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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건 감사원장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양건 감사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가 9일 국회 인사청문특위에서 채택됐다. 보고서에서 한나라당은 양 후보자가 헌법학자 출신으로 소수 입장을 대변했고 감사원장 임기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점 등을 명시하며 감사원장으로서 결격 사유가 없고 청문회를 통해 자질이 검증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은 ▲부동산 투기 의혹 ▲국민권익위원장 중도사퇴 문제 ▲감사원 독립 수호의지 부족 ▲집회시위의 자유와 헌법의식 결여 등에 대한 부적절성 등으로 감사원장으로서 직무수행에 부적합하다고 명시했다. 이틀간 열린 청문회에서 양 후보자는 집회시위 관련, “집회 시위는 경찰서장이 판단한다.”, “실질적 허가제 운영”, “집회시위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질서유지에 위험성이 있는 것이고, 이제는 필요성이 상당히 많이 감소했다.”고 말해 위헌 논란이 벌어졌다. 민주당 청문위원 간사인 노영민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전문성과 소신이 부족하고 전무후무한 다운계약서 작성도 문제지만 헌법에 나오는 집회시위 자유를 부인하는 등 위험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감사원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은 집회시위 발언 관련, “스스로 헌법학자의 소신을 밝힌 것으로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소수의견을 냈다고 해서 모두 위헌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옹호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문화마당] 소극장의 재발견/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소극장의 재발견/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1991년 가을 즈음으로 기억한다.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열린 김광석 콘서트에 100여명의 관객이 모였다. 짧은 휴가를 받아 군복을 입고 무작정 달려간 그날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이 공연은 뮤지션 김광석이 죽어서도 기록으로 남는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김광석 1000회 공연 중 한 회를 보게 된 셈이다. 이제 와서 생각이지만, 그때 김광석의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 그렇게 수없이 다행스럽다고 되뇌는 까닭은 그 작은 무대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의 경이로움 때문이었다. 요즘의 공연 메커니즘에 비할 바 없는 남루한 무대지만 시간이 지나서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때 그 순간의 감흥은 아직도 가슴속에 첩첩이 포장되어 있다. 김광석의 무대는 때로 서러움과 한스러움이 교차한다. 분노와 슬픔이 서걱거리는가 하면 신명나고 장난기 가득한 소리의 유희가 꿈틀거렸다. 김광석의 작은 체구에서 그러한 힘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관객은 탄성을 짓누르기 바빴다. 억눌린 한숨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기타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묶어 둘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후로 이 같은 무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면서 그를 추억했다. 2시간이 10분 같았다는 몰입의 무대는 이후 뮤지션 이적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적군의 방’으로 시작된 이적의 소극장 공연은 2007년이 되어서야 입소문을 타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나무로 만든 노래’로 1만 2000관객이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소극장으로 몰렸다. 체조경기장이 아니라 4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만들어 낸 유료관객의 수였다. 우리 공연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경이로운 수치다. 특정 화제성이 있어서 관객이 몰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몰려서 화제가 된 소극장 공연이었다. 그만큼 이적의 공연 콘텐츠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소극장 공연은 음악적 내공과 가창의 흡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관객과 무대의 간극이 좁아서 숨소리 하나 빠져나갈 틈이 없다. 농밀한 음악적 완성도와 깊이 없이는 관객을 몰입시키기 힘들고 결국 만족도 이끌기 힘들다. 소극장은 가수에게 무덤이 될 수도 있는 공간이다. 자칫하다간 밑바닥을 드러내고 난조의 끝을 보여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극장 공연을 10회 이상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뮤지션 또한 손에 꼽힐 정도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뮤지션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거친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일체감은 또 다른 묘미다. 큰 극장에서 맞닥뜨리는 전율의 밀도나 크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제한된 인원 덕분에 초대권이 발행되지 않고 표를 구매한 ‘진성 관객’들로 채워져 공연장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소극장 공연은 흥분과 몰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물아일체의 묘미를 선사한다. 쇼보다 음악이 중심이 되는 콘서트를 바라는 팬들은 능력 있는 뮤지션에게 ‘소극장 공연 성공’을 관철시키는 힘을 보여 주었다. 음악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중을 기만하는 기회주의적 마케팅으로 껍데기에 치중한 오늘의 가요 풍토 속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개척하는 뮤지션들의 ‘힘’은 아직 가요계를 튼튼하게 지탱해 주는 근본이다. 보여 주는 음악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오늘, 가슴을 파고드는 뮤지션의 힘과 무대가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음악이 보여 주는 진정성 때문이다. 악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을 가슴 벅차게 연주하는 뮤지션이 우리 앞에 있고, 이를 찾아 나서는 관객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 우리 가요계는 심장이 멈추지 않고 살아 뛰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작은 무대에서 포효하는 가수의 소리를 통해 커다란 감동을 얻어낼 때 우리는 평생 동안 각인될 만한 추억을 맞이하게 된다. 수십만원에 이르는 티켓값을 지불하고서도 얻지 못하는 무대를 만나는 일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 이대호의 日진출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이대호의 日진출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가 올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 이대호(롯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스포츠호치는 15일 인터넷판에서 ‘한신이 올 시즌 종료 후 한류스타 획득을 노린다’고 보도하며 두번(2006,2010)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이대호를 영입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겠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한신은 여러차례 한국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보인 구단이다. 그동안 한신에서 관심을 표명한 선수들만 해도 김동주(두산)이택근(LG) 등이 있었지만 이내 관심은 시들어버렸다. 이때문인지 한신에 대한 국내 팬들의 인식이 좋지 못했던것도 사실. 하지만 이번 한신의 한국선수 영입의지는 이전과는 다를듯 보인다. 이미 오릭스 버팔로스가 한국의 투타영웅인 박찬호와 이승엽을 영입해 야구판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신의 한국선수 영입의지는 같은 오사카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오릭스의 영향이 크다고 볼수 있다. 오릭스의 인기는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한신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올해 오릭스가 ‘신 황금시대’를 모토로 1960-1970년대의 황금기를 재현하겠다는 것은 성적 뿐만 아니라 인기도 되찾겠다는 의미다. 한신이 이대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팀 전력 극대화와 인기몰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 맷 머튼의 미국 복귀와 노쇠화된 공격력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한시즌 최다안타(214개) 신기록을 작성한 머튼은 한신과 2년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2년계약 마지막 해가 되는 머튼이 시즌 후 일본에 잔류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젊음(1981년생)을 무기로 다시한번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머튼의 공백을 이대호를 통해 메우겠다는게 한신의 계산이다. 외야수인 머튼 그리고 내야수인 이대호는 포지션 공백을 메울 대체자가 아닌 공격력의 극대화를 꿰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지난해 한신은 무시무시한 공격력으로 리그를 초토화 시켰다. 3할 타자만 5명(아라이,토리타니,죠지마,히라노,머튼)에 팀 타율은 무려 .290으로 양리그 통틀어 최고수준을 자랑했다. 하지만 주전선수들의 나이가 많다는게 흠이다. 이젠 은퇴를 생각할 나이(44살)인 가네모토 토모아키, 30대중반에 접어든 아라이 타카히로와 죠지마 겐지, 그리고 지난해 드닷없이 타율 2위(.350)에 오른 히라노 케이치는 원래 타격보다는 수비에 강점이 많은 선수였다. 한신은 투수도 마찬가지지만 타선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이제 전성기를 내달릴 나이대인 이대호(1982년생)라면 한신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길만 한다. 특히 국내 제일의 팬층을 보유한 롯데 소속의 이대호이기에 그가 일본진출시 얻게 되는 팬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자명하다. 마케팅에 따른 홍보효과, 그리고 재일교포가 많이 사는 오사카의 한신이라면 이대호만한 적임자가 없다. ◆ 큰물에서 뛰어보고 싶은건 당연한 일, 하지만… 아직은 섣부른 예상이지만 올 시즌 후 이대호의 거취문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전무후무한 타격부문 7관왕을 차지했던 이대호에게 고작 7천만원을 아끼려고 발버둥쳤던 구단이 롯데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손에 쥐게 되는 보답이 적다면 머물 이유가 없다. 또한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인 김태균(지바 롯데)의 일본진출도 자극제다. 자신을 원하는 구단이 있다면 부와 명예가 뒤따르는 일본진출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이대호의 일본진출, 더 나아가 한신 이적은 투명할 정도로 낙관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명타자제가 없는 센트럴리그의 특성상 포지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한신의 1루수는 지난해 리그 홈런2위(타율 .296 홈런47개, 117타점)에 오른 강타자 크레이크 브라젤이 버티고 있다. 올 시즌 후 그의 성적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미 일본야구에 완전히 녹아든 브라젤이다. 상위리그의 일본, 그것도 이미 검증이 끝난 슬러거가 있는데 한신에서 굳이 이대호를 영입할지가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만약 올 시즌 후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한다면 지명타자제가 있는 퍼시픽리그쪽이 더 낫다. 현재로써는 한신의 이대호 영입의지가 진실일지 공염불일지를 판단해야 할 때가 아니다. 아직 2011 시즌은 시작도 안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전설의 쿼터백 브렛 파브 “진짜 떠납니다”

