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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중서신 교환 노씨 전면부인/검찰 방문조사

    서울지검 특수2부(박주선 부장검사)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옥중서신 교환설과 관련,21일 주임검사인 김경수 검사를 서울구치소로 보내 노씨를 조사했다.노씨는 『편지를 교환한 사실이 없다』고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옥중서신 교환 관련/전씨 방문 조사

    서울지검 특수2부(박주선 부장검사)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옥중서신교환설과 관련,20일 하오 안양교도소에서 전씨를 조사했다. 전씨는 서신을 교환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박은호 기자〉
  • 여야,취약지 공략 “세몰이”

    ◎“지역정치 타파”·“전·노 비리 규명” 촉구 【청주=박찬구 기자】 15대 총선일이 22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는 20일 총선필승 결의대회를 갖거나 각종 정당행사를 개최하고 취약지를 공략하는 등 세몰이를 계속했다. 신한국당의 이회창 선대위의장은 충남 연기와 충북 청주에서 잇달아 열린 충남·북 총선필승 결의대회에서 『정치가 낡은 틀을 벗어나려면 새로운 정치의 물결이 일어나야 한다』면서 『새로운 정치란 우리정치의 병폐인 3김구도정치의 붕당정치·지역정치를 타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은 서울 마포갑등 6개 지구당 필승대회에 참석,『서울이 단순히 지역할거의 재판이라면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서울은 3김정치 종식의 견인차가 돼야하며 세대교체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은 또 충북 청주관광호텔에서 이의장과 김종호 선대위부의장,강삼재 선대본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선대위 전체회의를 열고 충청권에 대한 득표전략을 논의했다.대전의 7개 선거구 가운데 중구등 3개이상에서 우세하며 충남(13개)·충북(8개)에서도 각각 5개,6개 이상 지역에서 각각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고 경합지역에 당력을 집중 및 지역개발공약을 추가로 제시키로 했다.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는 서울 가양동 임대아파트 방문을 시작으로 경기 남양주시·구리시 당원교육과 젊은층과의 맥주대화등에 참석하며 서민·농민·젊은층 공략에 주력했다. 정희경 선대위공동의장은 강원 동해시 창당대회에 참석,취약지 공략에 나섰다. 민주당은 홍성우 선대위위원장,노무현 전 부총재,장기욱 의원,박인제 송파병위원장 등 법조인출신 후보자 18명이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전두환·노태우씨 뇌물 사용처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경기 부천 원미을 등 4개지역 개편대회에 참석,지지를 호소했다.
  • 4·11총선/부재자신고 오늘부터 5일간

    ◎군·경·재소자 등 84만명 대상/신고서 주민등록지에 24일까지 도착해야 중앙선관위(위원장 김석수)는 19일 오는 4·11총선 부재자 신고가 20일부터 24일까지 5일동안 전국 시·구·읍·면에서 일제히 실시된다고 밝혔다. 이번 부재자 신고대상은 전국적으로 모두 84만4천여명으로 ▲영내 또는 함정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군인이나 경찰 공무원 ▲주민등록지에서 벗어나 해당 선거구에서 투표할 수 없는 사람 ▲병원 또는 요양소에 장기간 입원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신체장애자 ▲선거일에 다른 투표소에서 근무하는 각급 선관위 임·직원과 경찰공무원 ▲재소자 등이 포함된다. 부재자 신고는 가까운 읍·면·동사무소에서 발부하는 부재자 신고서에 주소·성명등을 기재한 뒤 주민등록지 읍·면·동장에게 24일까지 도착하도록 발송하면 된다. 특히 이번 선거에는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 각각 수감돼 있는 전두환·노태우씨등 두 전직대통령과 정호용의원등 12·12 및 5·18관련 재소자들도 부재자 신고대상이다.
  • 총선공고 1주앞/여야 득표전 가열

    ◎“3김구도 종식”·“견제의석 확보” 호소 【대구·인천·대전·안양=구본영·백문일·박찬구·오일만 기자】 여야 4당은 15대 총선 공고일을 1주일 앞둔 19일 서울과 대구 대전 인천 경기에서 필승결의대회 및 시국강연회 등을 열고 득표전을 계속했다. 이회창 중앙선대위 의장은 대구 및 대전 필승결의대회에서 『이번 선거는 낡은 3김정치 구도를 종식시키는 최종평가』라고 규정하고 『과거 잘못이 있었던 사람들도 반성해 새로운 정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환 대표위원은 『대구 경북은 피해의식과 냉소주의를 버리고 다시 정치 주체가 돼야 한다』며 『이번 총선에서 지역을 볼모로 삼는 정치인은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인천과 경기 안양 시국강연회에서 『15대 국회에서 전국구 의석이 1백석이 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고 여성과 청년에게 전국구후보의 25%씩을 배정하겠다』며 『우리 당이 집권하면 각료의 25%를 여성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3분의 1 이상의 의석확보를 호소했다. 민주당 홍성우 선대위원장은 서울 강남을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현정권이 전두환 노태우씨 재판을 놓고 5·6공 세력과 정치적 거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며 재판 생중계와 이른바 「전두환 리스트」공개를 촉구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부평을 등 인천지역 4개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4개월밖에 총리를 하지 못한 사람이 마구 떠들고 다닌다』고 신한국당 이의장을 비난하고 『이런 세력과 싸워 안정된 사회를 구축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 4당 대구·대전·수도권 유세 내용

