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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R STORY] 봄마중 가는 길은 행복하다

    [OUR STORY] 봄마중 가는 길은 행복하다

    봄이 멀지 않았다. 반가운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가 겨울옷을 먼저 벗어냈다.“겨울이 매섭다.”던 사람들,“이제 겨울도 끝물”이라더니 며칠 새 “봄 다 됐네.”로 인사말을 바꾼다. 어느새 풍향을 달리한 바람에는 겨울의 혹독한 살풍경 대신 남녘의 살가운 햇볕이 얹혀 온다. 그 바람 끝에 얼굴을 디밀고 흠흠 꽃내음을 맡으려는 도시인들에게 봄은 반갑게 풋풋한 품을 연다. 남녘의 시인이 보낸 편지글 속에서도 물씬 봄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의 매화예찬은 오롯하게 피어나는 홍매화의 서정이기도 하고, 시한을 힘겹게 넘어온 우리들의 월동기이기도 하다. 이 겨울 내내 저 매화를 기다려 왔습니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그대와 나란히 서서 꽃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얼어서 터진 남루의 손등 감추지 않고, 그대의 손을 잡고 꽃 앞에 서고 싶었습니다.(중략)오늘 홍매화꽃 사태 속에서 그대는 나의 꽃이었습니다. 우리는 억겁 인연의 가지에서 만난 따뜻한 햇살과 꽃이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로 무너지는 햇살이었고, 그대는 나에게로만 피는 꽃이었습니다.’(정일근 시인의 ‘사람의 사랑도 꽃이 될 수 있으니’ 중에서) 그 시인의 오감을 일깨운 봄의 장대한 서사가 막 시작되려 한다. 봄, 그 현란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조화 속에서 목숨이란 목숨은 모두 새 뼈를 얻고, 거기에 새 피와 살을 얹어 또 한 해를 준비할 것이다. 모두들 길가로 나서 어디에서 흘러들었는지도 모르는 익숙한 향기에 다시 취할 것이고, 나설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아련하게 추억할 것이다. 언젠가 이빨 시리게 맞았던 이른 봄날의 아릿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온 아름다운 가슴앓이를. 문득, 꽃집에 다발로 실려와 놓인 남녘의 솜털 보드라운 버들개지의 벙그는 아퀴가 눈길을 끈다. 그 곁에 각시처럼 자리를 잡은 목련의 물오른 꽃망울이 수줍다 못해 부르르 제 몸을 떨고 있다. 화려한 봄 축제의 기억은 겨울이 길었던 사람들의 가슴에서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이다. 남녘은 벌써 분주하다. 매화는 난분분하며 온 천지에 향기를 퍼뜨리고, 수더분한 산수유는 마을 어귀나 산발치에 아무렇게나 서서 겨울의 수묵에 샛노란 생명의 명도(明度)를 더한다. 아쉬운 무엇이 있어 더 머뭇거릴 것인가. 짧디나 짧은 봄, 그 봄으로 가자. 살 떨리게 반가운 꽃들을 찾아서.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남도로 떠나는 봄맞이 여행 우수를 지난 봄이 경칩을 향해 줄달음 치고 있다. 봄처녀들의 가슴이 까닭없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것도 이맘때. 겨울이 맥없이 꼬리를 감추는 모습에서 서운함도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오는 봄이 달갑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남도의 들녘에서는 벌써 꽃소식이 전해온다. 문득 엉뚱한 상상이 고개를 쳐든다. 꽃이 북상하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남도의 끝자락 해남에서 서울까지는 천리길, 400㎞정도 된다. 이곳에서 전해진 꽃소식이 10일 뒤면 서울에 가 닿는다니, 하루에 40㎞정도 가는 셈이다. 오는 봄을 맞으러 전라남도 무안과 함평 등을 다녀왔다. 세발낙지와 함평한우 등 먹거리와 은빛 숭어가 뛰노는 함평만 등 볼거리가 많아 봄맞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글 사진 무안·함평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한우와 나비의 고장 함평 남도에 오면 가장 정감이 가는 것이 농가의 지붕. 팔작지붕이며 우진각 지붕 등 우리 고유의 지붕형태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집들이 꽤 많다. 멋들어지게 뻗어나간 처마를 보라. 마치 파란 봄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지 않은가. 기능성만 강조하느라 멋없이 지붕 위를 싹뚝 잘라버린 양옥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머리만큼은 서양 것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올곧은 자존심이 엿보인다. 점심 무렵 도착한 함평읍. 봄빛이 완연하다. 아직 겨울에 발목잡힌 도회지만 생각하고 걸쳐입은 두툼한 방한복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얇아진 옷만큼이나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도 밝고 가볍다. 사실 함평은 이제껏 여행지로서는 특출나게 내세울 것이 없는 곳이었다. 함평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나비축제(www.hampyeong.jeonnam.kr). 우리나라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관광축제다. 올해는 5월 3∼8일까지 열린다. 나비 외에 유명한 것이 천지한우.‘전라도 소값을 좌우한다.’는 함평 우시장 덕분에 질좋은 한우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근동에서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금송식당(061-324-5775)에 들어섰다. 생고기를 주문했더니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검붉은 한우고기가 쟁반 가득 담겨 나왔다. 주인 김정애(50)씨의 음식자랑이 거침없이 이어졌다.“소고기는 앞다리를 먹어야 하지라. 앞박살, 양지, 홍두깨, 아롱사태, 부채뼈 살 등 5가지 부위가 골고루 섞여 있응께 맘껏 드시쇼.” 생고기 1인분 1만 7000원, 생고기 비빔밥은 5000원을 받는다. # 감태향 가득한 돌머리 해안 달고 쫄깃한 한우 생고기로 허기를 채운 다음 돌머리(石頭)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육지의 끝이 바위로 되어 있어 돌머리라 했다. 돌부리가 해수명당과 연결돼 있다 해서 광산 김씨들이 묏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물오른 봄바다. 감태(甘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언제든 질리지 않는 해조류 특유의 비릿하고 상큼한 향기다. 함평만 너머로는 해제반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바닷물을 방조제 형태로 막아 만든 2700평의 수영장이 독특하다. 썰물 때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노천 바다수영장을 만든 것. 수영장 둑이 높지 않아서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자연스레 물갈이가 된다. 바닷물과 함께 들어온 물고기들도 썰물 때면 꼼짝없이 갇히게 될 터. 사람과 물고기들이 너나없이 한 곳에서 놀게 될 듯하다. # 펄떡거리는 숭어회 함평만과 해제반도 칠산 앞바다에서 잡아올린 숭어는 눈가에 황금색을 띠는 참숭어. 제철에다 자연산이다. 숭어껍질은 살짝 데쳐 소금장에 찍어먹는데,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숭어회 역시 달고 쫀득하기 이를데 없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붉은색 살을 보면 침이 절로 괸다. 바닷물에 한번 씻어놓으면 살이 더욱 꼬들꼬들해진다. 회를 뜨고 남은 뼈로끓인 매운탕은 국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조금 때는 숭어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돌머리관광횟집(061-322-9228) 주인장의 음식솜씨가 제법 알려져 있다. 숭어회 1접시에 3만원을 받는데, 싱싱한 자연산 석굴 등 해산물이 푸짐하게 곁들여진다. ■ 무안에서 즐기는 5색 진미 무안 들녘은 황토땅. 차라리 붉은 색에 가깝다. 황토 들판 옆으로 푸른 양파와 마늘밭,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먹거리 천국이기도 하다. 한번 나들이에 5가지 감칠 맛을 맛볼 수 있다 해서 ‘무안 5미(五味)’라는 이름이 따로 붙었다.짚불 삼겹살, 양파 한우, 도리포 숭어, 영산강 장어, 무안 낙지 등. 들과 바다에서, 그리고 강에서 ‘오색진미’를 맛볼 수 있다. 들에서 나는 별미로는 단연 돼지짚불구이. 목포에 홍어삼합이 있다면, 사창리에는 짚불삼겹살 삼합이 있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기젓(갯벌 게로 만든 젓갈) 등이 어우러져 조화를 낸다. 암퇘지 삼겹살과 목살, 목등심 등을 볏짚을 이용해 1분정도 구워먹는데, 고기 속에 스며든 짚의 향긋한 냄새가 일품. 두암식당(061-452-3775)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원조를 자랑하는 곳. 김정순 할머니가 문을 연 이래 2대에 걸쳐 50년 동안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1인분 한 판에 6000원. 강에서 나는 음식으로는 명산리 장어구이가 첫손 꼽힌다. 영산강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장어마을이 형성돼 있다. 영산강 장어는 한때 바닥을 긁으면 그물 그득 잡힐 정도로 유명했다. 영산강 하구둑 축조 이후 장어가 크게 줄긴 했지만, 명산장어집(061-452-3379)은 3대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4미(1㎏ 4마리)에 4만원. 장어집 인근에는 동양 최대의 백련 서식지가 있다. 숭어와 더불어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로 세발낙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일에 지쳐 쓰러진 소에게 먹이면 벌떡 일어선다는 스태미나 식품. 주낙으로 건져 올리는 게 아니라 뻘에서 삽으로 파서 꺼낸다. 착 달라붙는 힘이 여간 아닌데다 맛 또한 일품이다. 무안 낙지는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다. 특히 산낙지를 대소금에 비벼 잠시 기절시킨 다음 먹는 ‘기절낙지’는 별미 중 별미. 무안읍 공용터미널 뒤편에 기절낙지집들이 몰려 있다. 하남횟집(061-453-5805), 청계수산(061-453-5256) 등이 유명하다. 한 마리당 6000∼7000원. # 봄은 바다에서도 자란다 현경면 월두포구는 달머리(月頭)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 최초의 갯벌 습지 보존지역인 함해만이 이곳 해운리에서 해제반도 만풍리까지 이어진다. 수령 300년 된 곰솔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가운데, 오른편 갯벌엔 연둣빛 감태가 푸르름을 뽐내고, 왼쪽편엔 초록빛 바다가 바람에 넘실댄다.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맞닿은 절묘한 풍경이다. 제 아무리 바람이 매섭고 파도가 거칠어도 밀려오는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는 것. 붉은 생명력을 토해내는 황토밭과 푸른 바다 위로 봄빛이 찬란하다. ■ 기차타고 꽃마중 가요 ●섬진강 매화 청송여행사(www.114ktx.com)는 3월10일 오전 7시 30분 영등포역을 출발해 임실 청매실농원, 익산 등을 둘러보고 오후 10시 30분에 용산역으로 돌아오는 상품을 마련했다. 어른 4만 3000원, 어린이 4만원.1577-7788. 홍익여행사(www.7788tour.co.kr)는 매화향 가득한 섬진강과 남원 등을 둘러본다. 용산역 오전 7시 출발, 오후 10시 49분 도착.3월17,18일. 어른 4만 9000원, 어린이 4만 6000원.(02)717-1002. ●진해군항제 벚꽃 3월31일과 4월1,4,5,8일 등 총 6회 운행한다. 진해 해군사령부, 제왕산 등을 돌아본다. 서울역 오전 7시 10분 출발, 오후 10시 50분 도착. 어른 5만 5000원, 어린이 5만 3000원. 경인관광여행사(www.ktx7788.co.kr 032-343-7788),KTX관광레저(www.ktx21.com 1544-7786), 지구투어 네트워크(www.jigutour.co.kr 1566-3035), 홍익여행사 ●쌍계사 십리 벚꽃 남원 재래시장과 춘향테마파크, 하동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등을 둘러보는 상품. 용산역 오전 7시 출발, 오후 10시 30분 도착.4월7,8일. 어른 3만 9000원, 어린이 3만 8000원. 홍익여행사. ●금오산 왕벚꽃 금오산 왕벚꽃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등을 둘러본다. 서울역 오전 8시 출발, 오후 10시 도착.4월13일. 어른 4만 4000원, 어린이 4만 2000원.KTX관광레저. ●해인사 벚꽃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의 벚꽃길을 돌아보는 상품. 서울역 오전 8시 출발, 오후 10시 10분 도착.4월13일. 어른 4만 6000원, 어린이 4만 3000원.KTX관광레저. ●환상의 섬 외도 꽃과 나무,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섬 거제시 외도와 학동 몽돌해변, 바람의 언덕 등을 돌아보는 상품. 매주 금, 토요일 오후 10시 47분 영등포역을 출발해 다음날 오후 10시 6분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어른 8만 9000원, 어린이 7만 5000원. 경인관광여행사. ●매화 축제와 오동도 동백 오후 10시30분 용산역을 출발, 광양 매화마을과 여수 오동도를 둘러보고 다음날 오후 10시 용산역으로 돌아온다.3월 17일. 어른 6만9000원, 어린이 6만5000원.KTX관광레저. ●섬진강 매화축제와 향일암 해돋이 여수 향일암 해돋이와 광양 매화축제 등을 둘러본다.3월23,24일. 서울역에서 오후 10시50분 출발해 다음날 오후 9시50분 돌아온다. 어른 6만 4000원, 어린이 5만 9000원.KTX관광레저. ■ 둘러볼 만한 곳 ●고막천교 궁궐이나 관청 등이 아닌 순수 민간지역의 다리로는 가장 오래된 곳.700여년 전인 고려 원종 15년(1274)에 세워졌다. 서민들이 애용하던 질그릇 같은 투박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수공사를 해놓아 옛모습이 적잖이 사라진 것이 흠. 함평으로 향하는 2번국도변에 있어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함평군청 문화관광과(061)320-3733. ●자산서원 곤개 정재청(1529∼1590)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남인과 서인의 정권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설립과 철거가 반복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던 장소.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정재청의 문집 ‘우득록’은 호남사림의 인맥이나 동향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 [본지-KSDC 공동여론조사] “한나라 지지” 39.3%·우리 4.3%·없다 46.9%

