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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 5·18 검찰수사 전말과 의미

    ◎재수사 91일만에 핵심 16명 심판대로/피고소인·목격자 등 8백여명 환문/「양민학살」 18차레나 광주현지조사/경복궁모임 실체·집권시나리오 등 새로 밝혀내 12·12와 5·18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착수 91일만인 28일 사실상 종결됐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5·6공의 실력자 16명이 군사반란및 내란 등의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79년 12월12일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한 지 17년만이다. 12·12는 군사반란으로,5·18은 내란으로 자리매김됐다. 검찰은 지난 해 11월30일 두 사건에 대해 「사정 변경」을 이유로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를 설치,본격적인 재수사에 들어갔다. 수사본부를 가동한지 5일만인 12월3일에는 전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해 군사반란 수괴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이어 피고소·고발인과 당시 국무위원,광주 현장의 목격자 등 모두 8백여명을 조사했다.처음 수사에 착수했을 때보다 4백여명이 많았다. 특히 광주 현지에 수사팀을 파견,18차례에 걸쳐 주남마을 등 양민학살을 조사했다.광주 현지에서 1백10명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등 진실 규명에 진력했다는 자체 평가다. 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국가 기강의 확립과 국가 장래의 위상 ▲국가 기본권의 본질과 참된 운용 ▲범행 가담 경위와 정도 ▲범행 후 뉘우치는 정도 등을 감안해서 사법처리했다.「엄정주의」와 「온정주의」적 요소를 종합,선별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원칙에 따라 12·12군사반란을 지휘하고 5·18당시 시국수습방안을 마련해 내란을 주도한 전·노전대통령을 포함해 11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병력을 출동했거나 광주 현장을 진압했던 현장지휘관 등 관련자 55명은 불기소 처분됐다. 불기소 처분자 가운데 김진영 당시 33경비단장 등 12·12사건에 가담했던 지휘관 19명은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에 해당,기소유예했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진종채 전 2군사령관 등 5·18관련 지휘관 33명에 대해서는 가담 사실만으로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무혐의 처리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도피한 장기오·박희도씨와 캐나다에 체류 중인 조홍씨 등 3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 5·18특별법의 위헌제청으로 검찰은 12·12사건 관련자의 처벌에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법원에 의해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장세동·최세창씨는 12·12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처벌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헌법재판소가 5·18특별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함에 따라 걸림돌은 사라졌다. 검찰은 재 수사에서 반란군 지휘부가 모인 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실체와 집권 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임시 국무회의장주변의 무장병력 배치,발포명령으로 확산된 계엄사령관의 「자위권 발동」 천명 등의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이에 따라 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에서부터 81년 1월24일 비상계엄 해제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최규하 전 대통령의 강제 하야 등 몇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 전씨 은닉재산 4월 몰수절차/검찰,3차공판패

    검찰은 오는 4월 말쯤 열리는 전두환씨의 비자금사건 3차 공판에서 구형과 함께 전씨의 은닉 재산에 대한 몰수 및 추징 절차를 밟기로 했다. 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27일 『4월 말쯤 열릴 3차 공판에서 구형할 때 전씨의 은닉재산에 대한 몰수 및 추징도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 새달 11일 첫 공판/전­노씨 함께 법정에

    12·12 및 5·18사건 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 다음달 11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이 재판에는 비자금사건으로 구속기소돼 각각 한 차례와 세 차례씩 재판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함께 나온다.
  • 새달 「12·12 5·18」 첫 공판 전망

    ◎수사기록 13만쪽… 최후결전만 남았다/헌재 「특별법 합헌」 결정으로 법리논쟁은 없을듯/검찰 “공정한 게임 자신”·전씨측 ““이번재판에 전력” 「12·12 및 5·18사건」의 첫 공판이 다음달 11일로 잡혔다.사건발생 15년여만에 비로소 사법부의 심판대에 오른다. 둘다 우리 현대사에 굵은 획을 그었던 초대형 사건들이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사건 당사자들과 검찰은 그동안 사건의 성격을 둘러싸고 극명하게 대립해 왔다.이제 사법부라는 「종착역」에서 치를 최후의 결전만 남겨 두게 됐다. 재판은 장기전으로 흐를 양상이다.워낙 오래된 사건인데다 검찰의 수사기록만도 13만여쪽이나 된다.전·노씨 비자금 사건의 관련기록은 1만∼2만여쪽이었다.「12·12…」사건의 규모를 능히 짐작케 한다. 그러나 법리논쟁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지난 16일 헌법재판소가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5·18특별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검찰로서는 최대의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고,전씨측은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따라서 재판의 초점은 12·12와 5·18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사실관계의 심리에 모아질 수 밖에 없다.검찰과 전씨측은 벌써부터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주임검사인 서울지검 형사3부 김상희 부장검사는 『우리는 「공정한 게임」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변호인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통상의 관례를 깨고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수사기록을 넘겨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변호인측에서 사실관계를 충분히 검토하고 나오더라도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다. 전씨측은 진작부터 「12·12…」재판에 주력해 왔었다.비자금 사건은 이를 위한 전초전 쯤으로 여겼다.전씨는 지난해 12월 구속직전 가진 「골목성명」에서 『5공의 정통성이 검찰에 부인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사법부의 판단에는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승복하겠다는 말은 사력을 다해 재판에 임하겠다는 것을 거꾸로 표현한 것이다.12·12사건은 우발적인 것이며,5·18사건은 불행한 일이기는 하되 전씨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심리는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가 담당한다.
  • 12·12­5·18수사 오늘 결과 발표

