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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정치권… 말말말

    99년 정치권을 맴돈 말은 정쟁(政爭)과 혼돈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독설과험담이 꼬리를 물었고,속내를 감춘 풍자와 은유가 난무했다.지난 한해 ‘말의 정치’를 결산한다. [대치정국] 정국현안을 둘러싼 여야간 설전(舌戰)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원색적 성토와 인신공격 속에 설화(舌禍)가 이어졌다. 연초 국회 529호사건으로 한나라당이 “배째라식 투쟁”(權哲賢의원)을 외치자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측이 529호실을 망치로 부수고 들어간 것을 빗대어 “망치국회가 대화정치를 실종시켰다”(鄭均桓의원)고 맞섰다. 정부 여당의 정책혼선이 이어지자 한나라당 김진재(金鎭載)의원은 “현 정권은 초보에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회창(李會昌)총재도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국민의 정부’에는 국민이 없다는 말이있다”고 가세했다. 여당은 야당의 방탄국회를 빗대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는 히트쳤지만 ‘서상목 구하기’는 관중이 넌더리내는 실패작”(국민회의鄭東泳 당시 대변인)이라고 공박했다. 한나라당이 영남권 등 장외집회를 계속하자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은 “상습적 가출벽을 버려라.나라는 죽고 고향만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여야간 신경전은 ‘빨치산 발언’으로 곪아 터졌다.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11월 부산집회에서 “현 정권의 덮어 씌우기는 전형적인 빨치산 수법”이라고 발언한 것은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정치행태를 드러낸대표적 사례다. 대통령이나 현 정권을 직접 겨냥한 발언도 쏟아졌다.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고(故)제정구(諸廷坵)의원은 ‘DJ암’에 걸려 세상을 뜬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내각제와 양당 합당] 김종필(金鍾泌)총리는 연초 “김 대통령과는 척하면 30척”이라며 내각제 논의에 불을 지폈으나 “타협은 패배가 아니다”고 해명하는 것으로 연내 개헌론에 종지부를 찍었다.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은“장수가 도망쳤으니 누가 성(城·내각제)을 지키랴”며 한탄했고 한나라당김철(金哲)의원은 “DJ의 습관적 위약(違約)과 JP의 습관적 미수가 빚어낸참사”라고 폄하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론은 “여자친구와 손목잡고 키스하다 마음이 맞으면 결혼하는 것 아니냐”(국민회의 李萬燮총재대행)는 말에서 보듯 한때현실화될 조짐을 보였다.그러나 “러시아 군대가 체첸공화국을 유린하고 있다”(자민련 姜昌熙의원)며 자민련 내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 총리는 “대통령과 합당의 ‘ㅎ’자도 꺼낸 적이 없다”며 합당 거부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자민련의 처지는 보쌈돼 갈 날만 기다리는 과부 신세”라고 양당간 신경전을 부채질했다. [전직대통령 설전] 지난 한해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현 정권을 원색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지난 4월 부산·경남 방문 당시 “김대중씨는 독재자”라고 주장한 김 전 대통령은 27일 전직대통령의 연말 만찬초청에도 “독재자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참석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거부했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이 지난 2월 “전직 대통령이 주막집 강아지식으로하면 안된다”고 김 전 대통령의 언행을 공격하자 김 전 대통령측은 “전씨는 골목강아지”라고 맞불을 놓았다.급기야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도 “(YS에게 정권을 넘겨준) 나는 색맹환자”라고 전직 대통령간 말싸움에 뛰어들었다. [각종 청문회] 환란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강경식(姜慶植)전 부총리는 “불끄러 들어간 소방수를 방화범으로 몰 수 있느냐”며 정책결정상의 오류는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진형구(秦炯九)전 대검부장의 폭탄주 실언으로 김태정(金泰政)전 법무장관이 경질되자 파업유도청문회에는 “진형구는 논개”라는 말이 나돌았다.진 전 부장은 “맥주가 약해서 양주를 타서 마셨다”며 나름대로 폭탄주론을 피력했다. “비올 때는 우산을 써라”(裵貞淑씨)는 말로 불거진 옷로비청문회는 “미안합니다,제가 몸이 아파서…”(延貞姬씨)라는 유행어를 남겼다.‘김봉남’(앙드레 김의 본명)이라는 이름 석자도 화제가 됐다.한나라당 김용수(金龍洙)부대변인은 “현 정권은 고위층 마나님들이 운명을 쥔 안방공화국”이라고논평했다. [기타] 정치권에 신진 인사를 기용하려는 여권 구상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젊은 피’가 화두가 됐다.자민련 김용환(金龍煥)의원은 “늙은 피는 안전하지만 젊은 피는 에이즈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며 검증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한나라당 장광근 부대변인은 “젊은 피를 수혈하기 전에 혈액형 검사부터 해야 한다”며 정체성 시비를 불렀다. 서경원(徐敬元)전 의원은 ‘DJ의 1만달러 수수’ 재수사 도중 “북한에서받은 돈은 공작금이 아닌 통일운동자금”이라고 말해 정가를 긴장시켰다. 후반기에는 국민회의 국창근(鞠^^根)의원이 한나라당 김영선(金映宣)의원에게 “싸가지 없는 X”이라고 폭언을 퍼붓었다가 설화를 톡톡히 치렀다. 박찬구기자 ckpark@
  • 헌법재판관 김영일씨 지명

    최종영(崔鍾泳)대법원장은 23일 오는 29일 퇴임하는 이재화(李在華)헌법재판관 후임으로 김영일(金榮一)법원장을 지명했다. 김내정자는 지난 96년 12·12,5·18사건 1심 재판장을 맡았으며 서울지법북부지원장,창원·부산지법원장을 거쳐 지난 10월부터 대법원 법원장급으로근무해 왔다. [김명승기자] * [프로필]강직한 성품에 치밀한 기록 검토,균형잡힌 심리진행으로 정평이 나 있다.일찍부터 ‘대법관감’으로 꼽혔으나 지난 10월 인사때 대법관에 오르지 못했다.96년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때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12·12 및 5·18 사건 1심 재판을 맡아 두 전직 대통령에게 각각사형과 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부인 이청자(李淸子·57)씨와 1남2녀.취미는 등산. ▲서울출신·59 ▲경기고·서울대 법대 ▲사시 5회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창원·부산지법원장
  • ‘金大中내란음모’ 진실 가려달라

    지난 80년 전두환(全斗煥)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로 몰려 유죄판결을 받았던 국민회의 이해찬(李海瓚)의원과 고 문익환(文益煥)목사의 부인 박용길(朴容吉)여사 등 25명이 23일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재심청구를 준비하기는 했지만 관련자 대부분이 재심을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의 대리인인 최재천(崔載千) 변호사는 “5·18 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과대법원 판결 등으로 5·18과 12·12사건이 헌정질서 파괴범죄로 규정된 만큼5·18에 맞섰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관련자들의 행위에 대한 법률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죄목별로는 고 문목사의 부인 박여사와 이문영(李文永),예춘호,김상현(金相賢),송기원,설훈(薛勳),이해찬,이석표씨 등 9명이 내란음모,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그러나 당시 사형을 선고받았던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빠졌다.김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 “통치권자로서사법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서남동 변호사의 아들 서영수,한승헌(韓勝憲),이해동(李海東),한완상(韓完相)씨 등 10명은 계엄법 위반,계엄법 위반 교사죄에 대해,김 대통령의 동생 대현씨와 장남 홍일씨,김옥두씨,한화갑씨 등 6명은 계엄법 위반과 계엄법위반 방조죄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전직 대통령 초청 27일 청와대 만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오는 27일 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과 박준규(朴浚圭) 국회의장,최종영(崔鍾泳) 대법원장,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 등 3부요인 및 김용준(金容俊) 헌법재판소장,이용훈(李容勳) 중앙선관위원장을 부부동반으로 초청,만찬을 함께한다. 청와대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은 20일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국민 대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회동 역시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은 불참한다.최·전·노 전대통령자택은 남궁수석이 예방했으나,김 전대통령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방문했다.김 전대통령이 과거 민추협 공동의장으로 있을 때 한실장이 대변인을 한 인연이 있긴 하지만,배려가 분명하다.김 전대통령은 일정을 이유로 불참의사를 전하면서 “대통령은 어려운 자리다.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최·전·노 전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 등 김대통령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협력을 다짐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 전직 대통령은 또 대통령 자리의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남궁수석은 전했다. 양승현기자
