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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국회상위장­특위장­사무총장 프로필

    ◎김덕규 행정경제위/말솜씨 좋은 외유내강형 3선 재주와 말솜씨가 빼어난 외유내강형의 3선의원. 6·3세대로 구신민당 송원영원내총무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제11대 때 민한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발발이」란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에 열성적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야당사무총장을 무난히 수행한 것이 이번 발탁의 배경이라는 관측. 부인 이정이(51)씨와 사이에 2남. ▲전북 무주(53) ▲고대정외과졸 ▲11·13·14대 의원 ◎이영권 교육위/교수출신 집념형… 지자에 밝아 80년 신군부가 득세하자 광운대 교수을 떠나 민권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당시 전두환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외곬수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나 집념 하나만은 알아준다는 평가. 당 지자제특위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지방자치문제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당내 비주류로 김상현고문과 친하며 이번 국회직 인선에서도 비주류몫으로 상임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이 정설. 부인 오금련씨(55)와 사이에 1남. ▲전남 장흥(58) ▲조선대 법대졸 ▲민권당대변인 ▲12·13·14대 의원 ▲민주당 전남지부장·당무위원 ◎박상천 보사위원장/정연한 논리·예리한 분석 강점 검사출신의 논리가 정연한 재선의원.민자당의 박희태법사위원장과 고시 13회 동기로 13대 때는 두사람이 여야 대변인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용호상박의 입씨름을 벌이기도.탁월한 법률지식 못지 않게 정치감각도 수준급. 현안에 대한 분석이 예리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소신이 너무 강하고 지나치게 다혈질이라는 지적. 부인 김금자씨(45)와 사이에 1남2녀. ▲전남 고흥(56) ▲서울 법대 졸 ▲순천지청장 ▲13·14대의원 ▲신민당 대변인 ▲국회법률특위간사 ◎조순승 상공자원위/진솔한 성격에 당내신망 높아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박사 출신의 야당내 외교통일문제 전문가.미국에서 오래 교수생활을 하다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의 권유로 고향인 전남 구례·승주에서 당선된 재선의원. 소탈한 외모대로 담백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당내에서 두루 신망이 높다.미국 조야에 지인이 많아 대미통상문제를풀어 나가는데 역할이 기대된다는 평가.부인 김덕애씨(64)와의 사이에 1남1녀. ▲전남 승주(65) ▲서울대 정치학과졸 정치학박사 ▲미 미조리대 교수 ▲13·14대 의원 ▲민주당 통일국제위원장 ◎홍사덕 노동환경위/이지적 풍모의 「차세대 정치인」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능란한 화술이 돋보이는 3선.중앙일보 기자출신으로 제12대 때는 신민당 대변인으로 특유의 정치적 감각을 발휘,이민우총재의 「삼양동정치」를 좌우한다는 평판속에 양금의 눈총을 받기도.13대 때는 무소속으로 서울 강남을에서 출마,낙선했으나 14대에서 설욕하는 저력을 보이며 차세대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부인 임경미씨(51)와 사이에 1남2녀. ▲경북 영주(51) ▲서울대 외교학과졸 ▲한국기자협회부회장 ▲11·12·14대 의원 ▲신민당대변인 ▲구민주당부총재 ◎장경우 체신과학위/인선직전 입당… 실리밝은 3선 27일 밤 민주당 전격입당으로 상임위원장을 차지할 정도로 실리에 밝은 3선.막판까지 통합신당의 원내총무직과 민주당 상임위원장직을 저울질 하다 민주당쪽을택했다. 제11대 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13·14대 안산·옹진에서 연속 당선.지난 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 때 이종찬후보진영에 가담,이의원과 함께 새한국당을 창당했으나 끝내 이의원 곁을 떠났다. 부인 김수복씨(47)와의 사이에 3남. ▲경기 시흥(52) ▲고대 경영대졸 ▲11·13·14대의원 ▲민자당 제1사무부총장 ▲새한국당 사무총장 ◎최락도 사무총장/원만한 성격·논리 대응력 겸비 모나지 않은 성격이면서도 논리적 대응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3선의원.특정 계보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스타일. 두번째 출마한 11대 총선에서 아깝게 낙선하자 득표가 저조했던 지역에서 리어카행상을 하며 선거운동을 벌인 집념의 정치인. 3군데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한 학구파.부인 강금순여사(56)와 사이에 2남2녀. ▲전북 김제(56) ▲중앙대 법대 졸 ▲5공특위 간사 ▲민주당 전북도지부장 ▲민주당 당기위원장 ▲12·13·14대 의원 ◎이우정 여성특위/인권·여송운동 헌신 재야 출신 인권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평생을 바쳐온재야출신 원로이면서도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령에도 불구,아직도 목소리가 앳되어 인기. 70년대 3·1구국선언등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초대 여성단체연합회장을 역임하는등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아 신설된 국회여성특위 위원장감으로는 최적격이라는 평가.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신소설 「자유종」의 작가인 이해조씨의 손녀로 독신이다. ▲경기 포천출신(71) ▲한신대졸 ▲서울여대교수 ▲여성단체연합회장 ▲신민당수석최고위원 ▲민주당최고위원·당무위원
  • 국회 의장단·상위장·특위장 내정자 프로필

