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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매거진 We/섬초 나 모른다고?

    “한 겨울 들판이 이렇게 푸르다니…,이게 전부 ‘섬초’(시금치)래요.” 지난 12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 내월리 내포마을.새해 휴가차 서해안 탐사에 나섰다는 박성민(39·경기 고양시 덕양구)씨는 끝없이 펼쳐진 시금치 벌판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 겨울인 요즘 비금도는 온통 파랗다.비닐 하우스를 하지 않고 한데서 기르는 시금치가 들판과 산기슭을 온통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재배 면적이 서울 여의도 넓이의 2배가 넘는 180만여 평에 이른다. 명경철(29) 비금농협 직원은 “비금도에선 재래종의 노지 시금치를 ‘섬에서 나는 풀’이라 하여 섬초라 부릅니다.”라며 섬초의 유래를 설명했다.비금 농협은 이를 ‘비금 섬초’라 하여 특허청에 상표로 등록했다.비금 섬초는 여느 시금치보다 맛이 좋다.달착지근하면서 특유의 상큼한 맛이 있다.잎사귀도 두텁고 실하다.‘명품’ 시금치라 할 수 있다.믹서기로 갈아 즙으로 마시면 바로 건강 음료가 된다.섬초에는 비타민이 풍부하고 철분도 많이 들어 있다. ●늙지도, 아프지도 않게 하는 만병통치약 주부들이 섬초를 좋아하는 이유는 삶았을 때도 싱싱하기 때문.죽치마을 산기슭 밭에서 섬초를 캐던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명계단(72) 할머니는 “섬초를 데칠 때 소금을 살짝 넣으면 파란 색깔이 변하지 않아.”라고 말했다.섬초의 뿌리는 어른 손가락만하게 굵다.“뿌리도 버리지 말고 같이 데쳐 먹어.뿌리가 더 맛있어.섬초는 늙지도 않고,아픈 데도 없게 하는 만병통치약이야.”라는 김종기(73) 할아버지가 부인 명씨를 거들었다. 선도도 오래 간다.강영삼(43) 비금농협 과장은 “다른 시금치는 3∼4일 지나면 시들어 버리는데,섬초는 물만 뿌리면 잎사귀가 금방 고개를 쳐들며 싱싱해진다.”고 자랑했다.섬초는 바닥에 바짝 붙어 잎이 사방으로 쫙 퍼져 자란다.한 겨울 바닷바람을 받으면서 자라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이다.육지 낫의 절반 크기인 ‘섬낫’으로 섬초를 캐던 최은숙(33)씨는 “섬초로 겉절이도 하고,잘게 다진 돼지고기에 양념을 쳐서 섬초로 싼 뒤 튀김옷을 입혀 튀겨 먹는다.”고 말했다. ●비금도 섬초의 비결은 게르마늄 토양 비금 섬초는 무엇보다 토양 때문에 맛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서남문대교로 연결된 이웃 도초면도 같은 종자를 심지만 맛이 비금 섬초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김종흔 신안군 농업기술센터 비금지소장은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도 게르마늄 토양이고,섬은 갯벌을 일군 땅이어서 산성도가 적당하다.”고 말했다.섬초는 속대가 배추처럼 오므라들어 있어 다른 시금치와 금방 구별된다.죽림마을 김방용(53)씨는 “진짜 섬초는 속대를 펴면 가운데가 꽃처럼 노랗다.”고 강조했다. 요즘 나오는 섬초는 추석 무렵에 씨를 뿌린 것으로 3월까지 캔다.노지 채소가 무척이나 귀한 한 겨울 섬초는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하루 평균 15㎏들이 4000여 상자가 나오며,3월까지 35만여 상자가 출하돼 1200여 재배 농가가 60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금치가 비금도에서 재배된 것은 45년 전.1958년 죽림리 최남산씨가 시금치 종자를 구입,재배한 게 시초.초창기엔 중간 상인들이 섬초를 ‘밭뙈기’로 매매,폭리를 취했다고 한다.15∼16년 전에야비로소 농민들이 농협을 통해 시장에 내다 팔수 있었다.. 비금 섬초는 아침 9시 첫 배로 육지에 나와 서울 가락시장에서 밤 11시쯤 경매에 들어간다.비금 섬초의 90% 가량은 이렇게 팔린다.요즘 15㎏들이 상품 한 상자에 3만 5000원선이다.“작년 설 직전에는 15㎏들이 한 상자에 8만원이나 나왔습니다.섬초가 ‘금초’였지요.”라는 박병로(37·한국청과) 경매사는 비금 섬초가 ‘경매의 꽃’이라고 예찬했다. ●서울서 주문할 땐 택배비 부담해야 이런 섬초를 비금도에서 직접 사기가 쉽지 않다.내다 파는 곳이 없다.재배농가나 비금농협(061-275-5251)에 미리 주문해야 살 수 있다.보통 4㎏들이 한 상자 1만원.서울에서 주문하면 택배 비용을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섬초를 맛보려면 비금면사무소 옆 골목의 청해식당(061-275-4617)이 좋다.밑반찬으로 나오는 섬초 나물은 약간 싱거운 듯하지만 특유의 싱그러운 풍미가 난다.요즘엔 홍어의 사촌격인 간재미(일명 갱개미) 회무침이 나온다.한 접시(2만원)면 3명이 먹을 수 있다.면사무소 바로 앞 삼양식당(061-275-0602)엔 빨갛게 나오는 장어탕이 좋다.바닷장어의 빼를 바르고 껍질째 듬성듬성 썰어 넣었다.한 그릇에 8000원. 글·사진 비금도 이기철기자 chuli@ ●비금도 새가 날아오르는 모양인 비금도는 남한 최초로 염전이 개발된 섬이다.지금도 바닷가 평탄한 곳은 ‘아음(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다.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하누넘해수욕장과 명사십리 원평해수욕장이 유명하다.비금도 가려면 전남 목포 북항에서 비금농협이 운영하는 카페리를 타면 1시간50분이,목포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061-244-0005)을 타면 50분이 걸린다. 안승춘의 안승춘의 시금치요리 시금치요리 비법 비법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은 68년 조리업계에 뛰어들어 36년 동안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했다.한·양·중·일식을 두루 통달해 ‘생활요리의 대가’로 불린다.한국조리직업전문학교(02-833-1623)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시금치 하면 근육이 우뚝 솟은 ‘뽀빠이’가 생각납니다.뽀빠이 같이 근육이 부풀어 오르기를 바라며 시금치를 많이도 먹었지요.참깨를 솔솔 뿌려 먹으면 맛까지 고소하지요.그런데 시금치에 참깨를 뿌려 먹으면요,우리 몸에 결석이 생기는 것까지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요리 시연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 ●시금치 도토리묵 무침 재료 시금치 100g,도토리묵 1모, 양파 ¼개,간장 3큰술,고춧가루·다진 파 2큰술씩,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설탕 1큰술씩,물엿 ½큰술 만드는 법 (1) 도토리묵은 물에 한 번 씻은 다음 무늬 칼로 썰어 놓는다.(2) 시금치는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뜯어 놓고 양파는 얇게 썰어 놓는다.(3) 간장·고춧가루·다진 마늘·다진 파·물엿·깨소금·참기름·설탕을 넣어 양념을 만든다.(4) 넓은 그릇에 시금치·양파·도토리묵을 담고 (3)의 양념장을 부어 묵이 부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버무린다. ●시금치 겉절이 재료 시금치 200g,배 ½개 초무침 양념 간장·식초 3큰술씩,설탕·고춧가루·다진 파 2큰술씩,다진 마늘·깨소금 1큰술씩,참기름 ½작은술씩 만드는 법 (1) 시금치는 깨끗이 다듬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뜯어 놓는다.(2) 배는껍질을 벗기고 속을 제거한 후에 썰어 놓는다.(3) 간장·식초·설탕·고춧가루·파·마늘·깨소금·참기름을 섞어 양념을 만든다.(4) (1)과 (2)를 그릇에 담고 (3)의 양념을 넣고 가볍게 버무려 그릇에 담아낸다. ●시금치 조갯국 재료 시금치 200g,대파 1대,다진 마늘 1큰술,붉은 고추 1개,모시조개 200g,된장 2큰술,물 6컵·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시금치는 다듬어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쳐 찬 물에 행궈 물기를 짠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대파는 굵게,붉은 고추는 씨를 뺀 다음 채썬다.(2) 모시조개는 연한 소금물에 1시간 정도 담가서 해감을 뺀 다음 끓는 물에 넣고 입이 벌어질 때까지 끓여 면보에 밭아 맑은 국물을 만든다.(3) (2)의 조개 국물에 건져 둔 모시조개를 넣고 된장을 체에 담아 풀어 한소끔 끓인다.(4) (3)의 국물이 끓으면 (1)의 시금치를 넣고 굵은파,다진 마늘,붉은 고추를 넣어 한번 더 살짝 끓인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팁 날콩가루를 데친 시금치에 버무려 넣고 된장국을 끓이면 더욱 구수하다. ●시금치 참기름 샐러드 재료시금치 잎 130g,붉은 양파(또는 양파) ¼개,치커리 50g,양상추잎 2장,귤 3개,참기름드레싱, 볶은참깨 참기름 드레싱 잘게 썬 귤껍질 1작은술·귤 주스 2큰술·연한 생강즙 2작은술,청주 3큰술,식용유 1⅓큰술,간장·설탕 1작은술씩,소금 ½작은술,참기름 1큰술 만드는 법 (1) 시금치와 치커리는 부드러운 속잎만을 골라서 깨끗이 씻은 다음 냉장고에 보관하여 싱싱하게 살아나도록 한다.(2) 양상추는 먹기 좋게 뜯어 냉수에 담갔다가 건져 물기를 빼준다.(3) 귤 껍질을 벗겨 속을 떼어 놓는다.(4) 드레싱을 만든 다음 커다란 그릇에 시금치·치커리·양파·귤을 모두 넣고 드레싱과 함께 살짝 버무려 준다.(5) 접시에 담은 다음 마지막으로 볶은 참깨를 위에 뿌려준다. ●시금치 편채쌈 재료 시금치 200g,쇠고기(또는 돼지고기) 600g,간장 3큰술,설탕·다진 마늘·깨소금·참기름·청주 1큰술씩,다진 파·배즙 2큰술씩,후추·양겨자 약간씩 만드는 법 (1) 시금치는 연한 잎으로 깨끗이 준비한다.(2) 쇠고기는 3㎜ 두께로 길게 썰어 준비한다.(3) 간장·설탕·마늘·파·깨소금·참기름·배즙·청주·후추를 섞어 양념을 만든다.(4) (2)의 고기에 (3)의 양념을 넣고 버무려 재운다.(5) 배는 껍질을 벗기고 채썰어 놓는다.(6) 고기를 구워 겨자를 바르고 시금치와 배를 놓고 말아 쌈을 만든다. ●시금치 부침 재료 시금치 200g,밀가루 2컵,고추장 2큰술,우유(또는 물) 2컵,소금·시금치·식용유 약간씩 만드는 법 (1) 시금치는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놓는다.(2) 넓은 그릇에 우유·고추장·소금·밀가루를 넣고 덩어리가 없도록 반죽한 다음 시금치를 섞는다.(3)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뜨거워지면 (2)의 반죽을 떠 놓아 얇게 펴서 부침을 한다.
  • 자기계발 직장인·배움기회 놓친 만학도 사이버대학 도전해볼까