    [본지-KSDC 공동여론조사] “한나라 지지” 39.3%·우리 4.3%·없다 46.9%

    서울신문이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지난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 지지도에 대한 질문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39.3%로 압도적이다. 나머지는 열린우리당 4.3%, 민주당 2.2%, 민주노동당 2.4%, 국민중심당 0.1%, 열린우리당 탈당파 0.3%로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파악됐다. 이는 2개월전 신년조사 결과인 한나라당 지지(41.5%) 열린우리당 지지(4.4%)와 거의 비슷한 수치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독주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 저하에 따른 반사적 현상인 것으로 해석된다.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유권자가 ‘지지 정당이 없다.’거나(46.9%), 혹은 ‘모르겠다.’(4.4%)고 답한 사실은 향후 정국 변화에 따라 정당 지지도의 분포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한나라당의 지지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에서 50%가 넘는 지지를 얻어 20∼30대와 많은 차이가 났다.29세 이하(29.5%)와 30대(28.6%)는 30% 미만의 지지도를 보인 반면,40대는 42.1%,50대 이상은 51.4%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젊은 층에서 나타난 한나라당에 대한 낮은 지지도가 열린우리당이나 다른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대부분의 젊은 유권자들이 아직 지지 정당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지역별로는 서울(47.2%), 대구-경북(56.0%), 부산-경남(47.2%)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대전-충청(30.2%)과 광주-전라(8.6%)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광주-전라 지역은 열린우리당(9.1%)과 민주당(12.0%)에 대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는 있지만 역시 대다수 유권자는 지지 정당을 유보하고 있다. 이념성향의 영향도 매우 뚜렷하다. 진보 성향 유권자의 한나라당 지지도는 27.8%에 그친 데 비해, 중도 성향이 33.7%, 그리고 보수 성향의 유권자는 57.5%의 지지도를 보였다. 진보와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간의 지지도 차이는 무려 30% 포인트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정치이념이 정당 지지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수이며, 향후 대선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보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정리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대북문제 후보결정에 영향” 51.8% 이번 조사결과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북한 문제는 유권자들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나타났다. 북핵위기에 이은 6자회담 타결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등 그 어느 해보다 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북·안보문제가 올해 대선후보 결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1.8%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39.3%였다. 대북·안보 문제의 영향력은 이념성향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보수성향을 가진 유권자는 58.0%가 ‘영향이 있다.’고 응답한 반면, 진보성향의 유권자는 49.7%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보수적 유권자 가운데 16.9%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해 북한 문제가 후보선택의 핵심 변수임을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향후 북한 문제에서 ‘남북정상회담’이나 ‘김정일의 서울 방문’ 등 획기적인 변화가 발생할 경우 보수적 유권자 표심이 크게 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대 젊은층이 30대보다 대북·안보문제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40대와 50대 이상의 연령대는 각각 54.2%,56.6%가 대북·안보문제가 대선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한 반면,30대는 42.3%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해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20대의 경우 52.7%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해 30대보다 10%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특히 20대 응답자의 16%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해 보수성향 유권자의 응답분포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6자회담 타결이 어느 대선주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정동영 9.6%, 박근혜 8.7%, 이명박 7.6%, 김근태 3.7%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의 67.4%가 ‘모름·무응답’이라고 답해 6자회담 타결 자체만으로는 한 특정 후보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됐다. 정리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유권자 이념’ 진보 27.2%·보수30.7% 유권자의 이념성향 분포는 진보 27.2%, 중도 35.5%, 보수 30.7%로 나타났다.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2개월 전 신년조사에서는 보수 성향의 응답자가 진보 성향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았던 것과 비교하면, 보수화 현상이 다소 약화됐다. 이는 6자회담 타결로 북핵 문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유권자의 이념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은 연령, 학력, 지역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그리고 영남지역에 비해 호남지역 유권자일수록 진보적 성향을 갖는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 중에서도 학력에 따른 이념성향 격차가 가장 컸다. 대학 재학 이상의 경우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33.8%로 고졸(22.7%), 중졸 이하(19.1%)보다 높아 학력이 높을수록 뚜렷한 진보 성향을 보였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라 지역에서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35.9%로 높게 나왔고, 대구·경북의 경우 진보라고 답한 비율은 20.5%로 전 지역에서 가장 낮은 비율을 나타냈다. 반면 자신을 보수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부산·경남(36.9%)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서울지역의 이념 성향이다. 서울지역에서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비율이 24.0%인데 비해 보수라고 답한 비율은 34.3%였다.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서울 지역 유권자가 상대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는데, 이러한 ‘서울의 보수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인 현상으로 굳어질지는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연령에 따른 이념성향도 예상대로 20대에서 진보성향이 가장 높았다.20대 중 자신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35.8%로 30대(31.8%),40대(29.9%),50대 이상(16.2%)보다 높았다. 특히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민심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40대는 진보(29.9%), 중도(34.6%), 보수(31.0%)의 비율이 전체 유권자의 이념 성향과 거의 흡사해 눈길을 끌었다. 정리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통합신당 주체 질문엔 60.5% “답변 유보” 최근 열린우리당이 분열되고 있는 가운데 정개계편을 통해 누가 범여권 통합신당의 주체가 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응답자(60.5%)가 답을 유보했다. 현재 통합신당 주체가 가능한 집단으로는 열린우리당 세력, 통합신당모임(김한길 의원 등 집단탈당파), 민생정치모임(천정배 의원 등 개별탈당파)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응답자의 16.1%는 현재 열린우리당 세력이 통합 주체가 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이와 비슷한 비율로 15.3%가 통합신당모임이 범여권 통합의 중심 세력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민생정치모임이 통합신당의 주체가 될 것으로 보는 응답자의 비율은 4.8%로 다른 두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응답자 출신 지역별로는 서울의 경우 현재 열린우리당 세력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응답자가 19%로 가장 많았다. 광주·전라도에서도 가장 많은 응답자(16.7%)가 열린우리당을 꼽았다. 이념별로는 진보 성향을 가진 응답자는 20.5%가 통합신당모임이 통합의 주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도 성향을 가진 이들의 17.6%가, 보수 성향 응답자는 16.8%가 열린우리당 세력을 통합 주체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직업별로는 자영업(25.5%), 블루칼라(23.8%), 화이트칼라(19.1%)가 통합주체로 통합신당모임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열린우리당을 통합의 주체로 먼저 꼽은 직업군은 전문직(17.8%), 학생(18.4%), 주부(14.7%)였다. 정리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6) 전남 구례군 유곡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16) 전남 구례군 유곡마을

    오지의 마을이라면 으레 생활의 어려움으로 삶이 팍팍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오지이면서도 가구당 평균 5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 마을이 있다.‘알짜 농가’의 주인공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 계산리 유곡마을. 산 비탈을 따라 내려오며 상유, 중유, 하유로 나뉘는 이 마을의 천수답 다랑이 논(계단식 논)에는 벼 대신 감나무, 배나무, 매화나무 등 유실수를 심었다.“한 번 먹어보랑께, 사과보담도 아삭거리고 달기넌 똑 꿀맛이시.” 마을 어귀서 첫 인사를 나눈 할머니가 단감 자랑을 하며 건네 준다. 지난가을 수확해 저장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겉모습만큼이나 맛도 뛰어나다. 고소득을 올리는 이유다. 과수나무가 40여가구 100여명 주민의 주 수입원이 된 연유도 재미있다. 가뭄이 극심했던 1994년. 섬진강 물을 산 비탈 논에 끌어 들이려고 양수기로 12번을 중계하는 고생을 하다 당시 군수가 “차라리 과수를 심는 것이 낫겠다.”라고 한 말이 변화의 물꼬를 텄다. 긴 경사면의 토양은 배수가 용이한 데다 일조량까지 풍부하고 게다가 일교차까지 커 과실생산의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여기에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과수밭을 둘러싸 태풍으로 인한 낙과 피해도 적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95년에 감 낭구를 심었응께, 얼추 10년이 훨 넘어 부렀네. 군에서 배수관이다 뭐다 지원하고 나섬시로 도와주더만 인자 생각헌께 참말로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었지라.” 지난해까지 이장을 맡았던 김영두(70)씨의 말이다. 마을의 젊은 이장인 강대호(33)씨는 오지인 이곳을 이웃처럼 친근한 마을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농사 지으시는 어르신들의 연세가 이제 평균 70입니다. 농촌이 친근해지고 귀농인도 많아져야 발전이 있을 수 있지요.” 지난해 7000만원의 과수 매출을 올린 야심찬 젊은 농군의 말이다. 이를 위해 농촌체험마을에 선정돼 받은 3억원으로 초가집 복원, 민박시설, 식당, 공동화장실 건립 등을 해오고 있다. 친밀감을 느끼도록 이름도 마을의 특징인 돌담을 뜻하는 ‘다무락(담의 전라도 사투리) 마을’로 바꿔 부르고, 호응이 많았던 과실따기 등 재미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겨울은 폴쌔 가뿟구마. 매화꽃 배꽃 피문 천지로 온통 새하얀기라. 무신 소문을 들었는지 화가들도 가끔 오지.”하동이 고향이라는 안종택(76)씨의 말에는 40여년을 이곳에서 살았어도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 있다. 섬진강을 사이로 두고 말씨가 다른 지역적 특색 탓이다. “아저씨 이것 함 맛 보실래요?”교육청 통학버스를 타고 읍내 학교에 갔다 온 차미선(10) 성미(9) 자매가 할아버지집 앞마당에서 치는 꿀통에서 꺼낸 천연꿀을 손가락으로 떼어 먹으며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하유마을 맞은편에는 이백리 길을 굽어 흐른다는 섬진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이 가는 길목에 노랗게 퇴색한 갈대숲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의 풍광은 풍수지리의 원전격인 ‘택리지’에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되어 있다는 구례의 이름값을 비로소 실감케 한다. 봄이 오는 길목. 남녘 산골마을이 봄 마중 채비에 분주하다.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주말탐구] 윷놀이

