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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권 공조 활발/은행·증권·신금 상호 업무 보완

    ◎현금·증권카드 공용… 타기관 온라인 제휴… 지방은 전산망 연결…/자율화이후 경쟁 치열… 생존전략 일환 은행과 증권,투자신탁,상호신용금고 등 제 2금융권간의 연합이 본격화되고 있다.또 지방은행간의 연합도 무르익고 있다.금융자율화로 더욱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의 일환이다. 서울은행과 동서증권은 18일부터 은행현금카드와 증권카드로 상대방 금융회사에서 서비스를 받을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한다.이에 따라 동서증권의 증권카드를 갖고 있는 고객들은 서울은행의 CD(현금자동인출기)와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자유롭게 현금 입출금을 할수 있게됐다.증권계좌의 자금을 서울은행은 물론 다른은행으로 송금할수도 있다. 서울은행의 현금카드를 이용해 서울은행 계좌의 자금을 증권계좌로 옮길수도 있다.서울은행과 동서증권의 전산망 구축으로 서울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증권사 계좌로 입금이 가능하고 동서증권 영업점 창구에서 전 은행의 계좌로 입금이 가능해진 셈이다. 포항상호신용금고의 고객들은 지난 15일부터 대동은행 지점의 CD와 ATM을 통해 입출금을 자유롭게 할수 있게됐다.대동은행 지점에서 금고의 본인 계좌로 온라인 무통장 입금도 할수 있다.대동은행은 대구의 상호신용금고와도 올 상반기내에 이러한 업무협조를 할 계획이며 서울과 경인지역에도 추진하기로 했다. 대구·부산·충청·광주은행 등 지방의 10개 은행들은 올 하반기에 공동전산망을 개발한다.이렇게 되면 지방은행의 고객들은 가까운 다른 지방은행의 지점에서도 자유롭게 은행 업무를 볼수 있다.경상도에 본점을 둔 은행의 고객이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에서도 자유롭게 일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말 현재 10개 지방은행의 지점은 1천81개다.시중은행중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4백78개보다는 2배이상,조흥·상업·제일 등 6대 시중은행의 평균인 3백50개보다는 3배나 된다.지방은행 협의회의 간사인 광주은행의 김무렬 전략지원팀장은 『지방은행간 전산망이 가동되면 영업력과 서비스가 대폭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과 투신과의 협조도 이뤄지고 있다.작년부터 한국투신은 신한은행과 대한투신은 외환은행과 국민투신은 동남은행과 각각 업무제휴를 맺었다.이에 따라 투신사의 고객들은 은행에 가지 않고도 투신사 창구에서 은행으로 송금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없는 금융기관간의 업무협조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격이다.서로 상대방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도 되는데다,자신들의 고객들에게 보다 편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공조체제는 더욱 활성화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오줌요법 국제회의도 열렸다던데(박갑천 칼럼)

    『선상님,소매 매라라우』.전라도 어느시골 초등학교로 부임해간 선생님은 이말뜻을 몰랐다 한다.통역하자면 『선생님,저 오줌 마렵습니다』.국어사전에서 「소마」를 찾으면 『오줌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라 풀이돼있다.하지만 「소마」는 낯설다.속담도 이를테면 『꼬부랑X지 제발등에 오줌눈다』지 않은가. 「송와잡설」에 보이는 어원론이 흥미롭다.글쓴이자신(이기)은 대변을 대마,소변을 소마라 하는 까닭을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양산묵담」(양산묵담)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는것.귀빈의 집에서 오줌그릇을 만들때 복판을 말(마)모양으로 오목하게 해놓고 거기 걸터앉아 볼일보는데서 온 말이라는 얘기였다.이송와의 시대에는 쓰였는지 모르지만 「대마」라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임진왜란때 우리를 도우러온 명나라장수 이여송의 누님은 이여송도 못당해내는 여장부였다 한다.수럭스런 그여자의 소맛발이 어찌나 거셌던지 마련해준 놋요강이 3년만에 구멍뚫려 버렸다던가.설사 그말이 사실이라 해도 소맛발 세어서라기보다는 오줌속 독소가 유달라서였던 것인지 모른다.어린날 오줌누었던 마당귀퉁이 「소맷동이」는 버캐가 새하얗게 끼어있었으니 그독성을 짐작할만하다.신장기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요독증도 오줌성분의 자가중독 현상이라지 않던가. 한자로 볼때는「주검(시)의 물(수)」이 오줌(요)같건만 그렇지만은 않은듯하다.독은 독으로 바수지른다는 걸까,자기가 눈 오줌을 마셔서 질병을 다스린다는 이른바 「오줌요법」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동양에서는 특히 동남동녀의 오줌을 오는 백발 막아주는 불로장수의 묘약으로 여기기도 했다.그것이 오늘날 일부층에 의해 각종 문명병­성인병 다스리는 약으로 되고있는 터.암·심장병은 물론 난치의 에이즈도 물리칠수 있다는게 그관계자들 말이다. 지난해 99살로 타계한 인도의 데사이 전 총리는 자기오줌을 30년동안 마셔온 것으로도 유명하다.그 인도에서 지난달말께 세계최초의 오줌요법 국제회의가 열렸다.이 회의에는 17개 나라에서 6백여명의 과학자·의사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선소리라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헤살들에 대한 「과학적 답변」에 뜻이 있는 모임인듯이 보인다.일본에서는 그 요법으로 난치병 물리쳤다는 체험담집도 동대어 나오고 있다.못 낫우는 병 없는양한 내용들이다.돈들 일도 없고 무엇보다 부작용없는 요법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영바람이긴 하더라만.글쎄.
  • 시인 신경림(작가를 찾아:3)

