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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면답변·대국민 해명 병행/두 전대통령,빠르면 오늘 공표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은 평화의 댐 건설및 율곡사업 감사와 관련한 감사원의 서면질의에 대해 빠르면 26일 경위설명식의 회신을 보내고 별도로 대국민입장발표를 하기로 했다. 전·노 두 전직대통령은 25일 측근들과 회의를 갖고 감사원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여부및 형식등을 논의한 끝에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측은 그러나 답변형식과 관련,감사원의 질의항목에 대해 일일이 답변하지 않고 평화의 댐 건설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경위등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아울러 전직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에 대한 입장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그동안 감사원의 서면조사에 대한 회신여부와 답변방법을 놓고 검토한 끝에 법리적 문제와 국민감정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감사원에 대한 회신과는 별도로 소명기회차원에서 국민들에게 해명키로 했다』고 말했다. 전씨측은 따로 기자회견등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대국민입장발표문을 각 언론사에 전달할 방침이다. 노전대통령측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에 답변서를 제출하고또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 전·노씨 금명 「해명서」 발표/답변서 감사원제출 배제안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이 평화의 댐 건설및 율곡사업감사와 관련한 감사원의 서면질의서와 관계없이 금명간 대국민해명서 형식의 입장을 밝힐 예정인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전전대통령의 측근들은 평화의 댐 건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해명서의 작성을 마무리했으며,노전대통령측도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기종이 F­16으로 변경된 경위를 설명하는 해명서의 작성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두 전대통령측은 대국민해명서를 발표한 뒤 감사원에 해명서나 답변서를 보내는 방안도 함께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전대통령이 23일 답변시한을 넘긴데 이어 노태우전대통령도 24일 감사원이 요구한 답변시한을 넘겼다. 감사원은 대국민해명서를 답변서로 인정할 수 없으며 두 전직대통령측이 끝내 답변을 거부할 경우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 감사원/연희동/조사절차 감정대립/답변시한 넘긴 두전대통령

    ◎“질의서 무시,해명서 발표” 강경/연희동/“노·전씨조사 반드시 관철”불변/감사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평화의 댐 건설과 율곡사업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의 실체를 밝혀보자는 당초의 감사의도는 실종된지 오래다. 대신 감사원과 두 전직대통령이 조사의 적법성과 절차문제등을 놓고 첨예한 감정대립을 벌이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전·노전대통령은 일단 감사원이 정한 답변시한인 23,24일을 넘겼다. 두 전대통령측은 이날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아직 답변여부 등에 대한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연희동의 기류는 감사원의 질의서를 무시하고 대국민해명서를 발표하는 강경대응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정해창전비서실장을 비롯한 노전대통령의 참모들은 대국민해명서 문안을 이미 마무리지어 놓은 상태다. 해명서는 원고지 10여장 분량으로 차세대전투기 기종을 F­16으로 결정하게된 경위 뿐만 아니라 답변 거부의 정당성도 담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전전대통령측도 안현태전경호실장과 이양우법률고문,민정기비서관등이 참여해 원고지 20여장 정도의 대국민해명서를 준비해놓고 발표시기와 방법등을 고려하고 있다. 전전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국가안보를 위해 평화의 댐 건설은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씨의 한 측근은 『답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그러나 꼭 다수의 입장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답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연희동측이 이처럼 답변거부 불사라는 강경한 입장을 나타내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결국 칼자루는 감사원이 쥐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묻고있다. 즉 두 전직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조사에 응한다 하더라도 답변이 성에 차지 않을 경우 재조사를 시도하고 결국 두 전직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또 연희동측은 감사원의 서면조사를 거부해 고발을 당하더라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눈치다.이미 12·12사태와 관련,검찰에 고발당한 상태이기도 하다. 전·노전대통령은 또 감사원의 「점잖지 못한」 대접에 적잖이 격앙된 것으로 보인다. 『상왕인줄 착각하고 있다』『동문서답하면 다시 조사하겠다』는 감사원의 한마디 한마디가 연희동측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황영하사무총장의 『답변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는 말이 전해지자 연희동의 한 관계자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감사원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두 전직대통령이 답변시한을 넘긴 24일 『하루 이틀 늦는 것은 상관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담담한 반응이면서도 연희동쪽의 기류에 매우 신경을 쓰는 눈치. 그러나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감사원의 방침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평화의 댐,율곡사업감사는 그동안의 감사과정은 묻혀버린채 전직대통령의 감사거부,이에 대한 감사원의 전직대통령 고발이라는 엉뚱한 결말로 끝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 「율곡·평화댐」 통치행위 공방/전씨 어제,노씨 오늘이 답변시한