  • 글라이스틴·위컴 회고록 ‘알려지지 않은 역사’

    미국은 한국에게 무엇일까.박정희 전대통령의 서거와 12·12 군사쿠데타,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중앙M&B가 발간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록 ‘알려지지않은 역사’(황정일 옮김)와 이번주 출간될 존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의‘12·12와 미국의 딜레마’(김영희 옮김)는 당시의 비사(秘事)를 통해 한미양국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두 사람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던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한국에서 재임했던 인물.‘알려지지…’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카터행정부와 이에 반발한 박정희 대통령간의 갈등을 비롯해 미국의 대북 3자회담 요구,한국장성들의 전두환 제거 역쿠데타 기도 등의 사실을 공개한다.아울러미 행정부가 ‘북한카드’를 활용,김대중을 구명하려 했던 과정 등도 소상히밝힌다.올해 초 해제된 미 국무부의 당시 전문(電文)도 싣고 있다. ‘12·12와…’는 군부관련 동향을 자세히 소개한다.위컴은 12·12전 자신이 입수한 신군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한국 군부가믿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특히 신군부가 역 쿠데타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에 신경을 곤두세웠던일,전두환이 미국의 지지를 얻은양 언론플레이를 벌인 일 등을 상술한다.두회고록은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전두환의 정권장악과 광주학살에 대해 미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술회한다.외교관인 글라이스틴과 군인인 위컴이 같은 사안을 놓고 쓴 것이라,한반도정책 수립의 양대축인 미국무성과 국방성의 접근방식도 알 수 있다.각권 9,000원. 정기홍기자 hong@
  • ‘역대 대통령과 공직사회’

    역대 대통령이 바뀌면서 공직사회는 어떤 변화를 했을까.중앙대 행정학과김종미교수가 최근 이와 관련한 ‘역대 통치자의 법가(法家)적 특성에 관한연구’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치의 한 수단인 공무원 징계는 대통령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김교수는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은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만성적이었다면서 75년부터 추진된 서정쇄신운동으로 공직자의 태도를 개선하고 국민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73년부터 79년까지 징계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7만7,287명으로 연평균 1만1,041명이었다.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두배를 넘는 수치는 서정쇄신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전두환(全斗煥)대통령 때는 수출이 잘되던 시절이어서 수출과 관련한 공무원 비리가 많았으며,연평균 5,084명이 징계됐다.초반에는 6,681명으로 많았으나 말기에는 2,991명으로 감소한 점이 특징으로 지적됐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 시대를 맞아 고위공직자 비리는 수서지구 특혜분양사건 등에서 보듯 현저히 증가했으나 부패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되지 못했다.김교수는 “징계공무원은 연평균 4,057명으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적었다”며 “공무원 숙정보다는 교화의 수단이 선호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 당시의 징계공무원은 연평균 5,879명으로 박정희대통령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대통령마다 인사권 행사도 특성을 나타낸다.이승만대통령은 월남 피란민을의식해 이북출신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이대통령은 정권유지에 몰두하는바람에 경제엘리트의 단절현상이 생겼다고 김교수는 지적한다. 박정희대통령 시절에는 관료들의 임기가 비교적 길었고 지역갈등과 차별정책이 두드러진 시기로 평가됐다.하지만 유신체제 이후에는 용인술을 태만하게 운영했다.전두환대통령 당시에는 특정지역 출신들의 공직 점유가 심했으며 경제부처와 사정기관의 경우가 특히 심각했다. 노태우대통령 시절에는 잦은 경제팀의 교체로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급변했고 신뢰성을 잃었다.김영삼대통령은 가장 잦은 인사와 단명장관을 양산했다는 평가이다. 실정법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는 법가적인 측면에서 볼때 박정희대통령이 법가적 특성이 가장 높았으며 다음이 전두환,이승만,김영삼,노태우 대통령 순이었다고 김교수는 평가했다. 박정현기자 jhpark@
  • [김삼웅 칼럼] 신당은 김대통령 책임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이른바 ‘퇴진론’에 시달려 왔다.박정희 정권은 아예 ‘제거론’을 실천에 옮겨서 71년의 자동차 사고를 빙자한 살해기도에 이어 73년에는 도쿄납치 살해미수 사건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제거’가 안되자 전두환 정권은‘사법살인’을 기도하면서 군사법정을 통해 사형을 선고하였다.국내외 여론에 밀려 ‘집행’이 불가능해지면서부터 이른바 여론을 통한 ‘퇴진론’으로 선회하였다. DJ를 정계에서 제거하려는 부단한 움직임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났다.해외추방,투옥·가택연금,공민권 제한 등 실정법과 물리력을 동원하는 방법과 지식인·언론인을 통해 퇴진론을 펴 정계에서 추방하고자 들었다.이런 음모는상당기간 유효했다. ‘퇴진론’의 경우 DJ에게만 한정시키면 속보이는 까닭에 경우에 따라서는YS를,또 다른 경우에는 JP를 묶어서 양김 또는 3김청산론을 펴왔다.군사정권과 그 후계세력 또는 그들과 유착관계를 맺어온 언론·지식인들이 자신들의기득권 유지에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돼온 DJ의 집권을 한사코 막고자 제거론과 퇴진론을 되풀이해온 것이다.최근에는 이미 퇴진한 YS까지 묶어서 3김퇴진론을 펴는 웃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제거’음모에서도 DJ는집권에 성공했고 6·25전쟁 이래 최대국난이라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가경제를 다시 회복시켰다. 39억달러로 곤두박질 친 외환보유고를 1년반 동안에 700억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마이너스 5.8%이던 성장률을 9%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가·금리·환율·수출 등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경제관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정치와 인사관리의 난맥이라 하겠다.엄격한 검증이 없이 요직에앉힌 일부 구시대 인물들의 관행적 부패와 타락,권력을 즐기는 무사안일,그리고 개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거대 야당과 공동여당의 갈등과 정치력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오늘의 국정난맥을 가져왔다. 마침내 국정난맥과 구시대 정치의 관행을 단절시키고 21세기 뉴 밀레니엄일류국가를 지향하고자 신당 창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기존 정치권의 부패와 정쟁에시달려온 국민들은 정치권의 개혁과 변화를 기대한다.바뀌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과 관련하여 어김없이 DJ 2선 후퇴론이 전개된다.정치도의상 있기어려운 야당 총재가 성냥불을 켜고 일부 언론, 지식인 그리고 국민회의 인사들도 합세한다.물론 반DJ측과 친DJ측의 2선 후퇴론의 목적과 배경은 다르다. 친DJ측은 전국정당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건다.상당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자칫 명분과 실리를 다 잃게 될지 모른다.1선이든 2선이든 신당은 DJ가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이다.그런데 ‘아닌 것처럼’위장해야 한다는 것은 신당의 목적과 명분에 걸맞지 않다.또한 정당정치 구조에서 대통령이 집권당을 이끌지 못하면 책임정치는 물론 그 정당은 여당도 야당도 못되는 반신불수의 기형이다.그같은 기형적인 정당체제로 어떻게 국정을 이끌며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특히 지역주의 주술에 빠진 사람과 이를 선동하는 세력이 있는 상황에서는 DJ가일선에 서든 2선에 서든 마찬가지효과일 뿐이다.그렇다면 당당하게 전면에나서 2년의 업적을 평가받고 개혁의 중심에 서는 것이 떳떳하다.지난 92년 DJ가 떠난 민주당이 9인9색의 오합지중으로 무질서와 파벌싸움을 벌일 때 언론과 국민이 얼마나 지탄했던가를 돌이켜봐야 한다.더구나 지금은 집권당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와 기회의 과도기적 상황이고,여러가지 정치·사회적인 불안과 도전이 도사린 처지에서 향후 3년의 국정은 DJ 책임하에 이끌어가야 한다.이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책무이고 권리다.대통령책임제의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임기말의 대선관리라면 몰라도 임기 중반기에 대통령이 집권당을 이끌지 못한다면 레임덕 현상은 물론 정치혼란을 불러올 것은 불을보듯 뻔하다.DJ 2선 후퇴론이 음습한 제거론의 속편이든,그를 위한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정신이든 결코 용납되기 어렵다.DJ 책임하에 심판(현재)과 평가(후일)를 받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MBC 다큐 ‘20세기, 한국의 인물들’ 방송

