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범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수노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노예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연재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 음료
    2026-07-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503
  • 폴 포트 제3국 재판 고려/미 국무부 대변인

    【워싱턴 AP AFP 연합】 미국은 캄보디아 정부가 지난 70년대 민족 대학살극을 자행한 크메르 루주 지도자 폴 포트를 법의 심판대에 세울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돼있으며 그를 심판하기 위한 재판장소로 제3국을 고려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존 딩어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미국은 지난 75­79년 집권기간중 1백만명이상을 학살한 폴 포트를 심판할 수 있도록 유엔에 도움을 요청한 캄보디아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한 관리는 국제전범재판소로 네덜란드·덴마크·호주·캐나다 등 제3국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 인도 함피:하(세계 문화유산 순례:35)

    ◎자연과 어우러진 거대한 「조각도시」 함피의 비자야나가르 유적군은 독특한 대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한 무더기의 거대한 예술품이었다.눈에 보이는 것은 벌거벗은 바위산 골짜기와 훼손된 사원 뿐이다.그러나 그것이 이뤄내는 조화는 함피를 차라리 섬세하게 계획된 「조각도시」로 여겨도 좋을 만큼 절묘했다. 함피 유적지는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 대충 둘러 보는데도 적잖은 품이 든다.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인도산 택시 「앰배서더」를 한대 빌렸다.1950년대 영국의 「모리슨 옥스퍼드」를 모방해 만든 이 차는 비록 구식이었지만 오토 릭샤보다는 한결 널찍하고 빨랐다. 비탈라 사원으로 먼저 차를 돌렸다.16세기 비자야나가르 왕조가 남긴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유적이다.유장하게 흐르는 퉁가바드라강을 따라 남쪽으로 한참을 달렸다.멀리 희미한 물상이 망막에 잡혔다.대지의 복사열 때문일까.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비탈라 사원의 모습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가물가물했다. ○곳곳에 훼손된 사원/벌거벗은 바위산과 절묘한 조화 마침내 비탈라 사원.장엄한 건축미에 압도된 채 사원안으로 들어섰다.사원 정면의 한 건물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무얼까.사원 관리인에게 물으니 함피의 명소 「뮤직 템플」의 돌기둥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모여든 것이라고 했다.관리인은 제 나라의 문화를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안내를 자청했다.『자,여기를 두드려 볼테니 무슨 소리가 나는지 한번 귀 기울여 보세요』 그는 돌기둥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순간 더할나위 없이 청아한 음악소리가 기둥에서 흘러 나왔다.『사,레,가,마,파,다,니,사』(인도의 도,레,미,파,솔,라,시,도)….제국시절 이곳에서 궁중연회가 열리면 악사들은 아무런 악기도 없이 이 기둥을 두드려 음악을 연주하고,무대에서는 무희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고 한다.「뮤직 템플」은 단지 청각만을 자극하지 않는다.그 기둥에 새겨진 조각상의 정교함과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비자야나가르 건축예술의 전범을 보여준다. 높이가 3.6m에 이르는 56개의 돌기둥 마다에 새겨진 사람과 동물의 모습은 살아 숨쉬는듯생동감이 넘쳤다.돌기둥에 삐죽 나온 선반격의 받침돌 초엽은 제비처럼 날렵했다.게다가 이 사원 기둥은 하나의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것이어서 신묘함을 더했다. ○비탈라사원 56개 돌기둥은 손가락으로 때려도 청아한 소리 비탈라 사원의 또 다른 주목거리는 앞마당에 있는 돌수레다.이것은 원래 남인도에서 제단에 모셔진 신상이 바깥 나들이를 할때 사용하던 나무수레를 본따 만든 것이다.화강암으로 된 이 돌수레는 비시누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비시누신은 피부색이 검고 노란색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그리고 네 손에는 각각 곤봉과 소라고둥·원반·연꽃을 들고,「가루다」라는 커다란 독수리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는 신이다.비탈라 사원의 돌수레는 그 「가루다」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한때는 실제로 굴러 갔다는 이 돌수레는 지금은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함피의 유적을 답사하는 것은 곧 성지를 순례하는 것과 같았다.끝없이 이어지는 힌두사원과 종교적 우상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신에 멀미가 나서 아뜩한 정신을 추스리며 꽤 먼 길을 갔다.폐허가 된 옛 왕궁터를 끼고 남동쪽으로 돌자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지도를 펼쳐 보았다.이곳이 바로 「로터스 마할(연꽃 궁전)」이었다.「제나나」라고 불리는 작은 성벽 안에 있는 이 2층 건물은 왕이나 군사령관이 묵었던 숙소다.종교적 색채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 우선 신선했다. 「로터스 마할」은 함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유적 가운데 하나다.이 궁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축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로터스 마할」은 인도­사라세닉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매우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궁전을 떠받치고 있는 24개의 사각 기둥들은 화려한 잎사귀 모양의 아치로 연결돼 있어 더없이 위풍당당했다.또 인접한 두 아치 사이의 삼각공간인 스팬드럴(spandrel)에는 원형 돋을새김 흔적이 역력해 환상적인 여운이 감돌았다. 「로터스 마할」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8각형 구조의 천장이다.천장은 둥근 지붕과 평지붕이 엇섞여 이뤄졌다.그 한 가운데에는 고딕 양식의 대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고창층이 있어 시선을 끌었다.이곳은 치장벽토로 장식한 아치와 띠조각,굵은 동살,까치발,커다란 닫집인 벽감 등이 정교하게 어우러져 있어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뛰어난 건축술이 그대로 엿보였다.기둥과 아치는 회교양식을,바닥·천장·배내기·치장벽토 장식 등은 힌두양식을 따랐다.그토록 상극이던 힌두교와 회교가 비록 건축물에서나마 행복한 결합을 하다니….아이러니와 허무로 가득찬 역사를 「로터스 마할」에서 읽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진수를 보았다는 뿌듯한 감흥을 안고 「로터스 마할」을 나왔다.먼 발치에서 다시 돌아보았다.건물 동쪽 모퉁이에 결딴난 채 방치돼 있는 돌기둥같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여인상 기둥인 카리아티드(caryatid)의 잔해임에 틀림없었다.그곳에는 뒷발로 일어선 「얄리」의 자취도 남아 있었다.「얄리」는 인도의 건축물에 흔히 등장하는 사자 비슷한 가상의 동물이다.비탈라 사원 돌기둥에서도 「얄리」를 만났다. ○왕이 머물던 「로터스 마할」굴은 인도­사라센 건축양식의 진수 함피에 또다시 아쉬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일모도궁이라 했던가.마음을 함피 유적에 묶어두고 차에 올랐다.차창밖으로 보이는 진귀한 풍경이 이국정서를 자극했다.네루가 생전에 즐겨 썼다는 네루모에 허리를 감싸는 치렁치렁한 천 룽기를 걸쳐 입은 남자,바느질 없는 원색의 옷감 사리를 휘휘감고 짓붉은 이마점 빈디를 찍은 여인의 모습이 이채로웠다.또 십자 장대목위에 사탕수숫단을 싣고 가는 소며 더위에 지쳐 혀를 한뼘이나 빼어 물은 개,거무튀튀한 맨발에 발가락지까지 낀 낙타몰이꾼….함피는 언제 보아도 넉넉하고 평화롭고 정겨운 「생명의 도시」였다.
  • 캄보디아 20년 내전 멈추는가/폴 포트 투항과 정국 전망