    ◎전대통령/“국가안보 차원… 주내 입장표명”/감사원/답변 재촉구… “불응땐 고발방침” 감사원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간에 대통령 재직시 업무에 대한 감사의 타당성여부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계속하고 있다. 평화의 댐,차세대 전투기사업과 관련해 감사원의 서면질의를 받은 전·노전대통령측은 각각 답변요구시한인 23,24일과는 별도로 답변여부를 포함한 자신들의 입장을 금주중 밝힐 예정인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그러나 감사원은 전·노전대통령의 확실한 답변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답변여부와 형식등을 놓고 감사원과 두전직대통령 사이에 대립이 예상된다. 전전대통령측은 23일까지 답변하도록 되어있는 시한을 지키지않은 가운데 금주중에 「평화의 댐 건설은 국가안보에 관한 정책판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의 대국민 입장표명을 검토하고 있어 이 문제를 둘러싼 감사원과 전씨 사이의 신경전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평화의 댐 건설은 대통령의 재임중 안보에 관한 정책판단이며 감사원의 조사대상이 아니다』면서 『감사원의 서면질의에 답변하는 것은 정치적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노전대통령측도 정해창전비서실장등이 23일 대책회의를 가졌으나 답변시한이 너무 촉박해 아직까지 구체적인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반응만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두 전직대통령의 답변문제에 대해 일단 일정기일 동안 기다려본 뒤 재촉구하고 끝내 답변하지 않을 경우 감사원법에 따라 고발할 방침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 두 전대통령 조사불응땐 고발/감사원/답변내용 부실하면 다시 질의

    ◎평화의 댐·율곡사업 관련 감사원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이 평화의 댐및 율곡사업 감사와 관련한 서면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감사원법에 따라 고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21일 『두 전대통령측이 답변시한인 23,24일까지 답변서를 보내오지 않을 경우 일단 독촉을 하며 기다려볼 생각』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끝까지 답변이 오지 않는다면 방문조사를 시도해 본뒤 감사원법에 따라 고발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감사원법은 감사대상기관이 아닌 민간인에 대해서도 자료의 제출이나 출석답변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에 정당한 사유없이 불응할 경우 1년이하의 징역이나 1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답변 내용이 감사원의 질의내용과 다른 동문서답이라는 판단이 서면 질의서를 다시 보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연희동측이 언론을 통해 답변을 공표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해 『질의내용에 2급 비밀사항이 포함돼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언론을 통해 공표하더라도 감사원은 적법절차를 마치기 위해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율곡사업감사 과정에서 미 군수업체로부터 커미션수수가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 노전대통령의 계좌도 추적하려 했으나 계좌자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미국에 요청한 관련자료가 도착하면 내용을 검토해서 필요한 사항을 추가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아직까지도 질의서에 대한 답변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감사원이 정한 시한에 구애받지 않고 이번주안에 감사원 질의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전직대통령측은 당초 서면조사서에 답변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서면조사에 응하지 않는 방침을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예상된다.
  • 평화댐 국정조사 대상 13명/전 전대통령 포함 협상용의/민주

    평화의댐 진상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이석현의원은 21일 민자당 간사인 이긍규의원을 방문,전두환전대통령등 민주당이 선정한 국정조사 대상자 명단을 제시했다. 이석현의원은 『그러나 전전대통령 포함여부에 관해서는 협상할 용의가 있다』면서 내주초 소위를 소집할 것을 민자당측에 촉구했다. 민주당이 제시한 조사대상 증인은 전전대통령을 비롯,장세동(당시 안기부장) 이기백(〃국방부장관) 이규효(〃건설부장관) 이학봉(〃안기부2차장) 노신영(〃국무총리·댐건설추진위원장) 허문도(〃통일원장관) 정수창(〃댐건설지원 범국민추진위원장) 사공일(〃청와대경제수석)이규성(〃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이재명(〃건설부 수자원국장) 이희근(〃수자원공사사장) 최영박씨(〃토목학회장)등 13명,참고인은 성기수(〃과학기술연구소장) 안수한씨(전서울대교수)등 2명이다.
  • 12·12사태·율곡·평화의 댐 국정조사 대신 국정감사/민자 검토

    민자당은 12·12사태, 율곡사업, 평화의 댐등 3대안건의 국정조사와 관련,다음달 10일 개회되는 정기국회 이전에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벌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올 국정감사로 대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황명수사무총장은 20일 『국정조사를 시작하더라도 곧바로 국정감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때문에 여야합의로 국정조사계획서를 작성하더라도 실질적인 조사활동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황총장은 『국정조사와 국정감사는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황총장은 전직대통령 조사문제에 대해서도 『지난 88년 5공특위때 전두환전대통령의 1회 출석증언으로 5공문제를 마무리짓기로 합의했다』고 전제,『당시 합의는 어떤 의미에서 아직까지 유효하므로 전직대통령조사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일사불재이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조사불가입장을 분명히 했다.
  • 「꿈의 고속전철」 본궤도 오르기까지

