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무후무
    2026-06-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32
  • [기고] 중용과 통합,임시정부에서 배우자/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유대인 시인 사뮈엘 울먼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라며 인간의 꿈과 정신의 가치를 찬미했다. 윤봉길 의사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올리는 서신에서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이상은 무엇이냐? 목적의 성공자이다.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상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하여 길을 떠나간다는 결심을 하였다.”라고 썼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울 수 있는 열정을 다짐한 것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88년 전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선열들은 자주독립이라는 이상을 품고 불굴의 의지로 투혼을 불태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1919년 3·1운동으로 표출된 온 겨레의 독립을 향한 여망을 모아 4월13일 중국 상하이에 세워졌다. 그 후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 항저우, 창사, 충칭 등으로 청사를 수차례 이전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모진 시련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일제 폭압에 신음하는 겨레의 가슴에 뜨거운 조국애를 심어 주었으며, 민족혼의 산실로서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다. 또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이끌어 우리 민족의 자존의지와 긍지를 되살렸다. 나아가 일제강점 이후 끊임없이 전개돼온 무장투쟁의 맥을 이어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고 다양한 항일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다해 왔다. 임시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임정이 비록 망명지에 수립되었으나 우리나라 최초로 등장한 민주공화제로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헌법에도 잘 반영돼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27년이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며, 국제외교를 강화하여 열강세력이 1943년 카이로선언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임시정부의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으로 계승되어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표방한 민주, 정의, 독립정신은 6·25전쟁과 4·19혁명,5·18민주화운동 등 광복 후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국난 극복과 민주 발전을 위한 시대정신으로 표출되었다. 임시정부의 또 하나의 의의는 20여년간 통합을 추구하던 임정의 좌·우 양 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는 것이다.1942년 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이자 통합정부를 이루었다. 독립이라는 최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좌·우세력이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경제적으로는 평등의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이념적인 격차를 줄여 신의를 쌓아간 과정과 성과는 역사적 교훈이 된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다. 오늘 우리가 88년 전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시정부 헌장에는 “남녀노소와 모든 종파가 일치단결하여 정의와 인도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말이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적 갈등을 넘어 국민통합으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조선 세조(1417∼1468)는 불교대호왕(佛敎大護王)으로 불릴 만큼 전무후무한 불교 후원자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와 여주 신륵사, 양평 수종사, 오대산 상원사와 금강산 건봉사·표훈사·유점사, 양양 낙산사, 영암 도갑사, 합천 해인사 등 방방곡곡의 수많은 절을 창건하거나 중수했지요. 세조는 온몸의 종창으로 크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왕위에 오르고자 조카인 단종을 죽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자업자득이라고 수군거렸지요. 불교에 의지한 것도 업보(業報)를 씻기 위해서라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세조가 불교 중흥에 힘쓴 가장 큰 이유는 왕권을 제약할 만큼 성장한 신흥사대부를 견제하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어린 단종이 집권한 뒤 유신(儒臣) 세력이 부각되면서 왕권과 신권(臣權)의 균형이 무너지자 ‘국정의 원상회복’을 외치며 반기를 들었던 이가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입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터10층석탑은 이처럼 세조가 중심에 선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이 벌인 주도권 다툼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원각사의 창건과 10층석탑의 조성은 세조가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려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조가 자신의 통치력을 과시할 수 있을 만한 권위의 상징물을 만들고 싶은 의도를 원각사로 구현시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교국가의 도성 한복판에, 그것도 주변 어디서나 바라보였을 12m짜리 고층불탑이 세조 13년(1467년) 완성됐을 때 신진사대부들의 굴욕감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인가 석탑의 8∼10층이 땅에 끌어내려진 뒤 1946년 미군공병대의 크레인이 동원되어서야 제 모습을 찾은 것도 유신들이 가졌던 불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13세에 불과한 성종이 즉위하자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사림정치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성종 5년(1474년) 불상은 회암사로 옮겨지고, 승려들도 내보내 원각사는 절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조광조 등이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만들겠다며 도학정치를 부르짖던 중종시대에 원각사터는 아예 택지로 분양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종시대 잇따라 큰 불이 나고, 임진왜란(1592∼1598)을 거치면서 원각사터에는 다시 10층석탑과 탑비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광무 원년(1897년) 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300년 동안이나 원각사터는 왕실과 유신들의 상호견제 속에서 빈터로 남아 있게 됩니다. 원각사탑은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세워진 라마불교의 영향이 짙은 원나라풍의 경천사10층석탑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탑이지만, 조선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미술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미술사적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가치까지 부여했을 때 원각사탑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가능해질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트렁크에 태극기 달고 뛰는 美 흑인복서

    복싱 트렁크(반바지)에 태극기를 달고 뛰는 흑인 복서의 사진이 지난 15일 국내 한 포털 사이트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이런 트렁크를 입고 경기에 나선 사연을 둘러싼 궁금증이 적지 않았던 것. 사진의 주인공은 세계권투평의회(WBC) 웰터급 챔피언인 셰인 모슬리(36). 그는 지난 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리조트 앤드 카지노에서 열린 타이틀매치에서 루이스 콜라조(26)를 꺾고 챔피언 벨트를 찼다. 주류 언론에선 거의 이 경기를 다루지 않았는데 한 누리꾼이 뒤늦게 이를 올려놓으면서 새삼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 모슬리의 별명은 ‘슈거’. 전설적인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의 이름을 본떴다. 그가 태극기를 트렁크에 단 채 경기에 나선 이유로는 해석이 엇갈린다. 하나는 아일랜드계 공인회계사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혼혈인 아내 진(30)을 사랑해 아내의 조국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그녀가 필리핀계로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날 모슬리는 10살 아래인 콜라조를 시종일관 몰아붙여 11라운드에 다운을 빼앗은 끝에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모슬리의 다음 상대는 5월6일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가든에서 열리는 WBC 주니어미들급 타이틀매치 오스카 데 라 호야(34)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0·이상 미국)전의 승자. 모슬리는 6체급 석권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설을 갖고 있는 호야를 두 차례나 꺾은 천적이다. 세 번째 맞대결이 성사될 경우 빅매치 기근에 시달리는 복싱계를 흥분시킬 전망이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Book Review] 모건 하우스의 힘