    ▷황낙주 의장◁ ◎5척 단구… 6선의 상도동계 원로/유신시절엔 「명총무」 명성… 독서광 5척 단신에 야무진 면모를 풍기는 재사형.70년대부터 김영삼대통령과 정치노선을 같이 해 온 상도동계 원로.제7대 때 정계에 입문했으나 낙선,8대에 원내에 진출한 뒤 정치규제에 묶인 11대를 빼고 6선을 기록.사무실에는 일본어책이 잔뜩 쌓여있는 독서광으로 학구적인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는 뛰어난 대중연설가라는 중평. 지난해 박준규전국회의장이 재산공개파문으로 물러난 뒤 강력한 후임자로 거론됐으나 막판에 이만섭의장에 양보.그러나 권토중래 끝에 민주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이번에 입법부 수장에 내정됐다.지난해 예산안파동 때 이의장 대신 강행을 하려다 야당 의원들로부터 수모를 당한 점이 부담이었으나 극복에 성공. 유신시절이던 10대 때 야당의 원내사령탑을 맡아 당시 김영삼총재 제명파동의 와중에서 당의 결속에 주도적 역할을 한 「명총무」로 평가되고 있다.당시 여당 총무를 세번이나 바뀌게 할 정도로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79년 YH여공사건 때 김총재와 함께 폭력진압에 항거하다 병원신세를 진것을 비롯,부마사태,김총재 연금및 단식투쟁등 역사적 사건 때마다 김대통령을 보좌해와 누구보다 그의 의중을 잘 읽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지금도 김대통령이 사석에서는 「황총무」라고 부를 정도로 그 때의 역할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5·17 때 계엄군이 점령한 국회의사당을 뚫고 들어가다가 계엄군에게 수난을 당한 일화는 외국에까지 알려진 사실. 경남 진해여중고 교장으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이승만독재 정권의 부당성을 고발,주목되기도 했다.군납부정과 관련한 환금장유사건을 폭로한 것이 김대통령과 인연을 맺게한 계기가 됐다. 부인 이재옥여사(56)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남 진해(66) ▲서울 상대 ▲일본 와세다대학원수료 ▲신민당 부총무·총무 ▲국회동자위원장 ▲민자당 중앙상위의장 ▲국회부의장 ▲8,9,10,12,13,14대 의원 ▷이춘구 부의장◁ ◎사심없는 일처리… 「동상」 별명 사심 없는 처세와 칼날 같은 업무처리로 「5·6공」을 두루 권력의 핵심부에서 활약한 「원칙주의자」.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동상」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그러나 성품은 청렴하면서도 담백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문민정부 출범후엔 두드러진 활동이 없었지만 그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호감으로 미루어 언젠가는 적절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됐었다.지난 92년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때 사무총장으로서 전당대회를 엄격하게 관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는 것.제13대 대선 선거대책본부장,14대 대선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아 「대통령만들기」에 솜씨를 보였다. 부인 문춘자여사(54)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북 제천(60) ▲육사졸(14기) 육군준장 예편 ▲사회정화위원장 ▲내무장관 ▲민정당 사무총장·대통령선거대책본부장 ▲13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민자당 사무총장 ▷홍영기 부의장◁ ◎항상 꼿꼿한 자세… 77세의 5선 희수(77)를 눈앞에 둔 나이에도 의정활동이나 개인생활등에서 노익장의 대명사로 불리는 5선의원. 지난 55년 민의원 국방위전문위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뒤 60년 전북 순창에서 제5대 민의원으로 의정생활을 시작.지금까지 변변한 감투를 쓴 적이 없어 이번에 소원을 성취한 셈.지난번 야당몫 부의장 결정과정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다른 2명의 경합자를 예상밖으로 제쳐 「어부지리」라는 말도 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잘됐다』는 것이 당내의 중평. 11·12대때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를 못했으나 80년대 중반 「민추협」부의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복귀.고령에도 항상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옷맵시도 뛰어나 여의도에서는 멋쟁이 신사로 통한다.부인 백수임여사(78)와의 사이에 1남4녀. ▲전북 순창(76) ▲일본 동북대졸 ▲육본 법무차감 ▲5,6,8,13,14대 의원 ▲민추협 부의장 ▲민주당 고문겸 당무위원 ▷박희태 법사◁ ◎대변인 4년… 뛰어난 화술명성 순발력있는 화술과 재치로 집권당의 최장수 대변인(4년 3개월)을 역임했다.고시 13기의 선두그룹을 달린 검사출신. 88년 초선의원으로 민정당 대변인에 발탁된 이래 정곡을 찌르는 화법과 명담을 날려 TV토론에 단골 초청멤버로 자리를 굳혔다. 김영삼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으로 지난해 문민정부첫 법무부장관에 기용됐으나 딸의 특례입학 시비로 도중하차한 쓰린 기억을 갖고 있다.부인 김행자여사(53)와의 사이에 2녀. ▲경남 남해(56) ▲서울법대 ▲미버클리대 수학 ▲춘천·대전·부산지검장 ▲부산고검장 ▲13,14대의원 ▲민정당·민자당 대변인 ▲법무부장관 ▷심정구 재무◁ 인천의 부두하역전문회사인 선광공사 사장을 지낸 재력가로 3선. 원만한 성격에 합리적 처신으로 대인관계가 좋다.재무위원과 재무위 간사를 지낸 재무통. 원래 이번 국회직 인선의 초기과정에서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인천출신 서정화건설위원장이 물러난 데 따른 지역배려차원에서 기용됐다는 분석. 유신시절 1,2대 통대의원을 지내면서 정치에 뜻을 품었다고. 부인 이명희여사(59)와의 사이에 1남3녀. ▲인천(62) ▲서울대상대 ▲한국관세사회장 ▲민정당 재정위원장 ▲국회재무위 간사 ▲민자당 인천시지부위원장·당무위원 ▷양창식 농림수산◁ ◎육사출신… 월남전 겪은 학구풍 민자당의 불모지인 호남지역에서 3선을 기록,탁월한 지역구 관리능력을 입증한 중진.육사10기 출신으로 6·25와 월남전을 겪었으며 학구열도 대단한 호인풍의 무골. 민자당 대선 후보경선때 이종찬진영에서 활동하기도.지역안배차원에서 중용은 미리부터 예상됐으며 대통령직 인수위때 농수산분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에 농림수산위원장에 발탁.육사에서 전두환전대통령을 교육한 인연때문에 5공에 참여. 부인 박인옥여사(62)와의 사이에 3남2녀. ▲전북 남원(64) ▲육군준장 예편 ▲강원대·동국대 행정대학원 ▲이리직업훈련원장 ▲국회교체위원장 ▷신상우 정보◁ ◎언론인 출신의 상도동계 6선 언론계 출신의 상도동계 6선의원.지난해 32년만의 첫 문민출신 국방위원장에 임명된데 이어 이번에 신설된 요직의 정보위원장에 중용되는 행운을 차지.80년 신군부집권 당시 민한당 산파역을 맡아 부총재등을 지내고는 12대때 낙선을 맛본뒤 상도동에 재합류. 지난해 율곡사업 국정조사등을 무리없이 이끈 솜씨를 인정받았다.황명수의원의 국방위원장기용에 따라 정보위원장으로 발탁.부인 조정강여사(53)와의 사이에 3남. ▲경남양산(57) ▲고려대 정치학과 ▲부산일보기자 ▲민한당 사무총장·부총재 ▲민추협부의장 ▲국회보사위원장 ▲8,9,10,11,13,14대의원 ▷나웅배 외무통일◁ ◎이론·실무 겸비한 경제정책통 금융계와 학계·관계를 두루 거쳐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정책통. 11대대 민정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재무·상공·경제기획원장관을 역임한 4선의원. 세련된 화술과 합리적 판단으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을 맡아 외교와도 인연을 맺어 왔으며 맡은 일에 완벽을 기하는 외유내강형.부인 박효균여사(59)와의 사이에 2남. ▲서울(60) ▲서울 상대 ▲미캘리포니아대 경영학박사 ▲서울대교수 ▲해태·한국타이어사장 ▲아주대총장 ▲재무·상공장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 ▲대전엑스포조직위원장 ▲민자당 정책위의장 ▷황명수 국방◁ ◎솔직 담백… 할말 꼭하는 외곬형 솔직담백한 성격에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못하는 의리파.옛 신민당 진산계 출신으로 9대때 첫 금배지를 달았다. 11대 인 의정동우회장을 맡아 원내에서 정치규제를당한 김영삼대통령의 해금을 강력히 촉구하는등 눈치를 보지 않는 외곬형.공군 교관을 지내기도 해 군에 대한 애정이 깊다.지난해 5월 국방위원장으로 내정됐다가 당 사무총장에 임명됐었다. 부인 유설자여사(53)와의 사이에 3남1녀. ▲충남 아산(67) ▲동국대 정치학과 ▲충남도의원 ▲신민당원내부총무 ▲민권당부총재 ▲민추협간사장 ▲민주당부총재 ▲국회 보사위원장 ▲민자당 사무총장 ▷박재홍 교통◁ ◎재담좋고 신망 두터운 마당발 특유의 친화력으로 정가에서는 「마당발」로 통한다.고 박정희전대통령의 장조카로 11대 때 옛 민정당 공천을 받아 원내에 진출한 4선의원. 주변의 어려운 사람은 꼭 챙기는 스타일.누구라도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재담이 좋고 동료의원들의 신망도 두텁다.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탁월하다. 4선인데도 별다른 당직을 맡지 못해 「자리 운」은 별로 좋지 않은 편.부인 김양자여사(49)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북 구미(53) ▲고려대 법대 ▲동양철관회장 ▲11,12,13,14대 의원 ▲민자당 당무위원 ▷김용태 예결◁◎총무·정책위의장 역임한 4선 언론계출신으로 민자당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을 역임한 4선.예결위원장은 이번이 3번째. 국회부의장 물망에까지 오르다 상임위원장으로 낙착돼 다소 의외라는 평이나 김영삼대통령이 UR협정 비준과 관련한 추경과 새해예산안 처리에 비중을 둠에 따라 특별기용됐다는 분석. 좀 다혈질이다 싶을 정도로 성격이 활발하면서도 숫자에 밝다는 평. 김대통령과는 현직 기자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로 신망이 두텁다.부인 정란희여사(57)와의 사이에 2남1녀. ▲대구(58) ▲서울대법대 ▲조선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 ▲민정당 대변인 ▲국회재무위원장 ▲민자당 정책위의장·원내총무 ▷김기배 내무◁ ◎재무·상공부 관료출신의 3선 재무부와 상공부 관료출신으로 야당세가 강한 서울(구로갑)에서 내리 3선을 기록. 민정당 전문위원을 지내다 전두환전대통령에게 발탁,12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했으며 14대 대선때는 당 서울시지부 위원장을 맡았다. 3선의 의정생활동안 당직과 국회직의 운이 없다가 이번에 상임위원장에 발탁됐다.부인 윤정자여사(54)와의 사이에 3녀. ▲서울(58) ▲고려대 법대 ▲상공부상역국장·표준국장·품질관리국장 ▲수출산업공단 이사장 ▲민자당 서울시지부위원장·제1사무부총장 ▲국회 국제경쟁력강화특위위원장 ▷신경식 문체공◁ ◎친근한 인상… 재선 발탁 행운 친근한 인상에 걸맞게 정이 많아 대인관계가 원만한 언론계 출신의 재선의원. 민정계이면서도 일찌감치 「김영삼대통령 만들기」에 참여.이같은 공로로 대통령인수위 대변인,총재비서실장을 지냈고 재선이면서도 상임위원장에 발탁되는 행운을 차지. 11,12대때 야당으로 출마했다가 내리 고배를 마신뒤 13대때 여당으로 변신해 등원에 성공. 부인 최금녀여사(54)와의 사이에 2남 1녀. ▲충북 청원(55) ▲고려대 ▲대한일보정치부장 ▲국회의장 비서실장 ▲김영삼 민자당총재비서실장 ▲13,14대의원 ▷이성호 건설◁ ◎신중·합리적… 수석부총무 지내 공화당 공채3기로 정계에 입문한 당료출신으로 조직관리에 수완이 뛰어나다. 12대때 민정당 전국구로 국회에 입성,13,14대에 경기 남양주·미금에서 당선된 3선의원. 문민정부 출범이래 원내 수석부총무로 협상때 인내력을 발휘하고 신중하면서도 합리적인 성격이어서 야당 총무단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취미는 테니스로 국회안에서 최고수준.부인 박성애여사(46)와의 사이에 1남3녀. ▲경기 남양주(55) ▲고려대 법대 ▲민정당 조직국장·청년분과위원장 ▲국회 세계잼버리특위위원장 ▲국회 스카우트의원연맹회장 ▲민자당 수석부총무 ▷김한규 경쟁력◁ ◎독실한 종교인… 사회복지 전문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한 재선의원. 14대 민자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때 박철언의원의 집요한 설득을 뿌리치고 김영삼후보편에 섰고 대선과정에서는 홀트아동복지회장등을 지낸 경력을 활용,사회복지단체에 대한 득표활동을 주도했다. 13대 총선 때는 대구 달서에서 국민당후보로 출마한 이만섭국회의장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었다. 부인 정영저여사(51)와의 사이에 1남1녀. ▲대구(54)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평통자문위원 ▲국회 올림픽특위위원장 ▲민자당 서울시지부위원장 ▲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
  • 집권중반기 통치권 강화­화합 역점/민자 국회회직자 인선 배경

