났다. 현장에 남긴 유일한 단서는 피해자 옷에서 검출된 피해자의 것과 혼합된 ‘남성’ 용의자의 DNA 뿐이었다.그러나 피해 여성의 것과 뒤섞인 범인의 DNA만으로는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아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다. 이후로도 5년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2020년, 유사 사건···주변 쓰레기도 다 뒤졌다 그러다가 지난 3월 인근 마을에서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옷에 자신의 체모를 남겼다. 경찰은 이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고, 남성의 DNA를 확보했다. 이후 범행 시간 전후로 인근 장소를 들낙거린 차량 2000여대를 하나하나 조사했다. 경찰은 비슷한 범행 시간대에 주변을 통과했던 차량 소유자 A(51)를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잠복에 들어갔다. 해당지역 인근 대도시에 거주하는 용의자가 아파트단지 쓰레기 수거함에 버린 쓰레기봉투에서 머리카락, 장갑, 아이스크림 막대를 찾아내 국과수로 보냈다.국과수는 결국 아이스크림 막대에서 용의자의 것과 일치하는 DNA를 찾아냈다. 마침내 찾은 DNA 주인 “현장 간 적 없다” 발뺌 경찰은 이를 토대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A씨를 검거해 그의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했다. 범행 현장에서 나온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도 통보 받았다. “범행 현장에 전혀 가지 않았다”고 발뺌한 A씨 휴대전화에는 범행 장소 인근 로드뷰와 위성사진을 캡처한 800개가 넘는 이미지 파일이 들어있었다. 파일에는 범행 장소 인근 교차로, 통행로, CCTV 위치를 알 수 있는 전신주 등도 가득했다. 국과수는 이어 A씨의 Y-STR(짧은 염기서열 반복 구간 분석) DNA형이 2016년 범행 현장에서 검출된 Y-STR DNA형과 일치한다는 결과도 추가로 내놨다. 이는 A씨가 2016년 범행을 저지른 범인과 같은 Y염색체를 갖고 있고, A씨가 2016년 범행의 범인과 ‘동일한 부계 혈통’에 속한다는 의미다. Y-STR DNA 추출은 성염색체 중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Y염색체가 부계를 통해 그대로 유전되는 특성을 이용하는 분석법이다. 충분한 DNA가 확보지지 않거나 남성·여성 유전자형이 혼합돼 검출되는 경우에 적용하는 식별법이다. 경찰과 검찰은 이같은 점을 종합해 A씨를 두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 주거침입강간과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지난 3월 범행 현장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를 토대로 범인은 A씨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끈질긴 추적·첨단 분석기법···완전범죄는 없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2016년 사건의 경우 “A씨가 2016년 범행 현장의 범인과 동일한 사람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A씨의 Y-STR DNA형이 일치한다는 결과는 A씨와 2016년 범행의 범인이 ‘동일한 부계 혈통’에 속한다는 의미일 뿐 그 이상의 개인식별력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결국 5년여 동안 ‘완전 범죄’를 노리고 특정 지역 홀로사는 노인을 상대로 한 ‘발바리’ 성범죄는 경찰은 끈질긴 추적과 첨단 수사기법인 DNA 분석으로 막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CCTV 분석때 심야에 운행하면서 햇볕가리개가 내려진 차량을 유심히 추적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며 “A씨는 범행장소 주변에서 휴대폰을 끄거나 2㎞이상 떨어진 곳에 차량을 주차한 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이동하는 등 치밀하게 행동했으나 결국 들통났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공수처 운영 원리 밝힌 추미애에 “코로나 지옥인데…”(종합)

    공수처 운영 원리 밝힌 추미애에 “코로나 지옥인데…”(종합)

    전날 동부구치소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처음 현장을 방문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추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남기명 공수처 준비기획단장은 지난 6월 공수처 내에서 수사부와 공소부를 분리하여 내부에서도 상호 견제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면서 “공수처는 ‘수사의 전범’이 되도록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는 공수처에 대한 막연한 야당의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추 장관은 덧붙였다. 추 장관은 동부구치소를 방문한 이후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취소 요청을 받아들인 법원의 판단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은 “행정법원은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기피 의결이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러한 법원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 총장 징계위원회의 1차 회의가 열린 지난 10일 당시 징계위원회의 재적위원은 7명으로 그중 5명이 출석하였고, 윤 총장 측이 각 위원에 대한 기피 신청을 했으나 5명의 위원들은 출석자에 포함된다고 추 장관은 지적했다. 지난 15일 열린 2회 징계위원회에서 이뤄진 위원에 대한 기피 신청 기각 절차도 적법했다고 추 장관은 부연했다. 추 장관은 “상식적으로도, 기피 신청만으로 해당 위원을 출석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분별하게 기피 신청하는 방법으로 모든 징계위원회의 의사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법원의 판단에 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게 소송대리인과 다수의 법률전문가 의견”이라며 판단을 구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초기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종민 변호사는 “추미애 장관이 검찰개혁 운운하며 윤석열 총장 찍어내기, 검찰 무력화에 미쳐있는 동안 동부구치소는 코로나 지옥이 되어 버렸는데 아직도 정신 못차린 것 같다”면서 “동부구치소 방문 쇼를 하고 난 뒤 곧바로 법원의 윤석열 총장 판결을 비난하는, 법무부장관으로 법치주의와 사법제도를 부정하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폭거를 자행했기 때문”이라고 추 장관의 페이스북 내용을 비난했다. 김 변호사는 교정시설의 과밀수용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된 것으로 코로나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가능한 일이고 교정행정 총책임자인 법무부장관은 당연히 현장을 확인하고 선제적으로 조치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와 같은 비상상황일 때 평상시와 달리 가석방을 선제적으로 활용해 과밀수용을 해소하고 동부구치소와 같이 교정시설 전체가 코로나 지옥이 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았어야 했다”면서 “지난 1년간 소년원 가서 수용자들 불러내 세배 받은 것 말고 추미애가 교정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법무부장관으로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수감자 중 중하지 않은 수용자를 선별해 과감히 가석방, 구속 취소 등으로 석방하고 법원행정처와 협의하여 전자발찌 부착 조건부 보석을 대폭 확대하는 형사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강제노역’ 자산 매각 효력 발생하자마자… 미쓰비시 “즉시 항고”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효력이 29일부터 발생했다. 대전지법은 양금덕(91) 할머니 등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상표·특허권 매각 청구와 관련해 지난달 10일 미쓰비시에 공시송달한 압류명령 결정문 2명의 효력이 이날 0시부터 발생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2명의 효력은 30일 0시부터 발효된다. 공시송달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았다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실어 전달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이로써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매각에 대한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나 상표·특허권 감정평가와 경매 등을 거쳐 피해자들에게 현금을 배당할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가진 한국 내 자산은 화력발전소 부품 등에 대한 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이 있다. 다만 미쓰비시중공업이 항고할 것이라고 밝혀 당장 현금화는 어려울 전망이다. 일본 교도통신과 NHK 등은 이날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 법원의 압류명령 결정문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한일 양국 및 국민 간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돼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며 “이런 정부 간의 (의견) 교환 상황 등에 근거해 즉시 항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일제강점기 말 여자근로정신대에 끌려가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조공장 등에서 강제 노역을 한 양 할머니 등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8년 11월 “미쓰비시중공업은 1인당 1억∼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쓰비시 측이 이행하지 않자 이들은 지난해 3월 22일 특허청이 있는 대전지법에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상표권 압류 매각명령 신청을 냈다. 당초 5명이 소송을 냈지만 재판 과정에서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4명의 위자료는 총 8억 400만원이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설민석 자꾸 틀리지만… “각색은 필요” vs “사실이 중요”

