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두환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심포지엄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교양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지역 희생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트라이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57
  • “정치권 재편” 강풍 예고/전씨 구속­향후정국 파장

    ◎김 대통령 「새정치」 확립 의지 확고/5·6공인사 의도적 배제 없을듯 전두환씨의 구속으로 정국운영의 주도권이 확실히 여권으로 넘어간 느낌이다. 야권,특히 새정치국민회의가 여권을 압박하는 수단은 「5·18진상조사 특별검사제」였다.전씨에 이어 「12·12」및 「5·17」관련자를 처리하는 검찰의 행보가 빨라지면서 특검제 논쟁은 강도가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곧 있을 노태우씨 부정축재사건에 대한 검찰발표도 야당으로서는 부담이다.민자당 당직자들은 계속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20억이상 수수설」을 거론하고 있다.검찰발표에 그런 내용이 포함된다면 정치권은 일대 격변이 일어날 것이다.「태풍의 눈」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 주목되는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국구상이다.김대통령은 최근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여론을 수렴하는 것으로 알려진다.정계를 비롯,각계각층이 망라돼 있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했다.일반이 잘 알지 못하는 무명의 인사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주요관계자들이 전하는 바를종합하면 김대통령의 의중은 두갈래로 유추된다.하나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역사를 바로잡고 새 정치풍토,정치권 세대교체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또하나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없도록 해야하고 민자당을 포함한 여권이 흔들려서도 안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검찰이 소환에 불응한지 하룻만에 전씨를 구속한 것은 정의를 세우는데 머뭇거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김대통령의 의지에 영향받은 결과로 생각된다.전씨측의 「잘못된 논리」의 전파를 조기에 막자는 취지로도 이해된다. 김대통령은 앞으로도 정면돌파에 입각한 정책결정을 계속할듯 싶다.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씨사건의 검찰수사결과와 관련해 인위적인 「정치권 사정」은 없지만 진실을 은폐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원칙론이 야당에는 「강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정계재편까지 간다는 추측은 성급하다고 여겨지나 세대교체바람은 거세게 일어날게 틀림없다. 김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다.새정치를 여는 것과 함께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책무도 지고 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김대통령의 관심은 광범위하다』면서 『비자금정국에서도 각종 민생현안을 등한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이런 관점에서 여권은 민자당이 너무 동요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이 비서관은 전했다.「12·12」 등의 주모자는 어쩔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5·6공 인사를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대통령이 새정치구상을 펼칠 무대는 검찰수사이외에도 당정개편,민자당 전당대회 및 공천 등 다양하다.김대통령은 이에 더해 올해가 가기 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카드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사시 16회 선두… 특수·공안 요직 섭렵/전씨 조사 김상희 검사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맡은 특별수사본부 김상희(44·서울지검 형사 3부장)주임검사는 사시 16회 선두그룹의 한 사람. 형사부장인 그가 주임검사로 낙점된 것은 현 서울지검 공안1부가 12·12와 5·18 사건 고소·고발인들에 의해 직무유기로 피소됐기도 하지만 그동안 특수 분야와 공안분야를 두루 거치며 역량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경북고와 서울 법대를 나온 김 주임검사는 지난 74년 사법고시 16회에 합격,79년 서울 지검 남부지청에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85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안양교도소 앞/김성수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감된 안양교도소 앞은 이른 아침부터 취재진과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전씨는 안양교도소가 생긴 이래 최고의 거물.긴장감 반,호기심 반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상오 10시30분 전씨를 태운 검정색 승용차가 교도소 초소 앞 진입로에 모습을 드러냈다.순간 재야단체 회원 1백여명은 일제히 차를 몸으로 막아세워 과자 부스러기를 던졌다. 뒷좌석 두명의 수사관 사이에 앉은 전씨가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에 내다봤다.하루 사이에 훨씬 초췌해졌고 피곤해 보였다.대국민성명을 통해 정치적 보복이라는 주장과 함께 「좌·우파」 이념대결까지 거론했던 「당당함」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7∼8분 남짓 실랑이 끝에 전씨가 탄 승용차는 정문을 가까스로 통과,1층 보안과 사무실로 직행했다.전씨는 간단한 입소절차를 거친 뒤 독방에 수감됐다. 지난달 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노태우씨에 이어 전직대통령으로서는 두 번째로 구속되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는 승용차로 불과 5분 거리.전씨의 백담사행으로 결론이 났던 5공 청산의 앙금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두사람은 「미결수」로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시간 뒤인 상오 11시30분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주임검사 등 4명의 검사가 안양교도소 앞에 도착했다.취재진의 성화에 5분여를 지체하고 있을 때였다.피켓시위를 벌이던 재야단체 회원 한 명이 김검사가 탄 승용차를 붙잡고 『검찰은 믿을 수 없으니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라』고 소리쳤다. 차안에서 침묵하고 있던 김검사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어찌보면 이날 안양교도소 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모두에게 고통이었다.어쩌다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전직대통령이 옥살이를 하게 됐을까.끝내 사과의 말은 생략하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 전씨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그들을 전직대통령으로 계속 예우해야 하는가.그들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던 검찰은 소명의식을 갖고 수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인가. 교도소안으로 들어가는 검찰 수사팀의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 보였다.
  • “한국정치 대변혁 예고한 하루”/전씨 구속­해외 반응