    ◎내년 총선앞두고 연정내 권력다툼 치열/협상노린 크메르 루주측 속임수 일수도 영화 「킬링 필드」의 실재 주역인 폴 포트(69세 추정)가 마침내 투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메르 루주 라디오 방송은 18일 폴 포트의 투항 사실을 알리면서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전했다.그동안 크메르 루주와 협상을 벌여온 넥 분치헤이 캄보디아 정부군 참모차장도 폴 포트가 측근들과 함께 자신의 휘하에 있다가 배신한 게릴라 세력에 투항했다고 전한뒤 게릴라 세력이 그를 국제전범으로 기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폴 포트의 투항은 캄보디아의 20여년 내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집권기간중 캄보디아 전체국민의 4분의1에 달하는 2백여만명을 학살해 악명을 떨쳤던 폴 포트는 그간 캄보디아 정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게 사실이다.그는 75∼79년 집권기간중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 하나로 어른 아이 할 것 없는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그후 79년 베트남을 등에 업은 캄보디아 구국전선 세력에 밀려 북부로 밀려난 뒤에도국토의 20%를 장악,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그가 93년 이후 팽팽한 균형속에 연정을 유지해온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와 훈센 제2총리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온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폴 포트의 이번 투항이 내년 캄보디아 총선을 앞두고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확장을 꾀하고 있는 양계파간의 갈등이 절정을 이룬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일부 분석가들은 크메르 루주가 양대 계파의 정치투쟁을 틈타 새로운 협상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웅 훠트 캄보디아 외무장관은 19일 폴 포트가 투항했다는 보도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보도는 90%정도 사실일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폴 포트의 투항에 대한 의혹은 미국 정부 당국자로부터도 제기됐다.니콜러스 번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8일 폴 포트를 「대량 학살자」로 규정한뒤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이 캄보디아 정부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해 「심각히 우려한다」』고 말했다.번스 대변인은 이어내주로 예정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캄보디아 방문이 취소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폴 포트의 투항에 대해 회의적인 분석가들도 캄보디아 정파들이 폴 포트를 진정 국제전범으로 처리하려 하기보다는 그를 사면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활용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들은 그의 투항을 처음 알린 크메르 루주 방송이 우선 폴 포트가 누구에게 투항했는지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게다가 현재 크메르 루주 라디오를 누가 장악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따라서 분석가들은 오히려 크메르 루주의 휘하세력이 누구에게 기울지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 히로히토 개전 책임있다/일왕 비서실장 녹음 증언 30년만에 공개

    【도쿄 AFP 연합】 고 히로히토(유인) 일왕은 일본의 2차대전 개전에 「책임」이 있으며 일단 평화조약이 체결된 뒤 하야하도록 충고를 받았던 것으로 일본의 마지막 옥새상서(일왕 비서실장) 기도 고이치씨가 증언한 것으로 30년만에 공개된 문서에서 밝혀졌다. 기도씨는 중의원 도서관에 보관했다가 30년이 지난후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67년 이루어진 16시간분의 녹음 인터뷰에서 『일본헌법상 천황은 군통수권자로 전쟁의 최종책임을 지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히로히토의 전쟁책임론은 미국 주도하의 연합국이 그를 전범재판에 회부하지 않기로 하고 강제퇴위시키지도 않기로 결정한 이래 지금까지 미결 문제로 남아있다.
  • 유엔,세계전범에 유죄평결/전후 처음/회교도 학살­고문 등 혐의