    ◎“시는 약자를 위안하는 노래죠”/뜨내기 몰리는 광산촌서 자라 팔도민요 친숙/민요기행지역 흑룡강성까지 넓힐 생각/같은 일 되풀이 않게 문화계도 과거청산 해야 「돌아다니면서 내가 분명하게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 편하게 살기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편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지난 90년 민요기행시집 「길」후기에다 신경림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92년 나온 웅진출판의 신경림 문학앨범에는 인상적인 흑백사진 한장이 실려있다.고향마을을 찾은 신씨가 만면에 반가움의 웃음을 피워올린 채 길에서 마주친 촌로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신씨를 모르는 이라면 한손에 장바구니를 꿰어 든 오척단구의 이 사내가 사진의 배경을 이룬 추레한 시골마을의 터줏대감중 한사람이리라고 믿어의심치 않을 것이다. 남한강변 농투성이들의 고달픈 사연을 유장한 가락에 담아온 신씨는 민중의 정서에 가장 가까이 있는 민중시인의 하나로 상찬받아왔다.하지만 이같은 평가는 한장의사진 만큼도 신씨를 알려주지 않는다.주름살 고랑마다 애기보살같은 웃음이 가득 괸 순한 얼굴.사람들이 편하게 해주는 이를 좋아한다는 그의 글이 맞다면 사진속 신씨는 누구라도 곁으로 끌어들일 소탈함과 친근함으로 넘친다. 2월도 거의 이울무렵 신씨가 잘가는 인사동 찻집에서 따끈한 유자차 한잔을 놓고 그와 만났다.동장군의 늦기승으로 바깥바람은 맵싸했지만 신씨가 뿜어내는 친화감 때문에 대화의 자리는 차라리 후끈거렸다.신씨는 고서점을 둘러보러 한주에 두어번씩은 인사동에 나온다고 했다. ○소탈·친근감 넘쳐 『70년대까지만 해도 동대문,청계천 부근에 고서점이 참 많았죠.잘만 뒤지면 값비싼 책들을 휴지값에 구할수 있었어요.내가 하도 서점 돌아다니길 좋아하니까 60년대말 있던 출판사에선 아예 고서점에서 좋은 책 구해오는 일만 전문으로 맡겼지요.서점에서 몇번씩 마주쳐 친해진 이들도 있어요』 큰 노다지광을 낀 농촌마을에서 광산 한귀퉁이를 불하받아 사람을 부리던 아버지 밑에 자란 어린시절,책탐 많은 삼촌과 당숙들 덕에 집엔얼마든지 책이 있었다.이를 넘보며 신씨는 자연스레 문학과 친해졌다고 했다. 『국민학교 때 벌써 이광수며 이태준을 봤으니 조숙했지요.시에 빠진 것은 백석을 통해서구요.하지만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 고장엔 항상 얘기며 노랫가락이 넘쳤어요.서울가려면 꼭 거쳐야할 길목이었던 데다 광산이 문을 열면 함경도부터 전라도 남단까지 각곳에서 뜨내기들이 일을 찾아 흘러왔거든요.장날 돼지 잡아놓고 둘러앉은 이들이 한가락씩만 뽑아도 팔도곳곳의 민요를 다 들어볼수 있었던 거지요』 이때 들었던 노래들은 오래도록 귓전에 남아 훗날 그를 민요기행길로 내몰기도 했다.「겨울밤」「파장」「목계장터」「어허 달구」 등 그의 많은 시들이 다 쓰러져가는 농촌 삶의 구접스런 모습을 민요조에 결합시켜 실감을 더한 작품들.「새재」「남한강」「쇠무지벌」 등 장시를 끝까지 끌어가는 힘도 모두 민요가락에서 나왔다. 『먼젓번엔 중국갈 계획까지 세웠다가 딴일로 미뤘죠.흑룡강성 어딘가에 경상도 영천 사람 몇백명이 이주,1백년전 우리 민요를 보존하며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답디다.이런데를 찾아 국외로도 민요기행 지역을 넓혀보려 해요』 이처럼 떠돌이로 거침없이 흘러온 그가 지난해엔 「한국문학포럼」에 초대돼 프랑스에 다녀올 기회를 가졌다.이 행사에 대해 시인은 퍽 인상깊더라고 말한다. 『파업이 한창이라 구경은 잘 못 다녔지만 그들이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든 말은 빈말이 아닙디다.그 교통지옥의 와중에도 어떻게들 알았는지 행사장마다 독자들이 가득 찼지요.또한 아무리 자그만 서점에 가도 장서가 풍부하고 사람들로 붐비는데 놀랐어요.갈리마르에서 나온 내 불역 시선집 「쓰러진 자의 꿈」도 몇군데선가 꽂혀 있는걸 봤지요.올해가 「문학의 해」라는데 우리도 외국작가를 불러 이같은 행사를 추진해보면 유익할것 같아요』 「문학의 해」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성과를 거두려면 문화계에서도 5·6공 청산이 앞서야 한다는 신씨.「문학도 정화돼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시에서처럼 나지막하지만 그래서 더 흔들림이 없다. ○프랑스 여행 인상적 그러나 신씨가 말하는 청산은 근본적으로는 문학외적인 것에 대해서다. 『내 얘기는 구정권에 협력한 문인들을 죄 쓸어버리자는게 아닙니다.좋은 작품은 작가의 행적과는 별도로 평가돼야겠지요.하지만 역사적 과오가 있다면 이는 분명히 알려지고 경계돼야 후일 같은 행적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수 있어요』 민중문학이 휩쓸던 지난 80년대 신씨의 시를 너무 복고적이라거나 과학적 무장이 덜 됐다고 비판하던 후배들도 있었다.그러나 90년대 들어 그 과격한 문학의 구호들이 한줌 남김없이 사그라졌을 때 밑바닥살이들의 고달픈 심사를 달래주던 신씨의 위안의 노래는 한결같이 읽히고 사랑받았다. 『민중문학이 일도 많이 했지만 말도 안되는 관념론에다 제대로 안된 글도 많이 썼지요.5월만 노래하면 그대로 시가 되는 때가 있었으니까요.일종의 「거품민중의식」이었다고나 할까.하지만 서슬퍼렇던 그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들은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소설·동화도 쓸 계획 지난 93년 여섯번째 시집 「쓰러진 자의 꿈」을 낸 그는 올가을쯤 일곱번째 시집을 묶고 앞으로 소설과 동화도 한편씩 써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최근엔 「다산 문학선」을 읽고 대학자로 재미없는 사람인줄만 알았던 다산에게서 타고난 시인기질과 풍류를 발견,흠뻑 매료됐다. 『시가 모든 일을 다할수야 없겠지요그러나 삶이 팍팍하고 가파를 때 시와 노래가 없으면 무슨수로 버티겠어요.아무튼 나는 시라는 것이 약자,뒤처진 자를 위한 위안의 노래여야 한다고 믿어요』 ▷약력◁ ▲1935년 충북 충주군(현 중원군)노은면 연안리에서 태어남 ▲노은국민학교를 거쳐 충주사범학교에 입학했으나 풍금을 못쳐 졸업을 못함.충주고 졸업,동국대 영문과 입학(55년) ▲56년 「문학예술」지에 「낮달」「갈대」「석상」 등 시가 추천돼 등단.이후 농사·막노동·장사·광산일 등으로 떠돌며 10여년간 절필 ▲대학졸업(67년) ▲시집 「농무」(73년)「새재」(79년)「달넘세」(85년)「남한강」(87년)「가난한 사랑노래」(88년)「길」(90년)「쓰러진 자의 꿈」(93년) ▲평론집 「문학과 민중」(77년)「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83년)「우리 시의이해」(86년) 등,산문집 「민요기행」1(85년)2(89년) 등 ▲만해문학상(74년)이산문학상(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및 민족예술인 총연합회 의장 등 지냄 ▲현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 영약 구기자… 스스로 가꿔서 먹자(박갑천 칼럼)

    담벼락따라 구기자열매가 빨갛게 주렁거린다.이 구기자에 관한 중국전설이 있다.어느 번화한 거리에서 매초롬한 중년여인이 머리는 세었지만 조쌀한 노인의 뺨을 마구 친다.지나가던 사람들이 젊은 여자가 왜 노인을 때리느냐고 나무라자 이렇게 말한다.『이사람은 72살난 내아들이오.나는 96살인데 까닭이 있어 이러니 참견들 마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그의 집안에서는 대대로 구기자차를 불로장수약으로 마셔오는데 「이 아이」는 한사코 마시지 않아서 72살밖에 안됐으면서도 저리 늙어뵌다는 것이었다.오늘 아침에도 허리가 아프다기에 구기자차를 마시라 했더니 내뺀 것을 여기서 붙잡았기에 야단치는 중이라면서 함께 사라졌다. 이 얘기는 기록에 따라 나이·장소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실려있다.거기엔 어머니 나이를 「16∼17살가량」으로,아들을 「80∼90살정도」로 적어놓았다.어머니의 실제나이는 3백95살이라는 것이고.하서로 가던 사신이 그 여인의 말대로 구기자술을 담가먹고 3백년을 살았다는데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정월보름전 첫째 인일에 구기자나무 뿌리를 한되쯤 되게 캐어 그늘에서 말린다.2월 첫째 묘일 여기에 맑은 술 한말을 부어 7일이 지난 다음 걸러서 새벽에 마신다.식후엔 마시지 말도록.4월 첫째 사일 구기자잎을 한되쯤 따서 가늘게 썰어 그늘에서 말린다.5월 첫째 오일 여기에 술 한말을 붓는다.7월 첫째 신일에 꽃을 한되쯤 따서 말린 다음 8월 첫째 유일에 술 한말을 붓는다.10월 첫째 해일에 열매를 한되쯤 따서 가늘게 썰어 말린 다음 11월 첫째 자일 술 한말을 붓는다.이것들을 백일동안 마시면 얼굴이 고와지고 머리털이 검어지면서 빠졌던 이빨도 다시 난다. 견권의 「약성본초」는 구기자를 이렇게 말한다.『모자란 정기를 보한다.흰머리털을 바꾸며 눈을 밝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킨다.잎은 양고기와 함께 죽을 쒀먹으면 좋다.소갈을 없애고 양기를 돕는다.열매즙을 눈에 넣으면 흐린것 아픈것을 가시게 한다』 전라도의 진도와 함께 충청도 청양은 구기자의 명산지.열매익는 철에 맞추어 청양구기자 시험장에서 구기자를 원료로한 음료와 잼·시럽등을 개발해낸 것으로 전해진다.특히 지방간등에 약효를 보이는 식품이 구기자.그래서 구기자차는 술꾼들에게 좋다.구기자는 줄기를 꺾어다 심으면 사는 생명력강한 식물.스스로 가꾸어가면서 먹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 49%가 “여름휴가 강원도로”/수도권 2천7백명 설문조사

    ◎26일∼8월5일 출발 55%/“승용차로 가겠다” 60% 으뜸 올 여름휴가도 동해안이 가장 붐빌 것 같다.휴가자들이 이용할 교통편은 자가용 승용차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보인다. 11일 한국도로공사가 피서철 고속도로 교통소통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수도권 주민 2천7백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71%가 올 여름 휴가를 다녀올 것이라고 응답했다.이 중 55.4%가 7월26∼8월5일 휴가를 가겠다고 밝혀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이 기간에 휴가가 집중될 전망이다. 휴가 예상지로는 동해안을 포함한 강원도 쪽이 48.9%,경상도 쪽이 18.5%,전라도 쪽이 10.6%로 집계됐다.또 휴가를 다녀오겠다는 응답자 가운데 82.5%가 육상교통을 이용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이중 64.8%는 고속도로를 선호했다. 휴가때 이용할 교통편으로는 승용차가 60.1%로,지난해 조사때의 67.1% 보다는 낮아졌으나 아직도 단연 압도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휴가기간중 토요일은 하오에,일요일과 평일은 상오에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이 시간대를 피해 야간이나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구로·부평공단 등 수도권 공단의 19개 업체,남대문·동대문·강남터미널 및 주변상가 등 4개 대형시장과 고속도로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 지역감정 자극하는 DJ유세/광주=진경호 기자(표밭에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방문으로 호남이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김이사장을 맞은 호남의 청중은 익산역과 군산역,그리고 전주시청 광장과 남원 광한루공원 등을 빼곡이 메웠다.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에 이르는 청중이 「김대중」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분명히 그는 호남인들의 대단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정치적 고향에 돌아온 김이사장의 표정 또한 상기된 것이었다.하루 6∼7차례의 유세를 강행하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예의 「지역등권론」에서부터 현정권에 대한 신랄한 공격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언수위는 늘어나는 청중수 만큼이나 높아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지방선거 유세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많아졌다. 『34년동안 한줌의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며 부귀영화를 누려왔다』 『현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지역차별이 심하다』 『모래시계같은 방송드라마에서 조차 비겁하고 친구를 배신하는 사람들은 모두 전라도 사람이다』라는 등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이 연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민주당 아무개 후보의 어느 점이 지역살림을 꾸리기에 더욱 적합하다는 식의 주장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민자당의 실정에 대한 심판으로 민주당을 뽑아야 하고 지역패권주의에 맞서 지역등권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당후보를 뽑아야 하고…하는 지방자치보다는 중앙정치에 가까운 주장들만이 되풀이됐다.30여년동안 지방자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고 자임하는 그의 연설이건만 지방자치의 성공적 출범을 기원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연설이 계속될수록 청중은 이번 유세가 지방선거를 겨냥한 것인지,총선 또는 대선을 위한 것인지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난 92년 대선때 김이사장은 광주 망월동묘역을 찾지 않았다.『지역감정을 부추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그로부터 2년반이 지난 19일 그는 이곳을 찾았다.다만 그는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김대중·김종필씨 퇴진요구/이부영 의원

