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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세동씨 추석날 옥중 회갑(조약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추석인 27일 회갑을 옥중에서 맞는다. 그는 현재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다. 복역하기는 네번째다. 지난 89년 5공비리사건과 93년 이른바 「용팔이사건」(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으로 수형생활을 했고 12·12와 관련,지난 2월 구속된뒤 8월19일 1심 구속만기로 풀려났다가 8월26일 1심 선고공판에서 다시 법정구속됐었다. 옥중에서 회갑을 맞는 장피고인은 의외로 담담하다.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마련하려던 소연도 극구 만류했다. 이 날은 공휴일이라 가족에게도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교도소측이 제공할 추석 별식을 잔칫상으로 대신할 참이다.선친과 전남 고흥에 사는 노모를 향해 큰 절이나 올릴 계획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회갑을 이틀 앞둔 25일 부인과 측근들의 방문을 받았다.공군과 육군에서 사병으로 복무중인 두아들 걱정도 했다.쓸쓸이 맞을 「주군」(전두환 피고인)의 추석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위로하는 측근에게 『새마을복을 입고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라며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 검찰,「12·12」 항소이유서

    ▷서론◁ 원심이 일부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거나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것은 판단 유찰 또는 채증법칙을 위배,사실을 오인하였거나 형의 양정을 그르친 부당한 판결이다.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박준병 피고인에 대해 검사가 원심법원에 제출한 증거를 종합하면,육본 기동예비임무를 수행하던 20사단 사단장인 박피고인은 79년 12월12일 하오6시30분쯤 전두환 피고인의 제의에 따라 정승화 총장 연행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30경비단에 모였다. 같은 날 하오8시30분쯤 노충현 참모장으로부터 진돗개 하나 비상이 발령되고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이건영 3군사령관 등이 급히 찾고 있다는 것을 전화로 보고받고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같은 날 하오8시30분쯤 전두환 피고인으로부터 정총장 연행경위를 설명듣고 대통령 재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육본측 병력이 출동할 경우 20사단의 병력을 동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어 30경비단에 머물면서 10여분 간격으로 20사단의 참모장·연대장·참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부대 장악을 기도함으로써 육본측에서20사단을 합수부측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저지했다. 같은날 하오9시30분쯤 전두환 피고인 등이 대통령에게 2차 재가를 받으러 간 뒤 노태우·장세동 피고인과 함께 30경비단장실에 남아 통신 유지와 상황 파악 임무를 수행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 따르면 박피고인은 이 사건에서 반란의 범의를 갖고 반란중요임무종사행위를 한 것이 명백하다. ◇피고인 황영시의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황피고인은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80년 5월21일 하오4시35분쯤 국방부 회의에는 불참했지만 수차례에 걸쳐 관련 대책회의에는 참석하는 등 자위권 발동 결정에 깊이 관여했다. 광주 재진압작전 실행 시기를 결정한 5월25일 낮 12시15분쯤 육군회관 오찬회의에 참석한 뒤 광주재진압작적 계획서를 소준렬 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다. 탱크나 헬기를 동원,희생을 무릅쓰고라고 조속히 시위를 진압하라고 지시하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의 강경 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자위권 발동 또는 광주재진압작전의 실행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결과 발생을 용인했다. 전두환·이희성·주영복 피고인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의 조속한 진압이 국헌문란 목적의 실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 따르면 황피고인이 내란목적 살인에 대한 사전모의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고,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란목적살인행위 당시에는 내란목적살인행위를 공동으로 한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던 점이 인정된다. ◇피고인 정호용의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정피고인은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80년 5월21일 하오4시35분쯤 국방부 회의와 광주재진입작전 실행시기를 결정한 같은달 25일 낮12시15분쯤의 육군회관 오찬회의에 참석했다. 정피고인이 광주재진입작전 대책회의에 수차례 참석하고 그 준비작업을 하는 등 광주재진입 결정과정에도 깊이 관여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 특전사 상황실 운영 등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공수부대를 지휘했다. 진압작전을 하고 있던 공수부대에 가발·의류를 지원하는 등 각종 행정 및 군수품을 지원했다. 자위권 발동 또는 광주재진입작전의 실행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결과 발생을 용인했다. 전두환·이희성·주영복 피고인 등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의 조속한 진압이 국헌문란 목적의 실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사실에 따르면 정피고인이 내란 목적 살인에 대한 사전모의에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며,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란목적살인행위 당시에는 내란목적살인행위를 공동으로 한다는 의사를 갖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 ▷양형부당◁ 이 사건은 역사상 그 어느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안이 중하고 범행의 동기와 방법 등에 비추어 볼 때 죄질이 매우 나쁘다. 피고인들이 재판정에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자신들의 범행을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개전의 정이 없으므로 중형선고가 마땅하다. 반국가적·반역사적 범행으로 국민과 역사에 심각한 폐해를 끼친 피고인들을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엄중 처단하여 역사 발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순리다. 원심이 역사의 순리를 외면하고 피고인들에게 지나치게 가벼운 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 ▷결론◁ 항소심 재판이 원심 판결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피고인들 모두에게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려 우리 국민 모두에게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 「12·12」 「5·18」 항소이유서 제출/노씨 등 13명도 내

