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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운규감독의 「아리랑」 영화 필름/60년만에 일서 돌아온다

    ◎아들 봉한씨가 끈질긴 교섭/아베씨,기증형식으로 선뜻 한국 영화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나운규감독의 「아리랑」(1926년작)의 원본 필름이 60여년만에 일본에서 돌아온다. 나운규선생의 아들인 나봉한씨(59)는 최근 「아리랑」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일본인 아베 요시시케씨(68)를 만나 이 필름을 기증형식으로 되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28일 밝혔다. 선친을 이어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나씨는 『선친의 작품을 자식된 도리로 꼭 돌려받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아베씨가 『나운규 선생의 아들을 만날 줄 몰랐다.이렇게 필름을 찾기 위해 애쓰는 분이 있다면 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기증형식으로 필름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씨는 「아리랑」이외에도 「사랑을 찾아서」 「장화홍련전」등 20∼40년대의 우리 영화 60여편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아리랑」의 회수작업이 잘 진행될 경우 다른 필름의 회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씨가 우리 영화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일제시대 군의관으로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영화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지 못하고 대신 필름을 받았기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운규씨가 각본을 쓰고 주연에 연출까지 맡은 「아리랑」은 고향에 돌아와 철학공부에 몰두하다 정신이상이 된 전문학교 중퇴생이 여동생을 겁탈하려던 청지기를 살해하는 순간 정신을 되찾지만 순사에게 체포돼 동네사람들로부터 눈물의 전별을 받으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는 줄거리이다. 조선키네마 제2회작인 이 영화는 1926년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된 뒤 전국 방방 곡곡에서 5년동안 흥행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작품으로 한국영화사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 받고있다.
  • 한·양방 보완 발전 모색 활발

    ◎연대의대 이어 국립의대서도 한방과목 도입 움직임/“이원화는 의학발전 저해” 공감대 계속 확산/중국/중의 교과과정 40%가 서의학 과목/북한/신의학 학생,100시간 동의학습 필수 연세 의대가 국내 처음으로 내년 1학기부터 본과 4학년 교양과목에 「한의학개론」을 신설키로 결정한데 이어 서울대 의대등 국립의대에서도 한방과목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어 양·한방으로 이원화된 국내 의료체계에 대변혁이 예상된다. 오는 11월12일부터 이틀동안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열리는 국립 의과대학 학장회의에서는 「국내 한의학교육 현황」을 주제로 의대의 한의학 교육 필요성및 도입 방안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국내 의대들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멀잖아 남북 의학교류의 성사가 점쳐지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온 「양·한방 통합을 향한 시발점으로서의 학문교류」가 가시화 된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양·한방계는 지금까지 의료 일원화가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원칙엔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론을 놓고 팽팽히 대립,심지어 「일원화」나 「통합」등의 기본 개념에 대한 접점 조차 찾지 못한 상태이다.특히 한의사협은 의협에서 제시한 「일원화 방안」이 한방을 흡수 통합하려는 처사라고 반발,「상호 보완 발전방안」을 제시했지만 의협으로부터 외면당해 왔다. 이에따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등은 현행의 상호배타적인 이원화제도가 국민의 의료비 부담 가중과 업권시비등의 부작용만 가져온다고 보고 완전 통합의 중간 단계로 우선 상호 개방적이고 교류적인 학문체계의 설정을 요구해 왔다. 동서의학이 공존하는 중국의 경우 행정 관리체계,의료기관 형태,교육제도등이 중의(한방)와 서의(양방)로 나뉘어지지만 실제적인 내용면에서는 중·서의가 공유되고 통합되어 있다.교육과정은 서의학과에서는 전체 교과목의 20%를 중의학 과목으로,중의학과는 40%를 서의학과목으로 정해 반드시 이수토록 함으로써 중·서의학의 일원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양대 학문의 교류및 상호 발전을 꾀하고 있다.졸업후 실제 임상면에서도 서의사가 침구치료와 중약을 투여하고 중의사는 근육정맥주사 뿐만 아니라 간단한 수술과 X­레이등의 각종 임상병리검사까지 하고 있다.이는 국내 한의대 교과과정이 7대3정도로 양방과목을 안배하고 있는데 반해 의대 교과과정에는 한방과목이 전무,한방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우리 현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중국은 한걸음 더 나아가 중·서의 일원화를 위해 결합의제도도 두고 있다.결합의란 서의학 또는 중의학을 이수한 뒤 졸업과 동시에 상대 학문에 대해 1∼2년의 교육과정을 이수,자격을 취득한 의사를 말한다.이들은 중·서의 통합의 소중한 기술적·학문적 자원인 동시에 오늘날 중국의학 발전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북한도 동의학(양방)과 신의학(한방)의 통합발전을 강조하는 보건정책을 당의 강령으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지난 59년 개성의학전문학교에 동의과가 정식으로 개설된 이래 소위 서양의학의 발판위에서 동의학을 과학화하려는 노력이 매우 활발히 일어 왔다. 북한은 동의학과 신의학의 배합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62년부터 평양의과대학에 3개월짜리 동의 재교육반을 조직했으며 75년부터 재교육 기간을 1년으로 늘려 신의학을 전공한 우수 교원인력을 대상으로 한의치료법및 처방경험을 익히게 하고 있다.또 신의학을 공부하는 모든 학생들은 재학기간중 1백시간의 동의학이론및 실습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실습은 4∼5학년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동의사에게는 신의학을,신의사에게는 동의학을 전수하자」는 북한의 이러한 배합정책은 최근 결실을 맺어 「은행나뭇잎 제제화에 대한 연구」「위하수의 전기침 치료」등 동서의학 연구논문 수천편이 국제학회에 보고되어 현대과학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대의대 김창엽교수(의료관리학)는 『양·한의학은 체계·배경·사상등에서 완전히 이질적이므로 이들을 통합해 한 차원 높은 제3의학의 창출을 위해서는 서로의 학문을 이해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런 맥락에서 국내의과대학들의 한방과목 도입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김교수는 또 『우리도 북한·중국과 같은 균형잡힌 의료체계를 구축하려면 양·한방 상호 보수교육및 교과과정의 안배를 통한 상호이해,공동 임상연구및 의료제도 연구등의 상호교류,부분 통합,제3의학 창출이라는 단계적인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고전문학 국역작업 첫 결실/고대 민족문화연,1차분 10권 발간

    ◎「양원유집」「근재집」등 개인문집도 포함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소장 정재호)가 고전문학 가운데 중요작품을 현대문으로 옮긴다는 목표아래 추진중인 「한국고전문학전집」발간사업이 첫 결실을 거둬 1차분 10권이 최근 선보였다. 이번에 발간된 10권은 시조발생 초기부터 조선중기까지의 작품을 모은「시조1」과,「사설시조」「가사1」등의 시가집을 비롯,「임진록」「숙향전」등의 고대소설,민속극등을 담고 있다. 또 「양원유집」등의 한문학 작품과「근재집」등의 개인문집등도 포함됐다. 이 전집은 원전만을 영인하거나 현대문으로 번역·윤색된 내용만 소개했던 그동안의 고전류와는 달리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또 유명작품에 대한 이본도 덧붙여 내용상의 차이와 변화상을 비교하기 쉽게 하는등 전문가에게나 일반인에게나 모두 편리하게끔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값은 1만5천원씩이다. 민족문화연구소는 지난 91년초 국문학 교수들로 기획및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작품을 선정하고 그해 10월 각분야 전문가들에게 집필을 의뢰했었다. 연구소는 앞으로 해마다 10∼15권씩을 계속 출간해 모두 2백권 규모의 전집류를 만들 계획이다. 국문학계는 국문문학·한문문학·구비문학등 우리의 고전문학전체를 망라해 현대문화 하는 이 사업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 한편 민족문화연구소는 오는 27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1차분 간행기념 학술발표회를 열어 사업추진을 중간점검할 예정이다.
  • 연극연출가 유덕형(이세기의 인물탐구:36)