    ◎미래 준비하는 사람에 자리 내줘야 【부산 연합】 민주당의 이부영 부총재는 19일 하오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앞에서 열린 민주당의 노무현 부산시장후보 지지 정당연설회에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게 『지방선거를 통해 시대적 역할을 끝내고 진실로 조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며 퇴진을 촉구했다. 이부총재는 『지역등권론은 손바닥 하나만 뒤집으면 지역 할거주의』라고 전제하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북통일을 하겠느냐』며 김이사장의 지역등권론을 비판했다. 그는 또 김종필 총재에 대해 『52년 탄생한 지자제를 박정희씨와 함게 탱크로 말살시키고 장면내각제 정권을 무너뜨린 장본인이 이제와서 지역할거주의에 편승해 지자제와 내각제를 거론하는 것은 역사적 망각론을 신뢰하는 처사이며 역사적 아이러니』라고 주장했다. 김정길 전최고위원도 이 자리에서 『지역 등권론으로 전국이 전라도와 충청도로 갈갈이 찢어지고 있다』며 『부산시민은 이에 휘말리지 말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 자존심을 지켜내자』고 주장했다.
  • 호남출신 DJ·DR 전북 유세대결

    ◎「지역 등권론」에 「홀로서기」 맞불/인물 선택… 지역감정 없애자­DR/경제 전국 꼴찌… 표로 심판을­DJ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김덕룡 민자당사무총장이 18일 전북 지역에서 유세대결을 벌였다.정확히 표현하면 김이사장의 「텃밭」에 김총장이 「맞불」을 놓은 셈이다.김이사장은 전남 신안,김총장은 전북 익산이 고향으로 같은 호남 출신이다.김이사장이 대통령 선거에 세번이나 출마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호남의 거목」인데 비해 김총장은 이른바 「차세대 정치인」으로 불리우는 「호남의 기대주」다. 최근까지 전북의 선거전 양상은 「여야 각축」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자당의 강현욱 후보가 민주당의 유종근 후보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김이사장이 다시 이 지역을 찾은 것이나,같은 날 김총장이 지원유세에 나선 것이나 이같은 「박빙양상」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호남정서」 부추기기냐,잠재우기냐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 총장은 「전북인의 긍지와 자존심」을 강조했다.이른바 「전북 홀로서기」다.이에 대해 김이사장은 『호남을 분리시키려는 작태를 중단하라』고 비난하며 「지역등권론」을 거듭 주장했다. ○…김총장이 이날 참석한 김제와 완주 정당연설회에는 보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인데도 예상외로 1천여명 가량의 많은 시민들이 모여 귀를 기울였다. 김총장은 『몇몇 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김이사장을 겨냥한 뒤 『이들은 주민자치가 돼야 하는 지방자치판을 잘못 흔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총장은 또 『우리 전북만은 분열주의의 대상,분열주의자들이 이용하는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그동안 지역감정의 결과 경제력이 낙후되고 인물들이 사라져 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전북이 명예를 찾아야 하며 전북인에 의한,전북인을 위한 전북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인물중심으로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이날 전북 익산시 정당연설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나흘간의 호남지역 바람몰이에 돌입했다. 김이사장은 현정부의 실정을 내세우며 『나라가 위태로울 때 총을 메고 전선에 나가는 노병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고 『나의 유세를 두고 민자당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비난하고 있으나 내 혀를 그들에게 저당잡힌 적이 없다』고 비난했다. 김 이사장은 이어 『인기TV프로였던 「모래시계」에서도 검사 등 좋은 역할은 서울말씨를 쓰는데 유독 친구를 배신하는 역할은 전라도 말씨를 쓴다』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지역차별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김 이사장은 김총장의 「전북홀로서기」 발언을 겨냥,『전남북이 지방발전과 주민소득에서 전국 꼴찌를 다투고 있는 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 창무극 1인자 공옥진(이세기의 인물탐구:76)

    ◎고독을 춤추는 이시대 마지막 광대/타고난 끼와 파격의 몸짓으로 한맺힌 삶 표현/헤살궂은 사설조에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부친에게 창배워 유랑극단에… 장애인 동생 조카위해 국수장사도 전라도 광주땅에서 공옥진예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공옥진」 이름을 대면 「함평군 문장을 지나 40㎞쯤 들어간 영광에 가보라」고 일러준다.영광읍 교촌리 영광예술연구소에 들어서자 그는 찾아간 사람을 얼싸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눈물 많고 한 많고 정많은 모습은 예전이나 변함 없다.연구소 마루는 널찍한 20여평인데 비해 뒤꼍에 위치한 살림방은 사람이 둘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에 불과했다.전국 방방곡곡 이름을 떨치지 않은데가 없건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자신이 직접 캐온 불갑사 산나물이며 법성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바지락으로 상을 차리면서도 지난해 피땀으로 절약한 1천만원을 중고생 장학금으로 내놓아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는 얘기다.가난과 한과 고독이 점철된 그의 지나온 생애에 비춰 그는 한푼이라도 돈이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금도 의탁할곳 없는 동네 노인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기도 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 지금부터 17년전 중앙대 교수이자 무용평론가인 정병호씨가 「참으로 이 시대 그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예사롭지 않은 예인」이 있다면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데려간적이 있었다.그때 공옥진은 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차림의 평범한 시골 아낙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과 춤뿐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흥보가」「심청가」를 혼자서 몇시간이든 두루 꿰어나간다고 했다.막상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가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번뜩이는 예살이 범상치가 않았다.「서리서리 한맺힌 구성진 가락은 한여름철 장대비와도 같고 헤살궂은 사설조마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 담겨있었다.용궁막 황성 맹인잔치대목에 이르러 저고리 뒷섶을 활짝 뒤로 젖히더니 목속에 턱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사팔로 만들고는 엉거주춤 허리춤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휘돌아나갔다.엉덩이 빠진곱사춤,절름발이 곰배팔이 오리발 병신춤을 눈부시게 펼치는 가운데 인물치레 성음치레를 무시한 자재로운 몸짓은 도무지 몸을 사리거나 풍색을 개의치도 않았다.솔직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춤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신명같지만 하나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는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을 알리는 회무가 따르고 있었다.경륜 있는 예인으로서의 여유와 능수능란이었다. 그의 성공에 대해 민속학자 심우성씨(문화재 전문위원)의 「고격의 예술에 식상한 관객들이 섬세한 아름다움이기를 거부한 그의 진솔한 인간적 표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평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이후 국악관련 책자나 프로그램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예술가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공옥진을 꼽겠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공옥진의 타고난 「끼」,철저한 광대기질,총명과 명석은 가히 천재적인 것으로 그는 한번만 힐끗 보고도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표정을 날카롭게 읽어낸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예술사 연구를 하는 김철순은 『일찍이 이동백옹이 이혜구씨에게 말한 것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모든 한국예술의 본질은 기존의 법칙과 양식,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음악과 춤으로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이라야 한다면 그가 바로 공옥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공옥진의 춤은 춤사위로 이어진 정제된 춤이 아닌 고통스런 삶의 한풀이이자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진짜 고유의 조선춤」으로 호평했고 무언극공연차 한국에 왔던 마르셀 마르소도 「나는 무언극을 하지만 공옥진의 일련의 움직임은 그것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독특한 파격의 예술」임을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때 입산… 비구니로 공옥진의 광기랄가,신기랄가.그의 천부적 재질은 연습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격식을 갖춘 전통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사람을 사로잡는 힘과 정과 한이 일체감을 이루면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깬 살아 있는 몸짓」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만의 독특한 창무극을 무대에 정착시켰고 그는 일약 중앙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살때 단돈 천원에 일본에 팔려간 적이 있어요.당대 제일의 무용가인 도쿄의 최승희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일본인집에 넘겨졌지요.5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방랑길을 떠났고 어머니 마저 개가해버려 동생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때부터 장터에서 춤을 추고 창을 하게 됐답니다』 하얀 옥양목 치마끝에 찍어낸 눈물은 그의 말을 빌리면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됐을 정도다.그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어느 대목을 들어도 고초와 한숨이며 통곡의 파노라마다.그런중에도 국내 구석구석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라 불렸고 미 카네기홀 링컨센터 대공연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세키네는 그의 공연사진과 데생으로 도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옥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남도 인간문화재인 공대일 명창의 4남매중 둘째딸,그의 조부는 광주의 김채만을 사사,서울 협률사 초기멤버이던 공창식 명창이다.그는 일찍이 부친에게 창을 배운후 유랑극단의 소녀주역으로 활약하다가 두번의 결혼 실패끝에 한때는 지리산 천은사에 입산하여 「수진」스님으로 참선,중년에 접어들어 농아인 남동생과 곱사등이인 조카딸을 돌보기 위해 광주 지산면에서 국수장사를 했고 그곳에 공연을 왔던 김연수씨를 만나 우리국악단에 몸담으면서 다시 유랑생활에 나섰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로 얼룩진 그의 인생사는 그동안 여러잡지 신문 등에 소개된바 있지만 그 어느것도 그가 돗자리 하나만으로 장바닥에서 펼치는 통한의 눈물과 익살과 한숨에 미치지 못한다.또한 그의 「살풀이춤」은 장탄식과 짙푸른 한의 음영이 깃든 명무지만 「살다보니 어찌어찌하다 희극무인 병신춤 동물춤의 일인자」처럼 되었고 한때는 장애자들로부터 「무엇 할짓이 없어 장애인 흉내로 무대에 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그때마다 그는 곱사춤은 옛날부터 각 지방에서 내려오던 사당패들의 자리판 놀음이며 더구나 그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내손으로 키운 조카아이까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살아있는 여러 삶의 절박한 표현은 춤일수 밖에 없음」을 그때마다 상기시키지 않으면안되었다. ○84년 서울생활 청산 그는 지난 84년 6년여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를 모시고자 그가 자라난 영광읍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동생과 조카를 앞세웠고 부친마저 90년 세상을 떠난후 지금은 예술연구소에 남아 고향의 「아기」들에게 그의 춤을 전수시키고자 만모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수년전부터 앓아온 담석증을 세번째 수술하고 아직 건강치 못한 몸이지만 산에 가서 즉흥무를 추거나 산야에 대고 「제비 노정기」를 내지르면 「없던 힘과 신명이 절로 솟아」 아프던 몸이 거뜬히 낫는다고 말한다.지난봄부터 여수 영암공연,크고 작은 경로 효도잔치에 빠지지 않았고 7월에는 광주에 새로 생긴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옥진은 참으로 한이 많은 예술가다.그리고 그의 춤과 소리를 격조와 품위로 논하기란 어렵다.그러나 무대에 서면 진흙탕에 뒹굴듯 몸을 사리지 않고 인간의 「절대고독」을 춤추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누군가 말한대로 「광대가 될때만가장 인간적」이라고 한다면 꾸미지 않은 옛광대의 기질과 체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옥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광대라는 예감이다. □연보 ▲1931년 전남 승주 출생 ▲38∼43년 일본 체류 ▲45∼47년 조선창극단 ▲48년 고창·정읍 명창대회1등 ▲57∼63년 임방울창극단 협률사 입단 ▲61∼63년 김연수 우리국악단 ▲64∼66년 김원술안성국악단 ▲66∼67년 박녹주국극협회 ▲67·68년 일본공연 ▲78년 공간사랑 1인창무극 ▲81년 미 케네디센터 「한국전통무용」공연,전남 영광읍장터 「공옥진놀이판」 ▲84년 일본 공연,서울 결산무대 「공옥진춤판­그의 모든 것」(문예회관대극장),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서 「마당놀이 춤판」,낙향 광주서 부친 공대일명창과 「아버지와 춤을」 대공연 ▲85년 런던 국제 연극제 참가 ▲91년 1인창무극(호암아트홀) ▲92년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서울공연(세종문화회관)을 필두로 인천 성남 수원 구미 대구 천안 평택 충주 제주등 15개도시 순회공연 ▲93년 뉴욕(링컨센터) 시카고 LA 하와이 중국 런던 일본등 세계순회 및 부산(KBS홀)공연,「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예술의 전당),1인 창무극(미도파 메트로홀) ▲94년 1인창무극 「학녀의 한의 춤」(세종문화회관),그외 전국 50여 대학 초청 「공옥진 한의 춤」공연등 경로위로 잔치 수백여회 ▲95년 여수(진남체육관) 및 영암 정읍 공연,7월9일 광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예정 전남 영광예술연구소 대표
  • 여야 수뇌부,이틀째 「DJ 복귀」 입씨름