    ◎정권따라 우여곡절… 20년만에 “햇빛” ○추진및 선정경위/73년 불·일 조사단,첫 건설 제의/6공때 구체화… 새정부서 “매듭” 「사상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건설공사는 지난 73년 12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사이에 프랑스와 일본의 국철조사단이 경부축의 장기수송대책으로 새로운 철도건설을 건의하면서 태동했다 그후 5년만인 79년2월 고 박정희대통령이 연두순시에서 고속전철계획과 관련해 장기 수송계획수립을 지시했었다.이 계획은 전두환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뀐뒤 처음 수립된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에 서울∼대전간 1백60㎞구간에 고속철도를 86년부터 89년 사이에 건설하는 것으로 반영됐다.그러나 2년후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을 수정하면서 경부고속전철건설은 타당성 조사를 실시한 후에 건설여부를 결정키로 해 첫 시행계획이 미뤄졌다. 이에 따라 지난 83년 3월부터 1년8개월간 교통부 주관으로 미국의 루이스버저사,덴마크의 캠프삭스사,국토개발연구원,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참여한 타당성 조사가 실시됐다.이 조사결과 경부간의 고속철도는 92년부터 97년사이에 개통되도록 건설공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이어 86년9월에 수립된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에는 기술조사계획이 반영됐으나 정권교체의 소용돌이 속에 다시 추진이 늦어져 89년7월에야 대통령령으로 고속전철 및 신국제공항건설추진위원회와 실무위원회가 각각 부총리와 교통부차관을 위원장으로 구성됐다. 정부내 추진위원회의 구성과 함께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다시 활기를 띠기시작,5개월 뒤인 89년12월에 철도청 직원 54명으로 고속철도건설 실무작업단이 발족됐고 90년6월에는 서울∼천안∼대전∼대구∼부산간 4백9㎞의 노선과 정류장 예정지역에 대한 토지투기 억제조치가 함께 발표됐다.이어 91년 2월에는 정부 10개부처 공무원 및 연구기관,금융계 등으로부터 파견된 1백40명의 요원으로 고속전철사업기획단이 설립됐다.그해 6월에는 노반시설설계에 착수했고 8월에는 고속철도 차량형식 선정을 위한 제의요청서가 일본·프랑스·독일 등 3개국에 처음으로 발송되었다. 92년3월에는고속전철산업기획단이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으로 전환,발족했고 6월에는 고속철도 세부노선이 확정,발표됐다.이어 6월30일에는 시험선 구간인 천안∼대전간 7개 공구 가운데 4개 공구의 노반공사가 착공됨으로써 본격적인 대역사가 시작되었다. 최초 건의로부터 20년만이고 정부내에 추진위원회가 구성된지 15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정권교체기에 접어들면서 차량형식 선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듭됐다.지난해 1월31일 처음으로 입찰제의서를 접수한 이후 정권교체 직전인 지난 2월22일까지 5차례에 걸쳐 수정제의서를 받아 검토,평가했으나 선정에 실패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새정부는 지난 6월14일 고속철도의 완공연도를 당초 98년말에서 2001년으로 3년을 연장하고 89년 가격으로 산정됐던 5조8천4백62억원의 투자비도 93년 가격으로 조정해 10조7천4백억원으로 확정하는 수정계획을 발표하면서 재개됐다.수정계획 발표 하루뒤인 6월15일 대상 국가 가운데 일본이 제외되고 프랑스와 독일로 압축된 가운데 제6차 입찰제의 요청서가 발송됐고 지난달15일 양국으로부터 제6차 수정제의서를 받았다. 정권의 교체때 마다 우여곡절을 거듭한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이번에 차종선정 대상국이 결정됨으로써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TGV 선택이유/독보다 가격 파격적으로 낮아 결정/평가만족도 85%… 기술이전등 앞서 경부고속철도 차량형식 수주문제를 놓고 2년여동안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독·불전쟁」은 결국 프랑스 TGV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에 TGV제작회사인 알스톰사가 차량형식계약을 위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차량 가격면에서 독일의 지멘스사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스톰사는 최종 6차 제의서에서 차량가격을 5차때 보다 약2억3천만달러나 대폭 낮춰 우리측이 요구한 총차량가격 23억달러 수준에 제일 가까이 접근했다. 이는 알스톰사가 스페인과 계약했던 총액수 보다 2억5천만달러,유럽통합노선총계약 보다 3억7천만달러가 낮은 가격이다. 알스톰사는 또한 ▲비용 ▲기술 ▲기술이전및 국산화 ▲영업분야등 4개부문의 3백2개 세부평가 항목에서도 지멘스사 보다 1백43개 항목에서 우세,1백5개 항목에서 우세를 나타낸 지멘스사를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독일측이 기술및 기술이전에서는 강세를 보였으나 경제성·금융조건·운영경험등의 부문에서는 프랑스에 뒤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알스톰사는 금융조건 면에서 ▲총 제의가격 전액 약정금융제의 ▲대출금액의 이자율및 수수료 대폭 인하 ▲건설기간중 발생되는 이자의 전액 원금화 조건을 제시했다.우리측이 두번째로 중시한 「기술이전및 국산화」부분에서도 ▲기술훈련및 지원확대 ▲기술이전 때의 모든 예외조항 삭제 ▲국산화율 대폭 확대등을 제시함으로써 전체 평가만족도가 85%선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알스톰사가 6차 제의때 우리측의 요구에 부응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수 있다. 첫째는 어떻게 해서라도 경부고속철도를 수주해 앞으로 대만·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의 고속철도 주도권을 획득하기 위한 것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두번째는 고속철도에 관한한 세계제일의 자리를 확고히하기 위해 독일의 추격을 뿌리치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TGV는 「프랑스의 자부심」「나폴레옹의 꿈」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랑스의 첨단기술이 집합된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81년 파리∼리옹간 4백30㎞ 구간에서 첫 운행을 시작한 이래 한건의 사고없이 2억명 이상의 승객을 실어날랐다. TGV는 최고시속 5백15.3㎞를 돌파,초고속 열차부문에서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최초로 2백70㎞의 속도로 상업운행을 하고 있으며 지난 90년 시속 3백㎞의 제2세대 아틀랜틱선을 개통했다.또 내년에는 런던∼파리간 해저터널을 운행할 계획이다. TGV는 최근의 국제입찰에서 1백% 수주실적을 올리기도 했다.스페인의 AVE를 비롯,벨기에와 영국이 기술도입을 결정했고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휴스턴∼댈라스∼산 안토니오를 잇는 58억달러짜리 대형 공사를 따냈다.지난 1월에는 유럽통합노선중 독일구간을 제외한 3곳(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에 TGV가 선정되었다. 철도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TGV는 에너지및 철도수송부문에서 두각을나타내고 있는 「GEC 알스톰사」의 제품이다.이 회사는 영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GEC)와 프랑스의 ALCALTEL ALSTHOM그룹이 각각 50%씩 출자,공동으로 설립했다. ○불 자존심 TGV/“철로위 비행기” 실용화후 큰 인기/“유럽도시 연결 눈앞” 기대 부풀어 프랑스에서 TGV(고속열차)는 에펠탑처럼 처음에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가 날이 갈수록 국민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주면서 찬사속에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도대체 그런 빠른 열차가 가능한가에서부터 그렇게 빠른 열차가 항공기 시대에 무슨 필요가 있는가,자연의 훼손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등의 의혹과 불신이 TGV 개발계획시기 이래 끊임없이 제기됐다.그러나 1981년 9월 첫 실용화이후 「철로위의 비행기」 TGV에 쌓이고 있는 찬사는 비난과 반대의 소리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91년 9월 TGV 주행10주년을 맞았을때 르 파리지앵지는 「TGV 삶」이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TGV가 프랑스인의 생활을 변화시켰다』고 지적한 이 기사는 그 변화를 「TGV 혁명」이라는 말로 나타내기까지 했다. 이 고속전철은 국민들에게 기존의 거리감을 바꾸게 했다.수도 파리에서 제2도시 리옹까지는 5백㎞의 거리지만 TGV로는 2시간 10분이면 가는 곳으로 가까워졌다.파리에서 2백㎞ 안팎이고 TGV역이 있는 도시들은 1시간쯤의 거리로 다가와 파리의 교외로 느껴지게 되었다.이른바 「교외의 확장」현상을 보게된 것이다.한국의 경우라면 대전쯤이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파리와 리옹 두 도시간의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변화는 기업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파리 소재 회사들 가운데서 넓은 공간과 낮은 관리비를 쫓아 리옹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이에 따라 리옹을 거점으로 하는 동남지방 일대의 개발이 촉진되는 등 산업배치의 재편성이 진행되고 있다.경제의 지방분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광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TGV가 닿는 곳은 더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TGV 요금은 비싼 편이지만 비행기 요금의 절반이다. 그러나 변화에는 명암이 있게 마련이다.파리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살게 된 TGV 1시간 통근권의 도시들에서는행정책임자들이 『우리 도시가 파리 부유층의 침실도시가 되어간다』고 걱정이다. TGV는 20세기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프랑스 국영철도회사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손님을 비행기와 자동차도로에 뺏겨 오다가 TGV 덕분에 회생했다.종전에 2대1이었던 철도의 화물대 여객 비율은 TGV 출현 10년만에 완전히 반전됐다.이는 여객수송 수단으로서는 퇴색일로에 있던 세계 철도역사에 놀란만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유럽의 도시들이 TGV로 연결되리라는 꿈도 현실화의 문턱에 와 있다.멀지않아 파리서 런던은 2시간10분,베니스는 5시간30분이면 가게 된다. ▷고속철도사업 일지◁ ▲73년12월=프랑스및 일본국철조사단이 새로운 경부철도건설 제의 ▲78년11월=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새로운 경부철도건설 건의 ▲79년2월=대통령연두 순시서 장기수송대학 수립지시 ▲81년6월=「제5차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에 서울∼대전간 고속철도건설계획 반영 ▲83년3월=서울∼부산고속철도건설 타당성 조사 착수 ▲86년9월=제6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에 기술조사계획 반영 ▲89년7월=대통령령으로 고속철도및 신국제공항건설추진위규정 제정 ▲89년7월∼91년2월=경부고속철도 기술조사및 기본설계시행 ▲89년10월=고속철도 국제심포지엄서울서 개최.11개국 1백명 참가 ▲89년12월=철도청직원 54명으로 고속철도건설 실무작업단 발족 ▲90년6월=서울∼부산고속철도노선 확정발표 ▲91년2월=고속전철사업기획단 설치 ▲91년6월=노반시설설계 착수 ▲91년8월=차량형식선정을 위한 제의요청서(RFP)일본·프랑스·독일에 발송 ▲92년3월=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발족 ▲92년6월=천안∼대전간 7개 시험선구간중 4개 구간 공사 착공 ▲93년6월=경부고속철도계획수정안 발표.일본 신간선 제외 ▲93년7월=프랑스·독일로부터 최종(6차)수정제의서 접수
  • “「평화의댐」·「차세대기」사업 관련/수공위협·기종정보 조작 의혹”