    12·12 군사반란 사건에 연루된 사법처리 대상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구속기소 11명과 불구속기소 5명 등 모두 16명으로 확정됐다.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12·12 사건의 최종 수사결과를 28일 발표한다.
  • “미,80년 광주 군투입계획 승인”/미지,정부비밀문건 인용 보도

    ◎“사태악화땐 직접개입 검토” 정부는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군 투입 계획을 승인』했으며 『80년 5월22일(이하 미국시간)소집된 백악관의 한 회의에서는 사태가 통제불능으로 악화될 령우 미국이 직접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방안도 협의됐다』고 미국의 저널 오브 커머스 지가 27일 「기밀해제된 미국정부 비밀문건(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은 한국의 진압을 알고있었다』는 제목으로 광주 문제에 관한 장문의 기사를 쓴 커머스지의 콤셔록 기자는 27일 『미국정보공개법에 의거해 지난 90년부터 시도한 결과 지난해말 등에 미 국무부와 국방정보국(DIA)의 관련 비밀문건(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 “뇌물죄다”·“아니다” 법리공방/전씨 비자금 공판­쟁점과 전망

    ◎기업에 직간접 영향… 돈 받으면 “수뢰”­검찰/「대가」 제공 못 밝혀 범죄성립 안 된다­전씨측/비자금용처 계속 함구할듯 전두환 전 대통령측의 공세가 예상보다 일찍 시작됐다.26일 열린 비자금사건 첫 공판 시작부터 뇌물죄의 성격을 둘러싼 법리논쟁을 제기했다. 전씨측의 「선전포고」는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낭독이 끝난뒤 기습적으로 시작됐다.대법관 출신의 전상석 변호사가 대응논리를 들고 나왔다.『검찰의 공소사실에 뇌물죄의 범죄혐의 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재판부에 이 사건의 공소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재판부가 이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때문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선제공격으로 보인다.그러나 향후 법정공방의 쟁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공방의 요지는 전씨가 받은 돈이 과연 뇌물죄의 성립요건인 「직무관련성」과 「대가」관계를 충족시키느냐로 모아진다.검찰은 대통령의 직무관련성을 포괄적으로 해석,공소를 제기했다. 검찰은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금융과 세제에서 기업의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이를 미끼로 돈을 챙겼으니 당연히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씨측은 『기업체에 대한 배려와 선처의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을 승복하지 않는다.「선처」와 「배려」라는 애매한 표현만으로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도 이를 인정,검찰에 다음 공판 때까지 구체적 사실관계를 밝히도록 주문했다.돈이 오간시기가 워낙 오래됐고,대부분 전씨와 기업체 대표들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진행해 온 검찰로서는 구체적인 입증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법리논쟁이 비자금 사건의 향방을 좌우할 것 같지는 않다.오히려 직무관련성에 관한 논쟁은 싱겁게 끝날 것이라는 평이 우세하다.다나카 전 일본총리의 「록히드사건」재판에서도 「총리의 권한」과 항공기 도입결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지만 결국 유죄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우리 법원도 뇌물죄의 성립요건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왔다.재판부도 『뇌물성 여부에 관한 법적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라며 이에 대한 공방을 자제하라는 입장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전개되는 2차 공판에서 전씨측의 본격적인 반격이 예상되지만,강도가 그다지 세지는 않을 것 같다.돈을 받은 사실이 명백하므로 떠들어봐도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전씨측은 12·12 및 5·18사건 재판에 주력하고 비자금 재판에서는 「치명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총선정국의 전개와 맞물려 이번 재판의 초점으로 떠오른 비자금 사용처도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전씨측의 「마지막 카드」인 셈이어서 섣불리 공개할 수도 없으며,공개될 경우 전씨측 역시 파멸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전씨는 이날 공판에서 『비자금의 사용 내역을 일체 밝히지 않는게 좋겠다』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다만 「폭탄선언」의 가능성 때문에 전씨재판은 줄곧 긴장감속에서 진행될 것이다.한편 전씨의 건강문제는 우려와 달리 재판진행에 별 영향이 없을 것 같다.
  • 12·12 5·18사건 3월중에 첫 공판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김영일 부장판사)는 26일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3월 중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부장판사는 『두 사건의 수사기록이 방대해 변호인측이 검토하는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줘,반대신문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기 위해 전두환 피고인의 비자금 사건 2차 공판기일인 4월15일 이전에 12·12사건 등의 첫 공판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 대통령도 잘못 저지르면 재판 받게 되는것 보려고…