    ◎검찰/전씨 제외 관련자 15명 대상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한부환 서울지검 3차장검사)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이 사건 관련피고인 15명에 대한 항소이유서를 서울고법에 냈다.1심에서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피고인은 검찰의 항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전·노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한 12·12 및 5·18사건 관련피고인 13명도 이날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1심재판부가 사실관계와 법리를 잘못 이해해 박준병·황영시·정호용 피고인 등 3명에 대해 무죄 또는 일부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 15명 모두가 범행동기와 방법 등 죄질이 나쁜 데도 선고형량이 가볍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전피고인 등도 항소이유서에서 『1심재판부가 채증법칙을 위반했거나 유죄를 전제로 사실을 추측·날조·왜곡했다』고 주장했다.
  • 피고인 각하/엄상익(화제의 책)

    ◎전·노 두 전 대통령 재판 방청기 현직 변호사가 방청객의 입장에서 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방청기.「법정에 세운 역사」로 평가되는 이 재판의 현장을 빠짐없이 참관,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피고인들의 회한과 분노·고통 등을 섬세하게 스케치했다. 전두환 피고인은 법정직원을 웃길 정도로 강한 친화력과 두둑한 배짱을 보인 반면 침묵형이었던 노태우 피고인은 재판장의 물음에 가장 공손하고 얌전하게 대답,「주역같은 엑스트라」의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 『이번 재판상황을 보면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없고 억울한 사람만 있는 것 같다』고 꼬집는 지은이는 『이제는 모든사람에게 하나의 잣대가 적용되는 사회,법위에 군림하는 통치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미래미디어 7천원.
  • 「굵직한 사건」 무리없이 처리/김기수 검찰총장 취임 1돌

    ◎성역없는 사정·공면선거풍토 확립 한몫/대국민 친절운동 전개 검찰문턱도 낮춰 김기수 검찰총장이 16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대검찰청 간부들과 점심을 나누며 조촐한 자축행사를 가졌다.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라는 점을 의식한 듯 대외적인 행사는 갖지 않았다. 김총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1년 동안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대과없이 지나갔다』며 덕담을 했다. 김총장의 말대로 지난 1년은 「역사 바로 세우기」차원에서 우리 헌정사에서는 전무했던 사건들로 점철됐다.취임 한달만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으로 시작해 「12·12 군사반란 및 5·18 내란 사건」,「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한총련 사건」에 이르기까지 간단없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김총장의 말처럼 대과는 없었다는 것이 검찰 내부의 평가다.김총장이 부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중지를 모으는 「덕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견들이다. 한 간부는 『전임 총장들과는 달리 김총장은 이른바 음지로 많이 돌아다녀 조직과 후배들의 어려움을 잘 아는 덕장』이라며 『전임 총장 시절보다 수십,수백배 어려운 사건을 무리없이 처리했던 것은 부하들의 생각을 중시한 덕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역 없는 사정」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재벌 총수들과 국회의원,장관,은행장,경제부처 간부 등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한 것 등이 구체적인 예다. 공명선거정착 풍토 확립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선거 사범을 엄정하게 처리했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과거에 비해 선거 풍토가 깨끗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내부적으로는 대 국민 친절운동의 전개와 「음지­양지론」으로 음지에서 일하던 후배들을 주요 보직에 과감하게 기용한 것 등도 공으로 꼽는다. 그러나 검찰이 과연 중립적으로 검찰권을 행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물론 김총장이 이른바 「PK(부산·경남)」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더 사시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사범 문제라든가 최근의 명예훼손 사건 처리 등에 대해서는 법률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갸웃하는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워낙 정치적으로 미묘한 대형 사건이 많았던 한 해였던만큼 그만하면 잘했다는 평가가 더 많은 것 같다. 김총장이 취임사에서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검찰을 만들겠다』고 밝혔듯이 앞으로 남은 1년동안 그 주춧돌을 놓으리라는 것이 검찰 내부의 기대다.
  • 성용욱 피고인 항소이유서 내

    12·12 및 5·18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26명 가운데 성용욱 피고인이 처음으로 12일 항소이유서를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에 냈다.
  • 「12·12」 「5·18」 항소심/새달 7일 첫 공판

    12·12 및 5·18사건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항소심 첫 공판이 다음달 7일과 10일 각각 열린다.
  • 중남미에 부는 「코리아 열풍」/언론보도 요약