    전설의 쿼터백 브렛 파브 “진짜 떠납니다”

    쟁쟁한 스타들이 차고 넘치는 미국 프로풋볼(NFL)에서도 쿼터백 브렛 파브(41)는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다. 역대 최고 타이틀을 네개나 갖고 있는 건 그뿐이다. 3차례 최우수선수(MVP, 1995·1996·1997년), 터치다운 패스 통산 508회, 전진 패스 7만 1838야드, 패스 성공 6300회의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그런 그가 18일 NFL 사무국에 은퇴 서류를 제출했다. 기자회견 없는 쓸쓸한 퇴장이었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은퇴 선언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5년간 파브는 시즌이 끝날 때마다 은퇴하겠다고 했다. 2008년 3월엔 기자회견에서 눈물의 작별을 고하기도 했다. 1991년 데뷔 이후 그는 찬란한 성적과는 대조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현재 그는 팔꿈치·발·턱·목·등·갈비뼈·종아리·어깨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지난해 12월 20일 시카고 베어스전에선 뇌진탕까지 당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 그는 20년간 정규 리그 297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일궜지만 자신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경기장 밖에서도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2003년 12월엔 미식축구 코치였던 아버지 어빈 파브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다음 해엔 아내 디애나 파브가 유방암에 걸렸다. 2005년 8월엔 태풍 카트리나로 미시시피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07년엔 친아버지처럼 따르던 아내의 양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이런 역경을 겪고 2007년 파브가 그린베이 패커스를 내셔널풋볼콘퍼런스(NFC) 챔피언십까지 올려놓았을 때, 사람들은 영웅의 부활을 기꺼이 응원했었다. 그러나 재기의 기쁨은 순간이었다. 그는 예전 같지 않았다. 2009년 미네소타 바이킹스로 옮겨 터치다운 33개를 기록하는 등 선전했지만 지난 시즌에서는 영 신통치 않았다. 총 13경기를 뛰면서 터치다운 11개, 패스 가로채기 19개 성공에 그쳤다. 파브는 가장 성적이 저조한 쿼터백 3명 가운데 한명으로 꼽혔다. 불행은 동시에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그는 성추문 의혹에까지 휩싸였다. 그가 뉴욕 제츠에서 뛰던 2008년, 모델 출신의 구단 여직원에게 전화로 부적절한 메시지를 남기고 음란한 사진을 건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NFL은 그에게 벌금 5만 달러(약 5600만원)를 내라고 했다. “이제 시간이 된 걸 안다. 후회는 없다.” 파브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의 홈페이지에서는 그의 전성기 추억을 기념하는 포스터를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은 그가 세운 ‘파브희망재단’에 기부돼 장애인 어린이와 유방암 환자들을 위해 쓰이게 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새만금 보상 20년만에 ‘끝’