    ◎민주주의 다지기 위한 또하나의 진통­아사히/광주학살 관련 사건일지 곁들여 소개­로이터/“앞으로도 일련의 사태 벌어질것” 전망­LAT ▷미국◁ 미국 언론들은 2일(현지시간) 12·12및 5·18사건과 관련,전두환 전 대통령이 긴급 구속수감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케이블뉴스 전문방송인 CNN과 라디오뉴스 방송인 WIN은 뉴스시간마다 전전대통령이 지난 79년 12·12쿠데타 및 5·18광주학살사건등에 관련된 혐의로 이날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영장이 집행됐다고 주요 뉴스로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지도 3일 법원이 검찰의 출두요구를 거부한 전전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일 해설기사에서 과거 군사쿠데타에 비견되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한국은 앞으로도 정치적 대변혁가능성을 예고하는 일련의 사건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일본 언론들은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속수감 사실을 긴급 및 주요뉴스로 보도했다.일본 NHK방송은 이날 한국정부가 12·12사태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전대통령을 구속,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고 긴급 보도했다. NHK방송은 전전대통령의 혐의사실과 「구속은 당연하다」는 내용의 시민반응,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모습등을 차례로 방영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에 이어 김영삼 정권이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는데 본격 착수했다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전전대통령의 구속으로 한국의 정계개편은 불가피하게 됐다고 분석하면서 김대중,김종필 두 야당총재에 대해서도 정치자금을 둘러싼 김영삼 정권의 공세가 뒤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아사히신문은 여당안의 갈등표면화,야당의 공세등 정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정국은 혼미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2일은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또 하나의 진통을 맞이한 한국을 상징하는 하루였다」고 평가했다. ▷유럽◁ 영국 BBC,벨기에의 RTBF방송,독일의 DPA통신등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3일 한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격적인 구속사실을 외신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한국의 정국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유럽의 방송 등 언론들은 일요일인 이날 한국의 검찰수사본부가 소환조사에 불응하고 합천 고향으로 내려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현지에서 안양교도소로 연행,수감한 사실을 자세히 다루었다. 언론들은 12·12사태,80년 광주사태 등 그의 주도로 이뤄진 과거사를 소개하면서 정부·여당의 5·18특별법 제정과 병행돼 향후 정계개편 등 한국 정국흐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주요 통신◁ AFP,로이터,AP 등 주요 국제통신사들은 3일 전두환전대통령의 구속수감 사실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특히 AFP통신은 전씨의 인물을 별도의 기사로 다루면서 『전(전)독재자 전두환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유혈적인 역사의 장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로이터통신도 전두환씨의 구속수감 보도와 함께 지난 80년 광주학살과 관련된 당시의 주요 사건일지를 보도했다. AP통신은 전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9일만에 두번째로 구속된 전직대통령이 됐다면서 전씨의 구속수감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 3.5평 독방서 「참담」한 첫밤/전씨 구속­수감 첫날 표정

    ◎이따름씩 쇠창살밖 허공 응시… 상념…/관식 들어오자 “조금있다 먹자”/경황없는듯 신문·책 요청안해 3일 이른 아침 경남 합천에서 영장이 집행돼 상오 11시40분쯤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은 이날 밤까지도 자신의 구속사실이 믿기지 않는듯 회한에 젖은 모습이면서도 비교적 담담하게 첫밤을 보낸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밤늦게까지 이따금 독방밖으로 허공을 응시하는등 상념에 빠지기도 한것으로 교도소 관계자들이 전했다. 전씨의 교도소 수감절차등은 지난달 16일 구속된 후임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씨와 거의 비슷했다.수감 직후 교도소 보안과장으로부터 금주·금연 등 재소에 따른 기초적인 주의사항을 들었다.이어 신원확인 과정을 거친 뒤 이름 대신 쓰이게 될 칭호번호가 쓰인 헝겊 2장을 받았다.전씨는 이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의무과로 가서 몸무게와 혈압측정등 간단한 건강진단을 받은 뒤 연희동 자택에서 가져온 흰색 상의와 쥐색 하의로 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건강진단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전씨는 입감 전에 재소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목욕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1일 3교대로 자신을 계호하게 될 교도관 3명으로 부터 독방의 안내를 받고 『나때문에 고생한다.그러나 앞으로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전씨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낮 12시쯤 도착한 특별수사본부 김상희 주임검사 등의 조사를 받았다. 수감 직후 식사를 깨끗이 비웠던 노씨와는 달리 전씨는 아침식사를 걸렀음에도 불구하고 입맛이 없었는지 미역국·배추김치·김 등으로 된 관식이 들어오자 『조금 있다가 먹자』며 들지 않았다가 하오 늦게서야 점심식사를 했다. 입감과 연이은 조사로 경황이 없었던 탓인지 전씨는 재소자에게 허용된 2종류의 신문은 물론 책 등도 요청하지 않았다. ◎전씨 수감된 독방구조·대우는/노씨와 같은 5평 접견실 “예우” 전두환씨의 독거실은 3·5평짜리 수감실과 5평짜리 접견실 등 2개의 방과,수세식 화장실과 샤워기 등을 갖춘 부대시설로 돼 있다.또 노태우씨처럼 교도소 의무진이 매일 건강을 점검하며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계호문제 때문에 병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외부 병원으로 이감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식은 반입할 수 없고 1식 3찬으로 된 관식만 허용된다.일반 재소자들처럼 아침 7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든다. 서울구치소와 마찬가지로 복도 중간에 난로를 피워 사동 전체를 덥히는 간접 난방방식이나 겨울철에는 더 춥다는 게 이곳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전씨에게는 침대에 깔 매트리스 1장과 모포 2장이 주어졌다.
  • 전씨,노씨등과 작당해 군사반란/전씨 구속­주요 혐의 내용

    ◎수차례 회합… 군권 장악계획 음모­반란 모의/총장공관 무력 점거… 정 총장 연행­반란 실행 3일 구속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적용하고 있는 범죄 내용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만큼이나 「화려」하다.영장요지를 분석한 전씨의 주요 범죄혐의 내용을 정리한다. ○거사일정 등 논의 ▷반란모의◁ 10·26사건 합수본부장인 전씨는 군장성 진급심사에서 하나회소속 군인들의 진급이 여의치 않게 되고 권한 남용 문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잦은 갈등을 빚어 인사조치당할 우려가 있자 정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해 제거함으로써 군의 실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79년 11월 중순부터 노태우 9사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박준병 20사단장 등과 수차례 회합,논의한 끝에 12월12일을 정총장 연행 거사일로 정했다.정총장 연행에 반발,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거사 당일 하오 6시30분 만찬초청 명목으로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전씨 등은 같은 시각에 보안사와 인근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정총장 추종세력이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병력을 동원해 제압하기로 모의했다. ○초병 현장서 살해 ▷반란실행◁ 12일 하오 7시경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은 보안사 수사관과 헌병을 동원,총장공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권총을 난사,제압한 뒤 하오 7시30분경 정총장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다.하오 9시30분쯤 정동호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고명승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 등이 경호실 병력을 동원하여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상태에서 전씨 등은 최규하대통령에게 정총장 연행·조사를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 하오 11시30분경 최세창 3공수여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은 특전사령관실에 3공수여단 병력을 투입,총격을 가해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정 특전사령관에게 부상을 가한 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박희도 1공수여단장·서수렬 1공수여단 2대대장 등은 13일 0시30분경 1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육본과 국방부를 점거하고 노재현 국방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근무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신윤희 헌병부단장 등은 김진선 수경사 상황실장의 지원을 받아 수경사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한 후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 ○전씨 수괴역 담당 ▷혐의내용◁ 전씨는 수괴로서 노태우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키고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동원해 중요 지점을 점거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또 김오낭을 살해하고 정병주와 하소곤·이재천·김인선 등을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특별법제정 발표에서 전씨 구속수감까지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연내제정 발표 ▲29일=정동년 등 5·18 고소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소취하 ▲30일=헌재,「5·18선고」 연기 공식발표 ▲12월1일 하오 6시10분=검찰,전두환씨 2일 하오 3시까지 출두통보 ▲2일 상오 9시=전씨 대국민성명발표후 고향인 합천으로 출발 ▲하오 6시10분=검찰,반란수괴등 6개죄를 적용,사전구속영장 청구 ▲하오 11시23분=법원,구속영장발부 ▲밤 12시=서울지검 수사1과장 등 수사관 9명,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합천 전규명씨 집으로 급파 ▲3일 상오 5시57분=수사관 9명,합천 도착 ▲6시9분=전씨에게 영장제시 ▲6시 34분=전씨,영장집행 완료 ▲6시 37분=전씨 호송차량 합천 출발 ▲10시 37분=안양교도소 도착,수감
  • 연희동서 솜한복 교도소에 미리 전달/전씨 영장집행서 수감까지