    ◎실험·전위적 무대로 연극계에 선풍/갈등­대립 이원성 강조… 살아있는 예술 추구/70년대 「알라망」「초분」으로 국제적 명성얻어/“작품마다 충격과 감동” 호평… 81년 「산씻김」이후 긴 침묵 서울예전 학장실에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은빛쇳조각으로 만든 해와 달과 별과 지구모형이 문을 열고 닫을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인다.아마도 외부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다면 햇빛따라,구름따라 좀더 현란한 변화를 보였을지도 모른다.또는 모빌의 움직임에서 금속성의 차가운 음향이 들렸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모빌은 실내공간에 고요히 고정되어 절제된 미동만으로 색다른 소우주를 형성해내고 있다.이것이 바로 유덕형연극의 내면세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모빌은 물론 오리지널은 아니다.미국에서 본 칼더의 작품을 그가 본떠서 만들어 걸어놓은 것이다. 그는 남산을 배경으로 한 창을 등지고 앉아 태양을 둘러싼 행성의 움직임을 때때로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뭔가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모색하려는 기미다.그러나 그의 의중을 꿰뚫어 알 사람은 그곳에는 한사람도 없다. 60년대말 한국 연극계에 회오리를 몰고온 그는 70년대와 80년대를 잇는 10여년 참으로 많은 감동과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그리고 그의 행적을 논할 때마다 「새로움」이라든가 「최초」 또는 「충격」은 그를 둘러싼 당연한 수식어가 돼버렸다. ○젊은 연출가에 찬사 첫번째 충격은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다.이 연극에서 그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다른 연극과는 달리 무대전체가 싱싱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동감을 살렸다.사이키델릭 조명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율동,그가 연극에서 추구해마지않던 이원성의 문제가 여기서도 제기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연극의 재미를 고조시켜 나갔다.이른바 물질문명과 기계문명,황금만능주의 속에서 한 인간이 무기력하게 세뇌당하는 과정을 입체추상으로 그리고 있다.관객 또한 연극의 화려함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컴도 한국연극계의 거목인 동랑의 2세로서가 아니라 한 재능있는 젊은 연출가의 지적탐험과 실험정신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그러나 보수주의와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하려는 일부 계층의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빛과 소리와 움직임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초분」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한번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뿌렸다. 「초분」의 첫번째 공연은 극도로 제한된 극한상황에서도 무대의 확대가능성,무대조작의 자유분방함이 시도되었고 질서와 혼란이라는 대립개념을 앞세워 주술적인 대사와 침묵,행동 또는 움직임과 정지에 대한 실험이 변증법적으로 이어졌다.해탈과 열반,샤머니즘과 토테미즘,다양한 색깔의 조명은 시각연극,움직이는 연극,살아있는 회화의 무대를 한층 강조해주었다. 이번에도 평자와 각 매스컴이 「초분」호평 일변도였으나 그의 부친인 동랑은 전혀 이와 의견을 달리했다. 『너는 관객을 친구로 생각지 않는다.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것은 관객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철저한 실험정신을 내심 사랑한 그는 『겪어야 할 아픔이라면 철저하게 겪으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다음해인74년 이 연극을 가지고 뉴욕공연길에 올랐다. 여전히 갈등대립의 이원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한국공연에서의 모던댄스를 고도로 절제된 동양무술로 바꾸고 음과 양 제의적 동작과 시적 무대만으로 한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의 가슴을 일시에 움직였다. ○연극의 새방향 제시 세계적 연극이론가인 그로토프스키와 로열셰익스피어 극단 연출가 피터 부룩은 『새로운 연극이 찾고 있는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했음을 명쾌하게 호평했다.이 뉴욕공연중 그가 그처럼 존경하던 부친의 타계소식에 접했고 그는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단지 『연극인이면 언제나 무대에 남으라』던 부친의 평소 소신대로 그는 그시간에 무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음해 세번째 「초분」을 공연했다.이번에는 관객의 지적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초분」이 지닌 무수한 대립의 감정을 미련없이 깨뜨려버렸다. 예를 들어 조명도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로,의상도 흑백,선·리듬·시간과 공간·무게의 모든 다이내믹스까지도 철저히 파괴해버렸다.앞의 두 공연을 미련없이 무효로 돌려버리게 됐을때 그는 비로소 성숙을 느꼈다.아마도 연륜과 체험의 대가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깨달음일 것이다.이제 일반관객도 그의 실험극들에 대해 좀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시종 「충격」과 「실험정신」 「전위정신」이 깃든,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완벽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꾀하려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아마도 신들린 상태가 아니라면 감히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다양한 시도를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밀어붙인 것같다. 충격도 그렇지만 그는 수많은 「최초」를 기록하고 있다.69년 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연출작품발표회」를 가진 것과 2년후 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초청으로 「알라망」연출,국제극예술협회(ITI) 명예회장 로자몬드 길더여사로부터 『이 연극은 피터 부룩도 질투할만하다』는 세계무대에서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73년 ITI 모스크바총회때 한국대표로는 처음 공식참가하게 되자 그는 한때 세계적인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소련 입국소식은 국내 주요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고귀국후엔 각신문에다 소련방문기와 소련에서 찍어온 사진을 연재했다. ○동낭선생의 큰 아들 그는 우리 연극사에서 비중있는 위치인 동낭 유치진선생과 희곡작가인 심재순여사의 3남매중 장남.누나부부도(유인형·안민수씨)도 연극연출가다. 한때는 과학문명시대에 대비한다는 자세로 연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으나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아 영문과로 다시 전과,음악·발레·그림·사진찍기에 집착했고 미국 유학시절에는 무대장치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로 학교에 다녔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외에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영상연극의 기수인 로버트 윌슨.브루클린음대 아카데미서 막올린 「요시프 스탈린 생애와 시대」는 저녁 7시에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이어진 12시간짜리 공연으로 시각적·청각적 공간,어느 순간에도 보이는 것,들리는 것으로 일관된 특이한 무대로 감명받았다. 연극에서는 그가 아무리 한국전통을 강조할 때라도 언제나 실험적·전위적이란 말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며 그것은 아마도 「창조하는 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라는 최대의 찬사일 것이다.그럼에도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작품에 임하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바닥이 보이는 듯한 절망감에 빠진다. 그의 연출에서의 이원성처럼 그는 성격·처세·취미에서 이중구조 내지 복합삼각주와도 같은 형태를 띤다. 헌칠하고 깨끗한 외모에 만년청년같은 모습,지금도 블루진과 하얀 터틀넥에 골덴자켓이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토론이나 의견을 말할 때는 점점더 목소리가 고조되어 온힘으로 말하고 한번 입을 다물면 말을 잃은 소년처럼 우울한 구석을 비치기도 한다.이따금 「크레믈린」이란 별명을 듣지만 일상생활이나 예술에서 미혹이나 현혹은 없다.예의가 바르고 지적이며 낯가림이 심한 편. 미국유학시절 트리니티대에서 만난 부인 제니스 유도 본래는 아동극 연출가.그와는 문화·풍속·민족 모든 것이 다른 이질이란 점에 호감을 느꼈고 그는 신비한 것,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좋아한다. 연대신방과를 나온 아들 태균(23)은 뉴욕대서 연극연출,딸 미아(20)는 브라운대서 오페라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사람은 두가지일을 똑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에 그는 「산씻김」이후 긴 침묵을 지키면서 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대전엑스포등 행사와 여러 연극의 조명에만 손댈뿐 아직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은 칼더의 모빌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학교라는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그곳에 있는 학생과 교수들이 그에겐 등장인물이고 스태프다.학교의 프로그램 모두가 극중사건이다.정말 학교마당에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대사연습에 열중한 학생들과 밤낮없이 왁자지껄하다.더구나 예술전문대 학장이란 문화운동을 할 수 있는 자리다.미국에서 종족음악 강의를 하겠다고 국악을 소재로 한 작곡을 부탁해오면 사람을 부르고 중매를 서기도 한다. ○무대 조명에만 손대 그런중에도 작품에 대한 집착은 핵심에 도사려 있다. 인간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나,극단적인 이상주의 추구는 어디까지인가,예술에서의 완성은 있는가.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회화의 세계,그러나 내용·색깔·동작·대사 모든 것을 절제하고 생략한 맨 마지막 정점.그의 예술의 끝은 태양을 응시하던 카뮈의 요나처럼 어쩌면 무대위에 「점」하나를 찍는 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38년 1월 서울출생 ▲196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66년 미 트리니티대 대학원 연극학과 졸업 ▲1968년 미 예일대 연극대학원 박사과정 ▲1963년 미 댈라스 연극센터연구단원(체호프 「세자매」,셰익스피어 「코미디 오브 에러스」연출) ▲1966년 캐나다·미국연극계 시찰 ▲1967년 미국교육연극연합회(AETA)회원,뉴욕 레인즈 무대미술제작요원,엘비 「작은앨리스」,포드 「빨간인디언」,오스본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연출,마이클 케인 「라생문」연출·장치·의상·조명(댈라스시어터 센터서 4개월장기공연) ▲1969년 극단드라마센터 상임연출가 ▲1970년 서울연극학교교장 ▲1971년 국제극예술협회(ITI)런던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필리핀 연극제참가 ▲1973년 ITI 모스크바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제3분과 이란연극제참가 ▲1974년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장 ▲1976년 ITI 베네수엘라 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유엔주최 「환경의 해」세미나 및 페스티벌,캐나다밴쿠버회의 참석 ▲1977년 유엔주최 「세계어린이의 해」 기념행사 준비위원국 뉴욕회의 한국대표 ▲1979·81년 제3세계 연극연구소(TWITAS)뉴욕회의 운영위원회 참석 ▲1969년 유덕형 연출작품발표회,김종달작 「갈색 머리카락」,브르크작 「낯선 사나이」,유치진작 「자아비판」등 연출(드라마센터),윤대성작 「미친 동물의 역사」(70년),해럴드 핀터작 「생일파티」(70년),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알라망(Alhamang)」연출(71년),동랑레퍼토리 오태석작 「초분」(73·74년 뉴욕·75년 서울),오태석작 「태」(74년),유치진작 「마의 태자」(75년),동랑레퍼토리 미국 및 유럽 순회공연(77년),최인훈작 「봄이 오면 산에 들에」(80년),이현화작 「산씻김」(81년)등 연출,연세대 개교 100주년 기념공연 「한여름밤의 꿈」(85년),동랑청소년극단 윤대성작 「방황하는 별들」(85년)「꿈꾸는 별들」(86년),오닐작 「밤으로의 긴 여로」(88년),88예술단창단공연 오태석작 「새불」등 조명. 서울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부위원장,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ESTE)한국본부이사,예술의 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위원,한국방송공사 자문위원,서울올림픽조직위 문화식전국장,서울올림픽 폐회식 제작단장,대전엑스포 전문위원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장 동아연극상,서울신문 문화대상,마닐라시장 문화표창상,한국연극 영화예술상,중앙문화대상
  • 국내변호사1호 고 홍재기씨 유품 기증/손자 순길씨,서울법대에