    학교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이용,학위를 딸 수 있는 전국 17개 원격(사이버)대학의 ‘2004학년도 신입생 모집’이 본격화됐다.전체 모집정원은 2만 3800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1200명이 늘었다. 원격대학은 올해 개교하는 사이버외국어대를 비롯해 학사학위 과정이 15곳,전문학사학위 과정이 2곳 등이다.원격대학은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재교육을 받으려는 직장인이나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이 도전해볼 만하다.실제 입학생의 80%가량이 직장인들이다.원서마감이 이미 끝난 국제디지털대·세민디지털·열린사이버대·영진사이버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이 이달 말까지 원서를 접수한다.사이버외국어대학은 다음달 5일이다. ●원격대학 2001년 서울디지털대·열린사이버대 등 9개교가 처음 신입생을 모집했다.이르면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2005년부터 석사과정이 도입될 예정이다.주로 ‘∼디지털대학’이나 ‘∼사이버대학’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학사학위과정(4년제)을 운영하는 곳은 경희사이버대·열린사이버대 등 15개교,전문학사학위과정(2년제)은 세계사이버대·영진사이버대 등 2개교다. ●어떻게 들어가나 학교생활기록부·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 등의 서류전형으로 뽑는다.경희사이버대만 유일하게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반영한다.특별전형과 일반전형을 병행하지만 국제디지털대·부산디지털대·한국싸이버대·한성디지털대는 일반전형만 실시한다. 일반전형의 경우 대구사이버대는 자기소개서를 100%,경희사이버대와 한양사이버대·세종사이버대·서울디지털대 등은 학업계획서나 자기소개서를 100% 반영한다.세민디지털대는 학업계획서만으로 선발한다.나머지 대부분의 대학은 지원동기와 학업계획서·자기소개서 등을 25∼50%씩 섞어 전형한다.한국싸이버대는 자기소개 20%,지원동기 30%,학업계획 40%,표현력 10% 등으로 세분했다. ●새로 생기는 학과 경희사이버대는 글로벌경영학과,대구사이버대는 부동산학과를 신설했다.동서사이버대에서 교명을 바꾼 부산디지털대는 호텔경영·관광통역,서울사이버대는 실버복지학·상담학과,원광디지털대는 모바일콘텐츠학·사회복지학·부동산세무경영학·차문화경영학과를 새로 뒀다.처음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한국디지털대는 평생교육학과,열린사이버대는 정보통신학·보석감정딜러학부,한국사이버대는 문예창작학·부동산학부를 마련했다. 등록금은 학교에 따라 다소 차이가 크다.100만원 안팎이 많다.오프라인인 사립대의 3분의1 수준이다.2002년도부터 사이버대학 재학생에게도 일반 대학과 마찬가지로 병역 입영연기 혜택이 주어진다. 박홍기기자 hkpark@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4)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1898년 10월29일 종로 네거리 운종가 광장에는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었다.외세의 국권 침탈위기에 맞서기 위해 정부 대표자와 민간인 각 계층 대표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국정개혁 원칙을 민중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고,결정된 내용을 실천하기 위한 다짐을 하자는 큰 모임이었다.이 모임은 거리에서 관민이 함께 참여하여 벌이는 한국 최초의 합동토론회였다. 오후 2시.광장에는 황국협회,황국중앙총상회,순성회,협성회,광무협회,진신회,친목회,교육회,국민협회,진명회,일진회,보신사 등 각 사회단체들이 모였다.순성회 부인들,각 학교 생도들,시전상인들,맹인,승려들,백정(白丁)들,정부부처 관료 및 신사들이 청첩장 받은 순서대로 참석해 있었다. ●무어에 세례받은 백정 만민공동회 연설자로 오후 3시.대회장인 윤치호가 먼저 만민공동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인사말을 했다.곧이어서 군중은 만세를 불러 대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질서유지에 힘썼다.그런 다음 만민공동회의 개막연설자가 단상에 올랐다.회의장은 순간 물을 뿌린 듯이 고요해졌다.연단으로 올라서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개막 연설자로 지명된 사람은 놀랍게도 백정 신분이자 새뮤얼 무어 목사한테서 세례받은 곤담골교회 박성춘(朴成春)이었다.박성춘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으로서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몰각합니다.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이에 이국편민(利國便民)의 길인즉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하다고 생각합니다.저 차일(遮日)에 비유컨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심히 견고합니다.원컨대 관민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적에 보답하고 국조로 하여금 만만세를 누리게 합시다.” 회중은 연설을 끝낸 박성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고,연단 아래 모였던 수십명의 백정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만세를 불렀다.이 광경은 여러 날을 두고 장안의 화제였다.박성춘,그는 이날의 연설로서 독립협회 주요인물인 안창호,서재필 같은 큰 인물들과 함께 국가의 독립과 민족자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무어 목사는 한국에 온 이듬해인 1893년 지금의 조선호텔과 롯데호텔 중간쯤에 있었던 곤담골에다 교회를 열고 곤담골교회라 이름을 지었다.교회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한 예수교학당을 함께 열었다.무어 목사는 늘 길거리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예수교학당에 보내라고 권했다.그 마을에 살던 박성춘이라는 백정도 무어 목사라는 사람의 진실된 성품이 싫지 않아서 그의 아들 박서양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후 박성춘은 발진티푸스를 앓아서 죽게 되었다.박서양은 주일학교에 나와서 아버지 병을 낫게 해달리는 기도를 하면서 울었다.이를 본 무어 목사가 그 까닭을 물었고 박서양은 아버지의 병환의 위급함을 말했다.무어 목사는 박서양을 돌려보낸 뒤 급히 다른 선교사를 만나러 갔다. 고종황제의 어의(御醫)인 에비슨(Oliver R Avison)을 만나 도와달라고 부탁했다.황제의 전문의사에게 천민보다 더 핍박받는 계급 백정을 진료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설혹 에비슨이 승낙한다 하더라도 그런사실을 정부 대신들이나 서울의 양반들이 알게 되면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에비슨은 무어 목사의 간곡한 청을 듣고 망설이지 않았다.무어 목사의 눈에 백정들의 참담한 생존이 가장 시급한 구원의 대상으로 비쳤듯이 에비슨의 눈에 비친 무어 목사의 행동은 천사로 비쳤기 때문이다. 두 명의 선교사들이 백정 박성춘을 찾아왔다.박성춘이 완쾌할 때까지 두사람의 발걸음은 계속되었다.박성춘은 임금님의 주치의가 자기 같은 천민을 치료해주기 위해 누추한 곳까지 와준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완치된 뒤 그의 자식들 모두를 주일학교에 보낸 그도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 같이 설움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다.그런가 하면 큰아들 박서양이 의학을 공부하여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치료해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키웠다.박서양은 결국 1899년 제중원의학교(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08년 졸업하면서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기도 했다. 그 무렵 무어 목사는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모삼열(牟三悅).소울음소리 모(牟)자를 즐겨 쓴 이유는 백정들의 애환과 고난을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1895년 박성춘은 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고,곤담골교회는 교인 20명의 제법 뜻있는 교회로 자리잡아갔다. ●“양반전도 어렵다” 선교사들 불평·비난 받아 그 무렵 첫 차별사건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교회에 나오던 양반 신도들이 발길을 끊는 일이 생긴 것이다.사정을 알고보니 양반 신도들은 백정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심지어는 백정 같은 천민도 예수를 믿으면 죽은 뒤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백정이 가는 천당이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양반 신도도 있었다.백정이 믿는 하느님과 양반이 믿는 하느님이 동일하다는 것은 곧 양반을 능멸하는 짓이며,더욱이 한 교회 지붕 밑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천당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며 뉘우치는 이들이 생겼다.그들은 무어 목사에게 새로운 제의를 했다.자기들을 앞자리에 앉게 하고백정들을 뒷자리에 앉도록 좌석을 구별해준다면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무어 목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그후 1904년 지금의 인사동으로 옮겨 1905년 승동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한국 기독교사상 가장 뜻깊은 역사를 간직한 교회의 하나가 되었다. 박성춘이 교인이 된 뒤 무어 목사는 에비슨 박사와 함께 뜻을 모아서 백정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1895년에서 189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조정에 탄원서를 냈다.이들의 호소는 받아들여졌다.비로소 백정도 한국의 국민 자격을 얻어 호적에 오를 수 있었고 일반인들처럼 갓도 쓰고 두루마기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백정들은 머리에 갓 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외출할 때에는 패랭이를 쓰고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한 눈에 백정 신분임을 드러내도록 했다. 2차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들이 가슴에 노랑색 별을 달고다녀야 하듯 했고,인도의 최하층 노예신분인 수드라가 항상 황토색깔의 옷을 입고 다녀야 하는 것과 같았다.그러다가 갓을 쓸 수있다는 법령이 공포되자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발표했을 때 기뻐했던 흑인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도높은 기쁨이 한국 전역의 백정들을 울부짖게 만들었다.어떤 백정은 하도 좋아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갓을 쓰고 살았던 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철도공사장 노동자 인권침해' 日에 항의 이와 같은 선지자적인 무어 목사의 행동은 많은 선교사들의 불평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이들은,교회가 백정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려지게 되면 양반들에게 전도하기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에는 교회가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는 불평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또한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양반들을 교인으로 전도해야만 교회의 위상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실익이 생길 수 있지만,백정 같은 천민들이 아무리 교인으로 많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은 별로 커지지 않는다고 했다.백정들의 인간해방 운동을 위하여 동료 선교사들과 아무 의논도 없이 임금에게 탄원서를 낸 것은미 국무부 정책을 위반하여 다른 나라 정치와 관습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899년 12월 무어 목사는 고종황제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알렌 공사로 하여금 주선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의 백정들에 대한 인권탄압 정책과 제도를 혁파해달라는 요구를 고종황제에게 해볼 결심으로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이다.거절당한 뒤 할 수 없이 문제의 그 편지를 직접 고종황제에게 보냈고,그로하여 알렌 공사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무어 목사는 아내의 건강이 몹시 쇠약해져 1902년부터 1년 동안 미국의 고향에서 요양을 끝내고 1903년 9월 다시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그 무렵 무어 목사는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했다.알렌 공사와 다른 선교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천민이나 서민들보다 양반과 부자,귀족들에게 주로 선교활동을 펴면서 백정선교에 집중하는 무어 목사를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하는데 지쳐갔다. 그는 살림도 할 수 있는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여 ‘기쁜 소식(The Glad Tidings)’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서해안에 흩어져 있는 작은 어촌과 섬,그리고 한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마음 속에서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런 중에 일본 군용철도 공사장에 강제로 동원된 한국 노동자들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일본영사관에 제기했다.일본영사관에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이자 일본군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성명서를 해외선교부에 보내 도와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1906년 전도여행길서 병얻어 46세로 사망 그때 무어 목사는 한국인들이 일본군인들에게 그토록 짓밟히면서도 민중봉기가 없는 것은 한국인들이 수탈과 억압에 너무 익숙해져 인간의 혼이 죽어버린 탓이 아닌가 하고 통곡했던 적도 있었다.그때부터 평양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자유사상을 고취시켜 나간다면 장차 인간의 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한국인을 사랑하던 무어 목사는 1906년 전도 여행길에서병을 얻어 그해 12월22일 세브란스병원에서 4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의 백정을 사랑한 인권의 은인이자 인간해방의 참뜻을 가르친 위대한 사도였다.그의 인권사상은 그가 죽은 지 16년 뒤인 1922년 백정해방운동으로 되살아났다.
  • 주말 매거진 We/갈치 채낚기 어선 조업현장