    ◎안양교도소앞 시민들 과자 던지며 시위/고향 친인척,영장집행 수사관 한때 저지 전두환 전대통령은 3일 상오 묵고 있던 경남 합천군 내천면 율곡리 생가마을에서 검찰 수사관 9명에 의해 압송돼 안양교도소에 전격 수감됐다.영장 집행과정에서 친인척과 주민들이 수사관에 항의하는 가벼운 승강이가 있기는 했으나 전씨측이 순순이 협조해 우려했던 불상사는 없었다. ▷수감◁ 전씨를 태운 서울2버 4442호 검정색프린스승용차는 경남 합천을 떠난지 4시간10여분만인 3일 상오 10시37분쯤 안양교도소에 도착. 승용차 뒷자리 검찰 수사관 2명 사이에 푹 눌러앉은 전씨는 입을 굳게 다문채 잠을 설친 탓인지 초췌하고 침통한 모습. 전씨를 호송한 승용차는 경수산업도로 신군포 사거리 앞에서 우회전,교도소 입구에 도착,외정문 초소,외정문,정문까지 2백50여m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취재진들이 포토라인을 제대로 지켜 노태우 전대통령 수감 때와는 달리 혼잡은 거의 없었다. ○…전씨가 탄 승용차가 교도소 진입로에 들어설때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안양지부」 소속 회원 15명이 「5·18 학살자를 처벌하라」 「전두환을 사형시켜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채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뻥튀기 과자를 던지며 시위. 전씨는 처음 이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로 착각,손을 들어 응답하려다 당황해 손을 내리기도. ○…전씨가 구속 수감된지 1시간여 만인 3일 상오 11시35분쯤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김상희 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이 전씨를 조사하기 위해 안양교도소를 방문. 서울 3포 5321호 캐피탈 등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교도소에 도착한 김부장검사 일행은 『무슨 조사를 할 것인가』는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 ▷압송◁ 전씨 압송팀들은 합천을 출발,고령에서 88고속도로로 들어서 남대구 IC를 거쳐 경부고속도로 진입,안산­동수원 톨게이트∼북수원IC∼안양 코스로 이동. 전씨의 호송차량 행렬에 대해서는 시·도 경계가 바뀔때 마다 교통 안내 경찰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없었으며,대전 부근 지점에서 잠시 정차했으나 보도진이 몰려들자 곧 바로 다시 출발해 안양교도소까지 직행. 전씨는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듯 간혹 꾸벅뿌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시종일관 입을 꼭다문채 굳은 표정. ○…전씨가 수감되기 전인 상오 10시쯤 연희동에서 2개의 분홍색 보따리에 전씨의 내의 3∼4벌과 솜을 넣은 한복 1벌을 미리 안양교도소측에 전달해 눈길. 서울 4초4133 검은색 프린스 승용차에서 내린 2명은 보도진이 진을 치고 있는 사이를 지나 교도관에게 접근,『연희동에서 왔다』며 슬그머니 입소. ▷영장집행◁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한 수사관 9명은 합천경찰서 경찰관 1천여명의 지원을 받아 2일 상오 5시59분쯤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장조카 전규명(62)씨 집에 도착한 뒤 10분만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검찰수사관들이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동네 청년 10여명이 대문을 가로막고 진입을 막았으나 경찰은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여러분들의 행위는 불법행위다』라고 3차례 경고한 뒤 대문을 밀치고 수사관들을 들여보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청년과 경찰간에 승강이가 벌어지자 전씨의 측근 한 사람이 나와 『영장집행에 최대한 협조할테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어른(전두환씨를 지칭)이 가족과 잠시 이야기 중이다』라고 사정. 이과장 등은 이어 상오 6시9분쯤 전씨가 있던 안방으로 들어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사전구속영장을 제시한뒤 26분만인 상오 6시30분쯤 전씨와 함께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서울 2버 4442호 프린스승용차에 타고 안양으로 출발. 상오 6시35분쯤 초췌한 모습으로 검은색 양복과 검정코트에 흰 목도리를 걸치고 수사관들과 함께 방을 나온 전씨는 집앞에서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50여m를 뒤따르며 『한마디 해 달라』는 취재진의 끈질긴 요구에 묵묵부답하며 전날 합천으로 내려 올 때에 비해 한결 비통한 표정.
  • 전·노씨 얄궂은 인연/우정·반목 44년 끝내 “동병상련”

