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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대 경제협력 사업 진척도(한·중 새 시대:5)

    ◎「황해경협」양에서 질로 급진전/항공기·차·고화질TV 공동개발 구체작업/TDX 진출 난항… ATM으로 활로 개척 발해만을 끼고 있는 천진시의 경제기술개발구.이곳 한쪽에선 오는12월 한국전용공단의 완공을 앞두고 용지정리와 변전소,가로등등 지원시설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총34만7천여만평.29만여평의 공장부지중 11만여평은 이미 22개 중소기업에 분양된 상태다. 역시 한반도의 인천을 마주보고 있는 산동성의 위해시와 청도시.이곳의 경제개발구에선 각각 34만여평,20만여평의 대지에 경상남도 전용공단이 들어서 있다.이미 몇몇 중소업체들이 공장앞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김치와 과자등 식품가공,오동나무가공,도자기 제작등을 시작하고 있다. 이들 한국전용공단들은 아직 제모습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지만 중국에 뿌리 내리는 한국기업과 한국경제를 상징한다.3∼4년전만해도 홍콩을 통한 뜨내기 중개무역이 고작이던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이제 정착단계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 대한 투자액도 92년까지의 누계가 1억4천만달러,94년 6억2천만달러에서 급속히 늘어 지난 8월말 현재 17억달러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투자지역순위에서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투자액의 증가는 물론 투자지역도 다양화되고 생산·수출기지확보를 위한 내륙지역진출이 활발하다.올들어 대우,LG상사등 종합상사들의 경우 운남성의 곤명,사천성 성도,중경,호북성의 무한등에 사무소를 내는등 내륙거점 확보에 부산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4가지 전략 산업부문에서 두나라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협력사업이야 말로 한·중 두나라의 경제협력 방향과 미래를 보여준다.항공기,자동차,고화질TV,전전자교환기(TDX)등 4개 산업을 대상으로한 이 협력사업은 두나라 정부가 틀을 만들고 기업들이 공동투자,공동생산,공동판매하는 최초의 새로운 시도다. 중국은 선진국들의 견제로 전수받을수 없는 기술과 자본을 한국에 기대하고 있고 우리는 선진국의 무역장벽으로 좁아지는 시장돌파와 자원확보가 목표다.항공기분야의 경우,부품의 최종조립장을 어디에 둘것인지를 논의하는 단계로 까지 발전돼 있다.이와함께 한·중 두나라는제3의 기술협력자 선정을 협의하고 있다. 한·중 양국이 공동으로 항공기를 개발,공동판매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일본 항공업계뿐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항공사들도 바짝 정신을 차려 진전상황을 주시하고 있다.행여 두나라가 자신들의 시장을 잠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때문이다.주중한국대사관의 정원익 상무관은 이미 『미국의 보잉사,맥도널드 더글러스사,유럽의 에어로 스페이스등이 제3의 합작사로 한·중 두나라의 컨소시엄에 참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들은 2천년대의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항공시장이 한국과 중국의 연합군에 의해 점령당할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중 두나라는 70∼80%의 합작지분을 갖고 제3의 기술협력사가 나머지 지분으로 참여,1백석∼1백20석규모의 항공기를 제작해 공동,판매한다는 계획이다.두나라는 오는2000년초 시제품을 생산하고 2010년에는 8백대분을 생산하겠다는 일정을 세워놓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상품인 자동차의 경우 부품을 공동개발하고 이를 위한 인력교환을 1차적인목표로 하고 있다.이미 지난6월말부터 두나라가 합작을 희망하는 자동차부품의 목록을 서로 교환하고 업체사이의 공동개발을 위한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고 대우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설명한다. TDX의 경우 좀 특이하다.우리가 원래 진출하려고 했던 도시형 TDX의 경우 이미 중국에는 8개기종이나 진출해 있어서 더이상 새기종의 진출을 허용치 않는다는 중국정부 방침때문에 벽에 부딪혀있는 상태이다.그래서 농촌형 소형 전자교환기나 현지 합작공장이나 수출형태로 약간씩 팔아먹고 있는 상태다.하지만 보다 기술수준이 높은 차세대전전자교환기(ATM)분야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중국의 전신과학기술연구원측과 오는 99년까지 2가지 새모델을 개발키로 하는 협약을 지난 5월에 체결하기까지 했다. 고화질TV의 경우,우리측 전자부품종합기술연구소와 중국전자공업부의 비홍전자가 협력사업의 전담기구가 돼 부품및 규격등의 표준화및 공동개발을 해나가기로 올6월말 최종합의하고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이같은 산업협력에 대해 주중대사관의 김광동 공사는 『두나라의 경제협력이 양적인 발전과 함께 질적인 협력,전략적 제휴단계로 까지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것』이라고 지적한다.중국 사회과학원의 한진섭교수도 『산업협력의 진전에 따라 발해만지역을 중심으로한 두나라의 경제공동체로서의 발돋움이 한층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주석 한방의미와 한반도 정세/한승주 전외무 인터뷰/접촉분야 확대… 대등한 관계로 전환 한승주 전외무장관은 13일 중국의 지도자인 강택민 주석의 방한과 관련,『한중 두나라의 관계가 이제 대칭적이고,포괄적인 관계로 상승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고려대 교수인 한전장관은 이날 하오 인촌기념관 5층 연구실에서 2시간여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강주석 방한에 따른 외교적 의미와 향후 한·중및 대북관계등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강주석의 방한이 갖는 가장 큰 외교적 의미는. ▲수교이후 두나라 사이에 지도자급 인사들의 교류가 꾸준히 있어왔다.김영삼 대통령과 이홍구 총리,저쪽에서는 이붕 총리와 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상호 방문한 바 있다.강주석이 방한함으로써 지금까지 경제에 비중이 컸던 두나라의 관계가 이제 정치·외교·안보문제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본다.그런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할수 있다. ­중국은 정치·군사는 북한,경제는 한국이라는 이분법으로 한반도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데 예상되는 변화는.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 정·경분리라는 이분법의 용어를 쓰고있는데 관념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불가능하다.우리의 대중국 투자액이 올해 1백60억달러(한화 12조8천억원)에 이르는등 경제관계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안보관계가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다만 북한과는 교역량이 미미하고,오히려 북한이 중국의 원조를 받는등 상대적으로 비경제분야인 정치·군사부분이 커보였을 뿐이다.절대적으로 본다면 우리보다 밀접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그렇다고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과 북한 사이에 지난 61년에 체결된 우호조약의 부분수정등을 당장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경제분야에서 자동차·중형항공기합작사업등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는데. ▲중형항공기 합작생산은 합의의 단계까지 진전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자동차 부분에 있어서는 중국의 기본정책(3대3소:크고 작은 자동차의 세계6대 생산국과의 합작생산정책)이 변하지 않는한 부품생산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자동차업계가 자동차 생산에 직접 참여하길 기대한다. ­일부에서는 강주석의 방한이 대만과 접촉하려는 북한에 대한 압박용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일단은 「불가근 불가원」으로 생각하고 있다.중국이 북한­대만과의 접촉및 북한의 개혁·개방에 관심을 갖고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강주석의 방한은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옳다.대북 압력이라기 보다는 꽤 오래된 계획의 하나이며,한중 두나라의 정해진 수순을 단계적으로 밟고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강주석의 방한시점이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기인데,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최근 중국을 다녀왔는데 중국의 최대 관심은 미국과의 관계,나아가 일본의 향후 위상등에 쏠려있었다.중국도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 불만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있다.그러나 중국이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우리와 공동전선을 펴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이려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및 외교안보 차원에서 한중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하는지.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잡아 가고있다.앞으로 경제면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본다.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의 세 축을 균형있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무장관시절 소동파의 한시를 화제로 삼을 만큼 강주석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강주석은 훨씬 정치력과 무게를 지니고 있다.국내정치는 물론 경제·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또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있기 때문에 계속 지도자의 위치를 지키리라고 본다.
  • 한국과 미국의 아시아정책/찰머스 존슨 전 버클리대교수(해외논단)