    설민석 자꾸 틀리지만… “각색은 필요” vs “사실이 중요”

    스타강사 설민석이 진행하는 방송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도 시청률 5%를 기록하며 여전한 관심을 나타냈다. 27일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3회 시청률은 5.5%(유료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이번 방송에는 난징대학살·731부대·전범재판 등을 중심으로 일본의 중국 침략 역사가 설명됐다. 이 방송은 신으로 군림했던 히로히토 일왕(천황)이 패망 직후에 격하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히로히토의 ‘인간선언’을 소재로 그가 신에서 인간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설민석의 이날 강의 내용에 대해 일부 소셜미디어에선 “맥아더가 생체정보 가져오겠다며 731부대 이시이를 살려줬고 히로히토도 전범재판 회부 안 했다면서 반미정서 부추키고, 토착왜구 장사한다”면서 “맥아더가 미국의 국익때문에 우리를 도와줬다는 거, 그걸 누가 모르나, 얄팍한 지식으로 국민을 초딩(초등학생) 수준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731 부대의 존재나 전후 일왕 문제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은 아니지만, 공연히 반미 감정을 자극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설민석은 승전국 미국의 압박을 받은 히로히토가 ‘나는 신이 아니다. 신의 후예일 뿐이다’라고 발언했다고 인간선언의 핵심을 정리했지만 실제 인간선언에서는 일왕이 이러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역사 논란 시작은 클레오파트라 방송“그냥 보지마세요” 전문가 작심 발언 설민석의 역사 왜곡 논란은 지난 19일 이집트 역사에 대해 다룬 방송 이후 거세졌다.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역시 걱정했던 대로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냥 보지 말라”며 방송에서 언급된 역사 내용의 오류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고, 설민석 역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리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설민석은 “내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인 것 같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는 설민석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재즈가 잃어서 알앤비가 탄생” 논란평론가는 “허위사실 유포나 마찬가지” 음악에 대해 다룬 유튜브 영상도 논란이 됐다. 설민석은 지난 15일 유튜브에 “재즈가 초심을 잃어서 알앤비(R&B)가 탄생했다”며 “프랭크 시나트라 이후 백인이 흑인 음악을 불렀다. (흑인들은) 초심을 잃었다 이거다. 그래서 흑인들만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라는 영상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재즈 피플의 한 기자는 댓글을 통해 “재즈가 초심을 잃어 R&B가 탄생했다는 내용은 처음 듣는다”며 “(설민석의 주장과는 달리) R&B는 블루스가 미국 남부의 흑인 술집을 넘어 미국 전역의 더 많은 이에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르”라고 설명했다. 음악평론가 배순탁 역시 “재즈, 블루스, 일렉트릭 블루스, R&B, 초기 로큰롤에 대한 역사를 다룬 원서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할 수 없다”며 “아무런 공부 없이 내뱉은 발언이 또 터졌다. 이 정도면 허위사실 유포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역사에 대한 관심 높인 점 인정해야”“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확언 말아야” 배순탁 평론가는 “최진기, 설민석 두 사람이 자기 분야 강의에 관해서는 무척 탁월하다고 생각한다”며 “왜 자꾸 설익은 걸 넘어 ‘무지’에 가까운 영역에까지 손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반면 설민석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공을 세웠고, 약간의 각색은 재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시청자 게시판과 뉴스, 유튜브 댓글에는 “있는 그대로 원문풀이하면 누가 보냐. 재밌게 각색도 하고 그런 거지 큰 맥락에서 안 벗어나면 된다” “자잘한 부분까지 보려면 책을 봐야한다. 제한된 방송시간에 모든 디테일을 다 맞추기는 어렵다” “설민석만큼 재밌게 감동적으로 강의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비판만 하냐. 너무하다”라며 설민석을 옹호하는 의견과 “설민석이 유명한 만큼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에서는 더 주의해야 하지 않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엉뚱한 역사 지식을 퍼트릴 위험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벚꽃스캔들’ 아베 불기소 방침…日 “의원직 사퇴” 압박 최고조