    ◎경제 기적·역사 바로 세우기 집중 보도/「순방」계기 투자·교역 획기적 확대 점쳐 중남미 지역의 언론은 김영삼 대통령의 순방계획이 발표된 지난달 18일 이후 한국의 역사·경제개발 과정·민주화와 김대통령의 방문 의의등에 대해 관심있는 보도를 계속해왔다.중남미 지역의 언론은 한국이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전직대통령을 법에 따라 처벌하는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평가했다.또 이 지역의 언론은 김영삼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과 집권과정,집권후의 세계화 정책 추진 등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최근에 보도된 중남미 각국 신문의 김대통령 순방관련 기사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칠레 「El Mercurio」 2일자 5면=김대통령의 방문은 한·칠레 공동발전과 투자를 위해 한국 기업인들에게 참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띤다.칠레는 향후 한국의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로서 중요성이 크다.김대통령은 93년 2월25일 32년간의 독재 군부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김대통령은 세계화라는새로운 정치개념을 국내·국제정치에 도입했다.칠레가 94년 한국이 창설멤버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에 가입함으로써 양국관계는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페루 「El Comercio」 2일자 5면=김대통령은 한국기업인들에게 엘 도라도(황금의 땅)로 간주되고 있는 중남미 5개국 순방에 나섰다.순방목적은 세계 주요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남미와의 협력관계 강화다. ▲과테말라 「Prensa Livre」 3일자 10면 「비슷한 역사·다른 발전」=한국과 과테말라는 권위주의적 군사정부 아래 있었고 동서이념의 갈등을 경험했다.그러나 한국은 과테말라보다 작은 나라이면서도 4천5백만의 인구를 갖고 경제기적을 이룬 나라다.여러 요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한국의 교육이다.한국의 가장 큰 자원은 인적자원이다.김대통령의 방문 밑바닥에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드라마,즉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형선고라는 법적 절차가 절정에 이르는 드라마도 깔려있다.이런 훌륭한 나라를 배우는 것보다 더한 교훈,어두운 과거의 잿더미에서 비상을 한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 ▲페루 「SINTESIS」 3일자 23면=중미 지도자들은 김대통령의 방문에 아주 흥분해 있으며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의 중남미 투자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페루 「ELSOL」 3일자 6면=노동자 학대로 말썽이 됐던 과테말라 마킬도라 공장 사건은 한국인 관리자와 현지 직원간의 이해부족과 가치관의 상이함에서 발생한 것으로,이 지역 근로자들과의 상호이해 증진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과테말라 「Siglo 21」 4일자 사설=한국의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됐다는 뉴스는 과테말라의 현실과 크게 비교된다.우리의 전직 대통령인 세라노는 파나마에서 풍요로운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한국과 과테말라의 차이는 한국에 김영삼이라고 불리는,32년간의 군사정부를 종식시키고 한국을 민주화했으며 면죄부를 누리는 것을 종식시킨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한반도는 석유도,중요 자원도 하나 없는 땅이나 교육과 노동으로 세계 1등 경제국이 되었다. ▲페루 「Caretas」 5일자=김대통령은 90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발표와 함께 집권여당에 들어간뒤 93년 한국의 첫 문민대통령이 됐다. ▲브라질 「Revista Nacional」 5일자=김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한국의 세계화 정책은 단순한 경제 국제화가 아니라 정치·외교·사회·문화·스포츠 등 전반적 분야에서 세계 일류국가가 되는 국정지표다. ▲칠레 「La Tercera」 5일자 7면 전면 「지리적 장벽을 넘어」=62년 외교관계 수립후 칠레와 한국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태평양 시대 개막과 함께 협력의 시대로 들어섰다. ▲과테말라 「El Grafico」 5일자 8면 사설=과테말라에서 임가공업체들에 다소의 노동학대가 있는 것은 현실이며,임가공업체라면 한국을 연상시킨다.이러한 노동은 과테말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이러한 노동현장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한국사람과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나라 회사에서도 또 국내에 있는 다른 외국기업에서도 일어나는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과테말라 「Cronica」 5일자=지난 4월16일 김대통령은 클린턴대통령과 북한·중국과 4자회담이라는 유례없는 제안을 하여 불안한 휴전협정하의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를 협상할 목표를 세웠다.환경에 대한 비전이 없는 나라는 희망도 미래도 없는 나라라고 김대통령이 말한 것을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김대통령은 21세기 초입에 한국을 최고의 국가로 만들 지도자다. ▲브라질 「Correio Brazilense」 6일자 사설=아시아 호랑이들과 브라질은 갑작스럽게 무역연애를 하기 시작했다.한국은 브라질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김대통령의 방문은 양국간의 관계증진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언론보도 분석/“김 대통령 민주화의 큰틀 확립” 극찬/“「한강의 기적」 교육열서 나왔다” 평가/“한국을 배우자”… 언론들,축구보다 더 큰 관심 한국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김영삼 대통령의 중남미 5개국 방문을 계기로 이 지역의 언론이 최근 보도하는 내용을 분석해보면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고 민주화를 완성해가고 있는 나라로 인식돼가고 있다. 과테말라의 일간지 「Siglo 21」과 브라질 신문 「Correio Brazilense」는 「호랑이」라고,과테말라의 「La Republica」와 브라질의 「Revista National」은 「아시아의 용」이라고 우리나라를 지칭하고 있다.또 칠레의 「LaTercera」는 한국이 지난 25년간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대해 중남미 국가의 언론은 높은 교육열로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한데서 동력을 얻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과테말라의 「Prensa Livre」는 3일자 10면에 『한국이 경제기적을 이룬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역시 과테말라의 「Siglo 21」도 4일자 사설에서 한반도는 주요자원이 하나 없는 땅이지만,밥과 숭늉만 먹으면서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 세계 1등 경제국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중남미의 언론은 한국 기업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빚어지는 한국인 사용자와 현지인 노동자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과테말라의 「El Grafico」는 5일자 사설에서,페루의 「EL SOL」은 3일자 6면에서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한국인 관리자와 현지 직원간의 상호이해 증진 노력을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남미 지역의 언론은 김영삼 대통령 방한 직전에 열렸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과 실형선고를 우리나라 민주화의 척도로 인식하고 있다.과테말라의 「Prensa Livre」는 3일자 10면에 「비슷한 역사,다른 발전」이라는 기사를 통해 『김대통령의 방문 밑바닥에는 전직 대통령들의 형 선고라는 법적 절차가 절정에 이르는 드라마도 깔려있다』면서 『이런 훌륭한 나라를 배우는 것보다 더한 교훈은 없다』고 보도했다. 중남미 지역의 언론은 이와 함께 김영삼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페루의 「Caretas」는 5일자에서 김대통령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시절부터,90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3당 합당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과테말라 「Siglo 21」은 4일자 사설에서 『한국과 과테말라의 차이는 한국에 김영삼이라고 불리는,32년간의 군사정부를 종식시킨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역시 과테말라의 「Cronica」 5일자에 『의심할 여지 없이 김대통령은 21세기 초입에 한국을 최고의 국가로 만들 지도자』라고 칭송했다. 중남미 국가들이 다소 과분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양측간의 관계발전을 기대하는 희망이 담겨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우리가 지금까지 중남미 지역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은 잉카·마야문명을 이룩했던 대륙,그리고 축구의 대륙이라는 정도였을 것이다.그러나 중남미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준비하고 있는 지역이다.따라서 중남미 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한차원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 한·일 민간대화채널 위상 확고히/도쿄 제4차 「한일 포럼」 결산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구축 필요성 공감/무역역조 시정 방법론엔 양측 큰 시각차 제4차 한·일포럼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도쿄와 아오모리현에서 열렸다.이번 포럼은 개회식에 이어 ▲한국과 일본의 국내정세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과 한·일관계 ▲아시아·태평양에 있어서 한·일 경제관계 ▲한·일 협력의 확대 ▲한·일 문화관계 향상의 방안등 모두 5개 분야로 나누어 논의가 진행됐다. 한·일포럼은 기본적으로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솔직한 의견교환을 위한 것이다.배재시,오와다 히사시 양측 공동의장은 지적인 성실함과 건설적인 솔직함이 논의를 심화시켜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참석자들의 예방을 받은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60년대 첫 한국방문시 식민지 지배가 한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음을 느꼈다』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해 동감을 이끌어냈다.이케다 유키히코 일본외상은 개회식 강연에서 한국의 대북한 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을 솔직하게 지적하기도 했다.한·일간 공식적인 회합에서 견문하기 쉽지 않은 태도였다.또 토의에서도 참석자들은 상대방을 놀라게 할 만큼 자유로운 개인적 견해들을 밝히기도 했다. 아직 한·일간에는 복선과 오해의 벽,조심스러움 등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지만 포럼이 회를 거듭하면서 착실하게 대화의 광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양국의 국내정세◁ 한국측에서는 지난 총선결과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재판등에 대해 설명했다.일본 참석자들은 재판에 대한 한국민의 여론등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일본측 발표자는 일본이 혼돈과 혼미 그리고 불확실의 시대에 처해 있다는 자가진단을 제시했다.체제는 경직돼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리더십 부재에 기인한다고 비판한 이 발표자는 새로운 체제,정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동북아안보와 한·일관계◁ 일본 자위대의 방위력 증강등에 대한 한국측의 우려 섞인 발언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오히려 한·일간 적극적인 안보협력이 바람직하다는 과감한 「개인의견」이 제출돼 일본측을 놀라게 했다. 안보관계 토론에서 눈에 띈 것은 일본과 북한의 접촉에 대해 한국측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점.한국측은 과거 동서독 통일 전후의 일화 등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신중하게 대북접촉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경제·문화·국제무대에서의 협력관계◁ 한·일간 경제협력이 강화되면 안보협력으로도 연결돼 동북아지역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이 제시됐다.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는 한·일간 인식의 차이가 느껴졌다.한·일간 무역역조의 시정에 대해 일본측이 정부의 개입이 축소균형을 가져온다면서 시장의 원리에 맡기자고 주장한 반면,한국측은 「시장 실패의 가능성과 무역역조의 공공성」을 들어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측은 2000년 월드컵축구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위원회 구성을 제의했고 한국측도 동감을 표시했다.
  • “전씨 가족설득에 항소 결심”/변호인단이 밝힌 뒷얘기