    ◎이회창 의장 “개혁 포기하면 미래 어두울것”/“집권하면 각료의 25% 여성 임명”­국민회의/“전씨 리스트 공개를”­민주/색깔론 제기­자민련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 등 여야는 19일 대구·대전 및 수도권 일원에서 각각 필승결의대회와 시국강연회·지구당개편대회등을 열고 총선승리를 다짐했다. ▷신한국당◁ ○…이날 상오 대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총선필승대회에는 김윤환 대표와 이회창 선대위의장,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이만섭 고문등 지도부가 총출동,지역패권주의·붕당정치 청산 등을 부르짖으며 신한국당 지지를 호소했다. 김대표는 『대구·경북은 이 나라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역사의 주인공이었다』면서 『국민을 통합시키고 희망을 주는 새 정치의 견인차,다시 한번 나라의 안정과 전진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며 이 지역 총선승리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의장은 국민회의와 자민련를 겨냥,붕당정치·지역정치의 폐해를 지적한뒤 『방법상에 문제가 있다고 해 개혁을 포기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면서 신한국당 지지를 호소했다. 이만섭 고문은 『자민련과 국민회의는 김대중씨가 정치를 그만 두면 없어질 정당』이라고 공격했으며,박위원장은 『다음 정권은 21세기 미래형정당으로 거듭날 신한국당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대구=구본영 기자〉 ○…이어 이날 하오 대전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에서 열린 필승결의대회에서 신한국당 지도부는 자민련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3김정치 구도 청산과 내각제의 불합리성을 역설했다. 이회창 선대위의장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나라가 어려울 때 그 자리에 충청인이 있었다』면서 『낡은 정치의 틀을 벗고 새 정치를 일으키기 위해 우국충절의 고장인 대전이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찬종 수도권선대위원장은 『돈으로 공천을 주고받는 정당체질에서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거래의 품목에 각료와 총리자리를 추가하고 부패오염 공화국을 재연시키는 것일 뿐』이라며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재환 대전선대위원장은 『신한국 건설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결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서 『21세기 명운이 걸린 총선에서 힘을 모으자』고 각오를 다졌다.〈대전=박찬구 기자〉 ▷야권◁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안양과 인천에서 열린 「새정치여성대회」와 시국강연회등에 참석,『우리 당이 집권하면 각료의 25%를 여성으로 임명할 것』이라며 김영삼 대통령의 독선을 견제할 수 있도록 국민회의에 3분의 1이상의 의석을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정대철·정희경 선대위공동의장은 『신한국당 내부의 중구난방식 정계개편론은 국민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라고 주장했다.〈안양=오일만 기자〉 ○…민주당의 홍성우 선대위위원장은 하오 강남을지구당(위원장 이재경)개편대회에서 『현정권이 전두환·노태우씨 등에 대한 재판을 놓고 5·6공세력과 정치적 거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른바 「전두환 리스트」를 즉각 공개하라』고 촉구했다.〈진경호 기자〉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부평을등 인천의 4개 지구당 개편대회에 잇따라 참석,『변형된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각 정당에 들어가 있다』고 색깔론을 제기하고 『이런 세력과 싸워 안정된 사회를 이루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총재는 이날 부평갑(위원장 진영광)등 인천지역 4개 지구당대회와 인천지역 언론인과의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독도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당시 『청구권 외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총재는 또 신한국당 김윤환 대표의 「신보수정당」발언과 관련,『지금은 정계개편을 얘기할 때가 아니지만 총선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논의할 수 있다』고 정계개편을 시사했다.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의원의 정치참여와 관련,『그 사람 의사에 달려 있다』고 말해 영입을 추진중임을 시인했다. 김총재는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를 겨냥,『변형된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각 정당에서 뛰고 있다』고 색깔론을 제기한 뒤 『다른 당은 별별 말장난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는 정치·경제·안보·사회 각 분야의 안정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인천=백문일기자〉
  • 「동아시아의 정치개혁 전망」/손주환 본사 사장 영 RIIA 연설