    [주말탐구] 윷놀이

    윷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즐겨온 으뜸 놀이다. 윷놀이는 전국에서 일년내내 이어지고, 특히 설날에는 집 안은 물론, 골목마다 윷판이 벌어진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윷놀이가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윷패의 우연성과 윷말쓰기의 합리성이 윷판에서 어우러져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때문일 것이다. 윷은 또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재미를 더해 왔다. 윷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여다봤다. 올 설에도 가족끼리 둘러앉아 잡고 잡히는 말 싸움을 하며 함박 웃음을 웃어보자. 윷놀이를 해 본 사람은 말한다. 너무너무 재미 있다고…. 전국종합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유래와 의미 윷놀이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많으나 정설은 없다. 다만 중국의 ‘북사(北史)’‘태평어람(太平御覽)’이란 책에 부여의 윷놀이가 소개돼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윷놀이가 시작됐다고 추측한다. 특히 19세기 중반 ‘동국세시기’에는 고려말 이전에 현행 윷판과 같은 것이 쓰였다고 적혀 있다. 윷판은 29개 밭으로 구성된다.20개는 원으로 9개는 원 안에 십자 모양으로 배열돼 있다. 김문표(1568∼1608)가 ‘중경지’ 사도설조에서 윷판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바깥 둥근 모양은 하늘을, 안의 십자는 땅을, 윷판을 이루는 밭은 별자리를 뜻한다고 했다. 특히 윷판 중앙 밭은 북극성이라 불렀다. 하늘이 땅바닥까지 둘러싼 모양인 셈이다. 윷판·윷말에는 자연의 섭리도 숨어 있다. 윷판에서 말은 북(出口)에서 떠나 동을 거쳐 중앙이나 남, 서로 이동한다. 이는 춘분(春分)·하지(夏至)·추분(秋分)·동지(冬至) 때 태양의 궤도를 본뜬 것이다. 네 윷말은 사계절을 가리키고, 둥근 나무 토막이 엎어지거나 젖혀지는 것은 음양을 나타낸다. 윷패에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상징한다. 가축의 크기와 빠르기에 따라 윷패의 밭 수와 윷말의 움직임이 결정된 것이다. ●놀이방법의 변화 윷놀이 원칙은 진화를 거듭했다. 윷패가 도·개·걸·윷(사진법)에서 도·개·걸·윷·모(오진법)로 바뀌었다.1950년대부터는 ‘뒷도(백도)’가 생기면서 육진법으로 변화했다. 뒷도란 윷 하나를 특정하게 표시해 이것만 젖혀지면 윷말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뒤로 한밭 물러선다. 예를 들어 도 자리에 있던 윷말이 뒷도를 하면 한 밭 후진해 참먹이(出口)로 직행하는 것이다.‘맞춤나기’도 새로 생겼다. 참먹이에 이른 말이 반드시 도를 쳐야 나가는 규칙이다. 상대방이 뒤를 바짝 쫓다가 오히려 덜미를 잡히거나 끝내 도를 내지 못해 판이 뒤집히는 일도 벌어진다. 강원도에서는 윷 두 개에 각각 ‘서’‘울’이라고 적는다. 두 윷이 함께 젖혀져 개가 되면 윷말을 윷판의 중앙 밭으로 옮긴다. 서울에 대한 동경이 엿보인다. 경상도에서는 ‘자동임신’‘자동유산’ ‘퐁당’ 밭이 있다. 자동임신 밭에 이르면 한 동이던 말이 두 동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그 뒤에는 말이 들어가면 죽는 자동유산, 퐁당 밭을 반드시 둔다. 높은 수익에는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안동민속박물관 박장연 학예실장은 “윷말이 윷판을 움직이는 방향도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화투놀이의 시계방향에서 포커놀이의 시계 반대방향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생활양식은 좌측이 우선이라 문서나 가사도 모두 좌서(좌서)로 썼다. 그러나 서양 문물이 도입되고, 한글기록시대로 접어들면서 윷말이 윷판을 돌아가는 방향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역 특성 윷은 지역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우선 윷의 종류부터 가락윷과 밤윷, 콩윷으로 나뉜다. 경기도와 충청도, 경상도는 주로 가락윷을 쓴다. 가락윷에는 장작윷과 싸리윷이 있다. 장작윷은 길이 20㎝, 지름 3∼5㎝의 소나무를, 싸리윷은 길이 10㎝, 지름 2㎝ 싸리나무를 쪼개 만든다. 요즘에는 구하기 쉬운 아카시아나무로도 많이 제작한다. 경북 안동에서는 윷놀이를 할 때 윷판이 없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윷판에다 윷말을 놓는 것이다. 이를 ‘건궁윷말’이라 부르는데 윷판 29밭의 명칭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 충청도에서 가락윷으로 놀 때는 윷 4개 가운데 최소한 하나를, 던지는 사람의 어깨 높이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그러지 않거나 돗자리 밖으로 2개 이상 나가면 ‘낙방’또는 ’낙’이라고 보고 무효로 친다. 밤윷은 전라도와 제주도에서 주로 사용한다.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길이는 3㎝ 안팎이다. 전라도에서는 윷을 담아 던지는 용기가 종지나 접시여서 ‘깍쟁이윷’이라고도 한다. 윷을 놀 때는 멍석에 그어놓은 선을 넘도록 힘차게 던져야 한다. 선 안으로 한개라도 떨어지면 ‘낙’으로 안 된다. 윷가락 4개가 모두 멍석 밖에 떨어져도 무효다. 제주도에서는 윷 4개 가운데 하나라도 세로로 2∼3초간 서게 되면 던진 편이 승리한 것으로 친다.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을 절반으로 쪼개어 만든 것으로 북부 지방에서 많이 사용한다. ●세계의 윷놀이 윷은 인도·페르시아·중앙아시아·동북아시아·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민속학자 김광언씨는 ‘동아시아의 민속놀이’에서 “인도의 파치시(Pachisi)가 중국의 저포 놀이를 거쳐 우리에게로 건너와 윷이 되었다.”고 말한다. 파치시는 왕·코끼리·말·양이라 불리는 네 개의 말을 십자 꼴로 벌려 놓은 3×8의 밭 위로 옮기는 놀이다. 중국의 저포 놀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윷놀이와 닮은 점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놀이판의 밭이 29개로 윷놀이와 같았다. 일본의 윷놀이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다. 국문학자 김사엽씨는 “윷놀이에서 한 개가 엎어지고 셋이 잦혀진 것을 이르는 일본말 ‘고로’는 곧 우리말 ‘걸’을 가르킨다.”고 설명했다. 윷과 비슷한 놀이를 아메리카대륙 원주민들도 즐겼다. 콜로라도·뉴멕시코·유타주의 선사시대 유적에서는 뼈 윷이 나왔다. 로스앤젤레스 서남박물관에는 밤윷만한 것부터 가락윷까지 서너 종류가 있다. 특히 파라과이 볼리비아의 차코(Chaco)부족은 이 놀이의 이름을 ‘윷’이라 불렀다고 한다. 놀이학자 스튜어트 컬린은 “윷놀이는 판 위에서 주사위를 갖고 하는 모든 놀이의 조상 또는 원형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윷점 쳐보세요 선 조들은 한 해의 운수나 풍흉을 알아보려고 윷점을 쳤다.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지만 윷점은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설 풍속이다. 윷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을이 편을 갈라 윷을 놀고 그 결과를 가지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산과 들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 윷을 논 뒤 들 쪽이 이기면 벼농사가, 산 쪽이 이기면 밭농사가 잘될 것으로 여긴다. 다른 하나는 새해 윷가락 4개를 세 번 던져 나온 괘로 개인의 일년 운수를 점치는 방법이다. 첫 번째 말을 상괘, 두 번째 말을 중괘, 세 번째 말을 하괘라 부른다. 상괘는 묵은해를, 중괘는 새해 설날을, 하괘는 정월 대보름을 나타낸다. 점괘를 얻을 때 도는 1, 개는 2, 걸은 3, 윷과 모는 4로 간주한다. 그래서 모두 64괘가 나온다.‘척성법(擲成法)’이란 책에 이같은 운수 풀이가 적혀 있다. 스튜어트 컬린(1858∼1929)이 펜실베이니아대학 고고학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1895년에 저술한 ‘한국의 놀이’에서 “정월 초에 서울의 시장에서는 작은 책 한 권이 팔리는데 그것은 윷점과 관련이 있다. 여러 장에 걸쳐 세 개가 한 조인 숫자의 순열이 한자로 인쇄되어 있다. 그 옆에는 한국어로 그 의미가 설명되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세 번 윷을 쳐서 모두 ‘도·도·도’가 나오면 건(乾)으로 111의 점괘를 얻는다. 이 괘의 점사는 ‘어린아이가 인자한 어머니를 만난다(兒見慈母).’는 내용이다. 나약한 아이가 포근하고 편안한 어머니를 만나듯 어려운 일에서 벗어나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길 좋은 괘다. 세 번 윷을 쳐서 ‘도·윷·도’가 나오면 141(大過卦)인데 ‘나무에 뿌리가 없다(樹木無根).’라는 뜻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죽음을 의미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나쁜 괘다. 조선 후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상고’에는 “정월 초하룻날 아낙네들이 (윷을)던져서 길흉을 점쳤다. 세 번 던진 뒤 주역의 64괘를 본받아 점사를 붙였다.”고 기록돼 있다.18세기 말 유득공의 ‘경도잡지’도 윷점을 상세히 소개한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엿장수로 팔도 누빈 윤팔도씨

    # 질문1‘엿 먹어라.’가 왜 욕이 됐을까.1964년 12월 전기 중학입시 공동출제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정답으로 채점된 것은 ‘디아스타제’.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이 있었는데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했다가 낙방한 학생의 어머니들이 법원에 제소하는 등 집단항의에 나섰다. 급기야 직접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관련기관 등에 찾아가 “엿 먹어라! 무즙으로 만든 이 엿 먹어봐라!”하며 엿을 들이댔다. 결국 당시 한상봉 문교부차관과 김규원 서울시교육감이 사표를 냈고 무즙을 답으로 썼다가 낙방한 38명은 정원에 관계없이 경기중학에 합격했다. # 질문2 엿장수는 1분에 가위질을 몇번이나 할까.‘초딩’시절, 시골동네에 ‘엿장수’가 찾아와 가위질을 하며 “엿 바꿔먹으라.”고 소리칠 때 여러번 들었던 추억의 문제다. 초롱초롱 눈알을 굴려가며 애써 답을 생각하다가 “야, 그거야 엿장수 맘대로지.”라는 답을 듣고 허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릴 적 가장 반가웠던 손님은 뭐니뭐니 해도 ‘엿장수’였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절겅대는 가위소리가 들려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쪼르르 달려가 엿장수의 뒤를 따랐던 그 때 그 시절. 오는 날짜도, 가위질 하는 것도 ‘엿장수 맘대로’였지만 늘 반갑기 그지 없었다. 다 떨어진 고무신 한쪽, 망가진 양은 냄비 조각, 심지어는 누나의 긴 머리카락까지 내밀면, 엿장수는 끌과 가위로 탁탁 잘라주며 “옜다, 엿먹어라.”하며 던져주곤 했다. 가끔 “쟤는 왜 많이 주고 저는 쬐금만 주나요?”라고 항의하면 “야, 엿장수 맘이여.” 하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 윤팔도(81) 할아버지. 어쩌면 어렸을 적 동네에서 한번쯤 만났을 법한 추억의 할아버지다. 지난 66년의 세월동안 ‘엿장수’라는 외길인생을 살아오면서 전국 팔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원래 이름이 석준이었지만 ‘팔도(八道)´로 바꾼 것만 봐도 그의 인생역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엿장수들이 모인 엿가위질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국가대표로 인정받기도 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기에 최장수 ‘엿장수’이자 살아 있는 ‘엿가위 예술의 달인’으로 꼽힌다. 더욱 눈길 끄는 대목은 그의 막내아들이 5년 전에 아버지와 합류했고 최근에는 손자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3대째 ‘엿장수 집안’이 된 셈이다. 설날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럽게 정겨운 시골추억이 생각나기 마련, 그래서 지난 6일 오후 경기도 일산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엿장사로 가업을 잇는 이들 3부자를 만났다. 청주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마침 백화점측의 초청으로 설 대목 행사에 참석해 길거리에서 흥겨운 엿판을 벌이고 있었다. “일락 서산에 해 떨어지고 이내 목판에는 엿 떨어졌구나. 청춘 과부 잠못 잘 적에 먹는 엿이요, 큰애기 허벅지맹키로 희건 엿이 왔어요. 부산 동래 사탕엿, 울릉도에 호박엿, 전라도 봉산의 생강엿, 강원도 금강산 생청엿….” 윤 할아버지의 구성진 엿타령이 길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들과 손자는 엿가위로 어깨를 들썩들썩 하며 척척 장단 맞추는 모습에 절로 흥이 돋아난다. 잠시 짬을 낸 윤 할아버지와 마주 앉았다.81세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젊게 보였다. 비결을 물었더니 “즐겁게 사는 거여.”라며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다. 지나온 인생살이가 간단치 않을터.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8세 때 남사당패에 들어갔다. 왜소한 체구 ㅜ때문에 주로 3층 꼭대기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았다. 잘못되는 날엔 매맞기 일쑤였다.3년 뒤에는 창극단에 들어가 노래를 배웠다. 하지만 배고픔은 여전했다. 14세되던 겨울, 그는 호구지책으로 엿장수로 나섰다. 동네 어른을 통해 충남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경씨가 1000명 산다는 마을)에 위치한 엿방(엿공장)에 취직했다. 이때부터 하루 밥 세끼를 먹게 되면서 엿장수 생활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꼈다. “엿방에 갔더니 장작불 지펴놨지, 엿물로 밥지어 먹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록 머슴 신세나 다름없었지만 남사당 가락으로 가위질 하며 용돈도 벌었어.” 19세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지자 홀로 독립한다. 음악을 알고 재주가 남달라 자신감이 더욱 생겼던 것. 우선 몽둥이만 한 엿을 만들었다. 이어 리어카를 구입하고 엿가위 두 개를 장만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은 “몽둥이 엿장수가 왔다.”며 떼지어 몰려들었다. 윤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날이면 “자, 엿먹어라.” 하며 길다란 몽둥이 엿을 몇개씩 집어주기도 했다. 서른 한살 때 군복무를 마친 어느날, 충남 광천의 시골에서 엿판을 벌일 때였다. 창극 노래, 트로트 등으로 이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 한바탕 끝나자 어여쁜 처녀(김종숙·70·지금의 부인)가 다가와 뒤따라가겠단다. 가만 보니 부잣집 딸이었다. 고생 바가지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처녀의 진심을 알고는 친척이 사는 논산으로 함께 야반도주했다. 결국 연산면 살포리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엿장수한테 누가 딸을 주겠나 싶어 결혼 생각을 안 했지. 허긴 엿가위 장단에 처녀들이 담 넘어 올 정도로 꽤나 인기를 모았어. 생각보단 결혼을 일찍했지만 부인은 늘 독수공방이었지. 리어카 끌고 집을 나가면 1년만에 돌아왔으니까 말야. 그러면서 하나 둘 낳은 아이가 나중에 5남매가 되더군.” 1969년 어느날이었다. 전남 영암 출신으로 큰 엿공장을 운영하는 한 부자의 주최로 서울 신당동에서 전국 엿가위질 경연대회가 벌어졌다. 호남의 송산갑, 부산의 김항구, 경기·인천의 백대가리, 서울의 윤팔도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모였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쌍가위’를 들고 출전한 윤팔도가 최우수상을 차지, 전국 최고수임을 입증했고 부상으로 쌀 20가마를 받았다. 1985년 12월이었다.KBS 전국 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을 받고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데 “오라버니 타세요.” 하면서 누군가 승용차 문을 연다. 얼굴을 보니 코미디언 배연정씨였다. 그 길로 간 곳이 서울 돈암동의 유흥업소. 곧바로 무대 위에 올라 ‘물레방아 도는 내력’‘고향무정’‘돌아가는 삼각지’등 세 곡을 불렀다. 그랬더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며칠 뒤에는 MBC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에 초대받았고 이 방송을 본 신소걸씨한테 연락이 와 2년동안 밤무대에 출연했다. 낮에는 엿장수, 밤에는 가수로 활동했던 것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이북을 제외하곤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지. 엿가락 길이로 따지면 지구 수십번은 돌았을 거야. 그런데 요새는 엿가위 만드는 곳도 없어지고 뭔가 아쉬워.” 지난 2003년이었다. 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막내 아들 일권(36)씨가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쓰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일권씨는 “60여년동안 일해온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만약 돌아가시면 엿불림(구전 판소리)도 끊길 것 같았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일권씨는 2년 전 아버지와 함께 ‘엿불림 음반’(대표곡 ‘엿가위 인생´)을 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가업을 이은 아들은 초보답지 않게 2005년에는 2억원, 작년에는 3억원을 벌어들여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해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엿판시합이 벌어진다는 일권씨는 “도저히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아울러 “이제는 초콜릿 대신 우리의 전통 엿을 사랑해야 한다.”면서 폐백이나 입학·졸업시즌에 애용되는 엿을 건강식 웰빙 스타일로 바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엿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인정을 나눠주는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아버지가 해온 66년과 제가 합류해 100년을 꼭 채우겠습니다. 또 제 아들이 100년부터 다시 어어가겠죠.” 손자 경식(13)군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엿가위를 잡아 엿불림을 구성지게 부른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경식군은 휴일과 방학을 이용,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활짝 웃는다. 인물 전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6년 충남 논산 출생 ▲34년 남사당 입문 ▲40년 엿장수 생활 ▲69년 전국 엿장수 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85년 KBS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에서 인기상 수상 ▲2002년 윤팔도 전통엿집 개업(충북 청주시) ▲현재 사단법인 전통식품연구회 고문
  • 色色 징검다리 연륙교, 봄물감 찍었네