    ◎육사 졸업후 친구서 상하관계로/노씨 「5공 청산」싸고 서로 멀어져 전두환과 노태우.40년 친구이면서 나란히 대통령의 영광을 누렸던 두사람이,역사의 심판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두사람의 성격은 상반된다고 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그러나 살아온 이력은 닮은데가 너무 많다. 두 사람의 관계는 51년 육군사관학교에 11기로 입학하면서 시작된다.대구공고를 졸업한 전두환과 역시 대구공고를 다니다 경북고등학교로 옮겼던 노태우는 동질감으로 어울리게 된다.55년 소위로 임관한뒤 군생활이 본격화되면서 둘의 관계는 친구이면서도 서서히 주종적 관계로 형성되어 간다.70년1월 전두환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자리를 노태우에게 인계한다.노는 동기생인 전을 유난히 따랐다.하나회와 육사11기 주도권을 놓고 처남 김복동이 전두환과 다퉜지만,노는 줄곧 전의 편을 들었다.대령시절에는 전이 사는 연희동으로 이사까지 갔다. 그저 전두환이 갔던 길로만 편안하게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79년 운명의 12·12를 통해 국가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80년 8월 정권의 산실인 국군보안사령부를 친구인 노태우에게 인계했다. 권력의 마력때문일까.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두사람 사이에는 반목의 씨앗이 잉태됐다.노태우는 5공 7년동안 2인자가 되기위해 끊임없는 견제와 수모를 견뎌왔다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결국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는 전두환의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됐다.전두환은 대통령직도 자신이 노태우에게 물려준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노의 생각은 달랐다.함께 12·12와 5·18을 저질렀지만,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대통령직을 빼앗은 전과,직선으로 선출된 자기는 다르다는 것이 노의 심사였다.노태우는 대통령에 취임한뒤 5공청산 작업에 나섰다.전에 눌려 살아온 30년에 대한 보복이라는 말도 나왔다.89년 겨울 전두환은 삭풍이 몰아치는 백담사에서 『노태우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고 울분을 삭였다. 그러나 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정은 또 달라졌다.5공과 6공은 한 뿌리이며,아무런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 새정부의 역사관이다.위기감을 느낀 전과 노는 반목을 멈추고 다시 손잡지 않을 수 없었다.94년 6월25일 두사람은 함께 현충사를 참배하는 형식으로 퇴임후 첫회동을 한뒤 화해의 폭탄주를 마셨다.그러나 5·6공의 공동전선으로도 역사를 바로잡자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지난달 16일 노태우씨는 재임중의 뇌물수수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그리고 3일 전두환씨는 마침내 반란수괴혐의로 안양교도소에서 구속수감됐다. 두사람이 살아온 역정처럼 심판을 받는 장면도 상반됐다.노씨는 눈물을 닦으며 감정에 호소해보려 했으나,전씨는 끝까지 버티며 「장렬히 전사」하는 쪽을 택했다.어쨌든 지금까지 계속 물려받기만하던 노태우씨가 구속만큼은 처음으로 전을 앞서게 됐다.
  • “광주항쟁 영령 이제야 눈 감을것”/전씨 구속­각계의 반응

    ◎헌정중단 불행 다시는 없어야 전두환 전대통령이 3일 상오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반란수괴 등 혐의의 구속영장에 따라 수사관들에게 압송돼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자 국민들은 대체로 『사필귀정으로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특히 광주 시민들은 『광주항쟁 때 희생된 영령들이 이제야 눈을 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석규(65·주부·서울 광진구 구의동)=노씨에 이어 전씨까지 전직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재소자의 신분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불행한 역사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지 착잡한 심정이다.그러나 이는 전씨가 16년전 저지른 죄의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김영신(32·회사원)=대통령 재임시절 숱한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전씨가 고향집에서 강제연행돼 교도소에 수감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전씨의 구속에 이어 다른 5·18관련자의 처벌도 예외없이 이뤄져야 한다.여야는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5·18 단죄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야기해 수구세력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 우려가 있다. ▲김종철(45·사업)=전씨의 구속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우리 시대의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신군부의 학살로 희생되었던 무고한 광주시민 영혼들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다. ▲정한영(변호사·대구 수성구 범어동)=정권창출 지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하다.전씨 구속을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이용해서는 안되며 특히 이번을 계기로 다시는 헌정이 중단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 반응/“잘못 뉘우치고 역사 앞에 사죄 마땅” 광주시민들은 『전씨는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법의 심판을 당당히 받아야 한다』며 『80년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무참히 쓰러져간 원혼들이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게 됐다』고 말했다. 정수만 5·18유족회회장(48)은 『전씨가 대국민성명에서 보여준 오만방자한 태도에 치를 떨었다』며 『정권찬탈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짓밟은 천인공노할 범죄자는 법의 준엄한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조비오 신부(60·5·18기념재단이사장)도 『전씨는 이제 겸허한 자세로 국민과 역사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검찰은 엄정한 수사로 쿠데타로 얼룩진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바로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병조 광주시의회의장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15년여동안 맺혀있던 한이 풀어졌다』며 『다시는 이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역사앞에 진실 밝혀야”/전씨 수감 여야 논평

    여야는 3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군형법상 반란수괴죄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데 대해 각각 논평을 냈다. ◇민자당 손학규 대변인=또다시 전직대통령이 구속되는 불행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게 되어 유감이다.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더욱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도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빚어낸 자업자득이다. ◇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만시지탄이나 당연하다.기소유예 및 공소권없음을 결정한 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검찰 스스로를 위해서나 국민 모두가 바라는대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5·18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의법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민주당 이규택 대변인=전씨의 신속한 구속영장집행은 그의 국민과 역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오만방자한 태도와 그의 잔당들의 후안무치한 면면을 볼때 적절한 조치로 평가한다. ◇자민련 구창림 대변인=우리 역사에 불행한 일이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진상이 가려지고 온 국민이납득할 수 있도록 처리될 것을 기대한다.
  • 뭘하자는 장외투쟁인가(사설)

    김대중씨의 국민회의측이 장외투쟁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한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지금까지 열려있는 국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자유롭게 개진해왔고 앞으로도 할 수있는 상황에서 굳이 인파를 모아 장외투쟁을 하는 낡은 방법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김총재가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장외투쟁을 지양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그것이 의회주의원칙과 맞지않을 뿐아니라 안정과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김총재 스스로 어제 집회에서 현재의 상황이 혼란과 격동의 비상한 시국이라고 말하면서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깊게 하는 장외투쟁을 벌인 것은 자가당착이다.더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수감과 5·18특별법제정 결단등 김영삼대통령의 강력한 역사청산의지가 휘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검사제도입과 대선자금공개등의 요구가 장외투쟁 강행의 명분으로 얼마나 호응을 얻었을지 심히 의문스럽다. 오히려 우리는 국민회의측이 굴절되고 왜곡된 역사의 청산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진정으로 협조할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잘못된 역사의 청산은 그동안 확고히 다져진 민주적 안정의 토대위에 어디까지나 법치주의의 원칙에서 이루어져야 한다.혼란과 불안을 막고 국가발전을 위한 청산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접근을 넘는 역사의식이 필요하다.정치적으로만 접근하면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검찰이 전씨에 대한 조사를 유보해야 한다는 식의 국민들이 수긍할 수 없는 논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리한 장외투쟁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20억원 수수사실을 덮어주지 못했을뿐 아니라 국민회의측의 역사청산의지에 대한 의구심만 깊게 해주었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정파든 5·18을 당리당략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역사청산이라는 대의의 실현을 가로막는 일이 되며 정치적 이익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정치권은 하루빨리 정쟁에서 벗어나 특별법제정등 역사청산방안을 찾는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전씨 11시간 조사… 할만큼 했다”/이종찬 수사본부장 일문일답