    ◎미,21세기 「동아 세력균형」 노력을/미군주둔 한계… 중·일·아세안 「힘의 안배」 필요/통일한국이 완충역으로… 미 안보지원 절실 미국 아시아전문가로 미·일정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찰머스 존슨 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미국의 권위있는 보수계 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최근호에다 「한국 그리고 미국의 아시아정책」을 기고,남북한통일문제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등을 따졌다.이를 요약한다.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에는 책임이 없다면서 중국과 더불어 이곳의 분단상태에 아주 느긋해하고 있다.한반도 통일에 조그마한 진전이라도 있는 기색이 있으면 그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만약 미국이 한국에서 다시 한번 군사력을 사용해야만 할 경우 일본이 예상대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다면 미·일 동맹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반도분단,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장래 한국이 차지할 위치 등에 일본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입장 또한 불분명한 데가 없지 않다.옛 소련과 함께 미국은 한반도 분단에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지만 이 사실은 오래전에 망각되어 버렸다. 한국의 첫 식민통치국이라 할 중국은 한반도 현상태에서 가장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중국은 옛날의 삼국시대와는 달리 한국과 북한 양쪽 모두와 외교관계를 트고 있는데 한국이 중국·러시아·일본 사이의 완충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는 지금같은 분단구조에 머물러있기를 중국은 바란다.그래야만 중국은 한반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얼마전까지 중국의 최대 걱정은 북한이 경제적 고립과 이념의 시대착오성으로 붕괴,통일한국이 출현하는 것이었다.그럴 경우 한국은 옛 서독만큼이나 커지면서 그와 똑같이 부국이 될 잠재력에다 핵무기를 가진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서 동북아시아 정치에서 독립적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걱정되었다. 그래서 중국은 결국은 국외자인 미국이 일면 한국을 보호하고,일면 북한체제를 경제적으로 지탱시켜주는 이중역할을 수행하는 걸 계속 지켜보는 위치이기를 원한다.특히 미국이 북한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그 실제적인 부담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을 즐기면서 바라보고 있다. 러시아는 더 이상 한반도 상황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다. 지금처럼 모든 나라가 외교에서 딱 부러진 자세를 가질 수 없는 애매모호성의 시대에서 한국과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의 방정식을 생각하면 미국과 일본은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중국은 최대 상수이다.중국은 현상태의 영원한 고착을 원한다.즉 「통일도 없고 전쟁도 없기」 정책이다. 중국·일본 그리고 한국은 지난 핵사태 때 나타났듯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또 일본은 유사시 한반도의 군사력 사용필요시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여기에서 미군의 일본주둔을 재고할 필요가 생긴다. 지난해 10월 제네바,올 6월 콸라룸푸르 회담을 통해 미·북한은 53년 휴전협정 이후 한반도에 관한 가장 중요한 협상을 마무리했다.장래 전망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차이점이 노출되었는데 이 사실은 미국보다는 한국과 일본에서 더 공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올 초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이 현상유지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강력 피력했다.특히 동아시아 장래와 관련해 일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는데 이는 일본의 한반도 군사개입 전망과 주한미군 문제 등과 얽혀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한편 한국과 일본의 장래는 분명해 보인다. 10년이나 15년뒤 한국은 통일국가가 되어있을 것이며 일본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완전하게 무장한 나라일 것이다.모두다 더이상 안보를 위해 미군에 의존하지 않는다.이는 대세이며 한국과 일본 국민들이 얼마나 빨리 이 새 현실에 적응하느냐가 관심사일 따름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은 이 지역에서 미군의 영구한 주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력간의 균형이 잡히면서 이뤄진다.이의 구체적인 전개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으나 중국·일본·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간에 힘의 밸런스가 잡히는 모습이 가장 가능성 있다.이때 특히 통일한국과 베트남이 중요 완충지대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는 지난 19세기 유럽에서 폴란드와 벨기에가 해낸 역할에 비견된다.이 균형잡기에 기여하기 위해서 미국은 한국과 베트남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한편 다른 3대 축에다 힘을 고루 안배하야 한다. 현재로 되돌아와서 미국은 한국·일본·중국이 각각의 난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유일 슈퍼파워」 노릇을 하려고 들면 안된다.이는 한손으로 손뼉을 치려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냉전의 종식과 함께 모든 분쟁은 국지적이 돼 슈퍼파워만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적 규모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 “유럽­아시아 관계증진 양측에 이롭다”(해외논단)

    ◎조지워싱턴대 학장 해리 하딩­런던대 강사 데이비드 샴보 공동칼럼/아시아,미국 제치고 유럽 최대 무역파트너로 등장/「유럽­아시아 정상회담」 APEC수준 발전시켜야 아시아·유럽 정상회담 개최 등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해리 하딩 조지 워싱턴대학 국제문제 엘리어트 스쿨 학장과 데이빗 샴보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학원 중국정치학 강사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다음은 그 요지. 유럽은 아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이러한 사실은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유럽­동아시아 회의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이 회의에는 양 지역에서 7백명이상의 각국 관리들과 회사간부들이 참석,유럽의 관심이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유럽연합(EU)의 아시아 진출은 미국과 많은 아시아국가들과의 무역및 외교관계가 긴장상태에 놓여있는 것과 때를 맞추어 이루어지고있다.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대결적 자세 특히 무역협상에 있어서의 그런 자세는 유럽의 보다 유화적인 정책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유럽이 인권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면서 상업적인 기회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있는 반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가 일차적인 목표인 것같이 보인다.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유럽위원회에서 발표한 정책문서에 적시된 통합적 장기전략으로부터 나온다.유럽위원회의 94년도 「새 아시아 전략」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유럽의 상업적 외교적 존재를 강화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그 결과로서 일본·한국·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구상을 다루는 유럽연합의 정책논문들이 올해말 발행될 것이다. 워싱턴은 이러한 유럽의 정책논문에 대응할 만한 것들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관된 정책도 없는 것같이 여겨진다.미국방부의 동아시아 전략보고서만이 유럽의 그것들에 근접할 뿐이다. 클린턴 미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통합적인 장기적 전략이 없기 때문에 의회에 의해 마련되고있으며 불충분한 정보와 단기적인 시각에 따라 정책명령이 내려지고 있다. 내년 3월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첫번째 유럽­아시아 정상회담(ASEM)을 열기로 한 것은 두 지역의 지정학적인 간격을 좁히는 주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그 정상회담은 15개국의 유럽정상들과 10개 아시아 지도자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아마 97년에 두번째로 열릴 회담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할 것같다. 유럽지도자들은 ASEM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유럽은 동아시아에 대한 무역및 투자에 있어서 오랫동안 미국에 뒤져왔다. 이제 유럽의 은행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이윤을 담보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보다 확고한 위치를 얻으려하고 있다.아시아는 10년전 유럽을 제치고 미국의 주요 무역파트너로서 부상했다.또한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전체 교역량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을 능가했다. 유럽은 아시아에 대한 낮은 수준의 지식을 개선하고 싶어한다.과거 유럽은 아시아에서 광범위한 식민지를 갖고있었으나 오늘날 미국과 비교할 때 아시아전문가가 부족하다.런던대학의 동양·아프리카 대학원이 유럽에서 아시아에 관한 광범위한 전문적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일 정도이다.미국은 이같은 기관을 적어도 9개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그것의 15개 회원국들은 아시아와의 교역증진,문화적·학술적 교류의 증진등을 위한 보다 많은 기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유럽은 워싱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금융서비스에 관한 합의등 동아시아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은 아시아와 대등한 파트너십을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은 미국의 지도력이라는 전제하에서의 「관계」를 고집한다. 유럽의 아시아와의 교역량은 절대적인 측면에서는 증가했다.그러나 아시아의 외국과의 교역에 있어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많은 아시아지도자들은 최근의 유럽의 구상을 환영하고 있다.아시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질때 이러한 구상들은 미국이 남긴 공백을 메울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는 유럽카드를 이용하는 「조작적 정책」을 추구하지 말고 유럽과 미국사이의 중심적 위치에서 삼각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 해야할 일은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만약 워싱턴이 유럽의 접근방식중 좋은 것들을 받아들인다면 워싱턴은 훨씬 더 확고한 경제적·전략적·역사적 토대로부터 아시아를 계속 다루어 나갈 것이고 시장확대와 영향력증대를 위한 유럽의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은 발전하고 있는 유럽­아시아 축을 「제로 섬」의 견지에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확실히 미국과 유럽의 연결이 아시아 어느 누구와 비교해봐도 더 지속적이고 제도화 돼있다.유럽과 아시아의 관계증진은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 “군산∼대전·청주 「금강운하」 파자”/세종연 제의

    ◎5천t급 바지선 운항… 중·일과 직교역/물류비절감… 내륙 균형개발 기여/기술·경제적 타당성 있어야/건교부 서해안에서 금강을 따라 대전·청주를 잇는 「금강운하」(대청운하)를 건설,경부축에 걸리는 물동량 부하를 줄이고 중부내륙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세종연구원(이사장 주명건)은 16일 내놓은 「금강운하의 필요성과 타당성」이라는 보고서에서 『대전시는 인구 1백18만명의 도시로 교통의 요지일뿐 아니라 충남북을 합하면 인구가 4백50만명이나 되지만 인구 중심이 내륙에 있기 때문에 인구 중심을 세계와 직결시키는 내륙운하와 내륙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금강의 대부분은 해발고도가 40m 미만으로 4대 하천 중 가장 낮아 운하로 개발하는데 이상적이라고 지적,금강운하가 건설되면 5천t급 바지선이 부산이나 아산 또는 인천항에서 환적한 화물들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의 항구와 직접 교역할 수 있게 돼,대전 및 청주지역이 동북아의 새로운 전략적 요충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금강운하의 건설방안과 관련,금강하구둑에서 금강과 미호천이 합류하는 동면의 합강리 지역까지 1백10㎞에,그곳에서 다시 대청댐 하류와 갑천이 합류하는 대전 문평동 신대들과 청주의 미호천교까지 2개 지역을 동일하게 16.5㎞씩 건설,전체 길이는 1백26.5㎞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건설비는 폭 50m로 할 경우 5천억원 정도가 들지만,운하건설시 생기는 5천2백억원의 골재수입과 5천4백억원의 부지판매 수입으로 총 1조6백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운하건설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고 밝혔다. 금강운하가 건설되면 금강유역의 홍수방지와 용수확보,주변 관광자원의 개발 및 물류비 절감 등을 통해 충청권의 조화롭고 균형있는 지역개발 및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관련,건설교통부 하진규 수자원심의관은 『운하가 운용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일정수준의 물의 양이 필요하고 새로운 댐건설까지 요구되는 만큼 이에 따른 기술적인 타당성과 경제적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건교부가 세종연구원과 이미 발표했던 낙동강·한강을 잇는 운하계획에 대해 먼저 타당성 조사가 필요한지의 예비조사를 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 대우,정보통신사업 본격 진출/사업단 출범

    ◎국제전화·개인휴대통신 참여 대우그룹이 정보통신 분야를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선정,본격적인 발진태세를 갖췄다.이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본격 개막에 대비하고 정부의 통신사업 자유화 방침에 발 맞춘 것으로 대우는 16일 「대우 정보화 통신사업단」을 공식 출범시킨다. 이 사업단은 계열사 연합형태로 운용될 계획으로 단장에 비서실 박용근 사장,부단장에 김천명 대우통신 상무를 각각 임명했다.또 (주)대우와 대우통신,대우전자,대우정보 시스템,고등기술연구원,대우경제연구소 등 6개 계열사에서 30명의 핵심요원을 전담팀으로 파견시켰다.그동안 각개격파 식으로 산만하게 운영돼 힘의 분산을 일으켰다는 반성을 토대로 정보 통신 사업을 통합적으로 추진할 엔진을 만든 셈이다. 이 사업단은 그룹 내 신규 통신사업이 본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비서실 소속으로 운용될 예정이며 통신사업의 시장조사 및 기술전략,사업계획을 수립하게 된다.사업단은 먼저 처녀작으로 국제전화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을 선정,구체적인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또 첨단 통신사업 부문에 대한 향후 시장전망과 국내외 유력업체와의 전략적 제휴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현재 대우그룹이 추진중인 통신관련 사업은 대우통신을 축으로 유선통신과 광통신,컴퓨터,레이더 사업을 비롯해 (주)대우가 추진중인 국제전화사업과 대우정보 시스템이 추진하는 부가가치 통신망사업 등이 있다.
  • 「정치 대국화」의 집념(일본 21세기 야망:5)