    흘러간 시대를 정리하고 결산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아보는 것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것도 드물다. MBC가 20∼22일 밤11시 밀레니엄 특집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방송할 ‘20세기,한국의 인물들’편은 새 천년 목전에서 한국 현대사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을 총정리하면서 20세기 마지막 장을 덮는 기획. 이 프로는 ‘지도자와 혁명가들’(20일)‘여성’(21일)‘영웅과 우상’(22일)등 3분야에서 각각 20명을 선정,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와 사회전반에미친 그들의 영향력과 인물 면면을 소개한다. 인물 선정위원으로는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사장,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교수,전성철변호사,장명수 한국일보사장,여성운동가 오한숙희씨,박명진 서울대 신문학과교수,영화기획자 심재명씨 등과 MBC PD 및 일간지 기자,여기에 6,000여명의 네티즌이 참여해 교차선정으로 공정성 높이기를 시도했다. ‘지도자와 혁명가들’로는 김구 박정희 김대중 이병철 정주영 김일성 이승만 전태일 장준하 김수환 전두환 문익환 김영삼박헌영 여운형 김우중 박노해 김종필 안창호 유일한 조봉암 등의 순서로 선정됐다. ‘여성’편에서는 박경리 이태영 정경화 장명수 최승희 나혜석 권인숙 김활란 박순천 김옥길 장영신 이효재 박완서 최은희 구성애 임수경 천경자 육영수 전혜린 윤심덕 공옥진 등이 소개된다. 또 ‘영웅과 우상’에는 손기정 서태지 박찬호 조용필 박세리 백남준 황영조 차범근 김민기 안중근 이미자 정명훈 신성일 최진실 성철스님 김지하 안성기 김지미 유관순 이문열 조치훈 등이 올랐다. 손정숙기자 jssohn@
  • [외언내언] 사형 폐지론

    여야 국회의원 91명이 사형을 없애고 무기징역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자는사형폐지법안을 7일 국회에 제출했다.현재 106개 나라가 사형을 현실적으로폐지했으며 해마다 2,3개 나라가 사형을 폐지하는 추세로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국이)생명과 인권 존중의 새 문명을 지향하자”는 취지다.현재 전세계를 통틀어 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는 나라는 89개국이며,미국의 몇개 주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중동·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 군사독재국가나 저개발국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 법안이 이번 회기안에 법제화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여야 정책위의장들이 이 문제가 ‘매우 예민한 문제’임을 들어 광범한 여론수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사형폐지 운동을 벌여온사회단체들은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헌법재판소는 96년 11월 다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사형선고에 신중을 기하고,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됐을 때는 폐지해야 된다”고 판시했었다.그래서 필자는 헌재에 묻겠다.이미 사형제도를 폐지한 106개 나라들이 모두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라고 판단하는가.그런 사회는 역사적으로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을 모형으로 창조됐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일권리는 없다”는 특정 종교의 주장은 접어 두기로 하자.굳이 ‘사회계약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국민은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권한’까지 국가에 위임한 일이 없다”는 주장에 아무도 반론을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사형제도 옹호론자들은 흔히 ‘막가파’같은 흉악범마저도 살려둬야 하느냐고 주장한다.사실 인간의 심저(心底)에는 보복감정이 있다.그러나 이성을 통해 그같은 보복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문명이다.더구나 ‘흉악범을 가둬 놓고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경제주의적 항의론’은 검토할 가치도없다.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사형이 과연 휴악범죄의 억제에 효과가 있느냐’는 점이다.그동안의 연구 결과는 억제효과가 없다는 것으로 나와 있다.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할 또 하나의 근거는 오판(誤判)의 가능성이다.사람이 하는 재판에 오판이 없을 수 없고 오판에 의해 일단 사형이 집행되고나면 회복할 길이 없다.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이 정치권력이 사형제도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다.80년 전두환(全斗煥)신군부가 김대중(金大中)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사실이 있지 않은가.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장윤환 논설고문
  • 金대통령‘리더의 덕목’피력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지도자론을 피력했다.지도자의 진정한 리더십 덕목으로 국정방향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당대의 인기가 아니라 역사속의평가를 염두에 두는 자세 등을 꼽았다.또 역사에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 진시황제와 러시아 피터 대제,일본의 오다 노부나가 등을 들었다. 김대통령은 9일 일본 3대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쇼각칸(小學館) 편집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소개했다.쇼각칸은 ‘아시아의 지도자들’이라는단행본 시리즈 제1권으로 ‘김대중(金大中)의 한국’편을 오는 2000년 2월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은 김대통령 일대기를 비롯,한국의 경제,문화,역사,한·일관계 전망,21세기 한국 등을 소개한다. 김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등 자신을 박해한 사람들과의 화해와 사면,일본과의 관계 개선,대북햇볕정책 등을 적시하며 “옥중에서 권력을 얻으면 용서와 화해의 노력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김대통령은 세계의 평화와 분쟁 해결방안으로 분쟁을 국제사회가 공동으로저지할 수 있는 확고한 체제 발전과 빈곤문제 해결,서로 다른 문명간의 대화를 적시했다. 한국인의 장점에 대해서는 중국화되지 않은 독창성,해동불교,이퇴계의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조선유학 등을 예로 열거하면서 “지적 능력과 문화 창조력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퇴임후에는 동교동 자택에서 살겠다고 소개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오늘 DJT 연쇄회동 배경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간 6일 연쇄회동에서는 정국 현안인 합당문제,선거구제 개편방향,후임총리 인선문제 등이 깊숙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2개월여만에 이뤄지는 김대통령과 김총리의 회동에서는 연말로 예정된 김총리의 사퇴시기와 관련해서도 최종 의견조율이 있을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 ■선거구제 정국 최대현안으로,김대통령과 박태준총재간의 회동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김대통령은 야당의 반대로 중선거구제 관철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박총재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동시출마’ 방안을 수용해줄 것을 설득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중선거구제 관철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박총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주목된다.