    ◎“한국의 민주개혁 돌이킬수 없는 대세”/일본­「보·혁」서 「보·보」 구도 전환… 정치 불확실성 지속/중국­일당지배·민주 요인 혼재… 체제변혁 어려워 오늘 이 자리에서 언급하는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들―한국과 일본 중국―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다이내믹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나라들이다.이들 나라들은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거듭해온 나라들일뿐아니라 대부분 정치적으로도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속에 묻혀있다. 먼저 한국은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함께 권위주의체제에서 탈피해 민주화를 실현하고 있는,보기 드문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나라이다.일본은 세계일류의 경제선진국이면서도 아직도 국내정치적 개혁의 높은 파도에 휩싸여 있다.중국은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를 지향하는,역사적으로 아주 희귀한 정치·경제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이들 나라에서 진행중인 변화와 개혁 또는 안정의 정치적 실험은 그것의 성공과 실패여부를 떠나서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세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왜냐하면 그자체가 국가발전의 전형에서 보아 보편성과 특수성의 양면을 지니며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개혁◁ 최근 한국의 두 전직대통령이 정치비자금과 과거 쿠데타에 의한 집권혐의로 각각 구속된 사건은 한국 국내는 물론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에 대한 외국의 시각은 대체로 두가지인 것 같다.하나는 일종의 정치보복이라는 부정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개혁의 발전적 귀결이라는 긍정적 견해다. 한마디로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은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30여년에 걸쳐 누적된 권위주의 체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확고한 기반을 닦음으로써 한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취한 일련의 민주개혁과정의 결과라 볼 수 있다.김대통령의 개혁비전과 철학 아래 진행중인 한국의 개혁은 사회 전 영역을 망라하는 포괄적이며 총체적이고 다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군의 정치개입 청산 첫 조치 한국에서 가장 먼저 취해진 개혁조치는 군부의 정치개입 청산이다.61년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과그를 이은 전두환·노태우 정권당시 군부는 이들 정권의 버팀목이었으며 또한 수혜자였다.특히 군부내에는 소수의 고급장교로 구성된 사조직이 있었으며 이들은 정권의 철저한 비호속에 군부는 물론 정치를 좌우해왔다.따라서 개혁의 첫 과녁은 이들에게 맞춰졌다.이들을 성공적으로 군에서 축출함으로써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룩됐다.이 결과 불과 3년 남짓한 지금 군부를 비롯한 한국국민 대다수는 한국에서 더이상 과거처럼 군부가 쿠데타등으로 정치전면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게 됐다. 민주화로의 두번째 개혁은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통해 부패고리를 끊고 선거비용을 보다 엄격히 통제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고 정치자금법을 고쳐 정치자금의 모금한도액과 국고보조금을 늘리는 제도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세번째는 금융실명제와 토지거래실명제를 통한 경제개혁을 이룬 것이다.금융실명제는 가·차명으로 돈을 숨길 수 있는 은행계좌를 불법화함으로써 비자금이나 깨끗하지 못한 돈의 은닉을 불가능하게 했다.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스캔들도 이 제도에 의해 드러난 것이다.정치자금모금제도가 확립되지 않았던 권위주의시대에 대통령은 통치자금이라는 명목 아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정당운영비와 선거자금으로 사용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해왔다.금융실명제로 인해 전직대통령들이 재임시 사용하고 남은 이른바 통치자금의 은닉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서 이번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토지거래실명제는 부동산투기나 이에따른 불법적인 세금의 포탈등을 근절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는 작고 능률적인 정부를 지향하는 행정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선진민주주의국가로 발전하기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이에따라 교육·사법·환경·보건·문화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제도와 관행,규칙들이 개정되거나 보완되는 개혁이 추진되었다. 다섯째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는 것이다.「역사바로세우기」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이 작업은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권과정과 연결돼있다.즉 지난 79년 12월12일의 실질적인 쿠데타와 80년 5월 광주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심판하는 것이다.한국사회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탈바꿈시키려는 김대통령의 개혁은 위에서 언급한 몇가지 내용만으로도 그 폭과 깊이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개혁은 김대통령의 리더십에 의해 주도된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따라서 엄청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개혁추진방법과 속도를 두고 반발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지금까지는 적어도 커다란 사회적 혼란이나 동요없이 국민적 합의와 성원 아래 개혁이 진행돼왔다고 할 수 있다.그것은 김대통령의 민주적 정통성과 집권 이후 행해온 도덕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축적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향후 한국 정치개혁의 성패여부는 과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냐에 달려있다.판단의 1차 바로미터는 4월11일의 총선과 내년 대통령선거가 될 것이다.그러나 선거의 결과에 상관없이 한국에서의 민주적 개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며 이는 한국이 앞으로 후퇴없는 민주발전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의 정치적 교착상태◁ 일본은 지금 정치적으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이는 93년 7월 38년에 걸친 자민당의 일당지배체제가 무너진데 따른 것이다.일본의 변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일본의 정치변화는 다른 선진국에서 보듯 여당과 야당간 정권교체나 단순한 인물교체가 아닌 정치체제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 사회당 세력 대폭 악화돼 93년 정치적 대격변은 무엇보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종결과 함께 사회당의 소멸에 가까운 약화로 시작됐다.사회당은 지난 55년 출범 이후 제1야당으로서 자민당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그러나 소련과 동구 붕괴에 따라 탈사회주의 바람이 불면서,가뜩이나 일본자위대와 남한 불인정 등 비현실적 노선을 고집해온 사회당은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있다. 일본정치개혁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일본정치가 자민당과 사회당으로 대변되던 보수·혁신 구도에서 자민당과 자민당을 이탈한 개혁보수세력인 신진당의 2대 보수당이 양립하는 양대 보수세력 대결이라는 새로운 구도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보수 대 보수의 구도는 그 간 얼굴마담에 그쳤던 무라야마 총리(사회당출신)의 사퇴이후 연립제1당인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재가 총리에 오르면서 실질적인 막이 올랐다.제1야당인 신진당에서도 그간 막후에서 역할을 수행하던 실질적인 보스 오자와 이치로가 지난 12월 당수에 취임함으로써 자민당 대 신진당의 양대보수진영의 대결구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앞으로 일본정치는 이들 두 세력의 치열한 다툼에 의해 불확실성을 띠게 될 전망이다.이 과정에서 주시해야 할 몇가지 대목이 있다.첫째는 과연 일본에서 양대 보수세력이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의 관계처럼 체제 내 상호교체세력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하시모토나 오자와 모두 국가중심주의를 부르짖고 있어 차별성이 없다.따라서 이들 두사람 간의 경쟁이 일본 정치개혁의 종착역이 될지는 의문이다.둘째는 일본은 경제대국에 걸맞는 세계 정치·군사적 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하는 대목이다.일본이 세계정치무대에서 종속변수로 머무는 한 일본국내의 변화욕구가 분출될 것은 뻔하다.반면 일본의 정치및 군사대국화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과 마찰을 빚는 딜레마를 보이게 될 것이다.셋째,일본은 역사문제로 주변국들과 갈등을 빚는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는 풍토가 조성돼있지 못하다.이는 일본 정치세력이 국제화를 지향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장래◁ 동아시아의 정치발전 또는 민주화와 관련하여 또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중국정치체제의 향방이다.중국의 정치변화는 북한·베트남등 같은 사회주의국가 뿐아니라 일반 개발도상국의 정치발전과 민주화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따라서 중국정치체제의 장래,보다 구체적으로 중국공산당 일당지배체제의 장래는 커다란 관심사다.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중국의 대내외적 환경과 그 진전 추세로 미루어 볼 때 공산당일당지배체제를 유지하도록하는 요인과 정치적 민주화를 자극하는 요인이 혼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공산당지배를 존속시키는 요인으로는 중국의 민주시민의식의 결여를 꼽을 수 있다.중국인민들은 오랜 전체주의에 길들여져 있으며 높은 문맹률과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자율의식,주인의식이 부족하다.또 안정된 민주주의에 적합한 경제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개혁개방 이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일부 경제특구를 제외하고는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지역별 계층별 소득격차는 민주주의 실현에 많은 장애를 가져다 줄 것이다. ○중 소수민족 독립운동 우려 아울러 중국지도부는 복수정당제 등 서구식 민주주의가 지역주의와 소수민족 분할독립운동을 자극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중국은 티베트 대만 신강 홍콩등 소수민족 및 지역주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일사분란한 일당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게 대체적인 인식이다.이는 인구 90%이상을 점하는 한족민족주의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의 정치적 다원화와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요인도 적지않다.무엇보다도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을 통한 경제발전이 그것이다.「사회주의적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중국사회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원화시킬 것이며 따라서 일당지배체제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둘째,범세계적인 민주화추세와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인한 국제경제구조와의 연계성이 심화되는 현상은 중국의 국내정치 및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셋째,과학기술발전으로 상대적으로 세계는 축소된 지구촌으로 변하고 있다.지역간 교류가 빈번해지고 체제와 제도간 상호비교가 용이해지면서 과거처럼 문을 닫고 한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선전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이같은 요인을 종합해 보면 중국이 가까운 장래(4∼5년)에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포기하고 다당제로 표현되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그러나 이데올로기가 희석되는 반면 민족주의 요소가 강조되며 행정 개혁을 추진하는등 공산당지배양식이 달라질 가능성은 크다.즉,이른바 개발독재형 권위주의체제와 유사한 통치형태를 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론◁ 지금 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다이내미즘은 이들 지역에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이들 지역은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확립이라는,또는 경제적 번영과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체제확립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짧은 시일안에 잡아야 하는 매우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 유럽이 수세기에 걸쳐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성취한 결과를 동아시아가 짧은 시일안에 얻기 위해서는 상당정도의 모순과 혼란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유럽과 세계선진국들의 앞선 경험이 동아시아의 진로에 좋은 교훈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동아시아의 국가들은 나라와 시기별로 차이는 있지만 종국에는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공유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해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 전·노씨 구속기간 연장 가능성