    ◎ODA 무기로 아주지도국 꿈꾼다/중·태·비·인니등에 93년 1백12억달러 차관/막강한 외교력 바탕,아주 집단안보체제 구상/“국제지위 향상에 미도움 필요”… 「워싱턴」 활용 전략 『거대한 경재력은 그 자체가 정치적 영향력이다』 드 골 전 프랑스대통령의 이 말 속에는 유럽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던 당시 서독에 대한 경계가 함축되어 있었다.2차대전 종전 50년.드 골 전 프랑스대통령의 말은 같은 패전국 일본의 오늘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경제적 슈퍼파워 일본이 지금 경제력을 국제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수·우익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일본은 존재 자체가 세계질서에 영향을 줄만큼 거대화됐다」고 말한다.일본의 뉴리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진당간사는 그의 저서 「일본개조계획」에서 『일본은 세계의 대국이 됐다.일본은 대국으로서의 책임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냉전 후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일본의 국제적 위상을 높혀야 한다는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고있다.일본은 21세기 대국을 만들기 위해 정치·외교력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대외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대외전략의 무기는 일본의 거대한 경제력이며,그중 정부개발원조(ODA)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조일)신문은 지난 4일 『중국의 양자강 물을 북경까지 끌어오는 세계 최대의 대운하가 건설된다』고 보도했다.그러한 야심적인 중국의 국가사업도 엔차관의 지원으로 건설된다.중국은 93년 일본의 ODA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됐다.그전까지는 인도네시아가 최대의 수혜국이었으나 중국이 93년 13억5천만달러의 ODA를 받으며 최대 수혜국으로 부상했다.인도네시아는 11억4천9백만달러로 2위,그 다음은 필리핀(7억5천8백만달러),태국(3억5천만달러)등의 순위다.한국도 70년도에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두번째의 많은 ODA(8천6백만달러)를 받았었다. 일본은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복지향상,환경·인구·AIDS대책 등 세계적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ODA를 제공하고 있다.이에따라 지구촌 곳곳에는 ODA지원에 의한 각종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그러한 일본의 ODA지원은 89년 이후 계속 세계 1위다.93년 ODA 총액은 1백12억5천8백만달러.일본은 개도국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원조를 위해 93∼98년간 제5차 ODA를 4차(88∼92년)보다 무려 50%나 늘어난 7백50억달러로 책정,추진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ODA는 단순한 원조가 아니다.일본정부는 ODA로 사회간접자본의 건설 등을 지원하고 일본기업은 그 나라에 산업투자를 강화한다.국익을 위해 ODA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ODA는 특히 국제정치무대에서 일본의 외교력을 강화하는 최대 무기다.일본의 과거 침략적 이미지를 엔의 위력을 빌어 좋은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한편 국제적 위상과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외교의 첨병인 셈이다. ODA를 많이 받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아세안 국가들은 일본의 국제적 역할 증대와 유엔상임이사국 진출 등을 앞다투어 외쳐대고 있다.일본의 정치대국화 시나리오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아시아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ODA는 일본의 아시아 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그들이 받는 원조의 절반은 일본에서 나오는 엔이다.아시아를 비롯한 개도국 지도자들은 분주하게 일본을 찾고 있으며 도쿄는 많은 개도국에게 차관·원조·투자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일본외교의 또다른 축은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과의 관계이다.일본의 대외전략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일본은 미국의 세계전략 테두리 안에서 보완적 역할을 해왔다.미·일간의 이러한 관계는 옛소련의 팽창주의을 막는 금세기 최강의 안보동맹적 기능을 해왔다.일본은 그러나 경제 뿐만아니라 정치·안보분야에서도 국제적 역할의 확대를 점진적으로 모색해왔다. 미·일동맹관계는 이러한 일본의 국제적 역할 증대의 보호막 기능도 해왔다.미국은 세계 지도국으로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본의 역할증대를 지원해 왔다.그러나 냉전 후 국제질서가 경제중심으로 바뀌며 미·일간에는 안보적 동맹관계가 중시되면서도 경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새로운 현실이 나타났다. 양국간의 무역마찰은 좀처럼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세계의 성장센터라는 아시아시장을 둘러싸고 사실상의 경제적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다.일본은 미국이 최대의 시장이며 유엔이나 국제무대에서 지위향상의 지원자 역할 등을 하는 가장 중요한 파트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은 여러분야에서 경쟁상대이지만 국익을 위해 「미국 활용전략」을 추진 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 후 일본에는 미국을 글로벌 파트너로 중시하면서도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일본지도자들은 아시아를 자주 방문하며 아시아판 집단안보체제를 기회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있다.일본은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등 세계정치에서의 역할 증대와 함께 지역 지도국가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외교전략을 적극화하는 것이다.조셉 나이 전 하버드대 교수도 『일본은 에너지를 아시아지역에 적극 투자하는 지역주의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의 존재는 국제관계에서의 힘의 개념이 정치·군사적 중심에서 경제력 중심으로 바뀌며 그 중요성이커지고 있다.국제안보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군사력보다는 환경·인구·마약·개발 등과 같은 범세계적인 이슈로 대체되면서 강력한 경제력을 갗춘 일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일본은 그러한 시대 흐름을 배경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주도적 역할을 도모하려는 외교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일본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동북아 21세기 “군비경쟁 시대”/불지 특집서 전망

    ◎중국 패권 추구… 주변국 위기의식 자극/북 핵보유 확인땐 일·한도 개발 불가피 21세기에는 중국의 자극으로 동북아지역국가들이 군사력증강에 열을 올리게 될것이라고 프랑스의 주간 「르 누벨 오브제봐테르」지 최근호가 보도 했다. 오브제봐테르는 발라뒤르총리의 중국방문에 즈음한 중국특집판에서 『동북아의 위기요소는 수없이 많다』고 전제,그 가운데서도 중국의 군사력과 북한의 핵문제가 대표적인 두가지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중국이 동북아지역에서 헤게모니(패권)를 잡으려 하고 있으며 이지역 국가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결국 최상의 군사력 확보에 나설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특집기사 요지. 주변정세를 보면 미국은 여전히 막강한 경제·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역안보에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러시아는 구소련 붕괴 이후 동북아지역에서 후퇴해 있고 그들의 태평양함대는 연료도 작전계획도 없이 주둔만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중국이 패권을 잡으려고 꿈틀대고 있으며 일본은 그들의 옛 경쟁국의 급성장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지역패권 징후는 아직 한반도를 축으로 한 동북아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러나 중국은 베트남과의 사이의 남중국해에서 전략적인 해군의 통제권을 갖기 시작했다.이곳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가 개발되지 않은 채 매장돼 있다. 중국은 일본및 대만등 주변국과 섬들을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92년 제정한 법령에 문제의 도서들을 자국영토로 기록해 놓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궁극적으로 이들 섬을 중국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기도이다. 또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사찰거부가 동북아안정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북한의 핵개발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일본의 핵보유를 촉진할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본은 몇주일이란 짧은 기간에 핵무기를 만들어낼수 있을 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한국과 대만도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개발계획을 추진하게 될것이다. 중국은 동북아지역에서 핵무기가 확산되는 문제보다는 오로지 이 지역 패권을 쥐기위한 잠재력 확보에만 관심이 있다.중국은 따라서 그들의영원한 동지인 북한과 핵문제를 둘러싸고 분쟁에 휩싸이는 일은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경제력이 약한 「대국」중국이 이지역 최강국이 된다는 것을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국가들은 불안요인이 커지는데 대한 군사적 대비를 서두를 태세다.
  • “선진국 무역·관세제도 적극 도입해야”/국회 UR공청회 지상중계

    ◎자본·기술집약 농업 전력적 개발 시급/농업복지정책,구조개선과 연계 추진/기업적 가족농 중점 육성… 재벌 영농참여 배제를 국회 우루과이 라운드(UR)대책특위는 20일 농·축·수산업 관련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학계등의 전문가들을 초청,공청회를 열어 앞으로의 농정방향등에 대해 논의했다.주제발표자들의 발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호선농협중앙회장(UR이후 농업·농촌발전 방향과 농협의 대응)=기업적 가족농을 중점 육성하고 재벌기업의 영농참여는 배제되어야 한다.농민후계자에 대한 교육과 자금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농지의 대규모화를 추진하고 자본·기술집약 농업의 전략적 개발과 기술혁신이 시급하다.우량농지를 확보하고 임대차 활성화 및 농지신탁제도의 도입등 농지거래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농가피해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양정을 개선해야 한다.청과물의 유통구조가 개선되고 농업금융의 활성화가 절실하다.농산물 밀수단속 특별법 제정등 수입관리제도를 강화하고 산업피해구조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농촌특별세외에도 무역특계자금이나 담배인삼공사수익금을 농업부문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농협은 단위조합의 광역·합병을 추진하는등 개편이 요구된다. ▲정영일농촌경제연구원장(UR이후 농어촌정책의 기본방향)=농업,농촌,농민정책을 정책대상별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농업은 전문화와 품질고급화,고부가가치의 가공산품개발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농촌은 다양한 2·3차산업이 들어올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도시수준의 생활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농민복지정책은 구조개선과 연계되어 추진되어야 한다.농업인력정책은 「농업경영체」육성으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영농조합법인과 위탁영농회사를 「농업생산법인」으로 일원화하고 엘리트 농업교육체제를 도입해야 한다.유통개선,연구개발투자등 간접지원방식을 적극 개발하고 농작물보험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송찬원축협중앙회장(UR극복을 위한 축산업 육성방향)=국내 축산업은 생산감소와 가격하락에 따라 2000년까지 5조6천5백60억원에 이르는 피해가 전망된다.특히 쇠고기는 3조여원,돼지고기는 2조3천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유가공품 수입급증으로 국내 낙농업 역시 타격을 받을 것이다.정부가 분명한 축산정책을 제시,최소한의 양축농가 수를 유지해야 한다.축산물 생산 원자재에 대한 추가적 세제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축산폐수처리 시설비를 전액 보조해 주어야 한다.도축장의 현대화와 공영화를 이루고 생산자단체의 가공·유통기능을 강화해야 한다.수입동식물 검역기준과 농약,중금속등 잔류허용기준치를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농가부업 축산에 대한 비과세범위를 확대해야 하며 축사시설에 필요한 인·허가 사항을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 ▲김성훈중앙대교수(UR협상의 평가와 향후 대책)=앞으로의 UR협상전략을 심각하게 대처해야 한다.대외적으로는 쇠고기·감귤등 BOP품목에 대해 오는 2월15일로 예정된 최종이행서 제출 때 공란으로 기재하고 한미간에 재협상을 실시해야 한다.슈퍼301조,반덤핑제도,수출보조금이 지급되는 농산물의 수입금지,방역검역검사제도등 선진국의 각종 무역제도와 관세 및 비관세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UR가 허용하고 있는 긴급수입제한조치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방안마련이 시급하다.대내적으로는 상공자원부 산하의 무역위원회를 중립적인 총리실 또는 국회산하로 이관하고 준사법적 기능을 갖는 독립기구로 승격해야 할 것이다. ▲황인정한국개발연구원장(UR이후 경제정책기조와 농정의 대전환)=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국민대응이 요망된다.대내적 조정정책의 기본방향은 산업 경쟁력의 제고·규제완화·자율화보장·외국과의 산업협력 및 제휴·취약구조 재조정등으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구조조정은 시장원리에 입각한 산업합리화를 추진해야 한다.농산물시장은 우리 쌀 생산비가 외국보다 3배이상 높기 때문에 구조개선이 불가피하다. 기존 농정의 한계를 탈피하고 농업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농업의 대내적 개방부터 서둘러야 한다.
  • 21세기 대비한 과기처의 핵심기술개발 정책(국정탐방)