    ◎소설 「대망」영향… 초기부터 포기 뜻 비쳐/“최 전 대통령 법정서 진실 밝혀야” 언급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항소 결심을 굳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족들이 항소 포기를 완강하게 만류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의 한 변호인은 5일 『전씨가 항소를 확정하게 된 주요 원인은 사형 확정을 두려워 한 가족들의 간청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부인 이순자씨 등 가족들은 당시 『본인의 명분도 중요하지만 가족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전직 대통령이지만 가족들에게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냐』고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선고 수개월 전부터 항소 포기 의사를 내비쳤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전씨는 1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게 되니 국론분열만 심해진다』며 『재판은 1심으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하지만 변호인단은 전씨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재판 초기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후 지난 7월 변호인단이 재판 진행에 불만을 품고사퇴한 뒤 본격적으로 항소심 준비에 들어가자 전씨는 『한번 잘 해보라』고 했고,변호인들은 항소 포기 의사는 없었던 일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1심선고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전씨는 변호인단에게 『소설 「대망」을 읽어보니 거기 나오는 무사들은 「의」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치더라』고 소개한 뒤 『전직 대통령으로서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는 등으로 항소포기의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 뒤 일부 언론에서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고 변호인단의 만류가 계속되자 전씨는 『내게 맡겨달라』며 잠시 발을 뺐다. 그러다가 3일만인 지난달 30일 가족들의 간청으로 항소를 결심하게 됐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전씨의 항소결심은 항간에 알려진대로 여러가지 이해득실을 저울질했다기 보다는 가족들의 설득 때문이었던 셈이다. 한편 1심선고가 끝난 뒤 전씨는 변호인단에게 『가만히 재판장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5·18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잘못 알고 있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12·12사건이야 시각에 따라 견해차가 있을 수 있지만 5·18 사건은 내가 개입한 부분이 없는데 어떻게 없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변호인단은 전했다. 전씨는 1심 재판 도중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채택 여부가 논란이 되자 『최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와서 진실을 밝혀야 나의 결백함이 밝혀진다』면서도 『전직 대통령 3명이 모두 한 법정에 나란히 서게 되면 나라 꼴이 뭐가 되겠냐』고 반문했다는 것이다.
  • “32년 군정 종식시킨 호랑이” 시글로지/과테말라 언론 반응

