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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병철의 빅! 아이디어] 낙하산 기준을 정하자

    [주병철의 빅! 아이디어] 낙하산 기준을 정하자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에 공공기관이 부산하다. 각계에서는 이런저런 해법도 제시하고 있다. 알다시피 방만경영 해소, 과도한 부채 해결, 도덕적 해이 방지, 낙하산 인사 근절 등이 주된 과제다. 그중에서 낙하산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그런데 낙하산과 공공기관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 근절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분을 갖고 있는 주체가 인사권을 행사하려 드는 건 당연하다.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295개에 이르는 전체 공공기관이 필요한지부터 하나씩 따져보고 민간기업 방식으로 경영하는 게 순서상 먼저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너나없이 낙하산의 폐해를 지적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서면 낙하산 임명의 주체만 바뀔 뿐 행위는 그대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임명권을 쥔 측에서는 낙하산을 개혁적인 인물로 포장하고, 반대 측에서는 전리품 나눠주기라고 한다. 그 사이에 힘든 건 낙하산으로 지목되는 당사자들이다. 누구든 낙하산이란 덫에만 걸리면 곤욕을 치른다. 설령 특정인이 낙하산 논란으로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해도 대기하고 있던 제2, 제3의 낙하산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있는 자리’에 누가 들어가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낙하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공공기관 문제를 얘기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소모적인 낙하산 논란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낙하산 기준을 정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사실 낙하산이라고 해서 모두 나쁘고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낙하산에는 ‘좋은 낙하산’도 있고 ‘나쁜 낙하산’도 있다. 현실적으로 낙하산을 근절하기가 힘들다면 바람직한 기준을 만들어 옥석을 가려 쓰자는 얘기다. 그러면 능력과 경험이 있는 인물인데 낙하산으로 매도돼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 형편없는 경력인데 낙하산이라는 이유로 분에 넘치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인사를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단순히 특정 지역, 특정 학교, 특정 직업, 특정 정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거나 반대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런 기준부터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낙하산 인사의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관료나 정치인을 한번 보자. 공직생활을 마친 뒤 10년이 지났고, 그 사이에 민간기업 CEO 경험도 가졌는데 공공기관에 원서만 내면 ‘관료 출신 낙하산’이란 딱지가 붙어 온갖 공격에 시달린다. 이런 경우 자신의 업무 영역과 연관있는 곳에는 퇴직 후 2년간 취업할 수 없다는 공직자윤리법 적용 기간이 끝나면 ‘관료 출신 낙하산’이란 꼬리는 떼줘야 한다. 정치인 등도 그렇다. 자신이 직업적으로 걸어온 영역과 관련이 있는 공공기관에 취직하려고 해도 ‘정치인 출신 낙하산’이라는 딱지가 붙어 괴롭힌다. 그렇다면 전직 관료나 정치인 등의 경우에는 아예 공공기관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낙하산은 민간부문이 공공부문보다 오히려 더 은밀하고 넓게 퍼져 있다. 왠만한 제조업체 임원들은 퇴직하고 나면 1차 협력업체나 하청업체 등에 재취업을 한다. 1차 협력업체 등은 2차 등으로 옮긴다. 금융업계의 생태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정권이 바뀌면 수천개의 공적인 자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임기도 같이하는 미국의 사례도 신중하게 검토할 만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와 같은 공기업은 없지만 행정부와 관련이 깊은 회사나 단체 등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3000여개쯤 된다고 한다. 우리도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기를 정권과 같게 하면 어떨까 싶다. 우리는 낙하산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낙하산 견제 방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면 ‘좋은 낙하산’ 활용 방안에 눈을 돌려봄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공청회 등을 거쳐 차선의 대안을 찾는 데 주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bcjoo@seoul.co.kr
  • “공기업 사장 인사권 장관에 줘야”

    “공기업 사장 인사권 장관에 줘야”

    “지금부터라도 공기업 사장 인사권을 주무 장관에게 넘겨 공동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강봉균(71) 전 재정경제부 장관(건전재정포럼 대표)은 지난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정부의 최우선 정책인 공공기관 개혁에 대해 “공공기관이나 금융이나 개혁의 핵심은 낙하산 인사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공공기관 노조가 낙하산 인사로 들어온 경영진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면서 노조가 주인 행세를 해 온 것이 방만한 경영과 과도한 복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면서 “한마디로 공공기관의 임원직이 정치적 전리품으로 취급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기관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사장 인사권을 청와대가 아닌 주무 부처 장관에게 줘야 한다”면서 “임명이나 해임 권한을 청와대가 가지고 있으면 정권에 줄을 댄 기관장들이 장관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금융 혁신에 대해서도 “외환위기 직후 금융 인사들이 승진을 위해 청와대에 줄을 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당시 ‘관치금융으로 외환위기를 맞았으니 정권은 금융 인사에 관여하지 말자’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설득했었는데, 아직도 금융권 인사에 정권이 개입하더라”며 답답해했다. 강 전 장관은 “우리나라 은행이 세계 곳곳의 저축액을 끌어들여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성장 기조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공약을 고집한다면 빚이 늘어나면서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 전 장관은 “올해 예산안으로 정부의 빚이 35조원이나 늘어나게 된다”면서 “복지 공약의 재원 규모를 30% 정도 줄이고 증세로 70% 정도를 충당하는 방안이 적절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철도·의료 정부안 민영화라 할 수 없고 부동산 침체는 대응 못한 정치권 책임”

    “철도·의료 정부안 민영화라 할 수 없고 부동산 침체는 대응 못한 정치권 책임”