    ◎G7프로젝트로 과기선진화 발진/11개 주요과제 내용/첨단반도체 등에 3조7천억 투입/2천년까지 산·학·연 공동으로 개발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세의 변화로 국제사회 주도권 장악의 수단이 종래의 군사력 위주에서 경제력 위주로,그리고 근원적으로는 기술력 위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경제를 회생시키고 산업경쟁력을 키우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생존·번영과 국민 복지수준의 향상을 주도하는 필수적인 원동력이 될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의 주요관심도 핵심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개발된 기술의 후진국 이전을 기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개발된 기술에 대한 선진국들의 계획적이고 집단적인 기술보호주의가 극명하게 표면화되고 있다. 그예로 OECD는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을 국제무역질서를 왜곡시키는 원인이라고 규정,이의 규제를 검토하는 과학기술정책 실무위원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유엔환경개발회의는 지구환경보전이라는 명분을 이용,개발도상국들에 대한 기술및 통상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같은 선진국들의 움직임은 일본을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후진국을 선진국대열에 올려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과학기술의 차단을 통해 그 의지를 실현하려는 국제적인 행동으로 이해된다. ○기술보호주의 대응 G7프로젝트는 이같은 국제기술환경에서 우리의 자존과 독립 자율을 지키고 나아가 우리가 7대기술선진국으로 진입할수 있는 원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립된 범국가적 기술개발사업이다.G7프로젝트는 또한 국제수지 적자로 회생여건이 불투명하던 90년 우리경제의 활로개척과 국제경쟁력 회복의 근본적 대책으로 지적됐던 기술개발 명제에 부응하는 길이기도 했다. 올해부터 2000년까지 정부·민간협동사업으로 추진될 핵심선도기술개발과제 G7프로젝트는 초고집적반도체 개발등 11개과제로 구성돼 있다. 즉 「현재 경쟁력이 있는 산업기반을 토대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세계 최고수준으로 도약할수 있는 기술분야」에서 ▲96년까지 2백56메가D램개발및 97년까지 주요반도체장비및 소재국산화의 기반조성을 목표로 하는 초고집적반도체 개발 ▲96년까지 정보통신용 교환기 개발및 2001년까지 종합정보통신망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 광대역 종합정보통신망 개발 ▲93년까지 시제품 개발과 94년까지 양산화를 목표로 한 고선명TV(HDTV)개발 ▲97년까지 2∼3개의 신물질제품 개발을 목표로 하는 신의약·신농약기술 개발이,선진국에서도 아직 전면적인 실용화단계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하면 21세기에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한 기술분야에서 ▲98년까지 통합생산시스템(CIM)및 2001년까지 완전자동화 지능생산시스템기술을 개발해 5백%의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첨단생산시스템 개발이,경제산업의 발전에 대한 파급효과와 국민생활의 질적수준 향상을 위해 반드시 확보돼야 할 필수거점기술분야에서 ▲2001년까지 고기능·고효율·고부가가치의 첨단소재 국산화를 목표로 하는 정보·전자·에너지첨단소재기술 개발 ▲97년까지 생물신소재 실용화 기반구축을 위한 신기능 생물소재기술개발 ▲96년까지 50㎾급 연료전지개발및 2001년까지 석탄가스화 복합발전기술을 위한 신에너지기술개발 ▲97년까지 원자력발전소 개념설계및 2001년까지 상세설계기술 확보를 위한 차세대 원자로기술개발 ▲96년까자 시속 1백20㎞ 성능의 상업용 승용전기자동차기술개발을 위한 차세대자동차기술 개발▲97년까지 환경기반기술 구축을 목표로 하는 환경공학기술 개발등이 각기 과제로 채택된 것이다. 이들 과제는 3.2대1의 공개 경쟁을 거친끝에 산·학·연 공동연구 수행기관이 선정돼 올해 하반기 대부분의 연구가 착수됐다. ○59개 연구소 등 참여 G7프로젝트에는 1백26개 세부과제에 59개연구소,13개대학,54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2001년까지 정부 1조4천7백억원,정부투자기관 5천9백억원,민간기업 1조6천4백억원 등 총3조7천억원이 투자될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한 재정 기반조성 대책으로 국가과학기술투자를 90년 현재 국민 총생산의 2.2%에서 2001년까지 5%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아래 92∼96년중 과학기술진흥기금을 1조원 규모로 조성·운용하고 국방비중연구개발투자를 91년의 3% 수준에서 2000년대초 7%수준으로 제고하며 정부투자기관이 매출액의 일정률을 기술개발에 투자토록 유도하고 있다. ◎특정연구사업 성과/82년 시작… 64CD·우리별1호 등 큰 결실/10년간 산업재산권 등 2천여건 실용화 국내 최초의 국가기술개발사업인 G7프로젝트는 10년전부터 시작된 「특정연구개발사업」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특정연구개발사업」은 한정된 연구개발자원을 효율적으로 결집 활용하고 산·학·연간의 협동과 기술개발관련부처의 협조아래 국가발전목표에 따른 중장기 국책과제를 중점 개발해나가는 국책연구개발사업이다. 「특정연구개발사업」이 도입되던 80년대는 외국의 자본이나 기술에 의존하던 60,70년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도약을 준비하기위해 효율적 국가연구개발체제의 확립이 중요한 정책과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이에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통폐합및 운영체계 일원화조치를 단행한데 이어 82년 새로운 연구개발사업체제로 특정연구개발사업을 신설,국책적 차원에서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특정연구개발사업에는 82년부터 91년까지 10년동안 정부에서 5천7백30억원,민간기업에서 3천9백3억원등 총9천6백33억원이 투입돼 2천5백60건의 연구개발이 진행됐으며 올해에도 정부 1천3백억원,민간기업 7백18억원등 총2천18억원이 추가투입되고 있다. 그 결과 특정연구개발사업은 반도체 4메가D램,전자교환기 TDX와 같은 숱한 첨단·기반기술 개발성과를 이룩해냈을뿐만아니라 민간기업 기술개발투자의 기폭제역할을 수행하는등 국가연구기반 확립에 단단한 기여를 했다. 특정연구개발이 그동안 이뤄낸 성과를 통계로 보면 82년부터 91년까지 10년간 기업화완료 2백31건,기업화 추진 2백86건,국내외 산업재산권 출원 1천2백11건,국내외 산업재산권 등록 3백90건등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특정연구개발의 성과는 개발기술의 면면을 살필때 훨씬 실감나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87년도의 16비트·32비트 컴퓨터 국산화와 91년도의 행정전산망용 중형컴퓨터 개발이 모두 특정연구개발사업의 소산이다.행정전산망용 컴퓨터는 현재 1백76대가 일선에 보급돼 주민등록 부동산 차량등록 통관업무등 민원을 우리기술로 처리해내고 있다. 또 우리나라를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반도체 생산국으로 부상시킨 반도체기술 역시 86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금성·삼성·현대 공동의 4메가D램 개발에서 비롯된 것으로 91년 16메가D램,92년 64메가D램 개발등 후속타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세계에서 6번째로 개발된 전전자교환기 TDX10은 91년과 92년 사이에 3천3백13만달러어치의 수출을 기록,앞으로 국내 수출업계의 「효자노릇」이 기대되며 신소재분야에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코오롱이 공동개발한 아라미드 펄프는 석면대체용으로 연간 2백만달러의 수입대체효과가 예상되고 있다. 이밖에도 반도체도선용 리드프레임(한국과학기술원·(주)풍심금속),디스토마치료제 프라지콴텔(한국과학기술연구원·신풍제약),무공해살충제(유전공학연구소),「우리별1호」(한국과학기술원·항공우주연구소등)등이 특정연구개발사업의 결실들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미국·일본·독일·프랑스등 세계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기술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연구여건도 어렵다.따라서 특정연구개발사업중에서도 승산높은 소수의 전략기술을 선별,총력전을 전개해야만 과학기술선진7개국권을 넘볼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됐으며 이에따라 G7프로젝트가 특정연구개발사업의 최우선과제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국책연구 정권 바뀌어도 계속”/생존전략 차원… 별도예산 운용/김진현 과학기술처장관(인터뷰) 「김진현장관」하면 G7프로젝트를 연상할만큼 김장관의 G7프로젝트에 대한 집념은 강하다.「우리도」가 아닌 「우리만」의 독창적인 기술개발,「기술주권확립」,「전쟁에 우방은 있어도 기술에 우방은 없다」는 말들은 그가 연구현장에 갈때마다 G7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할때 사용하는 그만의 수사들이다.김장관은 『우리만의 독창기술확보는 향후 국가생존의 관건』임을 재삼 강조하며 『이를위한 최소한의 목표인 G7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시켜한다』고 말했다. ­G7프로젝트만 성공시키면 G7국가가 될수 있는것 입니까.▲솔직히 현재 우리수준에서 2000년까지 모든 과학기술분야를 G7수준까지 끌어올리기는 어렵습니다.G7프로젝트는 적어도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특정분야에서만은 세계수준의 기술을 확보,그 핵심주력기술을 축으로 해 관련기술의 개발을 선도하고 촉진해가자는 전략적인 개념입니다.선정된 11개 개발과제의 성공여부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선진국진입을 좌우하게 될것 입니다. ­후발국인 우리나라가 선진국진입을 노리기에는 선진국들의 기술보호주의가 너무 강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선진국들은 자기들끼리는 똘똘 뭉쳐 핵심기술을 개발해내면서 개발기술에 대한 후진국이전은 기피하고 있습니다.또 OECD는 기술개발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국제무역질서를 교란한다며 이를 규제하려하는등 더이상의 후발국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기술보호주의에 대처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자와 국민 스스로가 「혼」과 「생명」을 바쳐 국가기술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 다음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선진국기술의 철저한 모방,러시아와 같은 기술이 열려있는 국가와의 국제교류,전략적인 과제에 대한 집중적인 노력들이 경주돼야 합니다. ­G7프로젝트는 91년 첫 발표때보다 과제수도 줄어들고 예산규모도 축소돼 관심이 식어가고 있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계획단계에서 실천단계로,총론에서 각론으로 옮아가다보니 그런 느낌을 주는것입니다.정부는 앞으로 2000년까지 정부재정에서 1조5천억원,정부투자기관에서 6천억원,민간기업에서 1조5천억원등 총 3조7천억원을 투입해 과제를 성사시켜나갈 계획입니다. ­정권이 교체될때마다 과학기술정책이 바뀌던 과거 전례에 비추어 G7프로젝트의 연속성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G7프로젝트는 「특정연구개발사업」이라는 별도예산항목을 가진 국책연구사업입니다.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추진될것입니다.당장 경제기획원이 주관한 93년도 경제운용계획에도 역점사업으로 잡혀 있습니다. ­연구소통폐합,연구소인원조정등 잇따른 변화로 정작 G7과제를 수행해야할 과학기술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입니다.이들의 사기진작책은 있습니까. ▲연구원들이 안정된 연구분위기에서 창의적인 연구활동에 전념할수 있도록 재정지원,시설지원,복지수준 향상등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연구원들은 자신의 두 어깨에 우리의 생존과 발전이 걸려있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연구에 전념해주시기 바랍니다.
  • 여,“국가발전의 축 영남서 서해안 이동”/지원유세 이모저모