    새만금사업 착공과 함께 1991년 시작된 보상업무가 20년 만에 마무리됐다. 전북도는 1991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위임받은 새만금 보상업무를 매듭짓고 관련 서류를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으로 모두 이관했다고 6일 밝혔다. 새만금사업 관련 보상은 총 1만 4260건, 4696억원 규모다. 보상 건수나 금액 모두 단일 사업으로는 국내 행정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 가운데 96건(54억원)은 채권압류나 사망, 행방불명 등으로 미지급됐으며, 이는 앞으로 새만금사업단에서 처리한다. 또 보상을 위해 그동안 280명의 공무원이 이 업무만을 전담했으며 관련 문서와 자료만 해도 2273권, 부속서류도 500권에 이른다. 권당 500쪽 기준으로 할 때 135m가량으로 서울 남산N타워(탑신 135m)와 맞먹는다. 앞으로 지급되지 않은 보상과 관련한 업무나 소송 등은 새만금사업단(063-540-5912)으로 하면 된다. 김광휘 도 새만금환경녹지국장은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내주신 도민의 협조 덕분에 보상업무가 원활히 추진됐고 사업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지지율 87% 룰라 ‘아름다운 퇴장’

    지지율 87% 룰라 ‘아름다운 퇴장’

    “이제 정부를 떠나 ‘거리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늘 국민의 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8년간의 임기를, 지지율 87%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마무리하게 될 루이스 이나시루 룰라 다 시우바(오른쪽) 브라질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23일(현지시간) TV와 라디오로 방송된 룰라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연설은 과거와는 조금 달랐다. 다음 달 1일 새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나는 룰라 대통령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지난 8년을 회상하며 ‘레임덕’이 없었던 대통령답게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민 전체를 위한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지난해 같은 시기 83%보다 높은 87%의 지지율을 기록한 그에게도 어려운 시기는 있었다. 취임 당시에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열악한 치안 문제 등 산적한 과제가 그를 기다렸다. 가장 큰 위기는 재선 도전을 앞두고 측근들의 비리·부패 스캔들이 줄줄이 터지면서 찾아왔다. 하지만 10살이 돼서야 겨우 책 읽는 법을 배웠고, 4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를 시작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힘든 시기를 이기는 데 버팀목이 됐다. 그는 “빈곤층 출신이라는 사실이 숱한 도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서 “꿈과 희망은 서민의 영혼과 가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왔다.”고 돌아봤다. 높은 인기속에 물러나는 그의 향후 거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듯 그는 “내 ‘미래’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달라.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미 내게 근사한 ‘현재’를 줬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뒤 “대신 브라질의 미래를 보고, 그것을 믿어 달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된 연설은 지난 20일 녹화된 것으로, 같은 날 현지 레데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재출마 여부에 대해 “나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타고난 정치인이다.”라며 가능성을 열어둔 바 있다. 연설에서 그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휘장은 첫 노동자 출신 대통령에서 첫 여성 대통령에게 넘겨질 것”이라면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서울 G20회의-비즈니스 서밋] 양극화 지적땐 분위기 숙연… ‘갤럭시탭’ 신기한듯 시연도

    [서울 G20회의-비즈니스 서밋] 양극화 지적땐 분위기 숙연… ‘갤럭시탭’ 신기한듯 시연도

    전 세계 34개국 120여명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은 서울에서 열린 G20 비즈니스 서밋 총회에 참석, 열띤 토론 분위기 속에서도 우의를 다졌다. 무역투자와 금융, 녹색성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다소 어렵고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글로벌 경제의 발전을 위해 때로는 웃고 때로는 신경전을 펼치며 힘 있는 토론을 벌였다. 서울신문은 비즈니스 조직위의 허가를 받아 서밋 총회장에 들어가 글로벌 CEO들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봤다. ●세계 경제의 미래 함께 고민 11일 오전 10시 30분. 비즈니스 서밋 총회인 ‘라운드테이블’이 열린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은 세계를 움직이는 CEO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만큼 공항 검색대를 방불케 할 정도의 경비 태세를 갖췄다. 방문객은 금속탐지기를 무사히 지나도 노트북과 가방 등 소지품을 엑스레이 투시기에 통과시켜야만 행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족 혹은 친구들과 함께 호텔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접근금지선 밖에 서서 이 광경을 신기한 듯 지켜봤다. 오전 10시 40분. 호텔 3층에 자리 잡은 코스모스홀. 비즈니스 서밋의 4개 분과 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분야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오전 11시부터 압둘라 귈 터키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돼 있어 미리 자리를 잡은 터키 취재진이 뜨거운 취재 경쟁을 펼쳤다. CEO들은 첫 번째 세션을 마치고 20분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냉엄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명운을 건 ‘판매 전쟁’을 치러야 하지만, 이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러 나온 만큼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은 터키 원전건설과 관련한 한국·터키 정부 간 협약을 앞두고 있어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었지만, 틈틈이 옆자리에 앉은 영국의 세계적 자원개발회사인 ‘앵글로아메리칸 PLC’의 스타 CEO 신시아 캐럴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CEO들이 앉은 자리에는 탄산수와 해양심층수 한 병과 삼성전자의 태블릿PC인 갤럭시탭이 놓여 있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신기한 듯 갤럭시탭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곧바로 화면에 그의 얼굴이 캐리커처 형태로 나타났다. 그가 갤럭시탭의 카메라 기능을 활성화시킨 뒤 가로, 세로로 돌려 가며 사진을 찍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우라 아키오 신일본제철 회장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어린아이처럼 따라하며 즐거워했다. ●신동빈 부회장 ‘시험 치른 듯’ 절레절레 오전 11시 정각에 두 번째 세션이 시작됐다. 귈 터키 대통령이 입장하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곧바로 조용해졌다. 국내외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 선 귈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 경제가 기존의 위기를 극복하고 또 다른 위기에 잘 견디는 체제를 갖추려면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계 경제의 양극화를 지적하며 “자본은 글로벌화했지만 부(富)는 글로벌화하지 않았다.”고 밝히자 한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시아 최대 제약사인 일본 다케다 제약의 하세가와 야스치카 회장도 태블릿PC로 자료를 검색하며 귈 대통령과의 토론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이들 모두 비즈니스 서밋의 핵심 논의내용을 담은 ‘워킹그룹 보고서’가 G20 정상들에게도 보고된다는 사실에 큰 책임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토론 자리에선 한 사람당 발언 시간이 2분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넘겨가며 활발한 토론을 펼쳤다. 한 시간의 회의를 마치고 오찬장인 워커힐 극장으로 향하는 CEO들의 얼굴에서는 다소 지치긴 했지만 뭔가 보람이 느껴졌다. 토론을 마치고 나온 신 부회장에게 회의 내용을 묻자 마치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학생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구체적인 토론 내용은 컨비너(분과별 의장)가 잘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며 오찬장으로 향했다. 금융분과 라운드테이블을 마치고 나오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열띤 토론에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 김 회장은 “기업의 녹색성장 시장 개척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면서 “앞으로도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승연 회장 “좋은 성과 기대” 오찬을 마친 CEO들은 곧바로 단체사진을 찍으며 토론 열기를 식혔다. 12개 워킹그룹별로 줄지어 연단에 올라간 CEO들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단상 앞을 가득 메운 취재진 앞에 섰다. 카메라 앞에 선 CEO들은 마치 동창 모임에 참석한 듯 한결같이 밝고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었다. 120여명이나 되는 세계적 기업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 촬영을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게 조직위의 설명이다. 한 CEO는 사진촬영이 끝나고 퇴장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모델들이 아니겠느냐.”며 웃음을 지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불명예 퇴진 라응찬 누구