    ◎“정치재개 일성이 「보안법 철폐」냐”­민자 이 대표/나이 70에 감옥 보내면 가겠다­민주 김대중씨/바람몰이 후보엔 표 주지말자­자민련 김 총재 여야는 16일 수뇌부가 총출동,서울과 인천 경기 강원 충남등 수도권과 중부권에서 유세대결을 벌였다. 여야 지도부는 이날 유세에서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의 「정치재개」를 놓고 공방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민자당◁ ○…이춘구대표는 이날 충남 당진군과 공주시 정당연설회에서 자민련의 김종필총재와 김대중이사장의 연대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데 주력했다. 이대표는 『김종필총재는 30여년동안 자신을 헐뜯어 온 사람과 맞장구 치며 지역분할을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그런 길을 계속 걷는다면 지금 민주당을 수렴청정하고 호메이니 노릇하는 어떤 분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대표는 이어 『과연 국가보안법을 사수해야 한다던 김총재의 소신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인지 국민앞에 확실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대표는 김이사장에 대해 『보통사람 물한잔 마시듯말을 바꾸는 정치인』 『선거유세에 나서면서도 정계복귀 안했다고 우롱하는 사람』 『정계복귀 일성이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어떻게 하는게 나라를 안정시키고 내고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진짜 일할 수 있는 여당후보를 지지해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김덕룡 사무총장도 이날 부산역 광장 정당연설회에서 김이사장의 「정치재개」를 성토했다. 김총장은 『30년전 옛노래를 다시 트는 것처럼 3김시대를 재연시키려는 야당움직임에 정면대응하면서 우리 목표대로 주민자치 생활자치 정책대결구도로 이끌어 지자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자』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기택총재는 강원도 속초와 강릉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 참석,김대중이사장을 겨냥,『이 이기택이가 총재로 있는 한 민주당은 결코 「전라도당」이 아닌 전국정당』이라며 『나는 누구처럼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총재는 이어 『내가 총재로 있는 한 민주당이 나쁜 짓을 하지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해 김이사장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데 대한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김대중이사장은 이날 경기도 안산과 광명에 이어 서울 구로구에서도 정당 연설회를 갖고 민자당의 「정계복귀」 비난에 대해 강력히 반박했다. 김이사장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노병(노병)도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는 법』이라고 민주당원으로서의 지원유세를 정당화한 뒤 『내가 내입으로 유세를 하는 데 민자당이 무슨 근거로 간섭하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안기부내에 김대중 음해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현정권은 더이상 일개 야인인 김대중이를 탄압하거나 음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김이사장은 이날 신도림역앞 유세에서 『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선거권과 피선거권등 모든 참정권을 갖고 있다』며 또다시 「출마」가능성을 시사했다. ▷자민련◁ ○…김종필총재는 이날 인천 강화및 부평을 시작으로 경기 부천,서울 구로를 돌며 본격적인 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김총재는 강화군 풍물시장에서 열린 인천시장후보 지원유세에서 『김영삼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공명한 선거,돈안드는 선거로 정착시켜 범법자는 선거를 다시 하더라도 엄벌하겠다고 했지만 민자당이 앞장 서서 과열,혼탁선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바람이나 돈에 이끌려 뽑고나서 후회할 후보에게는 절대 표를 던지지말라』고 호소했다.
  • “부동표 잡기” 주말유세 총력전(“열전” 6·27선거/D­10)

    ◎여야수뇌부,합동연설서 대세몰이 여야는 6·27 지방선거가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17·18일 주말유세가 승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부동층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국 주요지역 유세에 수뇌부를 대거 투입,대세몰이에 나선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등장과 김종필자민련총재의 「충청권 단합」호소 등 지역감정을 촉발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선거전도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변질돼 감에 따라 지방일꾼을 뽑는 이번 선거의 본래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져 가고 있다. 민자당은 주말유세에서 김이사장의 「정계복귀」 및 「지역등권론」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지역실정에 맞는 각종 공약을 제시해 40% 가량으로 분석되고 있는 부동층을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반면 민주당 및 자민련은 이번 선거를 정권의 중간평가로 몰아붙여 지역정서 및 「반민자정서」를 득표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민자당의 이춘구대표는 16일 충남유세에 이어 17일에는 지역 국회의원 및 지구당위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성남과 수원,18일에는 전북 김제와 완주에서 지원유세를 펼칠 예정이며 김덕룡 사무총장도 17일 충북지역과 18일 강원 원주등에서 세몰이에 나설 방침이다.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주말 충북과 경기등 중부권지역에서,김대중이사장은 17일 서울,18일 전북 전주등 야당 강세지역에서 유세를 벌인다. 그동안 충청지역에 머무르던 김종필 자민련대표도 17일에는 대구와 경북 포항 경주등을 돌며 지지분위기를 확산할 예정이다. 민자당의 이춘구대표는 16일 충남 지역 유세에서 『30여년간 서로 비난하며 헐뜯던 사람들이 노욕이 앞서 이제는 손잡고 우리 국토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고 김대중 이사장과 김종필총재의 지역할거주의를 공격하면서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대 움직임을 비난했다. 이대표는 『이 나라는 어느 특정인을 위해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내고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인가를 깊이 생각해서 진짜로 일할 수 있는 여당후보들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는 강원도 속초와 강릉 유세에서 『민주당은 이기택이가 총재로 있는한 전라도당이 아닌 전국 정당』이라면서 『유일한 수권야당인 민주당을 밀어 97년 정권교체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이사장은 이날 경기 안산과 광명및 서울 구로구에서 가진 이틀째 수도권 유세에서 『김영삼대통령은 매일 탈법선거운동을 주도하고 선거자유분위기를 해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김대통령의 2년반 통치는 문제투성이고 선거에 임하는 태도도 시정해야할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 DJ복귀 쟁점화(“열전” 6·27선거/D­11일)