    【헤이그 AFP AP 연합】 유엔 옛유고전범재판소는 7일 전범 혐의로 기소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두산 타디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전범재판소 3인 재판부는 타디치에게 적용된 31개 기소항목 중 11개 항목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전범에 대한 유죄 평결은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것이다. 41세의 타디치는 지난 92년 5월부터 12월까지 세르비아계의 보스니아 회교도들에 대한 「인종 청소」 기간중 보스니아 북서부의 여러 수용소에서 회교도 13명을 학살하고 18명에게 고문을 가한 혐의로 94년 2월 뮌헨에서 체포돼 이듬해 4월 전범재판소에 인계됐었다. 재판부는 타디치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지 1주년이 되는 오는 7월1일 형량선고를 내릴 예정이나 선고 발표는 그에게 항소 기회를 주기 위해 30일간 연기될 전망이다. 전범재판소는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고 있어 타디치는 최고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 황장엽씨 발언과 언론보도/옥태환(서울광장)

    황장엽씨가 작년 8월 평양에서 썼다는 「조선문제」라는 논문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가뜩이나 한보사태와 경제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이 논문에 의하면,북한은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무력 적화 통일을 위한 준비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김정일이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와 화학무기,미사일로 한국을 초토화시킬수 있다고 한다.그의 발언 중에서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이다.논문에 언급된 내용이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인지 개발중이라는 이야기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경우든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충격적 내용 너무많아 현재 우리 국민이 신문지상을 통해서 알고 있는 바는 북한이 한두개의 핵폭탄을 만들수 있는 플로누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은 가지만 지난 94년 10월 북·미간의 제네바합의서에 의거,핵무기 제조 계획을 동결했으며,그 대가로 한·미·일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서 1천MW급 경수로 2기를 제공받고 경수로 발전소가 완공될 때까지 매년 발전용 중유 50만t을 제공받는다는 것이다.그리고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북한으로 갈 때쯤이면 과거 핵문제 의혹까지 밝힘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협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아울러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자신들의 정보에 근거해서 북한은 지금까지 제네바 합의를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대북 경수로 지원이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기회있을때마다 우리를 설득해왔다. 그런데 만에 하나 황장엽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KEDO를 통한 대북 경수로 지원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하며,북한의 핵문제는 원점에서 다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미국 정부도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이 문제에 신중히 접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미 국무성은 황장엽씨가 핵문제와 같은 북한의 민감한 군사기밀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그의 발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한편,한국과 함께 공동으로 그의 신문에 참여함으로써 이 문제를 명확히 밝히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황씨에 대한 조사방법은정부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처리하겠지만 KEDO 사업의 순조로운 진척을 위해서도 황장엽씨의 핵 발언은 모든 문제에 우선해서 한점의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또한 황씨의 발언과 관련,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툭하면 북한관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남한 불바다」주장이다.전쟁이란 감정이나 의욕만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상대방의 군사력,경제력은 말할 것도 없고,국제정세까지 감안하여 모든 조건들이 자국에 월등히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침공결정을 내릴수 있다는 것은 일반상식에 속한다.물론 북한이 병력이나 무기숫자에 있어 남한을 다소 앞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통해서 한국에 엄청난 손해를 입힐 수는 있다.그러나 경제력이 자신의 20배가 넘는데다 OECD 회원국이자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한국을 상대로 전쟁을 통해서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북한의 지도층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 씻어야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붕괴위기에 몰리면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이렇게 할 경우 김정일은 전범으로 몰려 중국 등 제3국으로 망명할 기회마저도 박탈될 것이기 때문에 정권붕괴 위기시 남침보다는 망명을 택할 것이란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이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남한 불바다」 주장은 긴장감 조성을 통한 북한의 내부결속과 남한사회 분열 및 대외무역 방해공작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황씨 발언을 두고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등 일부 해외 언론들은 『황장엽씨가 진짜 망명자인지,아니면 공산정권들이 특수 메시지 전달을 위해 가끔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음모의 소산인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물론 필자가 황장엽씨의 순수한 망명동기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국내정세불안 방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이러한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황씨의 발언에 대한 언론보도는 충분한 검증을 거치는 등 좀더 신중한 접근자세를 보였으면 한다.
  • 황장엽­자유로의 긴 여로/통일에 보탬되게 하는건 우리 몫(사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20일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다.실로 멀고도 긴 여로였다.우리는 무엇보다 황씨가 바라던대로 한국에 건강한 모습으로 오게된데 안도하고 그를 진심으로 환영해마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적 관례에 따라 순리대로 일을 처리해준 중국과 한달여 동안이나 그의 신변을 지켜주고 서울까지 안전하게 안내해준 필리핀정부에도 감사한다.또한 우리정부 당국의 이번 일처리 솜씨도 돋보였음을 아울러 평가하지 않을수 없다.이번 사건이 매우 미묘하고 복잡했음에도 당국은 끝까지 신중하고 면밀하게 대처했다. 황씨의 망명이후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예우문제로 논란이 있었다.「망명」인가,「귀순」인가에서 부터 「전범」인가,「영웅」인가에 이르기까지 논의가 다양하다.그러나 우리는 이번 일의 성격상 굳이 어의에 구애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더구나 그를 「전범」운운 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그가 오늘의 북한에 희망을 잃어 한국에 온 이상 「전범」여부를 따지는 것은 비약이다. 그는 『북조선은 사회주의와 현대판 봉건주의,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체제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그가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버렸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북한사회를 부정하고 있는 것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는 도착성명에서 『남쪽 형제들과 손을 잡고 전쟁을 막고 우리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그가 가진 정보와 그의 식견이 한반도의 평화와 조국의 통일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만이 황씨와 우리모두에게 주어진 과제 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우선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그동안 중국과 미국도 이 부분과 관련해 여러가지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주변국들의 이해나 관심 이전에 황씨의 망명이 남북간 새로운 긴장요인이 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다행히 북한은 이번 일이 발생한 연후에도 4자회담 문제,대북 경수로지원 사업 등에서 예상보다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다행한 일이다. 국내적으로는 벌써부터 「정치적 이용」문제로 신경들을 곤두세우고 있다.정부당국은 문제의「황장엽 리스트」가 없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밝혀 왔음에도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거듭 거론하고 있다.우리는 그것 자체가 정치적 이용이라고 생각한다.황씨의 도착에 즈음한 정치권의 반응 또한 복잡하다.황씨의 망명사건에 정치권이 제각기 다른 코멘트를 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황장엽씨가 가지고온 정보의 공유문제를 두고 그동안 미국이 공개적으로 언급 한바 있고 일본도 의사표시를 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의 정보가치 때문에 관련국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앞서도 본란을 통해 지적했듯이,그렇다고 해서 미국측이 주장하듯 황씨의 조사 과정에 미국당국자가 입회하는 식은 곤란하다.주권침해가 아닐수 없다. 문제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데 차제에 상호간 믿을수 있도록 3국간 새로운 정보교환 체제를 갖추었으면 한다.대북정보에 관한한 3국이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공유하는게 가장 바람직하다.
  • “환영” 일색… “황풍 불까” 촉각도/정치권 반응