김총리는 소선거구제든,중선거구제든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합당 김대통령은 최근 ‘합당불가’쪽으로 돌아선 듯한 행보를 보이는 김총리의 진의를 확인하며 최종담판을 할 가능성이 높다.‘2여1야’구도로는양당 모두 내년 총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며,우회적으로 합당불가피론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지난 7월 김대통령-김총리 내외의 워커힐 회동때 ‘내각제 유보’라는 대타협이 이뤄진 전례로 볼때 이날 김대통령-김총리 내외의 만찬을겸한 회동에서도 합당과 관련한 돌파구가 마련되는게 아니냐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그러나 양당 공조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는 기본선에서 그칠 것이라는전망도 있다. ■총리 사퇴시기 및 개각 김대통령은 김총리가 연내 당복귀를 결심한 배경을 재차 확인하고 향후 국정운영에 협조를 구할 것으로 전망된다.김대통령은특히 김총리가 당으로 복귀함에 따라 개각요인이 발생하지만,현재의 일정상연말개각은 너무 촉박하다는 판단에 따라 신당 창당 준비가 끝나는 내년 1월까지 총리직 사퇴를 미뤄줄 것을 김총리에게 요청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이에 대해 김총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도 관심거리다. ■후임총리 인선 김대통령과 김총리는 공동정권의 상징인 후임총리 인선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조율할 것으로 전망된다.후임총리 0순위로 꼽히는 박총재가 총리직을 계속 고사하고 있어 의견조율 결과가 주목된다.박총재는 후임총리로 자민련 내부의 인사를 포함,제3의 인물을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일각에서는 ‘선거관리 내각’의 출범도 건의하고 있어 DJT 3자의 결정이 관심을끈다. 김성수기자 sskim@ * 김대통령 총리공관 가는 이유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내외가 6일 밤 삼청동 총리공관을 직접 방문,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부부와 만찬을 함께한다.김총리가 오는 7일부터 20일까지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를 순방함에 따라 이를 격려하고 좋은 성과를 당부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 등도 재임 당시 격려차 총리공관을 직접 찾은 적이 있다. 총리실측도 “대통령 관저와 총리공관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그동안 김대통령이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며 “이제라도 김대통령이 총리공관을방문하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 ‘외형적 배려’에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공동여당이 해결해야 할 선거구제 획정,합당문제 등 현안이 줄줄이걸려 있다는 점에서 이날 만찬 회동이 ‘대반전(大反轉)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정가의 지배적 관측이다.특히 공동정권의 대주주인 김총리가 ‘연내 총리직 사임,당복귀’를 천명한 터여서 그 의미가 어느때보다 크다.김대통령과 김총리는 지난 7월17일 워커힐 부부동반 회동에서도 ‘내각제 유보’를 전격 결정한 전례가 있어 그러한 분석이 더욱 힘을 얻고있는 형국이다. 김총리가 최근 보인 일련의 행보는 김대통령이 자신을 ‘홀대’하고 있는데 대한 ‘몽니’로도 해석되고 있는 상황이다.이번 김대통령 내외의 총리공관 만찬은 김총리에 대한 최대 예우로 볼 수 있다.신뢰와 믿음을 재확인하는자리인 것이다. 이 연장에서 김대통령은 만찬에서 정국현안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도 “두 분은 모든 현안을 충분히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45)노동시인 박노해

    1991년 8월19일 오후 3시,“박노해,그를 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 시키기위해 사형을 구형합니다”라는 검사의 구형 앞에서 방청석은 흐느낌이 번졌다.그러나 시인은 당당하게,그러나 서정성 넘치는 최후 진술을 해냈는데,이진술은 트로츠키를 연상할 만큼 감동적이다. “사형!사형입니까?이것이 노동자에 대한 당신들의 대답입니까?서러운 기름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인간다운 삶을 갈구해 온 한 노동자를 기어코사형 시켜야 되겠단 말입니까?결국 이 나라의 노동자에게는 두 개의 죽음 중 한가지를 선택할 자유밖에 없단 말입니까?임금 노예냐,사형이냐?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죽어가거나 아니면 당신들 손에 죽임을당하는 겁니까?지금까지 당신들은 이 나라 천만 노동자에게 폭력과 구속으로 대답해 왔습니다.박정희 정권은 나에게 폭행과 해고를 밥먹듯 자행했고,전두환 정권은 나를 수배자로 내몰았고,노태우 정권은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무려 24일간,576시간에 걸쳐 밤낮으로 고문하여 이 법정에 세우기까지,오로지 정치 보복과 정치 살인만을 준비해온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노동자가,박노해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당신들은 지금 이성을 잃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다 죽어 간다는 사회주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나는 사형을 결정한 당신들을 진심으로 동정합니다.가련한 것은 사형을 받은 내가 아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들입니다.얼마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부실하고 부도덕한 정권이기에 한 노동자의 진실한 주장 앞에서 이토록 두려움에 떨어야 한단 말입니까.…우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반드시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그러나 나에게 무죄를선고하는 것은 기적일 겁니다.참 어려울 것입니다.무죄라고 판정하기가 두렵거든 적어도 앞으로 10년 뒤에,2000년 1월1일,‘그때 우리 판결은 부끄럽지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살아 있으라,살아 있으라’)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법정은 박수가 터졌는데,시인은 “무기 징역형을 축하 받아야 하는 슬픈 나라,슬픈 시대”라며,“그래도 산다는건 소중한 것이다”고 고해한다.그리곤 “1992년 4월,봄비가 차갑게 내리던 날”그는경주 교도소로 이감되어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그의 최후진술이 예견했던 10년보다 3년이나 빠른 역사의 일대 변혁이었다. 변한 건 역사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이글거리던 반역의 눈빛,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혁명가의 얼굴은 어디로 갔느냐?마치 세속을떠난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인다”(‘오늘은 다르게’)는 그의 외모만 변한게 아니라 내면까지도 변했다.“당신은 아직도 사회주의자인가?”란 물음 앞에 그는 “예!” “아니오!”라고 답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축약해 풀이해 준다.박시인에 따르면 사회주의에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첫째는 ‘체제로서의사회주의’인데,“나는 이러한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반대한다”고 단언한다.둘째는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있는데,“그 방법론은 생산 수단의국유화와 계획 경제,프롤레타리아 독재,집단주의,민중항쟁노선으로 귀결됨으로써 위함한 독소를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마지막 셋째 ‘가치로서의사회주의’는 “인류의 소중한 가치로 계승해야 할 요소”로 긍정한다면서,위의 두가지는 부정하고 마지막 한가지만 긍정하기에 그 대답은 ‘예’와 ‘아니오’의 갈림길이라고 밝혔다(‘흑과 백 사이에서’). 어떤 연유건 박노해의 역정은 노동시인에서 혁명가를 거쳐 이제 3단계인 지식인 시인이 된 셈이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발언대] 80년대 당한 고문에 아직도 후유증 시달려