    ◎민자­“국민 속였다” DJ­“당원몫 유세”/식언 맹공격… 반DJ 분위기 확산 박차­민자/지역 등권론 거듭 주장… 대여비만 포문­DJ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15일 수도권 지역에서 민주당후보를 위한 유세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그의 「정치재개」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도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민자당은 전날 부대변인을 모두 동원,연발식 비난을 퍼부은 데 이어 이날도 박범진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김 이사장의 「대국민약속 파기」를 집중공격했다. 박대변인은 이날 선거대책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김이사장이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시작,『민주당이 호남지역 공천에서 돈을 받고 매관매직하고 있으며 김 이사장은 이를 노골적으로 비호하고 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박 대변인은 특히 김이사장이 「선거에 출마할 권리」라는 표현으로 대권도전 가능성을 시사하자 『그 이름이 김대중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뒤 『선관위가 김이사장의 옥외강연을 불법으로 결론내리고도 고발 없이 주의조치로 끝낸 것은 눈치보기』라고 화살을 선관위로까지 겨냥했다. ○…민자당은 김이사장이 사실상 정치무대에 복귀한 것을 역으로 이용,지방선거의 초점을 「비호남 연합」 내지는 민자·민주 양당대결 구도로 몰아간다는 「신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민자당이 각종 유세에서 주민자치·생활자치라는 「이론적」 공격에서 탈피,김이사장의 정치행태에 대한 정면공격에 초점을 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민자당이 정세분석위와 선거기획위원회 등을 통해 수집한 「판단자료」에 따르면 김이사장의 「정치재개」에 대한 언론의 집중보도와 민자당의 공격은 전략적으로 민자당에 상당한 성과를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선거 전망이 계속 어둡다고 판단되면 김이사장이 민주당 장악을 공식화하는 등 「중대변화」를 보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민자당은 따라서 이미 정치무대로 올라온 김이사장의 「식언」과 「부도덕성」을 집중공격,보다 자극적 반응을 유도함으로써 양당대결구도,「양금」대리전 양상을 극대화한다는전략이다. 김이사장의 목표가 서울에서 「반민자연합」구도를 강화,정계복귀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있으므로 정공법을 통해 수도권에서 「비호남연합」 또는 「범보수」「반DJ」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중부·영남권에까지 이를 파급시킨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이날 하오 3시 안양 뉴코아백화점 앞에서의 첫 유세를 시작으로 군포중학교,인천 성남동 체육공원,부평 조경공원에서 잇따라 지원연설을 했다. 이날 각 유세장에는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에도 1천명 안팎의 청중이 김이사장의 연설 1∼2시간전부터 몰리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이사장도 자신의 「정계복귀」논란을 의식한듯 『지난 92년 정계은퇴 당시 야당의 발전을 위해 당원으로서 끝까지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 뿐』이라며 『나는 출마할 권리도,유세할 권리도,투표할 권리도 있는 당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김이사장은 이번 선거를 지방살림꾼을 뽑는 선거라면서도 김영삼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고 규정하고 『지난 60년대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였으나 이번에는 「안되겠다 갈아보자」로 선거혁명을 이루자』고 강조했다.이날 김이사장은 시종 상기된 표정으로 여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으며 지난 대선 때와 같이 두손을 치켜들고 청중에게 답하는 제스처를 취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김대중을 무서워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실정으로 김대중을 찾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민자당은 민주주의 원리조차 모르는 집단』이라고 공격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하오7시40분 부평근린공원에서 열린 유세에서는 『김대중이가 있는 한 야당은 강력한 정당으로 남을 것이며 오는 97년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 대권을 겨냥한 뒤 『이 몸이 녹슬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지역등권을 위해 언제나 여러분편에 있겠다』고 기염을 토해 눈길. ◎여 야 수뇌부 유세 본격화/“야 지도부가 국민 이간” 집중공격­민자/대형참사 거론 “현정권 심판” 역설­민주/“이번엔 「충청도 핫바지」 탈피하자”­자민련 여야 지도부는 선거운동 닷새째인 15일에도 전국 곳곳에서 치열한 유세대결을 벌였다.이날 유세에서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정치재개」를 둘러싼 공방과 더불어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지역당」 논쟁에서 시작돼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던 「지역감정 부추기기」가 김이사장의 등장과 함께 위험수위로 급상승하고 있다. ▷민자당◁ ○…이춘구 대표는 이날 경기 부천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전날보다 한층 더 강한 어조로 김이사장의 「정치재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 대표는 『선거 때가 되니까 여러 사람들이 그 정체를 드러내고 우리나라를 아주 망치려고 작정을 하신 분들이 있다.지역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이간질해서 욕심을 채워보겠다는 분들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김이사장과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대표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정계를 떠났던 사람이 본격적으로 선거유세에 나섰고,더욱 한심한 것은 선거유세가 정계복귀와 상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믿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되겠느냐』고 말하고 『보통사람 물 한잔 마시는 것같이 시도 때도 없이 말을 바꾸는 사람이 연설을 하면 누가 믿겠느냐』고 김이사장의 「이중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 ○…이기택 총재는 이날 포항에서 대구로 이동,정당연설회에 참석한 뒤 항공편으로 제주를 방문,지원유세를 펼치는 등 이틀째 강행군. 이 총재는 이날 대구 평리아파트 공터에서 가진 유세에서 지하철폭발참사등을 지적하며 정부를 맹공.이 총재는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반민자,비민주」정서가 강한 곳』이라며 『그러나 반민자를 넘어 유일한 수권대안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만이 대구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 이 총재는 이어 『민주당은 내가 총재로 있는 한 전라도당이 아니라 국민정당이며 나는 누구처럼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대구시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현정권을 반드시 심판,선거혁명의 불씨를 지펴달라』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을 싸잡아 공격. 이 총재는 제주탑동공원 유세에서도 『현정권은 제주도개발특별법으로 제주도민을 무시하고 우롱했다』며 지지를 당부.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이날 충북 옥천에 이어 충남 금산·대전,다시 충남 연기를 찾아가는 등 사흘째 지지기반인 충청권에 대한 지원유세를 펼쳤다. 김 총재는 이날도 「충청도 핫바지론」을 거론하며 여권을 신랄하게 공격한 뒤 『이번 선거에서 자민련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면 충청도의 오랜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지역감정을 자극했다. 김 총재는 이어 『김영삼 대통령은 이번 선거를 돈안쓰는 선거로 치러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주장했지만 선거법을 어기는 것은 다름아닌 민자당』이라고 김 대통령과 민자당을 어느 때 보다 강도높게 비난했다.
  • 지방선거/흑색선전 고개든다

    ◎선거전 시작도 전에 「상대 흠집내기」예사로/중앙당 대변인까지 가세 “위험수위”/흑색선전 사례/민자서 박찬종후보 지원… 보도 못하게 압력넣어/이 총리가 인천 안무서우니 굴업도에 핵폐기장”/기 지사후보는 고향의 조상묘 다른곳으로 이장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흑색선전이 벌써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라 카더라」로 통하는 흑색선전은 바닥이 좁아 소문이 잘 먹히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전에서 선을 보이더니 이제는 광역단체장선거전에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민주당의 박지원 대변인이 8일 『민자당이 서울시장선거에서 정원식후보가 아니라 무소속의 박찬종후보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박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는 최근 한 주간지가 보도하려던 기사원고 전문을 입수했다』고 전제하고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있다 해임된 이충범 변호사가 박후보를 민자당 서울시장후보로 영입하려 노력했고 최근까지 박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내용의 기사를 청와대의 압력으로 보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이어 『민자당은 진짜 서울시장후보가 누구이며 가짜후보는 누구인지 밝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주간지측은 『민주당의 성명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서 『이 기사는 1차로 정리한 불완전한 기사에 불과하며 청와대 관련 부분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은 『민주당의 주장은 우리 선거사상 가장 파렴치한 흑색선전』이라고 비난하고 『민자당은 우리당과 정후보를 이간시키려는 간교한 술수에 몰두하기보다 국민을 위한 정책대결에 보다 당당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박찬종 후보도 『이 변호사와는 고등학교와 법조계 선후배 관계 정도의 지면이 있을 뿐』이라면서 민주당의 음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흑색선전은 상대후보를 직접 겨냥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민련의 강우혁 인천시장후보는 지난 7일 MBC텔레비전의 생방송 아침 뉴스프로에 출연,이홍구 국무총리가 하지도 않은 말을 인용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강 후보는 굴업도 핵폐기장 문제가 나오자 『(민자당 시절) 이총리가 「경상도와 전라도는 무섭고 의식이 되지만 인천은 뭐가 무섭고 의식되느냐.그래서 인천 앞바다에 (핵 폐기장을) 던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총리비서실은 『이는 상식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사실과 다르다』면서 강후보와 MBC측에 강력히 항의했다.송태호 총리비서실장은 『비록 선거용이라도 이같은 상식밖의 조작된 발언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제와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강후보측에 촉구했다』고 밝혔다. 또 충북지사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가 「고향에 있는 조상의 묘를 다른 지역으로 다 파갔다」는 소문 때문에 크게 고심하고 있는 것도 머리와 발보다는 입으로 때우는 치사한 선거운동이 낳은 결과이다.
  • 「노마지지」 살려쓸줄 아는 사회로(박갑천칼럼)