    ◎여­“한반도 평화정착 기여 기대”/야­“황 리스트 정치 이용 없어야” 황장엽씨의 서울도착에 대해 정치권은 20일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여야간에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신한국당은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감안,초당적인 대처에 무게를 둔 반면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정부 여당이 「김현철 청문회」와 연말 대선 정국에서 황씨의 망명을 정치적 호재로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특히 정치권은 국내 친북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이른바 「황장엽리스트」가 존재하는지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란을 벌인바 있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만에 하나 「황풍」이 메가톤급 「북풍」으로 정치권에 회오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신한국당 이윤성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목숨을 건 그의 망명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이대변인은 이어 『남북관계·통일문제 등과 연관된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당적이고 민족적인 관점에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국민회의 윤호중 부대변인은 성명에서 『황씨는 과거 허물을 반성,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전쟁 억지와 평화통일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가 화제가 되었던 점에 미루어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윤부대변인은 『특히 정부여당은 황씨의 망명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남북문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은 『주체사상을 창안한 이론가이자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한다』며 『북의 모든 정보를 한 점 남기지 말고 사실대로 우리측에 전달할때 우리 국민은 그의 정치적 망명을 인정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황장엽씨 서울도착을 보며/최평길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민주체제 포용력으로 감싸자 한국에 온 칠순의 황장엽 비서를 보는 시각은 통일 견해만큼이나 다양하다.우선 황장엽은 그 근본이 철학자이고 그 나름의 민족주의자이며 북한 정권의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권력 소프트웨어 역할 황장엽은 북한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1949년,그의 나이 26세에 모스크바 대학 대학원과 철학과에 입학하여 1년간 러시아어를 배우고 다시 3년간의 각고 끝에 1954년에 철학 준박사를 받고 귀국하면서 바로 김일성 대학 철학과장이 된다.그리고 김일성파·연안파·소련파들이 권력을 분점하고 전쟁복구 사업에 전력하여 북한 수준에서 학문활동공간이 있던 1956년 김일성대학 창립10주년 기념 논문집에서 학위논문 「부정의 부정 법칙」을 공산북한사회에 맞추어 발표하게 된다. 그 내용은 낡은 사회인 봉건사회가 부정된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고,그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모순의 부정이 공산사회이며,공산주의사회 역시 자기부정으로 한단계 높은 자기긍정의 통합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축적되어온 자본주의 사회의 전통문화와 우수한 생산시설은 그대로 계승된다는 발전의 연속성을 인정하고 노동자계급을 공산사회주의에서 또 한번의 자기부정을 통해 단순노동자­피착취자가 아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역량을 가진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다. 1956년 3월,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후루시초프가 밝힌 스탈린 개인숭배와 1인장기집권 비판 입김은 평양에도 들어온다.따라서 6·25전후복구와 경제발전의 지지부진함을 빌미로 소련파·연안파 제휴세력에게 협공당하던 1956년 제3차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김일성은 정치적으로 자주·경제적으로 자립,군사적으로 자위하는 국가를 이루기 위해 주체적으로 자기운명을 개척하고 노동당 주위에 하나로 뭉치자는 주체이론을 정립한다.이 시기로부터 황장엽은 김일성 정권의 정당성에 이론적 밑받침을 제공하고,이를 계기로 그의 나이 40대에 김일성 대학총장,50대에 최고인민회의 의장,60대에 사상담당비서,70대에 국제담당비서로 권력 핵심부에 진입한다.황장엽은 힘있는 집행부서보다는 사상 또는 국제분석 담당 분야에서권력 소프트웨어로서 일해왔다.러시아·중국,과거 동구 공산국가에서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는 외무장관,KGB 등 대외부서의 보고서를 종합하는 외교안보의 최고위직이지만 북한에서 그의 당내 권력서열은 20위에 불과하여 김영남 외교부장이나 같은 비서인 계응태,전병호,한성룡 등은 오히려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로서 고뇌 이렇게 황장엽은 권력 핵심부의 분명한 공산주의 사상가이기는 하지만,북한공산주의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올곧은 철학도였으며,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살리려 북한에서 남쪽으로 온 그나름의 민족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또한 그는 6·25전쟁 전인 1949년에 소련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귀국하여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전범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극우·극화논리 극복을 따라서 황장엽의 망명동기가 민족주의자로서 고뇌와 번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주체사상은 출범 초기에는 대내외 자주·자위·자립을 강조하는 정리된 하나의 이념체계였으나 70년대 이후 김일성 개인 우상화의 바이블이 되면서 황장엽은 스스로 이러한 변질된 김일성종교에 거리를 두게 되고,김정일은 아버지의 리더십과 차별화를 노리는 과정에서 스승인 황장엽보다는 신세대 황장엽을 대체하려는 것 같다. 그는 공산독재에 항거하여 저항운동을 벌였던 북한판 솔제니친은 아니다.그러나 이제 남한에 오는 그를 북한에서 경험하고 본 바 대로 정직한 북한 현대사를 쓰게 하고 남한에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게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여,나머지 여생을 조용히 사색하고 집필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의연함을 보여줄 때이다.그의 망명으로 그의 가족은 물론 12촌 친척까지 숙청이 되었다는 소식이 있고 보면 우리는 그의 인간적 비애를 이해하고,황장엽 리스트 폭로와 국내정국 타개용 카드 사용 그 자체가 국내정치적 이용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동시에 북한정보 획득같은 기술 접근방식보다는 원로철학가,북한전문가,지각있는 정보분석가들로 하여금 그의 대화 파트너가 되게 하여 본인 스스로가 자연스러운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황장엽을 보는 극우,극좌 논리를 극복한 우리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때이다.
  • 작가 겸 평론가 이인화 이대 교수 「인간의 길」내

