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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복성 예산삭감이다” “왜 대통령 탓하나” 고성만 가득했던 전북도 국감

    “보복성 예산삭감이다” “왜 대통령 탓하나” 고성만 가득했던 전북도 국감

    24일 전북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잼버리 파행 책임과 새만금 예산 삭감 원인의 진위를 놓고 여야 의원들이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김관영 지사의 “새만금 예산 삭감은 보복성”이라는 발언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예산 삭감은 전북도의 무능 탓인데 왜 대통령의 보복이라고 하느냐”고 강하게 맞받아치며 고성을 쏟아냈다. 33.9m 현수막 펼치고 국감장 앞 침묵시위 이날 오전 9시 30분 전북도청사 입구에서 시민단체가 새만금방조제를 상징하는 33.9m의 현수막을 펼치고 새만금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새만금방조제의 길이 33.9km를 상징하는 33.9m의 현수막에는 전북애향본부를 비롯한 102개 참여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70여 명의 단체 회원들은 이날 ‘새만금 국가사업 정상화’ ‘새만금은 대한민국의 미래’ 등 새만금 예산 삭감의 부당함과 예산복원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도 들고 침묵으로 항의 시위를 했다. 국정감사가 열리는 도청 4층 대회의실 앞에서도 전북도의원들이 새만금 SOC 예산 삭감을 규탄했다. 의원들은 ‘새만금을 살려내라’, ‘전북 홀대 규탄한다’ 등의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다. 잠시 후 여야 의원들이 대회의실로 입장하고 퇴장할 때마다 의원들은 ‘새만금은 죄가 없다. SOC 예산 살려내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어 올리며 시위를 이어갔다. “예산 삭감은 잼버리 보복” 전북도 지원사격 나선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잼버리 파행 책임을 떠안은 전북도를 두둔하며 정부의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천준호 의원(서울 강북갑)은 “부처 예산을 100% 반영했던 예산안을 2024년도에 갑자기 5천억원이나 삭감해서 22%만 반영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강병원 의원(서울 은평구을)도 “대통령이 강서구청장 패배 이후 ‘국민은 늘 옳다. 반성하고 민생 현장으로 가야한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새만금 예산 삭감과 모순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진석 의원(충남 천안시갑)은 “조직위원장, 즉 여가부 장관의 권한 큰데 권한 크면 책임도 크다”면서 “8월만 해도 괜찮다고 했던 예산이 갑자기 삭감된 건 잼버리 보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만금 특별법 19조를 보면 기반시설 설치, SOC를 우선 지원한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대통령이 임기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고, 총리도 전력 다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말 뿐이었던 국민을 우롱한 처사다”고 말했다. 강병원 의원(서울 은평구을)도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한 새만금은 보수와 진보 정권이 바뀌어도 중단 없이 진행됐다”면서 “현 정부의 무책임과 김현숙 장관 무능의 결과를 전북에 책임 전가하고자 예산 삭감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보수 정권이 선거때만 전라도를 이용하고 전북을 홀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소속 이성만 의원(인천 부평구갑) 의원은 “잼버리 특별법에 따른 역할 구분을 보면 불명예를 얻은 쉼터 없는 더위 무대책, 온열치료자 준비 미흡, 비위생적 환경 등은 조직위 담당”이라면서 “수도권 밀집을 타파하고 전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새만금의 예산을 미지원한 것은 전북을 넘어 국가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지사는 뒤로 그만 숨어라”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 추궁한 국민의힘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서울 서초구갑)은 “잼버리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남 탓”이냐면서 “조직위에 전북 출신 공무원이 75%가 파견을 갔는데 공무원을 감시·감독 못 한 도지사의 무능이고 무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관영 지사는 조직위원회 책임론 뒤에 숨고 있다”면서 “조직위원장이던 김윤덕 국회의원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니까 사무총장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웅 의원(서울 송파구갑) 역시 “대회를 앞두고 도지사가 최종 준비 상황을 막판 점검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인터뷰에서도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면서 “홍보할 때는 직접 당사자고 사고 터지면 결재권자가 아니라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또 김 의원은 “전북도가 매립된 새만금 잼버리 부지에 대한 이용계획을 일찍 신청했더라면 잼버리 파행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을 7개월가량 확보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전북도는 국정감사가 끝난 뒤 보도자료를 통해 “전북은 잼버리 부지매립이 완료되기 이전인 2020년 5월부터 기반시설 설치를 위해 해역이용협의 및 방조제 사용허가 등 사전 행정절차 이행 후 2021년 11월에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절차를 완료했다”면서 “이후 2021년 12월에 기반시설 설치 공사를 착공해 2023년 4월까지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설치를 완료하여 조직위에서 시행하는 상부시설 설치에 차질이 없도록 기반시설을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보복성 삭감, 정치공세’ 막판 고성 오간 국감장 “어이가 없네…보복성 삭감? 정치공세? 당장 그 말 사과하세요” “도민들이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전북에 떠넘겨 보복성으로 예산을 삭감한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날 김 지사는 “(새만금)예산 삭감은 납득할 수 없다”며 “심의 때까지 별문제가 없던 예산이 잼버리 사태 이후 급격히 입장이 바뀌면서 보복성 삭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전북만의 책임이라는 정치공세가 있는데 잘못된 점을 설명해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자 조은희 의원은 “김 지사가 보복성이라고 말해 대통령을 모욕했다”면서 “삭감 예상될 때 다른 도지사들처럼 기재부 문턱이 닳게 드나들어야지, 못해놓고 대통령의 보복이라고 하는 게 바른 자세냐”고 따졌다. 이어 “새만금 예산은 여당과 의논해서 올릴 수 있는데 실언으로 왜 그 기회를 자르는 건가. 이러면 여당이 함께 하고 싶을까요”라고 되물었다. 김웅 의원도 “김 지사가 책임지는 게 하나도 없다”면서 “국감에서 잼버리 관련해 전북도 책임을 묻는 게 왜 정치공세냐”고 항의했다. 김 의원은 국감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어떻게 국감장에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뭐가 정치공세고 보복성 삭감인지 말해봐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에 김 지사는 “새만금 예산 보복 삭감은 잼버리 이후 갑작스럽게 예산이 깎이면서 도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라면서 “정치공세는 그동안 잼버리를 전북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일각의 시도가 있었다는 표현이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그간의 상황을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만 소리 지르고 지사의 답변을 잘 듣어라”고 힘을 보탰다. 감사반장을 맡은 민주당 김교흥 의원(인천 서구갑)은 “김 지사가 말한 정치공세는 이전에 있었던 일을 지칭한 것으로, 지금 국감장에서 의원들에게 한 발언은 아니라고 한 만큼 자중해달라”며 중재했다.
  • 순천이 뜬다···순천 출신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900만명 돌파 순천정원박람회

    순천이 뜬다···순천 출신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900만명 돌파 순천정원박람회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에서 언급한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하지 말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광주·전주에 이어 호남 3번째 인구도시인 전남 순천시가 전국에 순천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인구 28만명으로 전남 최다 도시인 순천은 오는 31일 폐막한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관람객 910만명을 돌파하면서 박람회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 6명중 1명이 정원박람회장을 찾을 정도로 순천은 가고 싶어 하는 도시로 불리고 있다. 여기에 지난 23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인요한(64) 연세대 의대 교수가 순천 출신으로 알려지면서 조그마한 중소도시인 순천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중학교까지 순천에서 생활한 인요한 위원장은 “전라도에서 자란 순천 촌놈. 내 고향은 순천”이라고 말할 정도로 순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다.선교사 집안인 인 위원장은 기독학교인 순천 매산고를 졸업한 노관규 시장(무소속)과는 아주 절친 관계다. 지난 2012년 4·11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후보였던 노관규 후보 지원유세를 벌일 만큼 각별한 사이다. 지난해 10월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홍보대사로 위촉돼 순천을 적극 알리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순천만국가정원 제1호 명예홍보대사에 위촉되기도 했다. 지역 텃세가 없는 순천은 민주당 텃밭이지만 국회의원을 민주노동당(김선동·재선), 한나라당(이정현·재선) 출신이 당선될 정도로 정당보다는 인물위주로 선택할 만큼 능력을 중시한다. 조충훈 순천시장은 무소속으로 2번 당선되고, 노 시장도 지난해 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순천 출신 국회의원은 전국적으로 10명이 배출됐다. 순천중·고교 출신 7명과 인천 부천시(정) 서영석(순천 금당고 4회), 3선의 서울 중랑을 박홍근(순천 효천고 2회), 서울 양천을 이용선(순천 해룡면) 의원도 순천 출신이다. 서울광진을 고민정 의원의 모친 고향은 순천시 외서면이다. 국민의힘 소속 부장검사 출신인 서울 송파갑 김웅 의원도 순천이 고향이다.따뜻한 날씨와 싸고 맛있는 음식, 남도의 풍부한 관광자원 등이 기본으로 꼽히는 순천은 시민들이 배타성이 없어 외지인도 쉽게 수용하기도 한다. 주거, 안전, 문화 등 도시 인프라 구축을 통한 우수한 정주여건이 큰 장점이다. 서울까지 2시간 20분 걸리는 KTX와 3시간 30분 걸리는 고속도로, 여수공항까지 20분 등 교통이 특히 편리하다. 이같은 매력에 순천시 부시장을 역임한 공무원들이 수십년 생활을 했던 광주나 도청이 있는 무안 등으로 돌아가지 않고 순천에 정착하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 2006년 이후 지금까지 4명의 부시장이 아무 연고가 없는 순천으로 이사와 생활하고 있다.
  • [사설] ‘인요한 혁신위’ 전권 쥐고 바닥부터 쇄신하라

    [사설] ‘인요한 혁신위’ 전권 쥐고 바닥부터 쇄신하라

    국민의힘이 당 쇄신 작업을 주도할 혁신위원장에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를 어제 임명했다. 호남 출신에 ‘특별 귀화 1호’로 평소 정치 혁신의 소신을 밝혀 왔던 인 위원장은 진영을 넘어 여론을 두루 아우를 인물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로써 집권당 쇄신의 첫 단추는 무난히 채운 모양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다음날 국민의힘은 혁신위를 통한 쇄신을 선언했으나 열흘이 넘도록 지지부진했다. 심각한 인물난에 집권당 쇄신은 시작도 못 하고 물 건너갈 우려마저 컸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어렵사리 발탁된 인 위원장은 명망과 참신성에서 크게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여권 지도부의 공언대로 “여론이 출렁일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권당에 실망한 여론을 돌려 앉혀 귀를 열게 할 인물로 기대를 걸어 봄직하다.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지역주의 해소의 균형감각도 갖췄다. 혁신위 성패의 관건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인 위원장의 손에 사심 없이 전권을 쥐여 주느냐에 달렸다. 김기현 대표는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빈말인지 아닌지 집권당에 채찍을 들었던 여론이 지금부터 지켜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가 당대표의 들러리로 잡음만 일으키다 사라진 전례를 밟아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표 시절이던 2005년 홍준표 혁신위원장에게 전권을 넘겨 얻은 혁신안으로 2006년 지방선거를 이겼던 선례를 새겨보면 된다. 총선 인재 영입은 말할 것도 없다. 설령 당대표 사퇴의 극약 처방이 나오더라도 혁신위의 결단이라면 따라야만 승산이 있다. 누구보다 김 대표가 계급장을 떼고 혁신위에 바닥부터의 쇄신을 맡기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한다.
  • ‘DJ 존경하는 순천 촌놈’… 혁신 전권 쥔 인요한, 위기의 與 구할까