    뉴욕의 J P 모건과 모건 스탠리, 런던의 모건 그렌펠. 그리고 파리의 모건 에 콤파니. 대서양을 넘나들며 금융제국을 건설한 ‘모건 하우스’는 이제 세계 금융시장의 대명사가 됐다.1970년대 시작된 모건 스탠리의 광고 카피는 ‘모건 하우스’의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하나님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면 모건 스탠리에 의뢰할 것이다.”   미국 100대 기업 가운데 96개 기업이 J P 모건과 거래하고, 그나마 나머지 4개 기업 중 두 곳은 ‘고객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J P 모건으로부터 거래를 중단당했다. 경쟁이 치열한 요즘에도 고객이 직접 성지순례하듯이 은행을 찾아오도록 한다. “J P 모건의 역사를 알면 미국 금융과 경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게 국제금융계의 통설이다.하지만 과연 금융뿐일까. 일각에서는 ‘울트라 정치파워’라는 별칭을 J P 모건에 붙였다.J P 모건은 창업주인 존 피어폰트 모건1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들인 존 피어몬트 모건2세, 그리고 은행을 구분하지 않고 J P 모건으로 불린다.IMF 외환위기 이후 J P 모건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J P 모건은 정부와 국책은행의 채권발행 주간사로 여러차례 선정됐고,1998년 4월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의 ‘파생금융상품 사고’에 연루되기도 했다. ‘모건 하우스’의 역사를 조망하는 책 ‘금융제국 J P 모건’(론 처노 지음, 강남규 옮김, 플래닛 펴냄)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이 책은 J P 모건이 설립된 1838년부터 1989년까지 모건 하우스의 150년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모건 하우스의 거대한 성장 속에 숨겨진 추악한 면까지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 론 처노는 1980년대 뉴욕의 명문 싱크탱크인 20세기 펀드에서 금융정책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월스트리트에 관한 역사책을 구상하면서 모건 가문이 월스트리트의 장구한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프리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모건 하우스의 역사를 ▲창업에서부터 존 피어폰트 모건 1세가 사망하기까지의 시기인 ‘귀족자본가 시대’(1838∼1913) ▲J P 모건이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제정치 시대’(1913∼1948) ▲투자은행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한 모건 스탠리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장으로 변한 현대 금융시장을 그린 ‘카지노 시대’(1948∼1989)로 나눠 조망하고 있다. J P 모건은 1861년 남북전쟁 때 무기상인 듀폰과 손잡고 무기 중개업자로 나서면서 큰 돈을 벌었다. 전쟁 특수로 세계적인 금융기업으로 도약할 토대를 다진 J P 모건은 철도와 통신사업에 뛰어들면서 몸집을 불려나갔다.1913년까지 J P 모건은 사실상 미국의 중앙은행이나 다름없었다. ‘국제정치 시대’에 J P 모건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깊숙이 개입했으며, 모건 하우스의 파트너들은 국제정치의 뒷무대에서 은밀한 작업을 수행했다.‘카지노 시대’에 모건 하우스는 인수합병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였지만 반대급부로 ‘잔인한 포식자’라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저자는 모건 하우스만큼 강력하고, 신비롭고, 막대한 부를 거머쥔 금융제국은 앞으로 결코 등장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점에서 칭송과 비판을 떠나 ‘모건 하우스’ 인물들의 자취는 더 커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1권 820쪽 3만 2000원,2권 456쪽 2만원.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녹색공간] 참살이로 지구를 구하자/이기영 호서대 식품미생물학과 교수

    지난 2일 130여개국 2500여명의 과학자가 파리에 모여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회의를 마치고 확정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오는 2100년까지 지구평균기온이 최대 6.4도까지 올라가고 해수면이 지금보다 무려 59㎝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때문에 북극의 빙하가 사라지고 수많은 해안도시들이 물에 잠길 뿐 아니라 태풍이나 홍수, 가뭄 등 지구는 이상기후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 부족이 심화되고 사막이 급격히 늘어나 지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기 힘든 생태적 공황상태에 처한다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경고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인류가 앞으로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하로 줄여, 현재의 380대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 안에 묶어둘 수 있다면 이같은 재앙의 진행을 멈출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정점을 2015년까지 묶고 해마다 3%씩 줄여나가야 한다. 에너지절약을 위해 지구촌 가족들 모두의 큰 결심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류 역사상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과 생물계 전체에 대해 지구온난화처럼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제 인류와 생물의 목숨은 앞으로 10년동안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1947년 과학자들이 핵전쟁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는 지난달 17일 11시55분을 가리켜 파국인 자정까지 5분밖에 안 남은 급박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핵폭탄이나 테러보다 지구온난화가 더 큰 위협이 되었다고 한다. 만일 지금처럼 고급대형 승용차를 선호하고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길 원하는 환경파괴적인 가치관을 유지한다면 현대 인류문명은 죄없는 가여운 생태계와 함께 멸망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자들도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이 중요하지만 경제성 문제로 결국 관건은 에너지 절약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지구온난화의 진원지인 산업체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나가야 하고 우리 모두는 생활 속에서 에너지 절약과 검소한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몇년전부터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과 행복추구 생활방식을 뜻하는 이 말은 식품을 비롯해 의류·가구 등은 물론 주택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을 선전하는 데 쓰인다. 그러나 웰빙추구는 오로지 사용자의 건강과 편안함만을 고려할 뿐,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배려를 거의 무시하므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고 행복해지려면 좀더 거시적인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자신의 웰빙뿐만 아니라 이웃의 웰빙, 더 나아가서는 지구의 안녕과 지속성까지 생각하는 삶이 바로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참살이’ 즉,‘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이다. 미국 내추럴마케팅연구소(NMI)가 2000년 제시한 삶의 방식이다. 인간의 정신·육체적 건강과 함께 환경·사회정의 및 지속 가능한 소비에 큰 가치를 둔다. 독일처럼 환경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전된 유럽에선 이미 로하스 상품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과 대기환경 개선 효과를 동시에 거두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시내를 달리고, 친환경적인 유기농 농산물 매장이 증가한다. 외모보다는 피부건강을 지켜주는 천연화장품을 선호하고, 패션도 자연소재를 썼는지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참살이족’이 되어 기상이변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빠진 인류문명과 지구생태계를 구하기 위해 검소하고 절약하는 친자연적인 생활을 해야만 한다. 이기영 호서대 식품미생물학과 교수
  • [김종면 기자의 시사 고사성어] 倒行逆施 도행역시