    요즘 신문기사를 보면 고문얘기가 많이 나온다.나는 5·18때와 구로구청사건때 별 일이 아닌데도 지나친 고문을 받고 한쪽 눈을 실명했다.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내 경우는 그래도 덜한 것 같다.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렇게 고문을 했는데 서경원씨나 김근태씨 그리고 간첩사건에 연루되었던사람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지난 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가담했다며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모진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당시 평범한 공무원(익산시청 도시과 근무)이었던 나는 우연히 입수한 광주관련 유인물때문에 그해 7월30일 중앙정보부전주분실에 끌려갔다.그곳을 시작으로 전주 도경찰국 대공분실과 전주헌병대,광주 상무대 보안사 등 여러 관계 기관을 거치면서 직장을 잃고 처절한 인격파괴까지 감내해야 했다.1주일간 발가벗겨진 채 받은 구타는 고문의 시작에 불과했다.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당시 그들은 간첩혐의를 씌우기 위해 월북(越北)을 허위자백하라며 세뇌를 거듭했다.반복 질문에기계적인 대답이 되풀이될수록 ‘내가 월북했었구나’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같은해 9월 광주 상무대로 이첩됐을 때 전주MBC에선 “황씨는 고정간첩”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광주에서의 고문은 대검으로 허벅지 찌르기까지 가해졌다.며칠동안 기절과고문이 반복됐다.결국 극심한 고문에 우측 안구망막이 파손되었으나 치료를받지 못해 시력을 잃어야 했다.간첩혐의는 씌워지지 않고 북한을 이롭게 했다며 국가보안법 7조2항 및 계엄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러야했다.출소후에 서울로 상경,본격적인 재야운동에 뛰어들었다.하지만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부정선거를 항의했다는 이유로 조직깡패에게 얻어맞고 구로구청에서 연행돼 조사과정에서 머리털이 뽑히는 등 또 다른 고초를 겪었다. 이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무겁고 어두웠던 시대는 갔다.그러나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아직도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내게는 무서운 악마들이다.시류를 거부하고 외길만을 고집한 인생이지만 내게 남아있는 것은 ‘야성 강한 운동권출신’이라는 꼬리표뿐이다.내가 아직도 창살 없는 감옥에사는 느낌이 드는 것은,고문이라는 인간정신을 말살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더러운 행위에 대항해 싸워보지 못한 분노로부터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일것이다.그리고 ‘운동권 출신’이라고 못박으며 접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사회에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세연[도서출판 청사 대표]
  • ‘통일로 가는길’ 집중 조명/단행본 남과 북 하나가 되는길 발행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길은 어느 길일까.가시밭길일까.햇볕이 내려쪼이는 봄길일까.어느 길을 택해야 할까.그 길을 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대한매일신보사는 공익정론지로의 새출발 1주년이자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우리민족의 최대 숙원인 통일문제에 관한 국민적 이해와 역량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남과 북 하나가 되는 길’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해당분야의 권위있는 필자 5명이 분야별로 각각 나눠 쓴 이 책은 통일문제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아울러 대북 포용정책이갖는 시대적 당위성과 효과를 조명하고,국가적 통일과제와 국민적 통합과 역할에 대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 전문가는 물론,일반인들도 나름대로 견해를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국민의 정부’ 대북포용정책 양영식 통일부 차관은 대북 포용정책(햇볕정책)의 배경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햇볕정책을 둘러싼 시비를 말끔히 씻어내고 있다.양 차관은 “종전의 통일정책이 통일 중심이라면 햇볕정책은 평화 중심”이라고 강조한다.정부는 이에 맞춰 대북정책의 원칙을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 등 세가지로 압축한다.이는 구체적으로는 ▲무력도발불용납 ▲흡수통일 배제 ▲화해협력 촉진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금강산 관광,남북경협 활성화,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증진,이산가족 문제의 거론,탈북동포 보호,대화재개 노력,북핵문제 해결및 경수로 사업,냉전구조 해체 등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이종석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지구상마지막 남은 냉전의 현장인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이를위해 분단의 안정적 관리, 호혜적 남북관계 정립과 이질성 극복,국제협력과국가이익의 조화,통일문제의 국내정치적 이용금지,공존의 문화형성 등을 냉전구조 해체의 구체적 대안으로 내놓는다. ◆통일 대비를 위한 당면과제 장청수 본사 논설위원은 통일의 선행요건으로▲통일역량결집 ▲분단책임국의 결자해지(結者解之) 노력을 강조하면서 남북한 각각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우선 북한의 경우 개혁 개방의 길로나설 것을 요구하고 냉전적 대남정책과 대결적 군사정책의 포기,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이산가족문제 해결,경제교류 활성화 등을 촉구한다.우리측에도대북 정책의 일관성있는 추진을 위해 대북 정책의 국민적 합의 강화,균형있는 대북관 정립,안보역량 강화,통일문제의 초당적인 협력,통일문화의 구축,사회통합 준비,통일교육 강화 노력을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정책사 김삼웅 본사 주필은 김 대통령의 통일철학이30여년전부터 평화중심이었음을 역설한다.이에 근거해 1연합 2독립정부,1연방 2지역 자치정부,1국가 1정부 등 3단계 통일론이 도출됐다고 설명한다.이통일론은 말로만의 통일정책이 아닌 실사구시적 통일방안이라고 평가한다.즉현란한 구호로 통일을 외치기보다 현실성있는 정책을 추진하며 인고의 노력이 겯들여질 때 한반도가 실질적인 평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설파한다. ◆통일정책의 변천과정 민병천 서경대 총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의 통일 정책을 통사적으로 훑어보고 통일정책의 변화상에 관한이해를 돕는다.‘언제라도 불쑥 다가올 수 있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책은 이 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값 1만원. 박재범기자 jaebum@
  • [대한시론] 金大中 대통령의 체질

    DJ가 대선에 이긴 직후 어떤 이가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의학(四象醫學)에따라 대통령 당선자의 체질을 태양인(太陽人)으로 분류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그런데 금주의 한 주간지는 대통령의 체질을 태음인(太陰人),YS를 소양인(少陽人)으로 보고 있다.이어서 DJ와 YS는 체질상 앙숙관계를 맺을 수밖에없다고 결론짓고 있다.YS가 소양인이라는 데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만,DJ에대해서는 이렇듯 이견을 보인다. 태양,소양,태음,소음 등 네 범주의 체질분류법은 개인의 타고난 능력과 성향을 잘 드러내 주는 측면이 있어 오늘날은 리더십 연구와 관련하여 정치학의 관심거리가 되기도 한다.네 범주의 단순성과 예외적인 중간체질 인물들의 분류 불가능성 때문에 이 분류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하지만 이 단순성과 애매성의 약점은 전 인류를 남녀의 두 범주로 분류하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라서 이의는 쉽게 반박될 수 있을 듯하다. 엄밀히 말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태양인도 아니고 태음인도 아니다.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태양인이라면 상체가 발달하고 눈에 광채가 나는 반면,하체는 약하여 걷거나 앉아 있기를 싫어하고 틈만 나면 누워 지내거나 기대 앉기를 좋아해야 맞을 것이다.성향은 타협과 후퇴를 모르고 자부심이 강하고 독선적이어야 한다.또한 자연과 사회의 운행,즉 천시(天時)에 대한 예지력이 뛰어나야 맞다. 그러나 반대로 김대통령은 소싯적에 ‘오리궁둥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만큼 하체가 잘 발달되어 있고 눈에 광채를 볼 수 없다.또 대통령의 앉은 자세는 언제나 단정하다.대통령의 성향은 사륙신(死六臣)이나 최익현처럼 탄압과 그릇된 천시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원칙을 지키지만,동시에 다른 주장과이익에 대해서는 협상과 타협에도 능하여 독선과 거리가 멀다.또 DJ가 대선에서 여러번 낙선한 점에서 ‘천시에 대한 예지력’은 운위할 수 없다.따라서 김대통령은 결코 태양인이 아니다. 또한 김대통령은 태음인도 아니다.태음인은 너그럽고 부드럽고 점잖고 과묵한 반면,이따금 옹졸해져 심한 우김질에 빠진다.또 통상 우유부단하지만 어쩌다 한번 결심하면 어떻게든 ‘밀어붙이려는’뚝심이 있다.그러나 대통령은 너그럽기보다는 깔끔한 한편,우유부단하지 않고 판단과 결정이 분명하다. 또 과묵한 것이 아니라 대화를 즐기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수줍어하고 만사에 세심하다.뚝심은 없다.이런 점들을 다 고려할 때 대통령은 소음인(少陰人)이다. 세회(世會),즉 여론의 흐름과 유행에 밝고 늘 과감하고 명랑한 속에서도 자주 노기를 띠는 김영삼·전두환 전대통령은 소양인,점잖고 과묵하고 결정에느리되 뚝심있는 박정희·노태우 전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태음인이다.태음인과 소양인은 성격상의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이 오랜 친구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반해 소음인과 소양인은 둘 다 결정이 빠르고 분명하나 그 결정의 내용이 자주 정반대이기 때문에 빈번히 대립한다.DJ와 YS의 갈등은 이 체질관계에도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주간지의 주장은 이중적 오류를 범한 셈이다.우선 태음인과 소양인은 앙숙이 아니라 서로 보완관계이고 DJ는태음인이 아니라 소음인이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체질과 개혁적 리더십의 관련성이다.소양인은 용감하나용두사미로 끝나는 성격이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들의 음모와 저항에 맞서 ‘크고 작은 싸움’을 끈질기게 계속해 나가야 하는 ‘개혁’에 부적격이다.이에 반해 소음인은 천시에도 굴하지 않는 끈질긴 원칙주의자이다.소음인의 체질적 장점은 탄압과 은밀한 저항에 직면해도 지치지 않고 끈기있게 거듭거듭 원칙을 적용한다는 점이다.따라서 소음인은 ‘개혁’에는 적합한 리더십을발휘할 수 있다.개혁과 관련하여 우리가 믿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바로 이런 체질이다. [黃台淵 동국대 교수·정치학]