    ◎엘 그라피코지/김 대통령 방문 매우 획기적인 의미/양국민·국민간 협력과 우호관계 등 크게 기여할 듯 과테말라 유력언론들은 5일(한국시간) 김영삼 대통령의 과테말라 방문과 관련,일제히 사설을 싣고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두 나라간 경협등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시글로 베인티 우노지와 엘 그라피코지 등 현지 유력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김대통령의 방문을 『아주 획기적』이라고 평가하고 한·과테말라간에 「균등하고 우호적인 협력」이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시글로지는 4일(현지시간) 「우리나라에 와 있는 한 호랑이」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형선고와 세라노 전대통령의 풍요로운 파나마 망명생활을 대비한뒤 『한국과 과테말라의 차이는 한국에는 32년간의 군사정부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통해 법이 지배토록하고 면죄부를 누리는 인물을 종식시킨 김영삼이라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또 『중남미인,특히 중미인은 「아시아의 호랑이」들에게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한국이 발전한 원동력은 교육이며 우리 후진성의 원인은 문화적 후진성』이라면서 한국의 자본·기술과 과테말라의 자원의 「균등한 협력」을 촉구했다. 엘 그라피코지도 「한·과테말라 새로운 관계를 향해」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김대통령의 우리나라 방문은 아주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양국 국민간·국가간의 협력과 우호관계가 크게 돈독해질 것』이라고 적극 환영했다.
  • 「12­12 항소심」 재판부 결정 배경

    ◎모양새 고려 「TK 부장판사」 배제/수석부서 형사10부와 막판까지 저울질 3일 12·12 및 5·18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로 확정된 서울고법 형사1부(권성 부장판사)는 「최후의 심판관」이다.대법원은 법률 적용의 당·부를 판단하는 법률 심리를 위주로 하는 만큼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심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서울고법(한대현 원장)은 수석부인 형사10부(이용우 부장판사)와 형사1부를 놓고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다 형사1부로 낙점했다. 법조 주변에서는 선거사범전담 재판부여서 일이 많은 형사1부보다는 수석부가 적격이라는 평이 우세했다.수석부장인 이 부장판사(사시2회)가 고법부장으로는 유일하게 1심 재판장인 김영일 부장판사(사시5회)보다 선배라는 점도 지적됐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권 부장판사(55)가 재판장인 형사1부에 배당했다.권부장은 김영일 부장판사와 경기고·서울법대 동기동창이지만 사시8회로 김부장의 후배다. 권 부장판사가 낙점된 것은 수석부 이부장판사의 출신지역(경북 의성)을 고려했다는후문이다.전·노 피고인을 비롯,대부분의 피고인이 TK(대구·경북)출신이어서 「모양새」를 좋게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는 것이다. 충남 연기 출생의 권부장판사는 69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용된 뒤 서울지법 부장,사법연수원 교수,서울고법 부장 등을 역임했다. 방송위원회 재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등 대외활동도 비교적 활발하다.지난 93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가족들의 「신원권」이라는 개념을 도입,이목을 끌었다.최근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흥진 종로구청장에게 4언 절구의 한시로 선고유예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 국세청 조사국:5/조사의 거인들(테마가 있는 경제기행:36)