    불명예 퇴진 라응찬 누구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50년 뱅커로 20년 CEO로 ‘금융계의 거목’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난해부터 불거진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올해 신상훈 지주 사장 고소로 촉발된 ‘신한 사태’로 인해 결국 마지막은 명예롭지 못했다. 라 회장은 은행장 3연임, 지주사 회장 4연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당시 상무로 영입돼 1991년 신한은행장이 된 뒤 3연임을 했다. 임기를 1년 앞둔 1999년 2월 ‘후배들에게 경영을 맡기겠다.’면서 행장직에서 용퇴한 뒤 2001년 신한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초대 회장직에 올랐다. 이후 올 2월 4연임에 성공하면서 20년간 CEO직에서 신한호(號)를 진두지휘했다. 그동안의 성과는 눈부셨다. 자본금 250억원, 점포 수 3개의 ‘꼬마은행’으로 출발한 신한은행을 잇달아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면서 금융지주사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키워 냈다. 1997년 동화은행, 2002년 제주은행·굿모닝증권, 2003년 조흥은행, 2007년에는 LG카드를 품에 안으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라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을 건넸는데, 이 돈이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올 2월부터 신 사장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금융권 안팎에서 “신 사장이 정치권에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관련 정보를 넘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지난 9월 2일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신 사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신한 사태’가 촉발됐다. 라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계속되고 4일 금융감독원에서 직무 정지 상당의 중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라 회장은 지난달 30일 자진 사퇴를 공식 표명했다. 라 회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각자무치(角者無齒)’.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세계적 피아니스트 中 랑랑-윤디 ‘시간차’ 서울 배틀

    세계적 피아니스트 中 랑랑-윤디 ‘시간차’ 서울 배틀

    ‘윤디-랑랑 대첩’. 요즘 음악 관계자들이 모였다 하면 화제에 올리는 얘기다. 중국을 대표하는 젊은 피아니스트인 두 사람은 세계적 명성만큼이나 얘깃거리가 풍성하다. 1982년생 동갑내기인 탓에 평생 비교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장 과정과 음악적 색채가 전혀 달라 범인(凡人)들의 관심을 더 자극한다. 그 두 사람이 서울에서 ‘시간차’ 공연을 갖는다. 윤디는 새달 1일, 랑랑은 12월 4일 각각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다. 먼저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 윤디는 콩쿠르를 통해 차곡차곡 이름을 알린 경우다. 1995년 스트라빈스키 국제 유스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1999년 프란츠 리스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것은 2000년 쇼팽 피아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5년에 한 번 열리는 쇼팽 콩쿠르는 1990년, 1995년 연거퍼 우승자를 내지 못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그것도 역대 최연소(당시 18세) 우승을 거머쥔 윤디에게 화려한 조명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동갑내기… 닮은듯 다른 ‘바링허우 세대’ 반면 랑랑은 깜짝 놀랄 만한 실력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을 휘어잡은 천재형이다. 1995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영재 콩쿠르 우승 이력도 있지만, 굳이 성인 콩쿠르에 참여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일찌감치 이름을 떨친 상태였다. ‘중국의 모차르트’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어려서부터 천부적 소질로 주목받았다. 중국 정부의 밀어주기도 한몫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당시 26살의 그가 피아노를 연주한 것만 봐도 국가 차원의 지원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연주 스타일도 대척점에 있다. 침착하고 감미로운 소리로 단아한 피아니즘을 보여 주는 윤디와 달리 랑랑은 과격하고 초인에 가까운 기교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때문에 랑랑의 연주는 호불호(好不好)가 갈린다. “내면적 깊이가 결여됐다.”는 비판과 “전무후무한 최고 연주자”란 극찬이 늘 함께 따라다닌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성장한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 세대인 윤디와 랑랑은 중국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싸구려 이미지가 강한 ‘메이드 인 차이나’에 고급 이미지를 입힐 수 있는 클래식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하드 파워(인구·군사력 등)는 있지만 소프트 파워(문화력)가 약하다는 공격 앞에서 윤디와 랑랑만큼이나 좋은 반격 무기는 없는 것이다. 숙명의 라이벌 최대 수혜주는 중국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두 사람의 경쟁 구도는 종종 재미있는 뒷얘기를 낳기도 한다. 음반사 이적에 얽힌 일화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까지 세계적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 소속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윤디가 또 다른 세계적 음반사 EMI로 옮겼다. 이적하면서 이름도 윤디 리(李)에서 성을 빼고 윤디로 바꿨다. 이적 배경을 두고 랑랑과의 불화설이 파다했다. ●‘숙명의 라이벌’ 최대 수혜주는 中? 유명한 클래식 평론가인 노먼 브레히트는 지난해 한 칼럼에서 “윤디에 대한 랑랑의 적의가 (윤디로 하여금) 음반사를 떠나게 만들었다.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랑랑의 야망이 다른 피아니스트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랑랑은 언론 인터뷰를 자처하며 즉각 부인했지만 호사가들은 “그럴 줄 알았다.”, “DG가 랑랑을 붙잡기 위해 윤디를 내쳤다.” 등 확인 안 된 얘기를 쏟아냈다. 국적에 나이까지 같은데도 세계 무대에서 교류하는 모습이 단 한번도 포착되지 않은 점도 불화설에 불을 지폈다. 이를 의식했음인지 랑랑은 얼마 뒤 300만 달러(약 34억원)에 소니와 계약해 DG를 떠났다. 윤디는 내한공연에서 쇼팽의 녹턴과 폴로네이즈, 마주르카 등을 연주한다.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 공연이다. 윤디는 음반과 공연이 상당히 다를 때가 많은 만큼 최근 나온 쇼팽 녹턴 전집과 실제 공연의 차이를 느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4만∼10만원. 1577-5266. 랑랑은 새 앨범 ‘라이브 인 비엔나’ 발매를 기념해 한국을 찾는다. 이 앨범은 지난 2월 말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린 공연실황을 CD 2장에 담은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3번과 제23번 열정, 알베니즈의 이베리아 1권,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제7번을 연주한다. 5만∼15만원. (02)541-6236.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사설] 北 3대세습 김 정남의 비판·민노당의 침묵