    ◎민주계 수장 발탁,국정 강력 추진 의지/전문성·지역안배 비중… 계파분배 배제 27일 뚜껑을 연 민자당의 국회직인선은 당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의 집권중반기에 대비한 통치권강화와 국민화합에 역점을 둔 인사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의 집권초반기 인사스타일이 개혁을 과시하는 의외성이 강했다면 이번의 국회직인선은 상식선상에서 자신감과 화합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크게 구별된다. 물론 국회직의 인선은 다선중용원칙이 적용되는 측면이 강하다.그러나 김대통령은 이 원칙안에서도 국회의 역할인 국정의 뒷받침과 국민화합을 조화시키는 진용을 만드는데 무엇보다 인사의 역점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다소 의표를 찌른 부분도 있지만 정치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잘된 인선」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먼저 국회의장과 부의장의 인선은 정부가 강력한 국회의 뒷받침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락주부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지명된 것은 후반기 국회에 남북문제및 우루과이라운드협정 비준등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집권실세인 민주계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통치권차원의 선택으로 평가된다.황의장내정자가 민주계라는 점이 부담이 된다는 일부의 분위기도 있었지만 계파적인 시각보다는 김대통령의 의중을 잘아는 인사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이춘구의원이 다소 의외로 비쳐진 국회부의장에 지명된 것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다.이의원이 정치적 격변기인 3당합당과 민자당대통령후보경선 때 사무총장을 맡아 특유의 냉정한 추진력을 보였던 것이 향후 국회직에서도 기대되고 있다는 선택으로 보인다. 상임위원장의 인선은 다선원칙과 연임배제,전문성,화합을 위한 지역안배를 종합고려한 측면이 돋보인다. 부총리까지 지낸 나웅배의원이 외무통일위원장에 지명된 것은 그만큼 외교와 통일문제가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는데 따른 것으로 보이며 신상우국방위원장이 비중이 큰 정보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그동안 신위원장이 국방위의 소관부처인 안기부에 정통한 전문성이 고려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인선에서는 화합차원의 지역안배가 강조된 반면 계파간 나눠먹기가 배제된 것이 특징이다.이는 김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최근 전두환·노태우두전직대통령이 화해를 하는등 화합이라는 사회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초 민자당이 만든 복수추천안에는 부산·경남쪽과 민주계출신이 다소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김대통령의 재가 과정에서 조정됐다는 후문이다.특히 정보위원장으로 추천됐던 정재문의원이 탈락된 것은 정의원이 부산출신 민주계라는 점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으며 역시 재무위원장으로 추천된 김봉조의원도 같은 경남출신인데다 김대통령과 인척관계라는 점이 오히려 낙점을 어렵게 했다고 전해진다.반면 대구·
  • 승용차 함께 타고 국립묘지 나란히 참배/전·노전대통령 화해하던 날