    춘추시대 초나라에 오자서(伍子胥)라는 사람이 있었다. 초평왕이 그의 아버지와 형제를 죽이자 그는 오나라로 몸을 피해 복수의 칼을 갈았다. 오자서의 친구인 신포서(申包胥)는 그에게 극단적인 행동은 삼가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결국 오자서는 오나라 왕 합려(闔廬)를 도와 초나라 도성 영도를 공격했다. 그러나 초평왕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 복수심에 불탄 오자서는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꺼내 채찍으로 300번을 내려침으로써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었다. 천리(天理)에 어긋난다는 신포서의 말에 오자서는 이렇게 답했다.“내 오늘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기에 이렇게 뒤로 걸으며 거꾸로 일하는, 상리(常理)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된 거라네”‘사기-오자서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최근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가 재판 담당판사를 상대로 한 ‘석궁테러’는 사리에 어긋한 행동을 비유하는 도행역시(倒行逆施)라는 말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 전무후무한 사법테러는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사회적 범죄임에 틀림없다. 그런 만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국민저항권’ 운운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일각에선 10년째 복직투쟁을 해온 가해자에게 “오죽했으면…”이란 동정 아닌 동정을 보내기도 한다. 한마디로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마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송사는 졌어도 재판은 잘한다.”라는 말이 있다. 재판은 비록 졌지만 판결이 공평해 억울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법률적 판단은 추상 같이 엄정하게 하되 당사자의 인간적인 고뇌도 헤아려 살피는 성숙한 자세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이상일까. jmkim@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김준성 연세대 취업정보실 부실장이 본 퍼거슨감독 용병술

    요즘 잘 나가는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한참 부진했던 지난해 4월, 알렉스 퍼거슨(65) 감독은 “그의 공간 창조 능력은 가히 환상적”이라고 언론에 대놓고 칭찬했다. 며칠 뒤 박지성은 아스널 전에서 골을 터뜨려 감독의 신뢰에 답했다. 브랜드 가치만 1조 3000억원, 한해 순익만 4000억원을 내는 거대기업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1위를 질주하는 데는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쟁쟁한 스타들의 결합 덕만은 아니다. 그물을 짜듯 선수들의 역량을 결합하는 퍼거슨이 있기에 가능했다. 퍼거슨의 독특한 전략을 벤치마킹하면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인재 채용 원칙을 파악할 수 있다고 김준성(53) 연세대 취업정보실 부실장은 강조한다. 유럽축구 마니아인 김 부실장은 최근 ‘퍼거슨의 선수 선발 및 활용패턴 분석 보고서’를 냈다. 취업 관련 강연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다.‘퍼거슨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 ●흐름을 읽는 링커형 중용 퍼거슨이 다른 유명 감독들과 차별화되는 첫번째는 경기 흐름을 읽고 협응(協應)능력이 뛰어난 선수를 고른다는 점이다. 패스해달라고 압박을 가하는 선수보다 흐름에 민감한 링커형을 선호한다. 틈만 나면 그는 “축구는 11명이 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우리 기업처럼 몇차례 인터뷰를 거쳐 채용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유망주들을 유심히 지켜보다 한 순간 낚싯대를 잡아채듯 선발한다. 맨유 유소년팀에서 데이비드 베컴을 발탁, 세계적인 스타로 키운 것도 바로 그였다. 김 부실장은 “우리 기업도 그물을 드리우고 기다리는 채용에서 낚시형 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퍼거슨은 한번 마음을 준 선수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시골에서 공을 차던 소년 호날두를 발견한 것도 그였고 루니에 부상을 입혀 지난해 독일월드컵에 조기 출전하지 못했을 때 팬들의 비난 속에서도 호날두를 감쌌다. 둘을 화해시켜 최고의 골게터 콤비로 만든 것은 물론이다. 퍼거슨 감독이 네덜란드 리그에서 뛰던 박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입단을 권유한 것은 그가 피부색이나 국경을 의식하지 않고 인재를 선발함을 보여준다. 챔피언스리그 AC밀란 전에서 골을 넣는 장면을 본 뒤 “어떻게 그렇게 빠른 슛을 날릴 수 있느냐.”고 물어 박지성의 결심을 이끌어냈다. ●모두에게 주전 의식 심어 맨유에선 모두가 주전이다. 퍼거슨의 로테이션 기용 원칙 덕이다. 주전이 못 뛰게 될 때야 후보가 나서는 다른 팀과 다르다. 퍼거슨 감독은 또 당장의 성적보다 선수의 축구인생을 더 중시한다. 루니가 다쳤을 때 월드컵 조기 합류에 반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부상에서 돌아온 박지성에게 서서히 출장 시간을 늘려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부실장은 “이처럼 따듯하고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그에게 빠져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퍼거슨은 호날두가 이번 시즌 15골을 넣으면 100달러를 주기로 내기를 걸었다. 할아버지 답잖게 젊은 선수들과 호흡하는 것이다. 이는 신세대와 노장의 결합으로 전력을 극대화한다. 김 부실장은 유럽축구 중계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보고 해외 인터넷 축구사이트들을 탐독한다. 테니스를 30년간 즐긴 데다 최근에는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과격한 농구를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다. 그는 “퍼거슨은 지금도 운동장에 가장 먼저 나와 공을 찬다. 누구보다 축구를 즐긴다. 그러니 선수들이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퍼거슨 감독은 누구?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맡은 지 올해로 21년이 된다. 빠르고 거칠기로 소문난 영국 프로축구에서 이토록 오랜기간 팀을 맡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보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비롯, 총 8회 우승,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 등 맨유를 최고의 구단으로 만들었다.1998∼99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축구협회(FA)컵, 챔피언스리그를 모두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도 일궈냈다.120여년 영국 축구 사상 전무후무한 일.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았다.2004년에는 통산 1000경기 출장이란 대기록을 작성했다. 현역 시절 공격수로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뛰기도 했던 그는 껌을 열심히 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씹는 속도가 빨라지는 건 그가 그만큼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것. 카메라 앞에선 화를 내지 않는 퍼거슨 감독은 선수 전체의 협력 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을 때 라커룸에서 문짝을 걷어차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정 선수를 겨냥해 실수를 지적하는 일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선수 등용 8원칙 1. 흐름을 읽고 조직에 도움을 주는 ‘링커형’ 선수를 고른다. 2. 유망주를 수년간 ‘낚시’하듯 골라 키운다. 3. 한번 기용하면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4. 국경 없이 인재를 찾는다. 5. 로테이션 원칙은 철저히 지킨다. 6. 선수의 ‘직업능력 보존’을 우선한다. 7. 패기와 경험을 조화시킨다. 8. 선수의 탁월한 부분을 정확하게 얘기한다.
  • 日 유도 84연승 신화 료코 컴백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지만 유도가 멀어진 적은 결코 없었다.” ‘야와라’가 돌아온다. 일본 유도가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시원치 않은 성적을 거두는 등 위기에 빠지자,‘유도 여왕´ 다니 료코(31·결혼전 다무라 료코)가 내년 4월 전일본선수권을 통해 복귀한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야와라는 1980년대 말 일본에서 연재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도 만화의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 일본 유도계에 실제로 야와라 같은 선수가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바로 다니였다. 다니가 16세 때인 1991년 전일본선수권 우승 이후 국제무대 84연승을 달렸다.48㎏ 이하 체급으로 시드니와 아테네올림픽 2연패, 세계선수권 6연패, 전일본선수권 11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보유하며 ‘살아 있는 야와라’로 불렸다.2003년 12월 프로야구 선수인 다니 요시모토(요미우리)와 결혼했고, 지난해 임신과 출산을 위해 세계선수권 7연패 도전을 과감히 포기했었다. 앞서 “2008년 이전에 몸을 추슬러 매트로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했던 다니는 이날 “주위의 기대가 나를 움직이고 있다.”면서 “제대로 연습을 쌓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지음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려면 묶어서 생각하고 미루어 확장하는 촉류방통법(觸類旁通法)을 써보라.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연쇄적으로 가르치는 학습법. 이를테면 맑을 청(淸)자로 흐릴 탁(濁)자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지은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펴냄)은 다산 정약용의 치학(治學)전략, 즉 공부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18년의 유배생활 중 500여권의 저서를 낸 한국 지성사의 불가사의. 저자는 다산을 우리 역사의 전무후무한 지식편집자, 전방위적 지식경영인으로 규정한다. 이 책은 다산의 공부법을 다섯 글자의 핵심적인 한자성어로 정리해 눈길을 끈다. 여박총피법(如剝蔥皮法, 파 껍질을 벗겨내듯 문제를 드러내라), 공심공안법(公心公眼法, 선입견을 배제하고 주장을 펼쳐라), 어망득홍법(魚網得鴻法, 동시에 몇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하라), 속중득운법(俗中得韻法, 속된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라), 간난불최법(艱難不法, 좌절과 역경에도 근본을 잊지 말라) 등이 그것이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당선 확정