    ◎전씨 6월2일·노씨 5월15일 만기/재판 지연땐 영장 발부… 6개월 연장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의 1심 구속 만기일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공판 일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구속만기일 이후 이들의 신병처리 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피고인의 경우 구속된 날로부터 6개월 안에 1심 재판을 끝내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렇지 않으면 일단 석방한 뒤 재판해야 한다.노피고인은 오는 5월15일,전피고인은 6월2일이 구속 만기일이다. 정호용피고인은 7월30일,전 청와대 경호실장 이현우피고인은 노피고인보다 하루 늦은 5월16일,유학성·박준병·최세창·장세동·허화평·허삼수·이학봉피고인 등 7명은 7월 초순에서 중순까지 구속재판을 끝내야 한다. 거규헌·박종규·주영복·신윤희피고인 등 불구속 피고인은 시한에 구애받지 않는다. 전·노피고인은 경우가 다르다.다른 범죄사실로 추가 기소되면 재판부가 직권으로 「별건 영장」을 발부,구속시한을 6개월씩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피고인은 12·12 사건으로 구속됐지만 기소단계에서 비자금 사건과 5·18 사건으로 추가 기소됐다.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노피고인도 12·12 및 5·18 사건으로 추가 기소됐다. 노씨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뇌물죄로 구속된 이현우피고인도 뇌물방조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정호용피고인은 5·18 사건으로 구속됐으나 전씨 비자금 사건(뇌물)으로 추가 기소됐다. 전·노피고인은 각각 3개의 사건으로 기소됐으므로 구속일로부터 최장 1년6개월 동안,이현우피고인과 정호용피고인은 구속일로부터 최장 1년동안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부의 한 관계자는 『전·노피고인은 외형상 비자금,12·12,5·18 등 3개의 사건으로 기소된 것으로 보이지만,뇌물사건의 경우 각 기업체별 뇌물수수 사실을 각각의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구속 피고인에 대한 구속재판 시한을 무제한 연장하는 것은 관행에 어긋나므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재판을 마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박상렬 기자〉
  • 「12·12」 2차 공판­법원주변 표정