    ‘벚꽃스캔들’ 아베 불기소 방침…日 “의원직 사퇴” 압박 최고조

    유권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이 사실을 은폐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온 아베 신조(66) 전 일본 총리가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 사건을 다뤄 온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21일 아베에 대한 직접 조사를 끝으로 수사를 종결하기로 했다. 아베에 대해서는 혐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하고, ‘아베신조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비서 정도만 약식기소할 방침이다. 아베는 매년 도쿄 도심에서 열리는 정부 주최 봄맞이 행사 ‘벚꽃을 보는 모임’에 자기 지역구(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나가토시) 사람들을 부르면서 하루 전 고급호텔에서 전야제를 가졌다. 호텔을 빌리다 보니 1인당 최소 1만엔 이상 경비가 들었지만, 주최 측이 실제로 참가자들에게 받은 돈은 5000엔밖에 안 됐다. 정치인이 자기 선거구 유권자에게 기부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에 저촉되고, 이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은폐한 것은 정치자금규정법 위반에 해당된다. 이에 변호사 등 900여명은 지난 5월 아베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검찰은 “나는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모두 비서진이 한 일이다”는 아베의 진술을 수용해 형사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반발과 후폭풍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고발을 주도했던 요네쿠라 요코 변호사는 “아베 본인이 전야제의 자금 집행 과정을 몰랐을 리가 절대로 없다”고 일축했다. 고발인들은 검찰의 불기소가 최종 확정될 경우 검찰심사회에 이번 결정이 타당한지 심사를 요청할 방침이다. 형사처벌 여부와 별도로 정치생명 자체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도쿄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아베 전 총리 자신이 진실 확인을 소홀히 하고 사실과 다른 답변을 국회에서 반복한 죄는 무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의원직에서 사퇴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정권을 줄곧 지지해 온 니혼게이자이신문, 산케이신문 등도 “아베의 책임이 큰 만큼 진상이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싸늘한 논조를 보였다. 아베는 이번 일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악화를 이유로 지난 9월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사퇴 직후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보수 지지층에 존재감을 보이려 노력해 왔다. 지난달에는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을 모아 ‘포스트 코로나19 경제정책를 생각하는 의원연맹’을 결성, 스스로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직(총리)에 세번째 도전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어왔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로 당내에서는 “아베의 재등장은 물건나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 부실대응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설상가상의 부담을 안게 됐다. 본인이 아베 정권 때 관방장관으로서 아베의 허위답변을 그대로 인용해 사태 무마를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번 사안의 처리방향에 따라 향후 민심 이반이 한층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냉전시대 규정한 첩보물 작가 존 르 카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냉전시대 규정한 첩보물 작가 존 르 카레

    냉전 시대 첩보물의 대가인 영국 작가 존 르 카레가 폐렴을 앓다 12일(현지시간)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고 판권 대리인이 전했다. ‘땜장이, 재봉사, 군인,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로 유명한 고인은 “영국 문학의 거인으로 단연 오똑하고 냉전 시대를 규정하고 두려움없이 진실이 힘을 가짐을 말해왔다”고 커티슨 브라운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조니 겔러가 돌아봤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 자택에서 사망했다. 15년 가까이 고인과 인연을 맺었다는 겔러는 “다시는 그와 같은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라면서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관심있는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것이며 영국 문학의 위대한 표상, 위트 넘치고 친절하며 인간적이고 똑독한 사람을 잃었다. 난 친구이자 멘토, 영감을 잃었다”고 애석해 했다. 냉전이란 말을 만든 사람은 미국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지만 냉전 시대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소설과 스크린으로 옮긴 이는 고인이었다. 본명이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웰인 그는 늘 빚에 쪼들리고 보험사기로 교도소까지 다녀온 부친에 대한 불만을 품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종종 자취를 감춘 것은 영국 첩보활동을 하느라 그런 것이라는 내용의 습작을 다섯 살 때 썼을 정도로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스위스 베른대학에서 유럽어학을 수학한 뒤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에서 학위를 따고 이튼 칼리지에서 2년 동안 독일어를 가르쳤다. 1959년 영국 외무부로 자리를 옮겨 5년 동안 근무했다. 독일 본 주재 영국 대사관의 제2 서기관. 함부르크의 정치 영사 일을 하다 해외정보 담당 영국 정보부 MI6로 옮겼는데 1961년 요원의 신분을 유지하며 첫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Call For The Dead)’를 발표했다. 비밀요원으로서의 경력은 킴 필비 사건으로 막을 내렸는데 필비가 옛 소련과 영국의 이중스파이로 KGB에 영국 요원들의 신분을 노출시켰는데 그의 이름도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1954년 앨리슨 앤 베로니카 샤프와 결혼, 세 아들을 낳았으나 1971년 이혼했다. 이듬해 편집자 출신 밸러리 제인 유스터스와 재혼, 아들 니컬러스를 뒀는데 니컬러스는 나중에 닉 하커웨이라는 필명으로 책을 썼다. 냉전 시대 독일을 무대로 이중간첩을 소재로 한 세 번째 소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작품은 1963년 출간됐고, 2년 뒤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뒤 르 카레는 시대를 반영한 걸출한 스파이 소설들을 발표하며 스파이 스릴러를 쓰면서도 본격 작가로 대우받는 전범을 보여줬다.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냉전기의 시대 상황을 묘사하는 데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다. ‘거울전쟁(Looking Glass War, 1965)’과 ‘독일의 작은 도시(A Small Town in Germany, 1968)’를 내놓았다. 3부작의 첫 편 ‘땜장이, 재봉사, 군인, 스파이, 1974)’에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조지 스마일리가 등장하는데 약삭빠르지만 겸손해 잘 나서지 않는 정보원이다. 소련 첩보원 우두머리인 카를라와 겨루는데 ‘명예로운 남학생(The Honourable Schoolboy, 1977)’, 스마일리가 카를라를 서방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스마일리의 사람들(Smiley‘s People, 1980)’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스마일리 역할은 알렉 기네스 몫이었다. 1983년 ‘북치는 어린 소녀(The Little Drummer Girl)’는 이스라엘 첩보부 모사드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싸움을 그리고, 1986년에는 ‘완벽한 스파이(A Perfect Spy)’를 내놓았다. 말년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 ‘나이트 매니저’ 등 25편의 작품을 남겼는데 대략 40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2000년 영국 일간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독일 베를린에 파견돼 영국의 스파이 역할을 한 경험이 일부 작품을 집필할 때 도움을 줬다고 털어놓았다. 2003년에는 같은 매체를 통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하는 칼럼을 발표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비롯해 ‘러시아 하우스’, ‘테일러 오브 파나마’, ‘콘스탄트 가드너’ 등 10개 작품 정도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타이프라이터를 쓰지 않고 오로지 손글씨로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으로 유명하며 도시에서의 생활은 사흘이 한계라고 할 정도로 전원생활을 즐겼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사설] 독일 지방의회의 소녀상 영구 보존 결의 환영한다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 의회가 1일(현지시간) ‘평화의 소녀상’ 영구설치 결의안을 찬성 24명 대 반대 5명으로 통과시켰다. 녹색당과 좌파당이 공동 발의한 이 결의안은 평화의 소녀상이 미테구에 계속 머물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좌파당 틸로 우르히스 구의원은 의안 설명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2차 세계대전 중 한국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성폭력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전쟁에서 성폭력은 일회적인 사안이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로, 평화의 소녀상은 바로 그 상징”이라고 했다. 앞서 미테구는 현지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신청하자 지난해 7월 설치를 허가했고, 소녀상은 올해 9월 말 미테구 거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 주정부에 항의하자 구는 10월 7일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베를린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코리아협의회가 행정법원에 철거 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자 미테구는 철거 명령을 보류했다. 이번에 통과된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의안 채택을 계기로 소녀상의 영구설치 논의가 의회 주도로 본격 시작되는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결의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됐다는 점도 향후 영구설치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독일 지방 의회의 결의안 채택을 보고 잘못을 크게 깨달아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둘 다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이지만 과거사 청산에서는 매우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독일은 현직 총리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반면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전쟁 기간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여태껏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반성은커녕 평화의 소녀상 설립 방해 외교를 한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소녀상의 의미는 우르히스 구의원의 의안 설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인도 아닌 독일 의원의 이런 절규를 일본은 마땅히 부끄럽게 새겨들어야 한다.
  • 런던경찰청, 80년대 스리랑카 내전 학살 도운 英 용병회사 수사