    결국 ‘미국의 악몽’은 현실화됐다. 5일(현지시간) 치러진 니카라과 대선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전 대통령이 40%에 가까운 득표율로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제거대상 1호’이자 80년대 좌파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라틴아메리카의 혁명 영웅이 16년 만에 권좌에 복귀한 것이다. 오르테가가 이끄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뒤 선거에 패해 물러났다 선거를 통해 재집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권력은 ‘총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정치적 진리를 확인시킨 셈이다. ●오르테가-부시 父子의 악연 1990년 오르테가의 실각이 사실상 미국의 ‘기획’에 의해 이뤄졌고 그의 재집권을 가장 우려한 것도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단순한 좌·우 정권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국 BBC 방송은 선거 전부터 오르테가가 승리한다면 “미국의 16년 중남미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예견해 왔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 특히 부시 부자(父子)와 오르테가의 ‘악연’을 살펴 보면 분명해진다. 아버지 부시는 1970∼80년대 CIA국장과 부통령을 지내며 산디니스타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가혹한 봉쇄정책을 주도하는 한편 우익반군 ‘콘트라’에 돈과 무기를 지원, 니카라과를 내전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89년 대통령 취임 뒤엔 우파 비올레타 차모로를 앞세워 오르테가를 낙선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이 중남미에서 벌인 ‘저강도 전쟁’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시장주의 이식 프로젝트는 니카라과를 비롯한 중남미 전역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경기침체와 양극화라는 부작용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내전에 대한 염증과 미국의 지원에 대한 기대심리로 우파에 기울던 중남미 민심은 다시 좌파로 급선회한다. 베네수엘라를 시작으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 차례로 좌파정권이 들어섰고 올해엔 칠레와 볼리비아가 좌파의 집권대열에 합류했다. ●반제국주의 혁명가에서 ‘노회한 정치인’으로 오르테가의 귀환은 결국 중남미의 ‘좌파 벨트’가 미국의 ‘턱밑’까지 육박했음을 의미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에게는 아버지 시절부터 진행해 온 중남미 정책이 총체적 실패로 판명됐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최근 중남미 선거에 개입을 자제해 왔던 미국이 니카라과 선거를 앞두고는 “오르테가만은 안된다.”며 자본 철수를 경고하는 등 ‘강수’를 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오르테가의 승리에는 해외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기업활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스스로 급진적 이미지를 탈색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주효했다. 과거 자신과 대립했던 콘트라 반군 지도자를 러닝메이트로 삼는가 하면, 집권시절 재산을 압류당하거나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도 용서를 구했다.‘매판자본 축출’을 외치던 반제국주의 혁명가에서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노회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은행권 ‘끼리끼리 마케팅’ 바람

    은행권 ‘끼리끼리 마케팅’ 바람

    국민은행이 지난달 22일 내놓은 여성 전용 금융상품인 ‘명품여성통장’은 출시 한 달 만에 14만 3000계좌에 수신고 8465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초기 1주일 만에 기록한 6만 3000계좌에 수신고 3677억원은 다른 은행 여성통장의 연간 판매 실적과 맞먹는 수준이다. 단기간에 기록적인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의 ‘입소문’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 상품은 가입 여성이 다른 여성을 끌어오면 양쪽에 모두 0.2%포인트의 보너스 금리(일명 수다 금리)를 준다. 처음 가입하는 고객의 통장에는 추천번호가 찍혀 있어 추천받은 고객은 이 번호만 가져오면 자동으로 가입된다. 국민은행 수신부 정현호 팀장은 “정보 공유 욕구가 강한 여성들의 ‘수다’를 보너스 금리로 연결시킨 첫 예금상품”이라면서 “기획부터 출시까지 6개월이나 걸렸을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요즘 은행권에는 이처럼 입소문을 내거나 짝을 지어 오는 고객에게 금리, 수수료, 포인트 등에서 다양한 혜택을 주는 ‘짝짓기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은행은 고객이 자발적으로 새 고객을 끌어오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고객은 손쉬운 짝짓기를 통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윈윈 게임’인 셈이다. 지난 7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우리은행의 ‘우리친구통장’도 28만 9551계좌,3342억원을 기록해 효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월급통장인 우리친구통장에 가입한 고객이 친구 1명을 지정해 등록하면 서로 송금할 때 수수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급여이체 고객에게는 예금과 대출금리를 0.1∼0.5%포인트 우대해 준다. 농협의 중소기업 전용 대출인 ‘어깨동무론’은 거래하는 고객의 소개를 받은 신규 기업이 대출 받을 경우 소개기업과 신규 거래기업 모두 금리를 0.2%포인트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지난 8월 출시 이후 3238억원의 대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싸이월드에 ‘도토리 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외환은행도 ‘사이버 짝짓기’를 통해 짭짤한 홍보 효과를 보고 있다. 도토리 은행은 온라인상의 친구 사귀기 개념인 ‘일촌(一寸)’ 맺기가 목표치(3만 일촌)까지 도달하면 참여한 누리꾼들에게 도토리(사이버 머니)를 추가로 지급해 예금과 대출상품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지난 10일 이후 25일까지 모두 2만 2191개의 일촌이 형성됐다. 하나은행도 25일부터 친구나 연인, 부부가 짝을 이뤄 가입하면 카드 사용실적의 0.1∼0.3%가 적립되는 포인트를 두 배로 쌓아주는 ‘둘이하나카드’를 출시해 짝짓기 마케팅에 본격 합류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동통신사와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이 주로 사용했던 ‘짝짓기 마케팅’이 금융상품에도 적용되고 있다.”면서 “은행의 상품 개발 능력 향상과 한국인 특유의 ‘끼리끼리’ 정서가 어우러져 금융상품의 새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샷] 한국 골프의 산증인 ‘한장상’