    북한이 시대착오적 3대세습을 착착 강행하면서 해묵은 남남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최근 “3대세습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노당의 판단”이라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세습체제의 내부고발자 격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조문에 대한 진보적 야권의 소극적 자세와 맞물려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우리는 북의 세습에 침묵을 지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민족 구성원 전체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는 차원에서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세습은 근·현대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인민공화국’임을 내세우고 있는 북한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이만저만한 자가당착이 아니다. 문명사회의 보편적 기준에선 누가 봐도 봉건·독재적 발상이다.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중세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지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죽했으면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조차 “개인적으로 3대세습에 반대한다.”고 했겠나. 우리는 ‘김씨 왕조’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북 내부에서 엄청난 출혈이 있었음을 주목한다.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로당계열 제거를 신호탄으로 연안파·소련파 숙청에 이어 종국에는 자신의 직계인 빨치산파 대부분을 밀어내면서 김정일의 후계가도를 다졌다. 이른바 곁가지라며 이복동생들을 권좌에서 내쫓은 김정일 또한 장남을 해외로 떠돌게 하면서까지 김정은 승계 길을 닦았다. 그러나 내부 비판자가 ‘박멸’되면서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주민 수백만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이 그 생생한 징표다. 사리가 이럴진대 북의 세습놀음에 마냥 입을 다문다면 맹목적 종북노선이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게다. 민노당 일각에서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고 있으나, 가당찮은 얘기다. 과거 미국은 구 소련의 인권문제를 끊임없이 비판했지만 대화는 계속됐고, 마침내 소련의 개혁·개방을 유도하지 않았는가. 평균적 사회구성원의 인권과 복지의 개선을 추구하는 진보인사들에게 강제수용소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거나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는 북 주민들의 고난이 눈에 밟히지 않는다면 괴이한 일이다. 참진보를 표방한다면 세습체제의 폭정을 비호하지 말고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 고려불화 700년만의 ‘귀향’

    고려불화 700년만의 ‘귀향’

    섬세하고 단아한 형태,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 유려하면서도 힘있는 선묘 등으로 독보적인 미를 창조한 고려불화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미술의 하나로 손꼽힌다. 고려청자와 더불어 고려인의 탁월한 미적 수준을 보여주는 명품 예술이지만 고려청자에 비해 덜 알려져있는 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헌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고려불화의 실물이 일반에 공개된 건 겨우 30년에 불과하다. 1978년 일본이 자국에 있던 50여점의 고려불화를 선보인 특별전이 고려불화의 가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전시였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160여점으로 이중 130여점은 일본에, 나머지는 국내와 미국·유럽 등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내외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고려불화 가운데 61점을 한자리에 모아 12일부터 ‘고려불화대전-700년만의 해후’를 연다. 지금까지 고려불화를 주제로 한 전시 가운데 최대 규모일 뿐더러 출품작 상당수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란 점에서 “전무후무한 고려불화전”이라고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말했다. 이중 일본 센소지(淺草寺)소장 ‘수월관음도’는 일본 현지에서조차 한번도 전시되지 않았던 귀중한 작품이다. 국사 교과서에 고려 문화를 대표하는 불화로 소개된 그림으로, 은은한 녹색의 물방울 모양 광배 안에 관음보살이 서 있는 형상 때문에 일명 ‘물방울 관음’으로 불린다. 개막에 앞서 11일 언론에 사전 공개된 그림속 관음보살의 우수에 찬 얼굴과 슬픈 눈매에선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그림 오른쪽에는 ‘해동 승려 혜허(慧虛)가 그렸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단잔지자(談山神社)소장의 ‘수월관음도’역시 화려한 금니(泥·금가루를 개어서 만든 물감)의 섬세함과 고운 색채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려불화는 워낙 작품이 귀해 한곳에서 여러 점을 소장한 경우가 드물다. 이번 전시의 작품 소장처는 44곳에 이른다. 작품 대여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일본은 수년 전 발생한 고려불화 도난 사건과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에 있는 문화재의 환수를 요구하는 한국 분위기 때문에 대여를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작업을 벌였다. 센소지의 ‘수월관음도’는 최광식 관장이 직접 나서서 대여를 성사시켰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중재와 지원도 도움이 됐다. 2년 동안 특별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민병찬 전시팀장은 “일부 사찰은 의외로 ‘그림도 한번쯤은 자기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겠나’라면서 대여를 흔쾌히 허락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11월21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고려불화 61점을 비롯해 동시대 중국·일본 불화 20점,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 전기 불화 5점이 함께 소개된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국보 218호 ‘아미타삼존도’와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이 소장한 13세기 중국 서한시대의 ‘아미타삼존내영도’는 구도는 비슷하지만 색채와 표현 양식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불화 외에 고려불상과 공예품 22점 등이 전시된다. 관람료는 연령에 따라 1000~3000원이며,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미타삼존도’ 등 몇몇 작품은 일부 기간에만 전시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갈라파고스 섬의 선군주의/구본영 수석논설위원