    ‘DJ 존경하는 순천 촌놈’… 혁신 전권 쥔 인요한, 위기의 與 구할까

    국민의힘의 ‘쇄신 메스’를 쥔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인요한(64·존 린턴)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23일 “저는 전라도에서 컸고 전라도를 무척 사랑하는 대한민국 특별귀화 국민”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영남 색채가 짙은 국민의힘이 택한 첫 호남 출신, 첫 귀화자 혁신위원장이다. 190㎝가 넘는 장신에 줄곧 자신을 “순천 촌놈”이라고 소개해 온 푸른 눈의 인 위원장은 특정 정치 진영에 쏠리지 않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인 위원장은 19세기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의 외증손자다. 유진 벨은 호남 지역에서 활동하며 여러 학교와 광주 최초의 병원인 제중병원 설립에 힘을 보탰다. 인 위원장은 1959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대전외국인학교를 거쳐 연세대 의예과를 졸업하고 1987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1991년부터 32년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했다. 가문의 전통을 따라 한국에서 선교와 의료, 교육 활동을 벌였고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외신 통역 활동을 했다. 1992년에는 최초로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했고 2012년 대한민국 ‘특별귀화 1호’가 됐다. 인 위원장은 성인 ‘린턴’의 린을 두음법칙에 따라 ‘인’으로 정했으며 본관은 ‘순천 인씨’다. 인 위원장은 의료 지원을 위해 29차례 방북했다. 1996년 그의 어머니가 40년 의료봉사의 공을 인정받아 삼성문화재단이 주는 ‘호암상’을 수상한 뒤 상금 5000만원을 ‘북한 앰뷸런스 기증’으로 지정한 게 인연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 직접 북한을 지원할 수 없으니 선교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이름으로 기증했고 자신도 실무 작업을 위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정치권과의 인연은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시작됐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꼽는다. 그는 DJ에 대해 “한 인간으로서 용서와 화합을 실천한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포용의 정신과 존경받는 행동을 하는 DJ의 제자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국민대표 20인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지난 8월 친윤(친윤석열) 공부모임 ‘국민공감’ 특강으로 국민의힘 합류 가능성이 주목됐다. 국민의힘은 인 위원장을 내년 4월 총선 후보로 쓸 ‘인재 영입’ 대상으로 검토했고 서울 서대문갑 공천이 거론됐다.
  • 인요한 혁신위원장 “와이프·아이 빼고 다 바꿔야”…쇄신 예고

    인요한 혁신위원장 “와이프·아이 빼고 다 바꿔야”…쇄신 예고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와이프(배우자)와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할 것 같다”며 여당에 대대적인 쇄신을 예고했다. 인 위원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만희 사무총장과 면담 직후 위원장 인선 수락 배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한 단어로 정리하면 통합을 추진하려고 한다. 사람 생각은 달라도 미워하지 말자, 이런 통합”이라고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룰 개정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인 위원장은 “아직 권한이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 모른다”면서도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내려와서 들어야 한다. 그다음에 듣고 변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희생 없이는 변화가 (어렵다)”며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인용해 “아내하고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많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인 위원장은 “병원에서 제가 (환자들이 타고 있는) 내려오는 휠체어를 밀고 이런 것을 잘한다”며 “(국민의힘에 있는 사람들도) 내려와서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 인선에 대해선 “아주 능력 있는 분들을 다 보고 있다”며 “개인 바람으로는 여성이 조금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을 묻는 말에 인 위원장은 “그건 다 내려놓은 것”이라며 “그간 여러 말도 있고 유혹도 있지만 이 일을 맡은 동안에는 다른 것은 없고 다 내려놓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드린다. 이 일을 성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 위원장은 “저에게 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 (등의 어디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전라도를 무척 사랑하고 특별귀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우리가 당 안에서 활동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의 먹거리와, 7대 강국인데 어떻게 더 발전할 것인가, 후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중심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특별귀화 1호’ 인요한…김기현 “전권 부여”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특별귀화 1호’ 인요한…김기현 “전권 부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당 쇄신 작업을 이끌 혁신위원장으로 인요한(64) 연세대 의대 교수를 임명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12일 만이며, 김 대표가 당 쇄신기구 출범을 예고한 지 11일 만이다. 김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 인선 결과를 밝힌 뒤 “당의 진실한 변화를 만들어 갈 혁신위원장으로 인 교수를 모시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 특별귀화자 1호인 인 교수는 전주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자랐으며 한국에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해 온 가문의 삶”이라며 “스스로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히며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에서 전라도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등 지역주의 해소와 국민 통합에 대해서도 깊은 안목과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치개혁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고 투철한 의지도 갖추고 계신만큼 국민의힘을 보다 신뢰받는 정당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인 교수가 최적의 처방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며 “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꾸려질 혁신위는 위원회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전권을 가지고 독립적인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 12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당 쇄신기구 발족을 예고하고 지난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혁신위원회 출범을 공식화한 뒤 당 내외 인사들로부터 혁신위원장 후보를 추천받아 인선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접촉한 인사들이 잇달아 고사하면서 인선에 난항을 겪었으나, 지난 8월 국민의힘을 상대로 쓴소리 강연에 나섰던 인 교수에게 혁신위원장직을 요청해 최종 수락을 얻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당에 소속된 우리 모두가 변화를 안 하면 공멸한다는 절박한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라며 “옷만 바꿔입는 환복 쇄신이 아니라 민심과 괴리된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것에 구성 모두 동참해 당의 진정한 쇄신과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미국에서 온 선교사 유진 벨 씨의 증손자인 인 교수는 2012년 대한민국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 1호의 주인공이 됐다. 인 교수 가문은 4대째 대를 이어 한국에서 교육 및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남 순천 출신인 인 교수는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최근에는 국민의힘 총선 영입 대상으로도 거론돼왔다.
  • 발길 닿는 곳마다 ‘혼불’의 서정이 스치네… 눈길 닿는 곳마다 춘향의 사랑이 머무네 [권다현의 童行(동행)]