    ◎판사임명장 등 구한말 당시 자료 50점/1906년 개업… 서민위해 무료변론 우리나라 최초의 변호사로 활동했던 고 홍재기변호사의 손자인 순길씨(45·대우캐리어 인사부장)가 선친 홍종민변호사(지난91년 작고)의 2주기를 맞은 25일 한국 초기 법제사 연구에 도움이 될 구한말 당시의 귀중한 자료 50여점을 서울대 법대에 기증했다. 표구로 된 기증 자료집에는 홍변호사의 판사 임명장·변호사시험감독관 임명장을 비롯,동경법학원의 졸업장이 있으며 여기에는 당시 이 학교의 강사진 34명의 자필 서명이 모두 들어 있는등 법학사 정리에 귀중한 참고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홍변호사는 1906년 당시 변호사 등록에 필수적인 조선총독부의 법부대신이 발급하는 변호사 인가증을 처음으로 발급받은 인가 제1호 변호사였다. 대한변협이 지난 1909년 11월 25일 제1호 등록 변호사로 밝히고 있는 유문환씨보다 2년 앞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3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출생한 홍변호사는 1896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 동경법학원에서3년간 법률 공부를 한 뒤 다시 미국에서 법학공부를 한 최초의 법학도이기도 했다.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교수,법관양성소 소장,법학협회 회장,변호사시험위원등을 지낸 홍변호사는 1906년 부당하게 구속당한 이준열사를 구하려고 서대문밖 독립관에서 이면우변호사등 11명의 지식인들과 함께 이준열사 구속사건에 대한 성토대회를 벌인 자리에서 「민불지법의 폐해」라는 제목으로 열변을 토해 결국 이열사가 70대의 태형을 맞는 것만으로 풀려나게 하는등 고난의 시대에 민족을 위한 일에 앞장선 선각자였다. 또 해방후에는 3등열차를 타고 다니며 동포들을 위한 무료변론을 하는 열성을 보였으며 살인죄로 잡혀온 한 농부의 무죄주장을 확인하려고 빨치산들의 총격을 무릅쓰고 농부의 무죄를 밝혀내 투철한 직업의식을 발휘,녹조소성훈장을 받기도 했다. 홍변호사는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장으로 재직하던 50년 9월29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인민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해 77세의 나이에 숨졌다.
  • 해양자원 보전·개발 미 연수 참가

    ◎내일∼새달 2일,12개부처 담당자 13명 방미 해양자원의 효율적 개발과 보전을 위한 공무원 특별해외연수가 2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2주동안 실시된다. 외국의 해양정책및 이용실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범정부차원의 체계적 해양정책마련을 위해 총무처 주관으로 실시되는 이번 연수에는 국무총리실과 경제기획원,외무부,건설부,과학기술처,환경처,해운항만청등 12개 정부부처의 해양정책담당 4·5급 공무원 13명이 참가한다. 이들은 연수기간동안 미국의 워싱턴대 해양연구소와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에서 해양전문학자들의 강의를 수강하고 해양관련 정부기관과 산업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와함께 해양관련세미나와 토론회에 참석하고 관련자료들을 수집할 계획이다. 이번 연수프로그램의 주요분야로는 ▲해양정책동향 ▲연안공간의 이용과 개발 ▲해양환경보전 ▲해양에너지·광물자원 ▲수산자원 ▲해운·항만 ▲해양행정체계 ▲해양관련 국제협력및 동향등이다. 정부는 이번 연수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훈련보고서를 작성,국무총리실과 해운항만청등 정부부처와 유관단체의 해양정책개발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 직업훈련원 16곳/기능대학으로 개편/1급기능사 중점 양성

    ◎노동부 입법예고/의무취업기간 5년으로 노동부는 5일 중간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공공직업훈련원중 일부를 기능대학으로 개편,전문대학졸업 수준의 기능사 1급 및 기술기능공 양성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노동부가 이날 입법예고한 직업훈련기본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국의 36개 공공직업훈련원중 광주·대전등에 있는 16개소를 오는 96년까지 2∼3년 과정의 기능대학으로 바꿔 일년에 9천5백명의 중간기술인력을 배출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또 36개 공공훈련원중 나머지 20개소는 직업전문학교로 개편,현재의 기능사 2급훈련과 함께 재직 근로자에 대한 기술향상 및 전직훈련을 시킬 방침이다. 훈련기간이 1년인 직업전문학교에서는 1년에 8천5백명의 기능사2급수준(공고졸업 수준)의 기능공을 배출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또 현행법에서는 직업훈련을 받으면 훈련기간의 3배 기간을 소속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훈련과정에 따라서는 이같은 취업의무기간이 지나치게 장기화 될 우려가 있어 취업의무기간의 상한선을 최고 5년으로 축소·조정키로 했다.
  • 학부없는 대학원 세운다/95년부터/학위는 학문­직업분야로 2원화

    ◎계열별 입학정원제로 전환… 평가제 도입 교육부는 20일 학부없이 석·박사과정만 개설되는 단설대학원을 설립 운영하고 고급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학위제를 도입하는 등의 대학원교육제도 개선방안을 마련,빠르면 오는 95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 개선안은 또 대학조직에서 학부과정과 분리된 대학원체제를 정립하고 대학원전담 교원과 시설을 별도로 확보하며 대학원평가제를 도입,대학원중심대학의 육성을 지원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위해 앞으로 3차례의 세미나를 통해 대학원제도개선 최종시안을 만든뒤 관계부처·기관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중에 관계법령을 제정하거나 개정해 95학년도부터는 비예산사업부터 구체적인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이같은 대학원제도개선안은 탈산업사회와 국가간경쟁시대가 도래한데 따라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고급연구개발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이 그 중추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되어 왔다. 대학원제도에서는 앞으로 ▲교육목적및 체제 ▲학생정원및 학사관리 ▲교육과정▲교육·연구 여건 ▲행정·재정지원체계 등 5가지 분야별로 효율적인 개선책이 도입될 예정이다. 우선 교육목적면에서는 학부와 구분되는 독자적인 교육·연구기관으로 전환하기 위해 단설대학원이 설치되고 대학원중심 대학이 집중육성된다. 또 이제까지 시행되어온 대학원별 총정원제가 계열별 입학정원제로 바뀌고 석·박사과정의 공동수강제가 도입된다. 학위제도는 기초학문분야의 학문학위와 전문직업분야의 전문학위로 나뉘어 진다. 교육과정에서는 대학원간 학점교류가 확대되고 기업체가 학과 개설비와 운영비를 부담하는 특약학과의 설치도 검토되고 있다.
  • 「바로 잡아야 할 우리역사 37장면」 출간

    ◎왜곡된 역사의 진실규명에 초점/37개 주요사실 시기·쟁점별로 정리/일제·극우반공독재때의 오류 규명/친일파와 독립유공자가 뒤바뀐 사실등에 “눈길” 『친일파들이 독립유공 포상을 받게 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친일방송선전협의회간사와 경성배일동지회평의원,국민총력조선연맹참사 등으로 친일사회활동에서도 제1선에 섰던 서춘의 예를 보자.서춘이 대통령표창을 받은 19 63년 상훈심사위원중에는 4명의 친일파가 있었다.…역대 독립유공자 상훈심사에 참여했던 친일파는 19 62년 2명,19 64년 4명,19 68년에는 무려 8명에 이른다.…독립유공자가 제 손으로 공적을 써내고 제 손으로 포상을 신청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이 제도가 독립운동가사회를 질서도 예절도 없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전락시켰다.이 제도는 또 너무도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왔고 다분히 산 사람에게 치우쳐 시행하다 보니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제치고 먼저 상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됐다』 「바로 잡아야 할 우리역사 37장면」(역사비평사간)은 이처럼 우리역사에서 잘못 알려져 왔거나 감추어졌던 역사사실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씌어졌다.두권으로 묶여진 이 책은 특히 가까운 과거인 일제 식민지하와 극우반공독재체제하에서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앞서 인용한 「독립유공자 다시 선정해야 한다」는 글도 최근 뒤바뀌어진 친일파와 독립유공자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내는 계간「역사비평」에 연재된 「우리 역사 바로 알자」는 난을 통해 소개된 글들을 시기별 쟁점별로 한데 묶은 것이다.37편의 글은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학자 37명에 의해 씌어졌다. .역사문제연구소 측은 이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일본이 한국역사를 왜곡하는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를 크게 왜곡해 왔다면 더욱 날카롭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자신의 문제를 은폐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기만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한말·일제시기­애국인가 매국인가」,「상해임정­이승만정권을 바로 알자」,「해방전후­8·15 유엔 그리고 분단」,「친일파·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접 바뀌어야 한다」,「6·25를 다시 생각한다」,「19 60년대­4·19와 한일협정」,「한국문학의 거장 3인을 다시 읽는다」,「TV사극에 문제있다」,「우리의 반쪽,북한을 바로 알자」는 9개의 큰 타이틀로 엮어졌다.이 아래 다시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민족지였나」,「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한일협정에서의 청구권,배상인가 구걸인가」,「북한은 백두산을 중국에 팔아넘겼다」 등 각 시기마다 가장 잘못 알려졌거나 드러나지않은 37개의 역사적 사실이 쉽고 간결하게 정리됐다. 이책은 「역사상실증」에 빠진 요즈음 독자들에게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수 있는 교과서이자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직시하게 하는 교사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거듭나는 한국」… 외신특파원의 시각