    강봉균(71) 전 재정경제부 장관(건전재정포럼 대표)이 직접 만년필로 빼곡히 적은 인터뷰 답변 자료가 탁상에 놓여 있었다. 몇 장을 넘겨 보다 ‘의료 민영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는 문구에 눈길이 멈췄다. 강 전 장관은 “민간병원이 중심인 우리나라에선 의료 민영화라는 용어부터 잘못”이라고 말했다. 가장 우수한 인력이 몰리는 의료계가 태국이나 싱가포르에 외국인 환자를 빼앗기는 것은 손해라고 지적했다. 또 부동산 시장 침체에 대해선 10년 전부터 적극 대응하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털어놨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북은행 12층에 마련된 강 전 장관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인터뷰가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철도와 의료 민영화를 두고 요즘 시끄럽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반기를 든 철도노조의 파업은 공권력에 의해 잠정 수습됐다. 사실 철도는 항공·통신과 함께 공익성 사업이며, 다른 2개가 민영화된 상황에서 내부 경쟁 체제 도입에 불과한 사안으로 장기 파업을 할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향후 공공기관에 대한 입장이 다른 여야가 합리적 대안을 도출할지 의문이다. 또 의료 민영화라고 하는데, 대형병원이 외국인을 데려다 치료한다고 동네병원이 무슨 손해를 보느냐. 의료 관광은 돈벌이가 되는 분야다. 태국이나 싱가포르는 (의료 관광으로) 돈을 벌고 있다. 중국인들을 잡아야 한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일부 공공기관은 노조의 힘이 지나치게 세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노조가 경영진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해 노조가 주인 행세를 해 왔다. 낙하산 인사라는 정치적 인사권 남용으로 경영진이 오니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공기업 주요 보직이 전리품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영 효율보다는 노조 가입자들의 신분 보장과 복지 확대가 우선시됐고 오늘날의 문제를 초래했다. →낙하산 근절이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이라는 뜻인가. -공공기업 개혁은 공공기관장들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공기업 사장 인사권을 주무장관에게 넘겨 장관과 공공기관장이 공동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임명이나 해임 권한을 청와대가 행사하면 공공기관장들이 주무부처 장관의 말을 안 듣는다. 청와대가 고르면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게 되지만, 장관이 공공기관장을 선임하면 전문가와 청와대의 감시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고르게 될 것으로 본다. →금융계도 낙하산으로 홍역을 치렀다. -금융혁신도 낙하산이 문제다. 금융권 인사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금융기관 수장을 낙하산으로 임명하면 그 밑에 자리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금융혁신은 돈이 글로벌화하는 게 초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저축한 돈을 끌어들여 운용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진출한 국가에서 이들과 거래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474 공약을 제시했다. -현재의 저성장 기조를 극복해 3년 내에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자는 의미다. 사실 정부가 ‘비정상화의 정상화 작업’을 70%만 성공해도 목표치는 달성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이중 노동 구조 완화,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는 실질적인 경제혁신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정부는 이해가 상충되는 세력 간에 토론을 통해 양보를 얻어 내고, 이를 토대로 여야 정치권의 합의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관련 법률 개정과 경제개혁이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다. →올해 가장 큰 경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저성장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평균 3% 성장했다. 청년 실업, 자영업 불황, 국가 부채 증가 등 모든 문제가 저성장에서 비롯된다. 현 정부의 주장대로 복지 공약도 중요하지만, 경제 활력을 살려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노동 공급, 투자 확대, 기술 진보 3가지 면에서 대비해야 한다. 우선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확대하고 50대 은퇴자를 활용해야 한다. 대기업의 해외투자를 국내로 돌리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창조경제가 작동할 수 있게 벤처금융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에서는 효율성과 형평성 가운데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에 치중하면 경제 활력이 약화되고, 시장경제에 치중하면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 따라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재벌 대기업에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나는 규제를 해 성장을 억제하면 안 된다. 다만 자본력과 기술력이 우월한 재벌들이 협소한 내수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를 괴롭히는 부당 행위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만 보장된다면 투자활동 규제를 줄여 나가고,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공권력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 →최근 국회가 첫 부자증세에 합의했다. -지난 연말에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을 보니 35조원의 나랏빚이 늘어난다.(480조 3000억원→515조 2000억원). 지난해에는 세금이 적게 걷히면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지출할 돈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3.9%로 보고 편성했다.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은 4~5% 성장할 때 가능한 규모다. 증세를 안 하겠다면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고강도 세무 조사나 지하경제 양성화, 조세 감면 축소로는 한계가 있다. 복지정책 규모를 30% 정도 줄이고 70%의 재원은 증세로 마련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해 빚만 늘리면 일본형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 →국회의 부자증세가 큰 효과가 없다고 보는 것인가. -내년에 국가부채가 35조원이 늘어나는데 부자증세 효과는 1조원에도 못 미친다. 여야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불과하며, 경제적 효과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법인세 최저한세율 상향 역시 기업의 국내외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효과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도 심각하다. -고용 악화, 자영업 불황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이유다. 부동산 경기 침체는 거의 1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아직도 ‘집값은 떨어질수록 좋다’는 사고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우리나라 개인 가계자산의 70% 이상이 주택과 부동산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 또 가계자산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면 가계부채나 내수 증가 등의 숙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집값도 하락하고 있는데, 다주택자를 부동산 투기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전세가격 또한 3년 이상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밖에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길이 없다. →해외 여건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양적완화가 축소되면서 미국 경기가 좋아진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중국과 신흥국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 것만으로 인도네시아, 브라질 주가가 폭락했다. 중국은 그간의 성장 위주 정책을 수정하면서 7% 중반도 성장하기 힘들 것이다. 이들은 결국 수출 상대들이라 우리나라 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신당으로 전북지사에 출마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안철수 의원과) 3~4차례 만났다. 3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못 이룬 꿈이 민주당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민주당과 여당이 변하지 않는 한 안철수 신당은 없어지지 않는다. 일시적 거품이 아니라는 의미다. 경제나 국가 시스템에 대해 언제나 자문을 하겠다. 하지만 정계 은퇴를 한 상황이어서 현실 정치(전북지사 출마)에 바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집에서도 싫어해 대답을 미루고 있다. 대담 김성수 경제부장 정리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봉균 전 장관은 ▲전북 군산(71세) ▲군산사범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윌리엄스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행시 6회,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16~18대 국회의원, 건전재정포럼 대표(현재)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무엇 WHAT?(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미시사 ‘대구’(Cod), ‘소금’(Salt)의 저자인 미국의 저명 저널리스트 마크 쿨란스키가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으로만 이뤄진 책을 내놨다. 끝없이 답변을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며 공자, 플라톤, 셰익스피어, 데카르트, 헤밍웨이 등 세계역사 속 철학자와 작가들의 저술을 꼼꼼히 살핀 뒤 인생의 핵심을 다룬 질문 20개를 추렸다. ‘어떻게 시작할까?’ ‘얼마나 많을까?’ ‘어떻게?’ ‘왜?’ ‘어디?’ ‘이게 불운한 건가?’ 등의 질문을 화두로 꺼낸 뒤 해답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삶을 성찰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예컨대 ‘어떻게?’ 섹션에서는 ‘나는 꿀벌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소제목으로 인간 삶의 근본 의미를 짚어보는 식이다. 질문들은 결국 모두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200쪽. 1만 2000원. 기후 문화(하랄트 벨처 외 지음, 모명숙 옮김, 성균관대출판부 펴냄) 오늘날 지구촌의 공통 의제 가운데 하나인 기후변화. 오랫동안 이는 기상·해양·빙하학자들이 고민해야 할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예측하지 못했던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는 일은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과제라고 단언한다. 이를테면 높아지는 기온, 녹아가는 대륙 빙하, 북쪽으로 확산되는 말라리아 감염 등에 대한 자연과학의 평가가 정치적이고 공격적인 활동무대에서 토론될 경우에는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책과 해결책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고 결국 해법이 도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주장이다. 404쪽. 3만원. 동양적 마음의 탄생(문석윤 지음, 글항아리 펴냄)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몸이 만들어 낸다. 그 몸을 비로소 ‘나’로 인식하고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 존재를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져 과학자와 철학자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사유한다. ‘마음’에 대한 논쟁 역시 동아시아에서 3000년 이상 계속됐다. 책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마음’의 개념, ‘심’(心)을 집중적으로 풀어낸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인 갑골문에 드러난 ‘심’(으로 추정되는 글자)에서 드러난 심장과 마음의 해석부터 맹자의 심학, 한대의 음양오행론, 조선 성리학, 실학과 성호학파 등 시대적 학문 속에서 찾아낸 ‘심’을 두루 살핀다. 444쪽. 1만 8000원. 각설하고,(김민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시인들의 따끈따끈한 시의 속살을 가장 먼저 만지는’ 출판사 편집자이자 등단 15년차 시인인 김민정의 첫 산문집. 그의 말투처럼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 속에 세상에 예민한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감성이 새겨진 글 1000여편이 실렸다. 지난 14년간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것으로 시, 사람, 사랑에 관한 기록이자 무심히 스쳐갈 법한 일상의 진실한 순간을 포획한 전리품들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를 지닌 시인답게 산문 속에는 선후배, 동료 문인들도 한데 어우러져 있다. 평화가 깃든 고 박완서 작가의 집을 부러워했던 그는 작가의 부음을 들었을 때 그의 집을 떠올린다. ‘선생님은 꽁꽁 언 땅을 열고 누구도 열어볼 수 없는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집을 찾으셨다. 누군들 가장 나종 지니인 집이 그러지 아니할까.’ 세상을 등진 신현정 시인을 떠올리면서는 다시 시를 생각한다. 264쪽. 1만 2000원.
  • [씨줄날줄] 종친부와 미술관의 화해/서동철 논설위원