    발길 닿는 곳마다 ‘혼불’의 서정이 스치네… 눈길 닿는 곳마다 춘향의 사랑이 머무네 [권다현의 童行(동행)]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작가를 아끼는 주민들 마음 모여노봉마을은 ‘혼불마을’로 재탄생젊은 연인들의 포토존 된 서도역‘미스터 션샤인’으로 핫플 떠올라광한루 연못 위 오작교도 가볼 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여행지는 아이와 함께 꼭 다시 찾는다. 사랑스런 공간에 추억을 덧대고 훗날 같이 나눌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두기 위함이다. 이번에 찾은 전북 남원 노봉마을이 그러했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매료되었던 대학 시절 기억을 더듬어 어느 추운 겨울 노봉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해설사 어르신 이야기에 흠뻑 빠져 남원 시내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내게 어르신은 기꺼이 방 한 칸을 내어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껏 남원을 지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 오랜 친구가 되었다. 그 추억이 너무도 소중해 남편과 한 번, 첫째와 다시 한번 찾았다. 이번에는 둘째와 함께였다. 노봉마을은 남원 사매면 서도리에 속한다. 노봉(露峰)이란 이름은 마을 뒤에 우뚝 솟은 노적봉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1917년 발행된 지명 자료에 노봉마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비교적 최근에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노봉마을은 삭녕 최씨 세거지(世居地)로 알려져 있는데,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을 이끌었던 공으로 영의정에 두 차례나 올랐던 최항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손자 최수웅이 이곳 마을에 은거하면서 대대로 명문을 형성했는데, 최명희 작가도 그의 17대손이다.●노봉마을에 번진 ‘혼불’의 감동 전주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1980년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으로 등단했고 이듬해 ‘혼불’ 제1부를 완성하며 전업 작가로 나서게 된다. 다른 작품 연재는 모두 중단한 채 오로지 ‘혼불’ 집필에만 몰두했던 그녀는 무려 17년 세월을 쏟아부어 5부작, 10권의 대하소설을 펴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부터 1943년까지 매안 이씨 가문을 지키려는 종부 3대와 빈민촌인 거멍굴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 ‘혼불’은 출간 당시 150만부가 팔릴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 노봉마을은 ‘혼불’에서 매안마을로 그려지는 실제 배경으로, 1999년부터 주민들이 직접 나서 ‘혼불마을’을 알리기 시작했다. 추수를 끝내고 마을 주민들끼리 관광에 나섰는데, 노봉마을은커녕 남원도 잘 모르던 사람들이 ‘혼불’ 이야기를 하니 대번에 알아보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주민들은 혼불문학관을 짓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대로 갈아오던 기름진 논을 헐값에 내놓았다. 마침내 지난 2004년 ‘혼불’의 배경이 되었던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이 들어섰다. 아이에게 혼불마을에 갈 거라고 했더니 혼불이 무슨 뜻이냐 묻는다. 혼불은 사람의 혼을 이루는 푸른빛을 뜻하는 전라도 지역 방언이다. 국어사전에 사람이 죽기 전 혼불이 빠져나가는데, 그 크기가 작은 밥그릇만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에겐 죽음이란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는지 대뜸 “그럼 우리 귀신마을에 가는 거예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황당한 오해에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십수 년 전 혼불문학관에서 만난 해설사 어르신의 설명이 떠올랐다. “가수는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데, 최명희 작가도 그랬던 모양이에요. 혼을 불살라 ‘혼불’을 완성하고 끝내 사그라들었으니….” 최명희 작가는 1943년 이후 ‘혼불’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전쟁과 민주혁명까지 수많은 글감이 그의 책상 앞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해설사 어르신 말처럼 ‘혼불’ 집필에 혼을 불살랐던 탓일까, 탈고를 앞두고 난소암 진단을 받게 된다. 무서운 질병과 싸우면서도 끝내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앞으로 써야 할 수많은 이야기를 남겨둔 채 1998년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혼불’이 완간이 아닌 미완성의 대하소설인 이유다. 혼불문학관 입구에는 글쓰기를 대하는 작가의 처절한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글귀가 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더니 아이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가 보다. 나이는 몇인지, 어디에 사는지, 아이와 함께 자주 여행을 다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문학관 한편에 재현된 작가의 작업실을 보면서 “엄마도 이런 책상 좋아해요?”, “엄마가 좋아하는 작가님은 왜 컴퓨터가 없어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예전에는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썼고, 작가가 그 과정을 바위를 뚫어 손가락으로 글씨를 새기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꼈다고 설명하자 아이 낯빛이 어두워진다. 온 마음을 다해 ‘혼불’을 완성하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엄마는 너무 열심히 글 쓰지 마요. 엄마 좋아하는 만큼만, 아주 조금만 써야 해요!” 아이의 순박한 진심이 작가의 글귀만큼이나 내 마음을 울린다. ●간이역 향수 가득한 가을의 서도역 혼불문학관 내부에는 ‘혼불’ 속에 그려진 당시 세시풍속이나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을 디오라마로 구성한 공간도 자리한다. 작가의 치밀한 취재와 생생한 묘사 덕분인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글로 적힌 것이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혼불’은 문학뿐 아니라 민속학, 인류학, 언어학 등 다양한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특히 전라도 지역의 다채로운 방언과 사라져 가는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다면” 바랐던 작가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혼불문학관에서 인연을 맺었던 해설사 어르신은 ‘혼불’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말에 서도역에서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꼭 한번 걸어 보라고 권했다. 넓게 펼쳐진 논 한가운데 기차역이 있는데, 그 앞 삼거리가 소설 속에서 천민들의 거주지인 거멍굴과 양반들의 공간인 매안마을을 나누는 길목이다. 서도역은 강모의 아내 효원이 순천에서 신행 올 때 처음 발 디딘 공간으로 묘사된다. ‘혼불’의 주요 배경인 매안 이씨 종가는 여기서부터 한 식경이나 걸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지금은 자동차로 5분 남짓한 거리다. 첫날밤 신부 옷고름도 풀지 않은 채 잠든 강모의 무심한 뒷모습에서 효원은 그녀 앞에 놓인 처연한 운명을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터벅터벅, 매안마을로 걸어 들어가 혹독한 운명에 맞섰던 그녀는 스무 살의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인물이다. “어느 한 사람 나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 하여도, 내 속에 내 먹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비루하고 누추하게 남의 문전에서 동정을 얻으려고 서성거리지 않을 것이다”란 구절 때문이다.몇 년 새 서도역은 꽤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구동매(유연석 분)가 철길에 앉아 고애신(김태리 분)을 기다리는 장면에 등장했는데, 여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과 지난한 세월을 품은 목조건물이 어우러져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 ‘혼불’을 기억하는 이들만 가끔 찾아오던 낡은 간이역이 이제는 젊은 연인들의 포토존이 되었다. 이들을 위한 피크닉 용품 대여 서비스까지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덕택에 나도 둘째와 피크닉 매트를 펴고 앉아 예쁜 추억을 남겼다. 언젠가 아이가 ‘혼불’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이렇게 마주 앉아 두런두런 오늘을 떠올려도 좋겠다.●춘향전의 무대, 광한루의 낭만 ‘혼불’에 앞서 남원을 대표하는 이야기, 바로 ‘춘향전’ 아닐까. 아이는 아직 ‘춘향전’을 읽지 않았는데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꾸민 상설 공연이 있어 광한루로 향했다. 작품 속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등장하는 광한루는 가상의 공간, 혹은 재현된 곳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명정승인 황희가 남원으로 유배 왔을 때 지은 엄연한 건물로,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6년인 1638년에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광통루로 불렸는데, 조선 전기 문신인 정인지가 달나라에 있다는 궁전(廣寒淸虛府)에 빗대어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도 웅장하고 그 앞으로 펼쳐진 연못과 그림처럼 놓인 오작교가 낭만적인 풍광을 선사한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에 선보이는 상설공연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춘향테마파크 입구 사랑의 광장에서 시작해 광한루를 오가는 제법 큰 행사다. 신관사또를 위한 육방과 기생의 다채로운 공연과 퍼레이드가 흥을 돋우는데, 100여명에 이르는 배우는 모두 오디션을 거친 지역 주민들이다. 사실적인 분장과 의상, 천연덕스런 연기 덕분인지 아이는 마치 과거로 여행을 온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엄마, 남원은 옛날 사람들이 사는 곳이에요?” 광한루 근처에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아이와 함께 찾았다. 남원의 근현대 기록물을 모아놓은 복합문화공간 남원다움관이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혼불문학관에서 만난 해설사 어르신의 인터뷰 영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혼불 지킴이’, ‘혼불 할매’ 등으로 불리는 황영순씨다. 내게도 스스로를 촌아낙이라고 소개했던 그녀는 우연히 읽게 된 ‘혼불’로 인생이 바뀌었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니 호기심에 펼쳐 든 책이었다. 전주 이씨 문중 종부이기도 한 그녀는 청암부인과 효원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혼불’에 흠뻑 빠지게 되면서 효원의 실제 모델인 삭녕 최씨 종가 며느리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청호저수지, 근심바우 등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찾아냈다. 덕분에 혼불문학관의 해설사로, ‘혼불’ 문학기행의 안내자로 제2의 인생을 맞게 되었다. 지금도 그의 서가에 꽂혀 있던 너덜너덜한 ‘혼불’ 초판과 이튿날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내게 쥐여 줬던 따뜻한 누룽지 한 덩이를 잊지 못한다. 내게 남원이 ‘춘향전’ 대신 ‘혼불’로, 추어탕 대신 누룽지 한 덩이로 남은 이유다.●아이는 호기심, 어른은 추억의 세계로 아쉽게도 황영순 어르신의 영상은 그새 다른 전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1층 야외에 마련된 물놀이터 덕분에 신이 났다.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뛰어놀고는 그제야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남원다움관 1층에는 남원 시내 지도와 함께 공간 하나하나에 쌓인 주민들의 소소한 기억들을 수집해 뒀다. 2층은 아이와 함께 둘러보기 좋았다. 인력거를 타고 남원의 근현대 거리를 달려 보는 가상체험 콘텐츠를 비롯해 엄마아빠의 학창 시절 추억까지 떠올리게 하는 오락기, 1960~70년대 만화방과 다방, 사진관 등이 재현돼 남원의 정체성은 물론 아련한 복고 감성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옛 만화를 따라 그리는 데 관심을 보인 아이가 ‘독수리 오형제’를 쓱쓱 그림으로 담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엄마가 어릴 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라고 하니 완성된 그림을 선물이라며 건넨다. 전시는 바뀌었어도 또 하나의 기억을 덧댄 셈이다.●굽이치는 지리산 능선이 발아래 남원은 지리산이 품은 도시다. 산을 즐겨 오르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아이와 함께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면 그 첫 번째는 지리산 아닐까 싶다. 훌쩍 자란 아들과 서로를 밀고 끌어 주며 지리산을 종주하는 꿈을 마음 한편에 간직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아이를 위해 이번 여행에선 정령치를 골랐다. 정령치휴게소 주차장에서 계단만 오르면 굽이치는 지리산의 능선을 발아래 담을 수 있는 명소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면 개령암지 마애불상군까지 걸어 보길 추천한다. 대부분 평탄한 숲길이어서 아이가 걷기에도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절벽에 새겨진 12구의 불상이 신비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깎여 온전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바위에 새긴 온화한 눈매와 부드러운 옷 주름이 경건함만은 잃지 않았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밝혀진 이들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 진주에 오면 생각나는 이름, 천하무쌍 황진 장군과 논개 [한ZOOM]

    진주에 오면 생각나는 이름, 천하무쌍 황진 장군과 논개 [한ZOOM]

    경남 진주는 곡선으로 흐르는 남강(南江)이 만든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도시다. 경남 서쪽에 위치해 있어 서부경남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전부터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진주의 대표적인 명소는 진주성이다. 남강을 앞에 두고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성되어 있는 천혜의 요지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때 일제가 도시개발을 이유로 외성을 허물어 버려 지금은 내성만 남아 있다. 진주성에 들어가면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차 진주성 전투인 ‘진주대첩’은 권율의 ‘행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주대첩의 승리로 조선은 왜군으로부터 전라도를 지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의병들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약할 수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이끈 수군도 육지 본영을 걱정하지 않고 해전(海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시민 동상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진주성 성벽에 올라서 남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곳에 올라설 때면 항상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2차 진주성 전투를 이끌다가 전사한 천하무쌍(天下無雙) 황진(黃進,1550~1593) 장군이다.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 육지에는 황진 장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군이었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실질적인 총대장으로 진주성을 방어했으나 왜군 시신 사이에 숨어 있던 적병의 조총에 전사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황진 황진 장군은 우리에게는 ‘황희 정승’으로 유명한 명재상 황희(黃喜, 1362~1452)의 5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무예가 뛰어났으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 1590년 5촌당숙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호위군관 자격으로 조선통신사 일행에 합류했다. 이때 황진 장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의도를 간파했다. 일본에서 돌아온 황진 장군은 지금의 화순인 동복현감으로 있으면서 무예를 익히고 군사들을 철저히 훈련시키면서 전쟁에 대비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한양을 점령했다. 일본군은 조선을 명나라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량보급이 필요했다. 하지만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로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수군 때문에 해상보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전라도 확보를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전라도의 중심도시 전주 점령을 명령했다. 고바야카와는 군대를 이끌고 금산으로 내려갔다.  일본군이 금산에서 전주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웅치’와 ‘이치’ 두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조선군은 일본군이 100년 가까운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공성전(攻城戰)에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산악지형을 이용하기 위해 웅치와 이치에 군대를 나누어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 고바야카와는 군대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안코쿠지’에게 제1대를 주어 웅치로 향하게 했고, 자신은 제2대를 이끌고 이치로 향했다. 조선군은 웅치에 3겹의 방어진을 만들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첫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시작된 총공격에 방어진이 무너졌다. 일본군보다 한참 적은 병력에 화살까지 떨어져 돌을 던지면서 싸웠지만 결국 방어진이 무너졌다. 남은 병력은 진주성으로 합류했다.  한편 황진 장군은 일본군이 남원을 통해 전주로 공격해올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남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웅치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웅치로 돌아왔지만 이미 전투는 끝나 있었다. 황진 장군은 웅치전투에서 살아남은 병력과 함께 안덕원에 진을 치고 있던 안코쿠지 군대를 기습했다. 일본군은 소양평으로 도주했지만 황진 장군은 이들을 끝까지 추격해 섬멸한 후 이치로 향했다.죽주산성을 탈환한 황진 장군  며칠 후 고바야카와의 제2대가 이치를 공격했다. 황진 장군이 이끈 조선군은 가파른 고객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화승총(조총) 공격을 막으며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하루 종일 이어진 치열한 전투는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황진 장군에게 패배한 일본군은 병력손실로 전주성을 공격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선군의 협공으로 몰살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전주성을 포기하고 금산으로 철수했다.  황진 장군은 다음 해인 1593년 교통의 요지인 안성에 있는 죽주산성(竹州山城)을 탈환했다. 죽주산성은 고려시대 몽골도 점령하지 못한 성인데 황진 장군은 치밀한 전략으로 이 성을 되찾은 것이었다. 황진 장군의 죽주산성 탈환으로 일본군은 한양에 고립되어 버렸다. 결국 일본은 명나라에 휴전협상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와 휴전협상을 진행하던 일본군은 부산으로 철수했다. 조선군은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명나라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은 일본군 공격을 금지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일본군의 명나라 침입을 막아내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있는 모든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1차 진주성 전투의 설욕을 갚고 앞으로 전라도를 확보하기 위해 진주성을 공격하라. 만약 진주성을 점령하지 못한다면 모든 장수들과 인질로 잡혀 있는 가족들의 목을 치고 모든 영지를 몰수할 것이다’ 명나라 심유경(沈惟敬)은 일본군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진주성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시니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며, 차라리 진주성을 비워 두면 진주성을 잠시만 점령했다가 물러나겠다고 전했다.  황진 장군과 김천일, 최경회와 같은 의병장들은 패배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진주성에 남아 있는 백성들과 전라도를 지키기 위해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1593년 6월 22일 일본군이 진주성에 포위했다. 진주성의 3천명 조선군은 10만명의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일본군은 하루 이틀 안에 진주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력부대가 모인 일본군은 수적으로도 우세했고 진주성에 모인 일본군 장수들은 전국시대 수많은 전투를 제패한 장본인들이었다. 그러나 총사령관인 황진 장군의 진주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전투가 쉽게 풀리지 않아 진주성 해자를 메우고, 귀갑차를 동원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지만 조선군은 쉽게 밀리지 않았다.  전투가 무르익을 무렵 황진 장군은 야간에 진주성 성벽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때 시신 사이에 숨어 있던 일본군 병사가 조총을 쏘았고, 총알을 이마를 맞은 황진 장군은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황진 장군이 전사한 다음 날 진주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진주성에 들어간 일본군은 조선군과 백성들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살육전을 벌였다.  진주성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황진 장군이 살아 계셨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순신 장군도 ‘황진 장군이 전사해 나랏일이 어긋나겠구나’라며 탄식했다.  논개(論介)와 의암(義巖)’ 진주성이 뚫린 후 조선군 장수들은 촉석루에 올라 북쪽을 향해 임금에게 절을 한 후 일본군 병사들의 목을 붙잡고 남강으로 뛰어들면서 죽는 순간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촉석루 아래에는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바위가 하나 있다. 진주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승리의 연회를 벌였다. 술기운이 무르익어 갈 무렵 한 기생이 이 바위로 일본군 장수를 유인한 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버렸다. 그녀는 기생으로 알려진 ‘논개’다.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 논개의 이야기는 입으로만 전해지다가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논개를 기생으로 소개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논개를 기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논개는 주달문(朱達文)의 딸로 태어난 양반 가문의 규수였고, 의병을 일으킨 최경회(崔慶會)의 아내였다. 논개는 진주성에서 최경회를 보필했고, 2차 진주성 전투로 최경회가 순국하자 기생으로 분장해 남강 의암바위 위에서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안고 투신해 남편의 복수를 한 것이었다. 진주성과 촉석루를 떠나며… 촉석루(矗石樓)는 2012년 미국 CNN이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으로 선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이 촉석루 아래에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뿌려진 곳이기도 하다.  진주성을 떠나며 황진 장군과 논개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랬듯이 만약 황진 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제라도 전쟁 초기에 전사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황진 장군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필요할 것 같다. 
  • 백일섭 “졸혼, 서로 다른 길 걸었던 것… 지금 행복하다”