    전라도 영광에 사는 선비 채씨는 여러번 과거에 낙방했다.실망한 그는 늦게 얻은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그러고서 죽었다.어느날 이정이 관가의 전령을 가지고 채생한테 와서 읽어달라고 하자 글을 모르는 그는 화가 나서 내뜨려버린다.이정은 선비랍시고 글을 모르니 개·돼지와 뭐가 다르냐면서 돌아갔다.부레끓은 그는 공부를 시작하여 52살때 명경과에 급제하고 그 고을 원이 되어 귀향한다.「청구야담」에 쓰여 있는 얘기다. 요즈음이라면 정년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그는 벼슬길에 오른 것이 아닌가.성여신·김태시·백현룡같은 영남유생이 나이70인데도 과거공부를 그만두지 않은 것(「계서야담」)은 늙음이 벼슬길 오르는 것과는 관계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어쩌면 그들은 기로과 응시를 위해 정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선 영조32년(1756년)기로과라는 과거시험이 처음으로 실시되었다.이 기로과는 왕이나 왕비,혹은 대비나 대왕대비의 나이가 60살 또는 70살이 되었을때 그를 경축하는 뜻으로 치러졌다.응시자격은 60살 이상 되는 노인에게만 있었다.1756년은 대비의 나이가 70살 되는 해였는데 이 첫 기로과에서는 문과에 이가우등 6명,무과로는 이명한등을 뽑았다.60이 넘어 무과에 급제한 사람은 어떤 기골이었을까 생각해보게도 한다. 이런 풍조였으니 방촌황희같은 이는 만인지상인 영의정의 자리에 타계하기 3년전인 87살까지 앉아서 국사를 처결했다.방촌의 경우는 특수한 사례였다고 하겠으나 그렇게 나이를 상관하지 않는다 할 때 60살 과거합격도 결코 늦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60이면 정년이란 이름의 굴레를 쓰고 시르죽어 있어야 할 오늘의 현실과 비겨지는 옛일이 아닌가 한다. 정부투자기관등 공공기관에서의 고령자채용이 늘어나게 되었다.경제부총리가 지시한 일이므로 넉장뽑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그 결과 고령자가 얼마나 더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뜻부터가 깊다.그래서 반가워진다.오늘의 우리사회 「젊은늙은이」들은 옛시조마따나 『늙기도 설워라커늘 일을조차 뺏을까』고 생각하고들 있는 현실이 아닌가. 「한비자」에 노마지지란말이 나온다.관중이 했던 말이다.나이든 사람은 그만큼 만고풍상을 겪었다.경험에서 얻은 「늙은 말」의 지혜를 살려쓸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 자동차 밀수(두만강 7백리:12)

    ◎일제 중고차 1대3천∼4천불에 거래/ 두만강은 외줄기로 흘러가는 국경의 강이다.그 강의 유역에는 외진 마을들도 있다.십여년 전만 해도 기차구경을 못했다는 촌로들이 있을 정도였다.해방이 되던 해에 소련군 지프가 길도 아닌 길을 따라 천신만고 끝에 마을로 들어오자 차 앞머리에 여물을 수북하게 갔다놓았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있다.마치 소에게 여물을 먹이로 주기라도 하듯이…. ○차 앞머리에 여물까지 놔 그런 삼수갑산 같은 마을이 용정시 대소과수농장과 백금향 사이에 있다.세찬 물결과 깊은 산,그리고 나무숲에 갇힌 마을이다.이 마을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승용차들이 들어왔다.하이야라고 부르는 승용차들인데,이 산골마을에 몰려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이를테면 산골마을이 승용차 밀수기지로 이용되었던 것이다.마을 사람들은 밀수꾼들이 떨어뜨린 떡고물 얻어먹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신바람이 난다. 『하루에도 이 길로 매미차(승용차가 매미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 처럼 땅에 납작 엎드린다고 해서 생긴 말)들이 수십대씩 지나갔디.그래서 조용하던 동네가 벅적댔지 않았갔시요.그때 마을 사람들은 뗏목을 묶어 매미차를 실어오는 일을 했수다.하룻 저녁 나가 어슬렁대면 사오백원은 벌었다 이겁네다』 자동차 밀수는 1992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그러나 그해 가을에 꼬리를 사렸는데,세계 각국의 중고차는 다 흘러들어온 것 처럼 보였다.한대에 3천∼4천달러씩 하는 일본 도요타계열의 승용차로부터 몇만달러나 하는 미국제 차까지 다양하기 이를데 없었다.이들 승용차는 연변에 들어와 패쪽을 달고 곱배기 값으로 팔려 중국 각지에 흩어져 나갔다.외국 땅에서 실컷 굴러다니다 목숨만 간당간당 붙어 들어온 중고차가 중국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이 무렵에 모든 정력을 자동차 밀수에 바친 사람들이 많다.해관과 같은 유관기관원 주머니에 찔러주고 중개인 호주머니 역시 곯지않게 해주고도 두배 장사가 되었다.훈춘시 한 무역회사원 이강돈(35)씨 말을 들어보면 자동차 밀수가 화수분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6만달러를 감춰가지고 로시야(러시아)로 건너갔디요.거기주먹들과 미리 선이 닿아 있어서 도착한 날로 흥정에 들어가 차 다섯대를 샀더랬습네다.길이가 7.5m나 되는 미제 링컨표와 도요타 넉대였디요.주먹들이 전신무장을 하고 우리가 산 차를 끌고 나오는 데 로시야 경찰이 추격해옵데다.우리 차가 속력을 내니까 추격을 포기했는지 로시야 경찰차가 안 보여서 겨우 안심했디요.국경선까지 배웅한 주먹패거리들과 작별하고 장령자 해관을 쏜살 같이 빠져나와 차를 그날 다 처분했수다.경비를 빼고 칠십만원이 남습데다』 ○노인들 달라진 세상 한탄 자동차밀수가 성행하면서 달러 씀씀이가 커져서 중국 여러곳에서 달러가 연변으로 몰려들었다.달러값도 물론 천정부지로 뛰었다.그래서 국정가격이 1달러에 8.27원인데 암시장가격은 12원까지 오른 적도 있다.전국에서 달러값이 제일 높은 지역이 연변이라고 한다.달러 장사꾼도 생겨나 비행기를 타고 남방 연해지구까지 펄펄 뛰어 다닌다.달러수집에도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자동차밀수가 주로 두만강연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음식업자와 여관업자들이 이사가는데강아지 따라가듯 강믿으로 옮겨갔다.해괴한 바람이 산 좋고 물 맑은 강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놓은 꼴이 되었다.그래서 노인들은 달라진 세상을 한탄하기 일쑤다.용정시 백금향 백금촌에서 만난 박길남(68)노인도 그런 노인의 한분이었다. 『광복 전에도 백금향에 요리(요릿집)들이 있긴 했디.강 건너 회령과 무산에는 제법 고운 기생들이 욱실거리고….우리 동네 박아무개는 생강장사로 돈을 버네까 기생놀이에 빠져버렸디.한번은 생강을 사서 배 한척에 골똑 싣고 가서 받은 돈을 몽땅 이화자라는 기생 밑에 바쳤다 이거야.그런데 기생년이 돈 떨어지니끼리 박아무개를 내쫓아버렸디.박아무개가 쫓겨나오는 마당에 기생더러 옷을 한번 벗어달라고 간청하고는 시한수를 지었다고 기래요』 그 시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멀리서 보면 죽은 말의 눈이요,가끼이서 보면 상처가 깊구나.더구나 이도 없는 짧은 입인데,생강 한배를 다 삼켰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는 한시였다고 한다.비록 돈은 다 날렸을지라도 위트가 있는 한량이었던 모양이다.기생 사타구니에 빠지면 패가망신이 자명하다는 말을 누누이 한 노인은 백금 산골에 들어온 음식점이나 여관·가라오케가 못마땅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차밀수로 떼돈을 쥐게 된 사람들은 고기반찬에 얼큰히들 술을 먹고는 가라오케에 들어가 한때의 피로를 풀고는 여급의 젖가슴에 팁을 끼워주었다.화룡시 숭선진 가라오케에서 반년간 육체봉사를 한 어느 여인은 사내들의 손가락새에 끼워 묻어나온 돈으로 차 한대를 밀수해서 연길에 들어가 택시업을 벌였다고 한다. ○93년10월 된서리 맞아 뒤늦게 밀수소식에 접한 한국 장사꾼들이 부랴부랴 연변으로 달려왔다.그들은 연줄이 닿는대로 계약을 하고는 허둥지둥 돌아가 중고차를 모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많이는 산동쪽으로 흘렀지만 더러는 연변 가까이 로시야부두와 북조선 청진에도 배를 정박시켰단다.조금만 흥분거리가 있으면 자랑하지 않고 못배기는 민족이라 한국 신문에는 중국으로 들어간 차가 얼마인데 그중 정상무역과 밀수의 비례며,새 차와 중고차 숫자는 얼마라고 똑똑히 밝혔다.한국보다 엄청 많은 수량의 중고품을 쏘고도 입을 싹 다시고 아닌 보살 능청을 떤 일본은 너무나 대조적이라 하겠다. 1993년10월부터 연변에서는 차밀수를 타격하기 시작했다.주에서는 밀수타격사무실을 전문 내오고 해관과 군대를 동원하였다.망둥이가 뛴다고 전라도 빗자루가 뛰는 식으로 늑장을 친 사람들의 골통이 깨지기 시작했다.한국 차 수십대를 실은 연변 장사꾼의 배가 산동 앞바다에서 해군들에게 나포된 일은 전국을 들썩하게 들었다 놓았다.선불로 차까지 사놓았지만 길이 막혀버렸으니 가슴을 치고 통곡한들 용빼는 수가 없었다.
  • 과학적 추적·공조수사의 개가/국교생 유괴범 검거 안팎