    ◎오찬뒤 어깨동무·포옹… “우정 복원” 과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서로를 힘껏 끌어안았다. 두사람의 정권 인수인계후 벌어진 이른바 「5공청산」 작업에 따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던 대립과 반목을 극복하고 6·25 44주년을 맞은 25일 실로 6년4개월만에 처음으로 함께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오찬을 나누며 화해하는 의식을 가졌다. 이날 만남에서 두 전직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두 사람이 완전히 화해했다』고 선언하고 『앞으로도 자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5공」과 「6공」의 화합이고 그 세력의 결집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여러가지 각도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노전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57분쯤 각자의 승용차로 거의 동시에 현충문 앞에 도착,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현충탑과 애국지사 묘역,이승만·박정희전대통령의 묘역,임정 묘역,경찰충혼탑등에 차례로 헌화,분향. 두 사람은 우의를 과시하듯 줄곧 전전대통령의 포텐샤승용차를 함께 타고 움직였으며 전임자이자 차주인 전전대통령이 상석을 차지. ○…국립묘지 참배를 마친 두 사람은 서울 역삼동의 음식점으로 이동,갈비에 술을 곁들여 1시간30분동안 오찬.두 전직대통령은 이날 오찬에 앞서 기자들에게 회동의 의미와 심경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 전전대통령은 『사람이 살다보면 싸울 수도 있는 것인데 두 사람이 대통령을 지내다 보니 쉽게 만나지는 못했다』면서 『이제 지난 문제는 역사에 맡기기로 하고 여생을 미래지향적이고 보람있게 사는 문제를 얘기할 것』이라고 피력. 노전대통령도 『부부지간에도 싸우고 화해하고 하는데 60평생을 살아오면서 꼭 같을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둘 사이가 나쁜 것으로 생각,국민들이 걱정하고 있으니 국립묘지에 묻힌 선열 앞에서 흔쾌히 씻어버리고 잘 지내기로 했다』고 설명. 전전대통령은 두 사람의 회동에 대한 정치권의 심상치 않은 눈초리도 의식한듯 『색다른 눈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이어 시작된 오찬에서 전전대통령은 장세동전안기부장과 박영수전비서실장을,노전대통령은 정해창전비서실장과이현우전안기부장을 배석시키고 오찬을 시작.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맥주와 포도주에 국산양주까지 섞어 마시며 그동안 쌓였던 앙금을 해소.특히 전전대통령은 오찬중에 술을 많이 마셔 금세 취기가 오르자 왼손을 들어 노전대통령과 배석한 이현우·정해창전실장등을 가리키며 큰 목소리로 그동안의 섭섭한 심경을 숨김없이 표출하기도.그러나 이날 오찬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고 식사중 4∼5차례에 걸쳐 박수가 터져나왔으며 밖에서 기다리던 안현태·최석립전경호실장도 불러 두 전대통령이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단합을 강조. 오찬이 끝난 뒤 전·노 두 전대통령은 다정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오찬장에서 나와 음식점 앞에서 포옹을 하며 우정의 복원을 과시하기도. 전전대통령이 먼저 연희동으로 출발한뒤 노전대통령은 『모든 게 다 풀렸다』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만족. ○…이날 회동의 산파역은 안현태·최석립전경호실장.육사 17기로 전전대통령을 섬겼던 안씨와 육사 19기로 노전대통령을 보좌했던 최씨는 평소부터자주 만나면서 두 전대통령이 만나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으며 6·25에 국립묘지를 참배한다는 일정이 맞아떨어지자 전·노 두 전대통령에게 이같은 뜻을 상신,승낙을 받고 회동을 추진했다는 것.
  • 남북정상회담 추진 경과/81년1월 전전대통령 첫 공식제의

    ◎김대통령,93년 2월 취임사서 표명/김일성,90년 방북대표에 처음 언급 남북한정상회담이 우리측에 의해 공식제의된 것은 81년1월 당시 전두환대통령에 의해서다.그러나 그에 앞서서도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이 이끌던 자유당정권은 「북진통일」이 국시였다.남북정상회담은 상상조차 못하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남북대화의 기운이 일었지만 정상회담 개최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박정희대통령의 「5·16정부」는 처음 반공을 강력히 내세우다 보니 정상회담추진이 어려웠다.72년에 들어서야 남북조절위가 열렸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특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논의가 비공개로 있은 것으로 알려진다.박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공개적인 운을 뗀 것은 집권말기인 79년1월이었다.그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당국이 어떤 시기·장소·수준이든 조건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직접표현에는 신중을 기했다. 전두환대통령은 80년 정권을 잡자마자 정상회담개최에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다.81년1월 국정연설에서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안,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의사를 밝혔다.전대통령은 거의 매년 8·15 경축사등을 통해 북한이 회담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남북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주석과 만날 뜻을 피력했다.또 88년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소상히 밝혔다. 김영삼대통령은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남북정상회담에 접근하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부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획기적 전제아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올해 들어서도 취임 1주년회견에서 남북한정상회담의 조기개최의지를 천명했다. 「5공」과 「6공」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정통성 확보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생각한 듯 비밀협상을 통해 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5공」 때는 장세동안기부장,「6공」 때는 박철언청와대특보가 나서 북한의 고위당국자와 해외에서의 만남 혹은 상호방문등으로 깊숙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에 대한 대대적 경협이 정상회담개최의 대가로 제시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당시 정부의 노력은 북한측의 기만적 태도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최고당국자의 만남을 거론해왔다.하지만 그것은 모든 정당·사회단체대표들의 회담으로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었다.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의사를 비췄으나 무게가 실리지 않은 듯했다.지난 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의사를 밝혀 기대를 부풀게 했으나 역시 구두선으로 끝났다. □남북한 정상회담 관련 일지 ▲81년1월12일=전두환대통령,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제의(국정연설) ▲81년6월5일=전대통령,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제의(평통정책자문회의 개회사) ▲81년7월1일=북한금일성주석,우리측 제의 거부 ▲88년2월25일=노태우대통령,김일성과 대화용의 표명(대통령취임사) ▲88년8월15일=노대통령,김일성과 회담제의(8·15경축사) ▲88년10월18일=노대통령,평양방문 회담용의표명(유엔총회연설) ▲93년2월25일=김영삼대통령,김일성과 회담용의표명(대통령취임사) ▲93년5월25일=북한 강성산총리,특사교환통한 정상회담논의제의(대남전통문) ▲94년2월25일=김대통령,핵문제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천명(취임1주년회견) ▲94년6월16∼17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수락의사표명 ▲94년6월18일=김대통령,김일성주석 제의 즉각수락
  • 대통령의 식성(청와대)

    식성에 관한 한 김영삼대통령의 국제경쟁력은 1백점이다. 서울·중부보다는,맵고 짜고 젓갈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을 좋아하는 남도출신들이 외국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남해안 섬출신이면서도 어디를 방문하건 그나라 고유음식을 즐겨 먹는 김대통령의 식성은 「국제화시대의 외교적 축복」이라 불러도 좋을듯 싶다.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앞두고 외무부선발대는 청와대의 「훈령」하나를 휴대했다.『모스크바와 타슈켄트에서 무리하게 한식을 준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불편이 있더라도 영빈관에서 제공하는 현지음식만을 먹겠다』.외무부 선발대는 김대통령의 자연연령을 감안,상식선에서 조개류와 돼지고기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만을 러시아 외무부에 전달했다. 대통령의 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성으로 외무부의 외국방문 준비가 한결 수월해진 셈이다.지난 3월달에 있었던 중국방문 때도 같은 원칙이 지켜졌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대통령의 식성을 「외교적 축복」이라고 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음식을가리지 않음으로써 외국방문중에도 대통령이 국내에서 처럼 원기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대통령의 건강과 컨디션은 정상외교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사항임은 물론이다. 두번째는 한식을 준비하느라 겪었던 현지공관의 번거로움이 없어졌다는 점이다.지난날 대통령의 외국방문 때는 공관직원들의 부인이 모두 동원돼 대통령 내외를 위한 음식준비에 몰두해야 했었다.공관에서 본국에 음식재료 공수를 요청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여러가지 메뉴를 미리 연습하다 보면 음식만들러 외국에 왔는지 외교하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나오곤 했었다. 현지 영빈관에 한식냄새를 퍼뜨려 다른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비외교적 행동을 안하게 됐다는 점도 다행이다. 청와대 관저의 주방팀도 김대통령 부부의 「관대한 식성」으로 모처럼 괜찮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이들은 전직대통령의 식성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지만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두환전대통령 부부는 부인의 입맛이 다소 까다로워 전전대통령이 『그냥 먹어두라』고 부인을 달래는 쪽이었다고한다.부인이 주방에 전화를 걸려고 하면 전전대통령이 말렸다는 것.노태우전대통령 부부는 양쪽 다 미식가 스타일어서 주방팀을 긴장시키는 경우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들린다. 김대통령 부부는 아직 한번도 음식에대해 짜다 싱겁다거나,맛이 있다 없다에 대해 논평을 한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통령이 음식을 가리지 않고,대식가란 점은 청와대 입주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민주산악회 등산을 다니던 시절 김대통령은 산에 올라 고기를 구워먹은 뒤,찌개와 밥으로 식사를 한다.이어 하산하기에 앞서 라면을 끓여 한그릇을 다시 비우곤 했었다.동행하던 젊은 기자들도 대개는 밥을 먹고나면 다른 음식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도 김대통령은 라면을 후식으로 처리했다.나이를 뛰어넘는 건강 비결중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점치게 하는 부분이다. 외무부가 돼지고기를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역시 가리는 음식은 아니다.초기 민주산악회 시절에는 산에 언제나 가져간 것이 삼겹살이었다. 중국방문 때 대통령 숙소였던 조어대는 기자단과의 오찬에 허연 돼지고기가 섞인 상어지느러미탕을 내놨다.많은 사람들이 돼지고기와 상어지느러미의 보기드문 조합에 잠깐 망설이고 있는 동안 김대통령은 벌써 깨끗이 그릇을 비웠었다.
  • 이화여대 개교행사/유력 「이대의 사위들」 대거 초청 화제