    갈라파고스제도는 남미대륙에서 1000㎞ 떨어진 적도 근방 태평양의 섬들을 가리킨다. 에콰도르령(領)으로 생물학자 찰스 다윈 때문에 유명해졌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돼 독자적 진화를 해온 이곳 생물들이 진화론의 모태가 되면서다. 우리의 반쪽 북한도 외부 세계와 담을 쌓으며 60여년 폐쇄사회를 지켜 왔다. 그래서 북한 사회는 ‘현대판 갈라파고스 섬’에 비견된다. 사회를 생물유기체에, 개인을 그 기관(器官)에 견주는 사회유기체론을 원용했을 때다. 물론 북한이란 생태계를 지켜내기 위해 독특한 기제(機制)가 필요했을 법하다. 남태평양의 19개 화산섬 생물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해 왔듯이 말이다. ‘주체사상’이나 ‘(수령의) 유일 영도체계’ 따위가 그런 메커니즘들이다. 시장경제 체제는 차치하고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유례없는 괴이한 기제들이다. 그저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남인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을 공식화했다. 20대 후반의 ‘어린 왕자’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한 게 신호탄이다. 근·현대사에서 전무후무할 3대째 권력세습으로 ‘독자적 진화’를 하겠다고 선포한 꼴이다. 그러나 그 결말을 ‘해피 엔딩’으로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바다이구아나와 코끼리거북, 날개가 퇴화한 코바네우…. 이들 갈라파고스의 독특한 생물들 모두가 외부와의 단절의 대가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북한 스스로도 3대 세습의 전도가 장밋빛일 수만은 없음을 인식하는 듯하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을 후견인으로 배치한 데서도 짐작되는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김 위원장은 그제 당 대표자회에서 자신이 위원장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에 아들을 앉혔다. 생전에 아들이 군권을 틀어쥐도록 돕겠다는 심산일 게다. 이른바 ‘선군(先軍)주의’로 2012년 ‘강성대국’을 만들겠다는 그간의 공언대로다. 그러나 선군주의가 북한을 지켜줄지에 대해선 회의적 전망이 우세하다.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할 순 있어도, 총칼로 영원히 권좌를 지킬 수 없음은 동서고금의 철칙이 아닌가. 3대 세습 왕조도 여명기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석양 무렵일지도 모른다. 개혁·개방으로 주민의 인권과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함을전제했을 때다. 김 위원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트레이드마크였던 키높이 구두를 벗고 프랑스제 스니커스를 신기 시작했단다. 그 연장선상에서 김 부자가 주민들을 외부 세계와 차단하는 시스템을 포기하기만을 빌 뿐이다. 구본영 수석논설위원 kby7@seoul.co.kr
  • 넉넉한 한가위 스포츠도 풍성

    한가위 연휴지만 스포츠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따끈따끈한 이벤트가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추석 때 볼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축구 수원·성남·포항·전북엔 ‘운명의 한가위’이다. 22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이 벌어진다. 1차전 대승(4-1)을 챙긴 성남은 짐짓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나머지 세 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원은 홈구장 빅버드에서 성남에 반격을 노리고, 포항 역시 조바한(이란)에게 당했던 패배(1-2)를 홈에서 설욕할 각오다. 사우디 원정을 떠난 전북은 열정적인 알 샤밥 팬들 앞에서 1차전 패배(0-2)를 뒤집어야 한다. ●프로야구 정규리그가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라이벌전’이 예정돼 있다. SK와 두산이 21~22일 잠실구장에서 만난다. 두 팀은 2007~08년 한국시리즈에서 연속으로 붙었던 라이벌. 올해 상대 전적도 SK가 9승8패로 팽팽하다. SK는 두산과 2연전을 마친 뒤 23일 LG를 상대로 승수 쌓기에 나선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는 정규리그 1위를 향한 마지막 순위 싸움이 관심사다. ●프로농구 정규리그 개막(10월15일)을 앞두고 농구 갈증을 풀 기회가 왔다. 2006년부터 시작돼 올해 다섯 번째 치러지는 한·일 챔피언전이 그 무대. 지난 시즌 KBL 우승팀 모비스와 일본 bj리그 우승팀 하마마쓰 피닉스가 붙는다. 23일 1차전은 일본 도요하시에서, 25일 2차전은 하마마쓰에서 열린다. 함지훈-김효범-브라이언 던스톤 등 우승 주역들이 대거 빠진 모비스가 한국 농구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씨름 추석에 씨름이 빠지면 섭섭하다. 20일부터 나흘간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추석장사대회가 펼쳐진다. 이태현(34·구미시청)이 23일 백두급(무제한급) 경기에서 통산 20승에 도전한다. 6월 문경대회에서 19번째 백두장사 꽃가마에 올랐던 이태현은 이미 이만기(KBS 해설위원)가 갖고 있던 최다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역도 터키 안탈리아에서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남녀 국가대표 12명이 총출동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역시 장미란(27·고양시청)의 5연패 여부. 장미란은 25일 밤 여자 최중량급(+75㎏) 경기에서 여자 역도사에 전무후무한 대회 5연패에 도전한다. ●해외축구 해외파들은 컵대회를 치른다. 프리미어리그 볼턴의 이청용은 22일 오전 챔피언십(2부리그) 번리와 칼링컵 32강전을 치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도 23일 챔피언십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 대결한다. 프랑스의 박주영(AS모나코)은 RC랑스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차두리와 기성용은 23일 인버네스와의 리그 컵대회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MLB] 10년연속 30홈런·100타점