    ◎첨삭과 허구로 그린 「소설속 박정희」/반항아 기질 주인공의 「운명을 거부한 삶」/2∼3부 「혁명의 길」·「나의조국」 등 10권 예정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소설적인 인물입니다.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내볼만한 주인공이지요』 작가이자 평론가인 이인화씨(31·이화여대 교수)가 박 전 대통령을 모델로 소설 「인간의 길」을 살림출판사에서 펴냈다.현재 나온 1,2권에 이어 다음달 나올 3권으로 「인간의 길」을 마감한 뒤 「혁명의 길」과 「나의 조국」으로 이어지는 모두 3부작 10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우리 역사가 배출한 많은 인물 가운데 박씨만큼 자신의 운명을 극단까지 살아낸 카리스마적 존재가 있을까요.선·악 양면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인물,마키아벨리스트인가하면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던 국가주의자 박씨는 고유명사를 넘어선 보통명사,인문학적 탐구대상이라는 생각입니다.역사의 굵은 능선이 된 한 특별한 인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길」은 일제시대 만주군 장교 허정훈의 삶을 그 조부 허생원 대로부터 그려내고 있다.극양의 사주로 태어날 때부터 파멸의 운명을 예고받은 아버지 선영은 아니나다를까 동학혁명에 가담,멸문을 자초하고 폐인이 된다.정훈은 일제시대 그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나 굴종과 가난을 팔자로 받아들이는 조선인의 삶에 반발,대구사범학교로 만주군관학교로 떠돌지만 운명을 거부하는 반항적 기질때문에 무수한 죽을 고비를 넘긴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가 바로 베토벤은 아니잖습니까.박씨의 화신 허정훈 역시 첨삭과 허구가 따른 인물입니다.창조된 주변인물과 역사설정도 많지요.하지만 창작자의 이같은 개입은 운명을 딛고 일어선 한 초인적 인물을 더 강렬하고 장엄하게 형상화하기 위한 범위내에서 이뤄졌습니다』 최근의 박정희 재평가 분위기속에서 이 소설은 문단안팎으로 곱건 굳건 적잖은 시선을 모으고 있다.하지만 이씨는 이같은 시류가 반갑지만은 않다.사회 분위기가 지식인들의 몸사리기를 불러와 거쳐야 할 논쟁을 가로막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버트란트 러셀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악한 인간의 극단적 운명에서 더 많은 것을 암시받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전범없이 흔들리는 최근의 지식인사회에 이 소설이 하나의 전망을 암시하는 기폭제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씨는 역사적으로 충분한 평가가 선행되기를 기다리며 박씨에 대한 보다 사실적인 접근과 가치판단이 불가피할 2부 「혁명의 길」,3부 「나의 조국」 등 60년대 이후의 밑그림그리기를 21세기로 미뤘다.
  • 서현섭 파푸아뉴기니대사 「일본인과 천황」