    ◎유일한 초등학생 방청객 유혁훈군 ○…26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첫 재판을 받은 417호 법정에는 유혁훈군(13·경기도 고양시 성사동 성사초등학교 5년)이 유일한 초등학생으로 방청했다.『대통령도 잘못을 저지르면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유군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해 12월1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때.함께 법정에 나온 아버지 유철호씨(53·학원장)는 『노태우씨 재판 때 혁훈이가 재판과정 등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며 재판을 보고 싶다고 해 방청하기로 했다』고 했다. 여느 방청객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인 25일 하오 11시부터 법원 정문 앞에 줄을 서 밤을 꼬박 새운 뒤 26일 상오 9시 41,42번째로 두장의 방청권을 받았다. 밤을 새운 탓에 재판 도중 졸기도 했다는 유군은 『대통령 아저씨가 힘이 없어 보였는데,스스로도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고 힘이 센 분이 대통령인 줄 알았는데 왜 저렇게 됐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발렌타인데이에 같은 학교 여학생으로부터 초콜릿을 여러개 받았다는 유군의 장래 소망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유군은 『선생님이 되어 저같은 어린이들에게 잘잘못을 분별할 줄 알도록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 역사 바로세우기는 험로(사설)

    꼭 70일만에 또 한사람의 전직대통령이 수의차림으로 재판정에 섰다.노태우씨에 이어 피고인석에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우리는 국민들의 뼈를 깎는 자괴의 아픔,한서린 분노를 만나게 된다. 전씨는 우선 노씨와 같이 비자금문제,즉 특가법상 뇌물죄로 법정에 섰다.이들 두 전직대통령에게는 「원죄」라 할 12·12,그리고 5·18관련 재판이 별도로 준비돼 있다.79년 박정희 대통령시해사건 이후 문민정부 출범때까지의 역사에서 굴절됐던 대목들이 모두 심판대에 오르는 것으로 그 「주범」이랄 수 있는 전씨의 재판은 바로 역사바로세우기의 핵이 아닐 수 없다.때문에 전씨는 7천억원대의 비자금과 관련한 이번 재판은 물론 추후 12·12,5·18재판에서 모든 진실을 올바로 밝히고 역사 앞에 참회해야 할 의무를 국민들에게 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씨는 첫날 재판에서 뇌물임이 분명한 비자금에 대해서까지 총선자금,정치자금이라 강변하며 지난날의 그릇된 관행에 책임을 전가하는 떳떳지 못한 자세를 보였다.새삼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힘든 과업인가를 느끼게 했다.그러나 전씨는 민의를 억압할 수 있었던 때의 과오를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는 문민시대임을 한시바삐 깨닫고 참회의 자세로 재판에 임해야 한다.그것만이 국가와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아울러 이 시대를 이끌어온 정치권,그리고 사회 상층부도 자신들이 머리속 또는 가슴으로 과거시대의 공범이 아니었던가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자성해야 하리라고 본다. 전직대통령 재판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감정에 치우쳐 과거를 들춰가며 서로 헐뜯고,자학하거나 파당적 이해로 시대의 흐름을 왜곡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자괴심과 분노를 털어버리고 이성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하루빨리 역사를 바로잡고 후손들을 위한 국가대계를 세우는 일에 나서는 것만이 전직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운 아픈 교훈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길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 정주영 회장­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분/전씨의 재벌총수 인물평

    ◎한일·국제회장 등엔 “교육·주의·충고했다” 「재벌 1세는 존경,2세는 못마땅」.전두환 피고인이 대통령시절에 느낀 재벌 회장들의 됨됨이다.정치자금을 받으며 느낀 평가로 다분히 가부장적·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묻어난다. 그는 26일 비자금 공판에서 검찰이 뇌물수수를 추궁하자 특혜나 이권을 대가로 정치자금을 받은 게 아니라며,묻지도 않은 재벌총수들의 인물평을 털어놓았다. 당시의 현대그룹 정주영회장에 대해 전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대표적 기업인』이라고 치켜세운 뒤 『나라 잘되게 하는 일에 (정치자금을 주며)청탁이나 조건을 거는 무례하거나 무능한 기업인이 아니다』라며 후하게 평했다. 작고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그 분』으로 호칭하며 『솔직이 대통령으로서도 만나기 힘들었다』고 고백하고 『그분은 자존심이 강한데다 아버지 뻘이고 일본에 자주가 있어』 면담이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김중원 한일그룹 회장,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등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김회장의 경우 선친사망 이후 동생인 중명씨와의 재산상속으로 알력이 생기자 청와대로 불러 『형제간 우애를 유지하라며 교육과 주의를 주었다』고 말했다. 양회장에게는 『부채가 많고 경영이 부실한데 통도사 골프장을 만드는 게 안좋다』고 충고했다고 밝혔다.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에 대해서는 『활달하고 젊은 기업가』라며 『이권을 대가로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혜택을 달랄 사람이 아니다』라고 평가. 미원그룹 임창욱 회장과의 면담에 대해 『(그를)데리고 앉아 얘기하는 데 (임회장이)부탁할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밝혔으나 세금감면과 관련,세무결과 보고서 표지에 「민족기업으로 컸고,경제발전에 기여한만큼 세무조사에 반영하라」는 친필을 내려보냈다.
  • 전씨 비자금 공판­법정진술 표정