    서비스 이론에 ‘대우를 받으려면 상대방을 먼저 대우하라.’는 말이 있다. 한국 골프가 발전하고 세계화를 이루려면 먼저 골프 원로를 칭송하고 그의 업적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골프는 원로에 대해 지나치게 무심했다. 괄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 골프의 산증인 한장상(66) 프로는 마땅히 미국의 아널드 파머나 잭 니클로스 이상의 칭호와 대우를 받아야 하는 한국 최고의 원로다.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골프장에서 열린 LIG-KPGA선수권대회에는 한장상 프로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이저타이틀이 걸린 이 대회에 49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출전을 해온 것이다. 비록 컷오프로 대회를 마쳤지만 한장상 프로에게 김종덕을 비롯한 후배 30명은 ‘존경의 꽃다발’을 선사했다. 국내에 이렇게 훌륭한 골프 역사를 안고 있는 인물이 있었냐는 찬사도 도처에서 쏟아졌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와 브리티시오픈 등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출전한 파머나 니클로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또 박수를 쳐 왔다. 눈앞에 살아있는 우리의 골프 역사를 외면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것이다. 모두의 잘못이다. 사실 한장상 프로는 한국의 척박한 골프 불모지를 개척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지난 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엔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꿈의 무대’ 마스터스에도 출전했다. 몇 차례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수십 시간 이상을 날아간 뒤 잉글랜드와 미국 등지의 그린에 태극기를 알렸다. 내년이면 그는 KPGA선수권대회에서 50년 출전이란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만들게 된다. 그때에는 꽃다발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골프 역사를 기리고, 또 그의 이름 석 자를 코스 어딘가에 남겨야 한다. 그날만큼은 국내 최대의 골프축제로 승화돼야 한다. 그가 후배 양성을 위해 뛰는 모습을 한쪽에선 그리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한물간’ 프로골퍼로 폄하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장상’이라는 이름은 이제 한국 골프에서 빠져서도 안 되고, 외면해서는 더욱 안될 이름이다.그러나 그의 이름은 이제 겨우 파머와 니클로스에 견줄 만한 상황이다. 한국남자골프가 발전하기 위해선 그들처럼 ‘영웅 만들기’에 나서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일까.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레이싱 황제’ 미하엘 슈마허 박수칠 때 떠났다

    2006시즌 포뮬라1(F1)의 대미를 장식하는 브라질 그랑프리가 열린 23일 상파울루는 지난 10년간 ‘전설’ 혹은 ‘황제’로 불린 한 남자를 떠나보내는 자리였다. 1991년 F1에 데뷔한 뒤,7개 시즌 우승과 91차례의 레이스 우승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레이싱 황제’ 미하엘 슈마허(37·독일)는 예고했던 대로 이날 마지막 레이싱에 나섰다. 결과는 2위에 올라 8점을 보탠 페르난도 알론소(25·스페인)가 총 134점으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슈마허는 5점을 보탠 총 121점으로 2위에 머물렀다. 레이싱을 끝낸 슈마허는 “오늘로 나의 자동차경주 인생이 끝났다. 내겐 특별한 순간이며 훌륭한 사람들이 주위에서 나를 도와줬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항상 뒤에서 응원해준 팬들이 그리울 것”이라며 북받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핵을 버리고 김재박을 택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온 세계가 소란하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남다른 감회를 갖고 본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의 꿈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거였고 대학 시절 전공도 핵공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가 전혀 엉뚱한 야구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궁정동의 총성과 함께 핵개발을 추진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뒤이어 등장한 신군부의 핵 관련 프로젝트 포기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다른 하나가 현대의 김재박이다.1977년 한국화장품이 창단될 때까지만 해도 야구는 필자에게 좋아하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고, 더구나 실업 야구의 인기는 고교 야구에 현저하게 밀리는 상태였다. 이런 필자를 실업 야구 마니아로 만들고 거의 모든 실업 대회를 쫓아다니며 경기를 기록까지 하도록 만든 것이 유격수 김재박이다. 당시 신인 김재박은 그 해 타자가 탈 수 있는 상을 모조리 휩쓸며 7관왕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필자를 야구에 빠지게 만든 것은 그의 타격이 아니라 수비였다. 거의 좌익수 앞까지 빠진 타구를 쫓아가 역동작으로 1루에 던져 아웃시키고 넘어져서도, 달리면서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도 송구가 가능했던 그의 플레이는 그림이었다. 수비 하나만으로도 팬을 매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플레이 이전과 플레이 도중에 이루어지는 소프트웨어였다. 매 타자마다 매 투구마다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요즘에야 기본이지만 당시는 기본이 아니었다.또 평범한 플라이 볼을 수비할 때도 경기 상황에 따라 일부러 공을 땅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타자가 열심히 뛰지 않으면 1루에 던져 타자를 먼저 포스 아웃시키고 주자를 태그 아웃시키는 리버스 포스 더블 플레이를 시도한다. 타자가 열심히 뛰면 그냥 2루에 던져 1루 주자만 아웃시킨다. 이런 플레이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실행하기란 더욱 어렵다.약 30년간 야구를 지켜보면서 그런 플레이를 목격한 것은 스무 번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그 중에 태반을 유격수 김재박이 보여주었다. 선수 김재박 덕분에 필자는 프로야구가 창단될 때 전공을 포기하고 야구기록원으로 지망할 용기를 얻었다. 선수가 아닌 감독 김재박과 두뇌 싸움이라면 결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김인식 감독이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하면서 구사하는 용병술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즐겁다. 따라서 한 경기라도 더 볼 수 있도록 5차전을 기다리는 일은 이기면 삼성을 상대해야 하는 두 감독에게는 가혹할지 모르지만 팬들에게는 희망사항이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m
  • [작품하나 꿈둘] 영화’연애참’’해변의’출연 김승우