    ◎김 대통령·이 총리등 정치권 인사만 90여명/배우 안성기·야구선수 선동렬씨등도 포함 이화여대가 오는 28일 개교 1백8주년을 맞아 개최할 기념행사인 「이화 21세기 재도약선언 대축연」에 김영삼대통령 부인 손명순여사와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김영정씨등 이대출신 유력인사들과 이들을 부인으로 둔 「이대의 사위들」을 대거 초청할 계획이어서 관심을 끌고있다. 「자랑스런 이화인」으로 선정된 초청인사는 손여사를 포함,「김자경오페라」단장인 김자경씨(77)와 예술의전당 이사장인 조경희씨(76),국립발레단장 김혜식씨(52),이정희연합통신이사(56),장명수한국일보국장(52)등 15명. 또 부인과 두딸·두며느리등 가족중 15명이 이대를 졸업,「최다 이화인가정」에 선정된 김상홍삼양그룹회장 가족과 본인·딸·손녀등 3대가 이대출신인 배만실씨(71·전이대 미대교수)가족은 「자랑스런 이화가족」으로 초청됐다. 이 행사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이대측이 초청하기로 한 「이대의 사위들」. 이대측이 파악한 「이대의 사위들」명단을 보면 김영삼대통령을 비롯,장관급 11명,차관급 5명,국회의원 71명등 우리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들이 대거 포함돼있다. 우선 행정부에서는 이영덕국무총리,정재석부총리,김덕안기부장,홍재형재무,김두희법무,이민섭문화체육,김철수상공자원,오명교통,황영하총무처,오인환공보,황길수법제처장말고도 이원종서울시장,유경현평통사무총장등이 「이화의 사위들」이다. 차관급으로는 송영대통일원차관을 비롯,모두 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국회의원 2백97명 가운데 71명(민자 45명,민주 25명,신정 1명)이 「이대의 사위」들로 이기택민주당대표와 박찬종신정당대표가 포함돼있다. 메이퀸출신으로 3학년때 이대를 중퇴한 이민주당대표 부인 이경의여사(49)는 준회원자격으로 이 행사에 초청된 반면 전두환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여사는 이대를 1학년때 중퇴하는 바람에 회원자격이 없어 이번 초청대상에서 빠졌다. 독신인 김동길국민당대표는 「김대표와 일생을 함께 살아온 김옥길전총장이 영원한 이화인」이라는 점이 감안돼 이번 초청대상에 들었다. 사법부에서는 김용준·김석수대법관,고재환서울민사지법원장등이 배우자 초청대상에 올랐으며 이시윤감사원장과 김도언검찰총장에게도 초청장이 발송될 예정. 이밖에 재계에서는 김상홍삼양그룹회장,윤용남대우중공업대표이사,이병기남해화학사장등이,문화·체육계에서는 영화배우 안성기씨(40),가수 이문세씨(35),프로야구선수 선동렬씨(31) 부부가 초청대상에 올랐다.
  • “그렇게 착한 분이…” 애도 행렬/고 심명보의원 빈소 주변

    ◎“너무 열심히 일한게 탈” 추모 민자당은 25일 참으로 침통했다. 심명보의원의 별세로 고인을 추모하는 분위기 일색이었다. 특히 치열한 경쟁,책임과 의무 때문에 인간적인 측면이 다소 외면되기도 하는 정치사회에서의 허무감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민자 분위기 침통 한 당직자는 며칠 앞서 세상을 떠난 서수종의원까지 두 의원의 타계로 치러야 하는 보궐선거문제가 거론되자 『아직 장례도 안 지냈는데…』라면서 추모분위기에 연이어 닥쳐오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이날 민자당의 고위당직자 간담회에서는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는데…』라며 고인의 인간적인 풍모를 추모하는 얘기들이 주로 오갔다. 김종필대표는 『천성이 순하고 덕이 충만한 분이셨다』면서 『그렇게 착한 분이 어떻게 그리 빨리 갈수 있느냐』고 애도했다.고인의 서울 법대 동기동창이자 민정당시절부터 정치를 함께 했던 이한동원내총무는 『87년 대통령선거등을 치르면서 너무 열심히 일하고 또 불가피하게 과음을 한 탓에 숙환을 얻은 것 같다』면서 『정말 애석하기이를데 없다』고 아쉬워했다. ○“가족장으로”… 유언 심의원은 임종직전 『주변에 부담을 주지 말라』면서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촐히 치를 것을 유언했으나 이총무등이 『4선의 현역의원인 만큼 국회장으로 치르는 것이 예의』라고 가족들을 설득,26일 국회장으로 결정됐다.민자당은 이수담총무국장 박보환원내총무보좌역등을 빈소인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보내 장례절차를 돕고 있다. 25일 고인의 빈소에는 김영삼대통령,노태우·전두환·최규하전대통령,이만섭국회의장,김종필민자당대표,이기택민주당대표,김동길국민당대표,이시윤감사원장,김주인헌정회장등이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특히 이날 상오 조문한 노전대통령은 『심형,너무 애통해…』라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청와대측에서는 박관용비서실장,이원종정무수석이 이날 하오 빈소를 방문,조의를 표했다. 이어 이영덕국무총리 최형우내무 김숙희교육 남재희노동 김우석건설 서상목보사,오린환공보처 서청원정무제1장관과 이한동총무 이세기정책의장 강삼재 정재철 김덕용 최재욱 정시채 최병렬 박우병 이상득 이승윤 김봉조 정필근,박주천의원(이상 민자),민주당의 이부영 조순형 박석무의원,새한국당의 이종찬대표,국민당의 김용환의원등이 조문.또 채문식전국회의장,윤길중전민정당대표,황인성전국무총리,정해창전대통령비서실장,서석재전의원을 비롯한 수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하오 장세동전안기부장,안현태전경호실장과 함께 조문한뒤 의원들과 고인의 자녀들의 장래문제를 의논하는등 애도를 표시했다. ○친화력·성실성 평판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민정당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투신,고향인 영월·평창에서 내리 4선을 지낸 고인은 특히 85년 2·12총선 뒤 2년남짓 민정당대변인을 지내면서 남다른 친화력과 성실성을 보여 「명대변인」으로 불리었고 6·29선언후 노대통령의 당선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 ○궂은일에 항상 앞장 고인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던져 최선을 다하는 충직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으며 남의 어려운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가혹할 만큼 엄격한일면을 가졌었다.
  • 두곳 보선 두통 앓는 민자