    경복궁 동쪽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안팎은 조선시대 소격서와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들어서 있던 관청 밀집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는 경성의전부속병원이 지어졌고, 해방 이후 이 건물은 수도육군병원으로 쓰였다. 서울 시내 중심부의 요지인 탓인지 병원 뒤편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차지했는데 얼토당토않게 1981년 테니스장을 짓겠다며 멀쩡한 종친부(宗親府) 건물을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 세운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직후 기무사의 위세를 당시에는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기무사 전신 국군보안사령부 시절이다. 미술인들의 소망대로 정부는 2010년 이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힌다. 서울관 건립과 함께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 또한 당연한 조치처럼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군사정권에 훼손된 역사를 일부나마 되찾는 뜻깊은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니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나마 미술인 사이에 나온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이 땅은 미술인들이 힘을 합쳐 쟁취한 일종의 ‘전리품’인데 문화재라는 ‘다른 장르’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반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은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과 동시에 추진됐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우여곡절을 겪은 종친부 건물의 이전복원 공사가 마침내 마무리돼 20일 현장에서 준공식을 갖는다고 한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10동 남짓한 규모였다고 하는데 남은 건물은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뿐이다. 미술관 착공과 동시에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건물 지하의 옛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해 그 자리에 복원할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던 경근당과 옥첩당의 현판도 다시 걸었다. 경근당 현판은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종친부 복원이 반갑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서울관이 개관한 이후에도 종친부는 썰렁한 분위기 속에 공사 중이었다. 미술인들에게는 여전히 ‘눈엣가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개관 기념전에 종친부 건물을 활용한 작품 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늦었지만 준공식이 미술과 문화재가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술인들은 종친부 건물을 예술적 자원의 하나로 활용하고 문화재 관계자들은 종친부 건물이 역사적 의미를 넘어선 새로운 문화 자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데스크 시각] 공기업 파티는 안 끝났다/김성수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공기업 파티는 안 끝났다/김성수 정책뉴스부장

    “한국드라마를 보니까 남자 주인공이 ‘나는 낙하산이다’라고 말하던데 이때 낙하산은 무슨 뜻인가요?” 2006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주립대에서 연수할 때 만난 한 미국인 대학원생은 한국어가 아주 유창했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했고 한국에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이다. 그런 그였지만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나와 있는 ‘채용이나 승진 따위의 인사에서 배후의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낙하산’의 또 다른 의미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혼자 속으로 ‘미국에는 우리나라 같은 낙하산 인사가 없어서 모르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엔 한국마사회 회장, 도로공사 사장, 지역난방공사 사장 자리를 줄줄이 친박 핵심인사나 전직 국회의원이 꿰차고 갔다. 민주당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임명된 공공기관장 77명 중 절반에 가까운 34명이 낙하산 인사로 분류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 없을 것”이라던 당선인 시절 박 대통령의 약속도, 최근 공기업사장 인사를 보면 차라리 말을 안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박근혜 정부도 공기업 수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정치적 보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역대 정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당 최고위원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경제부총리에게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에서 선거 때 노력한 분들을 배려해 달라”고 당당하게 부탁할 정도이니 말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낙하산 인사를,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시도도 잘못된 일이다. 낙하산 인사가 이렇게 횡행하고 있으니 정부가 지난 11일 내놓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도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과도한 부채를 줄이고, 실적이 부진한 기관장은 해임을 건의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인데, 정작 낙하산 인사 근절과 관련된 말은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 이래 가지고서야 경제 부총리가 아무리 결기 있는 목소리로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고 외쳐 봤자 먹혀들지 않는다.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사람인데 사장부터 권력의 힘을 빌려 내려온 비전문가라면 시작부터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낙하산 사장은 내부 불만을 무마하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조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과거 사례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연말 교통대란을 불러온 철도파업과 관련해 정부는 대(對) 국민담화문을 통해 “철도공사를 비롯한 많은 공기업들이 방만 경영에 빠지게 된 주요한 이유의 하나가 파업을 보호막으로 삼아 자신들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근거 있는 지적이지만 정부 역시 공기업 낙하산 인사의 잘못된 관행을 조금도 고치지 않았고 이런 나쁜 관행이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부추긴 또 다른 핵심 요인이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당선된 지 1년이 됐다. 한국갤럽의 12월 2주차 조사에 따르면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54%, ‘잘못하고 있다’가 35%다. 54%의 국정지지율은 역대 최고였던 박 대통령 자신의 대선 득표율(51.6%)보다도 높다. 하지만 35%의 부정적인 여론은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sskim@seoul.co.kr
  • [열린세상] 정치권력의 사익추구 막아야 한다/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정치권력의 사익추구 막아야 한다/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포스코 정준양 회장이 결국 사퇴했다. 기자회견에서 외압이나 외풍이 없었다고 했으나 이 말을 믿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전에는 이석채 전 KT 회장이 역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미스럽게 퇴진했다. 확인할 수는 없으나 두 분 모두 MB 정권의 지원을 배경으로 회장에 취임했다는 것이 후문이고 보면, 그렇게 억울해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민의 상식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사법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우리의 수준이 아직도 이 정도라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먼저 이러한 영향력 행사는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포스코와 KT는 완전히 주식이 분산소유된 기업이다. 모두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50% 내외에 이르고, 국내 투자자들도 대부분 기관투자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연금이 KT 지분의 6.8% 정도를 보유하면서 최대주주인 정도가 눈에 띄는 사항일 따름이다. 소유구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치권력이 회사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결고리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이 규제 권한이나 세무 조사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수단을 이용하여 뜻을 관철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협박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이러한 영향력의 행사는 재벌그룹의 총수가 행하는 전횡보다 더 나쁘다. 이번 정권은 재벌그룹에서 총수의 사익추구를 규제하겠다고 하면서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걸었다. 이론적으로 보면 사익추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총수가 그룹을 적은 지분만 가지고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총수는 그룹의 이익을 도모하는 대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인센티브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력은 아예 포스코나 KT의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회사의 이익을 염두에 둘 이유가 없다. 재벌그룹 총수보다 더 심하게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나 정치권력이 시장질서를 무시하고 사기업의 지배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최근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거나 또는 그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원론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운용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이름의 관치에 불과하다. 이런 착잡한 생각은 재벌 문제에까지 번진다. 만일 총수일가의 확실한 지배가 없었더라면 그 자리를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차지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총수일가는 기업을 정치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항세력이 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물론 포스코와 KT는 빙산의 일각이다.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사기업의 회장 또는 이사 자리를 선거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관행이 곳곳에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MB 정권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에 자기 사람 심기가 도를 지나쳤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정권에서는 이러한 관행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지만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사익추구나 권력남용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고 강력해서 정치인 개인이 자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포스코와 KT를 보면 주주가 역할을 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방법이 없을까. 결국 시간이 걸리더라도 깨어 있는 언론의 감시를 통한 올바른 여론의 형성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방책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한 해를 보내면서 언론의 정치적 독립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그런데 사실 포스코와 KT 인사에서 정치권의 영향력은 모두 소문일 따름이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것에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이 글도 어찌 보면 무책임한 소설일지 모른다. 이 글이 허무맹랑한 소설이어도 좋으니 소문들이 모두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 [사설] 낙하산 내려보내면서 공공기관 개혁하겠나