    반짝거리는 은빛에 날씬한 외모의 갈치.과거 서민들의 밥상 친구였던 갈치가 ‘귀한 먹을거리’로 변신한 지 오래다.‘바다의 귀족’으로 대접받는 등 품격(?)도 높아졌다. 갈치 가운데 최고로 치는 것은 채낚기로 잡은 은갈치.저녁에 조업을 나가 다음날 새벽 들어온다.제주도에서 ‘당일바리’라고 부르는 이런 갈치는 싱싱한 바닷내가 물씬 풍긴다.갈치 채낚기 어선에 동승,조업 현장에 함께 나간 뒤 공동판매를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취재했다. 제주 성산포 앞바다 공진호에서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채미줄(낚싯줄) 빨리 올려.” “풀치(갈치 새끼)밖에 없잖아.” 지난 6일 밤 제주도 성산포 20여㎞ 앞바다.갈치 채낚기 어선 303 공진호(선장 김영칠·50) 선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제주의 검은 밤바다에서 막 올라온 갈치를 떼어 내 스티로폼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낚싯줄에 걸려 퍼덕거리는 갈치는 유난히 반짝거렸다.대낮처럼 환히 밝힌 고깃배의 집어등에 반사된 갈치는 은으로 도금한 듯했다.그래서 ‘은갈치’란 말이 생겨났나 보다.도회지의 수산시장에서 본 희멀건 갈치가 아니었다. 공진호 뱃머리 오른쪽에서 갈치 조업에 한창이던 송덕길(48)씨는 갈치를 아주 조심스럽게 다뤘다.“갈치는 물에 나와 공기를 마시자마자 바로 죽습니다.그래서 저녁 때보다 새벽이나 아침에 잡힌 갈치가 싱싱하고 더 맛있어 값도 더 나갑니다.” 갈치는 성질이 급한 만큼 빨리 죽고 빨리 상한다.비늘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이유다.어찌 보면 선도를 싱싱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로 채낚기의 경쟁력이다.2∼3년된 갈치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제주도에선 갈치 채낚기를 ‘당일바리’라고 부른다.저녁에 조업나가 다음날 새벽에 돌아와 경매에 부치는 까닭에 붙인 이름이다.먼 바다로 나가지 않고 주로 연안에서 잡기 때문에 배도 10t 미만의 소형이다. 갈치 채낚기는 낚시와 같은 개념이다.바다에 나가 닻을 내려두고 낚싯줄에 보통 15∼17개의 낚시를 매달아 바다에 드리웠다가 미끼를 물면 낚싯줄을 잡아 당긴다.배가 작은 까닭에 롤링(좌우 흔들림)과 피칭(전후 흔들림),수직 흔들림이 아주 심하다.“우리같은 뱃사람도 한달 남짓만에 채낚기를 타면 고생을 하지요.”10여년째 배를 탄다는 강성일(50)씨의 말이다. 이런 채낚기로 잡은 갈치는 가장 비싸게 팔린다.싱싱한 까닭에 고급 음식인 갈치회나 갈치회무침 등에 쓰인다.선장 김씨는 “성산포 갈치가 좋은 이유는 성산포 앞바다의 조류가 빨라 고기가 퍼석하지 않고 졸깃하기 때문”이라고 자랑했다. 갈치 연승이나 그물을 이용한 방식이 많이 잡히지만 선도가 떨어진다.연승은 3∼4㎞의 가로줄에 작은 낚싯줄 200여개 정도를 달아 조업하는 것이다. 멀리 나가서 잡아 올리며,짧아도 3∼4일은 걸린다.선상에서 급랭시킨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채낚기보단 신선도가 떨어져 값이 덜 나간다. 그물에 든 갈치들은 서로 물어뜯거나 부딪혀 비늘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이렇게 회색 멍이 든 것을 보통 ‘먹갈치’라고 부른다.주로 굵은 소금을 뿌려 굽거나 졸여 먹는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조황이 부진하다.선원들은 별로 신나는 표정이 아니었다.선미에서 애꿎은 삼치만 낚아올린 강씨는 “갈치가 한창 올라오는 9월에 비해 엄청 안 잡히는 거지요.”라고 되뇌며 검은 바다만 쳐다봤다. “날이 추우니까 갈치들이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갔어.일부는 더 깊이 잠수했고.”다소 굳은 표정의 선장 김씨는 어군 탐색기를 살펴봤다.보통 갈치는 수심 50m 전후에서 산다고 한다.밤이면 불빛을 보고 수면으로 떠오른다는 것.하지만 요즘같은 겨울 추위엔 갈치가 수온이 그래도 따뜻한 수심 70∼80m까지 내려가서는 올라오지 않는다.낚싯줄도 덩달아 수심 100m까지 내려간다. 선수 왼쪽에서 김홍제(50)씨가 새끼 갈치인 풀치를 포떠 냉동 꽁치 대신 낚시 바늘에 끼우고 있었다.“갈치는 성격이 굉장히 난폭하지요.배가 고플 땐 동료 꼬리를 잘라 먹을 정돕니다.”그는 “갈치가 머리를 세우고 수직으로 다니면 긴장한 탓에 입질을 하지 않는다.그러나 수평으로 헤엄치면 먹이를 문다.”면서 “풀치는 상품가치가 덜나가 미끼로 쓴다.”고 말한다.하지만 보통 여름에 많이 잡히는 풀치를 햇호박을 넣어 지져 먹으면 별미란다.새벽이 가까워지면서 빈 낚싯줄이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졌다.선장 김씨는 돌아가잔다.멀리 다른 배의 집어등만 보이는 어둠속에서 그는 선수를 성산포항으로 돌렸다.귀항길에 선원들이 어획을 정리했다.갈치가 10㎏들이 3상자였다.길이 65∼70㎝ 댓갈치(큰것·20∼24마리) 1상자,중짜(40∼50마리) 2상자였다.잡어도 좀 있었다. 다음날 오전 7시 제주 성산포수산업협동조합 앞 공판장.간밤에 조업나갔던 100여척의 채낚기 어선들이 차례차례 갈치를 내려놓으면서 활기를 띠었다.도도한 은갈치 상자가 배에서 내려오자마자 빨간 모자를 쓴 중개인들이 모여 호가를 불렀다.공진호의 성과는 28만원가량.성산포수협 공매 가격으로 댓갈치 1상자에 17만 9000원,중짜가 5만원선이었다.선장 김씨는 “인건비는커녕 기름값도 안 나온다.”고 투덜거렸다.전날 오후 4시에 일출봉 옆으로 떨어지던 낙조를 받으며 나갔다가 이튿날 오전 7시에 돌아온 15시간의 조업치고는 성과가 부진한 편이다.“이젠 당일바리도 그만둬야 할까보다.내년 사오월에나 다시 시작해야지.”오원국(46) 성산포수협 판매과장은 “제주도에선 연중 갈치회를 먹을 수 있지만 산란기(2∼4월)를 앞둔 요즘이 살이 올라 가장 맛있을 때”라고 말했다.그는 “성산포수협에 위판되는 생선의 90% 이상이 갈치”라며 “성산포 갈치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시장이 좋을 때라면 이곳에서 갈치 축제를 여는 것도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성산포 은갈치는 공매를 거쳐 횟집이나 전국의 백화점과 할인점 등으로 간다. 갈치는 예전엔 우리나라 연안 전체에서 많이 잡혔다는 것이 어류학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우리 속담에 “돈 없으면 절인 갈치를 사먹으라.”고 했을 정도로 흔했다. 칼(刀)을 신라시대엔 ‘갈’로 불렀다.갈치란 이름도 그때 굳어졌다는 것이 어류학자 정문기씨의 이야기다.도어(刀魚)라고도 불렀다.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갈치 모양은 긴 칼과 같고 몸은 약간 납작하다.이빨은 단단하고 빽빽하며 맛은 달다.”는 기록이 나온다.띠 모양이라 하여 군대어(裙帶魚)라고도 불렀다.속명은 갈치어(葛峙魚).새끼는 풀치·풋갈치·빈쟁이·붓장어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일본에선큰 칼모양이란 뜻의 다치우오(太刀魚),수직으로 서서 헤엄치는 습성을 묘사해 다쓰오(立つ魚)로도 불린다.영어 이름은 머리카락과 같은 꼬리를 가졌다 하여 헤어 테일(hair tail)이다. 갈치는 동료간에 꼬리를 먹을 정도로 극성스럽다.친한 사이에 모함을 할 때를 비유하는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는 속담도 그래서 생겨났다. 하지만 모성애가 지극한 생선이다.암컷은 알을 낳은 뒤 주위를 맴돌며 안전하게 부화하도록 지킨다.한눈을 잠시도 팔지 않기 위해 먹이활동도 하지 않아 아주 야윈다. 갈치는 육식성으로 정어리·전어·민어류 등을 좋아한다.단단한 것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그래서 이빨을 소중히 여기는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 또한 비늘이 없는 생선이다.김지혜 국립수산진흥원 연구관은 “갈치 몸을 덮고 있는 은백색 물질은 ‘구아닌’이란 성분”이라며 “구아닌은 인조 진주의 원료”라고 밝혔다. 갈치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글루탐산과 호박산 등 감칠맛을 돋우는 성분도 많다.갈치회를 먹으면서 단맛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갈치에는미량이지만 당질이 들어있기 때문.이광철 슬기수산 대표는 “갈치는 칼슘에 비해 인의 함량이 매우 높은 산성 식품”이라며 “채소와 같이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엔 서울에서도 제주산 갈치회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제주도의 유명 식당 등에 주문만 하면 갈치회를 만들어 냉동 포장,항공편으로 서울에 보낸다.갈치회 한 접시에 제주도와 같은 보통 2만 5000원이다.여기에 택배비용을 추가하면 된다. 이기철기자 ■갈치군 맛바람 났네 갈치 집산지 제주에선 언제든지 갈치요리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회·구이·조림·찜·국….이 가운데 갈치회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선원들이 배에서 먹던 술안주였다.갈치회는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하다.입안에 넣고 한참 우물거리면 달착지근하다.이런 갈치회 맛을 제주도 사람들이 그냥 놔둘 리가 없다. 10여년전부터 제주도의 항·포구를 중심으로 갈치횟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간밤에 잡은 갈치를 다음날 식탁에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갈치는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날씨에 특히 민감하다. 음식점주인들은 “해상에 기상 특보가 2∼3일 발령돼 갈칫배가 묶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 사람들은 갈치회를 잘하는 곳으로 제주시 건입동 서부두 어시장 입구의 성복식당(064-757-2481)을 꼽는다.사장 이성춘(53)씨는 30여년 배를 탔던 마도로스 출신.어릴적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기억을 되살려 최근 새로운 메뉴 갈치회무침을 내놨다.한 접시에 3만원. 성북식당의 갈치국도 좋다.국물이 희뿌예져,보기엔 비릴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맵싸한 고추와 배춧잎이 들어있다.비결은 신선한 갈치를 쓰기 때문이란다.1인분에 7000원.성산포수협 중매인을 겸하고 있는 그는 “좋은 갈치를 언제든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영업의 비결”이라고.1·3 월요일엔 장사를 하지 않는다.이외에도 갈치회(2만 5000원),갈치구이(2만원),갈치조림(2만∼3만원)도 한다. 서울 역삼동 역삼역 부근에 최근 성북식당이 강남점(02-565-4677)을 냈다.동생 성봉(48)씨가 운영한다.갈치와 고등어 등의 재료를 제주도에서 매일 항공편으로 갖고 온다.이곳의 갈치 요리는 서울 사람의 입맛에 맞춰 조금 단듯하다.갈치회는 3만5000원,갈치국은 8000원.갈치회무침은 내놓지 않고 있다. 갈치 요리 등 제주 향토 음식을 하는 물항식당이란 상호가 전국에 퍼져있다.하지만 제주시 연동 물항식당(064-753-2731) 오복렬(45·여) 사장은 “수도권에서 분당점(031-701-8792)과 평촌점(031-381-6776)을 제외하곤 우리 식당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제주물항,탑동물항 등은 모두 손님들을 헷갈리게 하는 유사 상호”라고 주장했다. 갈치조림을 잘하는 곳으로 성산포읍의 해촌(064-784-8001)을 들 수 있다.한·일 해협을 뗏배로 횡단한 것으로 유명한 사장 김덕주(50)씨가 통나무로 지은 집이다.고성리에서 성산포로 들어가는 입구의 첫 집이다.성산 일출봉과 앞바다의 전망도 아주 좋다.갈치구이 1만 2000원,조림 2만 5000∼4만 5000원. 서울 서초동 종로학원 뒤 서귀포오분작뚝배기(02-523-9898)는 서귀포출신 부부가 제주의 재료로 운영한다.갈치 구이와 조림 각 3만원.서울 세종문화회관 뒤쪽의 한라의 집(02-737-7484)도 꽤 알려져있다.2∼3명이 먹을 수 있는 갈치회는 3만 5000원.구이는 갈치 1토막에 1만원.조림 9000원,국 8000원을 받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의 숭례문 수입상가에도 갈치골목이 형성돼 있다.전국의 상인들이 한번씩 찾는 곳은 희락(02-755-8393)의 갈치조림.첫 맛이 시큼한 듯하다가 매콤 달콤한 갈치 조림 한 냄비(2인분)에 1만원.반쯤 조려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바로 익혀 낸다. 수도권인 분당의 궁내동 녹원가든(031-711-9363)도 갈치요리로 유명하다.제주산 갈치의 항공직송을 경기도에선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갈치회 1접시 4만·6만원,구이 1만 6000원,갈치국 1만 3000원. 이기철기자 chuli@ ■안승춘의 갈치요리 비법 안승춘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은 68년 조리업계에 뛰어들어 36년 동안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했다.한·양·중·일식을 두루 통달해 ‘생활요리의 대가’로 불린다.한국조리직업전문학교(02-833-1623)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갈치는 웬만한 수산시장에선 다듬어준다.갈치가 싱싱하다면 대가리 부분을 버리지 말자.입은 잘라내고 대가리를 찜이나 조림을 할 때 넣으면 차지고 맛있다.대가리를 손질할 땐 낚싯바늘을 반드시 빼내야 한다. 갈치는 중불에 노릇하게 구워야 맛있다.센불로 구우면 타고 살이 퍼석거린다.잘라 내버리는 꼬리는 빵가루를 묻혀 바싹 튀기면 잔 뼈까지도 먹을 수 있다.표면에 상처가 없고 색깔이 은빛 그대로인 갈치가 신선하다.눈은 까만색이며 아가미가 선홍빛을 띠고 있어야 한다.갈치는 꼬리를 떼어먹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꼬리가 뭉텅한 것도 괜찮다.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장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갈치 포전 ●재료=갈치포 300g,달걀 2개,다진 실파 2큰술,청주·참기름 1큰술씩,후추 ¼작은술,밀가루·식용유 약간씩 ●만드는 법=(1) 갈치는 손질하여 뼈와 가시가 없도록 포를 떠 4㎝x5㎝크기로 썰어 놓는다.(2) 청주·참기름·후추를 섞어 (1)의 갈치포에 발라준다.(3) 달걀에 실파를 넣어 섞는다.(4) (2)의 갈치포에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을 입혀 기름 두른 팬에 놓아 전을 지진다. 갈치 양겨자구이 ●재료=갈치 400g,양겨자 2큰술,레몬즙·다진 마늘 1작은술씩,맛소금·치커리약간씩 ●만드는 법=(1) 갈치는 싱싱한 것을 준비하여 비늘을 긁고 내장을 제거하여 씻는다.(2) 손질된 갈치는 4㎝ 길이로 토막을 낸 다음 1㎝ 간격으로 칼집을 넣어 맛소금을 뿌린다.(3) 양겨자에 레몬즙과 마늘을 넣고 섞어 (2)의 갈치에 바른다.(4) 오븐이나 석쇠에다 갈치를 노릇하게 굽는다. 갈치 강정 ●재료=갈치 2마리,녹말 (@)컵,식용유(튀김용) 약간,마늘·통깨 조금씩 ●조림장=간장·청주 1큰술씩,고추장 2큰술,물엿 3큰술,참기름 약간 ●만드는 법=(1) 갈치는 손질하여 7㎜ 폭으로 썰어 녹말을 묻힌 다음,촉촉해지면 170℃ 식용유에 넣어 튀긴다.도중에 건졌다가 기름 온도가 올라오면 다시 넣어 빳빳하게 튀긴다.(2) 마늘은 편으로 썰어 놓는다.(3) 냄비에 조림장 재료와 마늘을 넣고 걸쭉하게 끓여 윤기가 나면 (1)의 튀겨 놓은 갈치를 넣고 버무려 통깨를 뿌린다. 갈치 서양간장조림 ●재료=갈치 1마리(500g) ●양념장=우스타소스·굴소스·간장·맛술·청주·다진 마늘·깨소금 1큰술씩,물엿 3큰술,다진 파·다진 고추(또는 고춧가루) 2큰술씩,참기름½큰술 ●만드는 법=(1) 갈치는 두툼한 것으로 준비하여 비늘을 긁은 후 씻어 건진다.(2) 양념장은 우스타소스·굴소스·간장·물엿·맛술·청주·다진 마늘·다진 파·다진 고추·참기름·깨소금을 섞어 만든다.(3) 냄비에 갈치를 담은 후 양념장을 끼얹고 물 ½컵을 부어 은근한 불에서 조린다. ●팁=갈치의 양이 많을 때는 물의 양을 줄여야 하며,양념장에 우스타소스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카레가루를 조금 넣는 것도 좋다. 갈치 별미찜 ●재료=갈치 1마리,무 300g,두부·호박 ½개씩,팽이버섯 1봉지,풋고추·홍고추 2개씩,대파 1대,양파 1개 ●양념=간장 ½컵,고춧가루 4큰술,맛술·물엿·다진 마늘 3큰술씩,설탕·깨소금·참기름 2큰술씩,다진 생강 1큰술,후추 1작은술,녹말 ½큰술 ●만드는 법=(1) 갈치의 비늘을 긁고 토막을 낸 다음 씻어 놓는다.(2) 무는 1㎝ 두께로 썰고 두부도 두툼하게 썬다.(3) 호박은 1㎝ 두께로 썬다.(4) 풋고추·홍고추·대파는 어슷하게 썰어 놓고 양파도 1㎝ 두께로 썬다.(5) 분량의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6) 냄비에 무를 깔고 물 2컵을 붓고 끓여 무가 반쯤 익으면 갈치를 넣고 양념장을 뿌려 찜을 한다. 갈치 단호박조림 ●재료=갈치(大) 1마리,단호박 300g,붉은 고추 1개,물 2컵 ●양념장=간장·다진 파·고춧가루·청주 2큰술씩,굴소스·다진 마늘·설탕 1큰술씩,다진 생강·물엿·참기름·깨소금 ½큰술씩,후추 약간 ●만드는 법=(1) 갈치는 비늘을 긁고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먹기좋게 토막 내어 씻어 물기를 뺀다.(2) 단호박은 껍질을 벗겨 큼직하게 썬다.(3) 붉은 고추는 어슷하게 썰어 씨를 뺀다.(4) 분량의 양념 재료를 고루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5) 냄비에 큼직하게 썬 단호박을 깔고 갈치를 얹은 후 양념장을 골고루 끼얹는다.(6) 물 2컵을 냄비 가장자리에 붓고 중불에서 양념장을 끼얹어가며 조린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새해부터 달라지는 것들