    ◎허구가 허구를 낳는 천황제의 허울/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켜 만든 ‘125대의 가계’/거울·칼·구슬 3개의 신기에 담긴 「현인신」 실상 일본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천조대신)의 자손이 기원전 660년에 나라를 세우고 천황에 즉위했다는 대목이 나온다.일본인들은 이를 근거로 이 인물이 바로 제1대 진무천황이며,따라서 천황가는 지금의 아키히토(명인)천황에 이르기까지 125대에 걸쳐 만세일계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한다.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켜 허구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일본인.그들에게 천황은 이미 「논리」가 아니라 하나의 완고한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최근 출간된 「일본인과 천황」(고려원)은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제를 통해 본 또하나의 일본론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지은이는 「일본은 있다」「일본인과 에로스」 등 일본관련서를 펴내 널리 알려진 서현섭씨(53·파푸아뉴기니대사). 그는 이 책에서 천황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46개의 함축적인 소제목으로 나눠 소개한다.「허구가허구를 낳는」 천황제의 허울을 벗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인들은 천황은 현인신이라는 가공의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거울·칼·구슬 등 3종의 신기와 천황가의 만세일계 신화를 고안해냈다.일본인들이 받들어 모시는 신기는 과연 천년의 풍상과 천황가 내분의 소용돌이를 견뎌온 진품일까.이에 대해서는 일본학자들조차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애매한 답변을 한다.만세일계 신화도 허구로 가득차 있다.만세일계 신화는 일본의 천황가가 혈통의 카리스마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음을 반증한다.황실전범이 황위계승자를 장남,장손 등 남자로 국한하고 있으며 양자입양을 금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천황가의 혈통숭배 때문이다.지은이는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만세일계의 허상을 구체적인 사실을 들어 폭로한다.일본은 14세기 초부터 약 60년간 천황가가 남북조로 양분돼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항쟁을 벌였다.일본 정치에서 말하는 이른바 남북조시대다.결국 남조가 북조에 의해 흡수되었지만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 남조가 정통성을 회복함으로써 당시의 북조 천황 5명은 천황 대수에서 빠져버리는 「실수」가 생겼다.현재의 아키히토 천황이 북조계에 속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남조의 혈통만을 더듬어 올라가면 더 많은 천황을 계보에서 누락시켜야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세일계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도록 치장하는데 몰두하고 있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이 책은 또 일본인들이 제1대 진무천황부터 제33대 스이코(추고)천황까지의 간격이 천년이상 벌어진 사실을 눈가림하기 위해 고대 천황들의 나이를 억지로 짜맞추었음을 밝힌다.일본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경전으로 꼽히는 「고사기」에 의하면 초대 진무천황은 137세,10대 스진(숭신)천황은 168세까지 장수했다는 것.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은 930세,노아는 950세까지 살았던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논거」다. 「현인신의 굴욕」에 대한 기술도 눈길을 끄는 대목.특히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일본에서 5년7개월간에 걸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히로히토(유인)천황은 열한번이나 그를 찾아갔지만 맥아더는 단 한번도 답방을 하지 않았던 일,히로히토 천황이 인간선언문을 통해 「절대천황」의 허물을 벗고 「상징천황」으로 탈바꿈하는 역사적 순간 등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일본역사를 훑어보면 천황제가 영원히 사라질 뻔한 때도 있었다.에도(강호)시대에는 천황제를 공식적으로 폐지할 수도 있는 실력을 갖춘 막강한 바쿠후(막부)가 존재했다.그러나 바쿠후의 쇼군(장군)은 천황제가 권력통일에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천황제를 존속시켰다.천황제가 숱한 우여곡절속에서도 여전히 일본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지은이는 그 비결을 『천황가가 권위와 권력을 분리시킨 지혜』에서 찾는다.일본인들에게는 영원한 정신의 고향이지만 국외자의 눈에는 「바벨탑의 우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천황제.이 책은 바로 그 천황제의 허와 실을 직시해 일본을 이길 것을 권한다.
  • 불 전 예산장관 파퐁 전범재판

    ◎유태인 1천500명 나치수용소 이송 혐의/81년 양센트지 첫 폭로… “유죄 판결” 중론 프랑스 대법원은 지난 23일 2차대전당시의 전력으로 전범여부에 대해 지난 81년부터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전직 고위관료 모리스 파퐁(86)을 법정에 세우기로 최종 결정,화제가 되고 있다.파퐁은 데스탱정부에서 예산부장관을 맡았고 그전 드골정부 아래서는 파리경시청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2차대전 당시의 독일의 괴뢰정부였던 비시정권시절 보르도지방정부 사무총장을 하면서 수많은 프랑스 유대인들을 나치수용소로 보냈다는 혐의로 오는 가을 보르도 순회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그의 재판이 순조롭계 진행 된다면 지난 94년 종신형을 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7월 사망한 폴 두비에 이후 두번째다. 파퐁의 2차대전 기간중 행적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1년 주간지인 르 카나르 앙센느가 그의 행적을 폭로하면서였다.당시 예산부 장관을 맡고있던 그는 공직에서 사임했고 83년 고소당하면서 지금까지 그의 「법정안서기 투쟁」은 계속되어 왔다. 83년 첫고소는 법률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취하됐으나 88년 다시 고소당했으며 각종 증거가 드러나면서 결국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그는 1942년부터 1945년 사이에 어린이들을 포함해 프랑스 유태인 1천560명을 나치수용소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시종 나치가 수용소로 간 이들을 몰살시키려는 의도를 몰랐다고 주장한다.자신에 대한 재판을 『100년전 독일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으로 기소돼 사형됐으나 사후 무죄선고를 받은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재판을 비유해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잘못된 법집행』이라고 까지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라는게 프랑스 법조계 전반적인 분위기다.
  • 김덕수 40년(외언내언)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아이가 다섯살만 되면 난장에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했다.아버지 무릎위에서 풍물놀이를 재롱처럼 익힌 그는 어김없이 5살때 조치원 난장에 섰다.작고한 남사당 인간문화재 남운용씨 어깨위에 올라 탄 무동으로서 였다.물론 무동중에서도 가장 나이어린 새미였다. 일곱살 때는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자기 키만한 장고를 메고 나가 대통령상을 받았고 아홉살 때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했다.법고잽이였던 아버지(김문학)와 당시 남사당패 뜬쇠(최고의 기예자)들로부터 상모돌리기 법고 장고 쇠 춤 버나(접시돌리기) 덜미(꼭두각시) 어름(줄타기) 등을 배운 그가 남사당의 기본악기인 사물(북 장고 징 꽹과리)을 앉아서 연주하는 「사물놀이」를 만들어 낸 것은 운명이었던 셈.그에 의해 지난 78년 서울 공간사랑에서 고유명사로 시작한 「사물놀이」는 이제 보통명사로 바뀌어 이 시대 문화유산의 창조적 전승의 한 전범으로서 세계적 언어가 됐다. 사물놀이의 김덕수씨가 데뷔 40년을 기념하는공연 「코리아 판타지」를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연다.나이 마흔다섯에 자신의 무대생활 40년을 당당하게 기념하고 아낌없는 축하를 받을수 있는 사람은 그 하나뿐일듯 싶다.놓쳐서는 안될 귀한 무대다. 유랑예인집단 남사당의 마지막 세대라는 것에 짱짱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이 지닌 최고의 기량을 오늘의 무대에 맞게 다듬어 온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몸매,서글서글한 얼굴에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지닌 그는 우리 땅의 기운을 모두 받은 건강한 농사꾼 처럼 보이나 그의 삶은 도깨비 같다.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서양을 누비며 사물놀이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연주자로서,공연기획자로서,교육자로서 사물놀이를 한국의 전통예술만이 아닌 세계의 예술로서 전파하고 있는 그의 건강과 앞선 시각·열린 마음이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 “클린턴 재선 최대뉴스”/AP 올 10대뉴스 선정