    ◎돈성격 물을땐 큰소리로 “정치자금”/2천억 받은사실 작은소리로 인정/전씨 「뇌물 혐의」 부인에 안간힘/당당하게 입정… 신문하자 「환자」로 돌변 두 얼굴의 전직 대통령.26일 상오 10시 법정에 선 전두환씨는 확신에 찬 양심범과 늙고 병약한 죄인 사이를 교묘히 오가며 뇌물 혐의를 벗어나려 애썼다. 43개 기업체로부터 2천2백여억원을 받은 사실은 병약하고 작은 목소리로 인정하고 돈의 성격은 고개를 들고 큰 목소리로 관행에 따른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추악한 실체를 벗기기 위해 끈길진 신문을 계속했고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을 강도높게 부인하며 공방을 폈다. 상오 9시18분 서울지법 구치감에 도착한 전두환씨는 호송버스에서 내려 구치감으로 향하면서 다소 미소지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상오 10시 개정과 동시에 김영일 재판장이 『피고 전두환』을 호명하자 흰 죄수복 차림의 전씨가 2분여 뒤에 다소 꾸부정한 모습으로 입정했다.가벼운 목례와 함께 자리에 앉은 전씨는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소와 직업을 말했다. 재판장의 『앉으십시오』라는 말에 가벼운 목례와 공손하게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한 전씨는 건강상태에 대한 재판장의 질문에도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답했다.무력으로 국권을 휘어잡았던 독재자답지 않은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순간이었다. 공소요지의 낭독이 끝나기 무섭게 변호인단은 뇌물과 전씨의 직무 관련성에 대해 명확히 적시하는 「석명권」을 행사하라고 재판부에 요구하며 공소기각을 주장했다. 전씨는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돈은 정치자금이었으며,모두 청와대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받았다고 진술하며 특혜는 전혀 없었다고 일관했다. 한시간여쯤 신문이 계속되자 전씨는 병약한 기색으로 돌변,변호인단은 신문중단을 요구했고 재판부는 일시 퇴정을 명령했다. 하오 2시30분 속개된 재판에서 전씨는 더욱 강도높게 자신의 입장을 강변했다.정치자금은 한국정치의 관행이고,기업인은 「정치 및 안보의 안정=기업안정」을 위해 돈을 낸다고 주장했다.병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뇌물과 연관되는 구체적인 직무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고 발뺌했다.정치자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설교장이나 다름 없었다. 큰 소리로 자신의 대통령 재직사실과 헌법상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 대답하고도,뇌물수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실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발뺌하는 두 모습이었다. 점심을 위한 휴정시 안현태씨 등 5명이 피고인들 및 담당 검사와 악수를 나누는 전씨의 모습도 죄를 뉘우치는 모습은 아니었다. 대통령으로서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어마어마한 돈이 뇌물임을 밝히려는 검찰의 끈길긴 신문이 오히려 안타까워보였다.
  • 전씨 비자금 공판­재판 열리던 날