    ◎“국가의 얼굴 서울서도 안정의석”호소/통일·경제재도약 14대 국회서 꼭 이룩/민자/“국민당 많은 전략적 실수로 성공 어렵다”/민주 김 대표 ▷민자당◁ 수뇌부는 2일 서울·충청·호남지역에서,민주당은 영남지역에서 선거지원활동을 벌이는 등 전국 각지에서 여야 정치공방이 계속됐다. 민자당 ○…김영삼대표는 송파을(위원장 김병태),성동병(박용만),강서을(남재희)등 서울지역 3개 지구당을 돌며 수도권 표몰이에 박차. 김대표는 『수도는 그 나라의 중심이자 상징적 얼굴』이라면서 『따라서 집권 민자당이 지방에서만 승리하고 수도에서 져서는 절대 안된다』며 서울에서의 안정의석 확보를 호소. 김대표는 『이 김영삼이가 앞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진실로 큰 일을 하기를 원하느냐』고 묻고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사랑하고 믿는 민자당 후보들을 수도 서울에서 압도적으로 당선시켜달라』고 강조. 김대표는 『우리 국민은 과거 여소야대와 같은 불안하고 혼란한 시대를 더이상 원치 않으며 안정속에 꾸준한 개혁을 원한다』면서 『이번 총선을 통해 3당통합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의 역사적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총선승리를 다짐. 김대표는 『이제 부동산투기·과소비풍조도 가라앉고 있으며 임금안정·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역점을 두어 우리 경제가 이른바 거품경제에서 벗어나 건강한 구조와 체질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피력. ○…김종필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고향이며 선거구인 부여지구당 당원단합대회에 참석,『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큰일을 해볼까 한다』고 패권도전의사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큰일을 이루기 위해 여러분이 힘을 모아달라』며 지지를 호소. 김최고위원은 이어 『나는 누가 뭐래도 국가가 가장 어려울 때 몸을 던져 싸웠으며 국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할때 일어서 경제개발을 시작했다』면서 대권후보로 나서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김최고위원은 또 『부여는 나를 낳아 길러주고 한번도 변함없이 따뜻하게 성원해준 생명의 원천』이라면서 『고향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면 다른 큰일을 할수 없다』고 강조. 한편 김최고위원은 부여행사를 마친뒤 전북 정주·정읍지구당(위원장 정원조)단합대회에 참석,『정권을 자꾸 바꿔보자는 생각은 세상을 흔들어보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집권당의 공천자를 뽑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민자당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 ○… 박태준최고위원은 이날 민자당후보의 선전지역으로 꼽히는 전북 익산(조남조)및 이리지구당(공천섭)당원단합대회에 참석,호남지역의 선전을 자신의 대권도전과 간접적으로 연계시키며 적극적 지원을 호소하는 등 호남담당 최고위원으로서 본격활동에 돌입. 박최고위원은 이날 격려사에서 『앞으로도 「호남최고위원」으로 호남발전을 위해 계속 열심히 일해나가겠다』며 「선봉장역」을 자임한 뒤 『그러나 이같은 일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만큼 여러분들이 나에게 힘을 보태줘야 할 것』이라며 대권을 의도하는 정치적 발언. 박최고위원은 또 14대 국회의 3대과제로 남북통일,경제재도약,호남개발을 제시하고 『특히 국제정세의 흐름에서 볼 때 우리나라 발전의 축이 영남에서 서해안지역으로 움직여가고 있다』며 「여대야소」를 통한 정치안정을 거듭 강조. 박최고위원은 「용담에 물이 차면 전라도가 낙원이 된다」는 이 지방 전래의 고언을 인용,유사이래 최대규모인 새만금간척사업(1조3천억원투입)과 이에 따른 용담댐건설이 호남선진화의 촉진제가 될 것임을 역설. 한편 익산과 이리는 전북지역중에서도 가장 당선가능권에 접근해 있다는 중앙당 차원의 중간점검을 반영이라도 하듯 민자당후보들에 대한 현지 분위기가 의외로 좋아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 ▷민주당◁ ○…2일 상오 국회의원회관대회의실에서 공천자대회를 갖고 전국 2백27명의 지역구후보들에게 공천장과 함께 1인당 1천만원씩의 후보등록비용을 지급. 김대중대표는 격려사에서 『이제 민주대 반민주같은 흑백논리는 통하지 않는다』면서 『거여의 독주를 막기위해 견제세력인 민주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되,절대로 대권도전이니,압승이니하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구체적 선거전술까지 나열. 김대표는 국민당등 신생정당에 대해 『현재로는 신당들이 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다』면서 『특히 국민당은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고 평가절하. ○…이날 하오 경북 경주(김호길)영일·울릉(김병구)포항(박기환)지구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이기택대표는 관권선거와 13대국회에서의 민자당의 독주 등을 거론하며 민주당을 강력한 견제세력으로 만들어 줄 것을 호소. ▷국민당◁ ○…대구 수성을(윤영탁)경주군(임진출)경주시(황한수)지구당 창당대회에 참가한 정주영대표는 2일 『현대를 떠난 사람이라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정부에 대해 현대그룹에 취해진 금융제재를 풀어달라고 하니 재무장관은 특정기업에 대한 금융제재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면서 『그렇다면 현대처럼 다른 기업도 모두 기업여신이 봉쇄당했다는 말인데 은행은 뭐하자고 있는 기관인가』라고 현대의 경영부실을 「압력」탓으로 책임전가.
  • “서남아의 화약고”카슈미르/나윤도 국제부기자(오늘의 눈)

    1947년8월15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할 때의 인도지도에 인·파 어느쪽의 색깔도 칠해지지 않은 지역은 다섯군데였다. 모슬렘 다수에 힌두 통치자가 있던 카슈미르,힌두 다수에 모슬렘 통치자가 있던 주나가드와 하이데라바드,타밀인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던 타밀나두,시크인이 자치국가 수립을 요구하던 펀자브 등이 그곳이다. 이 가운데 주나가드의 통치자는 몇주를 넘기지 못해 파키스탄으로 도주했고 하이데라바드의 통치자는 인도와의 일전을 불사한다는 각오로 전투기를 외국으로부터 구입하고 유엔에 대표단을 보내는등 맞섰으나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인도에 항복하고 말았다. 또 타밀나두와 펀자브는 인도연방의 틀안에서 지역정당에 의한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허용하는 선에서 해결됐다. 그러나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간 한차례 전쟁을 치른 후 1년만에 휴전협정에 따라 3분의2는 인도,3분의1은 파키스탄 분할귀속으로 결말난 이래 65년에 또 한차례 양국간 전쟁을 야기시키는등 오늘날까지 남아시아지역 전체의 화약고로 존재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카슈미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초기에는 종교적인 것이었으나 점차 전략적인 것으로 변질돼왔다.마름모꼴로 생긴 카슈미르는 북쪽이 구소련·중국과 접경하고 있어 그동안 남아시아에 존재해온 「인도­소련」「파키스탄­중국」이라는 두개의 힘의 축이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카슈미르를 잃는 것은 세력균형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번 잠무카슈미르 해방전선(JKLF)의 독립시위행진을 막는데 양국이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같은 전략적 요충인 카슈미르의 독립만큼은 막아야한다는데 양국의 이해가 일치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카슈미르의 독립은 그나마 양국의 현재의 카슈미르에 대한 「지분」마저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힘없는 카슈미르를 놓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45년간 벌여온 힘겨루기는 냉전이후 수많은 민족국가들이 독립을 인정받고있는 시대적 추세에도 역행할 뿐더러 과거 영국이 자신들에게 행했던 제국주의 횡포를 흉내내고 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2차대전 말 「인도에서 손떼라」라는 슬로건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의 전기를 잡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지도자들에게 카슈미르에서 손을 떼는 것만이 사태 해결의 유일한 해결 책임을 권하고 싶다.그 결단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죄없는 카슈미르인 뿐이다.
  • 시라크 파리시장 특별강연