    런던경찰청, 80년대 스리랑카 내전 학살 도운 英 용병회사 수사

    영국인 용병들이 1980년대 스리랑카 내전 때 타밀 분리주의 반군과 싸우는 스리랑카 경찰들을 훈련시키고 공군 전력을 훈련시킨 전범 혐의로 런던경찰청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BBC가 30일 보도했다. 민간인 경호업체 키니 미니 서비스(KMS)란 회사가 스리랑카 경찰의 엘리트 부대인 스페셜 태스크포스(STF) 부대원들에게 단순한 군사 훈련을 넘어 타밀족 민간인을 재판 없이 즉결 처형하는 등 인권을 유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는 의심을 규명한다. 런던경찰청은 영국에서 전범이나 인권 유린을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이긴 하지만 영국 용병 회사를 전범 혐의로 수사하는 일은 처음으로 보인다. 경찰청 대변인은 지난 3월 전범 행위가 의심된다는 제보를 받고 내사를 거쳐 어느 정도 혐의를 확신하고 수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KMS가 스리랑카 내전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한 이는 언론인 필 밀러였다. 지난 1월 그의 책 ‘키니 미니-전쟁범죄를 저지른 영국인 용병들(Keenie Meenie: The British Mercenaries Who Got Away With War Crimes)’을 보면 기밀이 해제된 영국 정부 문서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획득한 자료들에 충분히 제시돼 있다. 그는 문서 공개가 내전 당시 조국을 탈출해 런던으로 도피한 20만명의 타밀족 공동체가 힘을 합친 성과라고 털어놓았다. 밀러는 “수많은 타밀족 사람들이 1980년대 난민으로 전락한 것은 KMS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은 헬리콥터 사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영국인 용병이 조종하는 헬리콥터에서 사격을 자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영국 공수특전단(SAS) 장교였던 데이비드 워커(78)가 창설한 KMS는 지금은 문을 닫아 존재하지 않지만 워커는 후신 기업인 켄싱턴의 살라딘 보안회사의 국장 중 한 명으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관되게 KMS의 누구도 스리랑카 전범 행위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대변인은 “데이비드 워커나 KMS 유한회사 직원이 1980년대 스리랑카에서의 전쟁 범죄에 연루됐다는 의혹은 기본적으로 부인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아울러 “살라딘 보안회사는 KMS와 완전히 별개의 회사이며 스리랑카에 아무런 관련된 사실이 없다. 워커는 주주도 아니고 KMS 국장도 아니다”면서 “(런던경찰청의 전범) 수사반은 살라딘이나 워커의 도움을 아직 청하지 않았지만 요청이 오면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리랑카 내전은 26년의 유혈 충돌 끝에 2009년 5월 정부군이 타밀 호랑이 반군을 격퇴하면서 막을 내렸다. 내전은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이 주도하는 정부군과 분리독립을 바라는 타밀 반군이 충돌한 전쟁이었다. 대략 10만명이 희생됐으며 2만명 정도가 실종됐는데 대부분 타밀족이었다. 유엔은 내전 말미에 양쪽 모두 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내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랬지만 처음에는 타밀 반군이 일방적으로 당했다. 연초에 이 나라 대통령은 실종된 이들 모두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김성 北 유엔 대사 “자위적 군사활동 ‘위협’ 매도…유엔 공정성 없다”