    ◎진술태도·조사사황 말할수 없어/최규하씨 조사 절충작업 잘 진행 12·12및 5·18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은 3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방향등에 대해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전씨에 대한 조사진행 상황은. ▲안양교도소에 파견된 수사팀이 돌아와봐야 안다.인정신문 등 간단한 조사만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씨의 진술태도는 어떤가. ▲그것도 수사팀에게 들어봐야 안다. ­묵비권을 강하게 행사한다던데. ▲아직 보고받지 못했다. ­수사팀이 많은 양의 자료를 가져가던데 조사가 길어지나. ▲자료야 언제나 필요한 것 아닌가.오늘 많이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내용을 조사하나. ▲진술내용을 비롯,조사받는 태도 현재의 심경 등 전씨의 조사에 관한 사항은 일체 말해줄 수 없다. ­앞으로 조사계획은. ▲오늘 조사한 결과를 보고 추후 판단하겠다. ­검찰청으로 소환조사할 수도 있나. ▲계속 교도소를 방문해 조사할 방침이다. ­노태우씨와 대질신문도 갖나. ▲그걸 어떻게 아나. ­최규하 전 대통령에대한 조사계획은. ▲그쪽 대리인 및 비서관들과 절충작업이 덜 끝났다. ­조사방법과 시기는 결정됐나. ▲아직 말할 수 없다.날짜도 확정되지 않았다. ­최씨측이 조사에 응할 것 같은가. ▲확정된 사실이 없다.그쪽과 얘기가 되면 알려주겠다. ­최씨를 조사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나. ▲아직 정해진게 없다. ­절충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나. ▲그렇지 않겠나. ­최씨측 대리인은 이기창변호사인가. ▲여러 통로로 접촉하고 있다. ­오늘 노씨도 조사했나. ▲노씨 조사는 없었다. ­5일로 예정된 노씨의 기소 때 반란혐의도 병합되나. ▲수사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소일에 맞출 수가 없다. ­더 조사할 사람은. ▲앞으로 수사방향이 어떤지,누구를 조사할지 등은 미리 밝힐 수 없다.양해해달라. ­수사결과 공범으로 밝혀진 사람들은 조사해야 하지 않나. ▲우리의 재량이다. ­압송 도중 전씨가 한 말이 있나. ▲언론이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과열경쟁을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검찰의 조치에 대한 불만은 표시하지 않았나. ▲일체 없었던 것으로 안다.
  • 3백여항목 미묘한 사안마다 함구/전씨 구속­검찰 신문 내용

    ◎“정승화 총장 10·26가담 증거있나” “…”/“중앙청·육군본부 점경 지시했나” “…” 3일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은 특별수사부의 김상희 주임검사로부터 12·12사건에관해 집중적인 신문을 받았다.김검사는 이날 상오11시35분부터 밤늦게까지 전씨를 끈질기게 추궁했다. 전씨 신문내용을 검찰의 브리핑등을 토대로 재구성해본다.전씨는 수사당시 제출했던 서면답변서의 답변내용을 반복하거나 미묘한 사안에 대해서는 묵비권행사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3백50여개 신문항목은 12·12사건에 국한됐으며 편의상 이를 12·12사건 전개의 시간대별로 정리한다. 김검사=12·12 당일 경복궁 30경비단에 노태우9사단장 등 8명을 모이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까. 전씨=당시 국가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김=사전에 참석자들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계획을 알려주었습니까. 전=노씨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검찰조사결과 노씨이외의 참석자들이 사전에 모두 정승화씨 연행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일부는 피의자에게 직접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입니까. 전=모릅니다. 김=이 모임을 알리는데 사전에 결정된 암호명을 사용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전=모릅니다. 김=참석자들은 「하나회」회원으로 평소 시국이나 군내부 제로 자주 모임을 가졌다는데 사실입니까. 전=「하나회」는 친목단체였을 뿐입니다. 김=정승화씨를 연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상 불가피했습니다. 김=당시 합수부측은 군최고책임자였던 정씨가 사건발생장소 부근에 있었고 계엄사령관이 된 이후 합수부의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내란방조혐의를 주장했지만 살해사건에 가담했다는 정확한 증거가 있었습니까. 전=…. 김=정씨의 혐의가 분명하고 연행이 불가피했다면 왜 사전에 대통령의 재가를 얻지 않았습니까. 전=당시 상황이 사전 재가를 얻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김=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건의하러 가기 30분쯤전인 하오6시쯤 이미 허삼수·우경윤대령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경사 30헌병대 헌병 60여명이 보안사에 집결,하오6시50분에 연행을 위해 출동했는데 결국 사전재가를 얻지 않고 행동한 것 아닙니까. 전=…. 김=참모총장공관에 도착한 수사관들이 일방적으로 재가를 얻었다며 총장을 연행하려 했는데 이를 사전에 지시했습니까. 전=연행하도록만 지시했습니다. 김=공관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이재천수행부관 등에게 총기를 발사,사상자가 났는데 사전에 발포를 명령한 바 있습니까. 전=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김=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모든 상황이 끝난 뒤인 새벽 5시쯤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대통령이 노재현 국방장관의 배석을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김=하오9시30분쯤 2차 재가요청시 유학성 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 등 5명의 장성들과 함께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국방장관의 소재파악보다 대통령의 재가를 호소하자는 의견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김=최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과정에서 협박하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맞습니까. 전=재가를 건의했을 뿐입니다. 김=재가요청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까. 전=아닙니다.김=정승화씨 연행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얻는 과정에서 제1공수여단 등 군병력동원을 지시했습니까. 전=우발적인 충돌결과였습니다. 김=윤성민 참모차장등 육군참모진이 임의로 육본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무력반발에 동조하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 등 정총장계열이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강행했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참모총장의 연행이나 해임에 대한 국가원수의 재가가 없는 상황에서 임의연행한 것에 대해 육본참모진이 경계태세를 갖춘 것은 정당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까. 전=…. 김=이날 공수여단,9사단 29연대 등을 동원해 중앙청과 육군본부 등을 점령하고 육군수뇌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입니까. 전=아는바 없습니다.
  • 전두환씨 「12·12」에 묵비권/검찰