    앨버트 푸홀스(세인트루이스)가 10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푸홀스는 12일 미국 애틀랜타 터너필드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애틀랜타와의 원정경기에서 6회 초 2타점 적시 2루타를 때려 101타점을 기록했다. 푸홀스는 전날까지 37홈런을 기록 중이었다. 이로써 푸홀스는 2001년 데뷔 시즌에 37홈런-130타점을 기록한 이래 10년 연속 30홈런-100타점 고지를 넘어섰다. 지미 팍스(1929~1940년)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1998~2009년)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데뷔 시즌부터 따지면 푸홀스가 최초다. 10년 연속 100타점을 넘은 선수도 푸홀스를 제외하고는 로드리게스와 팍스, 루 게릭, 앨 시먼스가 전부다. 또한 데뷔 첫해부터 10년 이상 100타점을 찍은 선수는 푸홀스와 시먼스(1924~1934년) 단 두 명에 불과하다. 현재 시즌 타율 .309인 푸홀스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10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한층 높였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서경석, 11월 결혼 앞서 ‘여장’…“예비신부 볼까 걱정”

    서경석, 11월 결혼 앞서 ‘여장’…“예비신부 볼까 걱정”

    오는 11월 웨딩마치를 울리는 예비신랑 서경석이 파격 여장을 선보여 시선을 모은다. 케이블채널 E채널 ‘와우맨’의 새 MC로 선정된 서경석은 지난달 31일 강화도에서 첫 촬영을 진행했다. 이날 서경석을 포함한 6인의 출연진은 여장에 도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마초들의 변신’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와우맨’은 ‘여자 체험 버라이어티’로 서경석과 김구라, 김영철, 이종수, 마르코, 인피니트 동우 등이 출연한다. 여섯 명의 멤버들은 알다가도 모를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체험에 몸을 내던진다. 이날 촬영에서는 “여자는 왜 시댁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여장을 실시한 서경석 등 MC들은 메이크업과 헤어와 의상까지 완벽한 여자로 분장해 현장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서경석은 이날 처음으로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는 상황에서 여자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펼쳤다. 여장을 한 서경석은 “점점 예뻐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는 대사로 현장을 폭소케 했다. 또한 서경석은 “예비신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될 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이어 “하지만 앞으로 ‘와우맨’을 통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여자를 이해하는 좋은 남자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와우맨’ 제작진은 “방송 최초로 여장 출연을 한 김구라와 서경석의 미모대결이 압권이다”며 “방송이 시작되면 시청자에게 전무후무한 볼거리를 선사할 것”이라며 전했다. ‘와우맨’은 오는 15일 오후 11시 첫 방송된다. 사진 = E채널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NTN포토] 한예슬 ‘완벽한 콜라병 몸매’▶ [NTN포토] 윤아 ‘시원한 노출’ 시선집중▶ [NTN포토] 소녀시대 써니 ‘강렬한 범무늬 원피스’▶ [NTN포토] 최지우 ‘엘레강스한 롱스커트’로 여신포스 발산▶ [NTN포토] 현빈 ‘구찌 패션쇼 왔어요’
  •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연세대 교수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연세대 교수로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 이기태(62)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세대 교수로 부임한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애니콜의 성공에 힘입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세대는 “무선통신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던 이기태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을 정교수로 공식 임명했다.”고 5일 밝혔다. 강의는 다음 학기부터 맡는다. 이 전 부회장은 2007년까지 약 7년 동안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재직하며 삼성 휴대전화 애니콜 신화를 썼다. 연구·개발(R&D) 혁신을 통한 ‘고급화’ 전략을 고수하며 애니콜을 노키아에 이어 세계 점유율 2위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회사 상담역으로 활동해 왔다. 인하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박사 학위가 없는 인물이 대학 정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국내 대학가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대학 관계자는 “학사 출신으로 공대 교수가 된 것은 연세대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사례”라면서 “‘연세대 국제캠퍼스 글로벌융합학부 첫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대·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됐으며, 2005년에는 세계 정보통신 분야의 최고로 꼽히는 전기전자공학협회(IEEE) 산업리더상을 받은 ‘이공계 스타 최고경영자’였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IBM 슈퍼컴 ‘왓슨’ 인간퀴즈쇼 도전기

    IBM 슈퍼컴 ‘왓슨’ 인간퀴즈쇼 도전기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에 있는 IBM 연구실에는 CBS의 유명 퀴즈쇼 ‘제퍼디’ 세트가 꾸며졌다. 실제 방송과 같은 방식으로 쇼가 진행된 뒤 양호교사 질만틴과 카피라이터 코라니는 각각 1만 2000달러씩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많은 1만 8400달러를 얻어 1위를 차지한 ‘존재’는 따로 있었다. 수만개의 반도체로 만들어진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이었다. 왓슨은 이날 열린 6번의 모의게임에서 4번을 우승했다. 올 가을 왓슨은 전 세계로 중계되는 실제 제퍼디쇼에 등장, 챔피언들과 진검승부를 겨룰 예정이다. 상대로는 이 쇼에서 74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수립한 켄 제닝스가 유력하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인공지능에 도전하는 IBM 연구자들의 지난 3년간의 노력과 그 결과물인 왓슨을 소개했다. 왓슨은 ‘인간을 넘어선 최초의 컴퓨터’로 불리는 슈퍼컴퓨터 ‘딥블루’의 아들뻘이다. 딥블루는 1997년 5월11일, 15년 동안 세계 정상을 지킨 러시아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으며 인공지능의 가치를 입증한 바 있다. IBM은 이후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컴퓨터’, 즉 퀴즈쇼에 출연할 컴퓨터 만들기에 나섰다. 체스나 바둑은 정해진 규칙과 예측가능한 경우의 수를 갖고 있다. 컴퓨터가 연산을 거쳐 최적의 답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퀴즈쇼는 음성으로 제시되는 사회자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자신이 보유한 정보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장 근접한 답변도 찾아내야 한다. 특히 제퍼디쇼는 사회자의 유머와 위트로 가득차 있어 사람들도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현재까지의 슈퍼컴퓨터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혔던 인간의 자연스러운 말을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왓슨은 이 도전에 나섰고, 목표에 근접해 있다. 정답이 ‘두바이’인 한 질문은 이런 문장으로 짜여졌다. “아랍에미리트연합 사람들은 ‘이 곳에 있는 타워를 올려다 보는 사이 점심을 놓칠 수 있다.’고들 한다. 이곳은? ” 왓슨은 맞혔다. IBM 연구원 데이비스 페루치는 “왓슨은 다른 컴퓨터와 달리 수백가지 방법으로 동시에 작업을 진행해 가장 확률이 높은 답을 도출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는 6~7초의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퀴즈쇼에서 인간이 이길 기회가 주어진다고 페루치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모든 답변을 인터넷과의 연결을 통해 검색하는 방식이 아닌 내부의 정보만으로 조합해 도출한다는 점은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에 대한 기대도 가능하게 한다. NYT는 “왓슨은 자유자재로 컴퓨터와 묻고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근간을 제공할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왓슨이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파멸로 이끈 ‘스카이넷’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왓슨이 일반에 공개된다. 2011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IBM이 상용화 버전의 왓슨을 출시한다. 일반인용 왓슨은 사업상의 복잡한 문제의 결과를 예측하거나 필요없는 고려항목을 제거해 줌으로써 사용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NYT는 전망했다. IBM 연구원 존 캘리는 “의료용 버전의 왓슨은 새로운 의학기술의 사용여부를 결정하거나 응급상황에서 빠른 처치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금융권 하반기 인사태풍 몰아친다