    ◎점심 휴정때 검사들과 일일이 악수/“주소는 안양교도소…” 대답에 방청객 폭소/법정분위기 의식한듯 꼿꼿한 자세유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대한 1차 공판이 구속 86일만인 26일 서울지법 4백17호 대법정에서 열려 재판부의 인정신문과 검찰의 직접신문 순서로 두차례 휴정 끝에 하오 5시쯤 끝났다. ▷공판◁ ○…전피고인은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주소 및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현주소를 「안양교도소」라고 대답해 방청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전피고인은 곧 『안양교도소에 있다가 경찰병원으로 옮겼으며 현주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2동 95의4 입니다』고 정정. ○…전피고인의 변호인 전상석 변호사는 김성호 부장검사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이 끝나자 『공소장에는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희박하게 기술됐기 때문에 뇌물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공소기각을 10여분에 걸쳐 주장. 변호인단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어린애들 말처럼 그야말로 웃기는 얘기』라고 반박해 방청객들이 실소.검찰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뇌물성이라고 하더라』고 다그치자 전씨는 『그 사람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모르겠다』라고 말해 다시 폭소. ○…전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1시간15분 가량 진행된 상오 11시30분쯤 전변호사는 『신문이 길어지면 피고인의 건강상태로는 견디기 힘들 것 같다』며 재판부에 전피고인이 쉬게 해달라고 요청. 이에 김부장판사는 『힘이 드느냐』고 전피고인에게 묻고 『약간 힘든다』고 대답하자 10분간 휴식을 허용. 낮 12시10분쯤 상오 공판이 끝나자 전피고인은 옆자리의 안현태씨 등 피고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김부장검사 등 공판담당 검사들과도 웃는 낯으로 악수했다. ○…전피고인은 하오에 이어진 검찰신문에서 『기업인들의 성금 기부는 모두 다 나라를 살리기 위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나중에는 『재임 때 정치자금을 받아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소신을 번복. 전피고인은 『기업이 돈을 냈기 때문에 정치가 가능했다』며 『기업인들은 정치와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또 세금을 낸다는 사명감으로 돈을 냈다』고 주장. ○…전씨 비자금 사건 2차 공판이 50일 뒤인 4월15일로 늦춰진 것과 관련,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는 『전피고인 등이 관련된 12·12 및 5·18 사건의 심도깊은 재판을 위해 기일을 늦춰잡았다』고 설명하고 『두 사건은 수사기록이 워낙 방대해 재판부와 변호인단이 수사기록을 검토하는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는 하오 5시쯤 공판을 마치면서 『전피고인의 건강이 매우 부실하다는 사실이 오늘 드러났다』며 전씨를 향해 『전피고인,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입니다.건강에 유의하세요』라고 당부했다. ▷입정◁ ○…재판부가 상오 10시에 입정,『96고합 12호,병합 96고합 95호,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하자 전피고인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 전피고인은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어깨에 힘을 주고 가슴을 편 자세를 유지.가끔 법정분위기에 위축되지 않으려는 듯 다리를 흔들거나 몸을 뒤로 젖히기도. ▷병원·법원 주변◁○…경찰은 법원과 경찰병원 주변에 모두 17개 중대 2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등 물샐 틈 없는 경비. 재판을 방청하기 위한 「방청권 구하기 전쟁」도 노씨의 첫 재판 때보다 치열해 노씨 재판 때 최고 30만원에서 이 날은 50만원에 거래됐다. ▷구치감 도착◁ ○…전피고인은 경찰병원을 출발한지 20분만인 상오 9시17분쯤 앰뷸런스를 서울지법 청사 구치감에 도착. 이어 엷은 하늘색 수의 왼쪽 가슴에 미결수 번호 「3124」번을 달고 차에서 내려 교도관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 구치감으로 이동. 전피고인은 지하 구치감 바로 앞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왼손을 치켜올리는 등 노태우 전 대통령의 출정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과시. ▷방청석◁ ○…법정 방청석에는 재국·재용·재만씨 등 전피고인의 세 아들과 김진영 전 육참총장 등 측근 몇명이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재국씨 형제는 9시15분쯤 법원청사로 들어오다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로부터 계란세례를 받기도. 「민가협」 등 재야단체 회원들이 대거 방청석을 차지했고 지난 91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도 방청했다. ▷연희동◁ ○…전피고인의 아들 삼형제는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상오 8시30분쯤 연희동 집을 출발.그러나 부인 이순자씨는 첫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방청을 포기.연희동관계자는 『이씨가 최근 며칠 사이에 많이 핼쑥해졌다』고 귀띔.
  • 무너진 한 시대… 어디서 보상받나/전씨 비자금 재판을 보고…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성경에 보면,『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았다』는 구절이 있다.한 사람 안에 모든 사람이 포함될 수 있다는 말이다.전두환이라는 한 개인 안에는 한 시대가 포함되어 있다.그러므로 한 개인이 재판을 받는 법정이 아니라 한 시대가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법정인 셈이다.법정의 전면,그러니까 재판부의 판사석은 공교롭게도 붉은 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붉은 색은 피를 연상시킨다.형사재판의 대부분은 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므로 저렇게 붉은 색을 전면에 드러운 것일까.이번 재판도 국민들의 혈세와 관련되어 있다.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번 돈이 정당한 절차를 통하여 임금이나 세금으로 돌려지지 않고 재벌 총수의 비자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둔갑을 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다.그야말로 둔갑술이 횡행하던 시대였다.대선자금 모금 계획을 세워서 각 기업에 몇십억원씩 할당을 하면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기업 하나 없이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그 엄청난 돈이 순식간에 대선자금으로 둔갑을 하였다. 이 역사적인 재판정으로 들어가는 절차 역시 삼엄하기까지 하였다.방청객 하나하나에 대한 철저한 검색이 이루어졌다.검색을 지휘 감독하는 사람은 부하들에게 「달걀이 포켓에 들어있는가 잘 봐」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강력한 권력 앞에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기분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피고인을 향하여 달걀을 던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였다.그러나 어디 달걀 하나로 풀릴 울분이던가. 재판장이 피고인 전두환이라고 호명을 하자,일순 법정 전체에 긴장감과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잠시후 피고인 대기실 쪽에서 정리들의 인도를 받으며 전두환씨가 법정으로 들어섰다.전두환씨가 들어서는 문 위에는 비상구 표시등이 켜져 있었다.하지만 일단 법정으로 들어선 전두환씨는 더 이상 비상구가 없는 듯이 보였다.변호인들은 어떡해서든지 비상구를 열어보려고 애를 써보겠지만,검사들의 날카롭고 구체적인 신문 내용에 비추어볼 때 전두환씨는 비상구 찾는 일이 여간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전두환씨도 그것을의식하는지 아니면 오랜 단식의 후유증 탓인지 검사의 신문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약해졌다. 신문과 대답은 거의 일정한 틀을 따르고 있었다.모 재벌 회장으로부터 모처에서 어떠어떠한 명목으로 몇십억원 혹은 몇백억원을 받았지요 라고 검사가 물으면,전두환씨는 돈은 받았지만 그러그러한 명목으로 받지 않고 정치자금으로 받았다고 같은 대답만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어쩔 수 없이 시인할 수밖에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말로 방어하였다.그러다가 간혹 방청객들의 귀가 솔깃해지는 말을 토로하기도 하였다.1980년에는 기업인들이 돈을 가지고 와도 일체 받지 않고 돌려주었는데 그러니까 특정 기업만 키우려고 그런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기업인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경제가 침체되더라고 하였다.돈을 받지 않으니까 부작용이 생기더라는 말같이 들리기도 하였다.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또박또박 대답하는 모습에서 전직 대통령의 권위를 잃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엿보이기도 하였다.그는 재판장의 직권으로 주어진 10분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피고인 대기실로 다시 나갈 때도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그러나 엷은 물색 수의 속에서 전직 대통령의 권위는 무참히 무너져 있었다.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난마처럼 얽혀 있던 한 시대가 무너져 있었다.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가 법원 건너편의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져 있었다.법정에서 한 개인의 죄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벌을 받겠지만 우리의 좌절감은 어디서 보상을 받을 것인가.입춘이 지난 하늘은 봄의 기운을 잃고 흐리기만 하였다.
  • 전씨 「비자금 용처」 공개 거부/첫 공판