    [작품하나 꿈둘] 영화’연애참’’해변의’출연 김승우

    데뷔한 지 16년째다. 숱하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면서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하는 세련된 도시남성으로, 싸움 잘하는 멋진 형사로, 때로는 전기요금에 벌벌 떠는 짜증 제대로 나는 쪼잔한 인간으로 변신했다. 이번에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이다. 극과 극을 오가는 모습이지만 어느 것 하나 들떠 있지 않다. 너무 자연스러워 ‘딱이다.’라는 느낌으로 와닿는다. 그렇게 배우 김승우는 어떤 역할이든 맞춤옷처럼 입어, 보는 사람도 편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주연한 영화 두 개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이런 상황은 한국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라죠. 지난해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워낙 주연배우가 많아서 같은 상황이라고 보긴 힘들고….(황정민이 주연한 ‘너는 내 운명’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얘기다.) 서로 다른 모습을 봐야 하는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부담되죠.” 원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4∼5개월 전에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월드컵도 있었다.) 9월까지 연기됐다. 결국 ‘해변의 여인’과 날짜가 비슷해졌다. ‘연애참’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도 어머니가 점지해준 ‘착한’ 여인과 결혼하는 영운,‘해변의 여인’에서는 이미지의 혼란을 겪는 영화감독 중래다. “영운이는 비난 받아 마땅한, 대책없는 청춘이죠. 솔직히 전 그런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연애와 결혼이 별개죠? 중래는 소심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남자로, 둘 다 선택 앞에서 미적거리지만 성격은 전혀 달라요.”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저, 배우거든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무색하게….“실존인물이라고 전해들었어요.(김해곤 감독)주위에 같은 상황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고요. 지금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네.” 출연을 결심한 계기는 김 감독과 오랜 친분이었다. 김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의 작품 속에서 무엇이든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컸다.“역할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진실, 정직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다짐하면서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을 말 그대로 ‘비오는 날 먼지나듯’ 패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나 리얼했으면 객석에서 “어머, 어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어우,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 때려요. 리얼한 건 카메라 기술덕이에요. 근데 사람들은 그게 진짜 내 모습인 줄 알더라.”(웃음) 한동안 코미디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그는 여전히 멜로드라마에 애정이 있다.“사랑은 아름답고 늘 설레는 것이잖아요. 나이에 관계없이 즐겁고 행복한 얘깃거리고.” 그 또래 남자의 고민, 사랑 등을 다룬 진짜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선은 좀 쉬고 싶다.“올해 말까지는 휴식을 취할까봐요. 독특한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해지거든요. 외국에는 배우 전문 정신과 카운슬러도 있다던데…. 한국에도 필요한 건데 배우가 정신과 의사 만난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거예요. 그렇죠? 안타깝지.” 장난기 밴 눈으로 “관절 중에 오른쪽 손목만 정상”이라며 엄살을 피우다가도, 영화 얘기에는 사뭇 진지하게 돌변하는 김승우. 재충전을 한 뒤에는 어떤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날지 벌써 기다려진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 102년-서울신문의 어제] 겨레와 동고동락 서울신문의 102년

    서울신문이 겪은 정치적 격랑은 100년 역사의 신문이 쌓아온 문화적 의미마저 짓눌러왔다.‘총독부 기관지’‘군사정권 선전도구’라는 어두운 역사의 그늘에 가려 서울신문이 한 세기 역사속에 남긴 문화사적 족적마저 축소되고 폄하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초 대한매일신보 시절은 물론 일제 강점기 매일신보, 광복 후 서울신문으로 신문의 맥을 이어오면서 한국 근현대문화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신춘문예 효시가 된 소설 현상공모를 처음 도입했는가 하면 춘원 이광수의 ‘무정’, 정비석의 ‘자유부인’, 김주영의 ‘객주’ 등 연재소설들은 한국문학사의 자양분이 되었다. 또 한글판 서울신문 발간과 한글전용 단행, 최초의 시사종합 월간지인 ‘신천지’와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 등을 창간하며 한국 언론역사에 다양성을 부여했다.1904년 창간 이후 격동의 한 세기를 넘기며 대한매일신보, 매일신보, 서울신문이 우리 근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과 의미를 살펴본다. 매일신보는 광복과 함께 총독부 기관지란 굴레를 벗고 민족의 공기(公器) 서울신문으로 거듭태어나게 된다. 한국 전쟁 발발전까지 특히 눈에 띄는 행보는 ‘신천지’와 ‘주간서울’ 창간이다. 훗날 한국 잡지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로 남게 되는 신천지는 서울신문과 짝을 이루는 월간 종합시사지로 1946년 2월 창간됐다. 신천지는 창간이래 좌우익 논쟁과 정부수립을 전후한 혼란기에서 6·25 및 휴전 이후에 이르기까지 만 9년동안 통권 68호를 기록했다. 광복 후 6개월동안 100여종의 잡지가 쏟아져나왔으나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거나 기껏해야 5호를 넘기기 어려웠던 당시에 신천지는 ‘잡지 전장(戰場)의 유일한 생존자’로 불렸다. 신천지가 선택한 국판 크기는 뒷날 우리나라 월간지의 대표적 판형이 되며,200여쪽에 이르는 분량도 100쪽 안팎의 다른 잡지를 압도했다. 1948년 10월엔 국내 최초의 시사주간지 ‘주간 서울’을 창간했다. 빈약한 타블로이드 판형의 지면에 정치 기사 일변도였던 일간지들이 일반 독자의 수요를 고루 충족시켜주지 못하던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의 관심거리를 다루었던 주간서울은 창간 즉시 큰 인기를 모았다. 악화일로를 걷던 식량사정을 파헤친 ‘국민의 식생활은 안도되는가’, 반민특위 재판으로 서리를 맞은 육당과 춘원의 저서 회수 소동, 국내 음악계 동향과 각종 취미오락 등 각계 각층의 독자 취향을 염두에 두었다. 서울신문은 이후에도 연예주간지 시대를 연 ‘선데이서울’ 창간, 고급 지성지 ‘서울평론 창간’, 최초의 TV연예주간지 ‘TV가이드’, 계간 예술비평 전문지 ‘예술과 비평’ 등 대중과 고급을 아우르며 잡지 트렌드 메이커로서 역할을 해냈다. 잡지 발간과 함께 단행본 출판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광복과 전쟁의 혼란기 전단지 수준의 정치선전물이 주류를 이루었던 상황에서 서울신문 출판물은 단연 돋보였다. 신채호의 ‘단재저작집’과 ‘조선사’, 정인보의 ‘조선사연구’(상하)와 ‘오천년간 조선의 얼’, 홍기문의 ‘훈민정음 발달사’와 ‘조선문법연구’ 등이 대표적이며, 박은식의 역사서도 여러권 출판했다. 연재소설의 맥은 서울신문에서도 꾸준히 이어졌다.1940년대의 암울한 생활고를 그린 주요섭의 ‘대학교수와 모리배’, 무능한 지식인 남편과 자유분방한 아내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을 그린 최상덕의 ‘새벽’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54년 1월1일부터 8월6일까지 연재됐던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전무후무한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완고한 학자 남편과 가정에 권태를 느껴 뭇남성들과 다방, 댄스홀을 드나드는 여주인공의 대담한 행태는 장안의 화제로 번져갔고, 자유부인이란 단어는 곧 바람난 주부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회적 파장도 컸다. 특히 교수사회가 발끈했다.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는 대학신문에 ‘작가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우자 작가는 서울신문을 통해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고, 황 교수 또한 서울신문 기고를 통해 재반박했다. 서울신문은 논쟁의 당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황 교수의 재반박 기고를 실어 독자들과 문화계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홍순엽 변호사의 ‘자유부인 작가를 변호함’이란 글, 문학평론가 백철의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자유부인 논의와 관련하여’란 평론이 나오는 등 ‘자유부인’발 문화적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까지 연재한 김주영의 ‘객주’는 서울신문 최장기 연재소설로 ‘자유부인’이래 가장 많은 독자를 모았다. 이 소설은 신문소설사뿐 아니라 한국 문단에 있어서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후기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보부상을 비롯한 백정·기생·천민의 사랑과 애환이 장강처럼 굽이쳐 흐르는 소설이다. 문학 분야와 함께 서울신문이 특히 높은 비중을 두었던 게 한글문화 보급이었다.1956년 10월18일 나온 ‘한글판 서울신문’은 언론사 및 국어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기존의 서울신문과 병행, 석간으로 선보인 한글 전용 지면은 외솔 최현배를 중심으로 한 한글학계는 물론 독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한글신문 탄생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글판 신문을 별도로 발행했던 서울신문은 1968년 11월22일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국내 일간지로는 유일한 한글 전용이었다. 이후 1970년 1월1일 ‘온국민이 모든 분야에서 한글만 쓰도록 하라’는 대통령 담화가 발표되었고, 국한문 혼용체와 문어체를 고수하던 각 신문사도 한글 전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신문협회도 한글 전용을 위한 연구기구를 설치, 운영했다. 결과적으로 서울신문은 신문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한글문화 보급과 정착에 촉매 역할을 한 셈이 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5·31 이후] 시군구 230곳중 與19곳…민주보다 뒤져