    色色 징검다리 연륙교, 봄물감 찍었네

    아침 공기가 찼다. 가끔 자전거를 멈추고 언 손을 입으로 호호 불면서 한 오르막 모퉁이를 돌았다. 저 아래에 다리 하나가 보였다. 이미 지도상에서 보았던 ‘창선교’일 터였다. 남해도와 삼천포 사이에 있는 제법 큰 섬인 창선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그러니까 내 여정은 다시 남해대교를 거쳐 남해도를 벗어나는 게 아닌, 섬끼리 연결된 다리 몇 개를 더 거쳐 사천(삼천포)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창선교를 지나며 보니 바닷물의 물살을 이용해서 잡는 ‘죽방렴’ 모습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잘은 모르지만 물고기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지 못해 잡히는 방법인가 보다. 그래서 사진 몇 컷을 찍느라 자전거를 멈춰 좁은 인도에 세웠다. 어젯밤에는 황토 찜질방에서 잠을 잘 잔 것 같은데 어째 몸이 좀 무거웠다. 그래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도 힘에 겨웠다. 창선도로 접어들어 한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니 모처럼 평지길이 이어졌다. 들판 사이로 잘 닦인 4차선 도로여서 큰 힘 들이지 않고 달리는데 들판을 달려서인지 손이 시려왔다. artistdiary@hanmail.net # 창선~삼천포 3.4㎞ 4개의 교량 ‘아름다운 길100선´에 입김으로 ‘호호’ 하고 온기를 자주 불었지만 그래도 손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시려 짜증이 났다. 겨울철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손시려움’이다. 정말 어떤 때는 손이 시리다 못해 아려올 때도 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멀리 붉은 색의 연륙교 두어 개가 제법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그 다리들을 건너면 삼천포일 터였다. 도대체 저기는 어떻게 생겼기에 다리들 몇 개가 저리 가까이에 다른 모습으로 붙어있을까? 멀게만 보이던 삼천포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풍경은 바뀌었다. 멀리서 볼 땐 그저 모양새나 내려고 지었을 것 같던 다리가 직접 건너려니 육중한 모습이었다.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로 연결된 네 개의 다리를 건너야만 삼천포시였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이란다. 다리 자체도 다양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것보다는 다리를 지나며 보이는 주변풍경이 훨씬 아름다웠다. 가까이에 보이는 다도해 풍경뿐만 아니라 멀리 육지 쪽의 산들도 아름다웠다. 아마 지리산의 큰 덩어리일 것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이런 다리를 싱겁게 휙 하고 지나는 것보다 자전거를 끌고 인도로 천천히 걸어가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걷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장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쌀한 바닷바람은 내 몸을 얼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침도 거른 채 달려오다 보니 몸이 더욱 추웠고 배도 고팠다.‘삼천포에 가선 뭔가를 먹으리라.’ 마지막인 삼천포 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려다 나는 포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짭짤한 바닷내를 맡으며 조금 지저분한 구 포구를 지나가는데, 똑같이 생긴 조그만 개 두 마리가 앙칼지게 짖으며 나를 쫓아왔다.“저리 가거라!” 하며 소리를 쳐도 개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난감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능하면 페달을 세게 밟아 속력을 내어 도망갈 수밖에. 크다면 또 모를까, 별로 크지도 않은 개 두 마리에 쫓겨 혼비백산 달아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자전거로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있었다. 하기야 거기엔 그 길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놈들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순간 약이 오르기도 해서,‘자전거에서 내려 발로 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행히 그쯤에선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아 그대로 위기는 벗어났다. 개들은 이상하리만큼 낯선 사람을 잘 알아본다. 동물의 감각으로 ‘나그네 냄새’(?)를 바로 맡을 수 있나 보다.‘내 행색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지. 개도 단 번에 알아보는 나그네….’ # 이순신 장군도 이용한 아담한 ´대방진 굴항´ 그러다가 포구를 도는데 길이 좁아지고 있었다.‘무슨 일로 갑자기 길이 좁아지는 거지?’ 하면서도 그대로 따라 갔다. 어? 거기엔, 조그만 웅덩이 같은 재미있게 생긴 포구 하나가 있었다. 주변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고목들이 군락을 이루듯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게다가 나무가 오래돼서인지 어떤 건 쇠기둥으로 가지를 받쳐준 모습도 보였다.‘이 게 뭐지?’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몇 개의 ‘굴항’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런 걸로 추리해 보면 여기는 ‘굴항’인가 보다. 목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 모습인데 아마 옛날엔 여기가 조그만 포구였나 보다.‘굴 위주의 배가 들어와서 굴항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그러다 관광안내판을 발견하고는 가서 확인해 보니 ‘대방진 굴항’으로 고려시대 때 왜구들을 물리치려고 인공적으로 지었던 군항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도 이용했다는 아무튼, 재미있게 생긴 포구였다. 대방진 굴항을 한 바퀴 돈 뒤, 나는 다시 선창을 따라 갔다. 수산물 시장인 듯한 건물이 보였고 그 모퉁이를 돌았더니 어? 한 무리의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경매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때마침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자전거를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그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염치불구하고 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현장도 찍었다. 마치 취재를 나온 촬영기자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 역시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 시끌벅적 생선 경매장엔 인간미 물씬 사실 나는 경매에 참가한 그들이 뭘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갓 잡아온 싱싱한 생선을 팔고 사는 흥정의 모습일 것이었다. 어떤 생선은 그릇에서 튀어 나와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여기는 그만큼 삶의 생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생선까지도 활기찼던 것이다. 경매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끌지 않았다. 아니, 금방 파장이었다. 그 반짝하는 시간에 내가 거기에 갈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틈을 이용하여 사진 몇 컷을 찍다 보니 경매가 끝나버려 나중엔 좀 싱겁기까지 했다. 주변에는 시장과 연결돼 있어 여행객에게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회시장인지 생선을 다루며 횟감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한 거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 곳을 지나면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이런저런 남해안의 싱싱한 생선들이 눈으로 보기만 해도 먹고는 싶은데,‘혼자 들어가서 얼마만치나 사서 먹을 것인가? 게다가 혼자 회를 먹으며 이렇게 빈속에 소주라도 한 잔 마시게 된다면? 내 자전거도 음주운전(?) 상태로 대낮부터 갈지자로 달리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그럴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싱싱한 어시장을 눈으로만 구경하고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어시장 뒤편은 시장통으로 연결돼 있었다. 골목을 지나는데 한 아주머니가 “식사를 하시려면 여기로 들어오세요.” 하면서 식당 문을 연다. 그래서 보니, 입구의 가격판 간판엔 2000원과 3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무슨 식사가 이리 싸지?’ 하고 다시 읽어 보니,‘먹장국’‘시래기 국밥’이라고 적혀 있었다. “먹장국이 뭐죠?” 하고 물으니, 문어 먹통을 이용한 시래깃국인데, 밥을 말아 먹는 국밥이라 한다. 듣기도 처음인데다 먹어보지도 못했던 음식이긴 했다. 더구나 아침을 거른 채 추운 겨울 바람을 쐬며 달려와 따끈한 국물이 그리웠던 여행객인 나는, 그 싼값에 끌려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음식이 나왔는데 무엇보다도 김치가 맛깔스럽고 시원했다. 그래서,“아주머니 김치가 참 시원하고 맛있네요.” 했더니,“우리 손님들이 날더러 전라도 아줌마냐고 묻곤 하지예. 나는 산청사람인데, 내 김치가 전라도 맛이라네예.” 하며 환하게 웃는다. 어쨌든, 김치 국물까지 시원했다. #“더 드리까예” 국밥 한그릇에 情 한그릇 덤 그런데 ‘국밥이 겨우 3000원이라고? 이렇게 받고도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상이 나온 것을 보니 5000원을 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했다. 무엇보다도 인정이 느껴지는 국밥집이었다. 그렇게 나는 주린 배를 채웠고 언 몸도 녹였다. 내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어서였을까? “밥 더 드리까예?” 하고 아주머니의 묻는 목소리도 정겨웠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김치가 맛있어서 “조금만 더 주세요.” 하고는 몇 숟갈의 흰 밥에 김치를 걸쳐 먹었다. 모처럼 포만감에 젖어 행복했다. 마음도 느긋해지고 있었다.‘하기야, 나 같은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이런 곳이 제격이지.’ 따끈한 정을 느끼며 배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소박하지만 맛도 있는 싼 식당이었다. “아주머니 제가 다음에도 오면 꼭 들르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더니,“언제든지 오세예. 저는 여기에 계속해서 있을깁니더, 잘가입시더.” 인사도 정겹고 밝기만 했다. 식당에서 나와 과일을 조금 사려고 둘러보는데, 길거리에 단감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 몇몇이 눈에 띄었다. 그리로 갔다. 처음에 있던 아주머니가,“감 사이소!” 하며 지나가는 내 팔을 잡는다.“아주머니 잠깐만요. 나도 한 번 구경을 하고 사더라도 사야지요.”라고 대꾸했다.“이 거 하나 깎아먹어 보이소.” 하면서 내 팔을 억세게 잡고는 놓아주질 않는다. “아주머니, 이러지 마세요. 제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하며 팔을 뿌리쳤다. 이제는 밥도 먹어서 배도 부르고, 기분도 나른해서 좀 여유 있게 시장 한 바퀴를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내 눈에는 또 다른 감 파는 아주머니 모습이 들어와 있었고, 그 억척스러운 아주머니의 행동에 짜증스러운 거부감도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팔을 뿌리치고 그 뒤 한쪽에 조용하게 서 있던 아주머니 앞으로 갔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살짝 웃는 얼굴로,“감 답니더. 사이소.” 한다. 목소리도 나지막했다.“그러지요. 근데, 그 바구니가 얼맙니까?” 하고 물으니,“5000원인데예.” 한다. “아주머니,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는 사갈 수가 없습니다. 단 몇 개 정도만 필요하거든요? 그러니 미안하지만 한 2000원어치만 팔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그럽시다.” 하면서 비닐 봉지에 주섬주섬 감을 담기 시작한다. 집에서 따온 감인지 싸기도 해서 2000원어치만도 예닐곱 개를 담고도 더 담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 부근은 진영단감이 특산이어서 단감이 많은가 보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 전에 내 팔을 잡고 실랑이를 하던 아주머니와 언뜻 눈이 마주쳤는데, 고개를 휙 돌리며 외면해 버린다. 나도 머쓱했다. 이 세상에 저렇게 억척스럽거나 드센 사람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조용하고 순한 사람에 비해선 장사도 잘하고 빨리 팔아치우고 집에 돌아가리라. 지금의 내 행동이 별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말과 숫기도 없고 순한, 그래서 어쩌면 이런 경쟁의 세계에선 늘 뒤로 밀리는 사람의 편에 서고 싶다. 그 건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아주머니 그만 주세요.” 자꾸만 더 담으려던 아주머니를 말리는데 “두어 개라도 더 드리까예” 하기에,“아주머니, 저는 이걸로 충분합니다. 혹시 나중에 올 다른 사람이 더 달라고 하면, 그때 더 주시면 되겠네요.” 하며 돈을 건넸더니, 그 아주머니도 환하게 웃으며 받는다. 그렇게 시장통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식사도 했고 또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먹거리를 준비했는데 퍽 재미 있었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시장에서 잘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객에게는 이런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며 느끼는 것들이, 어쩌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만큼이나 값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도 사람 사는 일 중의 하나고, 시장의 풍경은 가장 진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삼천포 시장을 벗어나면서 곧 도심을 빠져 나가게 됐다. 따사로운 겨울 남녘의 햇볕에 아늑한 농촌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침과는 달리 어느덧 날씨는 봄날 같았다.
  • [호텔·외식 정보]