    새해부터는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해 양도세가 무겁게 매겨지는 등 알아두고 챙겨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달라지는 각종 제도와 법규를 분야별로 요약한다. 경제 ●세제 ▲서울,인천,부산,대구,대전,광주,울산 등 7대 도시와 경기지역의 1가구 3주택자에 대해 양도세율을 60%로 높여 부과한다. ▲10·29 부동산 안정대책 이후 당국에 등록한 임대사업자들은 기준시가 3억원 이하 규모의 국민주택을 5채 이상,10년 이상 임대해야 한다. ▲소득공제 대상 대출의 만기를 10년 이상에서 15년 이상으로 늘리고,원금상환 거치기간이 3년 이하인 경우에만 이자비용을 1000만원까지 소득공제한다. ▲개인사업자 본인의 건강보험료를 필요 경비로 인정한다. ▲생리대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면제된다.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국민주택에 한해 아파트 리모델링 부가가치세를 면제한다. ▲근로자 식비를 월 10만원까지 비과세한다. ▲6세 이하 영·유아에 대한 추가 소득공제 대상이 여성 근로자에서 모든 근로자,자영업자로 확대된다. ●금융 ▲내년 3월부터 주택금융공사를 통해만기 10년 이상의 고정금리 모기지론을 제공한다. ▲체크카드 및 직불카드에 대한 소득공제 우대(30%)가 없어지고 둘 다 신용카드와 같은 20%로 공제율이 낮춰진다. ●정보통신 ▲휴대전화,시내전화의 번호이동성제 실시. 이동통신은 SK텔레콤이 1월부터,KTF는 7월,LG텔레콤은 내년 1월부터 각각 6개월씩 시차를 두고 시행하며 이때부터 전면 자유화된다.시내전화(KT,하나로통신)는 기존 17개 지역 외 3월 인천·대구,7월 부산,8월은 서울지역으로 확대된다. ▲휴대전화 010번호 통합. 1월부터 신규가입이나 번호변경 원할 때 사업자 식별번호(011,017,016,018,019) 외에 통합번호인 010을 받는다. ▲지상파 디지털TV 방송 도청 소재지로 확대. 수도권 및 광역시에 이어 도청 소재지까지 확대돼 80%의 국민이 고화질 디지털TV를 시청할 수 있다. 법률 ▲소송 취하,소장 각하,조정,화해 등으로 종결된 사건에 대해서는 인지액의 절반을 당사자에게 환급한다. ▲현행 지문날인 대상 가운데 ‘1년 이상 체류하는 20세 이상의 등록외국인’에 대해서는 지문날인을 폐지한다.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기업인카드 소지자의 체류기간을 현행 60일에서 90일로 상향 조정한다. ▲전국 사회봉사명령 대상자 4만여명에 대해 단체 상해보험을 가입한다. ▲사법시험 1차 시험 외국어 시험을 토플,토익,텝스 정규 시험으로 대체 시행한다. 경찰 ●운전면허 ▲1·2종 보통면허에 한정돼 있던 자동차운전 전문학원의 기능검정권이 모든 운전면허로 확대된다. ●경비지도사 ▲현재 1차시험 과목인 경비업법이 2차 필수과목으로 바뀐다. 교통 ●교통안전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불금을 청구할 때 보험사업자는 10일 이내에 지급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지급하지 않은 돈의 2배를 과태료로 내야 한다. ▲과태료 한도액을 보험료 수준으로 현실화하기 위해 이륜자동차는 20만원,비사업용 차량은 60만원으로 조정된다. ▲음주·무면허 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험사업자 등이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대인 200만원,대물 50만원 범위에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지방자치 ●지방세 ▲지방세 신고를 하지 않으면 10∼20%의 가산세를,신고 후 납부를 하지 않으면 납부지연 일수에 따라 1일당 0.03%의 가산세가 부과된다. ▲취득세의 경우에 한해 신고기한 경과 후 30일 이내(납세고지서를 받기 전)에 신고하면 신고불성실 가산세의 50%를 경감토록 하는 ‘취득세 신고기한 후 신고제’를 신설한다. ▲배기량 800㏄ 미만의 경승용차를 구입하면 각각 차량가격의 2%인 취득·등록세가 면제된다. ●공무원시험 ▲지방고시가 행정고시의 ‘자치행정’ 분야로 통합된다.자치행정 분야는 지역별로 구분해 모집한다. ▲내년도 외무고시 1차 시험이 기존의 과목별 평가방식에서 영역별 평가방식인 공직적성평가(PSAT)로 대체된다.행정·기술고시 등에는 2005년부터 PSAT가 도입된다. ●농어촌 지원 ▲20평 기준으로 2000만원까지 지원하는 농어촌 주택개량 융자금 금리가 현행 연리 5.5%에서 3.9%로 인하된다. ●공무원 복지 ▲현재 월 1회 시범 실시되고 있는 공무원 토요휴무제가 7월부터 월 2회로 확대된다.2005년 7월부터는 전면적인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된다. 환경 ●자연·대기·수질환경 ▲밀렵·밀거래된 야생동물의 경우,먹는 사람도 처벌된다. ▲산업단지 내라도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은 생활소음·진동 규제대상에 포함된다. ▲물 이용 부담금이 낙동강은 t당 100원에서 110원으로,금강·영산강·섬진강 수계는 120원에서 130원으로 오른다. 문화 체육 ●도핑 ▲전국체전 및 소년체전을 비롯해 종목별 전국규모대회 및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경기 중 도핑검사를 실시하고 등록 선수중 각종 대회 상위 입상자,기록 급상승자 등을 대상으로 평상시 예고 없는 불시검사를 실시한다. 복지 ●기초생활 ▲선정 대상자의 최고 재산소유 한도가 4인가구 기준으로 대도시는 5745만원에서 6330만원으로,중소도시는 5445만원에서 5630만원으로 올라간다. ●노인·장애인 ▲경로당 1곳당 난방비로 연간 30만원이 지원되고,월 운영비가 4만 4000원에서 6만원으로 오른다. ▲중증장애인과 장애아동 보호자에게 지급하는 수당이 월 6만원,5만원으로 각각 인상된다. ●건강식품 ▲건강기능식품은 제조·판매할 때 국가에서 허용한 기능성만을 표시해야 한다. ●진료비 ▲입원환자는6개월간 보험적용 진료비를 300만원까지만 부담하면 된다. ▲암질환으로 외래진료를 받을 경우 본인 부담률이 30∼50%에서 20%로 줄어든다. ●건강보험 ▲현역병 등이 민간 병원·의원 등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건강보험 가입자와 같이 본인 부담금만 납부하면 된다. ▲건강보험료를 일정기간 체납한 지역 가입자가 보험급여를 받을 경우,건강보험공단이 보험급여를 받은 사실이 있음을 통지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체납한 금액을 납부하면 체납 후 진료에 따른 부당이득금을 환수하지 않는다. 국방 ●행정·복지 ▲3사 생도 모집에 만 19세 이상 25세 미만 미혼자면 남녀 구분없이 응시할 수 있다. ▲만 17세 이상,22세 미만 남성이면 국군간호사관학교 입학이 허용된다. ▲현역병이 휴가나 외출·외박 중 부득이하게 민간 의료기관을 이용(입원 제외)할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참전 명예수당 지급 개시 연령이 70세에서 65세로 낮아지고,국적을 상실하더라도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전사 보상금이 기존 보수월액의 36배에서 72배로 오른다. ▲예비군훈련 면제대상이 기존 8년차에서 7년차로 확대되고 동원훈련 기간이 기존 3박4일에서 2박3일로 줄어든다. 병무 ●공익근무요원 ▲공익근무요원이 방송통신이나 원격수업에 의한 학습을 원할 경우 복무에 지장이 없는 일과시간 이후에는 허용된다. ▲문신·자해 등으로 인한 반흔 등 사유로 신체등위 4급 보충역에 편입된 사람은 후순위 조정에서 제외된다. 여권·비자 ▲3월1일부터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초·중·고 학생들의 입국비자가 면제된다. ▲아르헨티나 관광 및 상용 목적의 입국 비자는 필요 없어진다.최대 90일간 체류 가능하다. ▲서울시 구로·마포·성동·송파구청 등 4개 구청이 여권발급 대행기관으로 추가 지정된다. ▲미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2004년 1월부터 미국 입국심사 때 지문을 날인하고 얼굴사진을 찍어야 한다. 부처
  • 내년 공무원시험 전문가 조언