    ◎반란 모의·병력 동원과정 추궁/안양 교도소 수감… 한밤까지 신문/최 전 대통령 주내 참고인 자격 직접 조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3일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두환전대통령을 이날 상오 10시37분쯤 안양교도소에 구속수감했다. 검찰은 이에앞서 2일 하오 11시23분쯤 서울지법으로부터 전전대통령의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뒤 수사관들을 전전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경남 합천에 보내 전전대통령을 안양교도소로 압송했다. 수사본부는 또 이날 낮12시30분쯤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를 비롯,채동욱·이부영·이종대 검사 등 수사팀 4명을 안양교도소에 보내 전전대통령을 상대로 하오11시30분까지 11시간여동안 조사를 벌였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전대통령에 대해 우선 12·12사건에 국한해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으며 필요에 따라 수시로 구류신문을 할 것』이라면서 『전전대통령과 노태우전대통령 이외에 나머지 관련자들은 앞으로 제정될 5·18 특별법에 따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부장검사 등은 전전대통령을 상대로 ▲12·12 군사반란을 실제 11월말 모의했는지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게 된 경위 ▲최규하 전대통령에게 정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재가받는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는지 ▲신군부측의 병력동원과정 등을 조사했다. 전전대통령은 검찰의 신문사항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면서 거의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본부는 전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위해 지난해 12·12사건 당시 보낸 서면질의서 3백7문항 이외에 그동안 자료수집 등을 통해 확보한 내용을 추가,3백50문항 정도의 신문내용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본부는 이와 함께 최전대통령의 변호인 등의 논의를 통해 방문조사나 소환조사,제3의 장소에서의 조사등 가운데 한 방법을 결정한 뒤 이번주 중으로 최전대통령을 참고인 자격으로 직접 조사키로 했다.
  • 검찰 대응법리/「개전의 정」 없으면 처벌 당연

    ◎여론 악화… 국가안정 위해 단죄 불가피 자신에 대한 수사가 이미 종결됐다고 주장하며 소환에 불응한 전두환씨에 대응하는 검찰의 논리는 무엇일까. 전씨는 2일 대국민성명을 통해 12·12사건은 이미 지난해 10월 기소유예로 끝났기 때문에 검찰의 어떠한 조치에도 불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달 30일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며 재수사의 근거로 제시한 『재범을 했거나 개전의 정이 없는 등 처벌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수사를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기소유예란 용어 그대로 죄는 인정하지만 처벌은 유보하는 것이다. 재수사요건이 성립하면 언제든지 다시 수사해 처벌할 수 있는 것으로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소유예처분의 이면에는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경우 국가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는 정상이 참작됐고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에서도 이것이 인정됐다. 하지만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으로 말미암아 5·6공 주도세력을 처벌하자는 국민여론이 매우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이제는 처벌이 「국가안정」이 됐다는게 검찰의 분석이다. 12·12사건의 공범인 노씨의 재범이 발생한 것도 재수사의 주요 요인이다. 「개전의 정이 없다」는 것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최근 5공세력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전씨의 강경한 소환거부와 반발이 바로 「개전의 정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또 지난달 30일로 예정됐다 무산된 5·18관련 헌법소원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검찰이 전씨를 반란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내부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검찰이 전씨를 수사하려는 법적 논리의 하나이다. 법리적으로 전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반드시 거치도록 돼있는 만큼 검찰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해석이다. 한편 지난해 12·12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전씨에 대한 직접 조사없이 서면답변에만 의존해 수사상 미진한 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소·고발인은 물론 진술인들 사이에도 상이한 진술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200조에 의하면 검사는 수사에 필요한 경우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 출석하지 않을 경우 이 법 201조에 의해 구속할 수 있다.
  • “국민회의는 전씨 대변 말라”/“할말 했다” 평가 강력비난­민자

    민자당의 김정숙 부대변인은 2일 국민회의측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성명을 『김대통령에게 할 말을 한 것』이라고 평가한데 대해 『국민회의가 전씨의 대변정당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김부대변인은 『국민회의는 학살주범의 처벌을 통한 역사 바로잡기보다는 오직 김대중총재 대통령 만들기에 눈이 어두워 국민의 여망을 배신하고 있다』면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5·18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지,5·18주범을 비호하자는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김부대변인은 또 『특별검사제 도입은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이 기본취지인데도,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마친 특검제 도입자체가 궁극적 목적인 것처럼 사실을 오도하며 정국불안만 야기하고 있다』면서 『여야 정치권 모두가 특별법 제정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최환 서울지검장·이종찬 특수본부장 문답