    ◎“강력한 리더십 무혈혁명 도출”/검찰숙정 최대 성과… 국민신뢰회복 “큰 획”/구로다 가쓰히로 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일본은 의원내각제이며 현대사에 있어서 본격적인 정권교체의 경험이 없다.따라서 일본인들은 한국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정권교체에 의한 대단한 변화에 놀라고 있다.지난 2월이후 서울지국장이 된 어느 일본기자는 『한국은 독재국가같이 보인다』라는 인상을 말하기도 한다.대통령이 말을 하지않으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또 대통령 말한마디로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일본기자에게는 이해될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한 한국전문학자는 최근의 저서에서 1960년대 이후 군출신대통령에 의한 30년간은 한국역사에 있어서 「예외」의 시대라고 지적한다.그는 문민정권을 강조하는 지금부터의 한국정치는 「통상」의 시대로 돌아오는 것으로 앞으로 한국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승만대통령시대및 조선왕조시대의 정치를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치 정상시대 회복 그런 의미에서 「12·12」와 광주사건등 「과거」를 둘러싼 활발한 논쟁은 조선왕조시대의 역사극을 보는 것같은 느낌이다. 「과거」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서는 외국인 기자의 눈으로 볼때 김종필씨가 주장하는 「기승전결론」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된다.왜냐하면 김영삼대통령이 안심하고 「개혁」을 할수 있는 것은 박정희정권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전두환정권의 사회적안정,노태우대통령의 민주화정책에 의해 한국사회에 그나름대로의 힘과 자신감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련의 「개혁」가운데 검찰숙정에 가장 큰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한국에서는 지금까지 검사가 돈을 받는다는 일본인으로서는 상상할수 없는 악습이 있었는데 검찰이 부패한 상태에서 국민은 아무것도 믿을수 없다.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사법,그중에서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을 위해서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하지않으면 안되는 숙정이었다. ○역사에 도전 각오로 지금까지의 1백일은 「과거」청산에 바빴다.과거 청산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그러나 김영삼정권의 진정한 목표는 지금부터 부정부패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5년후 측근으로부터 박철언,김종인씨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이것은 군사정권의 문제는 아니다.이승만대통령시대 아니 조선왕조시대부터의 문제다.김영삼대통령에게는 수백년의 역사에 도전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사회화해 달성은 장래 공익보장에 달려/이완 자하르첸코 러 이타르·타스통신 서울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1백일은 정치권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기간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새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에 대해 『매우 잘한다』와 『잘하는 편이다』가 각각 25·7%와 60%로 나타난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과거 정권들과 비교해보면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아직 기간은 짧지만 「부정부패와의 전쟁」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재산공개,청와대와 인왕산 개방,안가철거,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 등의 조치가 문민대통령의 이미지를 잘 대변해주는 것이라 본다. ○5·18조치 문민대변 요즘 거의 매일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이 구속된다는 뉴스를 접하는 한국 국민들은 『마침내 공정한 사회가 왔다』고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강력한 정부」를 선언하고 나온 김영삼대통령은 체제내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엄격한 징벌수단을 선택했다.그러나 다른 조치를 동시에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말하자면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기대만큼의 좋은 결과를 낳기가 어려운 것이다.예를들면 옛날 어떤 나라에서는 도둑을 벌할때 손을 잘라버리기까지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 도둑이 없는 나라가 없는 것이다. 한국학생들은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광주민주화운동의 책임자로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나 물론 진상규명의 필요성은 있으나 전직 대통령을 벌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더 잘살 수 있을까. ○제도적 장치 급선무 김영삼대통령의 「사회화해」노선은 과거 잘못을 용서하고 미래에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뜻으로 지지할 만한 것으로보인다.그러나 사회화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부정과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과 동시에 공익을 보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1백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놓고 어떤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러시아에서도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한국의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결과는 새 정부가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보장하느냐에 달려있다. ◎「신경제 100일계획」 한국 재도약 기대/장충의 중국 신화사통신 서울주재기자 현재 지구상에서 부정부패척결의 회오리바람이 가장 거세게 불고있는 곳은 두개의 반도국가다.한곳은 이탈리아,다른 한곳은 바로 한국이다. 32년만에 출범한 한국의 김영삼문민정부가 오는 4일로 탄생 1백일을 맞는다.그 1백일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과거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도 보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를 한국민에게 실감시켰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미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한국병 치유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또 지난 2월25일 취임식에서 『개혁은 먼저 부정부패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확립등 세가지 당면과제로부터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칼국수접대 큰 화제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자기의 개혁구상을 실천에 옮겼다.그 시작은 바로 자신으로부터였다. 그는 먼저 솔선수범해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고 또 『재임기간동안 기업인으로부터 단돈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특히 청와대의 손님접대 메뉴가 칼국수라는 뉴스가 중국에 보도된 다음 북경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산공개를 확대하면서 연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일부 국회의원으로부터 고위공직자 심지어 국회의장에 이르기까지 제살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뿐 아니라 군의 인사비리,금융계와 교육계의 부정,슬롯머신 비호세력 내지 사정의 주역인 검찰까지 사정의 칼날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김영삼정부가 지난 1백일 동안 추진해온 개혁작업은 한마디로 무혈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사회전반의 부정부패척결과 동시에 새 정부가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신경제 1백일계획」을 세워 놓고 있어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에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개혁 국민 86% 지지 물론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작업에 대해 일부 기득권세력들이 『너무 서두르는게 아니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산다(수지청칙무어)』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약 86%가 새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는 어느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 김영삼정부의 개혁은 현재 국민의 박수와 갈채를 받고 있다. 「좋은 시작은 성공의 반」이라는 속담과 같이 짧은 1백일간의 개혁작업은 앞으로 한국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 군관련 역사적사건「정치적매듭」/5·24전격 군수뇌개편 의미와 전망

    ◎「쿠데타적 12·12」 새 정부 평가뒤 첫 조치/ROTC 요직 기요에 인사 새 방향 제시 24일의 전격적인 군수뇌 개편은 12·12등 군이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정치적 종결」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보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후임 합참의장에 이양호공군참모총장이 임명된 것과,새 해군참모총장에 중장 4명을 제치고 소장이 중장승진과 함께 임명된 파격성을 들어야 할것 같다.여기에 ROTC출신의 박세환교육사령관이 최초로 대장 승진과 함께 2군사령관으로 보임된 것을 고려하면 이번 인사를 통해 새정부의 군인사는 육군·육사우월체제를 지양하고 능력과 균형을 새기준으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날 인사에서 12·12 관련자인 이필섭합참의장(당시 9사단 29연대장)·김진선 2군 사령관(〃수경사 상황실장)·안병호 2군부사령관(〃9사단 작전참모)박종규 56사단장(〃특전사대대장)등 모두 4명의 장성이 예편조치됐다. 12·12가 청와대에 의해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 이후 현역 관련자에 대한 후속조치의 폭이 어느 정도며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에 관심이 모아져 왔었다.수뇌부 개편내용을 발표한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자기직무의 범위와 상명하복을 벗어난 지나친 행동을 했던 사람」이 조치의 대상이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인사의 경우 상명하복이란 측면에서 반드시 문제삼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고 말해 이번 조치가 법률적 측면보다는 군의 어두운 시대를 정리하고 군관련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상당한 정치적 선택이 포함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대변인은 5·18과 관련해서는 『군의 생명인 통수권과 지휘절차에 따라 행동한 지휘관은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5·18의 경우 12·12와 달리 적법한 지휘절차를 따른 군사행동이었기 때문에 문책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당시 광주진압에 참여했던 김동진육참총장은 이같은 원칙에 따라 논의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조치로 군관련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문민정부의 재평가와 이에 필요한 군내부 후속조치는 모두 매듭됐다. 군사상 처음으로 합참의장에 이양호공군참모총장이 보임된 것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사항인 군의 균형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설명되고 있다.공군출신을 임명함으로서 공군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 새로운 군의 전략개념에 능동적으로 적응토록 하라는 메시지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김홍렬해군참모총장의 발탁은 공군출신 합참의장 임명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선임인 중장 4명을 제치고 소장이 총장에 발탁됨으로서 철저한 연공서열을 기준으로 했던 군인사가 앞으로는 능력본위로 개편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할 수 있다.군내부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중장 4명이 모두 총장으로 임명되기에는 약점을 지녀 이같은 발탁인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해군의 대폭적인 물갈이 후속인사가 불가피한 부분이다. 이대변인은 박세환중장의 대장승진및 2군사령관 임명과 관련,「ROTC는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투신한 사람들」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이번 인사는 문민정부가 지향하는 군인사정책의 일면을 보여주는 또다른 특징이 될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ROTC출신들은 육사나 다른 군사전문학교 출신들보다 문민성격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여기다 육사출신이 대부분의 요직을 맡아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박중장의 요직기용은 군의 균형발전이란 큰원칙이 각군 사이만이 아니라 각군 내부에서도 새로운 원칙으로 자리잡을 것임을 알수 있다.특히 육사우월체제의 부인은 문민정부의 군통수체계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개선될 것인가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부분이다.
  • “이도령·춘향의사랑은 10대의탈선”/「춘향전」각색「방자놀이」무대에