    ◎추경석 청장 「금융 추적기법」 도입/임채주 현 청장 음성·탈루소득 조사 업적 남겨/조사국장으로는 장병순·이근영씨 등 큰 족적 세무조사 지휘 라인은 국세청장→조사국장→지방청 조사국으로 이어진다.조세징수의 지휘탑인 국세청장의 세정방침은 조사의 방향과 강도를 결정하게 된다.조사국의 기능이 강화된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새로운 조사기법이 개발되고 조사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조사의 거인」들이 탄생한다. 5공의 개혁주체로 사회정화위원장 출신인 5대 안무혁 청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배경으로 세무조사권을 강력히 운용한 인물이다.전 서울청 국장 L씨는 『조사권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라고 했다.조사권을 남용했다는 지적도 받는 그는 조사국원을 직접 선발했다.국세청 직원들은 『장관들이나 정치권의 청탁을 물리칠 만큼 강직한 일면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7대 서영택 청장은 고시 13회로 22년만에 첫 내부승진한 청장.부동산 투기와 음성·불로소득 생활자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를 벌였다.「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서청장은 탈세자는 고발을 원칙으로하는 등 엄정한 세정을 폈다.대구 출신에 경북고·서울대를 나온 TK.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다. 8,9대를 연임한 추경석 청장(현 건설교통부 장관)은 첫 조사국장 출신 청장.83년2월부터 3년4개월동안의 최장수 조사국장을 지낸 그는 83년 명성그룹 탈세사건 당시 조사국장으로서 금융추적기법을 처음 도입,조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범양상선·영동개발진흥·포철·정래혁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쳐 조사가 이루어졌다.조사관계자들은 그가 『세무조사를 통해 국세청의 위상을 확립했다』고 말한다. 임채주 현 청장 역시 조사국장을 거쳤다.국장 재임시절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조사와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조사에 업적을 남겼다.2개월동안 2백여명을 투입,7백11개 재벌 계열사의 부동산을 조사하는 집념을 보인 인물. 조사국장은 본청과 6개 지방청의 6백여명의 조사요원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다.청장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사람이 발탁된다.『조사국장은 조직안에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국세청 김정복 총무과장) 『조사국장은 자신에게 엄격해야하고 소신과 판단력이 뛰어나야 한다.절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된다』(최병윤 전서울청 조사국장) 장병순 전국장은 5공 최대의 경제사건인 이철희·장영자사건을 파헤친 사람이다.사채업자를 대대적으로 사찰,지하경제 단속에도 공이 컸다.이근영 전국장(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범양상선 사건과 5공비리 세무조사를 무리없이 처리했다.업무추진력이 뛰어나고 상황판단이 빨라 안무혁청장에 의해 발탁됐다.국세심판소장·한국투자신탁사장을 역임. 허●도 전국장(작고)은 국토개발대출신으로 일 욕심이 많고 승부욕이 강했다.보스기질이 있는 마당발 스타일.박경상 전국장(현 성업공사사장)은 현대상선과 포항제철에 대한 세무조사를 담당했으며 부동산 투기단속에 공이 컸다. 조사국장은 발족 30년동안 20명이 자리를 거쳐갔다.주정중 현국장은 21대.서영철 초대국장과 이철성 2대국장은 두번이나 국장을 지냈다.이밖에 60년대 후반부터 80년 초까지 국장으로 재직한 나오연·엄빈·김동빈·권태호·권영로·한용석·송순·최기연씨 등은 초창기 조사국의 기틀을 다지고 경제개발을 위한 재정조달에 이바지했다.
  • 20억+알파설의 본과 말(사설)

    신한국당 강삼재 총장의 「20억+알파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문제삼아 국민회의가 여당을 겨냥해 총공세를 펴기로 하고 3일부터 장외투쟁에 나섰다고 한다.당면한 경제난국의 타개와 민생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할 공당이 이렇게 소모적인 정쟁을 격화시키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국민회의가 강총장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한 건 이 사건의 결말을 법에서 구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따라서 검찰측 조치가 못마땅하다면 항고를 하든지 해서 법적처리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 순리이지,정치문제화하는 건 그 의도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특히 검·경의 중립화를 추구한다는 정당이 검찰의 결정이 자기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정치공세의 대상으로 삼아 공박한다는 건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20억+알파」사건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20억원이다.알파설은 부차적인 문제다.그 문제와 관련하여 천착할 일은 왜 그런 돈이 노태우씨와 김대중씨 사이에 오갔으며 그런 행위는 과연 정당한가에 모아져야한다.특히 최근의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통치자금이라고 주장한 비자금을 뇌물로 규정한 판결은 「20억원」에 대해 보다 엄정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노씨가 사재를 털어서 내놓지 않은 이상 김대중씨가 받은 20억원은 뇌물로 수수한 부정한 돈에서 나온 게 틀림없을 것이다.재판부는 노씨에게 징역 22년6개월과 더불어 2천8백38억원 추징판결을 내렸다.그걸 상기한다면 지금 김대중씨가 해야 할 일은 국민 앞에 거듭 사과하고 20억원을 국가에 반납하는 일이 아닐까. 부정한 20억원문제에 대해선 침묵하고 알파설만 물고 늘어지는 건 균형을 잃은 처사다.뿐만 아니라 본질을 호도하려는 본말전도행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또한 호주에서 날아온 보도처럼 김대중씨가 20억원 수수에 대해 『그 당시로선 불가피했다』는 변명을 되풀이하는 것도 이 시점에서 적절치 않은 자세라고 본다.그 20억원의 원천이라고 할 비자금이 사법부의 판결에 의해 뇌물로 규정된 이상 그에 따른 새로운 자책과 자성을 보여야 옳을 것이다. 우리는 신한국당 강총장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검찰이 강총장을 김대중씨에 대한 명예훼손혐의로 기소하려면 20억+알파설이 사실이 아니어야 한다.그런데 열쇠를 쥔 노태우씨의 함구로 인해 그 진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으로 남아 있다.검찰이 명예훼손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그런 문제를 갖고 정치공세를 펴봤자 돌아올 건 불신뿐임을 국민회의는 깨달아야 한다.
  • 전·노씨 항소심 새달 7일 개정/서울고법 형사1부