    ◎감사원의 전·노 전대통령 서면질의서 지적/안기부선 “88위협 없다”보고/분석자료 미GD사것 그래로 지난 86년 안기부가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이 88 서울올림픽 개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정보판단을 내렸으나 5공정권의 핵심부가 평화의 댐 건설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수공위협에 대한 정보를 고의적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89,90년 당시 노태우전대통령에게 보고된 차세대전투기 기종에 대한 분석자료의 대부분이 F­16을 제작한 미 제너럴다이내믹스사의 논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의혹을 받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감사원이 지금까지의 감사결과를 토대로 최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게 보낸 서면질의서에서 지적됐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86년 당시 안기부는 금강산댐 건설 진척속도,담수기일등을 고려할 때 88올림픽개최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자료를 보고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당시 권력핵심부는 이를 무시하고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수공위협을 이유로 국민성금을걷는등 대국민홍보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안기부의 이같은 분석이 전전대통령에게도 보고됐는데 그가 어떤 판단에서 평화의 댐건설을 최종결정 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와 함께 금강산댐 높이가 정부 발표대로 2백15m까지 지을수 없다는 정황증거를 당시 안기부가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감사과정에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또 『차세대전투기 기종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비서진이 올린 자료를 검토하니 대부분 F­16 제작사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자료를 인용하고 있었다』면서 『미국에 체류중인 김종휘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에게 자료 작성과정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노전대통령에게 어떻게 판단을 내렸는지를 질의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질의는 평화의 댐 건설과 차세대전투기사업 과정에서 정보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어서 두 전직대통령의 답변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정치특위 23일 가동/여야 당3역회담서 합의