    백일섭 “졸혼, 서로 다른 길 걸었던 것… 지금 행복하다”

    배우 백일섭이 졸혼 후 삶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지난 9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 백일섭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약 200편 작품에 출연한 한국 ‘아버지상’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60년 넘게 연극배우로 활약해 온 백일섭이 함께했다. 백일섭의 절친한 친구로는 작품 속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춰온 선우용여와 전라도 고향 후배 배우 김성환 그리고 뜻밖의 인연으로 백일섭의 아들과도 절친한 사이인 배우 후배 구본승이 등장했다. 백일섭은 절친들을 위해 직접 궁평항 수산물 직판장에서 싱싱한 가을 제철 해산물들을 공수했다. 3년 전, 독신 생활을 꿈꾸며 직접 집 설계에 참여한 백일섭은 경기도 화성시의 전원주택을 방송 최초로 공개했다. 식탁에 모여 앉은 백일섭은 외로웠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방송 최초로 자신을 서울로 상경하게 한 의붓남매인 누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연예계 최초 졸혼 선언을 하며 독신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백일섭은 절친들과 명절 단골 주제인 결혼 이야기를 시작으로 졸혼 토론을 이어갔다. 백일섭은 사랑꾼 김성환과 미우나 고우나 부부는 함께여야 한다는 선우용여의 졸혼 반대 의견에도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것 같다. 지금은 행복하다”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앱 결제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는 ‘힙한 할배’의 면모도 보였다.
  • “부담되는 ‘부모님 용돈’…얼마 준비하고 계신가요?”

    “부담되는 ‘부모님 용돈’…얼마 준비하고 계신가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모(31)씨는 고향인 경상북도 경산시 대신 서울에서 연휴를 보내고 있다. 김씨는 “‘취직 언제 할 거니’ 잔소리가 너무 부담된다”며 “고향에 가려면 KTX 등 교통비도 만만치가 않다. 이번 추석은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회사원 박모(30)씨도 전라도 광주 본가에 내려가는 대신 자취방에 머문다. 박씨는 “안 그래도 자취하느라 돈 모으기가 어려운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부모님 등 어른들께 명절 용돈까지 드릴 엄두가 안 나더라”라며 “이번 추석만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나중에 찾아뵙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는 2030세대가 점차 늘고 있다.취업준비생이 꼽은 최악의 명절 잔소리는 변함없이 ‘취업’과 ‘연애·결혼’ 관련 내용인 것으로 집계됐다. 부모님, 조카 용돈 부담에 아예 추석 귀성을 포기한 청년들도 많았다. 29일 채용 플랫폼 캐치에 따르면 Z세대 취준생 2404명을 대상으로 가장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취업’ 관련 잔소리를 선택했다. ‘연애·결혼’ 잔소리는 17%였다. 또 응답자의 32%는 올해 추석에 고향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취업 준비로 바빠서’가 44%였고, 이어 ‘휴식을 하고 싶어서’가 21%, ‘여행, 개인 일정 등 다른 계획이 있어서’가 12%였다. 특히 고물가로 지출은 늘고 소득은 제자리 걸음인 상황에서 명절 선물, 부모님과 조카들의 용돈 등 나가는 돈이 부담된다고 청년들은 입을 모았다. “추석 경비 ‘부모님 용돈’ 가장 부담돼” 최근 유진기업이 임직원 1295명을 대상으로 추석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추석 경비 중 부담되는 항목으로 제일 먼저 부모님 용돈(39.6%)을 꼽았다. 명절선물 비용(20.4%), 조카 용돈(7.0%) 등이 그 뒤를 이었다.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응답자의 44.1%가 ‘명절이 즐겁지 않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꼽은 비율은 54.7%에 달했다. “‘부모님 용돈’ 20대 17만원, 30대 21만원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모님 용돈’은 얼마가 적정할까. 추석 명절 부모님 용돈으로 평균 10만~30만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KB국민카드와 카카오페이가 추석 용돈 관련 설문을 조사한 결과,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으로 10만~30만원 미만이 응답자중 74%로 가장 많았다. 10만원 미만으로 응답한 고객은 7%, 30만~50만원 미만은 15%, 50만원 이상은 4%로 분석됐다. 이중 2030이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시세는 20대의 경우 약 17만원, 30대는 약 21만원으로 집계됐다. 내가 받고 싶은 용돈 금액은 10만~30만원이 6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0만원 미만 25%, 30만~50만원 미만 8%, 50만원 이상 4% 순으로 조사됐다.
  • “마지막 전사자 한 명까지”…추석에도 6·25 전사자 찾기는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전사자 한 명까지”…추석에도 6·25 전사자 찾기는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전사자 한 분까지 가족들에게 보내드려야지요.” 6·25전쟁 3년 동안 국군과 유엔군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6만여명. 이 가운데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국군 전사·실종자는 13만 3192명에 이른다. 유가족들은 추석 연휴조차 가슴 한구석이 휑할 수밖에 없다. 나라를 위해 산화했지만 아직 산야에 남겨진 13만여위를 국립현충원에 모셔 유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사업이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추석 연휴에도 다음달 서울 25개 구청과 함께하는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집중 찾기’ 사업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집중 찾기’ 사업은 6·25전쟁의 미수습 전사자 명부를 바탕으로 본적지 혹은 주소지가 서울 지역인 전사자 명부를 구청과 주민자치센터에 제공하면, 해당 지역 예비군 지휘관이 유가족을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유단은 서울에서 찾아야 할 전사자 유가족을 약 62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29일 “유해발굴사업은 국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구축하는 사업”이라며 “한마디로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무한책임 의지를 실현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김대중 정부 당시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이 계기가 됐다. 2000년부터 3년 한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국민 호응을 얻으면서 국가사업으로 격상됐다. 2007년 국방부 직할기관으로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됐고, 2008년 ‘6·25 전사자 유해의 발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발굴지역 선정부터 유전자채취까지 핵심은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이다. 이 가운데 유해발굴은 6·25 당시 한국, 미국, 중국 측 기록물까지 살피는 문헌조사에서 출발한다.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구술조사도 중요하다. 6·25 당시 전투 상황을 기록한 군사지도와 하나씩 대조해가며 답사하는 현장조사를 통해 구체적 발굴지역을 선정한다. 해마다 3~11월 30여개 사단과 여단에서 연간 10만여명(일평균 900여명)이 40곳 가량의 지역에 투입된다. 국유단 소속 전문인력이 장병 교육과 현장 감독에 참여한다. 국유단에 따르면 2022년 12월까지 발굴한 유해는 모두 1만 3121구다. 2018년 체결한 9·19군사합의에 따라 2019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2021년 9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백마고지에서 실시한 뒤 지금은 잠정중단된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유해를 어렵게 찾았다고 해도 신원확인이란 고비를 넘지 않으면 안된다. 전사자가 갖고 있던 수첩이나 수통, 만년필 등에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유전자 채취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국유단이 특히 공을 들이는 게 유전자 시료 확보다. 국유단이 지난 2월까지 확보한 유전자 시료는 8만 7367개에 이른다. 국유단이 10월에 서울 지역에서 실시하는 6·25 전사자 유가족 찾기사업은 2021년부터 실시해온 지역별 유가족 집중찾기 사업의 일환이다. 2021년 경상도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사업은 2022년 경기·인천, 제주와 강원, 충청 지역으로 확대했으며, 올해 들어 지난 6월 전라도, 10월 서울까지 실시한 뒤 1차 사업을 종료할 예정이다.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 유가족으로, 친·외가를 포함해 8촌 이내까지 신청 가능하다.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면 포상금 1000만원을 지급한다. 전쟁에 참전했지만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친인척이 있다면 국유단 대표번호(1577-5625) 혹은 가까운 동사무소, 군 부대(예비군지휘관), 보건소, 보훈병원, 군병원 등으로 신청하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6·25전쟁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시간과 전쟁을 하는 상황인 만큼 민관군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조선시대 마지막 해상왕 ‘장영기’를 아시나요?

    조선시대 마지막 해상왕 ‘장영기’를 아시나요?