    ◎매주 월요일 공판계속 서울고법(한대현 원장)은 3일 12·12및 5·18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의 항소심을 형사1부(재판장 권성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항소심 재판장인 권부장판사는 이와 관련,『빠르면 10월7일에 첫 공판을 연뒤 매주 월요일 공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이날 1심재판부로부터 수사기록과 공판속기록,등사본 등을 넘겨받고 검찰과 피고인이 항소이유서와 답변서를 제출하는대로 심리에 들어가기로 했다. 서울고검도 김각영 고검검사(전 서울지검 서부지청장)를 부장으로 하는 「특별공판부」를 구성,항소준비에 들어갔다. 서울지검 김상희 형사2부장 등 1심때의 공판참여 검사들도 고검검사 직무대리 등으로 발령,특별공판부에 배속했다.
  • 대학생 시위대중 가장 과격/민족해방군 어떤 조직인가

    ◎남총련 산하… 8백명으로 구성/부대별 중·소대장 등 군대식 편제/쇠파이프·화염병 사용 집중 훈련 「한총련」의 연세대사태는 광주·전남지역 학생들로 구성된 「남총련」(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의장 최태진·조선대 행정학과 4년)산하 전위 전투조직인 「민족해방군」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93년 5월 구성된 「민족해방군」은 광주·전남지역의 17개 대학 8백여명으로 조직돼 있다.군대식 편제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훈련으로 대학생 시위대 중 가장 과격한 단체로 「정평」이 나있다. 「민족해방군」은 각 대학마다 고유의 명칭을 지닌 단위부대로 나뉘어져 있다.전남대는 「오월대」,조선대는 「녹두대」,호남대는 「전사대」,광주대는 「한별대」,동신대는 「창의대」,교육대는 「백두대」,보건전문대는 「무명용사」,목포전문대는 「봉화대」등으로 불리고 있다. 일명 「사수대」라고도 불리는 이들 단체는 지난 95년 3월 이적단체로 판결을 받았다. 군 편제와 비슷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오월대」의 경우 「진달래」,「비호」,「주장」,「불꽃」 등 4개 중대로 나뉘어진다.소대원은 10∼30명 정도다.각 단위 부대에는 중대장,소대장이 있고 「전술개발담당」 「훈련담당」 「교육담당」 「홍보담당」이 따로 있다. 중대장은 시위 준비과정과 시위 현장의 작전을 지휘하고 소대장은 소대 규율과 소대원의 교양교육을 담당한다. 각 대학에서 신체가 건장하고 정신 무장이 잘된 학생들을 선발,저학년 때부터 쇠파이프 타격법과 화염병 사용법 등을 훈련시키고 사상학습을 별도로 한다. 사상학습은 수업이 끝난 뒤 빈 강의실에서 5∼7명 단위의 학습소조를 편성,김일성 주체사상 등을 교육하고 필답시험까지 치르며 성적이 나쁘면 탈락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지난 93년 1월 광주미문화원 시위에서 화염병 2백여개를 사용,문민정부 최초의 화염병 사용을 주도했고 같은 해 5월 「전두환·노태우 체포 결사대」를 구성,서울 연희동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94년 6월에는 전남 「송정리 열차 강제정차 사건」 및 「홍익대 경찰관 납치·폭행사건」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 「12·12」 「5·18」/검찰,피고인 15명 항소

    ◎전씨는 제외 「비자금」 사건관련자 항소 포기 검찰은 2일 12·12 및 5·18사건 피고인 16명중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피고인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 15명에 대해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에 대해 『전피고인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의 1심선고형량이 검찰 구형량에 비해 훨씬 낮은데다 박준병 피고인 등에 대해 무죄 또는 일부무죄를 선고한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의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검찰 구형량과 1심선고형량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모두에 대해 항소하지 않았다. 전·노씨 비자금사건과 관련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으로는 유일하게 이경훈 전 (주)대우대표가 항소했다.이피고인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12·12 및 5·18사건과 전·노씨 비자금사건 관련피고인 34명 가운데 항소한 피고인은 모두 26명이 됐다. 한편 1심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는 이날 항소장 접수가 완료됨에 따라 『공판기록·수사기록·법정촬영 비디오테이프 등 1심재판관련 자료 일체를 3일 상오10시를 기해 서울고등법원으로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 「12·12」 「5·18」 법정공방 2라운드로