    민자·민주 양당은 19일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국회의 국정조사활동과 관련,「민주당이 구체적이고 상세한 조사계획서를 관련 상임위에 제출하면 여야가 이를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민자당의 황명수사무총장 초청으로 김종호정책위의장·김영구원내총무,민주당의 김대식총무·김병오의장·김덕규총장등은 이날 시내 M음식점에서 3역 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하는 한편 통신비밀보호법·안기부법등을 다루는 국회 정치특위를 23일부터 본격 가동,실질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도록 양당이 계속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김대식총무를 통해 발표했다. 김총무는 또 『국회 운영에 있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원만한 운영이 이뤄져 생산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며 3역 회담을 자주 가질 것등을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담결과를 발표하면서 민주당의 김총무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국정조사와 관련,『조사범위등 구체적인 조사대상인물을 제시해 조사권이 착수되도록 합의했다』고 말한 데 이어 『현단계에서 전직 두 대통령을 조사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충족 안될 수도 있다』고 말해 조사 초기단계에서 전직 두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반드시 고집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민주당의 김의장은 『민주당은 이미 조사계획서를 작성해 놓고 있다』고 밝히고 『빠르면 이번 주안에 조사계획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해 다음주부터는 국정조사계획서 작성 작업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 “사면됐어도 벌금은 내야”/이창석씨에 8억납부 통보(조약돌)

    ○…서울지검은 19일 지난해 특별사면된 전두환전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41)가 『사면됐으므로 미납벌금 8억원을 납부할 필요가 없다』며 이의신청을 낸데 대해 『당시 사면이 벌금부분에까지 효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이씨측에 벌금을 납부하도록 통보했다. 이씨는 지난 88년 자신이 운영하던 (주)동일의 회사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함께 벌금 15억원의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같은해 12월24일 특별사면으로 형선고실효의 조치를 받자 미납벌금 8억원을 납부하지 않고 지난 5월 이의신청을 냈었다.
  • 전 대통령 회답없으면 감사결과 시인 간주/평화댐·율곡특감

    감사원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에게 보낸 질의서에 대한 회답이 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만으로 감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감사원의 황영하사무총장은 18일 『두 전직대통령이 질의서에 답변을 하지 않으면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묵시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그럴 경우 지금까지의 조사만으로 판단해 처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질의서 재발송등 후속조치가 없을 것임을 밝혔다. 한편 감사원은 차세대전투기사업에 대한 감사과정에서 10여건의 부당사항을 적발했으며 이 가운데는 기종선정 및 변경을 둘러싼 금품수수 혐의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오늘 여야 3역회담/12·12­「율곡」 등 국정조사 논의