    국내에 한 번도 보고되지 않은 마지막 해상왕이 조선 전기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져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김대호 순천대학교 학술연구교수(지리산권문화연구원)의 연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영기’다. 그는 은둔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도적의 무리가 아니라 ‘예종~성종조에 전라·경상·충청 하삼도 육·해상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관군과 빈번한 전투를 벌였던 인물이다. 재상의 의물(儀物)을 사용하고, 종친과 당상관 가족만이 탈 수 있는 ‘유옥교자(有屋轎子)’를 타고 다닐 정도의 위세를 누렸다. 장영기는 무안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점차 경상도와 충청도를 오가며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고, 하동군 화개에 이상향을 구축하기도 했다. 조선 최초의 민간 세력인 데다 조선왕조실록이 장영기를 24회, 임꺽정을 23회, 홍길동을 10회, 장길산을 3회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 세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1485), 점필재집(1497), 속동문선(1518), 동국여지지(1656), 연려실기술(1776) 등에 34건이 기록돼 있다. 장영기 세력이 중앙 정규군인 경군(京軍)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성장하자 고령군 신숙주, 영성군 최항, 좌의정 윤자운, 도승지 권감 등이 토벌대를 구성하기까지 했다. 그는 토벌대에 의해 궐기 3년 만에 진압됐다. 김대호 교수는 “장영기는 한·중·일 등 동북아 해상의 정세변화와 사회경제적 중앙집권을 완성하고자 했던 조선의 조운정책 변화에 따른 해상세력의 변화양상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활용가능한 융복합 자원으로서 무궁무진한 활용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장영기 해상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달 학술지인 동아시아고대학 71호 ‘조선 전기 해상정책 변화와 장영기 세력 궐기의 상관성 연구’를 통해 공개된다.
  • [씨줄날줄] 천오백의총/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천오백의총/서동철 논설위원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의 7월 1일 눈벌싸움을 제1차 금산전투, 충청도 옥천 의병장 조헌과 공주 의승장 영규의 8월 18일 연곤평싸움을 제2차 금산전투라고 흔히 부른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금산전투는 두 차례 더 있다. 금산군수 권종이 금강을 건너려는 왜군에 맞선 6월 말의 개티전투가 가장 이르다. 금산은 지금 충청남도지만 당시는 전라도 땅이었다. 일련의 금산전투는 곡창 호남을 내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했다. 권종은 불과 200명 남짓 병력으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대군을 막아서다 순절했다. 해남 현감 변응정의 횡당촌전투는 8월 27일 벌어졌다. 변응정은 왜란 초기 크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왜적이 군대를 30만이나 내보냈다면 내부는 반드시 비었을 것이니 우리가 수군 4만~5만으로 곧장 근거지를 쳐부수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상소한 기개 있는 장수다. 변응정은 당초 조헌·영규와 금산성을 함께 치기로 했지만 싸움이 모두 끝난 다음에야 닿을 수 있었다. 변응정 부대는 금산성 서남쪽 조종산성에서 왜군과 맞부딪쳤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칠백의총에는 변응정의 위패도 조헌·영규와 나란히 모셔졌다. 조선군은 이렇듯 금산의 왜군과 싸워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우리 쪽에서조차 무모하다고 비판했던 전투가 이어지면서 견디지 못한 왜군은 9월 16일 금산성을 버리고 철수했다. 이렇게 보면 일련의 금산전투는 졌지만 결과적으로 이긴 전투가 아닐 수 없다. 중심에 고경명과 조헌·영규·권종·변응정은 물론 휘하의 이름 없는 의병·의승병·관군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제2차 금산전투가 벌어진 8월 18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9월 23일 칠백의총에서 해마다 정부가 주도하는 순의제향(殉義祭享)이 열린다. 엊그제 행사에서 불교계는 ‘조헌의 700명 의병뿐 아니라 영규의 800명 의승병도 기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다시 냈다. ‘칠백의총’이 아니라 ‘금산의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천오백의총’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름에도 역사성이 있다는 문화재청 설명은 일리가 있다. 같은 이치라면 일제강점기 사라졌다는 의승병 사당 승장사(僧將祠)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 파랑새가 되어 돌아올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터 [한ZOOM]

    파랑새가 되어 돌아올 녹두장군 전봉준의 생가터 [한ZOOM]

    전북 고창에는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1895년) 장군의 생가터가 있다. 2001년 고창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파괴된 전봉준 장군 생가를 복원했지만 복원 직후부터 고증실패 논란에 휩싸였다. 몰락한 양반집안의 후손이었던 전봉준은 당시 농민들이 살던 초가삼간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데 복원된 생가는 양반이나 지주가 살았을 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2019년 고창군은 복원한 생가를 허물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고(故) 신영복 교수가 쓴 전래민요 ‘새야새야 파랑새야’가 새겨진 비석만 남아있다. 현재 고창군은 고창군 일대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이곳 생가터에는 ‘전봉준 기념공원’이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평등한 세상을 추구한 ‘동학’의 탄생 19세기 중반 청나라는 아편전쟁과 같은 서구열강의 침략과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내부의 분열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조선에서도 서구열강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가고 있었다.  최제우(崔濟愚,1824~1863)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를 말하는 서학(西學)에는 서구열강이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으므로, 서학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신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860년 서학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유교, 불교, 선교 등을 종합한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동학은 지독한 가난과 양반들의 핍박 속에 살던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동학의 인본주의와 평등주의는 조선의 신분제 사회질서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결국 최제우는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죄로 1864년 처형됐다. 하지만 동학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고, 1905년 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어 계승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불씨, 탐관오리 조병갑 1893년 지금의 전북 정읍인 고부에 신임군수 조병갑이 부임했다. 고부는 전라도 내에서도 유명한 곡창지대였다. 부패한 탐관오리였던 조병갑도 그 사실을 알고 농민들을 수탈하기 위해 고부군수로 온 것이었다.  예상대로 조병갑은 부임하자마자 각종 세금으로 농민들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는 ‘불효죄’, 형제자매 간에 화목하지 않았다는 ‘불목죄’ 등 없던 죄를 만들어 농민들을 수탈했다. 심지어 자신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운다고 세금을 뜯어갔다. 흉년으로 굶어 죽은 백성들은 늘어가는 만큼 조병갑의 곳간에는 쌀이 쌓여갔다. 어느 날 조병갑은 새로운 저수지, 만석보(萬石洑)를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농민들은 당황했다. 이미 멀쩡한 저수지가 있는데도 새로운 저수지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조병갑은 농사일에 바쁜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심지어 임금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만석보가 다 지어지자 조병갑은 만석보의 물을 사용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며 농민들에게 또 세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조병갑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농민들은 몰락한 양반 전창혁(全彰赫)을 찾아가 탄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전창혁이 쓴 탄원서를 받은 조병갑은 그 자리에서 탄원서를 들고 온 농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탄원서를 쓴 전창혁도 붙잡아와 곤장을 때렸다. 곤장을 맞은 전창혁은 후유증을 견디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1894년 음력 1월 10일 전창혁의 아들 전봉준은 1000여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관아로 향했고, 조병갑은 도망쳤다. 전봉준은 죄 없이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조병갑이 수탈한 쌀을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병갑을 파직하고 완도로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 진상파악과 상황수습을 위해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했다. 그러나 이용태는 민심을 달래지 않았다. 고부에 도착한 이용태는 농민들을 모두 동학교도로 몰아 체포했다. 심지어 반항하는 이들은 집을 불태우고 죽였다. 이는 민심수습보다는 신분제 사회질서를 뒤흔드는 동학을 뿌리뽑아 다시는 봉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당시 조정과 양반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전봉준은 부패한 탐관오리와 양반들로 썩어버린 세상을 바로잡고자 사람들을 모아 한양으로 향했다. 4000여 명이던 동학농민군도 어느덧 1만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양으로 가기 위해 전주성을 향하던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에 이어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했다. 전주에 있던 전라감사와 관군들은 동학농민군이 온다는 소식에 도망쳤고, 동학농민군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주성을 접수했다.  한편 위기를 느낀 고종은 청나라를 끌어들이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음력 5월 5일 청나라 군대가 충청남도 아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본군이 인천에 도착했다. 1884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조약’ 때문이었다. 텐진조약은 청나라와 일본 중에 한 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 다른 나라도 군대를 보낼 수 있도록 한 조약이다.  두 나라의 군대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전봉준은 동학농민군 자진 해산을 결단했다. 혁명도 중요하지만 만약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백성들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전봉준은 조정에 자진해산 후에도 동학농민군을 탄압하지 않을 것, 농민들이 지방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동학농민군이 자진해산 했는데도 일본군은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경복궁을 점거하고 친일내각을 구성했다. 일본군은 애초부터 동학농민군이 아닌 조선장악을 목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1894년 음력 9월, 전봉준은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삼례지역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을 다시 모았다. 처음에는 탐관오리가 목표였지만 이제는 조선을 침략하려는 일본군이 목표였다. 처음 4천여 명이었던 동학농민군은 어느덧 4만여 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조선관군과 너무도 달랐다. 공주를 지나던 동학농민군은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 앞에 무참히 무너졌다.  1894년 음력 11월 9일,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 고개에서 일본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미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라는 일본군 총지휘관 명령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동학농민군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평생 농사만 짓던 동학농민군은 최신식 무기와 군사훈련을 받은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2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500명도 남지 않았다. 전봉준은 남아있는 농민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동학농민군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일본군을 피해 숨어 지내다가 부하의 밀고로 체포되어 1895년 음력 3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결코 실패하지 않은 혁명의 계승 동학농민혁명은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한 혁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 혁명을 실패로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은 대부분 지배계층이 주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피지배계층이었던 농민들이 중심이 된 민중항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신분체 철폐와 같은 조선의 근대화와, 의병활동을 통한 자주국권 회복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은 여전히 평가절하되어 있다. 심지어 전라도 농민봉기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고창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대해본다.
  • 광주 대표누각 ‘희경루’ 100년만에 복원

    광주 대표누각 ‘희경루’ 100년만에 복원

    광주 대표 누각이자 “동방 제일의 누”고 불리는 ‘희경루(喜慶樓)’가 100여 년 만에 중건됐다. 광주시는 20일 남구 구동에 자리한 희경루에서 중건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기념식은 현판 제막, 궁중 음악 수제천(壽濟天) 공연, 희경루 방회도(榜會圖) 공연, 중건 경과보고, 고유제, 시민들의 희망 활쏘기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희경루는 문종 원년인 1451년 무진군사(茂珍郡事) 안철석이 건립한 누각으로, 때마침 무진군에서 광주목으로 승격된 것을 기념해 희경루라고 명명했다. 조선 초기 문신인 신숙주는 ‘동방에서 제일가는 루(樓)’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광주시는 전라도 정도 천년(2018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소실된 누각을 중건하기로 하고 60억원을 들여 동국대에 소장 중인 보물 제1879호 희경루 방회도를 바탕으로 당시 모습을 재현했다. 원래 위치는 현재 충장로 광주우체국 일원으로 파악됐지만 역사환경과 접근성 등을 감안해 광주공원으로 장소를 옮겨 복원이 아닌 중건으로 불리게 됐다. 부지 면적 4992㎡, 연면적 463㎡ 규모다. 광주시 관계자는 “희경루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양림동, 사직공원, 광주공원을 잇는 핵심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한편, 중건된 희경루의 한글 현판을 강기정 광주시장의 서체로 제작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시와 희경루건립자문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중건식과 함께 시민에게 공개된 희경루에는 앞뒷면에 하나씩 현판이 설치됐다. 정면 현판은 한국학호남진흥원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 영인본에 있는 한자 喜(희), 慶(경), 樓(루)를 집자해 완성했다. 뒤쪽에 있는 한글 현판 글씨는 강 시장이 서예가의 지도를 받아 쓴 글씨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당시 무진군에서 광주목으로 복호되는 데 기여한 필문 이선제 선생의 후손인 이남진 서예가의 지도를 받아 강 시장이 ‘희경루’를 한글로 썼으며 이를 토대로 현판이 제작됐다는 것이다. ‘광주광역시장인’, ‘강기정인’ 등 2개의 낙관도 들어갔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역사 유산에 현직 시장의 글씨체와 낙관을 새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자문위원회는 한자 현판에 채택된 집자 방식이나 유명한 서예가에게 의뢰하는 방식 그리고 과거 지방관 격인 시장이 직접 쓰는 방식 등 3가지를 제안했다. 애초 강 시장은 부담감을 표시하면서 희경루와 관계된 다른 인물을 찾아보도록 지시하기도 했지만, “시장이 쓰는 것도 괜찮다”는 자문위 의견에 따라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서예계를 대표하는 학정 이돈흥 서예가에게 현판 글씨를 의뢰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그가 2020년 별세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 [마감 후] “전통시장에서도 새벽배송 되나요?”/강주리 세종취재본부 차장