    민간부문의 ‘취업 한파’가 내년 초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이같은 한파가 공무원시험 지원자 수 증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무엇보다 내년도 공무원 채용규모가 동결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커,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고시 등 각급 학원의 수험전문가들은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지원하고자 하는 시험의 종목을 정한 뒤 치밀한 수험준비태세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민간·공무원 채용시장 ‘꽁꽁’ 정부는 지난 9월 청년실업 해소대책의 하나로 내년도 공무원 채용규모를 올해의 3만명보다 4000명가량 늘린 3만 40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년 등 공무원 퇴직률을 3%로 가정해 2만 7000여명의 결원이 발생하고,정원 증가 6269명(교원 5463명,일반직 806명)을 합친 수치다. 그러나 이같은 채용목표를 초과달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 내년도 증원 규모가 올해(1만 4194명)의 절반도 안 된다.퇴직률도 99년 10.4%,2000년 7.1%,2001년 3.2%,지난해 2.5% 등으로 갈수록 감소해 내년에도 퇴직률 3%선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 채용규모가 동결 또는 올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으로 20대 청년실업률은 8.0%,청년실업자 수는 39만 4000명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6.2%였던 청년실업률이 올 2월 8.7%까지 높아졌던 추세를 고려하면 내년 1∼2월에는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반면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30대 대기업과 공기업,금융기관 등 3개 부문 취업자 가운데 경력자 비율은 81.8%로 지난 97년 말(40.7%)보다 배 이상 늘었다.바꿔 말하면 신규 채용인력 비중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요 대기업의 내년도 채용 규모가 올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일종의 ‘틈새시장’격인 공무원시험 등에 지원자가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수험전문가들은 내년도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울 노량진의 한 7·9급시험전문학원 관계자는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안정적 일자리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따라서 비교적 수험준비가 용이한 7·9급 시험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시험에 신규 수험인구가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험생들이 이같은 양적 증가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합격 가능권에 위치한 수험생들의 전반적인 합격점수 상승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다른 수험전문가는 “지원자 중에는 수험준비가 부족한 ‘허수’ 수험생이 상당수 포함되기 마련”이라면서 “하지만 평균 수험준비기간이 늘어나고 있고 수험생들이 하향 지원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합격 가능권에 있는 수험생들의 실력은 상승할 것이며,실력차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채용계획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원 희망 시험 및 직렬을 선택한 뒤 가급적 빨리 시험 준비에 나서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외무고시는 내년부터,행정·기술·지방고시는 2005년부터 공직적성평가(PSAT)가 도입되기 때문에 내년도 시험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 관계자는 “현행 시험체제에 맞춰 공부해온 수험생간 실력 편차가 제도 변경 이후에도 유효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면서 “7·9급시험에 비해 신규 수험인구 유입폭은 크지 않겠지만,제도변경이라는 변수 때문에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2003 게임-만화계 10대 뉴스/‘카툰에세이’ 강세