    ◎보선 돼도 고민 안돼도 고민/대구/자천타천 11명… “인물 홍수”/경주 민자당은 고서수종의원의 타계로 공석이 된 경주시보궐선거는 그리 신경쓰지 않고 있다.자천타천의 후보자도 많고 인물만 잘 선정해 내세운다면 당선도 무난하리라 보고 있기도 하다.경마장유치등으로 여권에 대한 지역정서가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아직 보궐선거여부가 불투명한 대구 수성갑지역의 보선문제에 대한 고민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물론 대구보선의 열쇠는 대법원이 쥐고 있다.7월말이 시한인 대법원판결에서 박철언의원(국민)의 유죄가 확정된다면 당연히 보선이 실시된다. 그러나 현재 탈장수술 때문에 영동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인 박의원측이 지난 19일 대법원에 병보석신청을 냄에 따라 사정은 달라졌다. 이번주로 예상되는 대법원의 보석결정여부에 따라 보선을 할 수도,안 할 수도 있는 융통성이 생기는 것이다. 대법원이 박의원의 보석을 허가하면 7월말이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시한은 없어진다.구속중인 피의자는 2심판결로부터 6개월안에 확정판결을 해야 하나 불구속상태인 피의자에 대해서는 확정판결의 시한이 없다. 따라서 대법원이 박의원의 보석을 허가하고 내년 5월까지만 확정판결을 미룬다면 보궐선거는 필요없게 된다.국회의원의 임기가 1년미만일 때는 보선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보석을 허가하고 재판을 미룬 경우는 전두환전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의 예가 있다. 그러나 민자당은 대구보선을 해도 고민,안해도 고민이다. 보선을 한다면 최근 화합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다소 수그러들고 있는 대구의 반여권정서(TK정서)가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도 있다.대구보선의 분위기가 경주보선으로 확산될 우려도 있다.보선에서 TK정서가 고조된다면 여당의 당선가능성은 많지 않다. 반면 박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보석허가로 당장 보선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도 고민은 마찬가지다.비록 대법원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기정사실화된 보선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박의원측이나 야권,대구지역의 반여권정서가 이를 여권의 「꼼수」로 몰아붙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민자당이 이 두가지 상황에 대한 저울질을 한 결과 보선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쪽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이같은 희망사항이 대법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하는 오해의 소지는 절대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은 확고하다. 그래서 청와대나 민자당이나 대구보선에 대한 언급은 금기사항에 가깝다. 따라서 민자당은 두개지역의 보선이 실시될 상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는 갖추고 있다. 특히 경주지역의 분위기가 고무적인 만큼 이 지역의 분위기를 대구에 북상시킬 수 있는 방안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구보선은 현 정창화위원장을 중심으로 당당한 공명선거의 시험대로,경주보선은 인물중심의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경주보선후보자로는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권령해전국방장관·한영석전법제처장·김순규전의원·임진출씨·이원식경북부지사·송경호경북도의회의장·이동천경주시의회의장·우영길경북도의원·김수학전국세청장·이원경전주일대사·김정렬씨(서청원의원보좌관)등을 대상으로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 오늘 「5·18」 14주년/광주 등 전국서 기념행사

    ◎한총련 2천명 연대앞서 시위 5·18 광주민주화운동 14주년을 맞아 18일 서울과 광주,부산등 전국 10여개 시도에서 시민과 대학생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5·18 기념식및 국민대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릴 예정이어서 경찰과의 충돌이 우려된다. 경찰은 이에따라 전경 1백33개 중대 2만여명을 동원,광주 망월동 묘역주변등 시위예상지역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미대사관·미문화원·전남도청등 주요시설주변에서 시위대의 점거 및 기습시위에 대비한 경계에 나섰다. 이에 앞서 17일 대학생과 재야단체 회원등 4만여명은 서울,광주등 전국 10개 시·도에서 「5·18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총련소속 대학생 2천여명은 이날 하오8시쯤 연세대부근 연희입체교차로 앞에서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왕복 10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사저로 진출을 시도하다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1시간여동안 몸싸움을 벌였다. ◎광주서 전야제 행사 【광주=최치봉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4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전남도청앞 광장에서는 풍물놀이등 전야제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또 광주망월동 묘역에는 추모행렬이 잇따랐다.
  • 민추협/「결성 10돌」… 그 발자취와 역사적 위상

    ◎「어둠」의 시대 “민주”의 외침/84년 YS·DJ “합작”… 5공박해 극복/85년 「2·12총선」서 돌풍… 직선제 투쟁/내일 기념식… 심포지엄 등 열고 「기념 사업회」 계획 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식및 리셉션이 16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민추협 초기의 지도위원및 후기 상임위원·운영위원과 집행부의 국장·부장급등을 포함해 모두 3백∼4백여명이 참석,여와 야로 나뉜 오늘날의 처지를 떠나 오랜만에 동지애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에 앞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는 기념심포지엄이 열려 장을병성균관대총장의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민추협 역할의 평가와 현대사적 조명」이라는 주제발표와 대학교수·언론인·변호사등의 토론이 벌어진다. 이들 행사를 마련한 「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는 민추협의 공동의장권한대행과 부의장을 맡았던 김상현민주당고문·김명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을 책임대표로,이민우전신민당총재와 최형우내무부장관,박종율 조연하 홍영기 김윤식 용남진씨가 준비위원대표로 구성됐다.준비위는 16일 행사를 계기로 「민추협운동 기념사업회」(가칭)를 발족시킬 계획이기도 하다. 민추협은 84년 5월18일 서울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 민주화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발족했다. 바로 1년전 이날 가택연금 상태에서 단식투쟁에 돌입,23일이란 장기단식 기록을 세운 뒤 민주화운동의 기회를 찾던 상도동의 김영삼씨가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동교동의 김대중씨와 모처럼 손을 잡고 공동의장을 맡았다.그러나 김대중씨는 사형집행정지 상태로 미국에 머물던 시기여서 그의 의장직은 김상현씨가 권한을 대행했다.김영삼씨는 지금 문민정부의 대통령이고 김대중씨는 세번째 대선에서 패배,정계를 은퇴했다. 그때까지도 정치활동 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이 구성한 민추협은 한달 뒤인 6월 운영위원 64명을 인선하고 민주화투쟁을 정식으로 선언,민주화대장정의 막을 열었다.당시 전두환정권은 사무실에 집기마저들여놓지 못하게 하는등 탄압을 했으며 이 때문에 돗자리를 깔고 회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민추협은 같은 해 9월 헌법연구특위등 17개 부서에 달하는 실무기구를 구성해 정당에 버금가는 조직을 갖추면서 여러 민주세력과 연대투쟁에 들어갔다. 이듬해 1월에는 다음달 2·12총선에서 제1야당의 돌풍을 일으킨 이른바 「통합신당」을 창당,정치활동 재개에 들어갔다.김대중씨는 2·12총선을 4일 앞두고 귀국,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연행돼 가택에 연금됐다가 선거결과에 충격을 받은 「5공」으로부터 한달만에 연금이 해제되면서 공동의장 일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 86년 2월 민추협은 드디어 「1천만명 개헌서명운동」을 선언,직선제 개헌투쟁을 전개했다.87년 4·13호헌선언에 이어 6월10일 노태우민정당대표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던 날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6·10항쟁을 벌였다. 이같은 투쟁과정에서 민추협에 대한 「5공」의 탄압은 끊임 없이 계속됐다.85년5월 미국문화원 점거사건과 86년2월 직선제 개헌투쟁 때는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87년2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따른 「고문살인및 용공조작 폭로대회」등 일이 있을 때마다 사무실이 원천봉쇄되고 지도부는 수 없이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민추협은 「6·29선언」이후 두 김씨의 대권다툼을 계기로 공중분해돼 3년 남짓의 민주화대장정을 마감하고 말았다. 민추협 참여인사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정계를 은퇴한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여야 핵심세력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신상우 황명수 최형우 김덕용 강삼재 번형식 신진욱(이상 민자),이기택 한화갑 이철 홍영기 김영배 신기하 최락도 김종완(이상 민주),박찬종(신정당),양순직의원(무소속)등이 아직 정계일선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이들 말고 이민우 김명윤 박용만 예춘호 김동영 김녹영 문부식 이중재 명화섭 김현규 김창근 김윤식 김충섭 박종태 손주항 최영근 안필수 용남진 박한상 이상민 조병봉 김현수 권오대 김두오 김길준 김창환 송좌빈 이우태 이종남 정채권 정헌주 태륜기 권대복씨 등도 상임운영위원이나 지도위원등으로 참여했던 민추협인사들이다.김광일씨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김도현씨는 문화체육부차관으로 재직하고 있다.김대통령을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던 청와대의 이원종정무·홍인길총무수석비서관과 최기선인천시장등 이른바 「상도동 가신그룹」들이 민추협 출신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김동영전정무장관과 김녹영전국회부의장은 작고했으나 창립10주년 기념식 때 특별공로패를 받게 돼있다.
  • 전·노 전대통령 등 35명 내란혐의 고발/5·18규명 국민위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공동대표 김상근씨등 12명)는 13일 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포함,모두 35명을 내란및 살인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고발했다.
  • 조약돌