    ◎범인 전화발신지·음성 면밀히 분석/서울­전남 경찰청 협조… 수사망 좁혀 20대 부부의 국민학교어린이 유괴사건이 발생 33시간남짓만인 12일 하오10시50분쯤 모두 해결됐다. 경찰의 피랍 어린이및 범인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범인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옮겨다니기에 바빴고 경찰은 도망가는 범인의 전화발신지 등을 추적하느라 경찰과 범인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드라마가 펼져졌다. 경찰의 이번 개가는 범인의 전화발신지와 음성내용을 정확히 분석해 수사의 방향을 좁혀나가는 과학수사,그리고 서울과 광주경찰서사이의 완벽한 공조수사로 이루어졌다. 경찰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외아들이 납치됐다』는 어머니의 전화신고를 받은 것은 11일 하오22시20분.경찰은 신고즉시 유괴된 어린이가 TV광고 모델이어서 그 유명세를 고리로 잡고 가족들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유괴사건이라고 보고 우선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여 나갔다.그러나 주변인물가운데는 별다른 혐의자를 찾지 못하게 되자 단순납치사건으로 판단하게 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잠복근무에 들어가 12일 새벽부터 유괴된 어린이의 가족들에게 걸려온 3차례의 전화내용을 녹취한 끝에 범인이 25세가량에 전라도사투리를 많이 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그러고는 관할전화국에 발신지추적을 의뢰,범인의 행적지를 쫓기 시작했다.마침내 이날 하오5시2분쯤 범인이 4번째 통화한 장소가 전남 보성의 한 공중전화부스임을 알아냈다.귀중한 단서를 잡은 서울중부경찰서는 곧바로 서울지방경찰청을 통해 전남경찰청에 공조수사를 의뢰했다. 이같은 공조수사로 하오10시50분쯤 보성을 거쳐 진주에 갔다 서울로 올라오던 범인을 동광주톨게이트에서 잡는데 성공했다.
  • 「관용의 해」 1995년/박원순 변호사(일요일 아침에)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시가지 한 모퉁이에 위치한 「관용의 박물관」(Museum of Tolerance)을 방문한 적이 있다.이 박물관을 한번 둘러보는 것이야말로 『사람 사이의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흥미있는 경험 그 자체』라고들 말한다.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한 후 나치전범의 추적에 평생을 바쳐온 「시몬 비센탈」이 세운 이 박물관은 5층짜리 공간에 온갖 전시물을 통하여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가장 비인간적 형태」였던 「홀로코스트」와 인간의 편견과 인종주의가 낳은 참혹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유네스코는 올해를 세계 「관용의 해」로 정하여 지구촌에 평화의 바람을 불어 넣기로 했다고 한다.지구상에 벌어졌던 온갖 갈등의 원천이 된 냉전의 종식은 인류에게 평화와 안식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에 충분하였다.그러나 그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지구상의 곳곳에는 민족간의 갈등과 전쟁,외국인 거주자들에 대한 폭력,동족간의 내란과 기아,대량의 인권침해가 잇따랐다.이 때문에 벌어진 인류의 비극과 참화,고통과 희생은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유네스코가 정한 「관용의 해」는 바로 인종,종교,영토,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중지하기 위하여 상호간의 차이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에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그러나 가까이보면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가 다민족국가보다 더 크게 들린다.당장 남북의 관계가 그렇다.남북의 관계는 서로의 공통점을 하나씩 확인하고 다가가는 과정이기보다는 서로 헐뜯고 해악을 주는 관계로 악화되어 왔다.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듣기에 부족하지 않을 처신을 우리는 해왔다.1천만 이산가족에게 설을 고향에서 새도록 해야 할 때가 이제 오지 않았겠는가. 나라안에서도 「관용의 해」에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이 좁은 나라에 「망국병」이라고 할 지역감정은 여전히 판치고 있다.「경상도」「전라도」싸움에 이제 「충청도」「강원도」도 끼어들고 있다.이 작은 반쪽도 화합 대신 으르렁거리는 마당에 항차 남북을 어떻게 아우를 수 있을까.문제는 사소한 우리네 생활의 주변에도 도처에 불필요한 언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차끼리 부닥쳐 보험처리하면 그만인 것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길 한가운데서 말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지하철 속에서 전도하는 크리스천과 그것을 막는 불교신자의 싸움이 가끔씩 벌어지기도 한다. 무조건 「관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때로는 정확히 따지고 철저하게 시비를 가려야 할 때도 있다.법이나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우리는 그냥 봐넘겨서는 안된다.감시의 불침번이 있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의 질서는 도둑맞고 만다.로스앤젤레스의 「관용의 박물관」은 동시에 그 잔혹한 학살에의 「기억과 감시의 센터」(A World Center for Remembrance and Vigilance)임을 표방하고 있다.그런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당한 「정신대」할머니와 「광주사태」의 피해자들을 다함께 기억해야 한다. 올해는 기릴 것이 많은 한 해이다.「해방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이기도 하다.「사법 1백주년」도 바로 올해이다.그리고 앞을 바라보면 21세기를 5년 앞두고 있다.우리가 진정 벌할 것을 벌하고,용서할 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아름다울 수 없다.공동체의 약속을 배신하고 법을 어긴 자를 엄단하는 한편 상호간의 갈등과 다툼을 관용과 화해로 씻어내어 정의와 화해,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그것이 사법 1백년과 해방 50년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 농악무으뜸… 아박무·접시춤 등 창작(연변조선족 1백년:14)