    2003년 게임 분야는 국내외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핵심적인 대중문화 콘텐츠로 자리를 굳혔다.해외에서는 ‘한류 열풍’,국내에서는 ‘코스닥 황제주’ 등극 등 ‘빛’도 밝았지만 사이버 도박판 논란 등 ‘그림자’도 짙었다.만화계는 시장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살 길을 다양하게 모색한 한 해였다.온라인 ‘카툰에세이’의 오프라인 서점가 점령,오프라인 만화가들의 온라인 진출,복간 붐,해외 전시회 진출 등등.특히 한국 만화는 올초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사상 처음 ‘주빈국’ 초청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해외 전시회에 본격 진출해 좋은 실적을 거뒀다. 글 채수범기자 lokavid@ 그래픽 김송원기자 oksong@ 온라인 게임,장르 다양화 2003년 게임계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리니지 등 중세 팬터지풍의 롤플레잉 게임과 고스톱 등 도박성 보드게임이 주류를 이루었다.그러나 업체들은 그 와중에서도 1인칭 액션,비행 슈팅,음악,레이싱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내놓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시장의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동아시아,온라인 게임도 ‘한류 열풍’ 2003년은 중국을 비롯해 일본·타이완·태국 등 동아시아 전체가 한국 온라인 게임 열풍에 휩싸인 해.한국 온라인 게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한때 80%를 넘기도 했다.그러나 올 중순 중국 ‘산다’와 한국 ‘액토즈소프트’의 로열티 분쟁에서 보여졌듯 국내 업체들의 사업 미숙과 정부 당국의 소극적인 행정지원은 과제로 남았다. 인터넷 포털업체,게임시장 대거 진출 야후코리아,다음,네이트닷컴,엠파스 등 인터넷 포털 업체들은 올 중순을 기점으로 게임 포털 시장에 대거 진출했다.그에 따라 기존의 한게임,넷마블과 엠게임로 구성됐던 2강1중 체체는 하반기 한게임,넷마블,네오위즈-엠게임의 3강1중 체제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경쟁이 치열한 ‘전국시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사이버 도박판 논란 게임 포털들이 서비스하는 고스톱 등 도박성 게임들은 총 회원 수 7000만명(중복 포함)이라는 거대 시장을 형성하며 성장했지만 사행성,편법유료화 논란 등을 불러일으키며 연말 영등위 등 관계당국과 강하게 충돌했다.결국 포털들이 잇따라 ‘도박성 게임 집중 전략 탈피’를 선언을 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게임업계,본격적 세불리기 더이상 영세한 가내수공업 수준의 산업이 아니다.게임 업체들은 이제 개발과 마케팅 등에 대기업 수준의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본격적인 세불리기에 나섰다.연예기획사와 연계해 이효리 등 연예인을 동원한 스타 마케팅을 앞다투어 도입했다.웬만한 영화 한편을 훌쩍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게임’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e-스포츠 전성기 계속 더해만 가던 e-스포츠의 인기가 어지간한 프로 스포츠들을 뛰어넘었다.이제 임요환 등 일부 스타 프로게이머들은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인터넷 팬클럽 회원 수가 40만명에 달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기존의 기업들뿐만 아니라,최근에는 교육기관(서울호서전문학교)도 프로게임단을 공식창단했다. 온라인 만화들,오프라인도 내땅 올 한해 만화 출판계의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카툰에세이’ 출판.‘파페포포 메모리즈’‘마린 블루스’‘포엠툰’ 등 온라인 개인 홈페이지에 연재되던 카툰에세이들이 앞다투어 출판돼 11주 연속 종합베스트셀러 1위,75만부 판매 기록(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을 남기며 ‘오프라인 점거’를 선언했다.불황에 시달리던 출판사들은 카툰에세이 발굴에 나섰고,대형서점들도 시장 추세에 동참했다. 복간 만화 출간붐 지난 99년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복간 만화 출간은 올해 절정에 달했다.출판계는 앞다투어 만화가 고우영의 수호지 등 복간·애장본을 출시했다.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케이블 음악채널은 ‘태권브이’ 등 고전 애니메이션들을 줄기차게 틀어댔다.PC·모바일 게임들도 이에 편숭해 고전 만화를 소재로 한 여러 게임들을 내놓았다. 한국 만화 본격적인 해외 진출 2003년은 무엇보다 한국 만화의 해외진출이 본격적으로 시도된 첫 해로 기록된다.지난 1월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에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을 시작으로 한국 만화들은 일본 ‘망가(MANGA)'와 차별화한 ‘만화(M ANHWA)’ 브랜드로 국제 전시회들에 콘텐츠들을 내놓아 좋은반응을 얻어냈다.
  • 서울 호서전문학교 첫 프로게임단 창단

    교육기관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프로게임단이 생겨났다. 서울호서전문학교(교장 이운희)가 이 학교 사이버게임과 재학생 3명으로 구성해 최근 창단식을 가진 프로게임단 ‘WINGS’.현재 한국프로게임협회(회장 김영만)에 등록된 17개 프로게임단의 대부분을 동양제과,삼성전자,KTF 등 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점을 볼 때 매우 이채롭다. 이운희 교장은 “게이머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습득해 프로게이머란 직업에 비전을 갖고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교 차원의 프로게임단을 창단하게 됐다.”면서 “‘WINGS’를 통해 게임 강국을 이끌 인재 배출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프로게임협회 정명곤 사무국장은 “대학간 리그 활성화 등을 통해 e-스포츠 교육계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책/키워드로 읽는 일본문화 1~6

    한미경 등 지음 글로세움 펴냄 일본의 문화적 특징을 소개한 책은 수없이 많다.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아마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일 것이다.베네딕트는 이 책에서 일본문화를 ‘국화’와 ‘칼’이라는 양면적인 국민성 안에서 이뤄진 ‘염치의 문화’로 규정했다. 또 도이 다케오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입각한 ‘아마에의 구조’라는 저서에서 일본문화를 ‘아마에(甘え,응석)의 문화’라고 했으며,나카네 치에는 일본사회를 ‘수직적 사회’라 정의했다.그런가 하면 이어령은 ‘축소지향의 문화’라는 말로 풀이했다. 일본문화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일본문화에 대한 연구는 이제 고도지식사회에 걸맞게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차원으로 승화돼야 한다. ‘키워드로 읽는 일본문화’(전6권,한미경 등 지음,글로세움 펴냄)는 한국일어일문학회 창립 25주년을 맞아 208명의 대학교수가 함께 쓴 ‘일본문화총서’다.문화·문학·어학을 주제로 한 360개의 핵심어를 알기 쉽게 풀이했다.1권 ‘게다도 짝이 있다’는 전통문화편으로,일본 화폐속의 인물에서부터 화투에 나타난 일본인의 계절감,제사로부터 시작된 벚꽃놀이,감춤과 숨김의 미의식을 담은 기모노,무사들의 하루 일과 등 일본 전통문화의 면면을 다뤘다. 2권 ‘스모남편과 벤토부인’은 현대문화편.메이지 유신을 거쳐 급속하게 유입된 서구 문물이 어떻게 전통문화와 결합했는가를 살핀다.기생충 같은 생활을 하는 패러사이트족,이지메 현상,일본영화의 슈퍼스타 고지라 등 현대 일본의 다양한 문화현상을 짚었다.3권 ‘모노가타리에서 하이쿠까지’와 4권 ‘나쓰메 소세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는 각각 일본의 고전문학과 근현대문학을 소개한다.8세기 신화와 전설부터 시작해 중세,근세,메이지시대를 거쳐 전후 현대문학까지 아울렀다.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문학적 저항과 재일문학의 현주소도 살펴본다. 이밖에 5권 ‘높임말이 욕이 되었다’와 6권 ‘일본어는 뱀장어 한국어는 자장’에서는 현대 일본어와 일본인의 언어생활 등을 다룬다.이 총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상대의 타자성(他者性)을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씌어졌다.각권 1만 2000원. 김종면기자
  • ‘참사랑 운동’ 실천한 ‘보통사람’/13일 열반한 ‘우리시대 최고의 선승’ 서옹 스님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낸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사진) 스님이 13일 오후10시10분 전남 장성 백양사 설선당에서 입적했다.세수 92세,법랍 72세. 서옹 스님은 이날 오후 백양사 주지 스님과 시자들을 주석하고 있던 설선당으로 불러 후학들의 정진을 독려하는 법담을 나눈 뒤 열반송과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입망(앉은 채로 열반)했다. 스님은 동국대 선학원장을 비롯해 도봉산 무문관,대구 동화사,문경 봉암사,장성 백양사 조실을 역임했으며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냈다.영결식과 다비식은 19일 오전 11시 백양사에서 조계종단장으로 봉행될 예정이다. 스님은 중국 선불교의 대가인 임제 선사의 정맥을 이어 ‘우리시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통하는 선승이었다.특히 상하 귀천이나 성인·범부를 초월해 본래의 선한 면목에 투철한 사람으로 거듭 나자는 ‘참사람 운동’을 주창해 실천한 ‘보통사람’이기도 하다.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양정고보에 재학중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 선생의 영향을 받아 ‘간디 자서전’을 읽다가 불교에 입문했다.이후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거쳐 1932년 백양사에서 만암(曼菴·1876∼1957) 스님을 은사로 출가,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의 지도를 받은 뒤 일본 교토의 인제대에 유학했고 이후 해인사 동화사 파계사 봉암사 등 여러 선방에서 정진을 거듭했다.체계적인 근대식 교육을 받았던 스님은 검증되지 않은 여러 수행법에 대해 우려,무엇보다 사람들이 참선을 근본으로 서로 자비심을 갖고 사리사욕 없이 참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인간의 참모습을 깨달아야 한다고 늘상 강조했다.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조사선’을 강조하면서도 “깨달음은 한 번의 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화두참구를 통해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라며 수좌들에게 쉼없는 정진을 다그쳤다. 특히 “참선이야말로 인생문제가 다 해결되는 인간의 참모습인 만큼 공부하는 수좌들은 참선을 하면서 자기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중생까지 제도한다는 큰 원을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이같은 신념에 따라 지난 98년부터는 백양사 고불총림에서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승속(僧俗)이 한데 모여 서로의 경지를 묻고 답하는 무차선회(無遮禪會)를 2년마다 열어 왔다. 중생들로 하여금 불교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신심을 갖도록 하는데 힘썼던 스님은 ‘선과 현대문명’‘절대 현재의 참사람’‘임제록연의’‘참사람 결사문’‘사람’ 등의 저서를 남겼다. 김성호기자 kimus@ ●열반송 전문 雲門日永無人至/白巖山頂雪紛紛/一飛白鶴千年寂/細細松風送紫霞(운문에 해는 긴데 이르는 사람 없고/백암산정에 눈이 분분하네/한번 백학이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솔솔 부는 솔바람 붉은 노을을 보낸다.)
  • 소녀가장 꿈살린 ‘십시일반’/도봉구청 직원들 성금모아 불우학생 간호학원비 지원