    ◎“한국은 불의 훌륭한 경협파트너”/과학ㆍ기술 등 상호교류 확대 강력히 희망/대소 관계개선은 한국의 경제력이 바탕 지난 86년 프랑스 총리에 취임,사회당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좌우동거정부」를 구성한바 있는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겸 공화국 연합당 총재가 시사저널 초청으로 내한,19일 하오 신라호텔에서 「유럽과 아시아」란 제하의 특별강연을 했다. 다음은 시라크의 강연요지다. 본인은 여러분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을 항상 주의깊게 지켜보아 왔습니다. 본인은 다른 기회에 강조했던 것처럼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판문점도 역사의 운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30여년동안 지극히 혐오스러운 북한의 동향에 엄숙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1988년 가장 세계적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여러 사회주의국가가 그 후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 됐으며 소련조차 얼마전에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 한국의 위치를 증명해 주는 성공사례들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가장 최근의 커먼 웰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평화적 통일안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북한의 총리가 지난 9월에 이곳 방문을 수락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그후 총리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프랑스 기업체들에 생산성과 상업적 박력을 강화시켜주는 촉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균형을 찾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상업적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신의만 있다면 정치적 적대감으로 악화될 수 없습니다. 양측에서 게임의 룰은 존중돼야 하며 몇가지 오해를 없애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봅니다. 유럽공동체(EC)는 「요새」가 아니며 그렇게 될 의사도 없습니다. 반대로 유럽공동체의 소명은 늘 더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규모 단일시장의 논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프랑스에도 한국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동맹관계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를 강화시켜주는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지난 7월에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는데 본인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원한다면 프랑스와 유럽의 극동지역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보기에 한국은 신생산업국 가운데 맨앞에 서서 아시아의 축 속에서 균형요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기술을 이전하고 제3국들과의 공동행동에 의거하여 신뢰의 파트너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본인은 오늘날 프랑스 기업인들이 한국의 두가지 계획에 제출한 내용의 질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더 넓게는 유럽과 아시아는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한 오래된 문명지역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알지 못하면 어떤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은 한국에서 프랑스문화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우리들은 극동의 문화를,특히 한국의 문화를 더 잘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양국 수교 의의와 남북관계 전망/대담

    ◎「한ㆍ소 악수」 동북아 역학의 새 축으로/북방ㆍ동방정책 맞물려 분단극복 첫 난관 통과/북한은 개방충격 우려… 대미 급속접근 못할 듯/미 영향력 고조 예상… 전통적 우방과의 긴밀관계 유지 중요/정종욱/김유남 한소 외무장관이 지난 1일 유엔본부에서 수교합의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함에 따라 지난 45년간 지속된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와 남북한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한소 수교의 역사적 의의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 및 향후 남북관계 전망 등을 전문가들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정종욱 교수=지난 1일 한소 외상간에 합의된 수교결정은 한반도 분단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소 수교가 동서독 통일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가려 외형상 다소 왜소해 보일지 모르나 소련이 한반도 냉전사에 차지하는 위치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에 대해 소련이 지녔던 정책 등을 고려하면 한반도주변 역사의 재편을 알리는 빅 이벤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소,아시아서 입지 확보 ▲김유남 교수=이번 한소 수교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려면 소련의 동방정책 내역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민지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유럽의 팽창주의 노선에 편승,추진된 러이사의 동방정책은 20세기 초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함에 따라 좌절되기까지 한반도 주변정세에 막대한 영향를 끼쳤습니다. 이번 한소 수교는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땐 지난 85년간 단절된 동방정책의 복구란 측면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 교수=그렇습니다. 소 입장에서는 한소 수교로 소련이 해양세력으로서 한반도내에서 85년간 상실한 교두보를 다시 확보함과 동시에 태평양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오랜 숙원을 달성한 셈이죠. 소련은 1945년 전승국으로 다시 한반도에 진출할 기회를 가졌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38선 혹은 휴전선 이북에 한정됐었기 때문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거죠. 그러나 이번 양국간의 수교로 한반도 전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국가로서의 입지를 확보하는 절호의 기회까지 포착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한반도의 분단은 남북분단 외에도 남북 동맹국간의 단절이라는 상황의 이중성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이번 한소 수교로 한반도 냉전의 주요 외곽을 구성하고 있는 소련과 관계 정상화함으로써 분단극복의 1차적 난관을 통과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소간에 국교가 정상화됐다고 해서 북한이 오랜 동맹국인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립니다. 오히려 최근의 일본과 북한의 급속한 접근 움직임에서 보듯이 한소 수교를 남북한 교차승인의 시대가 도래하는 신호로 파악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김 교수=한소 수교가 남북한관계에 미칠 영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다만 남북분단이 한반도주변 4강의 냉전구조 속에서 파생된 점을 감안하면 한소 수교는 이같은 냉전 4강의 구조적 뼈대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한반도주변 생태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전체 영향력 차이 없어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대목은 한소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일부 개별국가에 있어 질적인 변화가 있다손치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양적인 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소련은 과거 북한에 대해 지녔던 영향력을 남북한에 걸쳐 분산시키면서 동시에 남북한간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는 위치에 섰다고 봐야합니다., ○한반도 냉전종식 계기 ▲정 교수=한소 수교의 손익을 평가하려면 한국과 소련이 수교로 얻게되는 손익대차 대조표부터 만들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련은 최고 50억달러로 추산되는 한국의 경협자금도 매력적이지만 85년만에 한반도에 전진기지를 안전하게 확보했다는 전략적인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 주변관계 정상화로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에 종식을 고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럼에도 냉전 이후의 한반도주변 국제정치가 이제부터 본격화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것입니다. ▲김 교수=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ㆍ일본 등 우리의 기존 우방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라고 봅니다. 주변 4강과 남북한이 갖는 함수관계를 인정,최근의 북한과 일본의 관계도 새로운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7ㆍ7선언의 저류를 이루는 교차승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정 교수=북방정책은 이제 한소 수교를 이뤄냄으로써 중요목적 중의 하나를 달성했고 남은 문제는 대중국 관계개선일 것입니다. 중국은 소련과 달리 북한과 대단히 밀접한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한소 수교가 실현됐다고 해서 당장 중국의 한반도정책이 변화하고 한중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립니다. 그럼에도 한소 수교는 중국이 한반도정책에서 고집해 왔던 정경분리원칙을 깨뜨리게 하는 좋은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한중간에 외교기능까지 수행할 무역사무소 설치가 예견되는 등 점진적인 정치관계 개선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도 수교교섭 단계에 있고 미­북한 관계도 주한미군과 평화협정체결 문제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당장 정치적인 관계개선은 힘들지만 북한ㆍ일본 관계개선에 따라 평양과 워싱턴의 관계개선도 예상보다 빨리 진척될 것으로 보입니다. ○데탕트기류 미가 주도 ▲김 교수=북방정책의 성공요인으로 우리의 주체역량 강화와 자주외교 등을 들 수 있지만 국제적인 데탕트무드가 주류를 이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데탕트는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한소 관계가 점진적이라기 보다는 혁명적으로 개선된 데 대해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이나 미­북한 관계에 하등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한소 수교만이 동북아 긴장완화의 필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미국도 대외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원칙 못지 않게 국익을 앞세우는 만큼 한소 수교를 대북한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아 북한에 획기적인 제의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시키기까지 중국학생 재교육 과학기술이전 등 엄청난 간접투자를 했던 경험을 북한에 대해서도 시도,경제민간교류 차원의 발전이 예상됩니다. ▲정 교수=북한이 전략ㆍ전술적인 변화는 조심스럽게 추구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 아직까지 기본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통일과 관련된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정책수정은 아직까지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정세변화 만큼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2차 남북 총리회담에서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북한의 변화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한소 수교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본적인 장기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동안 북방정책 과정에서 드러난 지나친 「한건주의」 자세를 지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통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히 구상해야 합니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북방정책 성공의 큰 요인인 미소간 데탕트는 소련국력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련의 국력 쇠퇴과정에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강대국으로서 소련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미국의 영향력은 반대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북방정책이 미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차원에서 추진되어서는 안됩니다. ▲김 교수=우리가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중국과 관계개선을 하는 마당에 북한의 변화가 없는 한 한반도 문제의 탈출구가 없다는 식의 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좀더 과감하고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폐쇄사회에서 벗어나는 명분을 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중 관계개선만 남아 이제 북방정책은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만 남은 상태여서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앞으로는 정상적인 외교와 남북외교만 남았기 때문에 북방정책이라기 보다는 내한정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방정책이 정치적 결단에 의해 좌우됐기 때문에 전문성이 다소 결여되고 한건주의가 팽배했으나 앞으로는 국익을 앞세운 종합적인 외교를 펴나가야 할 것 입니다. ▲정 교수=무리하게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하다 국내외로 부작용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김 교수의 취지에 십분 동의 합니다. 남북한 관계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이의가 없지만 문제는 북한이 주변변화와 한국의 적극적인 양보조치를 수용할 태세와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북한은 미국과의 교류를 통한 개방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능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미ㆍ북한 관계개선이 빠른 속도로 진전될 수는 없으면 일ㆍ북한 관계개선에도 상당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ㆍ남방정책의 불균형이 오히려 남북한관계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열강 이해각축 경계를 ▲김 교수=소련과 국교를 맺고 중국과 국교정상화의 문턱에 다가섰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군사 안보 경제 문화의 존적인면에서 미국과 특수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이 특수관계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일반관계로 바꿔나갈 것인지 마음자세를 정립해야 합니다. 새 벗인 소련을 대함에 있어 옛 벗인 미국과 깊은 협의를 갖지 않으면 안될 것 입니다. ▲정 교수=결론적으로 말해 한소 수교가 한반도에서의 북방외교 후기질서를 창출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20세기 초 한반도 주변 열강의 각축 과정에서 한민족이 입었던 불행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부가 신중히 정책을 세울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주변국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새 질서 속에서 남북한이 상호 관계개선을 게을리 할 경우 오히려 주변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동북아 새 질서 태동 진단(서울신문 광복45주년 특집)