    [마감 후] “전통시장에서도 새벽배송 되나요?”/강주리 세종취재본부 차장

    지난달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을 둘러싸고 정부와 야당 의원 간 격론이 벌어졌다. 정부는 쿠팡 등 온라인 유통업체가 주도하는 수도권 위주의 온라인 새벽배송 서비스를 비수도권 소비자들도 누릴 수 있도록 전국망이 갖춰진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규제(자정~오전 10시)를 완화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은 골목상권 죽이기’라며 반대했다. 결국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났고 광주·전주를 뺀 전라도 전역과 강원, 제주 지역의 새벽배송 서비스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을 다룬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문재인 정부 당시 MZ세대 등 지방 젊은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2020년 7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과 2021년 6월 고용진 민주당 의원이 잇따라 발의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법을 ‘당이 통과시켜야 할 법안’으로 규정했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무조정실, 중소벤처기업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 정부와 대중소 유통업계는 19차례의 지난한 협의를 거쳐 대형마트의 영업제한 시간과 의무 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고 중소 유통업계의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의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대중소 유통 상생발전 협약서에는 전통시장과 중소유통 공동물류센터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대형마트 측의 인력·교육 지원과 대형마트 온라인 플랫폼에 전통시장 상품 입고, 마케팅을 지원하는 방안들이 담겼다. 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 수익금을 기금으로 조성해 중소유통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협상 참여자(전국상인연합회·수퍼마켓연합회)의 대표성 부족과 골목상권에 미칠 영향평가 부족, 기금의 구체성 미흡 등을 이유로 상생협약의 무용함을 주장했다. 협상자를 넓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얘기다. 법안 자동 폐기까지는 7개월 남았다. 당에서 법안 철회를 요구받은 고용진 의원은 “새벽배송 허용은 중소상권을 빼앗는 것과는 상관없다”며 답답해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했던 대형마트 영업규제 시행 이후 지난 10년간 전통시장 영업점포 3만개가 문을 닫았다. 그 자리를 메운 건 법의 틈새를 노린 24시 식자재 업체와 온라인 유통업체들로 지난해 온라인쇼핑 시장 규모는 150조원을 넘겼다. 천편일률적 규제로는 골목상권을 살릴 수 없다. 달라진 소비 패턴과 유통 환경 속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직시하고, 지역 소비자들이 느끼는 역차별을 해소해 줘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전통시장이 새벽배송을 해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 대안도 없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MZ세대를 비롯한 지역 민심에 수도권과의 역차별을 감내하라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만약 정치적 이유로 특정 이익집단의 눈치를 본 의원들이 대중소 유통업계가 어렵게 합의한 상생협약을 외면하는 것이라면 지역 발전을 저해한 대가가 역풍이 돼 돌아올지 모른다. 장기적 시각으로 골목상권의 경쟁력을 높일 창의성 있는 법안과 예산을 키우는 지혜로움이 필요한 때다.
  • 소리 시간여행·동서양 음악의 만남… 새로운 ‘K콘텐츠’로 다가오는 국악

    소리 시간여행·동서양 음악의 만남… 새로운 ‘K콘텐츠’로 다가오는 국악

    “여봐라 군사들아 니 내 설움을 들어라 너희 내 설움을 들어봐라….” 지난 14일 가을비가 내리던 전남 해남 우수영국민관광지에 판소리 ‘적벽가’의 ‘군사설움타령’이 울려 퍼졌다. 소리꾼 이다연이 깊고 은근하게 내지르는 ‘적벽가’는 마이크 없이 노래하던 100여년 전 남도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올해 처음 선보인 ‘소릿공감’에서 만난 풍경이다. 국악이 다양한 시도 속에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역동하고 있다. 전통을 고수하고 보존하는 걸 넘어 우리의 소리를 소재로 새로운 볼거리, 즐길거리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소릿공감’ 소릿길서 문화유산 만나 ‘소릿공감’은 소리의 본고장인 전라도 지역의 ‘소릿길’에서 문화유산을 만나는 프로그램이다. ‘소릿길’은 한국문화재재단이 문화유산 방문코스로 만든 10개 길 중 하나다. 김현성 한국문화재재단 콘텐츠활용팀장은 “기존의 다른 길이 문화유산을 보는 것과 달리 ‘소릿길’은 무형유산을 볼 수 있다. 가곡이나 판소리를 들을 수 있게 준비한 게 이번 콘텐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전주세계소리축제’ 교향악단과 조화 전북 전주에서 개막한 ‘전주세계소리축제’ 역시 국악을 문화 콘텐츠로 만든 대표 사례다. 지난 2월 취임한 이왕준 조직위원장이 “지금이야말로 국악이 르네상스를 이뤄 낼 적기”라고 자신하며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올해 야심 차게 변신했다. 15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 개막공연은 국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선보인 자리였다. 소리꾼 고영열과 김율희가 각각 ‘사랑가’와 ‘제비노정기’를 고수의 북소리 대신 전주시립교향악단의 교향악 선율에 맞춰 노래했고 소프라노 서선영이 오페라 아리아 대신 ‘밀양 아리랑’을, 바리톤 김기훈이 ‘뱃노래’ 등을 부르며 동서양의 음악이 조화하는 매력을 뿜어냈다. 특히 고영열, 김율희, 서선영, 김기훈이 함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뱃노래’와 남도 민요 ‘거문도 뱃노래’ 등 동서양 뱃노래 6곡을 섞어 부른 무대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국악 세계화의 가능성도 내비쳤다. ●새달 ‘국악관현악축제’ 이미 매진 다음달 10~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국악관현악축제’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한다. 1965년 창단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등 국내를 대표하는 8개 국악관현악단이 참가한다. 국악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보여주듯 올해 처음 하는 행사인데도 일찌감치 매진됐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우리 음악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이 시점에 국악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하는 기회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면서 “국악인들에게도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개했다. 국악과 외국 콘텐츠를 엮어 재창작한 점도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지난 16일 선보인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소설을 판소리 형식으로 풀면서 눈길을 끌었다. 고대 그리스 이야기를 소재로 한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지난 8월 세계적인 공연 예술 축제인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현지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 ‘쿠팡은 되고 대형마트는 안돼’ 민주당 새벽배송 반대축 보니… “누굴 위한 정치냐” 들끓는 민심 [뉴스분석]

    ‘쿠팡은 되고 대형마트는 안돼’ 민주당 새벽배송 반대축 보니… “누굴 위한 정치냐” 들끓는 민심 [뉴스분석]