    민자·민주양당은 19일 하오 당3역회담을 갖고 금융실명제 실시에 따른 새로운 정치 풍토조성과 12·12,율곡사업,평화의 댐건설등에 대한 국정조사문제등 정치 현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여야는 이날 회담에서 깨끗한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당법과 각종 선거법,정치자금법등 정치관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오는23일 재개되는 국회정치관계법 심의특위를 통해 조속히 법개정을 한다는 데 쉽게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여야는 또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을 뒷받침하기 위해 올 정기국회에서 입법화한다는데도 의견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문제로 진통을 겪고있는 3대안건에 대한 국정조사활동 문제에 있어서는 양당간의 입장차이로 논란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 “「12·12」는 정권노린 쿠데타”/장태원씨,고소인조사서 주장

    「12·12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17일 장태완전수경사령관을 소환,이틀째 고소인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날 장씨를 상대로 ▲12·12사건 당일 합수본부장인 전두환소장이 마련한 술자리에 초대받아 가게된 경위 ▲병력출동 상황 및 신군부측과 대항군이 무력충돌을 벌이게된 경위 ▲강제 연행된 경위 등에 대해 집중조사했다. 장씨는 검찰조사에서 『전소장이 12월12일 식사나 하자며 나와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작고)과 김진기육본헌병감을 연희동의 한 요정으로 불러 모은 뒤 그 사이에 무장병력을 한남동 육군참모총장공관으로 보내 정승화총장을 연행했다』면서 『이는 정권장악을 위한 사전각본에 따른 것으로 명백히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고 주장했다.
  • “대통령 행위도 감사” 성역타파 선례로/두 전대통령 서면조사 안팎

    ◎질의내용 실효성 놓고 과잉조치 논란/감사원,“사법처리 아닌 소명기회 제공” 감사원이 결국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감행했다. 「성역없는 사정」이라는 원칙과 전직 통치권자 예우라는 현실적 부담사이에서 고민하던 감사원이 일단 원칙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직대통령이 재임중 수행한 업무와 관련,사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뚜렷한 범법,비위혐의가 없더라도 대통령 재임중 수행한 업무가 국민의 의혹을 산다면 조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질의서를 받은 연희동의 두 전직대통령측은 『감사원이 굳이 조사하겠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다』면서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내용을 충분히 검토,감사원이 제시한 시한까지 답변서를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다만 두 전직대통령측은 감사원의 조사가 검찰의 12·12사태 고발사건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실시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감사원은 전직대통령 조사가 정치적 쟁점이 되는 것은원하지 않고 있다. 『감사를 시작한 마당에 최고 책임자에 대해 질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서면조사의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 같다. 전직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성역으로 인정하지 않는 측에서도 감사원이 전직대통령측에 보낸 6,7개 문항이 과연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까지 벌여야 할 사안이었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전대통령에게 질의한 평화의 댐 건설의 필요성·시기·규모의 결정근거 및 타당성등은 실무진에 대한 조사와 수리검증만으로도 입증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의견이 감사원 내에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차세대전투기사업 감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노전대통령에게 보낸 질의서도 기종변경지시의 근거와 타당성같은 부분을 담고 있으나 지난달 9일 이회창감사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암시했던 커미션 수수문제는 질의항목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이번 조사는 내용보다는 「전직대통령을 조사했다」는 선례를 남기기 위한 시도라는 인상이 짙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사원도 이러한 점을 인식,『고발 등 사법처리를 위한 감사가 아니라 소명기회를 주는 형식』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연희동측은 바로 이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별히 물어볼 것도 없으면서 전직대통령을 조사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하는 지적인 것이다. 별개의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시기를 맞춘 것도 개운치 않다.감사원은 미국에 요청한 율곡사업 관련자료를 기다린다는 명분아래 조사시기를 미뤄왔다.이는 다분히 전직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매여 서면조사가 이루어졌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감사원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착수 결정 못지않게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될 것 같다.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통해 율곡사업·평화의 댐 감사가 내실있게 마무리된다면 감사원이 사정에 좋은 선례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을 것이다.그러나 전직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실효성없는 시도였던 것으로 나타날 경우 감사원은 『무엇을 위해 조사했느냐』는 비판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 두 전대통령 서면조사 착수/평화댐·「율곡」관련