    ◎“기업인 특혜청탁 안해 정치자금” 주장/검찰,“2천2백억은 뇌물”/전씨 “88총선때 등 8백80억 뿌린 건 사실”/안현태씨 등 5명 함께 출정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첫 공판이 26일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 재판부 인정신문과 검찰 직접신문이 진행됐다. 전피고인을 비롯,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안현태 전 경호실장,성용욱 전 국세청장,정호용 의원과 불구속 기소된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안무혁 전 안기부장 등 5명도 출정했다. 전피고인은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3부장의 직접신문을 통해 비자금 7천억원 중 2천2백59억5천만원은 뇌물이라고 추궁하자 『받은 것은 사실이나 시기와 액수 등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고,기업인들이 특혜를 청탁한 적도 없다』며 『따라서 이는 통치자금 또는 정치자금이었지 뇌물은 아니었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88년 총선 지원 명목으로 2백30억원,89년말 백담사로 가기 전에 정치권과 언론계 등에 로비자금으로 1백50억원,90년이후 92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총선 지원과 정치재개 목적으로 친인척 및 측근에게 5백억원 등 모두 8백80억원을 뿌린 것은 사실인가』라는 신문에 『로비자금은 아니지만 액수는 검찰에서 진술한 것이 맞다』고 시인했다. 전피고인은 그러나 정치권과 친인척 등에게 준 비자금의 구체적인 내역은 『밝히지 않는게 좋겠다』며 진술을 거부했다.현재 보유한 비자금의 액수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최선을 다해 진술했고,검찰도 야무지게 조사했기 때문에 은닉 자금은 없다』고 말했다. 전피고인은 『지난 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쓸 수 있는 선거 비용의 상한선이 3백억원이었는데도 서울에서만 4백억원이 넘는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안다』며 당시에는 정치자금 모금이 관행이었다고 강변했다. 안현태 피고인은 전피고인이 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87년 8월 기업체 별로 10억∼30억원씩 대선자금을 모금하도록 자신과 이원조 은행감독원장,사공일 재무부장관,성용욱 국세청장에게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상오 10시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약 40초간 사진 취재를 허용한 뒤 인정신문에 이어 검찰의 직접신문에 들어갔다.낮 12시7분까지 공판을 진행한 뒤 하오 2시30분에 속개,5시쯤 공판을 마쳤다. ◎2차공판 4월15일 2차 공판은 4월15일 상오 10시에 열린다.
  • 측근 4인방 대선자금 모금 역할분담