    ◎한반도에도 데탕트 기류 가속화/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교수/「4강 역학」 어떻게 변화될까/평화공존 10여년 거쳐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GNP 1만불 육박땐 「5극체제」 출현 예상 지금 세계는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지양,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의 선언과 미 휴스턴의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의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및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공산주의의 좌절선언에 지나지 않았다(프랜시스후쿠야마 「세계를 말한다」 산경신문 7월31일). 38도선의 북쪽에 「아웃 사이더 국가」 즉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도 그같은 세계변화의 큰 격랑속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웃 사이더 국가를 포기한다는 것은,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룰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되는 것이며,대내적으로는 「남반부 해방에 의한 통일」이라는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정치의 본류를 우선 확인한 연후에 10년후 21세기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전망할 경우,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남북 분단의 극복 상황이다. 거기에는 3가지 케이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제1은 북한이 언젠가는 닥쳐올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평양정권의 존속을 꾀하기 위해 남북한 교차승인과 공존체제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써 「1민족 2정부」의 상태가 도입되어 꽤 장기에 걸쳐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제2는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안」에 따라 과도적으로는 남북 국가연합의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제3은 과도적 단계를 생략,동·서독일처럼 통일총선거를 선행시켜 일거에 통일정부를 발족시키려 하는 경우이다. 제1의 케이스는 72년 12월 국가간의 기본조약을 맺고 「1민족 2국가」의 체제를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연결시킨 동·서독일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동서독일형은 3월 실시된 동독의 총선거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동독시민이 과도적인 국가연합단계를 생략,「독일의 재통일」을 희구하는 중도우파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한결과였다. 다시 한번 3가지 경우를 앞으로 예상되는 10년간의 한반도의 내외 정세추이에 맞춰볼 때 남북한도 다시 동서독 같이 남북공존체제의 제1의 케이스를 거친 뒤 점차 실현성을 갖게 되는 통일에 대한 남북시민의 실현의지의 강도가 동서독같이 「국가연합」의 단계를 생략시켜 제3의 케이스를 지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남북 공존체제를 통해 북한의 주민·민중들이 곧 알게되는 것은 남북 양체제의 우열이다. 그 우열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가속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북한민중들도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의 벽을 「시대의 흐름」으로 붕괴시켰던 것처럼 군사분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여기서 좀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앞으로 10년을 거쳐 21세기의 초장을 맞는 한반도에는 수도를 서울로 하는 통일국가,통일정부를 수립해 문자 그대로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국가가 출현할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구 7천만,국민 1인당 GNP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의 출현이다. 인구 7천만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재통일을 이루려는 90년대 초의 동서독인구 7천7백만명에 필적하는 것이며 인구 규모로서는 선진 7개국중의 프랑스 이탈리아(양쪽 5천만명대)를 능가한다. 90년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5천달러,북한은 1천달러(추정)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7.2%의 성장률을 10년간 계속 확보한다면 1만달러 수준의 달성은 가능하다. 남북 공존체제는 북한경제의 개방체제를 더욱 촉진시켜 한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 경제교류기금 2천∼3천억원의 운용과 북한합영법에 의한 남북 경제교류의 신장과 확대로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북한경제의 한국형 경제에로의 수렴을 불가피하게 한다. 남북통일의 상징은 한국의 현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이다. 야크츠크로부터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나아가 평양을 거쳐 서울·부산까지 이어지는 4천㎞의 에너지 동맥이야말로 남북을 직결시키는 원동력이다. 파이프 라인 부설이 가져오는 주변의 경제개발이라는 파급효과도 시베리아·남북한을 통해 막대하다. 세계적 명산 금강산의 본격적인 관광개발사업도 남북 공동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공동사업이 초래하는 남북일체감 조성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일본·소련 사이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일본해=동해신시대」(조일신문 7월6∼14일 연재)는 남북공존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북한이 참가하고 북한경유 「일본해=동해」를 연결하는 중국 동북부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21세기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성립하게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신경제권으로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 7천만,국민 1인당소득 1만달러국가의 출현은 경제적으로는 중·소를 압도하는 경제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존의 미·소·중·일의 주변 4대국에 남북통일 한국을 첨가시켜 동북아시아에 5대국에 의한 오극구조시대가 대두한다는 것과 직결된다. 오극구조를 갖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세력균형의 이상적 체제와 위치를 부여한 것은 키신저박사(전미국무장관)의 연구성과였다. 물론 21세기 초엽 동북아시아지역에 통일한국을 축으로 오극구조가 성립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 거대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오극체제의 성립을 보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극의 한귀퉁이를 중·소가 각각 맡기 위해서는 중·소 자신이 더욱 개방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적 안정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 지역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이해관계를 갖는 중·소 양국의 안정적 발전없이는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은 남북 통일국가의 출현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신국제질서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남북을 통한 한민족의 역량이며 영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45년,세계 격변의 시점에서 정말로 타의에 의하지 않는 민족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국가 실현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주변 4대국의 전면적인 협조와 협력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에 의한 안정적 신질서의 도래는 모든 것이 그 한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통일시나리오」를 엮어보면…/체제공존→동질성 회복→총선이 합리적 수순/「4강 지렛대」로 북녘 개방 적극 유도 바람직 해방 45돌을 맞았다. 우리의 민족해방은 국제정치적 희생물로서 강요된 45년의 민족분단사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남북한체제의 갈등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국가발전의 제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국제적으로는 동·서 체제간의 긴장완화 추세,공산권전반의 개혁·개방정책,목전에 이른 독일통일,그리고 민족 내부적으로는 변화된 국제정세의 파장을 한반도에로 끌어들이려는 양국및 국민의 노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의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또 「국제정세와 남북한 체제발전추세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예상모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민족통일운동의 방향모색을 위해서도,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통일실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분단국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분단쌍방체제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관계의 정착화를 통한 민족동질성의 회복 그리고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하는 통일국가의 수립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북한당국이 체제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한사코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당국은 통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인 남북한체제의 상호개방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란 북한통치명분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조선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조물」로 꾸며진 평양은 개방할 수는 있으나 「미제의 식민지」아니면 「거지소굴」로 선전되어 온 「남조선」을 북한주민에게 개방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은 서독체제로 흡수·통합되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남북한 체제개방의 결과를 예견하고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세우면서 『남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연방제로 최종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연방구성안이 아니며,「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선남조선혁명,후통일」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방안이라기보다 전 한반도의 공산화 방안임이 분명하다. 남북한 체제공존을 북한체제 전복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연방제 통일」의 주장과 함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수렴론」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하에서는 결국 국민에 의한 「체제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인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적 한계성을 자인한 것임에 틀림없으며,따라서 우리는 아집이 아닌 인류문명사적 시각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통일국가의 수립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록 마지막이 될지언정 공산권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북한에도 와 닿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정치사 속에서 반김일성·김정일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사」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신정체제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세력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인민봉기에 의한 체제변화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당국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의식한 나머지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대외개방경제정책을 제한적으로 시도하고,「경공업혁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록 대남전략적 의도가 강할망정 종교활동을 선전하는등 제한적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내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표방,체제수호를 위하여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을 위한 당면과업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의 물결을 어떻게 북한체제에 불어넣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소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은 동·서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남북대화를 강력히 종용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경 등지에서의 접촉과정을 통해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북한에 분명히 거부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소련은 남북한 평화공존관계를 위한 「두개의 한국정책」 추진을 위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의 허구성과 김일성·스탈린의 「한국전쟁」 유발책임을 폭로하고,한소수교를 가시화시킴으로써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집하는 김일성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소수교는 궁색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정책선택의진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등 남북대화의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공존을 지향하는 남북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자리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남전략적 발상의 주한미군 철수,군축,한반도의 비핵·중립화 등 상투적인 군사문제 선결입장을 계속 제기하면서 당국,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관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지향하면서 민족통일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통일정책과 「남조선」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북한통일정책의 막판 승부의 장으로 급히 줄달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긴장완화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기울어진 인류문명사의 대세와 신정체제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북한체제간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또 북한체제가 고립화되면 될수록 북한당국은 더욱더 「남조선」 민중과의 「통일전선」 형성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조선 혁명」 전략에 따른 북한의 대남 제의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북한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정상회담이후 동북아정세 일 교수 기고