    구청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나서 소녀가장의 꿈을 되살렸다. 11일 도봉구(구청장 최선길)에 따르면 구 직원 10명이 힘을 모아 매월 22만원씩 6개월간 소녀가장 박은영(19·쌍문1동)양의 학원비를 대주기로 했다. 신장과 허리가 좋지 않은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학업성적이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였던 박양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올초부터 간호전문학원을 다녔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40여만원을 쪼개 매월 22만원을 학원비로 내며 열심히 다녔지만 나머지 18만원으로는 도저히 생활을 꾸려가기 어려웠다.결국 6개월만에 학원을 그만 둔 박양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법무사 사무실 보조로 취업,월급 60여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과 동시에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자격이 박탈돼 정부보조금은 물론 의료보호도 받지 못하게 됐다.60여만원의 월급으로는 생활비와 학원비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워 간호사의 꿈을 접어야 할 처지였다.박양의 안타까운 사연은 쌍문1동 사회복지담당으로 근무하면서 박양 가족과 인연을 맺은 사회복지과 김미혜씨가 구내전산망 게시판에 “어려운 학생의 미래를 위해 6개월간 매월 2만 2000원을 내줄 열 분이 필요합니다.”라는 호소문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올린 글이었지만 불과 2시간만에 학원비를 내주겠다는 후원자가 10명을 넘어섰다.과장,동장에서 주차단속 여직원까지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은 식을 줄을 몰랐다. 박양은 15일부터 다시 간호학원에 다닐 예정이다.앞으로 6개월만 더 다니면 간호조무사가 돼 자신의 어머니처럼 병들고 지친 사람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 박양을 돕는 일에 동참한 도봉구 직원 송모씨는 “담뱃값,택시비를 아껴 모은 작은 정성이 한 사람의 절망적인 미래를 희망으로 바꿔줄 수도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직업전문학교 통합 협약

    이동훈(李東勳)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10일 경남도가 운영하던 도립직업전문학교를 공단 진주직업전문학교로 통합하는 협약을 맺는다.
  • ‘무소유 삶’으로 부처가르침 실천/독일인 ‘거지 성자’ 페터 노이야르

    “남에게 폭력을 쓰지 않으면 나도 폭력에 희생되지 않을 것이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남에게 무엇을 뺏기지 않겠지요.이 평범한 진리야말로 온 세상이 화합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요체라고 봅니다.” 흔히 ‘거지 성자’로 국내에 알려진 독일의 거리 수행자 페터 노이야르(사진·62)는 8일 서울 조계사 앞 산중다원에서 만나 “모든 사람들이 적대감 대신 포용력을 갖고 타인을 대한다는 기본덕목만 지켜도 이 세상엔 평화가 뿌리내리고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독일 라인란트팔츠 태생인 페터 노이야르는 전문학교에서 측량을 공부한 뒤 제지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으나 1968년 당시 기성세대와 신세대간 갈등으로 인한 극심한 사회혼란의 와중에서 그 해결책에 고심하다가 불교에 빠져들기 시작한 인물.영국 불교사원에서 생활하면서 선불교와 대승불교에 심취했으나 불교의 근본을 알기 위해 초기 불교 경전인 팔리어 원전을 공부하기 시작,지난 23년간 집없이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면서 수행하고 있다.지난 99년 ‘거지성자’란 책을 통해 자신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회장이 팔리어로 된 초기불교 경전 ‘맛지마 니까야’를 한글로 완역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기독교나 불교 모두 ‘사랑’을 강조하고 있지만 불교가 종교적 실천방법을 더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그대로 삶 속에서 실천하면서 만족감을 얻고 있습니다.” 술·담배를 전혀 안하고 거의 매일 한 끼 식사로 때우는 철저한 고행의 삶을 지키는 그에게는 ‘아나가리카(집없는 자)’라는 별명이 붙었다.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산책을 한 뒤 7시쯤 쾰른대학 근처 슈퍼마켓 등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과일이며 먹을 것을 얻어 끼니를 해결하고 겨울에도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닌다.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것부터 실천하다 보면 놀랄 만큼 큰 지혜와 영감을 얻게 된다.”는 그는 “이라크 전쟁 등 지금 온 세계가 당면한 고통도 개인이나 국가 모두 기초적인 근본도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성호기자kimus@
  • ‘3번 VS 5번’ 오프라인 격돌

    수능 언어영역 17번 문제의 정답을 두고 (3)번과 (5)번을 주장하는 수험생들이 한치의 양보없이 맞붙었다. (3)을 주장하는 쪽은 복수정답을 인정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항의 집회를 갖겠다고 집단행동에 나선 반면 (5)도 정답임을 내세우는 쪽은 이 기회에 수능문제와 정답에 대한 이의제기 등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자며 감사원 감사까지 요구했다. (3)번 정답자 모임인 인터넷 카페(cafe.daum.net/threeanswer)’소속 회원 두명은 26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평가원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신고를 마쳤다.집회신고를 낸 임원석(23)씨는 “그동안 (3)번 정답자들은 소수라는 미명하에 발언권이 제한돼 있었다.”면서 “온라인 모임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활동을 강화하기 수단”이라고 말했다.이들은 28일 오후 2시 평가원 앞에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5)번도 정답이라는 네티즌들도 이날 오후 ‘수능시험 뒤 정답에 대한 이의제기 등의 절차’ 등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복수정답을 주장하는 네티즌들의 인터넷 카페모임 대표들은 회원을 상대로서명받은 국민감사 청구서에서 “수능의 사후처리에 대한 행정적 개선과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한 외부심의가 있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교육단체 관계자들은 “사고는 교육부와 평가원이 저질러 놓고 죄없는 아이들끼리 싸우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논란이 가라앉을 수 있도록 당국에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해명과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답시비·자문교수 친분 밝혀져 복수정답을 인정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수능 자문위원회와 전문학회의 위원 구성에 대한 정당성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 따르면 언어영역 17번 문항의 오답 가능성을 제기했던 서울대 C교수가 수능 자문위원회에 참석한 데다 평가원이 자문을 요청한 전문학회에 C교수와 친분이 깊은 인사가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3)번 정답을 쓴 쪽은 “복수정답 문제를 제기했던 당사자를 수능 자문위원회에 참석시킨 것은 부당하다.”면서 “복수정답 인정은 객관성을 상실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지난 21일 열린 수능 자문위원회에 C교수를 참석시켜 (5)번이 정답이라고 공론화한 사실을 들었다.”면서 “하지만 자문위원들은 C교수의 의견만 들은 것은 아니므로 절차나 내용상 공정했다.”고 말했다.또 “전문학회의 위원 구성은 학회에서 결정한 것으로 평가원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평가원이 의견을 구한 전문학회 위원 중 1명은 C교수와 친밀한 관계에 있으며 이 위원은 (5)번을 단독 정답으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수능 파문 조사결과 오늘 발표 교육부는 27일 오후 수능 파문과 관련,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발표한다.조사결과에는 학원강사의 수능 출제위원 선정과 시중 문제집과 유사한 지문이 출제된 과정,복수정답 인정 경위 등 논란이 된 모든 부분이 포함된다.또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대국민 사과 성명도 내놓을 예정이다. 평가원측은 “복수정답 인정에 따른 재채점을 이미 마무리지었다.”면서 “오류 여부를 점검한 뒤 27일부터 수험생 63만여명의 성적표 인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
  • 불꺼진 강남학원… 단속 ‘헛심’

    24일 오후 8시30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주변 한 오피스텔.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과외방’ 밀집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서울시교육청의 학원 특별단속이 시작된 첫날,공무원과 경찰,시민단체 관계자로 구성된 11명의 단속반원들이 불법 고액과외로 유명한 이 오피스텔의 J개인과외교습소를 덮쳤다. 그러나 단속은 벽에 부딪혔다.개인과외 신고필증을 제시한 강사 2명은 당당했다.강사 양모(여)씨는 “이 건물에 있는 130개의 방 가운데 30곳에서 개인과외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고 큰소리쳤다. 같은 시간 6층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간판도 없이 방 번호만 적힌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학생들은 수강료를 묻는 질문에 입을 맞춘 듯 “부모님이 안다.”“우리는 월 5만원짜리 강의를 받는다.”는 말만 남긴 채 줄행랑쳤다. 한 여성 강사는 취재진에게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난다.여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학부형들은 판사,변호사 등 백그라운드가 대단한사람들”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단속반을 맞은 대치동 P과학전문학원 원장 김모씨는 “이런 식으로 단속하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오히려 단속반에게 신분증을 요구,복사까지 하는 등 누가 누구를 단속하는지 모를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지원 경찰관은 “몸싸움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영장도 없이 서류를 보여달라고 할 수 없다.”며 뒷짐을 진 채 구경만 했다. 같은 시각 대치동 K국어교육원.원장 김모씨는 휴대전화까지 꺼놓은 채 자취를 감췄다.이 곳의 강사는 모두 4명.3∼4평짜리 강의실 4곳에서 각자 강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과외방의 변종이다.단속반은 수강료 책정 문제를 따졌지만 이들은 “원장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날 동원된 단속인원은 강남 지역 120명을 포함해 모두 210명.그러나 준비 부족으로 실질적인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관련 법률을 몰라 허둥대는가 하면 단속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지 못해 학원측으로부터 무안만 당했다.은밀하게 접수했다는 제보는 광고전단지가전부였다.아직 개원하지도 않은 엉뚱한 학원을 단속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단속에 앞서 이뤄진 3시간 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이 무색할 정도였다. 한편 이날 단속이 시작되자 대치동 D학원을 비롯한 일부 학원들은 ‘12월 초까지 임시 휴원’이라는 팻말을 내걸고 수업을 중단했다.심야단속에 대비,거의 모든 학원들이 밤 10시 이전에 불을 껐다. 시교육청은 이날 단속에서 방이동 한 상가에서 신고액을 어기고 초등학생 한 명에게 매달 200만원씩 3개월 동안 모두 600만원을 받은 개인과외교습자 조모(40)씨를 비롯,228개 학원에서 238건의 위반사실이 적발됐다.위반사항은 명칭위반,무단휴원,시설기준미달,수강료 허위기재 등이 주를 이뤘다. 김재천 유영규기자 patrick@
  • 수능 오답시비 언어영역 17번/복수정답 인정 가능성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4학년도 수능 시험에서 오답 시비가 일고 있는 문제에 대해 복수 정답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3일 평가원에 따르면 문제가 제기된 언어영역 17번 문제를 전문학회에 검토를 의뢰한 결과 평가원의 정답과 이의를 제기하는 측의 정답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려 둘 다 정답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어영역 17번 문제는 백석 시인의 시 ‘고향’과 그리스 신화 ‘미노토르의 미궁’을 제시한 뒤 ‘고향’에 등장하는 ‘의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미노토르의 미궁’에서 찾는 문제다.평가원은 당초 3번 ‘미궁의 문’을 답으로 제시했으나 일부에서는 5번 ‘실’이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평가원의 의뢰로 검토에 참가한 전문학회 전문가 7명 가운데 4명은 평가원의 답인 3번을 정답으로 인정했지만 1명은 5번을,2명은 3번과 5번이 복수정답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범석 교육부 차관은 이와 관련 “복수정답 인정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 “평가원과 교육부가전문학회가 제시한 의견을 토대로 3번만을 정답으로 할 경우와 복수정답을 인정할 경우의 향후 처리문제 등을 종합 검토해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평가원은 오답 시비에 따른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당초 오는 25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공식 입장을 앞당겨 24일 오후 2시 발표할 계획이다. 김재천기자
  • 책 / 살라딘