    ●서울신라호텔 파크뷰에서는 15일부터 31일까지 딤섬 페스티벌을 벌인다. 딤섬의 본고장인 중국 광저우 지역의 딤섬 전문 요리사를 초빙해 10가지가 넘는 딤섬과 춘권을 선보인다. 점심 4만 5000원, 저녁 4만 9000원(세금·봉사료 별도)(02)2230-3374.●밀레니엄 서울힐튼 뷔페식당 오랑제리에서는 1월 한 달 간 팔도요리 특선을 선보인다. 제주도 빙떡·전복죽, 경상도 아귀찜, 전라도 삼합, 함경도 아바이 순대, 강원도 닭갈비, 평안도 평양냉면, 충청도 호박범벅, 경기도 오곡밥 등 전국 8도의 향토음식을 선보인다. 점심 4만 5000원, 저녁 4만 8000원(세금·봉사료 포함)(02)317-3143.●임피리얼 팰리스호텔 뷔페식당 훼밀리아에서는 새달 28일까지 겨울철 별미 요리 축제를 연다. 석화, 멧돼지 보쌈, 너비아니 버섯 철판 볶음 등 색다른 요리들을 선보인다. 점심 5만 4000원, 저녁 5만 9000원(세금·봉사료 포함)(02)3440-8090.●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이태리 식당 카페 에스프레소에서는 신선한 토마토를 이용한 요리를 준비했다. 토마토에 함유돼 있는 리코펜은 항암 효과가 있으며, 글루타민산은 피로 회복에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1일까지.1만 2000∼4만원(세금·봉사료 별도)(02)559-7616.
  • [10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30분) 누구나 새해를 맞으면 새로운 각오로 희망을 말한다. 세상이 어렵고 삶이 힘들수록 용기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더 절실한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일 것이다.‘우리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통하는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과 함께 새해의 의미와 우리 사회의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PDP,LCD,CRT, 프로젝션. 다양한 TV 어떻게 골라야 할까? TV는 무조건 클수록 좋다? TV가 근시의 원인이다? TV를 오래 보면 머리가 나빠진다? TV에 얽힌 여러 궁금증을 풀어본다.‘돈이 보이는 특강’에서는 우리 아이를 위한 노후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재테크계 미다스의 손, 백정선씨에게 들어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2001년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돼 연예활동을 중단했던 황수정이 5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복귀 논란을 놓고 그녀가 드라마 제작보고회에서 밝힌 솔직한 심정을 소개한다. 연기자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녀의 촬영장 모습도 공개한다. 또 김정은, 이서진을 ‘연인’마지막 촬영 현장에서 만나본다.   ●생방송 오늘아침(MBC 오전 8시30분) 혼수가 웬수? `혼수’갈등으로 인한 이혼이 늘고 있다. 많거나 적거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와 양가부모들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대한민국 혼수문화. 대한민국 중산층의 평균 혼수 액수는 어느 정도이며 혼수로 인한 파경을 막을 수는 없는지 그 실태와 대안을 짚어본다.   ●신년특집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5분)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부터 충청도 농촌 마을, 전라도 항구도시, 부산 자갈치시장.40여일 동안 약 200여명의 민심을 직접 들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1년 남은 참여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추적 60분’신년특집 2부작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흔히 ‘히말라야의 보석’이라 불리는 불교 왕국 부탄.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 부탄은 지구상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천연의 요새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때문에 고유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완벽하게 유지, 보존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 바람 그리고 하늘의 나라 부탄을 찾아가본다.
  • [열린세상] 2007년 대선에 바라는 것/이준한 인천대 비교정치학 교수

    또다시 대통령선거의 해가 밝았다. 휘황찬란한 새해가 진흙탕 싸움과 구태의연한 정쟁으로 점철될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한참 전부터 어떤 당은 11월 대통합을 전제로 서로 갈라서니 어쩌니 난리가 아니다. 또 다른 당은 골프니 성추행이니, 또는 성폭행 미수니 연달아 사고를 치고 면피용 봉사활동 하느라 바쁘다. 이 추운 겨울날 대통령도, 대선 후보도, 어느 정당도 팍팍한 국민의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말 한마디, 쪼그라진 희망이라도 부여잡을 수 있는 희망 하나 던져주지 않는다. 새해 벽두에 다짐해 본다. 이번 대선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말 좋은 대통령을 뽑자. 올해에는 무엇을 주의할 것인가. 첫째, 투표율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소에 가야 한다. 투표율이 더 낮아지면 당선자의 절대적인 득표수가 적어지고 그만큼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통성은 줄어든다.1987년 대선에는 89.2%인 투표율이 81.9%(1992년),80.6%(1997년)로 낮아졌고 2002년에는 70.8%로 더욱 떨어졌다. 이번에는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터치스크린 기계를 제공하며 해외 단기체류자도 투표하도록 추진 중이다. 이왕이면 이동투표소를 많이 만들어 유권자가 더 쉽고 편하게 투표하고 절대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한 대통령이 탄생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대표성 시비가 없는 그런 힘있는 대통령 말이다. 둘째, 지역주의 선거가 되지 않도록 유권자로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과시해야 한다.2000년대 선거에서 지역주의가 약화되는 중이라는 분석이 있다.2002년 대선에는 경상도 출신의 후보가 전라도와 충청도 유권자의 지지를 업고 당선되었다. 며칠 전에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10%를 넘었다고 한다. 괄목할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올 대선에서 그 추세가 계속될지 매우 의심스럽다. 현재 유력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가운데 경상도 출신이 아니거나 여권 후보 가운데 전라도 출신이 아닌 후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서민들을 살기 좋게 만드는 정책선거, 매니페스토 공약선거가 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2006년 지방선거부터 도입된 매니페스토 운동은 그야말로 한국 선거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허황된 공약이나 백화점식 공약을 나열하는 후보는 큰코 다칠 것이다. 네거티브 선거도 발을 못 들이도록 해야 한다. 경기를 회복시키고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며 고용과 성장에 집중하는 동시에 복지에도 힘써야 할 총체적 난국이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으로 부동산시장에 토지보상금이 넘쳐 전국이 투기장으로 변한 판에 다시 더 많은 보상금을 풀 대규모 건설정책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듯이 ‘정치의 질’을 향상시키는 대선이 되어야 한다. 정당이 아무리 권력을 추구하는 조직이라지만 선거에서 질 때마다 정계개편을 운운하고, 선거만 다가오면 이합집산을 통해 이길 것만 생각하는 구태는 호되게 꾸짖어야 한다. 자신을 뽑아준 민초의 생존은 뒷전이고 당리당략과 정치인의 자리가 우선일 수는 없다.1년마다 평균 2개 이상의 정당이 생겼다 없어지고 정당의 수명이 평균 3년에 그치는 한심한 정치를 언제까지 묵인할 것인가. 대선은 향후 5년간 국가의 장래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대표를 뽑는 자리다. 기권도 정치적 표현의 하나이고 자유라며, 다른 사람의 결정에 국가와 자신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가. 유권자들이 투표도 안 하고 정치인들의 수준, 정치의 질만을 탓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구태에 젖어 있어도 정작 선거에서 심판하는 유권자들이 적다면, 한국 정치의 질이 계속 그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12월 그날 서민의 삶의 질과 한국 정치의 질을 향상시킬 그런 대통령을 뽑자. 이준한 인천대 비교정치학 교수
  • 오감을 깨우는 홍어음식 3선

    오감을 깨우는 홍어음식 3선

    양치권 사장이 소개하는 영산포 홍어의 참 맛은 옛 사람들이 그랬듯 옹기를 이용한 저온숙성에 그 답이 있다. 저온숙성 홍어의 쏘는 맛과 담백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홍어 요리로는 단연 삼합이 꼽힌다. ■ 도움말:양치권 영산강홍어 대표.(http://yeongsanpo.com) 홍어삼합 잘 삭혀 두툼하게 저민 홍어와 묵은 김치,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에 막걸리를 곁들인 음식이다. 김치는 반드시 묵힌 것이라야 하며, 비계가 붙은 수육은 삶아낸 뒤 식혀야 제 맛이 난다. 예전에는 돼지고기가 귀한 반면 홍어는 지천에 널려 ‘홍어 듬뿍에 돝고기 몇 점’이었지만 요새는 국산 홍어가 금값이라 그 반대가 돼 아쉽다. 삼합도 ‘법식’에 따라 먹어야 풍미가 더한다. 저민 홍어 한 점을 초장에 찍어 수육에 얹고, 여기에 묵은 김치 한가닥을 덮어 입에 넣으면 싸한 홍어 맛이 은근하게 퍼지는데, 여기에 맛들이면 바로 ‘홍어중독’이 된다. 여기에 걸쭉한 막걸리를 곁들이면 홍탁이 된다. 이 맛이 바로 황석영이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먹게 된다.’는 그 맛이다. 홍어탕 홍어탕은 애국과 탕으로 나뉜다. 애국은 홍어 살을 바른 뒤 남은 뼈(물렁뼈)와 내장, 특히 애와 나물, 파래 들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다. 자산어보에 ‘나주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국은 복결병을 낫게 하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애국은 한 겨울 보리싹이나 이른 봄의 새 쑥을 넣어 끓이면 그 맛이 시원하고 깔끔해 가히 별미라 할 만하다. 된장은 너무 진하지 않게 풀어야 맛이 시원하며, 끓일 때 생기는 거품은 국자로 걷어내면 된다. 뼈와 살코기만 넣는 탕도 애국과 같은 방법으로 끓이면 된다. 홍어찜 찜맛이 강해 입 천장이 홀랑 벗겨지기 일쑤며, 먹은 뒤에도 날숨에서 특유의 맛이 배어난다. 이 때문에 ‘홍어찜을 알아야 진짜 미식가’소릴 듣는다. 손질한 홍어 몸통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솥에 넣고 물에 닿지 않게 쪄낸다. 큰 접시에 데친 미나리를 깔고 찐 홍어를 얹은 뒤 잘게 썬 파와 마늘, 생강, 고추장, 참깨, 간장 등을 버무린 양념을 끼얹으면 된다. 식성에 따라 겨자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꾸들꾸들 말린 홍어를 볏짚 깐 찜솥에 쪄내 양념에 찍어 먹는 ‘홍어어시욱’이 전라도에서 예전부터 전해지는 또다른 홍어찜 맛내림이다. 이렇게 먹으면 홍어의 특유한 냄새도 가실 뿐 아니라 오돌오돌 씹히는 뼈와 쫄깃한 살이 어울려 아주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 ‘홍어의 고향’ 영산포아리랑