    ◎5­6공 권력이양 과정다룬 논문으로 전 전대통령 사위 미서 박사학위받아 ○…전두환 전대통령의 사위인 윤상현씨(33)가 6공화국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과 북방정책의 수립 및 실행 과정을 상술한 논문으로 미조지 워싱턴대에서 지난 8일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논문은 윤씨가 전전대통령과 김대중씨를 비롯해 5공 당시 북방 정책을 주도했던 박철언,장세동,고명승,최호중,이세기,서동권씨 등 과거 정치권 핵심 인사 20여명과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한 소식통이 말했다. 이 소식통은 윤씨 논문이 중국에 초점을 맞춘 북방 정책을 주제로 다루면서 5공에서 6공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을 당시 권력 핵심부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면서 미국쪽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문민대통령의 시축/고두현 체육부 국장급기자(오늘의 눈)

    스탠드를 메웠던 7만7천명의 관중들과 TV로 지켜보던 안방관중들은 아마도 한결같이 안도의 큰숨을 내쉬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1일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치러진 한국­카메룬의 축구 테스트매치에서 김영삼대통령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가 맵시있게 시축을 성공시켰다. 지난날 이나라를 다스렸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등 군인출신의 대통령은 모두 교육을 받을때 스포츠와 익숙했으므로 스포츠감각이 결코 무디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 깊은 편이었다. 야구의 시구나 축구의 시축을 하면서도 대통령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지난 66년 중앙일보가 대통령컵고교야구를 창설했을때 당시의 박정희대통령이 서울운동장에 나와 시구를 했다. 그때 박대통령은 보기드물게 두차례의 시구를 했다.시구란 볼이 엉뚱한 방향으로 던져지더라도 구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해서 끝내도록 되어있다. 첫번째 시구에서 박대통령의 시구는 포수의 미트에 빨려들어 갔는데도 정확한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그는 「한번 더 던져보겠다」고 민준기구심에게 요청,야구사상 일찍이 없었던 두번째 시구를 던졌다. 두번째 시구에는 만족했는지 박대통령은 민구심에게 『이번것은 진짜 스트라이크였지?』라며 확인했단다. 이 이야기를 민구심으로부터 전해들은 기자는 「박대통령은 꽤 꼼꼼한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제2차대전중 미국의 루스벨트대통령이 사망하고 트루먼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승계하자 미국의 어린이들이 『야 이제는 우리대통령도 두발로 걷는다』고 함성을 질렀단다. 스포츠가 생활화되어 있는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탓에 휠체어에만 앉아있었던 루스벨트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럽게 비쳤던 모양이다. 평소 조깅을 즐기고 어렸을 때에는 축구도 즐겼던 탓에 김대통령은 시축을 잘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능력과 스포츠능력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겠지만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은 스포츠를 생활화하고 건강한 대통령에게 친근감과 신뢰감을 갖게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전·노 전대통령 고발/「5·18」 진상규명위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 계승 국민위원회」(공동대표 김상근목사) 간부등 15명은 26일 낮 12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동아클럽에서 제1차집행위원회를 갖고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등 5·18관련자 34명을 내달 13일 서울지검에 고발키로 했다. 국민위원회는 또 5월 14일 하오 2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광주시의회·한국사회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광주항쟁 14주년 학술대회」를 갖고 18일에는 전국연합차원에서 전국 각 지역별로 추모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 이춘구의원 아들 결혼식하객 1천5백여명 참석(조약돌)

    ○…13일 하오 3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열린 이춘구민자당의원의 외아들 제용군(28)과 한국고속도로보수공단 사장 이철호씨(52)의 딸 주연양(25)의 결혼식에는 노태우 전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5·6공 인사와 현직장관등 1천5백여명의 하객이 참석. 이현재 전국무총리가 주례를 맡은 이날 결혼식에는 노재봉,박준병,이자헌,이한동,권익현,김윤환의원과 정해창 전대통령 비서실장,안무혁 전안기부장등 5·6공시절 인사와 최형우내무장관등 정치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예식장 내부는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 그러나 이날 결혼식에 같은 군출신이면서도 전두환 전대통령은 물론 그의 측근인사들의 모습은 없어 대조적.
  • 프로야구 개막(외언내언)

    1982년 3월27일 하오2시24분,서울 동대문구장.2만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힘차게 던진 시구가 MBC 유승안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주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고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한국의 프로야구가 출범의 고동을 울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것은 1869년,일본은 1936년.미국은 한세기가 훨씬 넘었고 일본도 58년이나 됐다.한국은 12년.초창기에는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은 제1의 인기프로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지난해 4백87만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올해의 관중동원 목표는 5백만명. 올시즌의 한국프로야구가 9일 전국의 4개 구장에서 일제히 개막되어 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한다.오는9월9일까지 총 5백4게임이 치러지는데 한팀당 경기수는 1백26게임.7월14일까지 상반기 리그를 끝내고 7월22일부터 후반기리그에 들어간다.미국 프로야구는 지난4일 개막됐고 일본은 한국과 같은날 플레이볼된다. 올시즌에도 어느팀이 우승하고 어느팀이 돌풍을 일으킬지,또 어느선수가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하고 신인왕에 오를 루키는 과연 누구일지등이 관심의 표적.그뿐만이 아니다.「통산 6천호 홈런」 「1천5백 탈삼진」 「8백 타점」의 주인공들이 탄생,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또 올해는 미국프로야구 LA다저스팀에 스카우트된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프로스포츠는 경기만 치른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완벽한 팬서비스,현대적인 시설,선수들의 파인플레이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의 현주소는 어떤가.경기내용은 제쳐놓고라도 팬서비스가 부실하고 시설도 보잘것 없다.출범 13년째를 맞고 있는 한국프로야구가 자성하고 개선해야할 대목들이다.
  • 총무원장 8년… 「종단의 얼굴」/서의현원장의 면모와 행적