    ◎사공일씨·이원조씨/총수가 원로급인 롯데·기아 등 맡아/안현태씨/2세가 회장인 동아·쌍용·미원 등 담당/성용욱씨­국세청장 지위활용 중소기업 전담 전두환 피고인은 지난 87년 13대 대통령선거 자금을 안현태 당시 청와대경호실장,사공일 재무부장관,이원조 금융감독원장,성용욱 국세청장 등 측근 4인방을 통해 조직적으로 거뒀다.물론 재벌들로부터다. 전피고인과 안현태 피고인은 26일의 비자금사건 첫 공판에서 김성호 부장검사의 신문에 『87년 8월쯤 대통령 집무실에서 전 대통령이 안경호 실장,사공장관,이원장에게 대선자금 모금을 지시했다』고 답변했다.성용욱 국세청장에게는 안무혁 안기부장을 통해 모금을 지시했다. 측근 4인방은 ▲대상기업 선정 ▲정치자금 제공의사 타진 ▲면담일정 통보 ▲면담알선 ▲재벌의 정치자금 제공의 순서로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에게 지원할 자금을 거뒀다. 이같은 모금은 노후보측과 협의를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대상업체 선정과 관련,4인방은 협의를 갖고 ▲롯데·기아·코오롱 등 재벌총수가 원로인기업은 사공재무와 이원장이 ▲중소기업은 성청장이 ▲2세가 회장을 맡은 동아·쌍용·미원 등은 안경호실장이 각각 맡기로 했다.이들은 해당기업 회장들에게 연락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자금이 필요하니 낼 용의가 있느냐』고 의사를 타진했다. 안피고인은 신문과정에서 『자금제공을 거부한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당시 기업들의 「울며겨자먹기식」 상납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안경호실장은 전대통령과 재벌총수와의 면담일정을 전씨로부터 지시받아 해당총수에게 통보,면담을 알선했다.또 나머지 3명이 거둔 자금을 받아 전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4인방이 직접 받은 돈은 4백14억5천만원.안씨는 86년 9월부터 87년 10월까지 동아그룹 등 8개그룹으로부터 2백80억원,성청장은 한일시멘트 등 11개 업체로부터 54억5천만원,사공장관은 4개 업체로부터 1백억원,이원장은 2개 업체로부터 30억원을 거뒀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자금은 전씨가 청와대 접견실 등에서 단독면담을 통해 직접 받아,측근들은 그 규모를 제대로 몰랐다.이렇게해서 모은 대선자금은 3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노씨에게 제공한 대선 자금은 두 차례에 걸쳐 1천9백억원,당선축하금 5백50억원을 합쳐 2천4백50억원 가량으로 알려졌다.전씨가 재임 중 거둔 비자금 7천1백억원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대선 전에 모금한 셈이다. 전씨는 재벌총수로부터 「봉투」로 받아 안실장에게 줬다.안실장은 당시 김종상 경호실 경리과장에게 지시,그날그날 통장에 입금시켜 전씨에게 전달했다.통장은 전씨가,도장과 입·출금은 김씨가 맡았다.안씨는 두 사람의 중개 역할을 하며 돈을 관리했다.
  • 대조적인 전·노씨 법정태도

    ◎여유있고 당당한 모습/자신의견 강한 어조로 구체 진술­전씨/고개 숙인채 의기소침/간결·두리뭉실한 답변으로 일관­노씨 법정에 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다소 창백했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지난 해 12월18일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법정에 섰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사뭇 달랐다.노씨는 비교적 자신 없고 의기소침했었다.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전씨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고 구체적으로 밝힌 반면 노씨는 간결하고 두리뭉실한 답변으로 일관했었다. 옅은 하늘색 수의 차림으로 법원에 도착,호송버스에서 내린 전씨는 주위를 둘러보다 『건강이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손을 들어보이며 작은소리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등 비교적 여유있게 구치감으로 갔다. 그러나 첫 공판 때 구치감에 들어선 노씨는 흰 솜옷 소매에 양손을 낀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초췌한 기색이었으며 기자들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재판부가 낮12시 휴정하자 전씨는 안현태 전 경호실장 등 피고인들은 물론 검사들과도 일일이 악수를나눴다. 전씨도 노씨처럼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했지만 『대가성 뇌물이 아닌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노씨는 검찰의 신문에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그렇습니다』 또는 『기억이 안 납니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이에비해 전씨는 처음부터 『안가에서 돈을 받은 적은 없다.접견실이나 서재에서 받았다.대통령은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힘차고 뚜렷한 목소리로 맞섰다.
  • “강력한 개혁정책… 민심회복”/YS 3년 일 언론 평가