    ◎서울신문·금성 주최/28일 남원 광한루서 공연/취타대·사물놀이·판굿 곁들여 흥돋워 고대소설 「춘향전」을 방자의 시각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방자놀이」가 오는 28일 하오3시 춘향의 고향인 전북 남원시 광한루원 특설무대에 올려진다.서울신문사가 (주)금성과 함께 주최하는 제63회 남원 춘향제의 주요 행사로 마련된 연극 「방자놀이」는 취타대연주,사물놀이및 판굿공연과 함께 어우러져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신명나는 한판 축제로 꾸며진다. 광한루에 설치된 특설무대주변에서 취타대의 팡파르연주로 춘향제의 막이 오르면 사물놀이가 흥을 돋군뒤 현장극 「방자놀이」의 야외공연이 한 여름 더위를 식혀준다.연극이 끝나면 뒤풀이로 사물놀이 판굿이 20여분간 흐드러지게 펼쳐지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방자와 향단의 역할을 극대화시켜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을 10대의 탈선으로 설정,현대 젊은 남녀의 사랑을 풍자하는 이 연극은 모두 4장으로 구성돼있다.제1장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과 사랑,2장 연인의 슬픈이별,3장 신연맞이 행렬및 춘향의 수절,그리고 4장 이도령의 입신 출세등 「춘향전」의 기본 줄거리를 따르면서도 방자가 끊임없이 극의 진행을 방해하고 사건진행에 개입하면서 변화를 준다.방자는 연신 춘향과 이도령의 위선을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참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를 나름대로의 「사랑학」과 함께 제시하는 것. 「서울찬가」가 흥겹게 울려 퍼지는 무대에 동시에 등장한 방자가 관객에게 큰절을 한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춘향전」을 한껏 풍자하는 「방자전」을 만들어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방자놀이」는 이태훈 김연재등이 출연하고 김용락씨가 작품을 썼다.연출은 김동중씨가 맡았다.특히 방자와 향단의 대사는 농시조,가사투의 사설문학적 형태를,그리고 도령과 춘향은 3·4 또는 4·4조의 가사문학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인물들사이의 자연스런 대조로 우리 고전문학의 아름다움을 감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남원 춘향제」에는 배우들을 포함해 취타대,의장대,남원상고,사물놀이패등 모두 70여명이 참여한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명하의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대만서 일 육군대장 구니노 암살/“적을 알아야…” 22세때 처자등지고 도일/중국침략 앞둔 일군수뇌에 독검 던져 『나는 대한의 원수를 갚았노라.조국광복을 못본체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황해 송화서 출생 1928년 약관 24세의 나이에 대만에서 일본의 왕족을 쓰러뜨린 조명하의사.조선생은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까지 조국광복의 염원을 소리높여 외쳤다. 1905년5월11일 황해도 송화군 하리면 장천리에서 출생한 선생은 일찍이 총명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일제에 탄압받던 민족의 쓰라림에 눈을 떴다.조선생은 1926년3월 신청군청의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하면서 같은 황해도 출신의 김구선생과 노백린선생등 독립운동 선각자들의 무용담을 전해듣고 우국남예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그무렵 아들 혁래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하던 부인 오금전씨를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가던길에 조선생은 갑자기 어머니에게 『큰 볼일이 있어 멀리 떠나야겠습니다』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여기까지 왔으니 처자를 보아야하지 않겠느냐』며 극구 말리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친채 돌아섰다.처자식을 만나 마음이 흔들릴지도 몰라 자기를 채찍질했던 것이다.그리고 여중구등 친구 6명이 마련해준 여비를 받아 웅지를 품고 고향을 떠났다. 『항일을 위해서는 우선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선생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땅에 상륙했다.대판에서 공장직원·상점원등으로 일하면서 대판상공전문학교 야간부에서 고학하던 조선생은 수학과정에서 일본인의 차별대우와 모욕적 언사를 수없이 당하면서 조국독립의 염원을 굳혀갔다. 그러나 대판에서는 일본인 수괴를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조선생은 중국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로 마음먹고 일단 대만으로 향했다. 중국 상해로 직행하는 것은 일경들의 통제와 감시가 철저해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로서 비교적 여행이 자유로운 대만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갈 속셈이었다. ○상해 임정 가던 길 조선생은 1927년11월 대만에 도착,대중시 계광로 52번지에 있는 부귀국이란 찻집에서 매달 10원을 받고 일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하에서 고통을 받고있는 대만 원주민들의 실상을 대하게된다. 일제는 중국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일군의 산동성출병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그 전진기지로서 대만은 주요 위치에 있었다.이때문에 많은 일군 병력이 대만 각지 요소에 배치돼 있었고 이들 대만 주둔 일군을 특별검열하기 위해 검열사가 파견되었다. 조선생은 검열사 구니노 미야가 일본왕가 숭광왕의 장인이며 육군대장으로 군사참의관이라는 사실과 대중에서의 일정을 알아 냈다. 「대중에서 일국왕족인 검열사 구니노 미야를 내손으로 주살하며 우리겨레의 한을 풀리라」­거사결의는 돌보다 굳었다. 오매불망의 의지를 다진 조선생은 대중역에서 지사관사에 이르는 노정과 일박예정인 지사관사 부근의 정황등을 세밀히 정찰했다. 마침내 5월14일 운명의 날이 밝아오자 결연한 마음을 다지며 칼에 극약을 칠한 다음 이를 가슴에 품고 예정장소로 나갔다.도로 양쪽에 물샐틈없이 늘어선 경비군경들. 지사관사에서 구니노 미야를 태운 무개차가 상오 9시55분쯤 사거리지점에서 좌회전하려는 순간 선생은 독칼을 뽑아들고 날쌔게 자동차 뒤쪽에 뛰어올랐다.실로 순식간이었다. 위험을 느낀 운전수는 속력을 냈고 무개차에 동승했던 대소무관장이 구니노 미야의 몸을 감쌌다. 그순간 조선생은 그를 향해 독검을 힘껏 던졌다.그러나 칼은 목을 스쳐 가벼운 상처를 입힌뒤 운전수의 등에 맞앗다. ○중상 구니노 숨져 조선생은 아수라장이 된 그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치고 일군경들에게 포박을 당하였다. 그해 7월18일 대만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황족위해와 불경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조선생은 3개월뒤인 10월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할 말이 없는가』라는 형리의 질문에 『아무 할말이 없다.벌써 각오하고있는 바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생이 순국한지 3개월17일뒤인 1929년1월27일 구니노 미야는 독기가 온몸에 퍼져 목숨을 잃었으니 선생의 거사가 성공한 것이다. 선생의 유해는 1931년4월중순쯤 고향인 장천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유택이 마련됐다. 조선생에게는 63년3월1일 건국훈장 독립훈장이 추서됐다.
  • 신경제 5개년계획 작성지침 내용

    ◎국민연금가입 농어민까지 확대 추진/농·수산물 등 수입제한 97년 폐지검토/임금 총액기준 인상… 생산성따라 차등화 유도/남북경협 활성화 돕게 판문점에 「경제상담소」 ▷국제시장기반 확충◁ ◇대외경제관련 제도와 관행의 선진화=93년말까지 OECD 자본및 경상무역외 거래의 자유화(1백48개 항목)규정을 검토,이에 따른 계획을 마련한다.UR협상 결과를 반영하여 각종 교역관련 제도를 국제규범에 일치시킨다. ◇실효성 있는 개방정책의 추진=서비스업을 포함한 외국인투자 개방예시 5개년 계획을 세운다.농산물을 비롯한 잔존 수입제한 조치를 97년까지 폐지하거나 GATT규범에 맞도록 재조정한다.제2차 관세인하계획(89∼94)에 따라 관세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인하하고 94년 예시제 종료시 현행 관세율 구조를 보완,개편한다. 수입급증으로 국내 생산기반의 붕괴가 우려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종양세를 도입한다.수입관련 각종 개별법을 전면 개편한다. ◇외국인 투자와 선진기술도입의 활성화=긴급수입제한과 관련한탄력관세 제도의 운용체계를 실효성있게 개선한다. ◇주요 교역상대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능동적으로 대처=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저가품 수입급증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러시아 베트남 동구등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경제권에 대해 지역별 특성을 감안한 경제협력을 추진한다. ◇기업의 국제화 촉진=해외투자 관련절차를 간소화하고 모든 해외투자를 신고제로 전환한다. ◇국제기구등에서의 역할제고및 대외교섭 능력 확충=통상전문인력의 양성및 확보를 위한 종합대책을 세운다. ○해외투자 신고제로 ◇남북한 물자교류의 확대=청산계정의 설치,직교역 해로의 개설,경제상담소(판문점)설치등 직교역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외국환은행간에 환거래계약을 체결,경화결제방식으로 전환한다. ◇남북한 경제협력사업의 단계적 추진=미국 일본 중국등 제3국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및 국내 민간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을 통해 간접적인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한다.경공업분야의 합작투자,관광자원의 공동개발,공동어로작업등 시범적인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한다. ◇남북경제협력에 필요한 통행선 통신망의 연결및 경제관련 통계자료의 교환. ◇국제무대에서의 남북한협력의확대=GATT IBRD ADB등 국제기구에 북한이 가입할수 있도록 협조한다. ◇남북한 경제협력 관련법규및 제도의 정비=「남북 경제교류 협력 민간협의회」를 설치,운영한다.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재원조달=남북협력기금을 확충하고 대외경제협력기금및 수출지원 금융제도를 활용한다. 통일비용조달을 위해 조세 국채 차관등 다양한 조달방안을 검토한다. ▷국민생활여건 개선◁ ◇서민주택가격의 획기적 안정방안 마련=공영개발방식의 대규모 택지개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이 참여하는 소규모 토지 구획정리 사업의 허용방안을 검토한다.주택 과다보유자에 대해 중과할수 있도록 재산세제도를 개선,95년부터 시행한다. ◇서민주택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 방안 수립=주택은행을 중장기 서민주택 금융기관으로 육성한다. ◇임대주택 공급의 확대및 주택임대산업의 육성방안마련=보험회사등 금융기관의 임대주택 건설사업 참여를 촉진한다. ◇산업에너지및 개발부문에서 환경오염유발을 최소화=산업부문의 에너지 소비증가율(현재 15%수준)을 제조업의 성장률 이내로 억제한다. ◇교통수요의 효율적 관리=승용차의 이용을 억제할 수 있도록 자동차관련 세제를 개편한다.주차요금의 지역별및 시간대별 차등화로 도심 교통수요를 억제한다. ◇국민연금의 확대=현재 5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에게 적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가입대상을 농어민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94년까지 마련한다. ◇영유아 뵤육시설 확충=▲현재 상용 여성근로자 5백인 이상 사업장으로 되어있는 직장보육시설 설치대상 사업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강력히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다. ○서민택지 민간개발 ◇복지사업에의 민간참여 확대 ◇소비자 보호시책의 강화=개방화및 국제화에 따른 소비자 보호시책을 발전시킨다. ◇유통부문의 자유로운 기업활동 촉진및 정부지원체계 확립=유통업에 대한 투자및 토지등의 규제를 완화한다. ◇유통단지의 체계적 조성 ◇화물유통체계의 개선및 유통정보화 촉진 ◇토지이용 규제제도의 개편=국토관리·공장용지등 관련분야별로 산재한 토지이용관련 법률을 분야별 기본법 중심으로 통합한다.국토이용관리법상 용도지역을 단순화하고 개발대상 토지내에서는 행위제한을 대폭 완화한다.개발대상토지에 대해서는 현행 허용행위 열거방식(PositiveSystem)에서 제한행위 열거방식(NegativeSystem)으로 전환,개발이 가능토록 한다. ○농산물관세 종량제 ◇농지및 산지의 효율적인 이용반안 강구=농지및 산지관련법률을 「농지기본법」및 「산림기본법」으로 각각 일원화한다.농지의 소유자격을 확대하고 농지거래의 규제를 완화한다. 보전·준보전 임지를 생산·공익·산업임지등으로 재조정,개발대상 산지를 확대한다.산업임지에 대한 행위제한을 제한행위 열거방식으로 바꾸고 전용절차도 간소화한다. ◇수도권집중억제시책의 재검토=현행 수도권 5개권역을 과밀지역과 과소지역으로 단순화한다. 동·북부등 과소지역은 토지이용규제를 완화,기능중심의 다핵분산형으로 개발한다.과밀지역에 대해서는 과밀부담금 부과등 경제적 부담을 늘린다. 지역계획 제도를 도입하고 지역발전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지역균형 개발법을 제정한다.일부 공공기관과 주요 교육기능의 지방이전 촉진방안을 마련한다. 대기업의 지방이전 때에는 자체공단및 부대시설 개발권을 부여한다. ◇개발제한구역제도의 개편방안 마련=주거·생업·생활편익에 관련된 시설물에 대해서는 신·증축 허용범위를 확대한다. 「보전이 필요한 토지」와 「이용개발이 필요한 토지」를 구분,행위규제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토지개발및 비축체계의 정비방안 수립=토지이용수급계획을 토대로 개발사업을 추진토록 한다.실수요자들과의 합동개발,공공과 민간이 공동출자한 「제3섹터」형식의 법인을 설립하는등 개발방식을 다양화한다.토지선매제도를 적극 활용,국·공유지의 사전비축을 확대하고 토지의 채권보상을 확대한다. ◇토지관련 세제강화 방안=공시지가의21%수준인 종합토지세 과표를 96년부터 공시지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중산층 이하의 가계에 부담을 덜기 위해 세율인하 등 세율체계를 정비한다.개발부담금 부과시점을 앞당겨 용도변경으로 인한 지가 상승이익의 환수를 강화한다. 토지거래허가 및 신고구역의 범위를 축소하고 가격심사 폐지등 규제를 완화한다.말이용토지를 방치하거나 전매하는 경우 제재를 강화하거나 세금을 중과한다. ◇도로부문=96년까지 국도와 지방도의 포장을 끝내고 98년까지 기존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한다. ◇철도부문=고속전철건설은 재원조달 방안을 현실화해서 추진계획을 보완한다. ◇항만부문=97년까지 부산항 4단계 컨테이너 부두를 건설하고 민자를 유치,96년까지 광양만 1단계 컨테이너부두 건설을 끝낸다. ◇공항부문=수도권 신공항 1단계 사업에 대한 연차별 투자 및 재원 조달계획을 보완한다.수자원 개발제도를 정비한다. ◇화물유통부문=부곡과 양산의 복합화물기지를 95년까지 완공한다. ◇안정적 재원조달 방안=유류 특소세를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위한 목적세로 바꾼다.민자 유치촉진을 위해 특례법(안)을 제정한다.고속도로 운임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한다. ◇노동관계법 개정=노동기본법·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사협의회법·노동위원회법 등을 개정한다. 임금과 근로시간등 노동조건의 기준을 합리화하고 단체교섭의 대상과 한계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 ◇새로운 노사관행 정착=기업 경영정보의 공개를 강화하고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확대한다.정부의 주요정책심의기구에 노조대표의 참여를 확대한다. ◇임금교섭관행 개선=노사 상급단체(노총·경총)에서 1차 협상하고 개별기업에서 2차 협상토록 유도한다. 유사 수당을 통·폐합하고 총액기준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한다.생산성에 따라 임금이 차등 인상되도록 유도한다. ○비금융업 자율유증 ◇경제력 집중완화=전문·독립경영 체계를 유도한다.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사간 채무보증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기업집단의 내부거래등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감시를강화한다.출자 및 채무보증 한도를 재조정한다.공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을 확대한다. ◇기업경영구조의 혁신=금융기관에 의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주식보유를 확대한다.소유분산 정도에 따라 출자규제,상호 채무보증 한도제도 등의 차등 적용방안을 강구하는 등 소유분산을 촉진한다. 기업집단 연결재무제표의 작성을 의무화하고 대여금과 가지급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 이자비용의 손비인정을 제한다.비금융업의 유상증자를 자율화한다.기업공개 자금의 일부를 차입금 상환에 사용토록 의무화하는 등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한다. ◇경쟁적 산업환경조성=가격 및 입찰·담합의 방지방안을 강구한다.공정거래위원회의 위상 및 기능을 강화했다. ◇농어촌구조개선 투자의 우선순위 조정=생산기반 정비,인력양성,기계화 및 시설·장비의 현대화에 우선 투자한다.농어촌 복지부문의 투자를 확대한다.대단위 농업개발,간척등 대형투자사업을 억제한다. ◇농지이용 효율화방안=농지매매자원은 규모화 대상 농가에 한해 지원한다.농업진흥지역 밖 농지는 농어촌 고용창출 지역으로 활용한다. ◇영농인력 육성방안=농업전문학교·농과대학 등을 주산단지별·품목별 농업기술 전문대학으로 전환한다.연근해 어선세력을 적정수준으로 감축하는 등 어업구조도 조정한다. ◇농수산지원조직 개편=농·수·축협의 일선조합을 통합,품목별조합으로 육성한다.농·수·축협의 신용부문 통합방안을 강구한다.농수산관련 단체 및 조직도 정비한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48)