    ‘홍어의 고향’ 영산포아리랑

    뱃길마저 끊긴 저문 강은 또 얼마나 쓸쓸한가. 여린 물의 속살을 날선 갯바람이 할퀴는 겨울, 무량했던 옛날의 풍요는 간 곳 없고 오로지 쇠락의 적막에 몸을 떠는 강. 그래서 사는 일 숨가쁜 사람들이 찾아와 남몰래 마음을 풀어놓는 묵시의 강. 사람들은 그 강을 영산강이라고 추억했고, 근대를 지나면서 그 강에 기대어 살집을 늘려온 나주의 정체를 보고는 ‘전라도 다운 것의 상실’이라며 아쉬워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전라도’라는 권역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릿글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때 지금의 도청 격인 나주목이 설치돼 있었던 그 나주와 영산강은 따로 떼어 말하기 어렵다. 곡창의 기능을 말하지 않더라도 나주가 나주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영산강에 기대어 터를 잡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주를 속속들이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 침묵의 강 홍어가 깨우다 영산강 하구언이 건설되면서 강의 물줄기를 막아 동양 최대의 담수호인 영산호를 만들면서 그 옛날 조운선이 드나들었던 ‘전라도의 대표 포구’ 영산포는 지금 거룻배조차 사라진 침묵의 강으로 변했고, 남도의 물산이 모여 흥청거리던 물길은 강바닥을 드러낸 채 ‘개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 병증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영산강에 젖줄을 대고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옘병할 하구언 땜시 못살겄다.”며 영산강 뱃길 복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까. 지금 나주와 영산강의 옛 영화를 간직한 것은 오로지 ‘홍어’뿐이다. 이제는 전국구 음식이 되어버린 홍어. 나주와 영산강을 거치지 않고는 그 홍어 식도락의 대표격인 홍탁삼합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바다 대신 강과 짝을 이룬 ‘영산포 홍어문화’를 의아해 한다. 거기에는 내력이 있다.1363년(고려 공민왕 12년) 당시 조정은 왜구가 극성을 부리자 흑산도에 사는 어민들을 영산강 하류의 남포, 즉 지금의 영산포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空島)정책을 폈는데, 그 이주민들이 홍어를 먹기 시작하면서 ‘영산포 홍어’의 전통이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설도 있다. 신현만 나주시청 관광기획팀장은 “당시 공도정책으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살았던 섬이 흑산도 인근 영산도여서 그들의 집단 거주지를 영산포라고 불렀으며, 그들에 의해 홍어문화가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후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뱃길로 호남 물산의 집산지인 나주 영산포에 닿는 5∼6일 동안 자연스레 숙성돼 지금처럼 ‘썩혀 먹는’ 홍어문화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 영산포구에 홍어음식점 30~40개 그 홍어가 나주의 오랜 잠을 깨우고 있다. 나주시 영산동 옛 영산포 포구에 조성된 ‘홍어의 거리’에는 줄잡아 30∼40개 홍어 음식점이 늘어서 나주와 영산포의 부활을 알리고 있다. 초행길의 나그네라도 이 거리에 들어서면 영산포와 홍어문화의 상관성을 알아채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옛적의 번화와 번성의 기억이 고스란히 홍어문화에 배어나는 곳이다. 영산포 홍어문화를 일군 양치권(영산강홍어 대표) 전 선창번영회장은 “홍어가 국민 음식으로 자리잡으면서 하구언으로 물길이 막혀 쇠락의 길을 걸었던 나주와 영산포 홍어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스럽다.”며 “지금이야 목포나 흑산도는 물론 전국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지만 만약 원조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 영산포와 ‘영산포 홍어’는 항상 기억되고 또 회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장한 영산강의 물길 위로 미칠 듯 붉은 노을이 사위고 있었다.‘가장 전라도답다.’는 강, 그 강에 검붉은 노을이 비끼고, 끝없이 피어나는 물안개 속으로 임방울의 절창 ‘함평천지’가 나즈막히 깔리고 있었다. # 여행정보 시가지 곳곳에서 커다란 걸개그림으로 만나는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과 소서노 캐릭터가 이곳이 인기 사극 ‘주몽’의 촬영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나주배는 여전하며, 목사고을답게 나주목 객사였던 금성관, 목사내아와 정수루, 벽류정, 나주읍성의 동점문과 남고문이 남아 옛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광주와 화순, 영암, 함평, 무안과 인접한 사통팔달의 교통요지로 해마다 천연염색문화제가 열리고 있으며, 영산강 물길을 따라 국내 유일의 강 등대인 영산포 등대와 삼한지 테마파크, 나주호관광단지 등이 있다. 골드레이크CC와 나주CC가 있어 여가문화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항공편은 광주공항을 이용하면 되며,KTX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나주역까지 2시간55분이 소요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하행선 무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곧장 왼쪽으로 꺾은 뒤 국도를 따라 20여㎞를 가면 나주시가지와 영산포에 다다르게 된다.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8) 증산도 성소 대전 태을궁(太乙宮)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8) 증산도 성소 대전 태을궁(太乙宮)

    대전광역시 대덕구 중리동 409-1의 유별난 건물, 증산도 교육문화회관. 주변에 특별히 눈에 띄는 건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돌출적인 건물 외양이 색다르다.2002년 12월 들어선 뒤 대전의 명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곳이 민족종교 증산도의 핵심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정면에서 볼 때 왼편 시루(떡을 쪄서 익히는 질그릇) 형태의 태을궁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山´의 형상을 이룬 독특한 건물. 도조(道祖) 강증산(姜甑山·본명 一淳·1871~1909)의 이름자를 고스란히 건물로 형상화했다. 지금은 증산도 신도들의 교육장소로 쓰고 있지만 이른바 ‘후천개벽’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에 세상의 모든 일을 도모할 근본 터로 계획해 세운, 증산도의 중심이다. 세미나실과 교육장 6개, 사무동, 숙소동, 증산도 케이블방송국이 ‘山´자를 이루며 독특하게 포진해 있는 건물. 한꺼번에 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증산도 교육센터이지만 건물 맨 오른쪽엔 서점과 북카페를 차려 일반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 공간은 역시 시루 모양의 태을궁. 밖에서 볼 때도 그렇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위가 넓고 아래는 좁은 원통형 시루 모양이 확연하다.1800석을 갖춘 실내의 조명과 음향, 영상 시스템은 국내 여느 대형 공연장 못지않은 수준. 무대 전면에 도조와 도조의 종통을 이은 태모(太母) 고수부, 태을천 상원군, 국조 단군왕검의 어진을 개사해 모신 신단이 눈길을 끈다. 도조 강증산은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현 전북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 시루산 아래 마을에서 태어나 호를 시루 증(甑)자와 산(山)자를 써 증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증산이란 이름엔 출생지 시루산 말고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얽혀 있다. 다름 아닌 1200여년 전 신라 고승 진표율사가 세운 김제 금산사 미륵금상의 철수미좌 사연이다. 진표율사는 목숨을 건 망신참법의 수행을 통해 미륵불을 친견하고 미륵불의 계시에 따라 미륵금상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당시 쇠로 된 밑 없는 시루(철수미좌)를 놓고 그 위에 미륵금상을 조성한 것이 특이하다(지금 미륵금상 아래의 철 시루는 시멘트로 봉쇄된 채 일반인들이 볼 수 없다). 증산도는 그로부터 1100여년 후 고부의 시루산 밑에서 탄생한 강증산이 진표율사와의 인연으로 금산사 미륵금상에 30여 년간 성령(聖靈)으로 있다가 이 땅에 내려온 것으로 여긴다.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道典)에 실려있는 탄생에 관한 내용이지만, 불교계에서 아직까지 미륵금상을 철수미좌에 받쳐 조성한 이유를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김제 금산사 인근 모악산 기슭에는 지금도 증산 사상을 신앙으로 이어오고 있는 군소 종교단체가 40여개나 남아 있다. 강증산은 31세 때인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년간 ‘천지공사’라는 의식을 통해 남북통일을 포함한 후천세상을 여는 프로그램(증산도에선 도수로 부름)을 짰다고 한다. 태을은 증산도에서 가장 중시하는 주문인 태을주(太乙呪)에 등장하는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의 이름을 딴 것으로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는 진리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총본산의 주 공간에 가장 중요한 태을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정작 강증산이 태어난 시루산 아래 신송마을에는 입구에 ‘강증산성지’라 새겨진 나무 푯말만이 덩그맣게 섰을 뿐 생가를 비롯해 성지라 부를 만한 흔적이 별로 없다. 인근 입암면 접지리 대흥마을은 도조 강증산의 맥을 이어받은 보천교 교단이 형성됐던 곳이다. 당시 이곳엔 본부 건물인 십일전을 비롯해 건물 30여동이 들어섰으며 신도 수가 수백만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일제시기 독립자금 중 많은 부분이 이곳 보천교를 통해 모금되었으며 그 때문에 조만식을 비롯해 많은 우국지사들이 보천교를 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조만식과 한규숙 등은 보천교 신도들이 마련한 30만원을 독립자금으로 만주에 보내려다가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되기도 했다. 선승 탄허 스님의 아버지인 김홍규도 보천교 핵심 간부였다. 보천교는 종교집단이었지만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셈이다. 일제는 집요한 와해공작을 벌여 1936년 마침내 보천교를 해체시켰으며 당시 보천교의 본당이었던 십일전 건물은 해체되어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으로 옮겨졌다. 보천교 교단이 있던 대흥마을은 마을 전체가 보천교 신자들로 이루어진 보천교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옛 건물 7채만 남아 있다. 보천교 와해 이후 지금의 안운산 종도사와 안경전 종정이 강증산과 2대 도주 고수부의 종통을 이어 새롭게 이끈 것이 증산도. 증산도는 해방후 한때 신도가 70만명에 달했으나 6·25전쟁으로 교세가 주춤했다가 안운산 종도사와 안경전 종정이 1970년대 다시 문을 열어 지금에 이른다.“내가 후천선경 건설의 푯대를 태전(대전)에 꽂았느니라.”“태전이 새 서울이 된다.”는 도조의 유언을 중시, 대전에 본부를 두었으며 태을궁은 그중에서도 핵심 공간인 셈이다. kimus@seoul.co.kr ■ 전국 250여 도장·신자100만명 둔 증산도는 강증산을 도조(道祖)로 모시며 상생(相生), 보은(報恩), 해원(解寃), 원시반본(原始返本),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핵심 종지(宗旨)로 삼는다. 전국에 250여개의 도장(道場)이 있으며 신자 수는 100여만명으로 추산. 도장은 수행, 교육, 포교 활동의 구심점으로 대전에 본부가 있다. 세계적으로 20개국 50여개 도시에 도장을 갖췄으며 최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7개 국어로 된 외국어 도전도 펴냈다. 신도들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도장에서 도조와 도조의 종통을 이은 태모 고수부, 천지신명에 정성을 드리는 정기 치성(致誠)을 봉행한다. 평상시에는 집에서 매일 아침·저녁 청수(淸水·정화수)를 올리고 태을주 수행을 한다. 기도는 하늘을 받들고 땅을 어루만지는 형상의 절법인 반천무지(攀天撫地)를 하는데, 인간이 천지의 은혜에 보은하는 것과 함께 인간이 우주의 주인임을 상징한다. 지금 시대는 우주에서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과도기이며 앞으로 올 가을기에 통합과 상생의 새 문명이 열린다는 미래관을 갖고 있다. 다른 종교단체에 비해 대학생 등 젊은 남자들이 신도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대학교수, 의사, 한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적지 않다. 후천문명을 열 성직자 양성기관인 증산도대학교를 1984년부터 열고 있으며 전문 성직자를 기르는 성녀전사단 교육과정도 운영한다. 역사와 민족의 뿌리찾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군부대, 교도소, 마을문고, 학교도서관 등에 ‘상생의 책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어린이책꽂이]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캐서린 패터슨 글·이다희 옮김, 비룡소 펴냄) 세살 때 엄마에게 버려져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주인공 질리가 새 위탁모와 함께 살면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의 동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아이의 심리를 잘 그렸다. 저자는 스웨덴 린드그렌 문학상 수상자. 이 상은 어린이 인권에 앞장선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추모해 만든 상이다. 초등3년 이상.7500원. ●동학농민운동 가까이(서찬석 글·이재순 그림, 어린른이 펴냄) 1894년 한손엔 죽창을 들고 또 한손엔 횃불을 밝히며 탐관오리와 외국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농민들의 외침이 시작됐다.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와 강원도 지방에서 농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 동학농민운동을 다큐 동화로 생생히 재현했다. 초등4년 이상.8000원. ●꼬불꼬불 문자 이야기(수잔 뷔키에 글, 엘렌 뮐러 그림, 남윤지 옮김, 문학동네 펴냄) 세계에는 6000여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고, 우리가 모르는 정말 많은 수의 문자들이 사용되고 있다. 아랍어나 인도어는 낙서인지 글자인지 구분도 안될 정도. 중국·키릴·인도·아랍·라틴문자 등 세계의 대표적인 다섯가지 문자를 다뤘다. 초등3년 이상.1만 1000원. ●생명이 들려준 이야기(위기철 글·이희재 그림, 사계절 펴냄)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 위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자라서 어른이 될 뿐. 얘들아, 얘들아, 천천히 자라 어른이 되렴.” 부모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토담이에게 삶을 사랑하는 법을 일러주는 창작동화 모음.8000원.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말년병장 황희태 “다섯 누이에 金바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뒷바라지해 준 누나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말년 병장으로 오는 12일 전역 신고를 앞둔 한국 유도계의 ‘개그맨’ 황희태(28·상무)가 4일 새벽 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90㎏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황희태는 결승전 상대로 점찍어둔 이즈미 히로시(일본)가 1회전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는 바람에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결국 이즈미를 제압한 막심 라코프(카자흐스탄)와 결승에서 격돌한 그는 상대에게 지도를 이끌어내고 유효를 보태 도하 밤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렸다. 언제나 웃는 낯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섞은 재치 있는 입담까지 있어 주변에서 개그맨으로 통했던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금메달을 따낸 자신의 모습을 부모님이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1남5녀 가운데 막내인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13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듬해 아버지도 유명을 달리했다. 합숙을 할 때 어머니를 대신해 찾아와 밥을 해주는 등 꾸준히 뒷바라지를 해준 누나들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했을 것.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구김살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누나들 덕택이었다.175㎝로 90㎏급에선 단신이지만 힘과 승부 근성이 돋보이는 그는 지금은 종합격투기 선수인 윤동식이 은퇴한 이후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2001년 베이징유니버시아드 3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린 황희태는 2003년 독일오픈 정상을 밟은 데 이어 같은 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빛 전망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 이즈미에게 준결승에서 패한 뒤 3∼4위전에서도 무릎을 꿇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 때 좌절을 맛본 황희태는 운동을 그만두려고까지 생각했으나,2004년 12월 군 입대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됐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3회전에서 애매한 심판 판정으로 이즈미에게 반칙패를 당했으나 같은 해 코리아오픈, 올해 가노(유도 창시자)컵과 파리오픈을 석권, 부활의 나래를 활짝 폈다. 그는 “전만배 상무 감독님이 격려해 주셔서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람잡는 ‘낮술’