    [5·31 이후] 시군구 230곳중 與19곳…민주보다 뒤져

    지방선거 최종 개표결과 한나라당은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25개 구청장까지 100% ‘싹쓸이’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지역구 서울시의원 96명도 완전 독식했고,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서울시의회 106석 가운데 102석이 한나라당 소속이다.96%의 기록적인 점유율인 셈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서울시장·구청장·지역구 시의회의원 선거에서 전패했다. 전국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열린우리당 소속은 19명으로, 민주당의 20명보다 더 뒤처졌다. 한나라당의 155명과 비교하면 8분의1 수준이다. ●연패행진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은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즉 7대 대도시에서 기초단체장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74대0’의 처참한 성적표다. 강원·경북의 기초단체장 후보는 모두 패했다. 그나마 경기 구리시장에 여당 박영순 후보가 당선돼 수도권 기초단체장에서 전멸할 뻔했던 수모를 간신히 면했다. 전국 230개 기초단체장에 아예 후보를 내지 못한 곳도 많았고,185명이 도전해 19명이 살아 남았으므로 생존율은 ‘1할’대다.‘전국 정당’을 표방했지만 선거 막판에 표를 달라고 읍소했던 전남·북, 광주에서도 역시 비참하게 졌다. 이 지역 기초단체장 41명 가운데 여당은 9명에 그쳤고, 민주당이 20곳에서 이겨 ‘호남의 맹주’ 자리도 민주당에 넘겼다. 전국적으로는 지역구 시·도의원 655명 가운데 열린우리당 소속이 33명밖에 안 됐다. 의석 비율로는 4% 정도다. ●비례 광역의원 한나라당 53.8% 사상 최고 한나라당은 16개 시·도지사 중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12곳을 석권했다. 승률 75%로 한 정당이 광역단체장 12곳에서 승리한 것은 역대 기록이다. 또 전체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155명을 배출, 지난 2002년 때 60.3%였던 점유율을 뛰어넘어 67.4%의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비례대표 광역의원 투표를 기준으로 한 정당 득표율은 한나라당이 전체 1876만 3078표 가운데 53.8%를 얻어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21.6%, 민주노동당 12.0%, 민주당 9.9%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한나라당은 특히 서울·경기·인천의 기초단체장 66명 가운데 61명을 배출하며 수도권을 사실상 ‘접수’했다. 무엇보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를 모두 이긴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단 한 표 차이로 당락결정 피말리는 접전을 치를 까닭에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락이 오가는 촌극도 빚어졌다. 경기 가평, 강원 화천, 전남 고흥에서 기초의원에 출마한 후보자 3명이 각각 상대 후보를 1표 차이로 이기고 당선됐다. 강원 태백에서 광역의원에 출마한 한나라당 김연식 후보는 열린우리당 손석암 후보를 2표 차이로 따돌리고 승기를 잡았다. 국민중심당 이기봉 충남 연기군수 당선자는 열린우리당 최준섭 후보를 10표 차이로 따돌렸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儒林(58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8)