    김학송 전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며칠 전에는 같은 당 김성회 전 의원도 다른 공사 사장에 내정됐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른바 ‘낙하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줄기차게 나왔는데도 결과는 달라진 게 없다. 두 사람 모두 보상 성격이 짙다. 김학송 전 의원은 친박계 중진 인사인데 지난해 총선에서 ‘친박 배제’ 여론 때문에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성회 전 의원도 최근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서청원 의원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래서야 공공기관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현오석 부총리가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 개혁을 선언한 것이 불과 열흘 전이다. 엄청난 부채와 누적된 적자에도 온갖 복지를 누리는 공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며 강도 높은 개혁을 촉구했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초래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기업에 떠넘긴 대선 공약 사업이며 다른 하나는 고질적인 낙하산 인사다. 낙하산의 문제점은 우선 전문성과 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엉뚱한 분야에 보은의 의미로 낙점된 인사가 몇 년의 세월을 허송하다시피 보내고는 물러나는 폐단이 반복됐다. 부임을 반대하는 노조를 무마하려다 결국에는 한통속이 돼 임금 인상이나 여러 가지 혜택을 베풀어 왔다. 경영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혁을 하려야 할 수 없다. 낙하산들은 도리어 개혁 요구를 가로막는 방패 역할을 해 온 게 사실이다. 말로만 외치다 나중에 흐지부지되는 개혁을 역대 정권에서 누차 보아왔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기관장 자격요건으로 강조되던 전문성은 어디로 갔는가.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 듯 정부와 당청(黨靑)이 행동에 엇박자를 보이면 개혁은 더 이상 어렵다. 어느 정권이라도 낙하산 권한은 완전히 부정될 순 없다. 전문성과 개혁을 전제로 한 낙하산까지 거부할 명분도 없다. 그러나 전문성을 무시한 채 모든 공공기관을 전리품으로 인식해 보은 인사로 활용하려 한다면 개혁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파티를 끝내기도 전에 더 성대한 파티가 시작될 것이다.
  • 다승 이어 상금왕·최저타상도 눈앞… LPGA ‘인비 천하’

    다승 이어 상금왕·최저타상도 눈앞… LPGA ‘인비 천하’

    올해 세계 여자골프계를 평정한 랭킹 1위 박인비(25·KB금융그룹)가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우수선수를 상징하는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이 상을 탄 것은 1966년 제정된 지 무려 47년 만에 처음이다. 박인비는 18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골프장(파72·6626야드)에서 끝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쳐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 4위의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대회 이전까지 올해의 선수 포인트 290점으로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의 추격을 받던 박인비는 이 대회 최종 순위에 따른 포인트 7점을 보태 297점이 돼 공동 5위(10언더파 278타)로 6점을 추가하는 데 그친 페테르센(258점)을 39점 차로 따돌리고 올해의 선수상을 확정했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는 매 대회 ‘톱10’ 이내에 든 선수만을 대상으로 차등 부여된다. 1위는 30점, 2위는 12점… 순이다. 시즌 최종전인 CME 타이틀홀더스가 남아 있지만 점수 차가 워낙 커 페테르센이 우승해도 박인비의 수상에는 지장이 없다. 올해의 선수에 이어 ‘다관왕’ 가능성도 높다. 4위 상금 5만 8000달러(약 6100만원)를 받아 시즌 상금 랭킹 1위(239만 3000달러)를 지킨 박인비는 21일 개막하는 타이틀홀더스(우승 상금 70만 달러)에서 2년 연속 상금왕에 도전한다. 페테르센이 228만 4000달러로 2위에 올라 여전히 박인비를 추격하고 있다. 박인비는 최저 평균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도 2년 연속 석권할 수 있다. 현재 69.9타로 스테이시 루이스(미국·69.48타), 페테르센(69.59타)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여기에 이미 확정한 다승왕(6승)까지 합치면 최대 4관왕에 오르며 ‘인비 천하’를 알리게 된다. 물론 다승은 LPGA 시상 부문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 베어트로피 등 3관왕을 더 화려하게 빛낼 전리품이 될 수 있다. 3관왕 탄생 자체만으로도 2011년 청야니(타이완)에 이어 2년 만의 경사다. 박인비는 “LPGA 투어에 훌륭한 한국 선수들이 많았고 그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점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래서 올해의 선수상에 더욱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이 13언더파 275타로 이 대회 3위에 오른 가운데 우승은 합계 16언더파 272타를 친 알렉시스 톰프슨(미국)에게 돌아갔다. 루이스가 마지막홀까지 우승 경쟁을 펼쳤지만 1타 뒤진 15언더파 273타로 준우승했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KT·포스코 등 민영화에도 ‘권력 입김’ 여전…전문가 “CEO 외풍영향 안받고 임기 보장을”