    김성 北 유엔 대사 “자위적 군사활동 ‘위협’ 매도…유엔 공정성 없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북한의 자위적 군사 활동과 평화적 우주개발에 대해서만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20일 북한 외무성 홈페이지에 따르면 김 대사는 지난 16일 유엔총회 제75차 회의 전원회의 유엔 안보리 개혁에 관한 연설에서 “유엔 안보이사회는 비민주주의적이고 공정성이 심히 결여된 기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엔 안보이사회에서는 주권국가들을 반대하는 비법적인 무력침공과 공습, 이로부터 초래되는 민간인 학살행위는 묵인되는 반면 자주권 수호를 위한 정정당당한 자위적조치들과 (심)지어 평화적 목적의 우주개발 활동마저 국제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매도되어 문제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권문제를 비롯해 자기 권능에도 맞지 않는 문제들에까지 개입하는 월권행위들도 우심해지고 있다”며 “유엔헌장과 국제법은 안중에도 없이 유엔 안보이사회를 저들의 정치·군사적 목적 실현에 도용하려는 특정국가들의 강권과 전횡을 철저히 배격해야 하며 이중기준과 불공정성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최근 핵 무기를 개발하며 ‘자위적 무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0일 열린 노동창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선보이며 “그 어떤 누구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며 자위적 수단임을 정당화했다. 김 대사는 또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늘리는 것에 대해 “전범국인 일본과 같은 나라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이런 나라가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을 기본사명으로 하는 유엔 안보이사회에 그것도 상임이사국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유엔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일본이 유엔 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되면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에 공헌하기는커녕 오히려 침략과 약탈로 얼룩진 과거사를 되풀이할 것이 불 보듯 뻔하며 세계를 또 한차례의 전쟁에 몰아넣는 참극이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는 담보도 없다”고 역설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악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악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독일은 일본과는 다르다. 적극 사과하고 가해자들을 처벌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를 보면 과거사 청산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싸움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책은 루마이나계 약사 빅토르 카페시우스(1907~1985)가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평범했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악마 같은 나치 장교로 변해 가는 모습에서 독일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을 거듭 떠올리게 된다. 아우슈비츠 주임약사였던 카페시우스는 1965년 법정에서 ‘최소 8000명의 동료 시민을 죽게 한 책임이 있다’며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실제로 일삼은 짓들은 경악할 만한 것들이다. 수감자들에게 치료약을 고의적으로 내주지 않는가 하면 임신부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생체실험을 했다. 심지어 희생자 시체에서 거둔 금니를 빼돌리기까지 했다. 책은 유대인 격리와 군수물자 생산 노동력 확보를 위해 건설된 아우슈비츠가 이게파르벤이라는 독일의 거대 화학회사와 관련 있음을 들춰 놀랍다. 이게파르벤은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의 전신이다. 이게파르벤이 나치와 손잡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추가로 만들었고 생체실험 주도권도 나치 친위대가 아니라 이게파르벤이 쥐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종전 이후 전범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과 어김없이 죄를 은폐하려는 가해자들의 치열한 법정 싸움도 주목할 대목이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전범자들은 재판 내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내비치지 않았다. 카페시우스는 심지어 법정에서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이 가해자 변호사로부터 무례한 질문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장면에선 녹록지 않은 우리의 ‘친일 청산’과 포개져 씁쓸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14살 아이가 90 넘도록 법은 뭘 했나” 법정에 선 이용수 할머니 눈물의 호소

    “14살 아이가 90 넘도록 법은 뭘 했나” 법정에 선 이용수 할머니 눈물의 호소

    “14살 조선의 아이로 (위안부로) 끌려가 대한민국 노인이 돼 이렇게 왔습니다. 4년 전에 우리 법을 믿고 이 법(재판)을 했는데 왜 (해결을) 못해 줍니까. 저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이 90이 넘도록 판사님 앞에서 호소를 해야 합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가 11일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에 출석해 당시 상황과 법적 보상의 필요성을 눈물로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민성철)의 심리로 진행된 이날 변론기일에 원고 측 당사자로 출석한 이 할머니는 대만 위안소로 끌려갔을 때의 참혹했던 기억을 어제 일처럼 힘겹게 증언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며 위안소에 있던 언니가 다락방에 숨겨줬던 일, 일본군이 그런 자신을 내놓으라며 칼을 휘두르고 손을 결박했던 일. 이 할머니는 “그 순간 ‘엄마’하고 큰 소리로 외쳤던 게 아직도 귀인지 머리인지 모를 곳에서 밤이고 낮이고 난다”면서 “진정제 없인 잠을 자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은 피해자가 살아 있는데도 사죄나 배상을 안 하고 있다”면서 “이대로 피해자가 모두 죽길 바라고 있는데 그럼 영원한 전범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청와대에서 농담으로 주고받은 말이 합의라니 말도 안 된다”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한 이 할머니는 재판장을 향해 “4년 전에 소송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해결된 것이 없다”며 재차 배상 판결을 촉구했다. 이날 재판은 2016년 12월 위안부 할머니들과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명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했던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이다. 일본 정부가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하며 공전하던 재판은 지난해 3월 법원이 소장을 공시송달하면서 그해 11월이 돼서야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일본 정부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따라 법적 책임이 강제될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들어 재판이 각하돼야 한다며 재판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을 끝으로 변론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선고기일은 내년 1월 13일로 정해졌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일본 상대 손배소 재판 출석한 이용수 할머니 “日 영원히 전범국가로 남고 싶나”

    일본 상대 손배소 재판 출석한 이용수 할머니 “日 영원히 전범국가로 남고 싶나”

    “14살 조선의 아이로 (위안부로) 끌려가 대한민국 노인이 돼 이렇게 왔습니다. 4년 전에 우리 법을 믿고 이 법(재판)을 했는데 왜 (해결을) 못해 줍니까. 저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판사님 앞에서 호소를 해야 합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가 11일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에 출석해 당시 상황과 법적 보상의 필요성을 눈물로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민성철)는 이날 고 곽예남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6회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첫 변론기일에 출석해 “당당하다면 일본이 재판에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던 이 할머니는 이날 법정에서도 “(처음 증언을 한 1993년 이후) 30년간 위안부로 불려 왔지만 일본은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는데 한국도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법에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은 2016년 12월 위안부 할머니들과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명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했던 소송의 마지막 변론기일이다. 일본 정부가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하며 공전하던 재판은 지난해 3월 법원이 소장을 공시송달하면서 3년 만에 열렸다. 공시송달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은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경우 법원 게시판 등에 관련 내용을 실어 당사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일본 정부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따라 법적 책임이 강제될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들어 재판이 각하돼야 한다며 재판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난 5회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제법 전문가 백범석 경희대 국제대학 부교수는 “주권면제론은 국가 간 무력충돌 사안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중대한 인권침해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날 재판을 끝으로 변론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선고기일은 내년 1월 13일로 정해졌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앞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또 다른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같은 법원 민사합의34부(부장 김정곤)의 심리로 다음달 11일 선고기일이 진행된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강제노역’ 미쓰비시 한국 자산, 새달 30일 압류 가능해진다