  • ‘권언유착과 언론윤리’토론회 주제발표 요지

    언론개혁시민연대(상임대표 김중배)와 한국기자협회(회장 조성부)는 3일 오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권언유착과 언론윤리’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토론회에서는 인제대 김창룡(신문방송학)교수와 성공회대 김서중(신문방송학)교수가 각각 ‘권력과 언론의 유착에 관한 소고’와 ‘언론윤리의 실종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두 교수의 발제문을 발췌,요약한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에 관한 소고 국정조사로까지 비화된 ‘언론대책 보고서’의 작성자와 그것을 권력층에 몰래 전달한 장본인 모두 기자들로 밝혀진이번 사건은 현 시점에서 한국언론의 권력과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한국언론은 윤리적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언론은 이 사건도 기자 개인의 일로 치부시키거나 정치권의 장난정도로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언론이 권력과 유착함으로써 자기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한국 정치사에서 특정 시기에 언론인들이 권력층으로 직업을 이동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나타났기 때문이다. 60,70년대의 권언유착은 국가권력이 언론을 선전정책의 일환으로 포섭해서통치도구로 활용하는 형태로 나타났다.언론사나 경영주들은 자신들의 이해를위해, 기자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정치권력에 협조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언론자본의 성장과 기자집단의 권력으로의 대거 진출 현상은 언론의 권력기구화로 전환하는 과정이 된다.90년대초 김영삼 정권의 등장과 함께 언론사주요간부들의 정계진출 역시 전통처럼 이어졌다. 권언유착이 발전해 언론은 스스로 권력기구가 된 형세다.한국언론은 곧 ‘선출되지 않은 장기집권의 간부’로 행세하고 있다.언론이 오늘날 이렇게 권력기구화 된 이유는 언론사 내부적 감시·견제환경의 피폐화,언론에 대한 외부환경의 통제 불가능,언론에 대한 법적인 견제와 감시 부재,권언유착에 따른 국민의 요구 외면과 정당한 ‘알권리’ 묵살 등에 대한 청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언유착 결과는 그 대상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릴 만큼 대조적으로 나타났다.권·언유착에 성공한 언론사는 세제나 행정상 특혜로 경제적 이익이 주어졌고,언론인에게는 권력에로의 길이 보장됐다.이는 지난 80년 ‘전두환장군’우상화,‘평화의 댐’ 왜곡·과장보도,‘삼청교육대 사건’미화 등 권언유착이 남긴 역사적 오보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한국의 권언유착적 언론풍토에서 윤리성을 회복하라는 요구는 공허하다.이제는 언론사,학계,시민단체·기자협회 등이 머리를 맞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첫번째 장치로 ‘현직 언론인의 정치권진입 일정기간 유예제’를들수 있다.또 언론사 조직의 기강을 확립해 부패한 언론인이나 권력결탁형언론인에 대해 엄중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덧붙여 언론인들이 권언유착으로몰리지 않도록 기자의 미래에 대한 신분보장책도 있어야 할 것이다. [김창룡 인제대교수·신문방송학]■언론윤리의 실종과 개선 방안 언론은 보도와 해설,논평을 통해 사회현상의 전달과 지도 기능을 맡고 있으며,정치권력을 비롯해 사회 제 세력을 비판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는 특수성때문에 언론인은 더욱 강고한 직업윤리를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우리언론도 ‘한국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 등 윤리요강들을 정해서 언론인의 직업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그러나 ‘언론대책 문건’ 파동에서 보았듯이 언론인들이 스스로 만든 윤리강령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다.이번 사태에서 보인 현직기자들의 행위는 정치권과 밀착한 언론인의 파행적인 행태라는 점에서 권언유착의 한 형태로 볼수가 있다. 하지만 더 명백한 것은 이들의 행위가 언론인으로서 직업윤리에어긋나는 비윤리적 행위였다는 점이다. 문일현기자는 아직도 평소 친분이 있던 이종찬 부총재(국민회의)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행위는 언론인으로서 언론개혁에 관해 비공식적 활동을 해왔고 문건이 언론개혁에 관한 문건이기보다는다른 목적(총선대비)을 위해 언론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특정신문사에 대한 비공식적 압박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다.이도준기자는 사건 발생 이후 자신의 행동을 밝히는 발언이 계속 바뀌고 있는 점도 떳떳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물건의 취득과정이 절도의 방식이며 이를 언론보도에 활용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치부에 사용했다는 점에서비윤리적이다.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한국신문윤리강령’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언론도 각종 언론윤리강령을 제정·공포해왔지만 언론인의 비윤리적행위는 그치지 않았다.이번 사건의 경우도 개인적 선택을 넘어 언론계의 잘못된 관행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윤리강령의 문제도 다시 고찰해야할 것이다. 그동안 언론계 활동을 근거로 자신의 영달을 취하거나 정치적으로,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에 대한 금지조항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론인이 전문직 종사자로 윤리를 만들어내고 준수하려면 전문직으로서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때 가능하다.따라서 언론인으로독립적이고 공정하게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대주주의 소유지분 한계를 20%로 제한하는 등 사실상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한 신문사를 정상화(공공화)해야 한다.또한 편집권을 법적으로 보장해 편집위원회 구성과 편집규약의 제정을 의무화하는 법적정비가 필요하다. 이로써 언론인들이 진정한 언론인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교수·신문방송학]정리 김미경기자 chaplin7@
  • [대한포럼] 全斗煥씨의 金正日면담 추진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金正日)총비서와 면담을 갖겠다며 지난 7월 정부쪽에 협조를 구했으나,정부는 당시가 ‘서해교전’사태 직후라서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며 전씨의 방북을 만류했다고한다. 정부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시기론’이지만 남북문제에 전씨가 나서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정부의 뜻이 읽혀진다.전씨가 남북문제에 나서는 것을 뜨악하게 보는 것은 비단 정부의 시각만은 아닐 듯하다.전두환 전대통령이 ‘대북 특사’를 맡고 싶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혔을 때,많은 국민들은 워낙 활달하고 행동적인 전씨의 기질(氣質)쯤으로 생각했었다. ‘북한과의 秘線’이 문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같다.전씨가 김정일 총비서에게 보내려했다는 서한의 요지를 보면,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의지가 무척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물론 전씨는 ‘국민의 한 사람,자유민의 한 사람’으로,적법하게 북한을 방문해서 김총비서와 만날 수 있다.‘남북교류와 협력에 관한 법률’이 모든 국민에게적법 절차에 따른 방북을 보장하고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12·12 군사반란’과 ‘5·17 국헌문란’을 통해 8년 넘게 국정의 조타수를 자임(自任)했던 전직 대통령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83년 10월 미얀마의 수도 랭군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저지른 ‘아웅산 테러’의 참극에도 불구하고,남북밀사 교환을 통해 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을 일부 성사시킨 ‘업적’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전두환 전대통령의 방북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그는 김비서에게 보내려 했던 서한에서 북한 김일성(金日成)주석 생존시 남북간에 밀사를 보내 “남북이 무력사용을 포기하고 상호 불가침선언을 해야한다”는 데 합의했음을 강조하고 있다.