    ◎전·노씨 재판 19위에 【뉴욕 AP 연합】 AP통신은 15일 「올해의 세계 10대 뉴스」를 선정 발표했다. 세계 40개국 139개 고객언론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된 96년도 10대뉴스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재선이 1위로 꼽혔다. 한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재판이 AP 선정 세계뉴스 19위에 올랐다. ▲1위:클린턴 미대통령 재선 ▲2위:옐친 러시아대통령 재선 ▲3위:이스라엘·팔레스타인 선거및 중동평화과정 위기 ▲4위:르완다·부룬디·자이르 난민 사태 ▲5위:최악의 항공사고 잇달아 발생 ▲6위:유럽의 광우병 파동 ▲7위:프랑스 핵실험 종료 및 65개국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체결 ▲8위:보스니아 전범재판및 3인 대통령 선출 ▲9위:애틀랜타 올림픽 폭탄테러 ▲10위:벨기에 아동 성학대 스캔들
  • 일 전범 미 입국금지는 마땅(해외사설)

    미국 법무부의 일제 전범 16명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많은 일본인을 화나게 만들었고 더 많은 일본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놀란 것은 이해할만 하지만 화는 잘못된 것이다.이 사람들은 일본인으로선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아주 나쁜 짓을 했으며 미국은 그런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1979년 이래 약 6만5천명의 외국인이 요시찰대상으로서 미국 입국을 금지당했으나 모두 유럽의 나치만행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이 문제에서 일본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많은 사람의 비판처럼 뒤늦은 것이었다. 이제라도 마땅히 행동해야 한다.이 16명은 인간 포로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거나 한국,필리핀 등의 여성들을 붙잡아와 종군위안부로 만들었다.이 두 전쟁범죄는 가증스럽다는 말만으론 부족하다.이들의 인간 생체실험을 통해 3천명 이상의 중국인,러시아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산 채로 해부당했다.야만적인 윤락시설에 동물처럼 갇혀 지냈던 위안부들은 당시의 고통과 수치를 잊기 어려운데 부분적으론 일본이 최근에 와서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인정한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몇몇 일본 정치가들은 아직도 어떠한 전쟁범죄도 부인하고 있는데 심지어 위안부들은 그런 임무를 자발적으로 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많은 일본인들이 아직도 그들의 역사를 세척하고 교과서를 소독시키려고 시도한다.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전쟁범죄가 실제 저질러졌으며 거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미국에 올 수 없다는 명확한 선언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아쉬운 사실은 일본의 전범에 대한 법무부의 뒤늦은 선언이 현 시대의 전쟁 범죄자들과는 전연 무관하다는 사실이다.문제의 이 전범들은 물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학살자들이다.이들의 범죄와 인적사항은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지금도 명확관화한데도 나토는 이들을 체포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일본 전범 식을 따른다면 보스니아의 강간자와 고문자들은 앞으로 50년 동안은 아무 것도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50년뒤의 처벌이란 것도 디즈니랜드를 구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미국 워싱턴포스트 12월6일>
  • 한국도 일본전범 제재해야(사설)

    미국정부가 지난 3일 2차대전때 군위안부 강제동원 및 생체실험 등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 전범 16명을 입국금지시킨데 이어 200명을 새로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우리는 아울러 미국정부가 입국금지조치를 취한 일본전범의 명단을 공개하고 이미 사망한 사람일지라도 그런 잔혹행위에 가담한 자는 명단이 파악되는대로 공개해야 한다고 믿는다.미정부가 금지대상명단을 공개치 않는 것은 공개할 경우 대상이 돼 있지 않은 가담자는 안심하고 미국에 드나들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것은 소극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또 우리가 이미 죽은 전범명단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찌어찌해서 살아 처벌은 모면했다고 하더라도 사후에나마 역사적 단죄는 모면할 수 없다는 좋은 본보기를 남기기 위해서다. 미국이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반해 직접 피해자인 우리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대내외적으로 모양새도 좋지 않지만 우리가 문제의식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비난도 면키 어려울 것이다.물론 우리는 그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는 난점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본 일이 있느냐도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정부는 미국이 감시대상에 넣고 있는 전범의 명단이나마 파악해야 할 것이다.한국인을 그토록 괴롭힌 일본전범이 미국에서는 감시대상이 돼 있는데 한국엔 제집 드나들듯 하고 있다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외교노력을 하면 명단을 입수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늦었지만 차제에 우리도 독자적으로 전범 파악작업을 해야 한다.또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행위실태를 공식문서로 남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위안부문제만 해도 우리는 전적으로 민간차원에 맡겨놓은 상태다.외무부가 일본정부에 자료요청을 한 일은 있다고 하나 그것은 요식행위였을 뿐이다.
  • 일 전범 미 입국금지 대상/200명 추가 가능성