    ◎길림시절:7/조선인류길학우회사 날조/“27년 「유길학우회」로 개편 명예회장 취임” 주장/중1때 학생청년조직 최고간부부상은 불가능/안병기 등 지도자명단 일경기록서 삭제 김일성은 1927년 4월10일에 조선인 길림소년회를 조직하고,그 다음달인 5월8일 종래부터 있었던 조선인려길학우회를 조선인류길학우회로 개편했다고 주장한다.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29년 유길학우회로 『우리는 조선인여길학우회 속에 들어가 본래의 합법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점차 그 조직을 순수한 친목단체로부터 혁명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자고 하였다.공산주의자인 내가 명예회장으로 되었지만 표면상으로는 민족주의자들을 끼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중국군벌당국의 주의도 덜 끌었다.나는 조선인여길학우회를 지도하면서 그것을 조선인유길학우회로 개편하였다.조선인 유길학우회는 조선인청년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라고 표방하였지만 실지로는 ㅌ,ㄷ의 이념을 실현하는 혁명적인 학생청년조직으로 활동하였다』「주①」 여길학우회는 1926년에 실지로 존재하고 있었다.「주②」그러나 이 친목단체가 유길학우회로 개칭된 것은 29년쯤일 것이며 이 조직에서 김일성이 「명예회장」으로 된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보다 더한 것은 김일성의 이러한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북한이 일삼는 대대적인 문건 변조작업이다.이 작업은 우상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죄행인데 그 실태의 일단은 아래와 같다. 북한이 이용하는 유길학우회 문건은 1930년의 일본 길림총령사관 경찰기록이다.여기서는 이 기록을 편의상 3단락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겠다. 1)「유길학우회.본회는 길림 지나중등학교 이상의 재학선인 등이 조직하고 있으므로,현재 회원수 등은 불명하나(길림대학생 안병기·김인기·박일파 등이 오이를 잡고①)3·1기념일·국치기념일(한국병합)등에는 기념식을 단독 또는 다른 불령단체와 공동 거행하며, 또 기회 있을 때마다 강연회를 개최하며(민족주의의 고취②),배일선전을 하고 있다」「주③」 이 기록에 필자가 고딕으로 쓴 부분은 「조선전사16」에 나오는 같은 경찰기록의 변조판에서삭제되어 있는 부분이다.「주④」 그런데 삭제된 부분 ①에 따르면 30년 당시 유길학우회의 책임자는 안병기·김인기·박일파였다.당시 안병기는 조선공산당 재건파인 서울상해파의 중앙간부였고 김인기·박일파도 같은 서울상해파의 고려공산청년회 중앙간부였다. 또 29년께,이 유길학우회의 임원으로는 김인기·박일파·신영근·이장청·이석옥등 5명이 문헌에 나온다.「주⑤」 이 중 신영근도 30년에 서울상해파에 들어간 전문학교 학생이고 이장청은 한인 여성교육사업에 종사한 정의부계통의 여성활동가였다.이석옥은 알 수 없으나 이 5명이 유길학우회의 최고지도자였다. ○고작 평회원 자격 그런데 조선전사는 대학생이나 전문학교 학생,그렇지 않으면 사회활동가인 이러한 간부들이 있었다는 것을 모두 은폐하였다.이번 회고록에서는 이러한 은폐작업 끝에 초급중학교 학생에 불과한 김일성을 「명예회장」으로 앉히는 것으로 그 변조작업을 마무리짓고 있는 것이다.그는 27년은 커녕 29년이라도 이러한 간부들을 누르고 학우회의 최고간부는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29년이라도 그는 중학 3학년으로 평회원 이상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②는 유길학우회가 조선공산당 재건파에게 휩쓸려 간 30년 현재라도 표면상은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전술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덮은 것이다. 2)『본년(1930년… 인용자)1월중 선내 학생소요사건에 대하여 지나인 일반의 동정을 구하여③ 대일반항운동을 유리케 전개할 「반일본 제국주의 선언」이라 제한 지나문이로서 과대·날조·중상적 문구를 나열하고④ 중한인 공동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할 취지의 불온 인쇄물(길림려길한인학우회 명의)을⑤ 지나측 관공서,학생간에 다수 배포하였다』 조선전사는 유길학우회가 중국에서 중국글로 삐라를 쓴 것을 「주체사상」에 걸리는 행동으로 해석하였는지 ③④를 삭제하고 있다. ⑤는 유길학우회가 30년 당시에도 「여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그런데 이것도 김일성이 27년 5월에 여길을 유길로 변경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삭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길학우회란 명칭이 30년에도 사용되었다는 경찰문건을 가지고 생각하면 이 조직이 유길학우회로 변경된 것은 아마도 29년쯤일 것이다. ○중문전단 배포 은폐 3)『본년 3·1기념일에는 재만한인 반제국주의동맹이 발기하여 각 단체 합동기념일을 거행하였는데 이에 참가하였다.⑥』 ⑥은 1930년의 3·1절이므로 27년에 「유길학우회 명예회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김일성으로서는 삭제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록으로 된다. 이상 일본기록 중에서 북한이 삭제한 부분만을 분석해 보았다.이 부분들은 유길학우회의 성격과 임무를 잘 보여주고 있고 아울러 이 조직에 망라되었을 때의 김일성의 보잘 것 없는 지위와 사상상태를 여러모로 암시하고 있다. 「주해」 ①「세기와 더불어 1」240면 ②「한국독립운동사 5」659면 ③같은 책 748면 ④조선전사 16,76면 ⑤「한국독립운동사 5」718면
  • 구소 붕괴·냉전종식 원인/부시,고르비개혁 신뢰 안했다