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치고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 충돌(전쟁)을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전씨는 남북간의 오해와 불신을 완화하기 위해 대화 창구의 확대를 강조하면서 다양한 비정규대화선(對話線)의 가동을 제의했다. 문제는 이 점에 있다.최규하(崔圭夏)씨를 포함해서 대통령을지낸 전직(前職)이 네 사람이나 있다.13대 대통령을 한 노태우(盧泰愚)씨는 북방외교로 한반도의 평화분위기 조성에 기여한 바 있고,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泳三)씨 또한 94년 8월 북한 김일성주석과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했다가 그해 7월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된 바 있다.노태우씨나 김영삼씨도 필경 비정규적인 대북 대화선(對話線)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노씨나 김씨가 남북문제 해결에 국정 원로의 ‘사명감’을 내세우며 저마다 실정법에 따라 비선(秘線)을 재가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남북문제에 혼란만 가져올 뿐이다. 아무나 ‘카터’가 되는 건 아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열린 자세’를 견지하되 서두르지 않고 여건의 성숙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북한의 최고실권자와 남한의 전직이 만나 어떤 본질적인 합의를 이뤄낼 수 있겠는가.현실적으로도 남북 최고 책임자들이 만나 합의한 사안만이 그나마 남북간에 구속력을 지닐 가능성이 있다.남북정상끼리의 회담은 ‘현직’의 권한이자 책임이라는 뜻이다. 전씨는 94년 북한을 방문해서 남북정상회담개최 ‘합의’를 이끌어 냈던 카터 전대통령에 비춰,미국의 전직이 해낸 일을 한국의 전직이 못할 게 있느냐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제임스 얼 카터’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yhc@ 張 潤 煥 논설고문
  • 朴전대통령 20주기 4,000여명 추모행렬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서거 20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김수환(金壽煥)추기경,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을 비롯,일반 참배객 4,000여명이 몰렸다. 특히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제외하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3명이 참석,고인을 추모해 눈길을 모았다.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자민련 박철언(朴哲彦)·박구일(朴九溢)·이건개(李健介)의원,한나라당 양정규(梁正圭)의원 등 여야 의원 4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김총리는 길전식(吉典植) 민족중흥회 부회장이 대신 읽은 인사말을 통해 “어른께서 씨뿌려 가꾸신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열매가 이제 하나둘씩 결실되어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좌표가 세계 속에 우뚝 선 것을 생각하니 어른의높은 경륜과 선견지명에 새삼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대통령의 맏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 동생 서영(書永)·지만(志晩)씨와 함께 참석,“올해는 선친의 기념사업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첫 걸음을 내디딘 뜻깊은 해”라면서 “기념사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전두환 전대통령 7월 방북추진

    정부는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이 지난 7월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방북의사를 타진해 왔으나 이를 만류했다고 25일 밝혔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전 전대통령이 지난 7월 안현태(安賢泰) 전 대통령경호실장을 통해 방북 희망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의사를서한으로 전달해왔다”며 “정부는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서해교전 직후여서 시기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좋겠다는 입장을 전 전대통령측에 전했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 (하) 인물평가의 두 시각

    -유신시절 고초 설훈의원 유신 시절 여러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국민회의 설훈(薛勳)의원은 아무래도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이다.‘박통(朴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의 이미지’라고 말했다.다음은 설 의원과의 일문일답.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민주주의 개념의 부재(不在)를 들 수있다.유신독재는 우리의 민주주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민주주의는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연계되어있다.막대한 악영향이 아닐 수 없다. ?고도 경제성장을 가져온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도 많은데 공은 인정한다.그러나 IMF국난의 뿌리인 재벌경제 성장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으로 성장에만 집중,‘IMF국난’을 잉태시켰다.‘IMF국난’이 재벌경제의 폐해가 극치에 달해 발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 않는가.분배의 원칙에도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의 경제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다.그본질은 과(過)는 작아지고 공(功)은 커진 느낌이 짙다.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70년대 이후 세대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50·60대들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독재를 비판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또 그 뒤를 이은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등의 독재 횡포가 더 극심했다.결국 단점은 약하게 인식되어지고,공로는 돋보이게 됐다.박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착근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부분도 객관적이고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추모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면이 있다면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국민은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쌓여 있었다.‘엽전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신감을불어넣어 주었다.수출 증진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인정할 만하다.주현진기자 jhj@ -맏딸 박근혜의원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맏딸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25일 “아버지는 가난의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공산주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생각하신 분이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10·26 20주기를 맞은 소감은 돌아가신 아버지 시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재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관이 건립되는 시점에 20주기를 맞아 감회가 깊다. ?10·26을 평가해달라 10·26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문턱에서 꿈이 좌절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어떻게 보나 장기 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장기 집권은 생각지도 않았고 물러날 계획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다.독재라는 용어는 부정부패와 연결되고 권력을 개인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위해 썼다는뜻인데 아버지의 경우 개인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계획은 무엇이었나 아담한 산을 마련,나무를 가꾸면서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큰 업적을 든다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킨 것과 가난을물리친 것이다.또 국민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들고 싶다. ?