    정권 교체에 따른 수장의 중도 하차는 공기업 얘기만이 아니다. KT·포스코 등 일부 민간기업과 KB금융지주 등 은행권에서도 정권 교체 때마다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일 기업이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최고경영자(CEO) 선임 시스템을 갖추고 CEO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T와 포스코는 정권 교체 때마다 CEO가 정치권에서 ‘압박’을 받는 대표 민간기업으로 꼽힌다. KT는 2002년, 포스코는 2000년에 완전히 민영화됐지만, CEO를 둘러싼 ‘낙하산 논란-정권 교체-사퇴 압박-중도 퇴진’의 흐름은 변하지 않고 있다. 2009년 1월 남중수 전 사장이 중도 퇴진한 자리에 들어온 이석채 KT 회장은 낙하산 논란 속에서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퇴진 압박설에 시달리다 지난 3일 끝내 사의를 표명했다. KT는 12일쯤 이사회를 열어 사표를 수리하고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할 전망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최근 청와대에 사임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지난 8일 열린 이사회에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금명간 사의를 공식 표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이건호 국민은행장을 두고 ‘관치금융’ 논란이 일었다. KB는 2008년 황영기 회장과 김중회 사장, 2010년 어윤회 회장 때도 낙하산 논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낙하산 논란이 계속되는 민간기업은 CEO 선임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반복되는 낙하산 논란은 다들 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기업은 미리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외부에서 후보군을 육성한 뒤 시장에 알리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기업 CEO 자리가 ‘전리품’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최소한 임기만큼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사장추천위원회부터 국민기업에 걸맞게 각계 인사로 구성해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도록 전문성·공공성을 따져 소비자·노동자 존중 인사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낙하산 논란이 외부 인사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안 처장은 “적절한 추천 시스템을 만들면 출신이 내외부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사설] 이제 KT·포스코 지배구조 고민할 차례다

    아무래도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물러날 모양이다. 어제 열린 포스코 이사회에서 정 회장은 거취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기의 문제일 뿐, 그의 퇴진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석채 KT 회장이 물러나는 과정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포스코는 세무조사를 받았고, KT는 전방위 검찰 압수수색에 내몰렸다. 이 회장이 먼저 백기를 들고 지난 3일 사의를 밝혔다. 정부가 정 회장에 대해서는 내년 3월 주주총회 전인 올 연말로 퇴진시점을 늦춰 이 회장보다는 명예로운 퇴로를 열어주고 ‘릴레이 사퇴 압박’에 대한 부담을 덜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는 이 회장의 사의 표명 이후 KT에 ‘낙하산’은 안 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취임과정도 무척 닮았다. 정 회장은 이명박(MB) 정권이 들어서자 이구택 회장을 끌어내리고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경합에서 진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은 “정권 실세들이 ‘대통령의 뜻’이라며 정준양의 회장 추대를 종용했다”고 폭로했고, 이는 국정감사장으로까지 번졌다. 정 회장은 취임 뒤에도 친·인척 비리 의혹과 온갖 투서에 시달려야 했다. 이 회장도 전임자인 남중수 사장이 2008년 뇌물죄로 구속되면서 CEO에 올랐다. 대표적인 MB맨인 그는 무궁화위성 불법매각 의혹과 함께 본인은 부인하지만 1000억원대 횡령혐의 등을 받고 있다. KT와 포스코에는 정부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다. 다만 국민연금(포스코 6.14%, KT 8.65%)이 단일주주로는 지분이 가장 많다. 정부 입김이 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지분구조로는 정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도,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도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실질적 주인이 있어야 하지만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KT·포스코·KB금융·KT&G 등 주인 없는 회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부 인식이 바뀌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실적 해결책이다. 선거공신들의 실업난에 따른 불만이 비등하고 있고, 역대 정권은 모두 낙하산을 투하했는데 왜 우리에게만 청렴을 강요하느냐며 억울해할 수 있겠지만 지분이 없는 민간기업에서 정부가 손을 떼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겠는가. 5년 뒤 되풀이될 구습의 고리를 끊는 것만으로도 현 정부는 창조경제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은 것으로 두고두고 평가될 것이다.
  • [사설] KT에 필요한 건 새 낙하산 아닌 유능한 CEO

    이석채 KT 회장이 엊그제 사의를 표명했다. 사퇴 외압설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출장가는 등 건재를 과시했지만 검찰이 수사 강도를 높이며 옥죄어 오자 결국 두 손을 든 셈이다. 평가받는 경영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회장은 회사 안팎에서 퇴진 압력을 받아왔다. 직원 8명이 자살한 무리한 노무관리로 노조의 공격을 받았고 그러면서도 영업실적은 월간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보은 인사’의 전횡과 독단적인 경영도 비판을 받았다. 보수·진보, 사내·외를 막론하고 퇴진 요구를 받는 이 회장의 사의를 안타깝게 생각할 사람은 적다. 퇴진과 관계없이 엄정한 수사를 받는 것도 마땅하다. 그러나 외부의 영향력이 작용한 점은 문제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당시 남중수 KT 사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됐고 이 회장이 낙하산으로 후임 CEO 자리에 올랐다. KT는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민영화돼 정부 주식은 한 주도 없는 민간기업이다. 정부의 인사와 경영 개입은 월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CEO 퇴임을 둘러싼 악순환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권과 친한 인사들을 중용한 인사상 오점은 이 회장이 낙하산이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고액 연봉 값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경영 능력도 애초에 검증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결과는 KT 회장을 대선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 초래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포스코나 KB국민은행도 KT와 사정이 똑같다. 정권만 바뀌면 멀쩡한 사람을 몰아내고 자기 사람을 앉히려는 그릇된 생각이 기업을 멍들게 만들었다. 과거에 공기업이었다는 이유로 정부가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경쟁력을 갉아먹는 행위다. KT 회장에 새 낙하산을 선임한다면 5년 후 또 다른 무능 경영자의 말로를 볼 수 있다. 주인 없는 회사라고 간섭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리기 바란다. 유능한 경영자를 선임하고 평가하는 것은 주주나 이사회에 맡겨야 한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은 KT처럼 오너는 없지만 CEO 경쟁프로그램을 통해 후임자를 결정해 135년 동안 초일류 기업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영화된 옛 공기업들의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할 때다.
  • 요직 발탁 등 과도한 챙기기 단체장 등에 업고 ‘호가호위’