    ◎“검찰권 정면도전… 구속 외길밖에 없다”/“전씨 「12·12」이외 위법사실도 모두 조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서울지검 3차장)은 2일 하오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직후 기자들과 만났다.다음은 일문일답. ­전씨에 대해 언제 구속집행을 하는가. ▲영장이 발부되는 대로 집행계획을 세울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수사에 일체 협조를 안한다고 했으니까(경남 합천에) 가서 데려와야 할 것같다. ­전씨에 대한 조사는 12·12에 국한하나. ▲구속영장 내용은 거기에 국한됐다.하지만 위법사실에 대해서는 다 조사한다. ­노씨의 12·12사건 혐의에 대한 기소는 언제 하나. ▲대검의 사건(비자금조성 사건)과 일괄해서 하진 못할 것같다.(4일로 예정된 비자금 사건기소에 맞추기에는)시간적 여유가 없다.나중에 추가기소하면 되는 것 아닌가. ­최규하 전대통령은 오기로 했나. ▲접촉을 하고 있으나 용이하지 않다.아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병세는. ▲약간 아프다는 정도다. 이에 앞서 최환 서울지검장도 이날 하오 기자들과 만나 전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했다. ­조사도 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나. ▲전씨에 대한 신문조서는 없으나 서면조사를 이미 받은 상태이다.미비한 부분에 대해서는 노태우 전대통령을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영장내용을 구성하면 된다. 또 전씨가 성명을 통해 소신과 주장을 모두 밝힌 만큼 더이상 조사의 의미가 없다. ­조사가 아직 미진한 부분은. ▲12·12의 전체적인 사건구도는 이미 다 드러났으나 공범들간의 행위 분담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고 영장청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오늘 노씨를 상대로 이 부분을 조사했다. ­답변서로는 입증이 안되나.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에 비춰보면 답변서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 ­처음부터 오늘 전씨를 구속할 생각이었나. ▲아니다.조사를 마치고 귀가조치한 뒤 필요하면 다시 부를 생각이었다. ­전씨의 성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김영삼 대통령과 검찰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우리가 취할 방법도외길밖에 없다. ­더이상 조사는 없나. ▲기록검토는 충분히 돼 있으나 보완조사가 필요하다. ­5·18관련 혐의는. ▲특별법 제정절차를 모두 거치려면 구속기한(20일)을 넘길 수도 있지만 우선 기소한 뒤 추가기소할 수도 있다.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 “국민 무시한 오만방자한 태도”/전씨 소환 불응­여권의 표정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 불쾌감­청와대/“적반하장” 규탄속 「물갈이」 우려­민자 여권은 2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대해 일제히 『오만방자하다』며 격앙된 반응이었다. ▷청와대◁ 전두환씨 성명에 대해 『논평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외에 일체 공식대응을 하지않았다.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상오 9시 전씨 성명발표때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으며 TV를 보지않았다고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윤대변인은 『김대통령이 전씨 성명발표를 전혀 괘념치 않는것 같더라』고 전했다.김대통령은 상오9시30분 일반사면령 공포안 서명식이 끝난뒤 이홍구 총리 및 한승수 비서실장등 배석자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도 일체 전씨 성명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는 것.김대통령은 성명내용을 이원종 정무수석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위관계자는 『역사를 바로잡으라는 국민여망이 열화와 같다』면서 『전씨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 검찰수사에 협조해야 하며 지금의 검찰은 5·6공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전씨가 좌파를 거론한데 대해 『좌파들이 목소리를 내게된데는 쿠데타 세력이 잘못된 일을 한게 큰 이유가 됐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어이없어 했다. ▷민자당◁ 민자당은 2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해 『오만방자하다』고 격앙된 반응이었다.하지만 의외의 강한 반발에 다소 놀란 탓에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의 분위기는 심각했다고 손학규 대변인이 소개했다. 이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대변인단의 공식논평은 전씨측에 십자포화를 퍼붓는 내용으로 일관하면서 4차례나 이어졌다.강삼재 사무총장은 두차례의 기자간담회에서 전씨의 「적반하장」을 규탄했다.손대변인도 첫 논평이 「성」에 차지 않는지 더 강한 어조의 논평을 다시 냈다.전씨가 앞으로 또 반발한다면 즉각 「응징」할 것이라는 기본자세도 밝혔다. 첫 포화는 손대변인이 맡았다.그는 『법과 정의,국민을 무시한 오만방자한 태도』라고 규정하고 검찰 소환에 즉각 응할 것을 촉구했다.손대변인은 재차 논평을 내고 전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망발」 「후안무치」 「파시스트적 역사관」등으로 공격했다. 이어 강총장이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면서 더 강도높은 지원사격에 나섰다.그는 『잠시 살기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면 영원히 죽을 것』이라면서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는 공식 반응이었다. 당일각에서,즉 전씨가 만든 민정당에 뿌리를 둔 민정계 일각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어떤 이는 여권의 강공 드라이브에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총선을 앞두고 「물갈이론」이 좀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듯 했다. 반면 민정계쪽의 반응은 시종 무겁고 착잡했다.김윤환 대표위원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뭐라고 얘기하겠느냐』면서 입을 다물었다.한 민정계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5공신당등이 세력화해서 DJ(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손잡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걱정했다. 5·18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정호용 의원은 『전대통령이 할말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향후 거취와 관련,『빠른 시일내에 입장을 정리해발표하겠다』고 탈당의사를 밝혔다.
  • 새해 예산 항목조정 내역을 보면

    ◎예산증가율 14.8%… 작년비 0.3% 낮아/각당 총선의식 지역개발비 배정에 역점/예비비 줄고 농촌지원·SOC비용 확충 2일 국회를 통과한 62조9천6백26억원 규모의 새해 정부예산안은 앞서 정부가 제출한 63조36억원의 예산안에서 4백10억원이 삭감된 액수다.이는 또 올 예산 54조8천2백41억원에 비해 14.8%가 늘어난 것이며 올해 예산증가율 15.1%보다는 0.3%포인트가 낮아진 것이다. 4백10억원의 순삭감액은 3천52억원의 세출증액분에다 3천4백62억원의 세출삭감분이 합산된 수치로 소득세입의 축소로 계정된다.이같은 삭감액 규모는 89년부터 올해까지의 평균삭감액 2천2백80억원에 크게 못미친다.특히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의 예산조정작업에서 국민회의와 민주당이 각각 4천1백98억원,4천8백40억원의 순삭감을 요구한 것과 비교하면 삭감규모는 소폭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의식,사회간접자본 시설등 지역개발사업과 복지분야의 예산을 확보하느라 전체적으로 삭감보다는 조정작업에 주력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각각 호남권과 충청권의 개발사업예산의 증액을 요구,민자당과 줄다리기끝에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국민회의는 지역균형개발을 위한 예산이 부산·경남에 집중돼 있다면서 이를 타지역의 개발사업비로 조정할 것을 요구,새만금사업 1백50억원,대전·광주지하철사업 1백억원,광주도심철도 이설 20억원,무안∼영광고속도로 조사비 30억원,여수공항 20억원등을 따냈다.또한 자민련은 공주∼서천고속도로 조사비 20억원,금강취수지사업 50억원,각급학교 담임수당 4억원등을 얻어냈다.여야가 함께 요구해 증액된 항목은 농어촌지원 1천39억원,고엽제 후유증 환자지원등 사회복지예산 3백28억원,중소기업지원을 위한 신용및 기술보증기금 3백억원,해양오염방제사업 1백52억원등이다. 예산조정과정에서 여야간에 쟁점이 됐던 항목은 방위비와 예비비,관변단체 지원금,선심성 지역개발사업,영농지원자금등이다.12조7천3백60억원규모의 방위비에 대해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율곡사업비등에서 4천억원안팎의 삭감을 요구했으나 41억원의 정부산하단체 지원금과 함께 원안통과됐다.8천86억원의 예비비는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할 것을 주장한 야당측의 요구로 증액분의 절반인 5백99억원이 삭감됐다. 예산이 증액된 분야는 사회간접자본 시설(9백90억원),중소기업지원(3백억원),농어촌지원(1천39억원),사회복지(3백28억원),해양오염방제(1백52억원),기타(2백43억원)등이다.사회간접자본 시설중 서울지하철지원예산이 4백50억원,대전·광주지하철과 인천·새만금등 6개 신항만건설에 대한 지원예산이 각각 1백억원씩 늘었다.농어촌지원예산으로는 농업경영자금이 8백억원,새만금방조제보상비 1백50억원,미곡종합처리장 건설지원금이 80억원 증액됐다.중소기업지원을 위해 신용보증기금 2백억원,기술신용보증기금 1백억원이 추가됐다.사회복지분야에서는 지역의료보험지원금이 2백30억원 늘었고 지방자치단체의 오염방제사업자금융자가 1백억원 확대됐다. 삭감항목은 모두 14개로 도로공사 융·출자 8백억원과 양곡증권이자 6백55억원,예비비 5백99억원,대외협력기금 2백억원,공공임대 지자체 보조 2백억원,정주권 개발 2백억원등이 삭감됐다.또내무부와 교육부의 교부금 1백3억원,수출보험기금 1백억원등이 줄어들었다. ◎국회 예산안 처리 이모저모/야권 필리버스터… 고함·욕설 난무/「전씨 성명」 비난 발언 봇물… 표결엔 여야 동참 새해 예산안이 통과된 2일 국회는 예산안과 법률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권이 사안마다 반대토론을 벌이는 등 고의적인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벌이는 바람에 의원들의 고함과 욕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표결에는 여야가 모두 참여,예년같은 「날치기 통과」의 행태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예산안에 대한 본회의 찬반토론에서 김대식 의원(국민회의)은 『내년도 신규 사업비의 경우 영남과 호남의 비율이 4.5대 1로 지역간 편중이 심하다』며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예산』이라고 반대했다.장기욱 의원(민주)도 『세입과 세출을 연계해서 심의해야 하는데도 재무위와 예결위에서 따로 심의되는 등 예산심의절차에 문제가 많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상재 의원(민자)은 『5·18 정국의 격변속에서도 국민의 세부담을 줄이고 균형예산을짜기위해 심도있는 논의를 벌였다』며 『팽창예산이라고 하지만 국가경쟁력 강화와 사회간접자본 확충,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불가피한 예산』이라고 찬성했다. 표결은 하오 7시50분쯤 여야의원 1백87명이 참가한 가운데 찬성 1백50,반대 35,기권 2로 가결됐다.민자당과 자민련이 찬성표를,국민회의와 민주당이 반대표를 던졌다. ○…민자당 서정화 원내총무는 새해 예산안이 여야간 큰 충돌없이 법정시한내에 처리된 데 대해 『모처럼 성숙한 국회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서총무는 『예전같으면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간 몸싸움이나 변칙처리 소동 등으로 국회가 심한 몸살을 앓았겠지만 이번에는 진일보한 국회운영을 보여줘 민주주의가 한단계 발전하는 계기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날 하오 예산안 표결에 앞서 여야는 본회의 4분발언과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전두환 전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을 『오만불손한 행위』라고 일제히 비난했다.다만 정당별 입장은 달랐다. 4분발언에서 번형식 의원(민자)은 『전씨가무법천지의 서부활극에 나오는 총잡이처럼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좌파」운운하는 것은 역사와 국민을 또 다시 거스르는 반역행위』라며 전씨의 즉각 구속을 요구했다. 번의원은 또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를 겨냥,『6공 중간평가시 노씨와 김대중 총재 사이에 심도있는 말이 오고간 것으로 안다』고 20억원 이외의 자금수수설을 주장했다. 원혜영 의원(민주)은 『일말의 반성과 참회도 없이 국민을 협박하고 내전도 불사하겠다는 선전포고』라면서 『전씨가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힘으로 참회를 시키자』고 전씨의 구속을 요구했다. ○…그러나 장석화 의원(국민회의)은 『전씨가 뻔뻔스러운 말로 오만방자하게 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공격의 화살은 김대통령을 향했다. 그는 『쿠데타 내란세력과 야합해 정권을 잡았다.김대통령의 사조직인 검찰이 전씨를 수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면서 특검제 도입과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를 거듭 요구했다.
  • “역사부정 아닌 역사 바로잡기”/전씨 소환 불응­여의 반박 논리