    민주 “새벽배송, 골목상권 침해”대·중소유통업체 상생안 합의에도“대표성 부족, 영향평가 가져와야”“소상공인 비례대표 의원 결사반대로개정안 통과 어려워” 정부에 전달산업 “전남·강원·제주 새벽배송 불가”“MZ·지역소비자 선택권·편익 누려야”수도권 중심 배송에 지역 역차별 논란네티즌 “골목상권 보호하다 지역소멸” 쿠팡, 마켓컬리 등을 이용한 온라인 새벽배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지역에 전국망이 갖춰진 대형마트를 활용한 새벽배송이 가능해지도록 영업시간 규제(자정~오전 10시)를 완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안이 민주당의 반대로 기약 없이 늦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에 이어 민주당에서도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내년 4월 법안 자동 폐기까지 이제 8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엔 MZ세대 소비자들의 강력한 염원을 담은 이 개정안을 ‘당이 통과시켜야 할 법안’으로 규정했던 민주당은 정권이 바뀌면서 법안을 낸 소속 의원에게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압박할 정도로 입장이 바뀌었다. 민심은 들끓었다.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전라도(광주·전주 제외)와 강원·제주 등 새벽배송 미시행 지역 소비자들은 6일 “새벽배송하는 수도권엔 골목상권이 없느냐”, “왜 국회가 나서서 지방 새벽배송을 막느냐”, “전통시장이 새벽배송을 다해줄 수 있느냐”, “시대 변화는 못 읽고 쿠팡만 보호하는 꼴”, “사람 적다고 지역 차별하느냐” 등 격앙된 반응들을 쏟아냈다. 민주당이 총선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지역 민심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 이 법안의 통과를 막고 있는 이른바 ‘대형마트 새벽배송 저지’의 축과 이유를 살펴봤다.● 8월 21일 국회 산자위 법안소위서 벌어진 일 유통법 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달 21일 1년 9개월 만에 회의를 열었다. 대형마트의 야간시간과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법 개정안은 2020년 7월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2021년 6월 고용진 민주당 의원이 의원 입법안으로 제출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2021년에도 세 차례 논의선상에 올랐지만 번번이 개정안과 쟁점 수 과다에 따른 논의 부담으로 인해 실질적인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논의가 처음 진행된 지난달 21일 법안소위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 법안을 통과시켜줄 수 없는 이유로 크게 3가지를 언급했다. ▲정부(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대형마트(한국체인스토어협회) 측과 전통시장(전국상인연합회)·슈퍼마켓(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 중소상공인 대표 측이 합의한 ‘대중소유통 상생발전 협약’이 도출되기까지 협상에 참여한 단체들의 대표성 부족 ▲온라인 새벽배송의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 미칠 영향평가 필요 ▲골목 상권과 중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상세한 기금 조성 규모 등 중소유통 상생 방안의 구체성 부족이다. 속기록에 따르면 홍정민 민주당 의원은 “골목상권이라고 하는 분들의 피해와 소비자 편익과 (이를 누리는) 분들이 실제로 원하는지 딱 정리된 숫자나 눈에 보이는 정확한 요소가 적다”면서 “시장상권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과 수퍼마켓조합(수퍼마켓연합회) 그분들만 골목상권을 다 대변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고 지적했다. 박영순 의원은 명칭이 헷갈리는지 전통시장상인연합회가 전국상인연합회가 맞느냐고 거듭 물은 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예”라고 답하자 “그분들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전체가 아닌) 일부를 대표한다”면서 “객관적 데이터 없이 이해관계자 몇몇만 여러 차례 만나서 이해관계를 주고 받아 합의했다고 해서 법이 통과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 통과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장 차관은 “(지난해 10월 상생협약체가 구성된 이후) 저희들이 19차례 만나면서 상세한 내용을 다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법 개정을) 원한다는 것”이라면서 “(2012년 유통법에 대형마트 영업규제 도입 이후) 12년간 유통규제 관련 논의를 하면서 계속 카운터파트(협상 상대)였고 특별히 문제가 없었다. 조직화돼 있지 않은 모든 상인들을 다 포괄해서 의사결정을 만들어낼 수 없고 필요하면 그 부분을 계속 확대해가면 되는데 그것 때문에 힘들게 합의한 것 자체를 그냥 또 ‘기다려라’고 하면 전국상인연합회나 수퍼마켓연합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가 된다”고 호소했다. 같은 당 신영대 의원은 “제가 가장 많이 만난 단체들은 소상공인연합회인데 전통시장연합회는 굉장히 부정적이던데 그런 단체들의 의견 수렴을 쭉 다시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수퍼마켓협동조합은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해줘서 일정 정도 정부 시책에 좀 수동적인 부분도 있고 이 친구들은 물류창고만 만들어주면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소상공인연합회의 입장 등을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장 차관은 “소상공인연합회에는 미용사·노래방 등 관련 없는 업종(전국 56개 업종)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물류와 직접 관련된) 수퍼마켓연합회도 소상공인연합회 소속”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허용에 대해 “대형유통업체들이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하는 걸 또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의무휴업 제도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대기업의 경쟁력은 훨씬 더 강화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소상공인들, 골목상권들, 편의점 이런 것은 다 훨씬 경쟁력이 약화될 게 눈에 뻔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 통과시) 중소상공인들의 피해 정도 등 깊이 있는 영향분석이 있어야 한다”면서 “유통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민의힘과 정부, 여당이 객관적인 데이터 없이 밀어붙이려는게 아니냐”라고 따졌다. 장 차관은 “2012년 (대형마트 영업규제 당시) 사회적 상황과 지금 상황이 많이 다르고 그때 합의하자고 했으면 시장상인연합회나 슈퍼마켓연합회가 반대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자기들도 10년 이상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를 해보니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이게(규제)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시장 현대화, 물류 현대화에 있다고 보고 서로 딜(합의)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차관은 “누가 봐도 만족할 만한 결론이 나오기는 어렵지만 그보다 이건 국민들이 규제를 풀어 달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국회나 정부가 ‘분석이 안됐으니 안되겠어’가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풀어주고 그 다음에 부작용이 있으면 또 보완하는게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것을 다 틀어막고 ‘조금 이따가 보자’고 한다면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구가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상당수 비수도권 지역에 물류센터가 없어 새벽배송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언급하며 “핵심 이해당사자인 소상공인들이 동의했고 지역에 있는 MZ세대들과 청년들이 수도권의 소비자들이 누리는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는데 동의한다면 굳이 (국회가) 반대할 이유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MZ세대를 비롯한 지역 소비자들의 선택권과 편익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현재의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가 되레 지역 소비자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산업부와 국조실, 중기부, 전국상인연합회, 수퍼마켓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 정부와 대·중소유통업계는 19차례의 지난한 협의 과정을 거쳐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시간과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고 중소유통 역량 강화하는 내용의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대중소 유통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서에는 전통시장과 중소유통 공동도매물류센터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인력 지원과 교육·연수, 대형마트의 온라인 플랫폼에 전통시장의 상품을 입점과 마케팅 지원 등 중소유통업을 대표하는 전국상인연합회와 슈퍼마켓조합연합회가 희망했던 상생 방안들이 담겼다. 또 지속가능한 상생을 위해 온라인 배송 등으로 인한 수익금을 기금으로 조성해 정부와 대형유통업계가 중소유통의 필요사항을 지원하는 내용도 합의돼 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19번이나 2년에 걸쳐 상생 협력을 어렵게 만들어온 거라면 국회가 이걸 ‘못 믿겠다’, ‘우리가 막아야겠다’고 하는 건 국회의 역할이 좀 과하다”라면서 “대규모 점포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92%가 중소기업·농업·수산업 생산자에 의해 공급되는 물품들인데 이걸 이분법적으로 ‘대기업을 왜 도와주느냐’, ‘중소기업은 손해 아니냐’는 시각은 맞지 않아 보인다. 상생 협약이 돼 오고 민간이 합의한 거라면 최대한 반영해주는 게 옳다”고 견해를 밝혔다.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도 “젊은 세대들과 시장에 가기 힘든 계층들에게 편익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동의했다. 김성원(국민의힘) 소위원장은 ‘협상 참여 단체의 대표성이 없다’는 신 의원의 의견에 “(협상에 참여한) 협회(전국상인연합회, 수퍼마켓연합회)에 속하지 않은 사각지대에 있는 골목상권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건데, 그렇게 따지면 국회가 (각 지역 국민을 대표해) 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는 결국 민주당 반대에 막혀 결론 없이 끝났다.● 민주 내부서도 필요성엔 공감… ‘눈치보기’고용진 “새벽배송, 중소상권 뺏는 것 무관”쿠팡 매출 25조… 대형마트 3사 합친 수준 민주당 내부에서도 공감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개정안을 발의한 고 의원을 비롯해 온라인 새벽배송이 활성화된 시대 변화에 맞게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를 쿠팡과 마켓컬리 등 다른 온라인 유통매체처럼 풀어줘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원들도 있다. 고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새벽배송 허용은) 시대가 바뀌었고 중소상권을 빼앗는 것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면서 “이미 쿠팡은 다 하고 있는데 대형마트는 (영업규제로 새벽배송을) 못하는 건 불공정한 부분이 있고 전국망을 갖추고 있는 대형마트를 통해 지역 소비자들도 혜택을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실상 경쟁 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로켓배송을 ‘주무기’로 장착한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25조원으로 이마트(15조원), 홈플러스(6조 4000억원·2021년 3월~2022년 2월 기준), 롯데마트(5조 9000억원) 등 대형마트 3사 매출을 다 합친 수준에 맞먹는다. 현재 전국에는 대형마트(3000㎡ 이상)는 472개, 기업형 수퍼마켓(SSM) 등 준대규모 점포는 1700개 정도가 있지만 유통법상 영업시간 규제를 받고 있다. 이미 일상화된 온라인 유통업체의 새벽배송 속에 올해 6월 기준(오픈서베이) 소비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몰 역시 쿠팡 37.7%, 네이버 27.2%, 지마켓 6.8%, 11번가(5.5%), SSG(2.3%) 순으로 쿠팡과 네이버가 3분의 2(65%)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지역 역차별 논란과 함께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 간 형평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실질적으로 법안 반대를 이끄는 의원들은 중소상공인 비례대표 출신인 이동주 의원과 김경만 의원이 꼽힌다. 이 의원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상임부회장 출신이며, 김 의원은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 출신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소상공인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두 의원은 모두 국회 산자위 위원이지만 법안소위 위원은 아니어서 지난달 21일 법안소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소상공인 단체를 대변하는 두 사람의 반대 의사가 워낙 커 개정안에 찬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대형마트 새벽시간 온라인 배송 허용’개정안 낸 고용진 의원에 한때 철회 요구 일부 민주당 산자위 위원들은 정부에 “이 의원과 김 의원이 결사반대하고 있어 법안을 통과시켜주기 어렵다”고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안을 낸 고 의원은 소속 당 위원으로부터 “법안을 철회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고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산자위는 아니지만 법안의 필요성이 있어 발의했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법안 취지나 논리를 몰라서도 아니고, 소비자 편익을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닌 것 같다”면서 “대형마트와 골목상권, 이렇게 기존의 대립 구도를 잡은 채로 끌고 가야 하는 ‘이념’의 문제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신념과 함께 차기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두 의원을 비례대표로 끌어준 원동력이 된 특정 이익단체의 지지여부 등 정치공학적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유통시장 경쟁구조는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에서 오프라인 대 온라인으로 변화했고 이번에 합의된 상생 방안은 2012년부터 참여해온 골목상권 대표단체들이 중소유통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형마트의 지원을 이끌어낸 데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서 “매달 (상생협의체에서) 만나면 법안 통과시 (여러 상생 방안 중 하나를 가리키며) 이것부터 하자고 중소유통에서 얘기를 하는데 법안이 처리되지 않고 있으니 빨리 해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답답해했다.● “불편해서 귀향도 못하겠네”“새 서비스 외면해 지역 더 차별” 불만 쇄도 정부는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경우 결국 전남·강원·제주 지역 등에는 새벽배송이 당분간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쿠팡 등 온라인 업체들도 수익성을 따져가며 물류센터를 짓기 때문에 수도권 외의 지역에 신속한 확장은 그야말로 업체 마음에 달렸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의 야간시간과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저지하는 것이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의 피해보다 정말 필요한 소비자의 편익을 더욱 제한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역 MZ 소비자들이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이러한 온라인 새벽 배송의 필요성을 요구해 입법안이 추진된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일부 강성 의원들의 의견에 따라 법안을 무산시킬 경우 지역을 포함한 청년 등 진보의 기반 지지층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광주, 전주를 뺀 새벽배송 미시행 전체인 전라도에서는 이번 개정안 보류에 대해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역구를 싹쓸이한 제주와 총선 격전지인 강원 지역 소비자들의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이들 새벽배송 미시행 3개 지역의 인구 수는 500만명이 넘는다. 경상도에서도 광역시 등 일부 도시를 제외한 인구가 적은 지역들은 아직 새벽배송 서비스가 안 되는 지역들이 많이 있다. 한 네티즌은 “골목상권을 보호하려다 지역 소멸되는 것을 겪지 않았느냐”며 지역 소비자 역차별을 국회가 방치하고 있음을 에둘러 지적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새로운 서비스를 받아들여 지역을 발전시킬 생각은 안하고 소비자들을 더 차별받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는 유통업체들의 새로운 서비스를 기존의 지역 곳곳에 깔려 있는 유통 채널을 통해서도 보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골목상권 침해라는 이유로 지역 확산을 막아선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로 보인다.“노인들은 언제까지 5일장만 선호할 것 같아?” 비단 불만은 젊은 소비자들에 국한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는 전라도 출신 네티즌은 “오래 전부터 이용해온 새벽배송이 도서 지역을 빼면 당연히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이 들어도 귀향을 못하겠다”면서 “나이 들어 기운 없고 돌아다니기도 힘든데 주차가 힘든 전통시장 가서 물건 찾아 헤매는 것도 싫고, 온라인으로 검색해서 결제하고 집에서 새벽에 받아보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은 대형마트에서 물건 찾고 계산하느라 줄서는 것조차 귀찮다”고 했다. 그는 “노인들은 계속 전통시장만 선호할 것 같으냐”면서 “미래의 노인들은 전통시장보다 새벽배송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온라인 유통 환경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노인들이 언제까지나 익숙하고 편안한 것만 찾아 기존의 전통시장이나 5일장만 선호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도 “새벽배송 받고 싶어 하는 전라도민들 많은데 너무한다”, “골목상권이 새벽배송을 해주느냐”, “새벽배송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건 구태스러운 발상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위한 정치다”, “지역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데 국회까지 (법 개정을) 더 막고 있으니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다” 등의 비판글들이 쇄도했다. 새벽배송을 사용하다가 미시행 지역을 옮기게 된 소비자들의 불편 글들도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유통업체 들어오겠다는 것도 막고 새벽배송도 막고 다른 지역이 다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 필요한 것을 제때 배송받지 못하다보니 이사 온 후로 삶의 질이 엉망이 됐다”고 푸념했다. 또다른 네티즌도 “이사갈 때도 새벽배송이 되는지 여부를 살피게 되는데 왜 국회가 이걸 막지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네티즌은 “교통 안 좋고 물건 구입이 어려운 지역에 새벽배송이 되면 서민들은 더 좋은 건데 그걸 골목상권 따지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직격했다. 또 “대형마트 새벽배송 막는 건 쿠팡만 보호해주는 꼴이다”, “억지 논리로 소수 상권 보호한다고 다수 소비자의 권익을 내던진 셈이다”, “골목상권 많은 수도권은 새벽배송 되고 지방은 안되느냐”, “정권이 다르다고 현 정부의 좋은 정책마저 무조건 막는 건 지지해주는 지역 유권자이자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다” 등의 비판 여론이 이어졌다.
  •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최전선 영남 방어 수훈… ‘조선의 양장’ 꼽아[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최전선 영남 방어 수훈… ‘조선의 양장’ 꼽아[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정기룡(1562~1622)은 1592년 왜란 발발 당시 만 30세의 초급 무관이었다. 1586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고 병법 훈련을 관장하는 훈련원의 종8품 봉사(奉事)로 있었다. 이후 7년에 걸친 전쟁은 국가에는 위기였지만 담력과 용력, 병법 지식을 두루 갖춘 젊은 장수에게는 입지를 빠르게 다지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명나라 원병의 제독 마귀(麻貴)는 ‘조선의 양장’(良長·뛰어난 장수)으로 이순신·한명련·권율과 함께 정기룡을 들기도 했다. 정기룡은 정유재란 이후에도 왜적의 재침(再侵) 우려가 높아질 때마다 경상좌·우도병마절도사와 경상도방어사로 최전선인 영남 지역 방어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맡았던 대표적 무장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직책이었던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영의 진중에서 생을 마쳤다.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 땅 곤양 출신이다. 그가 무과에 급제하는 과정에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처음 이름은 무수(茂壽)였는데 선조가 신룡(神龍)이 종루(鐘樓)에서 일어나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내관을 보내 살펴보게 하니 무과 시험을 보러 온 정기룡이 종루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 그를 불러들인 선조가 그의 됨됨이를 보고는 기룡이라는 이름을 내렸다는 줄거리다. 영조시대 문인 황경원이 지은 정기룡 묘지명에도 등장하는데 사실처럼 회자되곤 한다. 그런데 그의 두 형 이름이 몽룡(夢龍)와 인룡(仁龍)인 것을 보면 기룡 역시 원래 이름인 듯하다. 설화는 그가 무인으로 출발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을 강조한다. 정기룡의 전투 기록은 남원 의병장 출신 조경남의 ‘난중잡록’에 처음 보인다.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있던 4월 30일자다. 앞서 조정은 이일을 순변사로 임명해 영남 방어의 책임을 맡기는데, 성응길과 조경을 각각 경상도좌우방어사로 삼았다. 훈련원 봉사 정기룡은 이때 조경 우방어사 휘하에 편입된 듯하다. ‘전라도방어사 곽영이 김산(김천) 추풍역에서 접전할 때 한 왜적이 긴 칼을 가지고 마구 들어와 경상도우방어사 조경을 치려 했는데, 조경이 맨손으로 껴안고 오랫동안 버티고 있을 무렵 정기룡이 돌진해 그 왜적을 베니 조경이 살아날 수 있었다.’ 조경의 상처는 심각해 결국 방어사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고 병력을 해산해야 했다.경상도 순찰사 휘하에 배속된 정기룡은 이탁영이 남긴 ‘정만록’(征蠻錄)에 다시 등장한다. 경상감영 아전 이탁영이 순찰사 김수를 수행하면서 쓴 종군일기다. 정기룡은 충청·전라·경상 3도 근왕군이 왜군에 어이없이 패한 용인전투에 참전한다. 5월 4일자다. ‘멀리 연기와 불꽃이 곳곳에 치솟는다. 사상(使相·순찰사)은 경상도 장사 50명 남짓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유곡찰방 김충민이 적진으로 돌격해 왜적의 머리 하나를 베고 봉사 정기룡과 강만남, 군수 김경로도 각각 하나씩을 베어 왔다. 동향인 박태고도 왜병 둘을 쏘아죽이고 돌아왔다. 그 반가움을 어찌 말로 다 하랴.’ 경상감영 아전의 영남 군사 중심 서술은 불가피했다. 왜란 발발 당시 만30세 초급 무관선조가 ‘기룡’ 이름 내렸다는 설화개전 당시 종8품→정3품 목사로영조, 그의 공 기려 ‘충의’ 시호 내려잇단 전과에 고향 곤양 수성장에용화산 전투 승전 후 상주성 수복왜적 주요 보급로 확보 ‘숨통’ 죄어묘지에 ‘100차례 전투 패한 적 없어’ 정기룡에 대한 설명은 조금 더 이어진다. ‘정기룡은 진산(진주)의 동풍(同風) 강세정의 사위인데 경상도 김산 접전에서 머리 두 개를 베었고, 지금 다시 베어 이미 세 개가 되어 당상관이 될 만하니 축하할 일이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적의 머리 한 개를 베어 오면 공사천을 가리지 않고 등과한 것으로 하며, 두 개를 얻으면 6품관으로 올리며, 세 개는 당상관에 올리고 왜적 장수의 머리를 베면 가선대부로 올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에 해당하는 품계다. ‘동풍’이란 자신과 같은 아전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정기룡을 더욱 강조해서 서술한 이유일 것이다. 잇따라 눈에 띄는 전과를 올린 정기룡은 고향 곤양의 수성장(守城將)이 됐다. 곤양군수 이광악이 진주성으로 차출되면서 그에게 역할이 맡겨진 것이다. 그런데 초유사 김성일은 정기룡마저 진주성으로 불러들여 유병장(游兵將)으로 삼는다. 김성일은 9월 경상우도관찰사에 오르자 정기룡을 다시 상주 가(假)판관, 곧 임시판관에 임명했다. 상주는 순변사 이일이 가토 기요마사 선발대에 참패한 고을이다. 상주판관 권길도 북천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순국했다. 상주가 지닌 상징성은 컸다. 정기룡은 김산 남쪽 금오산에 진을 쳤다. 상주목사 김해는 고을 백성을 이끌고 일월산 용화동에 머물고 있었다. 왜적이 용화동을 포위한 상황에서 정기룡의 공격이 시작됐다. 묘지명은 당시를 이렇게 적었다. ‘공이 골짜기 입구에 이르러 왜노들이 산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지세가 험했다. 이에 우인(優人·배우)이 된 듯 말 위로 올라 “휘익” 하고 길게 휘파람을 불며 서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가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니, 왜노들이 생포하려 공의 뒤를 매우 급하게 쫓았다. 공이 왜노를 유인해 평원으로 나오게 한 뒤 재빨리 공격하자 왜노들이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정기룡은 용화동전투 이후 본격적으로 상주성을 공략한다. 왜적이 상주성에 은거하며 나오지 않자 백성들과 함께 서정(西亭)에 진을 치고 횃불을 묶어 공격했다. 왜적의 방비가 취약한 동문 밖 밤나무 숲에 군사를 숨겨두고 한밤중에 호각 신호로 서문으로 쳐들어가 막사에 불을 붙였다. 왜적이 놀라 동문으로 달아났는데 밤나무 숲 병사들이 400명 남짓한 적의 목을 베고 마침내 성을 수복했다. 1592년 11월이다. 왜적의 부산포 상륙 직후 속절없이 내주었던 경상도지만, 7월 영천성과 9월 경주성에 이어 상주성마저 되찾은 것이다. 왜적은 뜻하지 않게 보급선이 평안도까지 한없이 늘어진 마당이었다. 여기에 길목의 주요 거점마저 조선군에 내주어 교통로 확보가 쉽지 않았으니 군량을 약탈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조선군은 명나라 군사의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도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분전하고 있었다. 정기룡의 후손인 정구정이 1746년(영조22) 펴낸 ‘매헌실기’에는 상주 판관 시절을 언급하고 있다. 1593년 봄 굶주린 백성들을 먹여살리는 한편 관가의 곡식을 농민들에게 종자로 나눠 주었으며 파괴된 제방을 다시 쌓고 둔전을 경영해 군량미를 확보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명나라 장수 유정, 사대수, 조승훈을 맞아 응접했고, 5월에는 상주 가판관에서 상주 판관으로 승진했다. 6월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는 부인 진주 강씨가 치마를 잘라 공에게 편지를 남기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정기룡은 8월 상주 가목사에, 이듬해 11월 상주 목사에 잇따라 임명됐다. 1593년 11월 5일 선조실록에는 임금과 대신들의 대화 내용이 실려 있다. 동지중추부사 박진이 “기룡은 접전할 때 말에서 내려 적을 베고는 다시 말을 타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경이 적에게 살해될 뻔했다가 기룡 때문에 죽음을 면했다”고 하자 선조는 “옛적에는 항오(行伍) 가운데에서 발탁하여 등용하기도 했다. 정기룡 같은 사람을 판관에 머물게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항오란 군사를 줄세운 것을 뜻하는데 병졸에서 입신한 무장을 언급할 때 쓰는 표현이다. 개전 당시 종8품 봉사가 만 2년도 되기 전에 정3품 목사로 뛰어올랐으니 그야말로 수직 상승이었다.그러자 영의정 류성룡이 “기룡은 젊고 재략이 있는가 하면 목민(牧民)에도 능하다. 중국 장수를 접대할 적에도 성의를 다한다. 상주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 ‘판관을 목사로 올리면 다시 판관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이만한 사람은 요사이 보기 드물다”고 거들었다. 상주 목사는 문관이 맡는 자리여서 군사보좌관인 판관이 있어야 했지만, 정기룡이 목사가 되면 판관을 별도로 임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도 영의정 겸 도체찰사 이원익이 도원수 권율·방어사 곽재우와 상주에서 계책을 논의했는데 “기룡이 아니면 불가하다”고 입을 모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후 정기룡은 경상도 지역에 머물며 토왜대장(討倭大將)으로 활약했다. 왜란이 마무리된 다음에도 경상좌·우도병마절도사로 왜적 침입에 대비했다. 묘지명은 상징적 표현을 담아 다음과 같이 정기룡을 기렸다. ‘공은 사람됨이 걸출하고 용맹스러운 위엄이 있었으며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잘했다. 신장 7척에 눈이 밝아 밤에도 터럭까지 볼 수 있었고, 소리는 큰 종과 같아서 길게 휘파람을 불면 10리 밖까지 들렸다. 어렸을 때부터 강개했고 100차례 전투에서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다. 죽인 적군이 1만명을 헤아리니 왜노들이 지금까지도 그 위엄을 두려워해 어린아이가 울 때 문득 공의 이름을 불러 그치게 하곤 한다.’ 영조가 추증한 시호는 충의(忠毅)다.
  • 김기현 “일 잘하는 지자체와 못하는 지자체 차별 있어야”