    요직 발탁 등 과도한 챙기기 단체장 등에 업고 ‘호가호위’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의 자치단체장이나 측근들도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개는 단체장이 직접 연루됐다기보다 측근들이 단체장 힘에 기대어 발호하는 ‘호가호위’ 형이다. 오랜기간 함께하면서 단체장의 당선에 기여한 대가로 요직에 발탁됐고, 평소 도덕성을 강조하는 이들이지만 현실에 물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긴긴 세월 궁핍하게 살다 ‘주군’ 당선의 대가로 물 좋은 보직을 받은 뒤 앞뒤를 잘못 가려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질에 어울리지 않는 완장을 찬 데서 나온 경우도 많다. 금전을 밝히는 정도가 구태보다 더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에 대한 추문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운동권 출신인 송영길 인천시장은 해외 출장을 갈 때 항공기 일반석을 이용할 정도로 자신 관리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측근들이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등 잇따라 물의를 일으켜 스타일을 구겼다. 측근들의 이권 개입이 개인 비리 차원인지 선거용 포석인지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송 시장의 최측근에 해당되는 김효석(51) 인천시 서울사무소장은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건설사업과 관련, 대우건설 건설본부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5억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지난 15일 구속 기소됐다. 김 소장은 송 시장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보좌관 출신으로 송 시장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서울사무소장으로 전보됐다. 인천시는 김 소장 구속에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시장과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선 경계하는 모습이다. 역시 송 시장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모 인천시체육회 간부도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공사에 대한 이권개입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송 시장은 당선 직후부터 과도한 측근 챙기기로 비판을 받아 왔다. 지난 8월 군수직을 잃은 강완묵 전 전북 임실군수도 운동권 출신이다. 20여년 동안 군농민회 회장,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부의장 등을 지냈다. 강 전 군수는 2010년 5월 측근 방모(41)씨를 통해 업자로부터 84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초대 군수부터 전부 줄줄이 사법처리돼 임실군에 붙은 ‘군수의 무덤’ 속에 강 전 군수마저 빠지면서 운동권 출신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줬다. 강 전 군수는 이미 2007년 건설업자에게 공무원 인사권과 사업권 일부를 보장하는 각서를 쓴 것으로 드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재산신고 때 ‘마이너스’ 재산을 신고해 주민들이 큰 기대를 했지만 군수 스스로 이를 저버린 것이다. 386세대 운동권 출신인 정현태 경남 남해군수는 부인의 뇌물사건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부인 송모씨는 한 영농법인 대표로부터 18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807만원이 확정됐다. 정 군수와 직접 연관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는 일종의 ‘베갯밑 공사(公事)’ 아니겠냐며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경기도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 공조로 당선된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이 골수(?) 운동권인 진보통합당 관계자 등을 시 산하기관 책임자에 앉힌 사실이 드러나 구설수에 올랐다. 전리품을 선거 공로자들에게 나눠 주는 것은 여야를 떠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권의 공격 대상이 됐다. 특히 고양시는 선거 때 최성 시장을 지지한 시민단체 2곳에 구산동 한강변 하천부지 4만 6000㎡ 등에 대해 불법으로 점용 허가를 내줘 물의를 일으켰다. 더욱이 이 중 한 단체는 점용 허가를 받은 하천부지 중 1만 5000여㎡를 야권 시의원의 소개를 받은 민간인에게 경작하도록 해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빚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인터뷰 못하는 그의 사정/김태균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인터뷰 못하는 그의 사정/김태균 경제부장

    얼마 전 한 공공기관의 임원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그곳 기관장의 근황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그에게 “곳곳에서 공공기관장들이 교체되는 분위기인데 이분(기관장)은 괜찮으시겠느냐”고 물었다. 결례되는 질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교체 가능성이 거의 거론되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원의 반응은 의외였다. “들리는 얘기가 있느냐. 아는 것 있으면 우리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지난 6월 한 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언제 물러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문에 크게 나가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뉴스건 나쁜 뉴스건 언론에 자기 이름이 등장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는 최근 기술보증기금 이사장과 마사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를 보면서 더욱 가슴을 졸이게 됐을지도 모른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인적 쇄신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공공기관장들은 더욱 좌불안석이 됐다. 이런 모습은 지난 6월 전면 중단했던 공공기관장 인사를 지난달 말 재개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물갈이가 비교적 속전속결이었던 이전 정권과 달리 계속 지연돼 왔 으니 애가 타는 강도도 더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기관장들 가운데 일부는 은밀한 경로를 통해 사퇴 압박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기보 이사장과 마사회장이 밝힌 노조와의 갈등, 개인사정 등 사퇴의 변에 대해 수긍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직 기관장들 가운데는 지연이나 학연을 타고 능력에 비해 과분한 지위에 오른 사람도 있다. 정권 초기에 늘상 하는 공공기관장 물갈이를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은 아닌 이유다. 하지만 이렇게 매번 되풀이되는 정치적 이벤트는 큰 혼란과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 실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관장이 된 사람들까지 도매금으로 휩쓸리기 쉽다. CEO가 자신의 안위와 거취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공공기관에서 경영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공공기관 CEO의 거취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전리품 보듯 하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왼손으로는 공공기관에 칼날을 휘두르면서 오른손으로는 특정인에게 기관장으로 가는 검은 뒷문을 열어주는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특정인물의 기관장 사전 내정설이 불거지면서 청와대에 의해 공공기관장 인사가 중단됐을 때 일부에서는 공정성에 대한 기대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는 어떤 후보자가 어떤 실력자의 지원으로 이사장이 되고,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는 어떤 인사가 갈 것이라는 식의 얘기들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지금 모종의 특혜로 공공기관장 자리에 입성하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임기를 보장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임기가 끝난 뒤에 뽑힐 함량미달 기관장들은 다음 정권 교체와 맞물려 다시 반쪽 임기의 가능성을 안은 채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골치 아픈 연줄인사의 유산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창피한 일이 될 것이다. windsea@seoul.co.kr
  • 홀인원이 이끈 연장 역전승