    ◎정치보복­실정법에 따른 정당한 법 집행/“좌파” 주장­국민 모독하는 파시스트 시각 민자당은 2일 전두환씨가 현 정부의 정통성 문제까지 거론하며 검찰출두를 거부한 데 대해 대변인단은 물론 강삼재 사무총장까지 전면에 총출동,조목조목 반박했다. ◇12·12 군사반란,5·17 내란,5·18 광주학살=민자당은 먼저 전씨가 이들 사건과 관련,일언반구의 반성도 없이 13대 국회청문회와 검찰수사 때의 답변을 인용,정당성을 거듭 주장한 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국토방위에 전념해야할 군인들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권을 찬탈,국민을 슬프게 하고 군의 명예를 실추시켜 역사를 굴절시킨데 대해 회개·반성하기는 커녕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역사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따를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손학규 대변인도 『장관에게 총을 쏘고 반란의 수괴로서 군의 질서를 문란시키고 헌법기관을 전복하고 인권을 유린하고서도 거짓진술로 진실을 은폐하려한 죄과를 반성치 않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12·12,5·17 등의 재수사 문제=민자당은 또 전씨가 12·12 5·17 등의 재수사를 『현 정부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단정하며 수사에 일체 불응할 뜻을 밝힌데 대해 『국가 공권력에 도전하는 망발』이라고 규정했다.강총장은 『국민의 90%이상이 단죄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렴치한 행위를 회개하지 못하고 잠시 살기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면 법에 따른 심판을 면치 못하고 역사속에서 영원히 죽게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씨의 「정치보복」 주장=이신범 부대변인은 『전씨는 소급입법에 의해 수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반란수괴행위에 대해 당시의 실정법에 의한 법집행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12·12 5·18 등을 『13대 국회청문회와 검찰수사과정 등을 통해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한데 대해=민자당은 『왜곡된 역사를 진실로 바로잡는 작업은 문민정부에 와서야 가능해졌다』는 논리를 폈다.강총장은 『당시 진실 규명을 해야하는 역사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고 6공치하의 현실적 한계를지적했다.강총장은 『솔직히 우리는 당시 소수파였고 힘이 없없다』고 면서 『그러나 문민정부를 이룬만큼 언제까지나 이를 미뤄둘 수는 없다』고 문민정부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다. ◇『과거 정권의 모든 정통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좌파논리와 같다』고 김영삼대통령의 역사관을 겨냥한데 대해=강총장은 『그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이 7년동안 국가를 통치했다는 사실에 경악할 따름』이라고 일축했다.손대변인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국민적 노력을 좌파의 논리로 모는 전씨의 비뚤어진 역사관은 우익이 아니라 파시스트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는 『1공화국은 4·19혁명에 의해 국민의 심판으로 무너졌고 3공은 유신독재로 헌정을 유린한 끝에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10·26이라는 자체분열로 자멸했다』고 설명했다.또 『5공은 6·10항쟁뒤 6·29선언으로 대국민 항복을 했고 6공은 대통령인 노태우씨가 천문학적 부정부패로 국민의 버림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했다.손대변인은 『김대통령이 과거 역사를 부정한것이 아니라 국민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투쟁했고 마침내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것』이라면서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채 김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바로잡은 국민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결론지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