    ◎김씨 “기억하기 좋게 「12·12」 택일”/「법정폭행」 전씨 아들 3형제중 큰 아들만 방청/검찰,11명 직접신문대비 1천36개 항목 작성 ▷법정표정◁ ○…12·12 및 5·18사건의 2차공판이 열린 18일 상오 10시 대기실에 있던 13명의 피고인들은 재판부의 호명에 따라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거규헌씨 등의 순으로 입정. 가장 먼저 입정한 전피고인은 뒤이어 들어와 옆에 선 노피고인의 손을 꼭 잡았다.노피고인도 뒤이어 입정한 유피고인이 옆자리에 서자 유피고인의 손을 마찬가지로 잡아 우정을 확인하는 듯한 모습. ○…12·12 당시 33경비단장으로 경복궁 팀에 가담한 김진영 전 육참총장은 이 날 방청석에서 공판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30년 지기들이 피고석에 앉은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며 참담한 심경을 피력.전피고인에 대해서는 『군 지휘관 시절 늘 자기 부대를 최고로 만들었던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극찬하기도. ○…전두환 피고인이 12·12의 날짜를 잡은 이유를 설명하는 순간 방청객들이 일제히 폭소.전피고인은 검찰이 12월12일을 거사일로 정한 것은 다음 날인 13일이 개각 예정일이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신문하자 『기억하기 좋게 하기 위해 12월에 일치하는 숫자인 12일로 잡았다』며 『나는 월남 파병시에도 작전 개시일을 5월5일 등으로 정하곤 했으며 그래서 나의 81년 5공화국 대통령 취임일도 3월3일』이라고 대답. 이에 대해 직접 신문을 맡은 김상희 부장검사는 『새로운 사실이군요』라며 간접적으로 질책하자 방청객들이 또 폭소. ○…검찰이 전피고인 등 12·12사건의 2차공판 피고인 가운데 박종규 피고인을 제외한 11명의 직접신문에 대비,미리 준비한 신문항목은 모두 1천36문항으로 확인됐다.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항목은 모두 2백82문항으로 2백39문항의 주요신문 항목에,예비 신문사항 43문항이며 나머지 피고인들은 예비신문 사항을 포함 유피고인 1백7문항,황피고인 1백3문항,박준병 피고인 93문항,허화평 피고인 72문항 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의 신문항목 수는 12·12 군사반란의 기여도에 따라 비례한다고 할 수 있으며 주요 신문사항은 당시의행적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예비 신문사항은 피고인들이 부인할 것에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 ○…검찰 직접신문 도중 황피고인이 「하나회」의 실체를 전면 부인해 폭소를 자아냈다. 황피고인은 김상희 부장검사가 『하나회에 대해 알고 있나요』라고 묻자 『그 말은 현 정부가 들어선 뒤 12·12 사건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당시엔 전혀 몰랐다』고 대답. 황피고인은 그러나 『어쨌든 하나회 맴버인 전두환 노태우 박희도씨 등과 가깝게 지낸 것은 사실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했다. ▷법정주변◁ ○…지난 11일 첫 공판에서 고강경대군의 부친 강민조씨와 전씨의 세 아들 및 측근들간에 벌어진 법정소란에 대해 재판부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 재연될 경우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법원 관계자는 『이번에는 법정에 2대의 폐쇄회로(CC) TV를 설치한만큼 화면자료를 근거로 소란 행위자에 대해 감치는 물론 일반 사건으로 입건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엄중 경고. ○…상오 9시38분쯤 법원 2층 로비에 혼자 나타난 전씨의 장남 재국씨는 『둘째 재용은 계단에서 굴러 부상을 입었고 셋째인 재만(연대 경영대 3년 재학중)은 학교에 가 나오지 못했다』고 설명.▷법원주변◁ ○…서울지법 주변은 1차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방청권을 얻기 위해 1백여명의 시민과 3백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몰린데다 경찰이 경비병력을 배치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1차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법원 주변에는 5·18관련 단체 등 재야 및 시민단체 회원 40여명이 5·18 관련자 전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산발적으로 시위를 했다.〈김환용·박은호 기자〉
  • “「하나회」는 친목단체”/전씨 결성목적 등 밝혀

    ◎“군내 사조직 불허사실 잘 알고 있다/윤필용·강창성씨 대립으로 공개돼” 『내가 하나회 회장이다』 전두환 피고인이 2차 공판에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결성 목적,상급자와의 마찰 등을 최초로 밝혔다. 전씨는 하나회의 존재여부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내가 회장』이라며 결성 사실을 시인했다.순간 방청석이 잠시 술렁였다. 전씨는 하나회가 육사 11기 동기생 친구들의 모임으로,젊은 장교들의 꿈을 키우는 친목단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규약도 없고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을 뿐이라고 했다.박준병·최세창씨가 회원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노태우·김부동·최성택씨 등 동기생과 오성회를 결성했으나 손영길·권익현·정호용씨 등과 칠성회를 결성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나회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70년대 초 육사 8기생인 윤필용 수경사령관과 강창성 보안사령관의 라이벌 의식 및 대립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윤필용사건 때 강사령관이 조사하다 성과가 없자 평소 그를 따르는 자신 등 40여명의 하나회 장교를 1백명으로 부풀려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체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 전씨는 이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라고 비유했다.하나회의 부각은 『상대적으로 진급이 느리고 따르는 부하가 적은 강씨가 혼자 떠들다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하나회가 군 내부의 비밀조직인 것처럼 논란이 이는데 대해 전씨는 『나와 5공에 대한 음해』이며 『이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검찰이 『규율상 군대에 일체의 사조직을 결성할 수 없다』는 조항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박선화 기자〉
  • “대통령재가 관계없이 정승화 총장 연행하라”