    ◎감사원,이미 질의서 보내/“소명차원 답변 하겠다”/전·노씨 평화의 댐및 율곡사업 감사와 관련,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측이 감사원의 서면조사에 응할 뜻을 밝혀 금명간 특별감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감사원은 17일 차세대전투기사업 감사와 관련,노전대통령에게 기종변경 지시의 근거와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7개항의 질문서를 보냈다. 감사원은 이에 앞서 16일 하오 전전대통령에게 질문서를 보내 댐 건설의 필요성과 시기및 그 규모에 대한 결정근거등 6개문항을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두 전직대통령측은 서면질의가 비리조사가 아닌 소명기회 제공차원이라는 점에서 질의에 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17일 『오늘 상오 서면질의서를 받았다』고 확인한뒤 『차세대전투기 기종선정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소명기회 차원에서 답변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질의에 응할 뜻임을 시사했다.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도 『서면질의내용을 분석한뒤 회신여부등 대응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으나 서면질의를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감사원은 각각 2명의 감사관을 두 전대통령의 자택으로 보내 비서관에게 질의서를 전달하며 전전대통령은 23일까지,노전대통령은 24일까지 답변을 해주도록 요청했다. 감사원은 두전대통령으로부터 회신을 받은뒤 오는 31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감사결과를 최종확정,발표할 예정이다.
  • 정승화 전총장 소환조사/검찰,12·12고발관련

    ◎최 전대통령도 환문 방침 「12·12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조준웅부장검사)는 16일 이 사건의 고소인22명가운데 첫번째로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을 소환,조사했다. 정전총장은 검찰조사에서 『12·12 사태는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소장 등 하나회 핵심세력들이 정권을 빼앗기 위해 군병력을 동원,육군참모총장을 불법 구금하고 최규하전대통령을 협박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반란행위인만큼 관련자들은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정전총장을 조사한데 이어 17일 장태완전수경사령관,18일 김진기전육본헌병감·하소곤전육본작전참모부장,19일 문홍구전합동참모본부본부장,23일 이건영전3군사령관을 차례로 불러 조사키로하는 등 고소인 전원에 대한 조사를 이달안에 마칠 계획이다. 이들 고소인조사를 마무리지은뒤 최규하전대통령과 노재현전국방부장관·신현확전국무총리·최광수전대통령비서실장 등 국가통치 및 군지휘계통에 있던 인사들도 소환,참고인 조사를 할 방침이다.
  • 두 전대통령 서면조사문/빠르면 내일께 전달

    ◎감사원,평화의댐·율곡 관련 감사원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 방침을 확정하고 평화의 댐 건설및 율곡사업의 추진과 관련한 질문서 작성을 마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감사원은 오는 18일안에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마칠 방침이다. 이는 전직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사정기관의 첫 조사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노전대통령에 대한 질의서는 차세대전투기사업의 기종이 F­18에서 F­16으로 변경된 경위와 그 판단경위에 대한 질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전대통령에 대해서는 북한 금강산댐의 수공위협 판단의 근거및 대응댐 건설 결정과정등을 질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전직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이달안에 감사결과를 정리,발표할 계획이다.
  • 「12·12사태」법적평가 본격화/정승화씨 소환 계기로 본 수사전망

    ◎검찰,고소인 22명 진출 월내 매듭/「핵심」 두 전대통령 처리여부 관심 검찰이 16일 「12·12사태」의 피해당사자인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을 소환·조사함으로써 당시 사태에 대한 본격적인 법적 평가작업이 시작됐다. 이에따라 우리 현대사 흐름의 한 분수령이 됐던 「성공한 쿠데타」에 대해 어떤 법률적 심판이 내려질지와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등 「12·12사태」주동자들에 대한 조사및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말 재야인사들이 냈던 전·노전대통령등 12·12 관련자들의 「고발」은 무혐의 처리됐지만 이번의 경우 문민정부 출범이후 김영삼대통령에 의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데다 고소인들이 당시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어서 수사여건이 전혀 다른 상황이다. 현재 검찰에 접수된 「12·12사태」관련 고소·고발사건은 모두 7건으로 검찰은 그동안 3천여페이지에 달하는 88년 국회청문회 당시의 속기록과 언론보도등 관련자료에 대한 검토작업을 마친 상태이다. 검찰은 이날 정전총장을 시작으로 장태완전수경사령관·김진기전육본헌병감등 고소인 22명을 이달말까지 차례로 불러 당시 사태의 배경과 진행과정등을 진술받을 계획이다. 검찰은 고소인 조사가 마무리되는대로 주요 참고인들을 선정, 조사한뒤 다음달 중순부터는 피고소인 56명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검찰은 이들 참고인과 피고소인 조사를 통해 ▲79년 10·26직후 당시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소장이 12월12일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기 위해 병력을 어떻게 출동시켰는지의 여부 ▲이 과정에서 정권탈취를 위한 사전모의가 있었는지의 여부 ▲총기 사용이 불가피했는지의 여부 ▲최규하대통령의 재가 여부등을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특히 다른 관련자들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을 경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는 것이 청와대측의 한결같은 입장이어서 실제 두 사람에 대한조사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조사를 하게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상 소환조사 보다는 서면 또는 방문조사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검찰주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또 당시 군통수권자인 최전대통령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참고인 조사를 할 지도 관심거리다. 정전총장의 연행 사실을 사후 추인한 최전대통령의 행위가 강요와 협박에 의한 것이었는지 또는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한 자의적 판단인지에 따라 당시 사태의 성격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공 청문회 때도 증언을 거부했던 만큼 조사방침이 서더라도 최전대통령의 증언을 받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 고소인·참고인·피고소인을 순차적으로 조사,사실관계를 확정한뒤 「12·12사태」에 대한 최종적인 법률적 평가를 내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12·12사태가 법률적 불법행위로 밝혀지더라도 전·노 전대통령등 피고소인들에 대한 사법처리여부를 놓고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 82년 대두… 11년만에 “햇빛”/실명제실시 있기까지