    ◎전 대통령 구속 등 역사바로잡기 성공/남북대화 재개·한일관계 개선 과제로 일본언론들은 25일 김영삼 대통령 취임 3주년과 관련,김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작업과 개혁정책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한·일관계 악화,남북대화 단절등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이날 서울발 기사에서 김대통령은 93년2월 정권발족후 신한국창조,개혁정책등을 내세워 공무원,군인의 부정을 적발함으로써 90%라는 경이적인 국민지지를 받았으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등 최근의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도 국민으로부터 큰 지지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남북정책에서는 강온양면 노선의 와중에서 대화재개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일본과의 관계도 근래없이 냉각됐다고 평가했다.김대통령은 또 역사 바로세우기를 둘러싼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경제후퇴 조짐,지난해 잇따랐던 부도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불만고조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교도(공동)통신은 서울발 기사에서 『김대통령이 전두환,노태우전 대통령 구속을 비롯한 「과거청산」작업으로 지도력을 발휘하여 떨어진 지지를 회복했으나 오는 4월의 총선거가 최대 관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통신은 김대통령의 「과거청산」을 둘러싸고 『방법등에 대한 비판도 많아 어디까지 여당표로 연결될 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하고 『차기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정계개편도 예상되며,남북관계에서도 대화재개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등 많은 과제를 안은채로 취임 4년째를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 전씨 오늘 첫 공판/비자금 관련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26일 상오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전씨가 지난달 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수수죄로 기소된 지 45일 만이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리는 이날 공판에는 전씨를 비롯,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성용욱 전 국세청장, 정호용 의원(이상 구속), 안무혁 전 안기부장, 사공일 전 재무부장관(이상 불구속)등 6명의 피고인이 출정한다. 공판은 재판부의 인정신문, 검찰의 공소사실요지 낭독, 검찰의 직접신문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변호인 반대신문은 2차공판 때 있게 될 전망이다.
  • 전씨 굳은표정 묵상…긴장 역력/공판하루앞둔 병원·검찰·연희동표정

    ◎병원 “만약사태 대비 법정에 의료진 파견”/방청권 얻기 위해 하오부터 줄서기 경쟁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첫 공판을 하루 앞둔 25일 전씨가 입원 중인 경찰병원을 비롯,법원·검찰·전씨의 연희동 사저는 겉으론 평온해 보였으나 긴장감이 감돌았다. ○…담당 재판부인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24일 밤늦게까지 재판 준비상황을 최종 마무리지은 탓에 이날 출근을 하지 않았으나 당직 근무자들은 재판이 열릴 417호 대법정과 법정으로 통하는 통로에 금속탐지기 등 설치물을 점검하느라 분주한 모습. ○…공판에 투입되는 서울지검 특수3부 김성호 부장검사를 비롯,검사 4명은 하오 1시30분쯤 김부장검사 주재로 1시간 동안 회의를 갖고 신문사항과 증거목록 등을 최종점검한 뒤 곧바로 귀가. 검찰은 전씨의 경우 신문항목을 1백60여개,나머지 피고인들은 각각 40∼50여개 정도로 압축했으며 전씨는 김부장검사,안현태 전 경호실장은 최찬영검사,정호용 의원과 사공일 전 경제수석은 홍만표검사,성용욱 전 국세청장과 안무혁 전 안기부장은 임상길검사가 각각 맡아 신문하기로 결정. ○…26일 상오 9시에 배포하는 방청권 80장을 얻기 위해 법원 정문에는 이날 상오 6시부터 시민과 용역회사원 등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하오 3시40분쯤에는 80명이 줄을 서 대기하는 바람에 나머지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기도. 이들은 서로 대기표를 만들어 도착 순서대로 배포하고 2시간마다 확인도장을 찍는 등 새치기를 막아 눈길. ○…경찰병원 입원 67일째를 맞은 전씨는 이날 아침 병원에서 제공한 밥과 죽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며,재판 관련서류도 제쳐두고 굳은 표정으로 묵상하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병원 관계자가 설명. 담당 의사인 이권전진료1부장은 『전씨의 현기증이 오랜 시간 재판을 받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링거주사 등을 준비한 의료진 한명을 법정에 보낼 계획』이라고 소개. ○…평소 전씨를 면회하며 아침 나절을 보냈던 부인 이순자씨는 연희동집에서 불경을 읽으며 착잡한 심경을 달랬고 재국·재용·재만씨 등 아들 삼형제도 집에 모여 공판 문제를 논의. 전씨의 한 측근은 『공판에는 재국씨등 아들 삼형제만 출석하고 이씨 등 다른 가족들은 연희동집에 머물거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릴 계획』이라고 귀띔. ○…경찰은 전씨가 법정에 출두하는 26일 상오 경찰병원 주변에 모두 5개 중대 6백여명의 병력을 배치,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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