    ‘강제노역’ 미쓰비시 한국 자산, 새달 30일 압류 가능해진다

    다음달 30일부터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자산 압류가 가능해진다. 대전지법은 양금덕(91) 할머니 등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신청한 압류자산 매각명령 신청 사건 심문이 10일 0시부로 종료됐음을 미쓰비시 측에 공시송달했다. 이는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았다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실어 전달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이 사건 4차례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또 법원은 압류명령문 공시송달 효력이 발생하는 다음달 30일 0시 이후 현금화 명령을 내릴지 결정할 전망이다. 양 할머니 등이 압류명령 신청한 것은 국내 화력발전소 주요 부품 등에 대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이다. 법원은 압류명령문 효력이 발생하면 매각 등을 통한 현금화 여부를 결정하지만 미쓰비시가 이의제기하면 항고심이 진행될 수도 있다. 양 할머니 등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8년 11월 “미쓰비시는 1인당 1억∼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 과정에서 1명이 숨져 4명분 위자료는 총 8억 400만원이다. 이들은 대법원에서 승소하자 지난해 3월 22일 특허청이 위치한 대전지법에 미쓰비시 특허·상표권에 대한 압류 매각명령 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은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고 일본 교도통신과 NHK는 전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한국 대법원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일본은 단 한 푼도 낼 수 없고 모든 것은 한국이 100% 자국 내 문제로 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지난 8월 피고기업 중 한 곳인 일본제철에 대한 압류명령 결정 공시송달 효력 발생 이후 한국 측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더욱 높여왔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현금화에 이르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면서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일제 징용 노동자) 문제에 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 사법 절차는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한국 측에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싶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법원 “미쓰비시 강제노역 이의 없으면 새달 자산 압류·매각한다”

    법원 “미쓰비시 강제노역 이의 없으면 새달 자산 압류·매각한다”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낸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자산 압류신청에 대해 법원이 심문 절차 종료를 통보하고 미쓰비시 측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다음달 말 강제 압류 및 매각에 들어간다고 예고했다.대전지법은 양금덕(91) 할머니 등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신청한 압류자산 매각명령 신청 사건 심문이 10일 0시부로 종료됐음을 미쓰비시 측에 공시송달했다. 이는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았다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에 실어 전달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미쓰비시 측이 4 차례 변론에 응하지 않아 택한 방법이다. 법원은 이날 또 이의제기가 없으면 다음달 30일 0시 이후로 강제 압류 및 매각 개시에 들어간다고 공시했다. 양 할머니 등이 압류명령 신청을 한 것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갖고 있는 국내 화력발전소 주요 부품 등에 대한 특허권 6건과 상표권 2건이다. 이 신청은 특허청이 대전에 있어 대전지법에 제기했다. 양 할머니 등은 2012년 10월 광주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8년 11월 “미쓰비시는 1인당 1억∼1억 5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해 4명분 위자료는 총 8억 400만원이다. 이들은 대법원 승소하자 지난해 3월 22일 대전지법에 미쓰비시 특허·상표권에 대한 압류 매각 명령 신청을 냈다. 피해자 측 김정희 변호사는 “미쓰비시 측이 법원에 별다른 답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했다.양 할머니 등은 일제강점기 말기 14살 안팎 때 여자근로정신대에 끌려가 옛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공장 등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일본은 1938년 5월 중일전쟁에 전력하기 위해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한국인을 마구 잡아다가 탄광, 제철소 등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을 시켰다. 한국인 750만명 정도가 1493개 일본 기업에서 노동했다고 알려졌다. 공시송달 후 미쓰비시중공업은 “의견서를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고 일본 교도통신과 NHK는 전했다. 일본은 강제 노역이 문제가 될 때마다 한국에 경제적 지원금 5억 달러를 지불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 1월 9일 포스코와 합작한 일본 신일철주금 소유 주식 8만 1075주를 압류한 바 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14시간여만에 찾고도…서욱 국방장관 “경계실패라 생각 안해”

    14시간여만에 찾고도…서욱 국방장관 “경계실패라 생각 안해”