    ◎장영자사건 치유책으로 첫 거론/5·6공땐 기득권측 반발로 불발 금융실명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뒤 11년만에 빛을 보게 됐다.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당시 각각 논의만 된 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금융실명제가 드디어 난산 끝에 실시하게 된 것이다.금융실명제는 미국 독일 등 일부 선진국만이 실시중이며 일본은 도입에 실패한 제도이다. 금융실명제는 지난 82년 5월 장영자사건의 치유대책으로 공식적으로 논의됐다. 이에 앞서 지난 81년 개혁성향의 경제관료들이 그 필요성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었다.이어 82년 7월3일 강경식재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했다.당시 전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찬성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2년9월 전전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반대론이 우세해 실명제의 조기시행 불가쪽으로 갑작스럽게 전환됐다.당시 당정협의회에서는실세였던 허화평정무수석과 허삼수사정수석이 강력 반대를 주장했고 김재익경제수석과 강장관만이 외롭게 실명제의 조기실시를 주장했다.이에 앞서 민·관·정의 견해 조율과정에서도 실명제 부작용 주장이 우세했다.당시 노태우내무장관이나 집권세력의 돈줄로 알려진 이원조석유개발공사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시행에 찬성하는 듯 했던 김준성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권익현당시민정당사무총장·이종찬원내총무등 실세 국회의원들도 반대는 마찬가지였다.대부분이 반대를 보이자 전대통령은 5년간의 연기쪽으로 결정을 내렸다.초기에는 찬성이 우세했으나 결국은 기득권층의 반발로 실패한 셈이다. 금융실명제는 그이후 지난 10여년간 이러한 실시시사·불가라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지난 83년1월 행정준비사항과 경제적여건을 고려해 86년1월 이후로 시행을 유보하기로 했다.그뒤 금융실명제는 유야무야됐으며 지난 87년12월의 대통령직접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권후보들은 실명제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노태우후보가 당선된뒤 지난 89년4월 재무부내에 「금융실명제거래 실시준비단」이 발족됐다.그러나 이승윤부총리는 지난 90년3월 금융실명제 유보를 시사했다.지난해 7월 정보사 땅 사기사건으로 금융실명제가 또 다시 거론됐으며,8월 전경련 일부에서 금융실명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후보는 실명제의 조기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지난 2월 김영삼정부가 출범한뒤 금융실명제가 본격 거론됐다.3월3일의 경제장관회의에서는 5월초까지 금융실명제 시행방안을 마련키로 결정했으며 3월5일 홍재형재무장관은 5월말까지 금융실명제 실시방안을 마련한 뒤 이를 추진할 「금융실명제 실시단」을 구성해,반드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뒤 금융실명제는 잠시 주춤했으나 그동안 정부·증권가·재계에서는 김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 전격실시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최근 증권가에는 공직자의 재산등록이 마감된뒤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으며 전격실시를 발표한 12일에도 증권가에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이날 발표한다는 얘기가 나돌았었다.증권가의 정보가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정치·경제·사회적인 여건에 따라 도입 및 정착과정·주요내용등은 다소 다르다.미국·영국·프랑스등은 법제화시키지 않고 오랜 관행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반면,독일은 조세징수법이라는 강제수단에 의존하고 있다.일본은 뒤늦게 그린카드제를 주축으로 법제화시켜 금융거래의 실명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금융실명제 도입 약사 ▲61.7:「예금,적금 등의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제정으로 비실명주의 허용 ▲82.5:거액어음 부도사건(장영자사건)의 치유대책으로 금융실명제 논의 ▲83.1:행정준비사항과 경제여건 고려해 86.1.1이후로 시행 유보 ▲89.4:「금융실명거래 실시준비단」발족 ▲90.3:이승윤부총리 금융실명제 유보시사 ▲92.7:정보사 토지사기사건 발생으로 금융실명제 거론 ▲92.8:전경련 일부에서 금융실명제 논의 ▲92.12:김영삼차기대통령 선거공약에서 금융실명제 조기실시 공약 ▲93.2:김영삼차기정부팀 금융실명제 본격 거론 ▲93.3.3:경제장관회의에서 5월초까지 금융실명제 시행방안 마련 결정 ▲93.3.5:홍재형재무부장관,5월말까지 금융실명제실시방안 마련후 이를 추진할 「금융실명제실시단」구성하여 반드시 실시할 것을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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