    ◎검찰,항소이유와 재판전망/“구형량 절반 넘어” 재벌 피고인 항소안해/수사기록 오늘 서울고법에… 재판부는 곧 결정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세기적 재판」의 2라운드에서는 12·12 및 5·18 사건만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검찰이 2일 12·12 및 5·18사건과 전·노씨 비자금 사건 피고인 34명 가운데 전피고인을 제외한 12·12 및 5·18 관련자 15명만을 상대로 항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은 26명이 항소한 반면 검찰은 15명만을 대상으로 항소해 상대적으로 1심판결에 만족한 듯한 인상이다.전피고인은 검찰의 구형량대로 사형이 선고돼 항소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노피고인 등 나머지 12·12 및 5·18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 형량이 검찰의 구형량보다 훨씬 낮을 뿐 아니라 피고인들이 모두 항소해 맞대응하기 위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비자금 사건의 피고인 18명 모두에 대해서는 항소를 포기했다.삼성그룹 회장 이건희피고인 등 항소를 포기한 7명에 대해서는 물론 항소한 11명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항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포기 배경에 대해 『비록 집행유예이기는 하지만 징역형이 선고됐으며,형량도 검찰 구형량의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한마디로 양형부당의 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검찰의 항소포기는 『재벌 피고인 등에 대한 검찰의 처벌 의지가 사라졌다』는 시비거리를 제공할 소지도 있다.피고인만이 항소한 사건에서는 형사소송법 368조의 「불이익 변경의 금지」 조항에 따라 원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12·12 및 5·18사건과 관련, 『피고인들이 전원 항소했기 때문에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 선고형량이 1심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항소한 것과도 대조적이다.이에 따라 실형을 선고받은 재벌 피고인 등은 관례에 따라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조 주변에서는 이와 관련,『검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재벌을 봐주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더 짙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등 쌍방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형이 확정된 7명은 더이상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돼 「짐」을 벗게 됐다. 서울지법은 항소장 제출기간이 끝남에 따라 3일 항소심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수사자료 등 소송기록을 넘기기로 했으며,서울고법도 곧바로 항소심 재판부를 지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전·노씨 항소/어제 항소장 제출

    12·12 및 5·18사건 등으로 1심에서 사형과 징역 22년6월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31일 항소했다. 황영시·허화평·허삼수·유학성·장세동·차규헌·박종규·신윤희 피고인 등 8명도 함께 항소했다. 비자금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우중·최원석 피고인 등 10명도 30일까지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로써 12·12 및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 등에 관련된 34명 가운데 무죄와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피고인을 제외한 25명 전원이 항소했다.12·12 및 5·18사건으로는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 피고인을 빼고 15명이 항소했다. 검찰도 12·12 및 5·18사건 피고인 가운데 사형을 선고받은 전피고인을 제외한 15명에 대해 항소키로 하고 2일 항소장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비자금사건과 관련해 항소장을 제출한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모두 항소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황영시 피고인 등의 변호인인 전상석 변호사는 이날 상오 11시10분쯤 서울지법에 『1심 판결에 불복,항소한다』는 내용의 항소장을 냈다. 노태우 피고인의 변호인인 한영석 변호사도 사무장을 통해 상오11시쯤 항소장을 제출했다. 전상석 변호사는 이날 『한 때 전씨가 항소 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던 것은 검찰의 구형량과 1심 재판부의 선고형량에 강한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전직 대통령의 책무라고 생각해 항소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항소 여부는 변호인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전씨 본인이 직접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 “1심에서 못다한 말 2심서 한다”/전씨 항소결정 배경과 전망

    ◎의연한 모습 보여 여론 동정 유도 12·12 및 5·18사건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31일 항소함에 따라 「항소포기」의사 표명을 둘러싼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다.전씨와 공동 보조를 취할 것으로 예상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이날 항소장을 냈다. 그러나 최근 며칠간 여론의 표적이 됐던 전씨의 발언 및 번복 배경을 두고 말이 많다.물론 사형을 선고받은 전씨가 변호인단의 설득 등에 따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며 오락가락했을 수도 있다. 전씨의 항소는 선고일인 지난 26일까지만 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전씨는 물론 전씨의 「입」인 이양우 변호사 등이 줄곧 1심재판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진작부터 항소심 준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하루전인 25일 까지만 해도 이변호사는 『1심재판은 재판도 아니다』며 『항소이유서 작성도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27일 이변호사는 전씨가 항소포기 의사를 밝힌 것처럼 흘려 일대파란이 일었다.전씨가 『이런재판 해서 뭐하나』,『나하나 희생하면 국론분열을 피할 수 있을것 아니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30일부터 다시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31일 전씨의 항소장을 제출한 전상석 변호사는 『전씨가 1심결과에 강한 불만을 품고 항소를 강하게 거부해왔다』고 밝혔다.전씨의 이런 말은 1심재판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종전의 태도와는 달리,상당한 기대를 해온 것처럼 들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항소를 확정한 지금으로서는 전씨의 「고단수 언론 플레이」였다는 의견이 적지않다.좋지않은 여론속에서 예상대로 항소하기 보다는 「전씨가 정말 사형을…」이라는 상상을 이끌어 내 동정심을 유발하고 목숨까지도 버릴만큼 의연하고 정당하다는 여론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함께 법정에 섰던 옛 동료 가운데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전의원만을 제외하고 모두 항소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아무래도 12·12사건 등을 가장 잘알고 있는 전씨가 함께 법정에 서야 보다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항소를 포기하면 대외적으로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물론 유일한 항변의 장을 잃게 된다는 점도 고려했음직하다. 전씨는 지난 30일 이양우 변호사가 밝혔듯이 항소심에서는 12·12보다는 5·18사건에 전력을 기울일 전망이다.12·12사건에 대한 유죄 판정은 정치적 판단으로도 돌릴 수 있지만,광주학살의 발포명령 책임자로 낙인찍힌다면 앞으로 형량 감경이나 사면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씨측은 전씨가 5·18당시 정식지휘계통에 있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황영시·정호용 피고인이 1심에서 5·18과 관련한 내란목적살인혐의에 대해 무죄 판정을 받은 사실도 이들의 기대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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