    ◎위안부 관련자 등 명단 확보 【도쿄 연합】 미국 법무부가 일본인 2차대전 전범 용의자 16명을 입국금지시킨데 이어 200명을 새로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일본의 지지통신이 5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지지통신은 미 플로리다에 본부가 있는 인권단체 「피억류자권리센터」의 헤어 사무국장이 3일 제2차대전중 인체실험이나 군대위안부 강제동원에 관여한 뒤 지금도 생존하고 있는 옛 일본군 200명의 명단을 법무부 특별조사부에 보고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했다. 법무부의 로젠바움 부장은 이 보고를 환영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일본인 200명이 입국금지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피억류자권리센터는 5∼6년 전부터 옛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연구해 법무부 조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일 전범 입국금지조치 의미와 파장

    ◎미,일제 잔학행위 국제적 정죄 참여/생체해부·위안소 운영 등 단죄의 당위성 부각/일 만행 은폐노력에 배치… 외교마찰 부를수도 미 법무부의 태평양전쟁 전범관련 일본인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는 그동안 피해당사국들의 민간 인권단체에서 꾸준히 제기되어왔으나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소수파,비정통파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제의 잔학행위와 만행 주장을 역사의 본류로 인정하고 정설로서 자리매김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의 입국금지 조치는 법적으론 특정 외국인에게 미국 땅에 발을 들어놓을 수 없다는 통고에 불과하지만 금지조치를 내린 원인 사안에 대해 미국 정부와 전체 국민이 불법,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뜻으로 최대의 국제적 정죄 절차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번 금지조치로 일제의 생체실험과 종군위안소운영은 국제적으로 단죄해야 마땅한 역사적 사실이 된 것이다.미 법무부는 「만주주둔 731부대가 수천명의 전쟁포로 또는 민간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비인도적이고 종종 치명적인 생체실험과 생체해부를 시행했다」고 밝혔다.또종군위안부와 관련해 「한국과 중국,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버마,인도네시아 등으로부터 수십만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성행위를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태평양전쟁중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사과는 커녕 만행을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감추고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해왔고 국제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아왔다.따라서 이번 미 정부의 조치와 발표는 일본 입장에서 볼 때 전연 뜻밖의 기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미국은 오랫동안 일부의 주장으로 무시하던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에 관한 증거가 착실히 쌓여짐에 따라 미·일간의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고 「일제 전쟁범죄」 단죄의 국제 공조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미국의 참여는 뒤늦은 감이 있으나 그 의미는 메카톤급 원폭에 비할 수 있다.
  • 미,일 전범 16명 입국금지

    ◎일의 과거만행 공인·극우파 준동에 쐐기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기간중 나치와 같은 비인도적인 의료실험을 했거나 여성을 성의 노예로 만든 전 일본군 전범혐의자들중 우선 16명에 대해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고 법무부가 3일 발표했다. 제2차세계대전기간중 유럽 지역에서 자행된 만행과 관련되지 않은 외국인이 미국입국 금지조치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법무부는 이들 16명이 만주에서 민간인들과 전쟁포로 수천명에게 비인도적이며 치명적인 의료 생체실험을 실시한 악명높은 「731부대」대원들과 동아시아 및 동남아출신 여성 수십만명을 성의 노예(군대위안부)로 만든 혐의자들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위안부 동원 등 일본보수세력들이 부인해온 과거사 만행들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의미를 가지며 최근 노골화하고 있는 일본극우세력들의 준동에 쐐기를 박게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들 16명이 미국 입국이 금지되는 외국인 「요시찰인물」명단에 올려졌다고 밝히고 나치전범자들을 추적하는 법무부 산하 특별수사국(OSI)의 조사가 진척됨에 따라 더 많은 전일본군 전범혐의자들이 이 명단에 추가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이날 성명을 발표,전범혐의자들에 대해 이같은 입국금지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정부가 희생자들과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같은 만행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 우익 강력 반발… 인권단체는 환영/미의 전범입국금지 일 반응

    ◎정부선 공식논평 않고 사태 주시 미국이 일본의 전범용의자들에 대해 입국을 금지시킨데 대해 일본의 우익세력은 강력히 반발한 반면 인권단체 등은 환영을 표시하는 등 대조적 자세를 보였다.그러나 일본정부는 공식 코멘트를 발표하지 않은채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보수우익지인 산케이(산경)신문은 위안부에 대한 설명을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발기인 니시오 간지(서미간이) 전기통신대 교수의 말을 인용,미국의 조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니시오 간지는 『인류에 대한 범죄는 731부대라기보다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행위』라며 『일본정부도 미국의 원폭개발 관계자들의 입국을 거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우익단체들의 이같은 반응과 대조적으로 군대위안부 희생자들에게 개별보상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 변호사는 『나치와 마찬가지로 옛일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자세는 국제적인 조류』라면서 『「위안부는 상행위」라는 등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되풀이하는 인사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