    ◎전씨,“허삼수에 지시” 진술/「12·12」 군사반란 혐의 시인/12·12­5·18 2차공판 12·12 사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은 최규하 대통령의 사전 재가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두환 피고인은 18일 12·12 및 5·18 사건의 2차 공판에서 『79년 12월12일 당시 허삼수 우경윤 등에게 재가에 관계없이 하오 7시가 되면 정총장을 연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당시 합수부장으로 6시30분쯤 총리 공관으로 최대통령에게 가면서 7시쯤 재가를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히고 『최대통령도 여러 경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가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전피고인은 『12월6일 정총장을 연행할 것을 결심한 뒤 7일 노태우피고인을 만나 연행 및 수습 방안 등을 설명하고,같은 날 허삼수 등에게도 계획을 설명했다』고 진술,12·12사건이 자신의 주도 아래 신군부의 사전모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일부 시인했다. 전피고인은 12월 7일 황영시,9일 최세창·박준병,10일 박희도,11일 거규헌,12일 유학성피고인 등을 만나 12·12 계획의 일부를 설명하고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상오 10시부터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된 공판에는 전피고인을 비롯,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거규헌 박준병 최세창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박종규 신윤희 피고인 등 12·12 관련자 13명이 출정했다. 전피고인은 『대통령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임의로 병력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거하고,장태완 수경사 사령관 등 육군 정식 지휘계통의 핵심 지휘관들을 체포함으로써 정식 지휘계통을 와해시키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그 때 상황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건 사실』이라고 말해 12·12 군사반란 혐의를 인정했다. 전피고인은 그러나 『10·26사건에 깊숙히 연루됐던 정총장에 대한 연행은 합수부의 합법적이고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재가과정에서 강압은 없었으며,최대통령도 노재현 국방장관이 오면 재가하겠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신문에앞서 전피고인측 변호인인 전상석 변호사는 「변호인단의 기본입장」과 「쟁점 정리를 위한 석명 요청」을 통해 『검찰의 공소 사실대로 전피고인이 위법한 내란에 의해 집권했다면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무효이므로,대통령으로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며 『12·12 및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 가운데 하나는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판은 유학성 황영시 피고인에 이어 전피고인에 대한 직접 신문을 끝으로 하오 6시50분쯤 끝났다.3차 공판은 오는 3월25일 상오 10시에 열린다.〈황진선 기자〉
  • 「12·12」 2차 공판­법정 이모저모

    ◎전씨 변명·부인으로 일관/국회증언까지 번복… 자신행위 정당화/당당한 자세 답변… 뉘우침 안보여/“당시 정부 실권 없어” 오만한 진술 쿠데타 세력들에 대한 법의 신문은 준엄했다.그러나 쿠데타의 주역은 여전히 변명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18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및 5·18 사건의 2차 공판(재판장 김영일 형사수석부장판사)에서 12·12 쿠데타의 주역 전두환 피고인은 국회에서의 증언까지 번복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전 피고인은 『12·12는 정승화 총장의 연행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군 내부의 소장파 움직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89년 12월31일 국회 5공청문회에서 전 피고인 자신이 12·12는 정총장의 연행과 군의 개혁을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음을 지적했다. 전피고인은 『당시는 남이 써 준 것을 읽었을 뿐이고,이를 검토할 시간도 소명자료도 부족했다』며 『국민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당시 국회 증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했다.『이 법정에서의 증언도 번복하겠습니까』라는 검찰의 반문이 날카로웠다. 전 피고인은 여러차례 증언을 번복했다.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을 둘러싼 정승화 총장과의 갈등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검찰이 지난 12월3일 전 피고인이 안양교도소에서 『이후락을 둘러싼 정총장과의 갈등이 있었다』고 진술한 조서를 증거로 들이댔다. 그러자 전 피고인은 『단식 중이라 기력도 없고 피곤해서 수사검사를 빨리 돌려보내려고 말한 것이다』라고 부인했다. 검찰은 그 날이 구속 첫 날이었음을 상기시켰고,전 피고인은 『이후락은 잘 아는 사이이고,당시 답변은 잘못된 것』이라고 우겼다. 게다가 총장 연행과 관련한 재가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반드시 재가할 것으로 확신했다.안 할 수가 없다』『아는 사람끼리 저녁먹기 위해 (전방 부대 지휘관들이)서울에 오는 것은 출·퇴근과 같은 것이지,계엄하에서의 수소지역 이탈은 아니다』『당시 정부는 과도 정부로 실권이 없었다』는 등 군의 규율과 국헌에 대한 전씨의 오만했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진술로 일관했다. 전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를 필요에 따라서는 구국의 결단처럼 강변하고,때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얼버무리면서 궁색하게 검찰의 추궁을 피하려 했다.〈박상렬 기자〉
  • 「12·12」 2차 공판­직접신문 지상중계