    홀인원이 이끈 연장 역전승

    발목을 덮는 살인적인 러프로 무장한 코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마지막날 언더파로 살아남은 선수는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과 김세영(20·미래에셋). 두 홀을 남겨놓은 16번홀까지 리더보드에 적힌 최종 라운드 스코어는 각각 6언더파와 3언더파였다.누가 뭐래도 유소연의 우승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17번홀(파3·168야드)에서 안 봐도 뻔할 것 같았던 승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챔피언 조에서 함께 출발, 3타를 뒤지던 김세영이 6번 아이언을 잡고 힘껏 휘두른 공이 깃대 앞에서 한 차례 튀기더니 데굴데굴 굴러 홀 안으로 사라진 것. 홀인원. 고급 벤츠승용차를 챙기며 눈 깜짝할 사이에 격차를 1타로 줄인 김세영의 추격이 이어졌다. 마지막 18번홀(파5·598야드). 갑작스러운 홀인원을 얻어맞은 유소연은 두 번째 샷을 페어웨이 왼쪽 큼지막한 바위더미에 날리고도 공이 페어웨이로 튀어나오는 행운을 맛봤지만 거기까지였다. 김세영이 버디에는 실패했지만, 네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뒤 2m 남짓 거리의 다소 애매한 파퍼트가 홀을 돌아나와 1타를 잃으며 동타를 허용, 연장에 끌려들어간 유소연의 샷은 점차 굳어갔다. 결국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로 들어간 연장에서 대세를 결정지은 건 김세영이었다. 유소연이 우드를 잡고 친 두 번째 샷을 페어웨이 오른편 러프에 빠뜨린 뒤 네 번 만에 공을 그린에 올린 사이 김세영은 침착하게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프린지에서 친 퍼트가 홀을 지나갔지만 파세이브에는 지장이 없는 거리. 유소연은 2.5m 거리의 내리막 파퍼트를 시도했으나 공은 홀을 훌쩍 지나갔고, 이어진 김세영의 파퍼트가 결국 챔피언 퍼트가 됐다. 김세영은 약 1.5m 거리의 파퍼트를 자신있게 홀에 떨궈 대역전극을 마무리했다. 시즌 국내 개막전인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도 230야드짜리 세컨샷으로 짜릿한 역전극을 연출했던 김세영은 8일 충남 태안의 골든베이골프장(파72·6576야드)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에서 다시 한번 생애 최고의 하루를 만끽했다. 통산 2승째 우승컵과 함께 우승 상금 3억원, 홀인원 경품인 시가 1억 5000만원짜리 승용차, 그리고 시즌 상금 순위 1위(4억 8800만원). 김세영이 홀인원 한 방으로 챙긴 전리품들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손성진 칼럼] 속성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손성진 칼럼] 속성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지하철에서 쫓기듯 뛰는 사람들. 밥그릇을 빼앗기기라도 할까봐 허겁지겁하는 식사. 한국인의 유전자엔 조급증이 있다. 우리는 빨리 이뤄내야 한다는 ‘속성’(速成)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산다. ‘ppalli ppalli’(빨리 빨리)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올랐다. 급한 성질은 불과 40년 전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던 배고픔의 소산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빨리 먹고 빨리 움직여야 했다. 생존본능이었다. 속성은 속전속결을 중시하는 군부가 집권한 1960년대부터 최고의 가치가 됐다. 하루라도 공기(工期)를 단축해야 직성이 풀렸다. 육군 준장 출신인 김현옥 전 서울시장은 단 2년 만에 서울을 다 뜯어고쳤다. 416㎞의 경부고속도로는 단 2년 5개월 만에 완공됐다. 서울지하철이 노선 길이로 세계 4위권에 이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0년이다. 사실 ‘한강의 기적’은 속성의 기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기에 기적을 일궈낸 한국은 외국인의 눈에는 활기 넘치고 역동적으로 비칠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는 국가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동남아인들에게 ‘빨리 빨리’는 가장 본받고 싶은 정신이다. 지난해 임기를 마친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빨리 빨리 정신’은 한국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반면 속성의 관행 탓에 우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속성은 기본은 무시하고 결과만 따진다. 1년 앞당겨 완공하는 데는 수백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대가를 치렀다. 부실하게 지은 아파트와 백화점이 내려앉았으며 다리가 끊어졌다. 속성한 ‘비료 콩나물’을 먹고 ‘카바이드 막걸리’를 마시며 건강을 해쳤다. ‘토익 4주 완성’, ‘두 달 만에 20㎏ 감량’ 같은 광고에서 보듯 속성의 악습은 아직도 일상에 뿌리가 박혀 있다. 역대 정부들도 속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뀐 정권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에 일을 서두른다. 그런 압박은 책상머리에서 설익은 속성 정책을 양산하는 원인이 된다. 전 정권의 정책과 사업은 내팽개쳐 버린다. 그런 악순환이 수십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다. 느긋함, 진득함, 끈질김이 없다. 증세와 감세의 갈피도 잡지 못한 채 새 조세정책이 발표됐다. 사회적 합의 과정이 충분치 못했기에 난타당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대체안이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며칠, 대통령의 한마디에 의해서였다. 부동산 정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공급 부족이라고 외쳐댄 때가 5~6년 전인데 그새 엄청난 땅을 파헤쳐 살 사람도 없는 아파트를 지어 올렸다. 정책 금융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조급하게 만들었던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과 다시 합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바뀌자 여섯 달 만에 대입제도 개편안이 나왔다. 입시제도가 전리품인 양 정권마다 뜯어고친다. 자율형 사립고 정책은 3년 만에 사실상 폐기될 상황에 놓였다. ‘학교 선택권의 다양화’나 ‘학사 운영의 자율화’라는 출발 당시의 취지가 무색하다. 거점학교가 자율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몇 년 후 또 폐기 운명을 맞을지 아무도 모른다. 녹색성장은 정책의 뒷전으로 밀렸다. 한국의 미래를 밝힐 신성장 전략으로 거창하게 출발했던 전 정권의 정책이다. 임기 내 완공의 목표를 달성했던 4대 강 공사는 어떠한가.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급성을 버리고 멀리 봐야 한다. 지금은 1970년대가 아니다. 주도면밀한 검토와 준비가 없는 조급한 정책은 말로가 뻔하다. 어설픈 물건이 아니라 몇 세기를 내다보는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00년 넘게 짓고 있다.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할 시대는 지났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득점이 아니라 지치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이다. 속성 교육은 사람을 망치고 속성 정책은 국가를 망친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속성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쉼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사설] 현대차 노조, 경제위기속 상생바람 알고 있나

    현대자동차 노조가 오늘 임단협과 관련한 파업 찬반 투표에 들어간다. 노조는 지난 9일 대의원 대회에서 쟁의 발생을 결의한 상태이며, 노사 간의 입장차가 첨예해 파업은 초읽기에 돌입한 분위기다. 더욱이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등 노동계 현안까지 가세해 현대차 사태는 더 꼬여 있다. 현대차 노사는 2개월간 18차례의 노사 간 협상을 가졌다고 한다. 노조는 지난해 거둔 사상 최대 실적만큼의 이익을 노조원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현대차의 순이익이 5조 2734억원이니 성과주의 경영 논리로 보면 일견 맞는 주장이다. 하지만 70여 가지에 이르는 노조 요구안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년 61세 연장, 대학에 안 간 직원 자녀에 대한 1000만원 지원 등이 들어 있다. 이를 합하면 노조원 1인당 3400만원이며,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다. 회사 측은 노조 요구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결손을 전체의 61%인 해외공장의 가동률을 높여 메우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4번을 제외하고 23년간 파업을 결행했다. 그동안 파업을 무기로 사측을 압박해 때마다 소기의 전리품을 얻었다. 물론 노조원이 밤낮 없는 잔업으로 시장에서 인정받은 제품을 만든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시장은 현대차에 그리 녹록지 않다. 각 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일본과 미국, 유럽 차가 가격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무섭게 파고들고 있다. 지난달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9%나 증가해 월별 기준으로 역대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금은 복지사회 실현과 경제민주화 분위기 속에 이익을 나눠 갖자는 사회적 분위기가 완연하다. 이른바 상생 바람이다. 현대차의 임금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비정규직은 차치하고 장기 불황에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팍팍하게 살아가는 중소기업 근로자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우리가 현대차의 파업 결행 수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고 하청 부품업체와 상생하는 결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 [데스크 시각] 세빛둥둥섬, 이제는 시민 품으로/한준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세빛둥둥섬, 이제는 시민 품으로/한준규 사회2부 차장