    儒林(582)-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8)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8) 광혜군의 감성적인 책문은 다음과 같이 어지고 있다. “…왕안석(王安石:1021~1086 북송의 정치가로 정치개혁에 따른 신법을 제창하였던 뛰어난 개혁가)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탄식했다. 소식(蘇軾:1036~1101)은 도소주(屠蘇酒)를 나이순에 따라 젊은이들보다 나중에 마시게 된 서러움을 노래하였다. 이것들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것에 대한 그대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이 질문에 이명한(李明漢)은 그 유명한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습니다.’라는 답변으로 급제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과거시험은 현란한 미사여구를 대구형식으로 구사하면서 자신의 시적 능력을 표현하는 문학의 한 장르인 부(賦)나 마치 제갈량이 위나라를 정벌할 때 올린 출사표(出師表)처럼 임금에게 자신의 생각을 건의할 때 쓰인 글인 표(表)가 대부분 출제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표는 시사적인 일을 논하거나 간언할 때 남을 추천할 때, 특별한 공을 세웠을 때, 탄핵할 때도 쓰였으며, 그 이외에는 주로 책(策)이었던 것이다. 원래 책문은 한나라의 무제 때 지방수령의 추천으로 뽑힌 인재를 등용하려고 대책을 물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무제는 지방수령들에게 조서를 내려 품행이 반듯하고 덕행이 있으며 어질고 문장과 경전에 밝고 재능이 뛰어난 선비를 추천하라고 명령했다. 이들 가운데 동중서(董仲舒:기원전170~120)가 있었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춘추’의 의리(義理)를 주제로 대책을 올린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현량대책(賢良對策)’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책문은 임금이 직접 출제했든 임금을 대리한 관리가 집사가 되어 출제를 했든 출제의 주체자는 임금인 것이다. 따라서 대책의 최종 독자도 원칙적으로는 임금인 것이다. 그러나 율곡이 본 별시문과의 과거시험은 지금까지는 한번도 볼 수 없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매우 이례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거자들은 대부분 예상 시험문제들을 서너개 설정하고 그에 따른 모범답안지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과는 다른 난해한 철학문제가 출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험장 안이 당황한 유생들에 의해서 술렁거리고 심지어 몇몇 유생들은 붓조차 들지 못하고 일어서서 거장을 나가버려 퇴장하는 결과까지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율곡으로서는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왜냐하면 지난 봄 스승 퇴계를 만나고 강릉 외갓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줄곧 스승이 내려준 화두 거경궁리(居敬窮理), 즉 정신을 통일하여 추호의 흐트러짐 없이 경 속에 살며, 그리고 이(理)를 궁극하여 성리학에 전념함으로써 실제로 줄곧 ‘하늘의 길(天道)’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율곡은 한순간에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 [기고] 훈센총리 방한, 韓·캄보디아 관계발전 기대/신현석 駐캄보디아 대사

    지난날 현재의 태국, 말레이반도, 베트남 지역을 아우르는 동남아 대제국을 건설해 600여년간이나 번영했던 앙코르 왕국의 찬란한 영화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간직하고 있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통치기간(1975년 4월∼1978년 12월) 당시 인구의 약 4분의 1인 170여만명이 무참하게 희생됐다. 희생자들은 지식인과 부유층이 대부분이고,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비극이었다. 캄보디아의 평화는 지난 1991년 10여년의 내전을 벌인 각 정파들이 파리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찾아왔다. 당시 평화협상을 주도적으로 마무리하고 캄보디아의 사회주의를 의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과감히 변화시킨 훈센 총리가 20일부터 우리나라를 세번째로 공식 방문한다. ‘킬링필드의 나라’로 인식됐던, 아직도 1인당 연평균 GDP가 350달러에 불과한 캄보디아는 그러나 변화하고 있다. 연간 140만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고, 국제사회의 다양한 지원에 힘입어 사회·경제 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모범적인 최빈국’이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태국·베트남에 낀 지정학적 위치로 끊임없이 외침을 받은, 지난 4반세기 내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온 캄보디아가 이제 웅비의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훈센 총리는,1975년 크메르루주의 집권과 더불어 단절된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1997년 회복시키는 결단을 내렸으며 그 후 한국을 자국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아 양국관계를 급속도로 발전시켜 왔다. 우리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금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무상원조를 통해 캄보디아의 경제·사회 인프라 건설, 의료·보건부문 개선, 인적 자원 개발 등을 적극 도와왔다. 특히 현재 60여명의 KOICA 봉사단원이 캄보디아 전역에 파견돼 있다. 또 여러 NGO, 종교단체, 지자체 등이 캄보디아를 돕기 위한 다양한 협력활동과 교류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실로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년에 캄보디아를 방문한 우리 국민이 21만 7000명에 달해 2년 연속 이 나라를 가장 많이 방문한 외국 국민으로 기록됐다. 오는 12월에는 앙코르 와트가 위치한 시엠립에서 ‘2006 앙코르-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다. 내전이 끝난 1991년에 오랜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한 캄보디아 기업인은 당시 수도 프놈펜에 승용차가 10대 정도밖에 없었고 수돗물은 정수처리가 되지 않은 강물 그대로의 흙탕물이 나오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오늘 프놈펜 거리는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로 북적대고 있고 여기저기서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오늘날 캄보디아는 대외적으로 과거 공산권 일부 국가와의 양자외교 중시 정책을 탈피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등 지역기구와 세계무역기구(WTO)에도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로의 편입 노력을 가속하고 있다. 내부적으론 정부 개혁을 통해 경제·사회적 발전과 빈곤 감축을 적극 추진해 가고 있다. 캄보디아 국민은 과거 자기네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와 내전을 경험한 한국의 국가발전을 경이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과 선진 기술의 전수, 그리고 더 많은 한국기업의 투자와 양국간 교류 증대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훈센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국민의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짐과 동시에 양국관계 전반이 한 차원 더 높게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신현석 駐캄보디아 대사
  • [프로배구 V-리그] ‘코트의 제갈공명’ 신치용 상무잡고 통산 200승 위업

    ‘코트의 제갈공명’에서부터 ‘우승제조기’, 그리고 ‘독사’까지….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배구코트에선 바늘 끝 같은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지만 사석에선 고참들과 맥주잔으로 양주를 들이킬 만큼 다른 면도 보여준다. 그래서 ‘야누스’란 별명도 보태졌다. 올해 51세의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 그가 처음 남자배구팀 사령탑에 오른 건 지난 1995년이다. 한국전력 코치생활을 하다 삼성화재가 창단되면서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올해로 11년째다.97년 정식으로 리그에 참가한 뒤부터 그는 꼬박꼬박 우승을 거르지 않고 삼성의 겨울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그런 그가 2일 프로배구 V-리그 상무와의 경기에서 자신과 팀의 통산 200승 고지에 올랐다. 실업시절인 지난 2001년 후반부터 프로 원년 직전인 2004년까지 77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까지 만들어낸 반면 남자코트를 망쳐놓은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라이벌 김호철(현대캐피탈) 감독과 함께 한국 남자배구를 떠받치는 기둥 가운데 하나다. 창단 멤버로 11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김세진을 비롯한 선수들도 이날 상무를 가볍게 3-0으로 제압하고 200승을 자축했다. 특히 2세트 스코어 25-8은 프로 통산 최다점수차. 신 감독과 김세진은 경기를 마친 뒤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라고 덕담도 나눴다. 앞선 여자부경기에서는 풀세트 혼전 끝에 KT&G가 현대건설을 3-2로 꺾고 선두 추격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