    ◎전두환씨­“12·12전 노재현 국방에 정 총장연행 건의”/전씨 답변­「합수부장서 좌천」 소문 들은적 없어/노 국방이 보안사령관 천거… 신세져/전두환씨­“9사단 한·미연합 사령관 승인없이 동원”/검찰­“30경비단에 장성 모아 지휘본부 삼았다”/전씨­“수소이탈 해당없는 지휘관들만 부른것” ◆DB편집자주:본문생략 HKM­960319­04­01­05 참조
  • 전씨의 내란·수뢰죄 “동시적용 모순” 주장/변호인단 「석명」내용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전상석 변호사 등은 18일 서면으로 「쟁점 정리를 위한 석명 요청」과 「변호인단의 기본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했다.요지를 간추린다. 쟁점 정리를 위한 석명 요청 검찰은 이 사건의 기소 취지는 5공화국의 정통성 유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집권과정의 위법성을 따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집권과정이 내란에 의한 것이라면 그 내란을 통해 취임한 대통령의 신분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전피고인의 집권이 공소장대로 법에 어긋난 내란에 의한 것이라면,대통령 취임은 당연히 무효이므로 전피고인은 80년9월1일부터 88년2월24일까지 외견상 대통령 행세만 한것일 뿐 대통령 신분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것은 논리상 당연하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른바 「정치자금 사건」에서 전피고인이 적법한 대통령의 신분을 보유하는 것을 전제로 신분범인 수뢰죄를 적용해 공소를 제기한 것은 일관성을 결여한 것이고 법논리상으로도 모순이다. 피고인의 집권과정이 법에 어긋나 내란죄가 성립한다면 수뢰죄가 성립할 수 없고,수뢰죄가 성립한다면 내란죄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두개의 공소사실 가운데 어느 하나는 취소되어야 논리적 통일성이 이뤄질 수 있다.만일 검찰이 내란죄와 수뢰죄가 모두 성립한다고 고집한다면 「위법한 절차(내란 행위)에 의해 합법적인 대통령 취임이 가능하다」는 논리적 모순에 대해 충분한 석명이 있어야 한다.
  • 「12·12」 2차 공판­새로 밝혀진 사실

    ◎군권장악 이튿날 「6인위」서 군인사/한달전부터 군수뇌부 물갈이 은밀 논의/“「연행」 재가 안하면 혼란” 최 대통령 압박 12·12사건의 2차 공판에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쏟아졌다. 12·12 거사일 결정은 79년 11월 말부터 황영시·유학성·노태우피고인 등이 연행 불가피성을 거론하자,전두환피고인이 12월6일 혼자서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전피고인은 『80년 3월3일을 대통령 취임일로 잡고 월남전에서도 4월4일을 작전일로 잡은 것처럼,두 숫자가 모이는 12월12일이 좋아서 정했다』고 말했다.전피고인은 거사일을 이처럼 정한 뒤 12월7일 노피고인과 합의하고 경복궁 참석자들에게 전파했다. 또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가장 먼저 거론한 사람은 황피고인 것으로 드러났다.황피고인은 79년 11월24일 육본에서 열린 계엄확대 회의에 참석한 후 귀대하면서 전피고인을 만나 『정총장의 10·26 사태 이후 언동이나 미심쩍은 행적으로 보아 조사할 필요성이 있지 않느냐』며 항의조로 제안했다.전피고인은 이에 『적당한 시기에 정총장을 수사하겠다』고 응답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집단면담을 통해 재가를 받아내자고 주도한 사람도 황피고인이었다.12일 하오 7시쯤 전피고인이 최대통령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받아내지 못하자,황피고인은 30경비단 모임에서 『함께 대통령을 면담해 조속한 결단을 촉구하자』고 부추겼다. 이들의 최대통령 집단 면담시 발언내용도 새롭다.유피고인이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돼 전쟁이 초래된다』는 위기론을 들먹이자,최대통령은 『그래요? 조용한데 무슨 불상사요.잠잠하기만 한데』라며 재가를 거부했다. 최대통령이 정총장 연행 재가문서의 서명날인란 옆에 『05:10 AM』이라고 재가시간을 표기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최대통령은 『정총장 연행이 불법이라고 생각했으나 국방장관의 정식 결재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사후결재했다』며 『이 점을 기록하기 위해 결재시간을 적었다』고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술회했다. 10·26 직후 수사과정에서 청와대 김계원 비서실장 방 금고에서 발견된 9억원의 추후 사용처도 밝혀졌다.전피고인은 『이 돈을 박근혜씨에게 건넸으나 6억원을 제외한 3억원을 보내와 1억원은 수사비로 쓰고 나머지 2억원은 정총장에게 건넸다』고 말했다.전피고인은 『정총장에게 건넨 2억원의 행방은 모른다』며 『노국방장관에게도 5천만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전피고인 등 6인위원회가 군 고위인사를 단행한 것도 새로 밝혀진 사실이다.이희성피고인은 13일 상오 2시30분쯤 보안사령관실을 방문,전·유피고인에게 「누구 승인을 받고 계엄상황에서 위수지역을 이탈했느냐」고 꾸짖었다.이에 전피고인이 「육참총장 이희성」이라고 적힌 쪽지를 보여주었으며,유피고인은 이피고인을 다른 방으로 데려가 『이 난국을 수습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으니 총장을 맡아달라』고 회유했다.이피고인은 이 날 노국방장관으로부터 육참총장겸 계엄사령관 임명 사실을 통보받았다.이에 앞선 11월30일 김윤호 광주보병학교장은 전피고인을 보안사에서 만나 『참모총장 황영시,참모차장 전두환』등의 인사안을 개진한 점도 검찰 신문에서 드러났다.〈박홍기 기자〉
  • 오늘 전·노씨 2차공판/「12·12­5·18」관련