    김기현 “일 잘하는 지자체와 못하는 지자체 차별 있어야”

    잼버리와 순천만 비교…지자체 책임 부각 의도천하람 “호남 전체의 실패로 확대해석 안 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31일 전남 순천을 찾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돌아본 뒤 “일 잘하는 지자체와 일 못하는 지자체 사이에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의 성과를 치켜세워 ‘잼버리 파행’ 이후 정부의 새만금 기본계획 전면 재검토로 끓어오른 호남 여론을 달래려는 시도지만, 잼버리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비교하면서 특정 지자체의 책임을 부각하려는 의미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날 전남 순천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여당과 정부는 일 잘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차원에서 더 많은 지원이 있을 수 있도록 챙겨나갈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지자체 사이에 차별이 있어야 주민들의 삶이 윤택해지고, 지방자치제도가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이 발언은 지난 4월 개장해 관람객 600만명을 돌파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성과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잼버리 파행 이후 새만금 개발사업의 전면 재검토가 결정되는 등 후폭풍과 얽혀 있다. 잼버리 파행에 대한 여권의 ‘전북 책임론’으로 지역 민심은 들끓었고, 정부는 새만금 개발 재검토와 잼버리 사태가 무관하다고 설명했지만 지역에서는 보복이라고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지자체, 조직위, 지역 주민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합심해 준비를 잘하면, 그 행사가 지역 상권도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고 주변 도시까지 확장적 발전을 이끈다는 사실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잼버리 사태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내놨다.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는 호남이, 우리 전라도가 국제적으로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잘 치를 수 있단 걸 온몸으로 증명해낸 장소”라며 “새만금 잼버리에 어떤 다소간 파행이 전남 내지 호남 전체의 실패로 확대해석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남 출신인 김가람 최고위원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호남이 국제행사를 잘 치러낼 수 있다는 것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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