    ◎“지지” 외치며 경원은 최소화/미 사학자 비슐로스·언론인 탈보트 공저 화제 최근 러시아의 정치상황이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저명한 소련전문학자와 외교문제 칼럼니스트가 공동으로 냉전종식의 내막을 기술한 저서를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화제의 책은 역사학자인 마이클 비슐로스와 타임지의 외교문제 칼럼니스트 스트로브 탈보트가 함께 집필한 「최고위급에서 이뤄진 냉전종식의 내막」­.특히 탈보트는 클린턴 미대통령으로부터 현재 구소련지원 관련업무를 책임맡고 있는데다 러시아대사로 내정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미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관계에 관한 수권의 저작을 낸자 있는 이 두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고르바초프 소련전대통령을 비롯,세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전베이커미국무,스코크로프트 전백악관안보보좌관등 소련붕괴 당시의 미소외교정책결정 핵심인물들을 수없이 면담하여 자료를 확보했다. 이 책은 부시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간의 개인적 유대관계를 비롯,부시의 대소전략,고르바초프의 실각과정등을 소상하게 적고 있다. 책내용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급진 개혁파와 공산주의 강경파 사이에 줄타기를 하면서 동구에 대한 통제포기,독일통일의 수용,사담 후세인의 비판등 친서방정책으로 선회해나가는 과정을 기술했다.1부 후반에는 부시대통령의 전화외교,중동에서의 소련영향력 배제전략등을 소개하고 있다. 베이커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암살 이후 질서회복을 위해 소련이 개입하기를 희망했다면 미국은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제2부는 부시대통령이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냉전을 종식시키는 정책을 어떻게 구사했는가를 적고 있다.부시행정부가 91년1월 소련의 대학살 이후 리투아니아를 지원하기를 꺼린 것이나 고르비의 정적인 옐친과의 관계를 확립하라는 현지 대사의 건의를 받아들이지않은 것등은 소련의 안정이라든가 나토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독일통일에 협력을 구하려는데 너무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이 모스크바에 대한 원조를 최소화한 이유는 소련지도자들의 개혁정책 추진능력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부는 고르바초프가 몰락한 과정과 그 배경을 분석하고 있다.고르비는 과감하면서도 온화한 면이 있는가 하면 혼란스럽고도 자만신이 넘치는 등 매우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기술하고 있다.고르비는 개혁을 추진하는 방향을 잡긴했으나 분명한 개혁의 청사진이 없어 결국 실패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두가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하나는 부시나 고르비나 할것 없이 소련이나 미국의 국민저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이다.고르비는 옐친에 의해 밀려났고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다.또하나는 부시대통령이 고르비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강력한 제동을 걸지 않았지만 소련의 원조요구에 끝까지 버틴것은 옳았다고 평가된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원조를 해주었더라면 소련 구체제의 생명만 연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4백98쪽,24달러 95센트.
  • 사거 4백주기… 국어국문학계 중심 재조명 활발

    ◎정치야심 좌절… 문학서 성공/「충자청백」에도 귀양·복직 반복/5일 진천군 송강사서 추모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송강 정철(15 36∼1593)의 작품과 인물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사거 4백주기를 맞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국어국문학계를 중심으로 각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번 재조명은 송강문학의 본질과 함께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정치인으로서의 송강의 진면목이 새로 들춰져 흥미를 끈다. 사거4백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최근 발간된 「송강문학연구논총」에 수록된 「정철과 그의 시」를 집필한 박요순(한남대·국문과)교수는 『송강은 「청사에 빛날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는 문학적 평가에 반해 「정치인으로서나 관직자로서는 주위로부터 많은 원한을 사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즉 송강은 정치무대에서 「충자청백」「청직」「강개정직」등의 평판을 얻었으나 정작 그의 정치행로는 탄핵과 복직,귀양의 길을 되풀이 한 험로였다는 것. 「이조실록」명종·선조대의 기록에 송강의 언행이 무려 2백77회나 거론된 점도 그의 정치적 야심을 짐작할 수 있는 논거로 보았다.박교수는 또 문인과 정치인의 길을 함께 걸었던 송강의 의식과 생애를 사로 잡았던 것은 정치였고,문학은 부차적인 것이었지만 결국 표면에 내걸고 전력을 다했던 정치계에서는 실패했고 부차적이었던 문학에서 성공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함께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성산별곡」「장진주사」등 5편의 가사와 시조80여수,한시 5백여수등 유작에서 나타난 송강가사의 성격과 본질을 고찰했다. 「송강문학연구논총」(국학자료원간)에는 이밖에 지난36년 「진단학보」에 발표된 송강문학에 관한 최초의 근대적 학문연구결과인 가람 이병기선생의 「송강가사의 연구」를 현대문법으로 정리해 게재한 것을 비롯,조윤제 이병도 조규익 이종국씨등 20명의 전문학자들의 논문 22편이 수록됐다. 한편 영일정씨문청공파종친회는 오는 5일 송강의 시신이 안치된 충북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송강사에서 4백주기추모행사를 연다.추모제는 묘소봉제,사당춘향제,추모특별강연회등 순으로 진행될 계획이다.종친회는 또 현재의 송강유물관을 송강기념관으로 개칭,내부를 수리하고 유적·유물을 재진열하는 한편 「사미인곡」등 대표적 가사작품 5편을 원로서예가 여초 김응현씨의 휘호로 액자를 만들어 현양하는등 새로 단장된 기념관을 공개키로 했다.
  •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문예총/「유일체제」떠받들기 47년(오늘의 북한)

    ◎그산하 단체와 활동내용을 알아보면/작가·예술인 사상교육… 당노선 홍보에 활용/작가동맹/창작주제까지 할당… 혁명정통물만 30%/미술가동맹/조각작품의 80%가 김 부자의 입상·흉상/음악가동맹/최근 우상화일변도 탈피,관객동원 신경 북한의 대표적인 문학예술단체인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하 문예총)이 지난 25일로 결성 47주년을 맞았다. 문예총은 북한의 모든 직업예술인을 조직·통제하고 문학·예술을 총괄하는 단체로 해방 이듬해인 지난 46년 3월 조직된 「북조선문학예술가동맹」을 모체로 발족됐다.문예총은 북한의 여타 문화단체가 그러하듯이 공산주의적 대중선전·선동의 필요성을 느낀 김일성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북조선문학예술동맹」은 46년 10월 각 부문별 동맹을 두기 위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개칭됐으며 이후 당적인 문학예술 창조의 길에 들어서면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북한공산정권 초기의 정책선전활동에 적극 이용됐다.6·25전쟁 중에는 전후방에서 주민들을 전장에 동원하는 역할과 함께 북한군의「영웅적 전투」를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은 그러나 휴전을 전후한 시기에 불어닥친 숙청 바람을 타 53년 9월 해산됐다.그후 북한은 작가동맹,작곡가동맹,미술가동맹 등 몇몇 부문별 조직만 필요에 의해 두고 있다가 60년대 들어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통일적 조직인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을 다시 결성,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대위원장은 한설야가 맡았었으며 그뒤 이기영을 거쳐 현재는 백인준(제9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맡고 있다. 문예총의 주요임무는 ▲당의 노선과 정책의 관철을 위한 문학예술토의 ▲작가예술인들에 대한 사상교양 ▲문학예술의 대중적 발전 등이다.문예총은 이를 위해 작가·예술인에게 당의 문예정책을 홍보,이의 관철을 위한 지도·통제사업을 하고 작가·예술인들의 창작사업을 지도하는 한편 문예계의 등용과 축출 등을 결정한다.주요연맹의 조직 및 활동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가동맹=소설·시·희곡·아동문학·평론·고전문학·외국문학 등의 분과위원회가 있으며 산하기관지발행기구로서 「문학신문사」와 「조선문학」「청년문학」「아동문학」「현대문학」「시문학」「국문학」「외국문학」「고전문학」 등의 각 잡지 편집부가 있다.북한문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설문학은 창작내용에 있어 당이 할당해준 주제에 입각하도록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창작주제 할당은 혁명전통물 30%,조국통일물 20∼30%,사회주의 건설물 10∼20%이다.신문학·아동문학·고전문학 등도 소설문학과 같은 상황이다. ▲미술가동맹=회화·동양화·무대미술·조각공예·평론 등의 분과위원회가 있다.동양화는 산수 등을 그리는 고대의 동양화가 아닌 노동자·농민의 작업환경을 테마로 한 인물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조각작품의 80%가 김일성 및 김정일의 입상과 흉상이며 나머지 20%는 천리마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무용가동맹=민족무용·현대무용·평론 등의 분과위원회로 나누어져 있다.우리 고전무용의 형식에 구소련 무용의 동작을 혼합한 형태의 동작이 주류를 이룬다. ▲영화인동맹=연기분과위원회·연출분과위원회·장치분과위원회·효과(녹음)분과위원회·평론분과위원회가 있고 다른 동맹과는 달리 지방조직이 있다.조선예술촬영소·조선기록영화촬영소·2·8영화촬영소 등과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가동맹=보도사진·예술사진·평론 등의 분과위가 있으며 영화인동맹과 같이 지방조직은 없으나 사진의 선전효과 때문에 북한의 이 부문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순수사진 예술작품의 창작은 허용되지 않는다.이 분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사진 제작이다. ▲음악가동맹=민족음악분과위원회·현대음악분과위원회·작곡분과위원회·민족음악연구소가 있다.최근 들어 김일성우상화선전 등 정치색 일변도에서 탈피,음악·무용·곡예·단막극 등 공연종목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등 관객동원에 신경을 쓰고 있는 점이 눈에 띄고 있다.
  • 대입본고사/난도높아 진학지도 비상/일선고교·학원