    사람잡는 ‘낮술’

    #1지난해 12월20일 오후 5시쯤 부산시 연제구에 있는 ○○종합건설(주)이 시공하는 현장에서 미장 작업자가 오후 새참 시간에 막걸리를 마신 뒤 동료 인부들과 작업을 한 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계단으로 내려 가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 #2경기도 화성군 동탄면에서는 지난 4월18일 철근 작업자가 점심때 소주 1병을 마신 뒤 작업에 나서 변을 당했다. 그는 작업반장의 귀가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하 1층 옹벽 배근 작업을 하다 오후 1시30분쯤 중심을 잃고 2.5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3경기도 용인시 구성면의 공사장에서 지난 6월 25일 오후 3시30분쯤 전기배관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2.8m 아래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이 근로자는 새참시간에 소주 1병 정도를 마신 상태에서 사다리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직장인들의 술자리가 점점 잦아진다. 특히 점심시간 동료들과 나누는 3∼4잔의 반주가 그야말로 꿀 맛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들의 이런 음주 습관은 사무직이나 현장 근로자 모두가 비슷하다. 문제는 출근 이후 작업장에서의 음주 습관이 각종 안전사고를 일으키는 심각한 원인이 된다는데 있다. 직장인들의 점심때 반주로 인한 사고 통계는 아직 없다. 하지만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구조 출동을 한 시간대를 분석해 보면 그 심각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모두 10만 5382차례의 구조 출동을 했다. 시간대별로는 하루중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가 1만 2164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4시부터 6시까지로 1만 1609건이었다. 소방방재청 김종선 계장은 “점심 시간이나 새참시간을 이용한 반주가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급자의 묵인이 원인, 그래도 해고 사유는 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작업중 근로자의 음주에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외국에 비해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회식, 고객 접대(business)와 같은 차원에서 비자발적인 음주가 많고 횟수도 잦은 편이다. 또 동료 또는 상하간 격의를 빨리 없앤다는 이유로 폭음 분위기(폭탄주 등을 원샷으로 마시기)가 일반화되어 있다. 한국경제경영연구원은 최근 연구자료에서 이같은 현상이 “한국의 직장 관리자(상급자)들이 부하 직원의 감정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과도한 음주 행위를 하는 부하 직원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관대하기만 했던 직장내 음주문화에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근로자의 음주 습관에 대한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적이 있어 주목된다. 노동위원회는 고속버스 운송사업에 종사하는 운전기사가 운행 전날 먹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출근, 승차전 자체 음주 측정에서 혈중알코올 농도 0.05%가 나왔다는 이유로 해고한 회사측의 결정을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그동안 비슷한 사건에서 ‘해고 사유는 부당하다.’는 노동위원회의 판정 사례를 뒤집었다. 음주에 대한 회사의 관대함은 자칫 모든 직원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하는 등 각종 안전사고를 당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서울·경기·전라도 지역의 건설업과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 700명을 대상으로 ‘음주와 산업재해에 관한 실태분석’을 실시한 결과 작업장에서 음주로 인해 재해를 경험한 사람이 33.1%에 이른다. 또 전체 응답자의 16.5%는 음주로 인해 불량품을 생산하는 등 작업 실패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음주로 인해 작업 과정에서의 실패 가능성보다 산업 재해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은 것을 뜻한다. 작업장에서 얼마나 음주를 하는지 알기 위해 작업중 음주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6.4%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72.6%가 작업중 음주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중 음주장소로는 식당이 47.5%로 가장 많았고 작업현장에서의 음주도 20.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작업중 음주를 하는 이유는 ‘피로를 잊기 위해서’가 52.4%로 가장 많았고 ‘스트레스 해소’ 20.8%,‘습관적으로’ 14.6% 순이었다.10명의 근로자 가운데 6명이 작업의 피로를 잊기 위해 작업장에서 음주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산중앙병원 건강관리센터 서동식 소장은 “개인차가 있지만 낮술은 뇌졸중, 심장질환을 일으킬 우려가 높다.”면서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근로자, 납, 망간 등에 노출되는 근로자는 술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음주 측정제도와 예방프로그램 갖춰야 산업현장의 음주 현상이 위험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근로자들의 알코올 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처럼 직장에서의 음주로 인한 재해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직장내 음주 테스트가 일반화되어야 한다. 특히 종업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이나 조선, 플랜트업 등 비교적 야외 작업이 많은 제조업과 건설업 등에서는 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 제조업과 건설업의 38.2% 정도만이 음주와 관련된 규제 규정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자의 음주 예방을 돕는 프로그램(EAP)을 운영하는 곳도 제조업은 11.1%, 건설업은 15.5%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등록된 대기업들의 80% 이상이 음주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작업장내 알코올의 배포나 소비가 금지돼 있다. 벨기에와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산업안전공단 관계자는 “소주 한잔이면 음주 운전으로 주의하면서도 정작 낮술에는 훨씬 더 위험한 작업에 나선다.”면서 “우리나라 직장에서 술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성이나 생산성이 떨어질 가능성은 세계 1위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고 심각성을 알렸다. 이동구 기자 yidonggu@seoul.co.kr ■“하루 1~2잔, 내성생겨 중독 위험” “농경문화의 산물인 반주는 잠시의 피로를 잊게 하지만 판단력과 행동을 굼뜨게 해 작업장 안전사고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업의학전문의인 강성규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보건국장(의학박사)은 “새참때 반주를 곁들이는 오랜 풍습으로 근로자들은 요즘도 작업중 술을 마시는 것에 익숙하다.”면서 “육체 근로자나 사무직 근로자 모두가 반주로 인한 나른함으로 오후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반주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반주는 판단력을 떨어지게 하고 반사신경을 무디게 해 외부의 위험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도록 한다.”면서 “높은 곳에서 작업하는 건설현장이나 운전작업자, 정밀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자 등은 소량의 음주라도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학적으로 알코올은 체내에서 완전히 배설된 후에도 신체 행동기능은 24∼48시간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날 밤 늦게까지 마신 술은 다음날 오전까지 체내에서 완전히 배출되지 않는다.“면서 “또다시 반주를 즐기는 것은 하루종일 음주 상태로 근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병원 정영철 교수는 “똑같은 양이라도 낮에 먹는 술은 뇌반응의 정도가 다르다.”면서 “낮술이 훨씬 민감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에 대해 의학적인 연구결과가 밝혀진 것은 없지만 바이오리듬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같은 양의 술이라도 개인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취하는 정도가 달라지듯 낮술은 밤술에 비해 취하는 정도가 훨씬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교수는 “술에 대한 뇌 또는 신체 반응의 감수성이 높은 만큼 직장인들이 반주로 먹는 술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2잔 먹는 반주라도 횟수가 거듭되면 내성이 생겨 양이 늘어나게 된다.”면서 반주의 중독성을 더욱 경계했다. 이동구 기자 yidonggu@seoul.co.kr
  • [산이좋아 산으로] 전북 완주 대둔산

    [산이좋아 산으로] 전북 완주 대둔산

    충남 논산시와 금산군, 전북 완주군에 걸쳐 있는 대둔산(大芚山·877.4m)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푸근한 육산(흙산)과 날카로운 골산(바위산)의 두 얼굴을 가진 산이다. 충청도 쪽에서 보면 그네들의 느릿느릿한 말투가 생각나고 전라도 쪽에서 보면 억센 사투리가 먼저 떠오른다. 대둔산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의견도 여러 가지다. 옛 이름은 ‘한듬산’으로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이라는 이야기도 내려오고, 순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화 하다 보니 대둔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한 맺힌 산’이라는 대둔산의 이름처럼 대둔산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임진왜란때는 대둔산 일대에서 김제군수 정담이 이끄는 의병대와 권율장군의 군대가 일본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이치대첩’으로 기록되는 이 전투 이후 퇴각하던 일본군은 ‘조선의 충신과 의사를 조문한다.’는 비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대둔산에서 뻗어 내린 배티재 정상에 이치대첩비가 있어 산행을 끝내고 둘러볼 만하다. 조선 말기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대둔산을 찾아 일본군에 대항한 마지막 항전을 벌였다. 험한 바위지형 탓에 접근이 어려웠을 당시로서는 천혜의 요새였을 테지만 동학군은 결국 바위벼랑에 모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만다.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가기 직전에 ‘대둔산 동학군 최후항전지’ 표지가 있어 이런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 있다. 마천대에 오르면 바라보이는 완만한 금산쪽 대둔산은 한국전쟁 이후 1955년까지 국군과 빨치산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군인들의 지옥’이라는 뜻의 군지골로 불리고 있으니 대둔산의 이름에 얽힌 한들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대둔산은 1977년 전라북도에서,1980년에는 충청남도에서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케이블카와 구름다리, 삼선계단 등 시설물이 몰려 있는 완주쪽 개발이 두드러져 교통이 편리하고 숙박시설이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찾는다. 완주쪽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마천대까지 30분 정도 걸린다. 집단시설지구에서 배티재 방향으로 200m 지점에 있는 용문골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용문굴과 칠성봉 전망대를 거쳐 마천대로 오를 수 있다. 대둔산 동쪽 바위 군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코스다. 어느 쪽에서 올라도 두세 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어 가족이나 산악회 송년 산행지로 좋다. # 여행정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대전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대둔산 집단시설지구까지 1일 6회 버스가 운행하고 40여 분이 걸린다. 입장료는 완주쪽이 어른 1300원이고 논산 수락계곡쪽은 500원이다. 대둔산 케이블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하며 편도 3000원, 왕복 5000원이다. 완주쪽 집단시설지구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몰려 있다. 대둔산 아래 괴목동천 변에 있는 산아래 장승마을(063-263-8694,www.jsvill.com)은 마당이 넓어 가족단위 숙박이나 송년회 모임장소로도 좋다. 대둔산산악구조대에서 활동하는 이기열씨가 운영하는 카페를 겸한 펜션으로, 직접 깎아 만든 장승이 볼 만하다. 글 이영준 사진 남영호 (월간 MOUNTAIN 기자)www.emountain.co.kr
  • [정일근의 따뜻한 밥상] 여수낙지는 힘이 세다