    ◎검찰 12명 직접신문 12·12 및 5·18사건의 2차 공판이 18일 상오 10시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심리로 열리는 이 날 공판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씨 등 12·12사건 관련 피고인 13명이 출정한다. 검찰은 지난 11일의 1차공판 때 직접신문을 마친 노피고인을 뺀 나머지 12명의 피고인을 직접신문한다.전두환피고인은 유학성·황영시피고인에 이어 세번째로 신문을 받는다. 검찰은 유·황피고인에게 각각 1백 문항,전피고인에게는 3백 문항을 신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한 경위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가 여부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할 예정이다. 한편 재판부는 1차공판 때와 같은 법정소란을 막기 위해 법정내 방청석을 감시하는 폐쇄회로 TV 2대를 설치,운용키로 했다.
  • 계약어기고 책출간 중단/전씨 맏아들에 손배 소송(조약돌)

    ○…장편소설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의 저자 홍용표씨(61)는 1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맏아들 재국씨가 운영하는 출판사인 (주)시공사가 계약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책의 출간을 중단했다며 5천만원을 요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제기. 홍씨는 소장에서 『군사전문 지식을 토대로 쓴 이 책에 대해 지난 94년 3월 시공사와 출판계약을 맺었지만 출판사가 출간을 한 달 동안 지연시켜 김일성 사망일(94년 7월9일) 전에 판매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친데다 한국군 구조현황,CIA 전략회의 등 책의 주요부분을 무단 삭제했다』고 주장. 또 당초 계약과는 달리 광고조차 하지 않는 등 계약을 위반했다고 부연.
  • 「12·12」 「5·18」 오늘 2차공판 전망

    ◎“법정승부 분수령” 공방 치열할듯/검찰­“전씨 꼼짝못할 새 증거 있다”/변호인­“공소사실 구체성 상실 집중 부각” 18일 열리는 12·12 및 5·18 사건 2차 공판은 검찰과 변호인간의 법정 승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유학성·황영시피고인 등 신군부 세력 원로급에 대한 직접 신문에 이어 실권자였던 전두환피고인을 상대로 군사반란의 전모를 추궁한다.전피고인에 대한 문항만도 3백개.사건의 성격이 분명히 가려질 수밖에 없다. 전피고인에 대한 신문을 뒤로 미룬 것은 전씨를 먼저 신문할 경우,나머지 피고인들이 입을 맞출 가능성을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지난 11일 첫 공판 때와 같은 전략이다. 그러나 피고인들이 이같은 검찰의 전략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져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지는 미지수다. 기선을 제압한다는 측면에서 전씨를 첫 신문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이번 공판에서 피고인측의 범죄사실에 대해 『매우 강도 높고 집요한 신문을 펼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전씨를 꼼짝 못하게 할카드가 있다』고도 흘려 주목된다.신문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와 사실들을 공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직접 신문만 진행되기 때문에 주도권은 당연히 검찰이 잡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변호인단은 첫 공판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공소사실이 구체성을 상실하고 있음을 피고인들의 입을 통해 집중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이양우 변호사의 『개별 재판에 대해서는 성과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은 변호인단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재판의 전체적인 흐름,즉 12·12 및 5·18 사건의 당위성을 주장,이를 역사의 기록에 최대한 남기겠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가장 큰 관심은 전씨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언될 12·12 사건의 경위이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계획과 시행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재가 과정에서의 강제성 여부 ▲이른바 「경복궁 모임」 성사 경위 등은 전피고인만이 전모을 아는 사안이다.인사 문제를 둘러싼 정총장과의 갈등,원로장성 그룹을 제거하기 위한 소장파의 사전 모의 과정도 쟁점 사항이다. 검찰의 창과 피고인의 방패가 맞부딪치는 양상이다.물론 팽팽하다.그러나 12·12 사실 관계 규명에서는 검찰이 유리하다.재판부가 법률논쟁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주력해 줄 것을 양측에 당부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공방으로 2차 공판에서도 전피고인 등 피고인 13명에 대한 직접신문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25일의 3차 공판에서나 끝날 공산이 크다. 이번 공판에선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의 옥중서신 교환설이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12·12 당시의 정국 상황,군부내 노·소장간 암투 등의 비사를 전피고인들이 밝힐 지도 관심거리다.
  • 전씨 아들 사죄 촉구/유가족협 회원 시위

    「전국 민주주의 민족통일 유가족 협의회」 소속 회원 30여명은 16일 상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전씨의 세아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와 국민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이들은 『재국씨 등 세아들이 지난 11일 12·12 및 5·18사건 법정에서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를 폭행한 것은 전씨 등의 뉘우침 없는 태도만큼이나 가증스러운 짓』이라며 『당장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인근 스포츠센터 앞에 모여 2백여m를 행진,전씨 집 50여m 앞에서 경찰의 저지를 받자 계란을 던지며 3시간동안 몸싸움을 했다.
  • 옥중 서신 교환관련/전·노씨 조사

    서울지검 특수2부(박주선 부장검사)는 1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옥중에서 서신을 교환했다는 보도와 관련,전·노씨를 조사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보도가 사실인지를 가리기 위해 다음주초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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