    ◎연대문제유형 분석… 대책 부심/국어·국사 출제경향 변화 뚜렷/교원 특강·일 자료 수집 등 부산 13년만에 부활되는 대입 본고사문제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일선고교와 입시학원에서 본고사대응전략을 세우느라 부심하고있다. 입시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서울대의 출제지침과 연세대의 예제를 분석한 결과 높은 사고력과 논리력을 요구해 70년대의 대입본고사문제보다 오히려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국어는 옛 본고사와 비교해 출제경향이 대폭 바뀌었고 국사도 깊이있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평이다. 나아가 두대학이 유명 국·사립대인점을 고려하면 본고사를 치르는 다른 대학들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해 전반적으로 본고사가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선고교에서는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이 이처럼 문제를 어렵게 출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다 8월에 있을 수학능력시험에도 대비해야할 형편이어서 학생지도에 혼선을 겪고 있다. 또한 본고사가 어렵게 출제된다면 시험에 대비한 전문고액과외가 다시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해마다 서울대에 많은 합격자를 내고 있는 서울 D외국어고는 우선 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하고 논리력과 사고력 향상을 위한 폭넓은 수업을 하고 있지만 서울대등의 본고사가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판단,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학교는 일본명문대의 입시문제와 옛 본고사문제,대학교양과정교과서등 입시자료를 수집해 수학능력시험이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본고사대비수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입시명문인 서울 J학원은 발표된 본고사 출제지침에 따라 교재와 강의내용을 보완했으며 사고력과 논리력을 길러주는 수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교과서밖의 지문도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는등 출제유형이 크게 바뀐 국어의 경우 매주 대학교수를 초빙,깊이있는 작문강의를 해 논술·요약식출제에 대비하고 있으며 역시 외국대학의 입시문제등을 수집해 본고사준비에 활용할 방침이다. 서울 D학원도 지금까지 써오던 교재를 난이도가 훨씬 높은 교재로 바꾸고 일본 입시기관과의 교류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그러나 대부분의 일선고교에서는 본고사가 너무 어렵게 출제된다면 고교 교육과정과 거리가 멀어 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아니라 학생들을 어쩔 수 없이 우열로 나눠 지도해야 하는등 부작용도 따를 것이라고 걱정하고있다. 서울 Y·J고등 여러 고교들의 입시교사들은 이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아직까지 적절한 본고사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8월이후에나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입시전문가는 『내년 본고사는 수험생들의 실력이 비슷한 입시전문학원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반면에 일선고교에서는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며 부활된 뒤의 첫 본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2)

    ◎암흑속의 공로/언어탄압에도 우리말 지켜와/한국최초의 여기자 1920년에 선발/인신매매 비리 등 추적… 언론기능 수호 한일합방후 그 제호에서 「대한」을 떼버리고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한 매일신보(1938년부터 매일신보로 개제,이하 「매신」으로 통칭)는 일제의 한국병탄을 합리화하는데 이용됐다.민족의 존재를 부인한 언론으로 오욕의 역사를 대변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래서 민족주의적 입장의 신문사 연구학자들 가운데는 일제통치하에서 민족지가 존재하지 않던 1910∼20년,1940∼45년의 두 시기를 「무신문기」로 분류하는 이도 있다. ○일제치하 1차사료 그러나 정진석교수(외국어대)는 그의 저서 「한국언론사」에서 ▲민족지가 없던 시기의 1차사료 ▲민족지와의 비교 대상 ▲우리 언론인및 문인들의 피난처및 발표지면 제공등의 이유를 들어 매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매신은 비록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보도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지만 사회·문화 보도에 있어서는 문제점을 적시,총독부의 그릇된 정책을 일깨우기도 했다.그리고 일제말기 우리글 말살정책하에서 유일한 한글매체로 우리글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신은 또 조선 동아의 강제폐간으로 오갈데 없어진 당시 언론인들의 은신처로 제공돼 그들이 해방후 민족정론을 펼칠수 있는 기반을 닦을수 있도록 했다.특히 최초로 기자공채제도를 도입,여기자를 채용하는등 부분적으로는 신문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도 부인할수 없는 것이다. 매신은 인재의 폭넓은 등용을 위해 최초로 기자공개채용을 실시했다.이는 당시 아는 사람의 소개등으로 신문기자가 되던 관행으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매신의 첫 기자채용은 1918년 이다.이무렵 홍란파와 유지영이 매신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들은 후에 음악도로 이름을 날렸는데 당시 신문사는 시인 소설가뿐 아니라 음악·미술학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그후 기자공채가 지상에 보도된 것을 중심으로 보면 20년7월,29년8월,35·36·38·39·40년 1월에 이뤄져 비교적 정기적으로 이뤄졌음을 알수 있다. 40년 이후에도 여러차례 견습기자를 모집했다.매신보다는 10여년 늦은 민간지는 조선일보가 1930년에 처음으로 기자를 공채했으나 그나마 지속시키지 못했던데 반해 매신은 공개채용의 제도화와 함께 타사와의 활발한 기자교류도 시도했다.당시 기자채용의 자격요건은 전문학교 졸업자로 초기에는 30세미만이었으나 40년부터는 27세로 연령을 낮추었다. ○인재를 폭넓게 등용 기자공채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여기자 공채였다.매신 20년 7월2일자에는 부인기자를 채용한다는 사고가 실려있다.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탄생을 알리는 신호같은 것이었다.당시의 사고는 부인기자의 채용이유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부인계의 해방을 위해 가정개량및 부녀개조의 완벽을 기함에는 현숙박학한 숙녀의 책임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시세의 요구」때문이라고 강조했다.또 응시자격은 ①가장있는 부인 ②20세 이상 30세 이하 ③고등보통학교 졸업정도 이상으로 문필취미가 있는 부인등으로 못박았다. 이무렵은 조선과 동아가 창간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때다.그때까지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던 매신은 경쟁상대들의 출현으로 편집국을 개편하고 그들과의 차별화와 새로운 이미지를 심기위한 노력을 기울였다.여기자채용은 그 일환으로 실시된 것이지만 여자들의 문밖출입마저 철저히 금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 여성의 기자직 진출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때 뽑힌 여기자가 이각경이다.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져온 최은희(1924년 조선일보 입사)보다 4년이 앞섰다.1897년 2월 서울에서 출생한 이각경은 한성여자고등학교(현경기여고) 기예과와 사범과를 나와 2년간 교편생활을 하다 매신에 입사,9월5일 정식으로 발령을 받았다.그녀는 9월14일자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해 「부인기자의 가정방문기」「축첩에 대한 이해」「위생에 대한 주의」를 비롯,가정·여성·아동·교육문제등 수많은 기명기사를 남겼다. 총독부기관지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신의 기자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파헤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30년대말 「기생 박애란 음독자살사건」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권번기생 출신인그녀는 24세때 돈많은 지주의 소실로 가게 되었다.그러나 그녀는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끝까지 거절하자 기생어미가 그녀를 창녀굴에 팔아넘기려 했다.그러자 머리물들이는 약을 입에 털어넣고 자살한 사건이었다.매신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신매매가 공공연하게 허용되고 있는 사회비리에 초점을 맞춰 심층보도했다. ○사회의 문제점 고발 그 결과 한달후 총독부령으로 전국적인 인신매매행위 엄단이 공포되었고 현재 빚에 묶여있는 기생이나 창녀들을 무조건 해방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지기에 이르렀다.또 「용인보통학교 생도구타사건」도 비슷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용인 어느 학교 3학년생이 수업료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인 교사에게 매를 맞고 늑골이 부러졌는데 이를 항의하던 생도의 아버지도 교장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이었다. 생도가 서울 의전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독자의 제보를 받고 뛰기 시작,사건의 전모와 학생체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보도를 했다.결국 보도가 나간지 얼마 안돼서 그 교장과 교사가 파면되었으며 각급학교에 생도들에 대한 체벌을 경고하는 지시가 내려졌다. ○40년대 45만부 발행 매신은 40년대들어 일제의 우리 언어말살정책에 따라 각급학교에서 우리말을 못가르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일체 우리말의 사용을 금지시킨 상황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켜나간 유일한 매체였다.이때문에 전쟁중 45만부에 달하는 엄청난 부수 신장을 가져오기도 했다. 매신은 또 조선 동아가 폐간당하자 해고된 수많은 언론인들에게 호구지책이든 호신지책이든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매신은 전쟁중 어려운 시기에도 자체 감원이나 감봉없이 사원들을 안정시켰다.그리고 오갈데 없어진 언론인들을 포용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이무렵 매신에 들어온 대표적 언론인들은 백철 정비석 정현웅 이관구 우승규 서승효 김규택 조풍연 곽복산 조경희 노천명 이홍식 박종수 홍종인씨등이다.이들은 광복후 대한민국의 문화·언론계를 이끌어나간 인재들이기도 했다.매신은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때를 기다릴수 있도록 피난처를 제공해준 것이다. 매신이 총독부기관지라는 굴레속의 언론이라는 사실은 결코 숨길수 없다.그러나 일제통치 기간중 한번도 중단됨없이 우리말 신문의 위치를 지키는 가운데 많은 역할들을 수행해 왔다는 점에서 그 존재가치가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한국언론사」(정보석·나남 1990) 「언론비화 50편」(한국신문연구1978) 「한국언론인물사화」상·하(대한언론인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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