    [정일근의 따뜻한 밥상] 여수낙지는 힘이 세다

    지난번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오징어를 낙지로, 낙지를 오징어로 부른다. 지난해 방북했을 때 백두산 향로봉 호텔에서 저녁 차림표에 낙지볶음이 있어 잔뜩 기대했는데 오징어가 나와 어리둥절했다. 낙지나 오징어는 다 같이 두족류인데 오징어는 십완목이고 낙지는 팔완목이다. 우리가 흔히 다리라 부르는 것이 오징어는 10개고 낙지는 8개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십완목 오징어를 낙지라고 이름한다. 그건 분명 북측의 오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 곳에 문의를 해봤지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후배 손택수 시인이 쓴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아이세움)를 읽다 안 사실이 있다. 손 시인은 자산어보에 나오는 오징어는 갑오징어고 지금의 오징어는 예전에는 피둥어꼴뚜기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갑오징어가 피둥어꼴뚜기에게 ‘오징어’란 이름을 넘겨주었다고 하니 바다 생물의 족보를 찾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낙지를 ‘낙자’라고 즐겨 부른다. 산낙지가 우글거리는 강진만 뻘밭이 고향인 내 친구 최한선 남도대 교수는 “낙지를 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낙지의 참 맛을 아는 사람이다“고 주장한다. 전라도 사람들이 낙지를 낙자로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서 찾았다. 자산어보에 낙지는 본명이 ‘석거(石距)’고 속명이 ‘낙제어’다. 《동의보감》에는 낙지를 ‘소팔초어’(팔초어는 문어다. 즉 작은 문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속명을 ‘낙제’라고 기록돼 있다. ’낙제’라는 이름이 낙지도 되고 낙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낙자가 낙제에 가까운 발음이나 낙자라는 이름이 왠지 정겹고 맛있게 들린다. 목포는 전라도 ‘낙자’의 본향이다. 그런데 영산강하구언이 들어서고 뻘밭이 죽고 그 뻘밭에서 살던 힘 좋던 뻘낙지들도 사라졌다. 지난해 목포에 갔다가 세발낙지를 사려고 했더니 목포의 술친구들이 이젠 목포에도 중국낙지가 범람한다고, 오리지널 세발낙지 두어 마리가 소고기 한 근 값이나 된다고 걱정이었다. 영산강하구언이 다시 뚫리기 전에는 세(細)발낙지의 시대는 갔다는 경고였다. 자산어보 시절에도 낙지는 맛과 힘의 대명사였다. 정약전 선생은 낙지에 대해 “모양은 문어를 닮았다. 그러나 다리가 길다. 머리는 둥글고 길게 생겼다. 뻘 속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 고깃살의 빛깔은 희고 맛은 달콤하다. 회, 국, 포에 모두 좋고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튼실해진다”라고 적었다. 정약전 선생이 낙지가 소를 구한다고 했으니 더위 먹고 쓰러진 소에게 산낙지 한 마리 먹이면 벌떡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남도사람들의 과장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정약전 선생의 아우이신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 유재지에서 쓴 시에서 그곳 사람들이 낙지국을 최고로 친다고 했다. 낙지는 산낙지를 회로 먹거나 볶음요리를 많이 먹는다. 낙지국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목포에 가면 세발낙지를 넣어 끓이는 ‘낙지연포탕’이 있다. 시원하게도 얼큰하게도 먹을 수 있는데 국물 맛이 일품이다. 지난달에 여수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저녁 시간에 도착했는데 낙지를 준비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여수낙지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언젠가 목포친구가 낙지시장을 한 바퀴를 돌며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표피가 검은 것이 뻘에서 나는 목포낙지고 허연 것이 여수낙지라고 했다. 낙지는 뻘 속에서 나와야 제 맛이지 여수낙지처럼 허연 것은 크기만 하지 맛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 왈, 목포사람들은 여수낙지는 안 먹어!라고 했다. 물론 그 친구는 자신의 고집을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나를 세뇌시켜 버렸다. 그런 나에게 여수사람들이 여수낙지를 권하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거절할 수 없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나는 여수낙지에 내가 음식에 주는 최고 점수를 주었다. 내가 먹은 낙지요리는 육수에 미나리와 콩나물, 불고기를 가득 넣고 끓이다가 산낙지를 통째로 넣어 다시 끓이는 불낙(불고기낙지)과 연포탕이 혼합된 별미였다. 여수낙지가 얼마나 힘이 센지 냄비뚜껑을 두 손으로 잡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세발낙지에서 느낄 수 없는 바다의 힘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낙지는 살짝 익혀 내는데 입안에서 녹을 듯이 부드럽다. 낙지와 미나리, 콩나물 그리고 시원한 국물, 푸짐한 밥상이었다. 낙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데 초고추장 맛도 별미다. 그 식당 단골인 여수의 미식가 친구인 김정만 공인회계사는 집에서 담근 식초만 사용할 정도로 정성이 대단하다고 귀띔한다. 밑반찬으로 석화젓이 나왔는데 맛있게 삭은 것이 짜지 않고 별미다. 여수 석화(바다굴)의 전문가인 11번 경매인에게서 가장 좋은 석화를 구해서 전혀 소금을 치지 않고 1년간 자연숙성시킨 것이라고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밥상에 올리는 음식 하나하나에 주인의 정성이 그득하다. 여수낙지는 힘이 세다. 오랜 여행에 지친 나그네의 몸을 이내 회복시켜 준다. 다 먹고 난 뒤 푹 익힌 낙지머리를 디저트 삼아 먹는데 입안에 씹히는 먹물 맛도 참 달콤하다. 아무래도 올 겨울 여수를 자주 찾아올 것 같다. 글 · 사진 정일근 시인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삼성전자 임원 ‘학력보다 실력’

    국내 최고기업인 삼성전자 임원 중 서울대 출신은 7%였다.5명 중 1명은 외국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했다. 20일 삼성전자가 제출한 분기보고서(11월4일 기준)에 따르면 사외이사와 고문, 상담역, 자문역을 제외한 임원 721명 가운데 138명이 외국대학을 졸업했다. 대학별로는 미시간대, 일리노이대, 캘리포니아대,MIT, 노스캐롤라이나대, 스탠퍼드대가 각각 5명 내외의 임원을 배출했다. 반면 서울대는 56명에 불과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각각 39명과 32명 정도였다. 소위 SKY 대학 3개교는 모두 합해 17%에 불과했다. 지방대 출신은 모두 111명이나 됐다.지방대 중에서는 경북대(63명)를 포함해 부산대(14명), 영남대(12명), 동아대(4명), 경상대(1명), 계명대(1명), 울산대(1명) 등 경상도 지역 학교 출신이 96명으로 많았다. 전북대, 전남대, 조선대 등 전라도 지역 대학 출신은 각각 1∼2명 정도에 그쳤다. 전자쪽이라 공대 강세도 두드러졌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한양대 출신은 각각 55명,54명이었다. 인하대, 아주대, 광운대, 숭실대 출신도 10명 이상이었다.상고 출신 5명도 기업의 ‘별’인 임원 자리를 차지했다. 전문대 졸업자도 4명이나 있었다. 한편 삼성전자는 “분기보고서에 나온 학력은 최종 학력을 기준으로 했다.”며 “학부를 기준으로 할 경우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대학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서울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졸업한 경우 스탠퍼드대로 분류됐다는 얘기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겨울이 있는 열대

    겨울이 있는 열대

    글 황두진 건축가 유난히 덥고 비가 많이 왔던 여름이 막 지났다. 우리나라 가을 특유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기조차 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비가 온 지도 한참 되어 오히려 농부들은 가을 가뭄을 걱정해야 할 듯하다. 비 피해가 심했던 강원도, 전라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날씨에 대해서 다시 심드렁해졌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건축가가 고민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기후는 아주 기본적인 것에 해당한다. 열대 지방의 건축과 한대 지방의 건축이 다른 것은 문화적인 배경 이전에 기후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시대가 좀 달라졌다. 기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또 무엇보다 그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더우면 에어컨 돌리고 추우면 보일러 켜는 것이 너무 당연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결과 어떻게 하면 건물을 기후에 맞게 현명하게 지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그야말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 반바지를 입고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그런 태도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에너지의 소비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점차로 비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반도에 비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고 있다. 처음 몇 년간은 그저 예년에 비해 비가 좀 더 오나보다 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이것이 절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이 점차 명확해진다. 그러면서 여름은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덥고 습하다. 게다가 점차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니 결국 우리에게는 여름과 겨울만 남는 셈이다. 그래서 이렇게 변화는 한반도의 기후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결국 ‘겨울이 있는 열대(tropical with winters)’가 되는 셈이다. 매우 극단적인 기후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들, 특히 기후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민감한 건축들에게 이것은 큰 도전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건물들은 다양한 종류의 기후 조건과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더위와 추위는 기본이고 이제 비가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여름의 강우량, 특히 순간 강우량은 동남아시아 열대 지방에 비해서도 오히려 더 높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전에 비해 빗물을 효과적으로 흘려보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배수를 위한 파이프의 직경을 키우고 건물에서 방출된 물이 어떻게 배수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습도는 또 다른 적이다. 기온만으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운 나라들은 많다. 남부 유럽은 여름에 종종 40도가 넘는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그런대로 견딜 만한데 그 이유는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의 여름은 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진다. 물론 일본이나 홍콩, 대만 등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한여름, 특히 장마 중에는 정말 모든 것이 불편하고, 심지어 불쾌하기조차 하다. 그래서 저마다 에어컨을 돌리고 그러면 실외 기온에서 나오는 열이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 갇혀 이른바 열섬 현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밤이 와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갈수록 늘어난다. 기후적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후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해답, 적어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한옥이다. 한옥은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 온 집단창작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자연적, 인문적 환경에 잘 적응해온 결과물이다. 비록 여러 가지 단점이 있고 오늘날 보편적 주거로서의 명맥이 매우 빈약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가치가 있는 건축이다. 특히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되는 한여름, 깊게 뻗은 처마가 비를 막아주고 열어젖힌 분합문을 통해 그나마 약간의 바람이 살랑거리는 것을 느낄 때면 도대체 이 시대에 무엇이 과연 첨단 건축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처마가 전혀 없어 비가 오면 창을 열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실내 습도가 더욱 올라가 결국 에어컨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대식 건물에서 지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들게 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조차도 변해 가는 한반도의 기후 덕인지 모른다.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盧대통령·DJ 회동, 지역갈등 고착화”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오찬 회동을 놓고 박찬종 전 의원이 ‘반군(反軍)’을 자청했다. 여권발 정계개편을 경계하는 한나라당을 지원 사격하며 정치판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는 듯했다. 박 전 의원은 6일 ‘후광(後廣) 김대중 선생께 드리는 글’을 통해 개인적인 인연부터 강조했다.“미국에 망명 중인 김대중 선생께서 귀국하십니다. 부산시민께서 열렬한 박수로 격려해 주십시오.”라는 자신의 12대 총선 후보연설 내용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선생께서는 영호남 지역갈등 위에서 성취를 쌓았고, 대통령직까지 올랐다.”고 꼬집었다. 이어 “목포를 방문해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고 했는데 무영남(無嶺南) 무당선(無當選)은 어찌하란 말이냐.”면서 “전라도 표심을 100% 묶어내는 ‘전라도당’ 창당을 공개 성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심각한 지역갈등 구조를 고착시키는 쐐기를 박는 것과 같다. 이를 깨야 할 책임이 선생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권력만 좇는 정치투기꾼의 ’떴다방 정치’”“위장과 교란으로 국민을 속이는 새판짜기”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노 대통령과 DJ가 만나 부동산 대책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라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계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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