    스탠리 레인 풀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결정으로 시작된 이후 200년 가까이 지속된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간의 전쟁을 말한다.중세 서유럽의 기독교도가 이슬람교도를 정벌하기 위해 일으킨 지리한 살육의 전쟁.이 싸움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일까.3차 십자군의 수장인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일까 아니면 그 상대인 이슬람의 살라딘일까. 영국의 저명한 중세사가인 스탠리 레인 풀이 쓴 전기 ‘살라딘’(이순호 옮김,갈라파고스 펴냄)은 물론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의 손을 들어 준다.그렇기에 이 책은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더한다.살라딘은 서양의 고전문학 작품에 흔히 등장할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지만,그에 관한 전기는 영어권에서 1898년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단 한 권도 없었다.아랍의 인물이란 어차피 서구의 시각에서 볼 때 관심권 밖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 책은 영어로 씌어진 최초의 살라딘 전기다.서양학자로서 그 어떤 편견도 없이살라딘을 온전히 드러내고 알렸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살라딘은 어떤 인물인가.살라딘은 1138년 사담 후세인의 고향으로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라크 티크리트의 명망 있는 쿠르드족 가문에서 태어났다.그는 열네 살의 나이에 군인의 길에 들어선 이래 수십년에 걸쳐 탁월한 지력과 지혜,무엇보다 따뜻한 인간애로 이슬람 최고 통치자인 술탄의 자리에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다. 살라딘은 1차 십자군 원정 이후 90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수중에 있던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히틴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탈환하는데 성공하면서 비로소 이슬람의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살라딘은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야만적으로 정복했던 것과 달리 “천국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자비”라면서 함락된 도시에 자비를 베풀었고 적국의 왕과 포로까지도 사랑으로 감쌌다.살라딘이 막강한 서유럽 군에 맞서 이슬람 세계를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같은 인간적인 관대함에 있었다.리처드 1세 왕과의 일전에서도 살라딘은 아량을 잊지 않았다.리처드가 낙마했을 때는 새 말을 내줬고,눈병으로 고생할 때는 과일과 눈(雪)을 보내줬다.포로들에게 선물까지 나눠줬다. ‘자비와 관용의 군주’ 살라딘은 생전에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었기에 어떤 종류의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때문에 살라딘이 55세로 죽었을 때 그의 친척들은 장례 치를 비용까지도 빌려야 했다.‘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정복자’라는 칭송을 듣는 살라딘.기사도의 전형을 보여준 살라딘의 생애는 아랍민족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을 사랑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삶이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를 웅변해준다.1만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어린이 책꽂이

    ●보물섬(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글,에드워드 윌슨 그림,정영목 옮김,비룡소 펴냄) 소년 짐 호킨스와 키다리 해적 존 실버 등이 보물섬을 찾아나서는 내용의 어린이 고전문학.‘하이디’‘꿀벌 마야의 모험’‘홍당무’ 등이 시리즈로 묶여 나왔다.‘꿀벌…’과 ‘하이디’는 국내 처음 완역됐다.원작에 최대한 충실했다.초등 고학년 이상.1만 5000원. ●11월(신시아 라일런트 글,질 캐스트너 그림,이상희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 앙상하게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새들,헛간 구석에서 몸을 포갠 고양이들….11월의 정취를 따뜻하면서도 간결한 이야기톤으로 묘사한 그림책.원근감을 잘 살린 풍경화를 배경으로,어린 시심(詩心)을 자극할 만하다.5세 이상.8000원.
  • “술빚기 18년째 매달려 전통주 맥 이어가야죠”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우리 전통주는 술 빚는 방법이 대략적으로나마 전해오는 것이 600여가지다.이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420여가지를 직접 재현한 이가 있다. 박록담(朴碌潭·본명 德焄·45)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우리 술 재현에 18년째 빠져 있다.서울 은평구 지하철 녹번역 근처의 전통주연구소는 입구부터 술익는 구수한 냄새로 코끝이 간질간질하다. ●우리술 420여가지 재현 그의 ‘술방’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술독과 500여개의 보관용 작은 술병들,소줏고리(증류기)·용수(술거르는 대바구니)·주합(나들이용 술과 안주통) 등 양조 도구들이 빼곡하다. 우리 술은 이름만 들어도 감흥이 인다.눈꽃이 핀 듯한 백화주(白花酒),연꽃 향기가 은근한 하향주(荷香酒),매실 향에 톡쏘는 맛의 호산춘(壺山春)….지난 1986년 이후 그가 재현한 술이다.“제대로 빚어졌는지는 우리 술의 이름으로 대개 알 수 있지요.”그가 지금까지 빚은 술을 쌀로 환산하면 6t이 넘는다. 이렇듯 그가 우리 술에 빠진 데는 순전히 효심 때문이다.“84년 취직한 이후 술 욕심이 많았던 아버지께 술을 자주 사다드렸지요.하지만 과음한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술을 찾다가 그만 전통주에 빠졌지요.” 그는 주량이 양주 한병에 이르는 부친(65)을 위해 건강에 좋은 술을 찾아나섰다.당시 실낱같이 이어지던 밀주를 사드렸더니 “술이 참 좋다.어디서 난 것이냐.”며 관심을 보였다.이에 신이 난 그는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탐주여행을 시작했다. 시골의 할머니들에게 ‘술을 빚어달라.’고 쌀을 미리 보내기도 했고,누룩을 빚고 고두밥을 찌면서 할머니들과 며칠씩 보냈다.그래서 ‘미친놈’이란 소리도 들었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면서 빚는 술인데 내가 죽고 나면 이 아까운 것을 누가 이을까.’하는 것이 당시 할머니들의 공통된 푸념이었습니다.” “사라지는 우리 술을 보존하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술 빚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대학 졸업 이후 2년째 다니던 서울청소년지도육성회도 그만뒀다. ●좋은 전통주는 상품화해야 그가 술을 빚는 데는 타고난 구석이 좀 있었던듯 보였다.무안 박씨 해남파 37대 종손인 그의 집 가양주(家釀酒)는 좁쌀소주.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가 술빚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가 혼자서 빚은 최초 술은 석탄주(惜呑酒).떡을 만들어 술 빚는 방법을 적은 ‘주방문(酒方文)’은 전해 오지만 술은 이미 실전됐다.발효와 숙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6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7번째 성공했다.사과 향기가 감도는 향은 이름 그대로 ‘삼키기가 아까웠다.’당시 촬영차 왔던 모방송 스태프진이 술을 더 달라고 간청해왔다. 이어 동정춘(洞廷春)을 빚었다.개떡으로 밑술을 만드는 동정춘은 물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이 특징.물이 없는 탓에 고두밥이 바짝 말라버리는 바람에 서너번 허탕 끝에 ‘조청 빛깔에 자두꽃 향이 나는’ 술을 완성했다.“쌀 1말을 쓰면 청주가 1되 반(2.7ℓ) 정도 나오는 귀한 술이지요.” 하지만 맛과 향이 좋은 전통주가 제대로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포도주 감별사(소믈리에)에다 일본술 사케 감별사까지 활개치면서 우리 술이 서양에서 들어온 위스키나 포도주보다 저급한 술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또 주세법의 규정과 제약도 전통주의 대중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집에서 우리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은 되지만 시장이나 음식점에서 파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지요.좋은 전통주의 상품화를 허용해야 합니다.”그리고 완성된 술의 품질에 대해 검사를 하고,세금을 부과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과거,우리 술은 차례와 제사를 위해 집집마다 빚던 가양주가 대부분이었다.하지만 1907년 조선통감부의 주세령에 의해 가양주가 금지됐고,밀주 단속이 거셌다.때문에 당시엔 이웃간에 ‘술있느냐.’는 말 대신 ‘호랭이(호랑이) 있느냐’,‘벽 있느냐’는 등의 은어가 쓰였다고 한다. 이후 쌀의 재고량이 넘쳐난 1987년에서야 비로소 양곡관리법의 규제가 풀렸고,자가양조가 가능하게 됐다.80년 동안 계속된 규제 탓에 전통주의 맥이 서서히 끊어졌고,공장에서 획일적으로 만든 막걸리나 동동주처럼 우리 술은 맛과 향이 좋지 않고 숙취가 남는 술로 인식됐다.그러나 경주 교동법주,안동소주,서울 삼해주처럼 당국의 단속을 피해 제조된 밀주들은 그런 편견을 이겨냈다. ●전통주 전문학교 세우는게 꿈 시중에 나오는 우리 술은 150여가지에 이른다.그도 한때 우리 술의 상업화를 시도했다.하지만 양조법을 전수받고는 사라져버리는 사기와 배신을 몇차례 당했다.“결혼 이후 외식 한번 못한” 그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운영되는 연구소와 탐주 탓에 가정 불화도 잦았다.술에 넌더리를 칠법도 하지만 그의 우리 술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지금도 술빚는 도구들이 보이는 대로 사 모으고 있다.“전통 도구들이 사라지는 게 아깝잖아요.다음에 술 박물관이라도 생기면 기증할 생각에….” 술독에 빠져 사는 인생이지만 그는 정작 술을 못한다.주량은 소주 서너잔.“맛 본 술을 모두 뱉어버립니다.좋은 술만 맛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술을 맛보는 경우도 많지요.”그의 코끝은 늘 조금 빨갛다.지난 2000년 3월 설립된 전통주연구소의 수강생들이 붙여준 별명은 ‘빨강코’다. 전통주 전문학교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란다.“술빚는 이론과 실습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전문가를 육성하자는 것이지요.정부가 우리 술에 신경을 써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주(銘酒)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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