    ◎5공때부터 최고위급 인사와 교분/상무대 비리·사생활 관련 구설수도 5일 조계종 원로회 회의에서 전격 불신임된 서의현총무원장(58)은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의 종권을 9년동안 굳건히 지켜온 불교계 최대의 실력자다. 86년 8월 제25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뒤 역대 총무원장 가운데 최초로 임기 4년을 다 채운데 이어 90년에는 재임에도 성공,종단 제1인자의 아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친정부적인 종단운영으로 개혁파들로부터 계속 도전을 받아왔으며 사생활과 관련된 구설수와 함께 최근에는 상무대 비리에까지 연루돼 3선연임을 목전에 두고 사면초가의 곤경에 빠진 상태였다. 게다가 자신의 3선연임을 결정할 중앙종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터진 조계사 폭력사태를 배후 조정한 의혹까지 받게되면서 그의 거취가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 그는 36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52년 해인사에서 김상월화상을 은사로 득도한 뒤 같은해에 사미계(사미계),55년 비구계(비구계)를 수계했고 62년 해인사 대교과를 거쳐 67년 대승사 주지를 시작으로은해사와 동화사 주지를 역임했다 또 66년 2대 종회부터 현재의 10대 종회까지 중앙종회의원직에 오르는등 최다선의원으로 화려한 이력을 더해 왔다. 그는 종단내에서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정계를 비롯,각계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치로비자금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5공말기인 86년 행정수반격인 총무원장에 처음 선출된 당시 집권층의 다수를 이루던 소위 TK세력과의 친분등으로 인해 친정부적인 성향을 띠면서 실세였던 전경환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이때부터 호국불교를 외치며 정부를 위한 조찬기도법회를 여러차례 주선했다. 전두환전대통령이 퇴임후 백담사에 은둔중일 때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방문,전씨에 대한 「의리」를 은연중 과시하기도 했다. 또 91년 5월에는 서울롯데호텔에서 노태우전대통령 내외와 불교신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를 갖고 법어를 통해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찬양하는 발언을 해 교계 일각에서빈축을 샀다. 91년 9월 종정추대를 둘러싸고 종권다툼이 벌어져 총무원이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되는등 분종의 위기까지 치달으면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으나 양측간의 극적인 화해로 위기를 넘기는 등 남다른 생명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거의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지향적인 그의 성향은 92년 3월 당시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내부 반발에 직면했으며 퇴진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상무대 비리와 관련,공사대금 8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받기에 이르면서 조계사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당분위기 일신… 협업체제 구축/민자 4역 「취임1백일」

    ◎개혁입법완성 성과… 대야관계 개선 과제 민자당의 현직 4역이 2일로 취임 1백일을 넘겼다. 쌀시장개방에 따른 들끓는 여론과 예산안강행처리 파동등으로 흔들렸던 민자당은 지난해 12월23일 새 진용으로 4역을 교체함으로써 당의 분위기를 일신,안정된 분위기를 되찾았다.그동안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일을 해냈다는게 이들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이다. 「실무총장」임을 자처하는 문정수사무총장은 조용하면서도 내실있는 당운영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실세 민주계라는 「따가운」시선의 부담을 지우기 위해 민정계중진인 이세기정책위의장과 이한동원내총무의 영역을 존중,협업체제를 무난히 유지해왔다.전임 최형우·황명수총장에 비해 비교적 위상이 취약하다는 회의적인 시선을 내실있는 추진력으로 말끔히 털어냈다. 문총장은 취임과 함께 『민자당은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다.대대적인 조직개편의 신호탄이었다.중앙당직원의 70%를 다른 자리로 보냈지만 잡음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특히 10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 임명에서는 골수재야출신의 김문수씨를 발탁해 물갈이의 기준을 매끄럽게 제시했다. 이러한 문총장도 요즘 고민이 생겼다.최기선인천시장과 박태권충남지사의 사전선거시비,황병태주중대사의 북한핵관련 돌출발언등 민주계의 잇따른 실책때문이다. 이세기정책위의장은 통일원장관과 교수를 지낸 전문성을 살려 민정계의 몫을 나름대로 챙겨왔다.학계·경제계의 전문가들을 집에 초빙,「과외수업」을 받으며 정책개발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UR와 관련,정부측과의 협의과정에서 정책담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는 다소 취약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한동총무는 정치관계법을 여야합의로 타결,제도적인 정치개혁을 완성시킴으로써 관록을 과시했다.특히 통합선거법문제를 둘러싸고 여권내부에서조차 제각각의 목소리를 낼때 대야창구를 「장악」,민정계중진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왔다.『협상과정에서 내 생각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스스로도 만족해 한다.해박한 법률지식도 일조했음은 물론이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임대통령때도 총무직을 지냈던 그는 『지금이 총무하기가 가장 편하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UR협정의 국회비준 동의와 정치개혁의 마지막 관문인 국회법개정이다.특히 UR문제는 『한자도 고칠 수 없다』던 정부의 도덕성시비로 악화되면서 「대표급 총무」로서도 난감하다. 여야및 정부와 여당의 「충실한 다리」를 선언했던 서청원정무장관은 그동안 부지런히 여야를 뛰어다녔다.취임하자말자 민자·민주양당의 3역회담을 주선했고 김대통령의 영수회담제의를 전달하기도 했다.정치관계법협상의 막바지단계에서는 민주당측을 찾아다니면서 설득작업을 펴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막후역할로도 최근 고조되고 있는 민주당의 경직된 태도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인다.
  • 제모습 찾는 경복궁후원(청와대)

    청와대 정문 앞 길건너 맞은편에 신무문이 있다.경복궁의 북문.항상 헌병 두사람이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곳이다.그 안에 청와대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제30경비단이 주둔하고 있다. 30년 넘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이곳이 내년말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청와대 주변 군부대의 외곽이전 방침에 따라 30단의 본부와 내무반이 모두 서대문구 현저동 제33단 자리로 옮겨가게 돼있어 경복궁의 후원으로 제모습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곳의 넓이는 모두 1만2천평.61년 5·16 때 서울에 들어왔던 군부대가 이곳에 주둔하면서 경복궁후원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으로 됐다. 30단의 내부는 연병장과 테니스장일대,탱크·차량등이 있는 주차장일대,문화재건물일대등 3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이들 땅의 내력은 서로 다르다. 연병장지역은 경복궁 창건 때 궁중에 상이 나면 시신을 안치하는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건물 이름은 태훤전·영사재 등이었던 것으로 구전된다.그러나 정확한 고증자료가 없어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복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5·16 때도 지금의 연병장은 그저 빈터로 남아 있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조선조말에는 이곳이 궁중요리에 쓸 소나 돼지의 도축장으로 사용됐고,일부는 궁궐수비대가 궁중난방용 장작을 쌓아 놓기도 했던 곳이다.이를테면 궁중의 궂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그래서 터가 세다는 말도 들린다. 주차장지역에는 천체관측을 하는 간이대·규표등의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역시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옛 문화재가 남아 있는 지역은 30단 본부건물 앞.청와대 쪽 담장을 등지고 팔우정.집옥재·협길당이 왼쪽부터 차례로 서 있다. 이들 건물은 모두 궁중도서관겸 서재로 쓰였던 곳이다.집옥재와 협길당은 정면 5칸에 측면 4칸짜리 기와집이다.팔우정은 8각 2층의 중국풍 정자.한때 명성황후의 독서실로 이용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보현당이란 건물도 나란히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그러나 1917년 창덕궁에 큰불이 나 복원공사를 할 때 이 건물의 목재를 가져다 쓰느라 헐어버렸다고 문화재관리국의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다. 30단본부는 전두환전대통령이 이곳 대대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 68년1월에 준공한 2층 슬래브 건물이다.12·12 때 신군부의 주도세력들이 모여 병력이동을 지휘했던 부대장실은 이건물 2층에 있다.또 하나 「현대사의 장」인 셈이다.따라서 이 건물을 과거사의 복원을 위해 헐지,아니면 「역사의 현장」으로 보관할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듯 하다. 이곳의 명물은 집옥재 앞에 있는 수십그루의 큰 은행나무들.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오래된 문화재들과 어우러져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이곳이 개방되면 시민들의 공간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실의 부담은 훨씬 더 커진다.아무리 문민시대라 하더라도 군이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경비업무를 맡는 것을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무엇보다 군이 철수하면 청와대 경비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게 불어난다.청와대 경비업무의 일부를 맡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제101경비단만 해도 연간 1백억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비슷한업무를 맡은 30단의 예산은 그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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