    금융권 하반기 인사태풍 몰아친다

    하반기 금융권에 인사 태풍이 몰아친다. KB금융지주,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기업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앞두고 있다. 각각의 자리를 놓고 민간 금융기관, 정부부처, 금융당국 등 출신들이 치열한 ‘별들의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총자산 325조원의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은 다음달 중순쯤 새 회장(현재 공석)이 확정될 전망이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20일 2차 회의를 열고 33명의 회장 후보군을 정했다. 후보군의 면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윤용로 기업은행장,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 하영구 씨티은행장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돼 왔다. ●KB금융 회장 후보 새달4일 10명 압축 앞서 회추위는 국내 2개, 외국계 1개 헤드헌터사에서 각각 15명을 추천받았다. 회추위는 다음달 4일 열릴 3차 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후보군을 10명 이내로 줄인 뒤 중순에 개최될 4차 회의에서 최종 1명을 회장 후보로 이사회에 추천할 예정이다. 회장 선임이 끝나면 지주사 및 계열사 임원 인사가 뒤따른다. 3월 결산법인인 KB생명과 KB자산운용, KB선물 등은 다음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장을 선임한다. 농협중앙회도 김태영 신용 대표이사의 임기가 다음달 말 끝남에 따라 이달 말 대표 선임 작업에 착수한다. 지난해 농협법 개정에 따라 농협이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대표를 선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하마평이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그동안 내부 승진으로 대표이사 자리가 채워졌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김 대표의 연임도 배제할 수 없다. 윤용로 기업은행장도 오는 12월20일 임기가 끝난다. 전례에 비춰볼 때 관료 출신이 후임으로 올 가능성이 높지만 민간 출신 발탁이나 내부 승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KB금융 회장 등 여러 자리에 후보로 거론된 윤 행장이 기업은행 민영화 등을 앞두고 연임할 가능성도 있다. ●손해보험협회·신한생명도 대기 보험업계에서도 CEO 교체가 잇따른다. 다음달 말 임기가 끝나는 방영민 서울보증보험 사장 후임으로 관료 출신인 문재우 금융감독원 감사와 정연길 서울보증보험 감사가 물망에 오른 가운데 민간 출신 기용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오는 8월 임기를 마치는 정채웅 보험개발원장의 후임도 관심사다. 정부나 금감원 출신 인사들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경합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새로 설립될 수 있는 농협보험의 생명보험 부문 CEO로는 대한생명 전무이사 출신 L씨가 후보자 명단에 오르고 있다. 한화손해보험 상무 출신 L씨도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상용 손해보험협회 회장도 오는 8월 임기가 만료된다. 아직 후임자는 부각되지 않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신한생명, 신한아이타스 등 계열사 사장 2명의 임기 만료가 임박했다. 이런 가운데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업계 안팎에서 부러움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달 말 이사회에서 통과된 재선임 안건이 다음 달 초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확정되면 금융권 전문경영인으로는 전무후무한 ‘5연임 신화’를 세우게 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오늘의 눈] 리허설이라 다행인 대구국제육상대회/장형우 체육부 기자

    [오늘의 눈] 리허설이라 다행인 대구국제육상대회/장형우 체육부 기자

    육상은 인간의 기본적인 운동능력을 확인하는 종목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뛰기 위해 선수들은 전력을 다한다. 그런 선수를 직접 보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 관중은 장대를 떠나 날아오른 선수가 스칠 듯 말 듯 바를 넘어가는 순간의 스릴을 느끼며 환호한다. 해머가 원 안을 뱅글뱅글 돌다 선수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순간의 해방감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탄성을 자아낸다. 파르르 떨며 창공을 가르는 창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꿈을 담았고, 한 뼘이라도 더 멀리 뛰기 위한 몸부림은 무용 못지않은 예술이다. 하지만 19일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에서는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남자 세단뛰기를 시작으로 각 종목이 5분 간격으로 필드와 트랙에서 이어졌다. TV 중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진행했다고 한다. 어느 한 종목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했다. 차라리 집에서 TV로 보는 게 나았다. 단지 세계적인 스프린터들을 직접 눈으로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비록 이번 대회가 내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한 ‘리허설’ 성격이 짙다고 하지만, 값비싼 출전료를 지불하고 해외 유명 선수들을 데려온 것에 비하면 형편없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산만한 경기장에서 새로운 기록이 쏟아질 리도 없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조기 매진됐다던 6만 4000여 관중석도 절반 가까이 비어 있었다. 그나마 대회 내내 뭘 할지 모르던 수많은 자원봉사자라도 없었다면 경기장은 더 황량했을 것이다. 입장인원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다. 내년 대회 대학생 홍보단이 공짜로 경기장의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기초적인 기록측정 시스템도 없었다. 100m의 경우 스타트 반응속도, 구간별 속도와 보폭, 순간 최대 속력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7억여원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장만하지 못했다. 어차피 내년 대회 때문에 구입해야 한다. 행정편의주의를 보는 듯했다. 우사인 볼트 같은 전무후무한 선수를 데려와 오로지 스타트 반응속도 하나만 챙겼다. ‘리허설’이라 정말로 다행이었던 대회였다.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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