현정권 들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지 과거 정권의 매도가 심했다.정권적인 차원에서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다.국민이 IMF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재평가한 것이다.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여권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을 어찌 보나 정치적 차원에서 총선을 겨냥해서는 안된다.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는 차원이어야 한다.잘하는 일이지만 한편에서 선친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최광숙기자 bori@ -3共 주요인사 현주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3공화국 당시 각료와 집권당의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타계했거나 일선에서 은퇴했다.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丁一權)씨는 94년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다.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朴鐘圭) 당시 청와대경호실장도 85년 고인이 됐다.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자랑했던 이후락(李厚洛)전 중앙정보부장은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서 지내다 최근 서울에 올라와 칩거하고 있다.이씨는 민족중흥회 고문을 맡고 있지만 건강이 나빠져 바깥 나들이는 거의 안하고 있다. 신현확(申鉉碻)전 경제부총리는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다.신씨는 광화문의 한·일협력위원회와 무교동의박정희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일주일에 3∼4차례 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안하고 있다.79년 10월27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눈물을쏟으며 처음 공식 발표했던 김성진(金聖鎭) 당시 문공장관은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김씨는 5년 전 ‘박정희시대’라는 추모집도 발간했다. 69년부터 무려 9년3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했던 김정렴(金正濂) 당시 비서실장도 현재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다. 남덕우(南悳祐) 당시 경제부총리는 산학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거의 매일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한다.공화당 의장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의 백남억(白南檍)씨는 자동차보험 회장을 거쳐 지금은 민족중흥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3공에서 공화당 원내총무·대변인을 지낸 김재순(金在淳)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월간 ‘샘터’ 발행인이다.61년 5·16때 민간인으로 참여,5선 의원을 지낸 김용태(金龍泰)씨는 동서문화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중이다. 대통령공보수석,문공장관을 거친 윤주영(尹胄榮)씨는 20년 넘게 전문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윤씨는 공화당 사무국 출신 모임인 은행나무동우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검찰총장,법무장관,중정부장,대통령 법률담당특보를 지낸신직수(申直秀)씨는 81년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활동을 안한다. 이밖에 김재춘(金在春)전 중정부장은 5·16민족상 이사장,길전식(吉典植)전 공화당 사무총장은 민족중흥회 상임부회장이다.10·26 당시 궁정동 술자리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계원(金桂元)전 비서실장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기념사업과 10·26행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것처럼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난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비민주적인 권력자의 일방적인 업적 위주 홍보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념관 건립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에서 추진하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에 기념사업비 지원을 위한 100억원을 책정,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후보지로는 서울 근교와 구미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건립 기본계획이 결정되지 않았다.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뒤 내년 초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기념관 건립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기념회측은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있는 그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줘 후손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20주년을 맞아 각종 추모행사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2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을 담은서적 ‘우리도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총재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과 구여권 인사,그리고 일반시민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26일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리는박정희 전 대통령 20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수기자 sskim@ - 재조사 전망@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 및 유신체제하에서 수많은 의혹사건들이 발생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건들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 75년 발생한 장준하씨 의문사는 유신체제에서 일어난 대표적 의혹사건이다.그후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당시유신독재 반대투쟁에 앞장선 재야 지도자였던 장씨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약사봉 등산길에서 하산도중 사망했다.그러나 검찰은 사건발생 3일 만에 단순변사로 처리,사건을 조기 매듭지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최종길 서울법대교수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인혁당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념조작사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지난 74년 ‘유신독재’가 절정으로치닫던 때 공산혁명을 꾀했다는 이유로 관련자 8명을 사형시킨 사건으로 사법관행상 이례적으로 판결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지난 98년 ‘인민혁명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가 구성됐지만 진상규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60년대 말 고(故) 이응로 화백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연루된 것으로 발표된 동백림사건도 재조명이 요구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도 대표적 미제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지금까지 이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역대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그러나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혹사건에 대한진상규명 활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특히 여당은 지난 8월 대통령 소속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이번 정기국회에서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여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열리게 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3공과 유신 시절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박준석기자 p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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