    국회 국방위 출석해 ‘北 남성 월책’ 관련 답변“철책 차단 못했지만 GOP 3단계 작전 내 차단”군단장 출신 김병주 의원 “잘한 작전 아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최근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북한 남성이 철책을 넘은 사건과 관련해 9일 “경계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이날 국방위에 출석해 ‘이번 사건이 경계에 실패한 것인지 실패하지 않은 것인지’ 묻는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의 말에 이같이 답했다. 서 장관은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경계실패 지적에 대해서도 “작전에 아쉬운 점은 있지만 철책 종심에서 차단해 검거를 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전초(GOP)와 관련해 3단계 경계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철책 전방, 철책 선상, 종심 차단 작전 등이다. 철책 전방은 MDL 선상에서의 적극적 차단 작전이다. 철책 선상은 GOP 철책 인근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종심차단 작전은 GOP 철책 후방에 봉쇄선을 설정해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GOP 철책 인근에 설정되는 1봉쇄선과 민간인통제선 경계에 설정되는 2봉쇄선으로 구분된다. 이 남성은 1봉쇄선 내인 GOP 철책으로부터 1.5㎞ 남쪽 지점에서 붙잡혔다.서 장관은 “이번 경우에는 철책 전방에 (시야를 가리는) 차폐물이 많아 감시장비에 걸리지 않았고 철책을 넘을 때 감시장비로 포착한 뒤 곧바로 종심(작전범위) 차단 작전으로 전환했다”면서 “거기서 잡은 것이다. 철책 종심에서 잡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때 출동을 하니까 (해당 민간인이)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왔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홍준표 의원은 “경계가 실패하고 휴전선이 뚫리면 결과에 대한 책임 여부만 문제되는 것”이라면서 “옹색한 설명”이라고 비판했다. 육군 3군단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는 (작전이) 잘됐다고는 하지 않겠다”며 “잘한 작전은 1단계(DMZ 내)에서 잡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철책선 중심으로 돼 있는데, 1단계 비무장지대 내에도 CCTV 등을 넣어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면서 “3단계 민통선 내 지역에서도 감시장비가 많지 않은데, 그래야 나물 채취하러 가는 민간인 등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장관은 “GOP 과학화시스템 개선 사업과 연계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서 장관은 월남한 북한 남성의 신분을 묻는 질문엔 “민간인”이라고 답했다. 서 장관은 이번 사건이 과학화경계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의 지적에 대해서도 “미흡한 점이 있다면 현장점검을 통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지난 2일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철책에 접근하는 미상의 인원을 발견하고 감시장비로 지켜보다가 3일 저녁 철책을 넘어오는 상황은 장비 고장 등으로 놓쳐 월책을 허용했고, 이후 신병을 확보하기까지 14시간 30여분이 걸려 늑장대응 지적이 나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탄원… 항일투쟁 외교 전선의 선구자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독립 탄원… 항일투쟁 외교 전선의 선구자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1월 윌슨 미국 대통령이 천명한 민족자결주의는 나라를 빼앗긴 약소국들을 독립의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런 배경에서 같은 해 8월 중국에서 민족지도자들이 발족한 신한청년당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기로 했다. 파리에 대표로 간 인물이 김규식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김규식은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국제 정세에 밝아 적임자였다. 김규식은 파리로 떠나기 직전 결혼한 김순애와 바로 이별해야 했다. 여운형과 김순애 등은 국내외 각지로 가서 파견 경비를 모으는 한편 한국 대표의 외교활동에 힘을 실어 주려면 대규모 독립운동이 필요하다고 알렸다. 이런 활동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김규식이 파리에 도착한 것은 국내에서 일제의 탄압 속에 만세운동이 계속되던 1919년 3월 13일이었다. 김규식의 임무는 회의석상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비망록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전승국인 일본의 방해로 애당초 불가능했다. 이를 예상한 김규식은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먼저 파리 샤토가 38호에 한국공보국을 설치했다. 각국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언론, 정당은 물론 사회주의 조직과도 접촉했다. 그를 통해 일제의 죄악상을 폭로하고 독립의 정당성을 홍보했다.●한국 독립 문제 국제적 부각… 동정 여론 형성 한국공보국은 공보국회보를 발간하고 ‘한국독립에 대한 탄원서’를 회의에 제출했다. 김규식이 만났던 미국 인사는 외교관이자 언론인인 스티븐 본잘이라는 사람이었다. 본잘은 한국에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유럽에서 전범을 응징하면 나중에 국제연맹이 일본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김규식은 좌절하지 않았다. 조르주 클레망소 강화회의 의장에게 임정 대통령 이승만 명의의 서한을 전달했다. 김규식이 파리에 머물던 4월 11일에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대표단 지원사업은 임시정부로 이관됐다. 임정은 공보국을 임정 파리위원부로 개칭하고 김규식을 임정 외무총장 겸 파리위원부 위원장으로 임명해 힘을 실어 주었다. 김규식은 4월 26일에는 ‘통신국회보’를 발간해 3·1운동 등 독립운동 소식을 알렸다. 한일합병의 무효화 등을 요구하는 20개 항목을 담은 독립공고서를 비롯한 서한을 강화회의 이사회 위원들과 각국 정부에 여러 차례 보냈다. 달걀로 바위 치기 같았지만 김규식의 다각적인 노력에 침묵을 지키던 유럽 신문들이 움직여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규식의 활동은 열강들의 외면으로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고 동정적 여론을 형성하는 간접적인 성과는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사(尤史) 김규식은 1881년 1월 29일 부산 동래에서 김지성과 경주 이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구한말 선전관을 지낸 부친은 일제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갔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 김규식은 사실상 고아가 됐다.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지만 형편이 어려워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어린 나이에 고난을 겪었다.●16세 美 유학… 박사과정 장학생 접고 귀국길 그를 구한 사람은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였다. 그의 아내 릴리아스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언더우드는 분유와 약을 들고 가마를 타고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 아이는 너무 굶주려서 먹을 것을 달라고 울부짖으며 벽지를 뜯어내어 삼키려고까지 했다.” 언더우드는 병든 김규식을 극진히 보살피고 입양했다. 5세 때 김규식은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교(경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영어를 대단히 빨리 익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어 1894년 한성 관립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김규식은 독립신문사에 입사하고 독립협회에도 가입했다. 김규식은 16세가 된 1897년 서재필의 권유와 언더우드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동부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에 입학했다. 예과를 2등으로 마치고 본과에서도 전 과목 평균 90점 이상을 받았다. 외국어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전교강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스스로 학비를 조달해야 했지만 1903년 전체 3등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한 해 가을 그는 프린스턴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 1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장학생으로도 선발됐지만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귀국을 결심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김규식은 은인인 언더우드 목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언더우드의 비서와 주일학교 교장직을 맡으면서 새문안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할 수 없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105인 사건’을 일으켜 독립운동가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대거 구속했을 때 투옥은 모면했지만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심해졌다. 김규식은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여할 결심을 굳혔다. 일제의 추적을 따돌리고자 호주로 간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상하이로 향했다. 상하이에 도착한 때는 32세 때인 1913년 4월 중순이었다. 신규식, 박은식 등이 창설한 동제사(同濟社)가 프랑스 조계에 설립한 박달학원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중국에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돼 임무를 마친 김규식은 임정 구미위원부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돼 1919년 8월 22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구미위원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교 활동을 벌이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사실상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김규식은 미국 국무부 당국자들에게 독립운동 지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윌슨과 관리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냉대를 받았다. 구미위원부는 한국친우회를 결성하고 대중 연설이나 홍보물 배포, 신문·잡지 기고 등의 간접적 활동을 폈다. 이는 미국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1920년 3월 미국 상원에 한국 독립안이 상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김규식은 1921년 1월 상하이로 돌아가 임정에 합류했다. 그러나 임정의 내부 갈등에 염증을 느껴 구미위원부 위원장과 학무총장을 사임하고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를 창립해 한중 합작으로 항일운동을 벌였다. 1921년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규식은 참가를 결정했다. 고비사막을 횡단하고 러시아 이르쿠츠크를 거쳐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막된 회의에 참석했다. 50여명이 참가한 한국대표단은 레닌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았다. 중국으로 돌아온 김규식은 복단·동방·북양대학 교수로 일하는 한편 삼일중학을 세웠다. ●독립단체 통합 참가, 민족혁명당 국민부 부장에 1925년부터 김규식은 독립운동 계파 통합을 위한 민족유일당운동에 참가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자 교육에만 열중했다. 1935년 7월에는 난징에서 한국독립당, 의열단 등 5당 통합으로 창당된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과 국민부 부장으로 선임됐다. 1942년에는 좌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한국독립당과 광복군,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가 임정을 중심으로 통합했다. 사천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김규식은 충칭 임시정부로 와서 국무위원과 선전부장으로 선임됐다. 1944년에는 임정 부주석에 취임했다.광복 후에도 그의 통합정신은 이념과 노선을 초월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으로 이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란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9월에 납북당했다. 평북 만포진까지 끌려간 김규식은 그해 12월 10일 동상과 천식 등으로 고통받으며 69세를 일기로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1989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고모이기도 한 부인 김순애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몸 상태 돌아왔다 ”… 아베, 지역구서 보수 결집나서