    지난 주말 12살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를 거쳐 한남대교까지 내달렸다. 반포대교 밑을 지날 때쯤 아들이 “아빠, 저 건물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NSS본부로 나왔던 멋진 곳 아냐. 지금 가볼 수 있어”라고 물었다. “아니, 지금은 못 가. 2년째 아무도 이용하지 못하고 저렇게 한강에 떠 있어. 문 열면 한 번 가보자”라고 답했다. 흉물스럽게 반포대교 밑에 떠 있는 세빛둥둥섬을 보니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그야말로 ‘섬’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딴섬처럼 됐다. 세빛둥둥섬이 임시개장되었던 2011년 5월, 반포한강공원은 한마디로 시민의 휴식 천국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한강공원과 반포대교에서 음악에 맞춰 뿜어져 내리는 달빛분수 그리고 빨강, 파랑, 초록 등 빛의 삼원색을 뜻하는 세빛둥둥섬이 어우러져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세빛둥둥섬 임시개장 기념 초대형 한강사진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던 해질녘 한강은 반포대교와 남산이 어우러져 서울의 아름다움을 파노라마 영상처럼 보여줬다. 임시개장 후 시민 16만여명이 찾았다는 세빛둥둥섬은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공연과 컨벤션, 전시기능을 갖춘 곳이다. 하지만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강르네상스 사업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세빛둥둥섬은 애물단지를 넘어 ‘전시행정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한강의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리품’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앞장서서 비난하고 나서자 시 직원 누구도 해결방안을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2년 3개월이 흘렀다. 세금이 투입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 지어진 멋진 시설이 녹슬어 가고 있다. 세빛둥둥섬의 탄생 과정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이제는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다. 박 시장과 시 직원들이 적극적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서울시가 시행사 미래 이익의 50%까지 보전하도록 계약돼 있다. 따라서 서울시가 2000여억원을 시공사에 보전해 줘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390억원의 공사비 대부분이 민간자본(서울시 산하 SH공사 128억원 출자 제외)이라며 서울시는 선을 그었지만 세금 투입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시공사는 서울시를 연대보증인 형식으로 금융권에서 사업자금을 차입했다. 사업이 망하고 시공사가 부도를 내면 채권단은 서울시에 모든 금융비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가 민간투자사업이라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 잘못된 것이 있다면 따지고 질책을 하더라도 거금을 들여 완성한 구조물은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먼저 운영을 하면서 부족하고 모자란 점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세빛둥둥섬과 한강 둔치 연결 도교 설치작업도 마무리됐다. 개장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다. 사업자와 여러 문제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 세빛둥둥섬이 다양성과 조화의 ‘세 빛’으로 자리를 찾고, 창조와 새로움을 간직한 ‘세 빛’으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한다. 또 하루빨리 1000만 외국인 관광객 시대의 서울을 이끄는 관광명소로 재탄생하길 빌어본다. hihi@seoul.co.kr
  • 번영의 독…로마를 멸하다

    “로마가 멸망한 것은 내부 분열 때문이 아니었다. 얄궂게도 로마에게 해악이 된 것은 바로 로마의 번영이었다.” ‘법의 정신’으로 저명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도시국가 로마의 탄생에서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2000년 로마사 전체를 살펴보면서 로마의 번영과 멸망의 원인을 분석한 이 책에서 한 말이다. 저술가들은 대개 로마를 패망케 한 것은 내부의 분열과 그로 인한 혼란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로마에게 분열은 필연적이었고, 그런 분열은 늘 있어 왔으며, 또 늘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로마는 정복 사업의 결과로 ‘번영’을 누리게 됐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번영이 문제였다. 그것이 온갖 분란을 일으켰고 민중의 소요를 내전으로 격화시켰으며, 로마를 이민족의 먹잇감으로 전락시키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책은 정치체제의 변화에 따라 로마의 역사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먼저 도시국가인 초기 로마를 융성케 한 왕정, 이어 왕들이 추방되면서 들어서게 된 공화정, 그리고 무정부 상태가 종식되면서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의 등장과 쇠망이다. 저자는 왕정과 공화정 체제에서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내적·외적 주요 원인들을 살펴본다. 그는 로마가 융성하게 된 내적 요인들로 전리품의 현명한 분배, 자신들의 제도보다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외국 관습의 즉각적인 수용,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을 통한 군사기술의 향상, 토지의 공평한 분배, 뛰어난 정치 지도자와 명장들의 연이은 등장, 청빈을 떳떳이 여기는 미덕, 로마인이 누린 자유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어 로마가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외적 요인들을 다룬다. 당시 로마의 주변 국가들과 적국, 특히 카르타고에 주목했다. 그리고 카르타고를 굴복시킨 뒤 어떻게 주변 민족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정복 사업을 추진했는지도 추적한다. 정복 사업과 그것이 가져다 준 번영의 폐해로 공화정이 막을 내리면서 제국의 시대로 들어선 로마는 거대해진 덩치에 맞는 체질 개선 없이 ‘제국의 자기 제어 메커니즘’이 붕괴되면서 흔들리게 된다. 로마는 ‘승리의 과잉’ 자체에서 쇠망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로마 국력의 발전과 번영, 그 다음에 찾아온 쇠망은 필연적이고도 논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 국가의 힘은 정복이 아닌 ‘국가 내부의 건강함’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결국 풍요란 부(富)에 있지 않고 도덕 속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씨줄날줄] 푸에블로호 신경전/임태순 논설위원

    미국과 북한이 푸에블로호 반환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콜로라도 주 하원은 최근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1월 23일을 ‘푸에블로호의 날’로 지정하고 결의안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연방하원 의장에게 전달했다. 콜로라도 주 의회가 푸에블로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배의 이름을 주 내에 있는 도시 ‘푸에블로’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1968년 일본을 출항, 원산항 공해상을 항해하다 영해 침범혐의로 북한군에 의해 나포됐다. 이른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다.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1·21사태’ 이틀 뒤 발생했으니 당시 북한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을 것이다. 미국은 28차례 비밀협상 끝에 그해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80여명의 선원들을 돌려받았으나 영해 침범사실을 인정하고 사과까지 했으니 국제적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셈이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북한에서 구한말 발생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함께 반미항쟁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미국 상선 셔먼호가 1866년 대동강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며 관군과 주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다 격침된 게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한국사에서는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주민들과 함께 셔먼호를 공격했다고 되어 있지만 북한 역사책에는 김일성 주석의 증조할아버지 김응우가 셔먼호를 불태웠다고 기록돼 있다. 사건 발생 100주년인 1966년에는 역사의 현장인 대동강변 쑥섬에 격침비를 세우기까지 했다. 아버지 김일성이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푸에블로호까지 나포했으니 김정일로선 가문을 빛내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선전 소재도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지시를 내려 1999년 원산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대동강으로 옮겨 주민들이 관람케 했다. 큰 함정을 어떻게 옮겼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해상으로 운송하려면 남해로 우회해야 해 미국의 감시 눈길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해해서 육로로 수송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정보함이어서 분해, 조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콜로라도 주 의회는 지난해에는 북한 측에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촉구했다. 북한은 이에 대해 “우리는 백만년이 지나도 반환하지 않을 것이며 돌려받고 싶으면 직접 와서 가져가라”는 답신을 보냈다. 핵 개발로 남북은 물론 북·미 관계도 점점 경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북한이 대미 투쟁의 전리품인 푸에블로호를 쉽게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푸에블로호의 반환은 북한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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