    ◎오늘의 삶에서 억척의 생명력을 다시본다/민속춤/사회주의 영향 마당놀이서 무대예술로 변모 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을 조감해 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가치있는 일이다.특히 해방전의 이주민들이 펼쳐온 놀이마당을 전통과 변화라는 시각에서 검토하는 것은 한국 전통예술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 1백년을 회고해 볼 때 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은 조국보다 훨씬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밟았다.우선 해방후 중국 조선족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이란 위상확립을 위해 몸부림을 쳤고 문화혁명시기에는 갖은 탄압을 받아가며 예술활동의 위축을 겪어야 했다.그리고 북한의 끈질긴 교화를 받으면서 지내오다 최근에는 한국의 영향으로 예술활동의 변화라는 파도를 타야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에 근거를 둔 전통예술성은 굴절하지 않고 맥을 이었다.특히 이주로부터 해방까지의 예술활동 중에서 춤과 노래를 조명해 보면 조선족의 의식이 가장 잘 표출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촌마을 농악대 유명 이 시기에 연희되었던 민속춤으로는 승무·농악무·남무·한량무·살풀이·강강술래 등이 있다.이밖에 「아박무」가 있다.구전에 의하면 「아박무」는 1923년 봄,안도현 송강 송화의 한 골짜기에서 발생했다고 한다.그러나 조국으로부터 그대로 옮겨 온 전통춤 중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농악이 으뜸이다.가장 먼저 농악대가 구성되어 연희된 곳은 1928년 왕청현의 어느 마을이라고 하나 규모있고 영향력을 가진 농악대로서는 1938년 길림성 안도현의 신촌마을이다. 경남의 이주민 1백여가구가 1938년 이곳에 자리 잡았다.그들이 올 때 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 농악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도구를 휴대해 왔다.그들은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악을 울리며 피로를 풀고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그후 1941년 남사당패에서 농악을 추었다는 광대 이원보씨를 전라도로부터 모셔와 본격적으로 연수를 받았다.이리하여 20명 내외로 구성된 신촌농악대는 마을 마당놀이(지신밟기)·두레굿·집돌이농악의 수준을 넘어서서 무대에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의 마을농악대를 조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속춤 중에서는 「쾌지나 칭칭나네」가 가장 많이 추어졌다.특히 정월보름날 줄다리기에 나가기 위한 선행놀이로서 이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해방전 동북 3성의 조선족 마을에서 주로 재인들에 의해 추어진 민속춤으로는 승무·탈춤·칼춤·학춤·사자춤·수박춤·양산도 등을 들 수 있다.물론 이것들은 전문 광대들에 의해 무대에서 추어진 것들이 태반이다. ○항일투쟁 춤도 등장 이금덕(1922·전남태생)은 이리 권번에서 노래·기악·춤을 익히고 40년대에 이주하여 「양산도춤」과 「수건춤」을 보급시켰다.김선덕은 14세 때 평양권번에 들어가 음악과 무용을 익히고 이주후 「칼춤」과 「남무」를,김재산(1890·강원도출생)은 1914년 길림성 안도현으로 이주하여 「학춤」과 「거북춤」을 퍼뜨렸다.조정숙(1928·평양출생)은 8세부터 기예를 배워 활동하다가 해방후 이주하여 「승무」 「한산춤」 「봉산탈춤」등을 추었다.이밖에 박정록과 김학천 같은 예인이 있다. 특히김학천의 「수박춤」은 유명하다.김씨네 집안에서 5백년이나 전승된 춤이라고 한다.알몸으로 허리엔 짐승가죽을 두르고 맨발로 추는 이 춤은 악기라고는 물을 담은 큰 함지안에 작은 함지박을 엎은 것인데,이를 두드리는 정도이다.이 두닥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연희자가 두 어깨를 으쓱거리며 두 손으로 자기 몸을 치면서 추는 춤이다.도중 갖가지 새소리와 짐승소리를 낸다.사냥꾼의 모의춤이라 할 수 있는 이 춤의 끝은 맹수를 정복한 사냥꾼의 희열로 끝난다. 박정록이 전수시킨 「접시춤」은 30년대부터 훈춘지방에서 추어진 것인데 이 지역에서 자생된 춤으로 알려졌다. 해방전의 중국조선족의 춤을 말하면서 항일투쟁배경에서 자생한 몇가지 춤들을 빠뜨릴 수 없다.항일 전투가 지속되는 긴박감 속에서 여성대원들이 군복을 누벼나가는 모습을 극화시킨 여성군무인 「재봉대원의 춤」을 비롯해서 「기병대 춤」「무장춤」등이 1930년대부터 항일투쟁 집단에서 연희 되었었다. 그 유명한 무용가 최승희도 중국에서 무용활동을 했다.그로인해 조선족의콧대를 한층 높여준 결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춤의 예술적 경지를 한층 높이는데도 몫을 했다.최승희 편력을 살필 여유는 없지만 그녀는 1912년 서울 태생으로 14세 때 도일하여 혀대무용과 발레를 배운 세계적 무용수이다.1930년 조선경성공회당에서 처음 귀국공연을 시작으로 그의 명성은 일약 아시아로부터 유럽·미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최승희가 중국에서 활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부터이다.당시 조선족이 10만여명이 살고 있었던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최승희가 공연을 했다. ○최승희 무용 큰 호평 최승희의 창작춤들은 한국전통의 춤사위를 되살려 새로운 감각과 창조성을 가미시킨 것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다.당시 중국 경극계에서는 『노래를 위주로 했던 재래의 경극은 최승희무용의 영향을 받아 끝내는 변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마당놀이에서 출발한 농악이 섬세한 기예의 독창성을 살려 무대 「농악무」가 되었고 따라서 민속춤의 대부분이 무대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르렀다.이를테면 「탈춤」과 같은 여러 춤들이 무대에오르게 되자,마당놀이로서의 민속춤은 차차 위축되어 「쾌지나 칭칭나네」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사회주의가 민중의 소박한 놀이를 무대예술로 자리바꿈 시켰다는 사실은 오늘의 중국 조선족 예술활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지각운동이 심상치 않다/김소구 한양대 지진연구소장(기고)

    일본 간사이지방의 지진으로 3만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가 나오고 있다. 지진은 왜 일어나는가.한마디로 단층현상에 기인한다고 말할수 있다.지진 메커니즘은 크게 4가지 단층현상,즉 우측·좌측 주향단층,장력에 의한 정단층,압축에 의한 역단층이 있다. 역단층을 일으키는 지진은 주로 판과 판 경계에서 많이 일어난다.일본의 태평양 쪽에서 발생한 지진은 대부분 역단층에 속한다.그러나 이번 지진이 발생한 고베 앞바다는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이 유라시아판과 동시에 만나 침투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 지진 메커니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반면에 판과 판이 벌어지는 지역에서는 정단층이 많이 생긴다. 중국,미국 중부같은 지역에서는 판내부 지진이 일어 나는데 이들 지진은 주로 수평운동이 영향을 미치는 주향단층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국내 지진들은 대부분 주향단층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 지진 발생 현황은 어떠한가.국내에서 발생하는 지진들은 모두 판구조론의 영향을 받아 등력이 균형을 잃어 지진에너지를 방출하면서생겨나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평안도에서 전라도에 이르는 서해안지역과 경상도 동남지역이다.예컨대 지난 93년 3월의 정주지진을 비롯해 지난해 2월의 계룡산 지진,7월의 황해지진,12월의 백령도지진 등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서울이나 경기도를 비롯한 한반도 중앙지역에서는 지난20년 동안 단 한차례도 지진현상이 없었다는 점이다.이들 지역은 고려·조선시대 때는 크고 작은 지진들이 다발하던 곳이다. 지금와서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이 지역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오히려 지진정지기에 들어가 지진에너지가 오랫동안 축적됐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 이 에너지가 한꺼번에 방출하게 되면 오히려 대지진이 생겨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도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는 못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우리도 언젠가 발생할지도 모를 대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국내에는 현재 지진전문인력이 전무하다는 점이다.21세기를 앞두고 모든 분야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유독 지진학 분야만 교육및 연구가 이뤄지지 못해왔다.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진 전문인력양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 둘째는 지진관측을 위한 첨단지진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여기서 말하는 첨단 장비란 디지털 녹음기로 기록되고 실제시간으로 자료 전송이 가능한 온라인시스템을 말한다.이러한 디지털기록과 실제시간 관측을 가능케하는 장비를 하루빨리 구비,지진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산업시설과 국민복지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기존의 모든 건축과 구조물,특히 10층 이상의 고층건물·교량,지하시설,댐·원전등에 대한 내진설계의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이와함께 새로운 건축·구조물에는 반드시 내진설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번 일본 지진을 교훈 삼아 우리나라도 이제는 지진문제에 눈을 떠야할 때가 왔다.계속해서 뒷짐만 지고 있다가는 만에 하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상상을 뛰어 넘는 최악의 사태를 면치못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 기풍/서울­이론형/부산­공격형

    ◎월간바둑,프로기사 123명 출신지역별 분석/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의 호남은 실리파/대전엔 승부사 많고 경기는 두터운게 특징 프로기사들의 출신지역과 기풍과는 상관관계가 높다는 분석결과가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월간바둑이 최근 한국기원에 등록된 프로기사 1백23명을 대상으로 「출신지역과 기풍과의 함수관계」를 분석한 결과 나타났다. 36명(29.3%)의 프로기사를 배출한 서울은 이론적이며 깔끔한 도회지풍 바둑을 구사하고 있다.이는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여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유창혁6단·윤기현9단·백성호8단·양상국7단·홍태선7단·최명훈4단·이성재2단등이 대표적이다. 부산·경남 출신은 전체의 22%인 27명으로 서울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세력군을 형성하고 있다.경상도 특유의 기질로 투박하면서 싸움을 좋아하는 기풍으로 분류됐다.양재호9단·임선근8단·하찬석8단·강철민7단·김동엽6단등이 이 곳 출신이다.대구·경북은 5명의 기사를 배출,성격을 규정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김좌기·박상돈6단등이 대표적 기사. 전남북은 한국바둑의 맥을 형성하며 역사를 일궈낸 기라성 같은 기사들이 버티고 있다. 이 지역 기사수는 서울·부산·경남에 못미치는 24명(19.5%).그러나 조남철·김인·조훈현9단,이창호·최규병7단,정수현·강훈8단,권경언5단,이상훈3단등 면면이 한국바둑사와 궤를 함께하며 대물림해온 대표적인 인물들로 포진돼 있다. 이는 전라도지역이 정치·경제적으로 홀대를 받아왔기 때문에 자연히 문화·예술에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었던 때문으로 바둑전문가들은 풀이했다. 침착하고 장고하는 기사들이 많아 실리파가 주류를 이룬다.다만 광주 출신기사들의 경우 공격형이며 끈질긴 면모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충남북은 18명(14.6%)이 포진해 있다.충남은 다소 느슨하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유형이 많으나 대전은 치열한 승부사의 기질을 보인다.서봉수9단·황원준7단·고광명4단등이 대표적 기사.그러나 충북은 노영하7단 한명만 배출돼 바둑 불모지나 다름없다. 장수영·서능욱9단,유건재6단,김승준3단,김영삼초단등 12명(9.8%)이 속해있는 경기도는 두텁고 무난한 바둑을 두는 유형이 많으며 강원도는 5명의 기사가 나와 이렇다할 기풍은 찾을 수 없다.김수장9단·허장회7단·윤성현5단등이 있다.이밖에 중국출신 객원기사 오송생9단,한국국적을 취득한 황염2단,함남 함주 출신의 김수영6단등은 기타지역 출신으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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