    “몸 상태 돌아왔다 ”… 아베, 지역구서 보수 결집나서

    아베 신조(얼굴) 전 일본 총리가 정치활동 재개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 9월 퇴임 후 한 달 새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극우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를 2차례나 찾았던 그는 11월의 첫날을 맞아 자신의 근거지에서 ‘금의환향’ 이벤트를 가졌다. 그가 내년 9월 자민당 총재(총리) 선거에 재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어서 앞으로의 행보는 계속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2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1일 총리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 모습을 나타냈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의 묘소에 성묘한 뒤 지지자들에게 “몸상태가 돌아왔다. 앞으로는 한 사람의 의원으로서 스가 총리를 지원하면서 우리 지역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3일까지 현지에 머물면서 후원회 간부들과 만남 등을 가질 예정이다. 요미우리는 “아베 전 총리는 외국 정상들과의 관계를 활용해 스가 총리를 지원하는 동시에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로 결성된 보수그룹을 거점으로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달 말부터 보수세력 모임을 중심으로 활동을 본격화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보수 성향 의원그룹 ‘창생 일본’ 모임에 참석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과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등 측근들이 줄줄이 얼굴을 비쳤다. 27일에는 보수계 단체인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이 그를 초청해 행사를 갖고 최고고문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내 소속파벌인 호소다파 복귀 시점에 대해서는 “자민당 전체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당분간 (파벌보다는) 한 의원으로서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호소다파 관계자는 “다른 파벌이 반발할까 봐 상황을 좀더 보자는 것으로, 내년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요미우리에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여대생, 갓 낳은 딸 도심공원에 살해·유기했다가 1년 만에 덜미

    日여대생, 갓 낳은 딸 도심공원에 살해·유기했다가 1년 만에 덜미

    일본의 20대 여성 회사원이 갓 태어난 딸을 살해해 유기했던 1년 전 범행이 들통나 경찰에 체포됐다. 이 여성은 지난해 자신이 살고 있던 고베에서 400㎞ 이상 떨어진 도쿄까지 와서 범행을 저지르며 완전범죄를 꿈꿨으나 경찰의 끈질긴 추적에 결국 붙잡혔다. 지난해 11월 8일 도쿄도 미나토구 신바시의 한 공원에서 갓난아이의 시신 일부가 땅 위로 돌출돼 있는 것이 발견됐다. 탯줄까지 떨어지지 않은 영아로 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입안은 티슈 더미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부검 결과 인위적인 힘으로 기도가 폐색된 상태에서 일어난 질식사로 판명났다. 경시청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살해돼 유기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거의 정확히 1년이 흐른 이달 1일 경찰은 효고현 고베시에 사는 회사원 기타이 사유리(23)를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했다. 기타이는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기 닷새 전인 지난해 11월 3일 심야 도쿄 히가시신바시의 구립공원 흙바닥 밑에 자기 딸의 시신을 묻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범인을 찾기 위해 공원 주변 타워맨션 등 주민 약 800가구에 대한 탐문을 실시했고 공원 주변 CCTV에 찍힌 약 2만 9000명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최근 기타이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지난해 범행 당시 효고현 내 사립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산부인과 진료를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산부인과에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태어났다면 지난해 11월쯤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 혐의에 대한 심증을 굳히고, 기타이로 수사망을 압축했다. 구직활동을 위해 가끔씩 도쿄를 방문했던 기타이는 범행 당일 비행기로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가 다음날 고베로 돌아갔다. 경찰은 도쿄에서 출산하고 살해한 뒤 유기까지 한번에 마친 것으로 파악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북한선전매체 “6·25전쟁은 북침”… 중국 ‘항미원조’에 힘싣기

    북한선전매체 “6·25전쟁은 북침”… 중국 ‘항미원조’에 힘싣기

    한미와 중국이 6·25전쟁의 침략 주체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북한선전매체가 ‘한미에 의한 북침’을 주장하며 중국에 힘을 실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30일 ‘역사의 진실을 전도하는 파렴치한 망동’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조선전쟁(6·25전쟁)이 미제와 이승만 도배들이 도발한 침략 전쟁이라는 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의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조선에서 튀어나오는 ‘남침’ 나발은 역사에 대한 무지무도한 왜곡이고 우리에 대한 공공연한 도발”이라며 “침략자·도발자들이 부정한다고 하여 결코 역사가 달라지거나 전범자들의 죄악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이 명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해서는 “애초에 미국의 거수기로 전락돼 공정성과 정의를 줴버린(내팽개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침을 ‘남침’으로 오도하여 채택한 부당한 결의”라고 폄훼했다. 매체는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망발을 불어대도 미제와 그 주구들의 무력 침공으로부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영예롭게 수호한 조국해방전쟁을 결코 훼손할 수 없다”며 “위대한 전승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자국의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하자 한미 양국은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며 반박한 바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