    ◎한ㆍ소 「경협의 축」따라 새질서 등장/「고르비쇼크」의 평양… 미ㆍ일서 적극 달래야 「역사적 제1보」「평화와 통일에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한소수뇌회담이 끝나고 양국은 관계개선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회담 직후의 「바람」(풍)이 잠잠해지려는 지금 관련보도를 근거로 이 회담에 이르렀을 당시의 한소의 생각,앞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동아시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 회담은 한국의 적극적인 소련에의 작용에 의해 실현됐다. 한국의 목적은 무엇인가. ①한소관계 수립에 의해 평양이 개방정책을 취하도록 하려는 구상이 있었다. ②한국경제는 올림픽이후 성장이 둔화됐다. 이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이룩,한소협력에 의해 시베리아를 개발함으로써 경제적 실리를 얻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다. ③한국이 대미관계를 배려했다는 측면이 있다. 한국의 대소정책은 대미관계와 가장 밀접히 맺어져 왔다. 회담의 실현을 조언했다고 보여지는 미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회담을 미국내에서 하는 것은 앞으로 한국이 북방정책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 등이다. 이번 회담은 소련쪽에서 회담에 응했기 때문에 실현됐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소련이 회담에 응했다는 것은 소련이 외교상의 이데올로기 일색을 배제하고 「외교정책의 경제화」를 한반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결과이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이데올로기가 시간과의 경쟁으로 되어왔기 때문에 소련극동지역의 개발을 소련은 서두를 필요가 생겨났다. 그 때는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둘째로는 일본에 대한 측면이다. 일본이 시베리아개발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한국과의 교류를 선행시켜 일본을 개발교섭의 테이블에 끌어내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셋째 소련의 북한에 대한 정책변화의 결과이다. 이번 회담은 일찍이 서방측에 있었던 「닉슨쇼크」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북한에 대해 「고르바초프 쇼크」라고도 할만한 것이다. 지난 6개월간의 소련매스컴의 보도에 나타났던 바와 같이 소련은 최근의 북한의 사상투쟁 강화에 불쾌감을 표시해 왔다. 지난 2월경부터는 소ㆍ북한간의 불협화음이 두드러졌다. 올 2월을 경계로 소련은 『대북한관계에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한소관계를 개선한다』라는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타스통신은 6월 5일 『소련외교의 이데올로기 배제 및 기타 제국과의 경제교류ㆍ정치대화의 확대는 소련의 기본입장의 포기 및 제3국의 이익침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의미는 소련에 있어 한소회담으로 북한에 예상밖의 쇼크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소련은 한소회담에 의해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최근 수년간 소련은 대북한군사원조를 계속해 왔다. 그것은 중국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협력이다. 경제원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89년의 북한의 대소무역량은 수출입 합쳐 23억8천만달러이며 무역액 전체의 6할 가까이를 차지한다. 『북한으로서도 소련과의 경제관계를 끊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북한의 반발은 어느 정도 이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소련입장에서는 가능했다. 한편 조약문제는 어떠한가. 1961년 7월에 체결된 소ㆍ북한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은 91년7월 5년마다 한번씩의 경신시기가 닥쳐온다. 이 조약을 어떻게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소련은 북한에의 영향력을 남겨두기 위해 조약의 계속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조약경신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북한이 이 조약의 경신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소련지원의 근거를 잃게 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하고 싶기 때문에 조약이 폐기될 가능성은 적다. 한소수뇌회담 이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내려진다. 우선 회담당초 보도됐던 것처럼 『소련이 북한을 버렸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은 정치적 이슈에 관해서는 남북한양쪽을 보아가면서 추진될 것이다. 따라서 한소관계개선은 소련의 극동지역개발에 한국의 경제협력을 받는다는 점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소수뇌회담에서 쌍방이 군사문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피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군사문제」라는 말에 한국은 소련이 대북한군사원조를 중지하는 것에 기대를 갖고 있다. 소련도 이에 대해 주한미군문제로 한반도군축논의의 이니셔티브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소련에는 주한미군삭감문제가 나온다면 미국과 한국사이에 주한미군을 둘러싼 평가가 갈라질 가능성이 있으며 동시에 북한을 소련쪽에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군축문제로 소련이 이니셔티브를 잡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양쪽은 이같은 문제에서 직접 충돌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더욱더 국내 사상투쟁강화에 열을 올릴 것이다. 소ㆍ북한관계는 동구관계와는 기본적으로 달라 매우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 해방직후의 역사 및 6ㆍ25,군사ㆍ경제협력의 경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역사는 쌍방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또 미소데탕트시대를 보더라도 여전히 소련에 남겨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비추어 북한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이런 관계를 아는 북한은 소련과의 관계를 끊기보다는 소련의 대한접근에 대한 「보상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단 소련이 어디까지 그것을 들어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동시에 한소회담은 앞으로 북한이 더욱 중국에 접근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때 중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최근 1년간의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변화에 의해 중국의 대북한역할이 증대하고 있다고 중국은 보아왔다. 중국은 한소간의 급속한 전개에 당황해하면서도 북한에의 지지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한소관계의 진전이 중국의 대한자세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경우 경제관계는 확대되더라도 정치관계는 보다 신중하고도 소극적이 될 공산이 크다. 동아시아지역은 한국과 소련의 경제협력을 축으로 주변제국이 관계를 조정해가는 양상을 보였다. 즉 한소관계는 개선되어가지만 중국과 북한이 거기에 수동적으로 대응했다. 동시에 일본과 북한의 관계개선은 진전이 없으며 미ㆍ북한관계도 실질적으로는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의 한반도정세는 크로스교류의 진전이라기보다 더욱 리얼한 실리주의와 정치상의 흥정이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어 왔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동서 군축바람 한반도 “상륙”/미군기지 감축 저변과 향후의 전망

    ◎소군의 동구 철수로 거부명분 상실/근본적 수정 없다지만 감군은 대세/국방비 의회삭감 요구액과 차이 커 논란 예상 주한 미공군기지 3개의 폐쇄를 포함하는 29일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조치 발표는 눈덩이처럼 커가는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와 최근의 동서해빙 무드가 맞물려 만들어낸 하나의 명작품이라 할 수 있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8년간 계속 불어난 미국의 재정적자(89년 1천5백20억달러)는 1천3백70억달러(88년)의 무역적자와 함께 소위 쌍둥이 적자를 형성,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큰 압박요인으로 작용해왔으며 미의회는 과감한 재정적자의 삭감조치를 끊임없이 행정부에 요구해왔다. 이에대해 미정부는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음을 내세워 국방예산 감축을 거부해왔다. ○미 경제의 압박요인 그러나 89년 들어 동구에서는 민주화 개혁이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뿌리를 내리게 됐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군의 부분적인 철수가 시작되었고 헝가리와 폴란드 등은 소련군의 완전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소련도 오는 2천년까지 국방비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목표 아래 해외주둔군 철수및 감군계획을 일방적으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미국이 소련의 군사위협을 이유로 국방비 감축을 더이상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29일의 국방예산 삭감발표는 전략적이라기보다 다분히 예산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체니장관도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국방비 삭감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삭감 압력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체니장관은 29일 국방비 삭감을 발표하면서 표면적으로 볼 때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상당히 감소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이유로 미군사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국방비 삭감조치가 지난해 86개의 미국내 기지폐쇄에 이어 주로 국내ㆍ외의 군사기지 폐쇄와 재래전력 감축 부문에 집중됐을 뿐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 SDI(전략방위구상ㆍ별들의 전쟁)나 B2 스텔스폭격기 부문에선 오히려 예산을 증액시킨 것,또 전략핵 부문에선 현대화 계획이 강화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현대화 계획엔 증액 그러나 레이건대통령 시절 무리한 군비증가로 사회복지 부문에의 투자가 희생당했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민주당소속 의원들은 바로 SDI나 스텔스폭격기 같은 부문에서의 대폭적인 국방비 삭감을 요구하고 있으며 삭감요구 규모에 있어서도 행정부 제시액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29일 부시대통령이 제시한 예산안은 앞으로 미의회에서 많은 논란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대통령은 91회계연도(90년 10월1일∼91년 9월30일) 예산안의 재정적자가 6백31억달러로 크램­레드먼의 균형예산법안이 규정하고 있는 91회계연도 목표액 6백40억달러보다 미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10년이래 가장 낮은 재정적자일 뿐 아니라 이같은 추세로 재정적자를 삭감한다면 오는 95년이면 국방비를 GNP의 4% 이내로 묶는다는 목표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부시는 이번 예산안의 국방비 삭감조치가 획기적인 것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쪽의 반응은 부시행정부가 91회계연도의 경제전망을 너무 장미빛으로 잡아 6백31억달러라는 「환상적 재정적자」가 나온 것일 뿐이라며 이를 일축하고 있다. 실제로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1%포인트 미달될 때마다 1백80억달러의 재정적자가 추가로 발생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보다 과감하고 대규모의 국방비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국방비 삭감으로 생기는 여유예산 소위 「평화배당금」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도 앞으로 많은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대통령은 이와 관련,국방비 삭감으로 생기는 여유예산은 앞으로의 경제성장을 겨냥해 미래에의 투자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에서는 그동안 군비증강으로 희생돼온 사회복지 부문의 확충이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GNP의 4% 목표 그러나 이른바 평화배당금이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미국내에 국한된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국방예산 삭감 발표를 시작으로 미국의 국방비 감축이 하나의 추세로 굳어지느냐의 여부이다. 현재 소련ㆍ동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혁운동과 이에따른 긴장완화 분위기가 어떤 계기로 인하여 다시 냉전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또 주한미군의 계속적인 감군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철수 문제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의 안보와 한반도의 긴장완화 문제를 우리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주요 일지 ▲45년9월=미 제24군단과 7함대 병력 7만여명 일본군 무장해제위해 인천상륙 ▲48년=정부수립과 함께 1만6천명으로 감축 ▲49년=군사고문단 5백명을 제외한 모든 주한미군 철수 ▲50∼53년=6ㆍ25 남침으로 미 제24사단 상륙에 이어 종전 무렵 육군 7개 사단,해병 1개 사단 등 36만명 주둔 ▲54년=2개 사단 7만여명만 남기고 나머지 모두 철수 ▲71년=닉슨독트린(69년)에 따라 제7사단 2만여명 철수 ▲77년7월=제10차 한미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 통해 「78년말까지 주한미지상군 전투병력 6천명 철수」 발표 ▲77년9월∼78년=3천4백명 추가 철군,주한미8군참모장 싱글러브소장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은 한반도 전쟁재발 위험」 경고로 철수규모 축소 ▲81∼89년=레이건 재임중 주한미군 3만8천명에서 4만3천명선으로 증원 ▲89년6월=범퍼스 미상원의원 주한미지상군 1만명 철군법안 제출 ▲89년11월=넌­워너수정법안 미상ㆍ하원 통과(미행정부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등에 대한 보고서를 90년 4월1일까지 의회에 제출토록 요구받음) ▲90년 1월=현재 병력 4만3천여명(공군 1만1천명,해군및 해병대 5백여명) 이밖에 5천2백여명의 한국군인(카튜사)과 한국인 용역단 3천2백여명의 미군을 간접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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